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유(拾遺) 두보의 벼슬이 좌습유였기 때문에, 자기를 습유로 부른 것이다. 두보는 45세(757) 4월, 장안을 탈출하여 남루한 몰골로 섬서성 봉상 행재(行在)에서 숙종을 알현하였다. 황제는 두보의 공을 가상히 여겨, 그 해 5월 그를 간관(諫官)인 좌습유(左拾遺)에 임명하였다. 그 해 말, 장안이 관군에 의해 탈환되고, 숙종과 상황(上皇, 현종)이 장안으로 돌아오자, 두보도 장안의 궁정에서 좌습유의 관료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후원자였던 방관(房琯, 697~763)이 패전으로 재상의 직에서 파면되자, 두보도 좌습유의 벼슬을 내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