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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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 위제에게 드리며[贈韋左丞丈濟]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6ㄴ

贈韋左丞丈濟 주001)
증위좌승장제(贈韋左丞丈濟)
이 작품은 천보(天寶) 7년(748)에 지어졌는데, 두보 37세 때이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에 있었다. 위제는 천보 7년(748)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옮겼다. 시에서는 위제가 재상 가문 출신임을 칭송하면서 그가 재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궁핍하고 늙어가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한 사실을 자탄하면서 위제의 천거가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증위좌승장제
(좌승 위제 주002)
## 위제(韋濟)
?~?. 당나라 정주(鄭州) 양무(陽武) 사람. 조적(祖籍)은 옹주(雍州) 두릉(杜陵)이다. 위항(韋恒)의 동생이다. 현종 개원(開元) 때 견성령(鄄城令)을 지냈다. 황제가 백성을 안정시킬 계책을 묻자 대답한 사람이 2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의 대안이 가장 뛰어나 예천령(醴泉令)에 발탁되었다. 이후 네 번 승진하여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이르고, 외직으로 나가 태원윤(太原尹)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으로 칭송을 들었다. 천보(天寶) 중에 상서승(尙書丞)에 올랐고, 풍익태수(馮翊太守)를 끝으로 은퇴했다.
에게 드리며)

左轄頻虛位 今年得舊儒【唐制예 左右丞이 掌管轄省事니라】

左轄 주003)
좌할(左轄)
①별[星] 이름. ②좌승(左丞). 좌우승(左右丞)이 상서성(尙書省)을 일을 나누어 관할했기 때문에 좌승(左丞)을 ‘좌할’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조 주004)
조
자주. ¶太子ㅣ 조 王 出家야지다 거시〈석상 3:23ㄱ〉.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뷔더니 주005)
뷔더니
비더니. 뷔-[空]+더+니. ¶그저긔 比丘히  爲頭 座 뷔워 아니 거늘 王이 무른대 耶舍ㅣ 對答호〈석상 24:43ㄱ〉. 치 뷔면 붓그러울가 저허  낫 도 머믈워 두고 보노라(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空囊」〈두시 3:25ㄱ〉.
올 주006)
올
올해야. 오+ㄹ++. ¶올 : 내 올 오래 留티 아니호리라〈월석 25:13ㄴ〉. 萬里ㅅ 衡陽앳 그려기 올  北으로 가놋다(萬里衡陽鴈 今年又北歸)「歸鴈二首」〈두시 17:19ㄴ〉. - :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훈언 13ㄴ〉.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 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주007)
옛.
션 주008)
션
선비를. 션[士]+. ¶혀근 션 보시고 御座애 니르시니〈용가 82〉. 江漢애셔 가고져  나그내여 하  예  서근 션로라(江漢思歸客 乾坤一腐儒)「江漢」〈두시 3:40ㄱ〉.
얻도다

【한자음】 좌할빈허위 금년득구유【당나라 제도에 좌우승이 중서성(中書省) 주009)
## 중서성(中書省)
위진(魏晉)시대에 처음 설치된 관청 이름. 양진(梁陳) 시기에는 국가의 정사를 총괄했으며, 중서감(中書監) 1인, 중서령(中書令) 1인, 중서시랑(中書侍郞) 4인, 통사사인(通事舍人) 약간명으로 구성되었다. 제왕의 조명(詔命)을 관장하고 정치의 기무(機務)에 참여했다. 북위(北魏) 때 서대(西臺)로, 수대에 내사성(內史省)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봉각(鳳閣), 자미성(紫微省)에 이어 중서성으로 환원되었으며, 상서성(尙書省), 문하성(門下省)과 함께 3성(省)을 형성했다. 원대에는 상서성의 업무를 흡수하여 권함이 매우 높았다. 명대에 이르러 1380년 호유용(胡惟庸)의 반란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의 일을 나누어 관할했다.】
【언해역】 좌승이 자주 자리 비더니 올해야 옛 선비를 얻도다!
*시 구절 해석 : “좌승이 자리가 자주 비었는데, 올해에야 옛 선비를 얻었도다.”라는 뜻으로, 좌승의 자리가 오래 비어 있었는데, 위제(韋濟)가 부임해서 비로소 올바른 관리를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相門韋氏在 經術 주010)
경술(經術)
①유교의 경전에 의거해서 이루어지는 정치상의 기능과 정책. ②경학(經學)과 같은 뜻으로,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漢臣須【漢ㅅ 韋賢 주011)
위현(韋賢)
기원전 144~기원전 62. 전한 노국(魯國) 추현(鄒縣) 사람. 자는 장유(長孺)고, 시호는 절후(節侯)다. 사람됨이 질박하고 욕심이 없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 무제(武帝) 때 경학박사(經學博士)에 임명되고, 급사중(給事中)에 올랐다. 광록대부첨사(光祿大夫僉事)로 옮기고, 대홍려(大鴻臚)에 올라 소제(昭帝)에게 『시경(詩經)』을 강의했다. 일찍이 곽광(霍光) 등과 함께 선제(宣帝)의 옹립을 논의해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선제 본시(本始) 중에 승상(丞相)을 지냈고, 부양후(扶陽侯)에 봉해졌다. 노시위씨학(魯詩韋氏學)의 개창자로, 『시경』과 『상서(尙書)』에 두루 통해 ‘추로대유(鄒魯大儒)’로 불렸다.
과 子玄成이 皆以經術로 爲相니라】

宰相ㅅ 家門에 韋氏 잇니 주012)
잇니
있으니. 잇-[有]++니.
經術 주013)
경술(經術)
경술하는. 經術#-+.
漢ㅅ 臣下 求야 시놋다 주014)
시놋다
쓰시는구나. -[用]+시++오+ㅅ+다. 15세기에 ‘-’는 ‘사용하다[用]. (맛이) 쓰다[苦]’, ‘쓰-’는 ‘(글을) 쓰다[書], (갓을) 쓰다[冠]’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한자음】 상문위씨재 경술한신수【한나라 때의 위현(韋賢)과 아들 위현성(韋玄成) 주015)
## 위현성(韋玄成)
?~기원전 36. 전한 노국(魯國) 추현(鄒縣, 산동성) 사람. 자는 소옹(少翁)이고, 위현(韋賢)의 막내아들이다. 낭(郞)이 되었다.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항상 겸손했다. 명경(明經)으로 간대부(諫大夫)에 발탁되고, 대하도위(大河都尉)로 옮겼다. 나중에 지위를 형에게 양보했는데, 선제(宣帝)가 그 절조를 가상하게 여겨 하남태수(河南太守)로 삼았다. 선제의 명으로 제유(諸儒)들과 석거각(石渠閣)에서 오경(五經)의 동이(同異)를 의논했다. 경학에 밝아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소부(少府)가 되고, 태자태부(太子太傅)를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까지 올랐다. 영광(永光) 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4언시 짓기를 좋아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작품은 「자핵(自劾)」과 「계시자손(戒示子孫)」 두 편뿐이다.
이 모두 경술(經術)로 재상이 되었다.】
【언해역】 재상의 가문에 위(韋) 씨 있으니, 경술(經術)하는 한(漢)의 신하를 구하여 쓰시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재상의 가문에 위 씨가 있나니, 경술하는 한나라의 신하를 구하여 썼다”라는 뜻으로, 한나라 때 위 씨 가문처럼 위제(韋濟) 역시 그런 가문 출신이라는 말이다.

時議歸前列 天倫恨莫俱【前列은 猶前軰니 謂時議예 以韋濟로 擬前軰也ㅣ라 穀梁傳 주016)
곡량전(穀梁傳)
원명은 『춘추곡량전』. 노(魯)나라 사람 곡량적(穀梁赤)이 『춘추』를 전주(傳注)한 책인데, 11권으로 되어 있다.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의 춘추시대 노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책. 공자가 편집하고, 또 약간의 첨삭을 가하여 유가의 교과서인 오경의 하나가 되었다. 그 전주본에는 이외에 공양고(公羊高)의 『춘추공양전』,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이 있어, 이 셋을 합쳐 보통 춘추삼전이라고 한다.
에 兄弟 天倫 주017)
천륜(天倫)
①천연의 순서. 형제를 일컫는 말. ②부자형제(父子兄弟) 등의 친속 관계. ③천리(天理).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也ㅣ라 니 此 悼濟弟給事中洹之卒也ㅣ라】

時節ㅅ 議論 前列에 보내니 주018)
보내니
보내니. 보내-[送]++니.
하 주019)
하
하늘의. 하+ㅅ.
次第 주020)
차제(次第)
차례를. 次第+. ‘동음(東音)’이라 부르는 15세기 당시 현실한자음으로 재구하면 ‘次第’는 [*·:뎨]이겠지만, 훈민정음 창제 즈음에는 이미 ‘례’로 발음하였다. 신숙주의 ‘동국정운 서’(1448)에 따르면, “端(ㄷ)이 來(ㄹ)됨은 오직 종성만이 아니요 ‘次第’의 ‘第’와 ‘牡丹’의 ‘丹’과 같은 부류로 초성이 변한 것 또한 많으며 …”라고 하였고, 당대 문헌에도 ‘·례·로[序]’〈중간두시 10:13ㄱ〉와 ‘第··례:뎨’〈훈몽 상:18ㄱ〉, ‘牧·모丹란〈진언 13ㄴ〉 등이 보인다. ‘차제(次第)’는 남한에서 만든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와 주021)
와
나란히 하여. 대적하여. -[竝]+아. ¶둘히 서르 도아 반기 와 行티 아니니라〈영가 하:99ㄱ〉. 엇뎨 묏 미틔 鬼神의 모도미 업수 알리오 氣運이 嵩山 華山과 다 와슈믈 마 아노라(那知根無鬼神會 巳覺氣與嵩華敵)「閬山歌」〈두시 13:31ㄴ〉.
잇디 주022)
잇디
있지. 잇-[有]+디.
몯호 주023)
몯호
못함을. 몯#-+오+ㅁ+.
슬놋다 주024)
슬놋다
슬퍼하는구나. 슳-++오+ㅅ+다.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슳- : 도라 드르샤 世間 슬흔 미 디트시니라〈석상 3:17ㄱ〉. 亂 맛나 楚ㅅ 樓 우희 오 사미 슬코 麟 슬허 尼丘山 시니 우르시니라(豺遘哀登楚 麟傷泣象尼)「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ㄱ〉.

