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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경 장게께 드리는 시 20운[奉贈太常張卿垍二十韻]


奉贈太常張卿垍二十韻 주001)
봉증태상장경게 이십운(奉贈太常張卿垍二十韻)
이 작품은 천보(天寶) 13년(754), 두보 43세 때에 지어졌다. 장기(張垍)는 명재상 장열(張說)의 둘째 아들로, 현종(玄宗)의 딸 영친공주(寧親公主)와 결혼한 부마(駙馬)였다. 13년 태상경(太常卿)에 임명되어 종묘예의(宗廟禮儀)를 관장했다. 시는 장기의 문장 능력과 덕망을 칭송하고 명예와 총애를 누린 사실을 서술하면서 시인 자신의 딱한 처지를 밝혀 도움을 줄 것을 희망하였다.

봉증태상장경게 이십운
(태상경 주002)
## 태상경(太常卿)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봉상(奉常)이란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 태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종묘의 예의 및 박사시험을 관리했다. 구경(九卿)의 하나에 속했다. 역대로 설치되어 주로 제사와 예악(禮樂)을 맡았다. 청(淸)나라 말에 폐지되었다.
장게 주003)
## 장게(張垍)
?~?. 당나라 하남 낙양 사람. 장열(張說)의 아들이다. 주서(主婿, 공주의 사위)로 현종의 총애를 받아 금중(禁中)에 내택(内宅) 두는 것을 허락받아 문장으로 시위(侍衛)했는데, 일찍이 진완(珍玩)을 하사받은 것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때 형 장균(張均)도 한림원에서 공봉(供奉)했는데, 항상 하사받은 진귀한 물건을 형에게 보여주었다. 장균이 장난삼아 “이 부옹과 여서는 천자의 사학사가 아니다.(此婦翁與女婿 非天子賜學士也)”라고 말했다. 천보(天寶) 중에 현종이 일찍이 장기의 내택에 가서 그에게 “진희열이 거듭 기무에서 사직하고자 하여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려고 하는 누가 좋겠는가?([陳]希烈累辭機務 朕擇其代者 孰可)”라고 물었는데, 그가 대답하지 않으니 현종이 “내가 사위를 사랑함이 더 넘을 수 없구나.(無逾吾愛婿矣)”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계단을 내려와 절하고 사례했다. 양국충(楊國忠)이 듣고 그를 미워했다. 진희열이 재상에서 파직되고 위견소(韋見素)하니, 그가 몹시 원망했다.
께 드리는 시 20운)

方丈三韓外 崐崙萬國西方丈山 주004)
방장산(方丈山)
전설(傳說)에 나오는 바다에 있는 신산(神山) 이름. 삼신산(三神山)의 하나. 삼신산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동해 가운데 신선이 산다는 산. 즉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 『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보면 진시황과 한무제가 이 산을 순수(巡守)하면서 자신들의 위대한 공적을 백성들에게 선전하고 후세에 남기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 在渤海 주005)
발해(渤海)
동해(東海)의 다른 이름. 창해(滄海).
中다 三韓 주006)
삼한(三韓)
①상고시대(上古時代)에 우리나라 중, 남부에 자리하고 있었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弁辰). ②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 ③옛 삼한 지역을 통합한 나라들. 신라, 고려. ④우리나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은 辰韓卞韓馬韓이라 崐崙山 주007)
곤륜산(崐崙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 처음에는 하늘에 이르는 온 산. 옥이 나는 산으로 알려졌지만 전국시대 말기부터는 서왕모(西王母)가 갈고, 불사(不死)의 물이 흐르는 신선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중간본〉에는 ‘崑崙山’로 되어 있다.
은 在西極 주008)
서극(西極)
①서쪽 변방의 끝 지점. 서방(西方)의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②장안(長安)의 서쪽 지역 강역(疆域).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니라】

方丈山 三韓ㅅ 밧기오 주009)
밧기오
밖이고. [外]+이+고. ‘-오’는 ‘-고’가 선행하는 ‘이’의 뒤에서 바뀐 형태이다. 16세기 문헌부터 ‘〉밖’으로 재구조화한 어형이 나타난다. ¶ :  닐오 밧기 거츠디 아니호 닐오 眞이오〈금강 15ㄱ〉. 매 밧글 뮤믈 초 야시나(終然備外飾)「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9ㄴ〉. 밖 : 박그로 두루 흘러 반시 심장의 들 거시니〈두창 상:31ㄴ〉.
崐崙山 萬國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3ㄴ

ㅅ 西ㅅ녀긔 주010)
녀긔
녘에. 녁+의(처격).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잇니라 주011)
잇니라
있느니라. 있다. 있네. 잇-[有]++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방장삼한외 곤륜만국서【방장산(方丈山)이 발해 가운데 있다. ‘삼한(三韓)’은 진한 변한 마한이다. 곤륜산(崑崙山)은 서쪽 극변(極邊)에 있다.】
【언해역】 방장산(方丈山)은 삼한(三韓)의 밖이고, 곤륜산(崐崙山)은 만국의 서쪽에 있네!
*시 구절 해석 : “방장산은 삼한 밖에 있고, 곤륜산은 만국의 서쪽 끝에 있다.”라는 뜻으로, 방장산과 곤륜산의 위치에 대해 말했다.

建標 주012)
건표(建標)
표지(標識)를 세움.
天地闊 詣絕 주013)
예절(詣絕)
조예(造詣)가 대단히 깊어 타인의 접근을 끊어버림.
古今迷【建標 須溪 주014)
수계(須溪)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유진옹은 송나라 말기 길주(吉州) 여릉(廬陵, 지금의 강서 길안시) 사람. 자는 회맹(會孟)이고, 호는 수계(須溪)다. 어려서 태학생(太學生)으로 있었다. 이종(理宗) 경정(景定) 3년(1262) 전시(殿試)에서의 대책(對策)에서 권세가였던 가사도(賈似道)를 거슬려 병과(丙科)에 등제했다. 부모님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염계서원(濂溪書院) 산장(山長)이 될 것을 자청했다. 강만리(江萬里)와 진선중(陳宣中) 등이 사관(史館)에 머물 것과 태학박사(太學博士)에 임명할 것을 추천했지만 모두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송나라가 망하자 벼슬하지 않았고 은거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사(詞)를 잘 지었는데, 주로 망국의 아픔을 통절하게 노래한 것이다. 작품에 『수계사(須溪詞)』 10권과 『수계사경시(須溪四景詩)』 4권이 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수계사』로 편집했다. 그 밖의 저서에 『수계집(須溪集)』과 『반마이동편(班馬異同評)』, 『방옹시선후집(放翁詩先後集)』 등이 있다.
云猶立柱 주015)
입주(立柱)
기둥을 세움.
ㅣ니
지절(持節)
①부절(符節)을 지님. 옛날에 사신(使臣)이 황명을 받아 출행(出行)할 때 반드시 부절을 지녀 증빙으로 삼았다. ②관직(官職) 이름. 위진(魏晉) 이후 우사지절(有使持節)·지절(持節)·가절(假節)·가사절(假使節) 등이 있었다. 그 권한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자사(刺史)가 되어 군융(軍戎)을 총괄했다. 당(唐)나라 초기에는 제주(諸州)의 자사에 지절이란 이름을 더했고, 이후 절도사(節度使)가 있어 마침내 지절이란 말은 없어졌다. *〈중간본〉에는 ‘湏溪云猶立柱ㅣ니’로 되어 있다.
彷彿持節 주016) 지절(持節) : ①부절(符節)을 지님. 옛날에 사신(使臣)이 황명을 받아 출행(出行)할 때 반드시 부절을 지녀 증빙으로 삼았다. ②관직(官職) 이름. 위진(魏晉) 이후 우사지절(有使持節)·지절(持節)·가절(假節)·가사절(假使節) 등이 있었다. 그 권한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자사(刺史)가 되어 군융(軍戎)을 총괄했다. 당(唐)나라 초기에는 제주(諸州)의 자사에 지절이란 이름을 더했고, 이후 절도사(節度使)가 있어 마침내 지절이란 말은 없어졌다.
之意라】

天地 어윈 주017)
어윈
넓은. 어위-[闊]+ㄴ. ¶어위- : 좁던 東山이 어위며〈월석 2:28ㄴ〉.  平 몰앳 두들기 어위오 예 죠고맛 훤 房이 뷔옛도다(地闊平沙岸 舟虛小洞房)「遣悶」〈두시 3:11ㄴ〉.
주018)
데(의존명사).
標 셰니 주019)
셰니
세우니. 셔-[立]+이+니. 어간 ‘:셰-’는 ‘셔-’[立]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한 파생동사이다. ‘셰-’에 다시 사동의 ‘우/오’를 결합시킨 ‘셰우-/셰오-’가 17세기 문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셰- : 王이 太子 셰요려 샤〈석상 3:5ㄴ〉. 저 이 녯  卿相의 무더메 돌 셰여 表 사마 이제 지즈로 잇가 노라(恐是昔時卿相墓 立石爲表今仍存)「石笋行」〈두시 3:70ㄴ〉. 셰오/셰우- : 도로 당을 제 집의 셰우고〈동국 효6:41ㄴ〉. 文潞公이 가廟 西京의다가 셰오고〈가례 1:8ㄱ〉.
나가리 주020)
나가리
나아가는 이. 나아가는 사람. 낫-[進]+아#가-+ㄹ#이+∅(주격조사). ¶낫- : 定光이 發明야  性에 기피 드러 오직 낫고 믈룸 업수미 일후미 不退心이라〈능엄 8:18ㄱ〉. 여흐레 고기 낫글 저긘 글워를 䟽히 고 바회예 받 갈 저긘 바독 긔 나노라(釣瀨䟽墳籍 耕巖進奕碁)「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ㄱ〉. 나가- : 여러 王히 부텻긔 나가 無上道理 묻고〈석상 13:20ㄱ〉. 長夜애 나가 어엿비 너기노라(短褐卽長夜)「遣興五首」〈두시 3:59ㄱ〉.
그처 주021)
그처
끊어져. 긏-[斷]+어. ‘긏다’는 자타동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15세기 당시에 ‘그치다, 끊다, 끊어지다’의 뜻을 가진 동사는 ‘긏-’이었으나 후대에 ‘그치-’로 바뀌었다. ‘-’[終]도 ‘치-〉마치-’로 변화하였는데 이러한 변화는 자타동 양용동사와 사동접사 ‘-이-’와 관련되어 있다. ¶긏다(자동사) : 여들븐 모딘 미 긋고〈월석 21:150ㄱ〉. 驪山애 行幸 라오미 긋고 花萼樓에 登臨샤미 도다(驪山絕望幸 花萼罷登臨)「驪山」〈두시 5:18ㄴ〉. 긏다(타동사) : 이 사미 見思 다 긋고 다시 習氣 侵〈월석 14:66ㄴ〉. 秦州에 흐린 涇水 흐르 해 애 긋노라(腸斷秦州流濁涇)「卽事」〈두시 3:37ㄱ-ㄴ〉.
녜와 주022)
녜와
옛날과. 녜[舊]+와.
이제 주023)
이제
지금. 현재. 이제. 현대국어의 ‘이제’는 발화시와 일치하나, 중세국어의 ‘이 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쓰인다. 원문이 ‘今’일 때에는 ‘지금’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밖의 경우(예 : 於是)에는 ‘이 때(에)’의 뜻으로 쓰인다. 양자는 합성어인지 구인지의 차이가 있다. 한편 음절부음 [j]로 끝나는 체언 중 시간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말 뒤에는 부사격조사(관형격조사)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 이제  내 아 려가려 시니〈석상 6:5ㄴ〉. 西伯이 이제 괴외시니(鳳聲亦悠悠)「鳳凰臺」〈두시 17:1ㄱ〉.
뎌 뫼 주024)
뎌 뫼
저 산을. 뎌 뫼ㅎ+. ‘뫼ㅎ’은 ‘ㅎ’말음체언이다.
迷失니라 주025)
미실(迷失)니라
미실하니라. 미실한다. ‘미실(迷失)하다’는 국어사전에 ‘정신이 어지럽고 혼미하여서 어떠한 일을 잘못하다’로 되어 있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건표천지활 예절고금미【‘건표(建標)’는 수계(須溪)가 말하기를 ‘입주(立柱)’와 같다 하니, ‘지절(持節)’과 유사한 뜻이다.】
【언해역】 천지(天地) 넓은 데 표지(標識)를 세우니, 나아가는 이 끊어져 옛날과 지금 저 산을 미실(迷失)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천지 드넓은 곳에 표를 세우고, 고금의 잘 모르는 곳까지 가고 싶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큰 포부를 말한 것이다.

氣得神仙 주026)
신선(神仙)
신화(神話)와 전설(傳說)에 나오는 인물. 초인적인 은력을 지녔다고 한다. 세상을 초탈(超脫)하여 장생불사(長生不老)하였다.
恩承雨露低 주026_1)
*〈중간본〉에는 ‘㤙承雨露低’와 ‘承天子之㤙也ㅣ라’로 되어 있다.
【言垍ㅣ 禀此山英靈之氣야 以生而供奉 주027)
공봉(供奉)
제왕(帝王)을 위해 특별히 공헌하는 것.
翰林 주028)
한림(翰林)
①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관직 이름으로, 옛날에 깃(羽翰)을 붓으로 썼기 때문에 필(筆)을 한이라 했다. 한림(翰林)이란 문한(文翰)이 마치 수풀처럼 많다는 말이다. ②문한(文翰)을 맡은 관원. 고려 후기와 조선에서는 예문관(藝文館)의 공봉(供奉)․봉교(奉敎) 이하의 관원을 한림이라 통칭했다. 한(翰)은 새의 깃, 곧 붓을 뜻하고, 임(林)은 무리로 많이 모인 것을 뜻한다. 관제(官制)로는 당대(唐代) 처음에 한림원(翰林院)을 두고 문사(文詞)․경학(經學)에 능통한 선비를 모아 학문을 연구하며 내정(內廷)에 이바지하게 했고, 현종(玄宗) 때에 비답(批答) 등 문서를 입안(立案)하게 하고 한림대조(翰林待詔)라 했다가 한림공봉(翰林供奉),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으로 고쳤다. 그 뒤로 한림관의 제도는 계속되었고, 신라에도 한림이라는 벼슬이 있었으며, 고려에서도 원봉성(元鳳省)과 학사원(學士院), 한림원(翰林院), 예문관(藝文館) 등의 이름으로 관부(官府)를 두어 사명(詞命)을 짓고 출납하는 일을 맡겼는데 한림학사 등의 벼슬이 있었다. 고려 후기에 있어서 한림이라 함은 예문관 사관(史館)과 합쳐서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이라고 한 때도 있고, 한림원이라 한 때도 있음. 예문관의 공봉과 수찬(修撰), 주부(主簿), 검열(檢閱) 등의 통칭이며, 조선 초기에 고려 관제를 따랐다가 고친 이후 예문관의 봉교와 대교(待敎), 검열 등을 한림이라 했다. 『조선어사전』에 “검열의 별칭” 『대전회통』에 “예문관 검열에 피선(被選)하여 배명(拜命)한 자.”, 『국어사전』 등에 “이조 때 예문관 검열의 별칭”, “예문관 검열을 예스럽게 일컫는 말” 등으로 풀이했는데, 검열을 한림이라 할 수 있지만 한림이 검열만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는 둘 다의 뜻으로 쓰였다.
야 承天子之恩也ㅣ라 주028_1)
*〈중간본〉에는 ‘㤙承雨露低’와 ‘承天子之㤙也ㅣ라’로 되어 있다.

氣運이 神仙의 주029)
신선(神仙)의
신선이. 후행하는 ‘아라호’의 의미상 주어이다.
아라호 주030)
아라호
아스라함을. 아라-+오+ㅁ+. 『두시언해』에는 ‘아라다’는 물론 파생부사 ‘아라히’가 많이 쓰였다. ‘아라히’에는 ‘蒼茫, 蒼蒼, 遙, 莽, 眇眇, 杳’ 등이 주로 대응되었고, ‘아라다’에는 ‘邈, 茫茫, 滄茫, 迥, 眇冥, 渺, 緲, 蒼蒼, 淼茫’ 등이 주로 대응되었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아라호’로 되어 있다. ¶아라 請 업슨 므를 보라〈금삼 2:40ㄱ〉. 聖賢ㅅ 일후미 오라 아라니 나그내로 뇨매 病이 마다 보차놋다(聖賢名古邈 羈旅病年侵)「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3ㄴ〉.
得니 恩惠 주030_1)
*〈중간본〉에는 ‘㤙惠’로 되어 있다.
雨露ㅣ 호 주031)
호
은혜는 황은(皇恩)의 나직함을 받았다라는 뜻이다.
주032)
호
나직함을. #-+오+ㅁ+.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謙遜 辭讓야  씨라〈월석 23:31ㄴ〉. 惣戎 큰 體 두워고 降服 將軍  마 미놋다(惣戎存大體 降將飾卑詞)「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받놋다 주033)
받놋다
받드는구나. 받-+++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天神이 바블 받거늘〈석상 3:38ㄱ〉. 圖로 님금 받곡 鳳로 큰 道理 드리웍(圖以奉至尊 鳳以垂鴻猷)「鳳凰臺」〈두시 17:2ㄱ〉.

【한자음】 기득신선형 은승우로저【장기(게)가 이 산의 영령한 기운을 받아 태어나 한림(翰林)에서 벼슬을 하여 천자의 은혜를 입었음을 말한다.】
【언해역】 기운이 신선의 아스라함을 얻으니, 은혜를 우로(雨露)가 나직함을 받는구나!
*시 구절 해석 : “기운이 신선의 아스라함을 얻었고, 은혜가 우로(雨露)가 나직함을 받들었네”라는 뜻으로, 장기가 공주의 부마가 된 것을 가리킨다. “恩惠 雨露ㅣ 호 받놋다”라는 ‘은혜로 말할 것 같으면 우로(雨露) 즉 황제의 은혜를 받았다’는 뜻이다. 즉 ‘雨露ㅣ’의 ‘ㅣ’는 주격이 아니라 관형격이다. 이 구절에는 ‘장기가 장균 등과 같이 보선동(寶仙洞)에 가서 진부(眞符)를 얻은 것을 가리킨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설도 있다.

相門清議衆 儒術大名齊【張垍 張說 주034)
장열(張說)
667~731. 당나라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 선조는 범양(范陽) 사람이고, 하동(河東)에 살았다. 자는 도제(道濟) 또는 열지(說之)다. 무측천(武則天) 때 응조(應詔)하여 태자교서(太子校書)에 임명되었다. 중종(中宗) 때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었고, 예종(睿宗) 때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어 예종에게 태자 이융기(李隆基)에게 국사를 감독하게 할 것을 권했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초에 중서령(中書令)에 오르고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졌다. 나중에 병부상서와 동중서문하삼품을 역임하고, 삭방군절도사(朔方軍節度使)를 겸임했다. 변방의 병사 20여 만 명을 없애고, 또 부병(府兵)이 많이 도주했으니 당번위사(當番衛士)를 없애고 병사를 모아 숙위(宿衛)에 충당할 것을 주청했다. 다시 중서령을 겸임하고 수국사(修國史)에 올라 여정서원(麗正書院)의 일을 맡았다. 문사(文辭)에 뛰어나 조정의 중요한 문건이 대개 그의 손에서 나왔다.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과 함께 연허대수필(燕許大手筆)로 불렸다. 이임보(李林甫)의 제제를 받아 재상에서 파직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문집이 있다.
之子ㅣ니 說이 在中書而垍與兄均으로 皆掌絲綸之任니라】

宰相의 家門에  주035)

맑은. -[淡]+.
議論이 하니 주036)
하니
많으니. 하-[多]+니.
션 주037)
션
선비의. 션+∅.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참조; 션븨.
術業 주038)
술업(術業)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술(醫術), 점복(占卜), 통역(通譯), 역산(曆算) 등의 잡류(雜類)의 기술업(技術業)이나 잡업(雜業). 여기서는 유술(儒術)의 지식을 가리킨다.
은 큰 일훔과 주039)
일훔과
이름과. 일훔[名]+과.
도다 주040)
도다
가지런하도다. #-+도+다. ¶- : 니 오 시고 샤 녜 光明이 겨시며〈석상 21:46ㄴ〉. 峽ㅅ 안햇 雲安ㅅ 올  樓에 폇 디새 도다(峽裏雲安縣 江樓翼瓦齊)「子規」〈두시 17:17ㄴ〉.

【한자음】 상문청의중 유술대명제【장기(張垍)는 장열(張說)의 아들이니, 장열은 중서성(中書省)에 있었고 장기는 형 장균(張均) 주041)
## 장균(張均)
?~?. 당나라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 장열(張說)의 아들이다. 현존 개원(開元) 4년(716) 진사가 되었다. 천보(天寶) 중에 거듭 승진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과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했다. 나중에 건안태수(建安太守)로 쫓겨났다가 대리경(大理卿)으로 옮겼다. 안녹산(安祿山)에게 억지로 중서령(中書令) 임명을 받았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죽음을 면하고 합포(合浦)로 유배되었다. 문집이 전한다.
과 함께 모두 사륜(絲綸)을 관장하는 직임에 있었다.】
【언해역】 재상의 가문에 맑은 의론(議論)이 많으니, 선비의 술업(術業)은 큰 이름과 가지런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재상의 가문에 맑은 논의가 많으니, 선비의 술업은 큰 명성과 나란하다.”라는 뜻으로, 장기 집안의 명망과 학문이 남다른 것을 칭송한 말이다.

