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대부(嚴大夫) 엄무(嚴武)를 가리킴. 엄무는 당시 어사(御史)로 조정에 돌아갔는데, 중승(中丞)에서 대부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 46세 때 성도에서 두보는 성도 윤(成都尹) 겸 검남서천절도사 엄무(嚴武)를 만났다. 엄무는 두보의 옛 친구로, 두보에게는 누구보다도 큰 후원자였다. 엄무는 두보보다 10년 연하였으나 세교(世交)도 있는 터였는데, 두보가 아무런 실권도 없으면서 엄무를 업신여기는 투로 취중에 비위를 건드렸다가 그를 격노케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두보가 50세(762) 때, 엄무가 서울로 소환되고, 성도 근처에서 서지도(徐知道)의 난이 일어나자 두보는 다시 난을 피해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51세(763) 1월, 9년에 걸친 안사의 난이 끝났으나 위구르족과 티베트의 침입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천 지방을 전전했다. 그런 중에 엄무가 다시 성도에 돌아오게 되어, 두보도 다음 해 3월에 성도의 완화초당으로 돌아왔다. 엄무는 두보를 천거해서 절도참모(節度參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으로 삼았다. 두보는 53세(765) 때 1월, 관직을 사퇴하고 다시 초당의 생활로 돌아왔다. 4월에 엄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유일한 후원자를 잃은 두보는 5월에 처자를 이끌고 배로 양자강을 내려와서 다시 표류하는 생활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