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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향약제생집성방+책정보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서문
주 1)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의 출전은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권17 〈서류(序類)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이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을 국역본에 덧붙인 것이다. 이 책 해제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권근이 쓴 ≪향약제생집성방≫ 서문과 발문은 ≪양촌집(陽村集)≫ 외에도 ≪동문선≫에 실려 있다(≪양촌선생문집≫ 권17 〈서류 향약제생집성방서〉; ≪양촌선생문집≫ 권22 〈발어류(跋語類) 향약제생집성방발(鄕藥濟生集成方跋)〉; ≪동문선(東文選)≫ 권91 〈서(序)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 ≪동문선(東文選)≫ 권103 〈발(跋) 향약제생집성방발(鄕藥濟生集成方跋)〉). 또한 ≪증보문헌비고≫에는 권근의 서문이 초략되어 있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46 〈예문고(藝文考)5 의가류(醫家類)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원문은 문단 구분이 없으나, 국역문에서는 편의상 문단을 나누었다.
권근(權近) 지음
의약(醫藥)으로 요절(夭折)을 구제하는 것은 인정(仁政)의 한 단서이다. 옛날 신농씨(神農氏)는 기백(歧伯)을 시켜 약초[草木]를 맛보게 하고, 의료를 맡아 질병을 치료하도록 하였다. ≪주례(周禮)≫
주 2)
≪주례(周禮)≫ : 중국 고대의 국가인 주(周) 나라와 전국시대(戰國時代) 여러 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이른바 13경(經)의 하나로서 중시되었으며, ≪주례(周禮)≫·≪예기(禮記)≫·≪의례(儀禮)≫를 묶어 삼례(三禮)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건국을 전후하여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구축하는데 ≪주례≫가 참고되었다. 이 서문을 쓴 권근 역시 ≪주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에 따르면 의정(醫政)을 담당하는 ‘의사(醫師)’
주 3)
의사(醫師) : 고대 중국에서 의료를 담당한 관리이다. ≪주례(周禮)≫ 〈천관(天官) 의사(醫師)〉에 의하면 “의사는 의료의 정령(政令)을 담당한다.[醫師, 掌醫之政令.]”라고 하였다.
가 있어서 약재를 수집하여 치료에 공급하도록 하였다. 그후 유부(兪跗)·편작(扁鵲)·의화(醫和)·의완(醫緩)
주 4)
유부(兪跗)·편작(扁鵲)·의화(醫和)·의완(醫緩) : 유부(兪跗)는 중국 전설상의 양의(良醫)이다. 황제(黃帝)시대에 활약했는데, 치료하면 반드시 완쾌되어 귀신조차 유부를 피했다고 한다. 편작(扁鵲)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의(名醫)로서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다. 장상군(長桑君)에게 배워 의술에 정통하였으며 산부인과, 소아과, 안이비인후과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의화(醫和)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진(秦) 나라의 양의(良醫)로서, 의료에 종사했기 때문에 ‘의(醫)’라는 이름을 썼다. 그는 음양풍우회명(陰陽風雨晦明)의 육기(六氣)가 어그러지면 각각의 질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완(醫緩)도 춘추시대 진 나라의 양의이다. 진후(晉侯)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질병의 위치가 고황(膏肓) 사이에 있음을 정확히 맞춘 것으로 유명하다.
등 의술에 밝은 자들이 역사 기록에 많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책은 모두 전해지지 않는다.
당(唐) 나라 이래로 처방은 계속 늘어났는데, 처방이 많아질수록 의술은 더욱 거칠어졌다. 대체로 고대의 상의(上醫)는 하나의 약물(藥物)로[一物] 하나의 질병을 치료하였는데, 후세의 의원은 약물 숫자를 늘려서 치료에 성공하기를 요행(僥倖)할 뿐이었다. 이에 당(唐) 나라 명의(名醫) 허윤종(許胤宗)
주 5)
허윤종(許胤宗) : 허인종(許引宗)이라고도 부른다. 남조시대(南朝時代) 양(梁)나라 대동(大同) 2년(536)에 태어났지만, 당(唐) 나라 무덕(武德) 9년(626)에 사망하였으므로 본문에서는 당 나라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허윤종은 태후(太后)의 질병을 탕제 대신 훈증요법으로 치료하면서 이름을 떨쳤으며, 수(隋) 나라가 건국된 후에는 당시 유행하던 골증병(骨蒸病) 치료에 크게 공을 세웠다.
