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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훈언해+책정보

하41ㄱ

女녀訓훈後후序셔
恭공惟유我아章쟝聖셩慈仁인皇황太태后후ㅣ 昔셕在藩번邸뎌샤 承승恭공睿예獻헌皇황帝뎨刑형于우之지化화샤 嘗상著뎌爲위女녀訓훈一일集집샤 雖슈已이梓刻而이傳뎐播파未미廣광也야ㅣ러니 近근者쟈애 我아 皇황上상ㅣ 於어宮궁中듕애 表표而이出츌

하41ㄴ

之지샤 乃내命명儒유臣신샤 章쟝分분句구析셕야 以이爲위直딕解고 於어是시에 卜복日일具구儀의야 請쳥于우聖셩母모샤 躬궁授슈妾쳡於어座좌前젼ㅣ어시 敬경承승聖셩母모訓훈旨지云운內治티ㅣ 以이助조外외政졍고 淑슉女녀ㅣ 以이配君군子니 爾이旣긔嗣位위女녀長댱니 不블可가不블務무其기職직ㅣ니 自

하42ㄱ

今금伊이始시以이吾오昔셕著뎌女녀訓훈으로 授슈爾이노니 爾이宜의勤근力녁勉면脩슈야 庶셔不블負부吾오의 著뎌書셔以이望망於어將쟝來之지意의노니 爾이惟유體톄之지敬경之지야 勿믈忽홀勿믈忘망라 妾쳡ㅣ 拜命명而이退퇴야 再稽계首슈而이言언曰왈 嗚오呼호至지矣의라 我아聖셩母모之지盛셩心심也야여 其기所소以이述슐宣션陰음敎교야 助조理리王왕

하42ㄴ

化화ㅣ 誠셩足죡以이垂슈範범于우天텬下하萬만世셰니 可가寶보也야哉뎌 考고之지本본朝됴니 洪홍武무初초則즉有유女녀誡계고 永영樂낙初초則즉有유內訓훈니 宜의與여是시編편으로 並병傳뎐無무疑의니 其기視시昔셕人인所소撰찬女녀憲헌女녀敎교諸졔書셔컨댄 詎거可가同동日일語어哉리오 夫부 家가國국之지興흥ㅣ 本본于우內治티니 閨규

하43ㄱ

門문之지地디 萬만化화基긔之지라 前젼乎호唐당虞우以이底지于우商샹周쥬며 後후乎호秦진漢한以이迄흘于우唐당宋송히 其기賢현后후哲텰妃비와 貞뎡婦부淑슉女녀늘 班반班반可가考고ㅣ니 若약其기家가法법之지正졍而이嚴엄며 周쥬而이密밀은 則즉未미有유如여我아國국朝됴之지超툐越월千쳔古고야 莫막之지並병焉언者쟈也야ㅣ라 盖개其기敬

하43ㄴ

경順슌之지儀의와 端단貞뎡之지風풍ㅣ 自 高고皇황后후ㅣ 啓계於어前젼시며 文문皇황后후ㅣ 繼계於어後후而이我아 列녈后후則즉以이續쇽以이承승샤 迄흘今금 聖셩母모皇황太태后후샨 則즉尤우備비焉언니 妾쳡ㅣ 方방侍시敎교 慈宮궁야 耳이所소熟슉聞문이라 不블俟遠원求구諸졔古고야 得득我아師焉

하44ㄱ

언호라 是시訓훈也야ㅣ 其기文문ㅣ 凡범若약干간言언ㅣ오 其기目목ㅣ 凡범十십有유二이어니와 然연究구其기要요則즉不블踰유乎호敬경而이已이矣의라 夫부敬경은 德덕之지聚也야ㅣ니 禮녜云운必필敬경必필戒계야 毋무違위夫부子라 니 敬경은 斯無무違위也야니라 仰앙惟유我아皇황上샹ㅣ 純슌孝효深심仁인ㅣ 本본於어天텬性셩ㅣ라 雖슈處쳐深심宮궁시나 無

