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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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 왕설에게 드리는 40운[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6ㄱ

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 주001)
증왕이십사시어설사십운(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
시어(侍御) 왕설(王契)에게 드리는 40운. 764년 봄, 성도로 돌아올 때 지었다. 왕설은 경조인(京兆人)으로 엄무가 검남절도사를 할 때 부하로 근무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어’는 임금을 모시는 사람을 일컫는다.

시어 왕설에게 드리는 40운

往往 주002)
왕왕(往往)
가끔. 때때로.
雖相見 飄飄 주003)
표표(飄飄)
방랑하는 모양. 이리저리 떠도는 모습.
愧此身

므리므리예 주004)
므리므리예
왕왕(往往). 가끔. 때때로. 므리+므리+예. ¶므리므리예 : 아 데 디내디 아니혼 거슬 므리므리예 기 夢寐예 得니(往往애 煥然得於夢寐니)〈능엄9:56ㄴ〉 / 醉中에도 므리므리예 逃去야 坐禪호 놋다(醉中往往愛逃禪)「飮中八仙歌」〈두시15:41ㄱ〉.
비록 서르 주005)
서르
서로. ‘서르’는 『두시언해』에서 ‘상(相), 호(互)’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상’의 번역으로 쓰였다. 역사적으로 ‘서르〉서로’의 변화는 ‘일로, 새로, 젼로’ 와 같이 ‘-로’로 끝나는 부사에 이끌려 생겨난 일종의 유추 현상의 결과이다. ¶서르 : 相 서르 논 디라〈훈언:1ㄴ〉 / 서르 :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훈언1ㄴ〉 / 一生애 서르 뎻노니(生涯相汩沒)「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4ㄴ〉.
보나 주006)
보나
보더라도. 보-+나. 15세기 국어의 연결어미 ‘-나’는 역접 관계보다는 양보의 의미를 가질 때가 많다. 여기서도 선행하는 ‘비록’에 호응하여 ‘-나’가 쓰였다. ¶-나 :  文殊師利여 뎌 藥師瑠璃光如來菩薩ㅅ 道理 行 時節에 發샨 큰 願과 뎌 부텻 나라햇 功德莊嚴을 내  劫이며  劫이 남록 닐어도 몯 다 니르리어니와 그러나 뎌 부텻 히 雜말 업시 淸淨고 겨지비 업스며 惡趣ㅣ며 受苦 소리 업고〈석상9:10ㄴ〉 / 此 言吐藩이 雖入寇야 相傳檄書나 松州 회유解圍之日리라「警急」〈두시5:11ㄴ〉.
飄飄히 주007)
표표(飄飄)히
팔랑팔랑 정처 없이 나부끼는 모습으로.
뇨 주008)
뇨
다님을. -#니--+오+ㅁ+ᄋᆞᆯ. 『두시언해』에는 ‘니-, 니-’의 용례가 있다. ¶니- : 太子ㅣ 뫼히며 므리며 디 아니야 니실〈석상3:35ㄴ〉 /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萍泛無休日)「奉贈太···二十韻」〈두시19:15ㄴ〉 / 니- : 商 두루 녀  씨오〈석상20:25ㄱ〉 / 楚ㅅ 두들게 녀셔 將次ㅅ 늘구니(楚岸行將老)「大歲日」〈두시11:1ㄱ〉.
이 모 주009)
이 모
이 몸을.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붓그리노라 주010)
붓그리노라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愧]++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붓그리-’는 동사로서, 파생형용사 ‘붓그럽-’과 다시 여기서 ‘-어 -’가 붙어 동사로 파생된 ‘붓그려-’가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일련의 동사들은 현대국어에서는 모두 소멸되고 오히려 ‘업’ 파생형용사에 ‘-어하-’가 붙어 파생된 동사인 ‘부끄러워하다’만 남은 경우가 많다. 참조. 붓그려-. 붓그럽-. 붓그러워-.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44ㄱ〉 / 몸 許요 雙南金에 가뵤 붓그리노라(許身媿比雙南金)「題省中院壁」〈두시6:14ㄱ〉 / 붓그럽- : 비록 큰 허므리 업슨 오 안로 매 붓그럽디 아니니여〈내훈3:27ㄴ〉 / 右ㅅ녁 히 붓그러온 나 幸호 하니라(右地恧多幸)「故右···九齡」〈두시24:41ㄴ〉 / 붓그려- :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3:8ㄱ〉 / 늘근 원두리 기리 붓그려노라(老圃永爲恥)「種萵茞幷序」〈두시16:67ㄱ〉.

【한자음】 왕왕수상견 표표괴차신
【언해역】 때때로 비록 서로 보지만 표표(飄飄)히 다님을 내 자신 부끄러워하네.
【현대역】 비록 때때로 서로 만날지라도 정처 없이 떠도는 나 자신이 부끄럽구나.
【구절풀이】 두보가 왕설(王契) 시어(侍御)와 때때로 만나지만 자신은 정처 없이 떠도는 몸이라 부끄럽다는 말이다.

不關輕紱冕 但是避風塵 주011)
풍진(風塵)
세상에서 일어나는 힘겨운 일. 병란(兵亂).
ㅣ 言我之不仕 非輕官爵이라 但以避兵亂也ㅣ라】

주012)
불(紱)
인끈. 고관(高官)이 허리에 두르는 띠.
주013)
면(冕)
예관(禮冠). 고관(高官) 머리에 쓰는 관(冠).
므던히 주014)
므던히
가볍게. 소홀하게. 무던히. 므던-+이. 15세기 국어의 ‘므던히’는 ‘소홀하게’의 뜻이다. 참조. 므더니. ¶므던히 : 네 뎌 나라 므던히 너겨 사오나 너 들 내디 말라〈석상20:36ㄴ〉 /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3:9ㄴ〉 /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百年從萬事)「遣悶」〈두시3:13ㄱ〉 / 되 겨지븐 烽燧 므던히 너기고(羌女輕烽燧)「寓目」〈두시3:23ㄴ〉 / 므더니 : 慢  므더니 너길 씨니〈석상9:13ㄴ〉 / 나모 지 아 므더니 너기노라(斤斧任樵童)「遣悶奉呈嚴公二十韻」〈두시19:9ㄴ〉.
너규메 주015)
너규메
너김에. 너기-+우+ㅁ+에. ¶너기-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2ㄴ〉 /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석상3:22ㄱ〉 / (-고져 너기-) :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14:30ㄱ〉 / (-라 너기-) : 릿 東녀긔셔 使君을 기들우리라 다 너기다 다(惣擬橋東待使君)「李司~都廻호라」〈두시15:36ㄴ〉 / (怪異히 너기) : 怒야 우르니란 熊罷 怪異히 너기노라(號怒怪熊羆)「偶題」〈두시16:10ㄴ〉 / (히 너기-) : 老人星 외야슈 히 너기노라(甘作老人星)「泊松滋江亭」〈두시14:38ㄴ〉.
關係호미 주016)
관계(關係)호미
관계함이. 關係#ᄒᆞ-+오+ㅁ+이.
아니라 오직 주017)
오직
오직. 원문의 ‘단(但)’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에서 ‘오직’은 주로 ‘단(但), 유(唯), 지(只), 지(祗), 유(惟)’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단(但)’은 ‘오직’ 이외에 ‘갓’으로도 번역되고, ‘유(唯)’의 번역은 ‘오직 ~’으로 되기도 한다. ¶오직(但) : 알로 올아가니 오직 묏귿 니로다(前登但山椒)〈중간두시1:34ㄴ〉 / 오직(唯) : 뷘 핸 오직 새 보고(空村唯見鳥)「東屯北崦」〈두시3:43ㄱ〉 / 오직(只) : 오직 네게 거리디 아니호미 이시리로다(只有不關渠)「戲作俳諧體遣悶二首」〈두시3:46ㄴ〉 / 오직(惟) : 오직 졋 먹 孩子옷 잇니(惟有乳下孫)「石壕吏」〈중간두시4:8ㄱ〉 / 오직(祗) : 오직 殘破 鄴城을 날 아니야셔 得리로소니(祗殘鄴城不日得)「洗兵馬」〈중간두시4:16ㄱ〉 / 참조. 갓(但) : 엇디 갓 歲月ㅣ 졈을 이리오(豈但歲月暮)「赤谷」〈중간두시1:16ㄱ〉.
이 風塵을 주018)
이 풍진(風塵)을
이 바람과 먼지를. 즉 이 전쟁의 혼란함을.
避카래니라 주019)
피(避)카래니라
피(避)하거라이니라. 避#-+거+오+라+이+니+라. ‘카’는 ‘거’와 ‘오’의 결합으로 인한 형태이다. ‘오’가 있으므로 ‘避-’ 문장의 주어는 ‘두보’이다. 즉 두보가 관직을 피한 것은 관직을 경시한 것이 아니라 난을 피하기 위하였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의 협주인 ‘甫ㅣ 言我之不仕 非輕官爵이라 但以避兵亂也ㅣ라’도 이 해석이 옳음을 뒷받침한다. ‘카’는 거성이다.

【한자음】 불관경불면 단시피풍진
【언해역】 인끈과 관모를 무던히 여김에 관계(關係)치 않고 오직 이 풍진(風塵)을 피하기 때문이네.
【현대역】 벼슬과 관직을 가벼이 여김이 아니라 다만 전쟁의 혼란을 피하려는 것이네.두보는 자신이 벼슬하지 않은 것은 관작(官爵)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라 다만 병란(兵亂)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두보는 관직을 그만둔 이유가 관직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전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一別星橋 주020)
성교(星橋)
칠성교(七星橋). 현재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에 있다.
三移 주021)
삼이(三移)
세 번 옮기다. 봄이 세 번 돌아왔다. 즉, 삼 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斗柄 주022)
두병(斗柄)
북두칠성 중 자루에 해당되는 세 개의 별. 세 개의 별 이름은 형성(衡星), 개양성(開陽星), 요광성(搖光星)이다. 지구의 자전에 따라 두병(斗柄)이 가리키는 방향은 계속 바뀐다. 두병이 동쪽을 가리키면 계절은 봄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6ㄴ

【星橋 在蜀다】

星橋ㅅ 바셔 주023)
성교(星橋)ㅅ 바셔
칠성교의 밤에서.
 번 여희유니 주024)
여희유니
여의니. 이별하니. 여희-+오+니. ‘오’는 주어가 1인칭임을 가리킨다. ‘초췌하다, 마르다’의 뜻인 ‘여의-’와 같이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전반기에 간행된 관판 한글문헌에서는 ‘ㄹ’ 및 서술격조사(i)와 j계 하향 이중모음[ㅐ, ㅒ, ㅔ, ㅖ, ㅙ, ㅚ, ㅞ, ㅟ, ㅢ 등] 아래에서 ‘ㄱ’으로 시작하는 조사(과, 고 등)나 어미(-게, -고 등)를 후음 ‘ㅇ’[ɦ]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희-’는 ‘마르다’의 뜻인 ‘여위-’와는 다른 단어이다. ¶여희- : 貪欲 여희여 조 몸 사 하히니〈석상3:16ㄱ〉 / 이 여희요매 黃泉이 도다(此別間黃泉)「哭李尙書之芳」〈두시24:46ㄴ〉.
斗柄 횟도 주025)
횟도
횟도는. 횟돌-+ᄂᆞᆫ. ‘횟돌-’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타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횟돌-(자동사) : 輪은 술위니 輪廻 횟돌 씨라〈월석1:월인석보 서4ㄱ〉 /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故繞池邉樹)「羌村三首」〈중간두시2:66ㄴ〉 / 횟돌-(타동사 용법) : 崐崙山과 崆峒山ㅅ 그티 머리 횟돌아 보니(回首如不隔)「白水···三十韻」〈두시7:24ㄴ〉 / 피티 우러 虛空애 솟고 셴 머리 횟도로노라(泣血迸空回白頭)「白帝城最高樓」〈두시14:9ㄱ〉 / 손 안잿   횟도놋다(回舟坐客時)「觀作橋成고~還呈李司馬노라」〈두시15:35ㄴ〉 / 氣運이 西戎을 믈리조며 北狄을 횟도라 가게 놋다(氣却西戎廻北狄)「惜別···判官」〈두시17:32ㄴ〉 / 杜曲애 애 횟돌아 글탈노라(回腸杜曲煎)「秋日···一百韻」〈두시20:4ㄱ〉 / 巫峽엣  믌겨른 天地 횟도로 혀 도다(巫峽秋濤天地回)「送李···公幕」〈두시23:30ㄴ〉 / 목  病 야 三更애 셴 머리 횟돌아 라다니(病渴三更回白首)「示獠奴阿段」〈두시25:16ㄱ〉 / 채 횟돌아 새 기세 들어 리 오노라(迴鞭急鳥棲)「白露」〈두시25:16ㄴ〉 / 溪壑이 날 爲야   횟돌아 뵈다(溪壑爲我回春姿)「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25:29ㄱ〉.
보미 주026)
보미
봄[春]이.
세 번 옴도다 주027)
옴도다
옮도다. 옮는구나. 옮-+도+다. ¶옮- : 文殊師利여 내 이 이셔 년 듸 옮디 아니호리니〈석상11:29ㄴ〉 / 다봇 옮 호매 시르미 悄悄니(轉蓬憂悄悄)「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6ㄴ〉 / 옮기- : 주를 다  옮겨 터 되더니〈석상6:36ㄴ〉 /  비옌 가야 橙子 옮겨 심고라(細雨更移橙)「遣意二首」〈두시3:25ㄴ-26ㄱ〉.

【한자음】 일별성교야 삼이두병춘
【언해역】 칠성교의 밤에서 한 번 여의니 북두성 자루가 돌아가는 봄이 세 번 옮는구나.
【현대역】 칠성교에서 밤에 한 번 헤어진 뒤로 북두 자루가 돌아가는 봄이 세 번(3년) 돌아왔구나.【성교(星橋)는 촉(蜀)에 있다.】
【구절풀이】 두보가 왕설 시어와 칠성교에서 헤어진 후 3년이 지났다는 말이다.

敗亡非赤壁 주028)
적벽(赤壁)
호북성(湖北省) 무창(武昌)의 적벽. 중국 후한(後漢) 208년에 조조(曹操)가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전투해 패한 적벽대전의 장소이다.
奔走爲黃巾 주029)
황건(黃巾)
후한(後漢) 말기에 농민들이 장각(張角, 미상 ~ 184년)을 수령으로 일어난 난당(亂黨). 머리에 황건(黃巾)을 썼으므로,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다.
曹操 주030)
조조(曹操)
한(漢)나라 헌제(獻帝) 때의 승상. 자는 맹덕(孟德, 154~220)이다. 한나라 패국 초(沛國 譙) 사람. 후에 위(魏)나라를 세웠고 아들 비(丕)가 문제(文帝)가 되어 무제(武帝)라 추존했다. 권모술수에 능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승상으로서 정권을 전단(專斷)했으며 위왕(魏王)에 봉해졌으나, 위나라를 세워 촉한(蜀漢), 오(吳)와 더불어 중국의 삼국시대(三國時代)를 열었다.
ㅣ 與周瑜 주031)
주유(周瑜)
삼국시대 오(吳)나라 여강(廬江) 서현(舒縣) 사람. 자는 공근(公瑾, 175년 ~ 210년)이다. 문무(文武)에 두루 능했다. 젊어서 손책(孫策)과 친구 사이였는데, 손책을 따라 정벌에 나서 건위중랑장(建威中郞將)이 되었다. 손책을 도와 강동(江東)에 손씨 정권을 세웠다. 손책이 죽은 뒤 장소(張昭)와 함께 손책의 동생 손권(孫權)을 도와 전부대도독(前部大都督)에 올랐다. 오나라 사람들이 주랑(周郞)이라 불렀다. 건안(建安) 13년(208) 조조(曹操)가 남하하자 유비(劉備)와 협력하여 조조의 군대를 적벽(赤壁)에서 격파했다. 이어 승세를 몰아 조인(曹仁)을 공격했다. 편장군(偏將軍)에 오르고 남군태수(南郡太守)를 관할했다. 유비가 형주(荊州)에서 세력을 확대할 것을 염려하여 사천(四川) 지방을 공략하라고 진언했지만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병사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곡조에 문제가 있으면 주랑이 고개를 돌린다(曲有誤 周郞顧)”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로 戰于赤壁而敗니 言潼關 주032)
동관(潼關)
섬서성 동관현(潼關縣)에 있는 관(關)의 이름. 이곳을 병마부원수 가서한(哥舒翰)이 지키고 있다가 안녹산(安祿山)의 군대와 싸워서 대패하자, 그의 수하들이 가서한을 체포하여 적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현종(玄宗)은 장안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고,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러 양국충(楊國忠)과 양귀비(楊貴妃) 등이 죽음을 당하였다.
之敗예 兩京 주033)
양경(兩京)
낙양(洛陽)과 장안(長安). 서한(西漢)과 동한(東漢)을 이르며 한나라를 일컫는다. 전한(前漢)의 수도가 장안이었고, 후한(後漢)의 수도가 낙양(洛陽)이었으므로 양경(兩京)이라 말한 것이다.
이 皆陷니 其禍ㅣ 甚於赤壁이라 漢ㅅ 張角 주034)
장각(張角)
황건적(黃巾賊) 난의 지도자. 후한(後漢) 때 거록(鉅鹿) 사람으로, 부적과 주술(呪術)로 병을 치료하며 태평도(太平道)라고 칭한 다음 신도들을 규합하여 머리에 황색 두건을 쓰고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당시 이들을 황건적(黃巾賊)이라 칭하였는데, 뒤에 관군의 토벌을 받고 궤멸되었다.
이 叛亂야 稱黃巾니 比當時亂者다】

브왜요미 주035)
브왜요미
부서짐에. 패망함에. 브왜-+오+ㅁ+이. 원문의 ‘敗亡’의 번역이다. ‘브왜-’는 『두시언해』에만 나오는 단어로 ‘브와이-(브와요매)’로도 쓰였으며, 주로 ‘喪亂, 凋喪, 喪敗, 沮喪, 敗亡’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브왜- : 녯 時節ㅅ 브왜요 다 可히 알리로소니(古時喪亂皆可知)「清明」〈두시11:13ㄱ〉 / 마 驊騮로 여 氣運을 브왜에 리아(忍使驊騮氣凋喪)「丹靑引贈曹將軍霸」〈두시16:27ㄴ〉 / 볼 사미 뫼티 이셔 비치 브왜니(觀者如山色沮喪)「觀公孫···並序」〈두시16:47ㄱ-ㄴ〉 / 時節이 비록 브왜요매 브터 이시나(時雖屬喪亂)「鄭典設自施州歸」〈두시19:28ㄱ〉 / 히미 서르 브왜니(筋力交凋喪)「寄劉···四十韻」〈두시20:24ㄴ〉 / 브왜야 나 숨 쉬요 니라(凋喪盡餘喘)「故秘···源明」〈두시24:35ㄴ〉 / 브ᅀᅳ와이- : 브와요매 올로 길헤 나가노라(喪亂獨前途)「哭台州鄭司戶蘇少監」〈두시24:58ㄴ〉.
赤壁 디 주036)
디
같지. 갇-+-+디. 15세기 국어의 ‘갇-/-’은 ‘-와’는 물론 ‘-이’를 지배하기도 한다. 15세기 국어세서는 ‘-’으로도 쓰이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석상3:17ㄱ〉 / 나랏 社稷ㅣ 이제 이 니(國之社稷今若是)「徒步歸行」〈중간두시1:10ㄴ〉 / -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4ㄱ〉 /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不復有顏鮑)「遣懷」〈중간두시2:47ㄴ〉.
아니코 주037)
아니코
않고. 아니#-+고.
쳐 뇨 주038)
쳐 뇨
쫓기어 다님은. ᄧᅩ치-+어 ᄃᆞᆮ니-+오+ㅁ+ᄋᆞᆫ. ‘ᄧᅩ치-’는 ‘ᄧᅩᆾ-’의 피동사이다. ‘ᄃᆞᆮ니-’의 예는 위의 항목을 참조할 것. ¶치- : 그제  龍이 金翅鳥의게 쳐 즉재 袈裟 바기예 이여  조차 더니〈월석25:30ㄱ〉 / 胡騎ㅣ 치이다 호 듣논 요니(似聞胡騎走)「遠遊」〈두시3:27ㄴ〉 / - : 아기 보니 버미 차 오거늘 브르노라 다가 치마옛 아기 디오〈월석10:24ㄴ〉 / 衣冠 사ㅣ 쵸 다시 볼가 노라(重見衣冠走)〈중간두시1:40ㄴ〉.
黃巾을 주039)
황건(黃巾)을
황건적을.
爲얘니라 주040)
위(爲)얘니라
때문이니라. ‘위(爲)’는 기본적으로 ‘위하다’의 뜻과 ‘때문이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예로 쓰였다.

【한자음】 패망비적벽 분주위황건
【언해역】 부서짐이 적벽(赤壁)의 패전과 같지 않고 쫓기어 다님이 황건적(黃巾賊) 때문이네.
【현대역】 이번 동관의 패배는 적벽과는 다르고 쫓겨다니는 것은 황건적 때문이라네.【조조(曹操)가 주유(周瑜)와 적벽에서 한 전투에서 패했다. 동관(潼關)의 패배는 장안과 낙양 두 서울이 모두 함락되어 그 화가 적벽의 패배보다 극심한 것을 말한 것이다. 한나라 사람 장각(張角)이 반란(叛亂)을 일으켜 황건(黃巾)이라고 칭하니 당시의 난 즉 안녹산의 난을 비교해서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동관에서 안사 반군에게 패한 것은 조조가 주유에게 적벽에서 패한 것보다 훨씬 심하고 지금 두보가 쫓겨 다니는 것은 안사의 난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 구(句)의 동관(潼關)에서의 패전이 아니라 서지도의 반란군이 패한 것으로 두보가 쫓겨 다니는 것도 서지도의 반란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子去何蕭灑 주041)
소쇄(蕭灑)
맑고 깨끗함. 인품이 맑아 속기(俗氣)가 없음을 뜻한다. 소쇄(瀟灑)와 같다.
余藏異隱淪【子 指王侍御 주042)
왕 시어(王侍御)
시어사(侍御史)의 직책을 맡고 있는 왕설(王契)을 말한다.
ㅣ라 ㅣ 因避亂流寓니 非始隱士 주043)
은사(隱士)
세속(世俗)을 피해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
ㅣ라】

그듸의 주044)
그듸의
그대의. 그듸+의. ‘그듸’는 ‘너’보다 상대방을 조금 높여 대우하는 2인칭 대명사이다. 15세기에 ‘그듸, 그, 그디’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가 같이 쓰였다. ¶그듸 : 耶輸는 겨지비라 法을 모 즐급 드리워 온 들 몯 러 리니 그듸 가아 아라듣게 니르라〈석상6:6ㄴ〉 / 오직 그듸 醉야셔 기 어러온 客을 랑야셔(唯吾醉愛清狂客)「遣悶···曹長」〈두시3:48ㄱ〉 / 그ᄃᆡ : 그 爲야 波羅蜜 서 지시니라〈금삼3:57ㄴ〉 / 그 徐卿의 두 아리 나  奇異호 보디 아니다(君不見徐卿二子生絕奇)「徐卿二子歌」〈두시8:24ㄱ〉.
가 주045)
가
감은. 떠나감은. 가-[去]+ㅁ+ᄋᆞᆫ. ‘가’는 상성이다.
모 주046)
모
자못[頗]. ‘모’는 『두시언해』에서 ‘’로도 2회 쓰였는데 『두시언해』 중간본에서는 모두 ‘모’라 수정되었다. 원시의 ‘何, 頗, 殊’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 전체에서 ‘何 〉 頗 〉 殊’의 순서로 번역어로 쓰였다. 『두시언해』 중간본의 영인본 중 경인문화사 영인본의 권2 40ㄴ에는 ‘자못’으로 되어 있는데 원본 확인이 필요하지만 다른 중간본의 영인본에는 ‘모’로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붓으로 가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학언해』(1586)에 ‘’(제2), 『첩해신어』(1676)에 ‘믓’(5)이 쓰인다. ¶ : 號令이  녯 어딘 사 風이 잇도다(號令頗有前賢風)「冬狩行」〈두시5:50ㄱ-ㄴ〉 / 胡羯이  難호미 하니(胡羯何多難)「村夜」〈두시7:6ㄴ〉 / 못(가필) : 輕裘 肥馬로 못 어러이 뇨라(裘馬頗清狂)「壯遊」〈중간두시2:40ㄴ〉 / 모 : 須菩提ㅣ 부텻긔 오 世尊하 모 衆生이 이 말 章句 듣고 實 信 내리 이시리가 몯리가〈금강32ㄱ〉 / 모  이우로 슬허도다(頗亦恨枯槁)「遣興五首」〈두시3:58ㄱ〉 / 모미 尊고 道理 모 놉고(身尊道何高)「述古三首」〈두시3:56ㄴ〉 / 高岺이 모 날호야 건니(高岑殊緩步)「寄彭···三十韻」〈두시20:36ㄱ〉.
蕭灑니 내의 주047)
내의
나의. 나+ㅣ+의. ‘ㅣ’와 ‘의’는 모두 속격조사인데, 1인칭 대명사 ‘나’가 속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내’의 형태로 속격으로 쓰이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는 ‘내’가 1인칭 대명사로 인식되어 다시 속격조사 ‘의’가 결합된 형태이다. ‘내의’는 항상 내포문의 주어가 속격으로 실현될 때 쓰인다. ¶내의 : 엇뎨 이 내의 眞性인  알리고〈능엄2:35ㄴ〉 / 히 내의 녀 보내니(閭里送我行)「後出塞五首」〈두시5:30ㄱ〉.
수머슈믄 주048)
수머슈믄
숨어 있음은. 숨-+어#이시-+우+ㅁ+은. ¶숨- : 져재  저기어든 대 두드리여 숨니라〈석상11:21ㄱ〉 / 수므락 나락  바횟  냇도다(隱見巖姿露)「雨」〈두시12:18ㄴ〉.
隱居니와 주049)
은거(隱居)니와
은거하거니와. 隱居#ᄒᆞ-+니+와.
달오라 주050)
달오라
다르구나. 다-+오+라. ¶다ᄅᆞ- : 中國에 달아 與文字로 不相流通(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훈언1ㄴ〉 / 그 젯 이리 녯 님그믜 敗亂과 다니라(事與古先別)〈중간두시1:8ㄴ〉.

【한자음】 자거하소쇄 여장이은관
【언해역】 그대의 떠나감은 자못 시원스러우니 나의 숨어 있음은 은거하는 것과는 다르네.
【현대역】 그대 떠나던 모습 얼마나 시원스럽던지 나는 숨었지만 은거하는 것과는 다르네.【자(子)는 왕시어(王侍御)를 가리킨다. 두보가 난리를 피해 타향살이를 하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은사(隱士)로 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구절풀이】 왕설 시어가 떠난 것과 달리 두보 자신은 은자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란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書成無過 주051)
안(鴈)
서신을 전하는 새인 기러기. 기러기가 서신을 전한 다음과 같은 고사에 근거하여 한 말이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 소무(蘇武)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잡혀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뒤 소제(昭帝)가 즉위하자 흉노가 한나라와 화친하였다. 한나라 사신이 소무를 보내 달라고 하자, 흉노는 소무가 죽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상혜(常惠)가 사신에게 방법을 일러주기를 “천자가 상림원에서 활을 쏘아 기러기를 잡았는데, ‘소무가 어느 택중(澤中)에 있다.’라고 쓴 백서(帛書)가 그 발에 매여 있었다.”라는 내용으로 선우(單于)에게 말하라고 하자, 그 말대로 하여 소무를 데리고 돌아오게 되었다.
衣故有懸 주052)
순(鶉)
메추리. 머리가 작고 꽁지가 짧으며 똥똥한 새이다. 이 새는 꽁지 부분에 털이 없어 마치 옷이 해진 것 같은 것이 특징이다.
【上句 言無通信者ㅣ라】

書信이 주053)
서신(書信)이
서신이. 편지가.
이러슈 주054)
이러슈
되어 있으되. 이루었으되. 일-+어#이시-+오+ᄃᆡ.
디나갈 주055)
디나갈
지나가는. 디나-#가-+ㄹ. 『두시언해』에는 ‘디나가-’ 이외에 ‘디너가-’도 쓰였다. ¶디나가- : 淨居天이 沙門이 외야 錫杖 잡고 바리 받고 알로 디나가거늘〈석상3:19ㄴ〉 / 네의 險  디나가 사과 와 잇비 호 아로라(知子曆險人馬勞)「久雨···不至」〈두시5:36ㄱ-ㄴ〉 / 디너가- : 四時ㅣ 디너가미 내 매 버므럿니(四序嬰我懷)「晚登瀼上堂」〈두시14:4ㄱ〉.
그려기 주056)
그려기
기러기. ‘그려기’는 『두시언해』에서 ‘그력’으로도 쓰였다. 『두시언해』에 자주 나오는 새 이름으로는 ‘가마괴[烏], 가치[鵲], 가막가치[烏鵲], 그려기[鴈], 며기[鷗], [雞], 쇠로기[鳶](솔개), 믌[鸂鶒](물닭), 봉황[鳳], 알이새(꾀꼬리), 옫바미[鵩](올빼미), 올히/올[鴨], 졔비[燕], 해야로비/하야로비/야로비[黃鸝]’ 등이 있다. ¶그려기 : 太子ㅣ 本國에셔  그려기 치샤 더브르샤 노니더시니〈월석22:17ㄱ〉 / 자 그려기 두려운 몰애예 모댓도다(宿鴈聚圓沙)「遣意二首」〈두시3:26ㄱ〉 / 그력 : 그력 爲鴈〈훈해57〉 / 그력 올히로 여 갓가온 이우즐 어즈러이디 아니호리라(不敎鵝鴨惱比隣)「將赴~五首」〈두시21:3ㄴ〉.
업고 주057)
업고
없고.
오시 니 주058)
니
낡으니. ᄂᆞᆰ-+ᄋᆞ니. ¶ᄂᆞᆰ- : 堂閣이 서거 며 담과 괘 믈어디며 긷 불휘 서거〈법화2:56ㄴ〉 / 거츤 防戍 城에 돐 비치 니(荒戍之城石色古)「錦樹行」〈두시25:42ㄱ〉.
모라기 주059)
모라기
메추라기. ‘헤어진 옷’에 대한 구절이 『두시언해』 권3의 「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거믄 几 重重히 얼겟고 모라기 론  오 寸寸히 횃도다(烏几重重縛 鶉衣寸寸針)’에 나오는데 이 부분의 주석에 ‘순의(鶉衣)는 헤어진 옷을 꿰맨 것이 마치 메추라기가 달린 듯하니 가난함을 말한다(鶉衣 弊衣結如懸鶉이니 言其貧也ㅣ라)’라 되어 있다. ¶모라기 : 鷸 모라기 암 鶉 모라기 슌〈훈몽 상9ㄴ〉.
론 주060)
론
달린. -+오+ㄴ. ‘ᄃᆞᆯ-’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ᄃᆞᆯ- : 琉璃예 안해 寶月 론 야(琉璃예 內縣寶月ᄐᆞᆺ야)〈능엄8:9ㄴ〉 / 도혀 지브로 여 갓로 론 도다(翻令室倒懸)「聞斛斯六官未歸」〈두시22:12ㄱ〉.
호미 주061)
호미
듯함이. ᄃᆞᆺ#ᄒᆞ-+오+ㅁ+이. ¶ᄒᆞ- : 稠禪師ㅣ 火光定에 드니 그 지비 븓 호미  이 類라〈능엄5:74ㄴ〉 /  번 地獄애 디여 無數劫에 니르호미 엇뎨 無量壽ㅣ 아니리오〈법화5:133ㄱ〉 / 眞實로 醉야 어린 호미 잇노라(實有醉如愚)「徐步」〈두시3:28ㄱ〉.
잇도다 주062)
잇도다
있도다. 있구나.

【한자음】 서성무과안 의고유현순
【언해역】 서신(書信)이 다 되었으나 지나가는 기러기 없고 옷이 낡으니 메추라기가 달린 듯하구나.
【현대역】 편지 다 썼어도 지나가는 기러기 없고 옷은 낡아 메추라기가 매달린 듯 누추하네.【위 시구는 서로 소식을 전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지금 왕설 시어는 장안에 있고 두보는 재주와 낭주를 떠돌아다니니 편지를 써도 부칠 사람이 없고 두보 자신은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겨우겨우 살고 있다는 말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7ㄱ

恐懼 주063)
공구(恐懼)
두렵고 송구함.
行裝 주064)
행장(行裝)
여장(旅裝). 여행이나 길을 갈 때 쓰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차림에 필요한 것들이다.
伶俜 주065)
영빙(伶俜)
갈 곳이 없다.
臥疾頻

저허셔 주066)
저허셔
두려워서. 젛-+어+셔. ¶젛- : 저허  업스니라(因其怖謂無心故로)〈능엄1:88ㄴ〉 / 네 모 리 가라 사미 너 害가 전노라〈육조상:31ㄴ〉 / 서르 맛나 슬후믈 너무 가 저허(相逢恐恨過)「秋笛」〈두시16:51ㄴ〉.
녀 주067)
녀
가는. 녀-[行]+. ¶녀- : 太子ㅣ 아 예 八百里 녀샤 雪山 苦行林에 가시니라〈석상3:30ㄴ〉 / 나 녀 셔 믌애 왯거(我僕猶木末)「北征」〈중간두시1:4ㄱ-ㄴ〉.
緣裝 주068)
연장(緣裝)
여장을. 행장을.
조 주069)
조
자주. ¶조 : 太子ㅣ 조 王 出家야지다 거시〈석상3:23ㄱ〉 /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數見銘鍾鼎)「秋日···三十韻」〈두시3:10ㄴ〉.
고 伶俜야 주070)
영빙(伶俜)야
갈 곳이 없어. 伶俜#ᄒᆞ-+야.
病야 주071)
병(病)야
병들어.
누우미 조라 주072)
조라
자주다. ‘ᄌᆞ조’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한자음】 공구행장삭 령빙와질빈
【언해역】 두려워서 여장(旅裝)을 자주 싸고 갈 곳 없어 병들어 눕는 것이 잦구나.
【현대역】 두려워서 자주 행장 꾸려 떠돌고 갈 데 없이 자꾸 앓아누웠습니다.
【구절풀이】 두보가 재주와 낭주를 떠돌면서 늘 행장을 꾸리고 있고 그러면서도 자주 앓아눕는다는 말이다.

曉鶯工迸淚 秋月解傷神【聞鶯而泣며 見月而傷니 亂離疾病人所感也ㅣ라】

새뱃 주073)
새뱃
새벽의. 새배+ㅅ. ¶새배 : 새배 省며 나죄 定야〈영가 상:16ㄱ〉 / 바 짓디 아니니 우므리 새배 어렛고(不爨井晨凍)「空囊」〈두시3:25ㄱ〉.
곳고리 주074)
곳고리
꾀꼬리는. 곳고리+ᄂᆞᆫ. ¶곳고리 :  뎜 누니  기 남긔 믓 곳고리로다〈백련16ㄴ〉 / 곳고리 와 안자 서르 저주믈 시름고(黃鶯並坐交愁濕)「遣悶戲呈路十九曹長」〈두시3:47ㄴ〉.
믈 주075)
믈
눈물. 『두시언해』 중간본에는 ‘누ᇇ믈’과 함께 ‘눈믈’도 쓰였다. ¶믈 : 그 므른 摩耶夫人ㅅ 믈와 四衆의 므를 다 니르니〈석상23:28ㄴ〉 / 나 엇디 구틔여 므를 기리 흘리리오(何必淚長流)「去蜀」〈중간두시2:1ㄴ〉 / 눈믈 : 본 사미 다 눈믈 디더니〈삼강 동경孝23ㄱ〉 / 눈믈 리고 님금 가 겨신  호니(揮涕戀行在)「北征」〈중간두시1:2ㄱ〉.
흐르게 호 주076)
흐르게 호
흐르게 함을. 흐르-+게 ᄒᆞ-+오+ㅁ+ᄋᆞᆯ. ‘-게 -’는 사동형식이다. ¶-게 - : 미처 라가 바다 알피 아니 디게 시니라〈석상3:13ㄱ〉 / 셰샤 甚히 크게 샷다(樹立甚宏達)「北征」〈중간두시1:10ㄱ〉.
바지로이 주077)
바지로이
솜씨 좋게. 교묘하게. 바지#롭-+이(부사화파생접미사). ‘바지로이’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인다. ‘바지’는 ‘장인(匠人), 공인(工人)’을 의미하였으며, 여기에 형용사 파생접미사 ‘-롭-’이 결합하여 ‘바지롭다’라는 형용사가 파생되었고, 다시 부사 파생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바지로이’가 형성되었다. 참고. 바지다. 바지. ¶바지로이 : 何劉 沈謝 힘도 바지로이 몯리니(何劉沈謝力未工)「蘇端薛復筵簡薛華醉歌」〈두시15:39ㄴ〉 /  字 바지로이 더니라(辨眼工小字)「送顧八分文學適洪吉州」〈두시16:17ㄴ〉 / 바지롭- :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 뉘 能히 부들 혀 實에 맛게 베퍼 펴리오(若非匠手ㅣ면 孰能抽毫야 稱實發揚이리오)〈금삼 서:13ㄱ〉 / 바지 : 匠 바지라〈법화 서:21ㄴ〉.工 바지 공〈광천40ㄱ〉.
고   주078)

달은. ᄃᆞᆯ[月]+ᄋᆞᆫ.
내  슬케 호 주079)
슬케 호
슬퍼하게 함을. 슳-+게 ᄒᆞ-+오+ㅁ+ᄋᆞᆯ.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슳-’에 형용사파생접미사 ‘-브-’가 결합되면 ‘슬프다’가 되며, 여기에 동사파생접미사 ‘-어-’가 결합되면 ‘슬퍼다’가 된다. 현대국어의 ‘슬퍼하다’는 ‘슬퍼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원래 파생의 근원이 되었던 ‘슳다’는 현대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슳- : 王이 더욱 슬허 니샤〈석상3:21ㄴ〉 / 忽然히 드로니 슬허 셜워시 詔書ㅣ 聖明朝애  리도다(忽聞哀痛詔 又下聖明朝)「收京三首」〈두시5:7ㄴ〉 / 슬허-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석상6:38ㄱ〉 / 도라와 비루소 내 슬허노라(歸來始自憐)「喜達行在所三首」〈두시5:6ㄱ〉 / 슬프- : 뎌 말도 슬프실〈월석8:81ㄱ〉 / 슬프다 둘히  잇디 몯야 다시 辛苦 同티 몯리로다(哀哉兩决絕 不復同苦辛)「前出塞九首」〈두시5:27ㄴ〉 / 슬퍼- : 일쳬 히 아  길어셔 슬퍼호모로 심을 언니〈장수67ㄴ〉.
아라 다 주080)
아라 다
알아서 한다. 알아서 하네. 알-+아 ᄒᆞ-+ᄂᆞ+다.

