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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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간의에게 드리는 시 10운[敬贈鄭諫議十韻]


敬贈鄭諫議 주001)
간의(諫議)
관직(官職) 이름. 간의대부(諫議大夫).
十韻
주002)
경증정간의 십운(敬贈鄭諫議十韻)
이 작품은 천보(天寶) 11년(752), 두보 41세 때에 지어졌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에 있었다. 『통감(通鑑)』에 따르면 천보 10년(761) 4월 선우중통은 남조(南詔) 토벌에 나섰다가 대패해 6만 명의 군사를 잃었다. 다시 병력을 보충받아 남조를 공격했는데, 양국충(楊國忠)은 어사(御史)를 파견해 병정을 징집하도록 했다. 이에 징집된 사람들도 원성이 높았고, 부모와 처자들도 전송하면서 곡성이 들판을 가득 덮었다. 이 시는 이때 일을 소재로 삼아 쓴 것인데, 시인은 옳지 못한 전쟁에 대해 강렬하게 질책하였다. 〈삼대례부(三大禮賦)〉를 지어 바치고 난 다음에 아무런 조치가 없자 지은 것이다.

경증정간의 십운
(정 간의에게 드리는 시 10운)

諫官非不達 詩義早知名【此下八句 皆羙諫議之能詩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6ㄴ

諫爭 주003)
간쟁(諫爭)
임금의 옳지 못한 처사나 과오에 대하여 힘써 간언(諫言)하는 것. 방법과 정도에 따라 풍간(諷諫), 순간(順諫), 직간(直諫), 쟁간(爭諫), 함간(陷諫) 등이 있어서 왕권의 남용을 규제했다.
 벼스리라 주004)
벼스리라
벼슬이라. 벼슬[爵]+이+라. ‘-이라’는 [원인]. 연결어미이다.
通達티 주005)
통달(通達)티
통달하지. 洞達++디.
아닔 주006)
아닔
아닌 것이. 아니+이+ㄹㅅ. ‘아니’에 계사 ‘이’가 결합된 형태에 동명사어미 ‘ㄹㆆ’이 결합되어 명사적으로 쓰였다. 이때 ‘ㄹㆆ’의 ‘ㆆ’은 ‘ㅅ’으로 표기되었다. ¶너펴 돕오미 다 업서 後世 기리 주노라〈법화 서:18ㄱ〉. 여러 劫ㅅ 因이 아닔 아니며〈육조 상:63ㄱ-4〉. 變化호미 다 업수믈 알리로소니 녯나래 기픈 宮의 살어든 嬪嬙이 左右에 블근 곳 토 어느 리오(迺知變化不可穹 豈思昔日居深宮 嬪嬙左右如花紅)「杜鵑行」〈두시 17:6ㄴ〉.
아니로소니 주007)
아니로소니
아니니. 아니+도+ㅅ+오+니.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오낤  혜면 아  劫이로소니〈석상 6:37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秋日 ··· 三十韻」〈두시 3:8ㄴ〉.
詩義로 주008)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그 어버이 그 졈어셔 식 업고 일 홀어미 된 줄을 슬피 녀겨〈소학 6:52ㄱ〉. 四載 타 疎鑿야 三巴 控持요 일 아노라(早知乘四載 疏鑿控三巴)「禹廟」〈두시 6:26ㄱ〉.
일후 주009)
일후
이름을. 일훔[名]+. 〈중간본〉에는 ‘일흐믈’로 되어 있다.
아놋다 주010)
아놋다
아는구나. 알-[知]++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간관비불달 시의조지명【이하 여덟 시구는 모두 간의(諫議)가 시에 능한 것을 찬미한 것이다.】
【언해역】 간쟁하는 벼슬이라 통달하지 아닌 것이 아니니, 시의(詩義)로 일찍 이름을 아는구나!
*시 구절 해석 : “간쟁하는 벼슬이라 통달하지 않음이 아니로소니, 시의 논의로는 일찍이 이름이 알려졌네.”라는 뜻으로, 정간의가 간쟁에도 능했지만 시에 대한 논의에서도 명성이 일찍부터 알려졌다는 말이다.

破的由來事 先鋒孰敢爭破的 주011)
파적(破的)
①화살이 과녁을 쏘아 맞춤. ②파적(破鏑). 발언(發言)이 정확하게 요점에 적중했음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두 개의 뜻이 모두 쓰였다.
은 言詩句ㅣ 中理호미 如射之破的也ㅣ라 先鋒은 言詩筆 주012)
시필(試筆)
①시(詩)와 산문(散文). ②시를 쓰는 붓.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의 捷疾이 如戰之先鋒이니라】

소 주013)
소
화살을. [箭]+. ‘살’의 ‘ㅏ’가 ‘ㄹ’ 받침의 영향으로 원순모음화 되어 ‘솔’이 되었다. 이와 같이 『두시언해』에는 원문모음화로 인해 이형태를 가진 많은 예가 있다. ¶살 : 살 머겨 쏘시니 그 사리 스믈 여듧 부플 다 여 해 차 가아 鐵圍山애 바니〈석상 3:14ㄱ〉. 화 혈뎬 반기 세니 혀며 사 뎬 반기 기니 며(挽弓當挽強 用箭當用長)「前出塞九首」〈두시 5:28ㄱ〉. 솔 : 내 平 肩輿 뒷노니 앏길히 활 소 :솔 :봄 니라(我有平肩輿 前途猶凖的)「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9ㄴ〉.
헐에 주014)
헐에
헐게. 헐-[破]+게. ‘-에’는 ‘-게’의 ‘ㄱ’이 선행하는 ‘ㄹ’ 뒤에서 약화된 것이다. ¶믈읫 有情이 비록 如來 道理 호다가도 尸羅 헐며〈석상 9:13ㄱ〉. 해 이셔셔 오직 여 사 心力으로 헐에 니 사게 干犯호미 므슷 이리어 그믈로 求니오(在野只敎心力破 干人何事網羅求)「見王監兵馬使호니~請余賦詩二首다」〈두시 17:11ㄴ〉.
소 주015)
소
쏨은. 쏘-[射]+. ‘소-’의 15세기의 일반적인 표기는 ‘쏘-’인데 각자병서를 쓰지 않는 『두시언해』의 특성상 ‘소-’가 쓰였다.
녜로브터 주016)
녜로브터
예로부터. 녜+로#븥-+어. ‘브터’는 ‘븥-’의 활용형과 이것이 문법화한 보조사가 쓰였다.
오 주017)
오
오는. 오-[來]+.
이리니 주018)
이리니
일이니. 일[事]+이+니.
몬져 주019)
몬져
먼저. (차례 등에서) 앞서서. 종덕신편(1758)에 처음으로 ‘먼져’가 발견된다. ¶몬져 : 調達이와 難陁왜 몬져 쏘니〈석상 3:13ㄴ〉. 님그미 몬져 사호 그쳐  華山 陽애 보내욜 디니라(大君先息戰 歸馬華山陽)「有感五首」〈두시 5:14ㄱ〉. 먼져 : 이 먼져  허믈이 잇 쟤 면젼례 버거 등을 고티더니〈종덕 하:24ㄱ〉.
가매 주020)
가매
감애. 가-+오+ㅁ+애.
주021)
누가. 미지칭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한 것으로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 목적격형은 ‘:눌(상성)’이다.
구틔여 주022)
구틔여
구태여. 원문의 ‘敢’의 번역이다. ¶太子ㅣ 구틔여 從티 아니대〈석상 24:49ㄱ〉. 구틔여 伊尹 周公ㅅ 地位예 다 屈原 宋玉 죄 오 줄 아니로다(不必伊周地 皆登屈宋才)「秋日 ··· 三十韻」〈두시 3:10ㄱ〉.
토리오 주023)
토리오
다투겠는가? 토-[爭]+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토- : 나 난 後로  더브러 토 아니노다〈석상 11:34ㄴ〉. 恒山앤 오히려  이니고 遼海옌 토아 旌旗 폣도다(恒山猶突騎 遼海競張旗)「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ㄱ〉.

【한자음】 파적유래사 선봉숙감쟁【‘파적(破的)’은 시구가 이치에 맞는 것이 화살이 과녁을 뚫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선봉(先鋒)’은 시필(試筆)의 민첩함이 전쟁에서의 선봉 부대와 같다는 말이다.】
【언해역】 화살을 과녁이 부서지게 쏨은 예로부터 오는 일이니, 먼저 감에 누가 구태여 다투겠는가?
*시 구절 해석 : “화살을 과녁에 쏨은 예로부터 오는 일이니, 먼저 감에 누가 감히 다투겠는가?”라는 뜻으로, 간쟁하는 능력이 뛰어나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思飄雲物外 律中鬼神驚

든 주024)
든
뜻은. [意]+은.
구룸 주025)
구룸
구름.
밧긔 주026)
밧긔
밖에. [外]+의(처격).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飄逸 주027)
표일(飄逸)
①빠르게 나는 모양. ②행동거지가 맑고 깨끗해 탈속(脫俗)한 기운이 있음. ③문학작품의 풍격(風格)이 청신쇄탈(淸新灑脫)하면서 의경(意境)이 고원(高遠)한 것을 형용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고
주028)
표일(飄逸)고
표일하고. ‘표일(飄逸)’의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세상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태평하다’이다.
法律에 마니 주029)
마니
맞으니. 맞-[適]+니.
鬼神이 놀라놋다 주030)
놀라놋다
놀라는구나. 놀라-++오+ㅅ+다.