하44ㄴ

무異이臨님朝됴而이至지敬경之지化화ㅣ 刑형焉언니 妾쳡以이菲비德덕으로 乃내獲획上샹配至지尊존니 恒惕텩惕텩然연懼구弗블能능爲위六뉵宮궁之지長댱야 日일惟유誦숑味미是시編편야 念념玆敬경玆야 以이求구無무忝텸於어光광訓훈云운노라
女녀訓훈 훗序셔ㅣ라
恭공惟유 우의[리] 章쟝聖셩慈仁인 시회라】皇황太태后후ㅣ 藩번邸뎌藩번邸뎌 藩번왕의 집이라】

하45ㄱ

겨샤 恭공睿예獻헌【이  시회라】皇황帝뎨의 刑형신 化화 니샤 일즙 女녀訓훈 集집을 지으샤 비록 이믜 판애 사기셔도 뎐파 너비 못엿더니 요이 우리 皇황上샹이 宮궁中듕에셔 表표야 내샤 션븨옛 신하[] 命명샤 章쟝을 호며 句구 버혀 直딕解 고 이에 날을 고 법을 초와 聖셩母모 請쳥샤 친히 妾쳡을 座좌前젼의셔 주셔 공敬경야 聖셩母모의 치시 을 닏오니

하45ㄴ

샤 안헤 다리 거시 政졍 돕고 이[어]딘 겨집이 君군子 니 이믜 位위 겨집 어룬의게 니어시니 가히 職직분을 힘디 아니티 못 거시니 이제브터 비로소 근 女녀訓훈으로 너 주노니 맛당히 힘을 브즈리[러]니 야 힘써 닷가 거의 내의 그라 將쟝來 라 을 져리디 아니콰댜 노니 오직 體톄며 공敬경야 만忽홀이 말며 닛디 말라 妾쳡이 命명을 절고

하46ㄱ

머리 굽솝고 닐러 오 슬프다 지극디라 우리 聖셩母모의 盛셩신 이여 겨집의 치 거 그라 베퍼 王왕化화 도아 다리 진실로 足죡히 법을 天텬下하萬만歲셰예 드리울 거시니 可가히 寶보롭다 本본朝됴에 샹考고니 洪홍武무년회라】처엄은 女녀戒계 잇고 永영樂낙【다 년회라】처엄은 內訓훈이 이시니 맛당이 編편으로 더브러 가지로 傳뎐미 疑의심 업니 사의

하46ㄴ

女녀憲헌 女녀敎교 모 글로 보건댄 엇디 可가히 날 니리오 집과 나라희 니러나기 안해 다리 근본니 閨규門문읫  일萬만 교化화ㅣ 텨[터] 디라 알로 唐당과 虞우ㅅ나라로 商샹과 周쥬ㅅ나라해 니르며 후로 秦진과 漢한나라로 唐당과 宋송나라해 니르히 어딘 后후ㅣ며 어딘 妃비와 貞뎡 婦부인이며 어딘 겨집을 班반班반히 可가히 샹考고 거시니 만일 家가法법의

하47ㄱ

졍고 嚴엄며 周쥬편고 샹密밀홈은 우리 國국朝됴의 千쳔古고에 여너머 오리 업만 니 잇디 몯디라 敬경順슌 법과 端단貞뎡 風풍쇽이 高고皇황后후로브터 前젼에 여시며 文문皇황后후ㅣ 後후에 니시고 우리 모 황后후ㅣ 니으시며 니샤 이젯 聖셩母모 皇황太태后훗게 니르러 더옥 시니 妾쳡이 뵈야로 慈宮궁 치시믈 뫼와 귀예 닉이 든 배라 멀리 녜예 求구홈

하47ㄴ

기드리디 아니야 스승을 어덧노라 訓훈이 글이 므릇 혀나믄 말이오 됴目목이므릇 열둘히어니와 그러나 종要요 궁究구면 敬경에 넘디 아닐 이라 敬경은 德덕의 모닷 거시니 녜예 닐오 반시 공敬경며 반시 경戒계야 나 어긔롯디 말라 니 敬경은 어긔로오미 업이라 우리 皇황上샹의 純슌젼신 孝효와 기프신 仁인이 天텬性셩에 근本본여 겨신디라 비록 기픈 宮궁에

