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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2 : 21ㄱ

許匡廬墓

2 : 21ㄴ

直講許匡居昌縣人爲親廬墓三年 㫌閭
딕강 허광은 거챵현 사이니 어버이 위야 삼년 녀묘니라 졍녀시니라
허광여묘 - 허광이 여묘를 지키다
직강 허광은 거창현 사람이다. 어버이를 위하여 삼 년 시묘를 하였다. 정려를 받았다.
딕강 허광은 거챵현 사이니 : 직강(直講) 허광은 거창현 사람이니.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딕강〉직강’이 되었다. ‘사이니’에서 ‘사’은 동사 ‘다’에 조음소 ‘--’와 명사형 어미 ‘-ㅁ’이 유착하여 이루어진 파생어다. 여기에 서술격조사 ‘-이니’가 통합된 형이다. 조음소는 매개음소라고도 이른다. 발음의 편의와 보존을 위해 두 언어 요소 사이에 첨가되는 모음. 고름소리·연결모음·조성모음·조모음이라고도 한다. 우리말의 경우,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과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어미 사이에 오는 ‘-으-’가 대표적인 예이다. ‘먹+니〉먹으니, 밝+니〉 밝으니, 먹+ㄴ〉먹은, 밝+면〉밝으면’으로 나타난다. ‘가니·가면’ 등과 같이 앞의 어간이 모음으로 끝날 때는 매개모음이 들어가지 않는데, 매개모음이 들어가는 경우와 의미의 차이는 없다. ‘-니, -면, -ㄴ’ 등을 기본형으로 삼고 앞의 어간이 자음으로 끝날 때 매개모음이 삽입된다고 보는 입장은 어미 형태와 의미기능이 1대 1 대응이 될 수 있으므로 설득력이 있으나, 반드시 형태와 기능이 1대 1 대응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온당한 풀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으면’과 ‘-면’을 이형태의 교체로 본다면 매개모음을 설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먹다·먹지’에서처럼 자음을 끝으로 어간과 어미가 연결될 때 모든 경우에 -으-가 삽입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어학 초기에 주로 쓰던 매개모음이라는 개념보다는, ‘으’를 취하는 경우, -으-를 가진 형태를 기본형으로 놓고 앞의 어간이 모음으로 끝날 때 ‘으’가 탈락된다고 보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중세어에서는 ‘-/으-’가 쓰여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조화를 이루었다. 오늘날에는 ‘으’만 쓰인다.
직강(直講) : 조선시대 성균관의 정5품직 관원. 정원은 4인이다. 태조 1년(1392) 7월 새로 반포한 신반관제(新頒官制)에서는 고려 말의 관제를 이어 받았다. 품계는 정5품이고, 정원은 1인으로 설관하였다. 그 뒤 태종 1년(1401) 7월에 관제 개혁 때에도 종전과 같이 정5품에다 정원이 1인으로 했다. 성종 3년(1472) 8월 겸교관제를 되살렸으나 관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성종 8년(1477) 8월에는 학관구임법(學官久任法)을 마련하여 직강 1인을 두게 한 것이 그대로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어 올랐다. 그 뒤 아무 변동 없이 고종 2년(1865)의 『대전회통』까지 그 법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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