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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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좌승에게 삼가 증정하면서 22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주001)
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이 시는 두보가 장안(長安)에 살고 있던 당나라 현종 천보(天寶) 7년(748)에 지어졌다. 당시 두보의 나이는 37세이었다. 두보가 장안에 머물던 시기는 십여 년의 여행을 끝내고 장안으로 돌아간 746년부터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 행재소로 간 757년인데, 이 시기는 두보가 관직을 구하면서 궁핍하게 살았던 시기이다. 위 승장은 위제(韋濟)로, 그 당시에 상서성 좌승(尙書省左丞)으로 있었다. 그는 두보의 시를 잘 알아 일찍이 많은 관료들 앞에서 두보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천보 6년(747)에 현종이 조서를 내려 천하에 하나라도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경사(京師)에 들어와 시험을 보라고 명령했는데, 그 당시에 권력을 가진 환관 이임보(李林甫)가 상서성에서 시험을 보게 해 놓고는 응시한 사람들을 선발하지 않고 현종에게는 재야(在野)에 인재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두보도 이때 응시를 하였으나 낙방하고 장안에서 곤궁하게 지내면서 과거로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착잡한 심경으로 이 시를 지었다. 시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진술하면서 벼슬길에서 뜻을 잃고 생활이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는 한편, 현실의 어두운 국면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천보 8년(748) 위제가 상서승(尙書丞)에 임명될 무렵 두보는 일찍이 두 편의 시를 지어 올려 자신을 선발해 줄 것을 희망했다. 위제는 두보의 시재(詩才)를 잘 알고 있었지만 두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두보는 다시 이 작품을 써서 결국 출로가 열리지 않는다면 장안을 떠나 강호(江湖)에 은둔할 결심을 드러냈다. 두보가 735년(24살)에 낙양에서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해 낙방하고 이 시를 지을 때까지 13년의 세월이 지났다. 특히 장안에 와서 공명을 구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결과적으로 가는 곳마다 난관에 봉착해 뜻을 펴기가 어려웠다. 청년 시기의 호탕한 기상도 이미 사라지고 울분만 차 있어서 부득이 위제의 앞에서 그 심경을 발설했던 것이다. 현재 가장 오래된 두보시집 판본(宋王洙本, 九家注本, 黄鹤補注本 등)을 보면 모두 이 작품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물론 지금의 문학사가들은 모두 이 작품을 두보의 최초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 작품이 두보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자신의 생애와 이상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공인받고 있다. #위제(韋濟) : ?~?. 당나라 정주(鄭州) 양무(陽武) 사람. 조적(祖籍)은 옹주(雍州) 두릉(杜陵)이다. 위항(韋恒)의 동생이다. 현종 개원(開元) 때 견성령(鄄城令)을 지냈다. 황제가 백성을 안정시킬 계책을 묻자 대답한 사람이 2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의 대안이 가장 뛰어나 예천령(醴泉令)에 발탁되었다. 이후 네 번 승진하여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이르고, 외직으로 나가 태원윤(太原尹)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으로 칭송을 들었다. 천보(天寶) 중에 상서승(尙書丞)에 올랐고, 풍익태수(馮翊太守)를 끝으로 은퇴했다.

봉증위좌승장 22운
(위 좌승에게 삼가 증정하면서 22운)

紈袴不餓死 儒冠多誤身紈袴 주002)
환고(紈袴)
환고(紈袴/紈褲). 가는 비단으로 만든 바지. 옛날 귀족 자제들이 입었다.
貴逰 주003)
귀유(貴逰)
귀족의 집안과 그 자제(子弟), 치사(致仕)한 사람을 일컫는 말.
子弟 주004)
자제(子弟)
글자의 뜻대로는 아들과 아우란 뜻의 말이지만, 일반적인 젊은이를 일컬을 때 주로 쓴다.
의 오시라】

기브로 주005)
기브로
깁으로. 깁+으로. ¶깁 : 깁 爲繒〈훈해 50〉. 깁 며 燈 혀며 花香 류로 供養더라〈석상 23:58ㄴ〉. 長安앳 겨 디히 싀오  고 金城ㅅ 햇 酥 조하 깁 도다(長安冬菹酸且綠 金城土酥靜如練)「病後 ··· 贈歌」〈두시 3:50ㄴ〉.
외  주006)
외 
바지 한. 외[袴] +ㄴ. ‘외’는 ‘바지’나 ‘치마’ 등 ‘하의(下衣)’를 가리키며 ‘옷 외’로 많이 쓰였는데 ‘고외’와 ‘옷 고외’의 형태도 보인다. ‘외 -’는 ‘바지를 입다’, ‘옷 가 -’는 ‘옷을 입다’의 뜻이다. ¶외 : 雲居和尙이 侍者 브려 외 나 보내신대〈남명 상:31ㄴ〉. 越ㅅ 겨지븨 블근 외 젓고 燕ㅅ 겨지븨 프른 눈서비 시름외도다(越女紅裙濕 燕姬翠黛愁)「陪諸 ··· 二首」〈두시 15:30ㄴ〉. 고외 : 裳 고외 샹〈광주판천자문 4ㄴ〉. 옷 외 : 류 겨집히 니기 드러 옷 외 헤디오고 추미며 더러 거시 흐르게야〈석상 3:22ㄴ〉. 옷 외옌  머릿터리 드리옛고 門과 굴엔 丹楓ㅅ 니피 듣놋다(衣裳垂素髮 門巷落丹楓)「秋峽」〈두시 3:41ㄱ〉. 옷 고외 : 繡혼 노 옷 고외 暮春에 비취옛니 金孔雀과 銀麒麟괘 긔옛도다(繡羅衣裳照暮春 蹙金孔雀銀麒麟)「麗人行」〈두시 11:17ㄱ〉. 옷 외 - : 옷 외 요란  이슬 올 저글 判斷고 鞍馬란   오 믿노라(衣裳判白露 鞍馬信清秋)「舍弟 ··· 二首」〈두시 8:40ㄴ〉.
사 주007)
사
사람은. 사+.
주려 주008)
주려
굶주려. 주리-[餓]+어. ‘주리-’는 ‘주으리-’, ‘주우리-’의 형태로도 쓰였다. ¶주리- : 首陽山애 숨어셔 고사리 야 먹더니 드듸여 주려 죽으니라〈소학언해 4:28ㄴ〉. 薇蕨로 首陽山애셔 주리고  조 머겨 디나 뇨 資賴니(薇蕨餓首陽 粟馬資曆聘)「早發」〈중간두시 1:50ㄱ〉. 주으리- : 아호븐 주으리며 목 라 橫死 씨니〈월석 9:58ㄴ〉. 늘근 몸 덥긔 호란 燕ㅅ 玉  겨지블 求고 주으륨 充實케 호란 〈두시 3:42ㄱ〉 楚ㅅ 말와 랑노라(煖老須燕玉 充饑憶楚萍)「獨坐二首」〈두시 3:41ㄴ-42ㄱ〉. 주우리- : 하히 곡식글 내요 졍히 셩의 주우리믈 구호려 코〈정속 27ㄴ〉. 하히 길오 關塞ㅣ 치우니 歲暮애 주우리며 어루미 逼迫얘라(天長關塞寒 歲暮饑凍逼)「別贊上人」〈두시 9:17ㄱ〉.
죽디 아니거늘 션 주009)
션
선비가. 선비의. 션+∅.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션’는 속격조사가 결합한 형태로도 쓰였다. 여기의 ‘션’는 후행하는 ‘스니’의 의미상 주어이다. ‘션’는 ‘션븨’의 형태로도 쓰였다. ¶션(단독) : 武功 아니 爲샤 션 아실 鼎崻之業을 셰시니다〈용가 80〉. 社稷엔 妖恠ㅣ로왼 氣運ㅣ 버므럿도소니 干戈 늘근 션 보내놋다(社稷纏妖氣 干戈送老儒)「舟中 ··· 尹審」〈중간두시 2:15ㄴ〉. 션(속격 포함) : 太微宮은 션 그레 하 皇帝ㅅ 南녁 宮 일후미라〈월석 2:48ㄴ〉. 두 션 주거믜 가 울며 닐오〈삼강런던 열:20〉. 病야 누워 오래 나그내 도외요니 恩惠 닙와 일 션 서리예 섯거뇨라(卧疾淹爲客 蒙恩早側儒)「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 2:10ㄱ〉. 션븨 :   대애  션븨 일훔 쓰고 모든 션븨 일후믈 다 이리 써〈번노 상:3ㄴ-5ㄱ〉. 儒 션븨 〈훈몽 상:18ㄱ〉. 懇切히 諫爭 匡鼎을 머믈오시고 여러 션븨예 服虔을 혀 시놋다(懇諫留匡鼎 諸儒引服虔)「秋日 ··· 一百韻」〈두시 20:11ㄱ〉. 션븨(속격 포함) : 病이 하 션븨 오 말오 깁수윈  더드머 보란 나그내 旌旗 믿노라(多病休儒服 冥搜信客旌)「敬贈鄭諫議十韻」〈두시 19:17ㄱ〉.
곳갈 주010)
곳갈
고깔. ¶곳갈와 왜  묻거든 믈 골아 로 請며〈내훈 1:45ㄱ〉. 숤 尊ㅅ 가온 화 疑惑호니 곳갈 우흿 빈혀 머므러 롓도다(疑惑尊中弩 淹留冠上簪)「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ㄱ〉.
스니 주011)
스니
쓴 이는. 쓴 사람은. 스-[帽]+ㄴ#이+. ¶곳갈 스- : 原憲이봇 곳갈 스고 헌 옷 닙고 나거늘〈남명 상:30ㄴ〉. 南 녀그로 보와 百越을 按察니 누른 곳갈 스니 그듸 기들오 해 놋다(南瞻按百越 黃帽待君偏)「酬寇十侍御錫見寄四韻復寄寇」〈두시 21:13ㄴ〉. 곳갈 싀- : 이 나 沐浴 겨 곳갈 싀이며 담애  도라션 디라〈내훈 서:6ㄴ〉.
모 주012)
많이. 하-[多]+이. ¶해 드러 기픈 들 알며〈석상 9:15ㄱ〉. 봄 프레 도라가고져 논 恨이 얼겟니 桃源엣 고 올로 조 해 노라(春草封歸恨 源花費獨尋)「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그 주013)
그
그릇. 잘못. ‘그’는 ‘그르’로 많이 쓰였다. ¶엇디  사도 그 地獄의 드러가 十王을 보니 업스뇨〈번소 7:22ㄴ〉. 그르 : 이 아리 긔 羅睺羅ㅣ니 그르 닐어 羅雲이라도 니라〈석상 3:36ㄴ〉. 그르 아로 매 범그륨 니 微小 性分 이 촛 도긧 벌어지로다(謬知終畫虎 微分是醯鷄)「奉贈太 ··· 二十韻」〈두시 19:15ㄱ〉.
놋다 주014)
놋다
만드는구나. -+[作]++오+ㅅ+다. ‘-’의 어간 말음 ‘ㄹ’은 비자음 ‘ㄴ, ㄷ’ 위에서 자동으로 탈락하였다. 〈중간본〉에는 ‘놋다’로 되어 있다. ¶制 실 씨라〈훈언 3ㄱ〉. 그듸 보디 아니다 秦ㅅ 時節에 蜀ㅅ 太守ㅣ 돌 조 세 犀牛 라 셰니라(君不見秦時蜀太守 刻石立作三犀牛)「石犀行」〈두시 3:71ㄱ〉.

【한자음】 환고불아사 유관다오신【환고(紈袴)는 귀족 자제의 옷이다.】
【언해역】 비단으로 바지 입은 사람은 굶주려 죽지 않는데, 선비가 고깔 쓴 이는 몸을 많이 잘못 만드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아무 일도 안 하는 귀한 집 자식들은 굶어 죽지 않는데, 책을 많이 읽는 선비들은 자주 몸을 그르친다”라는 뜻으로, 기개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의지 때문에 처지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전체 시의 강요(綱要)이다. ‘비단 바지 입은 사람(기브로 외  사)’과 ‘갓 쓴 선비(션 곳갈 스니)를 대비하여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丈人試靜 주014_1)
*〈중간본〉에는 ‘청(聽)’이 ‘청(聴)’으로, ‘賤子ㅣ’가 ‘甫이’로 되어 있다.
賤子請具陳丈人 주015)
장인(丈人)
①아내의 친정아버지. ②노인. ③어른에 대한 높임말. ④할아버지. ⑤아버지의 벗. ⑥별자리 이름.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 指左丞 주016)
좌승(左丞)
관직 이름. 전한 성제(成帝) 건시(建始) 4년(기원전 29) 상서(尙書)를 설치했는데, 인원은 5명이고, 승(丞)이 4명이었다. 광무제(光武帝)가 2명으로 줄이면서 처음으로 좌우승(左右丞)으로 나누었다. 상서좌승(尙書左丞)은 상서령(尙書令)을 보좌했는데, 주로 기강(紀綱)을 관할했고, 우승(右丞)은 복야(僕射)를 보좌해 전곡(錢穀) 관련 일들을 관장했다. 녹봉은 모두 4백 석(石)이었다.
고 賤子 주017)
천자(賤子)
비천(卑賤)한 사람이라 하여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여기서는 두보가 자신을 부른 명칭이다. 『두시언해』에서 두보가 자신을 부른 명칭은 ‘나그네, 노옹(老翁), 늘근 놈, 늘근 션, 랑(郞), 백수랑(白首郞), 빈객(賓客), 소신(小臣), 천자(賤子)’ 등이 있다.
ㅣ 自謂라】

丈人 주018)
장인(丈人)
장인은. ‘장인’은 좌승(左丞) 위제(韋濟)를 가리킨다.
비로소 니 주019)
니
가만히. +이. 참조; ‘-’. ¶그 夫人이 니 사 브려 나랏 內예 王ㅅ 病  사 어더 려다가   보니〈석상 24:50ㄱ〉. 그 예 라 니 더운 히 므여워 블 븐 도다(枯旱於其中 炎方慘如燬)「種萵茞幷序」〈두시 16:65ㄴ〉. - : 百千 바리 절로 울어늘  미 부니 微妙 소리 나더라〈석상 11:16ㄴ〉. 놉고  두 甘子ㅅ 남기여 婆娑야  院이 곳답도다(岑寂雙甘樹 婆娑一院香)「樹間」〈두시 18:22ㄴ-23ㄱ〉.
주020)
서. 셔[立]+어. ¶셔- : 持國天王이 乾闥婆 一切 眷屬 리고 류야 東方로셔 와 東녁 겨틔 合掌야 셔며〈석상 3:27ㄴ〉. 모딘 범이 내 알 셔 이시니 蒼崖ㅣ 우륾 제 려디놋다(猛虎立我前 蒼崖吼時裂)「北征」〈중간두시 1:1ㄱ〉.
드르라 주021)
드르라
들으라. 듣-[聞]+으라.
賤子ㅣ 請 주022)
청(請)
청하건대. 청#-+ㄴ. 통합형 어미 ‘-ㄴ’은 기원적으로 명사구 보문 구성의 ‘-ㄴ#+’에서 형태소 경계가 소멸되어 생성된다. 청원 구문의 동사(願-, 라-, 請-, 빌- 등)와 염원(念願)의 의미가 있을 때 통합된다. ‘-ㄴ’은 ‘가정’의 용법과 ‘전제’의 용법으로 나눌 수 있다. ¶-ㄴ(전제) : 願 世尊이 後世옛 모딘 衆生로 분별 마쇼셔〈석상 11:9ㄴ〉. 저 이 녯  卿相의 무더메 돌 셰여 表 사마 이제 지즈로 잇가 노라(恐是昔時卿相墓 立石爲表今仍存)「石笋行」〈두시 3:70ㄱ-ㄴ〉. -ㄴ(가정) : 길헤 艱難 사 보아 다 布施더라〈석상 6:15ㄴ〉. 비 하 오나 므리므리예 구스를 얻니 이 이리 어즐야 기 議論호미 어렵도다(雨多往往得瑟瑟 此事恍惚難明論)「石笋行」〈두시 3:70ㄱ〉.
베퍼 주023)
베퍼
베풀어. 베프-[發]+어. ¶슬프다 如來ㅅ 큰 智慧海 베프샤 사미 다 그  라 그 流에 거스리 흘러 오게 샤〈남명 서:3ㄱ〉. 時世 거리칠  베프고져 나 尙書郞이 셔 늘고라(欲陳濟世策 已老尙書郞)「暮春 ··· 五首」〈두시 7:15ㄴ〉.
닐오리라 주024)
닐오리라
이르리라. 말하리라. 니르-[謂]+오+리+라.

【한자음】 장인시정청 천자청구진【장인(丈人)은 좌승(左丞)을 가리키고, 천자(賤子)는 두보가 자신을 일컬은 것이다.】
【언해역】 장인(丈人)은 비로소 가만히 서서 들어 주십시오. 천자(賤子)가 청하건대 다 베풀어 이를 것입니다.
*시 구절 해석 : “좌승께서는 시험 삼아 조용히 들으시니, 비천한 제가 갖추어 아뢰겠습니다.”라는 뜻으로, 두보가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테니 좌승은 경청해 달라는 말이다.

甫昔少年日 早充觀國賔에 觀國之光이라 니 言ㅣ 嘗策名 주025)
책명(策名)
책명위질(策名委質)의 줄인 말로, 벼슬하여 조정(朝廷)에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름을 신적(臣籍)에 쓰는 것. 즉 벼슬하는 것이다.
薦書 주026)
천서(薦書)
사람을 추천(推薦)하는 문서 또는 서신(書信).
也ㅣ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ㄴ

라】

주027)
내가. 나[我]+이+∅.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내’의 성조는 ‘평성’이다. 15세기 대명사들의 주격형과 관형격은 다음과 같이 성조로 구별되는데, 1인칭 ‘나’와 2인칭 ‘너’ 그리고 재귀칭 ‘저’의 주격과 관형격은 ‘·내:, :네(상성), :제(상성), ·뉘(거성), 관형격은 내(평성), 네(평성) 제(평성), :뉘(상성)’ 등과 같다. 이를 대명사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거성/주격)-‘내’(평성/관형격), 둘째, ‘:네’(상성/주격)-‘네’(평성/관형격), 셋째 ‘‧뉘’(거성/주격)-‘:뉘’(상성/관형격), 넷째 ‘:제’(상성/주격)-제(평성/관형격)이다. ¶·내(주격) : 太子 하 스스어시니 내 어드리 치리고〈석상 3:10ㄱ〉. 내 비록 諫諍 資質ㅣ 업스나 내 나니거든 님그미 〈중간두시 1:2ㄱ〉 그르실 이리 겨실가 젓노라(雖乏諫諍姿 恐君有遺失)「北征」〈중간두시 1:1ㄴ-2ㄱ〉. :네(주격) : 王이 니샤 네 다 轉輪聖王이 외야〈석상 3:23ㄱ〉. 새 녀 도라와 내 을 慰勞호니 사롬 사리아 어느 시러곰 니리오(新歸且慰意 生理焉能說)「北征」〈중간두시 1:7ㄱ〉. 제(주격) : 제 너교 바 가다가 귓것과 모딘 이 므엽도소니 므스므라 바 나오나뇨〈석상 6:19ㄴ〉. 여윈 겨지비 깃거 치 도로 빗나며 어린 리 머리 제 빗다(瘦妻面復光 癡女頭自櫛)「北征」〈중간두시 1:6ㄱ-ㄴ〉. 내(관형격) : 내 아리 天神 中에  尊니〈석상 3:4ㄱ〉. 새 녀 도라와 내 을 慰勞호니 사롬 사리아 어느 시러곰 니리오(新歸且慰意 生理焉能說)「北征」〈중간두시 1:7ㄱ〉. 네(관형격) : 太子ㅣ 니샤네 求논 이리〈석상 3:33ㄴ〉. 어느 제 내 몸이 개 이셔 라가 네 알 디려뇨(何當有翅翎 飛去墮爾前)「彭衙行」〈중간두시 1:14ㄱ〉. 제(관형격)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모딘 버미 제 므의여우믈 비겨시나 므므예 리 요 맛나니라(猛虎憑其威 徃徃遭急縛)「遣興五首」〈중간두시 2:69ㄴ-70ㄱ〉.
주028)
옛날에. ¶對答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석상 3:17ㄱ〉. 녜 河西ㅅ 尉 마로니 처 薊北에 師旅ㅣ 니러나더라(昔罷河西尉 初興薊北師)「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져믄 제 주029)
져믄 제
젊었을 때. 졈-[少]+은 제. ¶王이 깃그샤 四百八夫人 다 브르샤 졈고 고니로 여듧 각시 샤〈월석 8:91ㄱ〉. 單父ㅣ 기리 閑暇호미 하니 河陽 眞實로 나히 졈도다(單父長多暇 河陽實少年)「夏夜 ··· 聯句」〈두시 23:53ㄱ-ㄴ〉.
주030)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번소 9:56ㄴ〉. 내 조쳐 일 두위이져 기 드리워 더운 病 해 窮困히 니니라(放逐早聯翮 低垂困炎癘)「贈秘 ··· 公邕이라」〈두시 24:29ㄱ〉.
나랏 비츨 보 소 거긔 주031)
나랏 비츨 보 소 거긔
나라의 빛을 보는 손의 그곳에. 원문의 ‘觀國賓’을 옮긴 것으로 ‘관리가 되는 곳에’의 뜻이다. ‘관국(觀國)’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充數요라 주032)
충수(充數)요라
충수하게 하였다. 즉 ‘두보 자신으로 하여금 관리가 되는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는 뜻으로 ‘두보 자신이 관리가 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자음】 보석소년일 조충관국빈【『주역』에, “나라의 빛나는 곳을 본다.”라고 하니, 두보가 일찍이 관리가 되어 글을 올린 적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내가 옛날 젊었을 때, 일찍 나라의 빛을 보는 손의 거기에 충수(充數)하게 하였네.
*시 구절 해석 : “내가 일찍이 젊었을 때, 나라 빛을 보는 손님에 충당되었다.”라는 뜻으로, 젊어서 관리가 되어 조정에 자기 주장을 담은 글을 올렸다는 말이다. 충수(充數)는 합격(合格)하지 못한 사람이나 물건을 수량 안에 넣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부족한 자신이 어떤 지위에 발탁된 것에 대한 겸사(謙詞)로 쓰인다.

讀書破萬卷 下筆 주033)
하필(下筆)
붓을 떨어뜨림. 낙필(落筆). 시문(詩文)이나 그림 등을 붓을 써서 쓰거나 그렸다는 말이다.
有神 주034)
유신(有神)
신의 도움이 있음. 글이나 그림, 말이 기묘하고 생동감이 넘쳐 신운(神韻)이 있다는 말이다.
【破 識破其理也ㅣ라】

그를 주035)
그를
글을. 글+을. ¶製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 1ㄱ〉. 眞珠  글 주 恩惠 찻도다(洞徹眞珠惠)「贈秘 ··· 公邕이라」〈두시 24:27ㄱ〉.
닐고 주036)
닐고
읽되. 닑-[讀]+오+. 원문의 동사 위치에서 서술어를 해석하거나 대립적인 사실을 잇는 데 쓰이는 대립의 연결어미 ‘-오/-우’는 중세국어 말기부터 용법이 동요되다가 근대국어 시기에는 ‘-’만 쓰인다. ¶된소리로 經을 닐고 밤낫 그치디 아니면〈월석 10:122ㄱ〉. 東岳ㅅ 中에 가 글 닐거 열  墳典 마초니라(讀書東岳中 十載考墳典)「故秘 ··· 源明」〈두시 24:32ㄱ〉.
萬卷을 허루니 주037)
허루니
허니. 독파(讀破)하니. 헐-[破]+우+니. ‘헐-’의 사동사는 ‘헐우-’와 ‘헐이-’가 있고, 피동사는 ‘헐이-’가 있다. ¶헐- : 有情이 비록 如來 道理 호다가도 尸羅 헐며〈석상 9:13ㄱ〉. 多少 不定數也ㅣ라 材官 武臣이니 言今材官이 屯守涇渭니(多少材官守涇渭 將軍且莫破愁顏)「諸將五首」〈두시 5:44ㄴ〉. 헐우-(사동) : 침으로 어 헐워 거믄 피 나게 하고〈구간 2:76ㄱ〉. 우러 흐르는 므레 갈 다니 므리 블그니 히 소 헐우도다(磨刀嗚咽水 水赤刃傷手)「前出塞九首」〈두시 5:26ㄴ〉. 헐이-(사동) : 므리 디 몯며 毒이 害티 몯며 히 헐이디 몯며 內外怨賊이 侵掠디 몯야〈월석 10:70ㄱ〉. 北녁 미 南極을 헐이니 블근 鳳은 나날 威垂도다(北風破南極 朱鳳日威垂)「北風」〈중간두시 4:34ㄴ〉. 헐이-(피동) : 오직 갈콰 도최예 헐여 피 나 긋디 아니커든〈구급방 상:82ㄴ〉.
부들 주038)
부들
붓을. 붇[筆]+을. ¶보 신긔로온 부디 되여 묏 얼구 그리놋〈백련 13ㄴ〉. 주신 두 부들 호미 맛커늘 오히려  불여 니 다보지 외옛노라(合分雙賜筆 猶作一飄蓬)「老病」〈두시 3:55ㄱ〉.
리와수메 주039)
리와수메
내려 있음에. 리-+오+아#시-+우+ㅁ+에. ¶리오다 : 溫水 冷水로 左右에 리와 九龍이 모다 싯기니〈월석 2:34ㄴ〉. 하얀 읏드미 時節을 조차 믈드로 마 슬노니 우 뵈트레 버혀 리오니 비치 서르 쇗도다(已悲素質隨時染 裂下鳴機色相射)「白絲行」〈두시 25:50ㄱ〉.
神助호미 잇 더라 주040)
더라
듯하더라. #-+더+라. ¶修行 기프신 文殊 普賢 히 긔 구룸 몯더시니世界예 妙法 펴리라〈월천30ㄴ〉. 兄弟 로 伊尹 呂望 보리로소니 持揮ㅣ 一定 더니 蕭何 曹參 일토다(伯仲之間見伊呂 指揮若定失蕭曹)「詠懷古跡二首」〈두시 6:32ㄴ〉.

【한자음】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파(破)’는 그 이치를 알아 논파(論破)한 것이다.】
【언해역】 글을 읽되 만 권(萬卷)을 독파(讀破)하니, 붓을 내려 있음에 신조(神助)함이 있는 듯하더라.
*시 구절 해석 : “지금까지 읽은 책이 만 권을 넘어섰고, 붓을 들면 신들린 듯이 썼다.”란 뜻으로, 오랜 기간 많은 공부를 하고 노력하여 글을 쓰면 신운(神韻)이 깃든 듯 정확하고 빨랐다는 말이다.

주041)
부(賦)
사부(辭賦). 문체(文體) 이름. 중국 전국시대에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쓴 〈이서(離騷)〉와 순경(荀卿)이 쓴 〈부편(賦篇)〉이 있는데, 부(賦)의 선구 작품들이다. 한(漢)나라 때 와서 부체(賦體)가 크게 성행했는데, 굴원 등이 쓴 작품을 일러 초사(楚辭)라 불렀다. 늘 사부(辭賦)로 병칭(幷稱)되었다. 사부는 성조(聲調)를 중시했고, 서정(抒情)을 위주로 했으며 배비포진(排比鋪陳)에 신경을 썼다. 이후 글을 쓸 때 변산(騈散)의 차이가 나타나자 나뉘어 변부(騈賦)와 문부(文賦)가 되었다.
揚雄 주042)
양웅(揚雄)
기원전 53-기원후 18. 전한 촉군(蜀郡, 사천성) 성도(成都) 사람. 자는 자운(子雲)이다. 어릴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했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사부(辭賦)에도 뛰어났다. 청년시절에 동향의 선배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작품을 통해 배운 문장력을 인정받아, 성제(成帝) 때 궁정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40여 살 때 처음으로 경사(京師)에 가서 문장으로 부름을 받아, 성제의 여행에 수행하며 쓴 〈감천부(甘泉賦)〉와 〈하동부(河東賦)〉, 〈우렵부(羽獵賦)〉, 〈장양부(長楊賦)〉 등을 썼는데, 화려한 문장이면서도 성제의 사치를 꼬집는 풍자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간언의 덕택으로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에 임명되었다. 나중에 왕망(王莽) 밑에서도 일해 대부(大夫)가 되었다. 천록각(天祿閣)에서 책을 교정했다. 자신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불우한 원인을 묘사한 「해조(解嘲)」와 「해난(解難)」도 독특한 여운을 주는 산문이다. 학자로서 각 지방의 언어를 집성한 『방언(方言)』과 『역경(易經)』에 기본을 둔 철학서 『태현경(太玄經)』, 『논어』의 문체를 모방한 『법언(法言)』, 『훈찬편(訓纂篇)』 등을 저술했다.
敵 詩看子建 주043)
자건(子建)
조식(曹植, 192~232)의 자. 조식은 삼국시대 위(魏)나라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자는 자건(子建)이고, 조조(曹操)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조숙했고, 문재(文才)가 있었다. 어린 나이로 조조의 사랑을 받아 건안(建安) 16년(211)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지고, 19년(214)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다. 한 차례 황태자로 올리려 했지만 성격대로 행동하여 총애를 잃고 말았다. 형 조비(曹丕, 文帝)가 황제(文帝)가 되자 황초(黃初) 3년(222) 견성왕(鄄城王)에 봉해지고, 다음 해 옹구왕(雍丘王)으로 옮겨 봉해졌지만,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가 시기하여 해마다 새 봉지(封地)에 옮겨 살도록 강요했다. 엄격한 감시 아래 신변에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명제(明帝) 태화(太和) 3년(229) 동아왕(東阿王)이 되었다가 다시 진왕(陳王)에 봉해졌다. 항상 등용되기를 기대했지만 끝내 기용되지 못했다. 6년(232) 다시 봉지를 옮겼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시호는 사(思)다. 그리하여 진사왕(陳思王)으로 불린다. 시문을 잘 지어 조조,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로 불린다. 약 80여 수의 시가 전하고, 사부(辭賦)나 산문도 40여 편 남아 있다. 「칠보시(七步詩)」가 유명하다. 송나라 때 『조자건집(曹子建集)』이 나왔다.

