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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훈언해+책정보

상22ㄱ

女녀訓훈序셔
夫부人인子ㅣ 事親친而이有유孝효經경以이爲위訓훈며 人인臣신ㅣ 事君군而이有유忠튱經경以이爲위訓훈니 忠튱孝효 仁인道도之지當당然연而이各각有유訓훈矣의라 然연則즉婦부之지事夫부애 可가無무訓훈哉아 人인非비生知디면 不블可가不블學ㅣ니 男남女녀ㅣ 雖슈異이나 未미有유不블訓훈敎교而이成셩者쟈也야ㅣ니 不블親친書셔史則즉往왕行을 奚

상22ㄴ

考고ㅣ며 不블受슈姆모訓훈則즉婦부道도를 奚修슈리오 是시以이로 古고者쟈애 敎교必필有유方방야 男남子 八팔歲셰而이入입小쇼學며 女녀子 十십歲셰而이聽텽姆모敎교더니 小쇼學之지書셰ㅣ 無무傳뎐ㅣ어늘 晦회菴암朱쥬子ㅣ 編편輯집成셩書셔니 則즉小쇼學之지敎교ㅣ 始시有유所소入입호 獨독女녀敎교ㅣ 未미有유全젼書셔니 世셰ㅣ 惟유取列렬女녀傳뎐과 曺조大대家가女녀戒계야 爲위訓훈니 人인

상23ㄱ

常샹病병其기簡간略냑고 有유所소謂위女녀憲헌女녀則측이나 皆徒도有유名명耳이라 近근世셰애 始시有유女녀敎교之지書셔니 大대要요 撮촬曲곡禮녜內則측之지言언과 周쥬南남召쇼南남之지旨지니 卓탁越월往왕昔셕야 足죡以이垂슈法법萬만載로 但단文문理리奧오妙묘야 恐공婦부人인女녀子ㅣ 未미能능盡진知디其기義의而이率솔由유是시道도也야노라 吾오ㅣ 自選션入입

상23ㄴ

內庭뎡야 榮영配 睿예主쥬로 躬궁謁알 祖조廟묘之지餘여에 上샹受슈 聖셩慈仁인壽슈太태皇황太태后후曁게 皇황太태后후 皇황太태妃비睿예母모之지敎교令녕야 耳이濡유目목染염야 服복膺응弗블失실者쟈ㅣ 久구矣의라 不블特특三삼宮궁敎교令령ㅣ 諄슌複복也야ㅣ라 至지于우頒반錫셕御어物믈히 有유加가無무已이니 恩은義의之지

상24ㄱ

隆늉ㅣ 何하如여哉오

상25ㄴ

人인子ㅣ 어버이 셤교매 孝효經경을 두어 訓훈을 삼으며 人인臣신ㅣ 님금을 셤교매 忠튱經경을 두어 訓훈을 삼으니 忠튱과 孝효 人인道도의 當당然연 거시라 각각 訓훈이 인디라 그러면 婦부ㅣ 夫부 셤교매 可가히 訓훈이 업 것가

상26ㄱ

이 나며셔 아니 아니면 可가히 學디 아니티 몯 거시니 男남女녀ㅣ 비록 다나 訓훈敎교 아니야 成셩 쟈ㅣ 잇디 아니니 書셔史 親친히 아니면 往왕行을 엇디 샹고며 姆모訓훈을 受슈티 아니면 婦부道도 엇디 닷리오 이러모로 敎교호미 반시 方방이 이셔 男남子 八팔歲셰예 小쇼學에 들며 女녀子 十십歲셰예 姆모敎교 듯더니 小쇼學 글이 傳뎐호미 업거 晦회菴암

