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원각경언해 제1집

  • 역주 원각경언해 제1집
인쇄 의견 제시
역주 원각경언해 제1집
역주 원각경언해 제1집

중국 당나라 고종 때 북인도 계빈의 고승 불타다라가 한역한 《원각경(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조선 세조 때 《원각경대소초》(당나라 규봉 종밀이 지은 원각경 주석서)를 저본으로 하여 세조가 입겿(구결)을 달고 신미대사와 효령대군·한계희 등이 한글로 번역한 책.

정우영 교수

∙1954년 충남 금산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문학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금강경언해 주해》(공저, 1993)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6)

〈주논문〉

“15세기 국어 문헌자료의 표기법 연구”(박사학위 논문, 1996)
“악학궤범 소재 한글가사의 표기사적 고찰”(1992)
“〈신선태을자금단〉의 국어학적 연구”(1993)
“반야심경언해의 표기법에 대한 음운론적 고찰(I)” (1995)
“반야심경언해의 표기법에 대한 음운론적 고찰(Ⅱ)” (1996)
“염불보권문(용문사본) 한자음 표기의 음운론적 고찰”(1997)
“설공찬전 한글본의 원문 판독 및 그 주석”(1998)
“삼강행실도 언해본에 나타난 한자음 표기의 양상” (1999.2)
“불전언해와 국어표기법의 관계”(1999.12)
“훈민정음언해의 이본과 원본 재구에 관한 연구” (2000)
“『훈민정음』 한문본의 낙장 복원에 대한 재론” (2001)
“『월인석보』 권20의 어휘 연구”(2002.9)

〈학회활동〉

국어국문학회(현재. 연구이사)
한국어문학연구학회(현재. 연구이사)
국어학회(회원)
한국어학회(회원)
한국불교어문학회(회원)

역주위원

  • 원각경언해 서 : 정우영

  • 윤문위원

  • 원각경언해 서 : 박종국 김완서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김구진 김석득 박병천
  • 성경린 손보기 안덕균
  • 이응호 이창림 이태극
  • 이해철 전상운 최기호
  • 한무희 허웅

간행의 말씀

고어고전주해사업은 우리 회가 1990년에 착수, 1991년부터 그 성과물을 내고 있는 사업으로, 그동안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은 「석보상절」·「월인석보」·「능엄경언해」·「법화경언해」 등이다.

올해는 「원각경언해」·「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남명집언해」 등의 한글 고전을 역주 간행하기로 하였는데, 그 가운데 「원각경언해」 서가 완료되어 이번에 간행하게 되었다.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는, 중국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인 영휘(永徽) 6년(655)에 불타다라(佛陀多羅, 覺救)가 한역(漢譯)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에 대하여 역시 당나라의 종밀(宗密, 780~841)이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주서)를 지은바, 이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 세조가 한글로 입겿[토]을 달고, 신미(信眉)·효령대군(孝寧大君)·한계희(韓繼禧) 등이 번역하여 세조 11년(1465) 3월에 10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여 낸 책이다. 「원각경」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의 약칭으로 「대방광원각경」·「원각수다라요의경」·「원각요의경」 등으로 부르기도 하나, 주로 「원각경」이라 부른다.

이 언해서는 「동국정운」 한자음 표기를 제외하면, 각자병서(各自並書) 「ㄲ, ㄸ, ㅃ…」 등과 「ㆆ」 등이 구결문과 언해문에서 일절 사용되지 않는 최초의 문헌으로, 「원각경」에 대한 종밀의 주석서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번역서이기도 하므로, 국어표기법 변천과 우리말 음운·문법, 그리고 불교학 연구에 아주 귀중한 문헌이다.

현재 원간본은 완질은 전해지지 않으며, 영본(零本)으로 서울대학교 일사문고와 이숭녕(李崇寧)님 등 소장본이 일부 전해진다. 원간본의 복각본과 중간본[선조 8년(1575), 전라도 안심사(安心寺) 간행]이 있는데, 복각본은 완질이 규장각과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중간본은 동국대학교 도서관과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출판하는 「역주 원각경언해」는 원간본의 복각본인 서울대학교 가람문고 소장본을 홍문각에서 1995년 5월에 축소 영인하여 5책으로 간행하였는데, 이것을 대본으로 하여 역주한 것이나, 「원각경」 서 등 일부는 미공개 원간본을 대본으로 하였다.

끝으로 이 불경을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간행함에 있어 「원각경언해」의 해제와 「원각경언해」 서를 역주해 주신 동국대학교 정우영 교수님과 본 주해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인적자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책이 발간될 동안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2년 9월 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 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책은, 서울대학교 가람문고 소장본을 홍문각에서 1995년 5월에 5책으로 축소 영인한 것을 대본으로 하였으나, 「원각경」 서 등 일부는 미공개 원간본을 대본으로 하여 역주하였다.

(2) 이 책은 원각경언해의 해제와 본문 풀이로 구성되어 있다. 원각경언해 본문 풀이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원문·언해원문 띄어쓰기(방점은 줄임)·현대말풀이·옛말과 불교용어(고딕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과 앞·뒤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7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니 7ㄱ 이 …
제9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디라 近 9ㄴ 世옛…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다만, 인용문 “……” 다음에 생략된 인용동사는 여기에 따르지 않았다.

(5) 언해문 가운데 분명히 오각(誤刻)으로 보이는 것은 [ ] 안에 수정한 글자를 써넣었고, 협주(夾註) 표시 【 】는 [……]로, 주석부분은 〈……〉로 나타냈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ㄲ ㄴᄔ ㄷㄸㄹ ㅁᄝㅂㅃㅲㅳㅄᄢᄣᄩㅸ ㅅㅆㅺㅻㅼㅽㅾㅿ ㅇᅇ ᅙ ㅈㅉ ㅊ ㅋ ㅌ ㅍ ㅎ

② 중성순: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ㆉㅜㅝㅞㅟㅠㆌㅡㅢㅣ丶ㆎ

③ 종성순 : ㄱ ㄴ ㄷㄹ    ᄚㅁ ㅯㅰㅂㅄㅅㅺㅼㅿㆁㅈㅊㅋㅌㅍㅎ

(7) 원문의 장 앞쪽은 ‘ㄱ’, 뒤쪽은 ‘ㄴ’으로 표시하였다.

『원각경언해』 해제

정우영(동국대학교 교수. 국어학)

1. 머리말

『원각경(圓覺經)』은 북인도 계빈(罽賓)의 고승인 불타다라(佛陀多羅 : 覺救)가 한역한 것으로 연대는 확실치 않고, 그 정식 이름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이다. 주001)

「원각경」의 번역자와 번역 연대에 대하여는 이설이 많다. 경(經) 제목에 ‘經’(sūtra)이 ‘修多羅(수다라)’와 함께 중복 사용된 점 등의 이유로 당나라 초기의 위찬(僞撰)이 아닌가 간주되기도 한다. 전해주·김호성(1996:99) 참조.
당나라에서는 9세기에 「대방광원각다라니(大方廣圓覺陁羅尼)」를 비롯하여 5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주002)
<정의>배휴(裵休)가 지은 ‘약소서(略疏序)’의 주해에 따르면, ① 대방광원각다라니(大方廣圓覺陁羅尼), ② 수다라요의(修多羅了義), ③ 비밀왕삼매(秘密王三昧), ④ 여래결정경계(如來決定境界), ⑤ 여래장(如來藏)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원각경」이라는 약칭이 가장 일반화되어 있다(이하 「원각경」으로 줄여 부른다.). 이 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으로 보는 학자가 많고 문헌학적으로 의문시되고는 있으나, 그 내용이 대승(大乘)의 참뜻을 잘 표현하고 있어 한국과 중국에서 널리 유통되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금강경」, 「수능엄경」, 「대승기신론」 등과 함께 불교 전문 강원(講院)의 4교과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학습되어 왔다.

