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瑢): 안평대군의 이름. 1418~1453.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자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琅玕居士), 매죽헌(梅竹軒)이다. 대군은 왕자의 봉호로 세종(世宗)의 셋째 아들임.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세종 10년(1428) 안평대군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좌부대언(左副代言) 정연(鄭淵)의 딸과 결혼. 세종 12년(1430) 여러 왕자들과 함께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닦았다. 세종 20년(1438) 함경도에 진(鎭)을 설정하자, 왕자들과 함께 북변의 경계 임무를 맡아 야인(野人)들을 토벌하였다. 차츰 조정에서 배후의 실력자로 등장, 문신들을 포섭하여 권신 황보인(黃甫仁), 김종서(金宗瑞)와 제휴하여 수양대군 측의 무신 세력과 맞서 인사행정의 하나인 황표정사(黃標政事)를 장악, 측근의 문신들을 요직에 앉혔다. 1452년 단종(端宗)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가게 되어 외교권을 빼앗겼으나, 그 동안 이징옥(李澄玉)을 시켜 경성(鏡城)에 있는 무기를 서울로 옮기는 한편, 무계정사(武溪精舍)를 건립하여 장사들을 모아 무력을 양성하였으나, 귀국한 수양대군에 의해 황표정사가 폐지되어 실권을 상실했다. 이듬해 9월 다시 황표정사를 실시케 하는 등 실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다음달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황보인, 김종서 등이 살해된 후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교동(喬洞)으로 옮겨 사사되었다. 시문에 뛰어났고 당대의 명필로 문종(文宗) 2년(1452)의 경자자(庚子字)를 개주(改鑄)한 임자자(壬子字)의 자모(字母)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