【한자음】 효앵공병루 추월해상신
【언해역】 새벽의 꾀꼬리는 내 눈물 흐르게 함을 솜씨 좋게 하고 가을 달은 내 마음 슬퍼하게 함을 알아서 하네.
【현대역】 새벽 꾀꼬리는 눈물 잘 흐르게 하고 가을 달은 마음을 아프게 할 줄 아는구나.【꾀꼬리 소리를 듣고 울며, 달을 보고 슬퍼하니 난리(亂離)와 질병(疾病)을 사람이 느꼈기 때문이다.】
【구절풀이】 새벽 꾀꼬리는 두보의 눈물을 흐르게 하고 가을 달은 두보의 마음이 아픈 것을 아는 것처럼 밝다는 말이다.

會面嗟黧黑 含悽話苦辛

 주081)

낯을. 얼굴을. 즉 서로 만난다는 말이다.
마조 주082)
마조
마주. 맞-[的]+오. ‘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마조 : 즉자히 니러 竹園으로 오더니 부톄 마조 나아 마샤 서르 고마야 드르샤 說法시니〈석상6:12ㄴ〉 / 서르 마조 보아 바 자 일우니(相逢成夜宿)「宿贊公房」〈두시9:24ㄱ〉.
보와셔 주083)
보와셔
보아서. 보-+와+셔.
거머호 주084)
거머호
검음을. 검-+어#ᄒᆞ-+오+ㅁ+ᄋᆞᆯ.
슬코 주085)
슬코
슬퍼하고. 슳-+고. <참고>‘슳-’의 예문은 위의 주석을 참고할 것.
슬픈 주086)
슬픈
슬픈. 슬프-+은. ‘슬프-’는 ‘슳-’에 형용사파생접미사가 결합되어 형성된 파생형용사이다.
 주087)

마음을. ᄆᆞᅀᆞᆷ+ᄋᆞᆯ.
머거셔 주088)
머거셔
먹어서. 머금어서. 먹-+어+셔.
슈고로이 주089)
슈고로이
수고롭게. 슈고#롭-+이(부사화파생접미사). ¶슈고로이 : 모시 닑다가 슬 부모 나 슈고로이 나시니라 〈삼강(동경) 효:15ㄴ〉 / 父母ㅣ여 날 나호믈 슈고로이 샷다〈번소9:27ㄱ〉 / 슈고ᄒᆞ- : 인이 아 이슬 니 엇뎨 이리도록 슈고다〈삼강(동경) 충:6ㄴ〉 / 세히  길 녀매 져므니 슈고니라〈번노 상:34ㄴ〉 / 슈고 : 이 드샤 이 슈고 면케 이쇼셔〈장수8ㄱ〉 / 엇디 스싀로 슈고 이리 뇨〈번소9:79ㄱ〉.
뇨 주090)
뇨
다님을. ᄃᆞᆮ니-+오+ㅁ+ᄋᆞᆯ. <참고>‘ᄃᆞᆮ니-’와 ‘ᄃᆞᆫ니-’의 예는 위의 주를 참고할 것.
니노라 주091)
니노라
이르노라. 말하노라. 말하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니- : 如來 녜 우리 아리라 니시니다〈월석13:32〉 / 제 닐오 臣은 이 酒中엣 仙人이로라 니라〈두시15:41〉.

【한자음】 회면차려흑 함처화고신
【언해역】 낯을 마주 보아서 검음을 슬퍼하고 슬픈 마음을 머금어서 수고롭게 다님을 말하네.
【현대역】 사람들 만났더니 나의 검은 얼굴 한탄하기에 슬픔 머금고 고생하며 다니는 것을 말하네.
【구절풀이】 사람들을 만났더니 두보의 얼굴이 검어졌음을 한탄하고, 두보는 슬픔을 머금고 겪은 고초를 얘기한다는 말이다.

接輿 주092)
접여(接輿)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이자 광인(狂人). 본명은 육통(陸通, 미상)이고 자는 접여(接輿)이다. 소왕(昭王) 때 나라에 법도가 없음을 보고 미친 척하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아 초광접여(楚狂接輿)라고도 한다.
還入楚 王粲 주093)
왕찬(王粲)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신(文臣)이자 학자(學者). 산양(山陽) 고평(高平)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 177~217)이다. 아들 유종(劉琮)을 조조(曹操)에게 귀순시키고 시중(侍中)으로서 제도개혁에 진력하였다.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에 뛰어나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不歸秦【接輿 楚人이라 王粲이 避亂依荊州 주094)
형주(荊州)
옛날 구주(九州)의 하나. 장강의 북쪽에 있다. 한나라 때 13자사부(刺史部)의 하나가 되었다. 관할했던 지역은 대략 지금의 상악(湘鄂) 2성(省)과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 등 네 주(州)의 일부분이었다. 한나라 말 이후 관할 지역이 점차 줄어들었다. 예계검월(豫桂黔粵)은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이다.
니 ㅣ 嘆客於荊衡 주095)
형형(荊衡)
형주(荊州)와 형산(衡山)이다. 형주는 호북성 남장현 서쪽에 있고, 형산은 오악 가운데 하나인 남악으로 호남성에 있다.
而不得歸鄕也ㅣ라】

接輿 도로 楚애 드럿고 주096)
드럿고
들었고. 들어가 있고.
王粲 秦에 도라가디 주097)
도라가디
돌아가지.
몯니라

【한자음】 접여환입초 왕찬불귀진
【언해역】 접여(接輿)는 도로 초(楚)에 들어왔고 왕찬(王粲)진(秦)에 돌아가지 못하였네.
【현대역】 접여는 다시 초나라로 들어왔지만 왕찬진나라로 돌아가지 못했구나.접여초나라 사람이다. 왕찬이 피난해 형주(荊州)에서 의탁한 것은 두보형주형산(衡山) 사이의 나그네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것을 탄식하여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두보는 촉으로 왔지만 장안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錦里殘丹竈 花溪 주098)
화계(花溪)
완화계(浣花溪).
得釣綸錦城 주099)
금성(錦城)
성도(成都)의 별칭.
浣花溪 주100)
완화계(浣花溪)
사천성 성도에 있는 시내. 두보의 초당이 있던 촉 땅 성도 금강 지류이다.
 皆在成都 주101)
성도(成都)
중국 사천성의 성도(省都)이다. 안녹산의 난 때 현종이 피난을 갔던 곳이며 두보도 진주(秦州, 현재의 천수)에서 동곡(同谷)을 거쳐 성도에 초당을 짓고 살았다.
ㅣ라】

錦江 주102)
금강(錦江)
민강(岷江)의 지류의 하나. 사천(四川) 성도(成都) 평원(平原)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촉(蜀) 땅 사람이 비단을 짜서 이 강물에 빨면 비단 빛깔이 선명하고 고와지는데, 다른 강물에 빨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도를 가리킨다.
ㅅ 
주103)
금강(錦江)ㅅ 
금강의 마을이. 즉 성도를 가리킨다.
丹砂 주104)
단사(丹砂)
도가(道家)에서 단약(丹藥)을 만들 때 쓰는 붉은빛 흙. 복용하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고 한다.
ㅅ 브비
주105)
단사(丹砂)ㅅ 브비
단사의 부엌이. 즉 단사를 만들던 부엌을 가리킨다. ¶브 : 브 爲竈〈훈해57〉 / 蔗漿이 브븨셔 가니 金盌이 언 니(蔗漿歸廚金盌凍)「入奏行···侍御」〈두시8:22ㄱ〉 / 브억 : 竈 브억 조〈신증 상:23ㄴ〉.
殘破니 주106)
잔파(殘破)니
파괴되어 잔재만 남아 있으니.
花溪예 주107)
화계(花溪)예
완화계에.
낛주를 주108)
낛주를
낚싯줄을. 낛+줄+을. ‘낛-’은 ‘나ᇄ-’으로도 쓰였다. ‘낛’ 자체가 명사로도 쓰였으며 ‘낛-’과 관련된 단어로는 ‘낛줄’ 이외에 ‘낛밥’이 있다. ‘낛’은 원래 동사 ‘낛-’의 어간임과 동시에 명사로 쓰이는 단어이었다. 현대국어 ‘낚시’는 후에 ‘낛’에 명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형성된 단어이다. ‘낛’과 같은 종류의 단어로는 ‘신’ 등이 있다. ¶낛줄 : 고티 보니 아래로 낛줄와 미느리 여나 다 헌  업더라〈구간6:16ㄴ〉 / 갠 하해 낛주를 다리고져 고파 너기노라(強擬晴天理釣絲)「中丞···奉答二絕」〈두시12:35ㄴ〉 / 江漢애 낛줄 드리워 고기 낛니 잇더라 니디 말라(勿云江漢有垂綸)「奉寄章十侍御」〈두시21:13ㄱ〉 / 낛 : 낛 爲釣〈훈해49〉 / 鱗衆의 낙 놀라 江瀛에 드러 미틔 다 니〈영가 하:77ㄴ〉 / 져믄 아 바 두드려 고기 낫 낙 다(稚子敲針作釣鉤)「江村」〈두시7:4ㄱ〉 / 나ᇄ- : 이제 낛가 예 기 야 도라 가도다.〈금삼5:26ㄴ〉 / 錦水에셔 고기 낛구믈 時로 와 보(時觀錦水釣)「贈左僕射 鄭國公嚴武ㅣ라」〈두시24:22ㄱ〉.
어더 주109)
어더
얻어.
고기 잡노라

【한자음】 금리잔단조 화계득조륜
【언해역】 금강(錦江)의 마을에 단사(丹砂)의 부엌이 부서진 채로 남아 있으니 완화계(浣花溪)에서 낚싯줄을 구해 고기를 잡노라.
【현대역】 금관성에 단약 굽던 아궁이 남아 있고 완화계에서 낚싯줄 얻었습니다.금성(錦城)완화계는 모두 성도(成都)에 있다.】
【구절풀이】 성도성 안의 단사를 만들던 곳이 모두 없어지니 낚시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는 말이다.

消中祗自惜 晩起索誰親

消渴 주110)
소갈(消渴)
병명(病名). 목이 마르며 소변이 자꾸 나오는 병으로 현재의 당뇨병(糖尿病)이다.
ㅅ 病 야
주111)
소갈(消渴)ㅅ 병(病) 야
소갈병을 앓아.
오직 내 슬노니 주112)
슬노니
슬퍼하니. 슳-+ᄂᆞ+오+니. ‘오’는 1인칭 일치 선어말어미이다.
늣거 주113)
늣거
늦게야. 늙어서야. 늦-+거+ᅀᅡ. ‘’는 보조사로 조사, 체언, 어말어미 뒤에 두루 통합된다. 16세기 전반부터는 ‘ㅿ’의 소멸로 인해 ‘’가 쓰이지 않으면서 ‘아/야/사’ 등으로 반영되었고 『두시언해』의 〈중간본〉은 〈초간본〉의 모든 ‘ㅿ’이 ‘ㅇ’으로 바뀌어 있다. 〈중간본〉에는 간혹 ‘ㅿ’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으나 이것은 판각의 문제이지 실제로 ‘ㅿ’이 쓰인 것은 아니다. ‘’는 후대 문헌에서 ‘도이아’〈발심29〉, ‘늣게야’〈박통사, 하14〉, 오래거사〈염불보권38〉의 형태로 쓰였다. ¶-ᅀᅡ : 仙人 이리 굴근 結이 업거니와〈석상3:36ㄱ〉 / 鍾聲管絃이 宮徵 迷失리로다(金管迷宮徵)「聽楊氏歌」〈두시16:49ㄴ〉.
니러 주114)
니러
일어나. 닐-+어. ¶닐- : 董卓이 갈  둘어셔라 고 닐오〈삼강(런던)열:9〉 / 浮生앳 功名 마 말며 마로리니 게으른 혜아료〈중간두시2:10ㄴ〉 도혀 져기 이셔라(浮名尋已已 嬾計𨚫區區)「大曆~十韻이라」〈중간두시2:10ㄱ-ㄴ〉.
蕭索 주115)
소삭(蕭索)
쓸쓸한 모양.
니
주116)
소삭(蕭索)니
쓸쓸하니.
누를 주117)
누를
누구를.
親近리오 주118)
친근(親近)리오
친근하겠는가? 親近#ᄒᆞ-+리+오.

【한자음】 소중지자석 만기삭수친
【언해역】 소갈병(消渴病) 앓아 오직 내가 슬퍼하니 늦게야 일어나 소삭(蕭索)하니 누구와 친하겠는가?
【현대역】 갈증 앓으니 그저 자신을 애석히 여길 뿐 늦게 일어나 쓸쓸한데 누구를 친근하게 찾겠는가?
【구절풀이】 두보가 당뇨를 앓아 몸을 아껴야 하니 아침에 늦게 일어나지만 일어난다고 해도 친하게 지낼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伏柱聞周史 주119)
주사(周史)
주(周)나라의 사관(史官). 여기서는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乘槎似漢臣 주120)
한신(漢臣)
한나라의 신하.
老子 주121)
노자(老子)
춘추시대 말기 초(楚)나라 고현(苦縣) 사람.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며 노담(老聃, ?~?)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이이(李耳)고, 자는 백양(伯陽)이다.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를 지냈다. 공자가 젊었을 때 낙양으로 찾아가 예(禮)에 대해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위자화 청정자정(無爲自化 淸靜自正)’을 주장했다.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한탄하여 은퇴할 결심으로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가 은거하려고 했는데, 도중에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 2편으로 된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이 책을 『노자』라 하고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르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ㅣ 爲 주122)
주(周)
고대 중국의 왕조(서기전11세기경~서기전256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다음으로 등장한 왕조이며 하(夏)·상(商)·주(周) 세 나라를 통틀어 삼대(三代)라고 부르기도 한다.
柱下史 주123)
주하사(柱下史)
전각(殿閣)의 기둥 아래에서 문서를 관장하던 관원(官員). 주(周)나라 때 노자가 이 관직을 맡았기 때문에 후에는 노자의 별칭으로도 쓰인다.
니 比侍御 주124)
시어(侍御)
관직명 시어사(侍御史)의 약칭. 백관을 사찰하고 궐내에서 천자의 조명(詔命)을 받드는 등의 일을 맡았다.
다 下句 用漢人張騫 주125)
장건(張騫)
?~서기전114. 전한 한중(漢中) 성고(成固) 사람. 한나라 무제(武帝) 건원(建元) 2년(서기전139) 흉노(匈奴)를 견제하기 위해 서방의 대월지(大月氏)와의 동맹을 촉진하고자 서역으로 가다가 흉노에게 잡혀 1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고, 이후 대완(大宛)과 강거(康居)를 거쳐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3년 만인 원삭(元朔) 2년(서기전127) 돌아왔다. 인도(印度) 지역과의 통로를 개척하고 동서의 교통과 문화 교류의 길을 여는데 크게 공헌했다. 6년(서기전123) 교위(校尉)로 대장군 위청(衛靑)과 함께 흉노를 공격해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원수(元狩) 2년(서기전121) 위위(衛尉)가 되어 이광(李廣)과 함께 우북평(右北平)으로 나가 흉노를 공격했는데, 실기(失期)하여 참형을 당해야 했지만 속환(贖還)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2년 뒤 다시 중랑장(中郞將)으로 오손(烏孫)에 사신을 갔다가 부사(副使)를 대완(大宛)과 강거(康居) 등지에 파견하여 통호(通好)했는데, 이때부터 서역(西域)과 통하기 시작했다. 관직은 대행(大行)까지 올랐다.
乘槎事 주126)
승사사(乘槎事)
뗏목을 탄 일. 장건이 사신이 되어 출행(出行)한 일을 말한다. ‘두시’에 자주 언급되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니 侍御ㅣ 必嘗使吐藩 주127)
토번(吐藩)
중국의 서남쪽에 있었던 나라. 오늘날의 서장(西藏), 티베트이다. 계통은 서강(西羌)에서 나왔다. 당나라 때 토번의 국왕이던 섭종롱찬(葉宗弄贊)은 인도와 교통하고 당 태종과 화호(和好)하여 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크게 번창하였으나, 그 후 세력이 떨치지 못하였다.
이로다】

기에 주128)
기에
기둥에. 기도ᇰ+에. 『두시언해』에는 ‘기도ᇰ애’의 표기도 있다. ¶기 : 두 習이 서르 븓 젼로 鐵狀과 구리 기 여러 이리 잇니라〈능엄8:80ㄱ〉 /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登橋柱必題)「水宿···群公」〈두시3:21ㄴ〉.
굽스럿니 주129)
굽스럿니
엎드려 있는 이를. 굽슬-+어#잇-+ᄂᆞ+ㄴ#이+ᄅᆞᆯ. ‘굽슬-’은 『삼강행실도』의 예를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굽슬- : 仲義의 이 라가아 아미 劉氏려 닐어늘 劉氏 믄득 가아 울며 굽스러 닐오(仲義弟馬兒 走報劉氏 劉遽徃救之 涕泣伏地告於兵曰)〈삼강(런던)열:28ㄱ〉 / 雲安縣에 벼개예 굽스러셔(伏枕雲安縣)「移居夔州郭」〈두시7:10ㄴ〉.
周史 듣노니 주130)
듣노니
들으니. 듣-+ᄂᆞ+오+니.
들굴 주131)
들굴
뗏목. ‘들굴’은 ‘떼, 뗏목, 등걸, 떨기’ 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일반적으로 ‘나뭇가지가 뭉쳐 있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로 보인다. 뗏목[査], 떨기[叢].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특히 ‘들굴’과 ‘장건(張騫)’이 관련된 시상이 『두시언해』 권5에서도 확인된다. ¶들굴 : 들굴  사미 消息이 그츠니(乘槎斷消息)「有感五首」〈두시5:13ㄴ〉 / 時節ㅅ 菊花ㅣ 나모 들굴 서리예 브어뎟도다(時菊碎榛叢)「苦雨奉寄隴西公兼呈王徵士」〈두시12:17ㄴ-18ㄱ〉 / 내 衰老야  니 들굴와 토니(吾衰同泛梗)「臨邑舍弟書ㅣ~用寬其意노라」〈두시13:30ㄱ〉 / 눈 잇 두들게 들굴 梅花ㅣ 펫고(雪岸叢梅發)「陪裴使君登岳陽樓」〈두시14:14ㄴ〉 / 들굴 타 다  무러 하해 올아 가리라(乘槎與問津)「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16:7ㄴ〉 / 즈믄 들굴와 萬 들구리 가지 지즐워 얫도다(千朶萬朶壓枝低)「江畔獨步尋花七絕句」〈두시18:7ㄴ〉.
주132)
탄. ᄐᆞ-+ㄴ. 15세기 국어의 ‘다’는 ‘탈 것을 타다, 받다, 오르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3:6ㄴ〉 /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2:21ㄴ〉 / -(받다) : 집 우 龍이 御床 向니 寶位 실 느지르샷다〈용가100〉 /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1:7ㄱ〉 / -(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25:49ㄴ〉 / -(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9:108ㄴ〉.
漢臣이 주133)
한신(漢臣)이
한나라의 신하가.
도다 주134)
도다
같도다. 같구나. ᄀᆞᆮ#ᄒᆞ-+도+다. ¶ᄀᆞᆮᄒᆞ- : 브를 헤혀 바랫  더품 어둠 도다.〈금삼4:28ㄴ〉 / 뉘 엿귀 다 니뇨 로미 나 도다(誰謂荼苦甘如薺)「寄狄明府博濟」〈두시8:18ㄱ〉.

【한자음】 복주문주사 승사사한신
【언해역】 기둥에 엎드려 있는 이로 주사(周史)를 들으니 뗏목 탄 한나라 신하와 같구나.
【현대역】 기둥 아래 엎드린 이로 주나라 역사를 들으니 뗏목을 탄 한나라 사신과 같구나.【노자(老子)가 주(周)나라에서 주하사(柱下史)가 되었으니 왕시어(王侍御)를 비유한 것이다. 아래 시구는 한나라 사람 장건(張騫)이 뗏목을 탄 일을 쓴 것이니 시어(侍御)가 일찍이 토번에 사신으로 간 것을 비유한 것이 틀림없다.】
【구절풀이】 노자가 한나라의 어사(御使)이었던 것처럼 왕설(王契)이 감찰어사가 되어 장안에 있고 장건이 촉의 엄군평을 방문한 것과 같이 엄무가 절도사로 촉으로 부임할 때 왕설은 사자가 되어 촉으로 온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주135)
원(鴛)
원앙의 수컷. 원앙(鴛鴦)은 오릿과에 속하는 물새로 물오리보다 작고 자웅(雌雄)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이 사는 특징이 있다.
주136)
홍(鴻)
큰기러기. 물새의 한 가지로 기러기와 비슷한 모양이나 크기가 더 큰 특징이 있다.
不易狎 龍虎 주137)
용호(龍虎)
용과 호랑이. 여기서는 왕시어(王侍御)를 비유한 말이다.
未宜馴【言侍御 주138)
시어(侍御)
시어사(侍御史).
 不可得而狎馴 주139)
압순(狎馴)
업신여기다.
之也ㅣ니라】

鴛과 鴻과 親狎 주140)
친압(親狎)
사이가 아무 허물없이 가까움.
호미 쉽디 아니고 주141)
쉽디 아니고
쉽지 않고. 쉽-+디 아니#ᄒᆞ-+고.
龍과 虎와 질드류미 주142)
질드류미
길들임이. 질#드리-+우+ㅁ+이. ‘질드리-’는 ‘질들-’의 사동사이다. ¶질드리- : 調御는 질드릴 씨오〈월석9:11ㄴ〉 / 되 아 駱駝 질드리놋다(胡兒制駱駝)「寓目」〈두시3:23ㄴ〉 / 질들- : 調御는 질드릴 씨오〈월석9:11ㄴ〉 / 蕭望之의 을 오직 서르 질들에 도다(蕭雉只相馴)「奉贈蕭二十使君」〈두시20:39ㄴ〉.
맛티 아니도다 주143)
맛티 아니도다
마땅하지 않구나. 맛당#ᄒᆞ-+디 아니#ᄒᆞ-+도+다. ¶맛- : 舍衛國애 도라와 精舍 지 터흘 어드니 맛  업고 오직 太子祇陁 東山이 토 平며 나모도 盛더니〈석상6:23ㄴ〉 / 되의 목수믄 그 能히 오라리아 님 紀綱 그추미 맛티 아니커니녀(胡命其能久 皇綱未宜絕)「北征」〈중간두시1:8ㄴ〉 /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眞宜法斗魁)「秋日···三十韻」〈두시3:10ㄴ〉.

【한자음】 원홍불이압 용호미의순
【언해역】 원앙과 큰기러기[鴻]는 친압(親狎)하기가 쉽지 않고 용과 호랑이는 길들이기가 마땅하지 않네.
【현대역】 원앙과 큰기러기는 허물없이 가까이하기 쉽지 않고 용과 호랑이는 길들이기에 마땅치 않습니다.【왕시어(王侍御)를 얻거나 함부로 대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큰 새들이나 맹수가 서로 친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왕설과 같은 휼륭한 인물도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客卽掛冠至 交非傾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8ㄱ

주144)
개(盖)
덮개. ‘개(蓋)’의 속자(俗字)이다. 풀을 엮어서 만든 덮개를 나타내는 말이다.
【上句 言ㅣ 罷華州 주145)
화주(華州)
지금의 섬서성 위남시 화주구(區). 행정명이 바뀌기 전에는 화현(華縣)으로 불렸다. 두보는 47세이던 758년(건원 원년)에 전략을 잘못 짜서 많은 군사를 잃은 방관(房琯)을 변호하다가 좌습유(左拾遺)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이곳에서 사공참군(司功參軍)이란 미관말직으로 근무했었다.
司功 주146)
사공(司功)
사공참군(司功參軍). 지방 장관을 보좌하는 지방관으로 미관말직에 해당한다.
而來也ㅣ라 鄒陽傳 주147)
추양전(鄒陽傳)
「추양열전(鄒陽列傳)」.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본기(本記)」(12권), 「표(表)」(10권), 「서(書)」(8권), 「세가(世家)」(30권), 「열전(列傳)」(70권)의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전의 글 중의 하나이다. 열전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한 개인 전기이다. 추양전은 중국 전한 문제~경제 때의 문인이다. 애초에 섬기던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반란 계획을 알고 간(諫)하였으나 실패하자 양왕(梁王) 유무(劉武)에게로 귀순하였으며, 한때 무고를 받아 처형될 뻔하였으나 글을 올려 양왕을 감복시켰다.
傾蓋예 如故ㅣ라 주148)
경개(傾蓋)예 여고(如故)ㅣ라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에 나오는 말. “서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젊어서부터 늙도록 사귀었어도 항상 새로 만난 것처럼 서먹하고[白頭如新]. 서로 마음을 이해하면 잠시 만나도 오래된 친구처럼 정이 깊다[傾蓋如故]”라는 말이다.
니 言侍御 주149)
시어(侍御)
시어사(侍御史).
ㅣ 見甫而如故友也ㅣ라 】

나그내 곧 곳가 주150)
곳가
고깔을. 곳갈+ᄋᆞᆯ.
걸오 오니 주151)
걸오 오니
걸고 오니. 걸-+고 오-+니. ‘고깔을 걸다’는 말은 ‘관직을 그만두다’라는 뜻이다.
사괴요 주152)
사괴요
사귐은. 사괴-+오+ㅁ+ᄋᆞᆫ. ¶사괴- : 提婆達多ㅣ 阿闍世王과 사괴더니〈월석22:69ㄴ〉 / 사괴 사 氣槪ㅅ 가온 잇도다(交親氣槩中)「投贈···二十韻」〈두시5:43ㄱ〉.
蓋 주153)
개(蓋)
덮개를. 蓋+ᄅᆞᆯ.
기우료매 주154)
기우료매
기울임에. 기우리-+오+ㅁ+애. ‘기우리-’는 ‘기울-’의 사동사이다. ¶기우리- : 이슘과 업숨과 둘히 업수 서르 기우리 業이 그초 니시니〈능엄9:37ㄱ〉 / 아야라  盞 기우리면 곧 사미 醉니라(纔傾一盞卽醺人)「撥悶」〈두시3:32ㄱ〉 / 기울- : 須彌山도 어루 기울의 려니와〈석상9:27ㄱ〉 /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回回偃飛盖)「揚旗」〈두시5:48ㄱ〉.
주155)
새로이. 새롭게. 새로. 15세기 국어의 ‘새’는 부사와 명사로 쓰였으나, 『두시언해』에서는 부사로 쓰일 때 주로 ‘새려’가 쓰였다. ¶새(부사) : 沙彌 새 出家 사미니〈석상6:2ㄱ〉 / 녜 아니도 호미 어렵고 새 아니도 마 그기 疎薄다(舊識能爲態 新知已暗䟽)「戲作俳諧體遣悶二首」〈두시3:46ㄱ〉 / 새(명사) : 헌 옷도 새 리니〈월석8:100ㄴ〉 / 새려 : 새려 므렛 軒檻 더 라 낛 드리우메 供進고(新添水檻供垂釣)「江上···短述」〈두시3:31ㄴ〉.
디 주156)
디
같지. ᄀᆞᆮᄒᆞ-+디. 15세기 국어의 ‘갇다/다’는 ‘-와’는 물론 ‘-이’를 지배하기도 한다.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석상3:17ㄱ〉 / 나랏 社稷ㅣ 이제 이 니 武로 禍亂 安定호믄 公ㅣ 아니라 뉘리오(國之社稷今若是 武定禍亂非公誰)「徒步歸行」〈중간두시1:10ㄴ〉 / -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4ㄱ〉 /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  오 荊州 巫峽에 와 누엇노라(不復有顏鮑 繫舟卧荊巫)「遣懷」〈중간두시2:47ㄴ〉.
아니도다 주157)
아니도다
않구나. 아니#ᄒᆞ-+도+다.

【한자음】 객즉괘관지 교비경개신
【언해역】 나그네 곧 고깔을 걸어 놓고 오니 사귐은 덮개를 기울임에 새로이 같지 않구나.
【현대역】 나그네가 벼슬 버리고 왔는데 사귐은 처음 만나 새로운 만남 같지 않구나.【위 시구는 두보가 화주(華州)에서 사공참군(司功參軍)을 사직하고 온 것을 말한 것이다. 『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에 수레 덮개를 기울이고 잠깐 이야기했지만 오래 사귄 벗과 같을 때가 있다고 했으니 왕시어가 두보를 오래 사귄 벗처럼 대한 것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두보는 화주의 사공참군 직을 버리고 왔고 수레 덮개를 기울여 놓고 잠시 이야기했지만 오래 사귄 벗과 같듯이 왕설과 두보도 오래 사귄 벗과 같다는 말이다.

由來意氣合 直取性情眞

녜로브터 오매 주158)
녜로브터 오매
옛날부터. 유래(由來)로. 원시의 ‘由來’를 번역한 것으로 ‘從來’의 번역으로도 쓰인다. 이 표현은 『두시언해』에만 있다. ¶녜로부터 오매 : 녜로브터 오매 𦀇濟 조(古來經濟才)「上水遣懷」〈중간두시2:49ㄴ〉 / 녜로브터 오매 德을 積畜 家門이로다(由來積德門)「贈比部蕭郞中十兄」〈두시8:64ㄱ〉 / 녜로브터 오매 王氏 謝氏 郞官이니라(從來王謝郞)「送大理封主簿五郞이 ~ 遂停니라」〈두시8:70ㄱ〉 / 녜로브터 오매 녯 일 논 디 하 잇노니(從來多古意)「登兗州城樓」〈두시14:5ㄱ〉 / 녜로브터 오매 巫峽엣 므리오(由來巫峽水)「小園」〈두시15:14ㄱ〉 / 녜로브터 오매 原憲이 가난도다(從來原憲貧)「奉贈蕭二十使君」〈두시20:41ㄱ-ㄴ〉 / 과 바와 녜로브터 오매 相合고(河海由來合)「移居公安敬贈衛大郞」〈두시20:53ㄴ〉 / 고기란 丙穴에 녜로브터 오매 아다온  아노니(魚知丙穴由來美)「將赴~五首」〈두시21:3ㄱ〉 / 녜로브터 오매 귓것 마라 가 사(從來禦魑魅)「有懷···司戶」〈두시21:38ㄴ〉 / 녜로브터 오매 貔虎  士卒은(由來貔虎士)「復愁十一首」〈두시25:25ㄴ〉.
意氣 마조맨 주159)
마조맨
맞음엔. 맞음에는. 맞-+오+ㅁ+애+ㄴ. ‘맞-’은 사동사로 ‘마초-’, 이것의 강세형인 ‘마초ᄧᅳ-’ 등이 있다. ¶맞-(알맞다) : 契 마 씨니 理예 맛고 機예 마 씨라〈월석8:24ㄱ〉 / 미 마 昭融을 뮈우놋다(契合動昭融)「投贈···二十韻」〈두시5:42ㄴ-43ㄱ〉 / 마초- :  비 時節에 마초 야 녀르미 외야〈석상9:34ㄱ〉 / 시우레 마초 업더뎌 프른 뫼 노포미 리오디 몯도다(應弦不礙蒼山高)「久雨期王將軍不至」〈두시5:36ㄴ〉 / 마초ᄧᅳ- : 詳考 子細히 마초 알 씨라〈석상9:38ㄴ〉 / 證信은 마초 信케  시오〈원각 상1-2:23ㄱ〉 / 열  墳典 마초니라(十載考墳典)「故秘···源明」〈두시24:32ㄱ〉.
곧 性情의 眞實호 주160)
진실(眞實)호
진실함을. 眞實#ᄒᆞ-+오+ㅁ+ᄋᆞᆯ.
取니라 주161)
취(取)니라
취하니라. 취하네. 取#ᄒᆞ-+ᄂᆞ+니+라.

【한자음】 유래의기합 직취성정진
【언해역】 옛날부터 오매 의기(意氣)가 맞음엔 곧 성정(性情)의 진실함을 취하네.
【현대역】 원래부터 의기가 투합하였으니 바로 진실한 성정을 취해서였네.
【구절풀이】 옛날부터 의가가 투합한 것은 두 사람의 성질과 마음씨가 진실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浪迹同生死 無心恥賤貧ㅣ 言共遭亂離而同其死生호니 不以貧賤之故로 爲恥也ㅣ라】

虛浪 주162)
허랑(虛浪)
말이나 행동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함.
주163)
허랑(虛浪)히
허랑하게. 허황되게.
니 주164)
니
다니는. -#니-+. ¶니- :  長常 므거 거슬 지여 길흘 조차 니다가〈월석9:33ㄴ〉 / 남기  니 호매 便安 히 업스니(漂梗無安地)「征夫」〈두시5:13ㄱ〉 / 니- : 太子ㅣ 뫼히며 므리며 디 아니야 니실〈석상3:35ㄴ〉 / 鴛鷺ㅅ 行列에 니던 이 갓 붓그리노라(空慙鴛鷺行)「暮春···五首」〈두시7:15ㄴ〉.
자최예 주165)
자최예
자취에. 자최+예. ¶자최 : 法華ㅣ 마 正位예 들어시니 엇뎨 자최예 거뇨〈월석13:58ㄴ〉 / 凱歌 獻호미 날로 자최 니니(獻凱日繼踵)「後出塞五首」〈두시5:32ㄱ〉.
주그며 사로 주166)
주그며 사로
죽으며 사는 것을. 죽-+으며 살-+오+ㅁ+ᄋᆞᆯ. 명사형 ‘옴’은 ‘죽으며 살-’ 전체를 지배한다. 즉 구성은 ‘[주그며 살]옴+ᄋᆞᆯ’이다. 『두시언해』 권8의 「遣興二首」의 둘째 수에도 ‘주그며 사로 아디 몯거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不知死與生 何况道路長)’와 같이 동일한 표현이 있다.
가지로 호니 주167)
가지로 호니
함께 하니. ᄒᆞᆫ가지+로 ᄒᆞ-+오+니.
賤貧을 붓그률 주168)
붓그률
부끄러워하는. 붓그리-+우+ㄹ. ‘붓그리-’는 동사로서, 파생형용사 ‘붓그럽-’과 다시 여기서 ‘-어 -’가 붙어 동사로 파생된 ‘붓그려-’가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일련의 동사들은 현대국어에서는 모두 소멸되고 오히려 ‘업’ 파생형용사에 ‘-어하-’가 붙어 파생된 동사인 ‘부끄러워하다’만 남은 경우가 많다.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44ㄱ〉 / 몸 許요 雙南金에 가뵤 붓그리노라(許身媿比雙南金)「題省中院壁」〈두시6:14ㄱ〉 / 붓그럽- : 비록 큰 허므리 업슨 오 안로 매 붓그럽디 아니니여〈내훈3:27ㄴ〉 / 右ㅅ녁 히 붓그러온 나 幸호 하니라(右地恧多幸)「故右···九齡」〈두시24:41ㄴ〉 / 붓그려- :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3:8ㄱ〉 / 늘근 원두리 기리 붓그려노라(老圃永爲恥)「種萵茞幷序」〈두시16:67ㄱ〉.
미 업수라 주169)
업수라
없구나. 없네. 없-+오+라. ‘오’는 1인칭 일치 선어말어미이다.

