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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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상)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상)

중국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모아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를 저본으로, 조선 성종의 명을 받은 유윤겸(柳允謙), 유휴복(柳休復), 조위(曺偉), 의침(義砧) 등이 언해하여 성종 12년(1481)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언해 시집이다. 모두 25권 17책으로 을해자본이며 이 책은 보통 줄여서 『두시언해(杜詩諺解)』라고 한다.

김성주

1965년 경남 통영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문학박사.

1999-2002 터키 국립앙카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외국인교수.

2003-200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2008-2011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문리각 연구교수.

2015년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초빙교수.

저서 : 『한국어의 사동』, 『Korece Dilbilgisi』(공저), 『각필구결의 해독과 번역 1~5』(공저), 『황룡사 표원의 화엄문의요결문답연구 1·2』(공저)

역주 : 『금강경언해』(공역), 『역주 석보상절 권3, 권6, 권11, 권20, 권21』(공역), 『역주 두시언해 권3(상, 하)(공역), 권5(상, 하)(공역), 권17(공역), 권19, 권20(상, 하)』

역주위원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상) : 김성주
  • 교열·윤문·색인위원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상) : 이창덕 홍현보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고전국역위원회

  • 위원장 : 한무희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승곤,
  • 남문현 박충순 이근영 최홍식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을 내면서

우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을 국역하기 시작하여 실록의 한문 원문 901권을 완역하였고, 『증보문헌비고』, 『국조인물고』, 『매월당집』, 『동국통감』 등 수많은 국학 자료의 번역 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아울러 1990년 6월부터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ㆍ9ㆍ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9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900책이 넘는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고전 국역ㆍ한글 문헌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고전 국역 사업을 수행하는 목적은 우리 고전을 알기 쉬운 현대어로써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 조상의 문화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새 겨레문화 건설에 이바지함에 있으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회가 2019년 말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정음 문헌과 책 수는 다음과 같다.

석보상절(4책), 월인석보(17책), 능엄경언해(5책), 법화경언해(7책), 원각경언해(10책), 남명집언해(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책), 금강경삼가해(5책), 육조법보단경언해(3책), 선종영가집언해(2책), 불설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합본), 진언권공/삼단시식문언해(합본), 목우자수심결/사법어언해(합본),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1책),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수구영험(합본), 사리영응기(1책),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1책), 칠대만법/권념요록(합본), 불설대보부모은중경(1책), 별행록절요언해(1책), 지장경언해(2책), 구급방언해(2책), 구급간이방언해(5책), 분문온역이해방/역주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합본), 언해태산집요(1책), 언해두창집요(1책), 간이벽온방/벽온신방/신선태을자금단(합본), 마경초집언해(2책), 분류두공부시언해(21책), 백련초해(1책), 삼강행실도(1책), 이륜행실도(1책), 동국신속삼강행실도(6책), 오륜행실도(5책), 정속언해/경민편(합본), 여씨향약언해(1책), 번역소학(1책), 소학언해(4책), 논어언해(2책), 중용언해(1책), 대학언해(1책), 맹자언해(3책), 시경언해(6책), 서경언해(2책), 주역언해(5책), 여사서언해(2책), 여소학언해(2책), 효경언해(1책), 여훈언해(1책), 가례언해(4책), 종덕신편언해(3책), 연병지남(1책), 병학지남(1책), 화포식언해/신전자취염초방언해(합본), 명황계감언해(2책), 윤음언해(2책), 어제상훈언해(1책), 어제훈서언해(1책), 명의록언해(4책), 속명의록언해, 천의소감언해(2책), 오륜전비언해(4책), 천주실의언해(2책), 경신록언석(1책)

이 『분류두공부시언해』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712~770)의 시를 모아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찬주분류두시』를 저본으로, 조선 성종의 명을 받은 유윤겸, 유휴복, 조위 등이 언해하여 성종 12년(1481)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언해 시집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25권 17책으로 을해자본이다(후대에는 19책, 20책도 있음). 이 책은 보통 줄여서 『두시언해』라고 한다.

『두시언해』는 다른 언해서와는 달리 원문에 입겿(토)이 없고, 한글과 한문 혼용인 언해문의 한자에도 한글 독음이 달리지 않았다. 두시에 대한 주석은 세종 때부터 행하여졌다고 하나, 번역은 성종의 명으로 처음 이루어진 것이다. 이 책의 책이름에 보이는 공부(工部)는 두보의 관명이고, 분류(分類)는 시를 기행, 술회, 질병, 회고, 시사(時事) 등과 같이 내용에 따라 분류하였다는 뜻이다. 두시는 71문(門)에 총 1,467수와 다른 사람 작품 16수로서, 그 소재는 세상사에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과 같은 인간애가 담겨 있으며, 당시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면밀하게 비판한 사실적인 서사(敍事)인 데서 ‘시사(詩史)’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작품이다.