軒冕 주042)
헌면(軒冕)
옛날에 대부 이상 관원들이 타던 수레와 입은 면복(冕服). 흔히 고관(高官)이나 관직을 통칭하여 이르기도 한다.
天闕 주043)
천궐(天闕)
①천상(天上)에 있는 궁궐(宮闕). ②천자(天子)의 궁궐. 그리하여 조정(朝廷) 또는 경도(京都)를 가리킨다. ③두 봉우리가 대치(對峙)하고 있는 곳. 그 모습이 쌍궐(雙闕)과 닮아 이렇게 불린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琳琅 주044)
임랑(琳琅)
아름다운 옥의 일종. 또는 구슬이 부딪치는 듯한 맑은 목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름다움 시문(詩文)을 칭송하는 말로 쓰인다.
識介珪介珪 주045)
개규(介珪)
대규(大圭).
大珪 주046)
대규(大珪)
패옥(佩玉). 정자(丁字) 모양을 하고 있고 용도는 홀(笏)과 같은데, 요대(腰帶) 사이에 끼워두었다가 이를 기록해 비망(備忘)에 썼다. 홀(笏) : 천자(天子) 이하 공경사대부(公卿士大夫)가 조복(朝服), 제복(祭服), 공복(公服) 차림을 했을 때 손에 쥐는 작은 판(板). 그 신분에 따라 1품부터 4품까지의 관원은 상아(象牙)로 만든 아홀(牙笏)을, 5품 아래로는 나무로 만든 목홀(木笏)을 손에 쥐었다.
ㅣ니 比垍다】

술위 주047)
술위
수레.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 3:6ㄴ〉. 蕭育의  술위 便安히 定止 몯얏도소니 蜀로 가 使者 려 어드러 가니오(蕭車安不定 蜀使下何之)「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ㄴ〉.
고 주048)
고
타고. -[乘]+고.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내 그저긔 六牙白象王 고 굴근 菩薩衆과로 그 고대 가〈석상 21:52ㄴ〉.  알 보논 이제와 녜왓 드로 江漢애  가논  노라(眼前今古意 江漢一歸舟)「懷灞上遊」〈두시 3:39ㄱ〉.
주049)
쓴. 스-[冠]+ㄴ. ‘모자를 쓰다’의 ‘쓰다’는 15세기 국어에서는 ‘다’로 표기되지만 병서 표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두시언해』에서는 ‘스다’로 표기되었다. ¶五分律中에 나모 바리 면 偸蘭罪 犯리라〈월석 25:55ㄱ〉. 남진 겨지븨 오 고 겨지븐 남지늬 오  디니〈구급방 상:16ㄱ〉. 紗帽 스고 며기 조차 와 져근  이 亭子애 요라(紗帽隨鷗鳥 扁舟繫此亭)「泊松滋江亭」〈두시 14:38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4ㄱ

사미 주050)
사미
사람이. 사+이.
하 주051)
하
하늘의. 하[天]+ㅅ. 『두시언해』 권19에는 ‘하’이 ‘하’〈두시 19:17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15세기 국어에서 ‘짓, 픗’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宮闕에 버럿건마 주052)
버럿건마
벌어져 있지마는. 벌-[列]+어#잇-+거+ㄴ마.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벌- : 두 鐵圍山  어드 해地獄이 버러 잇니라〈월석 1:28ㄴ〉. 森然히 버러 地軸이 올맷고(森羅移地軸)「冬日 ··· 帝廟」〈두시 6:27ㄴ〉.
구슬 서리예 주053)
서리예
사이에. 서리[間]+예. ¶野人ㅅ 서리예 가샤 野人이 외어늘〈용가 5〉. 差池히 組冕 화 니 다봇 서리예셔 니러나니(差池分組冕 合沓起蒿萊)「秋日 ··· 三十韻」〈두시 3:10ㄱ〉.
큰 珪를 아라볼 주054)
아라볼
알아볼. 알-[知]+아#보-+ㄹ.
거시라 주055)
거시라
것이다. 것-+이+라.

【한자음】 헌면라천궐 임랑식개규【‘개규(介珪)’는 대규(大珪)니 장기(張垍)를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수레 타고 헌면(軒冕) 쓴 사람이 하늘 궁궐에 벌려 있지마는, 구슬 사이에 큰 규(珪)를 알아볼 것이구나!
(##구절풀이) *〈중간본〉과 〈초간본〉의 장차 위치가 다르다.
*시 구절 해석 : “헌면 쓴 사람이 하늘 궁궐에 벌려 있고, 구슬 서리에 큰 규를 알아볼 것이다.”라는 뜻으로, 많은 관원들이 궁궐에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장기의 자세는 돋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伶官詩必誦 夔樂典猶 주056)
계(稽)
조사하다. 확인하다.
伶官 주057)
영관(伶官)
악관(樂官). 음악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악관(樂官)을 달리 일컫는 말. 본래 대대로 영씨(伶氏)가 악관이 되어 뛰어난 솜씨를 보였으므로 ‘영관’을 악관과 동의어로 쓴 데서 비롯했다.
樂官 주058)
악관(樂官)
문자대로 풀이하면 음악을 관장하는 관리. 하지만 악관이 문관(文官) 출신인지, 아니면 악공(樂工) 출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라 書예 주058_1)
*〈중간본〉에는 ‘書에’로 되어 있다.
后夔 주059)
후직(后夔)
?~?. 주왕조(周王朝)의 전설적 시조. 농경신(農耕神)으로, 오곡(五穀)의 신이기도 하다. 성(姓)은 희(姬)씨고, 이름은 기(棄)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記)에 따르면 유태씨(有邰氏)의 딸로 제곡(帝嚳)의 아내가 된 강원(姜原)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感生說話]고 한다. 그것이 불길하다 하여 세 차례나 내다버렸지만 그때마다 구조되었다[棄子說話]고 한다. 나중에 요제(堯帝)의 농관(農官)이 되고 태(邰, 陝西省 武功縣 부근)에 책봉되어 후직이 되었다.
ㅣ 典樂니 太常𡖖은 掌樂故로 云다】

伶官 그를 주060)
그를
글을. 글[書]+을.
반기 주061)
반기
반드시. 반+이. ‘반기’는 ‘반’과 부사화접미사 ‘-이’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 ‘반’은 그 자체로는 쓰인 용례가 없으나 ‘반다, 반반’ 등으로 쓰인 용례가 확인된다. ¶반- : 方正은 모나미 반 씨오〈월석 2:41ㄴ〉. 반반기 : 반반기 프르며 누르닐 니라〈금삼 4:21ㄱ〉. 반기 : 正音은 正 소리니 우리 나랏 마 正히 반기 올히 쓰논 그릴 일후믈 正音이라 니라〈월석 1:석보상절 서5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외오며 주062)
외오며
외우며. 외오-[誦]+며. ¶和尙 갓가 이셔 외오다 논 마리니〈석상 6:10ㄱ〉. 老夫의 詩 외오더니라(誦得老夫詩)「得舍弟消息」〈두시 8:47ㄱ〉.
虁樂앳 法을 주063)
기악(虁樂)앳 법(法)을
기(虁)의 음악의 법을.
오히려 주064)
오히려
오히려. 오히[同]+려. ‘-려’는 부사화접미사로 ‘새려’ 등에서 용례를 볼 수 있다. 원문의 ‘猶’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오히려’는 주로 ‘尙, 猶’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猶’의 번역으로 쓰인 ‘’는 ‘아직’, ‘지금도 역시’의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히려 : 비록 새려 더 修補호미 업스나 오히려 그 위 두워 딕히우며(雖無新增修 尙置官居守)「九成宮」〈두시 6:2ㄴ〉.
마초놋다 주065)
마초놋다
맞게 하는구나. 맞추어 하는구나. 맞-+호+++오+ㅅ+다. 원문의 ‘稽’의 번역으로 쓰였다. ‘마초-’는 ‘맞-’과 사동접미사 ‘-호-’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사동사이며 여기에 다시 강세접미사 ‘--’가 결합되어 생성된 단어이다. 강세접미사 ‘--’가 쓰인 낱맡로는 ‘거슬-, 저리-’ 등이 있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詳考 子細히 마초 알 씨라〈석상 9:38ㄴ〉. 證信은 마초 信케  시오〈원각 상1-2:23ㄱ〉. 東岳ㅅ 中에 가 글 닐거 열  墳典 마초니라(讀書東岳中 十載考墳典)「故秘 ··· 源明」〈두시 24:32ㄱ〉. -- : 詳考 子細히 마초 알 씨라〈석상 9:38ㄴ〉. 證 마초 〈훈몽 하:12ㄴ〉. 逆은〈두시 11:40ㄱ〉 거슬 씨라〈법화 2:167ㄴ〉. 저리며 키 울어 五白 블로니(憑陵大叫呼五白)「今夕行」〈두시 11:39ㄴ〉.

【한자음】 영관시필송 기악전유계【‘영관(伶官)’은 악관(樂官)이다. 『서경(書經)』에, “후직(后夔)이 음악을 맡으니 태상경(太常𡖖)은 음악을 관장했다.”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언해역】 영관(伶官)의 글을 반드시 외우며, 기(虁)의 음악의 법을 오히려 맞추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영관이 시를 읊으면 반드시 그를 외울 것이고, 기의 음악이 맡으면 오히려 고개 조아린다.”라는 뜻으로, 장기가 조정에서 일을 하면 위세를 노래하고 업적이 음악에 올려질 것이라는 말이다.

健筆凌鸚鵡 銛鋒瑩鷿鵜 주066)
벽제(鷿鵜)
물새[水鳥] 이름. 속칭 유압(油鴨)으로 불린다. 오리와 닮았지만 조금 작다. 잠수(潛水)를 잘한다. 옛 사람들은 그 기름을 칼날에 발라 녹스는 것을 막았다.
禰𢖍 주067)
예형(禰衡)
173~198. 후한 말기 평원(平原) 반현(般縣) 사람. 자는 정평(正平)이다. 젊었을 때부터 말주변이 있었고, 성격이 강직하면서 오만했다. 오직 공융(孔融), 양수(楊修)와만 마음을 터놓고 사귀었다. 공융이 그의 재능을 아껴 여러 차례 조조(曹操) 앞에서 칭송했다. 조조가 만나려고 불렀지만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조조가 불러 고사(鼓史)로 삼아 빈객(賓客)들을 불러 모으고 그를 욕보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모욕을 당했다. 조조가 노하여 형주에 사신으로 보내 유표(劉表)의 손을 빌려 그를 죽이려 했다. 유표를 만나 비난의 말을 퍼 붇자 기분 나쁘게 여긴 유표는 그를 강하태수 황조(黃祖)에게 보냈다. 결국 욱하는 성격의 황조를 욕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작품에 〈앵무부(鸚鵡賦)〉가 있다.
이 作鸚鵡賦호 주067_1)
*〈중간본〉에는 ‘鸚鵡賦’로 되어 있다.
筆不停輟니라 鷿鵜 水鳥ㅣ니 其膏ㅣ 瑩刀니라 此 羙垍之作文이 健敏也ㅣ라】

健壯 부든 주068)
부든
붓은. 붇[筆]+은.
鸚鵡賦를 凌犯고 주069)
능범(凌犯)고
초월하고. 凌犯#-+고. ‘능범(凌犯)하다’의 국어사전 뜻풀이는 ‘무리하게 침범하다’이나 여기서는 ‘능가하다, 초월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카온 주070)
카온
날카로운. ㅎ#갑+오+ㄴ. ‘ㅎ’에 형용사 파생접미사 ‘-갑-’이 결합되어 어간 ‘캅-’이 형성되었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諸根이 聰明코 카 智慧며 해 드러〈석상 9:16ㄴ〉. 구든 甲 닙고 카온 兵器 자바 西極 티니 崑崙 月窟이 東녀긔 노팻더라(被堅執銳略西極 崑侖月窟東嶄巖)「魏將軍歌」〈두시 5:38ㄱ〉.
갌 주071)
갌
칼의 날을. 칼날을. 갈[刀]+ㅅ+ㅎ[刃]+. ¶光明이 빗나 싁싁야 어루 그 갌 犯티 몯호미 니〈금삼 5:48ㄱ〉. 되  大宛 나랏 일훔난 거시니 갈 모  여윈  이럿도다(胡馬大宛名 鋒稜瘦骨成)「房兵曹胡馬詩」〈두시 17:34ㄴ〉.
鷿鵜 기르로 주072)
기르로
기름으로. 기름[油]+로. 원래의 ‘기로로’에서 교정된 것이다.
빗나게 주073)
빗나게
빛나게. 빛[光]#나-+게. ¶히 여위실  金色光 더옥 빗나더시다〈석상 3:39ㄴ〉.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 빗나 흐르 벼리 솟  도다(回回偃飛盖 熠熠迸流星)「揚旗」〈두시 5:48ㄱ〉.
도다 주074)
도다
듯하도다. #-+도+다. ‘도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도다’도 두루 쓰였다. ¶도다 : 이브로 닐오미 입 버운 도다〈금삼 5:4ㄱ〉. 나 도랏 羹애 라기도 섯디 아니야도 便安히 너기노니 너희 구스리 보 외요미 貴 도다(吾安藜不糝 汝貴玉爲琛)「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ㄴ〉. 도다 : 벼리 돌며 서리 오매 가 새 改變니 몸과 世間ㅅ 이  야지 리 가 도다(星霜玄鳥變 身世白駒催)「秋日 ··· 三十韻」〈두시 3:7ㄴ〉.  펴 톼 아다이 웃고 放逸 바 톼 리 녀 도다(披顏爭倩倩 逸足競駸駸)「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8ㄱ〉.

【한자음】 건필릉앵무 섬봉형벽제【예형(禰𢖍)이 ‘앵무부(鸚鵡賦)’를 지을 때 붓이 멈추거나 거두지 않았다. ‘벽제(鷿鵜)’는 물새니, 그 기름이 칼날을 빛나게 한다. 이것은 장기가 지은 글이 굳세고 재빠르다는 칭송이다.】
【언해역】 건장한 붓은 앵무부(鸚鵡賦)를 능범(凌犯)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논병아리 기름으로 빛나게 한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건장한 붓은 〈앵무부〉를 넘어서고, 날카로운 칼날은 벽제 기름으로 빛나게 하는구나.”라는 뜻으로, 장기가 문무(文武)를 겸비했음을 말한다.

友于 주075)
우우(友于)
형제간의 사이가 좋은 것.
皆挺拔 公望各端倪 주076)
단예(端倪)
단(端)은 시작이라는 의미이고, 예(倪)는 끝, 경계란 뜻으로, 일의 처음과 끝. 일의 본말(本末)과 시종(始終). 멀리 보면 公의 실마리가 보인다. “공경이 될 명망이 각자에게 실마리가 있다.”라는 뜻이다.
【友于 言兄弟也ㅣ라 垍均兄弟ㅣ 負公輔 주077)
공보(公輔)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인 삼공(三公)과 사보(四輔). 삼공은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 또는 승상(丞相)과 태위(太尉), 어사대부(御史大夫), 또는 대사마(大司馬)와 대사공(大司空), 대사도(大司徒), 또는 태위와 사공(司空), 사도(司徒)를 말한다.
之望야 各有所歸也ㅣ라】

兄弟ㅣ 다 혀냇건마 주078)
혀냇건마
빼어나 있건만. 혀나-아#잇-+거+ㄴ마. ‘혀나-’는 ‘빼어나다’의 뜻과 ‘빼다’의 뜻이 있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빼어나다) : 圓頓敎法 키 甚히 즈르고 혀나 人情에 갓갑디 아니 人情 업다 니시니〈남명 하:38ㄴ〉. 내 너교 〈두시 19:2ㄱ〉 모 혀나 조로왼 路津에 올아셔 님금을 堯舜ㅅ 우희 닐위이곡(自謂頗挺出 立登要路津)「奉贈韋 ··· 二十二韻」〈두시 19:2ㄱ〉. (빼다) : 艱難 예 모 혀나 누늘  도 보놋다(挺身艱難際 張目視寇讐)「送韋 ··· 判官」〈두시 22:37ㄱ〉. -ㄴ마 : 對答 표미  얀마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석상 3:18ㄱ〉. 司直은 冗雜 벼스리 아니언마 거츤 뫼헤 甚히 興趣 업도다(司直非冗官 荒山甚無趣)「送高 ··· 閬州」〈두시 22:39ㄴ〉.
公輔외와뎌 주079)
공보(公輔)외와뎌
공보가 되고 싶어. 공보(公輔)+외-+오+아#디-+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뎌’는 『두시언해』에서는 내포문어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국어에서 ‘-어지다’로 변화한 ‘믈어뎌〈두시 6:2ㄴ〉, 러뎌〈두시 8:65ㄴ〉, 아뎌〈두시 9:32ㄴ〉, 업더뎌〈두시 5:36ㄴ〉, 이저뎌〈두시 3:72ㄱ〉’ 등과는 다른 형태이다. ¶외와디- : 親友ㅣ 외와뎌 願시니라〈영가 하:142ㄱ〉. 외와라 : 이제 出家 사미 외와라〈석상 3:32ㄱ〉. 부텻 恩惠 갑오 마 得호미 외와라 다다〈법화 2:251ㄱ〉. -어뎌(내포문어미) : 나라해셔 모로매 사호 行홀 디어니와 사 戈鋋을 그치시과뎌 놋다(國須行戰伐 人憶止戈鋋)「秋日 ··· 一百韻」〈두시 20:4ㄱ〉. 지븨 이셔셔 녜 일 닐오 나랏 일 시름야  가멸와뎌 願다(在家常早起 憂國願年豐)「吾宗」〈두시 8:52ㄱ〉.
라오 주080)
라오
바람은. 라-[願]+오+ㅁ+. 15세기 국어의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용법으로 쓰였다. ¶(바라보다) :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석상 3:8ㄱ〉. 須達이 라고 몯내 과 호〈석상 6:20ㄴ〉. 기리 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리고져 고  디위 라셔 西夷 거더 리고져 노라(長吁飜北寇 一望卷西夷)「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4ㄱ〉. (원하다) : 열 리 거늘 라샤 아 나하 나랏 位 닛긔 코져 더시니〈석상 11:30ㄴ〉.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석보상절 서6ㄱ〉. 누니 게 라오믈 디  當호니 미 주그니   노햇 도다(眼穿當落日 心死著寒灰)「喜達行在所三首」〈두시 5:3ㄱ〉.
제여곰 주081)
제여곰
제각각. 제+여+곰. ¶品은 난호아 제여곰 낼 씨라〈석상 13:36ㄴ〉. 平 몰애예 一萬 帳幕이 버렛니 部伍ㅣ 제여곰 블로 뵈다(平沙列萬幕 部伍各見招)「後出塞五首」〈두시 5:31ㄱ〉.
그티 주082)
그티
끝이. 긑[端]+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4ㄴ

잇니라 주083)
잇니라
있구나. 있느니라. 잇-[有]++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우우개정발 공망각단예【‘우우(友于)’는 형제를 말한다. 장기(張垍)와 장균(張垍均) 형제가 공보(公輔)의 명망을 입어 각자 돌아갈 바가 있었다.】
【언해역】 형제가 다 빼어나 있지마는, 공보(公輔) 되고자 바라봄은 각각 끝이 있구나!
(##구절풀이) *〈중간본〉과 〈초간본〉의 장차 위치가 다르다.
*시 구절 해석 : “형제가 모두 뽑혀 나왔지만, 공보가 되는 것은 각자 시작과 끝이 있다.”라는 뜻으로, 두 형제가 모두 조정에 불려왔지만, 각자 맡아야 할 벼슬은 다르다는 말이다.

通籍 주084)
통적(通籍)
①문적(門籍)이나 명패(名牌)에 성명, 연령 등을 적어 궁문(宮門)의 출입을 허가해 주던 일. ②관적(官籍)에 오름. 또는 관적에 오른 관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靑瑣 주085)
청쇄(靑瑣)
황궁(皇宮)의 문이나 창을 장식하는 둥근 화문(花紋).
亨衢 주086)
형구(亨衢)
사통팔달(四通八達)한 큰 길.
紫泥 주087)
자니(紫泥)
①자주(紫朱)빛 인주(印朱). 옛날 무도(武都)에서 나는 자줏(紫朱)빛 진흙으로, 조서(詔書)를 봉(封)하는 데 썼다. ②조서(詔書).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通籍은 二尺竹牒에 記年紀名字物色야 懸宫門야 案驗 주088)
안험(案驗)
자세히 조사하여 증거를 세움. 안(案)은 죄과(罪科)를 규찰하거나, 조사하여 증거를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相應이어든 得入니라 紫泥 天子ㅅ 信璽 주089)
신새(信璽)
옛날 황제(皇帝)의 새인(璽印)의 하나.
 皆以武都ㅅ 紫泥로 封니 言垍의 所行之途애 紫泥ㅣ 光照也ㅣ라】

籍을 주090)
적(籍)을
통행증을. 통적(通籍)을. 籍+을.
通야 靑瑣門 주091)
청쇄문(靑瑣門)
한(漢)나라 때의 궁문(宮門) 이름.
나마드니 주092)
나마드니
넘나드니. 남-+아#들-++니. ‘나마들-’은 『두시언해』의 이 용례만 보인다. ‘남-’과 ‘-넘-’은 『두시언해』에서 둘 다 쓰였다. 〈중간본〉에는 ‘너마드니’로 되어 있다. ¶남다 : 王이 곧 버힌대  져지 소소 노 丈이 남고 王 도 제 러디니라〈남명 상:53ㄴ〉. 들- : 旃檀香 모매 면 브레 들오도 브리 몯 며〈월석 1:26ㄴ〉. 참조; 나마 : 世間 리시고 城 나마 逃亡샤 車匿이 돌아 보내샤 盟誓샤〈석상 6:4ㄴ〉. 되 올젯 드트리 太行ㅅ 뫼 나마 여러 種類ㅣ 셔울 니르러 오다(胡塵踰太行 雜種抵京室)「留花門」〈중간두시 4:14ㄱ〉. 넘다 : 새뱃 비치 져기 번거든 가야 西南ㅅ 묏그틀 너머 가리라(晨光稍朦朧 更越西南頂)「西枝村尋置草堂地夜宿贊公土室二首」〈두시 9:15ㄱ〉.
훤 주093)
훤
훤한. 훤#-+ㄴ. 『두시언해』에서 ‘훤-’는 주로 ‘闊’의 번역으로 쓰였다. 참조; 훤히. ¶훤- : 예 미처 險阻ㅣ 다 업스니 비르서 드르히 훤호 깃노라(及茲險阻盡 始喜原野闊)「鹿頭山」〈중간두시 1:36ㄱ〉. 여가 어즈러운 世 平와 서르 뵈아  번  님 正히 답답신  훤케 려뇨(走平亂世相催促 一豁明主正鬱陶)「久雨 ··· 不至」〈두시 5:37ㄱ〉.
길헨 주094)
길헨
길엔. 길ㅎ+에+ㄴ.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블근 주095)
블근
붉은. 븕-[紅]+은.
기 주096)
기
흙이. [壤]+이.
비취옛도다 주097)
비취옛도다
비추고 있도다. 비취-[照]+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光明이 두루 비취더시니〈석상 3:21ㄱ〉. 峽엣 구루믄 長常 바 비취옛고 맷  마초아 과 兼얏도다(峽雲常照夜 江月會兼風)「獨坐二首」〈두시 3:42ㄱ〉.