賦러 주044)
부(賦)러
부(賦)로는. 賦+로+. ‘러’는 ‘로’의 이표기다. ‘로’이 ‘러’으로 표기된 것은 『두시언해』에서도 이것이 유일례이다. 따라서 오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중간본〉에는 ‘賦라’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15세기 문헌에서 ‘-로’의 용례는 확인된다. ¶-로 : 如來ㅣ 이 두 그틀 두드려 두 소로 호아 브티시니라〈금삼 3:5ㄱ〉.
揚雄이 주045)
양웅(揚雄)이
양웅이야. 揚雄+이+. ‘’는 보조사로 조사, 체언, 어말어미 뒤에 두루 통합된다. 16세기 전반부터는 ‘ㅿ’의 소멸로 인해 ‘’가 쓰이지 않으면서 ‘아/야/사’ 등으로 반영되었고 『두시언해』의 〈중간본〉은 〈초간본〉의 모든 ‘ㅿ’이 ‘ㅇ’으로 바뀌어 있다. 〈중간본〉에는 간혹 ‘ㅿ’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으나 이것은 판각의 문제이지 실제로 ‘ㅿ’이 쓰인 것은 아니다. ‘’는 후대 문헌에서 ‘도이아’〈발심 29〉, ‘늣게야’〈박통사, 하14〉, ‘오래거사’〈염불보권 38〉의 형태로 쓰였다. ¶仙人 이리 굴근 結이 업거니와〈석상 3:36ㄱ〉. 玉盃 가지고 오래 괴외얫더니 鍾聲管絃이 宮徵 迷失리로다(玉盃久寂寞 金管迷宮徵)「聽楊氏歌」〈두시 16:49ㄴ〉.
주046)
양웅(揚雄)이
양웅이야. 揚雄+이+. 〈중간본〉에는 ‘楊雄이아’로 되어 있다.
오리로다 주047)
오리로다
대적할 것이다. 나란히 할 것이다. -[竝]+으리+도+다. ‘-’은 ‘함께하다. 같이하다[俱]’의 뜻도 있다. ¶(나란히 하다. 대적하다) : 오직 如來란 덜오 녀나 聲聞 辟支佛이며 菩薩 智慧禪定에 니르리 너와 리 업스니라〈월석 18:57ㄴ〉. 버러 우흿 갌  열두을 랫 지치여 將軍 勇猛야 남과 다 오리로다(韝上鋒稜十二翮 將軍勇銳與之敵)「王兵馬使二角鷹」〈두시 17:10ㄱ-ㄴ〉.
혜오 주048)
혜오
헤아리고. 혜-[數]+고. ¶엇뎌 다 두 가지오 시고 다 혜여 니신대〈석상 3:9ㄴ〉. 萬歲 千秋  님그믈 奉戴오리로소니 臨江ㅅ 節士 엇뎨 足히 혜리오(萬歲千秋奉明主 臨江節士安足數)「魏將軍歌」〈두시 5:39ㄴ〉.
詩란 子建이 주049)
자건(子建)이
자건이야. 子建+이+. 〈중간본〉에는 ‘子建이아’로 되어 있다.
親近리로다 주050)
친근(親近)리로다
친근할 것이도다. 親近#-+리+도+다.
보다라 주051)
보다라
보았다. 보-[見]+더+오+라. ‘다라’의 ‘다’는 ‘더+오’가 축약된 것이다. ¶太子ㅣ 닐오 내 담다라〈석상 6:24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한자음】 부료양웅적 시간자건친
【언해역】 부(賦)는 양웅(揚雄)이어야 대적할 것이라 생각하고, 시(詩)는 자건(子建)이라야 가까울 것이라 보았네.
*시 구절 해석 : “부는 양웅이어야 견줄 만하고, 시는 조식이라야 가까울 것이라 보았네.”라는 뜻으로, 자신의 사부(辭賦)와 시문을 짓는 실력이 최고 수준에 올랐음을 자부한 말이다.

李邕求識面 王翰願卜隣李邕 주052)
이옹(李邕)
678~747. 당나라 양주(揚州) 강도(江都, 지금의 江蘇) 사람 자는 태화(泰和)다. 이선(李善)의 아들로,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다. 해서와 행서로 비석 글씨는 쓰는 데 뛰어났고,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필법을 본받아 개성 있는 글씨를 썼다. 이교(李嶠)의 천거를 받아 좌습위(左拾尉)에 재수되었다. 아버지의 『문선주(文選注)』를 보충하여 두 책이 함께 전한다. 현종 개원(開元) 초에 공부낭중(工部郞中)에 발탁되었다가 괄주사마(括州司馬)로 강등되고 다시 진주자사(陳州刺史)로 전임되었다. 천보(天寶) 초에 북해태수(北海太守)를 지내 세칭 ‘이북해(李北海)’로 불린다. 사람됨이 정직해 재상 이임보(李任甫)가 평소 그를 꺼려 모해하여 북해군에서 장살(杖殺)당했다. 사후에 대종(代宗)이 비서감(秘書監)에 추증했다. 원래 문집 70권이 있었지만 이미 산일되었고, 후세 사람들이 편집한 『이북해집(李北海集)』이 있다.
王翰 주053)
왕한(王翰)
?~?. 왕한(王澣)으로도 쓴다. 당나라 병주(幷州) 진양(晉陽) 사람. 자는 자우(子羽)다. 젊었을 때 재주를 믿고 호방하게 지냈다. 예종(睿宗) 경운(景雲) 원년(710) 진사(進士)에 합격했다. 장열(張說)의 인정을 받아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가 되고, 통사사인(通事舍人)으로 옮긴 뒤 가부원외랑(駕部員外郞)을 지냈다. 성격이 호방하고 자부심이 강하여 분방한 생활을 한 탓에 인심을 잃어, 개원(開元) 14년(726) 장열의 실각과 동시에 여주장사(汝州長史)로 좌천되었다. 선주별가(仙州別駕)로 옮겼다가 다시 도주사마(道州司馬)로 밀려나 그곳에서 죽었다. 전해지는 시는 불과 14편에 지나지 않지만, “맛좋은 포도주에 야광의 술잔(葡萄美酒夜光杯)”으로 시작되는 「양주사(凉州詞)」는 당대 칠언절구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 一時丈人 주054)
장인(丈人)
①아내의 친정아버지. ②노인. ③어른에 대한 높임말. ④할아버지. ⑤아버지의 벗. ⑥별자리 이름. 28수(宿) 중의 정수(井宿)에 속한다. 현재의 비둘기자리의 일부다.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당대 명성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이니 求識面며 卜隣 주055)
복린(卜隣)
①이웃해 살 곳을 골라 택함. ②다른 사람에게 이웃해 살기를 원함을 표시함.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則甫之名重於時
*〈중간본〉에는 ‘願卜隣則甫之名重於時ᄅᆞᆯ’이 ‘-를’로 되어 있다. 可知로다】

李邕이 주056)
나의. ‘내’는 ‘속격’으로 성조는 ‘평성’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녜 져믄 제(甫昔少年日)’「奉贈 ··· 二十二韻」 항목 참조.
 주057)

낯을. 얼굴을. [面]+. 15세기의 ‘얼굴’은 ‘形’의 뜻이다. ¶十一 面은 열 치니 열  觀自在菩薩ㅅ 相 라 供養 일 니샨 經이라〈석상 6:44ㄱ〉. 올 아다온 主人ㅣ 인니 디 마  아던 도다(邑有佳主人 情如已會面)「積草嶺」〈중간두시 1:24ㄱ〉.
아라지라 주058)
아라지라
알고 싶다. 알-[知]+아#지-+라. ‘-어 지-’는 현대국어의 ‘-고 싶-’에 대응되는 보조동사이다. ‘-아#지-’는 원문의 ‘願’에 대응한다. ¶-아지- : 太子ㅣ 門 밧글 보아지라 야시〈석상 3:16ㄱ〉. 降服야지라 비루믈 어느 다시 어드리오 奸詐를 崇尙호믈 갓 잇비 말라(乞降那更得 尙詐莫徒勞)〈두시 5:3ㄱ〉「喜聞 ··· 二十韻」. 願(-뎌 願-) : 지븨 이셔셔 녜 일 닐오 나랏 일 시름야  가멸와뎌 願다(在家常早起 憂國願年豐)「吾宗」〈두시 8:52ㄱ〉. 願(-져 願-) : 그 王ㅣ 天子 돕고져 願니 그 風俗 요 즐기니라(其王願助順 其俗善馳突)〈중간두시 1:7ㄴ〉「北征」. 願(願-) : 고사리 먹고 녀나 거슬 願티 아니호라니 내 새집을 眼中에 보노라(食蕨不願餘 茅茨眼中見)「積草嶺」〈중간두시 1:24ㄴ〉. 願(願) : 願 衆庶 모라 님그믈 奉戴야 車와 書왜 混一게 고 金과 玉과란 리고라(願驅衆庶戴君王 混一車書棄金玉)「黃河二首」〈중간두시 4:27ㄱ〉.
求고 王翰이 이우제 주059)
이우제
이웃에. 이웆[隣]+에. ¶ 이우짓 기 東山애 드러오나〈삼강런던烈8〉. 일후믈 덜어 淸江애 流配니 그  巫峽ㅅ 이우지로다(除名配清江 厥土巫峽鄰)「敬寄 ··· 使君」〈두시 8:53ㄴ〉.
卜居야지라 주060)
복거(卜居)야지라
복거하고 싶다. 卜居#-+야#지-+라. ‘-아#지-’는 ‘-고 싶다’의 의미이다. ¶-아 지- : 太子ㅣ 門 밧글 보아지라 야시〈석상 3:16ㄱ〉. 어딘 이 草萊ㅅ 소로셔 오니 蒼然히 이 議論야지라 請야(令弟草中來 蒼然請論事)「送從 ··· 判官」〈두시 22:34ㄴ-35ㄱ〉.
願더라 주061)
원(願)더라
원하였다. 願#-+더+라. ‘-더-’는 과거시제 선어말어미로 현대국어에서 ‘회상, 경험, 증거성’ 등의 용법과는 기능이 달랐다.

【한자음】 이옹구식면 왕한원복린【이옹(李邕)과 왕한(王翰)은 한 시대의 뛰어난 인물이니, 이들이 면식을 갖고자 하고 이웃하기를 원했다면 두보의 명성이 당시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언해역】 이옹(李邕)이 내 낯을 알고 싶다 구(求)하고, 왕한(王翰)이 이웃에 와 복거(卜居)하고 싶다 원(願)하였다.
*시 구절 해석 : “이옹이 서로 사귀기를 청했고, 왕한은 이웃되기를 원했다네.”라는 뜻으로, 당시의 훌륭한 인물인 이옹과 왕한이 두보와 사귀고 이웃하고 싶을 만큼 두보 자신의 명성이 높았다는 말이다.

自謂頗挺出 주062)
정출(挺出)
돌출(突出)함. 출중(出衆)함. 무리 가운데 아주 뛰어남.
立登要路 주063)
요로(要路)
빛나고 중요한 지위(地位)를 비유하는 말.
津 致君堯舜 주064)
요순(堯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요임금은 전설상의 원고(遠古) 시대 제왕. 이름은 방훈(放勳)이고, 부계(父系)는 씨족사회 후기 부족의 수령이었다. 처음에 도(陶)에서 살다가 나중에 당(唐)으로 옮겨 살아 도당씨(陶唐氏)로 불리며, 역사에서는 당요(唐堯)라 부른다. 전하는 말로 관청을 설치해 시령(時令)을 관장하게 하고 역법(曆法)을 정했다고 한다. 곤(鯀)에게 명령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사악(四嶽)에 물어보아 순(舜)을 선발하고 후계자로 정했다. 순의 행실을 3년 동안 지켜보다가 순에게 섭정(攝政)하게 했다. 죽은 뒤 순이 자리를 이었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선양(禪讓)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요가 만년에 덕이 쇠하여 순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지위를 빼앗겼다고도 한다. 순임금은 전설상 제왕(帝王)으로 5제(帝)의 한 사람. 성은 우(虞) 또는 유우씨(有虞氏)고, 이름은 중화(重華)다. 유덕(有德)한 성인으로서 선양(禪讓) 설화의 대표적 인물이며 요(堯), 우(禹)와 병칭되고 있다. 원시 사회 후기 부락연맹의 수령이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따르면 전욱(顓頊)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시각장애자였고, 계모와 이복동생의 미움을 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효행(孝行)의 도를 다했다. 당시 천자(天子) 요가 순의 평판을 듣고 자기 딸을 순에게 출가시켜 등용했다. 순의 치적이 훌륭했으므로 사악(四嶽)의 천거를 받아 섭정(攝政)을 했다. 팔원(八元)과 팔개(八愷)를 등용하고, 사방을 순행(巡行)하면서 곤(鯀)과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등 사악(四惡)을 제거했다. 요가 죽자 요의 아들 단주(丹朱)를 즉위시키려 했지만 천하의 인심이 순에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마침내 순이 제위에 올랐다.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우를 사공(司空)에 임명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으며, 우를 후계자로 삼았다. 또 기(夔)와 설(契), 고요(皐陶), 수(垂), 익(益), 백이(伯夷), 기(棄), 용(龍) 등에게 민사(民事)를 맡겨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그 후 남방을 순행하면서 사냥을 하던 도중 병을 얻어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자 구의(九疑)에서 장례를 지내니, 지금의 영릉(零陵)이다. 일설에는 우에게 방축(放逐)당해 창오에서 죽었다고도 한다. 39년 동안 재위했다. 근래 사람의 연구에 따르면 순과 제준(帝俊), 제곡(帝嚳)은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上 再使風俗淳【要路津 仕宦애 居要職者ㅣ라】

주065)
내가. ‘내’는 ‘거성’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녜 져믄 제(甫昔少年日)’「奉贈 ··· 二十二韻」 항목 참조.
너교 주066)
너교
여기되. 생각하되. 너기-[謂]+오+. ‘-오’는 한문의 어순으로는 선행하는 동사를 우리말로 언해할 때 문장의 끝에서 하지 않고, 원래의 동사의 위치에서 언해할 경우에 사용한다. ¶-오 : 王이 太子 묻샤 조 어루다 對答샤 어루호리다〈석상 3:12ㄱ〉. 帝ㅣ 니샤 큰 뵈옷 니븐 사마 너를 籍賴야 元帥 돕게 노라(帝曰大布衣 籍卿佐元帥)「送從 ··· 判官」〈두시 22:35ㄴ〉. 너기다(謂)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샤공이 어드운 셔  달화 놀애 브며 우우어 믌겨를 므던히 너기놋다(篙師暗理楫 謌笑輕波瀾)「水會渡」〈중간두시 1:29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ㄱ

모 주067)
모
자못[頗]. ‘모’는 『두시언해』에서 ‘’로도 2회 쓰였는데, 『두시언해』 복각본에서는 모두 ‘모’라 수정되었다. 원시의 ‘何, 頗, 殊’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 전체에서 ‘何’의 번역으로 ‘모’가 쓰인 것은 44회, ‘頗’의 번역으로 쓰인 것은 38회, ‘殊’의 번역으로 쓰인 것은 1회이다. 『두시언해』 복각본 영인본 중 경인문화사 영인본의 권2:40ㄴ에는 ‘자못’으로 되어 있는데, 원본 확인이 필요하지만 다른 중간본의 영인본에는 ‘모’로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붓으로 가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학언해』(1586)에 ‘’(제2), 첩해신어(1676)에 ‘믓’(5)이 쓰인다. ¶ : 며 이제 大將의 威權을 攝行니 號令이  녯 어딘 사 風이 잇도다(况今攝行大將權 號令頗有前賢風)「冬狩行」〈두시 5:50ㄱ-ㄴ〉. 胡羯이  難호미 하니 고기 자며 나모 쥬메 이 生 브톗노라(胡羯何多難 漁樵寄此生)「村夜」〈두시 7:6ㄴ〉. 못(가필) : 齊와 趙와 이예 放蕩히 녀 輕裘 肥馬로 못 어러이 뇨라(放蕩齊趙間 裘馬頗清狂)「壯遊」〈중간두시 2:40ㄴ(복각본)〉. 모 : 須菩提ㅣ 부텻긔 오 世尊하 모 衆生이 이 말 章句 듣고 實 信 내리 이시리가 몯리가〈금강 32ㄱ〉. 제 지 詩集을 보니 모  이우로 슬허도다(觀其著詩集 頗亦恨枯槁)「遣興五首」〈두시 3:58ㄱ〉. 舜 열여슷 도올 사 드러 니 모미 尊고 道理 모 놉고(舜舉十六相 身尊道何高)「述古三首」〈두시 3:56ㄴ〉 /高岺이 모 날호야 건니 沈休文과 飽照로 시러곰 行列이 도다(高岑殊緩步 沈鮑得同行)「寄彭 ··· 三十韻」〈두시 20:36ㄱ〉.
혀나 주068)
혀나
빼어나. 혀-#나-+아. ‘혀나다’는 ‘혀나다’로도 쓰인다. 15세기 국어에서 ‘나-’ 합성동사로는 ‘혀나다, 나다, 나다, 혀나다, 나다’ 등이 있다. ¶혀나- : 圓頓敎法 키 甚히 즈르고 혀나 人情에 갓갑디 아니 人情 업다 니시니〈남명 하:38ㄴ〉. 王 詔命야 와 그려기 소라 시니 詔命을 절고 마 모 혀나더라(詔王來射鴈 拜命已挺身)「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23ㄴ〉. 혀 :  타 님금 受辱샤 놀라고 갈 혀 나 늘구믈 러 리노라(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혀나- : 艱難 예 모 혀나 누늘  도 보놋다(挺身艱難際 張目視寇讐)「送韋 ··· 判官」〈두시 22:37ㄱ〉. 혀 : 이제 니르러 이젯 님그미 오히려 亂 혀 려  며 호 글탈하 四方 기우시니라(至今今上猶撥亂 勞心焦思補四方)「憶昔二首」〈두시 3:60ㄴ〉. 나- : 셜흔 여슷차힌 가락 文이 나시며〈월석 2:57ㄴ〉. 顧侯 韓蔡ㅅ 예 누니 나  字 바지로이 더니라(顧於韓蔡內 辨眼工小字)「送顧 ··· 吉州」〈두시 16:17ㄴ〉. 혀나- : 네 鎭에 나니 하니 賊鋒을 摧陷요미 다 무레 혀나리라(四鎮富精銳 摧鋒皆絕倫)「觀安 ··· 二首」〈두시 5:53ㄱ〉.
조로왼 주069)
조로왼
중요한. 조-[要]+. 〈중간본〉에는 ‘조로왼’으로 되어 있다. 그 활용형이 특이하여 능엄경언해(1461)를 기점으로 이전 문헌에는 ‘조-’형, 그 문헌부터는 ‘조외-’형으로 변모된다. “ㅸ⇒오/우/ㅇ”와 같은 순경음 표기의 개정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종요외-~종요로외-’ 등을 거쳐 대체로 16세기 후반부터 ‘종요로오-’형으로 바뀌어 ‘-롭-’계 형용사의 일반적 활용형과 같아진다. ¶要 조씨라〈월석 15:40ㄱ〉. 秘要 秘密코 조씨라〈월석 15:48ㄴ〉. 修行 眞實ㅅ 조왼 이 사시니〈능엄 1:21ㄱ〉. 要 조욀씨라〈법화 4:68ㄴ〉. 주우린 사 구홀 종요로왼 법〈1554 구황 1ㄱ〉. 글 사굠애 종요로온  인  니르러〈1588 소언 6:8ㄴ〉. 會要 모 조 거시라〈석상 21:41ㄱ〉. 조왼 긼이 페 旌旗 랏고 뎌 亭子ㅅ 가온 갈 지엿도다(懸旌要路口 倚劍短亭中)「寄司馬山人十二韻」〈두시 9:7ㄴ〉.
路津에 올아셔 주070)
올아셔
올라서. 오-[上]+아#서-+어. ‘-셔’는 ‘이시-’[有]. 이형태 ‘시-’의 부사형이 문법화한 보조사이다.
님금을 堯舜ㅅ 우희 주071)
우희
위에. 우ㅎ[上]+의.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닐위이곡 주072)
닐위이곡
이르게 하고. 니-/니르-+우+이+고+ㄱ. ‘닐위-’는 ‘니르/니-’의 사동사이다. ‘-곡’은 연결어미 ‘-고’에 강세첨사 ‘-ㄱ’이 결합된 것이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으로 활용하여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이른바 ‘ㄹ·ㅇ’형 불규칙활용을 한다. ¶닐위- : 出世果 得디 몯야 十使煩惱 닐위니〈월석 11:118ㄴ〉. 이 소니 내의 病 됴티 몯호 어엿비 너겨 나 爲야 됴 차바 힘 닐위다(王生哀我未平復 爲我力致美肴膳)「病後 ··· 贈歌」〈두시 3:50ㄴ〉. -곡 : 너희 出家거든 날 리곡 머리 가디 말라〈석상 11:37ㄱ〉. 라가 몸 아닐 보곡 淮海예 어그르치 잇디 말라(騫騰訪知己 淮海莫蹉跎)「湖中 ··· 廣陵」〈두시 23:18ㄴ〉.
다시 風俗로 여 주073)
풍속(風俗)로 여
풍속으로 하여금. 즉 풍속이. 風俗+로 -+이+어. ‘-로 여’는 ‘-으로 하여금’의 뜻으로 현대국어의 장형사동의 피사동주 논항에 쓰이는 ‘-로 여곰’으로 쓰이기도 한다. ¶-로 여 : 님굼이 高允으로 여 太子를 글 치라 더니〈번소 9:44ㄱ〉. 올로 걷던 글던 일후미 잇니 오직 녯 버드로 여 슬케 다(獨步詩名在 秪令故舊傷)「聞高常侍亡」〈두시 24:54ㄱ〉. -로 여곰 : 夫人이 寬으로 여곰 怒호 試驗코져 야〈내훈 1:16ㄱ〉. 갌콰 삸 미트로 農器 디유믈 듣고져 願노니 집 와 보콰로 여곰 것게 디 말오라(願聞鋒鏑鑄 莫使棟梁摧)「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淳厚케 호려 주074)
순후(淳厚)케 호려
순후하게 하려. 淳厚#-+게 +오+리+어.
타라 주075)
타라
하더라. -+더+라. ‘타라’는 여기서는 ‘하더라’의 축약형이지만 어간이 ‘ㅎ’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타라’로 표기될 수 있다. ¶타라 : 내 지븨 이 저긔 受苦ㅣ 만타라〈월석 10:23ㄱ〉. 기튼 수욼잔과 다 시근 炙을 간 마다 니 슬타라(殘盃與冷炙 到處潜悲辛)「奉贈 ··· 二十二韻」〈두시 19:2ㄱ〉.

【한자음】 자위파정출 입등요로진 치군요순상 재사풍속순【‘요로진(要路津)’은 벼슬길에 나가 요직에 오르는 것이다.】
【언해역】 내 생각하되 자못 빼어나 중요한 노진(路津)에 올라서 임금을 요순(堯舜)의 위에 이르게 하고 다시 풍속으로 하여금 순후(淳厚)하게 하려 하였다.
*시 구절 해석 : “내 스스로도 아주 뛰어나, 바로 요직에 등용되리라 말했지. 임금을 보좌하여 요순보다 위에 오르게 하고, 다시 풍속을 순박하게 하리라 다짐했다.”라는 뜻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임금을 요순과 같은 성군(聖君)으로 만들고 풍속을 순화시키고자 하는 꿈을 품었다는 말이다. 두보의 바람이 임금을 요순과 같이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보좌하는 것에 있는 것은 두시의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 生애 堯舜 신 님그믈 맛나 잇올 곧 기리 여희요 디 몯노라(生逢堯舜君 不忍便永訣)「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3ㄱ〉”를 참조할 수 있다. 원문은 4구 연면구로 되어 있는데 ‘自謂’가 나머지를 지배하는 ‘[自謂[頗挺出立登要路津致君堯舜上再使風俗淳]]’의 구조로 되어 있다. 4구로 된 연면구이다.

此意竟蕭條 주076)
소조(蕭條)
①적막(寂寞)하고 쓸쓸함. 영락(零落)함. ②정치(政治)나 경제(經濟) 등이 침체(沈滯)됨. 쇠퇴(衰退)함. ③뿔뿔이 흩어져 드문드문함. ④부족(不足)함. 모자람. ⑤소요(逍遙)함. 한가(閑暇)하게 노니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行謌非隱淪 주077)
은륜(隱淪)
①신인(神人) 등급(等級)의 하나. 보통 신선(神仙)을 가리킨다. ②은거(隱居)함. ③은자(隱者)를 가리키는 말. ④몸을 감추어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함. 여기서는 ②③④의 뜻이 함께 쓰였다.
【隱淪은 隱逸之士也ㅣ라】

디 주078)
디
뜻이. +이. 즉 임금의 보좌하여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루려는 뜻을 말한다.
매 주079)
매
마침내. -[終]++애. ‘내’ 참조; ‘참내’는 중세국어에서는 주로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이므로 ‘끝내’ 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본래 의미에 가깝다. ¶매 : 受苦ㅅ  가지로 나 매 覺  가긔 니라〈월석 8:25ㄱ〉. 太庭 時節티 매 淳朴호매 도라가리니 京觀애  주거믈 업티리로다(太庭終返朴 京觀且僵尸)「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ㄴ〉. 내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내 : 이젯 亂離 스싀로 救호미 어려우니 내 이 湘潭애셔 늘그리로다(亂離難自救 終是老湘潭)「樓上」〈두시 3:49ㄱ〉.  : 迹은 처으로셔  니르리 샨 믈읫 이리〈월석 1:석보상절 서5ㄱ〉.
蕭條니 녀녀셔 주080)
녀녀셔
다니면서. 녀-[行]+어#다니-[行]+어+셔. ‘녀니-’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이는 낱맡로, 권2 1회, 권6 2회, 권7 1회, 권14 2회, 권19 2회, 권20 2회 등 모두 10회 쓰였다. ‘녀녀-’도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녀- : 關塞ㅣ 서의니 녀니 길히 어렵도다(關塞蕭條行路難)「宿府」〈두시 6:15ㄴ〉. 나가거나 믈러오거나 호 길 녀뇨매 리과라(進退委行色)「客堂」〈두시 6:53ㄱ〉. 녀뇨매 매 어긔르추미 하니(行邁心多違)「兩當 ··· 上宅」〈두시 7:27ㄴ〉. 길 녀뇨매 어려우미 이 니(行路難如此)「春日 ··· 二首」〈두시 14:17ㄱ〉. 며긔 녀뇨 번드기 自如도다(鷗行炯自如)「瀼西寒望」〈두시 14:29ㄴ〉. 내 늘거 녀뉴믈 전노니(吾衰怯行邁)「催宗文樹雞柵」〈두시 17:13ㄱ〉. 간대로 녀뇨 즐기디 아니니라(不肯妄行役)「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7ㄱ〉. 뉘 닐오 녀뇨미  밋디 몯다 뇨(誰云行不逮)〈두시 20:10ㄱ〉. 男兒 녀니 해 이리 곡(男兒行處是)「寄彭 ··· 三十韻」〈두시 20:36ㄴ〉. 내의 오래 머리 녀뇨 묻고(問我久遠行)「羌村三首」〈중간두시 2:67ㄱ(복각본)〉.
놀애 주081)
놀애
노래. ¶花鬘 瓔珞 빗이기 마롬과 놀애 춤 마롬과〈석상 6:10ㄴ〉.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블로미 주082)
블로미
부름이. 브르-[歌]+오+ㅁ+이. 〈중간본〉에는 ‘브로미’로 되어 있다. ¶寶琴 놀오 놀애 브르니〈석상 11:15ㄱ〉. 形勢의 됴호미 하나 風土ㅣ 모디니 몃  머리 도혀 라고  번 기리 놀애 브르가니오(形勝有餘風土惡 幾時回首一高歌)「峽中覽物」〈두시 3:38ㄱ〉.
隱淪도 주083)
은륜(隱淪)도
은륜도. 은둔도. 隱淪+도. ‘은륜(隱淪)’에 대해서는 위의 주 참조.
아니로다 주084)
아니로다
아니도다. 아니-+도+다. ‘ㅣ’ 모음에 후행하는 ‘도다’는 ‘로다’로 바뀐다. ¶-로다 : 太子ㅣ 니샤 몸 이시면 受苦왼 이리 잇니 나도 뎌러리로다시고〈석상 3:17ㄴ〉. 榮華홈과 이우로미 咫尺 이예 다니 슬프 難히 다시 니리로다(榮枯咫尺異 惆悵難再述)「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6ㄱ〉.