【한자음】 낭적동생사 무심치천빈
【언해역】 허황되게 다니는 자취에 죽으며 사는 것을 같이 했으니 빈천(賤貧)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네.
【현대역】 떠돌아다니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겼고 빈천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네.두보가 함께 난리를 만나 생사를 함께 했으니 빈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두보가 성도에 온 후 다시 서지도의 반란으로 재주와 낭주를 떠돌면서 온갖 경험을 겪었으니 빈천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없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偶然存 주170)
자(蔗)
사탕수수.
주171)
우(芋)
토란.
幸各對松 주172)
균(筠)
대나무.

偶然히 蔗와 芋와 주173)
자(蔗)와 우(芋)와
사탕수수와 토란을. 15세기 국어의 명사구 연결에서는 접속조사 ‘-와/과’가 마지막 명사에도 연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두며 幸혀 주174)
행(幸)혀
다행히. 幸+혀. 15세기 국어에서 ‘幸혀’는 ‘혀’로 자주 표기되었으며, 비슷하게 ‘한자어+혀’의 구성을 가지는 단어로 ‘全혀/젼혀’가 있다. ¶幸혀 : 이젯 사로 보건댄 幸혀 正法 듣오미 아 因이 업디 아니니〈법화3:165ㄴ〉 / 내 囊中이 조호 幸혀 깃거노라(幸喜囊中淨)「早發」〈중간두시1:50ㄱ〉 / 혀 : 天台ㅣ 니샤 혀 내 人天에 樂 受니〈영가 상50ㄴ〉 / 혀  가온 수리 잇니(賴有杯中物)「又一首」〈두시13:26ㄱ〉 / 全혀 : 오직 이 無ㆆ 字ㅣ 全혀 귿고히 업소 져기 귿고히 잇니라〈몽산52ㄴ〉 / 一柱ㅣ 全혀 이 갓가오니(一柱全應近)「泊松滋江亭」〈두시14:38ㄱ〉 / 젼혀 : 내 므스거시 不足료 젼혀 이 東山 남기 됴 노니논 히라〈석상6:24ㄱ〉.
저여곰 주175)
저여곰
각각. 제각각. 제각기. 저여+곰. 참조. 제여곰. ¶저여곰 : 네 사미 저여곰 자바 힘 부러 귀예와 고해 들에 야〈구간1:60ㄴ〉 / 出며 處호매 저여곰 힘 디니라(出處各努力)「別贊上人」〈두시9:17ㄴ〉 / 제여곰 : 舍利弗이 그제 說法니 제여곰 前生애 닷곤 因緣으로 須陁洹 得리도 이시며〈석상6:34ㄴ〉 / 鳥雀 바 제여곰 자리예 가거(鳥雀夜各歸)「成都府」〈중간두시1:38ㄱ〉.
솔와 대와 對요라 주176)
대(對)요라
대한다. 대하네. 마주하네. 對#ᄒᆞ-+오+라.

【한자음】 우연존자우 행각대송균
【언해역】 우연히 사탕수수와 토란이 있으며 다행히 각각 소나무와 대나무를 대(對)하네.
【현대역】 우연히 사탕수수 토란이 남았고 다행히 각자 소나무 대나무를 마주합니다.
【구절풀이】 성도의 초당으로 돌아오니 사탕수수와 토란이 남아 있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으니 왕 시어와 같이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麤飯 주177)
추반(麤飯)
거친 밥. 쌀, 조, 수수 등을 깨끗하게 속꺼풀을 벗기지 않은 쌀이나 잡곡(雜穀) 쌀로 지은 밥을 말한다.
依他日 窮愁怪此辰

사오나온 주178)
사오나온
못난. 미천한. 저급한. 거친. 사오납-[劣]+오+ㄴ. 초기 정음 문헌에서는 ‘사오나’으로 표기된다. 『능엄경언해』(1461)의 ‘ㅸ⇒오/우/ㅇ’로 교체되기 전에는 ‘사오나’식으로 표기함.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사오납- : 劣은 사오나 씨라〈월석17:57〉 / (나쁘다) :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3:2ㄱ〉 / 二乘이 미 사오나와 이 法 이긔디 몯호 가비시니〈법화2:62ㄴ〉 / 王生이 내의 비치 사오나오 怪異히 너기니(王生怪我顏色惡)「病後···贈歌」〈두시3:50ㄱ〉.
바 주179)
바
밥은.
녯나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8ㄴ

주180)
녯나
옛날을. 녜+ㅅ+날+ᄋᆞᆯ. 원문의 ‘他日’의 번역이다. ¶녯날 : 녯나랫 몰로미오 낤 아로미니〈금삼4:48ㄱ〉 / 녯나래 기픈 宮의 살어든(豈思昔日居深宮)「杜鵑行」〈두시17:6ㄴ〉.
브텃고 주181)
브텃고
의지하여 있고. 의거하여 있고. 븥-+어#잇-+고. ¶븥-(仗) : 길히 窮迫야 버들 븓노라(途窮仗友生)「客夜」〈중간두시2:28ㄱ〉 / (著) : 프른 매 주으려 사게 븓니라(蒼鷹飢著人)〈금삼 서安···待命二首」〈두시5:53ㄱ〉 / (憑) :  節制使ㅅ 尊嚴을 븓고져 놋다(亦憑節制尊)「客居」〈두시6:49ㄴ〉 / (依) : 本來 스싀로 迦葉을 븓노니(本自依迦葉)「秋日···一百韻」〈두시20:13ㄱ〉 / (傍) : 모미 주글 니언 權要 븓니라(殺身傍權要)「三韻三篇」〈두시25:15ㄴ〉 / (火) : 셔울히 다시 블 븓디 아니야(京都不再火)「徃在」〈중간두시4:24ㄱ〉 / (燃) : 뫼히 퍼러니 곳비치 블 븓 도다(山靑花欲燃)「絶句二首」〈두시10:17ㄱ〉 / (着) : 그윗 것과 아 거시 제이곰 해 브터셔(公私各地著)「行官···水歸」〈두시 7:36ㄴ〉.
窮 시르므란 주182)
시르므란
시름은. 시름+으란. ¶시름 : 無憂는 시름 업슬 씨니〈석상23:32ㄴ〉 / 시름 허러듀미 이 오 아미로다(愁破是今朝)「王十五~草堂資」〈두시22:11ㄴ〉 / -란/으란 : ㆍ ㅡ ㅗ ㅜ ㅛ ㅠ란 附書 初聲之下고〈훈언12ㄴ〉 / 여슷 아란 마 갓 얼이고 아기 아리  곱거늘〈석상6:13ㄴ〉 / 羽翼란 商山ㅅ 늘그닐 고 文思란 帝堯 思憶노라(羽翼懷商老 文思憶帝堯)「收京三首」〈두시5:7ㄴ〉.
이  주183)
이 
이때를. 원문의 ‘此辰’의 번역이다. ‘此辰’의 번역으로 ‘이 ᄢᅳᆯ’이 쓰인 예가 『두시언해』 권11의 「人日兩篇」의 제2수에 있으며, ‘玆辰’의 번역으로 ‘이 ᄢᅳᆯ’이 쓰인 예가 『두시언해』 권10의 「十月一日」에 있다. ¶이 ᄢᅳᆯ : 이 날 이  사미 다 어더(此日此時人共得)「人日兩篇」〈두시11:8ㄱ-ㄴ〉 / 이  南國이 重히 너겨(玆辰南國重)「十月一日」〈두시10:42ㄴ〉.
怪異히 너기노라 주184)
너기노라
여기노라. 너기-++오+라. ¶너기- :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裘夷心疑其欲去 坐起不解其側)〈석상3:22ㄱ〉 / 當貴호 픐 그텟 이슬와 엇더니오 너기놋다(富貴何如草頭露)「送孔巢父~李白」〈두시22:52ㄴ〉.

【한자음】 추반의타일 궁수괴차신
【언해역】 거친 밥은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니 곤궁한 시름이 있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노라.
【현대역】 거친 밥은 지난날과 같지만 곤궁의 시름이 오늘 아침에 있는 것은 괴이하구나.
【구절풀이】 검소한 식사는 옛날에도 그러하였으니 이렇게 좋은 시간임에도 시름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女長裁褐穩 男大卷書勻須溪 주185)
수계(須溪)
위의 주를 참조.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유진옹은 송나라 말기 길주(吉州) 여릉(廬陵, 지금의 강서 길안시) 사람. 자는 회맹(會孟)이고, 호는 수계(須溪)다.
云 謂各有一卷書耳라 주186)
각유일권서이(各有一卷書耳)라
각 한 권의 책이 있을 따름이다. 즉 많은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책을 한 권 정도는 겨우 갖추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리 주187)
리
딸이. ᄯᆞᆯ+이. 두보는 부인 양씨와의 사이에는 종문, 종무 두 아들과 2, 3명의 딸이 있었다. 그리고 어려서 죽은 아들과 딸도 있었다. 두시에서 딸에 대한 내용이 있는 대표적인 몇 부분을 예로 든다. ¶ᄯᆞᆯ : 어린 리 머리 제 빗다(癡女頭自櫛)「北征」〈중간두시1:6ㄱ-ㄴ〉 / 져믄  머리옛 風病을 묻다(幼女問頭風)「遣悶奉呈嚴公二十韻」〈두시19:8ㄱ-ㄴ〉.
라니 주188)
라니
자라니. ᄌᆞ라-+니. ¶ᄌᆞ라- :  노다가 라면 어루 法을 호리이다〈석상6:11ㄴ〉 / 술 다마 머구므로브터 子孫이 라거다(自從盛酒長兒孫)「少年行二首」〈두시25:17ㄴ〉.
누비옷 지 주189)
지
지은. 지ᇫ-+우+ㄴ. ¶짓- : 비록 그르 야 지 이리 이셔도〈석상9:6ㄴ〉 / 아마다 므레 지 樓 우희 올아 라노라(朝朝上水樓)「得舍弟觀의~情見乎詞노라」〈두시8:38ㄴ〉.
거시 便安고 아리 크니 글웘 주190)
글웘
글월의. 시의.
卷帙을 주191)
권질(卷帙)을
책을. 묶은 책을. 두보가 살던 시절의 책은 권자본의 형태이었으며 아마도 권자본을 보관하는 책갑도 있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골오 주192)
골오
고루. ¶골오 : 義 디니 비  마로 골오 젓고〈석상13:26ㄴ〉 / 賦稅 골오 호매 어긔르츤가 전노니(恐乖均賦斂)「夔府書懷四十韻」〈두시3:4ㄴ〉.
가졧도다 주193)
가졧도다
가지고 있구나. ¶가지- : 後에 아뫼나  보라 가지던 사토 다 마 佛道 일우며〈석상13:51ㄱ〉 / 님 恩惠로 몬져 와 後에 세 번 鐵節을 가지니(主恩前後三持節)「諸將五首」〈두시5:47ㄱ〉.

【한자음】 여장재갈온 남대권서균
【언해역】 딸이 자라니 누비옷 지은 것이 편안하고 아들이 크니 시권(詩卷)을 고루 가지고 있구나.
【현대역】 딸은 자라서 누비옷 바느질을 잘하고 아들은 커서 서적 고르게 가지고 있구나.【수계(須溪)가 이르기를 각각 한 권의 책이 있을 따름이라고 하였다.】
【구절풀이】 아들과 딸들이 제법 커니 인제는 자식들의 혼례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漰口 주194)
붕구(漰口)
강을 막은 보의 물이 흐르는 통로를 말하나, 여기서는 민강(岷江)이 흘러가는 곳의 지명이다.
江如練 蠶崖 주195)
잠애(蠶崖)
관새(關塞)의 이름. 사천성(四川省) 도강언시(導江堰市)의 서북쪽에 있다. 그 곳의 지형이 험준하여 절벽에 길을 뚫었는데, 누에가 파먹은 것처럼 보여 이렇게 불린다.
雪似銀【漰口 岷江 주196)
민강(岷江)
중국 사천성의 민산(岷山)에서 발원하여 성도(成都)의 서쪽을 지나 의빈(宜濱)에서 장강(長江)으로 합류하는 강이다.
所經이오 蠶崖 在西山 주197)
서산(西山)
민산(岷山). 토번과 대치하고 있는 산으로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다.
니 此 言侍御ㅅ所居니라】

漰口엔  주198)

강의. ᄀᆞᄅᆞᆷ+ㅅ.
비치 주199)
비단.
고 주200)
고
같고.
蠶崖옌 누니 주201)
누니
눈[雪]이.
銀ㅅ 빗 도다

【한자음】 붕구강여연 잠애설사은
【언해역】 붕구(漰口)에는 강 빛이 비단 같고 잠애(蠶崖)에는 눈이 은빛 같구나.
【현대역】 붕구에는 강이 비단 같고 잠애에는 눈이 은빛 같구나.【붕구(漰口)는 민강(岷江)이 흘러가는 곳이요, 잠애(蠶崖)는 서산(西山)에 있으니 이것은 시어(侍御)가 머무는 곳이다.】
【구절풀이】 왕 시어가 머무는 곳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다.

名園當翠巘 野棹沒靑 주202)
빈(蘋)
개구리 밥. 여러해살이 수초이다.

일훔난 주203)
일훔난
이름난. 유명한. ¶일훔나- : 일훔난 香 퓌우면 病도 덜며 厄도 버스리라〈석상9:35ㄱ〉 / 일훔난 위안핸 곳과 플왜 곳답도다(名園花草香)「入衡州」〈중간두시1:55ㄱ〉.
위안 주204)
위안
정원은. 위안ㅎ+ᄋᆞᆫ.
프른 주205)
프른
푸른. 프르-+ㄴ. ‘프르-’의 파생어로 ‘퍼러ᄒᆞ-’가 있고 유사한 어형으로 ‘파라ᄒᆞ-’도 있다. ¶프르- : 楚國 越國엣 象 다 프르고 오직 西天나라해  象이 하니라〈월석2:31ㄴ〉 / 녜 브터 댓수프리 프르도다(依舊竹林靑)「客舊館」〈두시3:36ㄱ〉 / 퍼러ᄒᆞ- : 그 얼구리 해 이셔 곧 蒼然히 퍼러니〈금삼2:29ㄴ〉 / 玉殿엔 이시 퍼러도다(玉殿莓苔靑)「橋陵···諸官」〈두시6:17ㄴ〉/ 파라- : 妙有實相 버들 파라며 곳 벌거 디라〈남명 상7ㄴ〉 / 믌 내왇  우미 파라도다(渚秀蘆笋綠)「客堂」〈두시6:51ㄴ〉.
뫼 주206)
뫼
산을. 뫼ㅎ+ᄋᆞᆯ. ‘뫼ㅎ’은 ‘ㅎ’말음체언이다.
當얫고 주207)
당(當)얫고
대하여 있고. 當#ᄒᆞ-+야#잇-+고.
햇 주208)
햇
들의. ᄆᆡㅎ[野]+애+ㅅ. ‘ᄆᆡㅎ’은 ‘ㅎ’말음체언이다.
 주209)

빛은.
프른 말와매 주210)
말와매
마름에. 마름 풀에. 말왐+애. ‘말왐’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말왐 : 하콰  예 믈 우흿 말왐 호라(乾坤水上萍)「衡州送李大夫七丈勉赴廣州」〈두시8:15ㄴ〉 / 말왐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萍漂忍流涕)「乘雨···弟宅」〈두시8:45ㄱ〉 / 病 아낫 니 말왐  늘그니로니(防邊舊穀屯)「東屯月夜」〈두시11:49ㄱ〉 / 말왐과 다봇 야 安定야 사로미 업소라(萍蓬無定居)「將別巫峽~瀼西果園四十畝노라」〈두시15:16ㄱ〉 /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萍泛無休日)「奉贈太···二十韻」〈두시19:15ㄴ〉 / 말왐 시 뇨 버므렛 도다(萍泛若夤緣)「秋日···一百韻」〈두시20:3ㄱ〉 / 보미 기픈 내조친 나그내   말왐 도다(春深逐客一浮萍)「題鄭十八著作丈」〈두시21:40ㄱ〉 / 브텨 무도 말왐과 다 가놋다(寄葬與萍漂)「哭王彭州掄」〈두시24:57ㄱ〉.
뎟도다 주211)
뎟도다
꺼져 있구나. 꺼져 있도다. ᄢᅥ디-+어#잇-+도+다. ¶디- : 오직 모며 갓로로 거츠리 我人 혜여 業 구데 디여 도혀 표 아디 몯(但以迷倒로 妄計我人야 淪沒業坑야)〈금삼1:1ㄱ〉 / 것드러 프리예 뎟도다(摧殘沒藜莠)「枯椶」〈두시18:18ㄴ〉.

【한자음】 명원당취헌 야도몰청빈
【언해역】 이름난 정원은 푸른 산을 대하여 있고 들에 있는 노는 푸른 마름에 꺼져 있구나.
【현대역】 이름난 정원이 푸른 봉우리를 마주 보고 들의 노는 푸른 마름 풀 속에 묻혀 있구나.
【구절풀이】 왕 시어의 거처는 푸른 봉우리를 마주하고 있고 작은 배도 부평초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이다.

屢喜王侯 주212)
왕후(王侯)
제왕과 제후. 고귀한 사람.
宅 時邀江海人江海人 주213)
강해인(江海人)
은사(隱士). 강해(江海)는 은사가 머무는 곳이고 강해인은 벼슬하지 않고 세속을 피해 사는 사람을 뜻한다.
ㅣ 自謂라】

王侯의 지븨 주214)
지븨
집에서. 집+의(처소격조사).
江海옛 주215)
강해(江海)옛
강해의. 즉 세속을 피해 자연에 사는 사람의.
사 時로 주216)
시(時)로
때때로.
마자오 주217)
마자오
맞이함을. 맞-+아#오-+ㅁ+ᄋᆞᆯ.
조 깃노라 주218)
깃노라
기뻐하노라. -++오+라. ¶- : 太子 보고 各各 이든 우루믈 울며 뎌 수프레 잇 벌에 토 다 깃거 太子 오며〈석상3:33ㄱ〉 / 生理 일웟논 이 내 깃거(自喜遂生理)「遣遇」〈중간두시2:62ㄱ〉 / 깃거-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3:21ㄱ〉 / 天皇寺ㅣ 갓가와 오 깃거노니(喜近天皇寺)「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2:10ㄴ〉.

【한자음】 누희왕후택 시요강해인
【언해역】 왕후의 집에서 강호의 사람을 때때로 맞이해 줌을 자주 기뻐하네.
【현대역】 고귀한 집에서 세속을 피해 사는 사람을 때때로 맞이함을 자주 기뻐하노라.【강해인(江海人)은 두보가 자신을 일컬은 것이다.】
【구절풀이】 기쁜 마음으로 왕 시어의 집을 방문하면 촌사람이 된 두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는 말이다.

追隨不覺晩 款曲 주219)
관곡(款曲)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9ㄱ

彌旬

조차 뇨 주220)
조차 뇨
쫓아다님을. 좇-+아 ᄃᆞᆮ니-+오+ㅁ+ᄋᆞᆯ. 『두시언해』에서 ‘ᄃᆞᆫ니-’는 ‘ᄃᆞᆮ니-’로도 표기되었다. ¶좇-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3:4ㄴ〉 / 져머셔 주그니 무두므란 潘岳 이 조차 고(瘞夭追潘岳)「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7ㄱ〉. ¶니- : 니 길 우흘 서르 보노니(相閱征途上)「龍門」〈두시13:44ㄱ〉 /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萍泛無休日)「奉贈太···二十韻」〈두시19:15ㄴ〉. ¶니- : 商 두루 녀  씨오〈석상20:25ㄱ〉 / 楚ㅅ 두들게 녀셔 將次ㅅ 늘구니(楚岸行將老)「大歲日」〈두시11:1ㄱ〉.
느준 주221)
느준
늦은. 늦-+우-+ㄴ.
고 주222)
고
곳을. 줄을. 곧+ᄋᆞᆯ.
아디 몯노니 주223)
아디 몯노니
알지 못하니.
날 더브러 款曲히 주224)
관곡(款曲)히
정답고 친절하게.
다마다 주225)
다마다
곳마다. 번번이. 다+마다.
열흘옴 주226)
열흘옴
열흘씩. 열흠+옴. ¶-옴 : 그듸내 各各  아옴 내야 내 孫子 조차가게 라〈석상6:9ㄴ〉 / 번곰 올오니  디위옴 새롭도다(一上一回新)「上白帝城二首」〈두시14:6ㄱ〉.
다놋다 주227)
다놋다
다하는구나. 다-++옷+다. 『두시언해』에서 ‘다-’와 ‘다-’는 공존하였는데, 후자가 다수이고 전자가 극소수로 쓰이다가, 유추에 의해 ‘다-’형이 점차 증가하였다. ‘더으-’[加]와 ‘더-’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 동사이다. ¶다- :  그 말 다니 녀느 하랫 지븐 업고 네찻 하랫 지비 잇더라〈석상6:36ㄴ〉 / 飄飄히 뇨 늘근 겨지블 븟그리노라(飄飄愧老妻)「自閬州領妻子𨚫赴蜀山行三首」〈중간두시2:4ㄱ〉 / 다ᄋᆞ- : 福이 다면 도라 려 맨 受苦 길로 가니〈석상3:34ㄱ〉 / 興心이 다니  닶가오미 업더니(興盡纔無悶)「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4ㄴ〉.

【한자음】 추수불각만 관곡동미순
【언해역】 쫓아다님을 늦은 줄 알지 못하였는데 나와 더불어 곽곡(款曲)히 한 곳마다 열흘씩 다하시는구나.
【현대역】 따르고 좇느라 저무는 줄도 몰랐는데 정성으로 대해 주셔서 번번이 열흘을 채우시는구나.
【구절풀이】 서로 같이 다니느라 날 저무는 줄 몰랐고 왕 시어가 두보를 정성껏 대접해 주어서 번번이 열흘 동안 지내기도 하였다는 말이다.

但使芝蘭 주228)
지란(芝蘭)
향기가 깊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 벗 사이의 높고 맑은 사귐을 뜻함. 지초(芝草)는 버섯과에 속하며,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신령스런 풀이고 난초(蘭草)는 여러해살이로 향기가 진한 풀이다.
秀 何須棟宇隣 주229)
역(易)
주역(周易). 역경(易經). 유교 경전(儒敎經典)인 오경(五經)의 하나.
同心之言 其臭ㅣ 如蘭이라 주230)
동심지언(同心之言) 기취(其臭)ㅣ 여란(如蘭)이라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이 말은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뜻은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만하고 마음을 함께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이다.
니 言與侍御 주231)
시어(侍御)
시어사(侍御史).
로 心如芝蘭之秀ㅣ언졍 不必同里而居ㅣ니라】

오직 芝蘭로 주232)
지란(芝蘭)로
지란으로. 지초와 난초로. 향기로운 사귐으로.
여 주233)
여
하여금. ‘-로 여’는 ‘-으로 하여금’의 뜻으로 현대국어의 장형사동의 피사동주 논항에 쓰이는 ‘-로 여곰’으로 쓰이기도 한다. ¶-로 여 : 님굼이 高允으로 여 太子를 글 치라 더니〈번소9:44ㄱ〉 / 오직 녯 버드로 여 슬케 다(秪令故舊傷)「聞高常侍亡」〈두시24:54ㄱ〉 / -로 여곰 : 夫人이 寬으로 여곰 怒호 試驗코져 야〈내훈1:16ㄱ〉 / 집 와 보콰로 여곰 것게 디 말오라(莫使棟梁摧)「秋日···三十韻」〈두시3:10ㄴ〉.
됴케 션 주234)
됴케 션
좋게 할지언정. 좋게 할진대. 둏-+게 ᄒᆞ-+ㄹ션뎌ᇰ. ‘-ㄹ션’은 ‘-ㄹ쎠’와 ‘-ㄴ’이 결합된 것으로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둏- : 虛空애셔 八部ㅣ 모다 됴시다 더라〈석상3:6ㄱ〉 / 됴 비 오미 일우메 잇디 아니니라(甘澤不在早)「遣興三首」〈두시5:34ㄴ〉 / -ㄹ션 : 眞實로 能히 侵勞닐 制馭션 엇뎨 해 주규메 이시리오(苟能制侵陵 豈在多殺傷)「前出塞九首」〈두시5:28ㄱ〉 / 城中에셔  말 로 니브를 밧고니 서르 그리 쳐션 어느 두 것 비듸 서르 마조 議論리오(城中㪷米換衾裯 想許寧論兩相直)「秋雨歎三首」〈두시12:16ㄱ〉 / 오직 閭閻으로 여 도로 揖讓션 구틔여 솔와 대왜 오래 거츠러슈믈 議論리아(但使閭閻還揖讓 敢論松竹久荒蕪)「將赴~五首」〈두시21:3ㄱ〉.
엇뎨 주235)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엇뎨(何) : 내 녀 엇뎨 예 왓뇨(我行何到此)「水宿···群公」〈두시3:20ㄱ〉 / (豈) : 煩促호매 더운 病이 엇뎨 侵逼디 아니리오(煩促瘴豈侵)「早發」〈중간두시1:50ㄱ〉 / (寧)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夔府書懷四十韻」〈두시3:5ㄱ〉 / (焉) : 엇뎨 디 陶淵明과 謝靈運의 손 니 어더(焉得思如陶謝手)「江上···短述」〈두시3:31ㄴ〉 / (曷) : 벼스릐 가오 엇뎨 足히 슬흐리오(位下曷足傷)「陳拾遺故宅」〈두시3:64ㄱ〉 / (安) : 엇뎨 야 壯士 어더 이거슬 하 밧긔 더뎌(安得壯士擲天外)「石笋行」〈두시3:71ㄱ〉 / (胡) : 엇뎨 삿기 치 贙의게 더디이뇨(胡爲投乳贙)「贈秘···公邕이라」〈두시24:25ㄴ〉 / 엇디(那) : 내의 囊 中엣 布帛ㅣ 너희 치위 求 거시 엇디 업스리오(那無囊中帛 救汝寒凜慄)「北征」〈중간두시1:6ㄱ〉 / (豈) : 엇디  나 편안케 리오(豈復慰老夫)「發秦州」〈중간두시1:15ㄱ〉 / (何) : 내 엇디 심히 슬히 리오(我何苦哀傷)「成都府」〈중간두시1:38ㄴ〉 / (奚) : 이젠 내 엇디라  命令에 니가뇨(今則奚奔命)「早發」〈중간두시1:49ㄴ〉 / 엇디라(奈何) : 엇디라 漁陽애 賊騎 颯颯히 와 百姓 놀래뇨(奈何漁陽騎 颯颯驚烝黎)「石龕」〈중간두시1:23ㄱ〉 / 엇뎌(何) :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何况道路長)「遣興二首」〈두시8:28ㄴ〉.
구틔여 주236)
구틔여
구태여. ¶구틔여 : 太子ㅣ 구틔여 從티 아니대〈석상24:49ㄱ〉 / 구틔여 玄圃애 뫼디 몯나(不必陪玄圃)「夔府書懷四十韻」〈두시3:3ㄴ〉.
지블 이웃야 주237)
이웃야
이웃하여. 이웃#ᄒᆞ-+야. ‘이웃ᄒᆞ-’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이웃ᄒᆞ- : 南山ㅅ 幽深  이웃야 사롤  占卜호라(卜鄰南山幽)「寄贊上人」〈두시9:15ㄴ〉 / 參差 버믜 굼글 이웃옛노라(參差虎穴隣)「大歲日」〈두시11:1ㄴ〉 / 맷 지븐 돐 알 이웃얏도다(江閣隣石面)「水閣朝霽奉簡嚴雲安」〈두시14:3ㄱ〉 /  말과 빗난 긄句 반기 이웃고져 노라(淸詞麗句必爲隣)「戲爲六絕」〈두시16:12ㄴ〉 / 巴州ㅅ 風俗 내 이웃리로다(巴俗自爲隣)「與嚴二郞奉禮別」〈두시23:56ㄱ〉.
살라 리오

【한자음】 단사지난수 하수동우린
【언해역】 오직 지란(芝蘭)으로 하여금 좋게 할진대 어찌 구태여 집을 이웃하여 살라고 하겠는가?
【현대역】 벗으로 사귐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한다면야 굳이 이웃에다 집을 마련하여 살려 하겠는가?【주역(周易)에,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했다. 시어(侍御)와 함께 마음이 지란(芝蘭)의 빼어남과 같으니 반드시 같은 마을에 거처할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왕 시어가 영지와 난초를 기르며 격조 있게 대접한다면 굳이 이웃해서 서로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山陽 주238)
산양(山陽)
혜강(嵇康)이 살던 곳. 여기서는 왕시어(王侍御)가 사는 곳을 말한다.
無俗物 鄭驛正留賓【山陽人嵇康 주239)
혜강(嵇康)
위의 주를 참조.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문신(文臣)이자 시인(詩人). 자는 숙야(叔夜, 223년 ~ 262년 추정)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중심인물로,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으나 반유교적(反儒敎的) 사상을 견지하여 당시 권력층의 미움을 받았으며, 친구의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이 與七賢 주240)
칠현(七賢)
죽림칠현(竹林七賢). 중국 위(魏)ㆍ진(晉)의 교체기에 세상을 등지고 죽림에 모여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를 말한다. 일곱 명의 선비는 혜강(嵆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왕융(王戎), 완함(阮咸)이다.
遊니 言侍御 주241)
시어(侍御)
시어사(侍御史).
ㅣ 無俗客也ㅣ라 鄭莊 주242)
정장(鄭莊)
한나라 때 회양진(淮陽陳) 사람으로 자는 장(莊)이다. 의협(義俠)으로 자부하여 양초(梁楚) 사이에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여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있을 적에 휴일을 맞을 때마다 장안의 사방 교외에다 역마를 비치하고는 귀천을 막론하고 손님들을 맞아들여 극진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이 置驛야 請賓客니 言侍御ㅣ 好賓也ㅣ라】

山陽앤 俗物이 주243)
속물(俗物)이
속물이. ‘속물’은 속객(俗客)을 말한다.
업스니 鄭驛 주244)
정역(鄭驛)
정당시(鄭當時)가 세운 역(驛). 정당시가 손님을 모시기 위해 준비한 역마를 말한다.
正히 주245)
정(正)히
바로. 잘못된 데가 없이.
소 주246)
소
손을. 손님을. 손+ᄋᆞᆯ.
머믈우놋다 주247)
머믈우놋다
머물게 하는구나. 머믈-+우+ᄂᆞ+옷+다.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로 『두시언해』에서는 ‘머믈오-’로도 표기되었다. ¶머믈우- : 소 가매 다혀 겨샤 목수믈 머믈우들 몯시니〈월석10:15ㄴ〉 /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聖慮窅裴佪)「秋日···三十韻」〈두시3:10ㄴ〉 / 머믈오- :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春濃停野騎)「懷灞上遊」〈두시3:39ㄱ〉 / 懇切히 諫爭 匡鼎을 머믈오시고(懇諫留匡鼎)「秋日···一百韻」〈두시20:11ㄱ〉 /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21:37ㄱ〉 / 머므러셔 얽여 뇨 慰勞노라(躊躇慰羈束)「南池」〈두시13:16ㄴ〉.

【한자음】 산양무속물 정역정류빈
【언해역】 산양(山陽)에는 속물(俗物)이 없으니 정장(鄭莊)이 설치한 역(驛)에는 바로 손님을 머물게 하는구나.
【현대역】 산양에는 속물이 없었고 정당시의 역참은 바로 나그네를 머물게 하는구나.【산양 사람 혜강(嵇康)이 칠현(七賢)과 더불어 노닐었으므로 시어(侍御)가 속객(俗客)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정장이 역을 설치하여 빈객을 청하였다고 하니 시어가 빈객을 좋아한 것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혜강이 죽림칠현과 교제를 한 것처럼 속물이 없고 왕 시어는 정장처럼 빈객을 잘 대접한다는 말이다.

出入竝鞍馬 주248)
안마(鞍馬)
안장을 얹은 말.
光輝忝席珍 주249)
석진(席珍)
자리 위에 놓인 보배. 유자(儒者)의 학덕을 비유하는 말이다.
【席珍 指侍御다】

나며 드로매 주250)
나며 드로매
나며 듦에. 나-+며 들-+오+ㅁ+애. ¶나며 들- : 法身 나며 드르샤미 업스시니라〈석상23:44ㄱ〉 / 나며 드로매 諸公의게 옛도다(出入冠諸公)「投贈···二十韻」〈두시5:41ㄴ〉.
鞍馬 와 주251)
와
나란히 하여. 대적하여. -[竝]+아. ¶ᄀᆞᆲ- : 둘히 서르 도아 반기 와 行티 아니니라〈영가 하99ㄱ〉 / 氣運이 嵩山 華山과 다 와슈믈 마 아노라(巳覺氣與嵩華敵)「閬山歌」〈두시13:31ㄴ〉.
고 주252)
고
타고. -[乘]+고.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받다) : 집 우 龍이 御床 向니 寶位 실 느지르샷다〈용가100〉 /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1:7ㄱ〉 / -(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25:49ㄴ〉 / -(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3:6ㄴ〉 /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2:21ㄴ〉 / -(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9:108ㄴ〉.
비츨 주253)
비츨
빛을. 볕을. 15세기의 ‘빛’은 ‘밝기’를 나타낼 때와 ‘온도’를 나타낼 때가 있는데, 여기서는 ‘서리’와 ‘눈’은 차가움의 대상이어서 피해야 하므로 ‘온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254)
자리. 도ᇧ[席]. 현대국어의 ‘돗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 : 이 야로 出令야 닐웨예 닐굽 솨줄 그처  우희 고  보아 돗 드니 太子ㅅ 慈心福德力으로  일 업시 바 셔메 드러가 珎寳山애 다라 善友太子ㅣ 붑 텨 出令호〈월석22:38ㄱ〉 / 처 돗긔 안조매 슬픈 실와 큰 댓 소리 뮈놋다(初筵哀絲動豪竹)「醉爲墜馬諸公攜酒相看」〈두시3:53ㄴ〉.
우흿 주255)
우흿
위의. 우ㅎ+의+ㅅ. ‘우ㅎ’은 ‘ㅎ’말음체언이고, ‘의’는 처격조사, ‘ㅅ’은 속격조사이다. ¶우ㅎ : 上 우히니 無上正眞道理 우 업슨 正 진딧 道理라〈석상3:10ㄱ〉 /  란 漢水ㅅ 우흘 고(清思漢水上)「回棹」〈중간두시2:13ㄴ〉.
珍寶 주256)
진보(珍寶)
진기한 보배를. 여기서는 시어(侍御)의 학덕을 비유한다.
더러유라 주257)
더러유라
더럽힌다. 더러이-[忝]+오/우+라. 참조. 더러이-. 더레-. 더러-. 더럽-. 더러오-. 더러우-. 더러이. ¶더러이- : 同列의 德 기류믈 브터 阿難ㅅ 자최 뵈요미 實로 허리며 더러유미 업서〈능엄1:26ㄴ〉 / 사오나온 材質로 省郞 더러유라(凡材汙省郞)「乘雨入行軍六弟宅」〈두시8:44ㄴ〉 / 더레- : 淨은  듣그릐 더레여 리오미 외디 아니호 니시니〈법화6:57ㄴ〉 / 늘구매 宮臣 더레여(遲暮宮臣忝)「秋日荊南述懷三十韻」〈두시3:7ㄴ〉 / 더러- : 淨德은 한 德이 眞實로 조야 더러디 몯 씨라〈석상20:35ㄱ〉 / 더럽- : 蓮花 더러  이셔도 더럽디 아니호미 眞實ㅅ 法界 世間法의 몯 더러믈 가비니라〈월석2:55ㄴ〉 / 靑城은 쇽졀업시 더럽고 雜亂니(靑城漫汚雜)「閬州奉送二十四舅使自京赴任靑城」〈두시8:60ㄱ〉 / 더러이 : 宣和 己亥예 처믜 辱이 더러이 아니 너겨 나 命야 校正야 證라 코〈법화 서:21ㄴ〉 / 내 늘거 더러이 외야 쇼 아노라(自覺成老醜)「將適~柳字韻」〈중간두시1:38ㄱ〉 / 더러 : 큰 들 일워 아랫  제 더러 너기  아라〈월석13:29ㄱ〉.

【한자음】 출입병안마 광휘첨석진
【언해역】 나며 듦에 안장 얹은 말을 나란히 타고 자리 위의 진귀한 보물 빛을 더럽혔구나.
【현대역】 나고 들며 말을 나란히 탔고 빛나게도 진귀한 자리에 참여해 누를 끼쳤구나.【석진(席珍)은 시어(侍御)를 가리킨다.】
【구절풀이】 나란히 말을 타고 다니면서 왕 시어의 빛남에 누를 끼치고 있다는 말이다.