상26ㄴ

쥬子ㅣ 編편輯집야 書셔 일오니 小쇼學ㅅ敎교ㅣ 비로소 이쇼 호올로 女녀敎교ㅣ 全젼書셔ㅣ 잇디 아니니 世셰 오직 列녈女녀傳뎐과 曹조大대家가曹조大대家가 班반彪퓨의 女녀ㅣ오 曹조世셰叔슉의 妻쳐ㅣ라】女녀戒계 取아(야) 訓훈을 삼으니 사이 덧덧이 簡간略냑믈 病병되이 녀기고 닐온밧 女녀憲헌 女녀則측이 이시나 갓 일홈만 인디라 近근世셰예 비로소 女녀敎교ㅅ書셔ㅣ 이시니 大대要요 曲곡禮녜

상27ㄱ

內則측읫 말과 周쥬南남 召쇼南남읫 을 撮촬야시니 往왕昔셕에 卓탁越월야 足죡히 萬만載예 法법을 드리오 다믄 文문理리 奧오妙묘야 婦부人인 女녀子ㅣ 能능히 義의 아라 道도 조차 말믜암디 몯가 저허노라 여 內庭뎡에 드러 영화로이 睿예主쥬 配필 되므로브터 몸소 祖조廟묘 謁알 餘여가애 우흐로