【한자음】 시의귀전렬 천륜한막구【전열(前列)은 전배(前輩)와 같으니, 당시 논의에 위제(韋濟)를 전배로 생각했음을 말했다. 『곡량전』에 “형제는 천륜이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위제(韋濟)의 동생 급사중(給事中) 위원(韋洹)이 죽은 일을 애도한 것이다.】
【언해역】 시절의 의론(議論)은 전열(前列)에 보내니 하늘의 차례를 대적하고 있지 못함을 슬퍼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시절의 논의는 전배(前輩)에게 공을 돌려보내니, 하늘의 순서를 모두 갖추지 못함을 한스러워 한다.”라는 뜻으로, 조정의 논의가 위제(韋濟)에게도 귀결되지만, 동생 위원이 죽어 천륜이 무너진 것은 안타깝다는 말이다.

鴒原 주025)
영원(鴒原)
척령재원(鶺鴒在原). 형제가 급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서로 도움. 두보(杜甫)의 시(詩)에 나온 말로, 형제간의 우애를 말한다.
荒宿草 鳳沼 주026)
봉소(鳳沼)
봉황지(鳳凰池). 중서성(中書省)을 지칭하는 말. 또는 거문고 밑바닥에 낸 구멍. 봉지(鳳池).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7ㄱ

亨衢 주027)
형구(亨衢)
①사통팔달(四通八達)한 큰 길. ②보통 아름답고 좋은 전정(前程)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 뜻이 함께 쓰였다.
【宿草 陳根也ㅣ니 指洹之死ㅣ라 中書ㅣ 深邃 晉人이 比天上鳯凰池 주028)
봉황지(鳯凰池)
대궐 안에 있는 연못. 곁에 중서성(中書省)이 있었던 데서 중서성 또는 재상(宰相)의 직위를 뜻한다.
니라】

鶺鴒 주029)
척령(鶺鴒)
①할미새.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편에 나오는 새 이름. 『모전(毛傳)』에 보면, 이 새는 날 때 울고 들까불면서 큰 일이 난 듯이 날아다니므로, 형제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음을 비유한다고 한다. ②형제(兄弟). 여기서는 두 가지 뜻이 함께 쓰였다.
의 두들게
주030)
척령(鶺鴒)의 두들게
척령의 언덕에. 鶺鴒+의 두듥[原]+에. ¶아래  두들기 절로 되오와니〈월석 2:67ㄴ〉. 믌 올핸  蜃氣 무텻거 싣나모 션 두들게 프른 묏 그티 重疊도다(水鄉霾白蜃 楓岸疊靑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ㄱ-14ㄴ〉.
무근 주031)
무근
묵은. 묵-[宿]+은. ¶묵- : 삼년 무근  닷 홉을 사 졋 닷 홉애 라 프러〈구간 1:18ㄴ〉. 이 문을 도라본 마 무근 자최 외도소니(此門轉眄已陳迹)「曉發公安數月憇息此縣」〈중간두시 2:17ㄴ〉.
프리 주032)
프리
풀이. 플[草]+이. ‘믈, 블, 플, ’은 ‘ㅁ, ㅂ, ㅍ, ㅽ’의 원순성의 영향으로 ‘ㅡ’가 ‘ㅜ’로 변화되어 ‘물, 불, 풀, ’이 되었다.
거츠럿고 주033)
거츠럿고
거칠어 있고. 거츨-[荒]+어#잇-+고. ¶거츨- : 四趣의 구즌 와 生死業因은 갓 거츨오 더러 藥草ㅣ 아니라〈월석 13:38ㄱ〉. 뫼히 거츨오 사미 젹고 히 幽僻니 아 나조 아답도다(山荒人民少 地僻日夕佳)「柴門」〈두시 6:47ㄴ〉.
鳳凰 모샌 주034)
모샌
못엔. 못[池]+에+ㄴ.
훤 주035)
훤
훤한. 훤++ㄴ.
길히 주036)
길히
길이. 길ㅎ+이.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니도다 주037)
니도다
이어 있도다. 닛-[連]+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어 잇- : 오 안자 잇더시니 도 五百이 그윗 거슬 일버 精舍ㅅ 겨로 디나가니〈월석 1:6ㄱ〉. 기튼 치위예 곳과 플왜 디어 잇니(餘寒折花卉)「送大~遂停니라」〈두시 8:70ㄱ-ㄴ〉. -앳/엣- : 阿僧祗前世劫에 님금 位ㄹ 리샤 精舍애 안잿더시니〈월석 1:2ㄱ〉.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惣戎皆插侍中貂)「諸將五首」〈두시 5:44ㄱ〉. -앗/엇- : 곧 미 두려이 가 너비 國土 머것다 시니〈능엄 2:63ㄱ〉. 노 臺  부 믌  구벗도다(曾臺俯風渚)「雨三首」〈두시 12:13ㄴ〉.

【한자음】 영원황숙초 봉소접형구【숙초(宿草)는 묵은 뿌리니 위원(韋洹)의 죽음을 가리킨다. 중서(中書)가 깊고 아득하자 진(晉)나라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봉황지에 견주었다.】
【언해역】 척령(鶺鴒)의 두둑에 묵은 풀이 거칠어 있고, 봉황의 못엔 훤한 길이 이었도다!
*시 구절 해석 : “척령의 언덕에 묵은 풀이 거칠었고, 봉황의 연못은 훤한 길로 이어졌다.”라는 뜻으로, 동생 위원의 죽음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중서성의 중요한 직위는 중요한 자리라는 말이다.

有客雖安命 주038)
안명(安命)
운명(命運)을 편안하게 받아들임.
衰容豈壯夫【客은 ㅣ 自謂라】

잇 나그내 주039)
잇 나그내
있는 나그네. 잇-[有]+ 나그내. 원문의 ‘有客’에 대한 번역이다. 여기의 ‘有’는 ‘어떤, 한’의 의미로 불특정 명사 표지인데, 이런 용법의 ‘有’에 대해서 언해에서는 ‘잇-’으로 번역되거나 아예 번역되지 않았다. ‘有客’에 대해서 『두시언해』에서는 ‘잇 소니〈두시 7:19ㄴ〉〈두시 22:11ㄱ〉〈두시 23:24ㄱ〉, 잇 나그내〈두시 21:1ㄱ〉, 나그내〈두시 25:26ㄱ〉’ 등으로 언해되었고, ‘有’가 동사로 쓰였을 경우, ‘나그내 잇노니〈두시 8:10ㄴ〉’로 언해되었다.
비록 天命 주040)
천명(天命)
하늘의 뜻. 하늘이 주재(主宰)하는 명운(命運).
을 安受나
주041)
비록 천명(天命)을 안수(安受)나
비록 천명을 안수하나. 15세기의 ‘비록’은 연결어미 ‘{-어/고}도’나 ‘-나’와 호응한다. ¶비록~-고도 : 비록 사 무레 사니고도〈석상 6:5ㄱ〉. 비록~-어도 : 비록 그르 야 지 이리 이셔도〈석상 9:6ㄴ〉. 다 物이로 精氣 혼 고 어느 알리오 비록 龍이 외디 몯야도  神奇호미 잇도다(豈知異物同精氣 雖未成龍亦有神)「沙苑行」〈두시 17:26ㄴ〉. 비록~-나 : 漢德이 비록 衰나〈용가29〉. 일우미 비록 마 하나〈월석 1:월인석보 서15ㄴ〉. 澤國에셔 비록 비 브즈러니 라나 더운 하해 매 즌기 녇도다(澤國雖勤雨 炎天竟淺泥)「水宿 ··· 群公」〈두시 3:19ㄴ〉. 참조; 비록 : 縱 비록 논 디오〈월석 1:월인석보 서17ㄱ〉.
늘근 주042)
늘근
늙은. 늙-[老]+은.
어니 주043)
어니
모습이니. 모습이거니. [樣]+이+거+니. ¶-이거니 : 나히 一百 셜흐니어니 잇더니〈석상 24:19ㄱ〉. 吾之流落不遇ㅣ 如此ㅣ어니 豈能立功於時世리오「水宿 ··· 群公」〈두시 3:21ㄴ〉. -어니 :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석상 9:13ㄱ〉. 도혀 妻子 보리어니 시르미 어 이시리오 쇽졀업시 詩書 卷秩야셔 깃거 미칠 호라(却看妻子愁何在 漫卷詩書喜欲狂)「聞官 ··· 河北」〈두시 3:24ㄱ〉.
엇뎨 주044)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이와 관련된 낱맡로 ‘엇디’로 『두시언해』에서 보인다.
壯 사미리오 주045)
사미리오
사람이겠는가? 사+이+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한자음】 유객수안명 쇠용기장부【‘객(客)’은 두보가 자신을 일컬은 것이다.】
【언해역】 있는 나그네 비록 천명을 안수(安受)하나, 늙은 모습이니 어찌 장(壯)한 사람이겠는가?
*시 구절 해석 : “있는 나그네는 비록 천명을 편안히 받지만, 늙은 용모를 장부라 하겠는가?”라는 뜻으로, 두보 자신은 비록 천명에 편안하지만 이미 늙었으니 장부라 부르지는 못하겠다는 말이다.