의 “사냥하는데 토끼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벌판에 마구 그물을 쳐 놓았다.”는 비웃음이 생겼으니,
주 6)
≪신당서(新唐書)≫의 〈허윤종전(許胤宗傳)〉에 나온다. 의서(醫書)를 집필하여 후세에 남길 것을 권유받은 허윤종의 대답이다. 즉 허윤종은 ‘옛날의 상의(上醫)는 맥을 잘 짚어서 질병을 잘 분별했으므로 질병과 약이 상응하여 약재 하나로 질병을 신속히 고칠 수 있었다. 반면 진맥(診脈)에 서툰 오늘날 의원들은 질병을 억측하면서 많은 약재를 써서 낫기를 요행(僥倖)한다. 비유하자면 사냥할 때 토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들판에 널리 그물을 펼치고서 잡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서 그 기술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나의 약재로 우연히 치료에 성공했더라도, 그 이유는 약재의 성질로 인한 것이어서, 모든 질병에는 사용할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치료가 어렵다는 증거이다. 진맥의 미묘함은 전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헛되이 치료법을 저술하더라도 세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의서를 집필하지 않는 이유이다.’라고 하였다.(≪신당서≫ 권204 〈열전(列傳)129 방기열전(方技列傳) 허윤종(許胤宗)〉.)
참으로 딱맞는 비유였다. 따라서 여러 약물을 섞어서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한 가지 약물로 정확하게 치료하는 것보다 못하다. 오직 질병을 제대로 알고 정밀하게 약물을 쓰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우리 동방(東方)은 중국과 멀다. 이 땅에서 산출되지 않는 약물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을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였다. 하지만 우리 풍속에는 가끔 한 가지 약초로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는데, 그 효과는 매우 좋았다.
일찍이 ≪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이 있었지만 자못 간요(簡要)해서, 아는 사람[論者]들은 그 간략함을 아쉬워하였다. 예전에, 지금의 판문하(判門下)인 권중화(權仲和) 공이 서찬(徐贊)에게 〈처방을〉 더욱 수집하여 ≪간이방(簡易方)≫
주 7)
≪간이방(簡易方)≫ : 이 책은 흔히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이라고 불린다.
을 짓도록 하였으나, 이 책은 미처 세상에 널리 퍼지지 못하였다.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어질고 성스러운 자질로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우시고, 〈사랑과 은혜를〉 널리 베풀고 백성들을 구제하려는[博施濟衆]
주 8)
박시제중(博施濟衆) : ≪논어(論語)≫에 나오는 자공(子貢)과 공자(孔子)의 문답이다. 자공이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仁)이라고 할 만합니까?[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라고 물은 질문을 줄인 표현이다. 공자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이 인(仁)을 넘어 성(聖)의 경지라고 대답하였다.(≪논어≫ 〈옹야(雍也)〉.)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셨다. 언제나 궁핍한 백성들이 병들어도 치료 받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시면서 그들을 매우 측은하게 여기셨다. 좌정승(左政丞)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 공, 우정승(右政丞) 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 공이 전하의 마음을 받들어, 나라 안에[中國]에 제생원(濟生院)
주 9)
제생원(濟生院) : 태조 6년(1397) 8월 23일에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고 혜민국(惠民局)의 예(例)에 준해서 각도로 하여금 매년 향재(鄕材)를 바치도록 하였다(≪태조실록(太祖實錄)≫ 권12 태조 6년 8월 23일). 세종대의 기록에 의하면 제생원은 가회방(嘉會坊)에 자리잡고 있었는데(≪세종실록(世宗實錄)≫ 권93 세종 23년 6월 9일), 관원으로는 지원사(知院事)·영(令)·승(丞)·주부(注簿)·녹사(錄事)가 배치되었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22 〈직관고(職官考)9 제사(諸司)1 제생원(濟生院)〉). 제생원은 인제도(仁濟徒)라고도 불렸는데, 쌀과 베를 수납하여 일종의 운영기금인 보(寶)를 만들고 그 이자로 약재를 구입하였으며, 사환(使喚)으로 부리는 노비와 약 캐는 인부를 두었다. 초창기에는 쌓아 둔 약재가 많아서 요청이 있으면 값을 받지 않고도 지급하였다(≪세종실록(世宗實錄)≫ 권56 세종 14년 6월 29일).
을 설치하여, 노비를 지급하고 향약(鄕藥)을 채취 공급함으로써 약제(藥劑)를 조제하고 널리 베풀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고 건의하였다.
