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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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중통께 드려 20운[奉贈鮮于京兆二十韻]


奉贈鮮于京兆 주001)
경조(京兆)
중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어. 일반적으로 한대(漢代) 이후에는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서 동쪽으로 화현(華縣)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며, 장안을 비롯한 12개의 현이 속해 있었다. 그리고 명청시대(明淸時代) 이후에는 순천부(順天府), 즉 지금의 북경(北京)을 경조라고 했다.
二十韻
주002)
봉증선우경조 이십운(奉贈鮮于京兆二十韻)
이 작품은 천보(天寶) 12년(753년)에 지어졌으며, 두보 42세 때이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에 있었다. 그 전해인 752년 12월, 재상 이임보(李林甫)가 병으로 죽자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는데, 선우중통을 발탁해 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천보 12년(752) 2월 양국충은 안녹산(安祿山)을 시켜 이임보가 일찍이 역모를 꾸몄다고 무고하도록 해 이임보는 관뚜껑이 열려 금자(金紫)가 제거되었다. 이 시는 이 사건이 있고 난 뒤에 지어졌다. 두보는 두 차례에 걸쳐 과거 시험에 응시했는데, 모두 이임보에 의해 제지되어 몹시 통한(痛恨)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선우중통에게 이 시를 주면서 도움을 주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鮮于 姓이오 名은 仲通이라】

봉증선우경조 이십운
(경조 선우중통 주003)
선우중통(鮮于仲通)
?~?. 당나라 낭주(閬州) 신정(新政) 사람. 자는 향(向)이고, 선우숙명(鮮于叔明)의 형이다. 학문이 높아 경전에 통달했고, 재물을 가볍게 여겨 남에게 베푸는 데 힘썼다.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현종 천보(天寶) 말에 경조윤(京兆尹)에 올랐고, 어사중승(御史中丞)과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를 역임했다. 양국충(楊國忠)의 눈밖에 나서 쫓겨났다.
께 드려 20운)
【선우(鮮于)는 성이고, 이름은 중통(仲通)이다.】

王國稱多士 賢良 주004)
현량(賢良)
①경학(經學)에 밝고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 ②한(漢)나라 때 실시된 관리등용 방법. 일명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라고도 한다. 전국 각 군으로부터 어질고 선량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이들에게 책문(策問)을 시험하여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선발했다. ③어질고 착함.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復幾人【幾人은 言不多也ㅣ라】

王國에 人士ㅣ 하다 주005)
하다
많다. 하-[多]+다.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魯鈍코  病이 하니 逢迎호 머러  迷失노라(魯鈍仍多病 逢迎遠復迷)「水宿 ··· 群公」〈두시 3:19ㄱ〉.
일나 주006)
일나
일컬어나. 일-[稱]+어+으나. ‘일-’은 ㄷ불규칙용언이다. ¶녜 諸佛이 일라 讚嘆시며〈석상 13:4ㄴ〉. 夫人이 녜 肩輿 타 殿에 올아 萬壽쇼셔 일니라(夫人常肩輿 上殿稱萬壽)「送重 ··· 南海」〈두시 8:56ㄱ〉.
賢良  몃 사고 주007)
몃 사고
몇 사람인가? 몃 사+고. 의문사 ‘몃’과 설명의문어미 ‘-고’는 서로 호응한다. ¶世尊이  몃 里 녀시니고〈석상 6:23ㄱ〉. 뎌리 뫼 노 히로소니 와 雲霞  묏부린 몃 오(蘭若山高處 煙霞嶂幾重)「謁眞諦寺禪師」〈두시 9:25ㄱ〉.

【한자음】 왕국칭다사 현량부기인【‘기인(幾人)’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언해역】 왕국에 인사(人士)가 많다 일컬으나, 현량(賢良)은 또 몇 사람인가?
*시 구절 해석 : “왕국에 인재가 많다고 일컬어지나, 현량한 사람은 또 몇 사람인가?”라는 뜻으로, 인재가 많다고 해도 진정 뛰어난 사람은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異才應閒出 주008_1)
*〈중간본〉에는 ‘異才應出’로 되어 있다.
爽氣 주008)
상기(爽氣)
①명랑(明朗)하고 시원하게 열린 자연 풍경. ②서늘하고 시원한 기운. ③힘차고 먼 기개(氣槪).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必殊倫閒岀은 閒世而出也ㅣ라 주008_2)
*〈중간본〉에는 ‘岀은 世而出也ㅣ라’로 되어 있다.
爽氣 英爽之氣라】

다 주009)
다
다른. 다-[異]+ㄴ.
조 주010)
조
재주는. 조+. ¶伎女는 며 여러가짓 조 잘 겨지비라〈석상 3:5ㄱ〉. 어러이 라 매 어드러 가리오 죠고맛 조 欽敬논 고 愧謝노라(狂走終奚適 微才謝所欽)「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ㄱ〉.
이 주011)
이
응당. +이. 참조; 하다. 『두시언해』에서 ‘이’는 ‘다’로도 표기된다. 〈중간본〉에는 ‘당당이’로 되어 있다.
야 주012)
야
사이하여. #-+야. 〈중간본〉에는 ‘이야’로 되어 있다.
나니 주013)
나니
나니. 나-[出]++니.
 주014)

맑은. -[淡]+.
氣運은 반기 주015)
반기
반드시. 반+이. 정확한 차이는 알 수 없으나 15세기 국어에는 ‘반기’ 이외에도 반시〈두시 24:32〉, 반개〈두시 25:2〉 등이 사용되었다. 이 중 ‘반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반기 : 正音은 正 소리니 우리 나랏 마 正히 반기 올히 쓰논 그릴 일후믈 正音이라 니라〈월석 1:석보상절 서5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반시 :  세 번 머그면 돌히 반시 나리니 돌히 다 나거든 말라〈구간 3:113ㄱ〉. 流傳야 가 반시 等倫에 그츠리로다(流傳必絶倫)「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 16:5ㄱ-ㄴ〉. 반개 : 속 뷘 대로 반개 지여 요리라(當仗若虛竹)「課伐木幷序」〈두시 25:2ㄴ〉.
무레 주016)
무레
무리에. 물+에. ‘물’은 ‘무리’의 뜻으로 15세기에서는 ‘물, 믈, 무리, 므리’의 형태로 쓰였다. ¶물 : 버거 鬱卑迦葉三兄弟의 물 一千 사 濟渡시며〈석상 6:18ㄴ〉. 다 가짓 비치 너희 물 아니가(五色非爾曹)「送重 ··· 南海」〈두시 8:56ㄴ〉. 믈 : 特은  므리예 로 다 씨라〈석상 6:7ㄱ〉. 무리 :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석상 6:27ㄱ〉. 이 글 崔魏 무리 내 글  班揚다 더라(斯文崔魏徒 以我似班楊)「壯遊」〈중간두시 2:38ㄱ〉. 므리 : 特은  므리예 로 다 씨라〈석상 6:7ㄱ〉.
다니라 주017)
다니라
다르다. 다-++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이재응간출 상기필수륜【‘간출(閒岀)’은 세대를 사이에 두고 태어나는 것이다. ‘상기(爽氣)’는 밝고 시원한 기운이다.】
【언해역】 다른 재주는 응당 사이를 두고 나오니, 맑은 기운은 반드시 무리와 다르네!
*시 구절 해석 : “기이한 재주는 응당 사이를 두고 나오고, 시원한 기운은 반드시 무리와 다르다.”라는 뜻으로, 선우중통의 남다른 재질과 기상을 칭송한 말이다.

始見張京兆 宜居漢近臣【漢ㅅ 張敞 주018)
장창(張敞)
?~기원전 47. 전한 경조(京兆) 두릉(杜陵) 사람. 원적은 하동(河東) 동평양(東平陽)이고, 자는 자고(子高)다. 소제(昭帝) 때 태복승(太僕丞)이 되었다. 선제(宣帝) 때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는데, 대장군 곽광(霍光)의 뜻을 거슬러 한곡관도위(函谷關都尉)로 나갔다. 나중에 경조윤(京兆尹)에 올랐는데, 하루에 도둑 수백 명을 잡아 엄격하게 처벌하니 시장에 도적이 사라져버려 황제의 칭찬을 받았다. 양운(楊惲)과 가깝게 지냈는데, 양운이 대역죄로 살해당하자 면직되고 귀향했다. 몇 개월 뒤 기주자사(冀州刺史)로 기용되니 도적들이 사라졌다. 원제(元帝)가 좌풍익(左馮翊)으로 기용하려고 했는데, 병사했다. 직언을 잘하고 상벌을 엄격히 했다. 일찍이 아내를 위해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탄핵을 받았다. 선제가 까닭을 물어보니 규방(閨房) 안의 일이라면 눈썹을 그리는 것보다 더한 일도 있다고 대답하자 황제가 책망하지 못했다.
이 爲京兆尹 주019)
경조윤(京兆尹)
중국의 관직명. 한 무제(武帝) 태초(太初) 원년(기원전 104)에 우내사(右內史)를 고쳐 경조윤을 설치했고, 장안(長安) 이하 12개 현을 다스리는 일을 맡았다. 삼국시대 위나라 때 태수(太守)로 고쳐 불렀다가 서위(西魏), 주(周), 수 때 다시 환원되었다. ③왜국 덕천 막부시대(德川幕府時代)의 관직명. 경도소사대(京都所司代), 경직(京職)이라고도 한다. 왕실에 관한 사무를 맡았고 사원(寺院) 관리와 소송(訴訟)의 판결 등을 담당했다.
니 言仲通이 宜居敞之任也ㅣ라】

비르서 주020)
비르서
비로소. ‘비르서’를 분석하면 ‘비릇+어’일 가능성이 있다. ‘비릇’은 동사 ‘비릇다’의 어근임과 동시에 ‘비릇’ 자체는 명사와 부사로 모두 쓰였다. 현대국어의 ‘비로소’는 옛말의 ‘비릇’에 부사파생접미사 ‘-오’가 결합된 ‘비르소’가 ‘오’의 영향으로 ‘비릇’이 ‘비롯’으로 변화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참조; 비릇, 비릇다, 비르, 비르솜, 비르소, 비르서, 비르수, 비르소. 비루소(16세기). ¶비르수 : 旄頭ㅣ 처엄 비르수 어즈러우니 鶉首ㅣ 즌  버므러디도다(旄頭初俶擾 鶉首麗泥塗)「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 2:11ㄱ〉. 비릇- : 이런로 世界 니와다 비르소 覺明에 비르서 風과 金과 水와 火애 브터 萬物을 내야 일우니라(故로 世界起始호 肇於覺明야 而依乎風金水火야 以生成萬物也니라)〈능엄 4:21ㄱ〉. 義理예 禮法 릴 주리 업스니 恩愛호미 남진과 겨집괘 恭敬호로 비릇니라(義無棄禮法 恩始夫婦恭)「牽牛織女」〈두시 11:25ㄱ〉. 비르서 : 부텻 法에 쥬 四月ㅅ 열다쐣날 비르서 뎌레 드러 안 나 니디 아니야〈석상 11:1ㄴ〉. 靑玉案 비르서 입곡(試吟靑玉案)「又示宗武」〈두시 8:49ㄴ〉. 비릇 : 녯  비릇 업시 오로 곡도 며〈남명 상:75ㄱ〉. 簿尉ㅅ 소개셔 모 바사나 비릇 채질 호 마도다(有似幽並兒)「送高 ··· 十五韻」〈두시 22:29ㄱ〉. 비르솜 : 간 니로미 作이오 비르소미 因이오〈월석 11:101ㄱ〉. 비르소 : 바 모로매 本分 브터 法다 야 비르소 올리라〈몽산 33ㄴ〉. 時節이 바라온 제 世예 업슨 조 비르소 알리로소니(時危始識不世才)「寄狄明府博濟」〈두시 8:18ㄱ〉.
張京兆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1ㄱ

 보니 漢ㅅ 近臣 주021)
근신(近臣)
임금 가까이에서 일하는 신하. 근시(近侍).
사로미 주022)
사로미
삶이. 사는 것이. 살-[居]+오+ㅁ+이.
맛도다 주023)
맛도다
마땅하도다. 당연하도다. 맛#-+도+다. 〈중간본〉에는 ‘맛당도다’로 되어 있다.

【한자음】 시견장경조 의거한근신【한(漢)나라의 장창(張敞)이 경조윤(京兆尹)이 되니, 선우중통이 장창의 직임을 맡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언해역】 비로소 장 경조(張京兆)를 보니, 한(漢)의 근신(近臣)에 사는 것이 마땅하도다!
*시 구절 해석 : “비로소 장 경조를 보니, 한나라의 근신에 머문 것도 당연하다.”라는 뜻으로, 선우중통의 능력은 경조윤이라는 중임을 맡아 마땅하다는 말이다.

驊騮 주024)
화류(驊騮)
주목왕(周穆王) 팔준(八駿)의 하나. 보통 준마(駿馬)를 가리킨다.
開道路 鵰鶚 주025)
조악(雕鶚)
①독수리와 물수리. 모두 사나운 새. ②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비유. ③간사한 사람의 비유. ④재력(財力)이 웅건(雄健)한 것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①과 ②의 뜻으로 쓰였다.
離風塵【離 去聲 주026)
거성(去聲)
옛날 한어사성(漢語四聲) 가운데 제3성(聲).
이라 此 喻仲通의 得時飛騰也ㅣ라】

됴 주027)
됴
좋은. 둏-+.
리 주028)
리
말이. +이.
길 주029)
길
길을. 길ㅎ+.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여러 주030)
여러
열어. 열+어.
가 며 주031)
가 며
가는 듯하며. 가-+ 듯#-+며. ¶ - :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석상 6:9ㄱ〉. 英雄 이 보미 通神 니(英雄見事若通神)「승문~ 20수」〈두시 5:22ㄴ-23ㄱ〉.
주032)
매가. 매+∅. ‘ㅣ’ 하향중모음 아래에서 주격조삭 생략되었다.
 드트를 주033)
 드트를
바람 티끌을. 바람에 날리는 티끌을.
버리와다 주034)
버리와다
떼놓아. 서로 벌려 놓아. 서로 간격이 생기게. 버리#왇+아. ‘버리왇다’로 표기된 형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중간본〉에는 ‘버으리와다’로 되어 있다. ¶읏드미 雷雨 버리와다 불휘 믌 미틔 싯기여 그처디니 엇뎨 하 디시리오(幹排雷雨猶力爭 根斷泉源豈天意)「柟木 ··· 拔歎」〈두시 6:41ㄱ〉. 지블 占卜야 예 조차셔 늘구리니 녀름 지메 나라 버리와다쇼미 머도다(卜宅從玆老 爲農去國賖)「爲農」〈두시 7:5ㄴ〉. 내조쳐 왜신 엇뎨 性을 그르츠리오 미 뷔여 生禪호 버리왇디 아니놋다(放逐寧違性 虛空不離禪)「宿贊公房」〈두시 9:24ㄱ〉. 으리왇- : 리 입을 으리왇고 더운 오좀을 브라〈구간 1:78ㄴ〉.  번 紫臺 으리왇고 朔漠애 니 가니 올로 프른 무더믈 머믈워 黃昏애 向야 잇도다(一去紫臺連朔漠 獨留靑塚向黃昏)「詠懷古跡三首」〈두시 3:68ㄴ〉. 이  하콰 쾃 예 이시면 나도  다  으리와도리라(今秋天地在 吾亦離殊方)「雙燕」〈두시 17:17ㄱ〉.  이바디 마져 니고져 컨마 幽明의 逼迫호 으리와도미 어렵도다(欲告淸宴罷 難拒幽明迫)「白水 ··· 三十韻」. 괴외호 이 버믜 굼긔 니도다 들에 란 마 사 무를 으리왇도다(靜應連虎穴 喧已去人群)「題栢大兄弟山居屋壁二首」〈두시 7:31ㄱ〉. 다봇 지븻 興을 으리왇디 몯 梁甫吟을 시러곰 兼노라(不阻蓬蓽興 得兼梁甫吟)「同李太守登歷下古城員外新亭」〈두시 14:34ㄴ〉. 이제 東 녀그로 바래 드러가 곧 將次ㅅ 西ㅅ 녀그로 秦을 으리왇고져 컨마(今欲東入海 即將西去秦)「奉贈韋 ··· 二十二韻」〈두시 19:3ㄱ〉.  人生애 바 으리와도미 어려우니 됴 會集을  아 앗기노라(浮生難去食 良會惜淸晨)「贈王 ··· 四十韻」〈두시 20:30ㄱ-ㄴ〉. 요 주 누넷 가 아 리시 그 샤 으리와니 河東ㅅ 져믄 겨지비 모맷 姓이 柳개니라(近者抉眼去其夫 河東兒女身姓柳)「可歎」〈두시 25:9ㄴ〉. 참조; 으리- : 조 니예 츠면 절로 으리리라〈구간 1:3ㄱ〉.
 도다 주035)
 도다
나는 듯하도다. -[飛]+ #-+도+다.

【한자음】 화류개도로 조악리풍진【‘이(離)’는 거성이다. 이것은 선우중통이 때를 얻어 날아오른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언해역】 좋은 말이 길을 열어 가는 듯하며, 매가 바람 티끌을 떨어뜨려 나는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좋은 말이 길을 열어가는 듯하고, 매가 바람 먼지를 날아오르는 듯하네.”라는 뜻으로, 선우중통의 승진이 준마와 매서운 매가 내달리고 하늘을 박차 오르는 듯 장대하다는 말이다.

侯伯知何算 文章實致身【言侯伯 주036)
후백(侯伯)
①후작(侯爵)과 백작(伯爵). ②보통 제후(諸侯)를 가리키는 말. ③제후(諸侯)의 우두머리.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이 雖多나 仲通 以文章之才로 致身 주037)
치신(致身)
몸을 바침. 나중에는 출사(出仕)하는 일의 전고(典故)로 쓰였다.
也ㅣ라】

이제 侯伯 아노라 주038)
아노라
아노라. 알겠도다. 알-[知]++오+라. ‘오’는 화자 주어 즉 ‘알다’의 주체가 두보임을 말한다.
어느 주039)
어느
어찌. 15세기 국어의 ‘어느’는 대명사, 관형사, 부사로 쓰이는데 ‘어느’와 함께 ‘어찌’의 의미도 있다. ¶어느(어느/어떤) : 내 큰 스니미 마 涅槃 시니 어느 로 바 머그료〈석상 23:41ㄴ〉. 楚ㅅ 貢은 어느 예 그츠니오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이제 疑心외도다(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어느(어찌) : 羅雲이  부텻 法이 精微야 져믄 아 어느 듣리고〈석상 6:11ㄱ〉. 아히 조 유무니 盤애 먹 거슨 어느 라기 조 도랏 羹이리오(童稚頻書札 盤餐詎糝藜)「水宿 ··· 群公」〈두시 3:20ㄱ〉.
니혜리오마 주040)
니혜리오마
세겠는가마는. 니-#혜-+리+오+마. 15세기 국어에서 용언 어간은 자음 어미 앞에서는 ‘니-’로, 모음 어미 앞에서는 ‘닐ㅇ-’형으로 통합하였다. ¶목수미 다 八萬四千歲리니 衆生 得道ㅣ 몯 니혜리라〈월석 23:9ㄱ〉. 녀나 져그니 數 몯 니혜리니〈월석 25:48ㄱ〉.
그듸 주041)
그듸
그대는. 그듸+.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文章로 眞實로 모 주042)
모
몸을. 즉 자신을. 몸+.
닐위도다 주043)
닐위도다
이르도다. 닐위-[致]+도+다. ‘닐위-’는 ‘니-/니르-’의 사동사이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한자음】 후백지하산 문장실치신【후백(侯伯)이 비록 많지만 선우중통은 문장이 뛰어난 재주로 출사(出仕)했다는 것이다.】
【언해역】 이제 후백(侯伯)을 아노라 어찌 헤아리겠는가마는, 그대는 문장으로 진실로 자신을 이르게 하도다!
*시 구절 해석 : “후백을 아는 것이 얼마나 되리오만, 그대는 문장으로 관직에 나갔다.”라는 뜻으로, 후작과 백작이 많지만 선우중통은 특별히 문장 능력으로 출사(出仕)했다는 말이다.