家人憂几杖 甲子混泥途几杖 주046)
궤장(几杖)
궤(几)는 팔을 의지하는 목기(木器)로, 곧 소안(小案)이며, 장(杖)은 지팡이다. 둘 다 노인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퇴로(退老, 致仕)를 허락하지 않을 때 흔히 임금이 주는 것이다.
은 老人의 所憑持니 此 言家人이 憂其老也ㅣ라 甲子 주047)
갑자(甲子)
①갑(甲)은 천간(天干)의 첫 번째이고, 자(子)는 지간(地干)의 첫번째다. 옛날에 천간과 지간으로 교차 배열하여 갑자(甲子)·을축(乙丑)·병인(丙寅)처럼 연결시켰는데, 보통 ‘갑자’라 불렀다. 갑자에서 시작해 계해(癸亥)에서 끝나 모두 60개가 되었기 때문에 육십갑자(六十甲子)라 불렀다. 옛 사람들은 날짜나 연도를 이것으로 표기했다. ②일반적으로 세월(歲月)이나 광음(光陰)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 猶嵗月이라】

지븻 주048)
지븻
집의. 집+의+ㅅ. ‘-의’는 처격, ‘-ㅅ’은 속격조사이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사 주049)
사
사람은. 사+.
几와 막다히 주050)
궤(几)와 막다히
안석과 지팡이. 几+와 막다히. 모두 노인의 몸을 지탱해 주는 도구이다. ‘막다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야주믈 주051)
야 주믈
해 줌을. 즉 보좌해 줌을. ¶-어 주- :  婆羅門 보샤  請커늘 즉재 글어 주시니다〈월석 20:42ㄴ〉. 大闕ㅅ 블근 헤셔 화 주시 布帛 本來로 貧寒 겨지브로브터 나니(彤庭所分帛 本自寒女出)「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5ㄱ〉.
시름니 주052)
시름니
걱정하니. 염려하나. 시름#-++니. ‘시름다’는 『두시언해』에서 ‘시름다’도 쓰였는데, ‘시름외-, 시름도외-, 시름외-’ 등으로 활용하였다. ¶須達이 지븨 도라와  무든 옷 닙고 시름야 잇더니〈석상 6:27ㄱ〉. 시름얀 곧마다 숤盞 求노라(愁徵處處盃)「秋日 ··· 三十韻」〈두시 3:9ㄴ〉. 시름외- : 시름왼 누네 서리와 이슬를 보노니(愁眼看霜露)「遣懷」〈두시 3:25ㄱ〉. 시름왼 데 되 픗뎌 부 나조히여(愁思胡笳夕)「喜達行在所三首」〈두시 5:5ㄴ〉. 시름왼 드로 구룸 髻髮을 리니(愁思拋雲髻)「卽事」〈두시 5:17ㄱ〉. 天子ㅣ 처믜 시름왼 들 시고(天子初愁思)「洛陽」〈두시 5:18ㄱ〉. 우희 잇 녀 구루미 시름외도다(上有行雲愁)「遣興三首」〈두시 5:34ㄴ〉. 鸚鵡ㅣ 시름왼 들 머것니(鸚鵡含愁思)「鸚鵡」〈두시 17:17ㄱ〉. 늘근  시름왼 디 더레라(衰顔减愁思)「題衡 ··· 陸宰」〈두시 6:23ㄱ〉. 蒼梧애 구루미 正히 시름외도다(蒼梧雲正愁)「同諸 ··· 寺塔」〈두시 9:33ㄱ〉. 시름왼  올로 東녀글 向야 흐르다(愁時獨向東)「秦州雜詩二首」〈두시 9:39ㄴ〉. 北녀그로 흐르 미라 일훔다(水號北流泉)「十二月一日三首」〈중간두시 10:45ㄱ〉.  滻水ㅅ 길히 시름외오(悄悄素滻路)「苦雨 ··· 徵士」〈두시 12:17ㄱ〉. 故國은 시름왼 눈썹 밧기로소니(故國愁眉外)「雨晴」〈두시 12:37ㄴ〉. 먼  시름왼  일 門을 다도라(絕塞愁時早閉門)「返照」〈두시 12:38ㄴ〉. 시름왼   드리엇니(愁邊有江水)「又雪」〈두시 12:40ㄴ〉. 城이 롣고 길히 기울오 旌旆ㅣ 시름외니(城尖徑吳旌旆愁)「白帝城最高樓」〈두시 14:8ㄴ-9ㄱ〉. 燕ㅅ 겨지븨 프른 눈서비 시름외도다(燕姬翠黛愁)「陪諸 ··· 二首」〈두시 15:30ㄴ〉.  酒觴로 시름왼 미 딘 호 爲야 느치노라(急觴爲緩憂心擣)「蘇端 ··· 醉歌」〈두시 15:39ㄱ〉. 皇陂 두듥 北에 시름왼 亭子ㅣ 지도다(皇陂岸北結愁亭)「題鄭十八著作丈」〈두시 21:40ㄱ-ㄴ〉. 皇陂 두듥 北에 시름왼 亭子ㅣ 지도다(皇陂岸北結愁亭)「題鄭十八著作丈」〈두시 21:40ㄱ-ㄴ〉. 프른 뫼헤 旌패 시름외도다(蒼山旌旆愁)「送韋 ··· 判官」〈두시 22:38ㄱ〉. 시름왼 돌 양 改變놋다(慘慘石狀變)「積草嶺」〈중간두시 1:23ㄱ〉. 모딘 더운 병은 足히 시름외디 아니커니와(毒瘴未足憂)「次空靈岸」〈중간두시 1:47ㄴ〉. 훤히 노래 브로니 모 시름외도다(放歌頗愁絕)「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4ㄱ〉. 涇渭옛 사미 시름왼 양 훤야(涇渭開愁容)「徃在」〈중간두시 4:24ㄱ〉. 시름도외- : 故鄕 뫼햇 고사리 시름도외얫거니라 노라(愁寂故山薇)「歸鴈二首」〈두시 17:19ㄴ〉. 긴 뎟소리 뉘 能히 시름도왼 들 亂오니오(長笛誰能亂愁思)「追酬 ··· 見寄」〈두시 11:7ㄴ〉. 이리 다며 興이 니 시름도왼 디 몬다(事殊興極憂思集)「渼陂行」〈두시 13:12ㄱ〉. 시름외- : 노피 乾坤을 보니  可히 시름외니(高視乾坤又可愁)「相逢歌贈嚴二別駕」〈두시 25:31ㄱ〉. 시름도이 : 시름도이 絶境 리고(忡忡去絕境)「發同谷縣」〈중간두시 1:26ㄱ〉.
甲子애 주053)
갑자(甲子)애
세월에. 甲子+애. 여기서의 ‘甲子’는 세월을 가리킨다. 위의 주를 참조할 것.
주054)
진. 즐-[泥]+ㄴ. ¶四生 네 가짓 나 거시니 즌 듸셔 나 것과〈석상 3:23ㄴ〉. 向야 가논  기 즈니 그듸 호니 사로 여 여위에 다(所向泥活活 思君令人瘦)「九日寄岑參」〈두시 11:25ㄴ〉.
길헤 주055)
길헤
흙길에. #길ㅎ+에.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은 16세기까지는 아주 우세하게, 17세기에는 비슷하게, 18세기에는 세력이 아주 축소된다. 한편 ‘흙’은 16세기 〈소학언해?(1586)에 보이다가 17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간다. ¶明道先生이 날이 도록 단히 안자 겨심애 흘그로 근 사 더시니〈소학언해6:122ㄱ〉.
섯것노라 주056)
섯것노라
섞여 있노라. -[混]+어#잇-++오+라.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한자음】 가인우궤장 갑자혼니도【‘궤장(几杖)’은 늙은이가 의지해 기대는 바이니, 이것은 집안사람이 늙은 것을 걱정한다는 말이다. ‘갑자(甲子)’는 세월을 말한다.】
【언해역】 집의 사람은 안석(案席)과 지팡이 해 줌을 걱정하니, 세월에 진흙길에 섞여 있노라.
*시 구절 해석 : “집안사람이 안석과 지팡이를 해 줌을 걱정하나니, 세월이 진흙길에 섞여 있네.”라는 뜻으로, 자신이 늙어 가족들이 지팡이를 내주니 이 또한 걱정되지만, 세월은 안정되지 못하고 진흙길처럼 험악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不謂矜餘力 還來 주057)
알(謁)
몸소 찾아가 만나 뵙는 일. 보통 임금이나 황제를 신하가 만날 때 쓴다. 배알(拜謁).
大巫 주058)
대무(大巫)
①우두머리거나 법술(法術)이 고명(高明)한 무사(巫師)를 가리키는 말. ②자신이 경복(敬服)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두 가지 모두의 뜻으로 쓰였다.
陳琳 주059)
진림(陳琳)
?-217. 후한 말기 광릉(廣陵) 사람. 자는 공장(孔障)이다.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이다. 처음에 대장군 하진(何進)의 주부(主簿)였는데, 하진이 제후들을 불러 환관을 죽여 없애고자 했을 때 이를 저지했다. 나중에 기주(冀州)로 피난갔는데, 원소(袁紹)에게 귀의하여 기실(記室)로 있었다. 원소가 조조(曹操)를 토벌하려 할 때 그에게 명하여 격문(檄文)을 쓰게 했다. 조조가 기주를 점령하자 포로로 잡혔는데 재주를 아껴 사면하고 종사(從事)로 삼았다. 사공군모좨주(司空軍謀祭酒)로 기실을 맡았다. 관직은 문하독(門下督)까지 올랐다. 전장서기(典章書記)에 능했다. 저서에 『진기실집(陳記室集)』이 있다.
小巫 주060)
소무(小巫)
①무사(巫師) 가운데 법술(法術)이 낮은 사람. ②학업(學業)이나 기예(技藝)가 낮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 ③나이가 어린 여무(女巫).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ㅣ 見扵大巫ㅣ라 다 此 ㅣ 望左丞之矜憐야 來謁也ㅣ라】