이번에 이 『두시언해』 권20을 역주함에 있어서, 그 저본으로는 통문관에서 1955년에 초간본을 축쇄 영인한 양장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우리 회에서 15세기 문헌인 『두시언해』 권20를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위해 애써 주신 동국대학교 김성주 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년 11월 2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 등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옛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0의 저본으로는, 통문관에서 1955년에 초간본을 축쇄 영인한 양장본과 홍문각에서 1985년에 영인 출판한 『분류두공부시언해 6, 7, 16, 20~25권』을 사용하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문 원문ㆍ언해 원문ㆍ현대어 풀이ㆍ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는데, 특별히 한시를 언해하였으므로 그 운율을 알기 쉽도록 시 제목과 한시 원문은 그대로 음을 달고 풀이를 이어 붙였다.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ㆍ앞 『ㄱ』ㆍ뒤 『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ㄱ分類杜工部詩 卷之十五

제3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諸侯3ㄴ舊上計 厥貢傾千林

(3) 현대어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원문 내용(한문 원문과 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 풀이문ㆍ주석과 구별하였으며, 원문 가운데 훼손되어 읽을 수 없는 글자는 □로 표시하였다.

(5) 현대어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6) 종전과 달리 이번에는 현대어 풀이를 ‘언해역’(언해문의 직역), ‘현대역’(원문 중심의 의역), ‘구절풀이’(시적인 풀이)로 세 가지로 심화시켜 풀이하였다. 현대역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현행 맞춤법에 따랐다.

3. 역주자 일러두기

(1) 두시(杜詩)의 원문과 예문은 『두시언해』(초간본)을 바탕으로 하였고, 초간본(1443~1481)이 없는 경우, 없어지거나 헐리거나 찢겨나간 부분은 중간본(1632)을 참고하였다.

(2) 번역은 『두시언해』의 언해문을 바탕으로 한 (##언해역)과 『두시언해』의 한시를 바탕으로 한 (##현대역)을 제시하였으며 (##언해역)을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번역 아래에는 (##구절풀이)를 붙여 구절의 전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3) 한시 원문에 대해서는 『두시언해』에 제시되어 있는 대로 우리의 전통 한자음을 한글로 표시하여 원문과 나란히 제시하였다. 전통 한자음은 두음법칙을 반영하지 않았다.

(4) 주석은 가장 먼저 나오는 곳에서 자세한 주석을 달고 뒤에서 동일한 단어가 나올 때에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을 간단히 달고 더 자세한 것은 앞의 주석을 참고하도록 하였다. 상·하권의 안배를 위하여 주석을 중복하여 달아 둔 곳도 있다.

(5) 주석의 표제어는 단어는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2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구도 제시하였다. 한자어의 경우 한자음을 표제어로 제시하고 한자를 괄호에 넣어 두었다.

(6) 주석에 제시된 단어나 표현은, 분석은 가급적 내용 이해를 중심으로 상세히 하되 특별히 분석이 어려운 경우에 문법적 설명을 덧붙였다.

(7) 단어를 분석할 때 ‘+’ 기호는 체언과 조사 사이, 조사와 조사 사이, 용언의 어간과 어미 사이, 어미와 어미 사이에 쓰고, ‘#’는 어기(語基, 어간 또는 어간)와 어기 사이, 어기와 ‘-’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썼으며 단어의 어원 정보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였다.

(8) ‘-오, -옴’ 등은 ‘오+, 오+ㅁ’ 등으로 분석하였으며, 꼭 필요한 경우 ‘피동접미사, 부사파생접미사’ 등의 문법 용어를 제시하였다.

(9) 주석에 사용한 예문은 가급적 『두시언해』 이외의 15세기 예문과 『두시언해』의 예문을 나란히 제시하였다. 그러나 『두시언해』에 나오는 예가 하나뿐이거나 『두시언해』에 집중적으로 나오는 중요한 단어일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두시언해』의 예문만 제시하였다. 『두시언해』의 〈초간본〉이 없는 권1, 권2, 권4와 〈초간본〉이 훼손된 부분에서 뽑은 예문은 〈중간두시〉로 표시하였다.

(10) 예문 표시는 ‘〈두시19:1ㄱ〉’과 같이 관례에 따라서 ‘서명, 권, 장’을 제시하였으며 ‘ㄱ, ㄴ’은 전후면을 나타낸다. 두시의 이해에 해당 구절이 어느 시에 속하는 예문인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되도록, 『두시언해』의 특성상 해당 예문의 시제목도 명기하였다.

(11) 『두시언해』의 예문은 주석을 제외한 모든 예문의 한문 원문을 괄호에 넣어 표시하였다.

(12) 역주와 용례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에서 펴낸 역주본들을 많이 참고하였다. 국어사전은 특별히 명기되어 있지 않으면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하였다.

(13) ‘두시’는 중국,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주석서들이 존재한다. 폭넓고 깊이 있는 주석을 참고할 수 있어서 앞선 연구자들께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어려운 부분을 소화하지 못하여 이 책에 반영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두시’에 깊은 조예가 있으신 선생님들의 질정(叱正)을 바란다.