奮飛 주044)
분비(奮飛)
날개를 떨쳐 높이 날아오름. 보통 사람이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분발(奮發)헤서 큰일을 이루는 것을 비유한다.
超等級 容易失沈淪 주045)
침륜(沈淪)
①묻혀 가라앉음. ②묻혀 있어 뜻을 만나지 못한 현사(賢士). ③물속으로 가라앉음. ④침함(淪陷). ⑤숨어 지냄. ⑥질병(疾病)이나 곤고(困苦), 액운(厄運) 등에 빠져 들어감.
【言仲通이 遷擢而超越官階니 去離沉淪이 甚易而不難也ㅣ라】

니르와다 주046)
니르와다
일으켜. 니르-+왇+아. ‘니르왇-’은 ‘일으키다[起]’의 뜻이다. ‘-왇-’은 강조[힘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능엄경언해〉(1461) 이전에는 ‘-/왇-’이 공존하였다. ¶니르왇- : 이웃 나라히 背叛거든 저희 가 티고 四兵을 니르왇디 아니〈석상 11:36ㄱ〉. 周 宣王ㅅ 다시 니와샤 우리 님긔 라노니 江漢애 피 므를 리고 기리 늘거 病야 잇노라(周宣中興望我皇 灑血江漢身衰疾)「憶昔二首」〈두시 3:63ㄱ〉. 참조; 니르다(도달하다) : 四天王과 淨居天에 니르리 비취시니〈석상 3:25ㄱ〉. 곧마다 글월 요미 숫두워리고 집마다 솔옷 귿 니르리 토미 도다(處處喧飛檄 家家急競錐)「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ㄴ〉.
라 주047)
라
날아. -[飛]+아.
等級을 건내니 주048)
건내니
건너뛰니. 건나-+이#-+니. 참조; ‘건네-’는 ‘건너-+ㅣ(사동접미사)’로 분석된다. ‘건너-’는 ‘걷너-’(능엄 6:22ㄱ)의 비자음동화를 반영한 표기이며, 동의어로 ‘걷나-’(석상19:27ㄴ)형이 있다. ‘건네-’의 어원적 고형 ‘걷네-’(29ㄴ)가 정속언해(1518)에 나타난다. ¶건내- : 다가 男子女人이 이 부텻 일훔 듣면 一百大劫 生死ㅅ 罪 건내리다〈월석 21:135ㄱ〉. 尙書의 功業이 千古ㅅ 사게 건내도소니 荊州 雄히 눌러쇼 내 한아비 니도다(尙書勳業超千古 雄鎭荊州繼吾祖)「惜別 ··· 上都」〈두시 25:48ㄱ〉. 건네- : 이 光이 法이 無始예 始作야 數 혜유메 건네니라〈월석 11:42ㄱ〉. 니 두들근  로 갊고 므리므리예 두두록  건네유믈 放縱히 다(纍纍塠阜藏奔突 往往坡陁縱超越)「沙苑行」〈두시 17:26ㄱ〉.
수이 주049)
수이
쉬이. 쉽게. 숩-[易]+이. 정음 초기 문헌에서는 ‘수’로 쓰였다. ¶수 : 사마다  수 니겨 날로 메 便安킈 고져  미니라〈훈언 3ㄴ〉. 수이 : 物 得홀 꼳 아니 大法 證호미 어려운  가비고 옷 밥 수이 어두믄 小果 수이 求호 가비고〈법화 2:197ㄴ〉. 此 時序ㅣ 수이 가 니니라[星霜玄鳥變 身世白駒催]「추일~ 30운」〈두시 3:8ㄱ〉.
뎌슈믈 주050)
뎌슈믈
꺼져 있음을. -+어#디-+어#잇-+우+ㅁ+을.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다(꺼지다) : 그리 降服야 브리 즉자히 거늘〈석상 6:33ㄴ〉. 燭ㅅ 브리 거늘 프른 눈서블 긔엿거니라(滅燭翠眉顰)「江月」〈두시 12:8ㄱ〉. 디- : 帝釋이와 金甁엣 므를 븟니 브리 디거늘〈석상 23:47ㄱ〉. 洛陽이 녜 盜賊의게 디니 되 리 潼關을 侵犯니라(洛陽昔陷沒 胡馬犯潼關)「洛陽」〈두시 5:18ㄱ〉.
일토다 주051)
일토다
잃도다. 잃-[失]+도+다.

【한자음】 분비초등급 용역실침륜【선우중통이 발탁되어 관계를 초월하니, 떨어져 일이 그르치는 경우도 아주 쉽고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언해역】 일으켜 날아 등급(等級)을 건너뛰니, 쉽게 꺼져 있음을 잃도다!
*시 구절 해석 : “떨쳐 날아올라 등급을 넘어서니, 쉽게 액운에 떨어지기도 한다.”라는 뜻으로, 크게 중용되기는 했지만 액운을 만나기도 쉬우니 조심하라는 말이다.

脫略 주052)
탈략(脫略)
경쾌하고 거만해서 얽매이지 않음. 여기서는 어떤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쓰였다.
磻溪釣 操持郢匠 주053)
영장(郢匠)
①영(郢)의 뛰어난 목수인 장석(匠石). 그리하여 문학의 거장. ②과거(科擧)의 시관(試官)이나 학문 연마에 힘쓰는 사우(師友)를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太公望 주054)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 주(周)나라 때 동해(東海) 사람.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이며, 자는 자아(子牙)다. 집안이 가난해 위수(渭水)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文王)을 만났다. 문왕이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우리 태공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吾太公望子久矣)”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태공망(太公望) 또는 강태공(姜太公), 여망(呂望)이라고도 부른다. 문왕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치고 주나라를 세운 공으로 제(齊)나라에 봉해졌다. 무왕은 그를 높여 사상보(師尙父)라 했다. 도읍을 영구(榮丘)에 두었는데,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정치를 잘해 많은 사람들이 귀의했다. 주나라에 머물면서 태사(太師)가 되었고, 오후구백(五侯九伯)을 정벌할 권한을 가졌다. 병서(兵書) 『육도(六韜)』는 그가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釣扵磻溪 주055)
반계(磻溪)
반계(磻谿). 반계(磻磎). 물[水] 이름.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鷄市) 동남쪽에 있다. 전설에 주(周)나라 여상(呂尙)이 문왕(文王)을 만나기 전에 이곳에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 郢人이 堊漫其鼻端이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1ㄴ

 使匠石으로 斷之대 運斤이 成風야 盡堊而鼻不傷니 言仲通之有斷다】

磻溪예셔 주056)
반계(磻溪)예셔
반계에서. 반계로부터. 磻溪+예+셔. ‘반계(磻溪)’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고기 낫고 주057)
낫고
낚음을. -[釣]+오+ㅁ+. ‘다’는 ‘다’로도 쓰였다. ¶- : 韓信이 고기 淮水애 낫글〈여사 4:56ㄴ〉. 슬프다 녯 어딘 사미 마 기 외니 志士 고기 낫며 나모 쥬 히 너교 올로 아노라(嗚呼古人已糞土 獨覺志士甘漁樵)「嚴氏溪放歌行」〈두시 25:43ㄴ〉. - : 錦鱗 낛 時節엔 미 긋고믈 우히 蓮蓮야〈금삼 3:60ㄴ〉. 錦水에셔 고기 낛구믈 時로 와 보 民俗 무로 매 서르 어울워 더니라(時觀錦水釣 問俗終相幷)「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22ㄱ〉.
脫略고 주058)
탈략(脫略)고
벗어나고. 脫略+-+과.
郢匠 주059)
영장(郢匠)
영(郢) 땅의 장인의. 郢匠+.
 주060)

날을. [刃]+.
자밧도다 주061)
자밧도다
잡아 있도다. 잡-[操]+아#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하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한자음】 탈략반계조 조지영장근【태공 망(太公望)이 반계(磻溪)에서 낚시를 했다. 영(郢) 땅 사람이 코끝에 백토가 묻었는데 장인(匠人)의 돌을 써서 이를 잘라내는데 도끼를 쓸 때 바람이 일어 백토는 없어져서 코를 다치지 않았다. 선우중통에게 그런 결단력이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반계(磻溪)에서 고기 낚음을 벗어나고, 영(郢) 땅의 장인의 날을 잡고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반계(磻溪)에서 고기 낚는 일에서 벗어나고, 영 땅 장인이 도끼를 쥐어 움직인다.”라는 뜻으로, 태공망 여상이 낚시하다가 발탁되었듯이 그가 승진했고, 정치하는 모습이 영 땅 장인이 도끼를 쓰듯 능수능란하다는 말이다.

雲霄 주062)
운소(雲霄)
①푸른빛이 나는 구름이 있는 하늘. ②높은 지위를 비유하는 말. ③하늘 또는 임금이 있는 궁궐.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今已逼 台袞 주063)
태곤(台袞)
태보(台輔). 곤(袞)은 옛날 제왕(帝王)이나 상공(上公)이 입었던 예복(禮服)이다.
更誰親【上句 言職近天子也ㅣ라 三公 주064)
삼공(三公)
관직 이름. 주나라의 경우 사마(司馬)와 사도(司徒), 사공(司空), 또는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가리키며, 전한(前漢) 시대에는 승상(丞相, 大司徒)과 태위(太尉, 大司馬), 어사대부(御史大夫, 大司空)를, 후한(後漢) 시대에는 태위(太尉)와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가리켰다. 삼공이 공동으로 군정(軍政)을 책임지며 최고 의사 결정을 맡았다. 당송(唐宋) 때는 실제 직무가 없었으며, 명청(明淸)시대에는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의 삼공이 있었다.
은 上應三台 주065)
삼태(三台)
①별 이름. 큰곰자리에 있는 상태(上台)・중태(中台)・하태(下台)를 이름. ②별이름에서 그리하여 천자(天子)의 삼공(三公 중앙정부의 최고위 관직)에 비유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이름. 여기서는 둘 다의 뜻으로 쓰였다.
고 袞服 주066)
곤복(袞服)
①곤의(袞衣). ②삼공(三公)을 가리키는 말. 삼공도 곤의(袞衣)를 입기 때문에 이를 비유하여 부르는 것이다. ③임금이 입는 예복(禮服)인 곤룡포(袞龍袍)를 일컫는 말. 곤룡(袞龍).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은 三公의 命服 주067)
명복(命服)
각 신분에 맞는 옷. 중국의 고대 복제(服制)에는 사대부를 일명(一命)에서 구명(九命)까지로 나누고 그 명에 따라 빛깔이나 모양을 달리했다.
이라 言仲通이 必爲公相 주068)
공상(公相)
공경(公卿)이나 재상(宰相)과 같은 현관(顯官)을 가리키는 말.
야 得近天子也ㅣ라】

구 하히 주069)
구 하히
구름의 하늘이. 즉, 궁궐이. ‘운소(雲霄)’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만약 ‘운소(雲霄)’가 궁궐을 뜻한다면 궁궐을 뜻하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시언해』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운소(雲霄)’를 ‘구 하ㅎ’로 직역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제 마 주070)
마
이미. 16세기 후반이면 ‘이믜〈소언 5:43ㄴ〉․이믯〈소언 5:43ㄴ〉’과 동의관계이다. 때로는 “장차, 이제 곧”을 뜻하기도 한다. ¶太子 羅睺羅ㅣ 나히 마 아호빌(太子羅睺 年已九歲)〈석상 6:3ㄱ〉. 車駕ㅣ 마 宮中에 도라오샷다(車駕已還宮)「收京」〈두시 5:9ㄱ〉.
逼近니 주071)
핍근(逼近)니
핍근하니. 가까우니. 逼近+-+니.
台袞앤 주072)
태곤(台袞)앤
상공(上公)들에게는. ‘태곤(台袞)’은 ‘상공(上公)’을 가리키므로 이 구절은 ‘상공들에게는’의 뜻이 된다.
주073)
누가. 누+이. 미지칭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한 것으로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 목적격형은 ‘:눌(상성)’이다.
親리오 주074)
친(親)리오
친하겠는가? 親+-+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리오 : 뉘 能히 곧 怒야 구지리오(誰能卽嗔喝)「北征」〈두시 1:6ㄴ〉.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2ㄱ〉.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豈徒比清流)「鳳凰」〈두시 17:1ㄴ〉.

【한자음】 운소금사핍 태곤경수친【위 시구는 직책이 천자의 측근에 있다는 말이다. 삼공(三公)은 위로 삼태(三台)에 응하고, 곤복(袞服)은 삼공의 명복이다. 선우중통이 반드시 공상(公相)이 되어 천자를 가까이서 모실 것이라는 말이다.】
【언해역】 궁궐이 이제 이미 핍근(逼近)하니, 상공(上公)에는 또 누가 친하겠는가?
*시 구절 해석 : “구름 하늘에 이미 가까이 다가갔으니, 태곤에서 또 누가 가까이 하겠는가.”라는 뜻으로, 그의 지위가 높아 머지않아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까지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 운소(雲霄)는 ‘궁궐’의 뜻인데, ‘구 하히’로 직역하였다. 태곤(台袞)들이 선우중통과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鳳穴雛皆好 龍門 주075)
용문(龍門)
땅 이름. 산서성 하진현(河津縣) 서북과 섬서성 한성시(漢城市) 동북쪽에 있다. 황하(黃河)가 이곳에 이르면 양쪽 언덕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대문처럼 맞서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우문(禹門). 그러므로 용혈 용문(鳳穴龍門)은 선우중통의 집을 가리키며 ‘새 사람들(새로운 문객)이 선우중통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말이다.
客又新李膺 주076)
이응(李膺)
110~169. 후한 영천(穎川) 양양(襄陽) 사람. 자는 원례(元禮)다. 처음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청주자사(靑州刺史)와 어양(漁陽)과 촉군(蜀郡)의 태수(太守)를 역임하고,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로 옮겼다. 나중에 하남윤(河南尹)이 되어 태학생 곽태(郭泰) 등과 교유하면서 환관들의 집정을 반대했다. 명성이 아주 높아져 ‘천하해모이원례(天下楷謨李元禮)’라 불렸다. 선비들이 그와 교유하면 등용문(登龍門)했다고 여길 정도였다. 환제(桓帝) 때 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되어 환관의 횡포를 규탄하다 당고(黨錮)의 화를 당했다. 장양(張讓)의 동생 장삭(張朔)이 야왕령(野王令)이 되어 탐욕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다가 그의 위엄을 듣고는 경사(京師)의 합주(合柱) 속에 숨었는데, 기둥을 쪼개고 체포해 처형했지만 황문상시(黃門常侍)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리면서 감히 말을 못했다. 연희(延熹) 9년(166) 환관들로부터 결당(結黨)한다는 무고를 당해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뒤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영제(靈帝) 초에 대장군 두무(竇武)가 불러 장락소부(長樂少府)로 삼았다. 진번(陳蕃) 등과 함께 환관을 일소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이 누설되자 면직되었다. 당고가 다시 일어나자 투옥된 뒤 옥사했다.
이 性이 簡亢 주077)
간항(簡亢)
간항(簡伉). 사람됨이 고매(高邁)하고 오만(傲慢)함. 청고(淸高)함.
니 被容接者 謂之登龍門 주078)
등용문(登龍門)
뜻을 펴서 크게 영달(榮達)함을 비유하는 말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본래 용문(龍門)에 올라 용으로 승천함을 뜻하는데, 용문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하진현(河津縣)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나루 이름으로 황하의 물이 이곳을 지날 때 가장 급하며 잉어가 이곳을 오르면 용으로 화하여 승천한다고 한데서 나왔다. 천문동(天門洞).
이라 다 上句 言仲通의 子孫之賢고 下句 言門客 주079)
문객(門客)
권세 있는 대가(大家)의 식객(食客).
之賢다】

鳳 주080)
봉(鳳)
봉황새의. 鳳+.
굼긘 주081)
굼긘
구멍엔. 구무/굼ㄱ[穴]+의+ㄴ.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구무/’ 두 어형 가운데 선택된다. 쌍형어. 자음 조사나 휴지 앞에서는 ‘구무’가, 모음의 조사 앞에서는 ‘’이 온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구무 : 如來ㅅ 모매 터럭 구무마다 放光샤〈석상 11:1ㄴ〉. 서근 에 가야미 구무 들워 드렛고(朽骨穴螻蟻)「遣興三首」〈두시 5:33ㄴ〉.  : 그 거부비 나못 굼글 어더 디 아니건마〈석상 21:40ㄱ〉.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1ㄴ〉.
삿기 주082)
삿기
새끼.
됴코 주083)
됴코
좋고. 둏-[好]+고.
龍門엔 주084)
용문(龍門)엔
용문에는. 龍門+에+ㄴ. ‘鳳 굼긘’으로 표현된 ‘봉혈(鳳穴)’과 ‘용문(龍門)’은 모두 ‘선우중통의 집’을 가리킨다.
소니 주085)
소니
손이. 손[客]+이. 즉 선우중통의 집에 드나드는 식객(食客)들을 말한다.
주086)
또.
새롭도다 주087)
새롭도다
새롭도다. 새+롭+도+다. 15세기 국어에는 ‘새다’와 ‘새롭다’가 모두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새롭다’만 쓰였다. ¶새롭- :  디위 자바 니와니  디위 새롭도다〈남명 상:32ㄱ〉. 司隷ㅅ 버블 처 보니 南陽ㅅ 氣運이 마 새롭도다(司隸章初覩 南陽氣已新)「喜達行在所三首」〈두시 5:5ㄴ〉. 새- : 가미 洒落야 世 모로기 니니 가온 잇 雷霆氣宇ㅣ 새도다〈금삼 3:48ㄴ〉.

【한자음】 봉혈추개호 용문객우신【이응(李膺)이 성격이 간항(簡亢)하니 그를 만나 대접을 받은 것을 일컬어 ‘등용문(登龍門)’이라 했다. 위 시구는 선우중통의 자손이 현명한 것을 말하고, 아래 시구는 문객들이 현명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봉황새의 구멍에는 새끼 다 좋고, 용문(龍門)엔 손이 또 새롭도다!
*시 구절 해석 : “봉황의 보금자리에 새끼는 모두 좋고, 용문에는 객이 또 새롭다.”라는 뜻으로, 선우중통의 자손들이 현명하고 문객들도 뛰어나다는 칭송이다.

義聲 주088)
의성(義聲)
덕의(德義)에 대한 명성(名聲).
紛感激 敗績 주089)
패적(敗績)
①군대(軍隊)가 궤멸하는 패배를 당함. ②사업이 실패하거나 이익을 놓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逡廵 주090)
준순(逡巡)
①준순(蹲循). 뒷걸음질 침. 공손히 순종하는 모양. ②사양함. 피함. ③여유 있는 모양. ④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⑤배회함. 머뭇거림. ⑥질질 끎. 미룸.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ㅣ 言仲通의 義聲에 雖紛然感激나 我則敗績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2ㄱ

而逡巡不進也ㅣ라
주090_1)
*〈중간본〉에는 ‘我則敗績而逡不進也ㅣ라’로 되어 있다.