나 주061)
나
남은. 남-[餘]+.
히메 주062)
히메
힘에. 힘+에.
어엿비 주063)
어엿비
불쌍히. 어엿#브-+이. ¶어엿비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내 賤役 히 너겨 뇨 슬노니 뉘 幽棲 고파 요 어엿비 너기니오(自傷甘賤役 誰愍強幽棲)「水宿 ··· 群公」〈두시 3:21ㄱ〉. 어엿브다 : 艱難며 어엿븐 사 쥐주어 거리칠 號 給孤獨이라 더라〈석상 6:13ㄱ〉. 柝 두드리닌 可히 어엿븐 사미로소니 옷 업스닌 어딋 힌고(擊柝可憐子 無衣何處村)「西閣夜」〈두시 14:22ㄴ〉.
너기리라 주064)
너기리라
여기리라. 여길 것이다. 너기-[謂]+리+라.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제 노포라 야 衆生 프귀만 너기니〈석상 6:28ㄴ〉. 郞 외야쇼매 머리 셰요 므던히 너기노니(爲郞從白首)「歷歷」〈두시 5:17ㄴ〉.
너기디 주065)
너기디
여기지. 너기-[謂]+디.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7ㄴ

아니면 도로 와 큰 스을 주066)
스을
스승을. 스[師]+을. 〈중간본〉은 ‘스승을’으로 되어 있다.
뵈리아 주067)
뵈리아
뵐 것인가? 뵈-[見]+리+아. 선어말어미 ‘리’와 종결어미 ‘아’가 결합한 ‘-리아’의 형태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 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큰 바래 能히 고기 낫골  업스리아  구루메  리 잇니라(巨海能無釣 浮雲亦有梯)「水宿 ··· 群公」〈두시 3:21ㄱ〉.

【한자음】 불위긍여력 환래알대무【진림(陳琳)이 말하기를, “소무(小巫)는 대무(大巫)에 보인다.”라고 했다. 이것은 두보가 좌승(佐丞)이 자신을 긍휼히〈!--이를 히로 수정함--〉 여겨 만나 뵙기를 희망한 것이다.】
【언해역】 남은 힘에 불쌍히 여기리라 여기지 아니하면 도로 와 큰 스승을 뵐 것인가?
【구절풀이】 ###위제(韋濟) : ?~?. 당나라 정주(鄭州) 양무(陽武) 사람. 조적(祖籍)은 옹주(雍州) 두릉(杜陵)이다. 위항(韋恒)의 동생이다. 현종 개원(開元) 때 견성령(鄄城令)을 지냈다. 황제가 백성을 안정시킬 계책을 묻자 대답한 사람이 2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의 대안이 가장 뛰어나 예천령(醴泉令)에 발탁되었다. 이후 네 번 승진하여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이르고, 외직으로 나가 태원윤(太原尹)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으로 칭송을 들었다. 천보(天寶) 중에 상서승(尙書丞)에 올랐고, 풍익태수(馮翊太守)를 끝으로 은퇴했다.
*시 구절 해석 : “남은 힘으로 어여삐 여기리라 일컫지 않으시면, 도로 와서 큰 스승을 뵙겠다.”라는 뜻으로, 두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어여삐 여기지 않는다고 하면 큰 스승으로 찾아가 뵙고 싶다는 말이다.

歲寒 주068)
세한(歲寒)
①추운 계절이 됨. 또는 겨울. 1년 가운데 가장 추운 시절. ②사정이 종극終極)에 이르렀음을 비유하는 말. ③노년(老年)을 비유하는 말. ④곤경(困境)이나 난세(亂世)를 비유하는 말. ⑤어려움을 당해도 충정(忠貞)이 꺾이지 않는 절조(節操) 또는 품행(品行).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顧遇 주069)
고우(顧遇)
능력이나 업적을 인정받거나 안면이 있어서 우대를 받는 일.
日暮且踟 주069_1)
*〈중간본〉은 ‘’로 되어 있다.
【謂韋以松栢의 嵗寒不變之心으로 眷遇扵甫 甫亦老年에 不忍去韋也ㅣ라 踟蹰 주070)
지주(踟蹰)
①천천히 가는 모양. 또는 서성거리는 모양. ②망설임. 주저함. ③머무름. 머물러 쉼. ④순간(瞬間). 잠시(暫時). ⑤서로 잇닿은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不進皃ㅣ라 주070_1)
*〈중간본〉은 ‘不進ㅣ라’로 되어 있다.

歲寒앳 주071)
세한(歲寒)앳
세한의. 歲寒+애+ㅅ.
로 주072)
로
마음으로. +로. 〈중간본〉은 ‘로’로 되어 있다.
도라보아 주073)
도라보아
돌아보아. 돌-+아#보-+아. ‘돌아보-’는 ‘顧’의 뜻이다.
待遇 주074)
대우(待遇)
대우하므로. 待遇#-+ㄹ. ¶凝滑 六根이  니 일후미 六入이라〈월석 2:21ㄷ〉. 귀 머글 모로매 字 어 뵈니 마리 뎌니 빈혀 이긔디 몯놋다(耳聾須畫字 發短不勝篦)「水宿 ··· 群公」〈두시 3:19ㄴ〉.
주075)
날의. 하루의. +ㅅ. 원문의 ‘日’에 대한 번역이다.
나조 주076)
나조
저녁에. 나조ㅎ[夕]+. ‘나조ㅎ’는 ‘저녁’의 뜻으로 ‘ㅎ’말음체언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가 둘 다 쓰였다. 후자는 ‘낮’의 의미도 있었다.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나조ㅎ : 孔子ㅣ 니샤 아 道理 드르면 나조 주거도 리라 시니라〈석상 20:13ㄱ〉.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 13:10ㄴ〉.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나죄 : 孔聖이 나죄 주구믈 히 너기니〈월석 18:32ㄱ〉. 먼 두들게  몰애 허여고 니 뫼해 나죄 비취옛  븕도다(遠岸秋沙白 連山晩照紅)「秋野五首」〈중간두시 10:32ㄱ〉. 나죄[晝] :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머므노라 주077)
머므노라
머무노라. 머믈-[留]++오+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석상 21:37ㄱ〉. 群公이 모다 힘니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群公紛戮力 聖慮窅裴佪)「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한자음】 세한잉고우 일모차지주【위제(韋濟)가 소나무와 잣나무가 날씨가 추워져도 변치 않는 그 마음으로 환대해 주면 두보 역시 나이는 늙었지만 차마 위제(韋濟)를 떠나지 않겠음을 말했다. ‘지주(踟蹰)’는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언해역】 세한(歲寒)의 마음으로 돌아보아 대우(待遇)하므로 하루의 저녁에 또 머무노라.
*시 구절 해석 : “추운 날씨에도 마음으로 돌아보아 대우하면, 날이 저물었어도 머뭇거리겠다.”라는 뜻으로, 세상이 각박해졌어도 돌아보아 준다면 늙은 나이라도 물러가지 않고 머물겠다는 말이다.

老驥思千里 주078)
노기복력 지재천리(老驥伏櫪 志在千里)
천리마가 늙어, 비록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리를 달리는 데 있다는 말로, 영걸(英傑)은 늙어서도 여전히 큰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의 〈보출하문행(步出夏門行)〉에 나오는 구절이다.
飢鷹待一呼魏武 주079)
위무(魏武)
조조(曹操)를 가리키는 말. 155~220. 위무제(魏武帝). 후한 말기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 자는 맹덕(孟德)이고, 묘호는 태조(太祖)며,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본성은 하후(夏侯)씨고, 조숭(曹嵩)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권모술수에 능했고, 나이 스물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郞)이 되었다가 돈구령(頓丘令)으로 옮겼다. 기도위(騎都尉)가 되어 황건적(黃巾賊) 토벌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초평(初平) 3년(192) 연주목(兗州牧)이 되어 황건군의 항복을 유도해 정예병을 청주병(靑州兵)으로 편입시켰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다. 건안(建安) 13년(208) 승상(丞相)이 되고,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했다. 이후 세력이 강남(江南)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지만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다. 연강(延康) 원년(220) 1월 낙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고,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성을 가져오게 했다. 저서에 『손자약해(孫子略解)』와 『병서접요(兵書接要)』, 『조조집(曹操集)』이 있다.
ㅣ 云老𩦸伏櫪여셔 志在千里라니 皆ㅣ 自喻ㅣ라】