『분류두공부시언해』의 권20 해제

김성주(동국대학교 교수)

1. 개요

이 책은 『두시언해』 권20에 대한 역주서이다. 『두시언해』 권20은 〈초간본〉이 통문관에 소장되어 있고, 〈중간본〉은 동국대, 한중연 장서각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국어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두시언해』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 이병주(1959)와 전재호(1973, 1976)을 비롯하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1998)에는 ‘심경호, 안병희, 이종묵, 안대회, 정재영, 김성규, 조남호, 이현희’ 선생 등이 서지, 한문학, 국어학적 관점으로 두시와 『두시언해』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러나 ‘두시언해’는 국어학 관점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원문인 두시가 어렵고, 이를 번역한 ‘언해’도 시적 어휘와 표현을 사용하여 직역 위주의 번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시언해』를 이해하려면 역주서가 필요하다. 두시의 주석서나 번역서로는 중국에서 출간된 韓成武·張志民(1998)의 『杜甫詩全譯』과 蕭滌非(2014)의 『杜甫全集校注』가 있고, 일본에서 출간된 鈴木虎雄(1928~31/1978)의 『杜甫全詩集 1-4』과 吉川幸次郞의 원고를 제자인 興膳宏이 편집(編輯)하여 2016년에 출판한 『杜甫詩注 第1-10冊』, 그리고 일본의 한시 전공자들이 모여 전체 두보시를 번역한 下定雅弘·松原郞(2016)의 『杜甫全詩譯註 一~四』가 있다. 한국에서 나온 번역서나 주석서로는 일찍이 중요 두시에 대해서 이병주(1958/1970)의 『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注)』가 있고, 중국한시 전공자들이 모여서 전체 두시를 주석하고 번역할 목적으로 이영주 외(1999)의 『두보초기시역해』를 시작으로 최근의 강민호 외(2017)의 『정본완역 두보전집 제8권(두보기주시기시역해 1)』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전체 두시에 대한 최초의 번역인 『두시언해』가 15세기에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현대국어로 된 전체 두시에 대한 주석서나 번역서가 없다.

2. 『두시언해』 권20의 내용과 특징

『두시언해』 권20의 주제 분류는 ‘기간(寄簡)’이다. ‘기간’은 편지 형식의 시인데 두보의 시대에는 편지를 시로 대신하였다. 『두시언해』에서 ‘기간’은 권19, 권20, 권21에 걸쳐서 수록되었는데, 상중하로 나누어, 권19에 기간 상(寄簡上)(고시 17수), 권20에 기간 중(寄簡中)(율시 13수), 권21에 기간 하(寄簡下)(율시 52수)를 수록하였다. 이를 통해서 주제별로 분류한 『두시언해』의 배열은 ‘고시 → 율시 → 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간’은 절구 형식의 시가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권21의 ‘기간 하’의 율시 52수 다음에 배열되었을 것이다.

권20에 수록된 시가 ‘율시 13수’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전체 두시는 약 1500수 정도이므로 『두시언해』는 25권으로 되어 있어 한 권당 평균 60수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20은 13수로만 구성되어 있어 권20에 실린 시들은 긴 시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권20에는 두시 중에서 가장 긴 시인 ‘「추일기부영회봉기정감심이빈객지방일백운(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01)’으로부터, 40운의 장시(長詩)가 ‘「기악주고사마육장파주엄팔사군양각로오십운(寄岳州賈司馬六丈巴州嚴八使君兩閣老五十韻)」(02), 「기유협주백화사군사십운(寄劉峽州伯華使君四十韻)」(03), 「증왕이십사시어계사십운(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04)’이며, 30운으로 된 장시(長詩)가 ‘「추일형남(秋日荊南)애 송석수설명부(送石首薛明府)의 사만고별(辭滿告別)야셔 봉기설상서(奉寄薛尙書)논 송덕서회배연지작(頌德敍懷裵然之作)이니 삼십운」(05), 「기팽주고삼십오사군적괵주잠이십칠장사참삼십운(寄彭州高三十五使君適虢州岑二十七長史參三十韻)」(06), 「증이팔비서별삼십운(贈李八秘書別三十韻)」(08)’ 등이다. 두시 중 ‘기간(寄簡)’에 해당하는 시가 길다. 『두시언해』의 평균이 권당 60수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권20의 13수는 상대적으로 적게 수록된 것이다.

권20에 수록된 시는 율시 중 배율(排律)에 속한다. 배율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을 제외한 모든 구가 대구(對句)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권20의 첫째 시인 「추일기부영회봉기정감심이빈객지방일백운(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은 첫 연과 마지막 연까지 철저히 대구를 지키고 있어, 대구의 달인인 두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이 시는 두시 중에서 가장 긴 시로 알려져 있다.