【한자음】 사표운물외 율중귀신경
【언해역】 뜻은 구름 밖에 표일(飄逸)하고, 법률에 맞으니 귀신이 놀라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생각은 구름 밖으로 휘날리고, 법률이 적중하니 귀신이 놀란다.”라는 뜻으로, 사고가 비범하고 법률 적용이 정확해 귀신도 놀라리라는 말이다.

毫髮無遺恨 波瀾獨老成【上句 言作詩예 無一字一句之遺恨也ㅣ오 下句 言才思 주031)
재사(才思)
재기(才氣)와 사치(思致). 사치는 사람의 사상과 의취(意趣) 또는 성정(性情),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 老成이 如波瀾之浩渺 주032)
호묘(浩渺)
①수면(水面)이 넓고 멂. ②아득히 넓고 광활함. 여기서는 두 개의 뜻이 모두 쓰였다.
ㅣ니라】

터럭마도 주033)
터럭마도
털만큼도. 터럭[毫]+마+도. 〈중간본〉에는 ‘티럭마도’로 되어 있다. ¶터럭 : 如來ㅅ 모매 터럭 구무마다 放光샤〈석상 11:1ㄴ〉 오히려 思想호 朝廷에 나가면 머릿 터럭마니나 社稷 돕오련마 얼구리 이제 이 니 나가거나 믈러오거나 호 길 녀뇨매 리과라(尙想趍朝廷 毫髮裨社稷 形骸今若是 進退委行色)「客堂」〈두시 6:53ㄱ〉. -마도 : 비록 사 무레 사니고도 마도 몯호다〈석상 6:5ㄱ〉. 오직 늘구믈 디녀 한 病에 올이노니 涓埃마도 聖朝 對答호미 잇디 몯호라(唯將遲暮供多病 未有涓埃答聖朝)「野望」〈두시 14:32ㄱ〉.
기튼 주034)
기튼
남은. 깉-[遺]+은.
측호미 주035)
측호미
아쉬움이. 측은함이. 측#-+오+ㅁ+이. ¶對答샤 측디 아니다〈월석 4:66ㄴ〉. 도라가노라 告호매 기튼 측호미 하니 將 늘구메 이긔 노로미  됴토다(告歸遺恨多 將老斯遊最)「南池」〈두시 13:17ㄴ〉.
업스니 주036)
업스니
없으니. 없-[無]+으니.
믌겨리 주037)
믌겨리
물결이. 믈+ㅅ+결+이.
올로 주038)
올로
홀로. 올+로.
늘기 주039)
늘기
늙게. 늙-[老]+이.
이럿도다 주040)
이럿도다
일어 있도다. 이루어져 있도다. 일-[成]+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한자음】 호발무유한 파란독로성【위 시구는 시를 지을 때 한 자 한 구에서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고, 아래 시구는 시상(詩想)이 노숙해 물결이 넓고 아득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언해역】 털만큼도 남은 아쉬움이 없으니, 물결이 홀로 늙어가 이루어져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터럭만한 것도 아쉬움을 남김이 없으니, 물결이 홀로 노숙함을 이뤘도다.”라는 뜻으로, 시를 쓸 때 시상의 운용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넓고 아득해 노숙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野人 주041)
야인(野人)
①옛날에 국성(國城) 밖 교외에서 살던 사람. 국인(國人)의 반대말이다. ②보통 촌야(村野)에서 사는 사람. 즉 농부(農夫)를 말한다. ③서인(庶人). 평민(平民). ④사인(士人)이 자신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寧得所 天意薄浮生 주042)
부생(浮生)
뜬 구름 같이 허망한 삶을 이르는 말.
【此下 皆ㅣ 自叙ㅣ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7ㄱ

햇 주043)
햇
들의. ㅎ[野]+애+ㅅ.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를 만나면 ‘ㅎ’이 실현된다. 『두시언해』에는 ‘뫼ㅎ’가 ‘모ㅎ’와 같이 하향이중모음이 생략된 형태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15세기 국어에서 ‘모ㅎ’은 ‘모퉁이, 모서리’에 사용된 ‘모’의 뜻이므로 혼동의 우려도 있다. 또한 15세기 국어에서 ‘뫼ㅎ’는 ‘산’이고, ‘ㅎ’는 ‘들’의 뜻이다. ¶모ㅎ : 秦ㅅ 모히 警蹕  當얫고 漢ㅅ 林苑은 㫌旄 잇  드렛도다(秦山當警蹕 漢苑入㫌旄)「喜聞 ··· 二十韻」〈두시 5:2ㄱ(복각본 부분)〉. 뫼ㅎ : 太子ㅣ 뫼히며 므리며 디 아니야 니실〈석상 3:35ㄴ〉. 흐르 믈 드료매 浩汗호 어즐리로소니 큰 불휫 노 뫼 어든 호라(納流迷浩汗 峻址得嶔崟)「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7ㄴ〉. 모ㅎ : 먼 모히 토와 도왓고 즈믄 바회 스싀로 염드러 라오놋다(遠岫爭輔佐 千巖自崩奔)「木皮嶺」〈중간두시 1:27ㄱ〉.
사 주044)
사
사람은. 사+.
어느 주045)
어느
어찌.
得所리오 주046)
득소(得所)리오
얻겠는가? 得所+-+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어느’와 호응한다.
하 주047)
하
하늘의. 하+ㅅ. ‘하’의 ‘ㄹ’이 후행하는 속격조사 ‘ㅅ’으로 대체되었다. 15세기 국어에서 ‘짓, 믓, 픗, 바, 하’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짓 : 그 짓 리  가져 나오〈석상 6:14ㄱ〉. 우리 짓 碑 眛滅티 아니고(吾家碑不昧)「回棹」〈중간두시 2:14ㄱ〉 /믓 : 多生앳 習氣ㅣ 기프니 미 그처도 믓겨리 오히려 솟고〈牧牛子24ㄴ〉. 文章 曹植의 믓겨리 어윈 고(文章曹植波瀾闊)「追酬 ··· 見寄」〈두시 11:7ㄴ〉 /픗 : 슬픈 픗뎌 새배 그으기 수으놋다(哀笳曉幽咽)「留花門」〈중간두시 4:13ㄴ〉 /바 : 毘摩質多 닐오매 바 믌겴 소리니 바 믌겨를 티니라〈법화 1:51ㄱ〉 /녜로 오매 서르 傳호 이 바 누니라 니(苔蘚食盡波濤痕)「石笋行」〈두시 3:70ㄱ〉.
디 주048)
디
뜻이. [意]+이. ¶講 글 닐거   씨니〈석상 3:11ㄴ〉.  안해 길며 뎔우미 마니 모미 도록 님 들 닙오리로다(意內稱長短 終身荷聖情)「端午日賜衣」〈두시 11:23ㄱ〉.
주049)
뜬. -[浮]+ㄴ. ‘-’는 ‘물에 뜨다’와 ‘눈을 뜨다’의 뜻이 있다. ¶(물에 뜨다)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 愛欲 흐린 믌겨 그치니라〈영가 서5ㄴ〉. 니 나그내  노피 안조니 가  이 오 녀거니라(浮客轉危坐 歸舟應獨行)「翫月呈漢中王」〈두시 12:7ㄴ〉. (눈을 뜨다) : 盲龍이 눈 고 迦茶龍이 보 네 부텨 供養 니 니〈월천 24ㄱ〉.  불 제 우 누  아마다 므레 지 樓 우희 올아 라노라(颯颯開啼眼 朝朝上水樓)「得舍弟觀의~情見乎詞노라」〈두시 8:38ㄴ〉.
人生 엷게 주050)
엷게
엷게. 엷-[薄]+게. 정음 초기문헌에서는 모음어미가 오면 ‘열’과 같이 ‘ㅸ’이 쓰였다. 〈능엄경언해〉(1461)부터 ‘ㅸ⇒ㅇ/우/ㅇ’로 교체되었다. 불규칙용언에서 규칙용언으로의 변화는 18세기 후반 문헌부터 나타난다. ¶덕이 지극히 엷은지라〈경신록 29ㄴ〉.
랏도다 주051)
랏도다
만들어 있도다. -[作]+아#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중간본〉에는 ‘랏도다’로 되어 있다. ¶그 지븨셔 차반  쏘리 워즈런거늘〈석상 6:16ㄱ〉. 舟砂로 리 오 黃金 비느리로다(丹砂作尾黃金鱗)「沙苑行」〈두시 17:26ㄴ〉.