늘근 주080)
늘근
늙은. 늙-[老]+은.
𩦸馬ㅣ 주081)
기마(𩦸馬)ㅣ
기마가. 천리마가. 驥馬+ㅣ.
千里 가고져 주082)
가고져
가고자. 가-[去]+고#지-+어. ¶-고져 : 欲 고져  씨라〈훈언 2ㄱ〉. 슬허 셜워시논 詔書ㅣ 端拱야 겨샤 헐므닐 무르샤믈 듣고져 願노라(願聞哀痛詔 端拱問瘡痍)「有感五首」〈두시 5:16ㄱ〉.
며 주083)
며
생각하며. #-+며. 15세기 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중간본〉은 ‘랑며’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蓄積 江漢을 노니(蓄積思江漢)「到村」〈두시 7:8ㄴ〉 /다(사랑하다) : 술 호 晋ㅅ 山簡이오(愛酒晉山簡)「北隣」〈두시 7:21ㄱ〉.
주린 주084)
주린
굶주린. 주리-[饑]+ㄴ.
매 번 블러 주085)
블러
불러. 브르-[呼]+어. ¶이 經을 디녀 四句 부르면 德이 비록 勝나 眞 아니리라〈금삼 5:40ㄱ〉. 이제 니르리 오히려 애 허렛니 다 브르디 몯혼 넉시 잇도다(至今殘破膽 應有未招魂)「至德二載예~有悲往事노라」〈두시 3:23ㄱ〉.
머규믈 주086)
머규믈
머김을. 먹-+이+우+ㅁ+을.
기들우니라 주087)
기들우니라
기다리네. 기들우-++니+라. 『두시언해』에는 ‘기들오다’도 쓰였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기들우- :   가져 아로 기들우디 마 디니라〈몽산 5ㄱ〉. 날로 블근 조히 서구믈 든니 치워셔 翠華ㅅ 보 기들우니라(日聞紅粟腐 寒待翠華春)「有感五首」〈두시 5:14ㄴ〉. 기들오- : 南嶽앳 鳳 우루믈 기들오노니 北녁ㅅ 바랫 鯤이 외오져 놋다(佇鳴南嶽鳳 欲化北溟鯤)「贈虞十五司馬」〈두시 8:25ㄱ〉.

【한자음】 노기사천리 기응대일호【위무(魏武)가 말하기를, “늙은 천리마가 말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 리 밖에 있다.”라고 했으니, 두보가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늙은 기마(𩦸馬)가 천리 가고자 생각하며, 굶주린 매 한 번 불러 먹임을 기다리네!
*시 구절 해석 : “늙은 천리마가 천 리에 뜻을 두었으니, 굶주린 매가 한 번 불러줌을 기다리노라.”라는 뜻으로, 두보가 늙었지만 기상은 여전하니 굶주린 매가 주인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듯 위제(韋濟)의 초청을 기다리겠다는 말이다.