권20에 수록된 시들은 두보가 장안(長安)에 머물던 시기에 지어진 것은 없고, 진주(秦州)부터 마지막으로 두보가 머물렀던 호남(湖南) 지방에 머물던 시기에 지어진 시들이다. 둘째 시인 「기악주고사마육장파주엄팔사군양각로오십운(寄岳州賈司馬六丈巴州嚴八使君兩閣老五十韻)」와 여섯째 시인 「팽주고삼십오사군적괵주잠이십칠장사참삼십운」가 진주(秦州)에서 창작되었고, 넷째 시인 「증왕이십사시어계사십운(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과 열한째 시인 「기이십사원외포십이운(寄李十四員外布十二韻)」, 그리고 열둘째 시인 「기동경가영십운(寄董卿嘉榮十韻)」이 성도에서 지어졌으며, 여덟째 시인 「증이팔비서별삼십운(贈李八秘書別三十韻)」, 셋째 시인 「기류협주백화사군사십운(寄劉峽州伯華使君四十韻)」, 첫째 시인 「추일기부영회봉기정감심이빈객지방일백운(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 등이 기주(夔州)에서 창작되었으며, 다섯째 시인 「추일형남 송석수설명부 사만고별 봉기설상서 송덕서회배연지작 삼십운(秋日荊南 送石首薛明府 辭滿告別 奉寄薛尙書 頌德敍懷裵然之作 三十韻)」과 일곱째 시인 「봉증소이십사군(奉贈蕭二十使君)」이 형주(荊州)에서 창작되었고, 열셋째 시인 「이거공안경증위대랑균(移居公安敬贈衛大郞鈞)」과 아홉째 시인 「봉증로오장참모거(奉贈盧五丈參謀琚)」가 공안(公安)에서 지어졌다.

3. 『두시언해』 권20의 어휘와 표현

『두시언해』 권20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문법 형태와 어휘는 아래와 같다.

. 무이-

(1) 兵戈 무여 니도다(兵戈動接聯)〈두시20:20ㄱ〉

(1)의 ‘무이-’는 ‘뮈-’가 2음절로 표기된 형태이다. 원문의 ‘동(動)’의 번역이다. 사동사는 ‘뮈우-’이다. 15세기에는 ‘뮈-’와 유사한 어휘로 ‘움즈기-’가 있다. 『두시언해』에서도 ‘뮈-’가 ‘무이-’로 표기된 것은 권20의 이 예가 유일하다.

. 바퇴오-

(2) 이저딘 울흘 가 가져다가 바퇴오고(缺籬將棘拒)〈두시20:10ㄱ〉

(2)의 ‘바퇴오-’는 ‘받치-’의 의미로 『두시언해』에서는 ‘받퇴-’가 주로 쓰이는데 ‘바퇴오-’의 용례는 『두시언해』 권20의 이 용례가 유일하다.

. 뷔이-

(3) 갯 지츨 뷔이여 다시 두위이저 가도다(鎩翮再聯翮)〈두시20:18ㄱ〉

(3)의 ‘뷔이-’는 ‘베이다’의 뜻으로 원문의 ‘쇄(鎩)’의 번역이다.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 권20의 이 예가 유일하다.

. 애여러

(4) 戎衣  번 니버 애여러   내니(一戎纔汗馬)〈두시20:42ㄱ〉

(4)의 ‘애여러’는 ‘애오라지’의 뜻으로 원문의 ‘재(纔)’에 대한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애오라지’의 뜻인 ‘재’는 ‘아야라, 애야라, 애여러, 아야로시, 애야시, ’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 중 ‘애야라, 애여러, 아야로시, 애야시’는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애여러’는 『두시언해』 권20의 예가 유일하다. 〈중간본〉에도 ‘애여러’로 되어 있다. 참고로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 나머지 어휘 ‘애야라, 아야로시, 애야시’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5) 가.  더으니 애야라 비치 잇고(煙添纔有色)〈두시12:24ㄴ〉

나. 구룸  石壁예 새 애야라 차 가놋다(嵐壁鳥纔通)〈두시13:30ㄴ〉

다. 지븐 애야라 稻梁이 足 만도다(家纔足稻梁)〈두시15:13ㄱ〉

(6) 아야로시: 누비 오시 아야로시 무루페 디날 만 도다(補綻纔過膝)〈중간두시1:5ㄴ〉

(7) 애야시:  므른 애야시 너덧 자 깁고(秋水纔深四五尺)〈두시7:22ㄱ〉

. 우-

(8) 머리 도로혀 라셔 말 우던 이 追思고(回首追談笑)〈두시20:23ㄴ〉

(8)의 ‘우-’도 『두시언해』 권20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 유일하다. ‘(웃음을) 웃다’의 뜻으로 『두시언해』에서는 주로 ‘우 웃-’이 쓰였다.