상27ㄴ

聖셩慈仁인壽슈太태皇황太태后후와 皇황太태后후와 皇황太태妃비 睿예母모ㅅ敎교令녕을 밧조와 귀예 적시며 눈에 드려 가슴에 服복야 일티 아니미 오란디라 갓 三삼宮궁 敎교令녕이 諄슌複복 이 아니라 頒반錫셕시 御어物믈에 니히 더으미 잇고 마디 아니니 恩은義의의 隆늉미 엇더뇨
여훈 서(명나라 장성자인황태후)
자식이 어버이를 섬김에는 『효경』(孝經)으로써 교훈을 삼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충경』(忠經)으로써 교훈을 삼으니, 이는 충과 효가 사람의 도리로서 당연한 것이라 각각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내가 남편을 섬김에는 마땅히 교훈으로 삼을 것이 없겠는가?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니므로 가히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남녀가 비록 차이는 있더라도 훈계와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면 아무도 잘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옛 성현의 행동을 어떻게 상고(詳考)할 수 있으며,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어떻게 닦을 수 있으랴. 이러므로 옛날에는 가르침에 반드시 방도(方途)가 있었는데, 남자는 8세가 되면 『소학』(小學)에 입문(入門)하고, 여자는 10세에 보모(保姆)의 가르침을 잘 들었다. 『소학』의 글은 전하는 것이 없었는데, 주자(朱子)가 편찬하여 만든 책이 있으니 비로소 소학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으나, 유독 여성을 가르치는 전서(全書)는 없어서 세상이 오직 『열녀전』(列女傳)과 조대가(曹大家)【조대가는 반표(班彪)의 딸이고, 조세숙(曹世叔)의 아내이다.】의 『여계』를 가져다가 교훈을 삼았다. 사람들은 늘 그 간략함을 흠(欠)으로 여기고 이른바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나 규칙에 대해 쓴 책이 있지만 모두가 한갓 이름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근자에 와서 비로소 여성의 교훈서가 나왔으니, 그 대략적인 줄거리는 『예기』(禮記)의 「곡례」(曲禮)편 및 「내칙」(內則)편에 있는 말과 『시경』의 「주남」「소남」편에 나타난 뜻을 모은 것이다. 옛적부터 탁월하여 이것으로 족히 오랜 세월에 규범이 되었다. 다만 글의 논리가 깊고 묘하여 이로 인해 부녀자들이 능히 그 뜻을 다 깨닫지 못하여 이 도리를 좇아 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바이다. 내가 뽑혀서 내정(內庭)에 들어가 임금의 배필이 되고부터는 몸소 선조의 사당에 배알하는 여가에 위로 〈할머님이신〉 성자인수태황태후(聖慈仁壽太皇太后) 및 어머님이신 황태후(皇太后)와 황태비의 명령을 받자와 자주 보고 듣고 익혀서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잠시도 잊지 아니한 지가 오래되었다. 단지 황제, 황태후, 황태비의 명령을 되풀이하여 말할 뿐만 아니라 나누어 주시는 임금님의 물건에 이르기까지 더함을 마지 않으시니 은혜와 의리의 융성함이 어떠한가?
인자(人子) : 인. 사람의 아들.
셤교매 : 셤기-[事]+-오-(삽입모음)+-ㅁ(명사형 어미)+-애(처격 조사). 섬김에.
효경(孝經) : 공자(孔子)와 증자(曾子)가 효도에 관하여 문답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13경(十三經) 중의 하나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공자가 지었다는 설, 증자가 지었다는 설, 증자의 제자들이 집록(輯錄)했다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어 확실하지는 않으나 증자 문인들의 저술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이 책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바탕으로 집안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치국(治國)의 근본이며, 효도야말로 천·지·인(天地人) 3재(三才)를 관철하고 모든 신분 계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고덕목ㆍ윤리규범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신(人臣) : 신하.
충경(忠經) : 튱경. 후한 시대 마융(馬融)의 저작이라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충의의 고양을 부르짖던 송나라 때의 저작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충의 대상은 자신에서 시작하여 가정은 중간이요, 국가는 종착지라 하여 국가가 가장 크고 마지막 대상이 되고 있다. 둘째,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충의 도리로서, 백성에게 신망 있는 위정자의 충, 진실로 국가를 위해 희생적으로 직분을 다하는 관리의 충, 국법을 준수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하며 생업에 충실한 백성의 충 등을 말하고 있다. 셋째, 효도를 행하는 이는 반드시 충을 귀중하게 여기며, 군자가 효도를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충성을 하며, 충성을 다하면 복록(福祿)에 이른다고 한다. 사회적 규범으로서 충의가 이처럼 강조되고 있으나 흔히 규범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 등이다.