이 경에 대한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당나라 규봉 종밀(圭峰宗密)의 대방광원각경대소(大方廣圓覺經大疏)·대소초(大疏鈔)·약소(略疏)·약소초(略疏鈔) 등과, 조선 초기 함허당 득통(涵虛堂 得通)의 원각경소(圓覺經疏) 등이 있으나, 종밀의 것을 제일로 꼽고 있다.

이 글의 텍스트인 『원각경언해』는, 역사적 근거가 가장 명확한 당나라 규봉 종밀(宗密, 780~841)의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 세조(世祖)가 구결을 단 『어정구결원각경(御定口訣圓覺經)』을 대본으로 혜각존자 신미(信眉)·효령대군(孝寧大君)·한계희(韓繼禧) 등이 한글로 번역하고, 황수신(黃守身) 등이 새기고 박아 세조 11년(1465. 成化元年) 간경도감에서 목판본 10권 10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주003)

<정의>권두의 내제 다음에 “御定口訣/慧覺尊者臣僧信眉孝寧大君臣補仁順府尹臣韓繼禧等譯”이란 기록과 황수신의 「진원각경전(進圓覺經箋)」 및 간행에 참여한 박원형(朴元亨)·김수온(金守溫) 등 조조관(雕造官)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명칭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처럼 크고[大], 방정하고[方], 광대한[廣] 원각(圓覺)을 설명하는 것이 모든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경(經)이라는 뜻으로서, 지고한 깨달음의 원융불이(圓融不二)한 경지인 원각을 돈교(頓敎)적인 측면에서 밝히고, 그 수행과 깨달음의 길을 점교(漸敎)적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어, 불교 수행에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한편, 국어사 자료로서의 이 책의 중요성은, 세종 28년 1446년 9월 『훈민정음』(해례본)에서 국어표기법이 규정되고, 그 표기 규범들이 정음 초기문헌들을 통해 실용화되었는데, 이 문헌에 이르러 ‘ᅙ’과 각자병서 표기법이 폐지되는 하나의 큰 분수령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 같은 특징에 주목하여, 선행연구에서는 음운사적·표기법사적 고찰이 있었으며, 주로 변화의 원인과 그 역사적 의의를 분석하는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주004)

<정의>대표적인 것으로 이기문(1963, 1972)과 이익섭(1963, 1992), 이현규(1976), 지춘수(1986), 정우영(1996가, 2002)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문헌에 대한 서지 사항은 안병희(1979)에서 간명하게 소개되었으며, 소장 현황과 표기법의 특징 등은 한재영(1993)에 좀더 자세히 기술되었다. 이 책은 1140여 장 약 2300 쪽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분량이지만, 같은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인 『능엄경언해』(1461,2)나 『법화경언해』(1463)에 비하면 개별 문헌 연구는 아직 심도 있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장 문헌 개관에서는 서지, 판본 현황, 내용 구성 등을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표기법과 음운의 특징적 사실을 기술하며, 제4장 어휘에서는 이 책에 나타난 새말과 희귀어들을 목록과 함께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들의 편의를 돕고자 한다.

2. 문헌 개관

2.1 서지

『원각경언해』의 편찬 체재는 다음과 같다.

책크기 : 32cm×23.3cm
내제 :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판심제 : 圓覺(서 : 圓覺經序. 전 : 圓覺經箋. 조조관 : 雕造官)
반곽 : 21.8cm×18.5cm
판식 : 4주 쌍변
판심 : 흑구 상하 내향 흑어미(상하 안쪽으로 향한 검은지느러미 모양)
행관 : 유계 9행, 본문 큰자는 1행에 17자, 주해·번역문은 작은자 쌍행으로 17자
권말제 :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이 책의 한문 주해·본문 및 언해문의 편찬 양식은 목판본 『능엄경언해』와 같으며, 1463년 『법화경언해』, 1464년의 『선종영가집언해』·『금강경언해』·『반야심경언해』와는 대동소이하다. 주005)

<정의>『법화경언해』에는 한문 주해에 『훈민정음』(해례본)과 같은 방식의 구두점이 사용되었다.
‘약소서·서’의 본문과 한문 주해, 그리고 언해는 행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첫머리부터 시작하였으며, 원권(圓圈.○)으로 본문·주해·언해를 각각 구분하고 글자 크기를 대자·소자로 달리 처리하였을 뿐 본문과 언해를 별행으로 처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의 본문 격인 상·하(上·下)권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경 본문과 주해가 따로 있기 때문인데, 경 본문은 큰자로 행의 첫칸부터 쓰고, 바로 뒤에 원권(○)으로 나누어 작은자 쌍행으로 언해문을 썼다. 경 본문에 대한 종밀의 주해문은 줄을 바꾸어 중자로 1자 낮추어 가지런히 쓰되, 주해문에 대한 한문 주해가 있을 경우에는 ○표를 하고 작은자 쌍행으로 써나가며, 모든 주가 마무리된 끝에 다시 ○표로 분단하여 언해문을 썼다. 언해문 속의 협주는 시작과 끝을 흑구로 안쪽을 향해 지느러미 모양(【 】)으로 감쌌으며, 번역문보다 뒤쪽에 올 때는 흑구의 끝을 생략하였다.

이제, 이 책 원간본의 편차를 살펴보기로 한다. 현재 원간본은 완질이 전해지지 않는다(§2.2). 원간본의 복각본인 서울대 규장각본을 참고하되, 원간본이 남아 있는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서 목판본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선종영가집언해』, 『반야심경언해』의 원간본 편찬 체재를 고려하여 표로써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006)

<정의>한재영(1993:150)에서는 중간본을 이용해 정리하였으로 ‘箋·雕造官’이 권10에 들어 있다. 그러나 간경도감판 언해서들의 원간본의 편찬 체재와, 모처에 비장된 권1 「원각경서」(원간본의 후쇄본)를 참고해 볼 때, ‘箋’과 ‘雕造官’이 권1 「원각경서」 앞에 위치했음이 틀림없다.

〈표〉 『원각경언해』 원간본의 분권과 권차 주007)

<정의>권2~권10의 판심제는 각권의 첫장만 “圓覺上○之○” 식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之〉 자가 빠진 채 “圓覺上○○”식으로 되어 있어 권차를 확인하기 어렵다.

권별내용(판심제)장별(지은이)
권1진원각경전(進圓覺經箋)1~3장 (黃守身. 1465.3.19)
조조관(雕造官)1~2장 (黃守身 등)
원각경약초서(圓覺經略鈔序)1장(思齊)
원각경약소서(圓覺經序)1~14장 (裵休)
원각경서(圓覺經序)15~84장 (宗密)
권2원각경(圓覺 上一之一)1~118장 (이하 宗密 주해)
권3〃(圓覺 上一之二)1~97장
권4〃(圓覺 上一之二)98~192장
권5〃(圓覺 上二之一)1~53장
〃(圓覺 上二之二)1~86장
권6〃(圓覺 上二之二)87~173장
〃(圓覺 上二之三)1~47장
권7〃(圓覺 下一之一)1~68장
〃(圓覺 下一之二)1~57장
권8〃(圓覺 下二之一)1~65장
〃(圓覺 下二之二)1~47장
권9〃(圓覺 下三之一)1~135장
권10〃(圓覺 下三之二)1~103장
합계1148 장

2.2 판본 현황 및 영인본

현재 전해지는 『원각경언해』의 판본은 대개 다음과 같다(한재영 1993, 김영배 2000).