重遊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29ㄴ

주258)
선주(先主)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 중국 삼국시대 촉(蜀)의 제1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221년 ~ 223년이었다. 후한(後漢)의 영제(靈帝) 때 황건적을 쳐서 공을 세우고, 후에 제갈량의 도움을 받아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함께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에서 격파한 인물이다.
廟 更歷少城 주259)
소성(少城)
성도(成都)에 있는 성(城) 이름. 성도(成都)에는 옛날부터 대성(大城)과 소성(少城)이 있었다. 소성(少城)은 예전에 비단 짜는 일을 관장(管掌)했던 관원(官員)의 관서(官署)가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주260)
인(闉)
성곽의 문.
【少城은 在成都 주261)
성도(成都)
전국시대부터 있어 온 도시 이름.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고, 진(秦)과 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성도현(成都縣)이 설치되었으며, 후한(後漢) 때에는 익주(益州)의 통치도 겸한 곳이다. 삼국시대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에다 수도를 건립했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의 중심지로서 번영했으며, 당나라의 현종(玄宗)은 안사(安史)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隋唐) 시대 때는 장안, 양주(揚州), 돈황(敦煌)과 함께 4대 도시였다.
다 闉 城外擁門 주262)
옹문(擁門)
문(門)으로 둘러싸다.
이라 此下 言共遊所見之事니라】

先主ㅅ 廟애 주263)
선주(先主)ㅅ 묘(廟)애
선주의 사당에. 즉 성도에 있는 유비의 사당을 말한다.
다시 놀오 주264)
놀오
놀고. 놀-+고. ¶놀- : 王子ㅅ 命이 닐웻 부니로소니 아례나   노라 리다(當就於死努力恣情五欲自娛)〈석상24:28ㄱ〉 / 巴子國에 오래 노라(久遊巴子國)「諸葛廟」〈두시6:33ㄴ〉.
少城闉으로  디나가라 주265)
디나가라
지나갔네. 디나-#가-+라. 『두시언해』에는 ‘디나가-’ 이외에 ‘디너가-’도 쓰였다. ¶디나가- : 오 안자 잇더시니 도 五百이 그윗 거슬 일버 精舍ㅅ 겨로 디나가니〈월석1:6ㄱ〉 / 디나가  스싀로 모 앗겨(經過自愛惜)「送元二適江左」〈두시23:49ㄱ〉 / 디너가- : 四時ㅣ 디너가미 내 매 버므럿니(四序嬰我懷)「晚登瀼上堂」〈두시14:4ㄱ〉.

【한자음】 중유선주묘 갱력소성인
【언해역】 유비의 묘에 다시 놀고 소성인(少城闉)으로 또 지나갔네.
【현대역】 선주의 사당에서 다시 노닐고 소성의 성문을 또 지나갔구나.【소성(少城)은 성도(成都)에 있다. 인(闉)은 성 밖을 문으로 둘러싼 것이다. 이 아래부터는 함께 유람하며 본 일에 대해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두보가 왕 시어와 함께 성도의 무후사 즉 유비의 사당을 참관하고 또 함께 성도의 소성(少城)의 문을 유람했다는 말이다.

石鏡通幽魄 琴臺 주266)
금대(琴臺)
초당에 있던 누대 이름. 현재 금대는 두보의 성도 초당의 완화계 북쪽에 있다. 이 시는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사랑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있다. 주변에 있던 것이다. 『두시언해』 권9에는 「금대」라는 시가 있으며 주석에는 “在成都니 卽相如ㅣ 與文君으로 賣酒處ㅣ라”라 되어 있다. 해석하면 “성도에 있으니 사마상여가 탁문군과 함께 술을 팔던 곳이다.”이다.
隱絳脣蜀王 주267)
촉왕(蜀王)
촉(蜀)나라의 왕 개명(開明)이다. 『두시언해』 권3에는 「석경」이라는 시가 있는데 촉왕의 거울 고사를 담고 있다. 무도산(武都山)의 정기(精氣)가 여자가 되었는데 촉왕 개명이 아내로 맞이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죽었기 때문에 석경을 만들어 묘의 문에 두었다.
用石鏡葬其妃니라 주268)
용석경장기비(用石鏡葬其妃)니라
촉왕 개명은 왕비가 죽자 석경을 만들어 왕비의 장사를 지냈다.
琴臺 卓文君 주269)
탁문군(卓文君)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내. 중국 전한 임공(臨邛)의 부호인 탁왕손(卓王孫)의 딸이다. 사마상여가 타는 거문고 소리에 반하여 밤중에 집을 빠져 나와 그의 아내가 되었으며, 후에 사마상여가 무릉의 여자를 첩으로 삼으려 하자 「백두음(白頭吟)」이라는 가사(歌詞)를 지어 결별의 뜻을 밝혔다.
의 彈琴處ㅣ라】

거우루엔 주270)
거우루엔
거울에는. 거우루[鏡]+에+ㄴ. 『두시언해』에는 ‘거우로’도 쓰였다. ‘거올, 거울’의 형태는 16, 17세기에 등장한다. ¶거우루 : 그 새 거우루엣 제 그르멜 보고〈석상24:20ㄱ〉 / 드틀 무든 匣애  거우루를 여러 내 고(塵匣元開鏡)「月」〈두시12:3ㄴ〉 / 거우로 : 鏡 거우로 〈훈몽 중:7ㄴ〉 / 늘거 료란  거우로애 아노니(老罷知明鏡)「懷舊」〈두시21:41ㄴ〉 / 거올 : 鏡奩 거올 집〈역어 하:15ㄱ〉 / 거울 볼 사미 모로매 제 치 고오며 구줌 요매 이실 미니라〈법집32ㄴ〉.
어드운 주271)
어드운
어두운. 어듭-+은. 참조. 어둡-. ¶어듭- :  며 어드운 諍이 이시며〈금강55ㄴ〉 / 샤공이 어드운 셔  달화 놀애 브며(篙師暗理楫)「水會渡」〈중간두시1:29ㄱ〉 /어둡- 버럿 나라해 兵戈ㅣ 어두우니(列國兵戈暗)「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두시20:30ㄴ〉.
주272)
데의. ᄃᆡ+ㅅ.
넉시 주273)
넉시
넋이.
찻고 주274)
찻고
꿰뚫어 있고. 문맥상 거울에 죽은 왕비의 혼이 서려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 그 사리 스믈 여듧 부플 다 여 해 차 가아 鐵圍山애 바니(中百里鼓而穿壞之)〈석상3:14ㄱ〉 / 宮殿을 브티니 브리 새록 챗도다(焚宮火徹明)「奉送郭中丞~三十韻」〈두시23:3ㄱ〉.
琴臺예 블근 주275)
블근
붉은. 븕-+은. ¶븕- : 기픈 길헤 디옛 고 블고미 블 고〈남명 하:10ㄴ〉 / 블근 새 두위텨 라오고(赤雀翻然至)「秋日···三十韻」〈두시3:11ㄱ〉.
이비 그얫 주276)
그얫
그윽하여 있는. 그ᅀᅳᆨ#ᄒᆞ-+야#잇-+ᄂᆞᆫ. 『두시언해』 권9에는 ‘그근’이란 단어가 보이는데 오자가 아니라면 15세기에 ‘그다’라는 단어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 말미 詭譎고 行止擧動이 그고 險며 利 즐기며 왼 이 미고〈내훈1:22ㄴ〉 / 너븐 믌겨레 말과 우괘 그앳니(洪濤隱語笑)「幽人」〈두시9:8ㄴ-4ㄱ〉 / 그- : 秘密 말과 그근 글워 모로매 안로 게 야 리언마(袐訣隱文須內敎)「憶昔行」〈두시9:6ㄱ〉.
도다

【한자음】 석경통유백 금대은강순
【언해역】 돌 거울에는 어두운 곳의 넋이 서려 있고 금대(琴臺)에는 붉은 입술이 그윽하게 있는 듯하구나.
【현대역】 돌 거울은 혼백이 통하고 금 타던 누대에 붉은 입술 숨었습니다.【촉왕(蜀王)이 석경(石鏡)을 만들어 왕비의 장사를 지냈다. 금대(琴臺)는 탁문군(卓文君)이 거문고를 연주하던 곳이다.】
【구절풀이】 함께 촉왕(蜀王) 개명(開明)이 만들어 놓은 석경과 사마상여의 구택인 금대를 유람했다는 말이다. 『두시언해』 권3에 ‘석경’이라는 시가 있고, 『두시언해』 권9에 ‘금대’라는 시가 있다.

送終 주277)
송종(送終)
장례를 치르다.
糞土 주278)
분토(糞土)
더러운 흙.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杇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뜻은 “썩은 나무는 아로새길 수 없고, 분토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이다.
結愛獨荊榛 주279)
형진(荊榛)
가시나무와 개암나무. 황량한 풍경을 뜻하는 말이다.
【承上二句而言다】

送終혼 주280)
송종(送終)혼
장례를 치룬. 送終#ᄒᆞ-+오+ㄴ.
거슨 주281)
거슨
것은.
오직 니오 주282)
니오
흙뿐이고. ᄒᆞᆰ+ᄲᅮᆫ+이+고. ‘’은 16세기까지는 아주 우세하게, 17세기에는 비슷하게, 18세기에는 세력이 아주 축소된다. 한편 ‘흙’은 16세기에 보이다가 17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간다. ¶ :  싸하 佛廟 일우거나〈법화1:217ㄴ〉 / 나 이니 내 모매 콰 가족과 왜니라〈칠대2ㄱ〉 / 고온 사미 누른 기 외니(美人爲黃土)「玉華宮」〈두시6:1ㄴ〉 / 흙 : 흘그로 근 사〈소언 6:122ㄱ〉 /  : 護彌 닐오 소리 듣노라〈석상6:15ㄱ〉 / 갓가이 녀도  몸이오(近行只一身)「無家別」〈중간두시4:12ㄱ〉.
 주283)

사랑을. ᄉᆞ라ᇰ+ᄋᆞᆯ.
잣던 주284)
잣던
맺었던. ᄆᆡᆽ-+아#잇-+더+ㄴ. ¶- : 다가 業 조미 重면 地獄애 기리 이셔 버서 時節이 업스리라〈월석21:121ㄱ〉 / 댓 고지 여르미 디 아니니(竹花不結實)「述古三首」〈두시3:55ㄴ〉 / 넉슨 蜃氣ㅣ 쳿 樓에 나봇기놋다(魂飄結蜃樓)「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8:45ㄴ〉 / 머리터리 자 남진 겨지비 외요니(結髮爲夫妻)「新婚別」〈두시8:67ㄱ〉.
주285)
데는. ᄃᆡ+ㄴ.
오 주286)
오
혼자. 홀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하지 않고 홀로인 상태. 정음 초기 문헌 중에서도 〈용비어천가〉(1445~1447)에는 ‘’로 쓰였던 것이 〈석상〉(1447)부터는 ‘오’로 쓰였다. 16세기 문헌에는 ‘호, 호은자, 호온자’ 형도 나타난다. 〈중간본〉에는 ‘오아’로 되어 있다. ¶ : 셔 긔벼를 알  나가샤 모딘 도 믈리시니다〈용가35〉 / 오 :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석상3:19ㄴ〉 / 오 셔셔 여러 가짓 시름노라(獨立萬端憂)「獨立」〈두시3:26ㄴ〉/ 호 : 叔咸이 호셔 侍病며 어 大便을 맛보니 더니〈속삼, 효:22ㄱ〉 / 호은자 : 내 호은자 아도 이긔요리라〈번박55ㄱ〉 / 호온자 :  하  호온자 가  보내놋다〈백련3ㄴ〉.
가남기 주287)
가남기
가시나무가. 가ᄉᆡ+나ᇚ+이. 15세기 국어에서 ‘나모’[木]는 음운환경에 따라 2가지 어형으로 나타난다. ①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통합될 때. ② 나모:공동격조사 ‘와’와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관형격 ‘ㅅ’ 등), 그리고 휴지가 올 때. ¶가 : 梔子ㅅ 아리 半 나채 술윗 기르믈 몌오 아리예 기 야 가락 우희 기 야 가락 우희  두리니 알 히 져기 라 오면 가 自然히 나니 족접개로 혀라〈구급방 하:6ㄱ〉 / 요 주 누넷 가 아 리시 그 샤 으리와니(近者抉眼去其夫)「可嘆」〈두시25:9ㄴ〉 / 나모 : 楓 싣나모 〈훈몽 상:5ㄴ〉 / 싣나모 션 두들게 프른 묏 그티 重疊도다(楓岸疊靑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4ㄱ-ㄴ〉 /  :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곶 됴코 여름 하니〈용가2〉 /  뷔오 사롤  占卜호 다 이 남 爲얘니(誅茅卜居㹅爲此)「柟木···拔歎」〈두시6:40ㄴ〉 / 가ᄉᆡ남ㄱ : 나못닙도 머그며 도 마시며 예도 누며 가남도 누〈석상24:26ㄱ〉 / 가ᄉᆡ나모 : 곳과 果實와 버히고 가나모 심고  듣보디 몯리로소다〈월석25:74ㄴ〉 / 가나모 門읜 너춘 프리 기펫고(荊扉深蔓草)「聞斛斯六官未歸」〈두시22:12ㄴ〉.
잇도다 주288)
잇도다
있구나. 있도다.

【한자음】 송종유분토 결애독형진
【언해역】 장례 지낸 곳은 오직 흙뿐이고 사랑을 맺었던 데는 홀로 가시나무가 있구나.
【현대역】 장사 지낸 자리에는 분토만 남았고 사랑 맺은 곳에는 가시나무 개암나무뿐이구나.【위 두 구에 이어서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석경(石鏡)과 금대(琴臺)가 황폐해진 것을 말하는 것으로 현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置酒高林下 觀 주289)
기(棊)
바둑. 기(碁).
積水濱

노 수플 아래 수를 노코 답사 주290)
답사
포개진. 겹겹으로 쌓인. 답+샇-+ᄋᆞᆫ. ‘답사ᄒᆞ-’는 『두시언해』에서 주로 ‘積’의 옮긴 말로 쓰이는데 ‘답’은 ‘답답-’ 등에 쓰인 것으로 ‘겹겹’의 의미인 것으로 보이며, ‘샇-’은 각자병서가 쓰이지 않은 표기로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 ‘답사-’의 피동형은 ‘답사히-’이다. 이 단어는 『두시언해』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두시언해』에서는 ‘샇-’보다 ‘답사-’가 많이 쓰였다. ¶답사- : 답사하 그륜 눈서비 어위도다(狼藉畫眉闊)「北征」〈중간두시1:6ㄴ〉 / 石壁ㅅ 빗츤 답사 쇠 솃 도다(壁色立積鐵)「鐵堂峽」〈중간두시1:17ㄱ〉 / 답사호믈 밧긔 도라 라셔(回眺積水外)「水會渡」〈중간두시1:29ㄴ〉 / 져근 미 도혀 믌겨리 답사니(小江還積浪)「水宿遣興奉呈群公」〈두시3:19ㄴ〉 /  답사힌 믌 안해 챗고(陰通積水內)「營屋」〈두시6:45ㄱ〉 / 甲 니븐  구루미 답사혯 도다(鐵馬雲霧積)「白水縣崔少府高齋三十韻」〈두시7:25ㄱ〉 / 篋中엣 글워리 諷諫 말미 답사핫건마(篋書積諷諫)「奉贈李八丈判官」〈두시8:4ㄱ-ㄴ〉 / 하 가온 티와 댓 답사 프른 王臺 아라니(中天積翠玉臺遙)「玉臺觀二首」〈두시9:40ㄱ〉 / 시내해 버렛 蓮ㅅ 니픈 프른 도니 답사햇 도다(點溪荷葉疊靑錢)「漫興九首」〈두시10:8ㄴ〉 / 열운 오로 답사핫 므를 디러 고(薄衣臨積水)「上巳日徐司錄林園宴集」〈두시11:22ㄴ〉 / 보라온 구루미 답사혀  이긔디 몯놋다(弱雲狼藉不禁風)「江雨有懷鄭典設」〈두시12:25ㄴ〉 / 답사 믌  불휘 서롓도다(蟠根積水邊)「白塩山」〈두시13:4ㄴ-5ㄱ〉 / 맷 믉겨리 怒□미 오히려 답사혓도다(風濤怒猶蓄)「三川觀水漲二十韻」〈두시13:8ㄴ〉 / 龍이 답사 므를 브터 서렷니(龍依積水蟠)「萬丈潭」〈두시13:17ㄱ〉 / 답사 므리 三峽에 딜엇고(積水駕三峽)「別蔡十四著作」〈두시22:28ㄱ〉 / 답사 陰氣예 서리와 눈괘 하도다(積陰雪雲稠)「送韋十六評事充同穀郡防禦判官」〈두시22:38ㄱ〉 / 烈士 슬호미 답사핫도다(烈士痛稠疊)「故司徒李公光弼」〈두시24:17ㄴ〉 / 답사히- : 주거미 답사효매 플와 나모왜 비뉘고(積屍草木腥)「垂老別」〈중간두시4:10ㄴ〉 / 芝蘭과 구슬왜 답사혓 도다(芝蘭壘璵璠)「覽栢中丞兼子姪數人의~載歌經綸노라」〈두시24:1ㄴ〉 / 前後에 온 卷ㅅ 글워리 답사혀시니(前後百卷文)「故秘書少監武功蘇公源明」〈두시24:34ㄱ〉 / 쌓- : 種種 花香 비허 須彌山 티 싸며(雨無數百千種種上妙天香天花 遍滿三千大千世界積高須彌供養如來)〈석상23:20ㄱ〉 / 샇- : 蕃州 사  로다(蕃州積雪邊)「西山三首」〈두시5:10ㄱ〉 / 龍 사  사햇 므리 깁도다(龍居閟積流)「覆舟二首」〈두시15:34ㄱ〉 / 사히- : 주근 사미 두듥티 사혯도다(死人積如丘)「遣興三首」〈두시5:34ㄴ〉 / 날마다 구루미 사힌 니라(冠蓋日雲積)「送李校書二十六韻」〈두시8:20ㄱ〉.
믌셔 주291)
믌셔
물가에서. 믈+ㅅ+ᄀᆞᆺ+ᄋᆡ+셔.
弈碁 주292)
혁기(弈碁)
바둑을.
보노라

【한자음】 치주고림하 관기적수빈
【언해역】 높은 숲 아래 술을 놓고 겹겹이 파도치는 물가에서 바둑을 보노라.
【현대역】 높은 숲 아래 술을 차리고 호수 가에서 바둑 두노라.
【구절풀이】 두보와 왕 시어는 다행스럽게도 초라한 초당일망정 술을 마실 수 있고 바둑을 둘 수 있다는 말이다.

區區 주293)
구구(區區)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 변변치 못한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甘累 주294)
견(趼)
발에 생기는 군살. 발이나 발가락에 딱딱하게 생기는 군살을 뜻한다.
稍稍 주295)
초초(稍稍)
점점. 차차로.
息勞筋【趼은 古典反니 足瘡 주296)
족창(足瘡)
발에 난 부스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30ㄱ

니 言避亂奔走야 甘於足傷다가 今來此而息其勞也ㅣ라】

區區히 주297)
구구(區區)히
구차하게.
녀셔 주298)
녀셔
다녀서. -#니-+어+셔. ‘니-’는 ‘니-’의 선행 음절 ‘’의 ‘ㄷ’이 후행하는 ‘니’의 ‘ㄴ’의 영향으로 비음화된 것이다. ¶니-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3:4ㄴ〉 / 後에 난 사미 아디 몯야 오히려 키 니놋다(後生未識猶駿奔)「石笋行」〈두시3:70ㄴ〉 / 니- : 後身 後ㅅ 모미니 前生애 니다가 後生애 다시 난 모미 後身이라〈월석1:45ㄴ〉 /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扈聖崆峒日)「夔府書懷四十韻」〈두시3:1ㄱ〉.
여러  주299)
여러 
여러 번. ¶ : 웃 譬喩에셔 즈믄 리 倍히 하니 며 地藏菩薩이 聲聞 辟支佛地예 이슈미녀〈월석21:16ㄴ〉 / 江漢애 뫼히 여러  險阻니(江漢山重阻)「地隅」〈중간두시2:29ㄴ〉.
발 부루투믈 주300)
발 부루투믈
발이 부르틈을. 부루트-+우+ㅁ+을. ¶부루트- : 趼 부루틀 견〈훈몽 중:16ㄴ〉 / 遷延히 뇨매 손바리 부루터 허도다(遷延胝趼瘡)「入衡州」〈중간두시1:54ㄱ〉.
히 너기다니 주301)
히 너기다니
달게 여기니. 달게 여겼는데. ¶히 : 孔聖도 나조 주구믈 히 너기샤미 다 根源을 아샤 업디 아니 거시 잇논 고 미더 드틀와 왓 시르믈 벗고져 시논 젼라〈석상20:12ㄱ〉 /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1:7ㄱ〉 / 너기- : 善友ㅣ 샤 도긴가 너기샤  일훔을  브르시니〈월석22:10ㄱ〉 / 사랫 데 늘거 셰요 히 너기노니(生意甘衰白)「收京三首」〈두시5:7ㄴ〉.
졈졈  주302)

피곤한. 가쁜. ᄀᆞᆺᄇᆞ-+ㄴ. ¶- : 길 머러 실 보기 야〈석상3:37ㄴ〉 / 아니 님금 모미 신가(無乃聖躬勞)「收京三首」〈두시5:8ㄱ〉.
히믈 쉬우노라 주303)
쉬우노라
쉬게 하노라. 쉬우-+ᄂᆞ+오+라. ‘쉬우-’는 ‘쉬-’의 사동사이다. ‘쉬우-’는 ‘쉬오-’로도 쓰였다. ¶쉬우- : 뎌 導師ㅣ 쉬우믈 爲야 큰 城을 지 잇다가 쉰  알오 닐오 보 잇 히 갓가 잇니〈월석14:81ㄱ〉 /  쉬우노라 미틔 이셔(歇鞍在地底)「飛仙閣」〈중간두시1:30ㄴ〉 / 쉬오- : 너모 쉬오면 곧 거즛되오 너모 하면 지리며〈번소8:11ㄱ〉 / 下句 히미 세여 사 달오미 쉬오면 게 믈이디 아니리라 논 마리라「贈秘書監 江夏李公邕이라」〈두시24:29ㄴ〉.

【한자음】 구구감루견 초초식노근
【언해역】 구구(區區)히 다녀서 여러 번 발 부르틈을 달게 여기니 점점 노곤해지는 힘을 쉬게 하노라.
【현대역】 구구한 신세 여러 번 발 부르틈을 달게 여겼더니 점점 힘이 빠져 쉬게 하노라.【견(趼)은 고전(古典)에서 살펴보니 족창(足瘡)이다. 분주하게 피난을 다녀 발에 난 상처도 감내하면서 지내다가 지금에 와서야 그 수고로움이 그치었음을 말한 것이다.】
【구절풀이】 구구한 신세여서 많이 돌아다녀 발에 굳은살이 박여도 기꺼이 해야 하는 일이니 피곤한 몸을 잠시 쉬게 한다는 말이다. 후구(後句)를 두보 자신이 아닌 왕 시어가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網聚粘圓鯽 絲繁煮細 주304)
순(蓴)
순채. 수련과(睡蓮科)에 속하는 다년생 수초(水草)로 줄기와 어린잎은 식용한다.

그므리 모니 주305)
모니
모이니. 몯-+ᄋᆞ니. ‘몯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몯-(자동사) : 공경홈은 德의 몯 거시니 能히 공경면 반시 德이 이실디라〈소학4:34ㄴ〉 / 盛 이리  모니(此堂豈千年)「陳拾遺故宅」〈두시3:65ㄱ〉 / (타동사) : 王이 붑 텨 조 겻 사 다 모라 시고〈석상3:12ㄱ〉.
두려운 주306)
두려운
둥그런. 둥근. 두렵-+은. ¶두렵- : 圓은 두려 씨오〈월석2:53ㄴ〉 / 平牀을 괴오니 어르누근 돌히 두렵도다(支床錦石圓)「季秋江村」〈두시10:38ㄱ〉.
鯽魚 주307)
즉어(鯽魚)
붕어. 잉엇과에 속하는 민물고기이다.
주308)
즉어(鯽魚)ㅣ
즉어가. 붕어가.
버므렛고 주309)
버므렛고
섞여 있고. 버무려져 있고. 버믈-+어#잇-+고. 15세기의 ‘버믈-’은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여기서는 자동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버믈-’이 타동사로 쓰인 용례에는 주로 『두시언해』에서 확인된다. 사동사 ‘버므리-’도 있다. ‘버믈다’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보다(보라)’도 있다. 오식일 가능성과 유일례일 가능성이 있다. ¶버믈-(자동사) : 그  香 부텻 精舍애 가니  瑠璃 구루미 야 부텻긔 닐굽  버므러 金盖 외오〈월석7:30ㄱ〉 / 緣 六塵에 버믈시니 六塵에 버므  그르메 야〈금삼2:34ㄱ〉 / 亡命면 災禍ㅅ 그므레 버믈리라(亡命嬰禍羅)「前出塞九首」〈두시5:26ㄱ〉 / 너추 프리 수이 버므러쇼 思念노니(蔓草易拘纏)「寄題江外草堂」〈두시6:37ㄱ〉 / 버믈-(타동사) : 繞 버믈 씨라〈월석2:32ㄴ〉 / 반됫 비츤 帳 버므러 차 가고(螢鑑緣帷徹)「遣悶」〈두시3:12ㄱ〉 / 江峽에 蛟螭 버므러 니노라(江峽繞蛟螭)「偶題」〈두시16:10ㄱ〉 / 보- : 도로혀 우믌 欄干애 보라 낫나치 더으고(却繞井欄添箇箇)「見螢火」〈두시17:38ㄴ〉 / 버므리-(사동) : 萬行이 本來 眞實호 能히 俗 버므리실〈월석13:13ㄱ〉 / 나조 御香 버므려 도라가노라(暮惹御香歸)「寄左省杜拾遺」〈두시21:14ㄴ〉 / 버므리-(피동) : 만일 明日에 일이 니러나면 온 집 사이 버므리여 다 죽을 시니〈박통 중:28ㄱ〉 / 蕭條호매 病이 장 버므리셰라(蕭條病轉嬰)「柳司馬至」〈두시5:16ㄴ〉 / 버므리(부사) : 바라온 길히 이 뫼 이예 버므리 서럿니(危途中縈盤)「龍門閣」〈중간두시1:32ㄱ〉.
시리 하니 주310)
하니
많으니.
 주311)

가는. ᄀᆞᄂᆞᆯ-+ㄴ. ¶ᄀᆞᄂᆞᆯ- :  듣글 만 點곰 리와 먹이 다거든〈능엄1:5ㄱ〉 /  字 바지로이 더니라(辨眼工小字)「送顧···吉州」〈두시16:17ㄴ〉.
蓴을 주312)
순(蓴)을
순채를.
글히놋다 주313)
글히놋다
끓이는구나. 글히-+ᄂᆞ+옷+다. ‘글히-’는 ‘긇-’의 사동사이다. ¶글히- : 이제 누의 나히 늙고 나도 늙그니 비록 조 누의 위야 쥭을 글히고져  다시 시러곰 려〈번소9:79ㄱ〉 / 밥 머글 제 靑泥坊 미틧 미나리 글히놋다(飯煮靑泥坊底芹)「崔氏東山草堂」〈두시7:32ㄴ-33ㄱ〉 / 긇- : 罪人 글 가마애 드리티니라〈월석1:29ㄱ〉.

【한자음】 망취점원즉 사번자세순
【언해역】 그물을 거두니 둥근 붕어가 바글거리고 가는 실이 많은 순채를 끓이네.
【현대역】 그물 모으니 둥근 붕어가 바글대고 실 같이 많은 순채를 끓이는구나.
【구절풀이】 그물로 붕어를 잡아서 순채를 넣어 끓인다는 것으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다.

長歌敲柳癭 주314)
유영(柳癭)
버드나무의 옹이.
小睡 주315)
빙(凭)
기대다.
藤輪 주316)
등륜(藤輪)
등나무로 만들어 몸을 기댈 수 있는 것. 앉아서 비스듬히 기대는 장침(長枕)이나 사방침(四方枕) 같은 것을 말한다.
【柳癭은 버들리 못브르도 옹되니 주317)
준(樽)
술잔. 단지 비슷한 술그릇을 말한다.
니라 藤輪은 藤蔓 주318)
등만(藤蔓)
등나무 덩굴.
이 如輪이니 似是几類ㅣ라】

기리 주319)
기리
길게. 영원히. 여기서는 ‘길게’로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놀애 주320)
놀애
노래.
블러셔 柳癭 두드리고 져기 주321)
져기
적이. 조금. 잠깐. 이 문맥에서는 ‘잠깐’이 알맞은 것으로 보인다.
오라셔 주322)
오라셔
졸아서. 올-[睡]+아+셔. 참조. 오롬. ¶올- : 諸天의 히로 사히 다 올의 니〈석상3:25ㄴ〉 / 오롬 : 緣을 미더 사라 오롬 오나 곧 눕고〈원각 하3-1:102ㄱ〉 / 븘 그리메 오롬 업수메 비취옛니(燈影照無睡)「大雲寺贊公房四首」〈두시9:20ㄴ〉.
藤輪을 비규라 주323)
비규라
기댄다. 비기-[憑]+우+라. ‘비기-’는 ‘기대다’의 의미이다. ¶비기- : 이 根과 塵과 識괘 가비건댄 뭇군  서르 브터 비기야〈능엄5:8ㄱ〉 / 七寶几 자샤 紫金山 도샤 다시 와 비기샤 너비 大衆과 阿難려 니샤〈능엄9:41ㄱ〉 /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野樹欹還倚)「九日五首」〈두시11:29ㄴ〉 /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野樹歌還倚)「九日五首」〈두시11:29ㄴ〉.

【한자음】 장가고유영 소수빙등륜
【언해역】 길게 노래 불러서 옹이로 만든 술잔 두드리고 잠깐 졸아서 등나무 넝쿨 베개에 기대네.
【현대역】 길게 노래하며 버드나무 술잔 두드리고 잠시 졸면서 등나무 베개에 기댄다네.【유영(柳癭)은 버들이 부르돋지 못한 옹이이니 술잔을 만든다. 등륜(藤輪)은 등나무 덩굴이 바퀴처럼 된 것이니 베개와 같은 것이다.】
【구절풀이】 두보와 왕 시어가 술을 같이 마시고 졸리면 등나무 베개에 베고 누워 같이 지내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農月須知課 田家敢忘勤

녀름 주324)
녀름
농사. ¶녀름 : 능엄法會 녀름브터 겨레 가니〈능엄1:17ㄱ〉 / 녀름과  忽然히 디니(秋夏忽泛溢)「漲溪」〈두시13:19ㄴ〉.
지 주325)
지
지을. ‘녀름’과 합한 ‘녀름 짓-’은 ‘농사 짓-’의 의미로 쓰인다. ¶짓- : 製 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1ㄱ〉 /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협주)〈월석4:18ㄴ〉.
래 주326)
래
달에. ᄃᆞᆯ[月]+애.
모로매 주327)
모로매
모름지기. 반드시. 이응태 묘 출토 〈한글편지〉(1586)에는 ‘모매’로 표기됨. ¶모로매 : 必 모로매 논 디라〈훈언13ㄱ〉 / 곧 이젯 이 모로매 애 맛볼 디니(卽事須嘗膽)「夔府書懷四十韻」〈두시3:5ㄱ〉.
功課 아롤 디니 주328)
아롤 디니
알 것이니.
녀름 짓 지븨셔 주329)
녀름 짓 지븨셔
농사하는 집에서.
구틔여 주330)
구틔여
구태여. 원문의 ‘敢’의 번역이다. ¶구틔여 : 太子ㅣ 구틔여 從티 아니대〈석상24:49ㄱ〉 / 구틔여 伊尹 周公ㅅ 地位예 다 屈原 宋玉 죄 오 줄 아니로다(不必伊周地 皆登屈宋才)「秋日···三十韻」〈두시3:10ㄱ〉.
브즈런호 주331)
브즈런호
부지런함을. 브즈런-+오+. ¶브즈런ᄒᆞ- : 두번 頂 니샤 브즈런호 뵈시니라〈월석18:16ㄱ〉 / 가멸며 貴호 반기 브즈런며(富貴必從勤苦得)「栢學士茅屋」〈두시7:31ㄴ〉.
니저리아 주332)
니저리아
잊겠는가? 닞-+어+리+아. ¶닛- : 부텨 보 미 至極 첫 期約 닛고 즉자히 해 업데여 恭敬야 禮數대 魔王이 닐오 尊者ㅣ 엇뎨 期約애 그르 시니〈월석4:35ㄱ〉 / 너희 무른 어루 나 닛고 사괴욜 디로다(爾輩可忘年)「九月~兄弟」〈두시22:10ㄴ〉.

【한자음】 농월수지과 전가감망근
【언해역】 농사짓는 달에 모름지기 공과(功課)를 알 것이니 농사짓는 집에서 구태여 부지런함을 잊겠는가?
【현대역】 농사철이라 할 일을 알아야 하니 농가에서 감히 부지런함을 잊겠는가?
【구절풀이】 농번기에는 일을 해야 하니 이런 농가에서 언제나 유유히 지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浮生難去食 良會惜淸晨

주333)
뜬. ᄠᅳ-+ㄴ. ¶ᄠᅳ- : 눈 먼 龍도 누니  祥瑞 보고 讚嘆며〈석상3:42ㄱ〉 / 누늘  도 보놋다(張目視寇讐)「送韋···判官」〈두시22:37ㄱ〉.
人生애 바 으리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30ㄴ

와도미
주334)
으리와도미
거리를 둠이. 버ᇰ으리-+왇+오+ㅁ+이. ‘으리왇-’은 ‘버리왇-’으로도 쓰이며, ‘버리왇-’ 표기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으리왇- : 리 입을 으리왇고 더운 오좀을 브라〈구간1:78ㄴ〉 /  번 紫臺 으리왇고 朔漠애 니 가니(一去紫臺連朔漠)「詠懷古跡三首」〈두시3:68ㄱ〉 / 幽明의 逼迫호 으리와도미 어렵도다(難拒幽明迫)「白水···三十韻」〈두시7:26ㄱ〉 / 들에 란 마 사 무를 으리왇도다(喧已去人群)「題栢大兄弟山居屋壁二首」〈두시7:31ㄱ〉 / 다봇 지븻 興을 으리왇디 몯(不阻蓬蓽興)「同李太守~新亭」〈두시14:35ㄱ〉 / 나도  다  으리와도리라(吾亦離殊方)「雙燕」〈두시17:17ㄱ〉 / 곧 將次ㅅ 西ㅅ 녀그로 秦을 으리왇고져 컨마(即將西去秦)「奉贈~二十二韻」〈두시19:3ㄱ〉 / 요 주 누넷 가 아 리시 그 샤 으리와니(近者抉眼去其夫)「可嘆」〈두시25:9ㄴ〉 / 버리왇- : 읏드미 雷雨 버리와다(幹排雷雨猶力爭)「柟木爲風雨所拔歎」〈두시6:41ㄱ〉 / 녀름 지메 나라 버리와다쇼미 머도다(爲農去國賖)「爲農」〈두시7:5ㄴ〉 / 미 뷔여 生禪호 버리왇디 아니놋다(虛空不離禪)「宿贊公房」〈두시9:24ㄱ〉 / 매  드트를 버리와다  도다(鵰鶚離風塵)「奉贈鮮于京兆二十韻」〈두시19:11ㄱ〉.
어려우니 됴 會集 주335)
회집(會集)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이는 것. 집회(集會).
 주336)

맑은. ᄆᆞᆰ-+ᄋᆞᆫ. ¶ᄆᆞᆰ- : 眞實ㅅ 根源이 뷔여 괴외고 性智 고 괴외며〈월석1:月석보 서1ㄱ〉 / 洛陽ㅅ 큰 길헤 時節이 다시 거늘(累日喜得俱東行)「李鄠縣丈人胡馬行」〈두시17:31ㄴ〉.
아 주337)
아
아침을. 아ᄎᆞᆷ+ᄋᆞᆯ. ¶아ᄎᆞᆷ :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13:10ㄴ〉 / 아미어든 錦幪 리 흐렛더라(清旭散錦幪)「徃在」〈중간두시4:20ㄱ〉.
앗기노라 주338)
앗기노라
아끼노라. 앗기-+ᄂᆞ+오+라. ¶앗기- : 그딋 혼 조초 야 뉘읏븐  아니호리라 더니 이제 엇뎨 羅睺羅 앗기다〈석상6:9ㄱ〉 / 모 바사나 앗기논 배 업서(脫身無所愛)「壯遊」〈중간두시2:41ㄴ〉.

【한자음】 부생난거식 양회석청신
【언해역】 정처 없는 인생에 밥을 멀리함이 어려우니 좋은 집회에 맑은 아침을 아까워하노라.
【현대역】 인생살이 양식을 포기할 수 없지만 좋은 모임 맑은 새벽이 소중하구나.
【구절풀이】 양식을 마련해야 하니 논밭을 나가지만 왕 시어와 같이 지낸 나날들을 아쉬워하며 소중히 생각한다는 말이다.

列國兵戈暗 今王德敎 주339)
덕교(德敎)
덕(德)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가르침.