업 것가 : 없-[無]+-(관형사형 어미)+것(의존 명사)+-가(의문 조사). 없을 것인가? 중세나 근대 국어에서 체언이 서술어로 쓰였을 때 서술격 조사 없이 ‘-가/고’가 체언에 직접 연결되어 의문문을 나타내었다.
나며셔 : 나-[生]+-며서(종속적 연결어미). 나면서. 어미 ‘-며셔’는 후에 ㄴ이 첨가되어 오늘날의 ‘-면서’가 되었다.
훈교(訓敎) : 훈계하여 가르침.
성(成) 쟈 : 셩 쟈. 성-[成]+-ㄹ(관형사형 어미)+쟈(者. 의존 명사). 성공할 사람. 잘될 사람.
서사(書史) : 셔. 경서류(經書類)와 사서류(史書類)를 아울러 이르던 말.
왕행(往行) : 왕. 옛 성현의 행동.
샹고 : 자세히 생각함. 상세히 검토함. 상고(詳考).
모훈(姆訓) : 여 스승 또는 보모(保姆)의 가르침.
수(受)티 : 슈티. ‘受디’의 축약형. 받지.
닷리오 : -[修]+-으리오(미래 시제 의문법 어미). 닦으리오? 닦으랴?
이러모로 : 이러므로.
방(方) : 방법. 방도. 방책.
소학(小學) : 쇼.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가 엮은 것이라고 씌어 있으나, 사실은 그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주희의 지시에 따라 여러 경전에서 동몽(童蒙)들을 교화(敎化)시킬 수 있는 일상생활의 자잘한 범절과 수양을 위한 격언과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남송 효종 때인 1185년(순희 14)부터 편집을 시작하여 2년 후에 완성했다. 내편(內篇) 4권과 외편(外篇) 2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편은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 외편은 가언(嘉言)·선행(善行) 순으로 되어 있다. 전편(全篇)을 통하여 유교의 효(孝)와 경(敬)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인간상과 아울러 수기(修己)·치인(治人)의 군자(君子)를 기르기 위한 계몽(啓蒙) 교훈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 사학(四學)·향교·서원·서당 등 모든 유학 교육기관에서 필수과목으로 다루어졌으며, 사대부의 자제들은 8세가 되면 유학의 초보로 배워, 조선시대의 충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 윤리관을 보급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모교(姆敎) : 여 스승 또는 보모(保姆)의 가르침. 『소학』 입교(立敎)편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女子十年 不出 姆敎婉娩聽從”(여자는 열 살이 되면 규문 밖에 나가지 않으며, 보모가 유순한 말씨와 태도 그리고 남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일을 가르친다.)
듯더니 : 듣더니[聽]. 말음에서 ㄷ과 ㅅ의 혼용됨으로 동사 ‘듣-’이 ‘듯-’으로 교체되었다.
회암(晦菴) : 주희(朱熹: 1130-1200)의 호. 주희는 남송(南宋) 때의 학자로서, 자는 원회(元晦), 호는 중회(仲晦) 또는 회암(晦菴)이라 하였다. 학문이나 인격이 공자 이후 제일인자로 일컬어져 ‘주자’(朱子)로 불리며, 송나라 때의 이학(理學)을 집대성하여 유교에 철학적 기초를 세웠다. 저서에 『주자대전』(朱子大全)이 있다.
일오니 : 일-[成]+-오-(사동 접미사)+-니(종속적 연결어미). 이루니.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일우다’로 쓰였다.
들  : 들-[入]+-ㄹ(관형사형 어미)+바(所, 의존 명사)+-ㅣ(주격 조사). 입문하는 바가. 어간 ‘들-’의 어간 말음 ㄹ은 그 다음에 연결된 관형사형 어미 ㄹ로 인해 탈락되었고, 관형사형 어미 ㄹ 아래서 일어난 경음화를 반영하여 의존 명사 ‘바’를 ‘’로 표기하였다.
이쇼 : 이시-[有]+-오-(삽입모음)+-(설명법 어미). 있되.
호올로 : 홀로. 유독(唯獨). ‘호올로’는 훈민정음 초기 문헌 중에서 『용비어천가』에서만 ‘’로 나타나고 그 이외에는 ‘오’로 표기되고 있다.
전서(全書) : 젼셔. 어떤 한 분야의 저작물이나 사실의 전부를 망라하여 체계적으로 엮은 책.
열녀전(列女傳) : 녈녀뎐. 중국 한(漢)나라의 유향(劉向)이 지은 책. 고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유명한 현모(賢母), 양처(良妻), 열녀(烈女) 및 투부(妬婦)들의 약전(略傳), 송(頌), 도설(圖說) 등을 엮었다. 모두 8편 15권으로, 나중에 송(宋)나라 방회(方回)가 7권으로 간추렸다.