(1) 원간본 : 세조 11년(1465)

가. 심악본〔ㅇ 51-1. 191〕 : 하3-1(1~4장앞 낙장), 하3-2(103장 이하 낙장)〈영본〉
나. 일사문고본〔일사 고귀 294.33-W49bd〕 : 하2-1(맨끝 낙장)
다. 일사문고본〔일사고귀 294.334-Si65d〕 : 상1-2(4~192장), 하3-1(4~135)

(2) 원간본 계열의 후쇄본 주008)

<풀이>원간본과의 구별은, 내제 다음에 나오는 “御定口訣/慧覺尊者臣僧信眉孝寧大君臣補仁順府尹臣韓繼禧等譯”이란 기록이 있고 없음으로 한다. 안병희(1979) 참조.

가. 서울대규장각 〔고귀1730-9A1/2〕
서(1-72 낙장), 상1-1(92장 이후 낙장), 상2-2(1~173장 1책 장정)
나.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육당문고: 하2-1, 하2-2, 하3-1, 하3-2
다. 일본 田川孝三 소장: 상2-1, 상2-3

(3) 원간본의 복각본

가. 서울대규장각 〔고1730-9〕 (완질)
나. 서울대규장각〔고1730-9A〕: 상2-3(1~47장), 하1-1(1~65장. 이하 낙장)
다. 서울대규장각 가람문고 〔고294.334-B872w-1465 v.1-10〕 (완질)
라. 성암고서박물관 〔3-266〕: 상2-2(20~173), 상2-3(1~47장)
마. 서울대규장각 일사문고 〔고294.33-w49b〕: 상2-2(43~173장)

(4) 중간본 : 선조 8년(1575) 전라도 안심사(安心寺) 간행

가. 동국대도서관 〔귀213.18-원11ㅅ11〕
나. 서울대규장각 〔고1730-9C〕
간기 : 萬曆三年(1575) 正月望前有日 全羅道 高山地 安心寺 開板

다음으로, 『원각경언해』의 영인 자료에 대하여 알아보자. 현재 학계에 널리 소개된 것은 세 가지이다. 1977년 대제각에서 1책으로 모아 축소·영인한 것과, 1980년 선암사에서 1책으로 축소·영인한 것, 그리고 1995년에 홍문각에서 5책으로 축소해낸 영인본이 있다. 대제각의 영인 저본은 중간본인 안심사판이며(안병희 1979), 홍문각 영인본은 (3다) 서울대 가람문고본이라고 알려져 있다(김영배 2000). 그러나 둘을 비교·확인해 본 결과 오각된 곳이 모두 일치하고 훼손된 부분도 모두 같다. 둘다 (3다) 서울대 규장각 가람문고본과 동일한 계열로서 원간본의 복각본으로 판단된다. 이 같은 근거는, ‘서11뒤(5행-9행), 서12뒤(6행-9행), 하1-1:2앞(7행), 하1-1:2뒤(2행), 하3-2:43뒤(4행-9행)’ 부분이 대제각과 홍문각 영인본에서 똑같이 훼손된 상태로 나타나며 오각된 부분도 완전히 일치한다. 다만, 전자에는 장서인이나 도서번호가 없는 반면, 후자에는 (3다)와 똑같은 도서번호와 장서인이 첫장에 아주 선명히 드러나 있다. 또 다른 영인 자료인 1980년 선암사 영인본도 조사 결과, 앞의 두 자료와 완전히 동일한 계열의 자료임이 확인되었다. 다만, 책의 제목이 앞것과는 달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인 것이 차이나며, 하권의 경우에는 편철이 뒤바뀌어 있어 이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결국 지금까지 나온 영인본은 원간본과 원간본 계열 후쇄본은 전혀 없으며, (3다)와 같은 원간본의 복각본만이 유통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원각경언해』의 원간본은 완질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 언해서가 국어사 자료 중에서 연구 논문 편수가 극히 적은 원인이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희망적인 것은, 현재 흩어져 있는 원간본과 원간본 계열 후쇄본을 조합하면 거의 완질로 꾸며질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이번에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영인·주해하는 권1 「원각경서」의 경우도 학계에 전혀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은 모처의 비장본 중 하나로, 기존의 영인본에 나타나는 오각이나 훼손된 부분을 바르게 복원할 수 있는 아주 양호한 상태의 자료이다.

역주와 영인을 계기로 이 책에 대한 연구가 깊이 있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3 내용 구성

『원각경언해』의 제1권은 「원각경서」이다. 이것은 배휴(裵休)와 그의 스승인 규봉 종밀선사(宗密禪師)의 글을 언해한 내용인데, 이 경의 특징과 중요성, 그리고 이 주석서의 성립 배경과 이에 얽힌 일화가 밝혀져 있다. 경 본문에서 설해질 내용을 요약적으로 제시하였으며 본문에서 사용되는 선(禪)과 관련된 기초적인 불교 용어들이 거의 다 들어 있어 입문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내용이다. 특히 백가(百家)의 글을 인용하여 본문에 대한 상세한 주를 달고 있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꾸며진 점은 「원각경서」의 큰 특징이라 하겠다.

제2권에서 제10권까지는 경(經)의 본문에 해당되는데 상·하편으로 짜여졌다. 석가여래 부처님이 문수(文殊), 보현(普賢), 보안(普眼), 금강장(金剛藏), 미륵(彌勒), 청정혜(淸淨慧), 위덕자재(威德自在), 변음(辯音), 정제업장(淨諸業障), 보각(普覺), 원각(圓覺), 현선수(賢善首) 보살 등 12명의 보살과 문답을 통해 원각(圓覺)의 묘리(妙理)와 그 관행(觀行)을 설하는 내용인데, 부처님과 12 보살과의 문답을 각각 1장(章)으로 삼았기 때문에 전체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면, 제1 문수보살장은 이 경의 안목(眼目)이 되는 부분으로, 누구나 본래부터 갖고 있는 원각(圓覺)에 환원하기만 하면 생사가 곧 열반이요, 윤회가 곧 해탈이 됨을 가르치고 있다. 제2 보현보살장부터 제11 원각보살장까지는 원각을 닦고 증득하는 데 필요한 사고와 실천에 대하여 설하였고, 끝으로 제12 현선수보살장에서는 이 경의 이름과 신수봉행하는 방법, 그리고 수지하는 공덕과 이익 등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각 장(章)에서 설한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009)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8:663) 참조. ‘원각경’(徐京洙 집필).

① 문수보살장 : 여래인행(如來因行)의 근본과 과상(果相)

② 보현보살장 : 중생들이 원각의 청정경계(淸淨境界)를 듣고 수행하는 법

③ 보안보살장 : 중생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주지(住持)해야 하는가?

④ 금강장보살장 :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라면 왜 다시 일체의 무명(無明)을 설했는가, 만일 무명이 본래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인연으로 본래가 성불한 것이라고 설했는가, 만일 본래 불도를 이루고 다시 무명을 일으켰다면 여래는 언제 다시 일체 번뇌를 일으킬 것인가 하는 3가지 질문에 답함.