. 젼

(9) 宮闕엣 젼 보라오미 소오미라와 느도다(宮莎軟勝緜)〈두시20:17ㄱ〉

(9)의 ‘젼’는 ‘잔디’의 뜻으로 『두시언해』 권20의 이 예가 유일하다. ‘젼’의 ‘젼’은 ‘田’의 당시 발음 표기일 가능성이 있다. ‘젼’의 ‘’는 현대국어에서 ‘잔디’를 뜻하는 ‘떼’의 선대형(先代形)이다.

. 하야히

(10) 靑溪옛 머릿터리 蕭蕭히 비세 하야히 비취옛더라 니디 말라(莫話靑溪髮 蕭蕭白映梳)〈두시20:45ㄴ〉

(10)의 ‘하야히’는 ‘하얗게’의 뜻으로 ‘하야ᄒᆞ-’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한 파생부사이다. 『두시언해』 권20에서만 용례가 나타난다.

아래에서 『두시언해』 권20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 단어는 아니지만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 어휘 중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몇몇 단어를 제시한다.

. 지즈로

(11) 가. 飄零히 니 길히 지즈로 百里로소니(飄零仍百里)「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두시20:1ㄱ-ㄴ〉

나. 거믄 머릿 百姓이 지즈로 얽이니라(黔首遂拘攣)〈두시20:5ㄱ〉

다. 滏口에 軍師ㅣ 지즈로 모니(滏口師仍會)〈두시20:33ㄱ〉

라. 너 닌 벼스리 지즈로 貴니(似爾官仍貴)〈두시20:36ㄱ-ㄴ〉

마. 鵬鳥ㅣ 야 지즈로 개 드렛도소니(鵬圖仍矯翼)〈두시20:40ㄴ〉

(11)의 ‘지즈로’는 ‘지즐-’에 부사화접미사 ‘오’가 결합된 파생부사이다. 『두시언해』 권20에 모두 5개의 용레가 보인다. 『두시언해』에서 ‘지즈로’는 ‘지즈루’로도 쓰이는데, ‘지즈루’는 ‘지즐-’에 부사화접미사 ‘우’가 결합된 파생부사이다. 이들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되는데 주로 ‘仍’이나 ‘因’에 대응되지만 (11나)의 ‘지즈로’는 ‘遂’의 번역으로 쓰였다. 『두시언해』에는 원문에 ‘仍’이 쓰였으나 ‘지즈로’나 ‘지즈루’로 언해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중 ‘지즈루’는 『두시언해』에서도 〈두시5:41ㄴ〉, 〈두시8:42ㄴ〉, 〈두시16:9ㄱ〉의 3번의 용례만 확인된다.

. 비뉘-

(12) 犬戎의 비뉘호 디 아니얫녀(莫帶犬戎羶)〈두시20:4ㄱ〉

(12)의 ‘비뉘ᄒᆞ-’는 ‘비리-’와 ‘누리-’의 합성어로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12)의 예 이외의 용례는 『두시언해』 〈초간본〉과 〈중간본〉을 통틀어 ‘비뉘고’〈중간두시4:10ㄴ〉, ‘비뉘’〈두시5:4ㄱ〉, ‘비뉘니’〈두시8:2ㄴ〉, ‘비뉘’〈두시17:19ㄱ〉, ‘비뉘’〈두시19:46ㄴ〉, ‘비뉘도다.’〈두시24:5ㄴ〉 등 6개의 용례가 더 있다.

. 서의여-

(13) 가. 生涯ㅣ 마 서의여니(生涯已寥落)〈두시20:7ㄴ〉

나. 江海예 이셔 나날 서의여도다(江海日凄凉)〈두시3:59ㄱ〉

다. 이제 와 내 오 서의여호라(於今獨蕭索)〈두시9:2ㄴ〉

라. 賢聖이 다 서의여니라(賢聖盡蕭索)〈두시14:2ㄴ〉

마. 치위옛 이리 이제 서의여니(寒事今牢落)〈두시16:73ㄴ〉

(13)의 ‘서의여-’는 ‘쓸쓸하다’의 뜻으로 15세기에는 ‘서의-’ 계열과 ‘서의여-’ 계열이 쓰였는데 이들은 각각 파생부사로 ‘서의히’와 ‘서의여히’가 있다. 이 중 ‘서의여-’ 계열은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서의여ᄒᆞ-’에 대응하는 원문을 보면 『두시언해』 권20의 예인 (13가)는 ‘요락(寥落)’의 번역으로 쓰였는데 비해, (13나)는 ‘처량(凄凉)’, (13다, 라)는 ‘소색(蕭索)’, (13마)는 ‘뇌락(牢落)’의 번역으로 쓰였다.

