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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5 : 29ㄱ

俞氏節行

5 : 29ㄴ

俞氏京都人 正俞大脩至女 察訪金善餘之妻也 夫歿哀毀過禮 絕而復甦祈 寒着單衣期於必死 日啜粟粥四五匙 朔望哭墓 朝夕祭需手自烹 餁服闋不脫喪服 不食菜醬 家無甔儲 必具盛𩛘 日三哭奠芨日 必躬奠于墓與人言未甞見齒 今上朝㫌門
유시 셔올 사이니 유대슈의 이오 찰방 김션여의 안해라 지아비 죽거 슬피 셜워기 녜예 넘게 여 긔졀엳다가 다시 살고 치위예 혿오 니버 반시 주그믈 긔필여 조쥭을 랄로 다 술식 마시고 초 보롬 분묘 울고 됴셕 졔믈을 손조 쟝만더라 거상 매 상복글 벗디 아니며 믈 쟝을 먹디 아니더라 지븨 뎌튝 거시 업스 반시 셩 차반을 쟝만여 날로 번식 울며 버리고 명일 반시 손조 분묘의 버리고 사으로 더브러 말홈매 맏보 니 뵈디 아니더라 금샹됴의 졍문시니라
유씨절행 - 유씨가 절개를 행하다
유씨는 서울 사람이니, 정 유대수(俞大脩)의 딸이고, 찰방 김선여(金善餘)의 아내다. 지아비가 죽자 슬퍼하며, 서러워하기를 예에 넘치게 하여,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고, 큰 추위에 홑옷을 입고, 반드시 죽음을 기약하여, 조로 만든 죽을 하루에 네다섯 숟가락씩 마시고, 초하루 보름에 분묘에 가서 울고, 밤낮으로 제물을 손수 장만하였다. 거상을 마치고도 상복을 벗지 않고, 나물과 장을 먹지 않았다. 집에 저축한 것이 없어도, 반드시 성한 차반을 장만하여 날로 세 번씩 울며 버리고, 다음 날에 반드시 손수 분묘에 버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맛보는 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조정에서 정문을 세웠다.
정(正) : 조선 시대에, 여러 관아에 둔 정삼품 당하관 벼슬.
찰방(察訪) :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
김선여 : 1567(명종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후(伯後), 호는 백천(柏川).
치위예 : 추위에. ‘추위’와 관련하여 가장 이른 시기 어형은 15세기 국어에서 발견되는 ‘치’이다. ‘치’는 ‘-’[寒]에 접미사 ‘-의’가 결합하여 ‘치’가 된 후에 순경음 밑에서 ‘ㅢ’가 ‘ㅟ’로 변화한 것이 ‘추’이다.
차반 : 맛있게 잘 차린 음식.
맏보니 : 맛을 보는 이[齒]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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