조대가(曹大家) : 성은 반씨(班氏)이고, 이름은 소(昭)이며, 후한 사람 반표(班彪)의 딸이다. 『여계』(女戒)를 지었다. 조세숙(曹世叔)에게 출가하였으나,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그 후 지절(志節)을 지키면서 자식을 훌륭히 키웠다. 조정에서는 그 지절을 기리어 여사(女師)로 삼아 대가(大家)라 사호(賜號)하였고, 황후와 귀인들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서』(漢書)를 지은 반고(班固)의 누이로서 오라비가 완성하지 못했던 저술을 이어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사서언해』에서는 ‘조태고’라고 표기하였다.
여계(女戒) : 녀계. 『여계』는 조대가의 지음인데, 이는 당송 약소(若昭)의 『여논어』, 명나라 인효문(仁孝文) 황후의 『내훈』, 명말 청초(明末淸初) 왕절부(王節婦)의 『여범첩록』(女範捷錄)과 함께 여사서(女四書) 중의 하나이며, 7편으로 된 여성 교훈서이다. 명 신종(神宗) 황제는 어제 서문에서 이 책을 “萬世女則之規”라 하였고, 국역본의 서문을 쓴 지사 송병순(宋秉珣)은 또 이를 주자의 『소학』과 내외편이 되는 것이라 하면서 “信之如神明,敬之如父母” 하면 규범이 확립되어 일국의 교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하였다.
덧덧이 : 늘. 한결같이.
여헌(女憲) : 녀헌.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쓴 책.
여칙(女則) : 녀측. 여자가 지켜야 할 규칙을 쓴 책.
일홈 : 이름[名]. 15세기에는 ‘일훔’으로만 나타난다.
대요(大要) : 간략한 줄거리.
곡례(曲禮) : 곡녜. 『예기』(禮記)의 편명(篇名)으로, ‘자잘한 여러 예의’라는 뜻이다. 『예기』는 유교 경전으로 5경(五經)의 하나이며, 상ㆍ하로 되어 있는 곡례편은 제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내칙(內則) : 측. 중국 한(漢)나라 시대에 편찬된 『예기』의 편명(篇名). ‘내(內)’는 여자들이 거처하는 규문(閨門) 안으로, 주로 규문 안에서 행하는 예절이나 의식이 기록되어 있다.
주남(周南) 소남(召南) : 쥬남 쇼남. 주남과 소남은 『시경』(詩經) 국풍의 첫 번째 두 번째 편명(篇名)으로서, 주남(周南)은 주공이 남쪽에서 모은 노래이고 소남(召南)은 소공이 남쪽에서 모은 노래이다.
: 뜻.
촬(撮)야시니 : 촬-[撮]+-야(연결어미)+-시(‘이시-’의 ‘시’. 有)+-니(종속적 연결어미). 모았으니.
왕석(往昔) : 왕셕. 옛적.
만재(萬載) : 만. 오랜 세월.
드리오 : 드리오-[垂]+-(설명법 어미). 드리우되. 15세기에는 ‘드리-’로도 나타난다. ¶垂는 드릴 씨니 垂瓔은 瓔珞 드리울 씨라(월인석보 10:56ㄴ).
다믄 : 다만[但].
문리(文理) : 문장의 논리.
오묘(奧妙) : 심오하고 묘함.
말믜암디 : 말미암지[由]. ‘말/말믜’는 중세 국어에서 원래 ‘까닭, 사유, 연유’ 등의 뜻으로 쓰인 명사였으며, 동사 ‘말믜암-’도 중세 국어에는 ‘말믜-’으로 표기되었다.
저허 : 젛-[恐]+-어(연결어미). 두려워하여. 염려하여. 어간 ‘젛-’에 자음의 어미가 연결되면 ‘저코, 저토다, 저티’ 등으로 유기음화가 일어나고, ㅅ 어미가 오면 ‘저고’에서처럼 경음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ㄴ 어미 앞에서는 ‘젇노라, 전노라’와 같이 어간의 교체가 일어난다.
여 : -[選]+-이-(피동 접미사)+-어(연결어미). 뽑히어. 어간 ‘-’가 그 다음의 피동 접미사 ‘-이-’에 의한 umlaut 현상으로 ‘-’가 되었다.
내정(內庭) : 뎡. 임금이 사적인 생활을 하는 궁궐의 내부를 일컫는 말.
드러 : 들어가.
예주(睿主) : 예쥬. 임금.
배(配)필 : 필. 배우자. 부부로서의 짝. 배필(配匹).
조묘(祖廟) : 선조의 사당.
알(謁) : 배알(拜謁)하는.
우흐로 : 우ㅎ[上]+-으로(조격 조사). 위로. ‘우ㅎ’는 ㅎ종성 체언이다.
성자인수태황태후(聖慈仁壽太皇太后) : 셩인슈태황태후. 명나라 9대 황제인 효종의 할머니이며, 6대 황제인 영종(英宗)의 왕후이다. 태황태후는 황제의 살아있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모(睿母) : 임금 또는 성인의 어머니.
교령(敎令) : 교녕. 임금의 명령.
밧조와 : 받-[受]+-조오-(객체 높임 선어말어미)+-아(연결어미). 받자와[受]. 말음에서 ㄷ과 ㅅ의 혼란으로 어간 ‘받-’이 ‘밧-’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객체 높임의 ‘-오-’도 ‘-조오-’로 모음 변이가 일어났지만 이 책에는 여전히 ‘-/오-’가 쓰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밧고(상:7ㄱ). 밧오니(상:8ㄴ). 밧오시고(상:9ㄱ). 밧와니(상:7ㄱ-ㄴ). 받올(하:4ㄱ).
귀예 적시며 눈에 믈드려[耳濡目染] : 자주 보고 들어서 익숙하고 습관이 되어.
가슴에 복(服)야[服膺] :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잠시도 잊지 아니하여.
일티 : 잃-[失]+-디(보조적 연결어미). 잃어버리지.
갓 : 단지. 공연히.
삼궁(三宮) : 황제, 황태후, 황태비를 이르는 말.
순복(諄複) : 슌복. 거듭거듭 되풀이하여 말함. 말이 여러 번 겹침.
반석(頒錫) : 반셕. 나누어 줌.
어물(御物) : 어믈. 임금이 쓰는 물건.
니히 : 니-[至]+-히(부사 접미사). 이르도록. 오래도록. 15세기에는 ‘니르리’로 쓰임.
더으미 : 더으-[加]+-ㅁ(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더함이.
마디 : 말-[勿]+-디(보조적 연결어미). 말지. 그만하지.
은의(恩義) : 은혜와 의리.
융(隆)미 : 늉미. 융성(隆盛)함이.