【한자음】 야인녕득소 천의박부생【이 이하는 모두 두보가 자신의 처지를 서술한 것이다.】
【언해역】 들의 사람은 어찌 얻겠는가? 하늘 뜻이 뜬 인생을 엷게 만들었도다!
*시 구절 해석 : “들판 사람이 어찌 마땅한 자리를 얻으리요, 하늘 뜻이 뜬 인생에는 엷게 만들어졌다.”라는 뜻으로, 두보 자신이 미천한 사람이라 마땅한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데다 하늘도 그런 운명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多病休儒服 冥搜 주052)
명수(冥搜)
유원(幽遠)한 곳까지 찾는다는 뜻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찾는다는 말. 또는 온 힘을 다하여 찾고 수집함.
客旌 주053)
객정(客旌)
①옛날에 관리가 사신을 가거나 부임할 때 도중에 사용하는 정절(旌節). ②나그네의 자취를 가리키는 말. 객종(客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言搜求冥幽 주054)
명유(冥幽)
음간(陰間)에 있는 영혼(靈魂)을 가리키는 말.
之處호
주054_1)
*〈중간본〉에는 ‘言搜求冥幽之䖏호’로 되어 있다.
信其客旌의 所向也ㅣ라】

病이 주055)
많아. 하-[多]+∅. ‘하아’형도 쓰인다. 형용사 어간 ‘하-’가 형태상의 변화 없이 통사 범주를 부사로 바꾸어 쓰는 ‘하’가 있는데, 이를 영접사 파생(零接辭派生)이라 한다. ‘하’는 많이, 매우‘의 의미이다. ¶내 모미 하 커 수물 꿈기 업서〈월석 2:51ㄱ〉. 經이 後人의 莭畧이 너무 하〈육조 서:7ㄱ-6〉. 하아 : 그긔  하아 쇼로 쳔사마 니라〈월석 1:24ㄴ〉.
션븨 주056)
션븨
선비의. 션븨[士]+의. 『두시언해』에서 ‘션븨’는 ‘션’로도 쓰였다. ¶션븨 : 儒 션븨 〈훈몽 상:18ㄱ〉. 懇切히 諫爭 匡鼎을 머믈오시고 여러 션븨예 服虔을 혀 시놋다(懇諫留匡鼎 諸儒引服虔)「秋日 ··· 一百韻」〈두시 20:11ㄱ〉. 션 : 太微宮은 션 그레 하 皇帝ㅅ 南녁 宮 일후미라〈월석 2:48ㄴ〉. 술위 미러 와 몃  오직 눌러 安靜니오 옷기슬글 어 나리 록 글 션 하도다(推轂幾年唯鎭靜 曳裾終日盛文儒)「又作此奉衛王」〈두시 14:12ㄱ〉.
오 주057)
오
옷을. 옷+.
말오 주058)
말오
말고. 그만두고. 원문의 ‘休’의 번역이다.
깁수윈 주059)
깁수윈
깊숙한. ‘깁수위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는 ‘깁스위다’를 확인할 수 있다. ¶깁수위- : 노 가지와 읏듬괘 햇 두들게 녜외니 깁수윈 칠욘 戶牖ㅣ 뷔엿더라(崔嵬枝榦郊原古 窈窕丹靑戶牖空)「古栢行」〈두시 18:12ㄴ〉. 가며 가 조 難히 어드리로소니 퍼러야 天理  깁수위도다(去去才難得 蒼蒼理又玄)「寄岳 ··· 五十韻」〈두시 20:19ㄴ〉. 文章 깁수윈  여럿니 올마 여 여 朝廷을 빗내놋다(文章開突奧 遷擢潤朝廷)「秦州셔~三十韻ㅣ라」〈두시 24:5ㄱ〉. 巫峽 어드운 묏부리옌 朔漠앳 氣運이로소니 묏부리 깁수위오 시냇 묏고리 검어듭도다(巫峽陰岑朔漠氣 峯巒窈窕溪谷黑)「虎牙行」〈두시 25:44ㄴ〉. 깁스위- : 기프며 깁스위여 人情에 갓갑디 아니〈금삼 3:27ㄱ〉. 집 아래 어로 온 사미 들리로소니 담 모히  깁스위도다(下可容百人 墻隅亦深邃)「題衡山縣文宣王廟新學堂呈陸宰」〈두시 6:22ㄱ〉. 北極을 配對 玄都ㅣ 깁스위니 노  브텟 禁人 사리 기도다(配極玄都閟 憑高禁籞長)「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6ㄴ〉. 긴 그리메 깁스윈  뎌 드렛고 나 비치 묏 고 흐렛도다(長影沒窈窕 餘光散谽谺)「營屋」〈두시 6:46ㄱ〉. 드트레 나 술윗 자최 깁스위니  록 더워  호미 업도다(出塵閟軌躅 畢景遺炎蒸)「陪章 ··· 赴州」〈두시 22:26ㄱ〉.
주060)
데. 곳에. ‘’는 의존명사 ‘’와 속격조사 ‘’가 결합된 형태로 볼 수도 있고, ‘’라는 의존명사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고, 속격조사 ‘’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더드머 주061)
더드머
더듬어. 더듬-[摸]+어.
보란 주062)
보란
봄은. 보-+오+ㅁ+란. ¶ㆍ ㅡ ㅗ ㅜ ㅛ ㅠ란 附書 初聲之下고〈훈언 12ㄴ〉. 盤石에 命圭 오란 해 고 凶門에 술윗 미로란 져기 홀 디니라(盤石圭多剪 凶門轂少推)「秋日 ··· 三十韻」〈두시 3:11ㄱ〉.
나그내 주063)
나그내
나그네.
旌旗 주064)
정기(旌旗)
①깃발에 대한 총칭(總稱). ②군사(軍士)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즉 깃대 끝에 새의 깃으로 꾸민 장목을 늘어뜨린 의장기를 말한다.
믿노라 주065)
믿노라
믿노라. 믿-++오+라.

【한자음】 다병휴유복 명수신객정【혼령이 있을 곳을 찾아 구하는데, 나그네 깃발이 가는 바를 믿겠다는 말이다.】
【언해역】 병이 많아 선비의 옷을 그만두고, 깊숙한 데 더듬어 봄이란 나그네 정기(旌旗)를 믿노라.
*시 구절 해석 : “병이 많아 선비의 옷을 그만두었으니, 아득한 곳 찾음에 나그네 깃발을 믿노라.”라는 뜻으로, 병 때문에 유자(儒子)의 옷을 입지 못하고, 앞으로의 일은 나그네 깃발[客旌]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따르겠다는 말이다. 즉 나그네 깃발의 방향을 따라 올바른 길을 찾겠다는 말이다.

築居 주066)
축거(築居)
집을 지어 그곳에서 거주(居住)함.
縹緲 주067)
표묘(縹緲)
①아득히 멀어서 희미함. 또는 아득히 넓은 모양. ②바람에 따라 나부낌. ③소리가 맑고 멀리 울리는 것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旅食歲崢嶸 주068)
쟁영(崢嶸)
①산이 높고 가파른 모양. ②깊고 험한 모양. ③추위가 매우 심한 모양. ④재주가 특출한 모양. ⑤세월이 쌓여 한 해가 저묾. ⑥위험한 모양.
【言卜築 주069)
복축(卜築)
주택을 지을 땅을 선택함. 즉 거주지를 정한다는 뜻이다.
幽居ㅣ 如仙之縹緲ㅣ언마 但旅食嵗乆而未能歸也ㅣ라】

사롤 주070)
사롤
살. 살-[居]+오+ㄹ. 현대국어의 ‘살다’는 ‘ㄹ’동명사가 후행하면 ‘살-’의 ‘ㄹ’받침이 탈락하지만, 15세기 국어에서는 ‘살-’에 ‘올’이 결합된 형태가 된다.
 주071)

데를. +.
卜築호미 주072)
복축(卜築)호미
복축함이. 卜築+-+오+ㅁ+이.
仙人이 아란 주073)
아란
아스라한. 아라#-+ㄴ. 〈중간본〉에는 ‘아란’으로 되어 있다. ¶아라- : 디샛  아라호니〈능엄 5:72ㄴ〉. 聖賢ㅅ 일후미 오라 아라니 나그내로 뇨매 病이 마다 보차놋다(聖賢名古邈 羈旅病年侵)「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3ㄴ〉.
건마 주074)
건마
듯하지마는. #-+거+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金輪王이 외샤 四天下  아시련마〈석상 6:17ㄴ〉. 軍을 조차 니건 디 열  나니 能히 分寸맛 功이 업스려마(從軍十年餘 能無分寸功)「前出塞九首」〈두시 5:29ㄴ〉.
나그내로 주075)
나그내로
나그네로. 즉 나그네의 신분으로. 나그내+로.
머구메 주076)
머구메
먹음에. 먹-[食]+우+ㅁ+에.
 오라거다 주077)
 오라거다
해가 오래다. 즉 세월이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 오라-[久]+거+다.

【한자음】 축거선표묘 여식세쟁영【집을 지어 그윽하게 거처함이 신선이 아득한 것과 같지만 여행 중에 먹는 세월이 길어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언해역】 살 데를 복축(卜築)함이 선인(仙人)이 아스라한 듯하지마는, 나그네로 밥 먹음에 해 오래도다!
*시 구절 해석 : “살아갈 곳에 집을 지음이 신선이 아스란 것과 같은데, 나그네로 밥 먹음에 해가 오래도다.”라는 뜻으로, 나그네로 오래 떠돌아 다녀 집을 지어 정착하는 것이 신선의 일처럼 무망하다는 말이다.