주 10)
제생원(濟生院)의 설치 경위에 대해서는 기록이 상이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은 ≪양촌집≫과 ≪동문선≫에 각각 실려 있다. 본문 즉 ≪양촌집≫에서는 “좌정승 평양백 조준 공, 우정승 상락백 김사형 공이 전하의 마음을 받들어, 중국(中國)에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여 달라고 요청했다.[左政丞平壤伯趙公[]·右政丞上洛伯金公[士衡]上體聖心, 請於中國置濟生院.]”라고 하였다. 마치 중국에 제생원 설치를 요청했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런데 ≪동문선≫에서는 “좌정승 평양백 조준 공, 우정승 상락백 김사형 공이 전하의 마음을 받들어, 나라 안에[國中]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左政丞平壤伯趙公浚·右政丞上洛伯金公士衡, 上體聖心, 請於國中置濟生院.]”라고 하여, 조선에 제생원을 세우려 했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동문선(東文選)≫ 권91 〈서(序)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 아마도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동문선≫의 문장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권근의 서문을 요약하면서, 이 부분을 “평양백 조준, 상락백 김사형이 중국(中國)을 본받아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자고 건의하였다.[平壤伯趙浚·上洛伯金士衡, 請倣中國置濟生院.]”라고 하여, 중국의 사례를 본떠서 제생원을 설치하자고 건의하였다고 한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47 〈예문고(藝文考)5 의가류(醫家類)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중추(中樞) 김희선(金希善) 공은 이 일을 전담하였다. 여러 도(道)에도 의학원(醫學院)
주 11)
의학원(醫學院) : 제생원과 함께 설치된 각 도(各道)의 의학원(醫學院)에서는 교수(敎授)에게 약을 지급하여 치료를 담당하도록 하였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권1). 태종대의 기록에 의하면 평양에 의학원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태종실록(太宗實錄)≫ 권11, 태종 6년 6월 5일).
을 설치하고 교수(敎授)를 나누어 파견하여 똑같이 약을 베풀어서 백성들이 항상 의지하도록 하였다.
또한 처방이 미흡할까 걱정하여, 권공〈권중화〉에게 특별히 관약국(官藥局) 의관을 시켜 여러 처방을 다시 살피고 동인(東人)의 경험방을 수집하여 병문(病門)을 나누고 갈래를 잡아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이라 이름 짓고 우마(牛馬) 치료법을 덧붙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김중추〈김희선〉는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공인(工人)을 모아 목판에 새겨[鋟梓] 널리 퍼뜨렸다. 〈≪향약제생집성방≫에 실린 내용은〉 모두 구하기 쉬운 약물에 이미 효과를 본 치료술들이다. 만약 여기에 정통하게 된다면 한 가지 질병에 한 가지 약물만 사용해도 되니, 굳이 산출되지 않아서 얻기 어려운 것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한 세상[五方]에는 각각 토성(土性)이 있어서 10리(里) 거리면 풍토(風土)가 달라진다. 평소 생활의 음식(食飮), 감정[嗜慾], 맛[酸醎], 기온[寒暖]의 차이에 맞춰 치료 약물도 상이한 약제가 필요하므로, 반드시 중국과 동일할 필요는 없다. 하물며 먼 땅의 약물은 구하다가 얻기도 전에 병이 심해지기도 하고, 가격을 치르고 구하였지만 썩고 좀먹어서 약기운이 이미 새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약기운이 완전하여 귀중한 토산 약물[土物]만 못한 것이다. 따라서 향약(鄕藥)으로 치료하는 것이 반드시 힘은 절약되고 효과는 신속할 것이다. 이 방서의 편찬이 우리 백성들에게 은혜됨이 얼마나 큰가.
전(傳)에 이르기를, “상의는 나라를 치료한다.[上醫醫國.]”