義聲에 주091)
의성(義聲)에
의성에. 의로운 외침에. 의성(義聲)+에.
주092)
매우. 많이. 하-[多]+이(부사화파생접미사).
感激건마 주093)
감격(感激)건마
감격하지마는. 感激+-+거+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太子ㅣ 니샤 恩惠 모리여마 네 가짓 受苦 위야 노라 시고〈석상 3:35ㄱ〉. 애긋븐 소리를 므더니 너기고져 간마 미 어즈럽건디 마 오랄 니라(欲輕腸斷聲 心緒亂已久)「前出塞九首」〈두시 5:26ㄴ-27ㄱ〉.
나 주094)
나
나는. 나+.
功績을 敗고 주095)
공적(功績)을 패(敗)고
공적을 놓치고. 즉 두보 자신은 공적을 쌓는 것에 실패하였다는 뜻이다.
스싀로 주096)
스싀로
스스로. 스싀+로. ¶그 어미 이 니 東山 딕희오고 스싀로 가 밥 어더 스싀로 먹고 님 밥 보내요 날마다 그리 다가〈석상 11:40ㄴ〉. 글 지매 새 긄句ㅣ 安穩니 스싀로 기리 입논 고 아디 몯노라(賦詩新句穩 不覺自長吟)「長吟」〈두시 3:48ㄴ〉. 참조; 스싀 : 張文節公이 宰相이 외야 스싀 奉養호미 河陽ㅅ 掌書記ㅅ 시졀티 더니〈내훈 3:57ㄴ〉.
머므러 주097)
머므러
머물러. 머믈-[停]+어. ¶머믈- : 부톄 舍衛國로 오 길헤 머므르 지비라〈석상 6:23ㄴ〉/ 鑾輿ㅣ 鳳翔애 머므르시니 同谷ㅅ 올히 목티 외얫도다(鑾輿駐鳳翔 同谷爲咽喉)「送韋 ··· 判官」〈두시 22:37ㄴ〉.
잇노라 주098)
잇노라
있노라. 잇-[有]++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의성분감격 패적자준순두보가 선우중통의 의로운 명성에 비록 분연히 감격하지만 자신은 부족하여 감히 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의성(義聲)에 매우 감격하지마는, 나는 공적을 놓치고 스스로 머물러 있노라.
*시 구절 해석 : “의로운 명성이 분연히 감격하지만, 공적을 이루지 못해 스스로 머물러 있노라.”라는 뜻으로, 선우중통의 명성에는 감격하지만, 자신이 초라해 감히 나가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途遠欲何向 天高難重陳途逺 주099)
도원(途逺)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힘은 다했는데 계책은 바닥이 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즉 인생의 길이 멀다. 자기의 인생길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다. 주석에는 ‘途逺은 喻衰老다’로, 언해는 ‘길히 머니’로 되어 있다.
은 喻衰老다 下句 言天門 주100)
천문(天門)
①천기(天機)의 문. 마음[心]을 가리킨다. ②코[鼻]나 입[口] 또는 천정(天庭)을 가리키는 말. ③천궁(天宮)의 문. ④황궁(皇宮)의 문. ⑤별[星] 이름. 28수 가운데 각수(角宿)에 속하는 쌍성(雙星)으로 현재 처녀자리의 일부이다.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이 髙逺야 難以訴𡨚也ㅣ라】

길히 머니 주101)
길히 머니
길이 머니. 길ㅎ+이 멀-[遠]+니. 주석에는 ‘도원(途遠)’을 ‘쇠로(衰老)’라고 하였지만, 언해에서는 ‘길히 머니’로 하였다. 이와 같이 『두시언해』에서 주석과 언해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언해자가 주석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언해를 하면서 해당 구의 주석을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두시언해』의 언해자는 주석의 내용을 참조하면서도 언해에서는 직역을 선호하였으며 고유명사 등도 적극적으로 직역하는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드러 주102)
어드러
어디로. 15세기 국어의 ‘어드러’는 ‘어디로’와 ‘어떻게’의 뜻이 있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모두 ‘어디로’의 뜻으로만 쓰였다. ¶어드러(어떻게) : 지비 가며디 몯니 어드러 長常 이 盲眼이 供養려뇨〈월석 22:52ㄴ〉. 어드러(어디로) : 그듸 어드러셔 오시니〈석상 23:40ㄴ〉. 消渴ㅅ 病 모 어더러 가리오  氣運ㅣ 나니 히미  업놋다(病渴身何去 春生力更無)「過南 ··· 庭湖」〈중간두시 2:19ㄱ〉. 참조; 어들 : 내 이제 부텻 威神과 仁者ㅅ 무루믈 바다 어들 니르노니〈월석 21:81ㄴ〉.
向야 가고져 리오 주103)
가고져 리오
가고자 하겠는가. 가-+고#지-+어 -+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고져 - : 俱夷 덴 갓가 가고져 실〈석상 3:15ㄱ〉. 이 님금 辱도외이 겨샤 놀라  타 가 盜賊을 티고져 며 나 늘구믈 러 리고 갈 혀나 盜賊을 버히고져 니라[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하히 주104)
하히
하늘이. 하ㅎ[天]+이. ‘하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노니 주105)
노니
높으니. 높-[高]+니.
다시 닐오미 주106)
닐오미
이르기가. 말하기가. 니르-[陳]+오+ㅁ+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렵도다

【한자음】 도원욕하향 천고난중진【‘도원(途逺)’은 쇠약하고 늙은 것을 비유한다. 아래 시구는 천문이 높고 멀어 억울함을 하소연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언해역】 길이 머니 어디로 향하여 가고자 하겠는가? 하늘이 높으니 다시 이르기가 어렵도다!
*시 구절 해석 : “길이 머니 어디로 가고자 하리오, 하늘이 높아서 다시 말하기가 어렵다.”라는 뜻으로, 만나고자 해도 길이 멀어 방향을 모르겠고, 지위가 높아 거듭 아뢰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學詩猶孺子 주107)
유자(孺子)
①유아(幼兒). 아동(兒童). 어린 아이. ②옛날에 천자(天子)나 제후(諸侯), 세경(世卿)을 계승한 사람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鄉賦 주108)
향부(鄉賦)
향공(鄕貢). 당나라 때 학관고시(學館考試)를 거치지 않고 주현(州縣)의 추천을 받아 과거에 응시한 사자(士子)를 일컫는 말.
念嘉賔【郷賦 郷舉 주109)
향거(鄕擧)
향리(鄕里)에서 선발한 인재(人才).
也ㅣ라】

호 주110)
호
배움은. 호-+오+ㅁ+.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學堂 글 호 지비라〈석상 3:7ㄴ〉. 蹉跎야 도혀 거르믈 호미로소니 感激요 소리 알리예 잇니라(蹉跎翻學步 感激在知音)「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7ㄱ〉.
져믄 주111)
져믄
어린. 젊은. 졈-[少]+은. 15세기의 ‘졈다’는 ‘어리다’와 ‘젊다’의 뜻이 있다. ¶(젊다) :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석상 3:17ㄱ〉. (어리다) : 孤 졈고 아비 업슬 시라〈내훈 2:88ㄴ〉. 單父ㅣ 기리 閑暇호미 하니 河陽 眞實로 나히 졈도다(單父長多暇 河陽實少年)「夏夜 ··· 聯句」〈두시 23:53ㄴ〉.
아 주112)
아
아이. 아[童]+∅.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토 주113)
토
같으되. 같되. -#+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올셔 주114)
올셔
고을에서. 올ㅎ++셔.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석상 9:40ㄱ〉. 믌 올핸  蜃氣 무텻거 싣나모 션 두들게 프른 묏 그티 重疊도다(水鄉霾白蜃 楓岸疊靑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ㄱ〉.
지 오맨 주115)
지 오맨
지어 옴엔. 짓-[作]+어#오-+오+ㅁ+애+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지어’로 되어 있다.
아다온 주116)
아다온
아름다운. 아+답-+오+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美 아다 씨니 륫 좃 中에  잘 씨라〈석상 13:9ㄱ〉. 내 사미론 디 性이 偏僻야 아다온 긋 句를 耽야 말 사미 놀라디 아니리어든 주거도 마디 아니다니(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江上 ··· 短述」〈두시 3:31ㄱ〉.
소니로라 주117)
소니로라
손이도다. 손[客]+이+도+다.
기다라 주118)
너기다라
여기더라. 여기-+더+오+라.

【한자음】 학시유유자 향부첨가빈【‘향부(郷賦)’는 향거(郷舉)이다.】
【언해역】 글 배우는 젊은 아이 같되, 고을에서 글 지어 옴엔 아름다운 손이라 여겼네.
*시 구절 해석 : “시를 배운 것은 어린 아이와 같아서, 지역에서 글 지음에 아름다운 손님이란 말이 더해졌다.”라는 뜻으로, 두보가 시를 배워 일찍부터 명성이 높았음을 말한다.

不得同晁錯 吁嗟後郄詵晁錯 주119)
조조(晁錯)
기원전 200~기원전 154. 성을 조(鼂)라고도 쓴다. 전한 영천(潁川) 사람.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형명학(刑名學)을 익혔다. 문제(文帝) 때 관직에 나아가 태상장고(太常掌故)에 임용되었다. 황명으로 진(秦)나라의 박사 복생(伏生)에게 사사하여 『상서』를 배웠다. 태자가령(太子家令)에 올라 태자[景帝]의 신임을 받아 지낭(智囊)으로 불렸다. 중대부(中大夫)로 옮겼다. 상서하여 흉노(匈奴)에 대한 대책으로 북변(北邊) 방비를 위한 둔전책(屯田策)을 주장했고, 재정적 뒷받침으로 곡물 납입자에게는 벼슬을 주는 매작령(賣爵令)을 주장하여 채용되었다. 제후의 영지를 삭감하도록 주장했는데, 경제(景帝)에 의해 채용되었다. 이 때문에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이 일어나자 정적 원앙(袁鉤) 등의 회유책으로 장안에서 관복(官服)을 입은 채 참형되었다. 저서에 『조조(晁錯)』가 있었지만 없어졌고, 편집본이 전한다.
漢文帝 주120)
한 문제(漢文帝)
기원전 202~기원전 157. 유항(劉恒). 전한의 제5대 황제(재위, 기원전 180-기원전 157).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넷째 아들이다. 처음에 대왕(代王)에 책봉되어 중도(中都)에 도읍했다가 조정을 전단(專斷)하던 여씨(呂氏)의 난이 평정된 뒤 태위(太尉) 주발(周勃)과 승상 진평(陳平) 등 중신의 옹립으로 제위에 올랐다.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감해주는 등 백성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농경을 장려했다. 경제가 점차 회복되어 사회는 전반적으로 안정 국면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여씨의 난 진압에 공적이 있었던 고조 이후의 공신(功臣)을 중용하는 한편 가의(賈誼)와 조착(晁錯) 등 새 관원도 두각을 나타냈다. 또 선거(選擧)에 의해 지방의 유지(有志)가 관원으로 등용되었다. 한편 가의와 조착 등이 건의한 제후왕(諸侯王)의 영지 삭감과 억상중농(抑商重農), 대흉노강경론 등은 전면적으로 채택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한 해결은 경제(景帝)와 무제(武帝) 때 실현되었다. 고조의 군국제(郡國制)를 계승하고, 전조(田租)와 인두세(人頭稅)를 감면했다. 가혹한 형벌을 폐지했고, 흉노에 대한 화친(和親) 정책 등으로 민생 안정과 국력 배양에 힘을 기울였다. 노학(老學)에 경도되어 이에 의한 간이(簡易)의 정치를 펼치고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를 이은 경제(景帝)와 함께 ‘문경지치(文景之治)’로 불린다. 시호는 효문황제(孝文皇帝)다. 23년 동안 재위했다.
時예 對策 주121)
대책(對策)
문체(文體)의 명칭. 중국 한(漢)나라 때 관리 등용 시험에서 주로 실제 정사(政事)와 관련한 내용이나 유교 경전의 의미와 관련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문제를 내어 응시자(應試者)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이에 답하게 한 것이다. 책(策)에는 임금이 정책(政策)을 묻는 제책(制策)과 관련, 부처가 정책을 묻는 시책(試策), 그리고 사대부가 개인적인 정견(政見)을 올리는 진책(進策)의 세 가지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과거 제도의 실시에 따라 문과(文科)의 전시과목(殿試科目)의 하나로써 이를 실시했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髙第다 晉ㅅ 郄詵 주122)
극선(郄詵)
?~?. 서진(西晉) 제음(濟陰) 단보(單父) 사람. 자는 광기(廣基)다. 박학했고, 뜻이 컸다. 진무제(晋武帝) 태시(泰始) 중에 현량직언(賢良直言)으로 천거를 받아 책문(策文)이 높은 평가를 받아 의랑(議郞)에 오르고, 거듭 승진하여 거기종사중랑(車騎從事中郞)으로 옮겼다. 이부상서(吏部尙書) 최홍(崔洪)이 천거해 좌승(左丞)이 되었는데, 재직하자 어떤 일로 최홍을 탄핵하니 최홍이 원망하니 흔들리지 않고 물리쳤다. 옹주자사(雍州刺史)에 올랐는데, 무제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계림의 한 가지이자 곤산의 조각 옥과 같다(猶桂林之一枝 昆山之之片玉)”고 대답했다. 재임하면서 위엄을 가지고 명확하게 판단하여 명성과 영예를 크게 누렸다.
이 對策야 爲天下第一니 ㅣ 舉進士不第故로 云다】

시러곰 주123)
시러곰
능히. 원문의 ‘得’에 대한 번역이다. ‘시러곰’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다른 문헌에서는 주로 ‘시러’가 사용되었다. ‘시러’는 ㄷ불규칙 용언인 싣-[得]+어(연결어미). 어간이 ‘싣-’임은 “得은 시를 씨라”(정음 2ㄱ)와 “福 모다 싣게 호리라”(석상 24:10) 등에서 확인된다. 어간이 ‘실-’이었다면 ‘成은 일 씨라’(정음 13ㄱ)처럼 ‘得은 실 씨라’로 표기되어야 한다. ¶시러곰 : 두 낫 밥도 나 過分토소니 네히 아 金 시러곰 相近호라(應過數粒食 得近四知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참조; 시러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勾漏令을 머리 붓그리노니 丹砂 무로 시러 디 몯노라(遠慚勾漏令 不得問丹砂)「爲農」〈두시 7:5ㄴ〉.
晁錯와 디 주124)
조조(晁錯)와 디
조조와 같지. 晁錯+와 갇-++디. 15세기 국어의 ‘갇다/다’는 ‘-와’는 물론 ‘-이’를 지배하기도 한다.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석상 3:17ㄱ〉. 나랏 社稷ㅣ 이제 이 니 武로 禍亂 安定호믄 公ㅣ 아니라 뉘리오(國之社稷今若是 武定禍亂非公誰)「徒步歸行」〈중간두시 1:10ㄴ〉. -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 :4ㄱ〉.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  오 荊州 巫峽에 와 누엇노라(不復有顏鮑 繫舟卧荊巫)「遣懷」〈중간두시 2:47ㄴ〉.
몯호니 주125)
몯호니
못하니. 몯#-+니.
슬프다 郄詵의게 듀라 주126)
극선(郄詵)의게 듀라
극선에게 못 미친다. 극선에게 떨어진다. 극선+의+게 -+어#디+우+라. ‘우’는 이 문장의 주어가 ‘두보’임을 말한다. ¶다(눈을 뜨다) : 누늘 거나 거나〈월석 8:22ㄱ〉. 다(물에 뜨다)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영가 서:5ㄴ〉. 다(세상을 뜨다) : 이틄나래 아비 안고 니라〈삼강런던 효:8〉.
주127)
-의게 듀라
-로부터 (질이) 떨어진다.

【한자음】 불득동조착 우차후극선【조조(晁錯)가 한 문제(漢文帝) 때 대책(對策)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진(晉)나라의 극선(郄詵)이 대책을 지어 천하제일이란 칭송을 들었으니, 두보가 진사 시험에 응모했지만 낙방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언해역】 능히 조조(晁錯)와 같지 못하니, 슬프다 극선(郄詵)에게 떨어지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조조와 같이 될 수는 없지만, 슬프다 극선에게 뒤쳐졌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문장이 조조나 극선 같은 선배들에게 미치지 못함을 아쉬한 말이다.

計踈疑翰墨 주128)
한묵(翰墨)
문학에 관한 일인 문한(文翰)과 필묵(筆墨), 곧 문필(文筆)을 일컫는 말.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2ㄴ

過憶松筠 주129)
송균(松筠)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하여 절조(節操)가 굳고 맑은 것을 비유한다.
【憶松筠은 思隱扵山林也ㅣ라】

혜아료 주130)
혜아료
헤아림에. 혜아리-+오+ㅁ+. 즉 어떤 일에 대한 계책에 대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혜아료미’로 되어 있다.
踈拙 주131)
소졸(踈拙)
거칠고 성글며 거칠고 서투름. 소략하고 졸렬(拙劣)함.
니
주132)
소졸(踈拙)니
소졸하니. 疏拙+-+니. 즉 꼼꼼하지 못하고 서투르니. ‘소졸(踈拙)다’는 ‘옹졸(壅拙)하다’의 뜻이다.
글월 주133)
글월
글하는. 글 짓는. 글월+-+.
다신가 주134)
다신가
탓인가. 닷+이+ㄴ가. ¶이 因緣을 브터 意와 意識괘 轉 다신  교려 야 닐오 븓다 홈 히라〈월석 11:71ㄴ〉. 萬物이 제 私情 다신  나토시니〈법화 3:3ㄱ〉. -ㄴ가 : 마 果 得가 疑心 외어늘〈능엄 3:115ㄴ〉. 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ㄴ〉. -ㄹ가 : 그 夫人이 怨望고 제 이리 現露가 야〈석상 24:49ㄴ〉. 치 뷔면 붓그러울가 저허  낫 도 머믈워 두고 보노라(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空囊」〈두시 3:25ㄱ〉. -ㄹㆆ가 : 太子ㅣ 出家가 저샤〈석상 3:4ㄴ〉.
疑心고 時節이 디날 주135)
디날
지나므로. 지나니. 디나-+ㄹ. ¶-ㄹ : 三十二相 八十種好로 며 겨실 端正코 싁싁샤미오〈월석 7:49ㄴ〉. 귀 머글 모로매 字 어 뵈니 마리 뎌니 빈혀 이긔디 몯놋다(耳聾須畫字 發短不勝篦)「水宿 ··· 群公」〈두시 3:19ㄴ〉.
솔와 대와 주136)
솔와 대와
솔과 대를. 15세기 국어의 명사구 연결에서는 접속조사 ‘-와/과’가 마지막 명사에도 연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노라 주137)
노라
생각하노라. #-++오+라. 15세기 국어의 ‘사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생각하다’의 뜻으로 쓰였는데 원문의 ‘憶’에 대응한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계소의한묵 시과억송균【송균(松筠)을 생각함은 산림에 은거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언해역】 헤아림에 소졸(踈拙)하니 글하는 탓인가 의심하고, 세월이 지나니 솔과 대를 생각하노라.
*시 구절 해석 : “계책이 성그니 글을 하는 까닭인가 의심하고, 시절이 지남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글에만 집중해 계액이 부족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가 은거할 생각만 든다는 말이다.