하48ㄱ

겨시나 朝됴회예 臨님심과 다미 업서 至지극이 공敬경신 교化화ㅣ 나타나니 妾쳡이 菲비박 德덕으로 우호로 至지尊존 오믈 엇오니 恒샹 두리워 能능히 六뉵宮궁의 長댱이 되디 못가 젓와 날노 오직 編편을 외와 맛드려 이 각며 이 공敬경야 빗난 교訓훈에 업스믈 求구노라

하48ㄴ

嘉가靖졍九구年년 十십二이月월二이十십六뉵日일
여훈 후서
삼가 공경하여 생각건대 우리 장성자인(章聖慈仁)【이 넉 자는 시호(諡號)이다.】황태후(皇太后)께서 옛날 번저(藩邸)【번저는 번왕(藩王)의 집이다.】에 계실 때 공예헌(恭睿獻)【이 석 자는 시호이다.】 황제께서 창도(唱導)하고 황후께서 이를 따르시어 일찍이 『여훈』 한 책[集]을 지으셨다. 이렇게 비록 이미 판목(版木)에 새기셨지만 널리 전파하지 못하였더니 요즘 우리 황제(명 세종)께서 궁중에서 생각을 나타내시고 유신(儒臣)들에게 명하시어 책의 내용을 장(章)으로 나누고 구(句)를 분석하여 그것으로 직해(直解)를 만들게 하고는 이에 점을 쳐 좋은 날을 가리고 법식(法式)을 갖추어 성모(聖母)께 청하셔서 친히 부족한 저에게 받들어 모신 자리에서 〈직해를〉 주셨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성모의 가르치시는 뜻을 이어받으니, 이르시기를, “부인이 안살림을 다스림으로써 밖의 정치에 관계되는 일을 돕고, 어진 아내가 곧 남편을 상대할 만하니 네가 이미 그 지위를 여자 어른으로서 이었으므로 마땅히 그 직분에 힘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비로소 내가 예전에 만든 『여훈』을 네게 주노니 네가 마땅히 힘을 부지런히 다하고 힘써 닦아 거의 나의 글로 책을 만들어 그것으로 장래를 바라는 뜻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네가 오직 본받으며 공경하여 무심하고 소홀히 하지 말며 잊지 마라.”라고 하셨다. 부족한 제(명 세종의 황후)가 명(命)을 정중히 받고 물러나 두 번 머리를 조아리고 일러 말하기를, “오호라! 지극하도다. 우리 성모의 왕성하신 마음이여! 이것으로 여자에게 가르치는 것을 만들고 베풀어서 임금의 교화를 도와 그 다스리는 바가 진실로 넉넉히 모범을 온 천하에 영원히[萬世] 드리울 것이니 마땅히 보배로운 일이옵니다.” 하였다. 지금의 왕조에서 상세히 검토해 보니, 홍무(洪武)【이는 연호이다.】초(初)에는 『여계』(女戒)가 있었고, 영락(永樂)【이는 연호이다.】 초(初)에는 『내훈』(內訓)이 있었으므로 마땅히 이 책[編]과 더불어 한가지로 전해 온 것이 틀림없는데, 그 옛날 사람이 만든 바인 『여헌』(女憲) 『여교』(女敎)의 모든 글로 보건대 차이가 커서 어찌 가히 함께 비교하거나 거론할 수 있겠는가? 그 집과 나라가 흥하는 것은 부인이 안살림을 다스리는 데에 근본이 있으므로 규문(閨門)의 터는 만(萬) 가지 교화(敎化)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 전으로는 당(唐, 堯)나라와 우(虞, 舜)나라에서부터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후로는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에서부터 당(唐)나라와 송(宋)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어진 왕후와 어진 왕비, 절개가 굳은 아내와 어진 여자들은 그 근거가 분명하여 상세히 참고하거나 검토할 수 있으니, 그 집안의 법도가 바르고 엄하며 모든 면에 두루 걸치고 자상하여 세밀함은 우리나라 조정의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맞서서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의 사람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 공경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법과 바르고 곧은 풍속을 명나라 태조의 비 고황후(高皇后)가 일찍이 여시고, 제3대 성조(成祖)의 비 문황후(文皇后)가 뒤를 이으시며, 그 밖에 우리 모든 황후가 잇고, 또 이으셔서 이제 성모(聖母)이신 장성자인황태후(章聖慈仁皇太后. 