君能微感激 亦足慰榛蕪 주088)
진무(榛蕪)
①초목(草木)이 어수선하게 얽혀 있음. 황량(荒涼)한 풍경을 비유하는 말이다. ②어지럽게 자란 초목(草木)을 가리키는 말. ③일이 번쇄(煩瑣)하고 군더더기가 많은 것.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此 ㅣ 有望扵韋之薦拔 주089)
천발(薦拔)
①망자(亡者)의 넋을 부처와 인연(因緣)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함. ②인재를 선발함. ③천(薦)은 올리는 것이고, 발(拔)은 빼는 것이니, 추천(追薦)의 뜻. 여기서는 ②와 ③의 뜻으로 쓰였다.
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그듸 주090)
그듸
그대. 즉 ‘위견소/위제(韋濟’를 가리킨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能히 간 주091)
간
잠깐. 잠[暫]+ㅅ+간[間]. ¶간 : 일후믈 간 들이시면〈석상 9:15ㄱ〉.  플 난 간  부 두들게 노 대 션 오 로다(細草微風岸 危檣獨夜舟)「旅夜書懷」〈두시 3:34ㄴ〉. 잠 : 耶輸ㅣ 잠도 듣디 아니실〈석상 6:6ㄱ〉. 녜 버듨닙 들오소 진실로 스싀로 아니 잠 霜蹄ㅣ 업더듀 過失이 아니니라(舊穿楊葉眞自知 暫蹶霜蹄未爲失)「醉歌行」〈두시 8:31ㄱ〉.
感激면  足히 榛蕪 주092)
진무(榛蕪)
진무한. ‘진무(榛蕪)’는 국어 사전에 ‘「1」잡목이나 잡초가 무성함. 또는 그런 곳. 「2」신분이 미천함. 또는 그런 사람. 「3」정도(正道)를 해치는 물건.’으로 뜻풀이가 제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후행하는 ‘’과 함께 쓰여 「2」의 뜻으로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 慰勞리라 주093)
위로(慰勞)리라
위로하리라. 위로할 것이다. 慰勞#-+리+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군능미감격 역족위진무【이것은 두보가 위제(韋濟)의 천거를 바라고 있음을 말한다.】
【언해역】 공이 능히 잠깐 감격(感激)하면, 또 족히 진무(榛蕪)한 마음을 위로할 것이네!
*시 구절 해석 : “그대가 능히 조금만 마음을 움직이면, 또한 족히 거친 마음에 큰 위로가 되겠다.”라는 뜻으로, 마음을 움직여 자신을 천거해 주기를 청원하는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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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증위좌승장제(贈韋左丞丈濟) : 이 작품은 천보(天寶) 7년(748)에 지어졌는데, 두보 37세 때이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에 있었다. 위제는 천보 7년(748)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옮겼다. 시에서는 위제가 재상 가문 출신임을 칭송하면서 그가 재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궁핍하고 늙어가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한 사실을 자탄하면서 위제의 천거가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주002)
## 위제(韋濟) : ?~?. 당나라 정주(鄭州) 양무(陽武) 사람. 조적(祖籍)은 옹주(雍州) 두릉(杜陵)이다. 위항(韋恒)의 동생이다. 현종 개원(開元) 때 견성령(鄄城令)을 지냈다. 황제가 백성을 안정시킬 계책을 묻자 대답한 사람이 2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의 대안이 가장 뛰어나 예천령(醴泉令)에 발탁되었다. 이후 네 번 승진하여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이르고, 외직으로 나가 태원윤(太原尹)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으로 칭송을 들었다. 천보(天寶) 중에 상서승(尙書丞)에 올랐고, 풍익태수(馮翊太守)를 끝으로 은퇴했다.
주003)
좌할(左轄) : ①별[星] 이름. ②좌승(左丞). 좌우승(左右丞)이 상서성(尙書省)을 일을 나누어 관할했기 때문에 좌승(左丞)을 ‘좌할’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04)
조 : 자주. ¶太子ㅣ 조 王 出家야지다 거시〈석상 3:23ㄱ〉.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주005)
뷔더니 : 비더니. 뷔-[空]+더+니. ¶그저긔 比丘히  爲頭 座 뷔워 아니 거늘 王이 무른대 耶舍ㅣ 對答호〈석상 24:43ㄱ〉. 치 뷔면 붓그러울가 저허  낫 도 머믈워 두고 보노라(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空囊」〈두시 3:25ㄱ〉.
주006)
올 : 올해야. 오+ㄹ++. ¶올 : 내 올 오래 留티 아니호리라〈월석 25:13ㄴ〉. 萬里ㅅ 衡陽앳 그려기 올  北으로 가놋다(萬里衡陽鴈 今年又北歸)「歸鴈二首」〈두시 17:19ㄴ〉. - :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훈언 13ㄴ〉.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 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주007)
녯 : 옛.
주008)
션 : 선비를. 션[士]+. ¶혀근 션 보시고 御座애 니르시니〈용가 82〉. 江漢애셔 가고져  나그내여 하  예  서근 션로라(江漢思歸客 乾坤一腐儒)「江漢」〈두시 3:40ㄱ〉.
주009)
## 중서성(中書省) : 위진(魏晉)시대에 처음 설치된 관청 이름. 양진(梁陳) 시기에는 국가의 정사를 총괄했으며, 중서감(中書監) 1인, 중서령(中書令) 1인, 중서시랑(中書侍郞) 4인, 통사사인(通事舍人) 약간명으로 구성되었다. 제왕의 조명(詔命)을 관장하고 정치의 기무(機務)에 참여했다. 북위(北魏) 때 서대(西臺)로, 수대에 내사성(內史省)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봉각(鳳閣), 자미성(紫微省)에 이어 중서성으로 환원되었으며, 상서성(尙書省), 문하성(門下省)과 함께 3성(省)을 형성했다. 원대에는 상서성의 업무를 흡수하여 권함이 매우 높았다. 명대에 이르러 1380년 호유용(胡惟庸)의 반란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주010)
경술(經術) : ①유교의 경전에 의거해서 이루어지는 정치상의 기능과 정책. ②경학(經學)과 같은 뜻으로,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11)
위현(韋賢) : 기원전 144~기원전 62. 전한 노국(魯國) 추현(鄒縣) 사람. 자는 장유(長孺)고, 시호는 절후(節侯)다. 사람됨이 질박하고 욕심이 없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 무제(武帝) 때 경학박사(經學博士)에 임명되고, 급사중(給事中)에 올랐다. 광록대부첨사(光祿大夫僉事)로 옮기고, 대홍려(大鴻臚)에 올라 소제(昭帝)에게 『시경(詩經)』을 강의했다. 일찍이 곽광(霍光) 등과 함께 선제(宣帝)의 옹립을 논의해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선제 본시(本始) 중에 승상(丞相)을 지냈고, 부양후(扶陽侯)에 봉해졌다. 노시위씨학(魯詩韋氏學)의 개창자로, 『시경』과 『상서(尙書)』에 두루 통해 ‘추로대유(鄒魯大儒)’로 불렸다.
주012)
잇니 : 있으니. 잇-[有]++니.
주013)
경술(經術) : 경술하는. 經術#-+.
주014)
시놋다 : 쓰시는구나. -[用]+시++오+ㅅ+다. 15세기에 ‘-’는 ‘사용하다[用]. (맛이) 쓰다[苦]’, ‘쓰-’는 ‘(글을) 쓰다[書], (갓을) 쓰다[冠]’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주015)
## 위현성(韋玄成) : ?~기원전 36. 전한 노국(魯國) 추현(鄒縣, 산동성) 사람. 자는 소옹(少翁)이고, 위현(韋賢)의 막내아들이다. 낭(郞)이 되었다.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항상 겸손했다. 명경(明經)으로 간대부(諫大夫)에 발탁되고, 대하도위(大河都尉)로 옮겼다. 나중에 지위를 형에게 양보했는데, 선제(宣帝)가 그 절조를 가상하게 여겨 하남태수(河南太守)로 삼았다. 선제의 명으로 제유(諸儒)들과 석거각(石渠閣)에서 오경(五經)의 동이(同異)를 의논했다. 경학에 밝아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소부(少府)가 되고, 태자태부(太子太傅)를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까지 올랐다. 영광(永光) 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4언시 짓기를 좋아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작품은 「자핵(自劾)」과 「계시자손(戒示子孫)」 두 편뿐이다.
주016)
곡량전(穀梁傳) : 원명은 『춘추곡량전』. 노(魯)나라 사람 곡량적(穀梁赤)이 『춘추』를 전주(傳注)한 책인데, 11권으로 되어 있다.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의 춘추시대 노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책. 공자가 편집하고, 또 약간의 첨삭을 가하여 유가의 교과서인 오경의 하나가 되었다. 그 전주본에는 이외에 공양고(公羊高)의 『춘추공양전』,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이 있어, 이 셋을 합쳐 보통 춘추삼전이라고 한다.
주017)
천륜(天倫) : ①천연의 순서. 형제를 일컫는 말. ②부자형제(父子兄弟) 등의 친속 관계. ③천리(天理).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18)
보내니 : 보내니. 보내-[送]++니.
주019)
하 : 하늘의. 하+ㅅ.
주020)
차제(次第) : 차례를. 次第+. ‘동음(東音)’이라 부르는 15세기 당시 현실한자음으로 재구하면 ‘次第’는 [*·:뎨]이겠지만, 훈민정음 창제 즈음에는 이미 ‘례’로 발음하였다. 신숙주의 ‘동국정운 서’(1448)에 따르면, “端(ㄷ)이 來(ㄹ)됨은 오직 종성만이 아니요 ‘次第’의 ‘第’와 ‘牡丹’의 ‘丹’과 같은 부류로 초성이 변한 것 또한 많으며 …”라고 하였고, 당대 문헌에도 ‘·례·로[序]’〈중간두시 10:13ㄱ〉와 ‘第··례:뎨’〈훈몽 상:18ㄱ〉, ‘牧·모丹란〈진언 13ㄴ〉 등이 보인다. ‘차제(次第)’는 남한에서 만든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주021)
와 : 나란히 하여. 대적하여. -[竝]+아. ¶둘히 서르 도아 반기 와 行티 아니니라〈영가 하:99ㄱ〉. 엇뎨 묏 미틔 鬼神의 모도미 업수 알리오 氣運이 嵩山 華山과 다 와슈믈 마 아노라(那知根無鬼神會 巳覺氣與嵩華敵)「閬山歌」〈두시 13:31ㄴ〉.
주022)
잇디 : 있지. 잇-[有]+디.
주023)
몯호 : 못함을. 몯#-+오+ㅁ+.
주024)
슬놋다 : 슬퍼하는구나. 슳-++오+ㅅ+다.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슳- : 도라 드르샤 世間 슬흔 미 디트시니라〈석상 3:17ㄱ〉. 亂 맛나 楚ㅅ 樓 우희 오 사미 슬코 麟 슬허 尼丘山 시니 우르시니라(豺遘哀登楚 麟傷泣象尼)「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ㄱ〉.