獻納紆皇眷 中閒謁紫宸 주138)
자신(紫宸)
①궁궐(宮闕) 이름. 당송(唐宋)시대 때 황제가 신하를 접견하고 외국사자(使者)의 조현(朝見)을 받던 궁전. 자신전(紫宸殿). ②제왕. 또는 제왕의 자리.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謂ㅣ 獻三大禮賦 주139)
예부(禮賦)
정치 예의에 관한 내용으로 쓴 부(賦).
야 待詔 주140)
대조(待詔)
조칙(詔勅)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천자의 비답이나 응화(應和)하는 문장 따위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漢)나라 때 징사(徵士)로서 정관(正官)이 없는 사람은 대조를 맡았는데, 그중 뛰어난 사람은 금마문에서 대조를 맡았다고 한다. 동중서가 「천인책」으로 무제(武帝)에게 인정을 받아 처음에는 대조를 맡았다가, 외직으로 나가 강도상(江都相)이 되었다.
集賢院 주141)
집현원(集賢院)
관서 이름. 당 개원(開元) 13년(725) 집선전(集仙殿) 여정서원(麗正書院)을 집현원으로 개칭하고, 학사(學士), 직학사(直學士), 시독학사(侍讀學士), 수찬관(修撰官)을 설치하여 경적(經籍)을 간집(刊緝)하도록 했다. 재상 1명을 학사지원사(學士知院事)로, 상시(常侍) 1명을 부지원사(副知院事)로 두었다. 송대에는 소문관(昭文館), 사관(史館), 집현원을 설치하고 이를 3관(館)이라 불렀으며, 역사 편수와 서적 교정의 일을 맡게 했는데 모두 다른 관직을 겸했다. 원대에도 설치했지만 제조학교(提調學校)를 관리하고, 도교(道敎), 음양, 제사 등에 관한 일을 다루었다.
也ㅣ라】

지 주142)
지
지어. 짓-[作]+어. ‘짓다’는 다의어로서 ‘집을 짓다, 글을 짓다, 행위를 하다, 농사 짓다, 물건을 만들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중간본〉에는 ‘지어’로 되어 있다. ¶(집 짓다) : 녜 貪欲이 하거늘 부톄 不淨觀 짓게 야〈능엄 5:35ㄱ〉. 므렛 고 굴을 화 보라왯고 집 짓 져비  어두믈 뵈왓비 놋다(水花分塹弱 巢燕得泥忙)「乘雨 ··· 弟宅」〈두시 8:44ㄴ〉. (글 짓다) : 製 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 1ㄱ〉. 晩節에 漸漸 글 짓논 法을 仔細히 노니(晚節漸於詩律細)「遣悶 ··· 曹長」〈두시 3:48ㄱ〉. 제 지 詩集을 보니(觀其著詩集)「遣興五首」〈두시 3:58ㄴ〉. (행위를 하다) : 제 보아 아론 젼로 외야 현마 모딘 罪業을 짓디 아니리니〈석상 9:31ㄱ〉. 올 고파 도라가 짓노라(今年強作歸)「巫山縣에~留于屋壁노라」〈두시 23:18ㄴ〉. (농사 짓다) : 首陀 녀름 짓 사미니(首陀 農夫也ㅣ니)〈능엄 3:88ㄱ〉. (만들다) :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월석 4:18ㄴ〉. 고지 더우니  짓 버리 수놋다(花暖蜜蜂喧)「弊廬遣興奉寄嚴公」〈두시 21:6ㄱ〉.
받와 주143)
받와
받들어. 받-++아. 원문의 ‘獻’의 번역이다.. ‘받-’은 ‘바치다’[獻]의 뜻으로도 쓰이고 ‘받다’의 높임말로도 쓰인다. ¶즈믄  長存샬 藥이라 받노다〈악학 동동〉. 王이 寶冠 (→)라 받시며〈석상 3:5ㄴ〉. 丈夫 나라해 모 받오 盟誓홀 디니 애와텨 호  엇뎨 두리오(丈夫誓許國 憤惋復何有)「前出塞九首」〈두시 5:27ㄱ〉.
님 주144)
님
임금의. 님금+ㅅ.
眷顧 주145)
권고(眷顧)
정(情)을 두고 돌봄. 애고(愛顧). 권고(睠顧).
샤매 버므러 주146)
버므러
버물어. 둘러싸여. 『두시언해』에서 ‘버믈다’는 보통 ‘繞’의 번역이지만 여기는 ‘紆’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는 ‘버다’의 예도 있는데 오식이 아니라면 유일한 예가 된다. ‘버믈다’와 유사한 어휘로 ‘두르다’도 있다. ¶부텻긔 닐굽  버므러 金盖 외오〈월석 7:30ㄱ〉. 오히려 네 져근 소남 너추 프리 수이 버므러쇼 思念노니(尙念四小松 蔓草易拘纏)「寄題江外草堂」〈두시 6:37ㄱ〉. 보다 : 도로혀 우믌 欄干애 보라 낫나치 더으고(却繞井欄添箇箇)「見螢火」〈두시 17:38ㄴ〉. 두르다 : 바 菜蔬ㅣ 지븨 둘엇 히로다(畦蔬繞舍秋)「秋日 ··· 十束」〈두시 16:72ㄴ〉. 이러멧 菜蔬ㅣ 새 지븨 둘엣니(畦蔬繞茅屋)「園」 〈두시 15:14ㄱ〉. 치운 虛空 머리 우희 휫둘엇도다(寒空繞上頭)「西閣口號呈元二十一」〈두시 14:22ㄱ〉.
예 주147)
예
사이에. [間]+예.
紫宸殿에 가 뵈오라 주148)
뵈오라
뵈었다. 뵈-[見]++오+라. ‘--’은 선행형태 및 후행형태에 따라 ‘--, --, --, --, --’ 등으로 나타나는데, ‘--, --, --’은 각각 선행형태의 말음이 ‘ㄱ, ㅂ, ㅅ, ㅎ. ㄴ, ㄹ, ㅁ, 모음. ㄷ, ㅈ, ㅊ’이면서 후행형태가 자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나고, ‘-/오-, -/오-, -/오-’은 후행형태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이때의 ‘ㅸ’은 〈능엄경언해〉(1461)부터 모두 ‘오/우/ㅇ’로 바뀌었다. ‘오’가 있으므로 이 문장의 주어는 두보 자신임을 알 수 있다. ¶-- : 東西옛 두 雙이 어울오 南北엣 두 雙이 어우러 가지 드리워 如來 둡고(其娑羅林東西二雙合爲一樹 南北二雙合爲一樹) 〈석상 23:17ㄴ-18ㄱ〉. 時節이 危難 저긔 님 恩私 갑고져 야 늘거도 能히 마디 몯노라(時危思報主 衰謝不能休)「江上」〈두시 3:39ㄴ〉. -/오- : 宰 다릴씨오 相 도씨니 벼슬 노 臣下ㅣ 님그믈 돕 百官 다릴 宰相이라 니라 〈석상 9:34ㄴ〉 /-오- : 樗 散材로 오히려 님금 恩慈 닙오라(樗散尙恩慈)「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ㄴ〉. -- : 부텻 舍利로 七寶塔 셰논 도 보리러니(以佛舍利起七寶塔) 〈석상 13:14ㄴ〉. 구틔여 玄圃애 뫼디 몯나(不必陪玄圃)「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ㄱ〉. -/오- : 得大勢여 ··· 恭敬 尊重 讚嘆 여러 가짓 됴 根源을 시므고 後에  千萬億 佛을 맛나(得大勢 ··· 供養如是若干諸佛 恭敬尊重讚歎種諸善根 於後復值千萬億佛) 〈석상 19:33ㄴ-34ㄱ〉.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扈聖崆峒日)「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 : 듣고 깃 須陀洹 일우니라(聞法歡喜便染聖法 成須陀洹)〈석상 6:21ㄴ〉. -/오- : 이 衆生히 諸佛 法 듣 乃終에 다 一切 種智 得리니(是諸衆生 從佛聞法 究竟皆得一切種智) 〈석상 13:50ㄴ〉. 百官이 신 바사 天王 졷와 가니라(百官跣足隨天王)「憶昔二首」〈두시 3:61ㄱ〉.

【한자음】 헌납우황권 중간알자신두보가 삼대예부(三大禮賦)를 바쳐 집현원(集賢院)에서 명령을 기다렸음을 말한다.】
【언해역】 글 지어 받들어 임금의 권고(眷顧)하심에, 둘러싸여 사이에 자신전(紫宸殿)에 가 뵈었네.
*시 구절 해석 : “글을 지어 받자와 임금께서 권고하심에, 그 사이에 자신전에 가 뵈었다.”라는 뜻으로, 좋은 글을 지어 임금의 부름을 받아 궁궐에 들어간 적도 있다는 말이다.

且隨諸彥 주149)
제언(諸彥)
여러 언사(彦士). ‘언사’는 현인(賢人) 또는 재사(才士)를 말한다.
集 方覬薄才伸

그 저긔 주150)
그 저긔
그 때에. 그 적+의.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원래의 ‘ 모’에서 교정된 것이다.
여러 彦士 주151)
언사(彦士)
현인(賢人)이나 재사(才士).
조차 주152)
조차
좇아. 따라. 좇-[隨]+아. 15세기의 ‘조차’는 서술어와 보조조사로 쓰였다. 15세기 당시에는 이 같은 환경에서 ‘ㅅ’ 종성은 ‘ㅅ[sʾ]’로 발음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졷와’〈금강 1ㄴ〉, ‘조와’〈능엄 1:4ㄱ〉 등처럼 표기된 예를 참고하면 이 환경에서 음절말 ‘ㅅ’은 [t ̚]로 발음되는 경향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潛龍 未飛예 北人이 服事 弓劍 고 左右에 좇니〈용가 55장〉. 上慢 사미 信야 降伏야 좃며〈월석 17:75ㄱ〉. (서술어)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 3:4ㄴ〉. 져머셔 주그니 무두므란 潘岳 이 조차 고 바라온 몸 扶持호 鄧林을 얻노라(瘞夭追潘岳 持危覓鄧林)「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7ㄱ〉. 셕륫  그 우희 브텨 리  밤 재민 불휘조차 절로 디리라〈구간 3:17ㄴ〉.
모다 주153)
모다
모두. ¶太子 뵈더시니 모다  出家시면 成佛시고 지븨 겨시면 輪王이 외시리로소다〈석상 3:1ㄱ〉. 群公이 모다 힘니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群公紛戮力 聖慮窅裴佪)「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사오나온 주154)
사오나온
못난, 미천한, 저급한. 사오납-[劣]+오+ㄴ. 초기 정음 문헌에서는 ‘나오나’으로 표기된다. 〈능엄경언해〉(1461)의 ‘ㅸ⇒오/우/ㅇ’로 교체되기 전에는 ‘사오나’식으로 표기함.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사오납- : 劣은 사오나 씨라〈월석 17:57〉. (나쁘다) :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 3:2ㄱ〉. 二乘이 미 사오나와 이 法 이긔디 몯호 가비시니〈법화 2:62ㄴ〉. 王生이 내의 비치 사오나오 怪異히 너기니 對答야 닐오 벼개예 굽스러 어려우미 얘라(王生怪我顏色惡 答雲伏枕艱難遍)「病後 ··· 贈歌」〈두시 3:50ㄱ〉.
조 주155)
조
재주.
펴 주156)
펴
폄을. 펴-[伸]+오+ㅁ+.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凶 兵잠개로 農器 디오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凶兵鑄農器 講殿闢書帷)「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ㄱ〉.
뵈야로 주157)
뵈야로
바야흐로. 15세기 참조; 보야로. 보야호로. 보야흐로. 뵈야로, 뵈야호로. 뵈야흐로. 15세기 문헌에는 ‘뵈야로’와 ‘보야로’가 쓰였고, 16세기 문헌에는 ‘보야호로, 뵈야호로, 보야흐로, 뵈야흐로’가 주로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보야로’와 ‘뵈야로’가 쓰였다. ¶뵈야로 : 뵈야로 敎化 기샤 커시 諸梵이 마치 請오 世와 道ㅣ 서르 니러 機緣이 미 感 씨라〈법화 1:235ㄱ〉. 부픈 뵈야로 祭 鬼神 맛고 彈子 쇠로기  새 디놋다(鼓迎方祭鬼 彈落似鴞禽)「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ㄴ〉. 보야로 : 보야로 般若 닐오려 샤 일로 여러 뵈샤〈금삼 1:30ㄴ〉. 로 비록 뷔여 니나 衰老 病은 보야로 져기 우리로다(草茅雖薙葺 衰疾方少寬)「營屋」〈두시 6:46ㄱ〉.
엿보다라 주158)
엿보다라
엿보았다. 엿보-[窺]+더+오+라. ‘오’로 인해 이 문장의 주어가 두보 자신임을 알 수 있다.

【한자음】 차수제언집 방기박재신
【언해역】 그 때에 여러 언사(彦士)를 쫓아 모두 미천한 재주 폄을 바야흐로 엿보았네.
【구절풀이】 ###집현원(集賢院) : 두보가 시험을 본 곳.
*시 구절 해석 : “또 여러 선비를 좇아 모여, 바야흐로 엷은 재주를 펴기를 바랐다.”라는 뜻으로, 여러 인재들과 함게 모여 재능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했다는 말이다.

破膽遭前政 陰謀獨秉鈞 주159)
병균(秉鈞)
①국가의 중요한 직책, 또는 그를 맡은 벼슬아치. 여기서의 균(鈞)은 저울(형석(衡石)을 뜻하여 국사(國事)의 경중(輕重)을 재는 것을 뜻한다. 균축(鈞軸). 병축(秉軸). 홍균(洪鈞). ②권력이나 정권(政權)을 잡음. 병정(秉政).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言ㅣ 待詔야 望髙選다가 爲李林甫 주160)
이림보(李林甫)
?~752. 당나라 종실(宗室). 현종 때의 재상. 어릴 때 이름은 가노(哥奴)고, 호는 월당(月堂)이다. 이사회(李思誨)의 아들이다. 음률을 잘 했다. 국자사업(國子司業)을 거쳐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올랐고, 형부와 이부의 시랑(侍郞)을 역임했다. 예부상서와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을 지냈다. 사람 됨됨이가 겉과 속이 달라 친한 듯이 보이지만 갖은 음모와 중상모략을 일삼아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 불렸다. 교활하고 권술(權術)에 능했다. 환관이나 비빈들과 친해 황제의 동정을 일일이 살피고 주대(奏對)에 응해 유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조정에 있는 19년 동안 권력을 장악해 멋대로 정책을 시행해 사람들이 눈을 흘기며 꺼렸다. 만년에는 성기(聲妓)에 빠져 희시(姬侍)가 방마다 가득했다. 죽은 뒤 태위(太尉)와 양주대도독(揚州大都督)에 추증되었다.
의 所沮니라】

애 주161)
애를
애를. 창자를. 애[腸]+를.
허러 주162)
헐어
헐어. 부수어. 파괴하여. 헐-[破]+어. ¶헐- : 尸羅 아니 허러도 軌則을 헐며〈석상 9:13ㄴ〉. 해 이셔셔 오직 여 사 心力으로 헐에 니 사게 干犯호미 므슷 이리어 그믈로 求니오(在野只敎心力破 干人何事網羅求)「見王監兵馬使호니~請余賦詩二首다」〈두시 17:11ㄴ〉.
알 주163)
알
앞의. 앒[前]++ㅅ. ‘앒〉앞’과 같은 변화는 〈소학언해〉(1586)에 처음 보인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앒 : 알 디나샤 도기  몰라 몯 나니〈용가 60〉.  닐굽 校尉ㅅ 알 요라(心蘇七校前)「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ㄴ〉. 앞 : 뵈야호로 그 져머신 제 父母ㅣ 왼녁 겯로 잡고 올녁 겯로 들며 아프로 옷기슬 긔고 뒤후로 옷기 글잇그러〈소학언해 5:70ㄴ〉.
政事 맛나니 주164)
맛나니
만나니. 맛-+나-+니.
陰險  주165)
 
꾀를 낼. [策]#-+ㄹ. ¶곧 뎘 돈 갑디 아니홀  야〈관음경 12ㄴ〉. 블려 니러 風雲際會를 마치 맛나니 업더듀믈 더위자보매 비르서  잘 호믈 알리로다(徵起適遇風雲會 扶顚始知籌策良)「洗兵馬」〈중간두시 4:18ㄴ〉.
사미 주166)
사미
사람이. 사+이.
올로 주167)
올로
홀로. 올+로. ¶올 : 나 올어미라〈내훈 서:7ㄴ〉. 믌 玉陛예 뮈니 올 鶴이 외오  번 소리니라(滄洲動玉階 寡鶴誤一響)「故著 ··· 公虔」〈두시 24:38ㄱ〉. 올로 : 이 길헤 올로 녀시니〈월석 22:7ㄱ〉. 生涯ㅣ 올로 다봇 올마 니 호라(生涯獨轉蓬)「投贈 ··· 二十韻」〈두시 5:43ㄱ-ㄴ〉.
釣衡 주168)
균형(鈞衡)
①인재를 헤아려 뽑음. ②정치를 공평하게 한다는 뜻으로, 재상을 일컫는 말. ③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일.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자밧더라 주169)
자밧더라
잡았다. 잡-+아#잇-+더+라. 여기서는 ‘자밧-’으로 표기되지만 ‘자바 잇-’이나 ‘자뱃-’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자바 잇- : 그 城 네  닐굽  모새  毒龍이 서르 얼거 머리 겯딜어 城門 자바 잇더라〈월석 22:43ㄱ〉. 第八識은 礠毛石이 야 一刹那ㅅ 예 믄득 더위 자바 잇거든   根塵 等 種이 제 識中을 브터셔  現行 낼〈월석 11:52ㄴ〉. 자밧- : 다 올 와셔 나리 虛히 가 놀라고 同心 사 자밧다가 노호 앗기노라(異縣驚虛往 同人惜解攜)「水宿 ··· 群公」〈두시 3:20ㄴ〉. 桑落酒를 안자 여러셔 菊花ㅅ 가지 와 자밧도다(坐開桑落酒 來把菊花枝)「九日楊奉先會白水崔明府」〈두시 11:27ㄴ〉. 자뱃- : 그 아노니란 리고 자뱃더니 아나 뫼로 거〈내훈 3:48ㄱ〉. 뫼콰 괘 그륜 이플 더위자뱃고(山河扶繡戶)「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7ㄱ〉.

【한자음】 파담조전정 음모독병균 두보가 부름을 받아 들어가 고위직 선발을 기대했지만, 이임보(李林甫)에 의해 제지 당했다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애
(창자)
를 헐어 앞의 정사(政事)를 만나니, 음험(陰險)한 꾀를 낼 사람이 홀로 조형(釣衡)을 잡았네.
*시 구절 해석 : “애(창자)가 끊어지도록 앞의 정사를 만났으니, 몰래 혼자 균형을 잡으려고 도모했었다.”라는 뜻으로, 지난날의 국력을 회복할 때를 오게 하고자 노력했지만 이임보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말한다.

微生霑忌刻 주170)
기각(忌刻)
꺼림을 당해 깎여져 나감.
萬事益酸辛【微生은 ㅣ 自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13ㄱ

謂라】

殘微 人生애 아쳐러호 니부니 주171)
아쳐러호 니부니
싫어함을 당하니. 아쳗-+어#-+오+ㅁ+ 닙+우+니. ‘아쳗다’는 ‘ㄷ’불규칙 용언으로 ‘싫다’의 뜻인데 여기에 ‘-어 -’가 결합하여 ‘싫어하다’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호 닙다’는 한문에서 ‘蒙, 被’ 등 피동문에 쓰인 본동사를 언해할 때 쓰이는 것인데, 여기서는 ‘霑忌刻’을 의역하여 사용한 것이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아쳗- : 다가 사미 苦 맛나 老病死 아쳗거든〈법화 1:71ㄴ〉. 집 안해셔 기 벌어지와 가야미와 머구믈 아쳗고 기 여 도로혀 모 맛날 고 아디 몯호라(家中厭雞食蟲蟻 不知雞賣還遭烹)「縛雞行」〈두시 17:14ㄴ〉. 아쳐러- : 곧 憍慢며 대  니와다 아쳐러 게으른 들 머거〈월석 17:14ㄱ〉. 늘구메 人世 슬코 두루 이녀셔 甲兵을 아쳐러노라(衰老悲人世 驅馳厭甲兵)「奉送二 ··· 郴州」〈두시 8:63ㄱ〉. -/을 닙- : 오라건 劫으로셔 부텨 接引샤 닙〈석상 11:8ㄴ〉. 䟽拙야 林泉에 머므러 쇼 닙고 一生애 술와 그릐 欺弄호 맛니럿노라(拙被林泉滯 生逢酒賦欺)「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ㄱ〉.
萬事ㅣ 더욱 주172)
더욱
더욱. 〈중간본〉에는 ‘더옥’으로 되어 있다.
슬프도다 주173)
슬프도다
슬프도다. 슳-+브+도+다.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한자음】 미생점기각 만사익산신【‘미생(微生)’은 두보가 자신을 일컬은 것이다.】
【언해역】 잔미(殘微)한 인생에 싫어함을 당하니, 만사가 더욱 슬프도다!
*시 구절 해석 : “미천한 인생이 시기마저 당해, 만사는 더욱 고달퍼졌다.”라는 뜻으로, 미천한 삶에 시기 질투까지 당해 생활이 더욱 힘겨워졌음을 말한다.