11대 세종의 모후)께 이르러서는 더욱 갖추었으니, 부족한 제가 바야흐로 황태후께 가르치심을 받자와 귀에 익히 듣는 바이다. 멀리 옛것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 스승을 얻게 되었도다. 이 교훈은 그 글이 무릇 약간의 말로 되어 있고, 그 조목(條目)은 무릇 열두 조목으로 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 중요한 뜻을 깊이 연구하면 공경함을 넘지 않을 뿐이다. 그 공경은 덕을 모은 것이므로 예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공경하며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을 어기지 말라.” 하였으니, 공경은 어김이 없음을 말한다. 우리 임금님의 완전하신 효와 깊으신 어짐이 천성에 바탕하여 계시므로 비록 깊은 궁궐에 계시지만 조회(朝會)에 나오실 때와 다름이 없이 지극히 공경하신 교화(敎化)가 나타나서, 부족한 제가 비박(菲薄)한 덕이지만 위로 임금님께 상대가 됨을 얻었사오니 항상 두려워서 능히 여섯 궁(宮)의 어른이 되지 못할까 염려되는 바이다. 매일 오직 이 편찬한 것을 외워서 음미하고 이를 생각하며 이를 공경함으로써 빛난 교훈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을 구하도다.
중종 25년 (가정(嘉靖) 9년, 1530년) 12월 26일.
공유(恭惟) : 삼가 공경하고 생각함.
장성자인황태후(章聖慈仁皇太后) : 쟝셩인황태후. 명나라 11대 세종의 모후(母后). ‘황태후’는 황제의 살아 있는 어머니를 가리킨다.
시회라 : 시호(諡號)+-ㅣ라(서술격 조사). 시호(諡號)이다. 시호(諡號)는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 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을 말한다.
: 옛날[昔].
번저(藩邸) : 번뎌. 번왕의 집.
번(藩)왕 : 변방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 번왕(藩王)이라는 것은 왕예(왕의 작위를 가진 사람에 대한 존칭)의 직책으로 선황제의 아들이나 손자 중 황제의 지위를 계승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주로 현재 황제의 삼촌, 형제, 조카들이 해당된다.
공예헌황제(恭睿獻皇帝) : 공예헌황뎨. 명나라 8대 헌종의 아들로서 9대 효종의 이복 동생이다. 원래는 흥원왕이었으나 후에 그의 아들 세종(世宗)이 11대 황제가 되면서 세종은 그의 생부(生父)인 흥원왕을 황제로 추존하였다. 후비(后妃)는 장성자인황태후(章聖慈仁皇太后)이다.
형(刑)신 화(化) 니샤 : 지아비가 창도(唱導)하고 지어미가 따르시어.
일즙 : 일찍. 이 책에는 ‘일즉’의 형태도 나타난다. ¶일즉 睿主ㅅ겨틔 뫼오아(상:28ㄱ).
집(集) : 모아 엮은 책.
: 인쇄를 위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새긴 나무. 또는 그런 재료로 쓰이는 목판. 판(版).
사기셔도 : 사기-[刻]+-시-(주체 높임 선어말어미)+-어도(종속적 연결어미). 새기셔도.
뎐파 : 전하여 널리 퍼뜨림. 전파(傳播).
너비 : 넙-[廣]+-이(부사 접미사). 널리.
황상(皇上) : 황샹. 현재 살아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황제를 이르는 말.
표(表)야 : 나타내어.
호며 : 나누며. 중세 국어에서 어간말 음절이 ‘-호-’인 동사로서 ‘호다’[分]를 비롯해서 ‘견호다[比], 호다[學], 싸호다[鬪], 달호다[治]’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유성음 사이에서 ‘-호-’의 ㅎ이 탈락하고 모음 ㅗ는 ㅜ로 교체되어 현재의 ‘나누다, 겨누다, 배우다, 싸우다, 다루다’가 되었다.
버혀 : 베어[割]. 한문 원문에는 ‘버혀’에 대응하는 한자가 ‘析’으로 되어 있어 이에 따라 ‘분석하여’로 풀이한다.
직해(直解) : 딕. 단어나 구절의 뜻 그대로 풀이함.
고 : 가리고. 분별하고.