버럿 주340)
버럿
벌려 있는. 벌-+어#잇-+ᄂᆞᆫ. ¶벌- : 두 鐵圍山  어드 해地獄이 버러 잇니라〈월석1:28ㄴ〉 / 森然히 버러 地軸이 올맷고(森羅移地軸)「冬日···帝廟」〈두시6:27ㄴ〉.
나라해 주341)
나라해
나라에. ‘나라ㅎ’는 ‘ㅎ’말음체언이다.
兵戈ㅣ 어두우니 주342)
어두우니
어두우니. 어듭-+으니. ¶어듭- : 길흘 자 부텻긔로 가 저긔 城門애 내라 하 祭던  보고 절다가 忽然히 부텨 向  니즈니 누니 도로 어듭거늘〈석상6:19ㄴ〉 / 기리 모라 河洛이 어듭게 다(長驅河洛昏)「後出塞五首」〈두시5:33ㄱ〉.
이젯 주343)
이젯
지금의. ¶이젯 : 波羅㮈大王 이젯 내 아바님 閱頭檀이시고〈석상11:22ㄱ〉 / 君王 녯 자최 이젯 사미 賞玩니(君王舊跡今人賞)「越王樓歌」〈두시14:1ㄴ〉.
님 德敎ㅣ 주344)
덕교(德敎)ㅣ
덕교(德敎)가. 덕의 가르침이.
淳厚 주345)
순후(淳厚)
돈후(敦厚)하고 질박(質朴)함.
시도다
주346)
순후(淳厚)시도다
순후하시구나. 돈후하시구나. 두텁구나. 淳厚#ᄒᆞ-+시+구+나.

【한자음】 열국병과암 금왕덕교순
【언해역】 온 나라에 병과(兵戈)가 어두우니 지금 임금의 덕의 가르침은 순후하시네.
【현대역】 온 나라가 창과 방패에 어둡지만 지금 군왕은 덕의 가르침이 온화하고 인정이 많으시네.
【구절풀이】 전국이 전란으로 어수선하지만 지금의 임금은 덕의 가르침이 두텁다는 말이다.

要聞除猰㺄 주347)
알유(猰㺄)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고대 전설 속의 맹수 이름. 몸은 소, 얼굴은 사람, 발은 말의 모습을 하고 아이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休作畵麒麟 주348)
기린(麒麟)
고대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운 동물. 기(騏)는 수컷, 인(麟)은 암컷이다. 모양은 사슴과 같고 머리엔 뿔이 있으며 온 몸에 갑옷처럼 비늘이 있고 꼬리는 소꼬리 모양이라고 한다. 기린이 출현하면 세상에 성왕(聖王) 또는 성인(聖人)이 나올 징조로 여겼다.
【猰貐 音摳庾 주349)
음구유(音摳庾)
음은 ‘구유’이다. 알(猰)은 ‘짐승 알’, ‘얼룩개 갈’, ‘개 갈’이다.
니 食人獸名이니 比盜賊니 勉侍御 주350)
시어(侍御)
앞의 주 참조. 관직명(官職名) 시어사(侍御史)의 약칭. 백관을 사찰하고 궐내에서 천자의 조명(詔命)을 받드는 등의 일을 맡았다.
의 除寇로 爲心고 勿志於畵像麟閣 주351)
인각(麟閣)
기린각(麒麟閣). 한무제(漢武帝) 때 지은 것을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흉노족의 내복(來服)을 기념하여 12공신의 상을 모시고 그 명예를 표창했다는 누각이다. 이 12공신은 곽광(霍光), 장안세(張安世), 한증(韓增), 조윤국(趙允國), 위상(魏相), 병길(丙吉), 두연년(杜延年), 유덕(劉德), 양구하(梁丘賀), 소망지(蕭望之), 소무(蘇武) 등이다.
이니라】

猰㺄 더러 료 주352)
더러 료
덜어 버림을. 덜-+어 ᄇᆞ리-+오+ㅁ+ᄋᆞᆯ. ¶덜- : 節은 조디 아니 말란 더러쓸 씨라〈월석1:석보 서4ㄴ〉 /  더러 내야  옛 사 흐터 주어(减米散同舟)「解憂」〈중간두시2:63ㄴ〉.
듣고져 주353)
듣고져
듣고자. 듣-+고져. ¶듣- : 귀예 됴 소리 듣고져 고해 됴 내 맏고져 이베 됴 맛 먹고져〈석상3:22ㄴ〉 / 갌콰 삸 미트로 農器 디유믈 듣고져 願노니(願聞鋒鏑鑄)「秋日···三十韻」〈두시3:10ㄴ〉.
조로이 주354)
조로이
중요하게. 조ᅀᆞ롭-+이. ¶조ᅀᆞ롭- : 조 고로 니건댄〈석상19:42ㄴ〉 / 조외- : 조왼 길헤 어느 나래 긴 戈戟을 말꼬(要路何日罷長戟)「秋風二首」〈두시10:27ㄴ〉 / 조로외- : 조로왼 길히  놉고 깁도다(要路亦高深)「西閣二首」〈두시14:20ㄴ〉 / 조ᅀᆞ로이 : 죠 기러 스싀로 세 번 디내 닐구믈 조로이 호라(紙長要自三過讀)「暮秋~侍御」〈두시19:20ㄴ〉 / 조ᅀᅩ로이 : 큰 지비 다가 기울면 梁棟 오져 조로이 너기리니(大厦如傾要梁棟)「古栢行」〈두시18:13ㄱ〉 / 조ᅀᆞᄅᆞ외- : 새려 아논 사미 조외다 야 니디 마롤디니(莫道新知要)「登白馬潭」〈두시13:31ㄱ〉.
너기고 주355)
너기고
여기고. 너기-+고. ¶너기-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2ㄴ〉 / 걔 너기샤 나라 니 아 마  아바 願 일우과라 시고〈석상3:25ㄱ〉 / 宮闈예 才人 야 드류리라 너기디 아니시니라(宮闈不擬選才人)「承聞···二首」〈두시5:23ㄱ〉.
麒麟에 주356)
기린(麒麟)에
기린각에.
그리요 주357)
그리요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리-+오+ㅁ+ᄋᆞᆯ. ¶그리- : 후엣 사미 그리메 그리고 일홈을 례이라 니라〈삼강(동경) 열:9ㄴ〉 / 진이 그리여 雲臺예 잇도다(圖畫在雲臺)「述古三首」〈두시3:57ㄱ〉 / 그림 : 畵 그림 그릴 씨라〈석상24:10ㄴ〉 / 자최 이 다매 그림 그린 後ㅣ로다(跡是雕牆後)「九成宮」〈두시6:3ㄱ〉.
짓고져 주358)
짓고져
짓고자. 짓-+고져. ¶짓- : 須達이 王舍城으로셔 舍衛國에 올  길헤 二十 里예  亭舍옴 짓게 야〈석상6:23ㄱ〉 / 蛟龍 기피셔 거슯주믈 짓고(豺虎亂雄猜)「秋日···三十韻」〈두시3:8ㄴ〉.
디 말라

【한자음】 요문제알유 휴작화기린
【언해역】 알유(猰㺄) 덜어 버림을 듣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기린(麒麟)을 그리는 것을 하고자 하지 말라.
【현대역】 알유 같은 도적을 없앴다는 소식을 듣고 중요히 여기고 가짜 기린 그림처럼 행하지 말라.【알유(猰㺄)는 음이 ‘구유’이니 사람을 먹는 짐승의 이름으로 도적에 비유한 것이다. 시어(侍御)가 도적을 제거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 노력하고자 한 것이고 기린각에 초상을 그리려는 뜻은 아니다.】
【구절풀이】 왕 시어가 올바르게 처신할 것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洗眼看輕薄 주359)
경박(輕薄)
말이나 행동이 경솔하고 천박함.
虛懷任屈伸【輕薄은 交道 주360)
교도(交道)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하는 도리.
之無終者ㅣ라】

누늘 주361)
누늘
눈을.
시서셔 주362)
시서셔
씻어서. 싯-+어+셔. 15세기에는 ‘싯-’만 쓰이다가 근대국어부터 ‘씻-’이 쓰이며, 각자병서와 합용병서의 혼동으로 ‘-’ 표기도 보인다. 사동사와 피동사는 ‘싯기-’로 같은 형태이다. ¶싯- : 옷 며 발 싯고 니거늘〈석상11:25ㄱ〉 / 東海 기우려 乾坤 싯고져 노라(欲傾東海洗乾坤)「追酬···見寄」〈두시11:7ㄱ〉 / 싯기-(사동사) : 그  王과 上座와 比丘히 香湯로 菩提樹를 싯기니〈석상24:48ㄱ〉 / 믈 데여 내 발 싯기고(煖湯濯我足)「彭衙行」〈중간두시1:13ㄱ〉 / 싯기-(피동사) : 溫水 冷水로 左右에 리와 九龍이 모다 싯기니〈월천8ㄱ〉 / 불휘 믌 미틔 싯기여 그처디니 엇뎨 하 디시리오(根斷泉源豈天意)「柟木爲風雨所拔歎」〈두시6:41ㄱ〉 / - : 악명을 고져 아니랴마〈서궁28ㄴ〉 / 씻- : 내  씻쟈〈청노4:13ㄴ〉.
輕薄 사 보고  뷔워셔 주363)
뷔워셔
비워서. 뷔-+우++어+셔. ¶뷔- : 그저긔 比丘히  爲頭 座 뷔워 아니 거늘 王이 무른대 耶舍ㅣ 對答호〈석상24:43ㄱ〉 / 치 뷔면 붓그러울가 저허(囊空恐羞澀)「空囊」〈두시3:25ㄱ〉.
구브며 펴믈 주364)
구브며 펴믈
굽으며 폄을. 굽신거리거나 그렇게 하지 않음을. 굽-+으며 펴-+ㅁ+을. ‘굽다’는 자타동 양용동사의 타동사 용법이다. ¶굽-(타동사) : 諸天이 곳 비터니 無憂樹ㅅ 가지 절로 구버 오나 夫人이 올 소로 가질 자샤〈월석2:36ㄱ〉 / 올로 州縣이 가온  구버 니놋다(獨屈州縣卑)「奉送魏六丈佑少府之交廣」〈두시22:42ㄴ〉 / 굽-(자동사) 나못가지 구버 와  光 리더라(樹為曲枝蔭太子身)〈석상3:15ㄴ〉 / 諸根이 어둡고 鈍며 뎌르고 더럽고 손 고 발 절며 눈 멀오 귀 먹고 등 구버 닐온 마리 이셔도(諸根이 暗鈍며 矬陋攣躄며 盲聾背傴야 有所言說이라도)〈법화2:167ㄱ〉 / 펴-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2ㄴ〉 /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講殿闢書帷)「夔府書懷四十韻」〈두시3:4ㄱ〉.
므던히 주365)
므던히
무던히. 가볍게. 소홀하게. 므던-+이. 15세기 국어의 ‘므던히’는 ‘소홀하게’의 뜻이다. ¶므던히 : 네 뎌 나라 므던히 너겨 사오나 너 들 내디 말라〈석상20:36ㄴ〉 /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3:9ㄴ〉 /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百年從萬事)「遣悶」〈두시3:13ㄱ〉 / 되 겨지븐 烽燧 므던히 너기고(羌女輕烽燧)「寓目」〈두시3:23ㄴ〉 / 므더니 : 慢  므더니 너길 씨니〈석상9:13ㄴ〉 / 수를 자바셔 오 저주믈 므더니 너기고(把酒從衣濕)「徐步」〈두시3:27ㄴ〉 / 므던- : 王이 니샤 그러야도 므던니 이제 어듸 잇니고〈석상11:28ㄴ〉.
너기노라 주366)
너기노라
여기노라. 너기-+ᄂᆞ+오+라.

【한자음】 세안간경박 허회임굴신
【언해역】 눈을 씻어서 경박한 사람을 보고 마음을 비워 굽으며 폄을 무던히 여기네.
【현대역】 눈을 씻고 경박한 세태 보며 마음 비워 굽히고 펴는 것을 가벼이 여기는구나.【경박(輕薄)은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하는 도가 끝까지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구절풀이】 왕 시어에게 세상을 직시하고 마음을 비워 순리에 따르자는 말이다.

莫令膠漆 주367)
교칠(膠漆)
아교[膠]와 옻칠[漆]. 아교와 옻을 한데 섞으면 매우 견고하게 결합되기 때문에 교분이 두터운 우정, 매우 친밀한 우정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한나라 때 사람인 뇌의와 진중의 우정이 매우 두터웠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膠)와 칠(漆)을 섞으면 그것이 굳게 합하지만 그래도 뇌의(雷義)와 진중(陳重) 두 사람의 우정만큼 굳지는 못하다.”라고 하였다.
萬古 주368)
만고(萬古)
오랜 세월 동안.
雷陳 주369)
뇌진(雷陳)
한나라 때 사람인 뇌의(雷義)와 진중(陳重).
【漢ㅅ 陳重 주370)
진중(陳重)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친구인 뇌의(雷義)와의 우정으로 유명하다. 일찍이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을 때 이를 뇌의에게 양보하였고, 그 후 뇌의도 무재(茂才)로 천거되어 이를 진중에게 양보했으나 관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체하였다고 한다.
이 與雷義 주371)
뇌의(雷義)
중국 후한의 문신. 무재과에 급제하여 그 자격을 진중에게 양보하였으나 자사(刺使)가 들어주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체하고 벼슬을 받지 않으므로 삼부(三府)에서 두 사람 모두 벼슬을 주었다.
로 交善이어 膠漆이 自爲堅이나 不如雷與陳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31ㄱ