. 수워리-

(14) 수워려 토 해 채 텨 가 게을오라(喧爭懶著鞭)〈두시20:8ㄱ-ㄴ〉

(14)의 ‘수ᅀᅮ워리-’는 ‘어수선하게 떠들어대다’의 의미로 『두시언해』에만 쓰인 단어이다. 『두시언해』에는 (1)의 용례 이외에 ‘수워리’〈두시9:9ㄴ〉, ‘수워리놋다’〈두시13:28ㄱ〉, ‘수워려’〈두시22:3ㄴ〉, ‘수워료’〈두시22:4ㄴ〉, ‘수워리고’〈두시22:11ㄱ〉, ‘수워려’〈두시23:45ㄱ〉 등 6개의 용례가 더 있다. ‘수ᅀᅮ워리-’는 ‘수ᅀᅮ-’에 강세접미사 ‘-워리-’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워리-’는 ‘나열하다’의 뜻인 ‘벌-’의 사동사 ‘벌이-’가 접미사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숫두리-, 숫두워리-, 숫두어리-’의 ‘두’를 ‘*두-(吃)’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15세기에는 ‘숫-’ 계열의 동사로 ‘숫-, 수-, 수-, 수-, 숫워리-, 숫어리-, 수워리-, 수어리, 수워리-, 수어리-, 숫두리-, 숫두워리-, 숫두어리-’ 등의 단어들이 쓰였는데, 이 중 『남명집언해』에 쓰인 ‘수-’의 예 2개를 뺀 나머지는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 아라이

(15) 가. 世閒앳 緣故ㅣ 아라이 서르 지즈러 오놋다(世故莽相仍)〈두시20:23ㄴ〉

나. 正 길히 아라이 리오〈남명 상76ㄴ〉

(15)의 ‘아라이’는 ‘아스라이’의 뜻으로 일반적으로 ‘아라히’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남명집언해』에서도 ‘아라이’가 쓰인 것으로 보아서 이 용례가 오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사-

(16) 丹砂 녯 저우레 사도다(丹砂冷舊秤)〈두시20:25ㄱ〉

(16)의 ‘사-’는 ‘서늘하다’의 뜻으로 『두시언해』에는 ‘서늘- 서-’로 쓰였지만 ‘사-’도 쓰였다. ‘사-’의 파생부사로 ‘사히’가 있다. (16)의 예 이외에 『두시언해』에서 ‘사-’가 쓰인 것으로는 ‘사케’〈두시9:5ㄱ〉, ‘사’〈두시11:32ㄱ〉, ‘사호미’〈두시19:36ㄴ〉, ‘사’〈두시23:56ㄱ〉 등이 있다.

4. 간략 두보 평전

여기서는 『두시언해』의 중요 시들과 『두시언해』 권20에 나오는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두보의 일생을 간략히 정리하여 제시한다.

두보(杜甫)는 712년 낙양 근처 공현(鞏縣, 현재의 鞏義市)의 요만촌(瑤灣村)에서 아버지 두한(杜閑)과 어머니 최 씨 사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다가 770년 장사(長沙)에서 악양(岳陽)으로 가는 도중 상강(湘江) 가에서 죽었다. 두보의 먼 선조로 『좌씨경전집해(左氏經典集解)』를 펴낸 두예(杜預, 220-284)가 있고 초당(初唐)의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두심언(杜審言, 645-708)은 두보의 할아버지이다. 두보는 부인 양씨와의 사이에는 어릴 때 죽은 아들과 딸을 제외하면 종문, 종무 두 아들과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딸도 몇 명이 있었다.

두보는 14~15세 때에는 이미 시단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나 두보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되었으며, 벼슬길로 진출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고, 또 안녹산의 난 등의 전란 등으로 평생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여러 난을 겪으면서 낙양(洛陽), 장안(長安), 진주(秦州), 성도(成都), 재주(梓州, 사천 四川 三台), 낭주(閬州, 사천 四川 閬中), 운안(雲安, 사천 四川 雲陽), 기주(夔州, 사천 四川 奉節), 장사(長沙) 등을 돌아다녔지만 시작(詩作)은 계속 이어갔다.

두보가 교류한 이로는 이백(李白), 소원명(蘇源明), 정건(鄭虔), 고적(高適), 잠삼(岑參), 이옹(李邕), 방관(房琯), 엄무(嚴武) 등이며 특히 엄무는 성도 시절 두보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이었다. 두보가 성도를 떠난 것도 엄무의 죽음이 큰 원인이 되었다.

아래에 두보의 간략한 연대기를 제시한다.

712년(太極 원년, 1세) 정월. 하남성(河南省) 공의시(鞏義市) 요만촌(瑤灣村)에서 출생. 현종 즉위.

717년(開元 5년, 6세) 공손대랑(公孫大娘)의 검무(劍舞)를 구경(「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並序」 권16).

718년(開元 6년, 7세) 봉황을 읊은 시 지음.

725년(開元 13년, 14세) 시단에 두각을 나타냄. 문인들이 모인 장소에 출입함(「江南逢李龜年」 권16 참조).

730년(開元 18년, 19세) 순하(郇瑕, 산서 臨猗) 여행.

731년(開元 19년, 20세) 제1차 오월(吳越, 강소와 절강 지역) 여행.