⑤ 미륵보살장 : 윤회를 끊는 방법

⑥ 청정혜보살장 : 성문성(聲聞性)·연각성(緣覺性) 등 오성(五性)의 계위

⑦ 위덕자재보살장 : 세 가지 근성(根性)에 따른 수행 방법

⑧ 변음보살장 : 원각문(圓覺門)에 의해 수습(修習)하는 길

⑨ 정제업보살장 : 말세의 중생을 위한 장래안(將來眼)

⑩ 보각보살장 : 수행자가 닦아야 할 법(法)과 행(行), 제거해야 할 병과 발심하는 법,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는 법에 대해 설함.

⑪ 원각보살장 : 원각경계(圓覺境界)를 닦기 위해 안거(安居)하는 법

⑫ 현선수보살장 : 이 경의 이름, 신수봉행(信受奉行) 방법, 이 경을 수지(受持)하는 공덕과 이익 등에 대하여 설하였다.

3. 표기법과 음운의 특징

국어표기법의 변천사에서 『원각경언해』가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 훈민정음 표기법이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해례본)에서 규정된 이래, 정음 초기문헌들을 통해 규범화·실용화되었는데, 처음에 「능엄경언해」에서 ‘ㅸ’이 ‘오/우/◦’ 등으로 전격 교체됨으로써 그 이후 한글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주010)

필자는 이를 국어표기법의 ‘제1차 개정’이라 부른다. 정우영(2002:560) 참조.
그런데 또다시 이 『원각경언해』에 와서 ‘ᅙ’과 각자병서가 구결문 및 언해문의 우리말 표기에서 폐지되기에 이른다(제2차 개정). 이 문헌을 계기로 다음 문헌부터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므로 『원각경언해』는 이른바 ‘규범문헌’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셈이다.

이 장에서는 종래의 연구에서 특징적 사실로 거론된 ① 〈ㆆ〉과 각자병서의 폐지에 대한 역사적 과정, ② 방점 표기의 변화에 대한 의의 등을 살펴보고, 그 밖에 음운현상과 관련하여 모음조화의 실상 등,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와 비슷하지만 차이가 나는 몇 가지 주제도 함께 지적하기로 한다.

3.1. 〈ㆆ〉과 각자병서의 폐지

훈민정음의 ‘ㆆ’은 후음 전청자로서 ‘挹字初發聲’의 음가를 지닌 후두폐쇄음 /ˀ/이고, 각자병서 ‘ㄲ ㄸ ㅃ ㅉ ㅆ ㆅ’은 훈민정음의 오음(五音) 전탁자로서 각각 ‘虯·覃·步·慈·邪·洪字初發聲’의 음가를 지닌 초성 자모들이다. 이들 자모는 주로 개신한자음―동국정운음과 홍무정운역훈음―의 초성 표기를 위해 제자되었다. 먼저 ‘ㆆ’은 개신한자음의 종성 표기에도 쓰였으며, 국어음을 위해서는 사이시옷(하, 快ㆆ字) 표기와 관형사형어미 ‘-ㄹ’과 후행어의 통합 표기(길)에 사용되었고, ‘ㄲ ㄸ ㅃ …’ 등 6개 각자병서는 관형사형어미와 후행어의 통합 표기 「-ㄹ+ㄲ·ㄸ·ㅃ·ㅉ·ㅆ」과, 어두음 ‘ㅆ[쏘다]·ㆅ[다]’ 표기, 그리고 비어두음절 초성 ‘ㅉ[조-. 隨]·ㅆ[조-. 稽首]’ 등에서 수의적으로 사용되었다.

‘ㆆ’과 각자병서는 동국정음 한자음 표기를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일절 찾아볼 수 없다. 10권 1140여 장(약 2300쪽)에서 사이시옷 표기로 쓰인 ‘飮ㆆ字’가 유일하다. 각자병서도 모두 폐지되었으며 이것의 변형으로 추정되는 (5나다라)가 보일 뿐이다. (ㄱ은 앞면, ㄴ은 뒷면을 나타낸다.)

(5) 가. 注 中엣 飮ㆆ字와 得字와 (상1-1:116ㄴ)

나. 엇뎨 修行이 이시리오 가 저흐샤 (상2-1:110ㄴ)

cf. (구결문) 恐…何有修行이리오 가 샤 (상2-1:110ㄱ)

다. 經이 그리 핡가 저허(經이 恐文繁야) (상2-2:136ㄱ)

라.  어느제 다시 迷고 (상2-3:27ㄴ)

(5가)는 후음 전청자 ‘ㆆ’([ˀ])을 무성음인 후행 음절 초성(ㅈ)의 후두화 부호로 이용한 경우이다. (5나다라)의 ‘가, 핡가, 고’는 현실발음으로는 존재하나 표기법에서는 폐지됨으로써 야기되는 조음적 공백을 보상하려는 표기로 해석된다. 폐지되기 전에는 ‘가~까, 가~할까, 고~꼬’ 등으로 표기법에 융통성을 보였으나, 주011)

<정의>같은 문헌에 나타나는 이 같은 양상을 두고 ‘원칙이 없고 혼란스러운 표기법’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 표기법의 원리가 ‘표기의 발음≒표준 발음 실현’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같은 문장 바로 앞뒤에서 두 가지 표기가 나타나는 것은, 표기자에게 ‘융통성’을 부여하여 어느 것이나 선택해 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 가지 표기방법이 허용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당시에도 조음 결과가 서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각각 [hʌlk’a], [halk’a], [hʌlk’o]로 동일한 표면형들이 도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병서 폐지로 ‘가, 할가, 고’로만 적음으로써 철자상 된소리로는 발음되지 않자 이 같은 편법을 써서 된소리 발음을 유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ㆆ’과 각자병서의 공식적 폐지는 『원각경언해』에서 이루어졌지만 폐지를 위한 시험 운용에는 약간의 시차가 있었다. ‘ㆆ’을 없앤 표기가 좀더 이른 문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극히 적은 예이지만, 「석보상절」 등 정음 초기문헌에 ‘-ㄹ’ 다음에 ‘ㆆ’ 또는 각자병서를 쓰지 않은 예가 나타난다. ‘ㆆ’ 폐지가 눈에 띄게 반영된 문헌은 신미(信眉)가 번역한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59년경)의 구결문 표기부터이인데, 앞선 시기 문헌의 구결 표기 ‘디니라, 딘댄’ 등과는 달리 ‘홀디니라, 홀딘댄’ 등으로 나타난다. 이 전통은 「능엄경언해」(1461,2)에도 계승되어 언해문에까지 확대되는데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법화경언해」(1463)에도 ‘ㆆ’을 쓰지 않는 원칙이 이어지며, 세조 10년(1464)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금강경언해」·「반야심경언해」 등 불경언해의 주012)

<정의>세조 10년에 나온 목판본 「아미타경언해」는 세조 7년(1461) 이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활자본을 목판본으로 바꾸어 간행한 데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세조 10년의 국어표기법의 원칙이 적용된 문헌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단순하게 간행연대만 보고 표기법을 논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문헌 간행시기와, 당대의 문헌들에 반영된 표기법이 다른 경우는 간행과 관련된 전후 사정을 면밀히 검토하여 연구하지 않으면 위험한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다.
구결문에는 ‘ㆆ’과 각자병서가 전혀 없는 표기만 보인다. ‘ㆆ’ 폐지라는 표기법 개정의 준비가 시행되기 1년 전에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정우영 1996가:56).