라 니라 此 甫之望侍御ㅣ 至矣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膠漆ㅅ 로 주372)
로
땅으로. ᄯᅡㅎ+ᄋᆞ로.
여 주373)
여
하여금. ᄒᆞ-+이+어. ‘-로 ᄒᆡ여’는 현대국어의 ‘-로 하여금’으로 발전하였다.
萬古애 雷陳을 重히 너기게 디 말라 주374)
너기게 디 말라
여기게 하지 말라. 너기-+게 ᄒᆞ-+디 말-+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막령교칠지 만고중뇌진
【언해역】 아교와 옻칠의 땅으로 하여금 만고에 뇌의(雷儀)와 진중(陳重)을 중하게 여기게 하지 말라.
【현대역】 아교와 칠처럼 굳은 우의의 땅에서 뇌의와 진중만 받들도록 하지 맙시다.【한나라 사람인 진중과 뇌의가 좋은 관계이었으므로 교(膠)와 칠(漆)을 섞어 그것이 굳게 합해져도 뇌의와 진중과의 우정만큼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이는 두보가 왕 시어에 대한 바람이 지극한 것이다.】
【구절풀이】 아교와 옻을 섞어 굳혀도 뇌의와 진중의 우정만큼 굳은 것이 아닌 것처럼 언제까지나 두보와 왕 시어의 우정이 굳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말이다.
Ⓒ 역자 | 김성주 / 2019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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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증왕이십사시어설사십운(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 : 시어(侍御) 왕설(王契)에게 드리는 40운. 764년 봄, 성도로 돌아올 때 지었다. 왕설은 경조인(京兆人)으로 엄무가 검남절도사를 할 때 부하로 근무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어’는 임금을 모시는 사람을 일컫는다.
주002)
왕왕(往往) : 가끔. 때때로.
주003)
표표(飄飄) : 방랑하는 모양. 이리저리 떠도는 모습.
주004)
므리므리예 : 왕왕(往往). 가끔. 때때로. 므리+므리+예. ¶므리므리예 : 아 데 디내디 아니혼 거슬 므리므리예 기 夢寐예 得니(往往애 煥然得於夢寐니)〈능엄9:56ㄴ〉 / 醉中에도 므리므리예 逃去야 坐禪호 놋다(醉中往往愛逃禪)「飮中八仙歌」〈두시15:41ㄱ〉.
주005)
서르 : 서로. ‘서르’는 『두시언해』에서 ‘상(相), 호(互)’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상’의 번역으로 쓰였다. 역사적으로 ‘서르〉서로’의 변화는 ‘일로, 새로, 젼로’ 와 같이 ‘-로’로 끝나는 부사에 이끌려 생겨난 일종의 유추 현상의 결과이다. ¶서르 : 相 서르 논 디라〈훈언:1ㄴ〉 / 서르 :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훈언1ㄴ〉 / 一生애 서르 뎻노니(生涯相汩沒)「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4ㄴ〉.
주006)
보나 : 보더라도. 보-+나. 15세기 국어의 연결어미 ‘-나’는 역접 관계보다는 양보의 의미를 가질 때가 많다. 여기서도 선행하는 ‘비록’에 호응하여 ‘-나’가 쓰였다. ¶-나 :  文殊師利여 뎌 藥師瑠璃光如來菩薩ㅅ 道理 行 時節에 發샨 큰 願과 뎌 부텻 나라햇 功德莊嚴을 내  劫이며  劫이 남록 닐어도 몯 다 니르리어니와 그러나 뎌 부텻 히 雜말 업시 淸淨고 겨지비 업스며 惡趣ㅣ며 受苦 소리 업고〈석상9:10ㄴ〉 / 此 言吐藩이 雖入寇야 相傳檄書나 松州 회유解圍之日리라「警急」〈두시5:11ㄴ〉.
주007)
표표(飄飄)히 : 팔랑팔랑 정처 없이 나부끼는 모습으로.
주008)
뇨 : 다님을. -#니--+오+ㅁ+ᄋᆞᆯ. 『두시언해』에는 ‘니-, 니-’의 용례가 있다. ¶니- : 太子ㅣ 뫼히며 므리며 디 아니야 니실〈석상3:35ㄴ〉 /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萍泛無休日)「奉贈太···二十韻」〈두시19:15ㄴ〉 / 니- : 商 두루 녀  씨오〈석상20:25ㄱ〉 / 楚ㅅ 두들게 녀셔 將次ㅅ 늘구니(楚岸行將老)「大歲日」〈두시11:1ㄱ〉.
주009)
이 모 : 이 몸을.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주010)
붓그리노라 :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愧]++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붓그리-’는 동사로서, 파생형용사 ‘붓그럽-’과 다시 여기서 ‘-어 -’가 붙어 동사로 파생된 ‘붓그려-’가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일련의 동사들은 현대국어에서는 모두 소멸되고 오히려 ‘업’ 파생형용사에 ‘-어하-’가 붙어 파생된 동사인 ‘부끄러워하다’만 남은 경우가 많다. 참조. 붓그려-. 붓그럽-. 붓그러워-.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44ㄱ〉 / 몸 許요 雙南金에 가뵤 붓그리노라(許身媿比雙南金)「題省中院壁」〈두시6:14ㄱ〉 / 붓그럽- : 비록 큰 허므리 업슨 오 안로 매 붓그럽디 아니니여〈내훈3:27ㄴ〉 / 右ㅅ녁 히 붓그러온 나 幸호 하니라(右地恧多幸)「故右···九齡」〈두시24:41ㄴ〉 / 붓그려- :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3:8ㄱ〉 / 늘근 원두리 기리 붓그려노라(老圃永爲恥)「種萵茞幷序」〈두시16:67ㄱ〉.
주011)
풍진(風塵) : 세상에서 일어나는 힘겨운 일. 병란(兵亂).
주012)
불(紱) : 인끈. 고관(高官)이 허리에 두르는 띠.
주013)
면(冕) : 예관(禮冠). 고관(高官) 머리에 쓰는 관(冠).
주014)
므던히 : 가볍게. 소홀하게. 무던히. 므던-+이. 15세기 국어의 ‘므던히’는 ‘소홀하게’의 뜻이다. 참조. 므더니. ¶므던히 : 네 뎌 나라 므던히 너겨 사오나 너 들 내디 말라〈석상20:36ㄴ〉 /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3:9ㄴ〉 /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百年從萬事)「遣悶」〈두시3:13ㄱ〉 / 되 겨지븐 烽燧 므던히 너기고(羌女輕烽燧)「寓目」〈두시3:23ㄴ〉 / 므더니 : 慢  므더니 너길 씨니〈석상9:13ㄴ〉 / 나모 지 아 므더니 너기노라(斤斧任樵童)「遣悶奉呈嚴公二十韻」〈두시19:9ㄴ〉.
주015)
너규메 : 너김에. 너기-+우+ㅁ+에. ¶너기-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2ㄴ〉 /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석상3:22ㄱ〉 / (-고져 너기-) :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14:30ㄱ〉 / (-라 너기-) : 릿 東녀긔셔 使君을 기들우리라 다 너기다 다(惣擬橋東待使君)「李司~都廻호라」〈두시15:36ㄴ〉 / (怪異히 너기) : 怒야 우르니란 熊罷 怪異히 너기노라(號怒怪熊羆)「偶題」〈두시16:10ㄴ〉 / (히 너기-) : 老人星 외야슈 히 너기노라(甘作老人星)「泊松滋江亭」〈두시14:38ㄴ〉.
주016)
관계(關係)호미 : 관계함이. 關係#ᄒᆞ-+오+ㅁ+이.
주017)
오직 : 오직. 원문의 ‘단(但)’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에서 ‘오직’은 주로 ‘단(但), 유(唯), 지(只), 지(祗), 유(惟)’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단(但)’은 ‘오직’ 이외에 ‘갓’으로도 번역되고, ‘유(唯)’의 번역은 ‘오직 ~’으로 되기도 한다. ¶오직(但) : 알로 올아가니 오직 묏귿 니로다(前登但山椒)〈중간두시1:34ㄴ〉 / 오직(唯) : 뷘 핸 오직 새 보고(空村唯見鳥)「東屯北崦」〈두시3:43ㄱ〉 / 오직(只) : 오직 네게 거리디 아니호미 이시리로다(只有不關渠)「戲作俳諧體遣悶二首」〈두시3:46ㄴ〉 / 오직(惟) : 오직 졋 먹 孩子옷 잇니(惟有乳下孫)「石壕吏」〈중간두시4:8ㄱ〉 / 오직(祗) : 오직 殘破 鄴城을 날 아니야셔 得리로소니(祗殘鄴城不日得)「洗兵馬」〈중간두시4:16ㄱ〉 / 참조. 갓(但) : 엇디 갓 歲月ㅣ 졈을 이리오(豈但歲月暮)「赤谷」〈중간두시1:16ㄱ〉.
주018)
이 풍진(風塵)을 : 이 바람과 먼지를. 즉 이 전쟁의 혼란함을.
주019)
피(避)카래니라 : 피(避)하거라이니라. 避#-+거+오+라+이+니+라. ‘카’는 ‘거’와 ‘오’의 결합으로 인한 형태이다. ‘오’가 있으므로 ‘避-’ 문장의 주어는 ‘두보’이다. 즉 두보가 관직을 피한 것은 관직을 경시한 것이 아니라 난을 피하기 위하였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의 협주인 ‘甫ㅣ 言我之不仕 非輕官爵이라 但以避兵亂也ㅣ라’도 이 해석이 옳음을 뒷받침한다. ‘카’는 거성이다.
주020)
성교(星橋) : 칠성교(七星橋). 현재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에 있다.
주021)
삼이(三移) : 세 번 옮기다. 봄이 세 번 돌아왔다. 즉, 삼 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주022)
두병(斗柄) : 북두칠성 중 자루에 해당되는 세 개의 별. 세 개의 별 이름은 형성(衡星), 개양성(開陽星), 요광성(搖光星)이다. 지구의 자전에 따라 두병(斗柄)이 가리키는 방향은 계속 바뀐다. 두병이 동쪽을 가리키면 계절은 봄이다.
주023)
성교(星橋)ㅅ 바셔 : 칠성교의 밤에서.
주024)
여희유니 : 여의니. 이별하니. 여희-+오+니. ‘오’는 주어가 1인칭임을 가리킨다. ‘초췌하다, 마르다’의 뜻인 ‘여의-’와 같이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전반기에 간행된 관판 한글문헌에서는 ‘ㄹ’ 및 서술격조사(i)와 j계 하향 이중모음[ㅐ, ㅒ, ㅔ, ㅖ, ㅙ, ㅚ, ㅞ, ㅟ, ㅢ 등] 아래에서 ‘ㄱ’으로 시작하는 조사(과, 고 등)나 어미(-게, -고 등)를 후음 ‘ㅇ’[ɦ]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희-’는 ‘마르다’의 뜻인 ‘여위-’와는 다른 단어이다. ¶여희- : 貪欲 여희여 조 몸 사 하히니〈석상3:16ㄱ〉 / 이 여희요매 黃泉이 도다(此別間黃泉)「哭李尙書之芳」〈두시24:46ㄴ〉.
주025)
횟도 : 횟도는. 횟돌-+ᄂᆞᆫ. ‘횟돌-’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타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횟돌-(자동사) : 輪은 술위니 輪廻 횟돌 씨라〈월석1:월인석보 서4ㄱ〉 /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故繞池邉樹)「羌村三首」〈중간두시2:66ㄴ〉 / 횟돌-(타동사 용법) : 崐崙山과 崆峒山ㅅ 그티 머리 횟돌아 보니(回首如不隔)「白水···三十韻」〈두시7:24ㄴ〉 / 피티 우러 虛空애 솟고 셴 머리 횟도로노라(泣血迸空回白頭)「白帝城最高樓」〈두시14:9ㄱ〉 / 손 안잿   횟도놋다(回舟坐客時)「觀作橋成고~還呈李司馬노라」〈두시15:35ㄴ〉 / 氣運이 西戎을 믈리조며 北狄을 횟도라 가게 놋다(氣却西戎廻北狄)「惜別···判官」〈두시17:32ㄴ〉 / 杜曲애 애 횟돌아 글탈노라(回腸杜曲煎)「秋日···一百韻」〈두시20:4ㄱ〉 / 巫峽엣  믌겨른 天地 횟도로 혀 도다(巫峽秋濤天地回)「送李···公幕」〈두시23:30ㄴ〉 / 목  病 야 三更애 셴 머리 횟돌아 라다니(病渴三更回白首)「示獠奴阿段」〈두시25:16ㄱ〉 / 채 횟돌아 새 기세 들어 리 오노라(迴鞭急鳥棲)「白露」〈두시25:16ㄴ〉 / 溪壑이 날 爲야   횟돌아 뵈다(溪壑爲我回春姿)「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25:29ㄱ〉.
주026)
보미 : 봄[春]이.
주027)
옴도다 : 옮도다. 옮는구나. 옮-+도+다. ¶옮- : 文殊師利여 내 이 이셔 년 듸 옮디 아니호리니〈석상11:29ㄴ〉 / 다봇 옮 호매 시르미 悄悄니(轉蓬憂悄悄)「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6ㄴ〉 / 옮기- : 주를 다  옮겨 터 되더니〈석상6:36ㄴ〉 /  비옌 가야 橙子 옮겨 심고라(細雨更移橙)「遣意二首」〈두시3:25ㄴ-26ㄱ〉.
주028)
적벽(赤壁) : 호북성(湖北省) 무창(武昌)의 적벽. 중국 후한(後漢) 208년에 조조(曹操)가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전투해 패한 적벽대전의 장소이다.
주029)
황건(黃巾) : 후한(後漢) 말기에 농민들이 장각(張角, 미상 ~ 184년)을 수령으로 일어난 난당(亂黨). 머리에 황건(黃巾)을 썼으므로,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다.
주030)
조조(曹操) : 한(漢)나라 헌제(獻帝) 때의 승상. 자는 맹덕(孟德, 154~220)이다. 한나라 패국 초(沛國 譙) 사람. 후에 위(魏)나라를 세웠고 아들 비(丕)가 문제(文帝)가 되어 무제(武帝)라 추존했다. 권모술수에 능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승상으로서 정권을 전단(專斷)했으며 위왕(魏王)에 봉해졌으나, 위나라를 세워 촉한(蜀漢), 오(吳)와 더불어 중국의 삼국시대(三國時代)를 열었다.
주031)
주유(周瑜) : 삼국시대 오(吳)나라 여강(廬江) 서현(舒縣) 사람. 자는 공근(公瑾, 175년 ~ 210년)이다. 문무(文武)에 두루 능했다. 젊어서 손책(孫策)과 친구 사이였는데, 손책을 따라 정벌에 나서 건위중랑장(建威中郞將)이 되었다. 손책을 도와 강동(江東)에 손씨 정권을 세웠다. 손책이 죽은 뒤 장소(張昭)와 함께 손책의 동생 손권(孫權)을 도와 전부대도독(前部大都督)에 올랐다. 오나라 사람들이 주랑(周郞)이라 불렀다. 건안(建安) 13년(208) 조조(曹操)가 남하하자 유비(劉備)와 협력하여 조조의 군대를 적벽(赤壁)에서 격파했다. 이어 승세를 몰아 조인(曹仁)을 공격했다. 편장군(偏將軍)에 오르고 남군태수(南郡太守)를 관할했다. 유비가 형주(荊州)에서 세력을 확대할 것을 염려하여 사천(四川) 지방을 공략하라고 진언했지만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병사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곡조에 문제가 있으면 주랑이 고개를 돌린다(曲有誤 周郞顧)”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주032)
동관(潼關) : 섬서성 동관현(潼關縣)에 있는 관(關)의 이름. 이곳을 병마부원수 가서한(哥舒翰)이 지키고 있다가 안녹산(安祿山)의 군대와 싸워서 대패하자, 그의 수하들이 가서한을 체포하여 적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현종(玄宗)은 장안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고,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러 양국충(楊國忠)과 양귀비(楊貴妃) 등이 죽음을 당하였다.
주033)
양경(兩京) : 낙양(洛陽)과 장안(長安). 서한(西漢)과 동한(東漢)을 이르며 한나라를 일컫는다. 전한(前漢)의 수도가 장안이었고, 후한(後漢)의 수도가 낙양(洛陽)이었으므로 양경(兩京)이라 말한 것이다.
주034)
장각(張角) : 황건적(黃巾賊) 난의 지도자. 후한(後漢) 때 거록(鉅鹿) 사람으로, 부적과 주술(呪術)로 병을 치료하며 태평도(太平道)라고 칭한 다음 신도들을 규합하여 머리에 황색 두건을 쓰고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당시 이들을 황건적(黃巾賊)이라 칭하였는데, 뒤에 관군의 토벌을 받고 궤멸되었다.
주035)
브왜요미 : 부서짐에. 패망함에. 브왜-+오+ㅁ+이. 원문의 ‘敗亡’의 번역이다. ‘브왜-’는 『두시언해』에만 나오는 단어로 ‘브와이-(브와요매)’로도 쓰였으며, 주로 ‘喪亂, 凋喪, 喪敗, 沮喪, 敗亡’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브왜- : 녯 時節ㅅ 브왜요 다 可히 알리로소니(古時喪亂皆可知)「清明」〈두시11:13ㄱ〉 / 마 驊騮로 여 氣運을 브왜에 리아(忍使驊騮氣凋喪)「丹靑引贈曹將軍霸」〈두시16:27ㄴ〉 / 볼 사미 뫼티 이셔 비치 브왜니(觀者如山色沮喪)「觀公孫···並序」〈두시16:47ㄱ-ㄴ〉 / 時節이 비록 브왜요매 브터 이시나(時雖屬喪亂)「鄭典設自施州歸」〈두시19:28ㄱ〉 / 히미 서르 브왜니(筋力交凋喪)「寄劉···四十韻」〈두시20:24ㄴ〉 / 브왜야 나 숨 쉬요 니라(凋喪盡餘喘)「故秘···源明」〈두시24:35ㄴ〉 / 브ᅀᅳ와이- : 브와요매 올로 길헤 나가노라(喪亂獨前途)「哭台州鄭司戶蘇少監」〈두시24:58ㄴ〉.
주036)
디 : 같지. 갇-+-+디. 15세기 국어의 ‘갇-/-’은 ‘-와’는 물론 ‘-이’를 지배하기도 한다. 15세기 국어세서는 ‘-’으로도 쓰이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석상3:17ㄱ〉 / 나랏 社稷ㅣ 이제 이 니(國之社稷今若是)「徒步歸行」〈중간두시1:10ㄴ〉 / -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4ㄱ〉 /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不復有顏鮑)「遣懷」〈중간두시2:47ㄴ〉.
주037)
아니코 : 않고. 아니#-+고.
주038)
쳐 뇨 : 쫓기어 다님은. ᄧᅩ치-+어 ᄃᆞᆮ니-+오+ㅁ+ᄋᆞᆫ. ‘ᄧᅩ치-’는 ‘ᄧᅩᆾ-’의 피동사이다. ‘ᄃᆞᆮ니-’의 예는 위의 항목을 참조할 것. ¶치- : 그제  龍이 金翅鳥의게 쳐 즉재 袈裟 바기예 이여  조차 더니〈월석25:30ㄱ〉 / 胡騎ㅣ 치이다 호 듣논 요니(似聞胡騎走)「遠遊」〈두시3:27ㄴ〉 / - : 아기 보니 버미 차 오거늘 브르노라 다가 치마옛 아기 디오〈월석10:24ㄴ〉 / 衣冠 사ㅣ 쵸 다시 볼가 노라(重見衣冠走)〈중간두시1:40ㄴ〉.
주039)
황건(黃巾)을 : 황건적을.
주040)
위(爲)얘니라 : 때문이니라. ‘위(爲)’는 기본적으로 ‘위하다’의 뜻과 ‘때문이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예로 쓰였다.
주041)
소쇄(蕭灑) : 맑고 깨끗함. 인품이 맑아 속기(俗氣)가 없음을 뜻한다. 소쇄(瀟灑)와 같다.
주042)
왕 시어(王侍御) : 시어사(侍御史)의 직책을 맡고 있는 왕설(王契)을 말한다.
주043)
은사(隱士) : 세속(世俗)을 피해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
주044)
그듸의 : 그대의. 그듸+의. ‘그듸’는 ‘너’보다 상대방을 조금 높여 대우하는 2인칭 대명사이다. 15세기에 ‘그듸, 그, 그디’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가 같이 쓰였다. ¶그듸 : 耶輸는 겨지비라 法을 모 즐급 드리워 온 들 몯 러 리니 그듸 가아 아라듣게 니르라〈석상6:6ㄴ〉 / 오직 그듸 醉야셔 기 어러온 客을 랑야셔(唯吾醉愛清狂客)「遣悶···曹長」〈두시3:48ㄱ〉 / 그ᄃᆡ : 그 爲야 波羅蜜 서 지시니라〈금삼3:57ㄴ〉 / 그 徐卿의 두 아리 나  奇異호 보디 아니다(君不見徐卿二子生絕奇)「徐卿二子歌」〈두시8:24ㄱ〉.
주045)
가 : 감은. 떠나감은. 가-[去]+ㅁ+ᄋᆞᆫ. ‘가’는 상성이다.
주046)
모 : 자못[頗]. ‘모’는 『두시언해』에서 ‘’로도 2회 쓰였는데 『두시언해』 중간본에서는 모두 ‘모’라 수정되었다. 원시의 ‘何, 頗, 殊’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 전체에서 ‘何 〉 頗 〉 殊’의 순서로 번역어로 쓰였다. 『두시언해』 중간본의 영인본 중 경인문화사 영인본의 권2 40ㄴ에는 ‘자못’으로 되어 있는데 원본 확인이 필요하지만 다른 중간본의 영인본에는 ‘모’로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붓으로 가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학언해』(1586)에 ‘’(제2), 『첩해신어』(1676)에 ‘믓’(5)이 쓰인다. ¶ : 號令이  녯 어딘 사 風이 잇도다(號令頗有前賢風)「冬狩行」〈두시5:50ㄱ-ㄴ〉 / 胡羯이  難호미 하니(胡羯何多難)「村夜」〈두시7:6ㄴ〉 / 못(가필) : 輕裘 肥馬로 못 어러이 뇨라(裘馬頗清狂)「壯遊」〈중간두시2:40ㄴ〉 / 모 : 須菩提ㅣ 부텻긔 오 世尊하 모 衆生이 이 말 章句 듣고 實 信 내리 이시리가 몯리가〈금강32ㄱ〉 / 모  이우로 슬허도다(頗亦恨枯槁)「遣興五首」〈두시3:58ㄱ〉 / 모미 尊고 道理 모 놉고(身尊道何高)「述古三首」〈두시3:56ㄴ〉 / 高岺이 모 날호야 건니(高岑殊緩步)「寄彭···三十韻」〈두시20:36ㄱ〉.
주047)
내의 : 나의. 나+ㅣ+의. ‘ㅣ’와 ‘의’는 모두 속격조사인데, 1인칭 대명사 ‘나’가 속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내’의 형태로 속격으로 쓰이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는 ‘내’가 1인칭 대명사로 인식되어 다시 속격조사 ‘의’가 결합된 형태이다. ‘내의’는 항상 내포문의 주어가 속격으로 실현될 때 쓰인다. ¶내의 : 엇뎨 이 내의 眞性인  알리고〈능엄2:35ㄴ〉 / 히 내의 녀 보내니(閭里送我行)「後出塞五首」〈두시5:30ㄱ〉.
주048)
수머슈믄 : 숨어 있음은. 숨-+어#이시-+우+ㅁ+은. ¶숨- : 져재  저기어든 대 두드리여 숨니라〈석상11:21ㄱ〉 / 수므락 나락  바횟  냇도다(隱見巖姿露)「雨」〈두시12:18ㄴ〉.
주049)
은거(隱居)니와 : 은거하거니와. 隱居#ᄒᆞ-+니+와.
주050)
달오라 : 다르구나. 다-+오+라. ¶다ᄅᆞ- : 中國에 달아 與文字로 不相流通(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훈언1ㄴ〉 / 그 젯 이리 녯 님그믜 敗亂과 다니라(事與古先別)〈중간두시1:8ㄴ〉.
주051)
안(鴈) : 서신을 전하는 새인 기러기. 기러기가 서신을 전한 다음과 같은 고사에 근거하여 한 말이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 소무(蘇武)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잡혀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뒤 소제(昭帝)가 즉위하자 흉노가 한나라와 화친하였다. 한나라 사신이 소무를 보내 달라고 하자, 흉노는 소무가 죽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상혜(常惠)가 사신에게 방법을 일러주기를 “천자가 상림원에서 활을 쏘아 기러기를 잡았는데, ‘소무가 어느 택중(澤中)에 있다.’라고 쓴 백서(帛書)가 그 발에 매여 있었다.”라는 내용으로 선우(單于)에게 말하라고 하자, 그 말대로 하여 소무를 데리고 돌아오게 되었다.
주052)
순(鶉) : 메추리. 머리가 작고 꽁지가 짧으며 똥똥한 새이다. 이 새는 꽁지 부분에 털이 없어 마치 옷이 해진 것 같은 것이 특징이다.
주053)
서신(書信)이 : 서신이. 편지가.
주054)
이러슈 : 되어 있으되. 이루었으되. 일-+어#이시-+오+ᄃᆡ.
주055)
디나갈 : 지나가는. 디나-#가-+ㄹ. 『두시언해』에는 ‘디나가-’ 이외에 ‘디너가-’도 쓰였다. ¶디나가- : 淨居天이 沙門이 외야 錫杖 잡고 바리 받고 알로 디나가거늘〈석상3:19ㄴ〉 / 네의 險  디나가 사과 와 잇비 호 아로라(知子曆險人馬勞)「久雨···不至」〈두시5:36ㄱ-ㄴ〉 / 디너가- : 四時ㅣ 디너가미 내 매 버므럿니(四序嬰我懷)「晚登瀼上堂」〈두시14:4ㄱ〉.
주056)
그려기 : 기러기. ‘그려기’는 『두시언해』에서 ‘그력’으로도 쓰였다. 『두시언해』에 자주 나오는 새 이름으로는 ‘가마괴[烏], 가치[鵲], 가막가치[烏鵲], 그려기[鴈], 며기[鷗], [雞], 쇠로기[鳶](솔개), 믌[鸂鶒](물닭), 봉황[鳳], 알이새(꾀꼬리), 옫바미[鵩](올빼미), 올히/올[鴨], 졔비[燕], 해야로비/하야로비/야로비[黃鸝]’ 등이 있다. ¶그려기 : 太子ㅣ 本國에셔  그려기 치샤 더브르샤 노니더시니〈월석22:17ㄱ〉 / 자 그려기 두려운 몰애예 모댓도다(宿鴈聚圓沙)「遣意二首」〈두시3:26ㄱ〉 / 그력 : 그력 爲鴈〈훈해57〉 / 그력 올히로 여 갓가온 이우즐 어즈러이디 아니호리라(不敎鵝鴨惱比隣)「將赴~五首」〈두시21:3ㄴ〉.
주057)
업고 : 없고.
주058)
니 : 낡으니. ᄂᆞᆰ-+ᄋᆞ니. ¶ᄂᆞᆰ- : 堂閣이 서거 며 담과 괘 믈어디며 긷 불휘 서거〈법화2:56ㄴ〉 / 거츤 防戍 城에 돐 비치 니(荒戍之城石色古)「錦樹行」〈두시25:42ㄱ〉.
주059)
모라기 : 메추라기. ‘헤어진 옷’에 대한 구절이 『두시언해』 권3의 「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거믄 几 重重히 얼겟고 모라기 론  오 寸寸히 횃도다(烏几重重縛 鶉衣寸寸針)’에 나오는데 이 부분의 주석에 ‘순의(鶉衣)는 헤어진 옷을 꿰맨 것이 마치 메추라기가 달린 듯하니 가난함을 말한다(鶉衣 弊衣結如懸鶉이니 言其貧也ㅣ라)’라 되어 있다. ¶모라기 : 鷸 모라기 암 鶉 모라기 슌〈훈몽 상9ㄴ〉.
주060)
론 : 달린. -+오+ㄴ. ‘ᄃᆞᆯ-’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ᄃᆞᆯ- : 琉璃예 안해 寶月 론 야(琉璃예 內縣寶月ᄐᆞᆺ야)〈능엄8:9ㄴ〉 / 도혀 지브로 여 갓로 론 도다(翻令室倒懸)「聞斛斯六官未歸」〈두시22:12ㄱ〉.
주061)
호미 : 듯함이. ᄃᆞᆺ#ᄒᆞ-+오+ㅁ+이. ¶ᄒᆞ- : 稠禪師ㅣ 火光定에 드니 그 지비 븓 호미  이 類라〈능엄5:74ㄴ〉 /  번 地獄애 디여 無數劫에 니르호미 엇뎨 無量壽ㅣ 아니리오〈법화5:133ㄱ〉 / 眞實로 醉야 어린 호미 잇노라(實有醉如愚)「徐步」〈두시3:28ㄱ〉.
주062)
잇도다 : 있도다. 있구나.
주063)
공구(恐懼) : 두렵고 송구함.
주064)
행장(行裝) : 여장(旅裝). 여행이나 길을 갈 때 쓰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차림에 필요한 것들이다.
주065)
영빙(伶俜) : 갈 곳이 없다.
주066)
저허셔 : 두려워서. 젛-+어+셔. ¶젛- : 저허  업스니라(因其怖謂無心故로)〈능엄1:88ㄴ〉 / 네 모 리 가라 사미 너 害가 전노라〈육조상:31ㄴ〉 / 서르 맛나 슬후믈 너무 가 저허(相逢恐恨過)「秋笛」〈두시16:51ㄴ〉.
주067)
녀 : 가는. 녀-[行]+. ¶녀- : 太子ㅣ 아 예 八百里 녀샤 雪山 苦行林에 가시니라〈석상3:30ㄴ〉 / 나 녀 셔 믌애 왯거(我僕猶木末)「北征」〈중간두시1:4ㄱ-ㄴ〉.
주068)
연장(緣裝) : 여장을. 행장을.
주069)
조 : 자주. ¶조 : 太子ㅣ 조 王 出家야지다 거시〈석상3:23ㄱ〉 /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數見銘鍾鼎)「秋日···三十韻」〈두시3:10ㄴ〉.
주070)
영빙(伶俜)야 : 갈 곳이 없어. 伶俜#ᄒᆞ-+야.
주071)
병(病)야 : 병들어.
주072)
조라 : 자주다. ‘ᄌᆞ조’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주073)
새뱃 : 새벽의. 새배+ㅅ. ¶새배 : 새배 省며 나죄 定야〈영가 상:16ㄱ〉 / 바 짓디 아니니 우므리 새배 어렛고(不爨井晨凍)「空囊」〈두시3:25ㄱ〉.
주074)
곳고리 : 꾀꼬리는. 곳고리+ᄂᆞᆫ. ¶곳고리 :  뎜 누니  기 남긔 믓 곳고리로다〈백련16ㄴ〉 / 곳고리 와 안자 서르 저주믈 시름고(黃鶯並坐交愁濕)「遣悶戲呈路十九曹長」〈두시3:47ㄴ〉.
주075)
믈 : 눈물. 『두시언해』 중간본에는 ‘누ᇇ믈’과 함께 ‘눈믈’도 쓰였다. ¶믈 : 그 므른 摩耶夫人ㅅ 믈와 四衆의 므를 다 니르니〈석상23:28ㄴ〉 / 나 엇디 구틔여 므를 기리 흘리리오(何必淚長流)「去蜀」〈중간두시2:1ㄴ〉 / 눈믈 : 본 사미 다 눈믈 디더니〈삼강 동경孝23ㄱ〉 / 눈믈 리고 님금 가 겨신  호니(揮涕戀行在)「北征」〈중간두시1:2ㄱ〉.
주076)
흐르게 호 : 흐르게 함을. 흐르-+게 ᄒᆞ-+오+ㅁ+ᄋᆞᆯ. ‘-게 -’는 사동형식이다. ¶-게 - : 미처 라가 바다 알피 아니 디게 시니라〈석상3:13ㄱ〉 / 셰샤 甚히 크게 샷다(樹立甚宏達)「北征」〈중간두시1:10ㄱ〉.
주077)
바지로이 : 솜씨 좋게. 교묘하게. 바지#롭-+이(부사화파생접미사). ‘바지로이’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인다. ‘바지’는 ‘장인(匠人), 공인(工人)’을 의미하였으며, 여기에 형용사 파생접미사 ‘-롭-’이 결합하여 ‘바지롭다’라는 형용사가 파생되었고, 다시 부사 파생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바지로이’가 형성되었다. 참고. 바지다. 바지. ¶바지로이 : 何劉 沈謝 힘도 바지로이 몯리니(何劉沈謝力未工)「蘇端薛復筵簡薛華醉歌」〈두시15:39ㄴ〉 /  字 바지로이 더니라(辨眼工小字)「送顧八分文學適洪吉州」〈두시16:17ㄴ〉 / 바지롭- :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 뉘 能히 부들 혀 實에 맛게 베퍼 펴리오(若非匠手ㅣ면 孰能抽毫야 稱實發揚이리오)〈금삼 서:13ㄱ〉 / 바지 : 匠 바지라〈법화 서:21ㄴ〉.工 바지 공〈광천40ㄱ〉.
주078)
 : 달은. ᄃᆞᆯ[月]+ᄋᆞᆫ.
주079)
슬케 호 : 슬퍼하게 함을. 슳-+게 ᄒᆞ-+오+ㅁ+ᄋᆞᆯ.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슳-’에 형용사파생접미사 ‘-브-’가 결합되면 ‘슬프다’가 되며, 여기에 동사파생접미사 ‘-어-’가 결합되면 ‘슬퍼다’가 된다. 현대국어의 ‘슬퍼하다’는 ‘슬퍼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원래 파생의 근원이 되었던 ‘슳다’는 현대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슳- : 王이 더욱 슬허 니샤〈석상3:21ㄴ〉 / 忽然히 드로니 슬허 셜워시 詔書ㅣ 聖明朝애  리도다(忽聞哀痛詔 又下聖明朝)「收京三首」〈두시5:7ㄴ〉 / 슬허-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석상6:38ㄱ〉 / 도라와 비루소 내 슬허노라(歸來始自憐)「喜達行在所三首」〈두시5:6ㄱ〉 / 슬프- : 뎌 말도 슬프실〈월석8:81ㄱ〉 / 슬프다 둘히  잇디 몯야 다시 辛苦 同티 몯리로다(哀哉兩决絕 不復同苦辛)「前出塞九首」〈두시5:27ㄴ〉 / 슬퍼- : 일쳬 히 아  길어셔 슬퍼호모로 심을 언니〈장수67ㄴ〉.
주080)
아라 다 : 알아서 한다. 알아서 하네. 알-+아 ᄒᆞ-+ᄂᆞ+다.
주081)
 : 낯을. 얼굴을. 즉 서로 만난다는 말이다.
주082)
마조 : 마주. 맞-[的]+오. ‘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마조 : 즉자히 니러 竹園으로 오더니 부톄 마조 나아 마샤 서르 고마야 드르샤 說法시니〈석상6:12ㄴ〉 / 서르 마조 보아 바 자 일우니(相逢成夜宿)「宿贊公房」〈두시9:24ㄱ〉.
주083)
보와셔 : 보아서. 보-+와+셔.
주084)
거머호 : 검음을. 검-+어#ᄒᆞ-+오+ㅁ+ᄋᆞᆯ.
주085)
슬코 : 슬퍼하고. 슳-+고. <참고>‘슳-’의 예문은 위의 주석을 참고할 것.
주086)
슬픈 : 슬픈. 슬프-+은. ‘슬프-’는 ‘슳-’에 형용사파생접미사가 결합되어 형성된 파생형용사이다.
주087)
 : 마음을. ᄆᆞᅀᆞᆷ+ᄋᆞᆯ.
주088)
머거셔 : 먹어서. 머금어서. 먹-+어+셔.
주089)
슈고로이 : 수고롭게. 슈고#롭-+이(부사화파생접미사). ¶슈고로이 : 모시 닑다가 슬 부모 나 슈고로이 나시니라 〈삼강(동경) 효:15ㄴ〉 / 父母ㅣ여 날 나호믈 슈고로이 샷다〈번소9:27ㄱ〉 / 슈고ᄒᆞ- : 인이 아 이슬 니 엇뎨 이리도록 슈고다〈삼강(동경) 충:6ㄴ〉 / 세히  길 녀매 져므니 슈고니라〈번노 상:34ㄴ〉 / 슈고 : 이 드샤 이 슈고 면케 이쇼셔〈장수8ㄱ〉 / 엇디 스싀로 슈고 이리 뇨〈번소9:79ㄱ〉.
주090)
뇨 : 다님을. ᄃᆞᆮ니-+오+ㅁ+ᄋᆞᆯ. <참고>‘ᄃᆞᆮ니-’와 ‘ᄃᆞᆫ니-’의 예는 위의 주를 참고할 것.
주091)
니노라 : 이르노라. 말하노라. 말하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니- : 如來 녜 우리 아리라 니시니다〈월석13:32〉 / 제 닐오 臣은 이 酒中엣 仙人이로라 니라〈두시15:41〉.
주092)
접여(接輿) :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이자 광인(狂人). 본명은 육통(陸通, 미상)이고 자는 접여(接輿)이다. 소왕(昭王) 때 나라에 법도가 없음을 보고 미친 척하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아 초광접여(楚狂接輿)라고도 한다.
주093)
왕찬(王粲) :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신(文臣)이자 학자(學者). 산양(山陽) 고평(高平)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 177~217)이다. 아들 유종(劉琮)을 조조(曹操)에게 귀순시키고 시중(侍中)으로서 제도개혁에 진력하였다.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에 뛰어나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주094)
형주(荊州) : 옛날 구주(九州)의 하나. 장강의 북쪽에 있다. 한나라 때 13자사부(刺史部)의 하나가 되었다. 관할했던 지역은 대략 지금의 상악(湘鄂) 2성(省)과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 등 네 주(州)의 일부분이었다. 한나라 말 이후 관할 지역이 점차 줄어들었다. 예계검월(豫桂黔粵)은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이다.
주095)
형형(荊衡) : 형주(荊州)와 형산(衡山)이다. 형주는 호북성 남장현 서쪽에 있고, 형산은 오악 가운데 하나인 남악으로 호남성에 있다.
주096)
드럿고 : 들었고. 들어가 있고.
주097)
도라가디 : 돌아가지.
주098)
화계(花溪) : 완화계(浣花溪).
주099)
금성(錦城) : 성도(成都)의 별칭.
주100)
완화계(浣花溪) : 사천성 성도에 있는 시내. 두보의 초당이 있던 촉 땅 성도 금강 지류이다.
주101)
성도(成都) : 중국 사천성의 성도(省都)이다. 안녹산의 난 때 현종이 피난을 갔던 곳이며 두보도 진주(秦州, 현재의 천수)에서 동곡(同谷)을 거쳐 성도에 초당을 짓고 살았다.
주102)
금강(錦江) : 민강(岷江)의 지류의 하나. 사천(四川) 성도(成都) 평원(平原)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촉(蜀) 땅 사람이 비단을 짜서 이 강물에 빨면 비단 빛깔이 선명하고 고와지는데, 다른 강물에 빨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도를 가리킨다.
주103)
금강(錦江)ㅅ  : 금강의 마을이. 즉 성도를 가리킨다.
주104)
단사(丹砂) : 도가(道家)에서 단약(丹藥)을 만들 때 쓰는 붉은빛 흙. 복용하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고 한다.
주105)
단사(丹砂)ㅅ 브비 : 단사의 부엌이. 즉 단사를 만들던 부엌을 가리킨다. ¶브 : 브 爲竈〈훈해57〉 / 蔗漿이 브븨셔 가니 金盌이 언 니(蔗漿歸廚金盌凍)「入奏行···侍御」〈두시8:22ㄱ〉 / 브억 : 竈 브억 조〈신증 상:23ㄴ〉.
주106)
잔파(殘破)니 : 파괴되어 잔재만 남아 있으니.
주107)
화계(花溪)예 : 완화계에.
주108)
낛주를 : 낚싯줄을. 낛+줄+을. ‘낛-’은 ‘나ᇄ-’으로도 쓰였다. ‘낛’ 자체가 명사로도 쓰였으며 ‘낛-’과 관련된 단어로는 ‘낛줄’ 이외에 ‘낛밥’이 있다. ‘낛’은 원래 동사 ‘낛-’의 어간임과 동시에 명사로 쓰이는 단어이었다. 현대국어 ‘낚시’는 후에 ‘낛’에 명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형성된 단어이다. ‘낛’과 같은 종류의 단어로는 ‘신’ 등이 있다. ¶낛줄 : 고티 보니 아래로 낛줄와 미느리 여나 다 헌  업더라〈구간6:16ㄴ〉 / 갠 하해 낛주를 다리고져 고파 너기노라(強擬晴天理釣絲)「中丞···奉答二絕」〈두시12:35ㄴ〉 / 江漢애 낛줄 드리워 고기 낛니 잇더라 니디 말라(勿云江漢有垂綸)「奉寄章十侍御」〈두시21:13ㄱ〉 / 낛 : 낛 爲釣〈훈해49〉 / 鱗衆의 낙 놀라 江瀛에 드러 미틔 다 니〈영가 하:77ㄴ〉 / 져믄 아 바 두드려 고기 낫 낙 다(稚子敲針作釣鉤)「江村」〈두시7:4ㄱ〉 / 나ᇄ- : 이제 낛가 예 기 야 도라 가도다.〈금삼5:26ㄴ〉 / 錦水에셔 고기 낛구믈 時로 와 보(時觀錦水釣)「贈左僕射 鄭國公嚴武ㅣ라」〈두시24:22ㄱ〉.
주109)
어더 : 얻어.
주110)
소갈(消渴) : 병명(病名). 목이 마르며 소변이 자꾸 나오는 병으로 현재의 당뇨병(糖尿病)이다.
주111)
소갈(消渴)ㅅ 병(病) 야 : 소갈병을 앓아.
주112)
슬노니 : 슬퍼하니. 슳-+ᄂᆞ+오+니. ‘오’는 1인칭 일치 선어말어미이다.
주113)
늣거 : 늦게야. 늙어서야. 늦-+거+ᅀᅡ. ‘’는 보조사로 조사, 체언, 어말어미 뒤에 두루 통합된다. 16세기 전반부터는 ‘ㅿ’의 소멸로 인해 ‘’가 쓰이지 않으면서 ‘아/야/사’ 등으로 반영되었고 『두시언해』의 〈중간본〉은 〈초간본〉의 모든 ‘ㅿ’이 ‘ㅇ’으로 바뀌어 있다. 〈중간본〉에는 간혹 ‘ㅿ’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으나 이것은 판각의 문제이지 실제로 ‘ㅿ’이 쓰인 것은 아니다. ‘’는 후대 문헌에서 ‘도이아’〈발심29〉, ‘늣게야’〈박통사, 하14〉, 오래거사〈염불보권38〉의 형태로 쓰였다. ¶-ᅀᅡ : 仙人 이리 굴근 結이 업거니와〈석상3:36ㄱ〉 / 鍾聲管絃이 宮徵 迷失리로다(金管迷宮徵)「聽楊氏歌」〈두시16:49ㄴ〉.
주114)
니러 : 일어나. 닐-+어. ¶닐- : 董卓이 갈  둘어셔라 고 닐오〈삼강(런던)열:9〉 / 浮生앳 功名 마 말며 마로리니 게으른 혜아료〈중간두시2:10ㄴ〉 도혀 져기 이셔라(浮名尋已已 嬾計𨚫區區)「大曆~十韻이라」〈중간두시2:10ㄱ-ㄴ〉.
주115)
소삭(蕭索) : 쓸쓸한 모양.
주116)
소삭(蕭索)니 : 쓸쓸하니.
주117)
누를 : 누구를.
주118)
친근(親近)리오 : 친근하겠는가? 親近#ᄒᆞ-+리+오.
주119)
주사(周史) : 주(周)나라의 사관(史官). 여기서는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주120)