【한자음】 통적유청쇄 형구조자니【‘통적(通籍)’은 2척 죽첩(竹牒)에 해와 이름, 자, 물색을 기록하여 궁문에 걸어두는데, 실제를 살펴 서로 맞으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자니(紫泥)’는 천자의 신새(信璽)를 모두 무도(武都)의 보랏빛 진흙으로 봉하는 것이니, 장기가 가는 길에 자니의 빛이 비춘다는 말이다.】
【언해역】 적(籍)을 통하여 청쇄문(靑瑣門)에 넘나드니, 훤한 길엔 붉은 흙이 비추고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적을 통하여 청쇄문을 넘어드나니, 훤한 길에는 붉은 진흙이 비치었다.”라는 뜻으로, 궁궐로 들어와 관리가 되니 천자로부터 봉함을 받았다는 말이다.

靈虬傳夕箭 歸馬散霜蹄靈虬 주098)
영규(靈虬)
각루(刻漏, 물시계) 위에 용 모양으로 새긴 장식물(裝飾物). 그리하여 각루(刻漏)를 가리키게 되었다.
 言刻漏 주099)
각루(刻漏)
물시계. 밑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은 누호(漏壺)라는 그릇 안에 눈금을 잘게 새긴 누전(漏箭)을 세우고 물이 새서 줄어드는 정도를 통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누수기(漏水器). 자격루(自擊漏).
之體 以龍으로 承之也ㅣ라 箭 漏箭也ㅣ니 言垍ㅣ 當夕야 騎馬還家也ㅣ라】

靈 龍이 나죗 주100)
나죗
저녁의. 나죄[夕]+ㅅ. 참조; 나조ㅎ.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가 둘 다 쓰였다. 후자는 ‘낮’의 의미도 있었다.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나죄 : 孔聖이 나죄 주구믈 히 너기니〈월석 18:32ㄱ〉. 다가 내 이 佛頂光聚般怛囉呪 닐뎬 아 브터 나죄 니르리 音聲이 서르 니며〈능엄 7:44ㄱ〉.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나조ㅎ : 孔聖도 나조 주구믈 히 너기샤미〈석상 20:12ㄱ〉. 孔子ㅣ 니샤 아 道理 드르면 나조 주거도 리라 시니라〈석상 20:13ㄱ〉.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사 주101)
사
화살을. 살[箭]+.
옮기거든 주102)
옮기거든
옮기면. 옮-+기+거+든. ¶옮- : 文殊師利여 내 이 이셔 년 듸 옮디 아니호리니〈석상 11:29ㄴ〉. 다봇 옮 호매 시르미 悄悄니 藥 行호매 病이 涔涔놋다(轉蓬憂悄悄 行藥病涔涔)「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옮기- : 주를 다  옮겨 터 되더니〈석상 6:36ㄴ〉. 늘근 나해 기로 술 비주믈 뵈아고  비옌 가야 橙子 옮겨 심고라(衰年催釀黍 細雨更移橙)「遣意二首」〈두시 3:25ㄴ-26ㄱ〉.
도라오 주103)
도라오
돌아오는. 돌-+아#오-+.
리 주104)
리
말이. +이.
서리  주105)

밟는. -[踏]+.
바 주106)
바
발을. 발[足]+을.
흗놋다 주107)
흗놋다
흩뜨리구나. 흗-[散]++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영규전석전 귀마산상제【‘영규(靈虬)’는 각루(刻漏)의 모양을 용으로 이은 것이다. ‘전(箭)’은 누전(漏箭)이니, 정기가 저녁이 되어 말을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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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역】 신령한 용이 저녁의 화살을 옮기면, 돌아오는 말이 서리 밟는 발을 흩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신령한 용이 저녁 화살을 옮기거든, 돌아오는 말이 서리 밟는 발을 흩어놓는다.”라는 뜻으로,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면 퇴궐하고 귀가한다는 말이다.

能事聞重譯 嘉謨 주108)
가모(嘉謨)
고명(高明)한 경국(經國)의 모략(謀略).
及遠黎【言垍의 所能之事ㅣ 聞播重譯 주109)
중역(重譯)
말이 통하지 않아 여러 번 옮겨 번역하는 것. 옛날 주(周)나라 때 월상(越裳)이라는 나라에서 백치(白雉)가 나오자 서장(書狀)을 몇 번 번역하여 이를 바친 고사(故事)에 근거하여, 주로 번방국(藩邦國)에서 사대(事大)하는 나라에 조회(朝會)하거나 진공(進貢)하는 것을 가리킨다.
蠻夷 주110)
만이(蠻夷)
만이(蠻彛). 옛날 사방 변방의 먼 지구에 사는 소수민족(少數民族)을 총칭하는 말. 또한 주로 남방(南方)의 소수민족을 가리킨다.
며 其所謨猷ㅣ 及逺方之民也ㅣ라】

能 이리 주111)
이리
일이. 일+이.
重譯 해 주112)
중역(重譯) 해
중역하는 땅에. 중역하는 곳에. 重譯#-+ ㅎ+애. 당나라가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한족의 지배 영역에 들어 있지 않는 곳은 중역(重譯)이 필요했음을 이 한 구절로 알 수 있다. ‘ㅎ’는 ‘ㅎ’말음체언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5ㄱ

들이니 주113)
들이니
들리니. 듣-[聞]+이(피동)++니. ¶들이다(피동) : 太子ㅣ 소로 눌러 지샤 시울  소리 잣 안히 다 들이더라〈석상 3:14ㄱ〉. 들이다(사동) : 일후믈 간 들이시면 뎌셔 주거 도로 人間애 나아〈석상 9:15ㄱ〉. 약 야 먹곡 내 將 늘거셔 아 여곰 들이디 아니호리라(採藥吾將老 童兒未遣聞)「秦州雜詩十七首」〈두시 13:41ㄴ〉.
아다온 주114)
아다온
아름다운. 아#답-+은. ¶美 아다 씨니〈석상 13:9ㄱ〉. 됴커나 굿거나 아답거나 아답디 아니커나〈석상 19:20ㄱ〉. 내 사미론 디 性이 偏僻야 아다온 긋 句를 耽야 말 사미 놀라디 아니리어든 주거도 마디 아니다니(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江上 ··· 短述」〈두시 3:31ㄱ〉.
 주115)

꾀는. 계책은. [策]+.
百姓의게 주116)
백성(百姓)의게
백성에게. 百姓+의게.
미처 주117)
미처
미쳐. 및-[及]+어. ¶이러 種種앳 거스로 供養도 몯 미치리며〈석상 20:11ㄱ〉. 노 양 오히려 사 조차 오니 예 미치와셔 이리 란 冥寬之理 嗟嘆노라(突兀猶趁人 及茲嘆冥莫)「靑陽峽」〈중간두시 1:21ㄱ〉.
가놋다 주118)
가놋다
가는구나. 가-[去]++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능사문중역 가모급원려【장기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멀리 만이(蠻夷)에까지 전파되고, 그가 계획한 일들은 먼 지방의 백성에까지 미친다는 말이다.】
【언해역】 능한 일이 중역(重譯)하는 땅에 들리니, 아름다운 꾀는 먼 백성에게 미치어 가는구나!
*시 구절 해석 : “능한 일은 말을 번역하는 땅에까지 들리나니, 아름다운 계책은 먼 백성에게도 미친다.”라는 뜻으로, 장기가 한 업적은 외국에까지 들리고 뛰어난 계책은 먼 곳 백성들도 혜택을 입는다는 말이다.

弼諧方一展 班序更何躋【書에 謨明弼諧 주119)
필해(弼諧)
서로 협조하여 보좌(輔佐)하는 것. 보좌하는 재능은 잘 펴져 있으니 아무도 당신을 초월할 수 없다는 뜻이다.
ㅣ라다 言垍之班爵 주120)
반작(班爵)
작위(爵位). 관계(官階).
次序ㅣ 已髙也ㅣ라】

弼諧호 주121)
필해(弼諧)호
협조하여 보좌함을. 弼諧#-+오+ㅁ+.
뵈야로 주122)
뵈야로
바야흐로. 유사한 어형으로 『두시언해』를 비롯한 15세기 문헌에는 ‘뵈야로’와 ‘보야로’가 쓰였고, 16세기 문헌에는 ‘보야호로, 뵈야호로, 보야흐로, 뵈야흐로’가 주로 쓰였다.
 번 주123)
 번
한 번. 즉 횟수를 말한다. #번. ‘번’은 의존명사이다. ¶須達이 禮 몰라  번도 아니 도라 淨居天이 쵸려 니〈월천 55ㄱ〉.  번 이긔유 엇뎨 足히 議論리오(一勝何足論)「前出塞九首」〈두시 5:29ㄱ〉.
폇니 주124)
폇니
펴고 있으니. 펴+어#있-++니. 15세기 국어의 ‘-어 잇-’이 ‘-고 있다’의 의미를 가지는 예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어 잇- : 네 이제 사 모 得고 부텨를 맛나 잇니〈석상 6:11ㄱ〉. 白小ㅣ 무리 목수믈 호아 잇니(白小群分命)「白小」〈두시 17:39ㄴ〉. -앳/엣- : 善友太子ㅣ 긼 가온 안잿거늘〈월석 22:51ㄴ〉.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惣戎皆插侍中貂)「諸將五首」〈두시 5:44ㄱ〉. -앗/엇- : 곧 미 두려이 가 너비 國土 머것다 시니〈능엄 2:63ㄱ〉. 가져다가 玉 차반애   니벗도다(蒙將玉饌俱)「麂」〈두시 17:36ㄱ〉.
班列 次序엔 주125)
서차(次序)엔
서차에는. 序次+에+ㄴ.
주126)
또.
어듸 주127)
어듸
어디. ¶婆羅門 려 닐오 어듸 됴 리  니 잇거뇨〈석상 6:13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秋日 ··· 三十韻」〈두시 3:8ㄴ〉.
오리오 주128)
오리오
오르겠는가? 오-[登]+리+오. ‘오’는 선행하는 ‘어듸’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한자음】 필해방일전 반서경하제【『서경』에 “계획하는 일은 밝게 서고 보필함도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장기의 반열과 작위의 순서가 이미 높다는 말이다.】
【언해역】 보좌함을 바야흐로 한 번 펴 있으니 반열(班列) 차서(次序)엔 또 어떻게 오르겠는가?
*시 구절 해석 : “필해함을 바야흐로 한 번 펼쳤나니, 반역 순서도 또 어디를 오르겠는가.”라는 뜻으로, 조정에서 서로 도와 임금을 보필했는데 관작의 순서 역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다는 말이다.

適越空顚躓 주129)
전지(顚躓)
엎어짐. 넘어짐.
游梁竟慘悽 주130)
참처(慘悽)
참처(慘凄)와 같음. 비참하고 처량함.
【適越㳺粱은 皆ㅣ 自敘다】

越에 가도 갓 주131)
갓
헛되이. 공연히. 『두시언해』의 ‘갓’은 원문의 ‘空, 徒’의 번역으로 가장 많이 쓰이며, 그 외에도 ‘惟, 獨, 只, 唯, 但’ ‘漫’ 등의 번역으로 쓰이는데, 선행하는 ‘엇뎨’나 후행하는 ‘, ’ 등과 호응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香 갓 옷곳 것 분 아니라 고로 맏 거슬 다 니르니라〈석상 13:39ㄱ〉. 엇뎨 갓 高祖ㅅ 聖德 니리오 功이 蕭何 曹參의 도오로브터 오니라(豈惟高祖聖 功自蕭曹來)「述古三首」〈두시 3:56ㄴ〉.
업듣고 주132)
업듣고
엎어지고. 엎-[覆]#듣-[落]+고. ¶이 막대 맛뎌 업듣디 아니케 시라〈남명 하:23ㄴ〉. 봄 오매 됴타 쇽졀업시 니놋다 어러운 미 키 업듣게 부놋다(謾道春來好 狂風大放顚)「絕句三首」〈두시 25:21ㄴ〉.
梁애 가 노로매 주133)
노로매
놂에. 놀-[遊]+오+ㅁ+애.
매 주134)
매
마침내. -[終]++애. 원문의 ‘竟’의 번역으로 쓰였다.
슬프도다

【한자음】 적월공전지 유량경참처【‘적월(適越)’과 ‘유량(㳺粱)’은 모두 두보가 자신의 일을 서술한 것이다.】
【언해역】 월(越)에 가도 헛되이 엎어지고, 양(梁)에 가 놂에 마침내 슬프도다!
*시 구절 해석 : “월 땅에 가도 한갓 엎어지고, 양에 가 노닒에 마침내 슬프구나.”라는 뜻으로, 두보가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하소연한 말이다.

謬知終畫虎 微分是醯鷄 주135)
혜계(醯鷄)
멸몽(蠛蠓). 초파리. 초, 간장, 된장, 술 따위에 잘 덤벼드는 파리나 초파리를 일컫는 말.
馬援 주136)
마원(馬援)
기원전 14~기원후 49. 후한 섬서성 흥평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우부풍(右扶風) 무릉(茂陵) 사람. 자는 문연(文淵)이다.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어 처음에 군독우(郡督郵)가 되었다. 녹림(綠林)과 적미(赤眉)가 반란을 일으킨 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신성대윤(新城大尹)과 한중랑태수(漢中郞太守)가 되었다. 왕망이 망한 뒤 양주(凉州)로 달아났다가 외효(隗囂) 밑에서 벼슬하여 수덕장군(綏德將軍)이 되었다. 다시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순하여 외효를 격파했다.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어 건무(建武) 11년(35) 농서태수(隴西太守)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선령강(先零羌)를 격파했다. 주민들에게 경목(耕牧)을 권장해 서변(西邊)을 안정시켰다. 17년(41) 이후에는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교지(交阯, 북베트남)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토벌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평정했다. 일찍이 마혁과시(馬革裹屍)로 맹세하여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에 출정했다. 19년(43)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졌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했지만, 열병환자가 속출하여 고전하다가 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장제(章帝) 건초(建初) 초에 충성(忠成)에 추시(追諡)되었다. 저서에 『동마상법(銅馬相法)』이 있다.
曰𦘕虎不成이면 反類狗ㅣ니라 ㅣ 言所知ㅣ 謬誤而事終不成也ㅣ라 醯鷄 醯瓮中ㅅ 蠛蠓 주137)
멸몽(蠛蠓)
곤충의 하나. 눈에놀이. 몽(蠓).
이라】

그르 주138)
그르
잘못. ‘그르’는 ‘-’와 결합하여 ‘그르-’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르 : 이 아리 긔 羅睺羅ㅣ니 그르 닐어 羅雲이라도 니라〈석상 3:36ㄴ〉. 正覺 正히 알 씨니 그르 알면 外道ㅣ오 正히 알면 부톄시니라〈월석 1:51ㄱ〉. 將師의 들 그르 일흐면(誤失將帥意)「別李義」〈두시 8:7ㄱ〉. 그르- : 비록 그르야 지 이리 이셔도 내 일후믈 드르면〈석상 9:6ㄴ〉. 尊者ㅣ 엇뎨 期約애 그르시니고〈월석 4:35ㄱ〉. 글 홈 그르호란 아 게을우믈 므더니 너기며 長常 貧窮호란 겨지븨 시르믈 므더니 너기노라(失學從兒懶 長貧任婦愁)「屏跡二首」〈두시 3:30ㄱ-ㄴ〉.
아로 주139)
아로
앎은. 알-+오+ㅁ+.
매 주140)
매
마침내. -[終]++애.
범 그륨 주141)
범 그륨
범 그림. 범 그리-[畵]+우+ㅁ. ‘그륨’은 파생명사가 아니라 ‘그리-’의 명사형이다.
니 주142)
니
같은 것이. -+#이.
微小 性分 이 주143)
초의. 초[醯]+ㅅ.
도긧 주144)
도긧
독의. 독[甕]+의+ㅅ.
벌어지로다 주145)
벌어지로다
벌레이도다. 벌어지+도+다. ‘벌어지’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나못 거프를 들우며 서근  디구메 부으리 무딀 니 심히 주으려  벌어지 머고 비릇 얻놋다(穿皮啄朽觜欲禿 苦飢始得食一蟲)「杜鵑行」〈두시 17:6ㄱ〉. 집 안해셔 기 벌어지와 가야미와 머구믈 아쳗고 기 여 도로혀 모 맛날 고 아디 몯호라(家中厭雞食蟲蟻 不知雞賣還遭烹)「縛雞行」〈두시 17:14ㄴ〉.

【한자음】 유지종화호 미분시혜계【마원(馬援)이 말하기를, “호랑이를 그리려다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개와 같이 된다.”라고 했다. 두보가 아는 것이 잘못되어 일이 마침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말했다. ‘혜계(醯鷄)’는 초 항아리 안에 생긴 눈에놀이를 말한다.】
【언해역】 잘못 앎은 마침내 범 그림과 같으니, 미소(微小)한 성분은 이 촛독의 벌레이도다!
*시 구절 해석 : “그릇 앎은 마침내 범을 그림과 같으니, 미소한 성분은 초 항아리 벌레이도다.”라는 뜻으로, 두보가 지식이 부족해 일을 그르쳐서 초 항아리 속 초파리 같은 신세임을 자탄한 말이다.

萍泛無休日 桃陰想舊蹊萍泛 주146)
평범(萍泛)
부평초가 물을 따라 떠돌아다님. 사람의 행처가 일정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ㅣ 自喻流寓다 李廣 주147)
이광(李廣)
?~기원전 119. 한(漢)나라 때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 문제(文帝) 때 양가(良家)의 자제로 종군하여 흉노(匈奴)를 격퇴하여 낭(郞)이 되고, 무기상시(武騎常侍)를 지냈다. 경제(景帝) 때 효기도위(驍騎徒尉)에 올랐다. 나중에 농서와 북지(北地), 안문(雁門) 등 군(郡)의 태수(太守)를 역임했다. 무제(武帝) 때 입조하여 미앙위위(未央衛尉)가 되고,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를 지냈다. 활을 잘 쏘았고, 병졸을 아끼고 잘 이끌어 모두 날래고 용맹해 전투하기를 좋아했다. 흉노가 두려워하여 몇 년 동안 감히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고 비장군(飛將軍)이라 칭송했다. 일곱 군데 변방 군의 태수를 지냈고, 전후 40여 년 동안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대치하면서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병사들의 마음을 깊이 얻었지만 끝내 봉후(封侯)되지는 못했다. 원수(元狩) 4년(기원전 119)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흉노를 공격했다가 길을 잃고 문책을 받자 자살했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5ㄴ

에 桃李不言이어든 下自成蹊ㅣ라니 以桃蹊로 比垍之門下다】

말왐 주148)
말왐
마름. ‘말왐’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萍(말왐)’과 ‘蓬(다봇)’은 ‘두시’에서 ‘두보’가 자주 자신을 비유하던 표현으로 쓰고 있다. ¶말왐 : 날래 籠ㅅ 소갯 새오 하콰  예 믈 우흿 말왐 호라(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衡州送李大夫七丈勉赴廣州」〈두시 8:15ㄴ〉. 말왐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 늘구메 中堂애 갓가이 오라(萍漂忍流涕 衰颯近中堂)「乘雨 ··· 弟宅」〈두시 8:45ㄱ〉. 病 아낫 니 말왐  늘그니로니  防守 녜 穀食屯聚던 히로다(抱疾漂萍老 防邊舊穀屯)「東屯月夜」〈두시 11:49ㄱ〉. 잇 무든 대 본로 즐기논 거시언마 말왐과 다봇 야 安定야 사로미 업소라(苔竹素所好 萍蓬無定居)「將別巫峽 贈南卿兄을 瀼西果園四十畝노라」〈두시 15:16ㄱ〉. 외 머글  오히려 나그내 외여쇼니 말왐 시 뇨 버므렛 도다(瓜時猶放寓 萍泛若夤緣)「秋日 ··· 一百韻」〈두시 20:3ㄱ〉. 喪亂 後에 故人은 두 누넷 여희엿 므리로소니 보미 기픈 내조친 나그내   말왐 도다(亂後故人雙別淚 春深逐客一浮萍)「題鄭十八著作丈」〈두시 21:40ㄱ〉. 그위예 갯다가 뵈야로 玉이 것거디니 브텨 무도 말왐과 다 가놋다(之官方玉折 寄葬與萍漂)「哭王彭州掄」〈두시 24:57ㄱ〉.
니 주149)
니
떠다니듯. -[浮]#니-[行]+. ‘니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 愛欲 흐린 믌겨 그치니라〈영가 서:5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秋日 ··· 三十韻」〈두시 3:8ㄴ〉. 니- : 六趣예 두루 닐 어즈럽다 니라〈석상 3:20ㄱ〉. 슬프다 너 石笋이 뷘 일후믈 擅得얫도소니 後에 난 사미 아디 몯야 오히려 키 니놋다(嗟爾石笋擅虛名 後生未識猶駿奔)「石笋行」〈두시 3:70ㄴ〉. 니- : 諸生앤 녯 뎌른 오시오 나그내로 뇨   말와미로라(諸生舊短褐 旅泛一浮萍)「橋陵 ··· 諸官」〈두시 6:20ㄱ〉. 아 恩情엣 글워리 重니 녀 브터슈메 서르 맛나미 어렵도다(骨肉恩書重 漂泊難相遇)「得舍弟消息」〈두시 8:29ㄴ〉. - : 그제 춋브리  가 잇더니〈석상 3:26ㄱ〉. 다봇 옮 호매 시르미 悄悄니 藥 行호매 病이 涔涔놋다(轉蓬憂悄悄 行藥病涔涔)「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호미 주150)
호미
함이. -+오+ㅁ+이.
주151)
말. 그칠. 떠돌이 생활을 끝낼. 말-+. ‘말다’ 동사의 ‘ㄹ’ 관형형이다.
나리 주152)
나리
날이. 날[日]+이.
업스니 주153)
업스니
없으니. 없-[無]+으니.
복홧 주154)
복홧
복숭아의. 복[桃]#화+ㅅ. ¶복화 호 복화 아니며〈남명 상:26ㄱ〉. 麝香은 石竹에셔 올오 鸚鵡 金ㅅ 비쳇 복화 딕먹놋다(麝香眠石竹 鸚鵡啄金桃)「山寺」〈두시 9:37ㄴ〉.
해 주155)
해
그늘에. ㅎ[陰]+애.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光陰은  히라〈남명 상:10ㄱ〉.   두위잇 며기 노니 그윗 리 버듨  찻도다(江渚翻鷗戲 官橋帶柳陰)「長吟」〈두시 3:48ㄱ〉.
주156)
옛날.
니던 주157)
니던
다니던. -[走]#니-[行]+더+ㄴ.
길흘 주158)
길흘
길을. 길ㅎ[道]+을.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스치노라 주159)
스치노라
생각하노라. 스치-[想]++오+라. 『두시언해』에서 ‘스치다’는 주로 ‘想’의 번역으로 쓰였다.