상24ㄱ

厥궐後후에 隨슈侍시之지國국야 綜종理니內政졍 日일多다閒한暇가야 間간嘗샹侍시 睿예主쥬之지側측야 聽텽其기議의論논고 晝듀誦숑夜야味미니 豁할然연貫관通통ㅣ러라 乃내采古고人인之지敎교周쥬南남召쇼南남之지文문야 爲위女녀訓훈拾십貳이篇편호니 雖슈不블足죡追튜配忠튱經경孝효經경之지義의나 聊뇨取以이敎교貞뎡女녀耳이로다 夫부女녀之지貞뎡靜졍幽유閒

상24ㄴ

한 皆由유於어閨규訓훈ㅣ니 苟구不블受슈命명於어女녀師之지敎교며 聽텽其기夫부主쥬之지訓훈면 恐공未미必필知디孝효乎호舅구姑고也야노라 知디孝효舅구姑고댄 不블可가以이不블知디敬경夫부ㅣ니 知디敬경夫부之지道도則즉知디惠혜逮톄媵잉妾쳡而이可가推츄之지以이慈幼유矣의리라 况황姙임子之지方방과 敎교子之지法법 乃내繼계後후之지大대端단ㅣ라 旣긔知디乎호此호 或혹非비愼신靜졍焉언

상25ㄱ

則즉身신無무所소立닙ㅣ니 而이立닙身신則즉本본於어節졀儉검也야ㅣ라 婦부人인之지職직ㅣ 豈긔越월此數수者쟈之지外외乎호ㅣ리오 使幼유而이不블聽텽姆모敎교며 長댱而이不블習습女녀訓훈則즉上샹不블知디孝효舅구姑고고 下하不블知디順슌夫부子리니 豈긔貞뎡婦부之지道도哉리오 爲위女녀婦부者쟈ㅣ 誠셩能능於어古고今금之지訓훈애 家가習습戶호誦숑則즉風풍俗쇽ㅣ 自然연淳슌厖방며 彛이倫륜ㅣ 自