한신(漢臣) : 한나라의 신하.
주121)
노자(老子) : 춘추시대 말기 초(楚)나라 고현(苦縣) 사람.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며 노담(老聃, ?~?)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이이(李耳)고, 자는 백양(伯陽)이다.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를 지냈다. 공자가 젊었을 때 낙양으로 찾아가 예(禮)에 대해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위자화 청정자정(無爲自化 淸靜自正)’을 주장했다.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한탄하여 은퇴할 결심으로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가 은거하려고 했는데, 도중에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 2편으로 된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이 책을 『노자』라 하고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르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주122)
주(周) : 고대 중국의 왕조(서기전11세기경~서기전256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다음으로 등장한 왕조이며 하(夏)·상(商)·주(周) 세 나라를 통틀어 삼대(三代)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123)
주하사(柱下史) : 전각(殿閣)의 기둥 아래에서 문서를 관장하던 관원(官員). 주(周)나라 때 노자가 이 관직을 맡았기 때문에 후에는 노자의 별칭으로도 쓰인다.
주124)
시어(侍御) : 관직명 시어사(侍御史)의 약칭. 백관을 사찰하고 궐내에서 천자의 조명(詔命)을 받드는 등의 일을 맡았다.
주125)
장건(張騫) : ?~서기전114. 전한 한중(漢中) 성고(成固) 사람. 한나라 무제(武帝) 건원(建元) 2년(서기전139) 흉노(匈奴)를 견제하기 위해 서방의 대월지(大月氏)와의 동맹을 촉진하고자 서역으로 가다가 흉노에게 잡혀 1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고, 이후 대완(大宛)과 강거(康居)를 거쳐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3년 만인 원삭(元朔) 2년(서기전127) 돌아왔다. 인도(印度) 지역과의 통로를 개척하고 동서의 교통과 문화 교류의 길을 여는데 크게 공헌했다. 6년(서기전123) 교위(校尉)로 대장군 위청(衛靑)과 함께 흉노를 공격해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원수(元狩) 2년(서기전121) 위위(衛尉)가 되어 이광(李廣)과 함께 우북평(右北平)으로 나가 흉노를 공격했는데, 실기(失期)하여 참형을 당해야 했지만 속환(贖還)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2년 뒤 다시 중랑장(中郞將)으로 오손(烏孫)에 사신을 갔다가 부사(副使)를 대완(大宛)과 강거(康居) 등지에 파견하여 통호(通好)했는데, 이때부터 서역(西域)과 통하기 시작했다. 관직은 대행(大行)까지 올랐다.
주126)
승사사(乘槎事) : 뗏목을 탄 일. 장건이 사신이 되어 출행(出行)한 일을 말한다. ‘두시’에 자주 언급되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주127)
토번(吐藩) : 중국의 서남쪽에 있었던 나라. 오늘날의 서장(西藏), 티베트이다. 계통은 서강(西羌)에서 나왔다. 당나라 때 토번의 국왕이던 섭종롱찬(葉宗弄贊)은 인도와 교통하고 당 태종과 화호(和好)하여 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크게 번창하였으나, 그 후 세력이 떨치지 못하였다.
주128)
기에 : 기둥에. 기도ᇰ+에. 『두시언해』에는 ‘기도ᇰ애’의 표기도 있다. ¶기 : 두 習이 서르 븓 젼로 鐵狀과 구리 기 여러 이리 잇니라〈능엄8:80ㄱ〉 /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登橋柱必題)「水宿···群公」〈두시3:21ㄴ〉.
주129)
굽스럿니 : 엎드려 있는 이를. 굽슬-+어#잇-+ᄂᆞ+ㄴ#이+ᄅᆞᆯ. ‘굽슬-’은 『삼강행실도』의 예를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굽슬- : 仲義의 이 라가아 아미 劉氏려 닐어늘 劉氏 믄득 가아 울며 굽스러 닐오(仲義弟馬兒 走報劉氏 劉遽徃救之 涕泣伏地告於兵曰)〈삼강(런던)열:28ㄱ〉 / 雲安縣에 벼개예 굽스러셔(伏枕雲安縣)「移居夔州郭」〈두시7:10ㄴ〉.
주130)
듣노니 : 들으니. 듣-+ᄂᆞ+오+니.
주131)
들굴 : 뗏목. ‘들굴’은 ‘떼, 뗏목, 등걸, 떨기’ 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일반적으로 ‘나뭇가지가 뭉쳐 있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로 보인다. 뗏목[査], 떨기[叢].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특히 ‘들굴’과 ‘장건(張騫)’이 관련된 시상이 『두시언해』 권5에서도 확인된다. ¶들굴 : 들굴  사미 消息이 그츠니(乘槎斷消息)「有感五首」〈두시5:13ㄴ〉 / 時節ㅅ 菊花ㅣ 나모 들굴 서리예 브어뎟도다(時菊碎榛叢)「苦雨奉寄隴西公兼呈王徵士」〈두시12:17ㄴ-18ㄱ〉 / 내 衰老야  니 들굴와 토니(吾衰同泛梗)「臨邑舍弟書ㅣ~用寬其意노라」〈두시13:30ㄱ〉 / 눈 잇 두들게 들굴 梅花ㅣ 펫고(雪岸叢梅發)「陪裴使君登岳陽樓」〈두시14:14ㄴ〉 / 들굴 타 다  무러 하해 올아 가리라(乘槎與問津)「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16:7ㄴ〉 / 즈믄 들굴와 萬 들구리 가지 지즐워 얫도다(千朶萬朶壓枝低)「江畔獨步尋花七絕句」〈두시18:7ㄴ〉.
주132)
 : 탄. ᄐᆞ-+ㄴ. 15세기 국어의 ‘다’는 ‘탈 것을 타다, 받다, 오르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3:6ㄴ〉 /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2:21ㄴ〉 / -(받다) : 집 우 龍이 御床 向니 寶位 실 느지르샷다〈용가100〉 /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1:7ㄱ〉 / -(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25:49ㄴ〉 / -(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9:108ㄴ〉.
주133)
한신(漢臣)이 : 한나라의 신하가.
주134)
도다 : 같도다. 같구나. ᄀᆞᆮ#ᄒᆞ-+도+다. ¶ᄀᆞᆮᄒᆞ- : 브를 헤혀 바랫  더품 어둠 도다.〈금삼4:28ㄴ〉 / 뉘 엿귀 다 니뇨 로미 나 도다(誰謂荼苦甘如薺)「寄狄明府博濟」〈두시8:18ㄱ〉.
주135)
원(鴛) : 원앙의 수컷. 원앙(鴛鴦)은 오릿과에 속하는 물새로 물오리보다 작고 자웅(雌雄)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이 사는 특징이 있다.
주136)
홍(鴻) : 큰기러기. 물새의 한 가지로 기러기와 비슷한 모양이나 크기가 더 큰 특징이 있다.
주137)
용호(龍虎) : 용과 호랑이. 여기서는 왕시어(王侍御)를 비유한 말이다.
주138)
시어(侍御) : 시어사(侍御史).
주139)
압순(狎馴) : 업신여기다.
주140)
친압(親狎) : 사이가 아무 허물없이 가까움.
주141)
쉽디 아니고 : 쉽지 않고. 쉽-+디 아니#ᄒᆞ-+고.
주142)
질드류미 : 길들임이. 질#드리-+우+ㅁ+이. ‘질드리-’는 ‘질들-’의 사동사이다. ¶질드리- : 調御는 질드릴 씨오〈월석9:11ㄴ〉 / 되 아 駱駝 질드리놋다(胡兒制駱駝)「寓目」〈두시3:23ㄴ〉 / 질들- : 調御는 질드릴 씨오〈월석9:11ㄴ〉 / 蕭望之의 을 오직 서르 질들에 도다(蕭雉只相馴)「奉贈蕭二十使君」〈두시20:39ㄴ〉.
주143)
맛티 아니도다 : 마땅하지 않구나. 맛당#ᄒᆞ-+디 아니#ᄒᆞ-+도+다. ¶맛- : 舍衛國애 도라와 精舍 지 터흘 어드니 맛  업고 오직 太子祇陁 東山이 토 平며 나모도 盛더니〈석상6:23ㄴ〉 / 되의 목수믄 그 能히 오라리아 님 紀綱 그추미 맛티 아니커니녀(胡命其能久 皇綱未宜絕)「北征」〈중간두시1:8ㄴ〉 /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眞宜法斗魁)「秋日···三十韻」〈두시3:10ㄴ〉.
주144)
개(盖) : 덮개. ‘개(蓋)’의 속자(俗字)이다. 풀을 엮어서 만든 덮개를 나타내는 말이다.
주145)
화주(華州) : 지금의 섬서성 위남시 화주구(區). 행정명이 바뀌기 전에는 화현(華縣)으로 불렸다. 두보는 47세이던 758년(건원 원년)에 전략을 잘못 짜서 많은 군사를 잃은 방관(房琯)을 변호하다가 좌습유(左拾遺)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이곳에서 사공참군(司功參軍)이란 미관말직으로 근무했었다.
주146)
사공(司功) : 사공참군(司功參軍). 지방 장관을 보좌하는 지방관으로 미관말직에 해당한다.
주147)
추양전(鄒陽傳) : 「추양열전(鄒陽列傳)」.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본기(本記)」(12권), 「표(表)」(10권), 「서(書)」(8권), 「세가(世家)」(30권), 「열전(列傳)」(70권)의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전의 글 중의 하나이다. 열전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한 개인 전기이다. 추양전은 중국 전한 문제~경제 때의 문인이다. 애초에 섬기던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반란 계획을 알고 간(諫)하였으나 실패하자 양왕(梁王) 유무(劉武)에게로 귀순하였으며, 한때 무고를 받아 처형될 뻔하였으나 글을 올려 양왕을 감복시켰다.
주148)
경개(傾蓋)예 여고(如故)ㅣ라 :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에 나오는 말. “서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젊어서부터 늙도록 사귀었어도 항상 새로 만난 것처럼 서먹하고[白頭如新]. 서로 마음을 이해하면 잠시 만나도 오래된 친구처럼 정이 깊다[傾蓋如故]”라는 말이다.
주149)
시어(侍御) : 시어사(侍御史).
주150)
곳가 : 고깔을. 곳갈+ᄋᆞᆯ.
주151)
걸오 오니 : 걸고 오니. 걸-+고 오-+니. ‘고깔을 걸다’는 말은 ‘관직을 그만두다’라는 뜻이다.
주152)
사괴요 : 사귐은. 사괴-+오+ㅁ+ᄋᆞᆫ. ¶사괴- : 提婆達多ㅣ 阿闍世王과 사괴더니〈월석22:69ㄴ〉 / 사괴 사 氣槪ㅅ 가온 잇도다(交親氣槩中)「投贈···二十韻」〈두시5:43ㄱ〉.
주153)
개(蓋) : 덮개를. 蓋+ᄅᆞᆯ.
주154)
기우료매 : 기울임에. 기우리-+오+ㅁ+애. ‘기우리-’는 ‘기울-’의 사동사이다. ¶기우리- : 이슘과 업숨과 둘히 업수 서르 기우리 業이 그초 니시니〈능엄9:37ㄱ〉 / 아야라  盞 기우리면 곧 사미 醉니라(纔傾一盞卽醺人)「撥悶」〈두시3:32ㄱ〉 / 기울- : 須彌山도 어루 기울의 려니와〈석상9:27ㄱ〉 /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回回偃飛盖)「揚旗」〈두시5:48ㄱ〉.
주155)
새 : 새로이. 새롭게. 새로. 15세기 국어의 ‘새’는 부사와 명사로 쓰였으나, 『두시언해』에서는 부사로 쓰일 때 주로 ‘새려’가 쓰였다. ¶새(부사) : 沙彌 새 出家 사미니〈석상6:2ㄱ〉 / 녜 아니도 호미 어렵고 새 아니도 마 그기 疎薄다(舊識能爲態 新知已暗䟽)「戲作俳諧體遣悶二首」〈두시3:46ㄱ〉 / 새(명사) : 헌 옷도 새 리니〈월석8:100ㄴ〉 / 새려 : 새려 므렛 軒檻 더 라 낛 드리우메 供進고(新添水檻供垂釣)「江上···短述」〈두시3:31ㄴ〉.
주156)
디 : 같지. ᄀᆞᆮᄒᆞ-+디. 15세기 국어의 ‘갇다/다’는 ‘-와’는 물론 ‘-이’를 지배하기도 한다.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석상3:17ㄱ〉 / 나랏 社稷ㅣ 이제 이 니 武로 禍亂 安定호믄 公ㅣ 아니라 뉘리오(國之社稷今若是 武定禍亂非公誰)「徒步歸行」〈중간두시1:10ㄴ〉 / -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4ㄱ〉 /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  오 荊州 巫峽에 와 누엇노라(不復有顏鮑 繫舟卧荊巫)「遣懷」〈중간두시2:47ㄴ〉.
주157)
아니도다 : 않구나. 아니#ᄒᆞ-+도+다.
주158)
녜로브터 오매 : 옛날부터. 유래(由來)로. 원시의 ‘由來’를 번역한 것으로 ‘從來’의 번역으로도 쓰인다. 이 표현은 『두시언해』에만 있다. ¶녜로부터 오매 : 녜로브터 오매 𦀇濟 조(古來經濟才)「上水遣懷」〈중간두시2:49ㄴ〉 / 녜로브터 오매 德을 積畜 家門이로다(由來積德門)「贈比部蕭郞中十兄」〈두시8:64ㄱ〉 / 녜로브터 오매 王氏 謝氏 郞官이니라(從來王謝郞)「送大理封主簿五郞이 ~ 遂停니라」〈두시8:70ㄱ〉 / 녜로브터 오매 녯 일 논 디 하 잇노니(從來多古意)「登兗州城樓」〈두시14:5ㄱ〉 / 녜로브터 오매 巫峽엣 므리오(由來巫峽水)「小園」〈두시15:14ㄱ〉 / 녜로브터 오매 原憲이 가난도다(從來原憲貧)「奉贈蕭二十使君」〈두시20:41ㄱ-ㄴ〉 / 과 바와 녜로브터 오매 相合고(河海由來合)「移居公安敬贈衛大郞」〈두시20:53ㄴ〉 / 고기란 丙穴에 녜로브터 오매 아다온  아노니(魚知丙穴由來美)「將赴~五首」〈두시21:3ㄱ〉 / 녜로브터 오매 귓것 마라 가 사(從來禦魑魅)「有懷···司戶」〈두시21:38ㄴ〉 / 녜로브터 오매 貔虎  士卒은(由來貔虎士)「復愁十一首」〈두시25:25ㄴ〉.
주159)
마조맨 : 맞음엔. 맞음에는. 맞-+오+ㅁ+애+ㄴ. ‘맞-’은 사동사로 ‘마초-’, 이것의 강세형인 ‘마초ᄧᅳ-’ 등이 있다. ¶맞-(알맞다) : 契 마 씨니 理예 맛고 機예 마 씨라〈월석8:24ㄱ〉 / 미 마 昭融을 뮈우놋다(契合動昭融)「投贈···二十韻」〈두시5:42ㄴ-43ㄱ〉 / 마초- :  비 時節에 마초 야 녀르미 외야〈석상9:34ㄱ〉 / 시우레 마초 업더뎌 프른 뫼 노포미 리오디 몯도다(應弦不礙蒼山高)「久雨期王將軍不至」〈두시5:36ㄴ〉 / 마초ᄧᅳ- : 詳考 子細히 마초 알 씨라〈석상9:38ㄴ〉 / 證信은 마초 信케  시오〈원각 상1-2:23ㄱ〉 / 열  墳典 마초니라(十載考墳典)「故秘···源明」〈두시24:32ㄱ〉.
주160)
진실(眞實)호 : 진실함을. 眞實#ᄒᆞ-+오+ㅁ+ᄋᆞᆯ.
주161)
취(取)니라 : 취하니라. 취하네. 取#ᄒᆞ-+ᄂᆞ+니+라.
주162)
허랑(虛浪) : 말이나 행동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함.
주163)
허랑(虛浪)히 : 허랑하게. 허황되게.
주164)
니 : 다니는. -#니-+. ¶니- :  長常 므거 거슬 지여 길흘 조차 니다가〈월석9:33ㄴ〉 / 남기  니 호매 便安 히 업스니(漂梗無安地)「征夫」〈두시5:13ㄱ〉 / 니- : 太子ㅣ 뫼히며 므리며 디 아니야 니실〈석상3:35ㄴ〉 / 鴛鷺ㅅ 行列에 니던 이 갓 붓그리노라(空慙鴛鷺行)「暮春···五首」〈두시7:15ㄴ〉.
주165)
자최예 : 자취에. 자최+예. ¶자최 : 法華ㅣ 마 正位예 들어시니 엇뎨 자최예 거뇨〈월석13:58ㄴ〉 / 凱歌 獻호미 날로 자최 니니(獻凱日繼踵)「後出塞五首」〈두시5:32ㄱ〉.
주166)
주그며 사로 : 죽으며 사는 것을. 죽-+으며 살-+오+ㅁ+ᄋᆞᆯ. 명사형 ‘옴’은 ‘죽으며 살-’ 전체를 지배한다. 즉 구성은 ‘[주그며 살]옴+ᄋᆞᆯ’이다. 『두시언해』 권8의 「遣興二首」의 둘째 수에도 ‘주그며 사로 아디 몯거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不知死與生 何况道路長)’와 같이 동일한 표현이 있다.
주167)
가지로 호니 : 함께 하니. ᄒᆞᆫ가지+로 ᄒᆞ-+오+니.
주168)
붓그률 : 부끄러워하는. 붓그리-+우+ㄹ. ‘붓그리-’는 동사로서, 파생형용사 ‘붓그럽-’과 다시 여기서 ‘-어 -’가 붙어 동사로 파생된 ‘붓그려-’가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일련의 동사들은 현대국어에서는 모두 소멸되고 오히려 ‘업’ 파생형용사에 ‘-어하-’가 붙어 파생된 동사인 ‘부끄러워하다’만 남은 경우가 많다.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44ㄱ〉 / 몸 許요 雙南金에 가뵤 붓그리노라(許身媿比雙南金)「題省中院壁」〈두시6:14ㄱ〉 / 붓그럽- : 비록 큰 허므리 업슨 오 안로 매 붓그럽디 아니니여〈내훈3:27ㄴ〉 / 右ㅅ녁 히 붓그러온 나 幸호 하니라(右地恧多幸)「故右···九齡」〈두시24:41ㄴ〉 / 붓그려- :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3:8ㄱ〉 / 늘근 원두리 기리 붓그려노라(老圃永爲恥)「種萵茞幷序」〈두시16:67ㄱ〉.
주169)
업수라 : 없구나. 없네. 없-+오+라. ‘오’는 1인칭 일치 선어말어미이다.
주170)
자(蔗) : 사탕수수.
주171)
우(芋) : 토란.
주172)
균(筠) : 대나무.
주173)
자(蔗)와 우(芋)와 : 사탕수수와 토란을. 15세기 국어의 명사구 연결에서는 접속조사 ‘-와/과’가 마지막 명사에도 연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주174)
행(幸)혀 : 다행히. 幸+혀. 15세기 국어에서 ‘幸혀’는 ‘혀’로 자주 표기되었으며, 비슷하게 ‘한자어+혀’의 구성을 가지는 단어로 ‘全혀/젼혀’가 있다. ¶幸혀 : 이젯 사로 보건댄 幸혀 正法 듣오미 아 因이 업디 아니니〈법화3:165ㄴ〉 / 내 囊中이 조호 幸혀 깃거노라(幸喜囊中淨)「早發」〈중간두시1:50ㄱ〉 / 혀 : 天台ㅣ 니샤 혀 내 人天에 樂 受니〈영가 상50ㄴ〉 / 혀  가온 수리 잇니(賴有杯中物)「又一首」〈두시13:26ㄱ〉 / 全혀 : 오직 이 無ㆆ 字ㅣ 全혀 귿고히 업소 져기 귿고히 잇니라〈몽산52ㄴ〉 / 一柱ㅣ 全혀 이 갓가오니(一柱全應近)「泊松滋江亭」〈두시14:38ㄱ〉 / 젼혀 : 내 므스거시 不足료 젼혀 이 東山 남기 됴 노니논 히라〈석상6:24ㄱ〉.
주175)
저여곰 : 각각. 제각각. 제각기. 저여+곰. 참조. 제여곰. ¶저여곰 : 네 사미 저여곰 자바 힘 부러 귀예와 고해 들에 야〈구간1:60ㄴ〉 / 出며 處호매 저여곰 힘 디니라(出處各努力)「別贊上人」〈두시9:17ㄴ〉 / 제여곰 : 舍利弗이 그제 說法니 제여곰 前生애 닷곤 因緣으로 須陁洹 得리도 이시며〈석상6:34ㄴ〉 / 鳥雀 바 제여곰 자리예 가거(鳥雀夜各歸)「成都府」〈중간두시1:38ㄱ〉.
주176)
대(對)요라 : 대한다. 대하네. 마주하네. 對#ᄒᆞ-+오+라.
주177)
추반(麤飯) : 거친 밥. 쌀, 조, 수수 등을 깨끗하게 속꺼풀을 벗기지 않은 쌀이나 잡곡(雜穀) 쌀로 지은 밥을 말한다.
주178)
사오나온 : 못난. 미천한. 저급한. 거친. 사오납-[劣]+오+ㄴ. 초기 정음 문헌에서는 ‘사오나’으로 표기된다. 『능엄경언해』(1461)의 ‘ㅸ⇒오/우/ㅇ’로 교체되기 전에는 ‘사오나’식으로 표기함.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사오납- : 劣은 사오나 씨라〈월석17:57〉 / (나쁘다) :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3:2ㄱ〉 / 二乘이 미 사오나와 이 法 이긔디 몯호 가비시니〈법화2:62ㄴ〉 / 王生이 내의 비치 사오나오 怪異히 너기니(王生怪我顏色惡)「病後···贈歌」〈두시3:50ㄱ〉.
주179)
바 : 밥은.
주180)
녯나 : 옛날을. 녜+ㅅ+날+ᄋᆞᆯ. 원문의 ‘他日’의 번역이다. ¶녯날 : 녯나랫 몰로미오 낤 아로미니〈금삼4:48ㄱ〉 / 녯나래 기픈 宮의 살어든(豈思昔日居深宮)「杜鵑行」〈두시17:6ㄴ〉.
주181)
브텃고 : 의지하여 있고. 의거하여 있고. 븥-+어#잇-+고. ¶븥-(仗) : 길히 窮迫야 버들 븓노라(途窮仗友生)「客夜」〈중간두시2:28ㄱ〉 / (著) : 프른 매 주으려 사게 븓니라(蒼鷹飢著人)〈금삼 서安···待命二首」〈두시5:53ㄱ〉 / (憑) :  節制使ㅅ 尊嚴을 븓고져 놋다(亦憑節制尊)「客居」〈두시6:49ㄴ〉 / (依) : 本來 스싀로 迦葉을 븓노니(本自依迦葉)「秋日···一百韻」〈두시20:13ㄱ〉 / (傍) : 모미 주글 니언 權要 븓니라(殺身傍權要)「三韻三篇」〈두시25:15ㄴ〉 / (火) : 셔울히 다시 블 븓디 아니야(京都不再火)「徃在」〈중간두시4:24ㄱ〉 / (燃) : 뫼히 퍼러니 곳비치 블 븓 도다(山靑花欲燃)「絶句二首」〈두시10:17ㄱ〉 / (着) : 그윗 것과 아 거시 제이곰 해 브터셔(公私各地著)「行官···水歸」〈두시 7:36ㄴ〉.
주182)
시르므란 : 시름은. 시름+으란. ¶시름 : 無憂는 시름 업슬 씨니〈석상23:32ㄴ〉 / 시름 허러듀미 이 오 아미로다(愁破是今朝)「王十五~草堂資」〈두시22:11ㄴ〉 / -란/으란 : ㆍ ㅡ ㅗ ㅜ ㅛ ㅠ란 附書 初聲之下고〈훈언12ㄴ〉 / 여슷 아란 마 갓 얼이고 아기 아리  곱거늘〈석상6:13ㄴ〉 / 羽翼란 商山ㅅ 늘그닐 고 文思란 帝堯 思憶노라(羽翼懷商老 文思憶帝堯)「收京三首」〈두시5:7ㄴ〉.
주183)
이  : 이때를. 원문의 ‘此辰’의 번역이다. ‘此辰’의 번역으로 ‘이 ᄢᅳᆯ’이 쓰인 예가 『두시언해』 권11의 「人日兩篇」의 제2수에 있으며, ‘玆辰’의 번역으로 ‘이 ᄢᅳᆯ’이 쓰인 예가 『두시언해』 권10의 「十月一日」에 있다. ¶이 ᄢᅳᆯ : 이 날 이  사미 다 어더(此日此時人共得)「人日兩篇」〈두시11:8ㄱ-ㄴ〉 / 이  南國이 重히 너겨(玆辰南國重)「十月一日」〈두시10:42ㄴ〉.
주184)
너기노라 : 여기노라. 너기-++오+라. ¶너기- :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裘夷心疑其欲去 坐起不解其側)〈석상3:22ㄱ〉 / 當貴호 픐 그텟 이슬와 엇더니오 너기놋다(富貴何如草頭露)「送孔巢父~李白」〈두시22:52ㄴ〉.
주185)
수계(須溪) : 위의 주를 참조.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유진옹은 송나라 말기 길주(吉州) 여릉(廬陵, 지금의 강서 길안시) 사람. 자는 회맹(會孟)이고, 호는 수계(須溪)다.
주186)
각유일권서이(各有一卷書耳)라 : 각 한 권의 책이 있을 따름이다. 즉 많은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책을 한 권 정도는 겨우 갖추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주187)
리 : 딸이. ᄯᆞᆯ+이. 두보는 부인 양씨와의 사이에는 종문, 종무 두 아들과 2, 3명의 딸이 있었다. 그리고 어려서 죽은 아들과 딸도 있었다. 두시에서 딸에 대한 내용이 있는 대표적인 몇 부분을 예로 든다. ¶ᄯᆞᆯ : 어린 리 머리 제 빗다(癡女頭自櫛)「北征」〈중간두시1:6ㄱ-ㄴ〉 / 져믄  머리옛 風病을 묻다(幼女問頭風)「遣悶奉呈嚴公二十韻」〈두시19:8ㄱ-ㄴ〉.
주188)
라니 : 자라니. ᄌᆞ라-+니. ¶ᄌᆞ라- :  노다가 라면 어루 法을 호리이다〈석상6:11ㄴ〉 / 술 다마 머구므로브터 子孫이 라거다(自從盛酒長兒孫)「少年行二首」〈두시25:17ㄴ〉.
주189)
지 : 지은. 지ᇫ-+우+ㄴ. ¶짓- : 비록 그르 야 지 이리 이셔도〈석상9:6ㄴ〉 / 아마다 므레 지 樓 우희 올아 라노라(朝朝上水樓)「得舍弟觀의~情見乎詞노라」〈두시8:38ㄴ〉.
주190)
글웘 : 글월의. 시의.
주191)
권질(卷帙)을 : 책을. 묶은 책을. 두보가 살던 시절의 책은 권자본의 형태이었으며 아마도 권자본을 보관하는 책갑도 있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주192)
골오 : 고루. ¶골오 : 義 디니 비  마로 골오 젓고〈석상13:26ㄴ〉 / 賦稅 골오 호매 어긔르츤가 전노니(恐乖均賦斂)「夔府書懷四十韻」〈두시3:4ㄴ〉.
주193)
가졧도다 : 가지고 있구나. ¶가지- : 後에 아뫼나  보라 가지던 사토 다 마 佛道 일우며〈석상13:51ㄱ〉 / 님 恩惠로 몬져 와 後에 세 번 鐵節을 가지니(主恩前後三持節)「諸將五首」〈두시5:47ㄱ〉.
주194)
붕구(漰口) : 강을 막은 보의 물이 흐르는 통로를 말하나, 여기서는 민강(岷江)이 흘러가는 곳의 지명이다.
주195)
잠애(蠶崖) : 관새(關塞)의 이름. 사천성(四川省) 도강언시(導江堰市)의 서북쪽에 있다. 그 곳의 지형이 험준하여 절벽에 길을 뚫었는데, 누에가 파먹은 것처럼 보여 이렇게 불린다.
주196)
민강(岷江) : 중국 사천성의 민산(岷山)에서 발원하여 성도(成都)의 서쪽을 지나 의빈(宜濱)에서 장강(長江)으로 합류하는 강이다.
주197)
서산(西山) : 민산(岷山). 토번과 대치하고 있는 산으로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다.
주198)
 : 강의. ᄀᆞᄅᆞᆷ+ㅅ.
주199)
깁 : 비단.
주200)
고 : 같고.
주201)
누니 : 눈[雪]이.
주202)
빈(蘋) : 개구리 밥. 여러해살이 수초이다.
주203)
일훔난 : 이름난. 유명한. ¶일훔나- : 일훔난 香 퓌우면 病도 덜며 厄도 버스리라〈석상9:35ㄱ〉 / 일훔난 위안핸 곳과 플왜 곳답도다(名園花草香)「入衡州」〈중간두시1:55ㄱ〉.
주204)
위안 : 정원은. 위안ㅎ+ᄋᆞᆫ.
주205)
프른 : 푸른. 프르-+ㄴ. ‘프르-’의 파생어로 ‘퍼러ᄒᆞ-’가 있고 유사한 어형으로 ‘파라ᄒᆞ-’도 있다. ¶프르- : 楚國 越國엣 象 다 프르고 오직 西天나라해  象이 하니라〈월석2:31ㄴ〉 / 녜 브터 댓수프리 프르도다(依舊竹林靑)「客舊館」〈두시3:36ㄱ〉 / 퍼러ᄒᆞ- : 그 얼구리 해 이셔 곧 蒼然히 퍼러니〈금삼2:29ㄴ〉 / 玉殿엔 이시 퍼러도다(玉殿莓苔靑)「橋陵···諸官」〈두시6:17ㄴ〉/ 파라- : 妙有實相 버들 파라며 곳 벌거 디라〈남명 상7ㄴ〉 / 믌 내왇  우미 파라도다(渚秀蘆笋綠)「客堂」〈두시6:51ㄴ〉.
주206)
뫼 : 산을. 뫼ㅎ+ᄋᆞᆯ. ‘뫼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207)
당(當)얫고 : 대하여 있고. 當#ᄒᆞ-+야#잇-+고.
주208)
햇 : 들의. ᄆᆡㅎ[野]+애+ㅅ. ‘ᄆᆡ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209)
 : 빛은.
주210)
말와매 : 마름에. 마름 풀에. 말왐+애. ‘말왐’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말왐 : 하콰  예 믈 우흿 말왐 호라(乾坤水上萍)「衡州送李大夫七丈勉赴廣州」〈두시8:15ㄴ〉 / 말왐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萍漂忍流涕)「乘雨···弟宅」〈두시8:45ㄱ〉 / 病 아낫 니 말왐  늘그니로니(防邊舊穀屯)「東屯月夜」〈두시11:49ㄱ〉 / 말왐과 다봇 야 安定야 사로미 업소라(萍蓬無定居)「將別巫峽~瀼西果園四十畝노라」〈두시15:16ㄱ〉 /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萍泛無休日)「奉贈太···二十韻」〈두시19:15ㄴ〉 / 말왐 시 뇨 버므렛 도다(萍泛若夤緣)「秋日···一百韻」〈두시20:3ㄱ〉 / 보미 기픈 내조친 나그내   말왐 도다(春深逐客一浮萍)「題鄭十八著作丈」〈두시21:40ㄱ〉 / 브텨 무도 말왐과 다 가놋다(寄葬與萍漂)「哭王彭州掄」〈두시24:57ㄱ〉.
주211)
뎟도다 : 꺼져 있구나. 꺼져 있도다. ᄢᅥ디-+어#잇-+도+다. ¶디- : 오직 모며 갓로로 거츠리 我人 혜여 業 구데 디여 도혀 표 아디 몯(但以迷倒로 妄計我人야 淪沒業坑야)〈금삼1:1ㄱ〉 / 것드러 프리예 뎟도다(摧殘沒藜莠)「枯椶」〈두시18:18ㄴ〉.
주212)
왕후(王侯) : 제왕과 제후. 고귀한 사람.
주213)
강해인(江海人) : 은사(隱士). 강해(江海)는 은사가 머무는 곳이고 강해인은 벼슬하지 않고 세속을 피해 사는 사람을 뜻한다.
주214)
지븨 : 집에서. 집+의(처소격조사).
주215)
강해(江海)옛 : 강해의. 즉 세속을 피해 자연에 사는 사람의.
주216)
시(時)로 : 때때로.
주217)
마자오 : 맞이함을. 맞-+아#오-+ㅁ+ᄋᆞᆯ.
주218)
깃노라 : 기뻐하노라. -++오+라. ¶- : 太子 보고 各各 이든 우루믈 울며 뎌 수프레 잇 벌에 토 다 깃거 太子 오며〈석상3:33ㄱ〉 / 生理 일웟논 이 내 깃거(自喜遂生理)「遣遇」〈중간두시2:62ㄱ〉 / 깃거-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3:21ㄱ〉 / 天皇寺ㅣ 갓가와 오 깃거노니(喜近天皇寺)「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2:10ㄴ〉.
주219)
관곡(款曲) :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
주220)
조차 뇨 : 쫓아다님을. 좇-+아 ᄃᆞᆮ니-+오+ㅁ+ᄋᆞᆯ. 『두시언해』에서 ‘ᄃᆞᆫ니-’는 ‘ᄃᆞᆮ니-’로도 표기되었다. ¶좇-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3:4ㄴ〉 / 져머셔 주그니 무두므란 潘岳 이 조차 고(瘞夭追潘岳)「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7ㄱ〉. ¶니- : 니 길 우흘 서르 보노니(相閱征途上)「龍門」〈두시13:44ㄱ〉 /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萍泛無休日)「奉贈太···二十韻」〈두시19:15ㄴ〉. ¶니- : 商 두루 녀  씨오〈석상20:25ㄱ〉 / 楚ㅅ 두들게 녀셔 將次ㅅ 늘구니(楚岸行將老)「大歲日」〈두시11:1ㄱ〉.
주221)
느준 : 늦은. 늦-+우-+ㄴ.
주222)
고 : 곳을. 줄을. 곧+ᄋᆞᆯ.
주223)
아디 몯노니 : 알지 못하니.
주224)
관곡(款曲)히 : 정답고 친절하게.
주225)
다마다 : 곳마다. 번번이. 다+마다.
주226)
열흘옴 : 열흘씩. 열흠+옴. ¶-옴 : 그듸내 各各  아옴 내야 내 孫子 조차가게 라〈석상6:9ㄴ〉 / 번곰 올오니  디위옴 새롭도다(一上一回新)「上白帝城二首」〈두시14:6ㄱ〉.
주227)
다놋다 : 다하는구나. 다-++옷+다. 『두시언해』에서 ‘다-’와 ‘다-’는 공존하였는데, 후자가 다수이고 전자가 극소수로 쓰이다가, 유추에 의해 ‘다-’형이 점차 증가하였다. ‘더으-’[加]와 ‘더-’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 동사이다. ¶다- :  그 말 다니 녀느 하랫 지븐 업고 네찻 하랫 지비 잇더라〈석상6:36ㄴ〉 / 飄飄히 뇨 늘근 겨지블 븟그리노라(飄飄愧老妻)「自閬州領妻子𨚫赴蜀山行三首」〈중간두시2:4ㄱ〉 / 다ᄋᆞ- : 福이 다면 도라 려 맨 受苦 길로 가니〈석상3:34ㄱ〉 / 興心이 다니  닶가오미 업더니(興盡纔無悶)「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4ㄴ〉.
주228)
지란(芝蘭) : 향기가 깊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 벗 사이의 높고 맑은 사귐을 뜻함. 지초(芝草)는 버섯과에 속하며,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신령스런 풀이고 난초(蘭草)는 여러해살이로 향기가 진한 풀이다.
주229)
역(易) : 주역(周易). 역경(易經). 유교 경전(儒敎經典)인 오경(五經)의 하나.
주230)
동심지언(同心之言) 기취(其臭)ㅣ 여란(如蘭)이라 :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이 말은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뜻은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만하고 마음을 함께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이다.
주231)
시어(侍御) : 시어사(侍御史).
주232)
지란(芝蘭)로 : 지란으로. 지초와 난초로. 향기로운 사귐으로.
주233)
여 : 하여금. ‘-로 여’는 ‘-으로 하여금’의 뜻으로 현대국어의 장형사동의 피사동주 논항에 쓰이는 ‘-로 여곰’으로 쓰이기도 한다. ¶-로 여 : 님굼이 高允으로 여 太子를 글 치라 더니〈번소9:44ㄱ〉 / 오직 녯 버드로 여 슬케 다(秪令故舊傷)「聞高常侍亡」〈두시24:54ㄱ〉 / -로 여곰 : 夫人이 寬으로 여곰 怒호 試驗코져 야〈내훈1:16ㄱ〉 / 집 와 보콰로 여곰 것게 디 말오라(莫使棟梁摧)「秋日···三十韻」〈두시3:10ㄴ〉.
주234)
됴케 션 : 좋게 할지언정. 좋게 할진대. 둏-+게 ᄒᆞ-+ㄹ션뎌ᇰ. ‘-ㄹ션’은 ‘-ㄹ쎠’와 ‘-ㄴ’이 결합된 것으로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둏- : 虛空애셔 八部ㅣ 모다 됴시다 더라〈석상3:6ㄱ〉 / 됴 비 오미 일우메 잇디 아니니라(甘澤不在早)「遣興三首」〈두시5:34ㄴ〉 / -ㄹ션 : 眞實로 能히 侵勞닐 制馭션 엇뎨 해 주규메 이시리오(苟能制侵陵 豈在多殺傷)「前出塞九首」〈두시5:28ㄱ〉 / 城中에셔  말 로 니브를 밧고니 서르 그리 쳐션 어느 두 것 비듸 서르 마조 議論리오(城中㪷米換衾裯 想許寧論兩相直)「秋雨歎三首」〈두시12:16ㄱ〉 / 오직 閭閻으로 여 도로 揖讓션 구틔여 솔와 대왜 오래 거츠러슈믈 議論리아(但使閭閻還揖讓 敢論松竹久荒蕪)「將赴~五首」〈두시21:3ㄱ〉.
주235)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엇뎨(何) : 내 녀 엇뎨 예 왓뇨(我行何到此)「水宿···群公」〈두시3:20ㄱ〉 / (豈) : 煩促호매 더운 病이 엇뎨 侵逼디 아니리오(煩促瘴豈侵)「早發」〈중간두시1:50ㄱ〉 / (寧)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夔府書懷四十韻」〈두시3:5ㄱ〉 / (焉) : 엇뎨 디 陶淵明과 謝靈運의 손 니 어더(焉得思如陶謝手)「江上···短述」〈두시3:31ㄴ〉 / (曷) : 벼스릐 가오 엇뎨 足히 슬흐리오(位下曷足傷)「陳拾遺故宅」〈두시3:64ㄱ〉 / (安) : 엇뎨 야 壯士 어더 이거슬 하 밧긔 더뎌(安得壯士擲天外)「石笋行」〈두시3:71ㄱ〉 / (胡) : 엇뎨 삿기 치 贙의게 더디이뇨(胡爲投乳贙)「贈秘···公邕이라」〈두시24:25ㄴ〉 / 엇디(那) : 내의 囊 中엣 布帛ㅣ 너희 치위 求 거시 엇디 업스리오(那無囊中帛 救汝寒凜慄)「北征」〈중간두시1:6ㄱ〉 / (豈) : 엇디  나 편안케 리오(豈復慰老夫)「發秦州」〈중간두시1:15ㄱ〉 / (何) : 내 엇디 심히 슬히 리오(我何苦哀傷)「成都府」〈중간두시1:38ㄴ〉 / (奚) : 이젠 내 엇디라  命令에 니가뇨(今則奚奔命)「早發」〈중간두시1:49ㄴ〉 / 엇디라(奈何) : 엇디라 漁陽애 賊騎 颯颯히 와 百姓 놀래뇨(奈何漁陽騎 颯颯驚烝黎)「石龕」〈중간두시1:23ㄱ〉 / 엇뎌(何) :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何况道路長)「遣興二首」〈두시8:28ㄴ〉.
주236)
구틔여 : 구태여. ¶구틔여 : 太子ㅣ 구틔여 從티 아니대〈석상24:49ㄱ〉 / 구틔여 玄圃애 뫼디 몯나(不必陪玄圃)「夔府書懷四十韻」〈두시3:3ㄴ〉.
주237)
이웃야 : 이웃하여. 이웃#ᄒᆞ-+야. ‘이웃ᄒᆞ-’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이웃ᄒᆞ- : 南山ㅅ 幽深  이웃야 사롤  占卜호라(卜鄰南山幽)「寄贊上人」〈두시9:15ㄴ〉 / 參差 버믜 굼글 이웃옛노라(參差虎穴隣)「大歲日」〈두시11:1ㄴ〉 / 맷 지븐 돐 알 이웃얏도다(江閣隣石面)「水閣朝霽奉簡嚴雲安」〈두시14:3ㄱ〉 /  말과 빗난 긄句 반기 이웃고져 노라(淸詞麗句必爲隣)「戲爲六絕」〈두시16:12ㄴ〉 / 巴州ㅅ 風俗 내 이웃리로다(巴俗自爲隣)「與嚴二郞奉禮別」〈두시23:56ㄱ〉.
주238)
산양(山陽) : 혜강(嵇康)이 살던 곳. 여기서는 왕시어(王侍御)가 사는 곳을 말한다.
주239)
혜강(嵇康) : 위의 주를 참조.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문신(文臣)이자 시인(詩人). 자는 숙야(叔夜, 223년 ~ 262년 추정)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중심인물로,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으나 반유교적(反儒敎的) 사상을 견지하여 당시 권력층의 미움을 받았으며, 친구의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주240)
칠현(七賢) : 죽림칠현(竹林七賢). 중국 위(魏)ㆍ진(晉)의 교체기에 세상을 등지고 죽림에 모여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를 말한다. 일곱 명의 선비는 혜강(嵆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왕융(王戎), 완함(阮咸)이다.
주241)
시어(侍御) : 시어사(侍御史).
주242)
정장(鄭莊) : 한나라 때 회양진(淮陽陳) 사람으로 자는 장(莊)이다. 의협(義俠)으로 자부하여 양초(梁楚) 사이에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여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있을 적에 휴일을 맞을 때마다 장안의 사방 교외에다 역마를 비치하고는 귀천을 막론하고 손님들을 맞아들여 극진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주243)
속물(俗物)이 : 속물이. ‘속물’은 속객(俗客)을 말한다.
주244)
정역(鄭驛) : 정당시(鄭當時)가 세운 역(驛). 정당시가 손님을 모시기 위해 준비한 역마를 말한다.
주245)
정(正)히 : 바로. 잘못된 데가 없이.
주246)
소 : 손을. 손님을. 손+ᄋᆞᆯ.
주247)
머믈우놋다 : 머물게 하는구나. 머믈-+우+ᄂᆞ+옷+다.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로 『두시언해』에서는 ‘머믈오-’로도 표기되었다. ¶머믈우- : 소 가매 다혀 겨샤 목수믈 머믈우들 몯시니〈월석10:15ㄴ〉 /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聖慮窅裴佪)「秋日···三十韻」〈두시3:10ㄴ〉 / 머믈오- :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春濃停野騎)「懷灞上遊」〈두시3:39ㄱ〉 / 懇切히 諫爭 匡鼎을 머믈오시고(懇諫留匡鼎)「秋日···一百韻」〈두시20:11ㄱ〉 /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21:37ㄱ〉 / 머므러셔 얽여 뇨 慰勞노라(躊躇慰羈束)「南池」〈두시13:16ㄴ〉.