735년(開元 23년, 24세) 진사 시험 낙방.

736년(開元 24년, 25세) 제2차 제조(齊趙, 산동과 하북 남부) 여행, 소원명(蘇源明)을 만남. 현종이 이임보(李林甫)에게 재상 직을 맡김.

741년(開元 28년, 30세) 은자 장개 방문. 낙양으로 돌아와 낙양 동편 두예(杜預)와 두심언(杜審言)의 묘가 있는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토실(土室)을 짓고 삶. 여름에 사농소경(司農少卿)의 딸 양이(楊怡)와 결혼.

742년(天寶 원년, 31세) 743년까지 낙양 거주. 둘째 고모의 묘지명을 지음.

744년(天寶 3년, 33세) 낙양에서 장안 조정에서 쫓겨난 이백과 만난 이후 이백을 따라 양송 지역을 유람하며 선도를 익히고 선약을 캐리라 마음 먹음. 8월 언사(偃師)로 돌아가 노조모의 장례가 끝난 후 양송 지역(하남성 개봉과 상구 일대) 제3차 여행. 두보와 이백은 양송 지역에 살던 고적(高適)과 취대에 올라 넓은 평야를 보면서 옛 사람을 추모함. 이백과 함께 왕옥산으로 화개군을 찾아 떠남(「贈李白」 권21). 화개군이 죽은 것을 알자 이백은 재주(齊州, 산동 齊南)로 가서 고천사(高天師)에게서 도가의 비록을 건네받아 연단의 길로 들어섰고, 두보는 제주에서 이옹(李邕) 등과 교류함. 이옹의 손자 이지방이 새로 지은 정자의 준공식을 거행하면서 당시 북해태수로 있던 이옹이 두보를 초대함(「陪李北海宴曆下亭」 권14). 가을에 연주(兖州)에서 이백과 재회(이백과의 마지막 만남).

746년(天寶 5년, 35세) 십여 년의 여행을 끝내고 장안으로 돌아옴. 장안(西安)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 지원자이었던 부친 두한(杜閑)의 사망으로 경제적으로 곤란에 처함. 어떤 때에는 장안성 남쪽 종남산(終南山)에서 약초를 캐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음. 이 시기 두보와 가깝게 지내던 글벗은 소원명(蘇源明)과 광문관 박사 정건(鄭虔)이었음(「戲贈鄭廣文虔兼呈蘇司業源明」 권19).

747년(天寶 6년, 36세) 과거 시험 낙방.

748년(天寶 7년, 37세) 장안 거주.

751년(天寶 10, 40세) 현종에게 「삼대례부(三大禮賦)」를 바침. 현종은 두보의 재능을 알아보고 두보의 문장을 시험해 볼 것을 재상에게 명함. 이임보가 출제하고 집현원의 학생들이 모두 와서 감독함. 두보는 이 일을 시에서 자주 언급함. 선우중통이 남조 토벌.

754년(天寶 13, 43세) 아들 종무(宗武) 출생.

755년(天寶 14, 44세) 하서현위(河西縣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部兵曹參軍)으로 전임되어 취임. 안녹산의 난 발발. 11월 우위솔부병조참군의 직책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잘 것 없는 봉급을 가지고 가족들이 있는 봉선(奉先)으로 향하였으나 어린 아들은 굶어 죽어 있었음(「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권2).

756년(天寶 15=至德 元年, 45세) 2월 봉선에서 장안으로 돌아와 솔부의 직책을 계속 수행. 여름으로 접어들어 반군이 진격해 오자, 봉선에 살고 있는 가족을 걱정하여 백수(白水)로 피난. 부주(鄜州)의 강촌(羌村, 鄜州 西北 三十里) 도착. 6월 현종이 촉으로 피난. 양귀비, 양국충 등 양씨 일가 멸족. 7월 숙종 영무(靈武, 감숙 靈武)에서 즉위. 두보는 숙종의 행재소가 있던 영무로 가다가 반군에 잡혀 장안에 억류됨.

757년(至德 2, 46세) 4월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鳳翔, 섬서 鳳翔)의 행재소(行在所)에 도착. 5월 16일 좌습유(左拾遺)에 임명. 좌습유의 일을 시작한지 한 달이 못되어 두보가 방관을 옹호하는 ‘정쟁오지(廷諍忤旨)’ 사건 발생. 윤달 8월 휴가를 얻어 강촌(羌村)으로 감(「北征」 권1).

758년(乾元 원년, 47세) 좌습유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화주(華州, 섬서 渭南市 華州區)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되어 지방의 문교 업무를 맡게 됨.

759년(乾元 2, 48세) 3월 낙양에서 화주로 돌아옴. 7월 사공참군(司功參軍) 사직. 늦은 봄 화주를 떠나 진주(秦州, 감숙 天水)로 감(02「寄岳州賈司馬六丈巴州嚴八使君兩閣老五十韻」 권20, 06「彭州高三十五使君適虢州岑二十七長史參三十韻」 권20). 10월 적곡, 철당협, 한협, 청양협, 적초령을 지나 동곡(同谷, 감숙 成縣)으로 감. 목피령, 백사도, 비선각, 석거각, 검문을 지나 12월 1일에 성도로 향함.