交合丹靑地 恩傾雨露 주174)
우로(雨露)
비와 이슬. 비와 이슬이 만물을 화육(化育)하게 하는 것 같은 은택. 큰 은혜.
주174_1)
*〈중간본〉에는 ‘傾雨露辰’으로 되어 있다.
【丹青 見前註니 丹青地 指言公𡖖하다】

사괴요미 주175)
사괴요미
사귐이. 사괴-[交]+오+ㅁ+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提婆達多ㅣ 阿闍世王과 사괴더니〈월석 22:69ㄴ〉. 漸漸 사괴야 노 사미 그추믈 깃노니 幽隱히 사로매 일후믈 디 아니노라(漸喜交遊絕 幽居不用名)「遣意二首」〈두시 3:26ㄱ〉.
丹靑에 모 주176)
모
모든. 몯-[集]+. ¶몯- : 王이 붑 텨 조 겻 사 다 모라 시고〈석상 3:12ㄱ〉. 盛 이리  모니 이 지븐 엇뎨 즈믄  니리오(盛事會一時 此堂豈千年)「陳拾遺故宅」〈두시 3:65ㄱ〉.
콰 恩惠 주177)
콰 恩惠
땅과 은혜는. ㅎ+과 恩惠+. 15세기 국어에서 명사구 나열에 접속조사가 쓰일 경우 마지막 명사구에도 접속조사가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마지막 명사구인 ‘恩惠’에 접속조사가 생략되었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雨露 기우리시 주178)
기우리시
기울이시는. 기울-+이+시+. ¶기울- : 須彌山도 어루 기울의 려니와〈석상 9:27ㄱ〉.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 빗나 흐르 벼리 솟  도다(回回偃飛盖 熠熠迸流星)〈두시 5:48ㄱ〉「揚旗」〈두시 5:48ㄱ〉. 기우리- : 이슘과 업숨과 둘히 업수 서르 기우리 業이 그초 니시니〈능엄 9:37ㄱ〉. 니거 드로니 雲安縣엣 麴米春이 아야라  盞 기우리면 곧 사미 醉니라(聞道雲安麴米春 纔傾一盞卽醺人)「撥悶」〈두시 3:32ㄱ〉.
로다 주179)
로다
때이도다. [時]+이+도+다. ¶ :   계록 아니 받〈석상 11:40ㄴ〉.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 灩澦예 正히 사 로다(扈聖崆峒日 端居灩澦時)「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한자음】 교합단청지 은경우로진【‘단청(丹青)’은 앞의 주에 나왔으니, ‘단청지(丹青地)’는 공경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언해역】 사귐이 단청(丹靑)에서 모든 땅과 은혜는 우로(雨露)를 기다리시는 때이도다!
*시 구절 해석 : “사귐은 단청의 땅에서 합해졌고, 은혜는 우로가 기울어지는 때.”라는 뜻으로, 공경대부들과 만났으니 은혜가 비와 이슬처럼 저신에게 기울어졌다는 말이다.