주025)
영원(鴒原) : 척령재원(鶺鴒在原). 형제가 급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서로 도움. 두보(杜甫)의 시(詩)에 나온 말로, 형제간의 우애를 말한다.
주026)
봉소(鳳沼) : 봉황지(鳳凰池). 중서성(中書省)을 지칭하는 말. 또는 거문고 밑바닥에 낸 구멍. 봉지(鳳池).
주027)
형구(亨衢) : ①사통팔달(四通八達)한 큰 길. ②보통 아름답고 좋은 전정(前程)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 뜻이 함께 쓰였다.
주028)
봉황지(鳯凰池) : 대궐 안에 있는 연못. 곁에 중서성(中書省)이 있었던 데서 중서성 또는 재상(宰相)의 직위를 뜻한다.
주029)
척령(鶺鴒) : ①할미새.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편에 나오는 새 이름. 『모전(毛傳)』에 보면, 이 새는 날 때 울고 들까불면서 큰 일이 난 듯이 날아다니므로, 형제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음을 비유한다고 한다. ②형제(兄弟). 여기서는 두 가지 뜻이 함께 쓰였다.
주030)
척령(鶺鴒)의 두들게 : 척령의 언덕에. 鶺鴒+의 두듥[原]+에. ¶아래  두들기 절로 되오와니〈월석 2:67ㄴ〉. 믌 올핸  蜃氣 무텻거 싣나모 션 두들게 프른 묏 그티 重疊도다(水鄉霾白蜃 楓岸疊靑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ㄱ-14ㄴ〉.
주031)
무근 : 묵은. 묵-[宿]+은. ¶묵- : 삼년 무근  닷 홉을 사 졋 닷 홉애 라 프러〈구간 1:18ㄴ〉. 이 문을 도라본 마 무근 자최 외도소니(此門轉眄已陳迹)「曉發公安數月憇息此縣」〈중간두시 2:17ㄴ〉.
주032)
프리 : 풀이. 플[草]+이. ‘믈, 블, 플, ’은 ‘ㅁ, ㅂ, ㅍ, ㅽ’의 원순성의 영향으로 ‘ㅡ’가 ‘ㅜ’로 변화되어 ‘물, 불, 풀, ’이 되었다.
주033)
거츠럿고 : 거칠어 있고. 거츨-[荒]+어#잇-+고. ¶거츨- : 四趣의 구즌 와 生死業因은 갓 거츨오 더러 藥草ㅣ 아니라〈월석 13:38ㄱ〉. 뫼히 거츨오 사미 젹고 히 幽僻니 아 나조 아답도다(山荒人民少 地僻日夕佳)「柴門」〈두시 6:47ㄴ〉.
주034)
모샌 : 못엔. 못[池]+에+ㄴ.
주035)
훤 : 훤한. 훤++ㄴ.
주036)
길히 : 길이. 길ㅎ+이.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37)
니도다 : 이어 있도다. 닛-[連]+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어 잇- : 오 안자 잇더시니 도 五百이 그윗 거슬 일버 精舍ㅅ 겨로 디나가니〈월석 1:6ㄱ〉. 기튼 치위예 곳과 플왜 디어 잇니(餘寒折花卉)「送大~遂停니라」〈두시 8:70ㄱ-ㄴ〉. -앳/엣- : 阿僧祗前世劫에 님금 位ㄹ 리샤 精舍애 안잿더시니〈월석 1:2ㄱ〉.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惣戎皆插侍中貂)「諸將五首」〈두시 5:44ㄱ〉. -앗/엇- : 곧 미 두려이 가 너비 國土 머것다 시니〈능엄 2:63ㄱ〉. 노 臺  부 믌  구벗도다(曾臺俯風渚)「雨三首」〈두시 12:13ㄴ〉.
주038)
안명(安命) : 운명(命運)을 편안하게 받아들임.
주039)
잇 나그내 : 있는 나그네. 잇-[有]+ 나그내. 원문의 ‘有客’에 대한 번역이다. 여기의 ‘有’는 ‘어떤, 한’의 의미로 불특정 명사 표지인데, 이런 용법의 ‘有’에 대해서 언해에서는 ‘잇-’으로 번역되거나 아예 번역되지 않았다. ‘有客’에 대해서 『두시언해』에서는 ‘잇 소니〈두시 7:19ㄴ〉〈두시 22:11ㄱ〉〈두시 23:24ㄱ〉, 잇 나그내〈두시 21:1ㄱ〉, 나그내〈두시 25:26ㄱ〉’ 등으로 언해되었고, ‘有’가 동사로 쓰였을 경우, ‘나그내 잇노니〈두시 8:10ㄴ〉’로 언해되었다.
주040)
천명(天命) : 하늘의 뜻. 하늘이 주재(主宰)하는 명운(命運).
주041)
비록 천명(天命)을 안수(安受)나 : 비록 천명을 안수하나. 15세기의 ‘비록’은 연결어미 ‘{-어/고}도’나 ‘-나’와 호응한다. ¶비록~-고도 : 비록 사 무레 사니고도〈석상 6:5ㄱ〉. 비록~-어도 : 비록 그르 야 지 이리 이셔도〈석상 9:6ㄴ〉. 다 物이로 精氣 혼 고 어느 알리오 비록 龍이 외디 몯야도  神奇호미 잇도다(豈知異物同精氣 雖未成龍亦有神)「沙苑行」〈두시 17:26ㄴ〉. 비록~-나 : 漢德이 비록 衰나〈용가29〉. 일우미 비록 마 하나〈월석 1:월인석보 서15ㄴ〉. 澤國에셔 비록 비 브즈러니 라나 더운 하해 매 즌기 녇도다(澤國雖勤雨 炎天竟淺泥)「水宿 ··· 群公」〈두시 3:19ㄴ〉. 참조; 비록 : 縱 비록 논 디오〈월석 1:월인석보 서17ㄱ〉.
주042)
늘근 : 늙은. 늙-[老]+은.
주043)
어니 : 모습이니. 모습이거니. [樣]+이+거+니. ¶-이거니 : 나히 一百 셜흐니어니 잇더니〈석상 24:19ㄱ〉. 吾之流落不遇ㅣ 如此ㅣ어니 豈能立功於時世리오「水宿 ··· 群公」〈두시 3:21ㄴ〉. -어니 :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석상 9:13ㄱ〉. 도혀 妻子 보리어니 시르미 어 이시리오 쇽졀업시 詩書 卷秩야셔 깃거 미칠 호라(却看妻子愁何在 漫卷詩書喜欲狂)「聞官 ··· 河北」〈두시 3:24ㄱ〉.
주044)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이와 관련된 낱맡로 ‘엇디’로 『두시언해』에서 보인다.
주045)
사미리오 : 사람이겠는가? 사+이+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주046)
궤장(几杖) : 궤(几)는 팔을 의지하는 목기(木器)로, 곧 소안(小案)이며, 장(杖)은 지팡이다. 둘 다 노인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퇴로(退老, 致仕)를 허락하지 않을 때 흔히 임금이 주는 것이다.
주047)
갑자(甲子) : ①갑(甲)은 천간(天干)의 첫 번째이고, 자(子)는 지간(地干)의 첫번째다. 옛날에 천간과 지간으로 교차 배열하여 갑자(甲子)·을축(乙丑)·병인(丙寅)처럼 연결시켰는데, 보통 ‘갑자’라 불렀다. 갑자에서 시작해 계해(癸亥)에서 끝나 모두 60개가 되었기 때문에 육십갑자(六十甲子)라 불렀다. 옛 사람들은 날짜나 연도를 이것으로 표기했다. ②일반적으로 세월(歲月)이나 광음(光陰)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48)
지븻 : 집의. 집+의+ㅅ. ‘-의’는 처격, ‘-ㅅ’은 속격조사이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주049)
사 : 사람은. 사+.
주050)
궤(几)와 막다히 : 안석과 지팡이. 几+와 막다히. 모두 노인의 몸을 지탱해 주는 도구이다. ‘막다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주051)
야 주믈 : 해 줌을. 즉 보좌해 줌을. ¶-어 주- :  婆羅門 보샤  請커늘 즉재 글어 주시니다〈월석 20:42ㄴ〉. 大闕ㅅ 블근 헤셔 화 주시 布帛 本來로 貧寒 겨지브로브터 나니(彤庭所分帛 本自寒女出)「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5ㄱ〉.
주052)
시름니 : 걱정하니. 염려하나. 시름#-++니. ‘시름다’는 『두시언해』에서 ‘시름다’도 쓰였는데, ‘시름외-, 시름도외-, 시름외-’ 등으로 활용하였다. ¶須達이 지븨 도라와  무든 옷 닙고 시름야 잇더니〈석상 6:27ㄱ〉. 시름얀 곧마다 숤盞 求노라(愁徵處處盃)「秋日 ··· 三十韻」〈두시 3:9ㄴ〉. 시름외- : 시름왼 누네 서리와 이슬를 보노니(愁眼看霜露)「遣懷」〈두시 3:25ㄱ〉. 시름왼 데 되 픗뎌 부 나조히여(愁思胡笳夕)「喜達行在所三首」〈두시 5:5ㄴ〉. 시름왼 드로 구룸 髻髮을 리니(愁思拋雲髻)「卽事」〈두시 5:17ㄱ〉. 天子ㅣ 처믜 시름왼 들 시고(天子初愁思)「洛陽」〈두시 5:18ㄱ〉. 우희 잇 녀 구루미 시름외도다(上有行雲愁)「遣興三首」〈두시 5:34ㄴ〉. 鸚鵡ㅣ 시름왼 들 머것니(鸚鵡含愁思)「鸚鵡」〈두시 17:17ㄱ〉. 늘근  시름왼 디 더레라(衰顔减愁思)「題衡 ··· 陸宰」〈두시 6:23ㄱ〉. 蒼梧애 구루미 正히 시름외도다(蒼梧雲正愁)「同諸 ··· 寺塔」〈두시 9:33ㄱ〉. 시름왼  올로 東녀글 向야 흐르다(愁時獨向東)「秦州雜詩二首」〈두시 9:39ㄴ〉. 北녀그로 흐르 미라 일훔다(水號北流泉)「十二月一日三首」〈중간두시 10:45ㄱ〉.  滻水ㅅ 길히 시름외오(悄悄素滻路)「苦雨 ··· 徵士」〈두시 12:17ㄱ〉. 故國은 시름왼 눈썹 밧기로소니(故國愁眉外)「雨晴」〈두시 12:37ㄴ〉. 먼  시름왼  일 門을 다도라(絕塞愁時早閉門)「返照」〈두시 12:38ㄴ〉. 시름왼   드리엇니(愁邊有江水)「又雪」〈두시 12:40ㄴ〉. 城이 롣고 길히 기울오 旌旆ㅣ 시름외니(城尖徑吳旌旆愁)「白帝城最高樓」〈두시 14:8ㄴ-9ㄱ〉. 燕ㅅ 겨지븨 프른 눈서비 시름외도다(燕姬翠黛愁)「陪諸 ··· 二首」〈두시 15:30ㄴ〉.  酒觴로 시름왼 미 딘 호 爲야 느치노라(急觴爲緩憂心擣)「蘇端 ··· 醉歌」〈두시 15:39ㄱ〉. 皇陂 두듥 北에 시름왼 亭子ㅣ 지도다(皇陂岸北結愁亭)「題鄭十八著作丈」〈두시 21:40ㄱ-ㄴ〉. 皇陂 두듥 北에 시름왼 亭子ㅣ 지도다(皇陂岸北結愁亭)「題鄭十八著作丈」〈두시 21:40ㄱ-ㄴ〉. 프른 뫼헤 旌패 시름외도다(蒼山旌旆愁)「送韋 ··· 判官」〈두시 22:38ㄱ〉. 시름왼 돌 양 改變놋다(慘慘石狀變)「積草嶺」〈중간두시 1:23ㄱ〉. 모딘 더운 병은 足히 시름외디 아니커니와(毒瘴未足憂)「次空靈岸」〈중간두시 1:47ㄴ〉. 훤히 노래 브로니 모 시름외도다(放歌頗愁絕)「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4ㄱ〉. 涇渭옛 사미 시름왼 양 훤야(涇渭開愁容)「徃在」〈중간두시 4:24ㄱ〉. 시름도외- : 故鄕 뫼햇 고사리 시름도외얫거니라 노라(愁寂故山薇)「歸鴈二首」〈두시 17:19ㄴ〉. 긴 뎟소리 뉘 能히 시름도왼 들 亂오니오(長笛誰能亂愁思)「追酬 ··· 見寄」〈두시 11:7ㄴ〉. 이리 다며 興이 니 시름도왼 디 몬다(事殊興極憂思集)「渼陂行」〈두시 13:12ㄱ〉. 시름외- : 노피 乾坤을 보니  可히 시름외니(高視乾坤又可愁)「相逢歌贈嚴二別駕」〈두시 25:31ㄱ〉. 시름도이 : 시름도이 絶境 리고(忡忡去絕境)「發同谷縣」〈중간두시 1:26ㄱ〉.
주053)
갑자(甲子)애 : 세월에. 甲子+애. 여기서의 ‘甲子’는 세월을 가리킨다. 위의 주를 참조할 것.
주054)
즌 : 진. 즐-[泥]+ㄴ. ¶四生 네 가짓 나 거시니 즌 듸셔 나 것과〈석상 3:23ㄴ〉. 向야 가논  기 즈니 그듸 호니 사로 여 여위에 다(所向泥活活 思君令人瘦)「九日寄岑參」〈두시 11:25ㄴ〉.
주055)
길헤 : 흙길에. #길ㅎ+에.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은 16세기까지는 아주 우세하게, 17세기에는 비슷하게, 18세기에는 세력이 아주 축소된다. 한편 ‘흙’은 16세기 〈소학언해?(1586)에 보이다가 17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간다. ¶明道先生이 날이 도록 단히 안자 겨심애 흘그로 근 사 더시니〈소학언해6:122ㄱ〉.
주056)
섯것노라 : 섞여 있노라. -[混]+어#잇-++오+라.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주057)
알(謁) : 몸소 찾아가 만나 뵙는 일. 보통 임금이나 황제를 신하가 만날 때 쓴다. 배알(拜謁).
주058)
대무(大巫) : ①우두머리거나 법술(法術)이 고명(高明)한 무사(巫師)를 가리키는 말. ②자신이 경복(敬服)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두 가지 모두의 뜻으로 쓰였다.