한편, 각자병서를 쓰지 않는 경향은 「능엄경언해」 활자본(1461)부터 나타난다. 구결문에서 어미 ‘-ㄹ’ 다음에 ‘ㅆ’이 아주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ㄸ’이 한두 예가 나타날 뿐 전반적으로 폐지된 모습을 보인다. 주013)

「능엄경언해」의 언해문과 구결문에 뒤섞여 나타난다.
(언해문) 아로미 아닐(1:72), 드리혈(3:2), 다(4:128), 닷젯(9:41)
(구결문) 知ㄹ(1:72), 吸塵(3:2), 知따(4:128), 修…젯(9:40)
이것은 1462년의 목판본에 이어지고, 1463년의 「법화경언해」 언해문의 경우는 6종의 각자병서가 빠짐없이 쓰였지만, 구결문의 경우는 ‘ㅆ’이 간혹 쓰일 뿐 나머지 각자병서는 일절 쓰이지 않는다. 세조 10년(1464) 「선종영가집언해」를 비롯한 불경언해의 ‘구결문’에서는 어떤 종류의 각자병서도 찾아볼 수 없다. 드디어, 세조 11년(1465) 『원각경언해』 전 10권에서 ‘ㆆ’과 각자병서는 동국정운 한자음 표기를 제외하고 언해문과 구결문에서 일괄 폐지된다. 훈민정음 표기법이 성립된 지 불과 20년만의 일이다.

그런데 ‘ㆆ’과 각자병서의 폐지에 대하여는 학자들의 평가가 조금 다르다. ‘ㆆ’은 동국정운음 표기에서 파생된 부가적인 용법이므로 이것의 폐지에 대하여는 이의가 없지만, 각자병서에 대하여는 그간 “급격한 변화, 극적인 변화, 공식주의적인 무리, 과잉조처…” 등으로 평가되어 왔었다(지춘수 1986, 이익섭 1992). 된소리로서의 위치가 확고했던 일부 각자병서(ㅆ·ㆅ)까지 일괄 폐지한 것은 지나친 처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각자병서(전탁)는 이원적인 기능, 즉 국어음에는 된소리, 개신한자음에는 유성무기음(또는 유성유기음)이라는 두 가지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문자정책상 이것의 단일화가 더 시급한 문제로 제기됐을 것이며, 그 결과 이를 국어음 표기에서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정한 것이므로, 정책적인 면에서는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조처였다고 생각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ㆆ’과 각자병서를 폐지한 개정 작업은 종래의 주장처럼 “극적으로, 급격하게” 단시일 내에 급조된 조치가 아니라, 실제로는 1450년대 말 구결문에서부터 시험 운용됨으로써 적어도 5, 6년간의 시험기를 거쳐 혼란과 불편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신중하게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행해진 제2차 표기법 개정은 개신한자음 재구에 필요했던 ‘ㆆ’과 각자병서[전탁]를 폐지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고, 정작 이들 표기 항목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동국정운 한자음 표기에서는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 있으므로, 『원각경언해』에서 행해진 국어표기법 개정 작업은 미완(未完)의 개정(改定)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3.2 방점 표기

『원각경언해』의 방점 표기는 훈민정음 초기문헌인 「훈민정음언해」 등과는 조금 다르지만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서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음 초기문헌은 구결문과 언해문에 모두 방점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서는 언해문에서만 사용하였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1461년 활자본 「능엄경언해」부터 시작된 사실로서, 적어도 15세기 문헌자료에서는 구결문에 방점 표기가 있고 없음이 어떤 문헌의 성립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표지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014)

<정의>간행이나 성립된 시기를 알 수 없는 『아미타경언해』 활자본을 예로 들어보자.
(가) 如是我聞···니 (활자.아미 1ㄴ)
(나) 如是我聞 니 (목판.아미 1ㄴ)
활자본은 (가)처럼 방점이 쓰였으나, 세조 10년에 간행된 (나) 목판본에는 그것이 쓰이지 않았다. 현전 문헌자료 중 구결문에서 방점을 쓰지 않은 문헌의 상한연대는 1461년 「능엄경언해」이므로, (가) 『아미타경언해』 활자본은 대체로 1459년 『월인석보』 이후 1461년 『능엄경언해』 활자본보다 앞선 시기에 성립·간행되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문헌에는 방점 표기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 짙어진다. 정음 초기문헌에는 조사와 활용어미의 마지막 음절이 거성(1점)인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 문헌에는 어말 위치에서 평성(0점)으로 변화해 가는 경향을 보인다. 주015)

<정의>『반야경언해』(금강경언해)에서 그 같은 경향이 일기 시작하며, 성조 표기의 변화를 1464년을 기점으로 제1기와 제2기로 나누었다(김완진 1973:108-110).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이런 경향은 이보다 두어 달 앞서 나온 『선종영가집언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정우영 1996나).
주격의 평성화가 주조를 이루었지만(한재영 1993:156), 처격이나 보조사와의 통합에서, 그리고 부사나 용언의 부사형, 관형사형 등에서도 상당수가 나타난다. (6)은 원간본 계열의 「원각경서」 전 84장을 대상으로 제1기 문헌 표기와 비교·대조해본 것이다. (빗금/ 앞은 제1기 문헌, 뒤는 ‘서’에 나타난 횟수이다.)

(6) 제1기 문헌과의 비교

가. 주격 : ··디(용 8)/··디(2):·디(3),

일·후·미(석9:29ㄱ)/일·후·미(1):일·후미(15)

나. 처격 : :·(석24:7ㄴ)/―(0)::(3)

다. 보조사 : :세·흔(석21:51ㄱ)/:세·흔(1)::세흔(2)

라. 부사 : 그·러·나(석9:10ㄴ)/그·러·나(2):그·러나(6),

반··기(석,서5ㄴ)/―(0):반·기(6),

:엇·뎨(월,서13ㄴ)/:엇·뎨(4)::엇뎨(5),

비·르·서(석11:1ㄴ)/비·르·서(1):비·르서(1)

마. 부사형: :업·서(석9:34ㄴ)/:업·서(3)::업서(4)

바. 관형사형: :업·슨(석6:41ㄱ)/:업·슨(2)::업슨(3)

사. 제1음절이 상성인 2음절어: 어말의 평성화(0)가 일반적 경향

:아·디(석9:13ㄴ)/:아·디(2)::아디(7),

:셰·여(석9:19ㄴ)/―(0)::셰여(1)

cf. :이·리(석6:9ㄱ)/:이·리(3):―(0),

:버·디(석6:19ㄴ)/:버·디(3):―(0)

아. ·누니, ··비치, 空·호미, 구·스리, 나·토미, 뫼·호미, 바·리, 사·교미, 아·리, 아·로미, 靈·호미 외 다수.

1464년에 간행된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에는 어말 평성화의 개신파가 전 문헌에 반영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는 「반야심경언해」가 가장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정우영 1996나). 그러나 그 이듬해에 나온 이 『원각경언해』에서는 어말 평성화의 경향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2음절로 구성된 어절에서, 용언 어간과 어미 ‘-아/어, -디’ 결합시 첫음절이 상성(2점)이면 끝음절은 평성(0점)으로 표기되는 경향이 우세하다. 명사인 경우는 다소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6나다마바사)에서 보듯이, 제1기 문헌에서는 ‘상·거(2·1)’에 전혀 예외가 없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상·평(2·0)’의 경향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3.3 기타 특징적인 표기

첫째, 특이한 사이시옷 표기가 사용되었다. 두 구성요소가 통합될 때 나타나는 경음화 현상을 이 책에서는 (7가)처럼 네 가지 방식으로 적었다.