【한자음】 차의경소조 행가비은륜【‘은륜(隱淪)’은 은일한 선비를 말한다.】
【언해역】 이 뜻이 마침내 소조(蕭條)하니, 다니면서 노래 부름이 은륜(隱淪)도 아니도다!
*시 구절 해석 : “이 뜻이 마침내 쓸쓸해졌으니, 다니며 노래 부르는 것이 은일한 선비는 아니었다.”라는 뜻으로, 뜻대로 일이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방을 다니면서 시대를 노래하여 은거한 선비는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騎驢 주085)
기려(騎驢)
기려객(騎驢客). ①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괴롭게 시를 읊는 시인(詩人)을 가리키는 말. ②처지가 행복하지 못한 미관말직의 관리.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三十載 旅食京華 주086)
경화(京華)
경성(京城)의 미칭. 경성에는 문물과 인재가 모여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나귀 고 주087)
고
타고. -[乘]+고.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다(받다) : 집 우 龍이 御床 向니 寶位 실 느지르샷다〈용가100〉.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 1:7ㄱ〉. 다(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 25:49ㄴ〉. 다(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 3:6ㄴ〉.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 2:21ㄴ〉. 다(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 9:108ㄴ〉.
셜흐나 주088)
셜흐나
서른 넘은. 서른 남짓. ‘-나’은 ‘선행하는 숫자보다는 조금 더’의 의미를 가진 말로 기원적으로 ‘남/넘-[過]’와 관련이 있다. ¶二千 나〈월석 25:14ㄴ〉. 힘 바 穀食 읏듬 삼니 邪僞히 나 利를 어두미 아니 녀(所務穀爲本 邪贏無乃勞)「述古三首」〈두시 3:55ㄴ〉.
 셔욼 주089)
셔욼
서울의. 셔울[京]+ㅅ.
보 주090)
보
봄에. 봄[春]+.
와셔 주091)
와셔
와서. 오-[來]+아+셔.
나그내로 주092)
나그내로
나그네로. 나그네가 되어. 나그내[客]+로. ‘-로’는 ‘자격’을 나타낸다.
먹노라 주093)
먹노라
먹노라. 먹-[食]++오+라. ‘노라’의 ‘오’는 먹는 행위 주체가 화자 즉 두보임을 말한다.

【한자음】 기려삼십재 여식경화춘
【언해역】 나귀 타고 서른 넘은 해를, 서울의 봄에 와서 나그네로 밥 먹노라.
*시 구절 해석 : “나귀를 타고 다닌 지 30년 만에, 봄날 서울에 와서 나그네로 살아가노라.”라는 뜻으로, 오랜 기간 방황하다가 30년 만에 봄기운이 감도는 도성에 왔다는 말이다.

朝扣富兒門 暮 주093_1)
*〈중간본〉에는 ‘隨’가 ‘随’로 되어 있다.
肥馬 주094)
비마(肥馬)
비마경구(肥馬輕裘).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음. 생활이 호사스러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塵 殘盃與冷炙 到處潜悲辛 주095)
비신(悲辛)
비참(悲慘)하고 신산(辛酸)한 상황.

아 주096)
아
아침에. 아[朝]+.
가면 주097)
가면
부유한. 가멸-[富]+ㄴ. 〈중간본〉에는 ‘가면’으로 되어 있다. ¶偸羅國 婆羅門 迦葉이 三十二相이 고 글도 만히 알며 가며러 布施도 만히 더니〈석상 6:12ㄱ〉. 가난코 病호미 진실로 그 덛덛 이리니 가멸며 貴호 내 이 生애 므던히 너기노라(貧病固其常 富貴任生涯)「柴門」〈두시 6:48ㄱ〉.
주098)
집의. 집+ㅅ. ‘짓’은 ‘집’의 받침 ‘ㅂ’은 탈락하고 속격조사 ‘ㅅ’만 쓰인 형태이다. 15세기 국어에서 ‘픗, 짓, ’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중에서 ‘픗’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그 짓 리  가져 나오〈석상 6:14ㄱ〉.  기예 나귀 타 나 아뫼 짓 門의 길(→갈)  몰로라(平明跨驢出 未知適誰門)「示從孫濟」〈두시 8:32ㄱ〉.
門을 가 두드리고 나조 주099)
나조
저녁에. 나조ㅎ+.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가 둘 다 쓰였다. 후자는 ‘낮’의 의미도 있었다.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나조ㅎ :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 13:10ㄴ〉.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나죄 : 孔聖이 나죄 주구믈 히 너기니〈월석 18:32ㄱ〉. 먼 두들게  몰애 허여고 니 뫼해 나죄 비취옛  븕도다(遠岸秋沙白 連山晩照紅)「秋野五首」〈중간두시 10:32ㄱ〉. 나죄[晝] :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진 주100)
진
살진. #지-+ㄴ. ¶그 우희 둡고 큰  지고 壯코 힘 하며〈법화 2:140ㄱ〉. 셔 글 호던 져믄 사미 해 賤디 아니니 五陵에셔 옷과 왜 제 가야오며 지도다(同學少年多不賤 五陵衣馬自輕肥)「秋興三首」〈중간두시 10:35ㄱ〉.
  드트를 주101)
  드트를
말 탄 띠끌을. 즉 말이 지나면서 일으키는 띠끌을. 15세기에 ‘드틀’과 ‘듣글’은 공존하였다. 16세기에도 두 어형이 공존하다가 17세기에 ‘틔글’(마경, 상39ㄱ)․‘틧글’(박통사, 중43ㄱ)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탈 것을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석상 3:6ㄴ〉.  알 보논 이제와 녜왓 드로 江漢애  가논  노라(眼前今古意 江漢一歸舟)「懷灞上遊」〈두시 3:39ㄱ〉. (무서움 타다) : 降服야 저고 므욤  사 보면〈월석 2:59ㄱ〉. (받다) : 實다 道 샤 와 正覺 일우실 如來시다〈월석 9:10ㄱ〉. 門의 나건 디 나리 마 머니 徒旅의 소교 디 아니노라(出門日已遠 不受徒旅欺)「前出塞九首」〈두시 5:26ㄱ〉. 이 모미 락 도로 醉락 야 興을 니 곧 지비 외앳도다(此身醒復醉 乘興卽爲家)「春歸」〈중간두시 10:3ㄱ〉.
조차 녀셔 주102)
녀셔
다녀서. -[走]+니-[行]+어+셔. 『두시언해』에는 ‘니-, 니-, 녀-, 녀-’의 용례가 있다. ¶니- : 니 길 우흘 서르 보노니 사 사로 몃 디위예 고(相閱征途上 生涯盡幾回)「龍門」〈두시 13:44ㄱ〉.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 복홧 해 녜 니던 길흘 스치노라(萍泛無休日 桃陰想舊蹊)「奉贈太 ··· 二十韻」〈두시 19:15ㄴ〉. 니- : 商 두루 녀  씨오〈석상 20:25ㄱ〉. 楚ㅅ 두들게 녀셔 將次ㅅ 늘구니 巫山애 안조니  보미로다(楚岸行將老 巫山坐復春)「大歲日」〈두시 11:1ㄱ〉.
먹다가 기튼 주103)
기튼
남은. 깉-[遺]+은. ‘깉다’는 ‘남다’의 듯이다. ¶十二部 修多羅애 出入호 곧 기튼 히미 업스며〈월석 1:월인석보 서19ㄴ〉. 녜 록 忠義ㅣ 솃니 感遇ㅣ 기튼 編이 잇니라(終古立忠義 感遇有遺編)「陳拾遺故宅」〈두시 3:65ㄱ〉.
수욼잔과 주104)
수욼잔과
술잔과. 수울[酒]+ㅅ#잔+과.
다 주105)
다
함께. 『두시언해』에서 원문의 ‘A與B’는 항상 ‘-와/과 다’의 형태로 언해되었다. ¶이 다 後에 勸發샤 萬億 旋陀羅尼 得며〈법화 7:190ㄱ〉. 우리도  다 微妙 第一法을 得야〈개법 1:84ㄱ〉. 엇뎨 디 陶淵明과 謝靈運의 손 니 어더 널로 여 글 지고 다  놀려뇨(焉得思如陶謝手 令渠述作與同遊)「江上 ··· 短述」〈두시 3:31ㄴ〉. -와/과 다 : 그 中에 구룸  지븐 椒房앳 아미니 일후믈 큰 나라 주시니 虢과 다 秦이로다(就中雲幕椒房親 賜名大國虢與秦)「麗人行」〈두시 11:17ㄴ〉. 슬픈 거믄고와 다  뎌히 사 感激게 호미 하 眞性엣 것과 다도다(悲絲與急管 感激異天眞)「促織」〈두시 17:37ㄱ〉.
시근 주106)
시근
식은. 식-[冷]+은. 『두시언해』에서 ‘식다’는 원문의 ‘冷’의 번역으로 쓰였는데 여기 이외의 경우에는 ‘서늘다, 사늘다, 다, 冷다’ 등으로 번역되었다. ¶冷(식다) :  파  믿 열 줄기 거웃 조쳐 구리 소라애 므레 글혀 시그며 더우미 맛게 야〈구급방 하:91ㄱ〉. (칩다) : 프른 소나못 불휘예 주거므르 드럿니 히 치워  석디 몯얏니라(摧頹蒼松根 地冷骨未朽)「述懷」〈중간두시 2:31ㄱ〉. (서늘다) : 魚龍이 괴외고  미 서늘니 故國에 平時예 사던  논 배 이쇼라(魚龍寂寞秋江冷 故國平居有所思)「秋興五首」〈두시 6:8ㄱ〉. (사다) :  뫼해 누니 사케 라도 넉시 도라오디 아니니 仙賞홀 미 어그르츨 므를 섯흘류라(秋山眼冷魂未歸 仙賞心違淚交墮)〈두시 9:5ㄱ〉「憶昔行」. (다) : 집 기슬글 조차 梅花와 다 우믈 求호니  곳부리와 설 가지 半만 치우믈 이긔디 몯얏다(廵簷索共梅花笑 冷蕊踈枝半不禁)「舍弟 ··· 三首」〈두시 8:41ㄴ〉. (칩다) : 개옛 돗기 새배 처 나가니 햇 門ㅅ 부체 치워 여디 몯호라(浦帆晨初發 郊扉冷未開)〈두시 11:41ㄴ〉「朝二首」. 冷(冷다) : 뵈 니브리 여러  冷호미 쇠 니 일의노 아 아니 환히 누워 안 와 믜여 리다(布衾多年冷似鐵 嬌兒惡臥踏裏裂)「茅屋 ··· 破歌」〈두시 6:42ㄴ〉.
炙을 간 마다 주107)
간 마다
간 데마다. 간 곳마다.
니 주108)
니
가만히. +이. 원문의 ‘潜’에 대응된다. 『두시언해』에서 ‘니’는 주로 ‘靜, 黙’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靜 : 니 이셔 元精理 尋求요니 浩蕩야 비겨 아로미 어렵도다(靜求元精理 浩蕩難倚賴)「病柏」〈두시 18:15ㄴ〉. 默 : 저 이런 사이  偶然히 이실가 야  臨야셔 니 슬허노라(恐此復偶然 臨風默惆悵)「劒門」〈중간두시 1:36ㄱ〉.
슬타라 주109)
슬타라
슬퍼하더라. 슳-[悲]+더+오+라.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슬타라’의 ‘오’는 주어가 ‘두보’임을 말해준다.

【한자음】 조구부아문 모수비마진 잔배여냉자 도처잠비신
【언해역】 아침에 부유한 집 문을 가 두드리고 저녁에 살진 말 탄 띠끌을 좇아 다녀서, 먹다가 남은 술잔과 함께 식은 적(炙)을 간 데마다 가만히 슬퍼하였네!
*시 구절 해석 : “아침에는 부잣집 대문을 두드리고, 저녁에는 살진 말 뒤를 따라다녔네. 먹다 남은 술이나 식은 음식을 구걸하며, 가는 곳마다 가만히 슬퍼하였다.”라는 뜻으로, 오래간만에 도성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아 어렵게 살아 아픔이 컸다는 말이다. 4구 연면구이다.

主上頃見徵 주110)
견징(見徵)
징발(徵發)함을 당함.
歘然 주111)
훌연(欻然)
홀연(忽然). 갑자기. 뜻밖에.
求伸 주112)
구신(求伸)
①뜻을 펼칠 준비를 함. ②포부를 펼치고 시행할 일을 모색함. 두 개의 뜻이 함께 쓰였다.

님그미 주113)
님그미
임금이. 님금+이. 당 현종(玄宗)을 가리킨다.
뎌 주 주114)
뎌 주
저 즈음 때에. 그 즈음에. 뎌 주 +의. 『두시언해』에서는 ‘즈’은 물론 ‘주, 주’도 쓰였다. 이 중 ‘주’과 ‘주’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는 ‘+의(처소부사격조사)’로서 ‘’는 “함께”라는 뜻이고, ‘’는 ‘+이(주격조사)’로, ‘니’는 오늘날 “끼니”[時]의 15세기 소급형. 〈중간본〉에는 ‘뎌 주움’로 되어 있다. ¶즈 : 佛性이 男女 즈 아니며〈법화 4:172ㄱ〉. 語黙이 녜 法이라 괴외야 도라가미 이셔 便安히 즈 업스리라〈영가 하:126ㄴ〉. 뎌 즈  셴 머리 萬人 놀래요니 치 블근 제 騎射 잘던 이 내 미데니라(向來皓首驚萬人 自倚紅顏能騎射)「醉爲 ··· 相看」〈두시 3:52ㄴ〉. 河水 즈야 되 닐 보니 믄드기 數百 무리로다(隔河見胡騎 攸忽數百群)「前出塞九首」〈두시 5:27ㄴ〉. 주 : 뎌 주  災害 오히려 려 蒼生 이수미 디 몯얫더니(往者災猶降 蒼生喘未蘇)「行次昭陵」〈두시 6:24ㄴ〉. 주 : 盤과 案과 와 두위티고 길흘 마가 여곰 주츠게 다(踏藉盤案翻 塞蹊使之隔)「催宗文樹雞柵」〈두시 17:13ㄱ〉/ 참조; 요 조 드로니 韋氏ㅅ 누의 漢ㅅ 鍾離ㅅ 올 마자 가 잇도다(近聞韋氏妹 迎在漢鍾離)「元日寄韋氏妹」〈두시 11:2ㄴ〉.  세 로 香湯애 沐浴야〈월석 10:120ㄴ〉. 모 弟子와  禮數고〈석상 23:42ㄴ〉. 이  부텻 나히 닐흔 나히러시니〈석상 13:1ㄱ〉. 니며 고디며 가 낟디 아니  업스니[無時無處而不明顯也니]〈금삼 3:19ㄴ〉.
블료 뵈실 주115)
블료 뵈실
부름을 받았으므로. 원문의 ‘見徵’의 번역이다. ‘견징(見徵)’은 일종의 피동 표현이지만 『두시언해』에서는 ‘견(見)’을 ‘-오 뵈-’로 번역하고 있다. ‘시’가 들어간 것은 ‘주상(主上)’을 주어로 보았기 때문인데 이 구절은 ‘두보’가 현종의 부름을 받은 것이므로 『두시언해』의 ‘뵈실’의 ‘시’는 주어인 ‘두보’와 호응하는 것이 아니다. ¶-오 뵈- : 님금 恩惠 갑고져 나 모미 마 늙고 드러가 朝謁코져 나 病이 妨害호 뵈다(報主身已老 入朝病見妨)「入衡州」〈중간두시 1:54ㄴ〉. 耒陽이 글워 여 거츤 므리 아라  訪問호 뵈다(耒陽馳尺素 見訪荒江眇)「聶耒陽이~泊于方田호라」〈중간두시 1:57ㄴ〉. 平 몰애예 一萬 帳幕이 버렛니 部伍ㅣ 제여곰 〈두시 5:31ㄱ〉 블로 뵈다(平沙列萬幕 部伍各見招)「後出塞五首」〈두시 5:30ㄴ〉. 뵈-(사동) : 귀 머글 모로매 字 어 뵈니 마리 뎌니 빈혀 이긔디 몯놋다(耳聾須畫字 發短不勝篦)「水宿 ··· 群公」〈두시 3:19ㄴ〉.  톼 건나 나래 오 프른 퍼런 것 올  뵈다(江飛競渡日 草見蹋春心)「長吟」〈두시 3:48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ㄴ

드시
주116)
믄드시
문득. 갑자기. 믄듯+이. 원문의 ‘欻’의 번역으로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 ‘믄드시’는 주로 ‘忽’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믄드시’와 ‘믄듯’은 『두시언해』에서만 쓰였고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는 ‘믄득’이 많이 쓰였다. ‘믄득’은 『두시언해』에서도 쓰였다. 〈중간본〉에는 ‘믄느시’로 되어 있다. ¶믄득 : 아모셔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석상 3:18ㄱ〉. 劒閣 밧긔 믄득 薊北 아 傳니 처 듣고 므를 衣裳애 기 흘료라(劍外忽傳收薊北 初聞涕淚滿衣裳)「聞官 ··· 河北」〈두시 3:24ㄱ〉. 믄듯 : 이제 믄듯 暮春ㅅ 예 내 病이  디나 맛나(今忽暮春閒 値我病經年)「杜鵑」〈두시 17:4ㄱ〉. 믄드시(遽) : 興心이 다니  닶가오미 업더니 시르믜 오 믄드시 이긔디 몯리로다(興盡纔無悶 愁來遽不禁)「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ㄴ〉. (忽) : 너븐 믌겨리 믄드시 길흘 토더니 두들기 올니 江湖ㅣ 다도다(洪波忽爭道 岸轉異江湖)「過南 ··· 庭湖」〈중간두시 2:19ㄱ〉. (倐忽) : 믄드시 스므나  외여 가니 모딘 사미 외니 하도다(倐忽向二紀 姦雄多是非)「詠懷二首」〈중간두시 2:54ㄴ〉. (居然) : 믄드시 濩落호미 외야 셴 머리예 勤苦호 히 너기노라(居然成濩落 白首甘契闊)「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2ㄴ〉. (奄) : 尙書 韓擇木과 騎曹 蔡有隣을 開元브터 오매 八分 수믈 혜더니 李潮ㅣ 믄드시 二子로 다야 세 사미 외얏도다(尙書韓擇木騎曹蔡有隣 開元已來數八分 潮也奄與二子成三人)「李潮八分小篆歌」〈두시 16:16ㄱ〉. (取次) : 디나가  스싀로 모 앗겨 믄드시 兵事 議論디 말라(經過自愛惜 取次莫論兵)〈두시 23:49ㄱ〉「送元二適江左」. (俄) : 匡汲이 믄드시 榮寵다가 辱왼 며 衛霍이 매 슬프다가 榮華왼 도다(匡汲俄寵辱 衛霍竟哀榮)「贈左 ··· 嚴武ㅣ라」〈두시 24:20ㄴ〉.
베퍼 주117)
베퍼
베풀어. 베프-[發]+어. ¶슬프다 기픈 들 微微히 베프시니〈금삼 서2:4ㄴ〉. 時世 거리칠  베프고져 나 尙書郞이 셔 늘고라(欲陳濟世策 已老尙書郞)「暮春 ··· 五首」〈두시 7:15ㄴ〉.
나 주118)
나
남을. 나-[出]+ㅁ+.
求고져 다라 주119)
구(求)고져 다라
구하고자 하였다. 求+-+고#지-+어 -+더+오+라. ‘오’가 있으므로 주어인 두보에 대한 서술이다.

【한자음】 주상경견징 훌연욕구신
【언해역】 임금이 그 즈음에 부름을 보이시므로, 문득 베풀어 남을 구하고자 하였네!
*시 구절 해석 : “임금께서 근래 불러주심을 받아, 홀연히 내 포부를 펼치고자 했다.”라는 뜻으로, 힘겨운 처지에 놓였다가 임금의 부르심을 받으니 갑자기 포부를 펼치려고 하였다는 말이다.

靑冥 주120)
청명(靑冥)
①푸르고 그윽하면서 먼 것을 형용하는 말. 푸른 하늘[靑天]을 가리킨다. ②푸르고 그윽하면서 먼 것을 형용하는 말. 선경(仙境)이나 천정(天庭)을 가리킨다. ③푸르고 먼 산령(山嶺)을 가리키는 말. ④바닷물[海水]을 비유하는 말. ⑤대나무나 나무가 울창한 모습. ⑥높은 지위나 현요(顯要)한 직위를 비유하는 말. ⑦궁정(宮廷) 또는 제왕(帝王)을 비유하는 말. ⑧옛 칼[劍] 이름.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垂翅 주121)
수시(垂翅)
날개를 내림. 날개를 접음.
蹭蹬 주122)
층등(蹭蹬)
①험난(險難)해서 나아가기 어려운 모양. ②실세(失勢)한 모양. ③곤란하고 힘겨움. 실의(失意)함.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無縱鱗【蹭蹬 失勢皃ㅣ라 주122_1)
*〈중간본〉에는 ‘失勢貌ㅣ라’로 되어 있다.
上句 鳥의 垂趐不得飛로 比之고 下句 魚의 無縱壑之鱗로 比之다】

하해 주123)
하해
하늘에. 하ㅎ+애. ‘하ㅎ’은 ‘ㅎ말음체언’이다.
가 도로 개 주124)
개
날개를. -+개+.
드리오고 주125)
드리오고
드리우고. 들-+이+오+고. ‘드리오-’는 ‘들-’에 ‘이’와 ‘오’가 연결된 것으로 이들은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드리우-’의 형태로도 쓰였다. ¶드리오- : 한 幡과 盖와 드리오고 한 보옛 바 니라〈석상 20:17ㄴ〉. 戶外예 昭容이 블근 매 드리오언 고시 둘히 御座 보아셔 朝儀 引進놋다(戶外昭容紫袖垂 雙瞻御座引朝儀)「紫宸殿退朝口號」〈두시 6:7ㄱ〉. 드리우- : 旒蘇 五色 빗난 거스로 어울워 드리우 거시라〈월석 10:45ㄱ〉. 冕旒 드리우샤매 穆穆샤 資賴시고 그믈 비루 오직 어위에 시면(垂旒資穆穆 祝網但恢恢)「秋日 ··· 三十韻」〈두시 3:11ㄱ〉.
어그르처 주126)
어그르처
어긋나게 되어. 어그릋-+어. ‘어그릋-’은 『두시언해』에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참조; 어긔릋-. 어그맃-. 어긔맃-. 어긔으릋-. 어그르치(부사). ¶어그릋- : 허므를 다시 아니며 석 를 仁에 어그릇디 아니니라〈번소8:3ㄴ〉. 맷 비치 다 흘러 올마가 傳語야 아니 한 덛 서르 賞玩호 서르 어그릇디 마롤 디니라(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曲江二首」〈두시 11:20ㄱ〉. 淮海예 어그르치 잇디 말라(淮海莫蹉跎)〈두시 23:18ㄴ〉. 어그럽- : 엇디 머리를 헏글우고 명망을 길워 스스로 어그럽고 통달호라 니롬이 이시리오〈소학6:109ㄴ〉. 어그맃- : 해 와 이쇼니 매 어그리춘 배 업도다(在野無所違)〈두시 15:4ㄴ〉. 어글웇- : 警戒며 恭敬야 일 져므리 야 싀어버이며 남진의 命을 어글읏디 말라〈번소3:13ㄱ〉. 어글웇- : 경계며 조심야 일 졈을이 야 命을 어글웃디 말라〈소학2:46ㄴ〉. 어글츠- : 셤기믈 을 다야 혹 어글츠디 말라〈경민 중:19ㄱ〉. 어긔- : 닐오 漸敎 鈍敎애 어긔오 鈍門은 반기 漸門이 니라〈원각 하3-2:79ㄴ〉. 어긔릋- : 이 나래 더욱 디 해 어긔릇도다(茲日倍多違)〈두시 23:19ㄱ〉. 어긔으롳- : 믈러 올 제 날호야 녀 죠고맛 매 어긔으르체라(退食遲回違寸心)〈두시 6:14ㄱ〉. 어긔르치- : 녯 이 야 禮 어긔르치 아니놋다(懷舊禮無違)〈두시 24:48ㄴ〉. 어긔맃- : 글 스 소 興心이 어긔릿디 아니도다(墨客興無違)〈두시 15:49ㄱ〉.
放縱 비느리 주127)
방종(放縱) 비느리
방종한 비늘이. 즉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비늘이.
업수라 주128)
업수라
없구나. 없-+우+라. 형용사 ‘없-’은 중세국어에서 ‘--’가 통합되지 않는 것이 대체적 경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는, -느-’ 통합이 일반적이다. 〈선종영가집언해〉(1464년)에 ‘:업·니’(상12ㄱ, 상55ㄴ), ‘:업·니·라’(상33ㄱ)가 등장한다. ¶제 艱難 이 念야 내 이것 업수라 터니〈법화 2:244ㄱ〉. 우리도 이 偈 좃 외오노소라〈월석 8:100ㄴ〉. 나그내 南縣으로브터 와 浩蕩야 다 갈  업수라(客從南縣來 浩蕩無與適)「白水 ··· 三十韻」〈두시 7:23ㄱ〉. 흐린 술와 다 거플 바 조히 누네 이실 슬허호미 업소라(濁醪與脫粟 在眼無咨嗟)「柴門」〈두시 6:47ㄴ〉.

【한자음】 청명각수시 층등무종린【‘층등(蹭蹬)’은 힘을 잃은 모습이다. 앞 시구는 새가 날개를 드리워 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고, 뒤 시구는 물고기가 골짜기에서 풀려날 비늘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하늘에 가 도로 날개를 드리우고, 어긋나게 되어 방종(放縱)한 비늘이 없구나!
*시 구절 해석 : “하늘에는 날개를 드리운 새가 있고, 세력을 잃고 풀려날 비늘이 없다.”라는 뜻으로,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 딱한 처지에 놓인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甚媿丈人厚 甚知丈人眞 每於百寮 주129)
백료(百寮)
백료(百寮). 백관(百官). 많은 관료 신하를 말한다.
上 猥誦佳句新

丈人의 주130)
장인(丈人)의
장인이. ‘-의’는 ‘요’과 호응하며 내포문의 의미상 주어에 붙은 속격.
둗거이 주131)
둗거이
두껍게. 둗겁-[厚]+이. ‘둗거’식으로 쓰이다가 〈능엄경언해〉(1461)부터 ‘ㅸ→오/우/ㅇ’ 표기원칙에 따라 이처럼 쓰인다. ¶우리히 아랫 福이 깁고 둗거 佛法을 맛나니〈석상 21:39ㄴ〉.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 훤더라(春濃停野騎 夜宿敞雲樓)「懷灞上遊」〈두시 3:39ㄱ〉.
요 주132)
요
함을. +오+ㅁ+. ‘오’가 ‘요’로 바뀌는 것은 하향이중모음 뒤에 ‘오’가 올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나 어간 ‘-’ 뒤에 오는 ‘오’도 ‘요’로 바뀌며 이러한 현상은 현대국어에까지 이어진다.
甚히 붓그리며 주133)
붓그리며
부끄러워하며. 붓그리-[愧]+며. ‘붓그리-’는 동사로서 파생형용사로서 ‘붓그럽-’과 다시 여기서 ‘-어 -’가 붙어 동사로 파생된 ‘붓그려-’가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일련의 동사들은 현대국어에서는 모두 소멸되고 오히려 ‘업’ 파생형용사에 ‘-어하-’가 붙어 파생된 동사인 ‘부끄러워하다’만 남은 경우가 많다.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 44ㄱ〉. 袞職을 일즉  字로도 깁디 몯오니 몸 許요 雙南金에 가뵤 붓그리노라(袞職曾無一字補 許身媿比雙南金)〈두시 6:14ㄱ〉「題省中院壁」. 붓그럽- : 비록 큰 허므리 업슨 오 안로 매 붓그럽디 아니니여〈내훈 3:27ㄴ〉. 비록 蟬冠 밧고 니브나 右ㅅ녁 히 붓그러온 나 幸호 하니라(雖蒙換蟬冠 右地恧多幸)「故右 ··· 九齡」〈두시 24:41ㄴ〉. 붓그려- :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 3:8ㄱ〉. 위 가온  서리예 뎻니 늘근 원두리 기리 붓그려노라(中園陷蕭艾 老圃永爲恥)「種萵茞幷序」〈두시 16:67ㄱ〉.
丈人의 眞實로 호 주134)
호
사랑함을. #-+오+ㅁ+. ¶다(생각하다) : 故國에 平時예 사던  논 배 이쇼라(故國平居有所思)「秋興五首」〈두시 6:8ㄱ〉 /다(사랑하다) : 술 즐겨 머거  부 대 랑야(嗜酒愛風竹)「寄題江外草堂」〈두시 6:35ㄴ〉.
주134_1)
眞實로 호
*〈중간본〉에는 ‘實로 호’로 되어 있다.
甚히 아노니 주135)
아노니
아니. 알-[知]++오+니. ‘-오-’는 화자 주어에 호응한다.
每常 百寮 우희 주136)
우희
위에. 우ㅎ+의.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안자셔 주137)
안자셔
앉아서. 앉-[坐]+아+셔. *〈중간본〉에는 ‘안자’로 되어 있다.
됴 주138)
됴
좋은. 둏-[好]+.
긄句의 주139)
긄구(句)의
글귀의. 글+ㅅ+句+의.
새로오 주140)
새로오
새로움을. 새 것을. 새-+롭+ㅁ+. 『두시언해』에서 ‘롭’ 형용사 파생사로는 ‘외롭-, 새롭-, 妖怪ㅣ롭-’ 등이 있다. ¶새롭- : 司隷ㅅ 버블 처 보니 南陽ㅅ 氣運이 마 새롭도다(司隸章初覩 南陽氣已新)「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외롭- : 매 나모 잇 城이 외롭고 머니 雲臺옛 使者ㅣ 괴외도다(江樹城孤遠 雲臺使寂寥)「陪栢 ··· 二首」〈두시 5:52ㄱ〉. 妖怪ㅣ롭- : 鄴城의 두위힐후믄 足히 妖怪ㅣ롭디 아니니 關中엣 죠고맛 아 紀綱 〈두시 3:60ㄴ〉 허러 리며 張后ㅣ 즐기디 아니커든 님그미 爲야 驚忙더시니라(鄴城反覆不足怪 關中小兒壞紀綱 張后不樂上爲忙)「憶昔二首」〈두시 3:60ㄱ-ㄴ〉.
외오시놋다 주141)
외오시놋다
외우시는구나. 외오-[誦]+시++오+ㅅ+다.