【한자음】 평범무휴일 도음상구혜【‘평범(萍泛)’은 두보가 떠돌아다니는 처지를 스스로 비유한 것이다. ≪이광전(李廣傳)≫에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고 했는데, ‘도혜(桃蹊)’로 장기의 문하 제자들을 비유했다.】
【언해역】 마름 떠다니듯 함이 말(그칠) 날이 없으니, 복숭아 그늘에 옛날 다니던 길을 생각하노라.
*시 구절 해석 : “부평초 떠다니듯 쉴 날이 없으니,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옛길을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두보가 자신의 삶이 궁색해 편안한 날이 없으니 장기의 문하에 들어가 안정을 취할 마음을 드러낸 말이다.

吹噓人所羨 騰躍事仍睽吹噓 주160)
취허(吹噓)
입김으로 훅 불어 물건을 날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잘한 것을 추켜세워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천거(薦擧). 취거(吹擧).
 比垍之薦引人物다 事仍睽 ㅣ 自嘆命途之睽乖 주161)
규괴(睽乖)
분리됨. 어그러짐.
니라】

부러 보내요 주162)
부러 보내요
불어 보냄을. 불-[吹]+어 보내-[送]+오+ㅁ+. 원문의 ‘취허(吹噓)’의 번역으로 ‘사람을 천거한다’는 뜻이다. 〈중간본〉에는 ‘부리 보내요믈’로 되어 있다.
사 주163)
사
사람이. 사+의. ‘-의’는 표제명사 ‘바’가 이끄는 내포문의 의미상의 주어에 쓰인 속격조사이다.
브논 주164)
브논
부러워하는. 블-[羨]++오+ㄴ. ‘블다’는 ‘-어-’가 결합된 ‘블어다’로도 쓰였고, 형용사파생접사 ‘-업-’이 결합된 ‘불업다’로도 쓰이다가 현대국어에서는 형용사 ‘부럽다’에 ‘-어하-’가 결합된 ‘부러워하다’만 남게 된 전형적인 동사 가운데 하나이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블- : 羨 블울 션〈신유 하:26ㄴ〉. 블늘 션 羨〈유합 7:26ㄱ〉. 羨 블을 션〈유합 영26ㄱ〉. 어르메 새 수플로 가매 개 가야오 울워러 브러 보노라(仰羨黃昏鳥 投林羽翮輕)「獨坐」〈두시 3:45ㄱ〉. 불- : 불다 羨〈한불 347〉. 부러- : 부러 션 羨〈왜유 하:35ㄱ〉. 羨 부러다〈형기 8ㄱ〉. 불어다 羨〈한불 343〉. 불워다 羨〈한불 344〉. 불어허다 羨〈국한 154〉. 부러워- : 부러워다 羨〈한불 343〉. 부럽- : 부럽다 羨〈한불 343〉.
배언마 주165)
배언마
바이지만. 바[所]+이+건+마. ‘사 브논 배언마’은 ‘人所羨’을 번역한 것으로 원문은 피동문이다. 즉 ‘사람들에 의해 부러움을 당하다’ 즉 ‘사람들이 부러워한다’라는 뜻이다. ‘人所羨’을 시에 사용한 경우는 권10(明光起草人所羨(明光殿에 起草호 사미 브논 배언마)〈중간두시 10:45ㄱ〉에서도 보인다. 『두시언해』에서 ‘A所B’ 구문은 피동, 관형어, 의존명사구문 등으로 기능하는데 각각의 언해 양상은 다음과 같다.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피동)雨露之所濡(비와 이슬왜 저쥬매)「北征」〈중간두시 1:3ㄱ〉. 人生快意多所辱(人生애 들 훤히 호리라 면 辱외욜 배 한 거시로다)「醉爲 ··· 相看」〈두시 3:53ㄱ〉. 滄波老樹性所愛(滄波와 늘근 나모 내 本性에 논 배니)「柟木 ··· 拔歎」〈두시 6:41ㄱ〉. (수식 관형어) : 客居所居堂(나그내로 사로매 사논 밧 지비)「客居」〈두시 6:48ㄴ〉. 自下所騎馬(제 탯  브려)〈두시 8:57ㄱ〉「送重 ··· 南海」. (의존명사) : 斯焉心所求(이런 히 매 求논 디라)「寄贊上人」〈두시 9:15ㄴ〉. 苔竹素所好(잇 무든 대 본로 즐기논 거시언마)「將別巫峽 贈南卿兄을 瀼西果園四十畝노라」〈두시 15:16ㄱ〉. -ㄴ마 : 對答 표미  얀마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석상 3:18ㄱ〉. 司直은 冗雜 벼스리 아니언마 거츤 뫼헤 甚히 興趣 업도다(司直非冗官 荒山甚無趣)「送高 ··· 閬州」〈두시 22:39ㄴ〉.
소사 주166)
소사
나솟아. -[飛]#솟-[踊]+아. ¶歡喜踊躍 깃거 소 씨라〈월석 8:48ㄴ〉. 소소미 이 토미 잇니 萬里예 어로 빗기 녀리로다(驍騰有如此 萬里可橫行)「房兵曹胡馬詩」〈두시 17:34ㄴ〉.
주167)
날. 나-[出]+ㄹ. 원문의 ‘騰躍’의 번역이다.
이리 주168)
이리
일이. 일+이.
지즈로 주169)
지즈로
인하여. ‘지즈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지즈루’도 쓰였다. ¶公孫이 지즈로 險호 믿니 候景 사잡디 몯얏도다(公孫仍恃險 侯景未生擒)「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8ㄱ〉. 프렛 이스리  해 저지고 거믜주리 지즈로 갇디 아니얏도다(草露亦多濕 蛛絲仍未收)「獨立」〈두시 3:27ㄱ〉. 지즈루 : 여러  지즈루 머리 여희여쇼니 患難 하매 便安히 사디 몯소라(積年仍遠別 多難不安居)「遠懷舍弟穎觀等」〈두시 8:42ㄴ〉.
어그릇도다 주170)
어그릇도다
어그러지도다. 어그+릋-[違]+도+다. ‘어그릋-’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어그릋’의 ‘어그’는 ‘어긔-’와 관련이 있고, ‘릋’은 ‘맃, 으릋’으로도 쓰이는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두시언해』에는 ‘어그릋-’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그르치’도 쓰였다. 참조; 어그릋- 어긔릋- 어그맃- 어긔맃- 어긔으릋- 어긔- 어그르치. ¶어그릋- : 맷 비치 다 흘러 올마가 傳語야 아니 한 덛 서르 賞玩호 서르 어그릇디 마롤 디니라(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曲江二首」〈두시 11:20ㄱ〉.  술 머거 사미 모다 료 오래 리고 朝會호 게을이 호니 眞實로 世로 다야 어그릇도다(縱飮久襭人共棄 懶朝眞與世相違)「曲江對酒」〈두시 11:20ㄴ〉. 어긔릋- : 賦稅 골오 호매 어긔르츤가 전노니 人民의 헐므믈 문 디 아니도다(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ㄴ〉. 오히려 수우 대로 어긔르츠며 오히려 半만 주근 머귓 미 허도다(尙錯雄鳴管 猶傷半死心)「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3ㄴ〉. 어그맃- : 디뇨매 俗人 애 가다니 해 와 이쇼니 매 어그리춘 배 업도다(經過倦俗態 在野無所違)「甘林」〈두시 15:4ㄴ〉. 매셔 이에 이 러듀미 後에 니   어긔리츤가 전노라(江湖後搖落 亦恐歲蹉跎)「蒹葭」〈두시 18:10ㄱ-ㄴ〉. 어그르치(부사) : 生植엿 萬物이 半만 어그르치 외니 아다온 나 거시 將次ㅅ 말리러라(植物半蹉跎 嘉生將已矣)「種萵茞幷序」〈두시 16:65ㄴ〉. 어긔- : 群凶이 오히려 사호 求니 머리 도라 라왼 처 과 해 어긔도다(群凶猶索戰 回首意多違)「卽事」〈두시 5:17ㄱ〉.

【한자음】 취허인소선 등약사잉규【‘취허(吹噓)’는 장기가 인물을 천거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사잉규(事仍睽)’는 두보가 운명의 길이 어그러진 것을 자탄한 것이다.】
【언해역】 불러 보냄을 사람이 부러워하는 바이거늘, 나솟아 날 일이 인하여 어그러졌도다!
*시 구절 해석 : “불어 보내옴을 사람이 부러워 하니, 뛰어오를 일이 인하여 어그러졌다.”라는 뜻으로, 장기의 천거를 기대했지만 이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碧海眞難涉 靑雲 주171)
청운(靑雲)
①청색 구름. ②높은 공중의 구름. ③고관(高官). ④원대한 포부.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不可梯【此 喻騰躍之難다】

프른 주172)
프른
푸른. 프르-[碧]+ㄴ.
바 주173)
바
바다를. 바[海]+. 15세기에는 ‘바’과 ‘바다ㅎ’가 쌍형어로 쓰였지만 『두시언해』에는 ‘바’만 쓰였다. ‘바’도 나타난다. ¶바 : 四海 四方앳 바리라〈석상 3:5ㄴ〉. 날 바 건너가  부 돗 아니라(一日過海收風帆)「魏將軍歌」〈두시 5:38ㄴ〉. 닐굽 山  香水 바다히니〈월석 1:23ㄱ〉.
眞實로 건나미 주174)
건나미
건냄이. 걷-[步]#나-[出]+오+ㅁ+이. 건나-[渡]+오+ㅁ+이. ‘건나미’의 성조는 ‘:건:나미’ 즉 ‘:건(상성)’과 ‘:나(상성)’, 그리고 ‘미(평성)’인데 어간 말음이 ‘ㅏ’일 때는 명사형 ‘-옴’이, ‘ㅓ/ㅕ’일 때 명사형 ‘-움’이 결합하되 ‘-오-/-우-’는 생략되고 성조는 상성으로 변동하며, 간경도감본 언해서 중 〈선종영가집언해〉(1464)부터는 어절 말에서 거성(1점)이 평성(0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경향이 점차 확산되어 간다. ¶므리 만코 길 멀오 도 하고 건나디 몯야〈월석 10:23ㄴ〉.  오 도로  타 東西에 도혀  건나라(束帶還騎馬 東西却度船)「歸」〈두시 3:35ㄱ〉.
어렵고 프른 구루메 주175)
구루메
구름에. 구룸[雲]+에.
可히 리 주176)
리
사다리. 다리. 리[梯]+∅.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사다리) : 큰 바래 能히 고기 낫골  업스리아  구루메  리 잇니라(巨海能無釣 浮雲亦有梯)「水宿 ··· 群公」〈두시 3:21ㄱ〉. 엇뎨 萬丈인 리 어더 님금 爲야 웃그테 올라가려뇨(安得萬丈梯 爲君上上頭)「鳳凰臺」〈두시 17:1ㄱ〉. (교량) : 城 높고 리 업건마〈용가 34〉. 므리 면 리 現니〈월석 17:21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노티 주177)
노티
놓지. 놓-[設]+디. ¶녜 金剛神을 브려 寶塔 바다 해 노티 아니케 고〈월석 25:38ㄴ〉. 됴 고 우리 예 노코 보 아니 됴니여〈석상 3:15ㄱ〉.
몯리로다 주178)
몯리로다
못할 것이도다. 몯#-+리+도+다.

【한자음】 벽해진난섭 청운불가제【이것은 뛰어오르는 일의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푸른 바다를 진실로 건넘이 어렵고, 푸른 구름에 가히 다리 놓지 못할 것이도다!
*시 구절 해석 : “푸른 바다는 진정 건너기 어렵고, 푸른 구름에도 사다리 놓지 못하리라.”라는 뜻으로, 사람이 관료로 성공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顧深慙鍛鍊 才小辱提携鍜錬 주179)
단련(鍛鍊)
금속에 불을 달구어 두드려서 튼튼하게 하는 일. 그리하여 자신의 재능이나 소질을 각고(刻苦)의 노력을 더해 완성해 나가는 것을 비유한다.
은 刻苦成材之意라 上句 言垍ㅣ 顧遇ㅣ 雖深나 ㅣ 慙鍜錬之未至니라 下句 ㅣ 才能이 未大니 徒辱垍之提携ㅣ니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6ㄱ

라보
주180)
도라보
돌아봄을. 돌-[回]+아#보-[見]+오+ㅁ+. 도라보-[顧]. ¶寶牀 도라보시고 니샤〈석상 3:27ㄱ〉. 層層인 뫼 구버 네 녀크로 도라보니  내콰 묏골왜 여렛도다(四顧俯層巔 淡然川谷開)「冬到金華山觀因得故拾遺陳公學堂」〈두시 3:63ㄴ〉.
기피 주181)
기피
깊이. 깊-[深]+이. 척도부사 ‘기피, 노피, 기리, 너비’는 부사화파생접미사 ‘-이’로 인한 파생어들이고, 척도명사 ‘기픠/, 노, 기릐, 너븨’는 명사파생접미사 ‘-/의’에 의한 파생어이다. ¶기피 : 禪定을 기피 다 五神通 得리도 보며〈석상 13:20ㄴ〉. 群公이 모다 힘니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群公紛戮力 聖慮窅裴佪)「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기픠 : 한 비 리와 므리 下界예 야 기픠 十一億二萬由旬이러니〈월석 1:39ㄴ〉. 當時ㅅ 浣花ㅅ 리예 시냇 믌 기픠 아야라 자남즉 더니라(當時浣花穚 溪水纔尺餘)「漲溪」〈두시 13:19ㄴ〉. 노피 : 他化自在天이 次第로 노피 이쇼〈월석 1:32ㄱ〉. 樓 우희 더운 하해 어름과 눈괘 나 니 노피  져비새 새로 지슈믈 慶賀다(樓上炎天冰雪生 高飛燕雀賀新成)「江陵節度陽城郡王~同作노라」〈두시 14:11ㄱ〉. 노 : 노 다 자히러라〈석상 11:10ㄴ〉. 願 노예 자만  어리 외이 녀 그려기 니 여가(願騰六尺馬 背若孤征鴻)「苦雨奉寄隴西公兼呈王徵士」〈두시 12:17ㄴ〉. 기리 : 涅槃 닷가 苦樂 기리 여희리다〈석상 11:3ㄱ〉. 늘근 넉슬 블로 得지 몯리로소니 넉시 갈 길 기리 迷失가 저허노라(老魂招不得 歸路恐長迷)「散愁二首」〈두시 3:33ㄴ〉. 기릐 : 五色綵幡 로 기릐 마 아홉 揭手ㅣ오〈월석 9:53ㄴ〉. 禁掖ㅅ 다맷 대와 다맷 머귀 기릐 열 尋이로소니 훤 門이 누늘 相對야 녜 어득얫도다(掖垣竹埤梧十尋 洞門對雪常陰陰)「題省中院壁」〈두시 6:13ㄴ〉. 너비 : 이 經을 너비 펴며〈석상 9:40ㄱ〉. 所親이 머므러 브터쇼 묻니 너비 호매 내 衰朽 어엿비 너기놋다(所親問淹泊 汎愛惜衰朽)「奉贈李八丈判官」〈두시 8:4ㄴ〉. 너븨 : 그 제 閻浮提 히 기릐 十千 由旬이오 너븨 八千 由旬이오〈월석 23:28ㄴ〉. 프른 모시 너븨 萬 頃이 坤軸을 마 잇  어느 알리오(安知有蒼池 萬頃浸坤軸)「南池」〈두시 13:15ㄱ〉.
시니 鍜錬호 주182)
단련(鍜錬)호
단련함을. 鍛鍊+-+오+ㅁ+.
붓그리고 주183)
붓그리고
부끄러워하고. 붓그리-[慙]+고. ‘붓그리다’는 원래 동사인데, ‘-어-’가 결합된 동사 ‘붓그려다’가 쓰였고, 형용사파생접미사 ‘-업-’이 결합된 파생형용사 ‘붓그럽다’가 쓰였는데, 현대국어에 와서는 ‘부끄럽다’에 ‘-어하-’가 결합된 ‘부끄러워하다’만 동사로 쓰이게 되었다. ¶붓그리- : 제 道理 붓그리다가〈월천 39ㄴ〉. 大闕을 思戀야 肝肺 잇브게 노니 材質을 議論호매 杞柟 붓그리노라(戀闕勞肝肺 論材愧杞柟)「樓上」〈두시 3:49ㄱ〉. 붓그려- :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 3:8ㄱ〉. 病야 님금과 臣下왓 議論애 隔絶호니 德澤 私恩에 범그러슈믈 붓그려노라(病隔君臣議 慚紆德澤私)「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ㄱ〉. 붓그럽- : 질쌈야 뵈  옷 라 붓그러  가리오니다〈월석 22:26ㄱ〉. 버디 와 무로매 내 치 붓그러우니 도랏 딥고 고파 니러  븓들요라(明知來問腆我顏 杖藜強起依僮僕)「醉爲 ··· 相看」〈두시 3:53ㄱ〉.
죄 주184)
죄
재주.
져그니 주185)
져그니
적으니. 젹-[少]+으니. 15세기 국어의 ‘젹다’는 [少]와 [小]의 뜻이 모두 있다. ‘져기’는 일반적으로 ‘략(略)’의 번역으로 쓰인다. 참고. 쟉다, 젹다, 죡다, 횩다, 휵다. ¶이 사미 欲心이 젹고 足 고 아라(是人이 少欲知足야)〈석상 21:62ㄱ〉. 이 時節ㅣ 어려우 맛나니 朝와 野왜 겨르왼 나리 젹도다(維時遭艱虞 朝野少暇日)「北征」〈중간두시 1:1ㄴ〉. 젹다(작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或現大身滿虛空中 而復現小)〈석상 6:34ㄱ〉. 新安ㅅ 吏 더브러 무로니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借問新安吏 縣小更無丁)「新安吏」〈중간두시 4:5ㄱ〉.
잡드로미 주186)
잡드로미
잡아 붙듦이. 잡아줌이. 붙들어줌이. 잡-[把]#들-[擧]+오+ㅁ+이. 잡들-[提携]. ¶支 서르 잡드러 괴올 씨니〈석상 9:18ㄱ〉. 벼개예 기우롓 江湖앳 나그내 잡드런 디 나리 길어다(欹枕江湖客 提携日月長)「竪子至」〈두시 15:23ㄱ〉.
辱외도다 주187)
욕(辱)외도다
욕되도다. 辱+외-+도+다. 15세기 국어에서도 ‘외-’는 ‘명사 어근’에 결합하여 용언을 파생시켰다. ¶어근+외- : 緊羅 예셔 닐오매 疑心왼 神이니 사 호 리 이셔 疑心외니라〈법화 1:49ㄱ〉. 둘흔 欲이 도아 因외요미오〈원각 하1-1:12ㄱ〉. 楚ㅅ 貢은 어느 예 그츠니오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이제 疑心외도다(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 번 업더뎌 매 損傷홀 고 혜아리디 아니호니 人生애 들 훤히 호리라 면 辱외욜 배 한 거시로다(不虞一蹶終損傷 人生快意多所辱)「醉爲 ··· 相看」〈두시 3:53ㄱ〉.

【한자음】 고심참단련 재소욕제휴【‘단련(鍜錬)’은 각고의 노력 끝에 재능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위 시구는 장기가 돌봐줌이 비록 깊지만, 두보가 단련이 부족해 이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한 것이다. 아래 시구는 두보가 재능이 크지 않으니, 다만 장기의 도움을 욕되게 할 뿐이라는 말이다.】
【언해역】 돌아봄을 깊이 하시니 단련함을 부끄러워하고, 재주 적으니 잡아줌을 욕되게 하도다!
*시 구절 해석 : “돌아봄을 깊이 하시니 단련함이 부끄럽고, 재주가 작아서 도움을 욕되게 한다.”라는 뜻으로, 장기가 자신을 인정해 도움을 주는 데 비해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부족해 부끄럽다는 말이다.

