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양절(重陽節)을 말함. 이 시는 두보가 재주(梓州)에서 광덕(廣德) 원년(763) 중양절에 지은 것이라 한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옛날 명절의 하나이다. 1년 중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에는 복이 들어온다고 하여 1월 1일, 5월 단오(5일), 7월 칠석(7일) 등을 명절로 지내 왔다. 중양절이 되면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시를 읊거나 산수를 즐기기도 하였다.〈위키백과 참조〉
오[今日]+ㅅ(관형격 조사)#날[日]+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오늘날에. 오늘날. ¶오날 南湖애셔 고사리 노니 어느 사미 날 爲야 鄭瓜州 어드려뇨 先帝와 貴妃왜 다 寂寞호 荔枝 도혀 長安로 드러오놋다(오늘날 남호에서 고사리 캐니 어느 사람이 나를 위하여 정과주(鄭瓜州) 얻을 것인가? 선제와 귀비가 다 적막하되 여지(荔枝)는 도리어 또 장안으로 들어오는구나.)〈두시(초) 15:20ㄴ〉.
심(甚)+-(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심히. 이에 해당되는 원문의 한자는 ‘약(若)’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고(苦)’의 잘못으로 보인다. 이 글자가 ‘고(苦)’로 되어 있는 본이 있고, ‘심히’와 같은 번역은 ‘고(苦)’에 대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苦로이(괴롭게)’와 같이 언해하는 것이 적합하였을 것이다.
열[十]#[年]+ㅅ(관형격 조사)#일[事]+을(대격 조사). 십년의 일을. 십년 전의 일을. 천보(天寶) 14년(755) 처자를 만나러 장안을 출발해서 봉선현(奉先縣)으로 가고 있었다. 그 도중, 여산(驪山) 온천에서 현종이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환락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두보는 빈부의 차가 너무나도 큰 세상에 커다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