초와 : 초-[具]+-아(연결어미). 갖추어. ‘초아’가 ‘초와’로 된 것은 어간 말음 ㅗ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성모(聖母) : 셩모. 백성이 임금의 아내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첩(妾) : 쳡. 여기의 ‘첩(妾)’은 예전에, 결혼한 여자가 윗사람을 상대할 때 자기를 낮추어 이르던 1인칭 대명사로 쓰인 말이다.
좌전(座前) : 좌젼. 받들어 모시는 자리 아래.
을 : 뜻을. 원래는 ‘’이었으나 말음 ㄷ과 ㅅ의 혼란으로 ‘’이 되었다. ‘’의 표기도 이 책에 등장한다. ¶을 져리디 아니콰댜 노니(하:45ㄴ).
닏오니 : 닛-[承]+-오-(객체 높임 선어말어미)+-니(종속적 연결어미). 계승하니. 말음의 ㄷ과 ㅅ의 혼란으로 동사 ‘닛-’이 ‘닏-’으로 나타난 것이다.
안헤 다리 거시 : 부인이 안살림을 다스리는 것이.
: 밖. ‘’[外]이 휴지(休止)나 자음 앞에서는 ‘밧’으로 교체된다.
군자(君子) : 군.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예전에, 아내가 자기 남편을 이르던 말.
힘디 : 힘쓰지[務]. 한편으로 같은 장(張)에서 ‘힘써’가 쓰인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는 ㅄ과 ㅆ이 동일한 된소리의 서로 다른 표기에 불과함을 나타낸 것이다. ¶브즈러니 야 힘써 닷가(하:45ㄴ).
체(體)며 : 톄며. 본받으며.
만홀(忽)이 : 무심하고 소홀하게.
닛디 : 잊지[忘].
명(命)을 절고 : 명령이나 임명을 정중하게 받고. 배명(拜命).
믈러 : 물러나.
굽솝고 : 굽히고. ‘굽솝고’는 어간 ‘굽-[屈]’에 객체 높임의 ‘--’이 연결된 형태로 보인다. 이 책에는 객체 높임의 선어말어미 ‘--, --’이 각각 ‘-좁-, -솝-’으로 나타난 예를 볼 수 있다. ¶聖母 압픠 나아가 글의 인 주 엿조오매 곳 慈命을 닙소오니(상:8ㄱ).
성(盛)신 : 셩신. 왕성하신.
왕화(王化) : 임금의 교화(敎化).
본조(本朝) : 본됴. 지금의 왕조(王朝).
홍무(洪武) : 중국 명나라 태조 때의 연호(1368∼1398).
년회라 : 년호(年號)+-ㅣ라(서술격 조사). 연호이다. 연호(年號)는 해의 차례를 나타내기 위하여 붙이는 이름이다. 예전에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군주(君主)의 치세(治世)에 붙이는 칭호이며 중국의 제도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사용되었다.
여계(女戒) : 녀계.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이 올바른 성 풍습을 세우기 위해 『여계』를 만들어 여성들의 도덕성을 강조하였다 한다.
영락(永樂) : 영낙. 중국 명나라 제3대 성조(成祖. 1402∼1424)의 연호.
내훈(內訓) : 훈. 여기서의 『내훈』은 조선의 소혜황후가 지은 것이 아니고, 명나라 성조(成祖)의 원비(元妃) 인효문황후가 지은 책이다.
여헌(女憲) : 녀헌. 이 책은 『후한서』 조대가전(曺大家傳)에 보이나 전하지 않는다.
여교(女敎) : 녀교. 조선 시대 여성 교훈서인 『내훈』을 설명하는 글에 ‘내훈은 중국의 『열녀전』『소학』『여교』『명감』에서 여자 행실에 절실한 것을 뽑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교』라고 하는 책은 다음의 네 가지 책을 가리킨다. 연대순으로 열거한다.
-여교서(女敎書) : 원(元), 허희재(許熙載) 지음, 4권.
-여교편(女敎篇) : 명(明), 정씨(鄭氏) 지음,
-여교속편(女敎續篇) : 명(明), 왕직(王直) 지음.
-여교경(女敎經) : 장응(張應) 선(選)함.
: ∼ 바[所]의.
날 니리오[同日語] : 같은 날 이르겠는가? 이는 양자 간에 차이가 커서 함께 거론할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규문(閨門) :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 규중(閨中).
교화(化) :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터 : 터ㅎ[基]+-(목적격 조사). 터를. 토대를.
알로 : 앒[前]+-로(조격 조사)+-(보조사). 앞으로는.