(7) 가. ① 世間ㅅ法(상2-2:32ㄱ), ② 品ㅂ字(하2-2:20ㄴ), ③ 飮ㆆ字 (상1-1:116ㄴ), ④ 者ㅈ字(상2-2:51ㄴ)

나. 見ㅈ字(상2-2:69ㄱ), 契ㅈ字(상1-2:18ㄴ), 佛ㅈ字(상1-2:37ㄱ), 相ㅈ字(하1-1:45ㄴ), 性ㅈ字(하1-1:45ㄴ), 我ㅈ字(하3-1:2ㄱ), 異ㅈ字(하3-2:52ㄱ), 伊ㅈ字(하2-2:19ㄱ), 正ㅈ字(상1-2:97ㄴ), 鐘ㅈ字(하2-1:47ㄴ) 등.

(7가)의 ①은 정음 초기문헌부터 쓰이던 일반적인 방식으로 전후 환경에 관계없이 〈ㅅ〉을 그 표지로 쓴 것이며, ②는 일찍이 「용비어천가」와 「훈민정음언해」에서 시도된 것으로서, 선행어 말음이 유성음으로 끝난 경우에 말음 ‘ㅁ’과 동일한 서열(양순음)의 전청자 〈ㅂ〉을 그 표지로 쓴 것이다. ③은 ②를 원용한 방식으로 후음 전청자 ‘ㆆ’을 무성음인 후행 음절 초성의 후두화 부호로 이용한 경우이다. 특이한 표기 방식은 ④인데, 후행 음절 ‘字’자의 초성과 동일한 글자 〈ㅈ〉을 썼다. 독자로 하여금 표기자가 의도하는 발음을 가장 근사하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주016)

「법화경언해」와 「선종영가집언해」에도 이 방식이 사용되었다. 萬ㅈ字(법화2:31ㄱ), 可ㅈ字(법화2:49ㄴ). 想ㅈ字(영가,하76ㄱ), 緖ㅈ字(영가,하93ㄱ) 등.
(7나)는 이 책에서 ④의 방식으로 쓰인 목록의 일부이다.

둘째, 모음조화는 훈민정음 초기 문헌보다 규칙성이 덜해졌다. 주017)

이를 종래에는 음운현상의 하나로 간주해 왔으나, 근래에는 국어 표기법의 일종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견해가 새로이 제기되었다. 김동소(1998) 참조.
일반적으로, 모음조화는 형태소의 첫 모음에 따라 그 첫 모음과 같은 부류의 모음이 뒤따르는 동화현상의 하나로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세국어의 모음은 양성모음(ㅏ, ㅗ, 丶)과 음성모음(ㅓ, ㅜ, ㅡ)으로 분류되는데, ‘ㅣ’는 중성모음이라 하여 두 모음 부류와 비교적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나모, 구룸’처럼 주로 한 단어의 내부에서 나타나지만, 체언과 조사(/ 등, / 등), 용언 어간과 어미(‘-아/-어’계 어미)가 연결될 때에도 선행하는 어간의 모음에 따라 규칙적으로 교체 실현되었다(곽충구 1999:152-3).

위의 원칙에서 벗어난 경우를 체언과 조사(/은, /을)를 중심으로, 동일한 체언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경우만 조사하여 (8)에 제시한다. 그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ㄱ」 줄만 제시한다(빗금/의 앞은 정상 표기, 뒤는 예외적 표기이며, 숫자는 출현 횟수이다.).

(8) 覺(7)/은(1), 境을(31)/(4), 空(3)/은(1), 過患(2)/을(2), 功(6)/을(1), 權을(4)/(1), 根本(1)/은(1), 根本(23)/을(3). 합계: 정상(77회. 85%)/예외(14회. 15%) cf. 句는(20)/(13)

한자어 체언과 조사가 결합된 경우를 고유어의 경우와 동등하게 해석할 수는 없지만, 「용비어천가」 등 제1기 문헌에 나타난 예외적 표기가 4.2%로 나타난 데 비해, 「능엄경언해」 등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의 제2기 문헌에서는 평균 13% 정도로 증가했고, 특히 ‘/는, /를’의 경우는 예외가 각각 약 67%, 60%가 되는 환경도 나타나고 있어(한영균 1994:66, 84) 모음조화의 규칙성을 상실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부 사실만으로 이 현상을 성급히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음운현상으로 보든 표기법의 한 기제로 보든 모음조화 원칙을 지키려는 경향은 보이지만 둘다 철저히 지켜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음조화’와 관련하여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진실이 아직 다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훈민정음 중성(모음) 제작과 운용에 음양이론을 주축으로 하는 철학적 배경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당시 주변국의 표기이론도 참고하였을 것이라는 점과, 국어사적으로 ‘丶’가 고대국어 자료에 존재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고, 또한 향가·계림유사·향약구급방·조선관역어 등 국어사 자료에서 모음조화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정음 창제 초기문헌, 특히 첫 문헌인 「용비어천가」에서 가장 철저히 지켜지고 그 이후 문헌에서 점차 약화되며, 16세기 이후 서민들의 언어가 반영된 자료에서는 뚜렷한 규칙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까지를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15세기 한글문헌에 나타난 ‘모음조화’는, 철학적 음양이론을 배경으로 주변국(몽고 등)의 음양대립 표기이론까지 참고하여(김동소 2002), 그들이 가장 이상적인 표준 발음[正音]이라고 판단한 ‘모음조화’ 현상을 표기법으로 제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문자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모음조화’가 지켜지는 국어로 통일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다. 표기법을 제정할 때의 언중들의 발음 현실은 미약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훈민정음 제정에 관한 연구가 좀더 진척되면 그 진실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상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들은 간경도감판 불경언해에 나타난 표기와 음운의 경향과 별로 차이가 없다. 예컨대, 종성표기는 ‘팔종성법’이 적용되었으며(9가), 초성 합용병서 표기도 여전하고(9나), 한자음 표기는 국한혼용으로 한자에는 동국정운 한자음을 주음으로 달았으며(9다), 불교용어의 경우는 「법화경언해」에서 수정된 한자음이 그대로 적용되었다(9라). 다음 (9)에 이 같은 예들을 간략히 제시한다.

(9) 가. 긋니라[←긏-.서4ㄱ], 닛[←-.상1-1:81ㄴ], 닷논[←-.상1-1:8ㄱ], 업다[←없-]

cf. 우[상1-2:107ㄴ], 아(상1-2:14ㄴ)

나. ㅺ(.夢) ㅼ(.汗) ㅽ(.骨) ㅳ(.筏) ㅄ(.種) ㅶ(.伴) ㅴ(.蜜) ㅵ(려.碎)

cf. ㅻ(없음), ㅷ(없음)

다. ·피·와 氣·킝分·뿐·엣 類· 반·기 아·로·미 잇·고(서2ㄴ)

라. 解脫[:·](서57ㄴ), 般若[·:](서78ㄱ), 阿難[·난](서10ㄱ)

阿耨多羅三藐三菩提[·녹당랑삼·먁삼뽕똉]의‘藐’[·먁](하3-1:86ㄱ)

4. 어휘

이 책에 쓰인 어휘는 다양하지 못하다. 불경언해가 대개 단조롭지만, 이 책에는 한자어로 된 추상적인 불교용어가 많으며 고유어 어휘는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다행히도 불경의 본문에 대해 백가서를 동원해 주해한 것도 있고, 난해한 본문은 우리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생활 용어를 이용해 구체적인 비유로 설하고 있어 그나마 귀한 고유어 어휘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어사전과 각종 국어사 자료들을 검색하여 출현 빈도가 드물다고 생각되는 어휘와 새말을 선정, 가나다 순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주018)