【한자음】 심괴장인후 심지장인진 매어백료상 외송가구신
【언해역】 장인(丈人)이 두껍게 함을 심히 부끄러워하며 장인이 진실로 생각함을 잘 아니, 매양 백료(百寮)의 위에 앉아서 내 좋은 글귀의 새로움을 외우시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장인의 두터운 대우가 심히 부끄러우며, 장인이 진실로 사랑함을 깊이 아노라. 항상 많은 신하 위에 있으면서, 외람되게도 내 아름다운 시구를 새롭게 읊조리셨다.”라는 뜻으로, 장인의 진심과 후의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시구를 조정에서도 자주 읊은 것에 감읍한다는 말이다. 4구로 된 연면구이다.

竊效貢公喜 難甘原憲貧王陽 주142)
왕양(王陽)
왕길(王吉, ?~기원전 48)의 오식(誤植)으로 보인다. 왕길은 전한 낭야(琅邪) 고우(皐虞, 산동성 諸城) 사람. 자는 자양(子陽)이다. 오경(五經)에 정통했다. 효렴(孝廉)으로 낭관(郞官)이 되어 창읍왕 중위(昌邑王中尉)를 지냈다. 창읍왕이 음란한 행동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그가 간언하여 죽음에서 구했다. 선제(宣帝) 때 익주자사(益州刺使)와 박사(博士),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글을 올려 시정의 득실을 논했지만 황제가 현실과는 어긋난다고 여겨 채택되지 않았다. 나중에 병으로 귀향했다.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다시 간대부로 불렸는데, 경사(京師)에 닿기도 전에 죽었다. 춘추추씨학(春秋騶氏學)과 양씨역학(梁氏易學)에 능했고, 『시경(詩經)』과 『논어(論語)』를 가르쳤다. 그의 학문은 아들 왕준(王駿)이 계승했다.
이 與貢禹 주143)
공우(貢禹)
기원전 124~기원전 44. 전한 낭야(琅邪) 사람. 자는 소옹(少翁)이다. 선제(宣帝) 때 명경결행(明經潔行)으로 명성을 얻어 박사(博士)가 되었다. 다시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하남령(河南令)이 되었다. 어떤 일로 파직되었다. 원제(元帝) 초에 간대부(諫大夫)로 나갔다가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상서하여 궁중의 사치에 대해 건의하고 요역(徭役)을 줄일 것과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기용할 것, 창악(倡樂)을 없애고 상업을 경시할 것 등을 주청했다. 아울러 원릉(園陵)의 궁녀들을 석방하고 백성들이 농업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중서(董仲舒)의 제자 영공(嬴公)에게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배웠고, 나중에는 영공의 제자인 휴맹(眭孟)을 사사했다. 저서에 청나라 왕인준(王仁俊)이 편집한 『춘추공양공씨의(春秋公羊貢氏義)』가 옥함산방집일서 속편에 수록되어 있다. 공우탄관(貢禹彈冠)의 고사가 유명하다.
로 爲友더니 王陽이 在位어 貢禹ㅣ 彈冠 주144)
탄관(彈冠)
①갓의 먼지를 털어 버린다는 뜻으로, 세속의 먼지(世塵)를 떨쳐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②갓의 먼지를 털고 임금의 소명(召命)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출사(出仕)할 채비를 갖추는 것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니라 原憲 주145)
원헌(原憲)
기원전 515-?. 춘추시대 말기 노(魯)나라 사람. 이름은 원사(原思)이고, 자는 자사(子思)다. 그는 올바른 길이 아닌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그가 수치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하는 일 없이 녹봉이나 축내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벼슬자리에 연연하면서 녹봉이나 축내는 것이 수치다.”라고 일러주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궁벽한 땅에 가서 숨어살았다.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자공(子貢)이 방문했을 때 그는 해진 의관(衣冠)이지만 단정하게 차려 입고 그를 맞았다. 자공이 곤궁하게 사는 것을 걱정하자 “도를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곤궁하다고 말하지, 나는 가난해도 곤궁하진 않다.”라고 대답하여 자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孔子 주146)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 춘추시대 노(魯)나라 추읍(陬邑) 사람.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다. 조상은 송나라의 귀족이었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고,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다. 춘추시대 말기의 대사상가로, 유가(儒家)의 개조로 추앙받고 있다.
ㅅ 弟子ㅣ라】

貢公 주147)
공공(貢公)
공공이. ‘-’는 내포문의 의미상 주어에 붙은 속격이다. 후행하는 ‘깃거호’과 호응한다.
깃거호 주148)
깃거호
기뻐함을. -[喜]+어+-+오+ㅁ+. 동사 ‘-’과 형태상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어-’가 연결된 파생동사 ‘깃거-’와 ‘-/브-’가 연결된 파생형용사 ‘깃브-’가 있다. 현대국어의 ‘기뻐하-’는 ‘깃브-’에 ‘-어-’가 연결되어 동사로 파생된 것이다. ¶- : 녀론 깃거 구쳐 니러 절시고 안쇼셔 시고〈석상 6:3ㄱ〉. 녯 가히 내 도라오 깃거 기 도라 옷 기슬게 드다(舊犬喜我歸 低徊入衣裾)「草堂」〈두시 6:39ㄴ〉. 깃거- : 이 매 훤히 즐겁도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 3:20ㄴ〉. 나 漏刻 노 지븨셔 알외요 드므리 드르리로소니 님  깃거샴 이쇼 近侍 臣下ㅣ 아놋다(晝漏稀聞高閣報 天顔有喜近臣知)「紫宸殿退朝口號」〈두시 6:7ㄱ-ㄴ〉. 깃브- : 難陁 깃브다 논 마리오〈석상 13:7ㄴ〉. 엇뎨 너븐 집 千萬閒을 어더 天下앳 치운 사 키 그늘워 다 깃븐 치에 야  비예 뮈디 아니야 便安호미 뫼 게 려뇨(安得廣廈千萬閒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茅屋 ··· 破歌」〈두시 6:43ㄱ〉.
그기 주149)
그기
그윽이. 그+이. 15세기에 ‘그-’가 있으므로 ‘그기’는 ‘그’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된 낱맡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두시언해』 권9에는 ‘그근’이란 낱맡이 보이는데 오자가 아니라면 15세기에 ‘그다’라는 단어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기’는 ‘暗, 竊, 密’의 번역으로 쓰였다. ‘서동요’의 ‘密只’와 관련된다. ¶그기 : 시혹 諸佛ㅅ 秘密신 말미 心術에셔 나샤 奇妙 用 그기 加시논 功이 시러 議論 몯리도 이시며〈석상 21:22ㄴ〉. 太子ㅣ 마 位 傳샤 그기 드로니 聖德이 北 녀그로 〈두시 8:3ㄱ〉 南單于를 降服시도다(竊聞太子已傳位 聖德北服南單于)「哀王孫」〈두시 8:2ㄴ〉. 그- : 말미 詭譎고 行止擧動이 그고 險며 利 즐기며 왼 이 미고〈내훈 1:22ㄴ〉. 너븐 믌겨레 말과 우괘 그앳니 蓬萊ㅅ 므레  혀 니놋다(洪濤隱語笑 鼓枻蓬萊池)「幽人」〈두시 9:8ㄴ〉. 그- : 秘密 말과 그근 글워 모로매 안로 게 야 리언마 晩歲예 어느 功으로 내 願으로 여 果然히 리오(袐訣隱文須內敎 晩歲何功使願果)「憶昔行」〈두시 9:6ㄱ〉.
效則고져 컨마 주150)
컨마
하건마는. 하지만. -+거+ㄴ마. ‘마’은 앞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이나 그와 어긋나는 상황 등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15세기 문헌에는 ‘마’이 일반적이며, 임진란 이전에 ‘마’(초발심 28ㄱ) 형으로 일반화하기 시작한다. ¶-ㄴ마 : 金輪王이 외샤 四天下  아시련마 늘그니 病니 주근 사 보시고 世間 슬히 너기샤 出家샤 道理 닷샤 六年 苦行샤 正覺 일우샤〈석상 6:17ㄴ〉. 軍을 조차 니건 디 열  나니 能히 分寸맛 功이 업스려마 한 사미 苟且히 어두 貴히 너길 니고져 다가 가 붓그리노라(從軍十年餘 能無分寸功 衆人貴苟得 欲語羞雷同)「前出塞九首」〈두시 5:29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ㄱ

原憲의 주151)
원헌(原憲)의
원헌이. ‘-의’는 내포문의 의미상 주어에 붙은 속격. 후행하는 ‘가난호’과 호응한다.
가난호 주152)
가난호
가난함을. 가난#-+오+ㅁ+.
히 너규믈 주153)
히 너규믈
달게 여김을. -+히 너기-+우+ㅁ+을. ‘달히 너기-’는 원문의 ‘甘’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에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善友ㅣ 샤 도긴가 너기샤  일훔을  브르시니〈월석 22:10ㄱ〉. 사랫 데 늘거 셰요 히 너기노니(生意甘衰白)「收京三首」〈두시 5:7ㄴ〉.
어려웨라 주154)
어려웨라
어렵구나. 어렵-[難]+어+이+라. 정음 초기 문헌이라면 ‘어려ᄫᅰ라’와 같이 ‘ㅸ’이 사용되다가 『활자본 능엄경언해』(1461)부터 ‘ㅸ’이 일부 특이한 예를 제외하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두시언해』에는 연결어미에 계사가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어’에 계사가 연결된 예는 이 예 이외에도 있다. ¶시드러운 모 쟝 어드러 가니오 險  와 뇨매 치 더옥 두터웨라(羸骸將何適 履險顏益厚)「上水遣懷」〈중간두시 2:50ㄴ〉. 뎌 즈  셴 머리 萬人 놀래요니 치 블근 제 騎射 잘던 이 내 미데니라(向來皓首驚萬人 自倚紅顏能騎射)「醉爲 ··· 相看」〈두시 3:52ㄴ〉. 腐儒ㅣ 늘거셔 외오 通籍호니 밥 머그라 믈러 올 제 날호야 녀 죠고맛 매 어긔으르체라(腐儒衰晩謬通籍 退食遲回違寸心)「題省中院壁」〈두시 6:14ㄱ〉. 열 잔애도  醉티 아니호 그듸 녯 디 기로 感動얘니라(十觴亦不醉 感子故意長)「贈衛八處士」〈두시 19:43ㄴ〉.

【한자음】 절효공공희 난감원헌빈【왕양(王陽)이 공우(貢禹)와 친구로 지내더니, 왕양이 자리에 오르자 공우는 모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원헌(原憲)은 공자의 제자다.】
【언해역】 공공(貢公)이 기뻐함을 그윽이 효칙(效則)하고자 하지만 원헌(原憲)의 가난함을 달게 여김이 어렵구나!
*시 구절 해석 : “공공(공우)이 기뻐한 것을 가만히 본받고자 했건만, 원헌이 가난을 달게 여긴 것은 어렵다.”라는 뜻으로, 친구가 승진한 것은 기뻐하지만 가난한 삶을 감수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

焉能心怏怏 秪是走踆踆怏怏 주155)
앙앙(怏怏)
마음에 만족(滿足)하지 않는 모양. 즐거워하지 않는 모양. 야속하여 원망(怨望)하는 모양.
 志不滿也ㅣ오 踆踆 주156)
준준(踆踆)
①달려가는 모양. ②겸손하게 물러서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行走皃ㅣ라 *〈중간본〉에는 ‘行走ㅣ라’로 되어 있다.

엇뎨 주157)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엇뎨(何) : 내 녀 엇뎨 예 왓뇨(我行何到此)「水宿 ··· 群公」〈두시 3:20ㄱ〉. (豈) : 煩促호매 더운 病이 엇뎨 侵逼디 아니리오 믈어뎌 지여셔 조오라 디 몯호라(煩促瘴豈侵 頹倚睡未醒)「早發」〈중간두시 1:50ㄱ〉. (寧)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焉) : 엇뎨 디 陶淵明과 謝靈運의 손 니 어더 널로 여 글 지고 다  놀려뇨(焉得思如陶謝手 令渠述作與同遊)「江上 ··· 短述」〈두시 3:31ㄴ〉. (曷) : 벼스릐 가오 엇뎨 足히 슬흐리오 貴히 너기논 배 聖賢ㅅ 이리니라(位下曷足傷 所貴者聖賢)「陳拾遺故宅」〈두시 3:64ㄱ〉. (安) : 엇뎨 야 壯士 어더 이거슬 하 밧긔 더뎌 사로 여 疑心 아니야 그 불휘 보게 려뇨(安得壯士擲天外 使人不疑見本根)「石笋行」〈두시 3:71ㄱ〉. (胡) : 黃金을 라 두믈 조로이 너기디 아니커시니 엇뎨 삿기 치 贙의게 더디이뇨(不要懸黃金 胡爲投乳贙)「贈秘 ··· 公邕이라」〈두시 24:25ㄴ〉. 엇디(那) : 내의 囊 中엣 布帛ㅣ 너희 치위 求 거시 엇디 업스리오(那無囊中帛 救汝寒凜慄)「北征」〈중간두시 1:6ㄱ〉. (豈) : 엇디  나 편안케 리오 아야 오래 머므러 몯리로다(豈復慰老夫 惘然難久留)「發秦州」〈중간두시 1:15ㄱ〉. (何) : 녜로브터 나내 인니 내 엇디 심히 슬히 리오(自古有羈旅 我何苦哀傷)「成都府」〈중간두시 1:38ㄴ〉. (奚) : 녯 사 垂堂홈도 警戒야 이젠 내 엇디라  命令에 니가뇨(昔人戒垂堂 今則奚奔命)「早發」〈중간두시 1:49ㄴ〉. 엇디라(奈何) : 엇디라 漁陽애 賊騎 颯颯히 와 百姓 놀래뇨(奈何漁陽騎 颯颯驚烝黎)「石龕」〈중간두시 1:23ㄱ〉. 엇뎌(何) : 주그며 사로 아디 몯거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不知死與生 何况道路長)「遣興二首」〈두시 8:28ㄴ〉.
能히  주158)

마음을. +.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怏怏리오 주159)
앙앙(怏怏)리오
앙앙하겠는가? 怏怏+-+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리오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소 고기 오히려 비러 숨 쉬어니와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鼎魚猶假息 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2ㄱ〉. 피로 醴泉을 當면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血以當醴泉 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오직 이 로 주160)
로
달림을. -[走]+오+ㅁ+.
踆踆홀 디로다 주161)
디로다
것이도다. -+이+도+다.

【한자음】 언능심앙앙 지시주준준【‘앙앙(怏怏)’은 뜻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고, ‘준준(踆踆)’은 달려가는 모양이다.】
【언해역】 어찌 능히 마음을 만족하지 못하겠는가? 오직 이 달림을 할 것이도다!
*시 구절 해석 : “어찌 능히 마음으로 만족하지 못하리요, 다만 부지런히 달려갈 뿐이다.”라는 뜻으로, 현재 지위에 만족하지 못해 마음을 부대끼지 않고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今欲東入海 即將 *〈중간본〉에는 ‘即将’으로 되어 있다.西去秦 尙憐終南山 回首清渭濵【下二句 言戀君不忍去之意다】

이제 주162)
이제
이제. 지금. 원문의 ‘今’의 번역으로 쓰였다. 현대국어의 ‘이제’는 발화시와 일치하나, 중세국어의 ‘이 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쓰인다. 원문이 ‘今’일 때에는 ‘지금’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밖의 경우(예 : 於是)에는 ‘이 때(에)’의 뜻으로 쓰인다. 양자는 합성어인지 구인지의 차이가 있다. 한편 음절부음 [j]로 끝나는 체언 중 시간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말 뒤에는 부사격조사(관형격조사)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 相師ㅣ 王  이제 出家 아니샤 닐웨 디나면 轉輪王位 自然히 오시리다〈석상 3:24ㄱ〉. 西伯이 이제 괴외시니 鳳 소리도  머러 업도다(西伯今寂寞 鳳聲亦悠悠)「鳳凰臺」〈두시 17:1ㄱ〉.
東녀그로 주163)
동(東) 녀그로
동쪽으로. 東#녁+으로.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東 녀크로’로 되어 있다.
바래 주164)
바래
바다에. 바+애. 15세기에는 ‘바’과 ‘바다ㅎ’가 쌍형어로 쓰였지만 『두시언해』에는 ‘바’만 쓰였다. ‘바’도 나타난다. ¶바 : 一切 經藏 阿耨達龍王이 다 가져 바로 드러가리니〈석상 23:36ㄱ〉. 邊庭에 흐르 피 바믈티 외요(邊庭流血成海水)「兵車行」〈두시 4:2ㄱ〉. 닐굽 山  香水 바다히니〈월석 1:23ㄱ〉.
드러가 곧 將次ㅅ 주165)
장차(將次)ㅅ
장차. 將次+ㅅ. ‘ㅅ’은 부사화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는 ‘, ’로도 표기되었다. 〈중간본〉에는 ‘將次ㅅ’로 되어 있다. ¶將次ㅅ : 몸 막  긴 갈 가지고 將次ㅅ 崆峒山 비곗고져 노라(防身一長劒 將欲倚崆峒)「投贈 ··· 二十韻」〈두시 5:43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夔府書懷四十韻」〈두시 3:8ㄴ〉. 수프렛 곳다온 남 여르믈 내야  업수메 다랏고 닙과 고고리 가지 여희여 다시 디 몯놋다(林香出實垂將盡 葉蔕辭枝不重蘇)「寒雨朝行視園樹」〈두시 15:15ㄱ〉.
西ㅅ녀그로 주166)
서(西)ㅅ 녀그로
서쪽으로. 西+ㅅ#녁+으로.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西ㅅ 녀크로’로 되어 있다. ¶東녀긔셔〈두시 25:51ㄴ-52ㄱ〉, 南녀근〈두시 13:13ㄱ〉, 北녀긔〈두시 12:34ㄱ〉.
秦을 으리왇고져 컨마 주167)
으리왇고져 컨마
떨어지고자 하지마는. 으리-+왇+고#지-+어 -+건+마. ‘으리왇-’은 ‘버리왇-’으로도 쓰이며, ‘-져 컨마’ 표기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중간본〉에는 ‘벙으리왇고져 건마’로 되어 있다. ¶으리왇- : 리 입을 으리왇고 더운 오좀을 브라〈구간 1:78ㄴ〉.  이바디 마져 니고져 컨마 幽明의 逼迫호 으리와도미 어렵도다(欲告淸宴罷 難拒幽明迫)「白水 ··· 三十韻」〈두시 7:26ㄱ〉. 버리왇- : 내조쳐 왜신 엇뎨 性을 그르츠리오 미 뷔여 生禪호 버리왇디 아니놋다(放逐寧違性 虛空不離禪)「宿贊公房」〈두시 9:24ㄱ〉.
오히려 주168)
오히려
오히려. 원문의 ‘尙’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오히려’는 주로 ‘尙, 猶’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猶’의 번역으로 쓰인 ‘’는 ‘아직’, ‘지금도 역시’의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히려 : 函關애 오히려 將帥ㅣ 나가고(函關猶出將)「柳司馬至」〈두시 5:16ㄱ〉.
終南山 주169)
종남산(終南山)
섬서성 장안(長安)의 남쪽에 있는 산.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 진령(秦嶺)이라고도 부른다. 높이는 1,200m이며, 진령산맥(秦嶺山脈) 산봉에 속한다. 주봉의 해발고도는 2,604m이다. 옛 이름은 태일산(太一山), 중남산(中南山),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南山) 등이었다. 중국을 화복(華北)과 화남(華南)으로 나누는 진령산계(秦嶺山系)의 동쪽 끝 근처에 있다. 5-6세기 이래 화엄종의 법림(法淋)과 종밀(宗密), 계율종 남산파의 개조(開祖) 도선(道宣), 정토종의 대성자(大成者)인 선도(善導), 도교 전진도(全眞道)의 개조 왕중양(王重陽), 북오조(北五祖) 중의 중리권(鐘離權), 여동빈([呂洞賓), 유해섬(劉海蟾) 등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도사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며 장안(長安) 부근의 명산이기 때문에 고적․명승을 탐방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산추(南山湫), 금화동(金華同), 옥천동(玉泉同) 등이 명성이 높다.
주170)
종남산(終南山)
종남산을. 終南山+. 〈중간본〉에는 ‘終南山을’으로 되어 있다.
야 주171)
야
생각하여. #-+야. 〈중간본〉에는 ‘랑야’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琴臺」〈두시 3:73ㄱ〉 /다(사랑하다) : 凄凉호 니건  노라(凄凉憶去年)〈두시 3:29ㄴ〉.
 주172)

맑은. -[淸]+은.
渭水 주173)
위수(渭水)
강 이름. 황하의 가장 큰 지류로, 감숙성(甘肅省) 조서산(鳥鼠山)에서 발원하여 섬서성(陝西省) 중부를 비스듬히 관통하여 동관(潼關)에 이르러 황해로 들어간다.
ㅅ 셔
주174)
위수(渭水)ㅅ 셔
위수의 가에서. 渭水+ㅅ ++셔.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셔’로 되어 있다. ¶ : 商德이 衰거든 天下 맛시릴 西水ㅅ  져재 니〈용가6〉. 니건  梅花와 버듨 디 도로혀  왓  이어고져 다(去年梅柳意 還欲攪邊心)「白帝樓」〈두시 14:8ㄴ〉.
머리 주175)
머리
머리를. 머리[頭]+. 15세기 국어에서 ‘머리[頭], 머리털[髮]’을 뜻하는 ‘머리’와 ‘멀리’를 뜻하는 ‘머리’는 동음이의어의 관계에 있었다. ¶머리(頭) : 命命은  모미오 두 머리 가진 새니〈석상 3:32ㄴ〉.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莫令回首地)「收京」〈두시 5:9ㄱ〉. 머리(遠) : 모딘 길헤 러디면 恩愛 머리 여희여 어즐코 아야 어미도 아 모며 아도 어미 모리니〈석상 6:3ㄴ〉. 鐵鉞을 맛뎌 親賢이 가고 집을 갑게 라 시논 詔書 머리 시놋다(受鉞親賢往 卑宮制詔遙)「有感五首」〈두시 5:15ㄱ〉.
횟돌아 주176)
횟돌아
돌려. 횟+돌++아. ‘횟돌-’의 사동사 ‘횟도-’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횟돌-(자동사) : 輪은 술위니 輪廻 횟돌 씨라〈월석 1:월인석보 서4ㄱ〉. 랑호니 녜 서늘  追尋호 즐겨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憶昔好追凉 故繞池邉樹)「羌村三首」〈중간두시 2:66ㄴ〉.  횟도- : 崐崙山과 崆峒山ㅅ 그티 머리 횟돌아 보니 限隔디 아니 도다(崐崙崆峒顚 回首如不隔)「白水 ··· 三十韻」〈두시 7:24ㄴ〉. 도랏 막대 딥고 世 嗟嘆닌 누고 피티 우러 虛空애 솟고 셴 머리 횟도로노라(杖藜嘆世者誰子 泣血迸空回白頭)「白帝城最高樓」〈두시 14:9ㄱ〉. 리 일운 바 燭ㅅ브를 자밧고 손 안잿   횟도놋다(把燭橋成夜 迴舟客坐時)〈금삼 서作橋成고~還呈李司馬노라」〈두시 15:35ㄴ〉. 夔州ㅣ 幽僻 셔 그르메와 弔問고 杜曲애 애 횟돌아 글탈노라(弔影夔州僻 回腸杜曲煎)「秋日 ··· 一百韻」〈두시 20:4ㄱ〉. 프른 발와  로 益州로셔 오니 巫峽엣  믌겨른 天地 횟도로 혀 도다(靑簾白舫益州來 巫峽秋濤天地回)「送李 ··· 公幕」〈두시 23:30ㄴ〉. 목  病 야 三更애 셴 머리 횟돌아 라다니 소리 傳야  브 흘러오 거시 프른 구루믈 저지놋다(病渴三更回白首 傳聲一注濕靑雲)〈두시 25:16ㄱ〉「示獠奴阿段」. 궤 비겨셔 고기의 즐규믈 보고 채 횟돌아 새 기세 들어 리 오노라(憑幾看魚樂 迴鞭急鳥棲)「白露」〈두시 25:16ㄴ〉. 슬프다 여슷찻 놀애 블로매 놀앳 디 기니 溪壑이 날 爲야   횟돌아 뵈다(嗚呼六歌兮歌思遲 溪壑爲我回春姿)「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 25:29ㄱ〉. 일로 님그믈 갑 寸心이 블그니 氣運이 西戎을 믈리조며 北狄을 횟도라 가게 놋다(以茲報主寸心赤 氣却西戎廻北狄)「惜別 ··· 判官」〈두시 17:32ㄴ〉.
라노라 주177)
라노라
바라보네. 『두시언해』에서는 ‘라-’는 ‘희망하다’의 의미보다는 ‘바라보다’의 의미로 쓰인다.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석상 3:8ㄱ〉. 그 아비 노 묏 그테 올아 울며 라며 너교〈석상 11:29ㄱ〉. 기리 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리고져 고  디위 라셔 西夷 거더 리고져 노라(長吁飜北寇 一望卷西夷)「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3ㄱ〉. 東녀그로 少城을 라 오니 고지 예 얏니 온가짓 곳 픈 노 樓  어루 오도다(東望少城花滿煙 百花高樓更可憐)「江畔獨步尋花七絕句」〈두시 18:7ㄱ〉.

【한자음】 금욕동입해 즉장서거진 상련종남산 회수청위빈【아래 두 시구는 임금을 그리워해 차마 떠나지 못하는 뜻을 말했다.】
【언해역】 이제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가 곧 장차 서쪽으로 진과 떨어지고자 하건마는 오히려 종남산(終南山)을 생각하여 맑은 위수(渭水)가에서 머리를 돌려 바라보노라.
*시 구절 해석 : “이제 동쪽으로 가 바다에 들고자 하다가, 곧 장차 서쪽 진 땅으로 떠나고자 하네. 아직도 종남산을 그리워하니, 돌아보니 위수(渭水)의 물가가 맑기만 하다”라는 뜻으로, 형편 때문에 조정을 떠나고자 하지만 마음속으로 임금을 그리워해 머뭇거린다는 말이다. 4구 연면구로서 전2구와 후2구는 ‘-곡’으로 연결되어 있다. 4구로 된 연면구이다.

