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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영응기:20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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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寧大君 주001)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 태종의 둘째 아들 이보(李𥙷). 불교를 좋아해 승려를 모아 불경을 강의하고 원각사(圓覺寺)의 창건을 감독하였다. 관례상 왕족은 모두 성을 빼고 적었다.
𥙷 首陽大君 주002)
수양대군(首陽大君):
1417~1468. 세종의 둘째 아들. 뒷날 조선 7대왕인 세조(世祖). 이름은 유(瑈). 자는 수지(粹之).
安平大君 주003)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이름 용(瑢). 자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琅玕居士), 매죽헌(梅竹軒). 대군은 왕자의 봉호.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세종 10년(1428) 안평대군으로 봉해졌다.
臨瀛大君 주004)
임영대군(臨瀛大君):
1420~1469. 세종의 넷째 아들. 이름이 구(璆). 자는 헌지(獻之)이다.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세종 10년(1428) 성균관에 입학. 세조를 보좌하여 조정의 득실과 민간의 이해를 잘 가려 세조의 신임을 얻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錦城大君 주005)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 세종의 여섯째 아들. 이름이 유(瑜).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세종 15년(1433)에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세종 19년(1437) 방석(芳碩)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단종(端宗) 3년(1455) 수양대군에 의해 모반 혐의로 삭녕(朔寧) 유배, 이어 광주로 옮겨졌다. 세조 3년(1456)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死六臣)의 단종 복위(復位)운동이 이에 연루되어 순흥(順興)에 안치(安置), 그 곳에서 다시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영조(英祖) 14년(1738)에 신원(伸寃). 초시(初諡)는 의민(義愍), 뒤에 정민(貞愍)으로 개시(改諡)됨.
永膺大君 주006)
영응대군(永膺大君):
세종의 여덟째 아들 이염(李琰).
효령대군이보(李𥙷), 수양대군이유(李瑈), 안평대군이용(李瑢), 임영대군이구(李璆), 금성대군이유(李瑜), 영응대군이염(李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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