주 12)
상의의국(上醫醫國) : 상의(上醫) 즉 최고의 의사는 나라의 병폐를 치료한다는 뜻으로, 이때 상의는 의원이 아닌 정치가를 가리킨다. ≪국어(國語)≫ 권14 〈진어팔(晉語八) 의화시평공질(醫和視平公疾)〉에 “상의는 나라를 치료하고, 그보다 낮은 의원은 사람을 치료하니 바로 의관이다.[上醫醫國, 其次疾人, 固醫官也.]”라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지금 명철한 분을 만나서 큰 운수[景運]를 열어 도탄에 빠진 백성[生民]들의 고생을 구제하고, 만세토록 이어질 반석(盤石)의 기반을 만들었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쓰면서 다스림에 온 힘을 다하여, 민생을 살리고 국맥(國脉)을 영구히 하는 방안을 더욱 도모하고 있다. 백성들을 어질게 다스리는 정치와 국가를 넉넉하게 만드는 방도에서, 그 근본과 지엽이 함께 드러나고 큰 일과 사소한 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덕분에, 의약(醫藥)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일까지도 곡진해진 것이다. 원기(元氣)를 보호하고 방본(邦本)을 배양하는 것이 이처럼 지극하니 나라를 다스리는[醫國] 방법이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一時]에 어짊을 베풀어 만세(萬世)토록 미치는 은혜를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홍무(洪武) 31년 태세(太歲)[蒼龍]
주 13)
창룡(蒼龍) : 창룡(蒼龍)은 태세성(太歲星) 즉 목성(木星)의 이칭이다. 고대에는 목성의 태양 공전 주기인 12년(정확하게는 11.86년)을 기준으로 시간을 이해하였다. 목성의 위치가 하늘의 어디에 있느냐를 기준으로 그 해를 이해하였므로 태세력(太歲曆)은 12년 주기가 된다. 따라서 태세를 지칭하는 본문의 창룡(蒼龍)은 ‘시간’, ‘때’ 정도의 의미이다.
무인년(戊寅年
조선 태조 7년, 1398년
) 여름 6월 하순.
鄕藥濟生集成方序. 醫藥以濟扎瘥, 仁政之一端也. 昔神農氏使歧伯甞草木, 典醫療疾. 周禮有醫師掌醫之政, 令聚藥以共醫事. 厥後善醫者兪扁和緩之徒, 現於典記者多矣. 然其書皆不傳. 自唐以來其方世增, 方愈多而術益踈. 盖古之上醫, 唯用一物以攻一疾, 後世之醫, 多其物以幸有功. 故唐之名醫許胤宗有獵不知兔, 廣絡原野之譏, 眞善喩也. 然則合衆藥而治一病, 不若用一物之爲切中也. 但難精於知病而用藥耳. 吾東方遠中國. 藥物之不産玆土者, 人固患得之之難也. 而國俗往往能以一草而療一病, 其效甚驗. 甞有三和子鄕藥方, 頗爲簡要, 論者猶病其畧. 曩日今判門下權公[仲和], 命徐贊者尤加蒐輯, 著簡易方, 其書尙未盛行于世. 恭惟我主上殿下仁聖之資, 受命開國, 博施濟衆之念, 靡所不至. 每慮窮民病莫得醫, 深用惻然. 左政丞平壤伯趙公[], 右政丞上洛伯金公[士衡]上體聖心, 請於中國置濟生院, 給之奴婢, 採取鄕藥, 劑和廣施, 以便於民. 中樞金公[希善]悉掌其事. 諸道亦置醫學院, 分遣敎授, 施藥如之, 俾其永賴. 又患其方有所未備, 乃與權公特命官藥局官更考諸方, 又採東人經驗者, 分門類編, 名之曰鄕藥濟生集成方, 附以牛馬醫方. 而金中樞觀察江原, 募工鋟梓, 以廣其傳. 皆易得之物, 已驗之術也. 苟精於此, 則可能一病用一物, 何待夫不産而難得者哉. 且五方皆有性, 十里不同風. 平居之時, 食飮嗜慾酸醎寒暖之異宜, 則對病之藥, 亦應異劑, 不必苟同於中國也. 况遠土之物, 求之未得而病已深, 或用價而得之, 陳腐蠧敗, 其氣已泄. 不若土物氣完而可貴也. 故用鄕藥而治病, 必力省而效速矣. 此方之成, 其惠斯民爲如何哉. 傳曰, 上醫醫國. 方今明良相逢, 肇開景運, 以拯生民塗炭之苦, 以建萬世盤石之基. 夙夜孜孜, 盡心於治, 益圖所以活民生, 而壽國脉者. 仁民之政, 裕國之道, 本末兼擧, 大小畢備, 以至醫藥療疾之事, 亦拳拳焉. 調護元氣, 培養邦本, 如此其至, 其醫國也大矣. 仁被一時, 澤流萬世者, 豈易量也哉. 洪武三十一年蒼龍戊寅夏六月下澣.