使者求顏闔 주078)
안합(顔闔)
전국시대 노(魯)나라 사람. 은사(隱士). 노나라 임금이 그가 어질다 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초빙하려 하자 “그대가 잘못 들은 것 같으니 다시 확인해 봐라(君恐誤聽 不若審之)”고 말해 사자를 돌려보낸 뒤 뒷담을 뚫고 달아났다.
諸公厭禰衡【魯君이 聞顔闔의 得道고 使人야 以幣로 先焉니라 禰𢖍 주084_1)
*〈중간본〉에는 ‘諸公厭禰𢖍’과 ‘禰衡이’로 되어 있다.
이 有才호 慢物 曹操 주079)
조조(曹操)
155~220. 위무제(魏武帝). 후한 말기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 자는 맹덕(孟德)이고, 묘호는 태조(太祖)며,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본성은 하후(夏侯)씨고, 조숭(曹嵩)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권모술수에 능했고, 나이 스물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郞)이 되었다가 돈구령(頓丘令)으로 옮겼다. 기도위(騎都尉)가 되어 황건적(黃巾賊) 토벌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초평(初平) 3년(192) 연주목(兗州牧)이 되어 황건군의 항복을 유도해 정예병을 청주병(靑州兵)으로 편입시켰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다. 건안(建安) 13년(208) 승상(丞相)이 되고,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했다. 이후 세력이 강남(江南)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지만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다. 연강(延康) 원년(220) 1월 낙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고,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성을 가져오게 했다. 저서에 『손자약해(孫子略解)』와 『병서접요(兵書接要)』, 『조조집(曹操集)』이 있다.
劉表 주080)
유표(劉表)
142~208. 후한 말기 산음(山陰) 고평(高平) 사람. 자는 경승(景升)이다.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다. 헌제(獻帝) 초평(初平) 원년(190)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다. 형주 호족의 지지를 얻어 호북(湖北)과 호남(湖南) 지방을 장악했다. 이각(李傕)과 곽사(郭汜)가 장안(長安)에 들어왔을 때 그를 진남장군(鎭南將軍)과 형주목(荊州牧)에 임명하고 성무후(成武侯)에 봉했다. 조조(曹操)와 원소(袁紹)가 관도(官渡)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원소가 그에게 구원을 청했지만, 어느 쪽도 도와주지 않았다. 혼전에 가담하지 않고 주민을 돌보면서 조용히 자신을 지켰다. 조조가 원소를 물리치고 정벌하러 왔지만 도착하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 아들 유장(劉璋)이 조조에게 항복했다. 저서에 『역주(易注)』와 『역장구(易章句)』, 『후정상복(后定喪服)』 등이 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했다고 평가되지만, 다만 천하 대세(大勢)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皆不容니라】

使者ㅣ 주081)
사자(使者)ㅣ
사자이야. 사신이야. 使者+이+. 〈중간본〉에는 ‘使者ㅣ아’로 되어 있다.
顔闔 얻니건마 주082)
얻니건마
얻으러 다녔지마는. 얻-+닉+어+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妙音이  現샤 說法샤 한 어려 일 救濟샤미 觀音과 다디 아니커신마〈석상 21:20ㄱ〉. 새 도  수의 어드리언마(新者亦易求)「破船」〈두시 6:45ㄱ〉.
諸公히 주083)
제공(諸公)히
제공들이. 諸公+ㅎ+이. 즉 예형(禰衡)을 거부한 조조(曹操)와 유표(劉表)를 가리킨다. ‘ㅎ’의 명사와 접미사이며 ‘ㅎ말음체언’의 하나이다.
禰衡 아쳐라놋다 주084)
아쳐라놋다
싫어하는구나! 아쳗-[厭]+아#-++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아쳗- : 곧 憍慢며 대  니와다 아쳐러 게으른 들 머거〈월석 17:14ㄱ〉. 아쳗라- : 甚히  즐기다가 後에 이울어든 사미 아쳐러 야 貪使도  그러타 니라〈원각 상1-2:177ㄴ〉.

【한자음】 사자구안합 제공염녜형【노나라 임금이 안합(顔闔)이 득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냄에 예물을 먼저 보냈다. 예형(禰衡)이 재주가 있었지만 만물에 오만했기에 조조나 유표가 모두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해역】 사자(使者)야 안합(顔闔)을 얻었지마는, 제공(諸公)들이 예형(禰衡)을 싫어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사신이 안합을 얻었지만, 여러 궁경(公卿)들은 예형을 싫어했다.”라는 뜻으로, 예물을 주어 인재를 얻은 반면 너무 오만한 사람은 모두 싫어할 것이라는 말이다.

將期一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7ㄴ

諾重
주084_1)
*〈중간본〉에는 ‘将期一諾重’으로 되어 있다.
歘使寸心 주085)
촌심(寸心)
마음[心]을 가리키는 말. 옛날에는 마음의 크고 작은 것이 방촌(方寸) 사이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
曹丘生 주086)
조구생(曹丘生)
?~?. 전한 초(楚) 사람. 변사(辯士). 환자(宦者) 조담(趙談) 등을 섬겼고, 두장군(竇長君)과 친했는데, 그래서 두장군이 편지를 보내 하동수(河東守) 계포(季布)를 만나게 되었다. 조담에게 소개하니 계포가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머물면서 상객(上客)이 되었다. 나중에 계포 덕분에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 謂季布 주087)
계포(季布)
?~?. 후한 초(楚) 사람. 임협(任俠)으로 유명해 초 땅 사람들이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도 계포의 한 번 허락을 받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 항우(項羽)의 부하로 한고조 유방(劉邦)을 포위해 여러 차례 괴롭혔다. 항우가 망한 뒤 유방이 상금을 내걸고 그를 찾았다. 노(魯)나라의 협객 주가(朱家)의 집에 숨어있었는데, 주가가 하후영(夏侯嬰)을 설득해 사면을 얻어냈고, 낭중(郞中)에 임명되었다. 혜제(惠帝) 때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문제(文帝) 때 하동수(河東守)에 올랐다. 사람됨이 신의가 두텁고 의협심이 강해 한 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켰다.
曰得黄金百斤이 不如得季布의 一諾이라니 此 言ㅣ 傾向扵諌議也ㅣ라】

將次ㅅ 주088)
장차(將次)ㅅ
장차. 將次+ㅅ. ‘ㅅ’은 부사화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는 ‘, ’로도 표기되었다. 〈중간본〉에는 ‘將次ㅅ’로 되어 있다. ¶將次ㅅ : 내 將次ㅅ 桂樹ㅅ 퍼기 守아 이쇼리라(吾將守桂叢)「自瀼 ··· 四首」〈두시 7:16ㄱ〉. 쟝 :  늘구메  다 알니(將衰骨盡痛)「熱三首」〈두시 10:23ㄱ〉.  :  초야  峽으로 나가노니(具舟將出峽)「將別 ··· 十畝노라」〈두시 15:16ㄱ〉.
 번 주089)
 번
한 번. ¶내 일후믈 귀예  번 드러도 病이 업고〈석상 9:7ㄱ〉. 예  번 러디면 엇디 시러곰 자바 내리오(一墜那得取)「龍門閣」〈두시 1:32ㄱ〉.
許諾요 주090)
허락(許諾)요
허락함의. 許諾+-+오+ㅁ+.
므거우믈 주091)
므거우믈
무거움을. 므겁-[重]+우+ㅁ+을.
期望야 믄듯 주092)
믄듯
문득. 『두시언해』에서는 ‘믄득, 믄드시’로도 쓰였다. ‘믄듯’은 물론 ‘믄드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믄득 :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석상 3:18ㄱ〉. 처 듣고 므를 衣裳애 기 흘료라(初聞涕淚滿衣裳)「聞官 ··· 河北」〈두시 3:24ㄱ〉. 믄듯 : 이제 믄듯 暮春ㅅ 예(今忽暮春閒)「杜鵑」〈두시 17:4ㄱ〉. 믄드시 : 시르믜 오 믄드시 이긔디 몯리로다(愁來遽不禁)「風疾 … 三十六韻」〈두시 3:14ㄴ〉.
寸心로 여 주093)
촌심(寸心)로 여
촌심으로 하여금. 寸心+으로 -+이+어. 사동문의 피사동주로서 후행하는 ‘기우리노라’와 호응한다.
기우리노라 주094)
기우리노라
기울게 하노라. 기우리노라. ¶기울- : 疑惑이 제 기울며 智照ㅣ 제 나타 智斷이 이 니〈영가 상:11ㄱ〉.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回回偃飛盖)「揚旗」〈두시 5:48ㄱ〉. 기우리- : 布施 行호 목수믈 다며 쳔 기우리고 財命을 다 리면 모 兼시니〈영가 하:49ㄴ〉. 箱子 기우리니  片이 뷘 도다(傾箱雪片虛)「白小」〈두시 17:39ㄴ〉.