常擬報一飯 况懷辭大臣【大臣 指左丞니 一飯 주178)
일반(一飯)
일반지은(一飯之恩). 일반천금(一飯千金). 은혜에 후하게 보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어느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밥 한 그릇을 얻어먹고 뒷날 천금의 사례를 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之恩을
주178_1)
*〈중간본〉에는 ‘言一飯之㤙을’으로 되어 있다.
尙欲報之니 况大臣相知 敢懷辭去乎ㅣ리오】

長常 주179)
장상(長常)
항상. ¶부텨는 三界 밧긔 버서나샤 長常 便安거시 衆生 버서날 이 아니야 六趣에 뇨〈석상 3:20ㄴ〉. 蹉跎히 長常  우고 展轉야셔 조  소릴 듣노라(蹉跎長汎鷁 展轉屢聞雞)「水宿 ··· 群公」〈두시 3:20ㄴ〉.
 번 주180)
 번
한 번. #번. ‘번’은 의존명사이다. ¶내 太子 셤기 하 셤기 야  번도 디만 일 업수니〈석상 6:4ㄱ〉. 兵戈와 다 사 이레 머리 도혀 라아셔  번 슬허노라(兵戈與人事 廻首一悲哀)「遣愁」〈두시 3:36ㄴ〉.
머곤 주181)
머곤
먹곤. 먹고는. 먹-[食]+고+ㄴ. ¶-곤 : 王이 車匿이 보시곤 太子 가신 가려 더시니〈석상 3:34ㄴ〉. 사호던 히 이제 비르서 安定니 옮겨 심곤 버드른  能히 잇가(戰場今始定 移柳更能存)「春日 ··· 二首」〈두시 14:17ㄴ〉.
恩惠도 주182)
은혜(恩惠)도
은혜도. 恩惠+도. 〈중간본〉에는 ‘㤙惠도’로 되어 있다.
갑고져 주183)
갑고져
갚고자. 갚-[報]+고#지-+어. ¶-고져 : 欲 고져  씨라〈훈언 2ㄱ〉.  城에 소남긧 누늘 보고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春城見松雪 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 14:30ㄱ〉.
너기가니 주184)
너기가니
여기거니. 생각하거니. 너기-[擬]+거+오+니. ‘오’는 화자 주어와 호응한다.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너기샤) :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석상 3:22ㄱ〉. (-고져 너기-) :  城에 소남긧 누늘 보고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春城見松雪 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 14:30ㄱ〉. (-라 너기-) : 마 傳호 아 프른 대 타 릿 東녀긔셔 使君을 기들우리라 다 너기다 다(已傳童子騎靑竹 惣擬橋東待使君)「李司~都廻호라」〈두시 15:36ㄴ〉. (怪異히 너기) : 音信으란 가마괴와 가치 츠기 너기고 怒야 우르니란 熊罷 怪異히 너기노라(音書恨烏鵲 號怒怪熊羆)「偶題」〈두시 16:10ㄴ〉. (히 너기-) : 오 밤 南極ㅅ 밧긔 와 老人星 외야슈 히 너기노라(今宵南極外 甘作老人星)「泊松滋江亭」〈두시 14:38ㄴ〉.
며 주185)
며
하물며. ¶제 도 오히려 아니거니 며 어버 내야 주며〈석상 9:12ㄱ〉. 卷耳 며 風病을 고티니 아로 時節에 이노라(卷耳况療風 童兒且時摘)「驅豎子摘蒼耳」〈두시 16:71ㄱ〉.
大臣 리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ㄴ

주186)
리고
버리고. 리-+고.
가 주187)
가
감을. 가-+오+ㅁ+. ‘가-’와 ‘-오-’가 결합되면서 ‘:가(상성)’이 되었다.
리아 주188)
리아
생각하겠는가? #-+리+아. 『두시언해』에서 ‘-리아’는 선행하는 ‘며’와 호응하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수사의문문의 의문 어미로 자주 쓰인다. 〈중간본〉에는 ‘랑리아’로 되어 있다. ¶-리아(수사의문문) : 오란 나그내 시러곰 므리 업스리아 녯 겨지븐 새배 미처 사라슈미 어렵도다(久客得無淚 故妻難及晨)「促織」〈두시 17:37ㄱ〉. 큰 바래 能히 고기 낫골  업스리아  구루메  리 잇니라(巨海能無釣 浮雲亦有梯)「水宿 ··· 群公」〈두시 3:21ㄱ〉.