有儒愁餓死 早晚 주180)
조만(早晚)
지금도 ‘언제’라는 뜻으로 쓴다.
報平津公孫弘 주181)
공손홍(公孫弘)
기원전 200~기원전 121. 전한 치천(菑川) 설현(薛縣) 사람. 자는 계(季) 또는 차경(次卿)이다. 젊었을 때 옥리(獄吏)로 있었는데, 죄를 져 쫓겨났다. 집안이 가난해 바닷가에서 돼지를 치며 살았다. 마흔 살 즈음하여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익혔다. 무제(武帝) 건원(建元) 원년(기원전 140) 현량(賢良)에 추천되어 박사(博士)에 올랐다가 흉노(匈奴)의 일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원광(元光) 5년(기원전 130) 현량대책(賢良對策)에 제일(第一)로 뽑혀 박사가 되고, 내사(內史)와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역임했다. 강력하게 간언(諫言)하기보다는 무제의 뜻을 살펴 의사를 표현했고, 문자 수식을 적절하게 활용해 관료의 길을 걸으면서 유술(儒術)을 알맞게 응용하여 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원삭(元朔) 5년(기원전 124) 승상이 되고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다. 최초의 승상봉후(丞相封侯)였을 뿐만 아니라 포의(布衣)에서 승상으로 봉작까지 받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검소하게 살아 집안에 재산을 남겨두지 않았다. 성격이 겉으로는 관대했지만 속으로는 시기가 많아 틈이 벌어진 사람이 있으면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면서 몰래 보복을 했다. 나이 여든 살에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호무생(胡毋生)에게 춘추공양학을 전수받았다. 저서에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수록된 『공손홍서(公孫弘書)』가 있다.
이 封平津 주182)
평진(平津)
옛 지명(地名). 한(漢)나라 때는 평진읍(平津邑)이었는데, 무제(武帝)가 승사(丞相) 공손홍(公孫弘)을 평진후에 봉했으니, 바로 이곳이다. 이후 이것이 전고가 되어 승상 등 고급관료(高級官僚)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선우중통을 가리킨다.
侯니 ㅣ 望仲通之薦引 주183)
천인(薦引)
추천하여 이끌어 관직에 진출시킴.
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션 주184)
션
선비. 『두시언해』에는 ‘션븨’로도 쓰였다.
주려 주185)
주려
굶주려. 주리-[饑]+어. ‘주리다’는 『두시언해』에 주로 쓰였으며 15세기의 나머지 문헌에서는 ‘주으리다’가 쓰였다. ¶주리- : 오직 노 놀애여 鬼神 잇 호 아디웨 므스므라 주려 주거 굴허 몃귀욜 이 알리오(但覺高歌有鬼神 焉知餓死塡溝壑)「醉時歌」〈두시 15:37ㄴ〉. 薇蕨로 首陽山애셔 주리고  조 머겨 디나 뇨 資賴니(薇蕨餓首陽 粟馬資曆聘)「早發」〈중간두시 1:50ㄱ〉〈두시 3:41ㄴ-42ㄱ〉. 주으리- : 後ㅅ 사미 긔호 주으료로 부텨 외다 리니〈석상 3:39ㄴ〉. 주으륨 充實케 호란 楚ㅅ 말와 랑노라(充饑憶楚萍)「獨坐二首」〈두시 3:41ㄴ〉.
주구믈 주186)
주구믈
죽음을. 죽-[死]+우+ㅁ+을.
시름노니 주187)
시름노니
걱정하니. 시름#-++오+니.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언제 주188)
언제
언제야. 언제+. 〈중간본〉에는 ‘언제아 平津’로 되어 있다.
平津 주189)
평진(平津)
평진께. 즉 선우중통을 가리킨다. 平津+. ‘-’는 존칭 여격조사이다. ¶ 臣下ㅣ 王  太子ㅣ 져머 겨시니 뉘 기려뇨〈석상 3:3ㄱ〉. 나 히메 바래  워 가리니 正히 시름야셔 뎌 하 묻노라(餘力浮于海 端憂問彼蒼)「遣悶」〈두시 3:13ㄱ〉.
알다 주190)
알다
알욀까? 알-+오+이+ㄹㆆ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알욀다’로 되어 있다. ¶알외- : 世尊이 사 아니 알외샤 오 忉利天에 가샤〈석상 11:1ㄱ〉. -ㄹㆆ다 : 아비 닐오 머즌 그르슬 므스게 다 대〈삼강런던孝13〉. 다 術을 뒷관 能히 한 毒 이다〈월석 21:118ㄴ〉. -ㄹ다 : 맷 고지 디디 아니얏거든 成都애 도라오리니 浣花앳 늘근 한아비 와 볼다 말다(江花未落還成都 肯訪浣花老翁無)「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두시 8:23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유유수아사 조만보평진【공손홍(公孫弘)이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으니, 두보가 선우중통이 자신을 천거해 주기를 바란 것이다.】
【언해역】 선비가 굶주려 죽음을 걱정하니, 언제야 평진(平津)께 알욀 수 있을까?
*시 구절 해석 : “선비가 굶어죽음을 시름하노니, 조만간에 평진에게 아뢰겠다.”라는 뜻으로, 돌보심을 얻어 선우중통이 자신을 천거해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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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경조(京兆) : 중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어. 일반적으로 한대(漢代) 이후에는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서 동쪽으로 화현(華縣)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며, 장안을 비롯한 12개의 현이 속해 있었다. 그리고 명청시대(明淸時代) 이후에는 순천부(順天府), 즉 지금의 북경(北京)을 경조라고 했다.
주002)
봉증선우경조 이십운(奉贈鮮于京兆二十韻) : 이 작품은 천보(天寶) 12년(753년)에 지어졌으며, 두보 42세 때이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에 있었다. 그 전해인 752년 12월, 재상 이임보(李林甫)가 병으로 죽자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는데, 선우중통을 발탁해 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천보 12년(752) 2월 양국충은 안녹산(安祿山)을 시켜 이임보가 일찍이 역모를 꾸몄다고 무고하도록 해 이임보는 관뚜껑이 열려 금자(金紫)가 제거되었다. 이 시는 이 사건이 있고 난 뒤에 지어졌다. 두보는 두 차례에 걸쳐 과거 시험에 응시했는데, 모두 이임보에 의해 제지되어 몹시 통한(痛恨)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선우중통에게 이 시를 주면서 도움을 주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주003)
선우중통(鮮于仲通) : ?~?. 당나라 낭주(閬州) 신정(新政) 사람. 자는 향(向)이고, 선우숙명(鮮于叔明)의 형이다. 학문이 높아 경전에 통달했고, 재물을 가볍게 여겨 남에게 베푸는 데 힘썼다.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현종 천보(天寶) 말에 경조윤(京兆尹)에 올랐고, 어사중승(御史中丞)과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를 역임했다. 양국충(楊國忠)의 눈밖에 나서 쫓겨났다.
주004)
현량(賢良) : ①경학(經學)에 밝고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 ②한(漢)나라 때 실시된 관리등용 방법. 일명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라고도 한다. 전국 각 군으로부터 어질고 선량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이들에게 책문(策問)을 시험하여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선발했다. ③어질고 착함.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05)
하다 : 많다. 하-[多]+다.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魯鈍코  病이 하니 逢迎호 머러  迷失노라(魯鈍仍多病 逢迎遠復迷)「水宿 ··· 群公」〈두시 3:19ㄱ〉.
주006)
일나 : 일컬어나. 일-[稱]+어+으나. ‘일-’은 ㄷ불규칙용언이다. ¶녜 諸佛이 일라 讚嘆시며〈석상 13:4ㄴ〉. 夫人이 녜 肩輿 타 殿에 올아 萬壽쇼셔 일니라(夫人常肩輿 上殿稱萬壽)「送重 ··· 南海」〈두시 8:56ㄱ〉.
주007)
몃 사고 : 몇 사람인가? 몃 사+고. 의문사 ‘몃’과 설명의문어미 ‘-고’는 서로 호응한다. ¶世尊이  몃 里 녀시니고〈석상 6:23ㄱ〉. 뎌리 뫼 노 히로소니 와 雲霞  묏부린 몃 오(蘭若山高處 煙霞嶂幾重)「謁眞諦寺禪師」〈두시 9:25ㄱ〉.
주008_1)
*〈중간본〉에는 ‘異才應出’로 되어 있다.
주008)
상기(爽氣) : ①명랑(明朗)하고 시원하게 열린 자연 풍경. ②서늘하고 시원한 기운. ③힘차고 먼 기개(氣槪).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08_2)
*〈중간본〉에는 ‘岀은 世而出也ㅣ라’로 되어 있다.
주009)
다 : 다른. 다-[異]+ㄴ.
주010)
조 : 재주는. 조+. ¶伎女는 며 여러가짓 조 잘 겨지비라〈석상 3:5ㄱ〉. 어러이 라 매 어드러 가리오 죠고맛 조 欽敬논 고 愧謝노라(狂走終奚適 微才謝所欽)「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ㄱ〉.
주011)
이 : 응당. +이. 참조; 하다. 『두시언해』에서 ‘이’는 ‘다’로도 표기된다. 〈중간본〉에는 ‘당당이’로 되어 있다.
주012)
야 : 사이하여. #-+야. 〈중간본〉에는 ‘이야’로 되어 있다.
주013)
나니 : 나니. 나-[出]++니.
주014)
 : 맑은. -[淡]+.
주015)
반기 : 반드시. 반+이. 정확한 차이는 알 수 없으나 15세기 국어에는 ‘반기’ 이외에도 반시〈두시 24:32〉, 반개〈두시 25:2〉 등이 사용되었다. 이 중 ‘반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반기 : 正音은 正 소리니 우리 나랏 마 正히 반기 올히 쓰논 그릴 일후믈 正音이라 니라〈월석 1:석보상절 서5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 ··· 群公」〈두시 3:21ㄴ〉. 반시 :  세 번 머그면 돌히 반시 나리니 돌히 다 나거든 말라〈구간 3:113ㄱ〉. 流傳야 가 반시 等倫에 그츠리로다(流傳必絶倫)「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 16:5ㄱ-ㄴ〉. 반개 : 속 뷘 대로 반개 지여 요리라(當仗若虛竹)「課伐木幷序」〈두시 25:2ㄴ〉.
주016)
무레 : 무리에. 물+에. ‘물’은 ‘무리’의 뜻으로 15세기에서는 ‘물, 믈, 무리, 므리’의 형태로 쓰였다. ¶물 : 버거 鬱卑迦葉三兄弟의 물 一千 사 濟渡시며〈석상 6:18ㄴ〉. 다 가짓 비치 너희 물 아니가(五色非爾曹)「送重 ··· 南海」〈두시 8:56ㄴ〉. 믈 : 特은  므리예 로 다 씨라〈석상 6:7ㄱ〉. 무리 :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석상 6:27ㄱ〉. 이 글 崔魏 무리 내 글  班揚다 더라(斯文崔魏徒 以我似班楊)「壯遊」〈중간두시 2:38ㄱ〉. 므리 : 特은  므리예 로 다 씨라〈석상 6:7ㄱ〉.
주017)
다니라 : 다르다. 다-++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018)
장창(張敞) : ?~기원전 47. 전한 경조(京兆) 두릉(杜陵) 사람. 원적은 하동(河東) 동평양(東平陽)이고, 자는 자고(子高)다. 소제(昭帝) 때 태복승(太僕丞)이 되었다. 선제(宣帝) 때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는데, 대장군 곽광(霍光)의 뜻을 거슬러 한곡관도위(函谷關都尉)로 나갔다. 나중에 경조윤(京兆尹)에 올랐는데, 하루에 도둑 수백 명을 잡아 엄격하게 처벌하니 시장에 도적이 사라져버려 황제의 칭찬을 받았다. 양운(楊惲)과 가깝게 지냈는데, 양운이 대역죄로 살해당하자 면직되고 귀향했다. 몇 개월 뒤 기주자사(冀州刺史)로 기용되니 도적들이 사라졌다. 원제(元帝)가 좌풍익(左馮翊)으로 기용하려고 했는데, 병사했다. 직언을 잘하고 상벌을 엄격히 했다. 일찍이 아내를 위해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탄핵을 받았다. 선제가 까닭을 물어보니 규방(閨房) 안의 일이라면 눈썹을 그리는 것보다 더한 일도 있다고 대답하자 황제가 책망하지 못했다.
주019)
경조윤(京兆尹) : 중국의 관직명. 한 무제(武帝) 태초(太初) 원년(기원전 104)에 우내사(右內史)를 고쳐 경조윤을 설치했고, 장안(長安) 이하 12개 현을 다스리는 일을 맡았다. 삼국시대 위나라 때 태수(太守)로 고쳐 불렀다가 서위(西魏), 주(周), 수 때 다시 환원되었다. ③왜국 덕천 막부시대(德川幕府時代)의 관직명. 경도소사대(京都所司代), 경직(京職)이라고도 한다. 왕실에 관한 사무를 맡았고 사원(寺院) 관리와 소송(訴訟)의 판결 등을 담당했다.
주020)
비르서 : 비로소. ‘비르서’를 분석하면 ‘비릇+어’일 가능성이 있다. ‘비릇’은 동사 ‘비릇다’의 어근임과 동시에 ‘비릇’ 자체는 명사와 부사로 모두 쓰였다. 현대국어의 ‘비로소’는 옛말의 ‘비릇’에 부사파생접미사 ‘-오’가 결합된 ‘비르소’가 ‘오’의 영향으로 ‘비릇’이 ‘비롯’으로 변화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참조; 비릇, 비릇다, 비르, 비르솜, 비르소, 비르서, 비르수, 비르소. 비루소(16세기). ¶비르수 : 旄頭ㅣ 처엄 비르수 어즈러우니 鶉首ㅣ 즌  버므러디도다(旄頭初俶擾 鶉首麗泥塗)「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 2:11ㄱ〉. 비릇- : 이런로 世界 니와다 비르소 覺明에 비르서 風과 金과 水와 火애 브터 萬物을 내야 일우니라(故로 世界起始호 肇於覺明야 而依乎風金水火야 以生成萬物也니라)〈능엄 4:21ㄱ〉. 義理예 禮法 릴 주리 업스니 恩愛호미 남진과 겨집괘 恭敬호로 비릇니라(義無棄禮法 恩始夫婦恭)「牽牛織女」〈두시 11:25ㄱ〉. 비르서 : 부텻 法에 쥬 四月ㅅ 열다쐣날 비르서 뎌레 드러 안 나 니디 아니야〈석상 11:1ㄴ〉. 靑玉案 비르서 입곡(試吟靑玉案)「又示宗武」〈두시 8:49ㄴ〉. 비릇 : 녯  비릇 업시 오로 곡도 며〈남명 상:75ㄱ〉. 簿尉ㅅ 소개셔 모 바사나 비릇 채질 호 마도다(有似幽並兒)「送高 ··· 十五韻」〈두시 22:29ㄱ〉. 비르솜 : 간 니로미 作이오 비르소미 因이오〈월석 11:101ㄱ〉. 비르소 : 바 모로매 本分 브터 法다 야 비르소 올리라〈몽산 33ㄴ〉. 時節이 바라온 제 世예 업슨 조 비르소 알리로소니(時危始識不世才)「寄狄明府博濟」〈두시 8:18ㄱ〉.
주021)
근신(近臣) : 임금 가까이에서 일하는 신하. 근시(近侍).
주022)
사로미 : 삶이. 사는 것이. 살-[居]+오+ㅁ+이.
주023)
맛도다 : 마땅하도다. 당연하도다. 맛#-+도+다. 〈중간본〉에는 ‘맛당도다’로 되어 있다.
주024)
화류(驊騮) : 주목왕(周穆王) 팔준(八駿)의 하나. 보통 준마(駿馬)를 가리킨다.
주025)
조악(雕鶚) : ①독수리와 물수리. 모두 사나운 새. ②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비유. ③간사한 사람의 비유. ④재력(財力)이 웅건(雄健)한 것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①과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26)
거성(去聲) : 옛날 한어사성(漢語四聲) 가운데 제3성(聲).
주027)
됴 : 좋은. 둏-+.
주028)
리 : 말이. +이.
주029)
길 : 길을. 길ㅎ+.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30)
여러 : 열어. 열+어.
주031)
가 며 : 가는 듯하며. 가-+ 듯#-+며. ¶ - :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석상 6:9ㄱ〉. 英雄 이 보미 通神 니(英雄見事若通神)「승문~ 20수」〈두시 5:22ㄴ-23ㄱ〉.
주032)
매 : 매가. 매+∅. ‘ㅣ’ 하향중모음 아래에서 주격조삭 생략되었다.
주033)
 드트를 : 바람 티끌을. 바람에 날리는 티끌을.
주034)
버리와다 : 떼놓아. 서로 벌려 놓아. 서로 간격이 생기게. 버리#왇+아. ‘버리왇다’로 표기된 형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중간본〉에는 ‘버으리와다’로 되어 있다. ¶읏드미 雷雨 버리와다 불휘 믌 미틔 싯기여 그처디니 엇뎨 하 디시리오(幹排雷雨猶力爭 根斷泉源豈天意)「柟木 ··· 拔歎」〈두시 6:41ㄱ〉. 지블 占卜야 예 조차셔 늘구리니 녀름 지메 나라 버리와다쇼미 머도다(卜宅從玆老 爲農去國賖)「爲農」〈두시 7:5ㄴ〉. 내조쳐 왜신 엇뎨 性을 그르츠리오 미 뷔여 生禪호 버리왇디 아니놋다(放逐寧違性 虛空不離禪)「宿贊公房」〈두시 9:24ㄱ〉. 으리왇- : 리 입을 으리왇고 더운 오좀을 브라〈구간 1:78ㄴ〉.  번 紫臺 으리왇고 朔漠애 니 가니 올로 프른 무더믈 머믈워 黃昏애 向야 잇도다(一去紫臺連朔漠 獨留靑塚向黃昏)「詠懷古跡三首」〈두시 3:68ㄴ〉. 이  하콰 쾃 예 이시면 나도  다  으리와도리라(今秋天地在 吾亦離殊方)「雙燕」〈두시 17:17ㄱ〉.  이바디 마져 니고져 컨마 幽明의 逼迫호 으리와도미 어렵도다(欲告淸宴罷 難拒幽明迫)「白水 ··· 三十韻」. 괴외호 이 버믜 굼긔 니도다 들에 란 마 사 무를 으리왇도다(靜應連虎穴 喧已去人群)「題栢大兄弟山居屋壁二首」〈두시 7:31ㄱ〉. 다봇 지븻 興을 으리왇디 몯 梁甫吟을 시러곰 兼노라(不阻蓬蓽興 得兼梁甫吟)「同李太守登歷下古城員外新亭」〈두시 14:34ㄴ〉. 이제 東 녀그로 바래 드러가 곧 將次ㅅ 西ㅅ 녀그로 秦을 으리왇고져 컨마(今欲東入海 即將西去秦)「奉贈韋 ··· 二十二韻」〈두시 19:3ㄱ〉.  人生애 바 으리와도미 어려우니 됴 會集을  아 앗기노라(浮生難去食 良會惜淸晨)「贈王 ··· 四十韻」〈두시 20:30ㄱ-ㄴ〉. 요 주 누넷 가 아 리시 그 샤 으리와니 河東ㅅ 져믄 겨지비 모맷 姓이 柳개니라(近者抉眼去其夫 河東兒女身姓柳)「可歎」〈두시 25:9ㄴ〉. 참조; 으리- : 조 니예 츠면 절로 으리리라〈구간 1:3ㄱ〉.
주035)
 도다 : 나는 듯하도다. -[飛]+ #-+도+다.
주036)
후백(侯伯) : ①후작(侯爵)과 백작(伯爵). ②보통 제후(諸侯)를 가리키는 말. ③제후(諸侯)의 우두머리.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37)
치신(致身) : 몸을 바침. 나중에는 출사(出仕)하는 일의 전고(典故)로 쓰였다.
주038)
아노라 : 아노라. 알겠도다. 알-[知]++오+라. ‘오’는 화자 주어 즉 ‘알다’의 주체가 두보임을 말한다.
주039)
어느 : 어찌. 15세기 국어의 ‘어느’는 대명사, 관형사, 부사로 쓰이는데 ‘어느’와 함께 ‘어찌’의 의미도 있다. ¶어느(어느/어떤) : 내 큰 스니미 마 涅槃 시니 어느 로 바 머그료〈석상 23:41ㄴ〉. 楚ㅅ 貢은 어느 예 그츠니오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이제 疑心외도다(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어느(어찌) : 羅雲이  부텻 法이 精微야 져믄 아 어느 듣리고〈석상 6:11ㄱ〉. 아히 조 유무니 盤애 먹 거슨 어느 라기 조 도랏 羹이리오(童稚頻書札 盤餐詎糝藜)「水宿 ··· 群公」〈두시 3:20ㄱ〉.
주040)
니혜리오마 : 세겠는가마는. 니-#혜-+리+오+마. 15세기 국어에서 용언 어간은 자음 어미 앞에서는 ‘니-’로, 모음 어미 앞에서는 ‘닐ㅇ-’형으로 통합하였다. ¶목수미 다 八萬四千歲리니 衆生 得道ㅣ 몯 니혜리라〈월석 23:9ㄱ〉. 녀나 져그니 數 몯 니혜리니〈월석 25:48ㄱ〉.
주041)
그듸 : 그대는. 그듸+.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042)
모 : 몸을. 즉 자신을. 몸+.
주043)
닐위도다 : 이르도다. 닐위-[致]+도+다. ‘닐위-’는 ‘니-/니르-’의 사동사이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주044)
분비(奮飛) : 날개를 떨쳐 높이 날아오름. 보통 사람이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분발(奮發)헤서 큰일을 이루는 것을 비유한다.
주045)
침륜(沈淪) : ①묻혀 가라앉음. ②묻혀 있어 뜻을 만나지 못한 현사(賢士). ③물속으로 가라앉음. ④침함(淪陷). ⑤숨어 지냄. ⑥질병(疾病)이나 곤고(困苦), 액운(厄運) 등에 빠져 들어감.
주046)
니르와다 : 일으켜. 니르-+왇+아. ‘니르왇-’은 ‘일으키다[起]’의 뜻이다. ‘-왇-’은 강조[힘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능엄경언해〉(1461) 이전에는 ‘-/왇-’이 공존하였다. ¶니르왇- : 이웃 나라히 背叛거든 저희 가 티고 四兵을 니르왇디 아니〈석상 11:36ㄱ〉. 周 宣王ㅅ 다시 니와샤 우리 님긔 라노니 江漢애 피 므를 리고 기리 늘거 病야 잇노라(周宣中興望我皇 灑血江漢身衰疾)「憶昔二首」〈두시 3:63ㄱ〉. 참조; 니르다(도달하다) : 四天王과 淨居天에 니르리 비취시니〈석상 3:25ㄱ〉. 곧마다 글월 요미 숫두워리고 집마다 솔옷 귿 니르리 토미 도다(處處喧飛檄 家家急競錐)「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ㄴ〉.
주047)
라 : 날아. -[飛]+아.
주048)
건내니 : 건너뛰니. 건나-+이#-+니. 참조; ‘건네-’는 ‘건너-+ㅣ(사동접미사)’로 분석된다. ‘건너-’는 ‘걷너-’(능엄 6:22ㄱ)의 비자음동화를 반영한 표기이며, 동의어로 ‘걷나-’(석상19:27ㄴ)형이 있다. ‘건네-’의 어원적 고형 ‘걷네-’(29ㄴ)가 정속언해(1518)에 나타난다. ¶건내- : 다가 男子女人이 이 부텻 일훔 듣면 一百大劫 生死ㅅ 罪 건내리다〈월석 21:135ㄱ〉. 尙書의 功業이 千古ㅅ 사게 건내도소니 荊州 雄히 눌러쇼 내 한아비 니도다(尙書勳業超千古 雄鎭荊州繼吾祖)「惜別 ··· 上都」〈두시 25:48ㄱ〉. 건네- : 이 光이 法이 無始예 始作야 數 혜유메 건네니라〈월석 11:42ㄱ〉. 니 두들근  로 갊고 므리므리예 두두록  건네유믈 放縱히 다(纍纍塠阜藏奔突 往往坡陁縱超越)「沙苑行」〈두시 17:26ㄱ〉.
주049)
수이 : 쉬이. 쉽게. 숩-[易]+이. 정음 초기 문헌에서는 ‘수’로 쓰였다. ¶수 : 사마다  수 니겨 날로 메 便安킈 고져  미니라〈훈언 3ㄴ〉. 수이 : 物 得홀 꼳 아니 大法 證호미 어려운  가비고 옷 밥 수이 어두믄 小果 수이 求호 가비고〈법화 2:197ㄴ〉. 此 時序ㅣ 수이 가 니니라[星霜玄鳥變 身世白駒催]「추일~ 30운」〈두시 3:8ㄱ〉.
주050)
뎌슈믈 : 꺼져 있음을. -+어#디-+어#잇-+우+ㅁ+을.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다(꺼지다) : 그리 降服야 브리 즉자히 거늘〈석상 6:33ㄴ〉. 燭ㅅ 브리 거늘 프른 눈서블 긔엿거니라(滅燭翠眉顰)「江月」〈두시 12:8ㄱ〉. 디- : 帝釋이와 金甁엣 므를 븟니 브리 디거늘〈석상 23:47ㄱ〉. 洛陽이 녜 盜賊의게 디니 되 리 潼關을 侵犯니라(洛陽昔陷沒 胡馬犯潼關)「洛陽」〈두시 5:18ㄱ〉.
주051)
일토다 : 잃도다. 잃-[失]+도+다.
주052)
탈략(脫略) : 경쾌하고 거만해서 얽매이지 않음. 여기서는 어떤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쓰였다.
주053)
영장(郢匠) : ①영(郢)의 뛰어난 목수인 장석(匠石). 그리하여 문학의 거장. ②과거(科擧)의 시관(試官)이나 학문 연마에 힘쓰는 사우(師友)를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54)
태공망(太公望) : 여상(呂尙, ?~?). 주(周)나라 때 동해(東海) 사람.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이며, 자는 자아(子牙)다. 집안이 가난해 위수(渭水)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文王)을 만났다. 문왕이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우리 태공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吾太公望子久矣)”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태공망(太公望) 또는 강태공(姜太公), 여망(呂望)이라고도 부른다. 문왕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치고 주나라를 세운 공으로 제(齊)나라에 봉해졌다. 무왕은 그를 높여 사상보(師尙父)라 했다. 도읍을 영구(榮丘)에 두었는데,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정치를 잘해 많은 사람들이 귀의했다. 주나라에 머물면서 태사(太師)가 되었고, 오후구백(五侯九伯)을 정벌할 권한을 가졌다. 병서(兵書) 『육도(六韜)』는 그가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주055)