당(唐) :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양위(讓位)를 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다.
우(虞)ㅅ나라 :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 주(周)나라의 제후국(諸侯國).
상(商) : 샹. 중국 고대 은(殷)나라의 처음 이름. 은나라는 기원전 1100년까지 중국 황허(黃河)강 중류 지역을 지배한 고대 왕조.
주(周)ㅅ나라 : 쥬ㅅ나라. 기원전 1050년에서 기원전 256년까지 중국을 지배하던 왕조.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하여 호경에 도읍을 정하고 봉건 제도를 시행하였다.
진(秦) :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춘추 전국 시대 지금의 간쑤(甘肅) 지방에서 일어나 기원전 221년 시황제가 주나라 및 육국(六國)을 멸망시키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기원전 207년 한나라 고조에게 멸망하였다.
한(漢)나라 : 중국 고대 왕조인 전한과 후한을 통틀어 이르는 말. 진(秦)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 왕조(기원전202∼기원후220).
송(宋)나라 : 중국에서 조광윤(趙匡胤)이 오대(五代) 후주(後周)의 공제(恭帝)로부터 선양을 받아서 세운 왕조. 960년에 변경에 도읍하였고, 1127년에 금나라의 침입으로 강남(江南)으로 옮겨 임안(臨安)에 도읍하였는데, 그 이전을 북송, 그 이후부터 1270년에 원나라에 망할 때까지를 남송이라 한다.
니르히 : 이르도록[至]. ‘니르히’는 동사 ‘니르-/니를-’[至]에서 파생된 부사이며, 15세기에는 어간 ‘니를-’에 부사 접미사 ‘-이’가 통합된 ‘니르리’로만 나타났으나 15세기말에는 ‘니르-’에 접미사 ‘-히’가 연결된 ‘니르히’의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후(后) : 왕후. ‘왕후’는 임금의 정비(正妃)가 죽은 후에 추시(追諡)되는 존칭이다. 고려 초기에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왕후라 칭한 경우가 남아 있었지만, 점차 죽은 왕비에게 추증하는 시호로서 정착되었다.
비(妃) : 왕비. 왕비는 국왕의 정실 부인[正宮]으로서 중궁(中宮)의 자리에 있던 사람을 말한다. 흔히 중전(中殿, 중궁전의 준말)이라고 한다.
정(貞) : 뎡. 곧은. 절개가 굳은.
반반(班班)히 : 일의 근거가 분명하여.
주(周)편 : 쥬편. 모든 면에 두루 걸침. 주편(周徧).
샹밀(密) : 자상하고 세밀함. 상밀(詳密).
국조(國朝) : 국됴. 자기 나라의 조정.
천고(千古) : 쳔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오리 : -[並]+-(관형사형 어미)+이(人, 의존 명사)+ø(zero 주격 조사). 함께 나란히 할 사람이. 맞서서 견줄 사람이.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리’로 표기하였으나 ㅸ의 소실 후에는 ‘오리’로 표기하였다.
경순(敬順) : 경슌. 공경하는 마음으로 순종함.
단정(端貞) : 단뎡. 바르고 곧음.
고황후(高皇后) : 명나라 태조(太祖)의 비 효자고황후(孝慈高皇后. 1332~1382)를 가리킴. 곽자흥(郭子興)의 양녀(養女)로 성(姓)은 마씨(馬氏)다. 명나라 때의 황후 칭호는 황후의 칭호 두 글자를 붙이고 황제의 시호를 뒤에 붙이는 것이 원칙이다. 태조의 황후 마씨의 경우, 태조보다 먼저 죽었다. 그리하여 일단 황후 칭호인 효자황후(孝慈皇后)로 칭하다가 태조가 죽어 고황제(高皇帝)라는 시호가 붙으니 황후의 칭호 ‘효자’(孝慈) 뒤에도 ‘고’(高)자를 더하여 효자고황후(孝慈高皇后)라는 칭호가 만들어졌다.
문황후(文皇后) : 명나라 3대 황제인 성조 문황제(成祖文皇帝)의 비 인효문황후(仁孝文皇后)를 가리킴. 개국공신 서달(徐達)의 장녀이다. 인자하고 근엄했던 황후로 존경을 받았으며 『내훈』을 남겨 궁중 여인들의 전범이 되었다.
황태후(皇太后) : 장성자인황태후(章聖慈仁皇太后. 11대 세종의 모후)를 가리킴.