【한자음】 상의보일반 황회사대신【대신(大臣)은 좌승을 가리키니, 밥 한 그릇의 은혜도 오히려 보답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대신으로 서로 알아주었는데 감히 떠나갈 마음을 품느냐는 말이다.】
【언해역】 항상 한 번 밥 먹곤 은혜(恩惠)도 갚고자 여기니, 하물며 대신(大臣) 버리고 감을 생각하겠는가?
*시 구절 해석 : “항상 한 그릇 밥의 은혜로 갚고자 하는데, 하물며 대신의 직분을 버릴 마음을 품느냐?”라는 뜻으로, 작은 은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데, 대신의 직분이라는 큰 은덕을 입고 무책임하게 떠나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白鷗沒浩蕩 주189)
호탕(浩蕩)
①수세(水勢)가 웅장한 모습. ②생각이 없는 모양. 멋대로 하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189_1)
* 『두시언해』 권19의 비교정본(非校訂本)의 묵서 교정에는 ‘白鷗波浩蕩’으로 되어 있다. 〈중간본〉에는 ‘白鷗波浩蕩’로 되어 있다.
萬里誰能馴【言若去則無繫著 주190)
계착(繫著)
한 마음이 어떤 사물에 얽매여 있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 범부(凡夫)가 명성이나 이익과 같은 생계 도구에 집착하는 것이 마치 마귀에서 속박당한 것처럼 하지만, 이런 집착이 없다면 그런 속박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말이다.
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주191)
흰. -[白]+ㄴ. 15세기의 ‘희-’와 ‘-’는 쌍형어이다. ¶희- : 버들지 길헤 브드티니 흰 시우글 랏고〈백련 8ㄱ〉. 져무믄 能히 몃맛 니오 구믿터리 제여곰 마 희도다(少壯能幾時 鬢髮各已蒼)「贈衛八處士」〈두시 19:42ㄴ〉. - : 복홰 블그며 오야지 며 薔薇 감고 東君려 무르니〈금삼 1:23ㄴ〉. 江湖앤  새 하고 天地옌 프른 리 잇니라(江湖多白鳥 天地有蒼蠅)「寄劉 ··· 四十韻」〈두시 20:26ㄱ〉.
며기 주192)
며기
갈매기. ¶鷗 며기 구〈훈몽 상9ㄱ〉. 녜 믈 우흿 며기 더니 이젠 그믌 소갯 톳기 도다(昔如水上鷗 今如罝中兔)「有懷台州鄭十八司戶」〈두시 21:38ㄱ〉.
훤 주193)
훤
훤한. 훤#-+ㄴ. ¶훤- : 耶輸ㅣ 이 말 드르시고 미 훤샤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석상 6:9ㄱ〉. 수워리고 가온  뵈야로 俗人 避호니 훤야 모 사게 됴토다(喧卑方避俗 疎快頗宜人)「賓客」〈두시 22:11ㄱ〉.
므레 주194)
므레
물에. 믈+에.
긔여 드니 주195)
긔여 드니
기여 드니. 긔-+어#들--++니. ¶긔- : 摩睺羅伽 큰  바다로 긔여 니다 혼 디니〈월석 1:15ㄱ〉.  며기 훤 므레 긔여 드니 萬里예 뉘 能히 질드리리오(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두시 19:3ㄴ〉. -어 들- : 내애 졔 기 本分 宗師의 즐어 들게 샨 法門앳 言句 내여〈법집4ㄱ〉. 버러 드러온 므리 붑괴니 根源 다 萬古적브테로다(羅落沸百泓 根源皆萬古)〈두시 25:12ㄱ〉.
萬里예 주196)
누가. ‘누’는 ‘누’는 알지 못하는 의문의 사람. 또는 이름을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미지칭 대명사로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하면 주격형은 ‘·뉘(평성)’, 관형격형 ‘:뉘(상성)’, 목적격형 ‘:눌(상성)’이 된다. 그러나 〈초간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거성으로 되어 있다.
能히 질드리리오 주197)
질드리리오
길드리겠는가? 질#들-+이+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리오 : 뉘 어엿비 너기리오(誰憐病峽中)「社日兩篇」〈두시 11:10ㄱ〉.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2ㄱ〉.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질드리- : 調御는 질드릴 씨오〈월석 9:11ㄴ〉. 되 아 駱駝 질드리놋다(胡兒制駱駝)「寓目」〈두시 3:23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백구몰호탕 만리수능순【만약 떠나간다면 얽매임이 없다는 말이다.】
【언해역】 흰 갈매기 훤한 물에 기어드니 萬里에 누가 능히 길들이겠는가?
*시 구절 해석 : “흰 갈매기가 넓은 물속으로 가라앉으니, 만 리 세상에 누가 능히 길들이겠는가.”라는 뜻으로, 그래도 떠나간다면 갈매기가 물가에서 노니는 것처럼 아무도 이를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白鷗沒浩蕩’ 구에 대해 ‘沒’을 ‘波’로 본 판본이 있다. 이에 대해 『두시상주』에서는 “두보 시의 ‘白鷗沒浩蕩’은 ‘연파 사이에 사라지는 것을 말할 따름이다’라고 보고 송민구(宋敏求)는 갈매기는 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파(波)’로 고쳤는데 이렇게 하면 신묘한 기운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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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 이 시는 두보가 장안(長安)에 살고 있던 당나라 현종 천보(天寶) 7년(748)에 지어졌다. 당시 두보의 나이는 37세이었다. 두보가 장안에 머물던 시기는 십여 년의 여행을 끝내고 장안으로 돌아간 746년부터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 행재소로 간 757년인데, 이 시기는 두보가 관직을 구하면서 궁핍하게 살았던 시기이다. 위 승장은 위제(韋濟)로, 그 당시에 상서성 좌승(尙書省左丞)으로 있었다. 그는 두보의 시를 잘 알아 일찍이 많은 관료들 앞에서 두보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천보 6년(747)에 현종이 조서를 내려 천하에 하나라도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경사(京師)에 들어와 시험을 보라고 명령했는데, 그 당시에 권력을 가진 환관 이임보(李林甫)가 상서성에서 시험을 보게 해 놓고는 응시한 사람들을 선발하지 않고 현종에게는 재야(在野)에 인재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두보도 이때 응시를 하였으나 낙방하고 장안에서 곤궁하게 지내면서 과거로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착잡한 심경으로 이 시를 지었다. 시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진술하면서 벼슬길에서 뜻을 잃고 생활이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는 한편, 현실의 어두운 국면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천보 8년(748) 위제가 상서승(尙書丞)에 임명될 무렵 두보는 일찍이 두 편의 시를 지어 올려 자신을 선발해 줄 것을 희망했다. 위제는 두보의 시재(詩才)를 잘 알고 있었지만 두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두보는 다시 이 작품을 써서 결국 출로가 열리지 않는다면 장안을 떠나 강호(江湖)에 은둔할 결심을 드러냈다. 두보가 735년(24살)에 낙양에서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해 낙방하고 이 시를 지을 때까지 13년의 세월이 지났다. 특히 장안에 와서 공명을 구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결과적으로 가는 곳마다 난관에 봉착해 뜻을 펴기가 어려웠다. 청년 시기의 호탕한 기상도 이미 사라지고 울분만 차 있어서 부득이 위제의 앞에서 그 심경을 발설했던 것이다. 현재 가장 오래된 두보시집 판본(宋王洙本, 九家注本, 黄鹤補注本 등)을 보면 모두 이 작품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물론 지금의 문학사가들은 모두 이 작품을 두보의 최초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 작품이 두보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자신의 생애와 이상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공인받고 있다. #위제(韋濟) : ?~?. 당나라 정주(鄭州) 양무(陽武) 사람. 조적(祖籍)은 옹주(雍州) 두릉(杜陵)이다. 위항(韋恒)의 동생이다. 현종 개원(開元) 때 견성령(鄄城令)을 지냈다. 황제가 백성을 안정시킬 계책을 묻자 대답한 사람이 2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의 대안이 가장 뛰어나 예천령(醴泉令)에 발탁되었다. 이후 네 번 승진하여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이르고, 외직으로 나가 태원윤(太原尹)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으로 칭송을 들었다. 천보(天寶) 중에 상서승(尙書丞)에 올랐고, 풍익태수(馮翊太守)를 끝으로 은퇴했다.
주002)
환고(紈袴) : 환고(紈袴/紈褲). 가는 비단으로 만든 바지. 옛날 귀족 자제들이 입었다.
주003)
귀유(貴逰) : 귀족의 집안과 그 자제(子弟), 치사(致仕)한 사람을 일컫는 말.
주004)
자제(子弟) : 글자의 뜻대로는 아들과 아우란 뜻의 말이지만, 일반적인 젊은이를 일컬을 때 주로 쓴다.
주005)
기브로 : 깁으로. 깁+으로. ¶깁 : 깁 爲繒〈훈해 50〉. 깁 며 燈 혀며 花香 류로 供養더라〈석상 23:58ㄴ〉. 長安앳 겨 디히 싀오  고 金城ㅅ 햇 酥 조하 깁 도다(長安冬菹酸且綠 金城土酥靜如練)「病後 ··· 贈歌」〈두시 3:50ㄴ〉.
주006)
외  : 바지 한. 외[袴] +ㄴ. ‘외’는 ‘바지’나 ‘치마’ 등 ‘하의(下衣)’를 가리키며 ‘옷 외’로 많이 쓰였는데 ‘고외’와 ‘옷 고외’의 형태도 보인다. ‘외 -’는 ‘바지를 입다’, ‘옷 가 -’는 ‘옷을 입다’의 뜻이다. ¶외 : 雲居和尙이 侍者 브려 외 나 보내신대〈남명 상:31ㄴ〉. 越ㅅ 겨지븨 블근 외 젓고 燕ㅅ 겨지븨 프른 눈서비 시름외도다(越女紅裙濕 燕姬翠黛愁)「陪諸 ··· 二首」〈두시 15:30ㄴ〉. 고외 : 裳 고외 샹〈광주판천자문 4ㄴ〉. 옷 외 : 류 겨집히 니기 드러 옷 외 헤디오고 추미며 더러 거시 흐르게야〈석상 3:22ㄴ〉. 옷 외옌  머릿터리 드리옛고 門과 굴엔 丹楓ㅅ 니피 듣놋다(衣裳垂素髮 門巷落丹楓)「秋峽」〈두시 3:41ㄱ〉. 옷 고외 : 繡혼 노 옷 고외 暮春에 비취옛니 金孔雀과 銀麒麟괘 긔옛도다(繡羅衣裳照暮春 蹙金孔雀銀麒麟)「麗人行」〈두시 11:17ㄱ〉. 옷 외 - : 옷 외 요란  이슬 올 저글 判斷고 鞍馬란   오 믿노라(衣裳判白露 鞍馬信清秋)「舍弟 ··· 二首」〈두시 8:40ㄴ〉.
주007)
사 : 사람은. 사+.
주008)
주려 : 굶주려. 주리-[餓]+어. ‘주리-’는 ‘주으리-’, ‘주우리-’의 형태로도 쓰였다. ¶주리- : 首陽山애 숨어셔 고사리 야 먹더니 드듸여 주려 죽으니라〈소학언해 4:28ㄴ〉. 薇蕨로 首陽山애셔 주리고  조 머겨 디나 뇨 資賴니(薇蕨餓首陽 粟馬資曆聘)「早發」〈중간두시 1:50ㄱ〉. 주으리- : 아호븐 주으리며 목 라 橫死 씨니〈월석 9:58ㄴ〉. 늘근 몸 덥긔 호란 燕ㅅ 玉  겨지블 求고 주으륨 充實케 호란 〈두시 3:42ㄱ〉 楚ㅅ 말와 랑노라(煖老須燕玉 充饑憶楚萍)「獨坐二首」〈두시 3:41ㄴ-42ㄱ〉. 주우리- : 하히 곡식글 내요 졍히 셩의 주우리믈 구호려 코〈정속 27ㄴ〉. 하히 길오 關塞ㅣ 치우니 歲暮애 주우리며 어루미 逼迫얘라(天長關塞寒 歲暮饑凍逼)「別贊上人」〈두시 9:17ㄱ〉.
주009)
션 : 선비가. 선비의. 션+∅.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션’는 속격조사가 결합한 형태로도 쓰였다. 여기의 ‘션’는 후행하는 ‘스니’의 의미상 주어이다. ‘션’는 ‘션븨’의 형태로도 쓰였다. ¶션(단독) : 武功 아니 爲샤 션 아실 鼎崻之業을 셰시니다〈용가 80〉. 社稷엔 妖恠ㅣ로왼 氣運ㅣ 버므럿도소니 干戈 늘근 션 보내놋다(社稷纏妖氣 干戈送老儒)「舟中 ··· 尹審」〈중간두시 2:15ㄴ〉. 션(속격 포함) : 太微宮은 션 그레 하 皇帝ㅅ 南녁 宮 일후미라〈월석 2:48ㄴ〉. 두 션 주거믜 가 울며 닐오〈삼강런던 열:20〉. 病야 누워 오래 나그내 도외요니 恩惠 닙와 일 션 서리예 섯거뇨라(卧疾淹爲客 蒙恩早側儒)「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 2:10ㄱ〉. 션븨 :   대애  션븨 일훔 쓰고 모든 션븨 일후믈 다 이리 써〈번노 상:3ㄴ-5ㄱ〉. 儒 션븨 〈훈몽 상:18ㄱ〉. 懇切히 諫爭 匡鼎을 머믈오시고 여러 션븨예 服虔을 혀 시놋다(懇諫留匡鼎 諸儒引服虔)「秋日 ··· 一百韻」〈두시 20:11ㄱ〉. 션븨(속격 포함) : 病이 하 션븨 오 말오 깁수윈  더드머 보란 나그내 旌旗 믿노라(多病休儒服 冥搜信客旌)「敬贈鄭諫議十韻」〈두시 19:17ㄱ〉.
주010)
곳갈 : 고깔. ¶곳갈와 왜  묻거든 믈 골아 로 請며〈내훈 1:45ㄱ〉. 숤 尊ㅅ 가온 화 疑惑호니 곳갈 우흿 빈혀 머므러 롓도다(疑惑尊中弩 淹留冠上簪)「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ㄱ〉.
주011)
스니 : 쓴 이는. 쓴 사람은. 스-[帽]+ㄴ#이+. ¶곳갈 스- : 原憲이봇 곳갈 스고 헌 옷 닙고 나거늘〈남명 상:30ㄴ〉. 南 녀그로 보와 百越을 按察니 누른 곳갈 스니 그듸 기들오 해 놋다(南瞻按百越 黃帽待君偏)「酬寇十侍御錫見寄四韻復寄寇」〈두시 21:13ㄴ〉. 곳갈 싀- : 이 나 沐浴 겨 곳갈 싀이며 담애  도라션 디라〈내훈 서:6ㄴ〉.
주012)
해 : 많이. 하-[多]+이. ¶해 드러 기픈 들 알며〈석상 9:15ㄱ〉. 봄 프레 도라가고져 논 恨이 얼겟니 桃源엣 고 올로 조 해 노라(春草封歸恨 源花費獨尋)「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주013)
그 : 그릇. 잘못. ‘그’는 ‘그르’로 많이 쓰였다. ¶엇디  사도 그 地獄의 드러가 十王을 보니 업스뇨〈번소 7:22ㄴ〉. 그르 : 이 아리 긔 羅睺羅ㅣ니 그르 닐어 羅雲이라도 니라〈석상 3:36ㄴ〉. 그르 아로 매 범그륨 니 微小 性分 이 촛 도긧 벌어지로다(謬知終畫虎 微分是醯鷄)「奉贈太 ··· 二十韻」〈두시 19:15ㄱ〉.
주014)
놋다 : 만드는구나. -+[作]++오+ㅅ+다. ‘-’의 어간 말음 ‘ㄹ’은 비자음 ‘ㄴ, ㄷ’ 위에서 자동으로 탈락하였다. 〈중간본〉에는 ‘놋다’로 되어 있다. ¶制 실 씨라〈훈언 3ㄱ〉. 그듸 보디 아니다 秦ㅅ 時節에 蜀ㅅ 太守ㅣ 돌 조 세 犀牛 라 셰니라(君不見秦時蜀太守 刻石立作三犀牛)「石犀行」〈두시 3:71ㄱ〉.
주014_1)
*〈중간본〉에는 ‘청(聽)’이 ‘청(聴)’으로, ‘賤子ㅣ’가 ‘甫이’로 되어 있다.
주015)
장인(丈人) : ①아내의 친정아버지. ②노인. ③어른에 대한 높임말. ④할아버지. ⑤아버지의 벗. ⑥별자리 이름.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16)
좌승(左丞) : 관직 이름. 전한 성제(成帝) 건시(建始) 4년(기원전 29) 상서(尙書)를 설치했는데, 인원은 5명이고, 승(丞)이 4명이었다. 광무제(光武帝)가 2명으로 줄이면서 처음으로 좌우승(左右丞)으로 나누었다. 상서좌승(尙書左丞)은 상서령(尙書令)을 보좌했는데, 주로 기강(紀綱)을 관할했고, 우승(右丞)은 복야(僕射)를 보좌해 전곡(錢穀) 관련 일들을 관장했다. 녹봉은 모두 4백 석(石)이었다.
주017)
천자(賤子) : 비천(卑賤)한 사람이라 하여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여기서는 두보가 자신을 부른 명칭이다. 『두시언해』에서 두보가 자신을 부른 명칭은 ‘나그네, 노옹(老翁), 늘근 놈, 늘근 션, 랑(郞), 백수랑(白首郞), 빈객(賓客), 소신(小臣), 천자(賤子)’ 등이 있다.
주018)
장인(丈人) : 장인은. ‘장인’은 좌승(左丞) 위제(韋濟)를 가리킨다.
주019)
니 : 가만히. +이. 참조; ‘-’. ¶그 夫人이 니 사 브려 나랏 內예 王ㅅ 病  사 어더 려다가   보니〈석상 24:50ㄱ〉. 그 예 라 니 더운 히 므여워 블 븐 도다(枯旱於其中 炎方慘如燬)「種萵茞幷序」〈두시 16:65ㄴ〉. - : 百千 바리 절로 울어늘  미 부니 微妙 소리 나더라〈석상 11:16ㄴ〉. 놉고  두 甘子ㅅ 남기여 婆娑야  院이 곳답도다(岑寂雙甘樹 婆娑一院香)「樹間」〈두시 18:22ㄴ-23ㄱ〉.
주020)
셔 : 서. 셔[立]+어. ¶셔- : 持國天王이 乾闥婆 一切 眷屬 리고 류야 東方로셔 와 東녁 겨틔 合掌야 셔며〈석상 3:27ㄴ〉. 모딘 범이 내 알 셔 이시니 蒼崖ㅣ 우륾 제 려디놋다(猛虎立我前 蒼崖吼時裂)「北征」〈중간두시 1:1ㄱ〉.
주021)
드르라 : 들으라. 듣-[聞]+으라.
주022)
청(請) : 청하건대. 청#-+ㄴ. 통합형 어미 ‘-ㄴ’은 기원적으로 명사구 보문 구성의 ‘-ㄴ#+’에서 형태소 경계가 소멸되어 생성된다. 청원 구문의 동사(願-, 라-, 請-, 빌- 등)와 염원(念願)의 의미가 있을 때 통합된다. ‘-ㄴ’은 ‘가정’의 용법과 ‘전제’의 용법으로 나눌 수 있다. ¶-ㄴ(전제) : 願 世尊이 後世옛 모딘 衆生로 분별 마쇼셔〈석상 11:9ㄴ〉. 저 이 녯  卿相의 무더메 돌 셰여 表 사마 이제 지즈로 잇가 노라(恐是昔時卿相墓 立石爲表今仍存)「石笋行」〈두시 3:70ㄱ-ㄴ〉. -ㄴ(가정) : 길헤 艱難 사 보아 다 布施더라〈석상 6:15ㄴ〉. 비 하 오나 므리므리예 구스를 얻니 이 이리 어즐야 기 議論호미 어렵도다(雨多往往得瑟瑟 此事恍惚難明論)「石笋行」〈두시 3:70ㄱ〉.
주023)
베퍼 : 베풀어. 베프-[發]+어. ¶슬프다 如來ㅅ 큰 智慧海 베프샤 사미 다 그  라 그 流에 거스리 흘러 오게 샤〈남명 서:3ㄱ〉. 時世 거리칠  베프고져 나 尙書郞이 셔 늘고라(欲陳濟世策 已老尙書郞)「暮春 ··· 五首」〈두시 7:15ㄴ〉.
주024)
닐오리라 : 이르리라. 말하리라. 니르-[謂]+오+리+라.
주025)
책명(策名) : 책명위질(策名委質)의 줄인 말로, 벼슬하여 조정(朝廷)에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름을 신적(臣籍)에 쓰는 것. 즉 벼슬하는 것이다.
주026)
천서(薦書) : 사람을 추천(推薦)하는 문서 또는 서신(書信).
주027)
내 : 내가. 나[我]+이+∅.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내’의 성조는 ‘평성’이다. 15세기 대명사들의 주격형과 관형격은 다음과 같이 성조로 구별되는데, 1인칭 ‘나’와 2인칭 ‘너’ 그리고 재귀칭 ‘저’의 주격과 관형격은 ‘·내:, :네(상성), :제(상성), ·뉘(거성), 관형격은 내(평성), 네(평성) 제(평성), :뉘(상성)’ 등과 같다. 이를 대명사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거성/주격)-‘내’(평성/관형격), 둘째, ‘:네’(상성/주격)-‘네’(평성/관형격), 셋째 ‘‧뉘’(거성/주격)-‘:뉘’(상성/관형격), 넷째 ‘:제’(상성/주격)-제(평성/관형격)이다. ¶·내(주격) : 太子 하 스스어시니 내 어드리 치리고〈석상 3:10ㄱ〉. 내 비록 諫諍 資質ㅣ 업스나 내 나니거든 님그미 〈중간두시 1:2ㄱ〉 그르실 이리 겨실가 젓노라(雖乏諫諍姿 恐君有遺失)「北征」〈중간두시 1:1ㄴ-2ㄱ〉. :네(주격) : 王이 니샤 네 다 轉輪聖王이 외야〈석상 3:23ㄱ〉. 새 녀 도라와 내 을 慰勞호니 사롬 사리아 어느 시러곰 니리오(新歸且慰意 生理焉能說)「北征」〈중간두시 1:7ㄱ〉. 제(주격) : 제 너교 바 가다가 귓것과 모딘 이 므엽도소니 므스므라 바 나오나뇨〈석상 6:19ㄴ〉. 여윈 겨지비 깃거 치 도로 빗나며 어린 리 머리 제 빗다(瘦妻面復光 癡女頭自櫛)「北征」〈중간두시 1:6ㄱ-ㄴ〉. 내(관형격) : 내 아리 天神 中에  尊니〈석상 3:4ㄱ〉. 새 녀 도라와 내 을 慰勞호니 사롬 사리아 어느 시러곰 니리오(新歸且慰意 生理焉能說)「北征」〈중간두시 1:7ㄱ〉. 네(관형격) : 太子ㅣ 니샤네 求논 이리〈석상 3:33ㄴ〉. 어느 제 내 몸이 개 이셔 라가 네 알 디려뇨(何當有翅翎 飛去墮爾前)「彭衙行」〈중간두시 1:14ㄱ〉. 제(관형격)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모딘 버미 제 므의여우믈 비겨시나 므므예 리 요 맛나니라(猛虎憑其威 徃徃遭急縛)「遣興五首」〈중간두시 2:69ㄴ-70ㄱ〉.
주028)
녜 : 옛날에. ¶對答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석상 3:17ㄱ〉. 녜 河西ㅅ 尉 마로니 처 薊北에 師旅ㅣ 니러나더라(昔罷河西尉 初興薊北師)「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주029)
져믄 제 : 젊었을 때. 졈-[少]+은 제. ¶王이 깃그샤 四百八夫人 다 브르샤 졈고 고니로 여듧 각시 샤〈월석 8:91ㄱ〉. 單父ㅣ 기리 閑暇호미 하니 河陽 眞實로 나히 졈도다(單父長多暇 河陽實少年)「夏夜 ··· 聯句」〈두시 23:53ㄱ-ㄴ〉.
주030)
일 :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번소 9:56ㄴ〉. 내 조쳐 일 두위이져 기 드리워 더운 病 해 窮困히 니니라(放逐早聯翮 低垂困炎癘)「贈秘 ··· 公邕이라」〈두시 24:29ㄱ〉.
주031)
나랏 비츨 보 소 거긔 : 나라의 빛을 보는 손의 그곳에. 원문의 ‘觀國賓’을 옮긴 것으로 ‘관리가 되는 곳에’의 뜻이다. ‘관국(觀國)’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주032)
충수(充數)요라 : 충수하게 하였다. 즉 ‘두보 자신으로 하여금 관리가 되는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는 뜻으로 ‘두보 자신이 관리가 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033)
하필(下筆) : 붓을 떨어뜨림. 낙필(落筆). 시문(詩文)이나 그림 등을 붓을 써서 쓰거나 그렸다는 말이다.
주034)
유신(有神) : 신의 도움이 있음. 글이나 그림, 말이 기묘하고 생동감이 넘쳐 신운(神韻)이 있다는 말이다.
주035)
그를 : 글을. 글+을. ¶製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 1ㄱ〉. 眞珠  글 주 恩惠 찻도다(洞徹眞珠惠)「贈秘 ··· 公邕이라」〈두시 24:27ㄱ〉.
주036)
닐고 : 읽되. 닑-[讀]+오+. 원문의 동사 위치에서 서술어를 해석하거나 대립적인 사실을 잇는 데 쓰이는 대립의 연결어미 ‘-오/-우’는 중세국어 말기부터 용법이 동요되다가 근대국어 시기에는 ‘-’만 쓰인다. ¶된소리로 經을 닐고 밤낫 그치디 아니면〈월석 10:122ㄱ〉. 東岳ㅅ 中에 가 글 닐거 열  墳典 마초니라(讀書東岳中 十載考墳典)「故秘 ··· 源明」〈두시 24:32ㄱ〉.
주037)
허루니 : 허니. 독파(讀破)하니. 헐-[破]+우+니. ‘헐-’의 사동사는 ‘헐우-’와 ‘헐이-’가 있고, 피동사는 ‘헐이-’가 있다. ¶헐- : 有情이 비록 如來 道理 호다가도 尸羅 헐며〈석상 9:13ㄱ〉. 多少 不定數也ㅣ라 材官 武臣이니 言今材官이 屯守涇渭니(多少材官守涇渭 將軍且莫破愁顏)「諸將五首」〈두시 5:44ㄴ〉. 헐우-(사동) : 침으로 어 헐워 거믄 피 나게 하고〈구간 2:76ㄱ〉. 우러 흐르는 므레 갈 다니 므리 블그니 히 소 헐우도다(磨刀嗚咽水 水赤刃傷手)「前出塞九首」〈두시 5:26ㄴ〉. 헐이-(사동) : 므리 디 몯며 毒이 害티 몯며 히 헐이디 몯며 內外怨賊이 侵掠디 몯야〈월석 10:70ㄱ〉. 北녁 미 南極을 헐이니 블근 鳳은 나날 威垂도다(北風破南極 朱鳳日威垂)「北風」〈중간두시 4:34ㄴ〉. 헐이-(피동) : 오직 갈콰 도최예 헐여 피 나 긋디 아니커든〈구급방 상:82ㄴ〉.
주038)
부들 : 붓을. 붇[筆]+을. ¶보 신긔로온 부디 되여 묏 얼구 그리놋〈백련 13ㄴ〉. 주신 두 부들 호미 맛커늘 오히려  불여 니 다보지 외옛노라(合分雙賜筆 猶作一飄蓬)「老病」〈두시 3:55ㄱ〉.
주039)
리와수메 : 내려 있음에. 리-+오+아#시-+우+ㅁ+에. ¶리오다 : 溫水 冷水로 左右에 리와 九龍이 모다 싯기니〈월석 2:34ㄴ〉. 하얀 읏드미 時節을 조차 믈드로 마 슬노니 우 뵈트레 버혀 리오니 비치 서르 쇗도다(已悲素質隨時染 裂下鳴機色相射)「白絲行」〈두시 25:50ㄱ〉.
주040)
더라 : 듯하더라. #-+더+라. ¶修行 기프신 文殊 普賢 히 긔 구룸 몯더시니世界예 妙法 펴리라〈월천30ㄴ〉. 兄弟 로 伊尹 呂望 보리로소니 持揮ㅣ 一定 더니 蕭何 曹參 일토다(伯仲之間見伊呂 指揮若定失蕭曹)「詠懷古跡二首」〈두시 6:32ㄴ〉.
주041)
부(賦) : 사부(辭賦). 문체(文體) 이름. 중국 전국시대에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쓴 〈이서(離騷)〉와 순경(荀卿)이 쓴 〈부편(賦篇)〉이 있는데, 부(賦)의 선구 작품들이다. 한(漢)나라 때 와서 부체(賦體)가 크게 성행했는데, 굴원 등이 쓴 작품을 일러 초사(楚辭)라 불렀다. 늘 사부(辭賦)로 병칭(幷稱)되었다. 사부는 성조(聲調)를 중시했고, 서정(抒情)을 위주로 했으며 배비포진(排比鋪陳)에 신경을 썼다. 이후 글을 쓸 때 변산(騈散)의 차이가 나타나자 나뉘어 변부(騈賦)와 문부(文賦)가 되었다.
주042)
양웅(揚雄) : 기원전 53-기원후 18. 전한 촉군(蜀郡, 사천성) 성도(成都) 사람. 자는 자운(子雲)이다. 어릴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했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사부(辭賦)에도 뛰어났다. 청년시절에 동향의 선배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작품을 통해 배운 문장력을 인정받아, 성제(成帝) 때 궁정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40여 살 때 처음으로 경사(京師)에 가서 문장으로 부름을 받아, 성제의 여행에 수행하며 쓴 〈감천부(甘泉賦)〉와 〈하동부(河東賦)〉, 〈우렵부(羽獵賦)〉, 〈장양부(長楊賦)〉 등을 썼는데, 화려한 문장이면서도 성제의 사치를 꼬집는 풍자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간언의 덕택으로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에 임명되었다. 나중에 왕망(王莽) 밑에서도 일해 대부(大夫)가 되었다. 천록각(天祿閣)에서 책을 교정했다. 자신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불우한 원인을 묘사한 「해조(解嘲)」와 「해난(解難)」도 독특한 여운을 주는 산문이다. 학자로서 각 지방의 언어를 집성한 『방언(方言)』과 『역경(易經)』에 기본을 둔 철학서 『태현경(太玄經)』, 『논어』의 문체를 모방한 『법언(法言)』, 『훈찬편(訓纂篇)』 등을 저술했다.
주043)
자건(子建) : 조식(曹植, 192~232)의 자. 조식은 삼국시대 위(魏)나라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자는 자건(子建)이고, 조조(曹操)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조숙했고, 문재(文才)가 있었다. 어린 나이로 조조의 사랑을 받아 건안(建安) 16년(211)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지고, 19년(214)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다. 한 차례 황태자로 올리려 했지만 성격대로 행동하여 총애를 잃고 말았다. 형 조비(曹丕, 文帝)가 황제(文帝)가 되자 황초(黃初) 3년(222) 견성왕(鄄城王)에 봉해지고, 다음 해 옹구왕(雍丘王)으로 옮겨 봉해졌지만,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가 시기하여 해마다 새 봉지(封地)에 옮겨 살도록 강요했다. 엄격한 감시 아래 신변에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명제(明帝) 태화(太和) 3년(229) 동아왕(東阿王)이 되었다가 다시 진왕(陳王)에 봉해졌다. 항상 등용되기를 기대했지만 끝내 기용되지 못했다. 6년(232) 다시 봉지를 옮겼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시호는 사(思)다. 그리하여 진사왕(陳思王)으로 불린다. 시문을 잘 지어 조조,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로 불린다. 약 80여 수의 시가 전하고, 사부(辭賦)나 산문도 40여 편 남아 있다. 「칠보시(七步詩)」가 유명하다. 송나라 때 『조자건집(曹子建集)』이 나왔다.
주044)
부(賦)러 : 부(賦)로는. 賦+로+. ‘러’는 ‘로’의 이표기다. ‘로’이 ‘러’으로 표기된 것은 『두시언해』에서도 이것이 유일례이다. 따라서 오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중간본〉에는 ‘賦라’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15세기 문헌에서 ‘-로’의 용례는 확인된다. ¶-로 : 如來ㅣ 이 두 그틀 두드려 두 소로 호아 브티시니라〈금삼 3:5ㄱ〉.
주045)
양웅(揚雄)이 : 양웅이야. 揚雄+이+. ‘’는 보조사로 조사, 체언, 어말어미 뒤에 두루 통합된다. 16세기 전반부터는 ‘ㅿ’의 소멸로 인해 ‘’가 쓰이지 않으면서 ‘아/야/사’ 등으로 반영되었고 『두시언해』의 〈중간본〉은 〈초간본〉의 모든 ‘ㅿ’이 ‘ㅇ’으로 바뀌어 있다. 〈중간본〉에는 간혹 ‘ㅿ’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으나 이것은 판각의 문제이지 실제로 ‘ㅿ’이 쓰인 것은 아니다. ‘’는 후대 문헌에서 ‘도이아’〈발심 29〉, ‘늣게야’〈박통사, 하14〉, ‘오래거사’〈염불보권 38〉의 형태로 쓰였다. ¶仙人 이리 굴근 結이 업거니와〈석상 3:36ㄱ〉. 玉盃 가지고 오래 괴외얫더니 鍾聲管絃이 宮徵 迷失리로다(玉盃久寂寞 金管迷宮徵)「聽楊氏歌」〈두시 16:49ㄴ〉.
주046)
양웅(揚雄)이 : 양웅이야. 揚雄+이+. 〈중간본〉에는 ‘楊雄이아’로 되어 있다.
주047)
오리로다 : 대적할 것이다. 나란히 할 것이다. -[竝]+으리+도+다. ‘-’은 ‘함께하다. 같이하다[俱]’의 뜻도 있다. ¶(나란히 하다. 대적하다) : 오직 如來란 덜오 녀나 聲聞 辟支佛이며 菩薩 智慧禪定에 니르리 너와 리 업스니라〈월석 18:57ㄴ〉. 버러 우흿 갌  열두을 랫 지치여 將軍 勇猛야 남과 다 오리로다(韝上鋒稜十二翮 將軍勇銳與之敵)「王兵馬使二角鷹」〈두시 17:10ㄱ-ㄴ〉.
주048)
혜오 : 헤아리고. 혜-[數]+고. ¶엇뎌 다 두 가지오 시고 다 혜여 니신대〈석상 3:9ㄴ〉. 萬歲 千秋  님그믈 奉戴오리로소니 臨江ㅅ 節士 엇뎨 足히 혜리오(萬歲千秋奉明主 臨江節士安足數)「魏將軍歌」〈두시 5:39ㄴ〉.
주049)
자건(子建)이 : 자건이야. 子建+이+. 〈중간본〉에는 ‘子建이아’로 되어 있다.
주050)
친근(親近)리로다 : 친근할 것이도다. 親近#-+리+도+다.
주051)
보다라 : 보았다. 보-[見]+더+오+라. ‘다라’의 ‘다’는 ‘더+오’가 축약된 것이다. ¶太子ㅣ 닐오 내 담다라〈석상 6:24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주052)
이옹(李邕) : 678~747. 당나라 양주(揚州) 강도(江都, 지금의 江蘇) 사람 자는 태화(泰和)다. 이선(李善)의 아들로,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다. 해서와 행서로 비석 글씨는 쓰는 데 뛰어났고,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필법을 본받아 개성 있는 글씨를 썼다. 이교(李嶠)의 천거를 받아 좌습위(左拾尉)에 재수되었다. 아버지의 『문선주(文選注)』를 보충하여 두 책이 함께 전한다. 현종 개원(開元) 초에 공부낭중(工部郞中)에 발탁되었다가 괄주사마(括州司馬)로 강등되고 다시 진주자사(陳州刺史)로 전임되었다. 천보(天寶) 초에 북해태수(北海太守)를 지내 세칭 ‘이북해(李北海)’로 불린다. 사람됨이 정직해 재상 이임보(李任甫)가 평소 그를 꺼려 모해하여 북해군에서 장살(杖殺)당했다. 사후에 대종(代宗)이 비서감(秘書監)에 추증했다. 원래 문집 70권이 있었지만 이미 산일되었고, 후세 사람들이 편집한 『이북해집(李北海集)』이 있다.
주053)
왕한(王翰) : ?~?. 왕한(王澣)으로도 쓴다. 당나라 병주(幷州) 진양(晉陽) 사람. 자는 자우(子羽)다. 젊었을 때 재주를 믿고 호방하게 지냈다. 예종(睿宗) 경운(景雲) 원년(710) 진사(進士)에 합격했다. 장열(張說)의 인정을 받아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가 되고, 통사사인(通事舍人)으로 옮긴 뒤 가부원외랑(駕部員外郞)을 지냈다. 성격이 호방하고 자부심이 강하여 분방한 생활을 한 탓에 인심을 잃어, 개원(開元) 14년(726) 장열의 실각과 동시에 여주장사(汝州長史)로 좌천되었다. 선주별가(仙州別駕)로 옮겼다가 다시 도주사마(道州司馬)로 밀려나 그곳에서 죽었다. 전해지는 시는 불과 14편에 지나지 않지만, “맛좋은 포도주에 야광의 술잔(葡萄美酒夜光杯)”으로 시작되는 「양주사(凉州詞)」는 당대 칠언절구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주054)
장인(丈人) : ①아내의 친정아버지. ②노인. ③어른에 대한 높임말. ④할아버지. ⑤아버지의 벗. ⑥별자리 이름. 28수(宿) 중의 정수(井宿)에 속한다. 현재의 비둘기자리의 일부다.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당대 명성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주055)
복린(卜隣) : ①이웃해 살 곳을 골라 택함. ②다른 사람에게 이웃해 살기를 원함을 표시함.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56)
내 : 나의. ‘내’는 ‘속격’으로 성조는 ‘평성’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녜 져믄 제(甫昔少年日)’「奉贈 ··· 二十二韻」 항목 참조.