주1)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의 출전은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권17 〈서류(序類)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이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을 국역본에 덧붙인 것이다. 이 책 해제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권근이 쓴 ≪향약제생집성방≫ 서문과 발문은 ≪양촌집(陽村集)≫ 외에도 ≪동문선≫에 실려 있다(≪양촌선생문집≫ 권17 〈서류 향약제생집성방서〉; ≪양촌선생문집≫ 권22 〈발어류(跋語類) 향약제생집성방발(鄕藥濟生集成方跋)〉; ≪동문선(東文選)≫ 권91 〈서(序)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 ≪동문선(東文選)≫ 권103 〈발(跋) 향약제생집성방발(鄕藥濟生集成方跋)〉). 또한 ≪증보문헌비고≫에는 권근의 서문이 초략되어 있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46 〈예문고(藝文考)5 의가류(醫家類)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원문은 문단 구분이 없으나, 국역문에서는 편의상 문단을 나누었다.
주2)
≪주례(周禮)≫ : 중국 고대의 국가인 주(周) 나라와 전국시대(戰國時代) 여러 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이른바 13경(經)의 하나로서 중시되었으며, ≪주례(周禮)≫·≪예기(禮記)≫·≪의례(儀禮)≫를 묶어 삼례(三禮)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건국을 전후하여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구축하는데 ≪주례≫가 참고되었다. 이 서문을 쓴 권근 역시 ≪주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주3)
의사(醫師) : 고대 중국에서 의료를 담당한 관리이다. ≪주례(周禮)≫ 〈천관(天官) 의사(醫師)〉에 의하면 “의사는 의료의 정령(政令)을 담당한다.[醫師, 掌醫之政令.]”라고 하였다.
주4)
유부(兪跗)·편작(扁鵲)·의화(醫和)·의완(醫緩) : 유부(兪跗)는 중국 전설상의 양의(良醫)이다. 황제(黃帝)시대에 활약했는데, 치료하면 반드시 완쾌되어 귀신조차 유부를 피했다고 한다. 편작(扁鵲)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의(名醫)로서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다. 장상군(長桑君)에게 배워 의술에 정통하였으며 산부인과, 소아과, 안이비인후과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의화(醫和)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진(秦) 나라의 양의(良醫)로서, 의료에 종사했기 때문에 ‘의(醫)’라는 이름을 썼다. 그는 음양풍우회명(陰陽風雨晦明)의 육기(六氣)가 어그러지면 각각의 질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완(醫緩)도 춘추시대 진 나라의 양의이다. 진후(晉侯)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질병의 위치가 고황(膏肓) 사이에 있음을 정확히 맞춘 것으로 유명하다.
주5)
허윤종(許胤宗) : 허인종(許引宗)이라고도 부른다. 남조시대(南朝時代) 양(梁)나라 대동(大同) 2년(536)에 태어났지만, 당(唐) 나라 무덕(武德) 9년(626)에 사망하였으므로 본문에서는 당 나라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허윤종은 태후(太后)의 질병을 탕제 대신 훈증요법으로 치료하면서 이름을 떨쳤으며, 수(隋) 나라가 건국된 후에는 당시 유행하던 골증병(骨蒸病) 치료에 크게 공을 세웠다.
주6)
≪신당서(新唐書)≫의 〈허윤종전(許胤宗傳)〉에 나온다. 의서(醫書)를 집필하여 후세에 남길 것을 권유받은 허윤종의 대답이다. 즉 허윤종은 ‘옛날의 상의(上醫)는 맥을 잘 짚어서 질병을 잘 분별했으므로 질병과 약이 상응하여 약재 하나로 질병을 신속히 고칠 수 있었다. 반면 진맥(診脈)에 서툰 오늘날 의원들은 질병을 억측하면서 많은 약재를 써서 낫기를 요행(僥倖)한다. 비유하자면 사냥할 때 토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들판에 널리 그물을 펼치고서 잡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서 그 기술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나의 약재로 우연히 치료에 성공했더라도, 그 이유는 약재의 성질로 인한 것이어서, 모든 질병에는 사용할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치료가 어렵다는 증거이다. 진맥의 미묘함은 전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헛되이 치료법을 저술하더라도 세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의서를 집필하지 않는 이유이다.’라고 하였다.(≪신당서≫ 권204 〈열전(列傳)129 방기열전(方技列傳) 허윤종(許胤宗)〉.)
주7)
≪간이방(簡易方)≫ : 이 책은 흔히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이라고 불린다.