【한자음】 장기일낙중 훌사촌심경【조구생(曹丘生)이 계포(季布)에게 말하기를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 번 승낙을 받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니, 이것은 두보가 간의를 신뢰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장차 한 번 허락함의 무거움을 기망(期望)하여, 문득 촌심(寸心)으로 하여 기울이노라.
*시 구절 해석 : “장차 한 번 허락함이 무거움을 기약하여, 문득 촌심을 기울이도다.”라는 뜻으로, 정간의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온 정성을 다해 섬기겠다는 말이다.

君見途窮哭 宣憂阮步兵阮籍 주095)
완적(阮籍)
210~263. 삼국시대 위(魏)나라 진류(陳留) 울지(尉氏) 사람. 자는 사종(嗣宗)이고, 아버지는 후한 말의 명사이자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완우(阮瑀)다. 보병교위(步兵校尉)를 지내 ‘완 보병’이라고도 하며, 혜강(嵇康)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중심인물이다. 제왕(齊王) 조방(曹芳) 때 상서랑(尙書郞)에 올랐고, 병으로 사직했다. 대장군 조상(曹爽)이 주륙(誅戮)된 뒤 산기상시(散騎常侍)와 보병교위를 지내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노장(老莊)을 좋아했고, 예교(禮敎)를 멸시했다. 술을 좋아하고 현언(玄言)을 즐겼는데, 남의 장단점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아 자신을 보전했다. 5언시를 잘 지었고, 풍격은 은회(隱晦)했다. 대표작 「영회시(詠懷詩)」 85수는 자기의 내면세계를 제재로 하여 철학적으로 진술한 연작이다. 전통적인 유교사상이나 기성권력에 반항하는 자세를 노래한 몇 편의 부(賦) 작품 외에,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과 원초적인 노장사상을 추구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밖에 「달장론(達莊論)」과 「통역론(通易論)」 등이 있다. 『문선(文選)』에 시문이 약간 실려 있고, 전기는 『삼국지(三國志)』 권21과 『진서(晉書)』 권49에 실려 있다. 저서에 후세 사람이 편집한 『완보병집(阮步兵集)』이 있다.
이 爲歩兵校尉 주096)
교위(校尉)
한나라 때 설치된 관직 이름으로, 군대의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교위(戊己校尉), 중루교위(中壘校尉),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한나라 이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장관을 일컫는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당나라 이후 지위가 점점 약해졌다.
니 車迹所窮이어든 慟哭而返더니라 ㅣ 以阮籍으로 自比其窮야 望諌議之救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그듸 주097)
그듸
그대는. 그듸+. ‘그듸’는 2인칭대명사 ‘너’보다 상대방을 약간 대우하는 대명사이다. ‘그듸~보라(君見)’는 두시에서 상용하는 ‘그듸~보디 아니다(君不見)’의 긍정형이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窮困 길헤셔 주098)
길헤셔
길에서. 길ㅎ+에+셔.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우루믈 주099)
우루믈
욺을. 우는 것을. 울-[泣]+우-+ㅁ+을.
보라 阮步兵시름호미 주100)
시름호미
걱정함이. 시름+-+오+ㅁ+이.
맛니라 주101)
맛니라
마땅하다. 맛#-+니+라. 완적(阮籍)이 막다른 길에서 울었던 것처럼 지금의 두보 자신도 완적과 다를 바가 없으니 나를 걱정해 달라는 뜻이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중간본〉에는 ‘맛당니라’로 되어 있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군견도궁곡 선우완보병완적(阮籍)보병교위가 되니 수레의 자국이 다한 곳에서 통곡하고 돌아왔다. 두보완적으로 자신의 곤궁함을 비유해 정 간의(鄭諌議)가 구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언해역】 그대는 궁곤(窮困)한 길에서 욺을 보라, 완 보병(阮步兵)을 걱정함이 마땅하네.
*시 구절 해석 : “그대는 궁곤한 길에서 우는 것을 보라, 완 보병을 위해 시름함이 마땅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가 곤궁에 빠졌으니 나를 위해 선처해 달라는 당부의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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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간의(諫議) : 관직(官職) 이름. 간의대부(諫議大夫).
주002)
경증정간의 십운(敬贈鄭諫議十韻) : 이 작품은 천보(天寶) 11년(752), 두보 41세 때에 지어졌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에 있었다. 『통감(通鑑)』에 따르면 천보 10년(761) 4월 선우중통은 남조(南詔) 토벌에 나섰다가 대패해 6만 명의 군사를 잃었다. 다시 병력을 보충받아 남조를 공격했는데, 양국충(楊國忠)은 어사(御史)를 파견해 병정을 징집하도록 했다. 이에 징집된 사람들도 원성이 높았고, 부모와 처자들도 전송하면서 곡성이 들판을 가득 덮었다. 이 시는 이때 일을 소재로 삼아 쓴 것인데, 시인은 옳지 못한 전쟁에 대해 강렬하게 질책하였다. 〈삼대례부(三大禮賦)〉를 지어 바치고 난 다음에 아무런 조치가 없자 지은 것이다.
주003)
간쟁(諫爭) : 임금의 옳지 못한 처사나 과오에 대하여 힘써 간언(諫言)하는 것. 방법과 정도에 따라 풍간(諷諫), 순간(順諫), 직간(直諫), 쟁간(爭諫), 함간(陷諫) 등이 있어서 왕권의 남용을 규제했다.
주004)
벼스리라 : 벼슬이라. 벼슬[爵]+이+라. ‘-이라’는 [원인]. 연결어미이다.
주005)
통달(通達)티 : 통달하지. 洞達++디.
주006)
아닔 : 아닌 것이. 아니+이+ㄹㅅ. ‘아니’에 계사 ‘이’가 결합된 형태에 동명사어미 ‘ㄹㆆ’이 결합되어 명사적으로 쓰였다. 이때 ‘ㄹㆆ’의 ‘ㆆ’은 ‘ㅅ’으로 표기되었다. ¶너펴 돕오미 다 업서 後世 기리 주노라〈법화 서:18ㄱ〉. 여러 劫ㅅ 因이 아닔 아니며〈육조 상:63ㄱ-4〉. 變化호미 다 업수믈 알리로소니 녯나래 기픈 宮의 살어든 嬪嬙이 左右에 블근 곳 토 어느 리오(迺知變化不可穹 豈思昔日居深宮 嬪嬙左右如花紅)「杜鵑行」〈두시 17:6ㄴ〉.
주007)
아니로소니 : 아니니. 아니+도+ㅅ+오+니.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오낤  혜면 아  劫이로소니〈석상 6:37ㄴ〉.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秋日 ··· 三十韻」〈두시 3:8ㄴ〉.
주008)
일 :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그 어버이 그 졈어셔 식 업고 일 홀어미 된 줄을 슬피 녀겨〈소학 6:52ㄱ〉. 四載 타 疎鑿야 三巴 控持요 일 아노라(早知乘四載 疏鑿控三巴)「禹廟」〈두시 6:26ㄱ〉.
주009)
일후 : 이름을. 일훔[名]+. 〈중간본〉에는 ‘일흐믈’로 되어 있다.
주010)
아놋다 : 아는구나. 알-[知]++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011)
파적(破的) : ①화살이 과녁을 쏘아 맞춤. ②파적(破鏑). 발언(發言)이 정확하게 요점에 적중했음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두 개의 뜻이 모두 쓰였다.
주012)
시필(試筆) : ①시(詩)와 산문(散文). ②시를 쓰는 붓.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13)
소 : 화살을. [箭]+. ‘살’의 ‘ㅏ’가 ‘ㄹ’ 받침의 영향으로 원순모음화 되어 ‘솔’이 되었다. 이와 같이 『두시언해』에는 원문모음화로 인해 이형태를 가진 많은 예가 있다. ¶살 : 살 머겨 쏘시니 그 사리 스믈 여듧 부플 다 여 해 차 가아 鐵圍山애 바니〈석상 3:14ㄱ〉. 화 혈뎬 반기 세니 혀며 사 뎬 반기 기니 며(挽弓當挽強 用箭當用長)「前出塞九首」〈두시 5:28ㄱ〉. 솔 : 내 平 肩輿 뒷노니 앏길히 활 소 :솔 :봄 니라(我有平肩輿 前途猶凖的)「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9ㄴ〉.