檻束哀猿呌 枝驚夜鵲棲【皆ㅣ 自喻不得所也ㅣ라】

軒檻 주188)
헌함(軒檻)
누각(樓閣) 또는 대청(大廳)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놓은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나 방.
주189)
헌함(軒檻)앤
헌함엔. 헌함에는. 軒檻+에+ㄴ.
슬픈 나비 주190)
나비
잔니비가. 납-[猿]+이. ¶납 爲猿〈훈해 55〉. 그르메 납 우 남긔 브텟노니 넉슨 蜃氣ㅣ 쳿 樓에 나봇기놋다(影著啼猿樹 魂飄結蜃樓)「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 8:45ㄴ〉.
우니 주191)
우니
우는 이를. 우는 놈을. 울-[泣]++ㄴ#이+.
얏고 주192)
얏고
매고 있고. 매어 두고. -[束]+어#잇-+고.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杻械 소내  남기오〈석상 21:5ㄱ〉. 혀 여 하  막노니 내 胸腸 더드므니 禍難의 根本이 잇도다(結舌防讒柄 探腸有禍胎)「秋日 ··· 三十韻」〈두시 3:9ㄱ〉.
나못가지옌 주193)
나못가지옌
나뭇가지엔. 나모+ㅅ+가지+예+ㄴ.
바 주194)
바
밤의. 밤[夜]++ㅅ.
가치 주195)
가치
까치가. 가치[鵲]+∅.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깃기다가 주196)
깃기다가
깃들고 잇다가. 깃#깃-+어#잇-+다가.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중간본〉에는 ‘깃기엣다가’로 되어 있다. ¶깃깃- : 寨 羊의 깃기서 자 라〈금삼 3:46ㄴ〉. 바 자리예 갈 새 다거늘 後에 깃기슬 가마괴 우놋다(夜來歸鳥盡 啼殺後棲鴉)「遣懷」〈두시 3:25ㄴ〉.
놀라놋다 주197)
놀라놋다
놀라는구나. 놀라-++오+ㅅ+다. ¶王이 놀라샤 讚嘆야 니샤〈석상 3:4ㄱ〉. 이 님금 辱도외이 겨샤 놀라  타 가 盜賊을 티고져 며[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한자음】 함속애원규 지경야작서【모두 두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를 얻지 못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헌함(軒檻)엔 슬픈 잔나비 우는 놈을 매고 있고, 나뭇가지엔 밤의 까치 깃들고 있다가 놀라는구나!
*시 구절 해석 : “헌함에는 슬피 우는 원숭이가 묶어 있고, 나뭇가지에는 밤에 까치가 머물렀다가 놀란다.”라는 뜻으로, 두보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는 슬픔을 말한 것이다.