주057)
 : 낯을. 얼굴을. [面]+. 15세기의 ‘얼굴’은 ‘形’의 뜻이다. ¶十一 面은 열 치니 열  觀自在菩薩ㅅ 相 라 供養 일 니샨 經이라〈석상 6:44ㄱ〉. 올 아다온 主人ㅣ 인니 디 마  아던 도다(邑有佳主人 情如已會面)「積草嶺」〈중간두시 1:24ㄱ〉.
주058)
아라지라 : 알고 싶다. 알-[知]+아#지-+라. ‘-어 지-’는 현대국어의 ‘-고 싶-’에 대응되는 보조동사이다. ‘-아#지-’는 원문의 ‘願’에 대응한다. ¶-아지- : 太子ㅣ 門 밧글 보아지라 야시〈석상 3:16ㄱ〉. 降服야지라 비루믈 어느 다시 어드리오 奸詐를 崇尙호믈 갓 잇비 말라(乞降那更得 尙詐莫徒勞)〈두시 5:3ㄱ〉「喜聞 ··· 二十韻」. 願(-뎌 願-) : 지븨 이셔셔 녜 일 닐오 나랏 일 시름야  가멸와뎌 願다(在家常早起 憂國願年豐)「吾宗」〈두시 8:52ㄱ〉. 願(-져 願-) : 그 王ㅣ 天子 돕고져 願니 그 風俗 요 즐기니라(其王願助順 其俗善馳突)〈중간두시 1:7ㄴ〉「北征」. 願(願-) : 고사리 먹고 녀나 거슬 願티 아니호라니 내 새집을 眼中에 보노라(食蕨不願餘 茅茨眼中見)「積草嶺」〈중간두시 1:24ㄴ〉. 願(願) : 願 衆庶 모라 님그믈 奉戴야 車와 書왜 混一게 고 金과 玉과란 리고라(願驅衆庶戴君王 混一車書棄金玉)「黃河二首」〈중간두시 4:27ㄱ〉.
주059)
이우제 : 이웃에. 이웆[隣]+에. ¶ 이우짓 기 東山애 드러오나〈삼강런던烈8〉. 일후믈 덜어 淸江애 流配니 그  巫峽ㅅ 이우지로다(除名配清江 厥土巫峽鄰)「敬寄 ··· 使君」〈두시 8:53ㄴ〉.
주060)
복거(卜居)야지라 : 복거하고 싶다. 卜居#-+야#지-+라. ‘-아#지-’는 ‘-고 싶다’의 의미이다. ¶-아 지- : 太子ㅣ 門 밧글 보아지라 야시〈석상 3:16ㄱ〉. 어딘 이 草萊ㅅ 소로셔 오니 蒼然히 이 議論야지라 請야(令弟草中來 蒼然請論事)「送從 ··· 判官」〈두시 22:34ㄴ-35ㄱ〉.
주061)
원(願)더라 : 원하였다. 願#-+더+라. ‘-더-’는 과거시제 선어말어미로 현대국어에서 ‘회상, 경험, 증거성’ 등의 용법과는 기능이 달랐다.
주062)
정출(挺出) : 돌출(突出)함. 출중(出衆)함. 무리 가운데 아주 뛰어남.
주063)
요로(要路) : 빛나고 중요한 지위(地位)를 비유하는 말.
주064)
요순(堯舜) :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요임금은 전설상의 원고(遠古) 시대 제왕. 이름은 방훈(放勳)이고, 부계(父系)는 씨족사회 후기 부족의 수령이었다. 처음에 도(陶)에서 살다가 나중에 당(唐)으로 옮겨 살아 도당씨(陶唐氏)로 불리며, 역사에서는 당요(唐堯)라 부른다. 전하는 말로 관청을 설치해 시령(時令)을 관장하게 하고 역법(曆法)을 정했다고 한다. 곤(鯀)에게 명령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사악(四嶽)에 물어보아 순(舜)을 선발하고 후계자로 정했다. 순의 행실을 3년 동안 지켜보다가 순에게 섭정(攝政)하게 했다. 죽은 뒤 순이 자리를 이었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선양(禪讓)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요가 만년에 덕이 쇠하여 순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지위를 빼앗겼다고도 한다. 순임금은 전설상 제왕(帝王)으로 5제(帝)의 한 사람. 성은 우(虞) 또는 유우씨(有虞氏)고, 이름은 중화(重華)다. 유덕(有德)한 성인으로서 선양(禪讓) 설화의 대표적 인물이며 요(堯), 우(禹)와 병칭되고 있다. 원시 사회 후기 부락연맹의 수령이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따르면 전욱(顓頊)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시각장애자였고, 계모와 이복동생의 미움을 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효행(孝行)의 도를 다했다. 당시 천자(天子) 요가 순의 평판을 듣고 자기 딸을 순에게 출가시켜 등용했다. 순의 치적이 훌륭했으므로 사악(四嶽)의 천거를 받아 섭정(攝政)을 했다. 팔원(八元)과 팔개(八愷)를 등용하고, 사방을 순행(巡行)하면서 곤(鯀)과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등 사악(四惡)을 제거했다. 요가 죽자 요의 아들 단주(丹朱)를 즉위시키려 했지만 천하의 인심이 순에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마침내 순이 제위에 올랐다.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우를 사공(司空)에 임명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으며, 우를 후계자로 삼았다. 또 기(夔)와 설(契), 고요(皐陶), 수(垂), 익(益), 백이(伯夷), 기(棄), 용(龍) 등에게 민사(民事)를 맡겨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그 후 남방을 순행하면서 사냥을 하던 도중 병을 얻어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자 구의(九疑)에서 장례를 지내니, 지금의 영릉(零陵)이다. 일설에는 우에게 방축(放逐)당해 창오에서 죽었다고도 한다. 39년 동안 재위했다. 근래 사람의 연구에 따르면 순과 제준(帝俊), 제곡(帝嚳)은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주065)
내 : 내가. ‘내’는 ‘거성’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녜 져믄 제(甫昔少年日)’「奉贈 ··· 二十二韻」 항목 참조.
주066)
너교 : 여기되. 생각하되. 너기-[謂]+오+. ‘-오’는 한문의 어순으로는 선행하는 동사를 우리말로 언해할 때 문장의 끝에서 하지 않고, 원래의 동사의 위치에서 언해할 경우에 사용한다. ¶-오 : 王이 太子 묻샤 조 어루다 對答샤 어루호리다〈석상 3:12ㄱ〉. 帝ㅣ 니샤 큰 뵈옷 니븐 사마 너를 籍賴야 元帥 돕게 노라(帝曰大布衣 籍卿佐元帥)「送從 ··· 判官」〈두시 22:35ㄴ〉. 너기다(謂) :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샤공이 어드운 셔  달화 놀애 브며 우우어 믌겨를 므던히 너기놋다(篙師暗理楫 謌笑輕波瀾)「水會渡」〈중간두시 1:29ㄴ〉.
주067)
모 : 자못[頗]. ‘모’는 『두시언해』에서 ‘’로도 2회 쓰였는데, 『두시언해』 복각본에서는 모두 ‘모’라 수정되었다. 원시의 ‘何, 頗, 殊’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 전체에서 ‘何’의 번역으로 ‘모’가 쓰인 것은 44회, ‘頗’의 번역으로 쓰인 것은 38회, ‘殊’의 번역으로 쓰인 것은 1회이다. 『두시언해』 복각본 영인본 중 경인문화사 영인본의 권2:40ㄴ에는 ‘자못’으로 되어 있는데, 원본 확인이 필요하지만 다른 중간본의 영인본에는 ‘모’로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붓으로 가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학언해』(1586)에 ‘’(제2), 첩해신어(1676)에 ‘믓’(5)이 쓰인다. ¶ : 며 이제 大將의 威權을 攝行니 號令이  녯 어딘 사 風이 잇도다(况今攝行大將權 號令頗有前賢風)「冬狩行」〈두시 5:50ㄱ-ㄴ〉. 胡羯이  難호미 하니 고기 자며 나모 쥬메 이 生 브톗노라(胡羯何多難 漁樵寄此生)「村夜」〈두시 7:6ㄴ〉. 못(가필) : 齊와 趙와 이예 放蕩히 녀 輕裘 肥馬로 못 어러이 뇨라(放蕩齊趙間 裘馬頗清狂)「壯遊」〈중간두시 2:40ㄴ(복각본)〉. 모 : 須菩提ㅣ 부텻긔 오 世尊하 모 衆生이 이 말 章句 듣고 實 信 내리 이시리가 몯리가〈금강 32ㄱ〉. 제 지 詩集을 보니 모  이우로 슬허도다(觀其著詩集 頗亦恨枯槁)「遣興五首」〈두시 3:58ㄱ〉. 舜 열여슷 도올 사 드러 니 모미 尊고 道理 모 놉고(舜舉十六相 身尊道何高)「述古三首」〈두시 3:56ㄴ〉 /高岺이 모 날호야 건니 沈休文과 飽照로 시러곰 行列이 도다(高岑殊緩步 沈鮑得同行)「寄彭 ··· 三十韻」〈두시 20:36ㄱ〉.
주068)
혀나 : 빼어나. 혀-#나-+아. ‘혀나다’는 ‘혀나다’로도 쓰인다. 15세기 국어에서 ‘나-’ 합성동사로는 ‘혀나다, 나다, 나다, 혀나다, 나다’ 등이 있다. ¶혀나- : 圓頓敎法 키 甚히 즈르고 혀나 人情에 갓갑디 아니 人情 업다 니시니〈남명 하:38ㄴ〉. 王 詔命야 와 그려기 소라 시니 詔命을 절고 마 모 혀나더라(詔王來射鴈 拜命已挺身)「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23ㄴ〉. 혀 :  타 님금 受辱샤 놀라고 갈 혀 나 늘구믈 러 리노라(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혀나- : 艱難 예 모 혀나 누늘  도 보놋다(挺身艱難際 張目視寇讐)「送韋 ··· 判官」〈두시 22:37ㄱ〉. 혀 : 이제 니르러 이젯 님그미 오히려 亂 혀 려  며 호 글탈하 四方 기우시니라(至今今上猶撥亂 勞心焦思補四方)「憶昔二首」〈두시 3:60ㄴ〉. 나- : 셜흔 여슷차힌 가락 文이 나시며〈월석 2:57ㄴ〉. 顧侯 韓蔡ㅅ 예 누니 나  字 바지로이 더니라(顧於韓蔡內 辨眼工小字)「送顧 ··· 吉州」〈두시 16:17ㄴ〉. 혀나- : 네 鎭에 나니 하니 賊鋒을 摧陷요미 다 무레 혀나리라(四鎮富精銳 摧鋒皆絕倫)「觀安 ··· 二首」〈두시 5:53ㄱ〉.
주069)
조로왼 : 중요한. 조-[要]+. 〈중간본〉에는 ‘조로왼’으로 되어 있다. 그 활용형이 특이하여 능엄경언해(1461)를 기점으로 이전 문헌에는 ‘조-’형, 그 문헌부터는 ‘조외-’형으로 변모된다. “ㅸ⇒오/우/ㅇ”와 같은 순경음 표기의 개정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종요외-~종요로외-’ 등을 거쳐 대체로 16세기 후반부터 ‘종요로오-’형으로 바뀌어 ‘-롭-’계 형용사의 일반적 활용형과 같아진다. ¶要 조씨라〈월석 15:40ㄱ〉. 秘要 秘密코 조씨라〈월석 15:48ㄴ〉. 修行 眞實ㅅ 조왼 이 사시니〈능엄 1:21ㄱ〉. 要 조욀씨라〈법화 4:68ㄴ〉. 주우린 사 구홀 종요로왼 법〈1554 구황 1ㄱ〉. 글 사굠애 종요로온  인  니르러〈1588 소언 6:8ㄴ〉. 會要 모 조 거시라〈석상 21:41ㄱ〉. 조왼 긼이 페 旌旗 랏고 뎌 亭子ㅅ 가온 갈 지엿도다(懸旌要路口 倚劍短亭中)「寄司馬山人十二韻」〈두시 9:7ㄴ〉.
주070)
올아셔 : 올라서. 오-[上]+아#서-+어. ‘-셔’는 ‘이시-’[有]. 이형태 ‘시-’의 부사형이 문법화한 보조사이다.
주071)
우희 : 위에. 우ㅎ[上]+의.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72)
닐위이곡 : 이르게 하고. 니-/니르-+우+이+고+ㄱ. ‘닐위-’는 ‘니르/니-’의 사동사이다. ‘-곡’은 연결어미 ‘-고’에 강세첨사 ‘-ㄱ’이 결합된 것이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으로 활용하여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이른바 ‘ㄹ·ㅇ’형 불규칙활용을 한다. ¶닐위- : 出世果 得디 몯야 十使煩惱 닐위니〈월석 11:118ㄴ〉. 이 소니 내의 病 됴티 몯호 어엿비 너겨 나 爲야 됴 차바 힘 닐위다(王生哀我未平復 爲我力致美肴膳)「病後 ··· 贈歌」〈두시 3:50ㄴ〉. -곡 : 너희 出家거든 날 리곡 머리 가디 말라〈석상 11:37ㄱ〉. 라가 몸 아닐 보곡 淮海예 어그르치 잇디 말라(騫騰訪知己 淮海莫蹉跎)「湖中 ··· 廣陵」〈두시 23:18ㄴ〉.
주073)
풍속(風俗)로 여 : 풍속으로 하여금. 즉 풍속이. 風俗+로 -+이+어. ‘-로 여’는 ‘-으로 하여금’의 뜻으로 현대국어의 장형사동의 피사동주 논항에 쓰이는 ‘-로 여곰’으로 쓰이기도 한다. ¶-로 여 : 님굼이 高允으로 여 太子를 글 치라 더니〈번소 9:44ㄱ〉. 올로 걷던 글던 일후미 잇니 오직 녯 버드로 여 슬케 다(獨步詩名在 秪令故舊傷)「聞高常侍亡」〈두시 24:54ㄱ〉. -로 여곰 : 夫人이 寬으로 여곰 怒호 試驗코져 야〈내훈 1:16ㄱ〉. 갌콰 삸 미트로 農器 디유믈 듣고져 願노니 집 와 보콰로 여곰 것게 디 말오라(願聞鋒鏑鑄 莫使棟梁摧)「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주074)
순후(淳厚)케 호려 : 순후하게 하려. 淳厚#-+게 +오+리+어.
주075)
타라 : 하더라. -+더+라. ‘타라’는 여기서는 ‘하더라’의 축약형이지만 어간이 ‘ㅎ’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타라’로 표기될 수 있다. ¶타라 : 내 지븨 이 저긔 受苦ㅣ 만타라〈월석 10:23ㄱ〉. 기튼 수욼잔과 다 시근 炙을 간 마다 니 슬타라(殘盃與冷炙 到處潜悲辛)「奉贈 ··· 二十二韻」〈두시 19:2ㄱ〉.
주076)
소조(蕭條) : ①적막(寂寞)하고 쓸쓸함. 영락(零落)함. ②정치(政治)나 경제(經濟) 등이 침체(沈滯)됨. 쇠퇴(衰退)함. ③뿔뿔이 흩어져 드문드문함. ④부족(不足)함. 모자람. ⑤소요(逍遙)함. 한가(閑暇)하게 노니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77)
은륜(隱淪) : ①신인(神人) 등급(等級)의 하나. 보통 신선(神仙)을 가리킨다. ②은거(隱居)함. ③은자(隱者)를 가리키는 말. ④몸을 감추어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함. 여기서는 ②③④의 뜻이 함께 쓰였다.
주078)
디 : 뜻이. +이. 즉 임금의 보좌하여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루려는 뜻을 말한다.
주079)
매 : 마침내. -[終]++애. ‘내’ 참조; ‘참내’는 중세국어에서는 주로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이므로 ‘끝내’ 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본래 의미에 가깝다. ¶매 : 受苦ㅅ  가지로 나 매 覺  가긔 니라〈월석 8:25ㄱ〉. 太庭 時節티 매 淳朴호매 도라가리니 京觀애  주거믈 업티리로다(太庭終返朴 京觀且僵尸)「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ㄴ〉. 내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내 : 이젯 亂離 스싀로 救호미 어려우니 내 이 湘潭애셔 늘그리로다(亂離難自救 終是老湘潭)「樓上」〈두시 3:49ㄱ〉.  : 迹은 처으로셔  니르리 샨 믈읫 이리〈월석 1:석보상절 서5ㄱ〉.
주080)
녀녀셔 : 다니면서. 녀-[行]+어#다니-[行]+어+셔. ‘녀니-’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이는 낱맡로, 권2 1회, 권6 2회, 권7 1회, 권14 2회, 권19 2회, 권20 2회 등 모두 10회 쓰였다. ‘녀녀-’도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녀- : 關塞ㅣ 서의니 녀니 길히 어렵도다(關塞蕭條行路難)「宿府」〈두시 6:15ㄴ〉. 나가거나 믈러오거나 호 길 녀뇨매 리과라(進退委行色)「客堂」〈두시 6:53ㄱ〉. 녀뇨매 매 어긔르추미 하니(行邁心多違)「兩當 ··· 上宅」〈두시 7:27ㄴ〉. 길 녀뇨매 어려우미 이 니(行路難如此)「春日 ··· 二首」〈두시 14:17ㄱ〉. 며긔 녀뇨 번드기 自如도다(鷗行炯自如)「瀼西寒望」〈두시 14:29ㄴ〉. 내 늘거 녀뉴믈 전노니(吾衰怯行邁)「催宗文樹雞柵」〈두시 17:13ㄱ〉. 간대로 녀뇨 즐기디 아니니라(不肯妄行役)「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7ㄱ〉. 뉘 닐오 녀뇨미  밋디 몯다 뇨(誰云行不逮)〈두시 20:10ㄱ〉. 男兒 녀니 해 이리 곡(男兒行處是)「寄彭 ··· 三十韻」〈두시 20:36ㄴ〉. 내의 오래 머리 녀뇨 묻고(問我久遠行)「羌村三首」〈중간두시 2:67ㄱ(복각본)〉.
주081)
놀애 : 노래. ¶花鬘 瓔珞 빗이기 마롬과 놀애 춤 마롬과〈석상 6:10ㄴ〉.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주082)
블로미 : 부름이. 브르-[歌]+오+ㅁ+이. 〈중간본〉에는 ‘브로미’로 되어 있다. ¶寶琴 놀오 놀애 브르니〈석상 11:15ㄱ〉. 形勢의 됴호미 하나 風土ㅣ 모디니 몃  머리 도혀 라고  번 기리 놀애 브르가니오(形勝有餘風土惡 幾時回首一高歌)「峽中覽物」〈두시 3:38ㄱ〉.
주083)
은륜(隱淪)도 : 은륜도. 은둔도. 隱淪+도. ‘은륜(隱淪)’에 대해서는 위의 주 참조.
주084)
아니로다 : 아니도다. 아니-+도+다. ‘ㅣ’ 모음에 후행하는 ‘도다’는 ‘로다’로 바뀐다. ¶-로다 : 太子ㅣ 니샤 몸 이시면 受苦왼 이리 잇니 나도 뎌러리로다시고〈석상 3:17ㄴ〉. 榮華홈과 이우로미 咫尺 이예 다니 슬프 難히 다시 니리로다(榮枯咫尺異 惆悵難再述)「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6ㄱ〉.
주085)
기려(騎驢) : 기려객(騎驢客). ①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괴롭게 시를 읊는 시인(詩人)을 가리키는 말. ②처지가 행복하지 못한 미관말직의 관리.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86)
경화(京華) : 경성(京城)의 미칭. 경성에는 문물과 인재가 모여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주087)
고 : 타고. -[乘]+고.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다(받다) : 집 우 龍이 御床 向니 寶位 실 느지르샷다〈용가100〉.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 1:7ㄱ〉. 다(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 25:49ㄴ〉. 다(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 3:6ㄴ〉.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 2:21ㄴ〉. 다(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 9:108ㄴ〉.
주088)
셜흐나 : 서른 넘은. 서른 남짓. ‘-나’은 ‘선행하는 숫자보다는 조금 더’의 의미를 가진 말로 기원적으로 ‘남/넘-[過]’와 관련이 있다. ¶二千 나〈월석 25:14ㄴ〉. 힘 바 穀食 읏듬 삼니 邪僞히 나 利를 어두미 아니 녀(所務穀爲本 邪贏無乃勞)「述古三首」〈두시 3:55ㄴ〉.
주089)
셔욼 : 서울의. 셔울[京]+ㅅ.
주090)
보 : 봄에. 봄[春]+.
주091)
와셔 : 와서. 오-[來]+아+셔.
주092)
나그내로 : 나그네로. 나그네가 되어. 나그내[客]+로. ‘-로’는 ‘자격’을 나타낸다.
주093)
먹노라 : 먹노라. 먹-[食]++오+라. ‘노라’의 ‘오’는 먹는 행위 주체가 화자 즉 두보임을 말한다.
주093_1)
*〈중간본〉에는 ‘隨’가 ‘随’로 되어 있다.
주094)
비마(肥馬) : 비마경구(肥馬輕裘).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음. 생활이 호사스러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095)
비신(悲辛) : 비참(悲慘)하고 신산(辛酸)한 상황.
주096)
아 : 아침에. 아[朝]+.
주097)
가면 : 부유한. 가멸-[富]+ㄴ. 〈중간본〉에는 ‘가면’으로 되어 있다. ¶偸羅國 婆羅門 迦葉이 三十二相이 고 글도 만히 알며 가며러 布施도 만히 더니〈석상 6:12ㄱ〉. 가난코 病호미 진실로 그 덛덛 이리니 가멸며 貴호 내 이 生애 므던히 너기노라(貧病固其常 富貴任生涯)「柴門」〈두시 6:48ㄱ〉.
주098)
짓 : 집의. 집+ㅅ. ‘짓’은 ‘집’의 받침 ‘ㅂ’은 탈락하고 속격조사 ‘ㅅ’만 쓰인 형태이다. 15세기 국어에서 ‘픗, 짓, ’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중에서 ‘픗’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그 짓 리  가져 나오〈석상 6:14ㄱ〉.  기예 나귀 타 나 아뫼 짓 門의 길(→갈)  몰로라(平明跨驢出 未知適誰門)「示從孫濟」〈두시 8:32ㄱ〉.
주099)
나조 : 저녁에. 나조ㅎ+.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가 둘 다 쓰였다. 후자는 ‘낮’의 의미도 있었다.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나조ㅎ :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 13:10ㄴ〉.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나죄 : 孔聖이 나죄 주구믈 히 너기니〈월석 18:32ㄱ〉. 먼 두들게  몰애 허여고 니 뫼해 나죄 비취옛  븕도다(遠岸秋沙白 連山晩照紅)「秋野五首」〈중간두시 10:32ㄱ〉. 나죄[晝] :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주100)
진 : 살진. #지-+ㄴ. ¶그 우희 둡고 큰  지고 壯코 힘 하며〈법화 2:140ㄱ〉. 셔 글 호던 져믄 사미 해 賤디 아니니 五陵에셔 옷과 왜 제 가야오며 지도다(同學少年多不賤 五陵衣馬自輕肥)「秋興三首」〈중간두시 10:35ㄱ〉.
주101)
  드트를 : 말 탄 띠끌을. 즉 말이 지나면서 일으키는 띠끌을. 15세기에 ‘드틀’과 ‘듣글’은 공존하였다. 16세기에도 두 어형이 공존하다가 17세기에 ‘틔글’(마경, 상39ㄱ)․‘틧글’(박통사, 중43ㄱ)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탈 것을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석상 3:6ㄴ〉.  알 보논 이제와 녜왓 드로 江漢애  가논  노라(眼前今古意 江漢一歸舟)「懷灞上遊」〈두시 3:39ㄱ〉. (무서움 타다) : 降服야 저고 므욤  사 보면〈월석 2:59ㄱ〉. (받다) : 實다 道 샤 와 正覺 일우실 如來시다〈월석 9:10ㄱ〉. 門의 나건 디 나리 마 머니 徒旅의 소교 디 아니노라(出門日已遠 不受徒旅欺)「前出塞九首」〈두시 5:26ㄱ〉. 이 모미 락 도로 醉락 야 興을 니 곧 지비 외앳도다(此身醒復醉 乘興卽爲家)「春歸」〈중간두시 10:3ㄱ〉.
주102)
녀셔 : 다녀서. -[走]+니-[行]+어+셔. 『두시언해』에는 ‘니-, 니-, 녀-, 녀-’의 용례가 있다. ¶니- : 니 길 우흘 서르 보노니 사 사로 몃 디위예 고(相閱征途上 生涯盡幾回)「龍門」〈두시 13:44ㄱ〉. 말왐 니 호미 말 나리 업스니 복홧 해 녜 니던 길흘 스치노라(萍泛無休日 桃陰想舊蹊)「奉贈太 ··· 二十韻」〈두시 19:15ㄴ〉. 니- : 商 두루 녀  씨오〈석상 20:25ㄱ〉. 楚ㅅ 두들게 녀셔 將次ㅅ 늘구니 巫山애 안조니  보미로다(楚岸行將老 巫山坐復春)「大歲日」〈두시 11:1ㄱ〉.
주103)
기튼 : 남은. 깉-[遺]+은. ‘깉다’는 ‘남다’의 듯이다. ¶十二部 修多羅애 出入호 곧 기튼 히미 업스며〈월석 1:월인석보 서19ㄴ〉. 녜 록 忠義ㅣ 솃니 感遇ㅣ 기튼 編이 잇니라(終古立忠義 感遇有遺編)「陳拾遺故宅」〈두시 3:65ㄱ〉.
주104)
수욼잔과 : 술잔과. 수울[酒]+ㅅ#잔+과.
주105)
다 : 함께. 『두시언해』에서 원문의 ‘A與B’는 항상 ‘-와/과 다’의 형태로 언해되었다. ¶이 다 後에 勸發샤 萬億 旋陀羅尼 得며〈법화 7:190ㄱ〉. 우리도  다 微妙 第一法을 得야〈개법 1:84ㄱ〉. 엇뎨 디 陶淵明과 謝靈運의 손 니 어더 널로 여 글 지고 다  놀려뇨(焉得思如陶謝手 令渠述作與同遊)「江上 ··· 短述」〈두시 3:31ㄴ〉. -와/과 다 : 그 中에 구룸  지븐 椒房앳 아미니 일후믈 큰 나라 주시니 虢과 다 秦이로다(就中雲幕椒房親 賜名大國虢與秦)「麗人行」〈두시 11:17ㄴ〉. 슬픈 거믄고와 다  뎌히 사 感激게 호미 하 眞性엣 것과 다도다(悲絲與急管 感激異天眞)「促織」〈두시 17:37ㄱ〉.
주106)
시근 : 식은. 식-[冷]+은. 『두시언해』에서 ‘식다’는 원문의 ‘冷’의 번역으로 쓰였는데 여기 이외의 경우에는 ‘서늘다, 사늘다, 다, 冷다’ 등으로 번역되었다. ¶冷(식다) :  파  믿 열 줄기 거웃 조쳐 구리 소라애 므레 글혀 시그며 더우미 맛게 야〈구급방 하:91ㄱ〉. (칩다) : 프른 소나못 불휘예 주거므르 드럿니 히 치워  석디 몯얏니라(摧頹蒼松根 地冷骨未朽)「述懷」〈중간두시 2:31ㄱ〉. (서늘다) : 魚龍이 괴외고  미 서늘니 故國에 平時예 사던  논 배 이쇼라(魚龍寂寞秋江冷 故國平居有所思)「秋興五首」〈두시 6:8ㄱ〉. (사다) :  뫼해 누니 사케 라도 넉시 도라오디 아니니 仙賞홀 미 어그르츨 므를 섯흘류라(秋山眼冷魂未歸 仙賞心違淚交墮)〈두시 9:5ㄱ〉「憶昔行」. (다) : 집 기슬글 조차 梅花와 다 우믈 求호니  곳부리와 설 가지 半만 치우믈 이긔디 몯얏다(廵簷索共梅花笑 冷蕊踈枝半不禁)「舍弟 ··· 三首」〈두시 8:41ㄴ〉. (칩다) : 개옛 돗기 새배 처 나가니 햇 門ㅅ 부체 치워 여디 몯호라(浦帆晨初發 郊扉冷未開)〈두시 11:41ㄴ〉「朝二首」. 冷(冷다) : 뵈 니브리 여러  冷호미 쇠 니 일의노 아 아니 환히 누워 안 와 믜여 리다(布衾多年冷似鐵 嬌兒惡臥踏裏裂)「茅屋 ··· 破歌」〈두시 6:42ㄴ〉.
주107)
간 마다 : 간 데마다. 간 곳마다.
주108)
니 : 가만히. +이. 원문의 ‘潜’에 대응된다. 『두시언해』에서 ‘니’는 주로 ‘靜, 黙’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靜 : 니 이셔 元精理 尋求요니 浩蕩야 비겨 아로미 어렵도다(靜求元精理 浩蕩難倚賴)「病柏」〈두시 18:15ㄴ〉. 默 : 저 이런 사이  偶然히 이실가 야  臨야셔 니 슬허노라(恐此復偶然 臨風默惆悵)「劒門」〈중간두시 1:36ㄱ〉.
주109)
슬타라 : 슬퍼하더라. 슳-[悲]+더+오+라.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슬타라’의 ‘오’는 주어가 ‘두보’임을 말해준다.
주110)
견징(見徵) : 징발(徵發)함을 당함.
주111)
훌연(欻然) : 홀연(忽然). 갑자기. 뜻밖에.
주112)
구신(求伸) : ①뜻을 펼칠 준비를 함. ②포부를 펼치고 시행할 일을 모색함. 두 개의 뜻이 함께 쓰였다.
주113)
님그미 : 임금이. 님금+이. 당 현종(玄宗)을 가리킨다.
주114)
뎌 주 : 저 즈음 때에. 그 즈음에. 뎌 주 +의. 『두시언해』에서는 ‘즈’은 물론 ‘주, 주’도 쓰였다. 이 중 ‘주’과 ‘주’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는 ‘+의(처소부사격조사)’로서 ‘’는 “함께”라는 뜻이고, ‘’는 ‘+이(주격조사)’로, ‘니’는 오늘날 “끼니”[時]의 15세기 소급형. 〈중간본〉에는 ‘뎌 주움’로 되어 있다. ¶즈 : 佛性이 男女 즈 아니며〈법화 4:172ㄱ〉. 語黙이 녜 法이라 괴외야 도라가미 이셔 便安히 즈 업스리라〈영가 하:126ㄴ〉. 뎌 즈  셴 머리 萬人 놀래요니 치 블근 제 騎射 잘던 이 내 미데니라(向來皓首驚萬人 自倚紅顏能騎射)「醉爲 ··· 相看」〈두시 3:52ㄴ〉. 河水 즈야 되 닐 보니 믄드기 數百 무리로다(隔河見胡騎 攸忽數百群)「前出塞九首」〈두시 5:27ㄴ〉. 주 : 뎌 주  災害 오히려 려 蒼生 이수미 디 몯얫더니(往者災猶降 蒼生喘未蘇)「行次昭陵」〈두시 6:24ㄴ〉. 주 : 盤과 案과 와 두위티고 길흘 마가 여곰 주츠게 다(踏藉盤案翻 塞蹊使之隔)「催宗文樹雞柵」〈두시 17:13ㄱ〉/ 참조; 요 조 드로니 韋氏ㅅ 누의 漢ㅅ 鍾離ㅅ 올 마자 가 잇도다(近聞韋氏妹 迎在漢鍾離)「元日寄韋氏妹」〈두시 11:2ㄴ〉.  세 로 香湯애 沐浴야〈월석 10:120ㄴ〉. 모 弟子와  禮數고〈석상 23:42ㄴ〉. 이  부텻 나히 닐흔 나히러시니〈석상 13:1ㄱ〉. 니며 고디며 가 낟디 아니  업스니[無時無處而不明顯也니]〈금삼 3:19ㄴ〉.
주115)
블료 뵈실 : 부름을 받았으므로. 원문의 ‘見徵’의 번역이다. ‘견징(見徵)’은 일종의 피동 표현이지만 『두시언해』에서는 ‘견(見)’을 ‘-오 뵈-’로 번역하고 있다. ‘시’가 들어간 것은 ‘주상(主上)’을 주어로 보았기 때문인데 이 구절은 ‘두보’가 현종의 부름을 받은 것이므로 『두시언해』의 ‘뵈실’의 ‘시’는 주어인 ‘두보’와 호응하는 것이 아니다. ¶-오 뵈- : 님금 恩惠 갑고져 나 모미 마 늙고 드러가 朝謁코져 나 病이 妨害호 뵈다(報主身已老 入朝病見妨)「入衡州」〈중간두시 1:54ㄴ〉. 耒陽이 글워 여 거츤 므리 아라  訪問호 뵈다(耒陽馳尺素 見訪荒江眇)「聶耒陽이~泊于方田호라」〈중간두시 1:57ㄴ〉. 平 몰애예 一萬 帳幕이 버렛니 部伍ㅣ 제여곰 〈두시 5:31ㄱ〉 블로 뵈다(平沙列萬幕 部伍各見招)「後出塞五首」〈두시 5:30ㄴ〉. 뵈-(사동) : 귀 머글 모로매 字 어 뵈니 마리 뎌니 빈혀 이긔디 몯놋다(耳聾須畫字 發短不勝篦)「水宿 ··· 群公」〈두시 3:19ㄴ〉.  톼 건나 나래 오 프른 퍼런 것 올  뵈다(江飛競渡日 草見蹋春心)「長吟」〈두시 3:48ㄴ〉.
주116)
믄드시 : 문득. 갑자기. 믄듯+이. 원문의 ‘欻’의 번역으로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 ‘믄드시’는 주로 ‘忽’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믄드시’와 ‘믄듯’은 『두시언해』에서만 쓰였고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는 ‘믄득’이 많이 쓰였다. ‘믄득’은 『두시언해』에서도 쓰였다. 〈중간본〉에는 ‘믄느시’로 되어 있다. ¶믄득 : 아모셔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석상 3:18ㄱ〉. 劒閣 밧긔 믄득 薊北 아 傳니 처 듣고 므를 衣裳애 기 흘료라(劍外忽傳收薊北 初聞涕淚滿衣裳)「聞官 ··· 河北」〈두시 3:24ㄱ〉. 믄듯 : 이제 믄듯 暮春ㅅ 예 내 病이  디나 맛나(今忽暮春閒 値我病經年)「杜鵑」〈두시 17:4ㄱ〉. 믄드시(遽) : 興心이 다니  닶가오미 업더니 시르믜 오 믄드시 이긔디 몯리로다(興盡纔無悶 愁來遽不禁)「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ㄴ〉. (忽) : 너븐 믌겨리 믄드시 길흘 토더니 두들기 올니 江湖ㅣ 다도다(洪波忽爭道 岸轉異江湖)「過南 ··· 庭湖」〈중간두시 2:19ㄱ〉. (倐忽) : 믄드시 스므나  외여 가니 모딘 사미 외니 하도다(倐忽向二紀 姦雄多是非)「詠懷二首」〈중간두시 2:54ㄴ〉. (居然) : 믄드시 濩落호미 외야 셴 머리예 勤苦호 히 너기노라(居然成濩落 白首甘契闊)「自京 ··· 五百字」〈중간두시 2:32ㄴ〉. (奄) : 尙書 韓擇木과 騎曹 蔡有隣을 開元브터 오매 八分 수믈 혜더니 李潮ㅣ 믄드시 二子로 다야 세 사미 외얏도다(尙書韓擇木騎曹蔡有隣 開元已來數八分 潮也奄與二子成三人)「李潮八分小篆歌」〈두시 16:16ㄱ〉. (取次) : 디나가  스싀로 모 앗겨 믄드시 兵事 議論디 말라(經過自愛惜 取次莫論兵)〈두시 23:49ㄱ〉「送元二適江左」. (俄) : 匡汲이 믄드시 榮寵다가 辱왼 며 衛霍이 매 슬프다가 榮華왼 도다(匡汲俄寵辱 衛霍竟哀榮)「贈左 ··· 嚴武ㅣ라」〈두시 24:20ㄴ〉.
주117)
베퍼 : 베풀어. 베프-[發]+어. ¶슬프다 기픈 들 微微히 베프시니〈금삼 서2:4ㄴ〉. 時世 거리칠  베프고져 나 尙書郞이 셔 늘고라(欲陳濟世策 已老尙書郞)「暮春 ··· 五首」〈두시 7:15ㄴ〉.
주118)
나 : 남을. 나-[出]+ㅁ+.
주119)
구(求)고져 다라 : 구하고자 하였다. 求+-+고#지-+어 -+더+오+라. ‘오’가 있으므로 주어인 두보에 대한 서술이다.
주120)
청명(靑冥) : ①푸르고 그윽하면서 먼 것을 형용하는 말. 푸른 하늘[靑天]을 가리킨다. ②푸르고 그윽하면서 먼 것을 형용하는 말. 선경(仙境)이나 천정(天庭)을 가리킨다. ③푸르고 먼 산령(山嶺)을 가리키는 말. ④바닷물[海水]을 비유하는 말. ⑤대나무나 나무가 울창한 모습. ⑥높은 지위나 현요(顯要)한 직위를 비유하는 말. ⑦궁정(宮廷) 또는 제왕(帝王)을 비유하는 말. ⑧옛 칼[劍] 이름.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121)
수시(垂翅) : 날개를 내림. 날개를 접음.
주122)
층등(蹭蹬) : ①험난(險難)해서 나아가기 어려운 모양. ②실세(失勢)한 모양. ③곤란하고 힘겨움. 실의(失意)함.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122_1)
*〈중간본〉에는 ‘失勢貌ㅣ라’로 되어 있다.
주123)
하해 : 하늘에. 하ㅎ+애. ‘하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24)
개 : 날개를. -+개+.
주125)
드리오고 : 드리우고. 들-+이+오+고. ‘드리오-’는 ‘들-’에 ‘이’와 ‘오’가 연결된 것으로 이들은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드리우-’의 형태로도 쓰였다. ¶드리오- : 한 幡과 盖와 드리오고 한 보옛 바 니라〈석상 20:17ㄴ〉. 戶外예 昭容이 블근 매 드리오언 고시 둘히 御座 보아셔 朝儀 引進놋다(戶外昭容紫袖垂 雙瞻御座引朝儀)「紫宸殿退朝口號」〈두시 6:7ㄱ〉. 드리우- : 旒蘇 五色 빗난 거스로 어울워 드리우 거시라〈월석 10:45ㄱ〉. 冕旒 드리우샤매 穆穆샤 資賴시고 그믈 비루 오직 어위에 시면(垂旒資穆穆 祝網但恢恢)「秋日 ··· 三十韻」〈두시 3:11ㄱ〉.
주126)
어그르처 : 어긋나게 되어. 어그릋-+어. ‘어그릋-’은 『두시언해』에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참조; 어긔릋-. 어그맃-. 어긔맃-. 어긔으릋-. 어그르치(부사). ¶어그릋- : 허므를 다시 아니며 석 를 仁에 어그릇디 아니니라〈번소8:3ㄴ〉. 맷 비치 다 흘러 올마가 傳語야 아니 한 덛 서르 賞玩호 서르 어그릇디 마롤 디니라(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曲江二首」〈두시 11:20ㄱ〉. 淮海예 어그르치 잇디 말라(淮海莫蹉跎)〈두시 23:18ㄴ〉. 어그럽- : 엇디 머리를 헏글우고 명망을 길워 스스로 어그럽고 통달호라 니롬이 이시리오〈소학6:109ㄴ〉. 어그맃- : 해 와 이쇼니 매 어그리춘 배 업도다(在野無所違)〈두시 15:4ㄴ〉. 어글웇- : 警戒며 恭敬야 일 져므리 야 싀어버이며 남진의 命을 어글읏디 말라〈번소3:13ㄱ〉. 어글웇- : 경계며 조심야 일 졈을이 야 命을 어글웃디 말라〈소학2:46ㄴ〉. 어글츠- : 셤기믈 을 다야 혹 어글츠디 말라〈경민 중:19ㄱ〉. 어긔- : 닐오 漸敎 鈍敎애 어긔오 鈍門은 반기 漸門이 니라〈원각 하3-2:79ㄴ〉. 어긔릋- : 이 나래 더욱 디 해 어긔릇도다(茲日倍多違)〈두시 23:19ㄱ〉. 어긔으롳- : 믈러 올 제 날호야 녀 죠고맛 매 어긔으르체라(退食遲回違寸心)〈두시 6:14ㄱ〉. 어긔르치- : 녯 이 야 禮 어긔르치 아니놋다(懷舊禮無違)〈두시 24:48ㄴ〉. 어긔맃- : 글 스 소 興心이 어긔릿디 아니도다(墨客興無違)〈두시 15:49ㄱ〉.