주014)
헐에 : 헐게. 헐-[破]+게. ‘-에’는 ‘-게’의 ‘ㄱ’이 선행하는 ‘ㄹ’ 뒤에서 약화된 것이다. ¶믈읫 有情이 비록 如來 道理 호다가도 尸羅 헐며〈석상 9:13ㄱ〉. 해 이셔셔 오직 여 사 心力으로 헐에 니 사게 干犯호미 므슷 이리어 그믈로 求니오(在野只敎心力破 干人何事網羅求)「見王監兵馬使호니~請余賦詩二首다」〈두시 17:11ㄴ〉.
주015)
소 : 쏨은. 쏘-[射]+. ‘소-’의 15세기의 일반적인 표기는 ‘쏘-’인데 각자병서를 쓰지 않는 『두시언해』의 특성상 ‘소-’가 쓰였다.
주016)
녜로브터 : 예로부터. 녜+로#븥-+어. ‘브터’는 ‘븥-’의 활용형과 이것이 문법화한 보조사가 쓰였다.
주017)
오 : 오는. 오-[來]+.
주018)
이리니 : 일이니. 일[事]+이+니.
주019)
몬져 : 먼저. (차례 등에서) 앞서서. 종덕신편(1758)에 처음으로 ‘먼져’가 발견된다. ¶몬져 : 調達이와 難陁왜 몬져 쏘니〈석상 3:13ㄴ〉. 님그미 몬져 사호 그쳐  華山 陽애 보내욜 디니라(大君先息戰 歸馬華山陽)「有感五首」〈두시 5:14ㄱ〉. 먼져 : 이 먼져  허믈이 잇 쟤 면젼례 버거 등을 고티더니〈종덕 하:24ㄱ〉.
주020)
가매 : 감애. 가-+오+ㅁ+애.
주021)
뉘 : 누가. 미지칭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한 것으로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 목적격형은 ‘:눌(상성)’이다.
주022)
구틔여 : 구태여. 원문의 ‘敢’의 번역이다. ¶太子ㅣ 구틔여 從티 아니대〈석상 24:49ㄱ〉. 구틔여 伊尹 周公ㅅ 地位예 다 屈原 宋玉 죄 오 줄 아니로다(不必伊周地 皆登屈宋才)「秋日 ··· 三十韻」〈두시 3:10ㄱ〉.
주023)
토리오 : 다투겠는가? 토-[爭]+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토- : 나 난 後로  더브러 토 아니노다〈석상 11:34ㄴ〉. 恒山앤 오히려  이니고 遼海옌 토아 旌旗 폣도다(恒山猶突騎 遼海競張旗)「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ㄱ〉.
주024)
든 : 뜻은. [意]+은.
주025)
구룸 : 구름.
주026)
밧긔 : 밖에. [外]+의(처격).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주027)
표일(飄逸) : ①빠르게 나는 모양. ②행동거지가 맑고 깨끗해 탈속(脫俗)한 기운이 있음. ③문학작품의 풍격(風格)이 청신쇄탈(淸新灑脫)하면서 의경(意境)이 고원(高遠)한 것을 형용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28)
표일(飄逸)고 : 표일하고. ‘표일(飄逸)’의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세상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태평하다’이다.
주029)
마니 : 맞으니. 맞-[適]+니.
주030)
놀라놋다 : 놀라는구나. 놀라-++오+ㅅ+다.
주031)
재사(才思) : 재기(才氣)와 사치(思致). 사치는 사람의 사상과 의취(意趣) 또는 성정(性情),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032)
호묘(浩渺) : ①수면(水面)이 넓고 멂. ②아득히 넓고 광활함. 여기서는 두 개의 뜻이 모두 쓰였다.
주033)
터럭마도 : 털만큼도. 터럭[毫]+마+도. 〈중간본〉에는 ‘티럭마도’로 되어 있다. ¶터럭 : 如來ㅅ 모매 터럭 구무마다 放光샤〈석상 11:1ㄴ〉 오히려 思想호 朝廷에 나가면 머릿 터럭마니나 社稷 돕오련마 얼구리 이제 이 니 나가거나 믈러오거나 호 길 녀뇨매 리과라(尙想趍朝廷 毫髮裨社稷 形骸今若是 進退委行色)「客堂」〈두시 6:53ㄱ〉. -마도 : 비록 사 무레 사니고도 마도 몯호다〈석상 6:5ㄱ〉. 오직 늘구믈 디녀 한 病에 올이노니 涓埃마도 聖朝 對答호미 잇디 몯호라(唯將遲暮供多病 未有涓埃答聖朝)「野望」〈두시 14:32ㄱ〉.
주034)
기튼 : 남은. 깉-[遺]+은.
주035)
측호미 : 아쉬움이. 측은함이. 측#-+오+ㅁ+이. ¶對答샤 측디 아니다〈월석 4:66ㄴ〉. 도라가노라 告호매 기튼 측호미 하니 將 늘구메 이긔 노로미  됴토다(告歸遺恨多 將老斯遊最)「南池」〈두시 13:17ㄴ〉.
주036)
업스니 : 없으니. 없-[無]+으니.
주037)
믌겨리 : 물결이. 믈+ㅅ+결+이.
주038)
올로 : 홀로. 올+로.
주039)
늘기 : 늙게. 늙-[老]+이.
주040)
이럿도다 : 일어 있도다. 이루어져 있도다. 일-[成]+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41)
야인(野人) : ①옛날에 국성(國城) 밖 교외에서 살던 사람. 국인(國人)의 반대말이다. ②보통 촌야(村野)에서 사는 사람. 즉 농부(農夫)를 말한다. ③서인(庶人). 평민(平民). ④사인(士人)이 자신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주042)
부생(浮生) : 뜬 구름 같이 허망한 삶을 이르는 말.
주043)
햇 : 들의. ㅎ[野]+애+ㅅ.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를 만나면 ‘ㅎ’이 실현된다. 『두시언해』에는 ‘뫼ㅎ’가 ‘모ㅎ’와 같이 하향이중모음이 생략된 형태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15세기 국어에서 ‘모ㅎ’은 ‘모퉁이, 모서리’에 사용된 ‘모’의 뜻이므로 혼동의 우려도 있다. 또한 15세기 국어에서 ‘뫼ㅎ’는 ‘산’이고, ‘ㅎ’는 ‘들’의 뜻이다. ¶모ㅎ : 秦ㅅ 모히 警蹕  當얫고 漢ㅅ 林苑은 㫌旄 잇  드렛도다(秦山當警蹕 漢苑入㫌旄)「喜聞 ··· 二十韻」〈두시 5:2ㄱ(복각본 부분)〉. 뫼ㅎ : 太子ㅣ 뫼히며 므리며 디 아니야 니실〈석상 3:35ㄴ〉. 흐르 믈 드료매 浩汗호 어즐리로소니 큰 불휫 노 뫼 어든 호라(納流迷浩汗 峻址得嶔崟)「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7ㄴ〉. 모ㅎ : 먼 모히 토와 도왓고 즈믄 바회 스싀로 염드러 라오놋다(遠岫爭輔佐 千巖自崩奔)「木皮嶺」〈중간두시 1:27ㄱ〉.
주044)
사 : 사람은. 사+.
주045)
어느 : 어찌.
주046)
득소(得所)리오 : 얻겠는가? 得所+-+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어느’와 호응한다.
주047)
하 : 하늘의. 하+ㅅ. ‘하’의 ‘ㄹ’이 후행하는 속격조사 ‘ㅅ’으로 대체되었다. 15세기 국어에서 ‘짓, 믓, 픗, 바, 하’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짓 : 그 짓 리  가져 나오〈석상 6:14ㄱ〉. 우리 짓 碑 眛滅티 아니고(吾家碑不昧)「回棹」〈중간두시 2:14ㄱ〉 /믓 : 多生앳 習氣ㅣ 기프니 미 그처도 믓겨리 오히려 솟고〈牧牛子24ㄴ〉. 文章 曹植의 믓겨리 어윈 고(文章曹植波瀾闊)「追酬 ··· 見寄」〈두시 11:7ㄴ〉 /픗 : 슬픈 픗뎌 새배 그으기 수으놋다(哀笳曉幽咽)「留花門」〈중간두시 4:13ㄴ〉 /바 : 毘摩質多 닐오매 바 믌겴 소리니 바 믌겨를 티니라〈법화 1:51ㄱ〉 /녜로 오매 서르 傳호 이 바 누니라 니(苔蘚食盡波濤痕)「石笋行」〈두시 3:70ㄱ〉.
주048)
디 : 뜻이. [意]+이. ¶講 글 닐거   씨니〈석상 3:11ㄴ〉.  안해 길며 뎔우미 마니 모미 도록 님 들 닙오리로다(意內稱長短 終身荷聖情)「端午日賜衣」〈두시 11:23ㄱ〉.
주049)
 : 뜬. -[浮]+ㄴ. ‘-’는 ‘물에 뜨다’와 ‘눈을 뜨다’의 뜻이 있다. ¶(물에 뜨다)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 愛欲 흐린 믌겨 그치니라〈영가 서5ㄴ〉. 니 나그내  노피 안조니 가  이 오 녀거니라(浮客轉危坐 歸舟應獨行)「翫月呈漢中王」〈두시 12:7ㄴ〉. (눈을 뜨다) : 盲龍이 눈 고 迦茶龍이 보 네 부텨 供養 니 니〈월천 24ㄱ〉.  불 제 우 누  아마다 므레 지 樓 우희 올아 라노라(颯颯開啼眼 朝朝上水樓)「得舍弟觀의~情見乎詞노라」〈두시 8:38ㄴ〉.
주050)
엷게 : 엷게. 엷-[薄]+게. 정음 초기문헌에서는 모음어미가 오면 ‘열’과 같이 ‘ㅸ’이 쓰였다. 〈능엄경언해〉(1461)부터 ‘ㅸ⇒ㅇ/우/ㅇ’로 교체되었다. 불규칙용언에서 규칙용언으로의 변화는 18세기 후반 문헌부터 나타난다. ¶덕이 지극히 엷은지라〈경신록 29ㄴ〉.
주051)
랏도다 : 만들어 있도다. -[作]+아#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중간본〉에는 ‘랏도다’로 되어 있다. ¶그 지븨셔 차반  쏘리 워즈런거늘〈석상 6:16ㄱ〉. 舟砂로 리 오 黃金 비느리로다(丹砂作尾黃金鱗)「沙苑行」〈두시 17:26ㄴ〉.
주052)