幾時陪羽獵 주198)
우렵(羽獵)
사냥. 특히 임금의 사냥. 제왕(帝王)이 사냥을 나갈 때 사졸(士卒)들이 우전(羽箭)을 지고 수종(隨從)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應指釣璜溪【太公望이 釣磻溪야 玊璜 주199)
옥황(玊璜)
반원형(半圓形)의 벽(璧, 둥근 옥). 나중에 이것으로 여상(呂尙)이 문왕(文王)을 도운 일을 비유하였다.
고
주200)
득옥황(得玊璜)고
옥황(玊璜)을 얻고. 得玊璜#-+고. 원래의 ‘得玊璜니’에서 교정된 것이다.
文王 주201)
문왕(文王)
?~?. 상(商)나라 때 사람. 주(周)나라의 초대 임금. 주족(周族)의 우두머리였다. 성(姓)은 희(姬)씨고, 이름은 창(昌)이다.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손자이자 무왕(武王)의 아버지고, 계력(季歷)의 아들이다. 상주(商紂) 때 주변의 여러 부족을 멸하고 서백(西伯)이라 했다. 숭후호(崇侯虎)의 참언을 받아 주(紂) 임금에 의해 유리(羑里)에 갇혔다. 그의 신하 태전(太顚)과 굉요(閎夭), 산의생(散宜生) 등이 주임금에게 미녀와 명마를 바쳐 석방될 수 있었다. 우(虞)나라와 예(芮)나라 사이의 분쟁의 소지를 해결하자 두 나라가 모두 귀부(歸附)했다. 나중에 또 여(黎)나라와 우(邘)나라, 숭(崇)나라 등을 공격해 멸망시켰다. 섬서성 기산(岐山)에서 장안(長安) 부근 풍읍(豊邑)으로 도읍을 옮겼다. 현인(賢人)과 인재를 널리 받아들여 동해의 여상(呂尙)과 초인(楚人) 자웅(䰞熊), 고죽국(孤竹國)의 백이숙제(伯夷叔齊), 은신(殷臣) 신갑(辛甲) 등이 찾아왔다. 50년 동안 재위했다. 덕으로 만민(萬民)을 다스려 제후와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고 한다.
ㅅ 岀獵야 載與同歸니 此 ㅣ 自比太公야 望垍之薦引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언맛 주202)
언맛
어느. 어느 정도의. 언+마+ㅅ. ‘언’은 ‘어느’의 축약으로 보이고, ‘마’는 고대국어부터 존재하는 명사로서 ‘얼마, 만큼’ 등에 남아 있고, ‘ㅅ’은 속격조사이다. ‘언맛’은 ‘幾’에 대한 번역인데 『두시언해』의 다른 부분에서는 ‘몃, 어느, 몃맛’으로 언해되었다. ‘幾時’도 여기서는 ‘언맛 , 몃맛 ’로 언해되었으나 ‘어느 제’로 언해된 부분도 있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는 ‘현맛’으로도 쓰였다. ¶언맛 福 得리잇고〈석상 21:21ㄱ〉. 어느 제 : 어느 제 翠節 가지고 오뇨  紅粧 사 혀 왯도다(幾時來翠節 特地引紅粧)「陪栢 ··· 二首」〈두시 5:51ㄴ〉. 몃맛  : 百舌은 마리 업고져 노소니 어즈러운 고 能히 몃맛 니오(百舌欲無語 繁花能幾時)「暮春 ··· 屋五首」〈두시 7:14ㄱ〉. 현맛 : 여윈 못 가온 몸 커 그우닐 龍 현맛 벌에 비늘을 라뇨〈월천 11ㄱ〉. 五色雲ㅅ 가온 瑞相 뵈시 如來ㅅ긔 현맛 衆生이 머리 좃뇨〈월석 2:48ㄱ〉.
주203)
때에. [時]+의.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羽獵을 뫼올고 주204)
뫼올고
뫼실까? 뫼-[陪]++을+고. ‘--’은 선행형태 및 후행형태에 따라 ‘--, --, --, --, --’ 등으로 나타나는데, ‘--, --, --’은 각각 선행형태의 말음이 ‘ㄱ, ㅂ, ㅅ, ㅎ. ㄴ, ㄹ, ㅁ, 모음. ㄷ, ㅈ, ㅊ’이면서 후행형태가 자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나고, ‘-/오-, -/오-, -/오-’은 후행형태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설명의문어미인 ‘-고’는 선행하는 ‘몃맛’의 ‘몃’과 호응한다. 〈중간본〉에는 ‘뫼올고’로 되어 있다.
이 주205)
이
응당. 원문의 ‘應’의 번역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당당이’로 되어 있다.
구슬 낙 주206)
낙
낚던. 낛-[釣]+더+ㄴ. ¶낛- : 惡 료 鱗衆의 낙 놀라 江瀛에 드러 미틔 다 니〈영가 하:77ㄴ〉. 늘근 겨지븐 죠 그려 긔파 어 져믄 아 바 두드려 고기 낫 낙 다(老妻畵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江村」〈두시 7:4ㄱ〉.
시내 주207)
시내
시내를. 시내ㅎ+. ‘시내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뫼히며 두들기며 시내며 굴허 업고〈월석 15:13ㄴ〉. 기리  시내와 다 여희니 가져다가 玉 차반애   니벗도다(永與清溪別 蒙將玉饌俱)「麂」〈두시 17:36ㄱ〉.
치리라 주208)
치리라
가리킬 것이다. 치-[指]+리+라. 15세기 국어의 ‘치다’는 ‘가리키다’와 ‘가르치다’의 뜻이 있다. ¶(가리키다) : 太子ㅣ 妃子ㅅ  치시며 니샤〈석상 3:22ㄱ〉. 蜀ㅅ 사미 듣곡 다 니러셔니 이제 니르리 치며 화 기튼 風俗이 傳야 오다(蜀人聞之皆起立 至今斅學效遺風)「杜鵑行」〈두시 17:6ㄴ〉. (가르치다) : 訓民正音은 百姓 치시논 正 소리라〈훈언 1ㄱ〉.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기시배우렵 응지조황계【태공 망(太公望)이 반계(磻溪)에서 낚시하다가 옥황(玊璜)을 얻었고, 사냥을 나온 문왕을 만나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오니, 이것은 두보가 자신을 태공에 비유하여 장기의 천거를 바라는 뜻이다.】
【언해역】 어느 때에 사냥을 뫼실까? 응당 구슬 낚던 시내를 가리킬 것이다.
*시 구절 해석 : “언제나 사냥함을 모시겠는가, 당당히 구슬 낚던 시내를 가르치리라.”라는 뜻으로, 두보가 자신도 천거를 받아 관리가 되어 임금의 사냥을 모시고, 여상과 같이 임금을 보좌할 인재가 되고 싶은 희망을 말했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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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봉증태상장경게 이십운(奉贈太常張卿垍二十韻) : 이 작품은 천보(天寶) 13년(754), 두보 43세 때에 지어졌다. 장기(張垍)는 명재상 장열(張說)의 둘째 아들로, 현종(玄宗)의 딸 영친공주(寧親公主)와 결혼한 부마(駙馬)였다. 13년 태상경(太常卿)에 임명되어 종묘예의(宗廟禮儀)를 관장했다. 시는 장기의 문장 능력과 덕망을 칭송하고 명예와 총애를 누린 사실을 서술하면서 시인 자신의 딱한 처지를 밝혀 도움을 줄 것을 희망하였다.
주002)
## 태상경(太常卿) :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봉상(奉常)이란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 태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종묘의 예의 및 박사시험을 관리했다. 구경(九卿)의 하나에 속했다. 역대로 설치되어 주로 제사와 예악(禮樂)을 맡았다. 청(淸)나라 말에 폐지되었다.
주003)
## 장게(張垍) : ?~?. 당나라 하남 낙양 사람. 장열(張說)의 아들이다. 주서(主婿, 공주의 사위)로 현종의 총애를 받아 금중(禁中)에 내택(内宅) 두는 것을 허락받아 문장으로 시위(侍衛)했는데, 일찍이 진완(珍玩)을 하사받은 것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때 형 장균(張均)도 한림원에서 공봉(供奉)했는데, 항상 하사받은 진귀한 물건을 형에게 보여주었다. 장균이 장난삼아 “이 부옹과 여서는 천자의 사학사가 아니다.(此婦翁與女婿 非天子賜學士也)”라고 말했다. 천보(天寶) 중에 현종이 일찍이 장기의 내택에 가서 그에게 “진희열이 거듭 기무에서 사직하고자 하여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려고 하는 누가 좋겠는가?([陳]希烈累辭機務 朕擇其代者 孰可)”라고 물었는데, 그가 대답하지 않으니 현종이 “내가 사위를 사랑함이 더 넘을 수 없구나.(無逾吾愛婿矣)”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계단을 내려와 절하고 사례했다. 양국충(楊國忠)이 듣고 그를 미워했다. 진희열이 재상에서 파직되고 위견소(韋見素)하니, 그가 몹시 원망했다.
주004)
방장산(方丈山) : 전설(傳說)에 나오는 바다에 있는 신산(神山) 이름. 삼신산(三神山)의 하나. 삼신산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동해 가운데 신선이 산다는 산. 즉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 『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보면 진시황과 한무제가 이 산을 순수(巡守)하면서 자신들의 위대한 공적을 백성들에게 선전하고 후세에 남기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주005)
발해(渤海) : 동해(東海)의 다른 이름. 창해(滄海).
주006)
삼한(三韓) : ①상고시대(上古時代)에 우리나라 중, 남부에 자리하고 있었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弁辰). ②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 ③옛 삼한 지역을 통합한 나라들. 신라, 고려. ④우리나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07)
곤륜산(崐崙山) :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 처음에는 하늘에 이르는 온 산. 옥이 나는 산으로 알려졌지만 전국시대 말기부터는 서왕모(西王母)가 갈고, 불사(不死)의 물이 흐르는 신선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중간본〉에는 ‘崑崙山’로 되어 있다.
주008)
서극(西極) : ①서쪽 변방의 끝 지점. 서방(西方)의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②장안(長安)의 서쪽 지역 강역(疆域).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09)
밧기오 : 밖이고. [外]+이+고. ‘-오’는 ‘-고’가 선행하는 ‘이’의 뒤에서 바뀐 형태이다. 16세기 문헌부터 ‘〉밖’으로 재구조화한 어형이 나타난다. ¶ :  닐오 밧기 거츠디 아니호 닐오 眞이오〈금강 15ㄱ〉. 매 밧글 뮤믈 초 야시나(終然備外飾)「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9ㄴ〉. 밖 : 박그로 두루 흘러 반시 심장의 들 거시니〈두창 상:31ㄴ〉.
주010)
녀긔 : 녘에. 녁+의(처격).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주011)
잇니라 : 있느니라. 있다. 있네. 잇-[有]++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012)
건표(建標) : 표지(標識)를 세움.
주013)
예절(詣絕) : 조예(造詣)가 대단히 깊어 타인의 접근을 끊어버림.
주014)
수계(須溪) :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유진옹은 송나라 말기 길주(吉州) 여릉(廬陵, 지금의 강서 길안시) 사람. 자는 회맹(會孟)이고, 호는 수계(須溪)다. 어려서 태학생(太學生)으로 있었다. 이종(理宗) 경정(景定) 3년(1262) 전시(殿試)에서의 대책(對策)에서 권세가였던 가사도(賈似道)를 거슬려 병과(丙科)에 등제했다. 부모님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염계서원(濂溪書院) 산장(山長)이 될 것을 자청했다. 강만리(江萬里)와 진선중(陳宣中) 등이 사관(史館)에 머물 것과 태학박사(太學博士)에 임명할 것을 추천했지만 모두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송나라가 망하자 벼슬하지 않았고 은거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사(詞)를 잘 지었는데, 주로 망국의 아픔을 통절하게 노래한 것이다. 작품에 『수계사(須溪詞)』 10권과 『수계사경시(須溪四景詩)』 4권이 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수계사』로 편집했다. 그 밖의 저서에 『수계집(須溪集)』과 『반마이동편(班馬異同評)』, 『방옹시선후집(放翁詩先後集)』 등이 있다.
주015)
입주(立柱) : 기둥을 세움.
주016)
지절(持節) : ①부절(符節)을 지님. 옛날에 사신(使臣)이 황명을 받아 출행(出行)할 때 반드시 부절을 지녀 증빙으로 삼았다. ②관직(官職) 이름. 위진(魏晉) 이후 우사지절(有使持節)·지절(持節)·가절(假節)·가사절(假使節) 등이 있었다. 그 권한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자사(刺史)가 되어 군융(軍戎)을 총괄했다. 당(唐)나라 초기에는 제주(諸州)의 자사에 지절이란 이름을 더했고, 이후 절도사(節度使)가 있어 마침내 지절이란 말은 없어졌다.
주017)
어윈 : 넓은. 어위-[闊]+ㄴ. ¶어위- : 좁던 東山이 어위며〈월석 2:28ㄴ〉.  平 몰앳 두들기 어위오 예 죠고맛 훤 房이 뷔옛도다(地闊平沙岸 舟虛小洞房)「遣悶」〈두시 3:11ㄴ〉.
주018)
 : 데(의존명사).
주019)
셰니 : 세우니. 셔-[立]+이+니. 어간 ‘:셰-’는 ‘셔-’[立]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한 파생동사이다. ‘셰-’에 다시 사동의 ‘우/오’를 결합시킨 ‘셰우-/셰오-’가 17세기 문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셰- : 王이 太子 셰요려 샤〈석상 3:5ㄴ〉. 저 이 녯  卿相의 무더메 돌 셰여 表 사마 이제 지즈로 잇가 노라(恐是昔時卿相墓 立石爲表今仍存)「石笋行」〈두시 3:70ㄴ〉. 셰오/셰우- : 도로 당을 제 집의 셰우고〈동국 효6:41ㄴ〉. 文潞公이 가廟 西京의다가 셰오고〈가례 1:8ㄱ〉.
주020)
나가리 : 나아가는 이. 나아가는 사람. 낫-[進]+아#가-+ㄹ#이+∅(주격조사). ¶낫- : 定光이 發明야  性에 기피 드러 오직 낫고 믈룸 업수미 일후미 不退心이라〈능엄 8:18ㄱ〉. 여흐레 고기 낫글 저긘 글워를 䟽히 고 바회예 받 갈 저긘 바독 긔 나노라(釣瀨䟽墳籍 耕巖進奕碁)「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ㄱ〉. 나가- : 여러 王히 부텻긔 나가 無上道理 묻고〈석상 13:20ㄱ〉. 長夜애 나가 어엿비 너기노라(短褐卽長夜)「遣興五首」〈두시 3:59ㄱ〉.
주021)
그처 : 끊어져. 긏-[斷]+어. ‘긏다’는 자타동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15세기 당시에 ‘그치다, 끊다, 끊어지다’의 뜻을 가진 동사는 ‘긏-’이었으나 후대에 ‘그치-’로 바뀌었다. ‘-’[終]도 ‘치-〉마치-’로 변화하였는데 이러한 변화는 자타동 양용동사와 사동접사 ‘-이-’와 관련되어 있다. ¶긏다(자동사) : 여들븐 모딘 미 긋고〈월석 21:150ㄱ〉. 驪山애 行幸 라오미 긋고 花萼樓에 登臨샤미 도다(驪山絕望幸 花萼罷登臨)「驪山」〈두시 5:18ㄴ〉. 긏다(타동사) : 이 사미 見思 다 긋고 다시 習氣 侵〈월석 14:66ㄴ〉. 秦州에 흐린 涇水 흐르 해 애 긋노라(腸斷秦州流濁涇)「卽事」〈두시 3:37ㄱ-ㄴ〉.
주022)
녜와 : 옛날과. 녜[舊]+와.
주023)
이제 : 지금. 현재. 이제. 현대국어의 ‘이제’는 발화시와 일치하나, 중세국어의 ‘이 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쓰인다. 원문이 ‘今’일 때에는 ‘지금’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밖의 경우(예 : 於是)에는 ‘이 때(에)’의 뜻으로 쓰인다. 양자는 합성어인지 구인지의 차이가 있다. 한편 음절부음 [j]로 끝나는 체언 중 시간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말 뒤에는 부사격조사(관형격조사)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 이제  내 아 려가려 시니〈석상 6:5ㄴ〉. 西伯이 이제 괴외시니(鳳聲亦悠悠)「鳳凰臺」〈두시 17:1ㄱ〉.
주024)
뎌 뫼 : 저 산을. 뎌 뫼ㅎ+. ‘뫼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25)
미실(迷失)니라 : 미실하니라. 미실한다. ‘미실(迷失)하다’는 국어사전에 ‘정신이 어지럽고 혼미하여서 어떠한 일을 잘못하다’로 되어 있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026)
신선(神仙) : 신화(神話)와 전설(傳說)에 나오는 인물. 초인적인 은력을 지녔다고 한다. 세상을 초탈(超脫)하여 장생불사(長生不老)하였다.
주026_1)
*〈중간본〉에는 ‘㤙承雨露低’와 ‘承天子之㤙也ㅣ라’로 되어 있다.
주027)
공봉(供奉) : 제왕(帝王)을 위해 특별히 공헌하는 것.
주028)
한림(翰林) : ①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관직 이름으로, 옛날에 깃(羽翰)을 붓으로 썼기 때문에 필(筆)을 한이라 했다. 한림(翰林)이란 문한(文翰)이 마치 수풀처럼 많다는 말이다. ②문한(文翰)을 맡은 관원. 고려 후기와 조선에서는 예문관(藝文館)의 공봉(供奉)․봉교(奉敎) 이하의 관원을 한림이라 통칭했다. 한(翰)은 새의 깃, 곧 붓을 뜻하고, 임(林)은 무리로 많이 모인 것을 뜻한다. 관제(官制)로는 당대(唐代) 처음에 한림원(翰林院)을 두고 문사(文詞)․경학(經學)에 능통한 선비를 모아 학문을 연구하며 내정(內廷)에 이바지하게 했고, 현종(玄宗) 때에 비답(批答) 등 문서를 입안(立案)하게 하고 한림대조(翰林待詔)라 했다가 한림공봉(翰林供奉),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으로 고쳤다. 그 뒤로 한림관의 제도는 계속되었고, 신라에도 한림이라는 벼슬이 있었으며, 고려에서도 원봉성(元鳳省)과 학사원(學士院), 한림원(翰林院), 예문관(藝文館) 등의 이름으로 관부(官府)를 두어 사명(詞命)을 짓고 출납하는 일을 맡겼는데 한림학사 등의 벼슬이 있었다. 고려 후기에 있어서 한림이라 함은 예문관 사관(史館)과 합쳐서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이라고 한 때도 있고, 한림원이라 한 때도 있음. 예문관의 공봉과 수찬(修撰), 주부(主簿), 검열(檢閱) 등의 통칭이며, 조선 초기에 고려 관제를 따랐다가 고친 이후 예문관의 봉교와 대교(待敎), 검열 등을 한림이라 했다. 『조선어사전』에 “검열의 별칭” 『대전회통』에 “예문관 검열에 피선(被選)하여 배명(拜命)한 자.”, 『국어사전』 등에 “이조 때 예문관 검열의 별칭”, “예문관 검열을 예스럽게 일컫는 말” 등으로 풀이했는데, 검열을 한림이라 할 수 있지만 한림이 검열만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는 둘 다의 뜻으로 쓰였다.
주028_1)
*〈중간본〉에는 ‘㤙承雨露低’와 ‘承天子之㤙也ㅣ라’로 되어 있다.
주029)
신선(神仙)의 : 신선이. 후행하는 ‘아라호’의 의미상 주어이다.
주030)
아라호 : 아스라함을. 아라-+오+ㅁ+. 『두시언해』에는 ‘아라다’는 물론 파생부사 ‘아라히’가 많이 쓰였다. ‘아라히’에는 ‘蒼茫, 蒼蒼, 遙, 莽, 眇眇, 杳’ 등이 주로 대응되었고, ‘아라다’에는 ‘邈, 茫茫, 滄茫, 迥, 眇冥, 渺, 緲, 蒼蒼, 淼茫’ 등이 주로 대응되었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아라호’로 되어 있다. ¶아라 請 업슨 므를 보라〈금삼 2:40ㄱ〉. 聖賢ㅅ 일후미 오라 아라니 나그내로 뇨매 病이 마다 보차놋다(聖賢名古邈 羈旅病年侵)「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3ㄴ〉.
주030_1)
*〈중간본〉에는 ‘㤙惠’로 되어 있다.
주031)
호 : 은혜는 황은(皇恩)의 나직함을 받았다라는 뜻이다.
주032)
호 : 나직함을. #-+오+ㅁ+.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謙遜 辭讓야  씨라〈월석 23:31ㄴ〉. 惣戎 큰 體 두워고 降服 將軍  마 미놋다(惣戎存大體 降將飾卑詞)「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주033)
받놋다 : 받드는구나. 받-+++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天神이 바블 받거늘〈석상 3:38ㄱ〉. 圖로 님금 받곡 鳳로 큰 道理 드리웍(圖以奉至尊 鳳以垂鴻猷)「鳳凰臺」〈두시 17:2ㄱ〉.
주034)
장열(張說) : 667~731. 당나라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 선조는 범양(范陽) 사람이고, 하동(河東)에 살았다. 자는 도제(道濟) 또는 열지(說之)다. 무측천(武則天) 때 응조(應詔)하여 태자교서(太子校書)에 임명되었다. 중종(中宗) 때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었고, 예종(睿宗) 때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어 예종에게 태자 이융기(李隆基)에게 국사를 감독하게 할 것을 권했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초에 중서령(中書令)에 오르고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졌다. 나중에 병부상서와 동중서문하삼품을 역임하고, 삭방군절도사(朔方軍節度使)를 겸임했다. 변방의 병사 20여 만 명을 없애고, 또 부병(府兵)이 많이 도주했으니 당번위사(當番衛士)를 없애고 병사를 모아 숙위(宿衛)에 충당할 것을 주청했다. 다시 중서령을 겸임하고 수국사(修國史)에 올라 여정서원(麗正書院)의 일을 맡았다. 문사(文辭)에 뛰어나 조정의 중요한 문건이 대개 그의 손에서 나왔다.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과 함께 연허대수필(燕許大手筆)로 불렸다. 이임보(李林甫)의 제제를 받아 재상에서 파직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문집이 있다.
주035)
 : 맑은. -[淡]+.
주036)
하니 : 많으니. 하-[多]+니.
주037)
션 : 선비의. 션+∅.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참조; 션븨.
주038)
술업(術業) :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술(醫術), 점복(占卜), 통역(通譯), 역산(曆算) 등의 잡류(雜類)의 기술업(技術業)이나 잡업(雜業). 여기서는 유술(儒術)의 지식을 가리킨다.
주039)
일훔과 : 이름과. 일훔[名]+과.
주040)
도다 : 가지런하도다. #-+도+다. ¶- : 니 오 시고 샤 녜 光明이 겨시며〈석상 21:46ㄴ〉. 峽ㅅ 안햇 雲安ㅅ 올  樓에 폇 디새 도다(峽裏雲安縣 江樓翼瓦齊)「子規」〈두시 17:17ㄴ〉.
주041)
## 장균(張均) : ?~?. 당나라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 장열(張說)의 아들이다. 현존 개원(開元) 4년(716) 진사가 되었다. 천보(天寶) 중에 거듭 승진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과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했다. 나중에 건안태수(建安太守)로 쫓겨났다가 대리경(大理卿)으로 옮겼다. 안녹산(安祿山)에게 억지로 중서령(中書令) 임명을 받았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죽음을 면하고 합포(合浦)로 유배되었다. 문집이 전한다.
주042)
헌면(軒冕) : 옛날에 대부 이상 관원들이 타던 수레와 입은 면복(冕服). 흔히 고관(高官)이나 관직을 통칭하여 이르기도 한다.
주043)
천궐(天闕) : ①천상(天上)에 있는 궁궐(宮闕). ②천자(天子)의 궁궐. 그리하여 조정(朝廷) 또는 경도(京都)를 가리킨다. ③두 봉우리가 대치(對峙)하고 있는 곳. 그 모습이 쌍궐(雙闕)과 닮아 이렇게 불린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44)
임랑(琳琅) : 아름다운 옥의 일종. 또는 구슬이 부딪치는 듯한 맑은 목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름다움 시문(詩文)을 칭송하는 말로 쓰인다.
주045)
개규(介珪) : 대규(大圭).
주046)
대규(大珪) : 패옥(佩玉). 정자(丁字) 모양을 하고 있고 용도는 홀(笏)과 같은데, 요대(腰帶) 사이에 끼워두었다가 이를 기록해 비망(備忘)에 썼다. 홀(笏) : 천자(天子) 이하 공경사대부(公卿士大夫)가 조복(朝服), 제복(祭服), 공복(公服) 차림을 했을 때 손에 쥐는 작은 판(板). 그 신분에 따라 1품부터 4품까지의 관원은 상아(象牙)로 만든 아홀(牙笏)을, 5품 아래로는 나무로 만든 목홀(木笏)을 손에 쥐었다.
주047)
술위 : 수레.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 3:6ㄴ〉. 蕭育의  술위 便安히 定止 몯얏도소니 蜀로 가 使者 려 어드러 가니오(蕭車安不定 蜀使下何之)「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ㄴ〉.
주048)
고 : 타고. -[乘]+고.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내 그저긔 六牙白象王 고 굴근 菩薩衆과로 그 고대 가〈석상 21:52ㄴ〉.  알 보논 이제와 녜왓 드로 江漢애  가논  노라(眼前今古意 江漢一歸舟)「懷灞上遊」〈두시 3:39ㄱ〉.
주049)
슨 : 쓴. 스-[冠]+ㄴ. ‘모자를 쓰다’의 ‘쓰다’는 15세기 국어에서는 ‘다’로 표기되지만 병서 표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두시언해』에서는 ‘스다’로 표기되었다. ¶五分律中에 나모 바리 면 偸蘭罪 犯리라〈월석 25:55ㄱ〉. 남진 겨지븨 오 고 겨지븐 남지늬 오  디니〈구급방 상:16ㄱ〉. 紗帽 스고 며기 조차 와 져근  이 亭子애 요라(紗帽隨鷗鳥 扁舟繫此亭)「泊松滋江亭」〈두시 14:38ㄱ〉.
주050)
사미 : 사람이. 사+이.
주051)