주248)
안마(鞍馬) : 안장을 얹은 말.
주249)
석진(席珍) : 자리 위에 놓인 보배. 유자(儒者)의 학덕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250)
나며 드로매 : 나며 듦에. 나-+며 들-+오+ㅁ+애. ¶나며 들- : 法身 나며 드르샤미 업스시니라〈석상23:44ㄱ〉 / 나며 드로매 諸公의게 옛도다(出入冠諸公)「投贈···二十韻」〈두시5:41ㄴ〉.
주251)
와 : 나란히 하여. 대적하여. -[竝]+아. ¶ᄀᆞᆲ- : 둘히 서르 도아 반기 와 行티 아니니라〈영가 하99ㄱ〉 / 氣運이 嵩山 華山과 다 와슈믈 마 아노라(巳覺氣與嵩華敵)「閬山歌」〈두시13:31ㄴ〉.
주252)
고 : 타고. -[乘]+고.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받다) : 집 우 龍이 御床 向니 寶位 실 느지르샷다〈용가100〉 /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1:7ㄱ〉 / -(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25:49ㄴ〉 / -(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3:6ㄴ〉 /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2:21ㄴ〉 / -(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9:108ㄴ〉.
주253)
비츨 : 빛을. 볕을. 15세기의 ‘빛’은 ‘밝기’를 나타낼 때와 ‘온도’를 나타낼 때가 있는데, 여기서는 ‘서리’와 ‘눈’은 차가움의 대상이어서 피해야 하므로 ‘온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254)
돗 : 자리. 도ᇧ[席]. 현대국어의 ‘돗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 : 이 야로 出令야 닐웨예 닐굽 솨줄 그처  우희 고  보아 돗 드니 太子ㅅ 慈心福德力으로  일 업시 바 셔메 드러가 珎寳山애 다라 善友太子ㅣ 붑 텨 出令호〈월석22:38ㄱ〉 / 처 돗긔 안조매 슬픈 실와 큰 댓 소리 뮈놋다(初筵哀絲動豪竹)「醉爲墜馬諸公攜酒相看」〈두시3:53ㄴ〉.
주255)
우흿 : 위의. 우ㅎ+의+ㅅ. ‘우ㅎ’은 ‘ㅎ’말음체언이고, ‘의’는 처격조사, ‘ㅅ’은 속격조사이다. ¶우ㅎ : 上 우히니 無上正眞道理 우 업슨 正 진딧 道理라〈석상3:10ㄱ〉 /  란 漢水ㅅ 우흘 고(清思漢水上)「回棹」〈중간두시2:13ㄴ〉.
주256)
진보(珍寶) : 진기한 보배를. 여기서는 시어(侍御)의 학덕을 비유한다.
주257)
더러유라 : 더럽힌다. 더러이-[忝]+오/우+라. 참조. 더러이-. 더레-. 더러-. 더럽-. 더러오-. 더러우-. 더러이. ¶더러이- : 同列의 德 기류믈 브터 阿難ㅅ 자최 뵈요미 實로 허리며 더러유미 업서〈능엄1:26ㄴ〉 / 사오나온 材質로 省郞 더러유라(凡材汙省郞)「乘雨入行軍六弟宅」〈두시8:44ㄴ〉 / 더레- : 淨은  듣그릐 더레여 리오미 외디 아니호 니시니〈법화6:57ㄴ〉 / 늘구매 宮臣 더레여(遲暮宮臣忝)「秋日荊南述懷三十韻」〈두시3:7ㄴ〉 / 더러- : 淨德은 한 德이 眞實로 조야 더러디 몯 씨라〈석상20:35ㄱ〉 / 더럽- : 蓮花 더러  이셔도 더럽디 아니호미 眞實ㅅ 法界 世間法의 몯 더러믈 가비니라〈월석2:55ㄴ〉 / 靑城은 쇽졀업시 더럽고 雜亂니(靑城漫汚雜)「閬州奉送二十四舅使自京赴任靑城」〈두시8:60ㄱ〉 / 더러이 : 宣和 己亥예 처믜 辱이 더러이 아니 너겨 나 命야 校正야 證라 코〈법화 서:21ㄴ〉 / 내 늘거 더러이 외야 쇼 아노라(自覺成老醜)「將適~柳字韻」〈중간두시1:38ㄱ〉 / 더러 : 큰 들 일워 아랫  제 더러 너기  아라〈월석13:29ㄱ〉.
주258)
선주(先主) :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 중국 삼국시대 촉(蜀)의 제1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221년 ~ 223년이었다. 후한(後漢)의 영제(靈帝) 때 황건적을 쳐서 공을 세우고, 후에 제갈량의 도움을 받아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함께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에서 격파한 인물이다.
주259)
소성(少城) : 성도(成都)에 있는 성(城) 이름. 성도(成都)에는 옛날부터 대성(大城)과 소성(少城)이 있었다. 소성(少城)은 예전에 비단 짜는 일을 관장(管掌)했던 관원(官員)의 관서(官署)가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주260)
인(闉) : 성곽의 문.
주261)
성도(成都) : 전국시대부터 있어 온 도시 이름.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고, 진(秦)과 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성도현(成都縣)이 설치되었으며, 후한(後漢) 때에는 익주(益州)의 통치도 겸한 곳이다. 삼국시대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에다 수도를 건립했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의 중심지로서 번영했으며, 당나라의 현종(玄宗)은 안사(安史)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隋唐) 시대 때는 장안, 양주(揚州), 돈황(敦煌)과 함께 4대 도시였다.
주262)
옹문(擁門) : 문(門)으로 둘러싸다.
주263)
선주(先主)ㅅ 묘(廟)애 : 선주의 사당에. 즉 성도에 있는 유비의 사당을 말한다.
주264)
놀오 : 놀고. 놀-+고. ¶놀- : 王子ㅅ 命이 닐웻 부니로소니 아례나   노라 리다(當就於死努力恣情五欲自娛)〈석상24:28ㄱ〉 / 巴子國에 오래 노라(久遊巴子國)「諸葛廟」〈두시6:33ㄴ〉.
주265)
디나가라 : 지나갔네. 디나-#가-+라. 『두시언해』에는 ‘디나가-’ 이외에 ‘디너가-’도 쓰였다. ¶디나가- : 오 안자 잇더시니 도 五百이 그윗 거슬 일버 精舍ㅅ 겨로 디나가니〈월석1:6ㄱ〉 / 디나가  스싀로 모 앗겨(經過自愛惜)「送元二適江左」〈두시23:49ㄱ〉 / 디너가- : 四時ㅣ 디너가미 내 매 버므럿니(四序嬰我懷)「晚登瀼上堂」〈두시14:4ㄱ〉.
주266)
금대(琴臺) : 초당에 있던 누대 이름. 현재 금대는 두보의 성도 초당의 완화계 북쪽에 있다. 이 시는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사랑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있다. 주변에 있던 것이다. 『두시언해』 권9에는 「금대」라는 시가 있으며 주석에는 “在成都니 卽相如ㅣ 與文君으로 賣酒處ㅣ라”라 되어 있다. 해석하면 “성도에 있으니 사마상여가 탁문군과 함께 술을 팔던 곳이다.”이다.
주267)
촉왕(蜀王) : 촉(蜀)나라의 왕 개명(開明)이다. 『두시언해』 권3에는 「석경」이라는 시가 있는데 촉왕의 거울 고사를 담고 있다. 무도산(武都山)의 정기(精氣)가 여자가 되었는데 촉왕 개명이 아내로 맞이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죽었기 때문에 석경을 만들어 묘의 문에 두었다.
주268)
용석경장기비(用石鏡葬其妃)니라 : 촉왕 개명은 왕비가 죽자 석경을 만들어 왕비의 장사를 지냈다.
주269)
탁문군(卓文君) :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내. 중국 전한 임공(臨邛)의 부호인 탁왕손(卓王孫)의 딸이다. 사마상여가 타는 거문고 소리에 반하여 밤중에 집을 빠져 나와 그의 아내가 되었으며, 후에 사마상여가 무릉의 여자를 첩으로 삼으려 하자 「백두음(白頭吟)」이라는 가사(歌詞)를 지어 결별의 뜻을 밝혔다.
주270)
거우루엔 : 거울에는. 거우루[鏡]+에+ㄴ. 『두시언해』에는 ‘거우로’도 쓰였다. ‘거올, 거울’의 형태는 16, 17세기에 등장한다. ¶거우루 : 그 새 거우루엣 제 그르멜 보고〈석상24:20ㄱ〉 / 드틀 무든 匣애  거우루를 여러 내 고(塵匣元開鏡)「月」〈두시12:3ㄴ〉 / 거우로 : 鏡 거우로 〈훈몽 중:7ㄴ〉 / 늘거 료란  거우로애 아노니(老罷知明鏡)「懷舊」〈두시21:41ㄴ〉 / 거올 : 鏡奩 거올 집〈역어 하:15ㄱ〉 / 거울 볼 사미 모로매 제 치 고오며 구줌 요매 이실 미니라〈법집32ㄴ〉.
주271)
어드운 : 어두운. 어듭-+은. 참조. 어둡-. ¶어듭- :  며 어드운 諍이 이시며〈금강55ㄴ〉 / 샤공이 어드운 셔  달화 놀애 브며(篙師暗理楫)「水會渡」〈중간두시1:29ㄱ〉 /어둡- 버럿 나라해 兵戈ㅣ 어두우니(列國兵戈暗)「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두시20:30ㄴ〉.
주272)
 : 데의. ᄃᆡ+ㅅ.
주273)
넉시 : 넋이.
주274)
찻고 : 꿰뚫어 있고. 문맥상 거울에 죽은 왕비의 혼이 서려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 그 사리 스믈 여듧 부플 다 여 해 차 가아 鐵圍山애 바니(中百里鼓而穿壞之)〈석상3:14ㄱ〉 / 宮殿을 브티니 브리 새록 챗도다(焚宮火徹明)「奉送郭中丞~三十韻」〈두시23:3ㄱ〉.
주275)
블근 : 붉은. 븕-+은. ¶븕- : 기픈 길헤 디옛 고 블고미 블 고〈남명 하:10ㄴ〉 / 블근 새 두위텨 라오고(赤雀翻然至)「秋日···三十韻」〈두시3:11ㄱ〉.
주276)
그얫 : 그윽하여 있는. 그ᅀᅳᆨ#ᄒᆞ-+야#잇-+ᄂᆞᆫ. 『두시언해』 권9에는 ‘그근’이란 단어가 보이는데 오자가 아니라면 15세기에 ‘그다’라는 단어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 말미 詭譎고 行止擧動이 그고 險며 利 즐기며 왼 이 미고〈내훈1:22ㄴ〉 / 너븐 믌겨레 말과 우괘 그앳니(洪濤隱語笑)「幽人」〈두시9:8ㄴ-4ㄱ〉 / 그- : 秘密 말과 그근 글워 모로매 안로 게 야 리언마(袐訣隱文須內敎)「憶昔行」〈두시9:6ㄱ〉.
주277)
송종(送終) : 장례를 치르다.
주278)
분토(糞土) : 더러운 흙.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杇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뜻은 “썩은 나무는 아로새길 수 없고, 분토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이다.
주279)
형진(荊榛) : 가시나무와 개암나무. 황량한 풍경을 뜻하는 말이다.
주280)
송종(送終)혼 : 장례를 치룬. 送終#ᄒᆞ-+오+ㄴ.
주281)
거슨 : 것은.
주282)
니오 : 흙뿐이고. ᄒᆞᆰ+ᄲᅮᆫ+이+고. ‘’은 16세기까지는 아주 우세하게, 17세기에는 비슷하게, 18세기에는 세력이 아주 축소된다. 한편 ‘흙’은 16세기에 보이다가 17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간다. ¶ :  싸하 佛廟 일우거나〈법화1:217ㄴ〉 / 나 이니 내 모매 콰 가족과 왜니라〈칠대2ㄱ〉 / 고온 사미 누른 기 외니(美人爲黃土)「玉華宮」〈두시6:1ㄴ〉 / 흙 : 흘그로 근 사〈소언 6:122ㄱ〉 /  : 護彌 닐오 소리 듣노라〈석상6:15ㄱ〉 / 갓가이 녀도  몸이오(近行只一身)「無家別」〈중간두시4:12ㄱ〉.
주283)
 : 사랑을. ᄉᆞ라ᇰ+ᄋᆞᆯ.
주284)
잣던 : 맺었던. ᄆᆡᆽ-+아#잇-+더+ㄴ. ¶- : 다가 業 조미 重면 地獄애 기리 이셔 버서 時節이 업스리라〈월석21:121ㄱ〉 / 댓 고지 여르미 디 아니니(竹花不結實)「述古三首」〈두시3:55ㄴ〉 / 넉슨 蜃氣ㅣ 쳿 樓에 나봇기놋다(魂飄結蜃樓)「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8:45ㄴ〉 / 머리터리 자 남진 겨지비 외요니(結髮爲夫妻)「新婚別」〈두시8:67ㄱ〉.
주285)
 : 데는. ᄃᆡ+ㄴ.
주286)
오 : 혼자. 홀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하지 않고 홀로인 상태. 정음 초기 문헌 중에서도 〈용비어천가〉(1445~1447)에는 ‘’로 쓰였던 것이 〈석상〉(1447)부터는 ‘오’로 쓰였다. 16세기 문헌에는 ‘호, 호은자, 호온자’ 형도 나타난다. 〈중간본〉에는 ‘오아’로 되어 있다. ¶ : 셔 긔벼를 알  나가샤 모딘 도 믈리시니다〈용가35〉 / 오 :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석상3:19ㄴ〉 / 오 셔셔 여러 가짓 시름노라(獨立萬端憂)「獨立」〈두시3:26ㄴ〉/ 호 : 叔咸이 호셔 侍病며 어 大便을 맛보니 더니〈속삼, 효:22ㄱ〉 / 호은자 : 내 호은자 아도 이긔요리라〈번박55ㄱ〉 / 호온자 :  하  호온자 가  보내놋다〈백련3ㄴ〉.
주287)
가남기 : 가시나무가. 가ᄉᆡ+나ᇚ+이. 15세기 국어에서 ‘나모’[木]는 음운환경에 따라 2가지 어형으로 나타난다. ①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통합될 때. ② 나모:공동격조사 ‘와’와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관형격 ‘ㅅ’ 등), 그리고 휴지가 올 때. ¶가 : 梔子ㅅ 아리 半 나채 술윗 기르믈 몌오 아리예 기 야 가락 우희 기 야 가락 우희  두리니 알 히 져기 라 오면 가 自然히 나니 족접개로 혀라〈구급방 하:6ㄱ〉 / 요 주 누넷 가 아 리시 그 샤 으리와니(近者抉眼去其夫)「可嘆」〈두시25:9ㄴ〉 / 나모 : 楓 싣나모 〈훈몽 상:5ㄴ〉 / 싣나모 션 두들게 프른 묏 그티 重疊도다(楓岸疊靑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3:14ㄱ-ㄴ〉 /  :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곶 됴코 여름 하니〈용가2〉 /  뷔오 사롤  占卜호 다 이 남 爲얘니(誅茅卜居㹅爲此)「柟木···拔歎」〈두시6:40ㄴ〉 / 가ᄉᆡ남ㄱ : 나못닙도 머그며 도 마시며 예도 누며 가남도 누〈석상24:26ㄱ〉 / 가ᄉᆡ나모 : 곳과 果實와 버히고 가나모 심고  듣보디 몯리로소다〈월석25:74ㄴ〉 / 가나모 門읜 너춘 프리 기펫고(荊扉深蔓草)「聞斛斯六官未歸」〈두시22:12ㄴ〉.
주288)
잇도다 : 있구나. 있도다.
주289)
기(棊) : 바둑. 기(碁).
주290)
답사 : 포개진. 겹겹으로 쌓인. 답+샇-+ᄋᆞᆫ. ‘답사ᄒᆞ-’는 『두시언해』에서 주로 ‘積’의 옮긴 말로 쓰이는데 ‘답’은 ‘답답-’ 등에 쓰인 것으로 ‘겹겹’의 의미인 것으로 보이며, ‘샇-’은 각자병서가 쓰이지 않은 표기로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 ‘답사-’의 피동형은 ‘답사히-’이다. 이 단어는 『두시언해』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두시언해』에서는 ‘샇-’보다 ‘답사-’가 많이 쓰였다. ¶답사- : 답사하 그륜 눈서비 어위도다(狼藉畫眉闊)「北征」〈중간두시1:6ㄴ〉 / 石壁ㅅ 빗츤 답사 쇠 솃 도다(壁色立積鐵)「鐵堂峽」〈중간두시1:17ㄱ〉 / 답사호믈 밧긔 도라 라셔(回眺積水外)「水會渡」〈중간두시1:29ㄴ〉 / 져근 미 도혀 믌겨리 답사니(小江還積浪)「水宿遣興奉呈群公」〈두시3:19ㄴ〉 /  답사힌 믌 안해 챗고(陰通積水內)「營屋」〈두시6:45ㄱ〉 / 甲 니븐  구루미 답사혯 도다(鐵馬雲霧積)「白水縣崔少府高齋三十韻」〈두시7:25ㄱ〉 / 篋中엣 글워리 諷諫 말미 답사핫건마(篋書積諷諫)「奉贈李八丈判官」〈두시8:4ㄱ-ㄴ〉 / 하 가온 티와 댓 답사 프른 王臺 아라니(中天積翠玉臺遙)「玉臺觀二首」〈두시9:40ㄱ〉 / 시내해 버렛 蓮ㅅ 니픈 프른 도니 답사햇 도다(點溪荷葉疊靑錢)「漫興九首」〈두시10:8ㄴ〉 / 열운 오로 답사핫 므를 디러 고(薄衣臨積水)「上巳日徐司錄林園宴集」〈두시11:22ㄴ〉 / 보라온 구루미 답사혀  이긔디 몯놋다(弱雲狼藉不禁風)「江雨有懷鄭典設」〈두시12:25ㄴ〉 / 답사 믌  불휘 서롓도다(蟠根積水邊)「白塩山」〈두시13:4ㄴ-5ㄱ〉 / 맷 믉겨리 怒□미 오히려 답사혓도다(風濤怒猶蓄)「三川觀水漲二十韻」〈두시13:8ㄴ〉 / 龍이 답사 므를 브터 서렷니(龍依積水蟠)「萬丈潭」〈두시13:17ㄱ〉 / 답사 므리 三峽에 딜엇고(積水駕三峽)「別蔡十四著作」〈두시22:28ㄱ〉 / 답사 陰氣예 서리와 눈괘 하도다(積陰雪雲稠)「送韋十六評事充同穀郡防禦判官」〈두시22:38ㄱ〉 / 烈士 슬호미 답사핫도다(烈士痛稠疊)「故司徒李公光弼」〈두시24:17ㄴ〉 / 답사히- : 주거미 답사효매 플와 나모왜 비뉘고(積屍草木腥)「垂老別」〈중간두시4:10ㄴ〉 / 芝蘭과 구슬왜 답사혓 도다(芝蘭壘璵璠)「覽栢中丞兼子姪數人의~載歌經綸노라」〈두시24:1ㄴ〉 / 前後에 온 卷ㅅ 글워리 답사혀시니(前後百卷文)「故秘書少監武功蘇公源明」〈두시24:34ㄱ〉 / 쌓- : 種種 花香 비허 須彌山 티 싸며(雨無數百千種種上妙天香天花 遍滿三千大千世界積高須彌供養如來)〈석상23:20ㄱ〉 / 샇- : 蕃州 사  로다(蕃州積雪邊)「西山三首」〈두시5:10ㄱ〉 / 龍 사  사햇 므리 깁도다(龍居閟積流)「覆舟二首」〈두시15:34ㄱ〉 / 사히- : 주근 사미 두듥티 사혯도다(死人積如丘)「遣興三首」〈두시5:34ㄴ〉 / 날마다 구루미 사힌 니라(冠蓋日雲積)「送李校書二十六韻」〈두시8:20ㄱ〉.
주291)
믌셔 : 물가에서. 믈+ㅅ+ᄀᆞᆺ+ᄋᆡ+셔.
주292)
혁기(弈碁) : 바둑을.
주293)
구구(區區) :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 변변치 못한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주294)
견(趼) : 발에 생기는 군살. 발이나 발가락에 딱딱하게 생기는 군살을 뜻한다.
주295)
초초(稍稍) : 점점. 차차로.
주296)
족창(足瘡) : 발에 난 부스럼.
주297)
구구(區區)히 : 구차하게.
주298)
녀셔 : 다녀서. -#니-+어+셔. ‘니-’는 ‘니-’의 선행 음절 ‘’의 ‘ㄷ’이 후행하는 ‘니’의 ‘ㄴ’의 영향으로 비음화된 것이다. ¶니-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3:4ㄴ〉 / 後에 난 사미 아디 몯야 오히려 키 니놋다(後生未識猶駿奔)「石笋行」〈두시3:70ㄴ〉 / 니- : 後身 後ㅅ 모미니 前生애 니다가 後生애 다시 난 모미 後身이라〈월석1:45ㄴ〉 /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扈聖崆峒日)「夔府書懷四十韻」〈두시3:1ㄱ〉.
주299)
여러  : 여러 번. ¶ : 웃 譬喩에셔 즈믄 리 倍히 하니 며 地藏菩薩이 聲聞 辟支佛地예 이슈미녀〈월석21:16ㄴ〉 / 江漢애 뫼히 여러  險阻니(江漢山重阻)「地隅」〈중간두시2:29ㄴ〉.
주300)
발 부루투믈 : 발이 부르틈을. 부루트-+우+ㅁ+을. ¶부루트- : 趼 부루틀 견〈훈몽 중:16ㄴ〉 / 遷延히 뇨매 손바리 부루터 허도다(遷延胝趼瘡)「入衡州」〈중간두시1:54ㄱ〉.
주301)
히 너기다니 : 달게 여기니. 달게 여겼는데. ¶히 : 孔聖도 나조 주구믈 히 너기샤미 다 根源을 아샤 업디 아니 거시 잇논 고 미더 드틀와 왓 시르믈 벗고져 시논 젼라〈석상20:12ㄱ〉 /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1:7ㄱ〉 / 너기- : 善友ㅣ 샤 도긴가 너기샤  일훔을  브르시니〈월석22:10ㄱ〉 / 사랫 데 늘거 셰요 히 너기노니(生意甘衰白)「收京三首」〈두시5:7ㄴ〉.
주302)
 : 피곤한. 가쁜. ᄀᆞᆺᄇᆞ-+ㄴ. ¶- : 길 머러 실 보기 야〈석상3:37ㄴ〉 / 아니 님금 모미 신가(無乃聖躬勞)「收京三首」〈두시5:8ㄱ〉.
주303)
쉬우노라 : 쉬게 하노라. 쉬우-+ᄂᆞ+오+라. ‘쉬우-’는 ‘쉬-’의 사동사이다. ‘쉬우-’는 ‘쉬오-’로도 쓰였다. ¶쉬우- : 뎌 導師ㅣ 쉬우믈 爲야 큰 城을 지 잇다가 쉰  알오 닐오 보 잇 히 갓가 잇니〈월석14:81ㄱ〉 /  쉬우노라 미틔 이셔(歇鞍在地底)「飛仙閣」〈중간두시1:30ㄴ〉 / 쉬오- : 너모 쉬오면 곧 거즛되오 너모 하면 지리며〈번소8:11ㄱ〉 / 下句 히미 세여 사 달오미 쉬오면 게 믈이디 아니리라 논 마리라「贈秘書監 江夏李公邕이라」〈두시24:29ㄴ〉.
주304)
순(蓴) : 순채. 수련과(睡蓮科)에 속하는 다년생 수초(水草)로 줄기와 어린잎은 식용한다.
주305)
모니 : 모이니. 몯-+ᄋᆞ니. ‘몯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몯-(자동사) : 공경홈은 德의 몯 거시니 能히 공경면 반시 德이 이실디라〈소학4:34ㄴ〉 / 盛 이리  모니(此堂豈千年)「陳拾遺故宅」〈두시3:65ㄱ〉 / (타동사) : 王이 붑 텨 조 겻 사 다 모라 시고〈석상3:12ㄱ〉.
주306)
두려운 : 둥그런. 둥근. 두렵-+은. ¶두렵- : 圓은 두려 씨오〈월석2:53ㄴ〉 / 平牀을 괴오니 어르누근 돌히 두렵도다(支床錦石圓)「季秋江村」〈두시10:38ㄱ〉.
주307)
즉어(鯽魚) : 붕어. 잉엇과에 속하는 민물고기이다.
주308)
즉어(鯽魚)ㅣ : 즉어가. 붕어가.
주309)
버므렛고 : 섞여 있고. 버무려져 있고. 버믈-+어#잇-+고. 15세기의 ‘버믈-’은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여기서는 자동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버믈-’이 타동사로 쓰인 용례에는 주로 『두시언해』에서 확인된다. 사동사 ‘버므리-’도 있다. ‘버믈다’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보다(보라)’도 있다. 오식일 가능성과 유일례일 가능성이 있다. ¶버믈-(자동사) : 그  香 부텻 精舍애 가니  瑠璃 구루미 야 부텻긔 닐굽  버므러 金盖 외오〈월석7:30ㄱ〉 / 緣 六塵에 버믈시니 六塵에 버므  그르메 야〈금삼2:34ㄱ〉 / 亡命면 災禍ㅅ 그므레 버믈리라(亡命嬰禍羅)「前出塞九首」〈두시5:26ㄱ〉 / 너추 프리 수이 버므러쇼 思念노니(蔓草易拘纏)「寄題江外草堂」〈두시6:37ㄱ〉 / 버믈-(타동사) : 繞 버믈 씨라〈월석2:32ㄴ〉 / 반됫 비츤 帳 버므러 차 가고(螢鑑緣帷徹)「遣悶」〈두시3:12ㄱ〉 / 江峽에 蛟螭 버므러 니노라(江峽繞蛟螭)「偶題」〈두시16:10ㄱ〉 / 보- : 도로혀 우믌 欄干애 보라 낫나치 더으고(却繞井欄添箇箇)「見螢火」〈두시17:38ㄴ〉 / 버므리-(사동) : 萬行이 本來 眞實호 能히 俗 버므리실〈월석13:13ㄱ〉 / 나조 御香 버므려 도라가노라(暮惹御香歸)「寄左省杜拾遺」〈두시21:14ㄴ〉 / 버므리-(피동) : 만일 明日에 일이 니러나면 온 집 사이 버므리여 다 죽을 시니〈박통 중:28ㄱ〉 / 蕭條호매 病이 장 버므리셰라(蕭條病轉嬰)「柳司馬至」〈두시5:16ㄴ〉 / 버므리(부사) : 바라온 길히 이 뫼 이예 버므리 서럿니(危途中縈盤)「龍門閣」〈중간두시1:32ㄱ〉.
주310)
하니 : 많으니.
주311)
 : 가는. ᄀᆞᄂᆞᆯ-+ㄴ. ¶ᄀᆞᄂᆞᆯ- :  듣글 만 點곰 리와 먹이 다거든〈능엄1:5ㄱ〉 /  字 바지로이 더니라(辨眼工小字)「送顧···吉州」〈두시16:17ㄴ〉.
주312)
순(蓴)을 : 순채를.
주313)
글히놋다 : 끓이는구나. 글히-+ᄂᆞ+옷+다. ‘글히-’는 ‘긇-’의 사동사이다. ¶글히- : 이제 누의 나히 늙고 나도 늙그니 비록 조 누의 위야 쥭을 글히고져  다시 시러곰 려〈번소9:79ㄱ〉 / 밥 머글 제 靑泥坊 미틧 미나리 글히놋다(飯煮靑泥坊底芹)「崔氏東山草堂」〈두시7:32ㄴ-33ㄱ〉 / 긇- : 罪人 글 가마애 드리티니라〈월석1:29ㄱ〉.
주314)
유영(柳癭) : 버드나무의 옹이.
주315)
빙(凭) : 기대다.
주316)
등륜(藤輪) : 등나무로 만들어 몸을 기댈 수 있는 것. 앉아서 비스듬히 기대는 장침(長枕)이나 사방침(四方枕) 같은 것을 말한다.
주317)
준(樽) : 술잔. 단지 비슷한 술그릇을 말한다.
주318)
등만(藤蔓) : 등나무 덩굴.
주319)
기리 : 길게. 영원히. 여기서는 ‘길게’로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주320)
놀애 : 노래.
주321)
져기 : 적이. 조금. 잠깐. 이 문맥에서는 ‘잠깐’이 알맞은 것으로 보인다.
주322)
오라셔 : 졸아서. 올-[睡]+아+셔. 참조. 오롬. ¶올- : 諸天의 히로 사히 다 올의 니〈석상3:25ㄴ〉 / 오롬 : 緣을 미더 사라 오롬 오나 곧 눕고〈원각 하3-1:102ㄱ〉 / 븘 그리메 오롬 업수메 비취옛니(燈影照無睡)「大雲寺贊公房四首」〈두시9:20ㄴ〉.
주323)
비규라 : 기댄다. 비기-[憑]+우+라. ‘비기-’는 ‘기대다’의 의미이다. ¶비기- : 이 根과 塵과 識괘 가비건댄 뭇군  서르 브터 비기야〈능엄5:8ㄱ〉 / 七寶几 자샤 紫金山 도샤 다시 와 비기샤 너비 大衆과 阿難려 니샤〈능엄9:41ㄱ〉 /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野樹欹還倚)「九日五首」〈두시11:29ㄴ〉 /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野樹歌還倚)「九日五首」〈두시11:29ㄴ〉.
주324)
녀름 : 농사. ¶녀름 : 능엄法會 녀름브터 겨레 가니〈능엄1:17ㄱ〉 / 녀름과  忽然히 디니(秋夏忽泛溢)「漲溪」〈두시13:19ㄴ〉.
주325)
지 : 지을. ‘녀름’과 합한 ‘녀름 짓-’은 ‘농사 짓-’의 의미로 쓰인다. ¶짓- : 製 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1ㄱ〉 /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협주)〈월석4:18ㄴ〉.
주326)
래 : 달에. ᄃᆞᆯ[月]+애.
주327)
모로매 : 모름지기. 반드시. 이응태 묘 출토 〈한글편지〉(1586)에는 ‘모매’로 표기됨. ¶모로매 : 必 모로매 논 디라〈훈언13ㄱ〉 / 곧 이젯 이 모로매 애 맛볼 디니(卽事須嘗膽)「夔府書懷四十韻」〈두시3:5ㄱ〉.
주328)
아롤 디니 : 알 것이니.
주329)
녀름 짓 지븨셔 : 농사하는 집에서.
주330)
구틔여 : 구태여. 원문의 ‘敢’의 번역이다. ¶구틔여 : 太子ㅣ 구틔여 從티 아니대〈석상24:49ㄱ〉 / 구틔여 伊尹 周公ㅅ 地位예 다 屈原 宋玉 죄 오 줄 아니로다(不必伊周地 皆登屈宋才)「秋日···三十韻」〈두시3:10ㄱ〉.
주331)
브즈런호 : 부지런함을. 브즈런-+오+. ¶브즈런ᄒᆞ- : 두번 頂 니샤 브즈런호 뵈시니라〈월석18:16ㄱ〉 / 가멸며 貴호 반기 브즈런며(富貴必從勤苦得)「栢學士茅屋」〈두시7:31ㄴ〉.
주332)
니저리아 : 잊겠는가? 닞-+어+리+아. ¶닛- : 부텨 보 미 至極 첫 期約 닛고 즉자히 해 업데여 恭敬야 禮數대 魔王이 닐오 尊者ㅣ 엇뎨 期約애 그르 시니〈월석4:35ㄱ〉 / 너희 무른 어루 나 닛고 사괴욜 디로다(爾輩可忘年)「九月~兄弟」〈두시22:10ㄴ〉.
주333)
 : 뜬. ᄠᅳ-+ㄴ. ¶ᄠᅳ- : 눈 먼 龍도 누니  祥瑞 보고 讚嘆며〈석상3:42ㄱ〉 / 누늘  도 보놋다(張目視寇讐)「送韋···判官」〈두시22:37ㄱ〉.
주334)
으리와도미 : 거리를 둠이. 버ᇰ으리-+왇+오+ㅁ+이. ‘으리왇-’은 ‘버리왇-’으로도 쓰이며, ‘버리왇-’ 표기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으리왇- : 리 입을 으리왇고 더운 오좀을 브라〈구간1:78ㄴ〉 /  번 紫臺 으리왇고 朔漠애 니 가니(一去紫臺連朔漠)「詠懷古跡三首」〈두시3:68ㄱ〉 / 幽明의 逼迫호 으리와도미 어렵도다(難拒幽明迫)「白水···三十韻」〈두시7:26ㄱ〉 / 들에 란 마 사 무를 으리왇도다(喧已去人群)「題栢大兄弟山居屋壁二首」〈두시7:31ㄱ〉 / 다봇 지븻 興을 으리왇디 몯(不阻蓬蓽興)「同李太守~新亭」〈두시14:35ㄱ〉 / 나도  다  으리와도리라(吾亦離殊方)「雙燕」〈두시17:17ㄱ〉 / 곧 將次ㅅ 西ㅅ 녀그로 秦을 으리왇고져 컨마(即將西去秦)「奉贈~二十二韻」〈두시19:3ㄱ〉 / 요 주 누넷 가 아 리시 그 샤 으리와니(近者抉眼去其夫)「可嘆」〈두시25:9ㄴ〉 / 버리왇- : 읏드미 雷雨 버리와다(幹排雷雨猶力爭)「柟木爲風雨所拔歎」〈두시6:41ㄱ〉 / 녀름 지메 나라 버리와다쇼미 머도다(爲農去國賖)「爲農」〈두시7:5ㄴ〉 / 미 뷔여 生禪호 버리왇디 아니놋다(虛空不離禪)「宿贊公房」〈두시9:24ㄱ〉 / 매  드트를 버리와다  도다(鵰鶚離風塵)「奉贈鮮于京兆二十韻」〈두시19:11ㄱ〉.
주335)
회집(會集) :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이는 것. 집회(集會).
주336)
 : 맑은. ᄆᆞᆰ-+ᄋᆞᆫ. ¶ᄆᆞᆰ- : 眞實ㅅ 根源이 뷔여 괴외고 性智 고 괴외며〈월석1:月석보 서1ㄱ〉 / 洛陽ㅅ 큰 길헤 時節이 다시 거늘(累日喜得俱東行)「李鄠縣丈人胡馬行」〈두시17:31ㄴ〉.
주337)
아 : 아침을. 아ᄎᆞᆷ+ᄋᆞᆯ. ¶아ᄎᆞᆷ :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13:10ㄴ〉 / 아미어든 錦幪 리 흐렛더라(清旭散錦幪)「徃在」〈중간두시4:20ㄱ〉.
주338)
앗기노라 : 아끼노라. 앗기-+ᄂᆞ+오+라. ¶앗기- : 그딋 혼 조초 야 뉘읏븐  아니호리라 더니 이제 엇뎨 羅睺羅 앗기다〈석상6:9ㄱ〉 / 모 바사나 앗기논 배 업서(脫身無所愛)「壯遊」〈중간두시2:41ㄴ〉.
주339)
덕교(德敎) : 덕(德)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가르침.
주340)
버럿 : 벌려 있는. 벌-+어#잇-+ᄂᆞᆫ. ¶벌- : 두 鐵圍山  어드 해地獄이 버러 잇니라〈월석1:28ㄴ〉 / 森然히 버러 地軸이 올맷고(森羅移地軸)「冬日···帝廟」〈두시6:27ㄴ〉.
주341)
나라해 : 나라에. ‘나라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주342)
어두우니 : 어두우니. 어듭-+으니. ¶어듭- : 길흘 자 부텻긔로 가 저긔 城門애 내라 하 祭던  보고 절다가 忽然히 부텨 向  니즈니 누니 도로 어듭거늘〈석상6:19ㄴ〉 / 기리 모라 河洛이 어듭게 다(長驅河洛昏)「後出塞五首」〈두시5:33ㄱ〉.
주343)
이젯 : 지금의. ¶이젯 : 波羅㮈大王 이젯 내 아바님 閱頭檀이시고〈석상11:22ㄱ〉 / 君王 녯 자최 이젯 사미 賞玩니(君王舊跡今人賞)「越王樓歌」〈두시14:1ㄴ〉.
주344)
덕교(德敎)ㅣ : 덕교(德敎)가. 덕의 가르침이.
주345)
순후(淳厚) : 돈후(敦厚)하고 질박(質朴)함.
주346)
순후(淳厚)시도다 : 순후하시구나. 돈후하시구나. 두텁구나. 淳厚#ᄒᆞ-+시+구+나.
주347)
알유(猰㺄) :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고대 전설 속의 맹수 이름. 몸은 소, 얼굴은 사람, 발은 말의 모습을 하고 아이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주348)
기린(麒麟) : 고대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운 동물. 기(騏)는 수컷, 인(麟)은 암컷이다. 모양은 사슴과 같고 머리엔 뿔이 있으며 온 몸에 갑옷처럼 비늘이 있고 꼬리는 소꼬리 모양이라고 한다. 기린이 출현하면 세상에 성왕(聖王) 또는 성인(聖人)이 나올 징조로 여겼다.
주349)
음구유(音摳庾) : 음은 ‘구유’이다. 알(猰)은 ‘짐승 알’, ‘얼룩개 갈’, ‘개 갈’이다.
주350)
시어(侍御) : 앞의 주 참조. 관직명(官職名) 시어사(侍御史)의 약칭. 백관을 사찰하고 궐내에서 천자의 조명(詔命)을 받드는 등의 일을 맡았다.
주351)
인각(麟閣) : 기린각(麒麟閣). 한무제(漢武帝) 때 지은 것을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흉노족의 내복(來服)을 기념하여 12공신의 상을 모시고 그 명예를 표창했다는 누각이다. 이 12공신은 곽광(霍光), 장안세(張安世), 한증(韓增), 조윤국(趙允國), 위상(魏相), 병길(丙吉), 두연년(杜延年), 유덕(劉德), 양구하(梁丘賀), 소망지(蕭望之), 소무(蘇武) 등이다.
주352)
더러 료 : 덜어 버림을. 덜-+어 ᄇᆞ리-+오+ㅁ+ᄋᆞᆯ. ¶덜- : 節은 조디 아니 말란 더러쓸 씨라〈월석1:석보 서4ㄴ〉 /  더러 내야  옛 사 흐터 주어(减米散同舟)「解憂」〈중간두시2:63ㄴ〉.
주353)
듣고져 : 듣고자. 듣-+고져. ¶듣- : 귀예 됴 소리 듣고져 고해 됴 내 맏고져 이베 됴 맛 먹고져〈석상3:22ㄴ〉 / 갌콰 삸 미트로 農器 디유믈 듣고져 願노니(願聞鋒鏑鑄)「秋日···三十韻」〈두시3:10ㄴ〉.
주354)
조로이 : 중요하게. 조ᅀᆞ롭-+이. ¶조ᅀᆞ롭- : 조 고로 니건댄〈석상19:42ㄴ〉 / 조외- : 조왼 길헤 어느 나래 긴 戈戟을 말꼬(要路何日罷長戟)「秋風二首」〈두시10:27ㄴ〉 / 조로외- : 조로왼 길히  놉고 깁도다(要路亦高深)「西閣二首」〈두시14:20ㄴ〉 / 조ᅀᆞ로이 : 죠 기러 스싀로 세 번 디내 닐구믈 조로이 호라(紙長要自三過讀)「暮秋~侍御」〈두시19:20ㄴ〉 / 조ᅀᅩ로이 : 큰 지비 다가 기울면 梁棟 오져 조로이 너기리니(大厦如傾要梁棟)「古栢行」〈두시18:13ㄱ〉 / 조ᅀᆞᄅᆞ외- : 새려 아논 사미 조외다 야 니디 마롤디니(莫道新知要)「登白馬潭」〈두시13:31ㄱ〉.
주355)
너기고 : 여기고. 너기-+고. ¶너기-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2ㄴ〉 / 걔 너기샤 나라 니 아 마  아바 願 일우과라 시고〈석상3:25ㄱ〉 / 宮闈예 才人 야 드류리라 너기디 아니시니라(宮闈不擬選才人)「承聞···二首」〈두시5:23ㄱ〉.
주356)
기린(麒麟)에 : 기린각에.
주357)
그리요 :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리-+오+ㅁ+ᄋᆞᆯ. ¶그리- : 후엣 사미 그리메 그리고 일홈을 례이라 니라〈삼강(동경) 열:9ㄴ〉 / 진이 그리여 雲臺예 잇도다(圖畫在雲臺)「述古三首」〈두시3:57ㄱ〉 / 그림 : 畵 그림 그릴 씨라〈석상24:10ㄴ〉 / 자최 이 다매 그림 그린 後ㅣ로다(跡是雕牆後)「九成宮」〈두시6:3ㄱ〉.
주358)
짓고져 : 짓고자. 짓-+고져. ¶짓- : 須達이 王舍城으로셔 舍衛國에 올  길헤 二十 里예  亭舍옴 짓게 야〈석상6:23ㄱ〉 / 蛟龍 기피셔 거슯주믈 짓고(豺虎亂雄猜)「秋日···三十韻」〈두시3:8ㄴ〉.
주359)
경박(輕薄) : 말이나 행동이 경솔하고 천박함.
주360)
교도(交道) :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하는 도리.
주361)
누늘 : 눈을.
주362)
시서셔 : 씻어서. 싯-+어+셔. 15세기에는 ‘싯-’만 쓰이다가 근대국어부터 ‘씻-’이 쓰이며, 각자병서와 합용병서의 혼동으로 ‘-’ 표기도 보인다. 사동사와 피동사는 ‘싯기-’로 같은 형태이다. ¶싯- : 옷 며 발 싯고 니거늘〈석상11:25ㄱ〉 / 東海 기우려 乾坤 싯고져 노라(欲傾東海洗乾坤)「追酬···見寄」〈두시11:7ㄱ〉 / 싯기-(사동사) : 그  王과 上座와 比丘히 香湯로 菩提樹를 싯기니〈석상24:48ㄱ〉 / 믈 데여 내 발 싯기고(煖湯濯我足)「彭衙行」〈중간두시1:13ㄱ〉 / 싯기-(피동사) : 溫水 冷水로 左右에 리와 九龍이 모다 싯기니〈월천8ㄱ〉 / 불휘 믌 미틔 싯기여 그처디니 엇뎨 하 디시리오(根斷泉源豈天意)「柟木爲風雨所拔歎」〈두시6:41ㄱ〉 / - : 악명을 고져 아니랴마〈서궁28ㄴ〉 / 씻- : 내  씻쟈〈청노4:13ㄴ〉.
주363)
뷔워셔 : 비워서. 뷔-+우++어+셔. ¶뷔- : 그저긔 比丘히  爲頭 座 뷔워 아니 거늘 王이 무른대 耶舍ㅣ 對答호〈석상24:43ㄱ〉 / 치 뷔면 붓그러울가 저허(囊空恐羞澀)「空囊」〈두시3:25ㄱ〉.
주364)
구브며 펴믈 : 굽으며 폄을. 굽신거리거나 그렇게 하지 않음을. 굽-+으며 펴-+ㅁ+을. ‘굽다’는 자타동 양용동사의 타동사 용법이다. ¶굽-(타동사) : 諸天이 곳 비터니 無憂樹ㅅ 가지 절로 구버 오나 夫人이 올 소로 가질 자샤〈월석2:36ㄱ〉 / 올로 州縣이 가온  구버 니놋다(獨屈州縣卑)「奉送魏六丈佑少府之交廣」〈두시22:42ㄴ〉 / 굽-(자동사) 나못가지 구버 와  光 리더라(樹為曲枝蔭太子身)〈석상3:15ㄴ〉 / 諸根이 어둡고 鈍며 뎌르고 더럽고 손 고 발 절며 눈 멀오 귀 먹고 등 구버 닐온 마리 이셔도(諸根이 暗鈍며 矬陋攣躄며 盲聾背傴야 有所言說이라도)〈법화2:167ㄱ〉 / 펴-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2ㄴ〉 /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講殿闢書帷)「夔府書懷四十韻」〈두시3:4ㄱ〉.
주365)
므던히 : 무던히. 가볍게. 소홀하게. 므던-+이. 15세기 국어의 ‘므던히’는 ‘소홀하게’의 뜻이다. ¶므던히 : 네 뎌 나라 므던히 너겨 사오나 너 들 내디 말라〈석상20:36ㄴ〉 /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3:9ㄴ〉 /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百年從萬事)「遣悶」〈두시3:13ㄱ〉 / 되 겨지븐 烽燧 므던히 너기고(羌女輕烽燧)「寓目」〈두시3:23ㄴ〉 / 므더니 : 慢  므더니 너길 씨니〈석상9:13ㄴ〉 / 수를 자바셔 오 저주믈 므더니 너기고(把酒從衣濕)「徐步」〈두시3:27ㄴ〉 / 므던- : 王이 니샤 그러야도 므던니 이제 어듸 잇니고〈석상11:28ㄴ〉.
주366)
너기노라 : 여기노라. 너기-+ᄂᆞ+오+라.
주367)
교칠(膠漆) : 아교[膠]와 옻칠[漆]. 아교와 옻을 한데 섞으면 매우 견고하게 결합되기 때문에 교분이 두터운 우정, 매우 친밀한 우정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한나라 때 사람인 뇌의와 진중의 우정이 매우 두터웠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膠)와 칠(漆)을 섞으면 그것이 굳게 합하지만 그래도 뇌의(雷義)와 진중(陳重) 두 사람의 우정만큼 굳지는 못하다.”라고 하였다.
주368)
만고(萬古) : 오랜 세월 동안.
주369)
뇌진(雷陳) : 한나라 때 사람인 뇌의(雷義)와 진중(陳重).
주370)
진중(陳重) : 중국 후한(後漢)의 문신. 친구인 뇌의(雷義)와의 우정으로 유명하다. 일찍이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을 때 이를 뇌의에게 양보하였고, 그 후 뇌의도 무재(茂才)로 천거되어 이를 진중에게 양보했으나 관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체하였다고 한다.
주371)
뇌의(雷義) : 중국 후한의 문신. 무재과에 급제하여 그 자격을 진중에게 양보하였으나 자사(刺使)가 들어주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체하고 벼슬을 받지 않으므로 삼부(三府)에서 두 사람 모두 벼슬을 주었다.
주372)
로 : 땅으로. ᄯᅡㅎ+ᄋᆞ로.
주373)
여 : 하여금. ᄒᆞ-+이+어. ‘-로 ᄒᆡ여’는 현대국어의 ‘-로 하여금’으로 발전하였다.
주374)
너기게 디 말라 : 여기게 하지 말라. 너기-+게 ᄒᆞ-+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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