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기념사업회세종고전 소개공지사항

세종고전 데이타베이스

특수문자입력기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트위터
URL
Ctrl+C를 눌러 클립보드로 복사하시고 Ctrl+v로 붙여넣기 하세요.

전체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7 : 4ㄱ

命達孝感

7 : 4ㄴ

幼學高命達康津縣人母喪廬墓哀毁過禮不脫絰帶哭泣無時躬自炊爨以供祭祀父病欲啗獐肉山獐自來園中取而進之及歿哭泣之哀奉祭祀之誠一如前喪嘗痛祭物累之忽菌數百本生于籬側連綿不絶 昭敬大王喪心喪三年 今上朝㫌門
유 고명달은 강진현 사이니 어 상의 시묘고 슬피 셜워기 녜예 넘게 고 딜 벋디 아니고 울기 업시 고 몸소 니겨 졔 공급더라 아비 병드러 놀릐고기 먹고져 니 놀리 스스로 동산 가온 오나 가져다가 받다 믿 주그매 울기 슬품과 졔의 졍셩이 티 젼상 더라 일즙 졔믈이 여러 업스믈 셜워니 믄득 버슫 두어 믿티 미 년여 귿디 아니더라 쇼경대왕 상의 심상 삼년 다 금샹됴애 졍문시니라
명달효감 - 고명달이 효도로서 감동시키다
유학 고명달은 강진현 사람이다. 어미의 상사(喪事)에 시묘하고 슬프게 울기를 예법을 넘어 지나치게 하며, 상복과 띠를 풀지 않고 계속하여 울었다. 몸소 이바지 음식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다. 아버지가 병이 나서 노루고기를 먹고 싶어 하매, 노루가 스스로 동산 가운데에서 오거늘 붙잡아다 드시도록 했다. 이어 돌아가시매 슬피 울고 제사를 모시는 정성이 한결같이 앞서의 상례 때와 같았다. 일찍이 제물이 여러 번이나 없음을 서러워하니 갑자기 버섯 수백 개가 울타리 아래 나더니 이어서 그치지 않고 나더라. 선조대왕이 돌아가매 마음으로 심상 삼년을 지냈다.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놀릐 고기 먹고져 니 : 노루의 고기를 먹고자 하여. ‘놀릐’의 단독형은 ‘노로’인데, 음절축약이 일어나면서 여기에 소유격 조사 ‘-의’가 통합, 다시 연철에 따라서 소리가 이어난 것이다. 연철이란, 이른바 훈민정음식 적기다. 오늘날의 한글맞춤법의 기본원리가 바로 이런 적기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연철(連綴) 표기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기법을 말한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기법인 연철 표기를 기본으로 적었다. 중세어에서는 대체로 연철 표기를 지켰다. 이후 근대국어로 넘어오면서 서서히 혼철 표기가 많이 쓰였다. 혼철(混綴) 표기는 거듭적기라고도 한다. 연철 표기에서 분철(分綴) 표기로 가는 과도기적 표기 형태를 말한다. 일종의 잘못적기라고 보면 된다. 17세기 들어서면 혼철 표기가 많이 사용되었다.
버슫 두어 믿티 울 미 나 : 버섯 수백 개가 울타리 밑에 나서. ‘두어’은 ‘2~3백’의 우리말이고, ‘믿티’는 ‘밑이’의 혼철로서, 원문의 ‘본(本)’을 언해한 말이니, 초목을 세는 단위이다.
쇼경대왕 상의 심상 삼년 다 : 소경대왕 국상에 심상 삼년을 치르다. 단모음화에 따라서 ‘쇼경대왕〉소경대왕’으로 소리가 단순화 되었다. 소경대왕은 조선조 선조의 시호다.
심상(心喪) :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존경하는 대상의 죽음에 대하여 마음으로 상례를 치르는 일. 스승과 벗 가운데 정리가 중한 자와, 친척으로서 복이 없으나 정의가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아는 이로서 정분이 두터운 이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초상에 가서 임할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