자시니 : -[備]+-아시-(완료 시상 선어말어미. -앗-)+-니(종속적 연결어미). 갖추었으니.
뵈야로 : 바야흐로.
자궁(慈宮) : 궁.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고 왕세손이 즉위하였을 때, 죽은 왕세자의 빈(嬪)을 이르던 말. 여기서는 장성자인황태후(章聖慈仁皇太后. 11대 세종의 모후)를 말한다.
뫼와 : 모시어.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어간이 ‘뫼-’이었고 이에 연결어미 ‘-아’가 연결되면 ‘뫼’로 표기되었다. ‘뫼’는 다시 ‘뫼와’를 거쳐 ‘뫼와’가 되었다.
닉이 : 익히. 익숙하게.
든 : 듣-[聽]+-(관형사형 어미). 듣는. ‘든’은 ‘듣’을 음성 실현대로 표기한 것이다.
혀나믄 : 약간의.
종요(要) : 요점. 중요한 뜻. 종요(宗要).
궁구(究) :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함. 궁구(窮究).
모닷 : 몯-[集]+-앗-(완료 시상 선어말어미)+-(관형사형 어미). 모은.
: 예법(禮法).
나 : 사나이. 한문 원문에는 ‘나’에 대응하는 표현이 ‘夫子’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나’는 남편을 이르는 말로 쓰인 것이다.
어긔로오미 : 어긔롭-[違]+-(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어김이. ‘어긔롭-’은 ㅂ불규칙 용언이므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어간 말음 ㅂ이 ㅗ/ㅜ로 교체된다.
순(純)젼 : 슌젼. 순수하고 완전함. 순전(純全).
조(朝)회 : 됴회. 관원들이 아침 일찍 정전(正殿)에 모여 임금께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아뢰는 일. 조회(朝會).
비(菲)박 : 얇고 가벼움. 비박(菲薄).
지존(至尊) : 지극히 존귀하다는 뜻으로 임금을 공경하여 이르는 말.
엇오니 : 엇-[得]+-오-(객체 높임 선어말어미)+-니(종속적 연결어미). 얻으니. 말음 표기의 혼란에 의해 동사 ‘얻-’이 ‘엇-’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어간 ‘엇-’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연결되어 연철할 경우에는 이 책에서도 ‘얻-’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내 스승을 어덧노라(하:47ㄴ). ‘엇오니’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얻니’로 표기되었다.
항(恒)샹 : 샹. 늘. 항상(恒常).
두리워 : 두립-[懼]+-어(연결어미). 두려워. ‘두립-’은 ㅂ불규칙 형용사이므로 어간 말음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ㅗ/ㅜ로 교체되었다.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두리’로 표기되었다.
육궁(六宮) : 뉵궁. 중국의 궁중에 있었던 황후의 궁전과 부인 이하의 다섯 궁실.
젓와 : 젛-[恐]+--(객체 높임 선어말어미)+-아(연결어미). 두려워하여. 중세 국어에서 ‘젛다’와 같이 어간 말음이 ㅎ인 용언은 ㅅ 앞에서 ㅎ이 ㅅ으로 교체되어 ‘둏+’, ‘놓+’, ‘젛+’ 등이 각각 ‘됴’, ‘노’, ‘저’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여기의 ‘젓와’도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저’로 나타난다. ¶威名을 저(용비어천가 75장).
날노 : 날로. 매일.
편(編) : 편찬한 것. 만든 책.
맛드려 : 맛들여. 음미하여.
빗난 : 빛난.
욕 업스믈 : 욕(辱) 없음을. 욕되게 하지 말기를.
가정(嘉靖) : 가졍. 명나라 세종(世宗)의 연호. 가정 원년은 조선 중종 17년(1522)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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