주127)
방종(放縱) 비느리 : 방종한 비늘이. 즉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비늘이.
주128)
업수라 : 없구나. 없-+우+라. 형용사 ‘없-’은 중세국어에서 ‘--’가 통합되지 않는 것이 대체적 경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는, -느-’ 통합이 일반적이다. 〈선종영가집언해〉(1464년)에 ‘:업·니’(상12ㄱ, 상55ㄴ), ‘:업·니·라’(상33ㄱ)가 등장한다. ¶제 艱難 이 念야 내 이것 업수라 터니〈법화 2:244ㄱ〉. 우리도 이 偈 좃 외오노소라〈월석 8:100ㄴ〉. 나그내 南縣으로브터 와 浩蕩야 다 갈  업수라(客從南縣來 浩蕩無與適)「白水 ··· 三十韻」〈두시 7:23ㄱ〉. 흐린 술와 다 거플 바 조히 누네 이실 슬허호미 업소라(濁醪與脫粟 在眼無咨嗟)「柴門」〈두시 6:47ㄴ〉.
주129)
백료(百寮) : 백료(百寮). 백관(百官). 많은 관료 신하를 말한다.
주130)
장인(丈人)의 : 장인이. ‘-의’는 ‘요’과 호응하며 내포문의 의미상 주어에 붙은 속격.
주131)
둗거이 : 두껍게. 둗겁-[厚]+이. ‘둗거’식으로 쓰이다가 〈능엄경언해〉(1461)부터 ‘ㅸ→오/우/ㅇ’ 표기원칙에 따라 이처럼 쓰인다. ¶우리히 아랫 福이 깁고 둗거 佛法을 맛나니〈석상 21:39ㄴ〉.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 훤더라(春濃停野騎 夜宿敞雲樓)「懷灞上遊」〈두시 3:39ㄱ〉.
주132)
요 : 함을. +오+ㅁ+. ‘오’가 ‘요’로 바뀌는 것은 하향이중모음 뒤에 ‘오’가 올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나 어간 ‘-’ 뒤에 오는 ‘오’도 ‘요’로 바뀌며 이러한 현상은 현대국어에까지 이어진다.
주133)
붓그리며 : 부끄러워하며. 붓그리-[愧]+며. ‘붓그리-’는 동사로서 파생형용사로서 ‘붓그럽-’과 다시 여기서 ‘-어 -’가 붙어 동사로 파생된 ‘붓그려-’가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일련의 동사들은 현대국어에서는 모두 소멸되고 오히려 ‘업’ 파생형용사에 ‘-어하-’가 붙어 파생된 동사인 ‘부끄러워하다’만 남은 경우가 많다.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 44ㄱ〉. 袞職을 일즉  字로도 깁디 몯오니 몸 許요 雙南金에 가뵤 붓그리노라(袞職曾無一字補 許身媿比雙南金)〈두시 6:14ㄱ〉「題省中院壁」. 붓그럽- : 비록 큰 허므리 업슨 오 안로 매 붓그럽디 아니니여〈내훈 3:27ㄴ〉. 비록 蟬冠 밧고 니브나 右ㅅ녁 히 붓그러온 나 幸호 하니라(雖蒙換蟬冠 右地恧多幸)「故右 ··· 九齡」〈두시 24:41ㄴ〉. 붓그려- :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 3:8ㄱ〉. 위 가온  서리예 뎻니 늘근 원두리 기리 붓그려노라(中園陷蕭艾 老圃永爲恥)「種萵茞幷序」〈두시 16:67ㄱ〉.
주134)
호 : 사랑함을. #-+오+ㅁ+. ¶다(생각하다) : 故國에 平時예 사던  논 배 이쇼라(故國平居有所思)「秋興五首」〈두시 6:8ㄱ〉 /다(사랑하다) : 술 즐겨 머거  부 대 랑야(嗜酒愛風竹)「寄題江外草堂」〈두시 6:35ㄴ〉.
주134_1)
眞實로 호 : *〈중간본〉에는 ‘實로 호’로 되어 있다.
주135)
아노니 : 아니. 알-[知]++오+니. ‘-오-’는 화자 주어에 호응한다.
주136)
우희 : 위에. 우ㅎ+의.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37)
안자셔 : 앉아서. 앉-[坐]+아+셔. *〈중간본〉에는 ‘안자’로 되어 있다.
주138)
됴 : 좋은. 둏-[好]+.
주139)
긄구(句)의 : 글귀의. 글+ㅅ+句+의.
주140)
새로오 : 새로움을. 새 것을. 새-+롭+ㅁ+. 『두시언해』에서 ‘롭’ 형용사 파생사로는 ‘외롭-, 새롭-, 妖怪ㅣ롭-’ 등이 있다. ¶새롭- : 司隷ㅅ 버블 처 보니 南陽ㅅ 氣運이 마 새롭도다(司隸章初覩 南陽氣已新)「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외롭- : 매 나모 잇 城이 외롭고 머니 雲臺옛 使者ㅣ 괴외도다(江樹城孤遠 雲臺使寂寥)「陪栢 ··· 二首」〈두시 5:52ㄱ〉. 妖怪ㅣ롭- : 鄴城의 두위힐후믄 足히 妖怪ㅣ롭디 아니니 關中엣 죠고맛 아 紀綱 〈두시 3:60ㄴ〉 허러 리며 張后ㅣ 즐기디 아니커든 님그미 爲야 驚忙더시니라(鄴城反覆不足怪 關中小兒壞紀綱 張后不樂上爲忙)「憶昔二首」〈두시 3:60ㄱ-ㄴ〉.
주141)
외오시놋다 : 외우시는구나. 외오-[誦]+시++오+ㅅ+다.
주142)
왕양(王陽) : 왕길(王吉, ?~기원전 48)의 오식(誤植)으로 보인다. 왕길은 전한 낭야(琅邪) 고우(皐虞, 산동성 諸城) 사람. 자는 자양(子陽)이다. 오경(五經)에 정통했다. 효렴(孝廉)으로 낭관(郞官)이 되어 창읍왕 중위(昌邑王中尉)를 지냈다. 창읍왕이 음란한 행동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그가 간언하여 죽음에서 구했다. 선제(宣帝) 때 익주자사(益州刺使)와 박사(博士),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글을 올려 시정의 득실을 논했지만 황제가 현실과는 어긋난다고 여겨 채택되지 않았다. 나중에 병으로 귀향했다.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다시 간대부로 불렸는데, 경사(京師)에 닿기도 전에 죽었다. 춘추추씨학(春秋騶氏學)과 양씨역학(梁氏易學)에 능했고, 『시경(詩經)』과 『논어(論語)』를 가르쳤다. 그의 학문은 아들 왕준(王駿)이 계승했다.
주143)
공우(貢禹) : 기원전 124~기원전 44. 전한 낭야(琅邪) 사람. 자는 소옹(少翁)이다. 선제(宣帝) 때 명경결행(明經潔行)으로 명성을 얻어 박사(博士)가 되었다. 다시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하남령(河南令)이 되었다. 어떤 일로 파직되었다. 원제(元帝) 초에 간대부(諫大夫)로 나갔다가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상서하여 궁중의 사치에 대해 건의하고 요역(徭役)을 줄일 것과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기용할 것, 창악(倡樂)을 없애고 상업을 경시할 것 등을 주청했다. 아울러 원릉(園陵)의 궁녀들을 석방하고 백성들이 농업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중서(董仲舒)의 제자 영공(嬴公)에게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배웠고, 나중에는 영공의 제자인 휴맹(眭孟)을 사사했다. 저서에 청나라 왕인준(王仁俊)이 편집한 『춘추공양공씨의(春秋公羊貢氏義)』가 옥함산방집일서 속편에 수록되어 있다. 공우탄관(貢禹彈冠)의 고사가 유명하다.
주144)
탄관(彈冠) : ①갓의 먼지를 털어 버린다는 뜻으로, 세속의 먼지(世塵)를 떨쳐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②갓의 먼지를 털고 임금의 소명(召命)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출사(出仕)할 채비를 갖추는 것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145)
원헌(原憲) : 기원전 515-?. 춘추시대 말기 노(魯)나라 사람. 이름은 원사(原思)이고, 자는 자사(子思)다. 그는 올바른 길이 아닌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그가 수치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하는 일 없이 녹봉이나 축내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벼슬자리에 연연하면서 녹봉이나 축내는 것이 수치다.”라고 일러주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궁벽한 땅에 가서 숨어살았다.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자공(子貢)이 방문했을 때 그는 해진 의관(衣冠)이지만 단정하게 차려 입고 그를 맞았다. 자공이 곤궁하게 사는 것을 걱정하자 “도를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곤궁하다고 말하지, 나는 가난해도 곤궁하진 않다.”라고 대답하여 자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주146)
공자(孔子) : 기원전 551기원전 479. 춘추시대 노(魯)나라 추읍(陬邑) 사람.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다. 조상은 송나라의 귀족이었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고,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다. 춘추시대 말기의 대사상가로, 유가(儒家)의 개조로 추앙받고 있다.
주147)
공공(貢公) : 공공이. ‘-’는 내포문의 의미상 주어에 붙은 속격이다. 후행하는 ‘깃거호’과 호응한다.
주148)
깃거호 : 기뻐함을. -[喜]+어+-+오+ㅁ+. 동사 ‘-’과 형태상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어-’가 연결된 파생동사 ‘깃거-’와 ‘-/브-’가 연결된 파생형용사 ‘깃브-’가 있다. 현대국어의 ‘기뻐하-’는 ‘깃브-’에 ‘-어-’가 연결되어 동사로 파생된 것이다. ¶- : 녀론 깃거 구쳐 니러 절시고 안쇼셔 시고〈석상 6:3ㄱ〉. 녯 가히 내 도라오 깃거 기 도라 옷 기슬게 드다(舊犬喜我歸 低徊入衣裾)「草堂」〈두시 6:39ㄴ〉. 깃거- : 이 매 훤히 즐겁도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 3:20ㄴ〉. 나 漏刻 노 지븨셔 알외요 드므리 드르리로소니 님  깃거샴 이쇼 近侍 臣下ㅣ 아놋다(晝漏稀聞高閣報 天顔有喜近臣知)「紫宸殿退朝口號」〈두시 6:7ㄱ-ㄴ〉. 깃브- : 難陁 깃브다 논 마리오〈석상 13:7ㄴ〉. 엇뎨 너븐 집 千萬閒을 어더 天下앳 치운 사 키 그늘워 다 깃븐 치에 야  비예 뮈디 아니야 便安호미 뫼 게 려뇨(安得廣廈千萬閒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茅屋 ··· 破歌」〈두시 6:43ㄱ〉.
주149)
그기 : 그윽이. 그+이. 15세기에 ‘그-’가 있으므로 ‘그기’는 ‘그’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된 낱맡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두시언해』 권9에는 ‘그근’이란 낱맡이 보이는데 오자가 아니라면 15세기에 ‘그다’라는 단어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기’는 ‘暗, 竊, 密’의 번역으로 쓰였다. ‘서동요’의 ‘密只’와 관련된다. ¶그기 : 시혹 諸佛ㅅ 秘密신 말미 心術에셔 나샤 奇妙 用 그기 加시논 功이 시러 議論 몯리도 이시며〈석상 21:22ㄴ〉. 太子ㅣ 마 位 傳샤 그기 드로니 聖德이 北 녀그로 〈두시 8:3ㄱ〉 南單于를 降服시도다(竊聞太子已傳位 聖德北服南單于)「哀王孫」〈두시 8:2ㄴ〉. 그- : 말미 詭譎고 行止擧動이 그고 險며 利 즐기며 왼 이 미고〈내훈 1:22ㄴ〉. 너븐 믌겨레 말과 우괘 그앳니 蓬萊ㅅ 므레  혀 니놋다(洪濤隱語笑 鼓枻蓬萊池)「幽人」〈두시 9:8ㄴ〉. 그- : 秘密 말과 그근 글워 모로매 안로 게 야 리언마 晩歲예 어느 功으로 내 願으로 여 果然히 리오(袐訣隱文須內敎 晩歲何功使願果)「憶昔行」〈두시 9:6ㄱ〉.
주150)
컨마 : 하건마는. 하지만. -+거+ㄴ마. ‘마’은 앞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이나 그와 어긋나는 상황 등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15세기 문헌에는 ‘마’이 일반적이며, 임진란 이전에 ‘마’(초발심 28ㄱ) 형으로 일반화하기 시작한다. ¶-ㄴ마 : 金輪王이 외샤 四天下  아시련마 늘그니 病니 주근 사 보시고 世間 슬히 너기샤 出家샤 道理 닷샤 六年 苦行샤 正覺 일우샤〈석상 6:17ㄴ〉. 軍을 조차 니건 디 열  나니 能히 分寸맛 功이 업스려마 한 사미 苟且히 어두 貴히 너길 니고져 다가 가 붓그리노라(從軍十年餘 能無分寸功 衆人貴苟得 欲語羞雷同)「前出塞九首」〈두시 5:29ㄴ〉.
주151)
원헌(原憲)의 : 원헌이. ‘-의’는 내포문의 의미상 주어에 붙은 속격. 후행하는 ‘가난호’과 호응한다.
주152)
가난호 : 가난함을. 가난#-+오+ㅁ+.
주153)
히 너규믈 : 달게 여김을. -+히 너기-+우+ㅁ+을. ‘달히 너기-’는 원문의 ‘甘’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에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善友ㅣ 샤 도긴가 너기샤  일훔을  브르시니〈월석 22:10ㄱ〉. 사랫 데 늘거 셰요 히 너기노니(生意甘衰白)「收京三首」〈두시 5:7ㄴ〉.
주154)
어려웨라 : 어렵구나. 어렵-[難]+어+이+라. 정음 초기 문헌이라면 ‘어려ᄫᅰ라’와 같이 ‘ㅸ’이 사용되다가 『활자본 능엄경언해』(1461)부터 ‘ㅸ’이 일부 특이한 예를 제외하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두시언해』에는 연결어미에 계사가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어’에 계사가 연결된 예는 이 예 이외에도 있다. ¶시드러운 모 쟝 어드러 가니오 險  와 뇨매 치 더옥 두터웨라(羸骸將何適 履險顏益厚)「上水遣懷」〈중간두시 2:50ㄴ〉. 뎌 즈  셴 머리 萬人 놀래요니 치 블근 제 騎射 잘던 이 내 미데니라(向來皓首驚萬人 自倚紅顏能騎射)「醉爲 ··· 相看」〈두시 3:52ㄴ〉. 腐儒ㅣ 늘거셔 외오 通籍호니 밥 머그라 믈러 올 제 날호야 녀 죠고맛 매 어긔으르체라(腐儒衰晩謬通籍 退食遲回違寸心)「題省中院壁」〈두시 6:14ㄱ〉. 열 잔애도  醉티 아니호 그듸 녯 디 기로 感動얘니라(十觴亦不醉 感子故意長)「贈衛八處士」〈두시 19:43ㄴ〉.
주155)
앙앙(怏怏) : 마음에 만족(滿足)하지 않는 모양. 즐거워하지 않는 모양. 야속하여 원망(怨望)하는 모양.
주156)
준준(踆踆) : ①달려가는 모양. ②겸손하게 물러서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157)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엇뎨(何) : 내 녀 엇뎨 예 왓뇨(我行何到此)「水宿 ··· 群公」〈두시 3:20ㄱ〉. (豈) : 煩促호매 더운 病이 엇뎨 侵逼디 아니리오 믈어뎌 지여셔 조오라 디 몯호라(煩促瘴豈侵 頹倚睡未醒)「早發」〈중간두시 1:50ㄱ〉. (寧)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焉) : 엇뎨 디 陶淵明과 謝靈運의 손 니 어더 널로 여 글 지고 다  놀려뇨(焉得思如陶謝手 令渠述作與同遊)「江上 ··· 短述」〈두시 3:31ㄴ〉. (曷) : 벼스릐 가오 엇뎨 足히 슬흐리오 貴히 너기논 배 聖賢ㅅ 이리니라(位下曷足傷 所貴者聖賢)「陳拾遺故宅」〈두시 3:64ㄱ〉. (安) : 엇뎨 야 壯士 어더 이거슬 하 밧긔 더뎌 사로 여 疑心 아니야 그 불휘 보게 려뇨(安得壯士擲天外 使人不疑見本根)「石笋行」〈두시 3:71ㄱ〉. (胡) : 黃金을 라 두믈 조로이 너기디 아니커시니 엇뎨 삿기 치 贙의게 더디이뇨(不要懸黃金 胡爲投乳贙)「贈秘 ··· 公邕이라」〈두시 24:25ㄴ〉. 엇디(那) : 내의 囊 中엣 布帛ㅣ 너희 치위 求 거시 엇디 업스리오(那無囊中帛 救汝寒凜慄)「北征」〈중간두시 1:6ㄱ〉. (豈) : 엇디  나 편안케 리오 아야 오래 머므러 몯리로다(豈復慰老夫 惘然難久留)「發秦州」〈중간두시 1:15ㄱ〉. (何) : 녜로브터 나내 인니 내 엇디 심히 슬히 리오(自古有羈旅 我何苦哀傷)「成都府」〈중간두시 1:38ㄴ〉. (奚) : 녯 사 垂堂홈도 警戒야 이젠 내 엇디라  命令에 니가뇨(昔人戒垂堂 今則奚奔命)「早發」〈중간두시 1:49ㄴ〉. 엇디라(奈何) : 엇디라 漁陽애 賊騎 颯颯히 와 百姓 놀래뇨(奈何漁陽騎 颯颯驚烝黎)「石龕」〈중간두시 1:23ㄱ〉. 엇뎌(何) : 주그며 사로 아디 몯거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不知死與生 何况道路長)「遣興二首」〈두시 8:28ㄴ〉.
주158)
 : 마음을. +.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주159)
앙앙(怏怏)리오 : 앙앙하겠는가? 怏怏+-+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리오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소 고기 오히려 비러 숨 쉬어니와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鼎魚猶假息 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2ㄱ〉. 피로 醴泉을 當면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血以當醴泉 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주160)
로 : 달림을. -[走]+오+ㅁ+.
주161)
디로다 : 것이도다. -+이+도+다.
주162)
이제 : 이제. 지금. 원문의 ‘今’의 번역으로 쓰였다. 현대국어의 ‘이제’는 발화시와 일치하나, 중세국어의 ‘이 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쓰인다. 원문이 ‘今’일 때에는 ‘지금’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밖의 경우(예 : 於是)에는 ‘이 때(에)’의 뜻으로 쓰인다. 양자는 합성어인지 구인지의 차이가 있다. 한편 음절부음 [j]로 끝나는 체언 중 시간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말 뒤에는 부사격조사(관형격조사)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 相師ㅣ 王  이제 出家 아니샤 닐웨 디나면 轉輪王位 自然히 오시리다〈석상 3:24ㄱ〉. 西伯이 이제 괴외시니 鳳 소리도  머러 업도다(西伯今寂寞 鳳聲亦悠悠)「鳳凰臺」〈두시 17:1ㄱ〉.
주163)
동(東) 녀그로 : 동쪽으로. 東#녁+으로.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東 녀크로’로 되어 있다.
주164)
바래 : 바다에. 바+애. 15세기에는 ‘바’과 ‘바다ㅎ’가 쌍형어로 쓰였지만 『두시언해』에는 ‘바’만 쓰였다. ‘바’도 나타난다. ¶바 : 一切 經藏 阿耨達龍王이 다 가져 바로 드러가리니〈석상 23:36ㄱ〉. 邊庭에 흐르 피 바믈티 외요(邊庭流血成海水)「兵車行」〈두시 4:2ㄱ〉. 닐굽 山  香水 바다히니〈월석 1:23ㄱ〉.
주165)
장차(將次)ㅅ : 장차. 將次+ㅅ. ‘ㅅ’은 부사화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는 ‘, ’로도 표기되었다. 〈중간본〉에는 ‘將次ㅅ’로 되어 있다. ¶將次ㅅ : 몸 막  긴 갈 가지고 將次ㅅ 崆峒山 비곗고져 노라(防身一長劒 將欲倚崆峒)「投贈 ··· 二十韻」〈두시 5:43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夔府書懷四十韻」〈두시 3:8ㄴ〉. 수프렛 곳다온 남 여르믈 내야  업수메 다랏고 닙과 고고리 가지 여희여 다시 디 몯놋다(林香出實垂將盡 葉蔕辭枝不重蘇)「寒雨朝行視園樹」〈두시 15:15ㄱ〉.
주166)
서(西)ㅅ 녀그로 : 서쪽으로. 西+ㅅ#녁+으로.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西ㅅ 녀크로’로 되어 있다. ¶東녀긔셔〈두시 25:51ㄴ-52ㄱ〉, 南녀근〈두시 13:13ㄱ〉, 北녀긔〈두시 12:34ㄱ〉.
주167)
으리왇고져 컨마 : 떨어지고자 하지마는. 으리-+왇+고#지-+어 -+건+마. ‘으리왇-’은 ‘버리왇-’으로도 쓰이며, ‘-져 컨마’ 표기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중간본〉에는 ‘벙으리왇고져 건마’로 되어 있다. ¶으리왇- : 리 입을 으리왇고 더운 오좀을 브라〈구간 1:78ㄴ〉.  이바디 마져 니고져 컨마 幽明의 逼迫호 으리와도미 어렵도다(欲告淸宴罷 難拒幽明迫)「白水 ··· 三十韻」〈두시 7:26ㄱ〉. 버리왇- : 내조쳐 왜신 엇뎨 性을 그르츠리오 미 뷔여 生禪호 버리왇디 아니놋다(放逐寧違性 虛空不離禪)「宿贊公房」〈두시 9:24ㄱ〉.
주168)
오히려 : 오히려. 원문의 ‘尙’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오히려’는 주로 ‘尙, 猶’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猶’의 번역으로 쓰인 ‘’는 ‘아직’, ‘지금도 역시’의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히려 : 函關애 오히려 將帥ㅣ 나가고(函關猶出將)「柳司馬至」〈두시 5:16ㄱ〉.
주169)
종남산(終南山) : 섬서성 장안(長安)의 남쪽에 있는 산.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 진령(秦嶺)이라고도 부른다. 높이는 1,200m이며, 진령산맥(秦嶺山脈) 산봉에 속한다. 주봉의 해발고도는 2,604m이다. 옛 이름은 태일산(太一山), 중남산(中南山),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南山) 등이었다. 중국을 화복(華北)과 화남(華南)으로 나누는 진령산계(秦嶺山系)의 동쪽 끝 근처에 있다. 5-6세기 이래 화엄종의 법림(法淋)과 종밀(宗密), 계율종 남산파의 개조(開祖) 도선(道宣), 정토종의 대성자(大成者)인 선도(善導), 도교 전진도(全眞道)의 개조 왕중양(王重陽), 북오조(北五祖) 중의 중리권(鐘離權), 여동빈([呂洞賓), 유해섬(劉海蟾) 등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도사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며 장안(長安) 부근의 명산이기 때문에 고적․명승을 탐방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산추(南山湫), 금화동(金華同), 옥천동(玉泉同) 등이 명성이 높다.
주170)
종남산(終南山) : 종남산을. 終南山+. 〈중간본〉에는 ‘終南山을’으로 되어 있다.
주171)
야 : 생각하여. #-+야. 〈중간본〉에는 ‘랑야’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琴臺」〈두시 3:73ㄱ〉 /다(사랑하다) : 凄凉호 니건  노라(凄凉憶去年)〈두시 3:29ㄴ〉.
주172)
 : 맑은. -[淸]+은.
주173)
위수(渭水) : 강 이름. 황하의 가장 큰 지류로, 감숙성(甘肅省) 조서산(鳥鼠山)에서 발원하여 섬서성(陝西省) 중부를 비스듬히 관통하여 동관(潼關)에 이르러 황해로 들어간다.
주174)
위수(渭水)ㅅ 셔 : 위수의 가에서. 渭水+ㅅ ++셔.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셔’로 되어 있다. ¶ : 商德이 衰거든 天下 맛시릴 西水ㅅ  져재 니〈용가6〉. 니건  梅花와 버듨 디 도로혀  왓  이어고져 다(去年梅柳意 還欲攪邊心)「白帝樓」〈두시 14:8ㄴ〉.
주175)
머리 : 머리를. 머리[頭]+. 15세기 국어에서 ‘머리[頭], 머리털[髮]’을 뜻하는 ‘머리’와 ‘멀리’를 뜻하는 ‘머리’는 동음이의어의 관계에 있었다. ¶머리(頭) : 命命은  모미오 두 머리 가진 새니〈석상 3:32ㄴ〉.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莫令回首地)「收京」〈두시 5:9ㄱ〉. 머리(遠) : 모딘 길헤 러디면 恩愛 머리 여희여 어즐코 아야 어미도 아 모며 아도 어미 모리니〈석상 6:3ㄴ〉. 鐵鉞을 맛뎌 親賢이 가고 집을 갑게 라 시논 詔書 머리 시놋다(受鉞親賢往 卑宮制詔遙)「有感五首」〈두시 5:15ㄱ〉.
주176)
횟돌아 : 돌려. 횟+돌++아. ‘횟돌-’의 사동사 ‘횟도-’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횟돌-(자동사) : 輪은 술위니 輪廻 횟돌 씨라〈월석 1:월인석보 서4ㄱ〉. 랑호니 녜 서늘  追尋호 즐겨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憶昔好追凉 故繞池邉樹)「羌村三首」〈중간두시 2:66ㄴ〉.  횟도- : 崐崙山과 崆峒山ㅅ 그티 머리 횟돌아 보니 限隔디 아니 도다(崐崙崆峒顚 回首如不隔)「白水 ··· 三十韻」〈두시 7:24ㄴ〉. 도랏 막대 딥고 世 嗟嘆닌 누고 피티 우러 虛空애 솟고 셴 머리 횟도로노라(杖藜嘆世者誰子 泣血迸空回白頭)「白帝城最高樓」〈두시 14:9ㄱ〉. 리 일운 바 燭ㅅ브를 자밧고 손 안잿   횟도놋다(把燭橋成夜 迴舟客坐時)〈금삼 서作橋成고~還呈李司馬노라」〈두시 15:35ㄴ〉. 夔州ㅣ 幽僻 셔 그르메와 弔問고 杜曲애 애 횟돌아 글탈노라(弔影夔州僻 回腸杜曲煎)「秋日 ··· 一百韻」〈두시 20:4ㄱ〉. 프른 발와  로 益州로셔 오니 巫峽엣  믌겨른 天地 횟도로 혀 도다(靑簾白舫益州來 巫峽秋濤天地回)「送李 ··· 公幕」〈두시 23:30ㄴ〉. 목  病 야 三更애 셴 머리 횟돌아 라다니 소리 傳야  브 흘러오 거시 프른 구루믈 저지놋다(病渴三更回白首 傳聲一注濕靑雲)〈두시 25:16ㄱ〉「示獠奴阿段」. 궤 비겨셔 고기의 즐규믈 보고 채 횟돌아 새 기세 들어 리 오노라(憑幾看魚樂 迴鞭急鳥棲)「白露」〈두시 25:16ㄴ〉. 슬프다 여슷찻 놀애 블로매 놀앳 디 기니 溪壑이 날 爲야   횟돌아 뵈다(嗚呼六歌兮歌思遲 溪壑爲我回春姿)「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 25:29ㄱ〉. 일로 님그믈 갑 寸心이 블그니 氣運이 西戎을 믈리조며 北狄을 횟도라 가게 놋다(以茲報主寸心赤 氣却西戎廻北狄)「惜別 ··· 判官」〈두시 17:32ㄴ〉.
주177)
라노라 : 바라보네. 『두시언해』에서는 ‘라-’는 ‘희망하다’의 의미보다는 ‘바라보다’의 의미로 쓰인다.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석상 3:8ㄱ〉. 그 아비 노 묏 그테 올아 울며 라며 너교〈석상 11:29ㄱ〉. 기리 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리고져 고  디위 라셔 西夷 거더 리고져 노라(長吁飜北寇 一望卷西夷)「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3ㄱ〉. 東녀그로 少城을 라 오니 고지 예 얏니 온가짓 곳 픈 노 樓  어루 오도다(東望少城花滿煙 百花高樓更可憐)「江畔獨步尋花七絕句」〈두시 18:7ㄱ〉.
주178)
일반(一飯) : 일반지은(一飯之恩). 일반천금(一飯千金). 은혜에 후하게 보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어느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밥 한 그릇을 얻어먹고 뒷날 천금의 사례를 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주178_1)
*〈중간본〉에는 ‘言一飯之㤙을’으로 되어 있다.
주179)
장상(長常) : 항상. ¶부텨는 三界 밧긔 버서나샤 長常 便安거시 衆生 버서날 이 아니야 六趣에 뇨〈석상 3:20ㄴ〉. 蹉跎히 長常  우고 展轉야셔 조  소릴 듣노라(蹉跎長汎鷁 展轉屢聞雞)「水宿 ··· 群公」〈두시 3:20ㄴ〉.
주180)
 번 : 한 번. #번. ‘번’은 의존명사이다. ¶내 太子 셤기 하 셤기 야  번도 디만 일 업수니〈석상 6:4ㄱ〉. 兵戈와 다 사 이레 머리 도혀 라아셔  번 슬허노라(兵戈與人事 廻首一悲哀)「遣愁」〈두시 3:36ㄴ〉.
주181)
머곤 : 먹곤. 먹고는. 먹-[食]+고+ㄴ. ¶-곤 : 王이 車匿이 보시곤 太子 가신 가려 더시니〈석상 3:34ㄴ〉. 사호던 히 이제 비르서 安定니 옮겨 심곤 버드른  能히 잇가(戰場今始定 移柳更能存)「春日 ··· 二首」〈두시 14:17ㄴ〉.
주182)
은혜(恩惠)도 : 은혜도. 恩惠+도. 〈중간본〉에는 ‘㤙惠도’로 되어 있다.
주183)
갑고져 : 갚고자. 갚-[報]+고#지-+어. ¶-고져 : 欲 고져  씨라〈훈언 2ㄱ〉.  城에 소남긧 누늘 보고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春城見松雪 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 14:30ㄱ〉.
주184)
너기가니 : 여기거니. 생각하거니. 너기-[擬]+거+오+니. ‘오’는 화자 주어와 호응한다.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너기샤) :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석상 3:22ㄱ〉. (-고져 너기-) :  城에 소남긧 누늘 보고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春城見松雪 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 14:30ㄱ〉. (-라 너기-) : 마 傳호 아 프른 대 타 릿 東녀긔셔 使君을 기들우리라 다 너기다 다(已傳童子騎靑竹 惣擬橋東待使君)「李司~都廻호라」〈두시 15:36ㄴ〉. (怪異히 너기) : 音信으란 가마괴와 가치 츠기 너기고 怒야 우르니란 熊罷 怪異히 너기노라(音書恨烏鵲 號怒怪熊羆)「偶題」〈두시 16:10ㄴ〉. (히 너기-) : 오 밤 南極ㅅ 밧긔 와 老人星 외야슈 히 너기노라(今宵南極外 甘作老人星)「泊松滋江亭」〈두시 14:38ㄴ〉.
주185)
며 : 하물며. ¶제 도 오히려 아니거니 며 어버 내야 주며〈석상 9:12ㄱ〉. 卷耳 며 風病을 고티니 아로 時節에 이노라(卷耳况療風 童兒且時摘)「驅豎子摘蒼耳」〈두시 16:71ㄱ〉.
주186)
리고 : 버리고. 리-+고.
주187)
가 : 감을. 가-+오+ㅁ+. ‘가-’와 ‘-오-’가 결합되면서 ‘:가(상성)’이 되었다.
주188)
리아 : 생각하겠는가? #-+리+아. 『두시언해』에서 ‘-리아’는 선행하는 ‘며’와 호응하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수사의문문의 의문 어미로 자주 쓰인다. 〈중간본〉에는 ‘랑리아’로 되어 있다. ¶-리아(수사의문문) : 오란 나그내 시러곰 므리 업스리아 녯 겨지븐 새배 미처 사라슈미 어렵도다(久客得無淚 故妻難及晨)「促織」〈두시 17:37ㄱ〉. 큰 바래 能히 고기 낫골  업스리아  구루메  리 잇니라(巨海能無釣 浮雲亦有梯)「水宿 ··· 群公」〈두시 3:21ㄱ〉.
주189)
호탕(浩蕩) : ①수세(水勢)가 웅장한 모습. ②생각이 없는 모양. 멋대로 하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189_1)
* 『두시언해』 권19의 비교정본(非校訂本)의 묵서 교정에는 ‘白鷗波浩蕩’으로 되어 있다. 〈중간본〉에는 ‘白鷗波浩蕩’로 되어 있다.
주190)
계착(繫著) : 한 마음이 어떤 사물에 얽매여 있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 범부(凡夫)가 명성이나 이익과 같은 생계 도구에 집착하는 것이 마치 마귀에서 속박당한 것처럼 하지만, 이런 집착이 없다면 그런 속박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말이다.
주191)
 : 흰. -[白]+ㄴ. 15세기의 ‘희-’와 ‘-’는 쌍형어이다. ¶희- : 버들지 길헤 브드티니 흰 시우글 랏고〈백련 8ㄱ〉. 져무믄 能히 몃맛 니오 구믿터리 제여곰 마 희도다(少壯能幾時 鬢髮各已蒼)「贈衛八處士」〈두시 19:42ㄴ〉. - : 복홰 블그며 오야지 며 薔薇 감고 東君려 무르니〈금삼 1:23ㄴ〉. 江湖앤  새 하고 天地옌 프른 리 잇니라(江湖多白鳥 天地有蒼蠅)「寄劉 ··· 四十韻」〈두시 20:26ㄱ〉.
주192)
며기 : 갈매기. ¶鷗 며기 구〈훈몽 상9ㄱ〉. 녜 믈 우흿 며기 더니 이젠 그믌 소갯 톳기 도다(昔如水上鷗 今如罝中兔)「有懷台州鄭十八司戶」〈두시 21:38ㄱ〉.
주193)
훤 : 훤한. 훤#-+ㄴ. ¶훤- : 耶輸ㅣ 이 말 드르시고 미 훤샤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석상 6:9ㄱ〉. 수워리고 가온  뵈야로 俗人 避호니 훤야 모 사게 됴토다(喧卑方避俗 疎快頗宜人)「賓客」〈두시 22:11ㄱ〉.
주194)
므레 : 물에. 믈+에.
주195)
긔여 드니 : 기여 드니. 긔-+어#들--++니. ¶긔- : 摩睺羅伽 큰  바다로 긔여 니다 혼 디니〈월석 1:15ㄱ〉.  며기 훤 므레 긔여 드니 萬里예 뉘 能히 질드리리오(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두시 19:3ㄴ〉. -어 들- : 내애 졔 기 本分 宗師의 즐어 들게 샨 法門앳 言句 내여〈법집4ㄱ〉. 버러 드러온 므리 붑괴니 根源 다 萬古적브테로다(羅落沸百泓 根源皆萬古)〈두시 25:12ㄱ〉.
주196)
뉘 : 누가. ‘누’는 ‘누’는 알지 못하는 의문의 사람. 또는 이름을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미지칭 대명사로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하면 주격형은 ‘·뉘(평성)’, 관형격형 ‘:뉘(상성)’, 목적격형 ‘:눌(상성)’이 된다. 그러나 〈초간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거성으로 되어 있다.
주197)
질드리리오 : 길드리겠는가? 질#들-+이+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리오 : 뉘 어엿비 너기리오(誰憐病峽中)「社日兩篇」〈두시 11:10ㄱ〉.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2ㄱ〉.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질드리- : 調御는 질드릴 씨오〈월석 9:11ㄴ〉. 되 아 駱駝 질드리놋다(胡兒制駱駝)「寓目」〈두시 3:23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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