명수(冥搜) : 유원(幽遠)한 곳까지 찾는다는 뜻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찾는다는 말. 또는 온 힘을 다하여 찾고 수집함.
주053)
객정(客旌) : ①옛날에 관리가 사신을 가거나 부임할 때 도중에 사용하는 정절(旌節). ②나그네의 자취를 가리키는 말. 객종(客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54)
명유(冥幽) : 음간(陰間)에 있는 영혼(靈魂)을 가리키는 말.
주054_1)
*〈중간본〉에는 ‘言搜求冥幽之䖏호’로 되어 있다.
주055)
하 : 많아. 하-[多]+∅. ‘하아’형도 쓰인다. 형용사 어간 ‘하-’가 형태상의 변화 없이 통사 범주를 부사로 바꾸어 쓰는 ‘하’가 있는데, 이를 영접사 파생(零接辭派生)이라 한다. ‘하’는 많이, 매우‘의 의미이다. ¶내 모미 하 커 수물 꿈기 업서〈월석 2:51ㄱ〉. 經이 後人의 莭畧이 너무 하〈육조 서:7ㄱ-6〉. 하아 : 그긔  하아 쇼로 쳔사마 니라〈월석 1:24ㄴ〉.
주056)
션븨 : 선비의. 션븨[士]+의. 『두시언해』에서 ‘션븨’는 ‘션’로도 쓰였다. ¶션븨 : 儒 션븨 〈훈몽 상:18ㄱ〉. 懇切히 諫爭 匡鼎을 머믈오시고 여러 션븨예 服虔을 혀 시놋다(懇諫留匡鼎 諸儒引服虔)「秋日 ··· 一百韻」〈두시 20:11ㄱ〉. 션 : 太微宮은 션 그레 하 皇帝ㅅ 南녁 宮 일후미라〈월석 2:48ㄴ〉. 술위 미러 와 몃  오직 눌러 安靜니오 옷기슬글 어 나리 록 글 션 하도다(推轂幾年唯鎭靜 曳裾終日盛文儒)「又作此奉衛王」〈두시 14:12ㄱ〉.
주057)
오 : 옷을. 옷+.
주058)
말오 : 말고. 그만두고. 원문의 ‘休’의 번역이다.
주059)
깁수윈 : 깊숙한. ‘깁수위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는 ‘깁스위다’를 확인할 수 있다. ¶깁수위- : 노 가지와 읏듬괘 햇 두들게 녜외니 깁수윈 칠욘 戶牖ㅣ 뷔엿더라(崔嵬枝榦郊原古 窈窕丹靑戶牖空)「古栢行」〈두시 18:12ㄴ〉. 가며 가 조 難히 어드리로소니 퍼러야 天理  깁수위도다(去去才難得 蒼蒼理又玄)「寄岳 ··· 五十韻」〈두시 20:19ㄴ〉. 文章 깁수윈  여럿니 올마 여 여 朝廷을 빗내놋다(文章開突奧 遷擢潤朝廷)「秦州셔~三十韻ㅣ라」〈두시 24:5ㄱ〉. 巫峽 어드운 묏부리옌 朔漠앳 氣運이로소니 묏부리 깁수위오 시냇 묏고리 검어듭도다(巫峽陰岑朔漠氣 峯巒窈窕溪谷黑)「虎牙行」〈두시 25:44ㄴ〉. 깁스위- : 기프며 깁스위여 人情에 갓갑디 아니〈금삼 3:27ㄱ〉. 집 아래 어로 온 사미 들리로소니 담 모히  깁스위도다(下可容百人 墻隅亦深邃)「題衡山縣文宣王廟新學堂呈陸宰」〈두시 6:22ㄱ〉. 北極을 配對 玄都ㅣ 깁스위니 노  브텟 禁人 사리 기도다(配極玄都閟 憑高禁籞長)「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6ㄴ〉. 긴 그리메 깁스윈  뎌 드렛고 나 비치 묏 고 흐렛도다(長影沒窈窕 餘光散谽谺)「營屋」〈두시 6:46ㄱ〉. 드트레 나 술윗 자최 깁스위니  록 더워  호미 업도다(出塵閟軌躅 畢景遺炎蒸)「陪章 ··· 赴州」〈두시 22:26ㄱ〉.
주060)
 : 데. 곳에. ‘’는 의존명사 ‘’와 속격조사 ‘’가 결합된 형태로 볼 수도 있고, ‘’라는 의존명사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고, 속격조사 ‘’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주061)
더드머 : 더듬어. 더듬-[摸]+어.
주062)
보란 : 봄은. 보-+오+ㅁ+란. ¶ㆍ ㅡ ㅗ ㅜ ㅛ ㅠ란 附書 初聲之下고〈훈언 12ㄴ〉. 盤石에 命圭 오란 해 고 凶門에 술윗 미로란 져기 홀 디니라(盤石圭多剪 凶門轂少推)「秋日 ··· 三十韻」〈두시 3:11ㄱ〉.
주063)
나그내 : 나그네.
주064)
정기(旌旗) : ①깃발에 대한 총칭(總稱). ②군사(軍士)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즉 깃대 끝에 새의 깃으로 꾸민 장목을 늘어뜨린 의장기를 말한다.
주065)
믿노라 : 믿노라. 믿-++오+라.
주066)
축거(築居) : 집을 지어 그곳에서 거주(居住)함.
주067)
표묘(縹緲) : ①아득히 멀어서 희미함. 또는 아득히 넓은 모양. ②바람에 따라 나부낌. ③소리가 맑고 멀리 울리는 것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68)
쟁영(崢嶸) : ①산이 높고 가파른 모양. ②깊고 험한 모양. ③추위가 매우 심한 모양. ④재주가 특출한 모양. ⑤세월이 쌓여 한 해가 저묾. ⑥위험한 모양.
주069)
복축(卜築) : 주택을 지을 땅을 선택함. 즉 거주지를 정한다는 뜻이다.
주070)
사롤 : 살. 살-[居]+오+ㄹ. 현대국어의 ‘살다’는 ‘ㄹ’동명사가 후행하면 ‘살-’의 ‘ㄹ’받침이 탈락하지만, 15세기 국어에서는 ‘살-’에 ‘올’이 결합된 형태가 된다.
주071)
 : 데를. +.
주072)
복축(卜築)호미 : 복축함이. 卜築+-+오+ㅁ+이.
주073)
아란 : 아스라한. 아라#-+ㄴ. 〈중간본〉에는 ‘아란’으로 되어 있다. ¶아라- : 디샛  아라호니〈능엄 5:72ㄴ〉. 聖賢ㅅ 일후미 오라 아라니 나그내로 뇨매 病이 마다 보차놋다(聖賢名古邈 羈旅病年侵)「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3ㄴ〉.
주074)
건마 : 듯하지마는. #-+거+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金輪王이 외샤 四天下  아시련마〈석상 6:17ㄴ〉. 軍을 조차 니건 디 열  나니 能히 分寸맛 功이 업스려마(從軍十年餘 能無分寸功)「前出塞九首」〈두시 5:29ㄴ〉.
주075)
나그내로 : 나그네로. 즉 나그네의 신분으로. 나그내+로.
주076)
머구메 : 먹음에. 먹-[食]+우+ㅁ+에.
주077)
 오라거다 : 해가 오래다. 즉 세월이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 오라-[久]+거+다.
주078)
안합(顔闔) : 전국시대 노(魯)나라 사람. 은사(隱士). 노나라 임금이 그가 어질다 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초빙하려 하자 “그대가 잘못 들은 것 같으니 다시 확인해 봐라(君恐誤聽 不若審之)”고 말해 사자를 돌려보낸 뒤 뒷담을 뚫고 달아났다.
주084_1)
*〈중간본〉에는 ‘諸公厭禰𢖍’과 ‘禰衡이’로 되어 있다.
주079)
조조(曹操) : 155~220. 위무제(魏武帝). 후한 말기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 자는 맹덕(孟德)이고, 묘호는 태조(太祖)며,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본성은 하후(夏侯)씨고, 조숭(曹嵩)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권모술수에 능했고, 나이 스물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郞)이 되었다가 돈구령(頓丘令)으로 옮겼다. 기도위(騎都尉)가 되어 황건적(黃巾賊) 토벌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초평(初平) 3년(192) 연주목(兗州牧)이 되어 황건군의 항복을 유도해 정예병을 청주병(靑州兵)으로 편입시켰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다. 건안(建安) 13년(208) 승상(丞相)이 되고,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했다. 이후 세력이 강남(江南)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지만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다. 연강(延康) 원년(220) 1월 낙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고,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성을 가져오게 했다. 저서에 『손자약해(孫子略解)』와 『병서접요(兵書接要)』, 『조조집(曹操集)』이 있다.
주080)
유표(劉表) : 142~208. 후한 말기 산음(山陰) 고평(高平) 사람. 자는 경승(景升)이다.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다. 헌제(獻帝) 초평(初平) 원년(190)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다. 형주 호족의 지지를 얻어 호북(湖北)과 호남(湖南) 지방을 장악했다. 이각(李傕)과 곽사(郭汜)가 장안(長安)에 들어왔을 때 그를 진남장군(鎭南將軍)과 형주목(荊州牧)에 임명하고 성무후(成武侯)에 봉했다. 조조(曹操)와 원소(袁紹)가 관도(官渡)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원소가 그에게 구원을 청했지만, 어느 쪽도 도와주지 않았다. 혼전에 가담하지 않고 주민을 돌보면서 조용히 자신을 지켰다. 조조가 원소를 물리치고 정벌하러 왔지만 도착하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 아들 유장(劉璋)이 조조에게 항복했다. 저서에 『역주(易注)』와 『역장구(易章句)』, 『후정상복(后定喪服)』 등이 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했다고 평가되지만, 다만 천하 대세(大勢)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주081)