반계(磻溪) : 반계(磻谿). 반계(磻磎). 물[水] 이름.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鷄市) 동남쪽에 있다. 전설에 주(周)나라 여상(呂尙)이 문왕(文王)을 만나기 전에 이곳에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056)
반계(磻溪)예셔 : 반계에서. 반계로부터. 磻溪+예+셔. ‘반계(磻溪)’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주057)
낫고 : 낚음을. -[釣]+오+ㅁ+. ‘다’는 ‘다’로도 쓰였다. ¶- : 韓信이 고기 淮水애 낫글〈여사 4:56ㄴ〉. 슬프다 녯 어딘 사미 마 기 외니 志士 고기 낫며 나모 쥬 히 너교 올로 아노라(嗚呼古人已糞土 獨覺志士甘漁樵)「嚴氏溪放歌行」〈두시 25:43ㄴ〉. - : 錦鱗 낛 時節엔 미 긋고믈 우히 蓮蓮야〈금삼 3:60ㄴ〉. 錦水에셔 고기 낛구믈 時로 와 보 民俗 무로 매 서르 어울워 더니라(時觀錦水釣 問俗終相幷)「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22ㄱ〉.
주058)
탈략(脫略)고 : 벗어나고. 脫略+-+과.
주059)
영장(郢匠) : 영(郢) 땅의 장인의. 郢匠+.
주060)
 : 날을. [刃]+.
주061)
자밧도다 : 잡아 있도다. 잡-[操]+아#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하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주062)
운소(雲霄) : ①푸른빛이 나는 구름이 있는 하늘. ②높은 지위를 비유하는 말. ③하늘 또는 임금이 있는 궁궐.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63)
태곤(台袞) : 태보(台輔). 곤(袞)은 옛날 제왕(帝王)이나 상공(上公)이 입었던 예복(禮服)이다.
주064)
삼공(三公) : 관직 이름. 주나라의 경우 사마(司馬)와 사도(司徒), 사공(司空), 또는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가리키며, 전한(前漢) 시대에는 승상(丞相, 大司徒)과 태위(太尉, 大司馬), 어사대부(御史大夫, 大司空)를, 후한(後漢) 시대에는 태위(太尉)와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가리켰다. 삼공이 공동으로 군정(軍政)을 책임지며 최고 의사 결정을 맡았다. 당송(唐宋) 때는 실제 직무가 없었으며, 명청(明淸)시대에는 태사(太師)와 태부(太傅), 태보(太保)의 삼공이 있었다.
주065)
삼태(三台) : ①별 이름. 큰곰자리에 있는 상태(上台)・중태(中台)・하태(下台)를 이름. ②별이름에서 그리하여 천자(天子)의 삼공(三公 중앙정부의 최고위 관직)에 비유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이름. 여기서는 둘 다의 뜻으로 쓰였다.
주066)
곤복(袞服) : ①곤의(袞衣). ②삼공(三公)을 가리키는 말. 삼공도 곤의(袞衣)를 입기 때문에 이를 비유하여 부르는 것이다. ③임금이 입는 예복(禮服)인 곤룡포(袞龍袍)를 일컫는 말. 곤룡(袞龍).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67)
명복(命服) : 각 신분에 맞는 옷. 중국의 고대 복제(服制)에는 사대부를 일명(一命)에서 구명(九命)까지로 나누고 그 명에 따라 빛깔이나 모양을 달리했다.
주068)
공상(公相) : 공경(公卿)이나 재상(宰相)과 같은 현관(顯官)을 가리키는 말.
주069)
구 하히 : 구름의 하늘이. 즉, 궁궐이. ‘운소(雲霄)’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만약 ‘운소(雲霄)’가 궁궐을 뜻한다면 궁궐을 뜻하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시언해』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운소(雲霄)’를 ‘구 하ㅎ’로 직역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주070)
마 : 이미. 16세기 후반이면 ‘이믜〈소언 5:43ㄴ〉․이믯〈소언 5:43ㄴ〉’과 동의관계이다. 때로는 “장차, 이제 곧”을 뜻하기도 한다. ¶太子 羅睺羅ㅣ 나히 마 아호빌(太子羅睺 年已九歲)〈석상 6:3ㄱ〉. 車駕ㅣ 마 宮中에 도라오샷다(車駕已還宮)「收京」〈두시 5:9ㄱ〉.
주071)
핍근(逼近)니 : 핍근하니. 가까우니. 逼近+-+니.
주072)
태곤(台袞)앤 : 상공(上公)들에게는. ‘태곤(台袞)’은 ‘상공(上公)’을 가리키므로 이 구절은 ‘상공들에게는’의 뜻이 된다.
주073)
뉘 : 누가. 누+이. 미지칭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한 것으로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 목적격형은 ‘:눌(상성)’이다.
주074)
친(親)리오 : 친하겠는가? 親+-+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리오 : 뉘 能히 곧 怒야 구지리오(誰能卽嗔喝)「北征」〈두시 1:6ㄴ〉.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2ㄱ〉.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豈徒比清流)「鳳凰」〈두시 17:1ㄴ〉.
주075)
용문(龍門) : 땅 이름. 산서성 하진현(河津縣) 서북과 섬서성 한성시(漢城市) 동북쪽에 있다. 황하(黃河)가 이곳에 이르면 양쪽 언덕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대문처럼 맞서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우문(禹門). 그러므로 용혈 용문(鳳穴龍門)은 선우중통의 집을 가리키며 ‘새 사람들(새로운 문객)이 선우중통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말이다.
주076)
이응(李膺) : 110~169. 후한 영천(穎川) 양양(襄陽) 사람. 자는 원례(元禮)다. 처음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청주자사(靑州刺史)와 어양(漁陽)과 촉군(蜀郡)의 태수(太守)를 역임하고,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로 옮겼다. 나중에 하남윤(河南尹)이 되어 태학생 곽태(郭泰) 등과 교유하면서 환관들의 집정을 반대했다. 명성이 아주 높아져 ‘천하해모이원례(天下楷謨李元禮)’라 불렸다. 선비들이 그와 교유하면 등용문(登龍門)했다고 여길 정도였다. 환제(桓帝) 때 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되어 환관의 횡포를 규탄하다 당고(黨錮)의 화를 당했다. 장양(張讓)의 동생 장삭(張朔)이 야왕령(野王令)이 되어 탐욕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다가 그의 위엄을 듣고는 경사(京師)의 합주(合柱) 속에 숨었는데, 기둥을 쪼개고 체포해 처형했지만 황문상시(黃門常侍)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리면서 감히 말을 못했다. 연희(延熹) 9년(166) 환관들로부터 결당(結黨)한다는 무고를 당해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뒤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영제(靈帝) 초에 대장군 두무(竇武)가 불러 장락소부(長樂少府)로 삼았다. 진번(陳蕃) 등과 함께 환관을 일소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이 누설되자 면직되었다. 당고가 다시 일어나자 투옥된 뒤 옥사했다.
주077)
간항(簡亢) : 간항(簡伉). 사람됨이 고매(高邁)하고 오만(傲慢)함. 청고(淸高)함.
주078)
등용문(登龍門) : 뜻을 펴서 크게 영달(榮達)함을 비유하는 말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본래 용문(龍門)에 올라 용으로 승천함을 뜻하는데, 용문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하진현(河津縣)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나루 이름으로 황하의 물이 이곳을 지날 때 가장 급하며 잉어가 이곳을 오르면 용으로 화하여 승천한다고 한데서 나왔다. 천문동(天門洞).
주079)
문객(門客) : 권세 있는 대가(大家)의 식객(食客).
주080)
봉(鳳) : 봉황새의. 鳳+.
주081)
굼긘 : 구멍엔. 구무/굼ㄱ[穴]+의+ㄴ.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구무/’ 두 어형 가운데 선택된다. 쌍형어. 자음 조사나 휴지 앞에서는 ‘구무’가, 모음의 조사 앞에서는 ‘’이 온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구무 : 如來ㅅ 모매 터럭 구무마다 放光샤〈석상 11:1ㄴ〉. 서근 에 가야미 구무 들워 드렛고(朽骨穴螻蟻)「遣興三首」〈두시 5:33ㄴ〉.  : 그 거부비 나못 굼글 어더 디 아니건마〈석상 21:40ㄱ〉.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 ··· 二十韻」〈두시 5:1ㄴ〉.
주082)
삿기 : 새끼.
주083)
됴코 : 좋고. 둏-[好]+고.
주084)
용문(龍門)엔 : 용문에는. 龍門+에+ㄴ. ‘鳳 굼긘’으로 표현된 ‘봉혈(鳳穴)’과 ‘용문(龍門)’은 모두 ‘선우중통의 집’을 가리킨다.
주085)
소니 : 손이. 손[客]+이. 즉 선우중통의 집에 드나드는 식객(食客)들을 말한다.
주086)
 : 또.
주087)
새롭도다 : 새롭도다. 새+롭+도+다. 15세기 국어에는 ‘새다’와 ‘새롭다’가 모두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새롭다’만 쓰였다. ¶새롭- :  디위 자바 니와니  디위 새롭도다〈남명 상:32ㄱ〉. 司隷ㅅ 버블 처 보니 南陽ㅅ 氣運이 마 새롭도다(司隸章初覩 南陽氣已新)「喜達行在所三首」〈두시 5:5ㄴ〉. 새- : 가미 洒落야 世 모로기 니니 가온 잇 雷霆氣宇ㅣ 새도다〈금삼 3:48ㄴ〉.
주088)
의성(義聲) : 덕의(德義)에 대한 명성(名聲).
주089)
패적(敗績) : ①군대(軍隊)가 궤멸하는 패배를 당함. ②사업이 실패하거나 이익을 놓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90)
준순(逡巡) : ①준순(蹲循). 뒷걸음질 침. 공손히 순종하는 모양. ②사양함. 피함. ③여유 있는 모양. ④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⑤배회함. 머뭇거림. ⑥질질 끎. 미룸.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주090_1)
*〈중간본〉에는 ‘我則敗績而逡不進也ㅣ라’로 되어 있다.
주091)
의성(義聲)에 : 의성에. 의로운 외침에. 의성(義聲)+에.
주092)
해 : 매우. 많이. 하-[多]+이(부사화파생접미사).
주093)
감격(感激)건마 : 감격하지마는. 感激+-+거+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太子ㅣ 니샤 恩惠 모리여마 네 가짓 受苦 위야 노라 시고〈석상 3:35ㄱ〉. 애긋븐 소리를 므더니 너기고져 간마 미 어즈럽건디 마 오랄 니라(欲輕腸斷聲 心緒亂已久)「前出塞九首」〈두시 5:26ㄴ-27ㄱ〉.
주094)
나 : 나는. 나+.
주095)
공적(功績)을 패(敗)고 : 공적을 놓치고. 즉 두보 자신은 공적을 쌓는 것에 실패하였다는 뜻이다.
주096)
스싀로 : 스스로. 스싀+로. ¶그 어미 이 니 東山 딕희오고 스싀로 가 밥 어더 스싀로 먹고 님 밥 보내요 날마다 그리 다가〈석상 11:40ㄴ〉. 글 지매 새 긄句ㅣ 安穩니 스싀로 기리 입논 고 아디 몯노라(賦詩新句穩 不覺自長吟)「長吟」〈두시 3:48ㄴ〉. 참조; 스싀 : 張文節公이 宰相이 외야 스싀 奉養호미 河陽ㅅ 掌書記ㅅ 시졀티 더니〈내훈 3:57ㄴ〉.
주097)
머므러 : 머물러. 머믈-[停]+어. ¶머믈- : 부톄 舍衛國로 오 길헤 머므르 지비라〈석상 6:23ㄴ〉/ 鑾輿ㅣ 鳳翔애 머므르시니 同谷ㅅ 올히 목티 외얫도다(鑾輿駐鳳翔 同谷爲咽喉)「送韋 ··· 判官」〈두시 22:37ㄴ〉.
주098)
잇노라 : 있노라. 잇-[有]++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099)
도원(途逺) :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힘은 다했는데 계책은 바닥이 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즉 인생의 길이 멀다. 자기의 인생길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다. 주석에는 ‘途逺은 喻衰老다’로, 언해는 ‘길히 머니’로 되어 있다.
주100)
천문(天門) : ①천기(天機)의 문. 마음[心]을 가리킨다. ②코[鼻]나 입[口] 또는 천정(天庭)을 가리키는 말. ③천궁(天宮)의 문. ④황궁(皇宮)의 문. ⑤별[星] 이름. 28수 가운데 각수(角宿)에 속하는 쌍성(雙星)으로 현재 처녀자리의 일부이다.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주101)
길히 머니 : 길이 머니. 길ㅎ+이 멀-[遠]+니. 주석에는 ‘도원(途遠)’을 ‘쇠로(衰老)’라고 하였지만, 언해에서는 ‘길히 머니’로 하였다. 이와 같이 『두시언해』에서 주석과 언해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언해자가 주석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언해를 하면서 해당 구의 주석을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두시언해』의 언해자는 주석의 내용을 참조하면서도 언해에서는 직역을 선호하였으며 고유명사 등도 적극적으로 직역하는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주102)
어드러 : 어디로. 15세기 국어의 ‘어드러’는 ‘어디로’와 ‘어떻게’의 뜻이 있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모두 ‘어디로’의 뜻으로만 쓰였다. ¶어드러(어떻게) : 지비 가며디 몯니 어드러 長常 이 盲眼이 供養려뇨〈월석 22:52ㄴ〉. 어드러(어디로) : 그듸 어드러셔 오시니〈석상 23:40ㄴ〉. 消渴ㅅ 病 모 어더러 가리오  氣運ㅣ 나니 히미  업놋다(病渴身何去 春生力更無)「過南 ··· 庭湖」〈중간두시 2:19ㄱ〉. 참조; 어들 : 내 이제 부텻 威神과 仁者ㅅ 무루믈 바다 어들 니르노니〈월석 21:81ㄴ〉.
주103)
가고져 리오 : 가고자 하겠는가. 가-+고#지-+어 -+리+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고져 - : 俱夷 덴 갓가 가고져 실〈석상 3:15ㄱ〉. 이 님금 辱도외이 겨샤 놀라  타 가 盜賊을 티고져 며 나 늘구믈 러 리고 갈 혀나 盜賊을 버히고져 니라[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주104)
하히 : 하늘이. 하ㅎ[天]+이. ‘하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05)
노니 : 높으니. 높-[高]+니.
주106)
닐오미 : 이르기가. 말하기가. 니르-[陳]+오+ㅁ+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107)
유자(孺子) : ①유아(幼兒). 아동(兒童). 어린 아이. ②옛날에 천자(天子)나 제후(諸侯), 세경(世卿)을 계승한 사람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08)
향부(鄉賦) : 향공(鄕貢). 당나라 때 학관고시(學館考試)를 거치지 않고 주현(州縣)의 추천을 받아 과거에 응시한 사자(士子)를 일컫는 말.
주109)
향거(鄕擧) : 향리(鄕里)에서 선발한 인재(人才).
주110)
호 : 배움은. 호-+오+ㅁ+.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學堂 글 호 지비라〈석상 3:7ㄴ〉. 蹉跎야 도혀 거르믈 호미로소니 感激요 소리 알리예 잇니라(蹉跎翻學步 感激在知音)「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7ㄱ〉.
주111)
져믄 : 어린. 젊은. 졈-[少]+은. 15세기의 ‘졈다’는 ‘어리다’와 ‘젊다’의 뜻이 있다. ¶(젊다) :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석상 3:17ㄱ〉. (어리다) : 孤 졈고 아비 업슬 시라〈내훈 2:88ㄴ〉. 單父ㅣ 기리 閑暇호미 하니 河陽 眞實로 나히 졈도다(單父長多暇 河陽實少年)「夏夜 ··· 聯句」〈두시 23:53ㄴ〉.
주112)
아 : 아이. 아[童]+∅.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주113)
토 : 같으되. 같되. -#+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114)
올셔 : 고을에서. 올ㅎ++셔.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석상 9:40ㄱ〉. 믌 올핸  蜃氣 무텻거 싣나모 션 두들게 프른 묏 그티 重疊도다(水鄉霾白蜃 楓岸疊靑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ㄱ〉.
주115)
지 오맨 : 지어 옴엔. 짓-[作]+어#오-+오+ㅁ+애+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지어’로 되어 있다.
주116)
아다온 : 아름다운. 아+답-+오+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美 아다 씨니 륫 좃 中에  잘 씨라〈석상 13:9ㄱ〉. 내 사미론 디 性이 偏僻야 아다온 긋 句를 耽야 말 사미 놀라디 아니리어든 주거도 마디 아니다니(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江上 ··· 短述」〈두시 3:31ㄱ〉.
주117)
소니로라 : 손이도다. 손[客]+이+도+다.
주118)
너기다라 : 여기더라. 여기-+더+오+라.
주119)
조조(晁錯) : 기원전 200~기원전 154. 성을 조(鼂)라고도 쓴다. 전한 영천(潁川) 사람.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형명학(刑名學)을 익혔다. 문제(文帝) 때 관직에 나아가 태상장고(太常掌故)에 임용되었다. 황명으로 진(秦)나라의 박사 복생(伏生)에게 사사하여 『상서』를 배웠다. 태자가령(太子家令)에 올라 태자[景帝]의 신임을 받아 지낭(智囊)으로 불렸다. 중대부(中大夫)로 옮겼다. 상서하여 흉노(匈奴)에 대한 대책으로 북변(北邊) 방비를 위한 둔전책(屯田策)을 주장했고, 재정적 뒷받침으로 곡물 납입자에게는 벼슬을 주는 매작령(賣爵令)을 주장하여 채용되었다. 제후의 영지를 삭감하도록 주장했는데, 경제(景帝)에 의해 채용되었다. 이 때문에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이 일어나자 정적 원앙(袁鉤) 등의 회유책으로 장안에서 관복(官服)을 입은 채 참형되었다. 저서에 『조조(晁錯)』가 있었지만 없어졌고, 편집본이 전한다.
주120)
한 문제(漢文帝) : 기원전 202~기원전 157. 유항(劉恒). 전한의 제5대 황제(재위, 기원전 180-기원전 157).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넷째 아들이다. 처음에 대왕(代王)에 책봉되어 중도(中都)에 도읍했다가 조정을 전단(專斷)하던 여씨(呂氏)의 난이 평정된 뒤 태위(太尉) 주발(周勃)과 승상 진평(陳平) 등 중신의 옹립으로 제위에 올랐다.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감해주는 등 백성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농경을 장려했다. 경제가 점차 회복되어 사회는 전반적으로 안정 국면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여씨의 난 진압에 공적이 있었던 고조 이후의 공신(功臣)을 중용하는 한편 가의(賈誼)와 조착(晁錯) 등 새 관원도 두각을 나타냈다. 또 선거(選擧)에 의해 지방의 유지(有志)가 관원으로 등용되었다. 한편 가의와 조착 등이 건의한 제후왕(諸侯王)의 영지 삭감과 억상중농(抑商重農), 대흉노강경론 등은 전면적으로 채택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한 해결은 경제(景帝)와 무제(武帝) 때 실현되었다. 고조의 군국제(郡國制)를 계승하고, 전조(田租)와 인두세(人頭稅)를 감면했다. 가혹한 형벌을 폐지했고, 흉노에 대한 화친(和親) 정책 등으로 민생 안정과 국력 배양에 힘을 기울였다. 노학(老學)에 경도되어 이에 의한 간이(簡易)의 정치를 펼치고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를 이은 경제(景帝)와 함께 ‘문경지치(文景之治)’로 불린다. 시호는 효문황제(孝文皇帝)다. 23년 동안 재위했다.
주121)
대책(對策) : 문체(文體)의 명칭. 중국 한(漢)나라 때 관리 등용 시험에서 주로 실제 정사(政事)와 관련한 내용이나 유교 경전의 의미와 관련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문제를 내어 응시자(應試者)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이에 답하게 한 것이다. 책(策)에는 임금이 정책(政策)을 묻는 제책(制策)과 관련, 부처가 정책을 묻는 시책(試策), 그리고 사대부가 개인적인 정견(政見)을 올리는 진책(進策)의 세 가지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과거 제도의 실시에 따라 문과(文科)의 전시과목(殿試科目)의 하나로써 이를 실시했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주122)
극선(郄詵) : ?~?. 서진(西晉) 제음(濟陰) 단보(單父) 사람. 자는 광기(廣基)다. 박학했고, 뜻이 컸다. 진무제(晋武帝) 태시(泰始) 중에 현량직언(賢良直言)으로 천거를 받아 책문(策文)이 높은 평가를 받아 의랑(議郞)에 오르고, 거듭 승진하여 거기종사중랑(車騎從事中郞)으로 옮겼다. 이부상서(吏部尙書) 최홍(崔洪)이 천거해 좌승(左丞)이 되었는데, 재직하자 어떤 일로 최홍을 탄핵하니 최홍이 원망하니 흔들리지 않고 물리쳤다. 옹주자사(雍州刺史)에 올랐는데, 무제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계림의 한 가지이자 곤산의 조각 옥과 같다(猶桂林之一枝 昆山之之片玉)”고 대답했다. 재임하면서 위엄을 가지고 명확하게 판단하여 명성과 영예를 크게 누렸다.
주123)
시러곰 : 능히. 원문의 ‘得’에 대한 번역이다. ‘시러곰’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다른 문헌에서는 주로 ‘시러’가 사용되었다. ‘시러’는 ㄷ불규칙 용언인 싣-[得]+어(연결어미). 어간이 ‘싣-’임은 “得은 시를 씨라”(정음 2ㄱ)와 “福 모다 싣게 호리라”(석상 24:10) 등에서 확인된다. 어간이 ‘실-’이었다면 ‘成은 일 씨라’(정음 13ㄱ)처럼 ‘得은 실 씨라’로 표기되어야 한다. ¶시러곰 : 두 낫 밥도 나 過分토소니 네히 아 金 시러곰 相近호라(應過數粒食 得近四知金)「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6ㄴ〉. 참조; 시러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勾漏令을 머리 붓그리노니 丹砂 무로 시러 디 몯노라(遠慚勾漏令 不得問丹砂)「爲農」〈두시 7:5ㄴ〉.
주124)
조조(晁錯)와 디 : 조조와 같지. 晁錯+와 갇-++디. 15세기 국어의 ‘갇다/다’는 ‘-와’는 물론 ‘-이’를 지배하기도 한다.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석상 3:17ㄱ〉. 나랏 社稷ㅣ 이제 이 니 武로 禍亂 安定호믄 公ㅣ 아니라 뉘리오(國之社稷今若是 武定禍亂非公誰)「徒步歸行」〈중간두시 1:10ㄴ〉. -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 :4ㄱ〉.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  오 荊州 巫峽에 와 누엇노라(不復有顏鮑 繫舟卧荊巫)「遣懷」〈중간두시 2:47ㄴ〉.
주125)
몯호니 : 못하니. 몯#-+니.
주126)
극선(郄詵)의게 듀라 : 극선에게 못 미친다. 극선에게 떨어진다. 극선+의+게 -+어#디+우+라. ‘우’는 이 문장의 주어가 ‘두보’임을 말한다. ¶다(눈을 뜨다) : 누늘 거나 거나〈월석 8:22ㄱ〉. 다(물에 뜨다)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영가 서:5ㄴ〉. 다(세상을 뜨다) : 이틄나래 아비 안고 니라〈삼강런던 효:8〉.
주127)
-의게 듀라 : -로부터 (질이) 떨어진다.
주128)
한묵(翰墨) : 문학에 관한 일인 문한(文翰)과 필묵(筆墨), 곧 문필(文筆)을 일컫는 말.