상25ㄴ

然연敦돈厚후리니 齊졔家가範범俗쇽애 吾오ㅣ 不블敢감知디其기有유補보云운ㅣ라
大대明명正졍德덕戊무辰진春츈王왕正졍月월上샹澣한日일애 書셔노라

상27ㄴ

후에 조차 뫼오와 나라

상28ㄱ

 綜종理니 날이 閑한暇가미 하셔 이에 일즉 睿예主쥬ㅅ겨틔 뫼오와 議의論논을 듯고 나죄 외오고 밤의 맛드리니 豁할然연히 貫관通통더라 이예 녯사의 敎교 周쥬南남 召쇼南남 글을 采야 女녀訓훈 拾십貳이 篇편을 그노니 비록 足죡히 조초 忠튱經경 孝효經경의 義의 配합디 몯나 애으로이 取야 貞뎡女녀 치노라 겨집의 貞뎡靜졍며 幽유

상28ㄴ

閑한호믄 閨규訓훈을 말암니 진실로 女녀師의 敎교 受슈命명며 夫부主쥬의 訓훈을 듯디 아니면 반시 舅구곳 孝효 줄을 아디 몯가 저허노라 舅구姑고에 孝효 줄을 알딘댄 可가히 夫부 공경홈을 아디 아니티 몯 거시니 夫부 공경 道도 알면 惠혜ㅣ 媵잉妾쳡에 밋처 可가히 츄이야 幼유 慈 줄을 알리라 며 子식을  方방과 子식을 치 法법은 後후 닌

상29ㄱ

대端단이라 임의 이 아로 或혹 靜졍을 삼가디 아니면 身신이 立닙 업고 身신의 立닙믄 節졀儉검을 本본니라 婦부人인의 職직이 엇디 두어 밧긔 너므리오 여곰 져머셔 姆모敎교 듯디 아니며 라셔 女녀訓훈을 니기디 아니면 우흐로 舅구곳긔 孝효 줄을 아디 몯고 아래로 夫부子ㅅ 順슌 줄을 아디 몯리니 엇디 貞뎡婦부의 道도ㅣ리오 女녀婦부 되얀니 진실로 能능히 古고今금의