760년(上元 원년, 49세) 성도의 완화계(浣花溪)에 초당을 세움(「戲作花卿歌」). 신진현(新津縣) 1차 여행.

761년(上元 2, 50세) 신진현(新津縣) 2차 여행. 12월 엄무 성도윤으로 부임(「寄贈王十將軍承俊」 권5).

762년(寶應 원년, 51세) 4월 현종(玄宗)과 숙종(肅宗) 붕어. 대종(代宗) 등극. 이백 사망. 6월 경성으로 돌아가는 엄무를 면주(綿州, 四川 綿陽의 동쪽)까지 동행하며 전송. 때마침 위구르와 토번의 침입으로 재주와 낭주 등 사천 동북부를 떠돌다 성도로 돌아감. 늦가을에 가족을 재주(梓州, 사천 三台)로 이사시킴.

763년(廣德 원년, 52세) 낭주(閬州, 사천 閬中), 염정(鹽亭, 사천 盐亭), 한주(漢州, 사천 廣漢) 등을 여행하고 봄에 재주(梓州, 사천 三台)로 돌아옴. 8월, 방관이 낭주에서 죽음. 낭주로 이사. 안사의 난 종결. 토번이 장안을 함락. 대종이 섬주(陝州)로 피난.

764년(廣德 2, 53세) 3월 성도 초당으로 돌아가서 촉지를 떠나는 길에 올랐다가 도중에 엄무가 다시 성도로 부임한다는 소식에 계획을 수정하여 성도로 돌아옴(04「贈王二十四侍御契四十韻」 권20, 11「寄李十四員外布十二韻」 권20). 6월 엄무에 의해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으로 추천됨(12「寄董卿嘉榮十韻」권20). 소원명(蘇源明)과 정건(鄭虔) 죽음.

765년(永泰 元年, 54세) 1월 정월 막부의 직책을 사직하고 초당으로 돌아옴. 4월 엄무 돌연 병사. 5월 성도를 떠남. 민강(岷江)을 통해 유주(楡州, 사천 重慶), 충주(忠州, 사천 忠縣), 운안(雲雁, 사천 雲陽)으로 감.

766년(大曆 元年, 55세) 늦은 봄, 기주(夔州, 사천 奉節) 도착(10「贈崔十三評事公輔」 권20). 이 무렵 두보는 오골계 고기로 중풍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오골계를 몇 마리 기름.(「催宗文樹雞柵」 권17).

767년(56세) 적갑(赤甲)으로 이사. 기주(夔州) 도독(都督)인 백무림(栢茂琳)이 마련해 준 양서초당(瀼西草堂)에서 삶(08「贈李八秘書別三十韻」 권20, 03「寄劉峽州伯華使君四十韻」 권20, 01「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 권20).

768년(大曆 3, 57세) 동생 두관에게서 편지를 받음. 정월 기주(夔州, 사천 奉節)를 출발하여 협주(峽州, 호북 宜昌) 하뢰(下牢)에 도착함으로써 삼협(三峽)을 완전히 벗어남. 3월 강릉(江陵, 湖北 江陵) 도착(05「秋日荊南애 送石首薛明府의 辭滿告別야셔 奉寄薛尙書논 頌德敍懷裵然之作이니 三十韻」 권20, 07「奉贈蕭二十使君」 권20). 가을 공안(公安, 湖北 公安)으로 이사(13「移居公安敬贈衛大郞鈞」 권20, 09「奉贈盧五丈參謀琚 권20). 늦겨울 공안 출발 악주(岳州, 호남 岳陽) 도착. 설을 악양(岳陽)에서 보냄.

769년(大曆 4, 58세) 정월 악양 출발. 형산(衡山), 상담(湘潭, 호남 湘潭), 담주(潭州, 호남 長沙)에 도착.

770년(大曆 5, 59세) 늦봄 담주(潭州)에서 이구년(李龜年)과 재회. 4월 군벌의 반란을 피해 형주(衡州)로 피난. 침주(郴州, 호남 郴州)로 가는 도중 뇌양(耒陽, 호남 耒陽)에 이르러 방전역(方田驛)에서 섭 현령이 보내준 음식을 받음(일설에는 두보가 방전역에서 죽었다고 하나 그 이후에 지은 시가 있음). 양양(襄陽, 호북 襄陽)으로 가다가 담주(潭州, 호남 長沙)에서 머묾. 겨울 고향으로 향하는 상강 기슭에서 세상을 떠남. 두보가 죽은 뒤에 두보의 영구는 43년 후 손자 두사업(杜嗣業)에 의해 언사(偃師, 하남 偃師) 서북의 수양산(首陽山) 밑으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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