하 : 하늘의. 하[天]+ㅅ. 『두시언해』 권19에는 ‘하’이 ‘하’〈두시 19:17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15세기 국어에서 ‘짓, 픗’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052)
버럿건마 : 벌어져 있지마는. 벌-[列]+어#잇-+거+ㄴ마.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벌- : 두 鐵圍山  어드 해地獄이 버러 잇니라〈월석 1:28ㄴ〉. 森然히 버러 地軸이 올맷고(森羅移地軸)「冬日 ··· 帝廟」〈두시 6:27ㄴ〉.
주053)
서리예 : 사이에. 서리[間]+예. ¶野人ㅅ 서리예 가샤 野人이 외어늘〈용가 5〉. 差池히 組冕 화 니 다봇 서리예셔 니러나니(差池分組冕 合沓起蒿萊)「秋日 ··· 三十韻」〈두시 3:10ㄱ〉.
주054)
아라볼 : 알아볼. 알-[知]+아#보-+ㄹ.
주055)
거시라 : 것이다. 것-+이+라.
주056)
계(稽) : 조사하다. 확인하다.
주057)
영관(伶官) : 악관(樂官). 음악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악관(樂官)을 달리 일컫는 말. 본래 대대로 영씨(伶氏)가 악관이 되어 뛰어난 솜씨를 보였으므로 ‘영관’을 악관과 동의어로 쓴 데서 비롯했다.
주058)
악관(樂官) : 문자대로 풀이하면 음악을 관장하는 관리. 하지만 악관이 문관(文官) 출신인지, 아니면 악공(樂工) 출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058_1)
*〈중간본〉에는 ‘書에’로 되어 있다.
주059)
후직(后夔) : ?~?. 주왕조(周王朝)의 전설적 시조. 농경신(農耕神)으로, 오곡(五穀)의 신이기도 하다. 성(姓)은 희(姬)씨고, 이름은 기(棄)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記)에 따르면 유태씨(有邰氏)의 딸로 제곡(帝嚳)의 아내가 된 강원(姜原)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感生說話]고 한다. 그것이 불길하다 하여 세 차례나 내다버렸지만 그때마다 구조되었다[棄子說話]고 한다. 나중에 요제(堯帝)의 농관(農官)이 되고 태(邰, 陝西省 武功縣 부근)에 책봉되어 후직이 되었다.
주060)
그를 : 글을. 글[書]+을.
주061)
반기 : 반드시. 반+이. ‘반기’는 ‘반’과 부사화접미사 ‘-이’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 ‘반’은 그 자체로는 쓰인 용례가 없으나 ‘반다, 반반’ 등으로 쓰인 용례가 확인된다. ¶반- : 方正은 모나미 반 씨오〈월석 2:41ㄴ〉. 반반기 : 반반기 프르며 누르닐 니라〈금삼 4:21ㄱ〉. 반기 : 正音은 正 소리니 우리 나랏 마 正히 반기 올히 쓰논 그릴 일후믈 正音이라 니라〈월석 1:석보상절 서5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주062)
외오며 : 외우며. 외오-[誦]+며. ¶和尙 갓가 이셔 외오다 논 마리니〈석상 6:10ㄱ〉. 老夫의 詩 외오더니라(誦得老夫詩)「得舍弟消息」〈두시 8:47ㄱ〉.
주063)
기악(虁樂)앳 법(法)을 : 기(虁)의 음악의 법을.
주064)
오히려 : 오히려. 오히[同]+려. ‘-려’는 부사화접미사로 ‘새려’ 등에서 용례를 볼 수 있다. 원문의 ‘猶’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오히려’는 주로 ‘尙, 猶’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猶’의 번역으로 쓰인 ‘’는 ‘아직’, ‘지금도 역시’의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히려 : 비록 새려 더 修補호미 업스나 오히려 그 위 두워 딕히우며(雖無新增修 尙置官居守)「九成宮」〈두시 6:2ㄴ〉.
주065)
마초놋다 : 맞게 하는구나. 맞추어 하는구나. 맞-+호+++오+ㅅ+다. 원문의 ‘稽’의 번역으로 쓰였다. ‘마초-’는 ‘맞-’과 사동접미사 ‘-호-’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사동사이며 여기에 다시 강세접미사 ‘--’가 결합되어 생성된 단어이다. 강세접미사 ‘--’가 쓰인 낱맡로는 ‘거슬-, 저리-’ 등이 있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詳考 子細히 마초 알 씨라〈석상 9:38ㄴ〉. 證信은 마초 信케  시오〈원각 상1-2:23ㄱ〉. 東岳ㅅ 中에 가 글 닐거 열  墳典 마초니라(讀書東岳中 十載考墳典)「故秘 ··· 源明」〈두시 24:32ㄱ〉. -- : 詳考 子細히 마초 알 씨라〈석상 9:38ㄴ〉. 證 마초 〈훈몽 하:12ㄴ〉. 逆은〈두시 11:40ㄱ〉 거슬 씨라〈법화 2:167ㄴ〉. 저리며 키 울어 五白 블로니(憑陵大叫呼五白)「今夕行」〈두시 11:39ㄴ〉.
주066)
벽제(鷿鵜) : 물새[水鳥] 이름. 속칭 유압(油鴨)으로 불린다. 오리와 닮았지만 조금 작다. 잠수(潛水)를 잘한다. 옛 사람들은 그 기름을 칼날에 발라 녹스는 것을 막았다.
주067)
예형(禰衡) : 173~198. 후한 말기 평원(平原) 반현(般縣) 사람. 자는 정평(正平)이다. 젊었을 때부터 말주변이 있었고, 성격이 강직하면서 오만했다. 오직 공융(孔融), 양수(楊修)와만 마음을 터놓고 사귀었다. 공융이 그의 재능을 아껴 여러 차례 조조(曹操) 앞에서 칭송했다. 조조가 만나려고 불렀지만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조조가 불러 고사(鼓史)로 삼아 빈객(賓客)들을 불러 모으고 그를 욕보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모욕을 당했다. 조조가 노하여 형주에 사신으로 보내 유표(劉表)의 손을 빌려 그를 죽이려 했다. 유표를 만나 비난의 말을 퍼 붇자 기분 나쁘게 여긴 유표는 그를 강하태수 황조(黃祖)에게 보냈다. 결국 욱하는 성격의 황조를 욕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작품에 〈앵무부(鸚鵡賦)〉가 있다.
주067_1)
*〈중간본〉에는 ‘鸚鵡賦’로 되어 있다.
주068)
부든 : 붓은. 붇[筆]+은.
주069)
능범(凌犯)고 : 초월하고. 凌犯#-+고. ‘능범(凌犯)하다’의 국어사전 뜻풀이는 ‘무리하게 침범하다’이나 여기서는 ‘능가하다, 초월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주070)
카온 : 날카로운. ㅎ#갑+오+ㄴ. ‘ㅎ’에 형용사 파생접미사 ‘-갑-’이 결합되어 어간 ‘캅-’이 형성되었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諸根이 聰明코 카 智慧며 해 드러〈석상 9:16ㄴ〉. 구든 甲 닙고 카온 兵器 자바 西極 티니 崑崙 月窟이 東녀긔 노팻더라(被堅執銳略西極 崑侖月窟東嶄巖)「魏將軍歌」〈두시 5:38ㄱ〉.
주071)
갌 : 칼의 날을. 칼날을. 갈[刀]+ㅅ+ㅎ[刃]+. ¶光明이 빗나 싁싁야 어루 그 갌 犯티 몯호미 니〈금삼 5:48ㄱ〉. 되  大宛 나랏 일훔난 거시니 갈 모  여윈  이럿도다(胡馬大宛名 鋒稜瘦骨成)「房兵曹胡馬詩」〈두시 17:34ㄴ〉.
주072)
기르로 : 기름으로. 기름[油]+로. 원래의 ‘기로로’에서 교정된 것이다.
주073)
빗나게 : 빛나게. 빛[光]#나-+게. ¶히 여위실  金色光 더옥 빗나더시다〈석상 3:39ㄴ〉.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 빗나 흐르 벼리 솟  도다(回回偃飛盖 熠熠迸流星)「揚旗」〈두시 5:48ㄱ〉.
주074)
도다 : 듯하도다. #-+도+다. ‘도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도다’도 두루 쓰였다. ¶도다 : 이브로 닐오미 입 버운 도다〈금삼 5:4ㄱ〉. 나 도랏 羹애 라기도 섯디 아니야도 便安히 너기노니 너희 구스리 보 외요미 貴 도다(吾安藜不糝 汝貴玉爲琛)「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ㄴ〉. 도다 : 벼리 돌며 서리 오매 가 새 改變니 몸과 世間ㅅ 이  야지 리 가 도다(星霜玄鳥變 身世白駒催)「秋日 ··· 三十韻」〈두시 3:7ㄴ〉.  펴 톼 아다이 웃고 放逸 바 톼 리 녀 도다(披顏爭倩倩 逸足競駸駸)「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8ㄱ〉.
주075)
우우(友于) : 형제간의 사이가 좋은 것.
주076)
단예(端倪) : 단(端)은 시작이라는 의미이고, 예(倪)는 끝, 경계란 뜻으로, 일의 처음과 끝. 일의 본말(本末)과 시종(始終). 멀리 보면 公의 실마리가 보인다. “공경이 될 명망이 각자에게 실마리가 있다.”라는 뜻이다.
주077)
공보(公輔) :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인 삼공(三公)과 사보(四輔). 삼공은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 또는 승상(丞相)과 태위(太尉), 어사대부(御史大夫), 또는 대사마(大司馬)와 대사공(大司空), 대사도(大司徒), 또는 태위와 사공(司空), 사도(司徒)를 말한다.
주078)
혀냇건마 : 빼어나 있건만. 혀나-아#잇-+거+ㄴ마. ‘혀나-’는 ‘빼어나다’의 뜻과 ‘빼다’의 뜻이 있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빼어나다) : 圓頓敎法 키 甚히 즈르고 혀나 人情에 갓갑디 아니 人情 업다 니시니〈남명 하:38ㄴ〉. 내 너교 〈두시 19:2ㄱ〉 모 혀나 조로왼 路津에 올아셔 님금을 堯舜ㅅ 우희 닐위이곡(自謂頗挺出 立登要路津)「奉贈韋 ··· 二十二韻」〈두시 19:2ㄱ〉. (빼다) : 艱難 예 모 혀나 누늘  도 보놋다(挺身艱難際 張目視寇讐)「送韋 ··· 判官」〈두시 22:37ㄱ〉. -ㄴ마 : 對答 표미  얀마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석상 3:18ㄱ〉. 司直은 冗雜 벼스리 아니언마 거츤 뫼헤 甚히 興趣 업도다(司直非冗官 荒山甚無趣)「送高 ··· 閬州」〈두시 22:39ㄴ〉.
주079)
공보(公輔)외와뎌 : 공보가 되고 싶어. 공보(公輔)+외-+오+아#디-+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뎌’는 『두시언해』에서는 내포문어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국어에서 ‘-어지다’로 변화한 ‘믈어뎌〈두시 6:2ㄴ〉, 러뎌〈두시 8:65ㄴ〉, 아뎌〈두시 9:32ㄴ〉, 업더뎌〈두시 5:36ㄴ〉, 이저뎌〈두시 3:72ㄱ〉’ 등과는 다른 형태이다. ¶외와디- : 親友ㅣ 외와뎌 願시니라〈영가 하:142ㄱ〉. 외와라 : 이제 出家 사미 외와라〈석상 3:32ㄱ〉. 부텻 恩惠 갑오 마 得호미 외와라 다다〈법화 2:251ㄱ〉. -어뎌(내포문어미) : 나라해셔 모로매 사호 行홀 디어니와 사 戈鋋을 그치시과뎌 놋다(國須行戰伐 人憶止戈鋋)「秋日 ··· 一百韻」〈두시 20:4ㄱ〉. 지븨 이셔셔 녜 일 닐오 나랏 일 시름야  가멸와뎌 願다(在家常早起 憂國願年豐)「吾宗」〈두시 8:52ㄱ〉.
주080)
라오 : 바람은. 라-[願]+오+ㅁ+. 15세기 국어의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용법으로 쓰였다. ¶(바라보다) :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석상 3:8ㄱ〉. 須達이 라고 몯내 과 호〈석상 6:20ㄴ〉. 기리 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리고져 고  디위 라셔 西夷 거더 리고져 노라(長吁飜北寇 一望卷西夷)「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4ㄱ〉. (원하다) : 열 리 거늘 라샤 아 나하 나랏 位 닛긔 코져 더시니〈석상 11:30ㄴ〉.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석보상절 서6ㄱ〉. 누니 게 라오믈 디  當호니 미 주그니   노햇 도다(眼穿當落日 心死著寒灰)「喜達行在所三首」〈두시 5:3ㄱ〉.
주081)
제여곰 : 제각각. 제+여+곰. ¶品은 난호아 제여곰 낼 씨라〈석상 13:36ㄴ〉. 平 몰애예 一萬 帳幕이 버렛니 部伍ㅣ 제여곰 블로 뵈다(平沙列萬幕 部伍各見招)「後出塞五首」〈두시 5:31ㄱ〉.
주082)
그티 : 끝이. 긑[端]+이.
주083)
잇니라 : 있구나. 있느니라. 잇-[有]++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084)
통적(通籍) : ①문적(門籍)이나 명패(名牌)에 성명, 연령 등을 적어 궁문(宮門)의 출입을 허가해 주던 일. ②관적(官籍)에 오름. 또는 관적에 오른 관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85)
청쇄(靑瑣) : 황궁(皇宮)의 문이나 창을 장식하는 둥근 화문(花紋).
주086)
형구(亨衢) : 사통팔달(四通八達)한 큰 길.
주087)
자니(紫泥) : ①자주(紫朱)빛 인주(印朱). 옛날 무도(武都)에서 나는 자줏(紫朱)빛 진흙으로, 조서(詔書)를 봉(封)하는 데 썼다. ②조서(詔書).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88)
안험(案驗) : 자세히 조사하여 증거를 세움. 안(案)은 죄과(罪科)를 규찰하거나, 조사하여 증거를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089)
신새(信璽) : 옛날 황제(皇帝)의 새인(璽印)의 하나.
주090)
적(籍)을 : 통행증을. 통적(通籍)을. 籍+을.
주091)
청쇄문(靑瑣門) : 한(漢)나라 때의 궁문(宮門) 이름.
주092)
나마드니 : 넘나드니. 남-+아#들-++니. ‘나마들-’은 『두시언해』의 이 용례만 보인다. ‘남-’과 ‘-넘-’은 『두시언해』에서 둘 다 쓰였다. 〈중간본〉에는 ‘너마드니’로 되어 있다. ¶남다 : 王이 곧 버힌대  져지 소소 노 丈이 남고 王 도 제 러디니라〈남명 상:53ㄴ〉. 들- : 旃檀香 모매 면 브레 들오도 브리 몯 며〈월석 1:26ㄴ〉. 참조; 나마 : 世間 리시고 城 나마 逃亡샤 車匿이 돌아 보내샤 盟誓샤〈석상 6:4ㄴ〉. 되 올젯 드트리 太行ㅅ 뫼 나마 여러 種類ㅣ 셔울 니르러 오다(胡塵踰太行 雜種抵京室)「留花門」〈중간두시 4:14ㄱ〉. 넘다 : 새뱃 비치 져기 번거든 가야 西南ㅅ 묏그틀 너머 가리라(晨光稍朦朧 更越西南頂)「西枝村尋置草堂地夜宿贊公土室二首」〈두시 9:15ㄱ〉.
주093)
훤 : 훤한. 훤#-+ㄴ. 『두시언해』에서 ‘훤-’는 주로 ‘闊’의 번역으로 쓰였다. 참조; 훤히. ¶훤- : 예 미처 險阻ㅣ 다 업스니 비르서 드르히 훤호 깃노라(及茲險阻盡 始喜原野闊)「鹿頭山」〈중간두시 1:36ㄱ〉. 여가 어즈러운 世 平와 서르 뵈아  번  님 正히 답답신  훤케 려뇨(走平亂世相催促 一豁明主正鬱陶)「久雨 ··· 不至」〈두시 5:37ㄱ〉.
주094)
길헨 : 길엔. 길ㅎ+에+ㄴ.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95)
블근 : 붉은. 븕-[紅]+은.
주096)
기 : 흙이. [壤]+이.
주097)
비취옛도다 : 비추고 있도다. 비취-[照]+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光明이 두루 비취더시니〈석상 3:21ㄱ〉. 峽엣 구루믄 長常 바 비취옛고 맷  마초아 과 兼얏도다(峽雲常照夜 江月會兼風)「獨坐二首」〈두시 3:42ㄱ〉.
주098)
영규(靈虬) : 각루(刻漏, 물시계) 위에 용 모양으로 새긴 장식물(裝飾物). 그리하여 각루(刻漏)를 가리키게 되었다.
주099)
각루(刻漏) : 물시계. 밑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은 누호(漏壺)라는 그릇 안에 눈금을 잘게 새긴 누전(漏箭)을 세우고 물이 새서 줄어드는 정도를 통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누수기(漏水器). 자격루(自擊漏).
주100)
나죗 : 저녁의. 나죄[夕]+ㅅ. 참조; 나조ㅎ.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가 둘 다 쓰였다. 후자는 ‘낮’의 의미도 있었다.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나죄 : 孔聖이 나죄 주구믈 히 너기니〈월석 18:32ㄱ〉. 다가 내 이 佛頂光聚般怛囉呪 닐뎬 아 브터 나죄 니르리 音聲이 서르 니며〈능엄 7:44ㄱ〉. 노피 벼개 볘여 나죄 虛히 조오노니 슬픈 놀애 뉘 對答고져 리오(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7ㄱ〉. 나조ㅎ : 孔聖도 나조 주구믈 히 너기샤미〈석상 20:12ㄱ〉. 孔子ㅣ 니샤 아 道理 드르면 나조 주거도 리라 시니라〈석상 20:13ㄱ〉.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水宿 ··· 群公」〈두시 3:19ㄴ〉.
주101)
사 : 화살을. 살[箭]+.
주102)
옮기거든 : 옮기면. 옮-+기+거+든. ¶옮- : 文殊師利여 내 이 이셔 년 듸 옮디 아니호리니〈석상 11:29ㄴ〉. 다봇 옮 호매 시르미 悄悄니 藥 行호매 病이 涔涔놋다(轉蓬憂悄悄 行藥病涔涔)「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옮기- : 주를 다  옮겨 터 되더니〈석상 6:36ㄴ〉. 늘근 나해 기로 술 비주믈 뵈아고  비옌 가야 橙子 옮겨 심고라(衰年催釀黍 細雨更移橙)「遣意二首」〈두시 3:25ㄴ-26ㄱ〉.
주103)
도라오 : 돌아오는. 돌-+아#오-+.
주104)
리 : 말이. +이.
주105)
 : 밟는. -[踏]+.
주106)
바 : 발을. 발[足]+을.
주107)
흗놋다 : 흩뜨리구나. 흗-[散]++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108)
가모(嘉謨) : 고명(高明)한 경국(經國)의 모략(謀略).
주109)
중역(重譯) : 말이 통하지 않아 여러 번 옮겨 번역하는 것. 옛날 주(周)나라 때 월상(越裳)이라는 나라에서 백치(白雉)가 나오자 서장(書狀)을 몇 번 번역하여 이를 바친 고사(故事)에 근거하여, 주로 번방국(藩邦國)에서 사대(事大)하는 나라에 조회(朝會)하거나 진공(進貢)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110)
만이(蠻夷) : 만이(蠻彛). 옛날 사방 변방의 먼 지구에 사는 소수민족(少數民族)을 총칭하는 말. 또한 주로 남방(南方)의 소수민족을 가리킨다.
주111)
이리 : 일이. 일+이.
주112)
중역(重譯) 해 : 중역하는 땅에. 중역하는 곳에. 重譯#-+ ㅎ+애. 당나라가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한족의 지배 영역에 들어 있지 않는 곳은 중역(重譯)이 필요했음을 이 한 구절로 알 수 있다. ‘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주113)
들이니 : 들리니. 듣-[聞]+이(피동)++니. ¶들이다(피동) : 太子ㅣ 소로 눌러 지샤 시울  소리 잣 안히 다 들이더라〈석상 3:14ㄱ〉. 들이다(사동) : 일후믈 간 들이시면 뎌셔 주거 도로 人間애 나아〈석상 9:15ㄱ〉. 약 야 먹곡 내 將 늘거셔 아 여곰 들이디 아니호리라(採藥吾將老 童兒未遣聞)「秦州雜詩十七首」〈두시 13:41ㄴ〉.
주114)
아다온 : 아름다운. 아#답-+은. ¶美 아다 씨니〈석상 13:9ㄱ〉. 됴커나 굿거나 아답거나 아답디 아니커나〈석상 19:20ㄱ〉. 내 사미론 디 性이 偏僻야 아다온 긋 句를 耽야 말 사미 놀라디 아니리어든 주거도 마디 아니다니(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江上 ··· 短述」〈두시 3:31ㄱ〉.
주115)
 : 꾀는. 계책은. [策]+.
주116)
백성(百姓)의게 : 백성에게. 百姓+의게.
주117)
미처 : 미쳐. 및-[及]+어. ¶이러 種種앳 거스로 供養도 몯 미치리며〈석상 20:11ㄱ〉. 노 양 오히려 사 조차 오니 예 미치와셔 이리 란 冥寬之理 嗟嘆노라(突兀猶趁人 及茲嘆冥莫)「靑陽峽」〈중간두시 1:21ㄱ〉.
주118)
가놋다 : 가는구나. 가-[去]++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119)
필해(弼諧) : 서로 협조하여 보좌(輔佐)하는 것. 보좌하는 재능은 잘 펴져 있으니 아무도 당신을 초월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주120)
반작(班爵) : 작위(爵位). 관계(官階).
주121)
필해(弼諧)호 : 협조하여 보좌함을. 弼諧#-+오+ㅁ+.
주122)
뵈야로 : 바야흐로. 유사한 어형으로 『두시언해』를 비롯한 15세기 문헌에는 ‘뵈야로’와 ‘보야로’가 쓰였고, 16세기 문헌에는 ‘보야호로, 뵈야호로, 보야흐로, 뵈야흐로’가 주로 쓰였다.
주123)
 번 : 한 번. 즉 횟수를 말한다. #번. ‘번’은 의존명사이다. ¶須達이 禮 몰라  번도 아니 도라 淨居天이 쵸려 니〈월천 55ㄱ〉.  번 이긔유 엇뎨 足히 議論리오(一勝何足論)「前出塞九首」〈두시 5:29ㄱ〉.
주124)
폇니 : 펴고 있으니. 펴+어#있-++니. 15세기 국어의 ‘-어 잇-’이 ‘-고 있다’의 의미를 가지는 예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어 잇- : 네 이제 사 모 得고 부텨를 맛나 잇니〈석상 6:11ㄱ〉. 白小ㅣ 무리 목수믈 호아 잇니(白小群分命)「白小」〈두시 17:39ㄴ〉. -앳/엣- : 善友太子ㅣ 긼 가온 안잿거늘〈월석 22:51ㄴ〉.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惣戎皆插侍中貂)「諸將五首」〈두시 5:44ㄱ〉. -앗/엇- : 곧 미 두려이 가 너비 國土 머것다 시니〈능엄 2:63ㄱ〉. 가져다가 玉 차반애   니벗도다(蒙將玉饌俱)「麂」〈두시 17:36ㄱ〉.
주125)
서차(次序)엔 : 서차에는. 序次+에+ㄴ.
주126)
 : 또.
주127)
어듸 : 어디. ¶婆羅門 려 닐오 어듸 됴 리  니 잇거뇨〈석상 6:13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秋日 ··· 三十韻」〈두시 3:8ㄴ〉.
주128)
오리오 : 오르겠는가? 오-[登]+리+오. ‘오’는 선행하는 ‘어듸’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주129)
전지(顚躓) : 엎어짐. 넘어짐.
주130)
참처(慘悽) : 참처(慘凄)와 같음. 비참하고 처량함.
주131)
갓 : 헛되이. 공연히. 『두시언해』의 ‘갓’은 원문의 ‘空, 徒’의 번역으로 가장 많이 쓰이며, 그 외에도 ‘惟, 獨, 只, 唯, 但’ ‘漫’ 등의 번역으로 쓰이는데, 선행하는 ‘엇뎨’나 후행하는 ‘, ’ 등과 호응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香 갓 옷곳 것 분 아니라 고로 맏 거슬 다 니르니라〈석상 13:39ㄱ〉. 엇뎨 갓 高祖ㅅ 聖德 니리오 功이 蕭何 曹參의 도오로브터 오니라(豈惟高祖聖 功自蕭曹來)「述古三首」〈두시 3:56ㄴ〉.
주132)
업듣고 : 엎어지고. 엎-[覆]#듣-[落]+고. ¶이 막대 맛뎌 업듣디 아니케 시라〈남명 하:23ㄴ〉. 봄 오매 됴타 쇽졀업시 니놋다 어러운 미 키 업듣게 부놋다(謾道春來好 狂風大放顚)「絕句三首」〈두시 25:21ㄴ〉.
주133)
노로매 : 놂에. 놀-[遊]+오+ㅁ+애.
주134)
매 : 마침내. -[終]++애. 원문의 ‘竟’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135)
혜계(醯鷄) : 멸몽(蠛蠓). 초파리. 초, 간장, 된장, 술 따위에 잘 덤벼드는 파리나 초파리를 일컫는 말.
주136)
마원(馬援) : 기원전 14~기원후 49. 후한 섬서성 흥평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우부풍(右扶風) 무릉(茂陵) 사람. 자는 문연(文淵)이다.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어 처음에 군독우(郡督郵)가 되었다. 녹림(綠林)과 적미(赤眉)가 반란을 일으킨 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신성대윤(新城大尹)과 한중랑태수(漢中郞太守)가 되었다. 왕망이 망한 뒤 양주(凉州)로 달아났다가 외효(隗囂) 밑에서 벼슬하여 수덕장군(綏德將軍)이 되었다. 다시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순하여 외효를 격파했다.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어 건무(建武) 11년(35) 농서태수(隴西太守)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선령강(先零羌)를 격파했다. 주민들에게 경목(耕牧)을 권장해 서변(西邊)을 안정시켰다. 17년(41) 이후에는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교지(交阯, 북베트남)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토벌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평정했다. 일찍이 마혁과시(馬革裹屍)로 맹세하여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에 출정했다. 19년(43)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졌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했지만, 열병환자가 속출하여 고전하다가 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장제(章帝) 건초(建初) 초에 충성(忠成)에 추시(追諡)되었다. 저서에 『동마상법(銅馬相法)』이 있다.
주137)
멸몽(蠛蠓) : 곤충의 하나. 눈에놀이. 몽(蠓).
주138)
그르 : 잘못. ‘그르’는 ‘-’와 결합하여 ‘그르-’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르 : 이 아리 긔 羅睺羅ㅣ니 그르 닐어 羅雲이라도 니라〈석상 3:36ㄴ〉. 正覺 正히 알 씨니 그르 알면 外道ㅣ오 正히 알면 부톄시니라〈월석 1:51ㄱ〉. 將師의 들 그르 일흐면(誤失將帥意)「別李義」〈두시 8:7ㄱ〉. 그르- : 비록 그르야 지 이리 이셔도 내 일후믈 드르면〈석상 9:6ㄴ〉. 尊者ㅣ 엇뎨 期約애 그르시니고〈월석 4:35ㄱ〉. 글 홈 그르호란 아 게을우믈 므더니 너기며 長常 貧窮호란 겨지븨 시르믈 므더니 너기노라(失學從兒懶 長貧任婦愁)「屏跡二首」〈두시 3:30ㄱ-ㄴ〉.
주139)
아로 : 앎은. 알-+오+ㅁ+.
주140)
매 : 마침내. -[終]++애.
주141)