주8)
박시제중(博施濟衆) : ≪논어(論語)≫에 나오는 자공(子貢)과 공자(孔子)의 문답이다. 자공이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仁)이라고 할 만합니까?[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라고 물은 질문을 줄인 표현이다. 공자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이 인(仁)을 넘어 성(聖)의 경지라고 대답하였다.(≪논어≫ 〈옹야(雍也)〉.)
주9)
제생원(濟生院) : 태조 6년(1397) 8월 23일에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고 혜민국(惠民局)의 예(例)에 준해서 각도로 하여금 매년 향재(鄕材)를 바치도록 하였다(≪태조실록(太祖實錄)≫ 권12 태조 6년 8월 23일). 세종대의 기록에 의하면 제생원은 가회방(嘉會坊)에 자리잡고 있었는데(≪세종실록(世宗實錄)≫ 권93 세종 23년 6월 9일), 관원으로는 지원사(知院事)·영(令)·승(丞)·주부(注簿)·녹사(錄事)가 배치되었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22 〈직관고(職官考)9 제사(諸司)1 제생원(濟生院)〉). 제생원은 인제도(仁濟徒)라고도 불렸는데, 쌀과 베를 수납하여 일종의 운영기금인 보(寶)를 만들고 그 이자로 약재를 구입하였으며, 사환(使喚)으로 부리는 노비와 약 캐는 인부를 두었다. 초창기에는 쌓아 둔 약재가 많아서 요청이 있으면 값을 받지 않고도 지급하였다(≪세종실록(世宗實錄)≫ 권56 세종 14년 6월 29일).
주10)
제생원(濟生院)의 설치 경위에 대해서는 기록이 상이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은 ≪양촌집≫과 ≪동문선≫에 각각 실려 있다. 본문 즉 ≪양촌집≫에서는 “좌정승 평양백 조준 공, 우정승 상락백 김사형 공이 전하의 마음을 받들어, 중국(中國)에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여 달라고 요청했다.[左政丞平壤伯趙公[<원주>浚]·右政丞上洛伯金公[<원주>士衡]上體聖心, 請於中國置濟生院.]”라고 하였다. 마치 중국에 제생원 설치를 요청했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런데 ≪동문선≫에서는 “좌정승 평양백 조준 공, 우정승 상락백 김사형 공이 전하의 마음을 받들어, 나라 안에[國中]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左政丞平壤伯趙公浚·右政丞上洛伯金公士衡, 上體聖心, 請於國中置濟生院.]”라고 하여, 조선에 제생원을 세우려 했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동문선(東文選)≫ 권91 〈서(序)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 아마도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동문선≫의 문장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권근의 서문을 요약하면서, 이 부분을 “평양백 조준, 상락백 김사형이 중국(中國)을 본받아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자고 건의하였다.[平壤伯趙浚·上洛伯金士衡, 請倣中國置濟生院.]”라고 하여, 중국의 사례를 본떠서 제생원을 설치하자고 건의하였다고 한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47 〈예문고(藝文考)5 의가류(醫家類)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주11)
의학원(醫學院) : 제생원과 함께 설치된 각 도(各道)의 의학원(醫學院)에서는 교수(敎授)에게 약을 지급하여 치료를 담당하도록 하였다(≪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권1). 태종대의 기록에 의하면 평양에 의학원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태종실록(太宗實錄)≫ 권11, 태종 6년 6월 5일).
주12)
상의의국(上醫醫國) : 상의(上醫) 즉 최고의 의사는 나라의 병폐를 치료한다는 뜻으로, 이때 상의는 의원이 아닌 정치가를 가리킨다. ≪국어(國語)≫ 권14 〈진어팔(晉語八) 의화시평공질(醫和視平公疾)〉에 “상의는 나라를 치료하고, 그보다 낮은 의원은 사람을 치료하니 바로 의관이다.[上醫醫國, 其次疾人, 固醫官也.]”라고 하였다.
주13)
창룡(蒼龍) : 창룡(蒼龍)은 태세성(太歲星) 즉 목성(木星)의 이칭이다. 고대에는 목성의 태양 공전 주기인 12년(정확하게는 11.86년)을 기준으로 시간을 이해하였다. 목성의 위치가 하늘의 어디에 있느냐를 기준으로 그 해를 이해하였므로 태세력(太歲曆)은 12년 주기가 된다. 따라서 태세를 지칭하는 본문의 창룡(蒼龍)은 ‘시간’, ‘때’ 정도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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