주059)
진림(陳琳) : ?-217. 후한 말기 광릉(廣陵) 사람. 자는 공장(孔障)이다.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이다. 처음에 대장군 하진(何進)의 주부(主簿)였는데, 하진이 제후들을 불러 환관을 죽여 없애고자 했을 때 이를 저지했다. 나중에 기주(冀州)로 피난갔는데, 원소(袁紹)에게 귀의하여 기실(記室)로 있었다. 원소가 조조(曹操)를 토벌하려 할 때 그에게 명하여 격문(檄文)을 쓰게 했다. 조조가 기주를 점령하자 포로로 잡혔는데 재주를 아껴 사면하고 종사(從事)로 삼았다. 사공군모좨주(司空軍謀祭酒)로 기실을 맡았다. 관직은 문하독(門下督)까지 올랐다. 전장서기(典章書記)에 능했다. 저서에 『진기실집(陳記室集)』이 있다.
주060)
소무(小巫) : ①무사(巫師) 가운데 법술(法術)이 낮은 사람. ②학업(學業)이나 기예(技藝)가 낮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 ③나이가 어린 여무(女巫).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61)
나 : 남은. 남-[餘]+.
주062)
히메 : 힘에. 힘+에.
주063)
어엿비 : 불쌍히. 어엿#브-+이. ¶어엿비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내 賤役 히 너겨 뇨 슬노니 뉘 幽棲 고파 요 어엿비 너기니오(自傷甘賤役 誰愍強幽棲)「水宿 ··· 群公」〈두시 3:21ㄱ〉. 어엿브다 : 艱難며 어엿븐 사 쥐주어 거리칠 號 給孤獨이라 더라〈석상 6:13ㄱ〉. 柝 두드리닌 可히 어엿븐 사미로소니 옷 업스닌 어딋 힌고(擊柝可憐子 無衣何處村)「西閣夜」〈두시 14:22ㄴ〉.
주064)
너기리라 : 여기리라. 여길 것이다. 너기-[謂]+리+라.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제 노포라 야 衆生 프귀만 너기니〈석상 6:28ㄴ〉. 郞 외야쇼매 머리 셰요 므던히 너기노니(爲郞從白首)「歷歷」〈두시 5:17ㄴ〉.
주065)
너기디 : 여기지. 너기-[謂]+디.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주066)
스을 : 스승을. 스[師]+을. 〈중간본〉은 ‘스승을’으로 되어 있다.
주067)
뵈리아 : 뵐 것인가? 뵈-[見]+리+아. 선어말어미 ‘리’와 종결어미 ‘아’가 결합한 ‘-리아’의 형태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 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큰 바래 能히 고기 낫골  업스리아  구루메  리 잇니라(巨海能無釣 浮雲亦有梯)「水宿 ··· 群公」〈두시 3:21ㄱ〉.
주068)
세한(歲寒) : ①추운 계절이 됨. 또는 겨울. 1년 가운데 가장 추운 시절. ②사정이 종극終極)에 이르렀음을 비유하는 말. ③노년(老年)을 비유하는 말. ④곤경(困境)이나 난세(亂世)를 비유하는 말. ⑤어려움을 당해도 충정(忠貞)이 꺾이지 않는 절조(節操) 또는 품행(品行).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주069)
고우(顧遇) : 능력이나 업적을 인정받거나 안면이 있어서 우대를 받는 일.
주069_1)
*〈중간본〉은 ‘’로 되어 있다.
주070)
지주(踟蹰) : ①천천히 가는 모양. 또는 서성거리는 모양. ②망설임. 주저함. ③머무름. 머물러 쉼. ④순간(瞬間). 잠시(暫時). ⑤서로 잇닿은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70_1)
*〈중간본〉은 ‘不進ㅣ라’로 되어 있다.
주071)
세한(歲寒)앳 : 세한의. 歲寒+애+ㅅ.
주072)
로 : 마음으로. +로. 〈중간본〉은 ‘로’로 되어 있다.
주073)
도라보아 : 돌아보아. 돌-+아#보-+아. ‘돌아보-’는 ‘顧’의 뜻이다.
주074)
대우(待遇) : 대우하므로. 待遇#-+ㄹ. ¶凝滑 六根이  니 일후미 六入이라〈월석 2:21ㄷ〉. 귀 머글 모로매 字 어 뵈니 마리 뎌니 빈혀 이긔디 몯놋다(耳聾須畫字 發短不勝篦)「水宿 ··· 群公」〈두시 3:19ㄴ〉.
주075)
 : 날의. 하루의. +ㅅ. 원문의 ‘日’에 대한 번역이다.
주076)
나조 : 저녁에. 나조ㅎ[夕]+. ‘나조ㅎ’는 ‘저녁’의 뜻으로 ‘ㅎ’말음체언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가 둘 다 쓰였다. 후자는 ‘낮’의 의미도 있었다.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나조ㅎ : 孔子ㅣ 니샤 아 道理 드르면 나조 주거도 리라 시니라〈석상 20:13ㄱ〉.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 13:10ㄴ〉.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나죄 : 孔聖이 나죄 주구믈 히 너기니〈월석 18:32ㄱ〉. 먼 두들게  몰애 허여고 니 뫼해 나죄 비취옛  븕도다(遠岸秋沙白 連山晩照紅)「秋野五首」〈중간두시 10:32ㄱ〉. 나죄[晝] :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주077)
머므노라 : 머무노라. 머믈-[留]++오+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석상 21:37ㄱ〉. 群公이 모다 힘니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群公紛戮力 聖慮窅裴佪)「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주078)
노기복력 지재천리(老驥伏櫪 志在千里) : 천리마가 늙어, 비록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리를 달리는 데 있다는 말로, 영걸(英傑)은 늙어서도 여전히 큰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의 〈보출하문행(步出夏門行)〉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079)
위무(魏武) : 조조(曹操)를 가리키는 말. 155~220. 위무제(魏武帝). 후한 말기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 자는 맹덕(孟德)이고, 묘호는 태조(太祖)며,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본성은 하후(夏侯)씨고, 조숭(曹嵩)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권모술수에 능했고, 나이 스물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郞)이 되었다가 돈구령(頓丘令)으로 옮겼다. 기도위(騎都尉)가 되어 황건적(黃巾賊) 토벌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초평(初平) 3년(192) 연주목(兗州牧)이 되어 황건군의 항복을 유도해 정예병을 청주병(靑州兵)으로 편입시켰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다. 건안(建安) 13년(208) 승상(丞相)이 되고,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했다. 이후 세력이 강남(江南)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지만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다. 연강(延康) 원년(220) 1월 낙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고,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성을 가져오게 했다. 저서에 『손자약해(孫子略解)』와 『병서접요(兵書接要)』, 『조조집(曹操集)』이 있다.
주080)
늘근 : 늙은. 늙-[老]+은.
주081)
기마(𩦸馬)ㅣ : 기마가. 천리마가. 驥馬+ㅣ.
주082)
가고져 : 가고자. 가-[去]+고#지-+어. ¶-고져 : 欲 고져  씨라〈훈언 2ㄱ〉. 슬허 셜워시논 詔書ㅣ 端拱야 겨샤 헐므닐 무르샤믈 듣고져 願노라(願聞哀痛詔 端拱問瘡痍)「有感五首」〈두시 5:16ㄱ〉.
주083)
며 : 생각하며. #-+며. 15세기 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중간본〉은 ‘랑며’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蓄積 江漢을 노니(蓄積思江漢)「到村」〈두시 7:8ㄴ〉 /다(사랑하다) : 술 호 晋ㅅ 山簡이오(愛酒晉山簡)「北隣」〈두시 7:21ㄱ〉.
주084)
주린 : 굶주린. 주리-[饑]+ㄴ.
주085)
블러 : 불러. 브르-[呼]+어. ¶이 經을 디녀 四句 부르면 德이 비록 勝나 眞 아니리라〈금삼 5:40ㄱ〉. 이제 니르리 오히려 애 허렛니 다 브르디 몯혼 넉시 잇도다(至今殘破膽 應有未招魂)「至德二載예~有悲往事노라」〈두시 3:23ㄱ〉.
주086)
머규믈 : 머김을. 먹-+이+우+ㅁ+을.
주087)
기들우니라 : 기다리네. 기들우-++니+라. 『두시언해』에는 ‘기들오다’도 쓰였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기들우- :   가져 아로 기들우디 마 디니라〈몽산 5ㄱ〉. 날로 블근 조히 서구믈 든니 치워셔 翠華ㅅ 보 기들우니라(日聞紅粟腐 寒待翠華春)「有感五首」〈두시 5:14ㄴ〉. 기들오- : 南嶽앳 鳳 우루믈 기들오노니 北녁ㅅ 바랫 鯤이 외오져 놋다(佇鳴南嶽鳳 欲化北溟鯤)「贈虞十五司馬」〈두시 8:25ㄱ〉.
주088)
진무(榛蕪) : ①초목(草木)이 어수선하게 얽혀 있음. 황량(荒涼)한 풍경을 비유하는 말이다. ②어지럽게 자란 초목(草木)을 가리키는 말. ③일이 번쇄(煩瑣)하고 군더더기가 많은 것.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89)
천발(薦拔) : ①망자(亡者)의 넋을 부처와 인연(因緣)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함. ②인재를 선발함. ③천(薦)은 올리는 것이고, 발(拔)은 빼는 것이니, 추천(追薦)의 뜻. 여기서는 ②와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90)
그듸 : 그대. 즉 ‘위견소/위제(韋濟’를 가리킨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091)
간 : 잠깐. 잠[暫]+ㅅ+간[間]. ¶간 : 일후믈 간 들이시면〈석상 9:15ㄱ〉.  플 난 간  부 두들게 노 대 션 오 로다(細草微風岸 危檣獨夜舟)「旅夜書懷」〈두시 3:34ㄴ〉. 잠 : 耶輸ㅣ 잠도 듣디 아니실〈석상 6:6ㄱ〉. 녜 버듨닙 들오소 진실로 스싀로 아니 잠 霜蹄ㅣ 업더듀 過失이 아니니라(舊穿楊葉眞自知 暫蹶霜蹄未爲失)「醉歌行」〈두시 8:31ㄱ〉.
주092)
진무(榛蕪) : 진무한. ‘진무(榛蕪)’는 국어 사전에 ‘「1」잡목이나 잡초가 무성함. 또는 그런 곳. 「2」신분이 미천함. 또는 그런 사람. 「3」정도(正道)를 해치는 물건.’으로 뜻풀이가 제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후행하는 ‘’과 함께 쓰여 「2」의 뜻으로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주093)
위로(慰勞)리라 : 위로하리라. 위로할 것이다. 慰勞#-+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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