범 그륨 : 범 그림. 범 그리-[畵]+우+ㅁ. ‘그륨’은 파생명사가 아니라 ‘그리-’의 명사형이다.
주142)
니 : 같은 것이. -+#이.
주143)
촛 : 초의. 초[醯]+ㅅ.
주144)
도긧 : 독의. 독[甕]+의+ㅅ.
주145)
벌어지로다 : 벌레이도다. 벌어지+도+다. ‘벌어지’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나못 거프를 들우며 서근  디구메 부으리 무딀 니 심히 주으려  벌어지 머고 비릇 얻놋다(穿皮啄朽觜欲禿 苦飢始得食一蟲)「杜鵑行」〈두시 17:6ㄱ〉. 집 안해셔 기 벌어지와 가야미와 머구믈 아쳗고 기 여 도로혀 모 맛날 고 아디 몯호라(家中厭雞食蟲蟻 不知雞賣還遭烹)「縛雞行」〈두시 17:14ㄴ〉.
주146)
평범(萍泛) : 부평초가 물을 따라 떠돌아다님. 사람의 행처가 일정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주147)
이광(李廣) : ?~기원전 119. 한(漢)나라 때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 문제(文帝) 때 양가(良家)의 자제로 종군하여 흉노(匈奴)를 격퇴하여 낭(郞)이 되고, 무기상시(武騎常侍)를 지냈다. 경제(景帝) 때 효기도위(驍騎徒尉)에 올랐다. 나중에 농서와 북지(北地), 안문(雁門) 등 군(郡)의 태수(太守)를 역임했다. 무제(武帝) 때 입조하여 미앙위위(未央衛尉)가 되고,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를 지냈다. 활을 잘 쏘았고, 병졸을 아끼고 잘 이끌어 모두 날래고 용맹해 전투하기를 좋아했다. 흉노가 두려워하여 몇 년 동안 감히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고 비장군(飛將軍)이라 칭송했다. 일곱 군데 변방 군의 태수를 지냈고, 전후 40여 년 동안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대치하면서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병사들의 마음을 깊이 얻었지만 끝내 봉후(封侯)되지는 못했다. 원수(元狩) 4년(기원전 119)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흉노를 공격했다가 길을 잃고 문책을 받자 자살했다.
주148)
말왐 : 마름. ‘말왐’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萍(말왐)’과 ‘蓬(다봇)’은 ‘두시’에서 ‘두보’가 자주 자신을 비유하던 표현으로 쓰고 있다. ¶말왐 : 날래 籠ㅅ 소갯 새오 하콰  예 믈 우흿 말왐 호라(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衡州送李大夫七丈勉赴廣州」〈두시 8:15ㄴ〉. 말왐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 늘구메 中堂애 갓가이 오라(萍漂忍流涕 衰颯近中堂)「乘雨 ··· 弟宅」〈두시 8:45ㄱ〉. 病 아낫 니 말왐  늘그니로니  防守 녜 穀食屯聚던 히로다(抱疾漂萍老 防邊舊穀屯)「東屯月夜」〈두시 11:49ㄱ〉. 잇 무든 대 본로 즐기논 거시언마 말왐과 다봇 야 安定야 사로미 업소라(苔竹素所好 萍蓬無定居)「將別巫峽 贈南卿兄을 瀼西果園四十畝노라」〈두시 15:16ㄱ〉. 외 머글  오히려 나그내 외여쇼니 말왐 시 뇨 버므렛 도다(瓜時猶放寓 萍泛若夤緣)「秋日 ··· 一百韻」〈두시 20:3ㄱ〉. 喪亂 後에 故人은 두 누넷 여희엿 므리로소니 보미 기픈 내조친 나그내   말왐 도다(亂後故人雙別淚 春深逐客一浮萍)「題鄭十八著作丈」〈두시 21:40ㄱ〉. 그위예 갯다가 뵈야로 玉이 것거디니 브텨 무도 말왐과 다 가놋다(之官方玉折 寄葬與萍漂)「哭王彭州掄」〈두시 24:57ㄱ〉.
주149)
니 : 떠다니듯. -[浮]#니-[行]+. ‘니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 愛欲 흐린 믌겨 그치니라〈영가 서:5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秋日 ··· 三十韻」〈두시 3:8ㄴ〉. 니- : 六趣예 두루 닐 어즈럽다 니라〈석상 3:20ㄱ〉. 슬프다 너 石笋이 뷘 일후믈 擅得얫도소니 後에 난 사미 아디 몯야 오히려 키 니놋다(嗟爾石笋擅虛名 後生未識猶駿奔)「石笋行」〈두시 3:70ㄴ〉. 니- : 諸生앤 녯 뎌른 오시오 나그내로 뇨   말와미로라(諸生舊短褐 旅泛一浮萍)「橋陵 ··· 諸官」〈두시 6:20ㄱ〉. 아 恩情엣 글워리 重니 녀 브터슈메 서르 맛나미 어렵도다(骨肉恩書重 漂泊難相遇)「得舍弟消息」〈두시 8:29ㄴ〉. - : 그제 춋브리  가 잇더니〈석상 3:26ㄱ〉. 다봇 옮 호매 시르미 悄悄니 藥 行호매 病이 涔涔놋다(轉蓬憂悄悄 行藥病涔涔)「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주150)
호미 : 함이. -+오+ㅁ+이.
주151)
말 : 말. 그칠. 떠돌이 생활을 끝낼. 말-+. ‘말다’ 동사의 ‘ㄹ’ 관형형이다.
주152)
나리 : 날이. 날[日]+이.
주153)
업스니 : 없으니. 없-[無]+으니.
주154)
복홧 : 복숭아의. 복[桃]#화+ㅅ. ¶복화 호 복화 아니며〈남명 상:26ㄱ〉. 麝香은 石竹에셔 올오 鸚鵡 金ㅅ 비쳇 복화 딕먹놋다(麝香眠石竹 鸚鵡啄金桃)「山寺」〈두시 9:37ㄴ〉.
주155)
해 : 그늘에. ㅎ[陰]+애.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光陰은  히라〈남명 상:10ㄱ〉.   두위잇 며기 노니 그윗 리 버듨  찻도다(江渚翻鷗戲 官橋帶柳陰)「長吟」〈두시 3:48ㄱ〉.
주156)
녜 : 옛날.
주157)
니던 : 다니던. -[走]#니-[行]+더+ㄴ.
주158)
길흘 : 길을. 길ㅎ[道]+을.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59)
스치노라 : 생각하노라. 스치-[想]++오+라. 『두시언해』에서 ‘스치다’는 주로 ‘想’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160)
취허(吹噓) : 입김으로 훅 불어 물건을 날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잘한 것을 추켜세워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천거(薦擧). 취거(吹擧).
주161)
규괴(睽乖) : 분리됨. 어그러짐.
주162)
부러 보내요 : 불어 보냄을. 불-[吹]+어 보내-[送]+오+ㅁ+. 원문의 ‘취허(吹噓)’의 번역으로 ‘사람을 천거한다’는 뜻이다. 〈중간본〉에는 ‘부리 보내요믈’로 되어 있다.
주163)
사 : 사람이. 사+의. ‘-의’는 표제명사 ‘바’가 이끄는 내포문의 의미상의 주어에 쓰인 속격조사이다.
주164)
브논 : 부러워하는. 블-[羨]++오+ㄴ. ‘블다’는 ‘-어-’가 결합된 ‘블어다’로도 쓰였고, 형용사파생접사 ‘-업-’이 결합된 ‘불업다’로도 쓰이다가 현대국어에서는 형용사 ‘부럽다’에 ‘-어하-’가 결합된 ‘부러워하다’만 남게 된 전형적인 동사 가운데 하나이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블- : 羨 블울 션〈신유 하:26ㄴ〉. 블늘 션 羨〈유합 7:26ㄱ〉. 羨 블을 션〈유합 영26ㄱ〉. 어르메 새 수플로 가매 개 가야오 울워러 브러 보노라(仰羨黃昏鳥 投林羽翮輕)「獨坐」〈두시 3:45ㄱ〉. 불- : 불다 羨〈한불 347〉. 부러- : 부러 션 羨〈왜유 하:35ㄱ〉. 羨 부러다〈형기 8ㄱ〉. 불어다 羨〈한불 343〉. 불워다 羨〈한불 344〉. 불어허다 羨〈국한 154〉. 부러워- : 부러워다 羨〈한불 343〉. 부럽- : 부럽다 羨〈한불 343〉.
주165)
배언마 : 바이지만. 바[所]+이+건+마. ‘사 브논 배언마’은 ‘人所羨’을 번역한 것으로 원문은 피동문이다. 즉 ‘사람들에 의해 부러움을 당하다’ 즉 ‘사람들이 부러워한다’라는 뜻이다. ‘人所羨’을 시에 사용한 경우는 권10(明光起草人所羨(明光殿에 起草호 사미 브논 배언마)〈중간두시 10:45ㄱ〉에서도 보인다. 『두시언해』에서 ‘A所B’ 구문은 피동, 관형어, 의존명사구문 등으로 기능하는데 각각의 언해 양상은 다음과 같다.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피동)雨露之所濡(비와 이슬왜 저쥬매)「北征」〈중간두시 1:3ㄱ〉. 人生快意多所辱(人生애 들 훤히 호리라 면 辱외욜 배 한 거시로다)「醉爲 ··· 相看」〈두시 3:53ㄱ〉. 滄波老樹性所愛(滄波와 늘근 나모 내 本性에 논 배니)「柟木 ··· 拔歎」〈두시 6:41ㄱ〉. (수식 관형어) : 客居所居堂(나그내로 사로매 사논 밧 지비)「客居」〈두시 6:48ㄴ〉. 自下所騎馬(제 탯  브려)〈두시 8:57ㄱ〉「送重 ··· 南海」. (의존명사) : 斯焉心所求(이런 히 매 求논 디라)「寄贊上人」〈두시 9:15ㄴ〉. 苔竹素所好(잇 무든 대 본로 즐기논 거시언마)「將別巫峽 贈南卿兄을 瀼西果園四十畝노라」〈두시 15:16ㄱ〉. -ㄴ마 : 對答 표미  얀마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석상 3:18ㄱ〉. 司直은 冗雜 벼스리 아니언마 거츤 뫼헤 甚히 興趣 업도다(司直非冗官 荒山甚無趣)「送高 ··· 閬州」〈두시 22:39ㄴ〉.
주166)
소사 : 나솟아. -[飛]#솟-[踊]+아. ¶歡喜踊躍 깃거 소 씨라〈월석 8:48ㄴ〉. 소소미 이 토미 잇니 萬里예 어로 빗기 녀리로다(驍騰有如此 萬里可橫行)「房兵曹胡馬詩」〈두시 17:34ㄴ〉.
주167)
날 : 날. 나-[出]+ㄹ. 원문의 ‘騰躍’의 번역이다.
주168)
이리 : 일이. 일+이.
주169)
지즈로 : 인하여. ‘지즈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지즈루’도 쓰였다. ¶公孫이 지즈로 險호 믿니 候景 사잡디 몯얏도다(公孫仍恃險 侯景未生擒)「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8ㄱ〉. 프렛 이스리  해 저지고 거믜주리 지즈로 갇디 아니얏도다(草露亦多濕 蛛絲仍未收)「獨立」〈두시 3:27ㄱ〉. 지즈루 : 여러  지즈루 머리 여희여쇼니 患難 하매 便安히 사디 몯소라(積年仍遠別 多難不安居)「遠懷舍弟穎觀等」〈두시 8:42ㄴ〉.
주170)
어그릇도다 : 어그러지도다. 어그+릋-[違]+도+다. ‘어그릋-’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어그릋’의 ‘어그’는 ‘어긔-’와 관련이 있고, ‘릋’은 ‘맃, 으릋’으로도 쓰이는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두시언해』에는 ‘어그릋-’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그르치’도 쓰였다. 참조; 어그릋- 어긔릋- 어그맃- 어긔맃- 어긔으릋- 어긔- 어그르치. ¶어그릋- : 맷 비치 다 흘러 올마가 傳語야 아니 한 덛 서르 賞玩호 서르 어그릇디 마롤 디니라(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曲江二首」〈두시 11:20ㄱ〉.  술 머거 사미 모다 료 오래 리고 朝會호 게을이 호니 眞實로 世로 다야 어그릇도다(縱飮久襭人共棄 懶朝眞與世相違)「曲江對酒」〈두시 11:20ㄴ〉. 어긔릋- : 賦稅 골오 호매 어긔르츤가 전노니 人民의 헐므믈 문 디 아니도다(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ㄴ〉. 오히려 수우 대로 어긔르츠며 오히려 半만 주근 머귓 미 허도다(尙錯雄鳴管 猶傷半死心)「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3ㄴ〉. 어그맃- : 디뇨매 俗人 애 가다니 해 와 이쇼니 매 어그리춘 배 업도다(經過倦俗態 在野無所違)「甘林」〈두시 15:4ㄴ〉. 매셔 이에 이 러듀미 後에 니   어긔리츤가 전노라(江湖後搖落 亦恐歲蹉跎)「蒹葭」〈두시 18:10ㄱ-ㄴ〉. 어그르치(부사) : 生植엿 萬物이 半만 어그르치 외니 아다온 나 거시 將次ㅅ 말리러라(植物半蹉跎 嘉生將已矣)「種萵茞幷序」〈두시 16:65ㄴ〉. 어긔- : 群凶이 오히려 사호 求니 머리 도라 라왼 처 과 해 어긔도다(群凶猶索戰 回首意多違)「卽事」〈두시 5:17ㄱ〉.
주171)
청운(靑雲) : ①청색 구름. ②높은 공중의 구름. ③고관(高官). ④원대한 포부.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172)
프른 : 푸른. 프르-[碧]+ㄴ.
주173)
바 : 바다를. 바[海]+. 15세기에는 ‘바’과 ‘바다ㅎ’가 쌍형어로 쓰였지만 『두시언해』에는 ‘바’만 쓰였다. ‘바’도 나타난다. ¶바 : 四海 四方앳 바리라〈석상 3:5ㄴ〉. 날 바 건너가  부 돗 아니라(一日過海收風帆)「魏將軍歌」〈두시 5:38ㄴ〉. 닐굽 山  香水 바다히니〈월석 1:23ㄱ〉.
주174)
건나미 : 건냄이. 걷-[步]#나-[出]+오+ㅁ+이. 건나-[渡]+오+ㅁ+이. ‘건나미’의 성조는 ‘:건:나미’ 즉 ‘:건(상성)’과 ‘:나(상성)’, 그리고 ‘미(평성)’인데 어간 말음이 ‘ㅏ’일 때는 명사형 ‘-옴’이, ‘ㅓ/ㅕ’일 때 명사형 ‘-움’이 결합하되 ‘-오-/-우-’는 생략되고 성조는 상성으로 변동하며, 간경도감본 언해서 중 〈선종영가집언해〉(1464)부터는 어절 말에서 거성(1점)이 평성(0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경향이 점차 확산되어 간다. ¶므리 만코 길 멀오 도 하고 건나디 몯야〈월석 10:23ㄴ〉.  오 도로  타 東西에 도혀  건나라(束帶還騎馬 東西却度船)「歸」〈두시 3:35ㄱ〉.
주175)
구루메 : 구름에. 구룸[雲]+에.
주176)
리 : 사다리. 다리. 리[梯]+∅.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사다리) : 큰 바래 能히 고기 낫골  업스리아  구루메  리 잇니라(巨海能無釣 浮雲亦有梯)「水宿 ··· 群公」〈두시 3:21ㄱ〉. 엇뎨 萬丈인 리 어더 님금 爲야 웃그테 올라가려뇨(安得萬丈梯 爲君上上頭)「鳳凰臺」〈두시 17:1ㄱ〉. (교량) : 城 높고 리 업건마〈용가 34〉. 므리 면 리 現니〈월석 17:21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주177)
노티 : 놓지. 놓-[設]+디. ¶녜 金剛神을 브려 寶塔 바다 해 노티 아니케 고〈월석 25:38ㄴ〉. 됴 고 우리 예 노코 보 아니 됴니여〈석상 3:15ㄱ〉.
주178)
몯리로다 : 못할 것이도다. 몯#-+리+도+다.
주179)
단련(鍛鍊) : 금속에 불을 달구어 두드려서 튼튼하게 하는 일. 그리하여 자신의 재능이나 소질을 각고(刻苦)의 노력을 더해 완성해 나가는 것을 비유한다.
주180)
도라보 : 돌아봄을. 돌-[回]+아#보-[見]+오+ㅁ+. 도라보-[顧]. ¶寶牀 도라보시고 니샤〈석상 3:27ㄱ〉. 層層인 뫼 구버 네 녀크로 도라보니  내콰 묏골왜 여렛도다(四顧俯層巔 淡然川谷開)「冬到金華山觀因得故拾遺陳公學堂」〈두시 3:63ㄴ〉.
주181)
기피 : 깊이. 깊-[深]+이. 척도부사 ‘기피, 노피, 기리, 너비’는 부사화파생접미사 ‘-이’로 인한 파생어들이고, 척도명사 ‘기픠/, 노, 기릐, 너븨’는 명사파생접미사 ‘-/의’에 의한 파생어이다. ¶기피 : 禪定을 기피 다 五神通 得리도 보며〈석상 13:20ㄴ〉. 群公이 모다 힘니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群公紛戮力 聖慮窅裴佪)「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기픠 : 한 비 리와 므리 下界예 야 기픠 十一億二萬由旬이러니〈월석 1:39ㄴ〉. 當時ㅅ 浣花ㅅ 리예 시냇 믌 기픠 아야라 자남즉 더니라(當時浣花穚 溪水纔尺餘)「漲溪」〈두시 13:19ㄴ〉. 노피 : 他化自在天이 次第로 노피 이쇼〈월석 1:32ㄱ〉. 樓 우희 더운 하해 어름과 눈괘 나 니 노피  져비새 새로 지슈믈 慶賀다(樓上炎天冰雪生 高飛燕雀賀新成)「江陵節度陽城郡王~同作노라」〈두시 14:11ㄱ〉. 노 : 노 다 자히러라〈석상 11:10ㄴ〉. 願 노예 자만  어리 외이 녀 그려기 니 여가(願騰六尺馬 背若孤征鴻)「苦雨奉寄隴西公兼呈王徵士」〈두시 12:17ㄴ〉. 기리 : 涅槃 닷가 苦樂 기리 여희리다〈석상 11:3ㄱ〉. 늘근 넉슬 블로 得지 몯리로소니 넉시 갈 길 기리 迷失가 저허노라(老魂招不得 歸路恐長迷)「散愁二首」〈두시 3:33ㄴ〉. 기릐 : 五色綵幡 로 기릐 마 아홉 揭手ㅣ오〈월석 9:53ㄴ〉. 禁掖ㅅ 다맷 대와 다맷 머귀 기릐 열 尋이로소니 훤 門이 누늘 相對야 녜 어득얫도다(掖垣竹埤梧十尋 洞門對雪常陰陰)「題省中院壁」〈두시 6:13ㄴ〉. 너비 : 이 經을 너비 펴며〈석상 9:40ㄱ〉. 所親이 머므러 브터쇼 묻니 너비 호매 내 衰朽 어엿비 너기놋다(所親問淹泊 汎愛惜衰朽)「奉贈李八丈判官」〈두시 8:4ㄴ〉. 너븨 : 그 제 閻浮提 히 기릐 十千 由旬이오 너븨 八千 由旬이오〈월석 23:28ㄴ〉. 프른 모시 너븨 萬 頃이 坤軸을 마 잇  어느 알리오(安知有蒼池 萬頃浸坤軸)「南池」〈두시 13:15ㄱ〉.
주182)
단련(鍜錬)호 : 단련함을. 鍛鍊+-+오+ㅁ+.
주183)
붓그리고 : 부끄러워하고. 붓그리-[慙]+고. ‘붓그리다’는 원래 동사인데, ‘-어-’가 결합된 동사 ‘붓그려다’가 쓰였고, 형용사파생접미사 ‘-업-’이 결합된 파생형용사 ‘붓그럽다’가 쓰였는데, 현대국어에 와서는 ‘부끄럽다’에 ‘-어하-’가 결합된 ‘부끄러워하다’만 동사로 쓰이게 되었다. ¶붓그리- : 제 道理 붓그리다가〈월천 39ㄴ〉. 大闕을 思戀야 肝肺 잇브게 노니 材質을 議論호매 杞柟 붓그리노라(戀闕勞肝肺 論材愧杞柟)「樓上」〈두시 3:49ㄱ〉. 붓그려- :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석상 3:8ㄱ〉. 病야 님금과 臣下왓 議論애 隔絶호니 德澤 私恩에 범그러슈믈 붓그려노라(病隔君臣議 慚紆德澤私)「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ㄱ〉. 붓그럽- : 질쌈야 뵈  옷 라 붓그러  가리오니다〈월석 22:26ㄱ〉. 버디 와 무로매 내 치 붓그러우니 도랏 딥고 고파 니러  븓들요라(明知來問腆我顏 杖藜強起依僮僕)「醉爲 ··· 相看」〈두시 3:53ㄱ〉.
주184)
죄 : 재주.
주185)
져그니 : 적으니. 젹-[少]+으니. 15세기 국어의 ‘젹다’는 [少]와 [小]의 뜻이 모두 있다. ‘져기’는 일반적으로 ‘략(略)’의 번역으로 쓰인다. 참고. 쟉다, 젹다, 죡다, 횩다, 휵다. ¶이 사미 欲心이 젹고 足 고 아라(是人이 少欲知足야)〈석상 21:62ㄱ〉. 이 時節ㅣ 어려우 맛나니 朝와 野왜 겨르왼 나리 젹도다(維時遭艱虞 朝野少暇日)「北征」〈중간두시 1:1ㄴ〉. 젹다(작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或現大身滿虛空中 而復現小)〈석상 6:34ㄱ〉. 新安ㅅ 吏 더브러 무로니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借問新安吏 縣小更無丁)「新安吏」〈중간두시 4:5ㄱ〉.
주186)
잡드로미 : 잡아 붙듦이. 잡아줌이. 붙들어줌이. 잡-[把]#들-[擧]+오+ㅁ+이. 잡들-[提携]. ¶支 서르 잡드러 괴올 씨니〈석상 9:18ㄱ〉. 벼개예 기우롓 江湖앳 나그내 잡드런 디 나리 길어다(欹枕江湖客 提携日月長)「竪子至」〈두시 15:23ㄱ〉.
주187)
욕(辱)외도다 : 욕되도다. 辱+외-+도+다. 15세기 국어에서도 ‘외-’는 ‘명사 어근’에 결합하여 용언을 파생시켰다. ¶어근+외- : 緊羅 예셔 닐오매 疑心왼 神이니 사 호 리 이셔 疑心외니라〈법화 1:49ㄱ〉. 둘흔 欲이 도아 因외요미오〈원각 하1-1:12ㄱ〉. 楚ㅅ 貢은 어느 예 그츠니오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이제 疑心외도다(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 번 업더뎌 매 損傷홀 고 혜아리디 아니호니 人生애 들 훤히 호리라 면 辱외욜 배 한 거시로다(不虞一蹶終損傷 人生快意多所辱)「醉爲 ··· 相看」〈두시 3:53ㄱ〉.
주188)
헌함(軒檻) : 누각(樓閣) 또는 대청(大廳)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놓은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나 방.
주189)
헌함(軒檻)앤 : 헌함엔. 헌함에는. 軒檻+에+ㄴ.
주190)
나비 : 잔니비가. 납-[猿]+이. ¶납 爲猿〈훈해 55〉. 그르메 납 우 남긔 브텟노니 넉슨 蜃氣ㅣ 쳿 樓에 나봇기놋다(影著啼猿樹 魂飄結蜃樓)「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 8:45ㄴ〉.
주191)
우니 : 우는 이를. 우는 놈을. 울-[泣]++ㄴ#이+.
주192)
얏고 : 매고 있고. 매어 두고. -[束]+어#잇-+고.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杻械 소내  남기오〈석상 21:5ㄱ〉. 혀 여 하  막노니 내 胸腸 더드므니 禍難의 根本이 잇도다(結舌防讒柄 探腸有禍胎)「秋日 ··· 三十韻」〈두시 3:9ㄱ〉.
주193)
나못가지옌 : 나뭇가지엔. 나모+ㅅ+가지+예+ㄴ.
주194)
바 : 밤의. 밤[夜]++ㅅ.
주195)
가치 : 까치가. 가치[鵲]+∅.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주196)
깃기다가 : 깃들고 잇다가. 깃#깃-+어#잇-+다가.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중간본〉에는 ‘깃기엣다가’로 되어 있다. ¶깃깃- : 寨 羊의 깃기서 자 라〈금삼 3:46ㄴ〉. 바 자리예 갈 새 다거늘 後에 깃기슬 가마괴 우놋다(夜來歸鳥盡 啼殺後棲鴉)「遣懷」〈두시 3:25ㄴ〉.
주197)
놀라놋다 : 놀라는구나. 놀라-++오+ㅅ+다. ¶王이 놀라샤 讚嘆야 니샤〈석상 3:4ㄱ〉. 이 님금 辱도외이 겨샤 놀라  타 가 盜賊을 티고져 며[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주198)
우렵(羽獵) : 사냥. 특히 임금의 사냥. 제왕(帝王)이 사냥을 나갈 때 사졸(士卒)들이 우전(羽箭)을 지고 수종(隨從)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주199)
옥황(玊璜) : 반원형(半圓形)의 벽(璧, 둥근 옥). 나중에 이것으로 여상(呂尙)이 문왕(文王)을 도운 일을 비유하였다.
주200)
득옥황(得玊璜)고 : 옥황(玊璜)을 얻고. 得玊璜#-+고. 원래의 ‘得玊璜니’에서 교정된 것이다.
주201)
문왕(文王) : ?~?. 상(商)나라 때 사람. 주(周)나라의 초대 임금. 주족(周族)의 우두머리였다. 성(姓)은 희(姬)씨고, 이름은 창(昌)이다.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손자이자 무왕(武王)의 아버지고, 계력(季歷)의 아들이다. 상주(商紂) 때 주변의 여러 부족을 멸하고 서백(西伯)이라 했다. 숭후호(崇侯虎)의 참언을 받아 주(紂) 임금에 의해 유리(羑里)에 갇혔다. 그의 신하 태전(太顚)과 굉요(閎夭), 산의생(散宜生) 등이 주임금에게 미녀와 명마를 바쳐 석방될 수 있었다. 우(虞)나라와 예(芮)나라 사이의 분쟁의 소지를 해결하자 두 나라가 모두 귀부(歸附)했다. 나중에 또 여(黎)나라와 우(邘)나라, 숭(崇)나라 등을 공격해 멸망시켰다. 섬서성 기산(岐山)에서 장안(長安) 부근 풍읍(豊邑)으로 도읍을 옮겼다. 현인(賢人)과 인재를 널리 받아들여 동해의 여상(呂尙)과 초인(楚人) 자웅(䰞熊), 고죽국(孤竹國)의 백이숙제(伯夷叔齊), 은신(殷臣) 신갑(辛甲) 등이 찾아왔다. 50년 동안 재위했다. 덕으로 만민(萬民)을 다스려 제후와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고 한다.
주202)
언맛 : 어느. 어느 정도의. 언+마+ㅅ. ‘언’은 ‘어느’의 축약으로 보이고, ‘마’는 고대국어부터 존재하는 명사로서 ‘얼마, 만큼’ 등에 남아 있고, ‘ㅅ’은 속격조사이다. ‘언맛’은 ‘幾’에 대한 번역인데 『두시언해』의 다른 부분에서는 ‘몃, 어느, 몃맛’으로 언해되었다. ‘幾時’도 여기서는 ‘언맛 , 몃맛 ’로 언해되었으나 ‘어느 제’로 언해된 부분도 있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는 ‘현맛’으로도 쓰였다. ¶언맛 福 得리잇고〈석상 21:21ㄱ〉. 어느 제 : 어느 제 翠節 가지고 오뇨  紅粧 사 혀 왯도다(幾時來翠節 特地引紅粧)「陪栢 ··· 二首」〈두시 5:51ㄴ〉. 몃맛  : 百舌은 마리 업고져 노소니 어즈러운 고 能히 몃맛 니오(百舌欲無語 繁花能幾時)「暮春 ··· 屋五首」〈두시 7:14ㄱ〉. 현맛 : 여윈 못 가온 몸 커 그우닐 龍 현맛 벌에 비늘을 라뇨〈월천 11ㄱ〉. 五色雲ㅅ 가온 瑞相 뵈시 如來ㅅ긔 현맛 衆生이 머리 좃뇨〈월석 2:48ㄱ〉.
주203)
 : 때에. [時]+의.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주204)
뫼올고 : 뫼실까? 뫼-[陪]++을+고. ‘--’은 선행형태 및 후행형태에 따라 ‘--, --, --, --, --’ 등으로 나타나는데, ‘--, --, --’은 각각 선행형태의 말음이 ‘ㄱ, ㅂ, ㅅ, ㅎ. ㄴ, ㄹ, ㅁ, 모음. ㄷ, ㅈ, ㅊ’이면서 후행형태가 자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나고, ‘-/오-, -/오-, -/오-’은 후행형태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설명의문어미인 ‘-고’는 선행하는 ‘몃맛’의 ‘몃’과 호응한다. 〈중간본〉에는 ‘뫼올고’로 되어 있다.
주205)
이 : 응당. 원문의 ‘應’의 번역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당당이’로 되어 있다.
주206)
낙 : 낚던. 낛-[釣]+더+ㄴ. ¶낛- : 惡 료 鱗衆의 낙 놀라 江瀛에 드러 미틔 다 니〈영가 하:77ㄴ〉. 늘근 겨지븐 죠 그려 긔파 어 져믄 아 바 두드려 고기 낫 낙 다(老妻畵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江村」〈두시 7:4ㄱ〉.
주207)
시내 : 시내를. 시내ㅎ+. ‘시내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뫼히며 두들기며 시내며 굴허 업고〈월석 15:13ㄴ〉. 기리  시내와 다 여희니 가져다가 玉 차반애   니벗도다(永與清溪別 蒙將玉饌俱)「麂」〈두시 17:36ㄱ〉.
주208)
치리라 : 가리킬 것이다. 치-[指]+리+라. 15세기 국어의 ‘치다’는 ‘가리키다’와 ‘가르치다’의 뜻이 있다. ¶(가리키다) : 太子ㅣ 妃子ㅅ  치시며 니샤〈석상 3:22ㄱ〉. 蜀ㅅ 사미 듣곡 다 니러셔니 이제 니르리 치며 화 기튼 風俗이 傳야 오다(蜀人聞之皆起立 至今斅學效遺風)「杜鵑行」〈두시 17:6ㄴ〉. (가르치다) : 訓民正音은 百姓 치시논 正 소리라〈훈언 1ㄱ〉.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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