<정의>이 목록은 김동소(2001)를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김동소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1) 지다 : 그늘지다.¶녀르멧 진  고깃 무저게 日光 비취욤 업스면 곧 서거 (상,2-2:27ㄱ) cf. 지니 이 수프리오(능2:48)

(2) 래춤 : 가래침.¶가래춤과 곳믈와 고롬과 피와 과(상2-2:27ㄴ) cf. ―(역어유해,상37)

(3) 로 : 따로. 남달리.¶卓 로 난 이라(서2ㄴ)

(4) 둘의 : 둘레[周].¶둘의 四十里니 金몰애 섯거 흐르며(상2-2:154ㄴ)

(5) 들에- : 들레다[喧]. ¶수픐 예 가마괴 들에요 니브며(상1- 2:129ㄴ)

(6) 마치 : 마치. ¶마치 뮈워  번 툐매(하2-1:49ㄱ)

(7) 묏괴 : 들고양이. 살쾡이.¶貍 묏괴라(상1-2:129ㄴ) cf. 狸리 俗呼野猫(자회,상10ㄱ)

(8) 믈드리- : 물들이다[染].¶一綟ㅅ실 믈드료매 一千 올 一萬 오리  빗 이룸  젼라(상1-1:114ㄱ) cf. 덞- : 오직 덞디 아니며(월13:13)

(9) 바ㅎ : 바늘끝[針鋒].¶ 바 셰여(서69ㄴ)

(10) 반되블 : 반딧불이.¶반되브를 가져 須彌山 로려 야도(상2-3:40ㄴ) cf. 반되爲螢(정음해례:용자)

(11) 얌 : 뱀. ¶노 우희 얌 보며(상1-1:61ㄱ)

(12) 새박 : 새벽.¶믄득 새바 거우루로  비취오(서46ㄴ)

(13) 새배 : 새벽.¶사미 새배 華 보다가(상2-3:27ㄴ)

(14) 세우 : 세게. ¶세우 홀 게 전노니(서81ㄴ)

(15) 세닐굽 : 이십일(21).¶닐구블 일워 세닐구빌 二十一輪이 잇거든(하2-2:14ㄱ) cf. 세닐웨  요(석13:57ㄴ)

(16) 쟈래 : 자라.¶海中엣 고기와 쟈래왓 무리 種類ㅣ 各別홈 야(상2-2:84ㄱ)

(17) 조지- : 틀어 매다. ¶冠은 머리 조져 슬시니 나히 스믈힌 저기라(서67ㄴ)

(18) 지즐우- : 누르게 하다. ¶有情을 지즐우며(상1-2:86ㄱ)

cf. 지즐-[壓]. 돌히 플 지즈룸 티 야(목25ㄴ)

(19)  : 막(膜). ¶膜 누네  이라(하3-1:17ㄴ). cf. 頭腦와 과(腦膜)(영가,상25)

(20) 촉촉- : 촉촉하다[潤]. ¶支體 보라오며 촉촉시라(하3-2:28ㄱ)

cf. 히 마니 촉촉도다(肌膚潛活若)(두중14:2)

(21) 타락 : 타락(駝酪). ¶歌羅邏타 예셔 닐오매 열운 타락이니(상2-2:26ㄴ)

cf. 酪 타酪이오(월10:120ㄱ). 駝 : 약대 타(자회,상10ㄴ)

(8)의 ‘믈드리다’는 통사적 구성 ‘믈+들-’에 사동접미사 ‘-ㅣ-’가 결합된 사동사로 이미 「능엄경언해」에 ‘믈드러’(10:9)가 나타난다.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이보다 앞선 문헌에서는 ‘덞-[染]’이 쓰였는데 간경도감판 불경언해부터 ‘믈들-~므들-’형이 쓰이기 시작하여 그 세력이 점차 확장되어 감을 여러 국어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11)의 ‘얌’은 「법화경언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용비어천가」에서 「능엄경언해」까지는 ‘얌’형으로 통일성 있게 쓰였던 사실과 대조적이어서 제시한다. 이것은 제2음절 ‘얌’의 ‘ja’에서 전이음 ‘j’가 앞 음절에 영향을 주어 제1음절이 ‘[pʌ]→[pʌj]’로 ㅣ하향중모음화한 것을 표기에 반영한 것이다.

(15)의 ‘세닐굽’에서 구성요소 ‘세’와 ‘닐굽’은 대등한 가치를 지닌 숫자이다. 「석보상절」에는 날짜 표시어로 ‘세닐웨’가 쓰였는데, 두 어휘의 차이점은 ‘세·닐굽’은 곱한 숫자 ‘이십일(二十一)’이 ‘갯수’를 나타낸 것임에 대해, 후자 ‘세·닐웨’는 뒷자리에 날짜 관련 수사 ‘닐웨[七日]’가 있으므로 둘을 곱한 결과가 ‘스무하루[21일]’라는 ‘날수[日數]’를 가리키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원각경서」에는 “三七이 二十一이 외니라”(서60ㄴ)가 보이는데, 전통적으로 구구셈이 이용된 흔적을 언해문에서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21)의 ‘타락’은 이미 「월인석보」에도 나오므로 희귀어라고 하기 어려우나 한글로 적힌 어휘로는 흔치 않은 예라 소개한다. 「월인석보」의 ‘타酪’에서 ‘타’는 한자어 ‘酡’가 아니라, 「훈몽자회」에 보이듯이, ‘약대’ 즉 낙타의 ‘駝’를 한글로 적은 것이며 ‘酪’은 그대로 ‘젖’을 가리켜 결국 ‘타酪’은 ‘낙타의 젖’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물명고」에 “酪(락)은 낙타의 젖으로 만든 것인데, 지금은 소나 말 젖으로 만든다.”(1:8)는 설명이 우리의 추정에 확신을 준다. 주019)

酪 駝乳所成 今亦牛馬乳造 타락 (물명1:8)

이 밖에도 이 책에는 [부유하다(富)]는 뜻의 ‘가며-’와 ‘가멸-’이 공존하고, [다하다(盡)]는 뜻의 ‘다-’와 ‘다-’, [더하다(加)]는 뜻의 ‘더으-’와 ‘더-’가 공존하는 등, 아직도 더 자세히 밝혀야 할 자료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제, 본문에서 다루어지는 국어학적 해설을 바탕으로 중세국어에 대한 튼튼한 기초를 다지고, 학계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판본 자료의 영인을 계기로 『원각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가 정밀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조선 세조 때의 고승인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와 당시 불교에 높은 식견을 가진 최고의 학자들이 공력을 다해 우리말·글로 옮긴 이 불경언해서를 꼼꼼히 읽어 가는 가운데, 독자들 모두가 이 책에서 설하는 원각(圓覺)에 빠짐없이 도달하기를 기원한다.

〈참고 문헌〉

곽충구(1999), 「모음조화와 모음체계」, 『새국어생활』 9-4(겨울), 국립국어연구원, 150~159 쪽.

김동소(1998), 『한국어 변천사』, 형설출판사.

김동소(2000), 『석보상절 어휘 색인』, 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김동소(2001), 『〈원각경언해〉 어휘 색인』, 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김동소(2002), 『중세 한국어 개설』, 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김영배(2000), 『국어사자료연구』, 월인.

김완진(1973), 『중세국어성조의 연구』, 한국문화연구소(1977, 탑출판사).