사자(使者)ㅣ : 사자이야. 사신이야. 使者+이+. 〈중간본〉에는 ‘使者ㅣ아’로 되어 있다.
주082)
얻니건마 : 얻으러 다녔지마는. 얻-+닉+어+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妙音이  現샤 說法샤 한 어려 일 救濟샤미 觀音과 다디 아니커신마〈석상 21:20ㄱ〉. 새 도  수의 어드리언마(新者亦易求)「破船」〈두시 6:45ㄱ〉.
주083)
제공(諸公)히 : 제공들이. 諸公+ㅎ+이. 즉 예형(禰衡)을 거부한 조조(曹操)와 유표(劉表)를 가리킨다. ‘ㅎ’의 명사와 접미사이며 ‘ㅎ말음체언’의 하나이다.
주084)
아쳐라놋다 : 싫어하는구나! 아쳗-[厭]+아#-++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아쳗- : 곧 憍慢며 대  니와다 아쳐러 게으른 들 머거〈월석 17:14ㄱ〉. 아쳗라- : 甚히  즐기다가 後에 이울어든 사미 아쳐러 야 貪使도  그러타 니라〈원각 상1-2:177ㄴ〉.
주084_1)
*〈중간본〉에는 ‘将期一諾重’으로 되어 있다.
주085)
촌심(寸心) : 마음[心]을 가리키는 말. 옛날에는 마음의 크고 작은 것이 방촌(方寸) 사이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
주086)
조구생(曹丘生) : ?~?. 전한 초(楚) 사람. 변사(辯士). 환자(宦者) 조담(趙談) 등을 섬겼고, 두장군(竇長君)과 친했는데, 그래서 두장군이 편지를 보내 하동수(河東守) 계포(季布)를 만나게 되었다. 조담에게 소개하니 계포가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머물면서 상객(上客)이 되었다. 나중에 계포 덕분에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주087)
계포(季布) : ?~?. 후한 초(楚) 사람. 임협(任俠)으로 유명해 초 땅 사람들이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도 계포의 한 번 허락을 받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 항우(項羽)의 부하로 한고조 유방(劉邦)을 포위해 여러 차례 괴롭혔다. 항우가 망한 뒤 유방이 상금을 내걸고 그를 찾았다. 노(魯)나라의 협객 주가(朱家)의 집에 숨어있었는데, 주가가 하후영(夏侯嬰)을 설득해 사면을 얻어냈고, 낭중(郞中)에 임명되었다. 혜제(惠帝) 때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문제(文帝) 때 하동수(河東守)에 올랐다. 사람됨이 신의가 두텁고 의협심이 강해 한 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켰다.
주088)
장차(將次)ㅅ : 장차. 將次+ㅅ. ‘ㅅ’은 부사화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는 ‘, ’로도 표기되었다. 〈중간본〉에는 ‘將次ㅅ’로 되어 있다. ¶將次ㅅ : 내 將次ㅅ 桂樹ㅅ 퍼기 守아 이쇼리라(吾將守桂叢)「自瀼 ··· 四首」〈두시 7:16ㄱ〉. 쟝 :  늘구메  다 알니(將衰骨盡痛)「熱三首」〈두시 10:23ㄱ〉.  :  초야  峽으로 나가노니(具舟將出峽)「將別 ··· 十畝노라」〈두시 15:16ㄱ〉.
주089)
 번 : 한 번. ¶내 일후믈 귀예  번 드러도 病이 업고〈석상 9:7ㄱ〉. 예  번 러디면 엇디 시러곰 자바 내리오(一墜那得取)「龍門閣」〈두시 1:32ㄱ〉.
주090)
허락(許諾)요 : 허락함의. 許諾+-+오+ㅁ+.
주091)
므거우믈 : 무거움을. 므겁-[重]+우+ㅁ+을.
주092)
믄듯 : 문득. 『두시언해』에서는 ‘믄득, 믄드시’로도 쓰였다. ‘믄듯’은 물론 ‘믄드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믄득 :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석상 3:18ㄱ〉. 처 듣고 므를 衣裳애 기 흘료라(初聞涕淚滿衣裳)「聞官 ··· 河北」〈두시 3:24ㄱ〉. 믄듯 : 이제 믄듯 暮春ㅅ 예(今忽暮春閒)「杜鵑」〈두시 17:4ㄱ〉. 믄드시 : 시르믜 오 믄드시 이긔디 몯리로다(愁來遽不禁)「風疾 … 三十六韻」〈두시 3:14ㄴ〉.
주093)
촌심(寸心)로 여 : 촌심으로 하여금. 寸心+으로 -+이+어. 사동문의 피사동주로서 후행하는 ‘기우리노라’와 호응한다.
주094)
기우리노라 : 기울게 하노라. 기우리노라. ¶기울- : 疑惑이 제 기울며 智照ㅣ 제 나타 智斷이 이 니〈영가 상:11ㄱ〉.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回回偃飛盖)「揚旗」〈두시 5:48ㄱ〉. 기우리- : 布施 行호 목수믈 다며 쳔 기우리고 財命을 다 리면 모 兼시니〈영가 하:49ㄴ〉. 箱子 기우리니  片이 뷘 도다(傾箱雪片虛)「白小」〈두시 17:39ㄴ〉.
주095)
완적(阮籍) : 210~263. 삼국시대 위(魏)나라 진류(陳留) 울지(尉氏) 사람. 자는 사종(嗣宗)이고, 아버지는 후한 말의 명사이자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완우(阮瑀)다. 보병교위(步兵校尉)를 지내 ‘완 보병’이라고도 하며, 혜강(嵇康)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중심인물이다. 제왕(齊王) 조방(曹芳) 때 상서랑(尙書郞)에 올랐고, 병으로 사직했다. 대장군 조상(曹爽)이 주륙(誅戮)된 뒤 산기상시(散騎常侍)와 보병교위를 지내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노장(老莊)을 좋아했고, 예교(禮敎)를 멸시했다. 술을 좋아하고 현언(玄言)을 즐겼는데, 남의 장단점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아 자신을 보전했다. 5언시를 잘 지었고, 풍격은 은회(隱晦)했다. 대표작 「영회시(詠懷詩)」 85수는 자기의 내면세계를 제재로 하여 철학적으로 진술한 연작이다. 전통적인 유교사상이나 기성권력에 반항하는 자세를 노래한 몇 편의 부(賦) 작품 외에,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과 원초적인 노장사상을 추구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밖에 「달장론(達莊論)」과 「통역론(通易論)」 등이 있다. 『문선(文選)』에 시문이 약간 실려 있고, 전기는 『삼국지(三國志)』 권21과 『진서(晉書)』 권49에 실려 있다. 저서에 후세 사람이 편집한 『완보병집(阮步兵集)』이 있다.
주096)
교위(校尉) : 한나라 때 설치된 관직 이름으로, 군대의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교위(戊己校尉), 중루교위(中壘校尉),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한나라 이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장관을 일컫는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당나라 이후 지위가 점점 약해졌다.
주097)
그듸 : 그대는. 그듸+. ‘그듸’는 2인칭대명사 ‘너’보다 상대방을 약간 대우하는 대명사이다. ‘그듸~보라(君見)’는 두시에서 상용하는 ‘그듸~보디 아니다(君不見)’의 긍정형이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098)
길헤셔 : 길에서. 길ㅎ+에+셔.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99)
우루믈 : 욺을. 우는 것을. 울-[泣]+우-+ㅁ+을.
주100)
시름호미 : 걱정함이. 시름+-+오+ㅁ+이.
주101)
맛니라 : 마땅하다. 맛#-+니+라. 완적(阮籍)이 막다른 길에서 울었던 것처럼 지금의 두보 자신도 완적과 다를 바가 없으니 나를 걱정해 달라는 뜻이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중간본〉에는 ‘맛당니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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