주129)
송균(松筠) :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하여 절조(節操)가 굳고 맑은 것을 비유한다.
주130)
혜아료 : 헤아림에. 혜아리-+오+ㅁ+. 즉 어떤 일에 대한 계책에 대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혜아료미’로 되어 있다.
주131)
소졸(踈拙) : 거칠고 성글며 거칠고 서투름. 소략하고 졸렬(拙劣)함.
주132)
소졸(踈拙)니 : 소졸하니. 疏拙+-+니. 즉 꼼꼼하지 못하고 서투르니. ‘소졸(踈拙)다’는 ‘옹졸(壅拙)하다’의 뜻이다.
주133)
글월 : 글하는. 글 짓는. 글월+-+.
주134)
다신가 : 탓인가. 닷+이+ㄴ가. ¶이 因緣을 브터 意와 意識괘 轉 다신  교려 야 닐오 븓다 홈 히라〈월석 11:71ㄴ〉. 萬物이 제 私情 다신  나토시니〈법화 3:3ㄱ〉. -ㄴ가 : 마 果 得가 疑心 외어늘〈능엄 3:115ㄴ〉. 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ㄴ〉. -ㄹ가 : 그 夫人이 怨望고 제 이리 現露가 야〈석상 24:49ㄴ〉. 치 뷔면 붓그러울가 저허  낫 도 머믈워 두고 보노라(囊空恐羞澀 留得一錢看)「空囊」〈두시 3:25ㄱ〉. -ㄹㆆ가 : 太子ㅣ 出家가 저샤〈석상 3:4ㄴ〉.
주135)
디날 : 지나므로. 지나니. 디나-+ㄹ. ¶-ㄹ : 三十二相 八十種好로 며 겨실 端正코 싁싁샤미오〈월석 7:49ㄴ〉. 귀 머글 모로매 字 어 뵈니 마리 뎌니 빈혀 이긔디 몯놋다(耳聾須畫字 發短不勝篦)「水宿 ··· 群公」〈두시 3:19ㄴ〉.
주136)
솔와 대와 : 솔과 대를. 15세기 국어의 명사구 연결에서는 접속조사 ‘-와/과’가 마지막 명사에도 연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주137)
노라 : 생각하노라. #-++오+라. 15세기 국어의 ‘사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생각하다’의 뜻으로 쓰였는데 원문의 ‘憶’에 대응한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138)
자신(紫宸) : ①궁궐(宮闕) 이름. 당송(唐宋)시대 때 황제가 신하를 접견하고 외국사자(使者)의 조현(朝見)을 받던 궁전. 자신전(紫宸殿). ②제왕. 또는 제왕의 자리.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39)
예부(禮賦) : 정치 예의에 관한 내용으로 쓴 부(賦).
주140)
대조(待詔) : 조칙(詔勅)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천자의 비답이나 응화(應和)하는 문장 따위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漢)나라 때 징사(徵士)로서 정관(正官)이 없는 사람은 대조를 맡았는데, 그중 뛰어난 사람은 금마문에서 대조를 맡았다고 한다. 동중서가 「천인책」으로 무제(武帝)에게 인정을 받아 처음에는 대조를 맡았다가, 외직으로 나가 강도상(江都相)이 되었다.
주141)
집현원(集賢院) : 관서 이름. 당 개원(開元) 13년(725) 집선전(集仙殿) 여정서원(麗正書院)을 집현원으로 개칭하고, 학사(學士), 직학사(直學士), 시독학사(侍讀學士), 수찬관(修撰官)을 설치하여 경적(經籍)을 간집(刊緝)하도록 했다. 재상 1명을 학사지원사(學士知院事)로, 상시(常侍) 1명을 부지원사(副知院事)로 두었다. 송대에는 소문관(昭文館), 사관(史館), 집현원을 설치하고 이를 3관(館)이라 불렀으며, 역사 편수와 서적 교정의 일을 맡게 했는데 모두 다른 관직을 겸했다. 원대에도 설치했지만 제조학교(提調學校)를 관리하고, 도교(道敎), 음양, 제사 등에 관한 일을 다루었다.
주142)
지 : 지어. 짓-[作]+어. ‘짓다’는 다의어로서 ‘집을 짓다, 글을 짓다, 행위를 하다, 농사 짓다, 물건을 만들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중간본〉에는 ‘지어’로 되어 있다. ¶(집 짓다) : 녜 貪欲이 하거늘 부톄 不淨觀 짓게 야〈능엄 5:35ㄱ〉. 므렛 고 굴을 화 보라왯고 집 짓 져비  어두믈 뵈왓비 놋다(水花分塹弱 巢燕得泥忙)「乘雨 ··· 弟宅」〈두시 8:44ㄴ〉. (글 짓다) : 製 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 1ㄱ〉. 晩節에 漸漸 글 짓논 法을 仔細히 노니(晚節漸於詩律細)「遣悶 ··· 曹長」〈두시 3:48ㄱ〉. 제 지 詩集을 보니(觀其著詩集)「遣興五首」〈두시 3:58ㄴ〉. (행위를 하다) : 제 보아 아론 젼로 외야 현마 모딘 罪業을 짓디 아니리니〈석상 9:31ㄱ〉. 올 고파 도라가 짓노라(今年強作歸)「巫山縣에~留于屋壁노라」〈두시 23:18ㄴ〉. (농사 짓다) : 首陀 녀름 짓 사미니(首陀 農夫也ㅣ니)〈능엄 3:88ㄱ〉. (만들다) :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월석 4:18ㄴ〉. 고지 더우니  짓 버리 수놋다(花暖蜜蜂喧)「弊廬遣興奉寄嚴公」〈두시 21:6ㄱ〉.
주143)
받와 : 받들어. 받-++아. 원문의 ‘獻’의 번역이다.. ‘받-’은 ‘바치다’[獻]의 뜻으로도 쓰이고 ‘받다’의 높임말로도 쓰인다. ¶즈믄  長存샬 藥이라 받노다〈악학 동동〉. 王이 寶冠 (→)라 받시며〈석상 3:5ㄴ〉. 丈夫 나라해 모 받오 盟誓홀 디니 애와텨 호  엇뎨 두리오(丈夫誓許國 憤惋復何有)「前出塞九首」〈두시 5:27ㄱ〉.
주144)
님 : 임금의. 님금+ㅅ.
주145)
권고(眷顧) : 정(情)을 두고 돌봄. 애고(愛顧). 권고(睠顧).
주146)
버므러 : 버물어. 둘러싸여. 『두시언해』에서 ‘버믈다’는 보통 ‘繞’의 번역이지만 여기는 ‘紆’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는 ‘버다’의 예도 있는데 오식이 아니라면 유일한 예가 된다. ‘버믈다’와 유사한 어휘로 ‘두르다’도 있다. ¶부텻긔 닐굽  버므러 金盖 외오〈월석 7:30ㄱ〉. 오히려 네 져근 소남 너추 프리 수이 버므러쇼 思念노니(尙念四小松 蔓草易拘纏)「寄題江外草堂」〈두시 6:37ㄱ〉. 보다 : 도로혀 우믌 欄干애 보라 낫나치 더으고(却繞井欄添箇箇)「見螢火」〈두시 17:38ㄴ〉. 두르다 : 바 菜蔬ㅣ 지븨 둘엇 히로다(畦蔬繞舍秋)「秋日 ··· 十束」〈두시 16:72ㄴ〉. 이러멧 菜蔬ㅣ 새 지븨 둘엣니(畦蔬繞茅屋)「園」 〈두시 15:14ㄱ〉. 치운 虛空 머리 우희 휫둘엇도다(寒空繞上頭)「西閣口號呈元二十一」〈두시 14:22ㄱ〉.
주147)
예 : 사이에. [間]+예.
주148)
뵈오라 : 뵈었다. 뵈-[見]++오+라. ‘--’은 선행형태 및 후행형태에 따라 ‘--, --, --, --, --’ 등으로 나타나는데, ‘--, --, --’은 각각 선행형태의 말음이 ‘ㄱ, ㅂ, ㅅ, ㅎ. ㄴ, ㄹ, ㅁ, 모음. ㄷ, ㅈ, ㅊ’이면서 후행형태가 자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나고, ‘-/오-, -/오-, -/오-’은 후행형태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이때의 ‘ㅸ’은 〈능엄경언해〉(1461)부터 모두 ‘오/우/ㅇ’로 바뀌었다. ‘오’가 있으므로 이 문장의 주어는 두보 자신임을 알 수 있다. ¶-- : 東西옛 두 雙이 어울오 南北엣 두 雙이 어우러 가지 드리워 如來 둡고(其娑羅林東西二雙合爲一樹 南北二雙合爲一樹) 〈석상 23:17ㄴ-18ㄱ〉. 時節이 危難 저긔 님 恩私 갑고져 야 늘거도 能히 마디 몯노라(時危思報主 衰謝不能休)「江上」〈두시 3:39ㄴ〉. -/오- : 宰 다릴씨오 相 도씨니 벼슬 노 臣下ㅣ 님그믈 돕 百官 다릴 宰相이라 니라 〈석상 9:34ㄴ〉 /-오- : 樗 散材로 오히려 님금 恩慈 닙오라(樗散尙恩慈)「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ㄴ〉. -- : 부텻 舍利로 七寶塔 셰논 도 보리러니(以佛舍利起七寶塔) 〈석상 13:14ㄴ〉. 구틔여 玄圃애 뫼디 몯나(不必陪玄圃)「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ㄱ〉. -/오- : 得大勢여 ··· 恭敬 尊重 讚嘆 여러 가짓 됴 根源을 시므고 後에  千萬億 佛을 맛나(得大勢 ··· 供養如是若干諸佛 恭敬尊重讚歎種諸善根 於後復值千萬億佛) 〈석상 19:33ㄴ-34ㄱ〉.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扈聖崆峒日)「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 : 듣고 깃 須陀洹 일우니라(聞法歡喜便染聖法 成須陀洹)〈석상 6:21ㄴ〉. -/오- : 이 衆生히 諸佛 法 듣 乃終에 다 一切 種智 得리니(是諸衆生 從佛聞法 究竟皆得一切種智) 〈석상 13:50ㄴ〉. 百官이 신 바사 天王 졷와 가니라(百官跣足隨天王)「憶昔二首」〈두시 3:61ㄱ〉.
주149)
제언(諸彥) : 여러 언사(彦士). ‘언사’는 현인(賢人) 또는 재사(才士)를 말한다.
주150)
그 저긔 : 그 때에. 그 적+의.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원래의 ‘ 모’에서 교정된 것이다.
주151)
언사(彦士) : 현인(賢人)이나 재사(才士).
주152)
조차 : 좇아. 따라. 좇-[隨]+아. 15세기의 ‘조차’는 서술어와 보조조사로 쓰였다. 15세기 당시에는 이 같은 환경에서 ‘ㅅ’ 종성은 ‘ㅅ[sʾ]’로 발음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졷와’〈금강 1ㄴ〉, ‘조와’〈능엄 1:4ㄱ〉 등처럼 표기된 예를 참고하면 이 환경에서 음절말 ‘ㅅ’은 [t ̚]로 발음되는 경향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潛龍 未飛예 北人이 服事 弓劍 고 左右에 좇니〈용가 55장〉. 上慢 사미 信야 降伏야 좃며〈월석 17:75ㄱ〉. (서술어)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 3:4ㄴ〉. 져머셔 주그니 무두므란 潘岳 이 조차 고 바라온 몸 扶持호 鄧林을 얻노라(瘞夭追潘岳 持危覓鄧林)「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7ㄱ〉. 셕륫  그 우희 브텨 리  밤 재민 불휘조차 절로 디리라〈구간 3:17ㄴ〉.
주153)
모다 : 모두. ¶太子 뵈더시니 모다  出家시면 成佛시고 지븨 겨시면 輪王이 외시리로소다〈석상 3:1ㄱ〉. 群公이 모다 힘니 님 혜아리샤 기피 머믈워 시놋다(群公紛戮力 聖慮窅裴佪)「秋日 ··· 三十韻」〈두시 3:10ㄴ〉.
주154)
사오나온 : 못난, 미천한, 저급한. 사오납-[劣]+오+ㄴ. 초기 정음 문헌에서는 ‘나오나’으로 표기된다. 〈능엄경언해〉(1461)의 ‘ㅸ⇒오/우/ㅇ’로 교체되기 전에는 ‘사오나’식으로 표기함.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사오납- : 劣은 사오나 씨라〈월석 17:57〉. (나쁘다) :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 3:2ㄱ〉. 二乘이 미 사오나와 이 法 이긔디 몯호 가비시니〈법화 2:62ㄴ〉. 王生이 내의 비치 사오나오 怪異히 너기니 對答야 닐오 벼개예 굽스러 어려우미 얘라(王生怪我顏色惡 答雲伏枕艱難遍)「病後 ··· 贈歌」〈두시 3:50ㄱ〉.
주155)
조 : 재주.
주156)
펴 : 폄을. 펴-[伸]+오+ㅁ+.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훈언 2ㄴ〉. 凶 兵잠개로 農器 디오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凶兵鑄農器 講殿闢書帷)「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ㄱ〉.
주157)
뵈야로 : 바야흐로. 15세기 참조; 보야로. 보야호로. 보야흐로. 뵈야로, 뵈야호로. 뵈야흐로. 15세기 문헌에는 ‘뵈야로’와 ‘보야로’가 쓰였고, 16세기 문헌에는 ‘보야호로, 뵈야호로, 보야흐로, 뵈야흐로’가 주로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보야로’와 ‘뵈야로’가 쓰였다. ¶뵈야로 : 뵈야로 敎化 기샤 커시 諸梵이 마치 請오 世와 道ㅣ 서르 니러 機緣이 미 感 씨라〈법화 1:235ㄱ〉. 부픈 뵈야로 祭 鬼神 맛고 彈子 쇠로기  새 디놋다(鼓迎方祭鬼 彈落似鴞禽)「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4ㄴ〉. 보야로 : 보야로 般若 닐오려 샤 일로 여러 뵈샤〈금삼 1:30ㄴ〉. 로 비록 뷔여 니나 衰老 病은 보야로 져기 우리로다(草茅雖薙葺 衰疾方少寬)「營屋」〈두시 6:46ㄱ〉.
주158)
엿보다라 : 엿보았다. 엿보-[窺]+더+오+라. ‘오’로 인해 이 문장의 주어가 두보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주159)
병균(秉鈞) : ①국가의 중요한 직책, 또는 그를 맡은 벼슬아치. 여기서의 균(鈞)은 저울(형석(衡石)을 뜻하여 국사(國事)의 경중(輕重)을 재는 것을 뜻한다. 균축(鈞軸). 병축(秉軸). 홍균(洪鈞). ②권력이나 정권(政權)을 잡음. 병정(秉政).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60)
이림보(李林甫) : ?~752. 당나라 종실(宗室). 현종 때의 재상. 어릴 때 이름은 가노(哥奴)고, 호는 월당(月堂)이다. 이사회(李思誨)의 아들이다. 음률을 잘 했다. 국자사업(國子司業)을 거쳐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올랐고, 형부와 이부의 시랑(侍郞)을 역임했다. 예부상서와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을 지냈다. 사람 됨됨이가 겉과 속이 달라 친한 듯이 보이지만 갖은 음모와 중상모략을 일삼아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 불렸다. 교활하고 권술(權術)에 능했다. 환관이나 비빈들과 친해 황제의 동정을 일일이 살피고 주대(奏對)에 응해 유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조정에 있는 19년 동안 권력을 장악해 멋대로 정책을 시행해 사람들이 눈을 흘기며 꺼렸다. 만년에는 성기(聲妓)에 빠져 희시(姬侍)가 방마다 가득했다. 죽은 뒤 태위(太尉)와 양주대도독(揚州大都督)에 추증되었다.
주161)
애를 : 애를. 창자를. 애[腸]+를.
주162)
헐어 : 헐어. 부수어. 파괴하여. 헐-[破]+어. ¶헐- : 尸羅 아니 허러도 軌則을 헐며〈석상 9:13ㄴ〉. 해 이셔셔 오직 여 사 心力으로 헐에 니 사게 干犯호미 므슷 이리어 그믈로 求니오(在野只敎心力破 干人何事網羅求)「見王監兵馬使호니~請余賦詩二首다」〈두시 17:11ㄴ〉.
주163)
알 : 앞의. 앒[前]++ㅅ. ‘앒〉앞’과 같은 변화는 〈소학언해〉(1586)에 처음 보인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앒 : 알 디나샤 도기  몰라 몯 나니〈용가 60〉.  닐굽 校尉ㅅ 알 요라(心蘇七校前)「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ㄴ〉. 앞 : 뵈야호로 그 져머신 제 父母ㅣ 왼녁 겯로 잡고 올녁 겯로 들며 아프로 옷기슬 긔고 뒤후로 옷기 글잇그러〈소학언해 5:70ㄴ〉.
주164)
맛나니 : 만나니. 맛-+나-+니.
주165)
  : 꾀를 낼. [策]#-+ㄹ. ¶곧 뎘 돈 갑디 아니홀  야〈관음경 12ㄴ〉. 블려 니러 風雲際會를 마치 맛나니 업더듀믈 더위자보매 비르서  잘 호믈 알리로다(徵起適遇風雲會 扶顚始知籌策良)「洗兵馬」〈중간두시 4:18ㄴ〉.
주166)
사미 : 사람이. 사+이.
주167)
올로 : 홀로. 올+로. ¶올 : 나 올어미라〈내훈 서:7ㄴ〉. 믌 玉陛예 뮈니 올 鶴이 외오  번 소리니라(滄洲動玉階 寡鶴誤一響)「故著 ··· 公虔」〈두시 24:38ㄱ〉. 올로 : 이 길헤 올로 녀시니〈월석 22:7ㄱ〉. 生涯ㅣ 올로 다봇 올마 니 호라(生涯獨轉蓬)「投贈 ··· 二十韻」〈두시 5:43ㄱ-ㄴ〉.
주168)
균형(鈞衡) : ①인재를 헤아려 뽑음. ②정치를 공평하게 한다는 뜻으로, 재상을 일컫는 말. ③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일.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69)
자밧더라 : 잡았다. 잡-+아#잇-+더+라. 여기서는 ‘자밧-’으로 표기되지만 ‘자바 잇-’이나 ‘자뱃-’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자바 잇- : 그 城 네  닐굽  모새  毒龍이 서르 얼거 머리 겯딜어 城門 자바 잇더라〈월석 22:43ㄱ〉. 第八識은 礠毛石이 야 一刹那ㅅ 예 믄득 더위 자바 잇거든   根塵 等 種이 제 識中을 브터셔  現行 낼〈월석 11:52ㄴ〉. 자밧- : 다 올 와셔 나리 虛히 가 놀라고 同心 사 자밧다가 노호 앗기노라(異縣驚虛往 同人惜解攜)「水宿 ··· 群公」〈두시 3:20ㄴ〉. 桑落酒를 안자 여러셔 菊花ㅅ 가지 와 자밧도다(坐開桑落酒 來把菊花枝)「九日楊奉先會白水崔明府」〈두시 11:27ㄴ〉. 자뱃- : 그 아노니란 리고 자뱃더니 아나 뫼로 거〈내훈 3:48ㄱ〉. 뫼콰 괘 그륜 이플 더위자뱃고(山河扶繡戶)「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7ㄱ〉.
주170)
기각(忌刻) : 꺼림을 당해 깎여져 나감.
주171)
아쳐러호 니부니 : 싫어함을 당하니. 아쳗-+어#-+오+ㅁ+ 닙+우+니. ‘아쳗다’는 ‘ㄷ’불규칙 용언으로 ‘싫다’의 뜻인데 여기에 ‘-어 -’가 결합하여 ‘싫어하다’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호 닙다’는 한문에서 ‘蒙, 被’ 등 피동문에 쓰인 본동사를 언해할 때 쓰이는 것인데, 여기서는 ‘霑忌刻’을 의역하여 사용한 것이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아쳗- : 다가 사미 苦 맛나 老病死 아쳗거든〈법화 1:71ㄴ〉. 집 안해셔 기 벌어지와 가야미와 머구믈 아쳗고 기 여 도로혀 모 맛날 고 아디 몯호라(家中厭雞食蟲蟻 不知雞賣還遭烹)「縛雞行」〈두시 17:14ㄴ〉. 아쳐러- : 곧 憍慢며 대  니와다 아쳐러 게으른 들 머거〈월석 17:14ㄱ〉. 늘구메 人世 슬코 두루 이녀셔 甲兵을 아쳐러노라(衰老悲人世 驅馳厭甲兵)「奉送二 ··· 郴州」〈두시 8:63ㄱ〉. -/을 닙- : 오라건 劫으로셔 부텨 接引샤 닙〈석상 11:8ㄴ〉. 䟽拙야 林泉에 머므러 쇼 닙고 一生애 술와 그릐 欺弄호 맛니럿노라(拙被林泉滯 生逢酒賦欺)「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ㄱ〉.
주172)
더욱 : 더욱. 〈중간본〉에는 ‘더옥’으로 되어 있다.
주173)
슬프도다 : 슬프도다. 슳-+브+도+다.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주174)
우로(雨露) : 비와 이슬. 비와 이슬이 만물을 화육(化育)하게 하는 것 같은 은택. 큰 은혜.
주174_1)
*〈중간본〉에는 ‘傾雨露辰’으로 되어 있다.
주175)
사괴요미 : 사귐이. 사괴-[交]+오+ㅁ+이.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提婆達多ㅣ 阿闍世王과 사괴더니〈월석 22:69ㄴ〉. 漸漸 사괴야 노 사미 그추믈 깃노니 幽隱히 사로매 일후믈 디 아니노라(漸喜交遊絕 幽居不用名)「遣意二首」〈두시 3:26ㄱ〉.
주176)
모 : 모든. 몯-[集]+. ¶몯- : 王이 붑 텨 조 겻 사 다 모라 시고〈석상 3:12ㄱ〉. 盛 이리  모니 이 지븐 엇뎨 즈믄  니리오(盛事會一時 此堂豈千年)「陳拾遺故宅」〈두시 3:65ㄱ〉.
주177)
콰 恩惠 : 땅과 은혜는. ㅎ+과 恩惠+. 15세기 국어에서 명사구 나열에 접속조사가 쓰일 경우 마지막 명사구에도 접속조사가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마지막 명사구인 ‘恩惠’에 접속조사가 생략되었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78)
기우리시 : 기울이시는. 기울-+이+시+. ¶기울- : 須彌山도 어루 기울의 려니와〈석상 9:27ㄱ〉.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 빗나 흐르 벼리 솟  도다(回回偃飛盖 熠熠迸流星)〈두시 5:48ㄱ〉「揚旗」〈두시 5:48ㄱ〉. 기우리- : 이슘과 업숨과 둘히 업수 서르 기우리 業이 그초 니시니〈능엄 9:37ㄱ〉. 니거 드로니 雲安縣엣 麴米春이 아야라  盞 기우리면 곧 사미 醉니라(聞道雲安麴米春 纔傾一盞卽醺人)「撥悶」〈두시 3:32ㄱ〉.
주179)
로다 : 때이도다. [時]+이+도+다. ¶ :   계록 아니 받〈석상 11:40ㄴ〉.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 灩澦예 正히 사 로다(扈聖崆峒日 端居灩澦時)「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주180)
조만(早晚) : 지금도 ‘언제’라는 뜻으로 쓴다.
주181)
공손홍(公孫弘) : 기원전 200~기원전 121. 전한 치천(菑川) 설현(薛縣) 사람. 자는 계(季) 또는 차경(次卿)이다. 젊었을 때 옥리(獄吏)로 있었는데, 죄를 져 쫓겨났다. 집안이 가난해 바닷가에서 돼지를 치며 살았다. 마흔 살 즈음하여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익혔다. 무제(武帝) 건원(建元) 원년(기원전 140) 현량(賢良)에 추천되어 박사(博士)에 올랐다가 흉노(匈奴)의 일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원광(元光) 5년(기원전 130) 현량대책(賢良對策)에 제일(第一)로 뽑혀 박사가 되고, 내사(內史)와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역임했다. 강력하게 간언(諫言)하기보다는 무제의 뜻을 살펴 의사를 표현했고, 문자 수식을 적절하게 활용해 관료의 길을 걸으면서 유술(儒術)을 알맞게 응용하여 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원삭(元朔) 5년(기원전 124) 승상이 되고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다. 최초의 승상봉후(丞相封侯)였을 뿐만 아니라 포의(布衣)에서 승상으로 봉작까지 받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검소하게 살아 집안에 재산을 남겨두지 않았다. 성격이 겉으로는 관대했지만 속으로는 시기가 많아 틈이 벌어진 사람이 있으면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면서 몰래 보복을 했다. 나이 여든 살에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호무생(胡毋生)에게 춘추공양학을 전수받았다. 저서에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에 수록된 『공손홍서(公孫弘書)』가 있다.
주182)
평진(平津) : 옛 지명(地名). 한(漢)나라 때는 평진읍(平津邑)이었는데, 무제(武帝)가 승사(丞相) 공손홍(公孫弘)을 평진후에 봉했으니, 바로 이곳이다. 이후 이것이 전고가 되어 승상 등 고급관료(高級官僚)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선우중통을 가리킨다.
주183)
천인(薦引) : 추천하여 이끌어 관직에 진출시킴.
주184)
션 : 선비. 『두시언해』에는 ‘션븨’로도 쓰였다.
주185)
주려 : 굶주려. 주리-[饑]+어. ‘주리다’는 『두시언해』에 주로 쓰였으며 15세기의 나머지 문헌에서는 ‘주으리다’가 쓰였다. ¶주리- : 오직 노 놀애여 鬼神 잇 호 아디웨 므스므라 주려 주거 굴허 몃귀욜 이 알리오(但覺高歌有鬼神 焉知餓死塡溝壑)「醉時歌」〈두시 15:37ㄴ〉. 薇蕨로 首陽山애셔 주리고  조 머겨 디나 뇨 資賴니(薇蕨餓首陽 粟馬資曆聘)「早發」〈중간두시 1:50ㄱ〉〈두시 3:41ㄴ-42ㄱ〉. 주으리- : 後ㅅ 사미 긔호 주으료로 부텨 외다 리니〈석상 3:39ㄴ〉. 주으륨 充實케 호란 楚ㅅ 말와 랑노라(充饑憶楚萍)「獨坐二首」〈두시 3:41ㄴ〉.
주186)
주구믈 : 죽음을. 죽-[死]+우+ㅁ+을.
주187)
시름노니 : 걱정하니. 시름#-++오+니.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188)
언제 : 언제야. 언제+. 〈중간본〉에는 ‘언제아 平津’로 되어 있다.
주189)
평진(平津) : 평진께. 즉 선우중통을 가리킨다. 平津+. ‘-’는 존칭 여격조사이다. ¶ 臣下ㅣ 王  太子ㅣ 져머 겨시니 뉘 기려뇨〈석상 3:3ㄱ〉. 나 히메 바래  워 가리니 正히 시름야셔 뎌 하 묻노라(餘力浮于海 端憂問彼蒼)「遣悶」〈두시 3:13ㄱ〉.
주190)
알다 : 알욀까? 알-+오+이+ㄹㆆ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알욀다’로 되어 있다. ¶알외- : 世尊이 사 아니 알외샤 오 忉利天에 가샤〈석상 11:1ㄱ〉. -ㄹㆆ다 : 아비 닐오 머즌 그르슬 므스게 다 대〈삼강런던孝13〉. 다 術을 뒷관 能히 한 毒 이다〈월석 21:118ㄴ〉. -ㄹ다 : 맷 고지 디디 아니얏거든 成都애 도라오리니 浣花앳 늘근 한아비 와 볼다 말다(江花未落還成都 肯訪浣花老翁無)「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두시 8:23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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