김월운(1994), 『원각경 주해』, 동국역경원.

남광우(1997), 『교학 고어사전』, (주)교학사.

법 성(1995), 『원각경관심석』, 큰수레.

서울대학교규장각 엮음(2001), 『규장각소장어문학자료』(어학편 해설), 태학사.

안병희(1979), 「중세어의 한글자료에 대한 종합적 고찰」, 『규장각』 3, 서울대 도서관.

유창돈(1964), 『이조어사전』, 연세대학교출판부.

이기문(1963), 『국어표기법의 역사적 연구』, 한국연구원.

이기문(1972), 『국어음운사연구』, 한국문화연구소(1977, 탑출판사).

이익섭(1992), 『국어표기법연구』, 서울대 출판부.

이현규(1976), 「훈민정음 자소체계의 수정」, 『조선전기의 언어와 문학』, 한국어문학회 편, 형설출판사, 139~168 쪽.

전해주·김호성(1996), 『원각경·승만경』, -본래성불·여래의 길-, 민족사.

정우영(1996가), 『15세기 국어 문헌자료의 표기법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정우영(1996나), 「반야심경언해의 표기법에 대한 음운론적 고찰(Ⅱ)」, 『동악어문논집』 31, 동악어문학회, 77~109 쪽.

정우영(2002), 「한국어 표기법의 정착 과정과 불전언해」, 『한국불교학결집대회논집』 제1집(하), 조직위원회, 556~569 쪽.

지춘수(1986), 『국어표기사연구』, 경희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6).

한글학회(1992), 『우리말 큰사전』 -옛말과 이두-, 어문각.

한영균(1994), 『후기중세국어의 모음조화 연구』,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한재영(1993), 「원각경언해」, 『국어사 자료와 국어학의 연구』, 문학과사상사, 145~158 쪽.

주001)
:「원각경」의 번역자와 번역 연대에 대하여는 이설이 많다. 경(經) 제목에 ‘經’(sūtra)이 ‘修多羅(수다라)’와 함께 중복 사용된 점 등의 이유로 당나라 초기의 위찬(僞撰)이 아닌가 간주되기도 한다. 전해주·김호성(1996:99) 참조.
주002)
:<정의>배휴(裵休)가 지은 ‘약소서(略疏序)’의 주해에 따르면, ① 대방광원각다라니(大方廣圓覺陁羅尼), ② 수다라요의(修多羅了義), ③ 비밀왕삼매(秘密王三昧), ④ 여래결정경계(如來決定境界), ⑤ 여래장(如來藏) 등이다.
주003)
:<정의>권두의 내제 다음에 “御定口訣/慧覺尊者臣僧信眉孝寧大君臣補仁順府尹臣韓繼禧等譯”이란 기록과 황수신의 「진원각경전(進圓覺經箋)」 및 간행에 참여한 박원형(朴元亨)·김수온(金守溫) 등 조조관(雕造官)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주004)
:<정의>대표적인 것으로 이기문(1963, 1972)과 이익섭(1963, 1992), 이현규(1976), 지춘수(1986), 정우영(1996가, 2002) 등을 꼽을 수 있다.
주005)
:<정의>『법화경언해』에는 한문 주해에 『훈민정음』(해례본)과 같은 방식의 구두점이 사용되었다.
주006)
:<정의>한재영(1993:150)에서는 중간본을 이용해 정리하였으로 ‘箋·雕造官’이 권10에 들어 있다. 그러나 간경도감판 언해서들의 원간본의 편찬 체재와, 모처에 비장된 권1 「원각경서」(원간본의 후쇄본)를 참고해 볼 때, ‘箋’과 ‘雕造官’이 권1 「원각경서」 앞에 위치했음이 틀림없다.
주007)
:<정의>권2~권10의 판심제는 각권의 첫장만 “圓覺上○之○” 식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之〉 자가 빠진 채 “圓覺上○○”식으로 되어 있어 권차를 확인하기 어렵다.
주008)
:<풀이>원간본과의 구별은, 내제 다음에 나오는 “御定口訣/慧覺尊者臣僧信眉孝寧大君臣補仁順府尹臣韓繼禧等譯”이란 기록이 있고 없음으로 한다. 안병희(1979) 참조.
주009)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8:663) 참조. ‘원각경’(徐京洙 집필).
주010)
:필자는 이를 국어표기법의 ‘제1차 개정’이라 부른다. 정우영(2002:560) 참조.
주011)
:<정의>같은 문헌에 나타나는 이 같은 양상을 두고 ‘원칙이 없고 혼란스러운 표기법’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 표기법의 원리가 ‘표기의 발음≒표준 발음 실현’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같은 문장 바로 앞뒤에서 두 가지 표기가 나타나는 것은, 표기자에게 ‘융통성’을 부여하여 어느 것이나 선택해 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 가지 표기방법이 허용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당시에도 조음 결과가 서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각각 [hʌlk’a], [halk’a], [hʌlk’o]로 동일한 표면형들이 도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012)
:<정의>세조 10년에 나온 목판본 「아미타경언해」는 세조 7년(1461) 이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활자본을 목판본으로 바꾸어 간행한 데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세조 10년의 국어표기법의 원칙이 적용된 문헌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단순하게 간행연대만 보고 표기법을 논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문헌 간행시기와, 당대의 문헌들에 반영된 표기법이 다른 경우는 간행과 관련된 전후 사정을 면밀히 검토하여 연구하지 않으면 위험한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다.
주013)
:「능엄경언해」의 언해문과 구결문에 뒤섞여 나타난다.
(언해문) 아로미 아닐(1:72), 드리혈(3:2), 다(4:128), 닷젯(9:41)
(구결문) 知ㄹ(1:72), 吸塵(3:2), 知따(4:128), 修…젯(9:40)
주014)
:<정의>간행이나 성립된 시기를 알 수 없는 『아미타경언해』 활자본을 예로 들어보자.
(가) 如是我聞···니 (활자.아미 1ㄴ)
(나) 如是我聞 니 (목판.아미 1ㄴ)
활자본은 (가)처럼 방점이 쓰였으나, 세조 10년에 간행된 (나) 목판본에는 그것이 쓰이지 않았다. 현전 문헌자료 중 구결문에서 방점을 쓰지 않은 문헌의 상한연대는 1461년 「능엄경언해」이므로, (가) 『아미타경언해』 활자본은 대체로 1459년 『월인석보』 이후 1461년 『능엄경언해』 활자본보다 앞선 시기에 성립·간행되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주015)
:<정의>『반야경언해』(금강경언해)에서 그 같은 경향이 일기 시작하며, 성조 표기의 변화를 1464년을 기점으로 제1기와 제2기로 나누었다(김완진 1973:108-110).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이런 경향은 이보다 두어 달 앞서 나온 『선종영가집언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정우영 1996나).
주016)
:「법화경언해」와 「선종영가집언해」에도 이 방식이 사용되었다. 萬ㅈ字(법화2:31ㄱ), 可ㅈ字(법화2:49ㄴ). 想ㅈ字(영가,하76ㄱ), 緖ㅈ字(영가,하93ㄱ) 등.
주017)
:이를 종래에는 음운현상의 하나로 간주해 왔으나, 근래에는 국어 표기법의 일종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견해가 새로이 제기되었다. 김동소(1998) 참조.
주018)
:<정의>이 목록은 김동소(2001)를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김동소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주019)
:酪 駝乳所成 今亦牛馬乳造 타락 (물명1:8)
이전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