상29ㄴ

훈애 家가로 習습며 戶호로 誦숑면 風풍俗쇽이 自然연히 淳슌厖방며 彛이倫륜이 自然연히 敦돈厚후리니 家가 齊졔며 俗쇽을 範범매 敢감히 補보미 이시믈 아디 몯예라
大대明명 正졍德덕 戊무辰진 春츈王왕 正졍月월 上샹澣한上샹瀚한은 망젼이라】日일에 스노라
그 후에 함께 모시고 나라에 가서 내정(內政)을 빈틈없이 처리하므로 한가한 날이 많으시어 일찍 임금님 곁에서 모시면서 그 의견을 듣고, 저녁에는 외우고 밤에는 그에 재미를 붙이니 막힘이 없이 환하게 통하여 도를 깨닫게 되었다. 이에 옛 사람의 가르침이 되는 주남(周南) 소남(召南)의 글을 가려 뽑아서 『여훈』 열두 편을 만들었으니 비록 충분히 좇아 충경(忠經)과 효경(孝經)의 뜻을 잘 섞어 합치지 못하였으나 부족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가르치는 바이다. 여자의 행실이 곧고 깨끗하며 인품이 조용함은 다 규훈(閨訓)을 인함이니, 진실로 여자 스승의 가르침과 명령을 받자오며 지아비의 교훈을 듣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시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모르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시부모님께 효도할 줄을 안다면 가히 지아비 공경하기를 모르지 않을 것이니, 지아비를 공경하는 도리를 알면 그 은혜가 시첩(侍妾)에게까지 미쳐 가히 변함으로써 젊은이를 사랑할 줄도 알 것이다. 하물며 자식을 잉태케 하는 방도와 자식을 가르치는 방식은 후손을 잇는 큰 근본이 아니겠는가. 이미 이런 내용을 알더라도 혹 고요히 삼가지 않으면 자신의 지위가 확고하게 설 수가 없으며 자신의 지위를 세우는 것은 절약하고 검소함에 근본을 두는 것이다. 결혼한 여자의 직분이 어찌 이 두어 가지의 밖으로 넘겠는가? 부인(婦人)들로 하여금 젊어서 여 스승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장성하여서 『여훈』의 가르침을 익히게 하지 않는다면 위로 시부모님께 효도할 줄 모르고 아래로는 지아비께 순종할 줄도 모를 것이니, 이 어찌 정절이 있는 부인(婦人)의 도리이겠는가? 여자로 된 사람이 진실로 능히 고금의 가르침을 집집마다 익히고 외우면 풍속이 자연히 순박하고 후해지며 사람의 도리도 자연히 돈독해질 것이니, 집안을 잘 다스리며 풍속을 모범적이 되게 하는 일에 내가 감히 그 보탬이 되는지 알지 못하겠도다.
명(明)나라 정덕(正德) 무진(戊辰. 1508년) 춘왕(春王) 정월(正月) 상한(上澣)【상한은 음력 보름 이전이다.】날에 쓴다.
궐후(厥後) : 그 이후. 그 뒤.
뫼오와 : 모시어.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어간이 ‘뫼-’이었고 이에 연결어미 ‘-아’가 연결되면 ‘뫼’로 표기되었다. ‘뫼’는 다시 ‘뫼와’를 거쳐 ‘뫼오와’가 되었다. 이 책에는 ‘뫼와’로도 나타난다. ¶慈宮 치시믈 뫼와(하:47ㄱ).
나라 : 나라ㅎ[國]+-(처격 조사). 나라에.
졍 : 정치 또는 행정상의 일. 정사(政事).
종리(綜理) : 종니. 빈틈없이 조리 있게 처리함.
하셔 : 하-[多]+-시-(주체 높임 선어말어미)+-어(연결어미). 많으시어.
듯고 : 듣-[聽]+--(객체 높임 선어말어미)+-고(대등적 연결어미). 듣고. 말음에서 ㄷ과 ㅅ의 혼용으로 어간 ‘듣-’이 ‘듯-’으로 되었다.
나죄 : 저녁.
외오고 : 외우고[誦].
맛드리니 : 맛들이니. 재미를 붙이니.
활연(豁然)히 : 할연히. 환하게. 막힘이 없이.
활연관통(豁然貫通) : 환하게 통하여 도를 깨달음.
주남(周南) 소남(召南) : 쥬남 쇼남. 『시경(詩經)』 국풍의 첫 번째 두 번째 편명(篇名)으로서, 주남(周南)은 주공이 남쪽에서 모은 노래이고 소남(召南)은 소공이 남쪽에서 모은 노래이다.
채(采)야 : 야. 가려 뽑아.
그노니 : 글-[製]+-노니(종속적 연결어미). 만드니. 어간 말음 ㄹ이 ㄴ 앞에서 탈락하였다. ‘-노니’는 ‘니’에 삽입모음 ㅗ가 첨가된 형태이다.
조초 : 좇-[隨]+-오(부사 접미사). 따라. 좇아.
충경(忠經) : 튱경. 충은 정성, 혹은 진심을 말하며, 또한 정성을 바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충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충은 신하나 종자가 자신이 모시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도리에만 한정되어 있다. 『충경』은 마융(馬融)이 지었고 정현(鄭玄)이 주를 달았다고 하지만, 『한서』「예문지」 등에는 책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송나라의 승문총목이기 때문에 아마도 후대의 위작일 것으로 생각되며 전체 18장으로 구성된 것은 『효경』을 모방한 듯하다.
효경(孝經) : 유가(儒家)의 주요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의 하나이다. 이 책은 ‘효도(孝道)’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효경』이라고 하였으며, 십삼경 중에서 처음부터 책 이름에 ‘경(經)’ 자를 붙인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효경』의 저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즉 공자(孔子)가 지었다는 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지었다는 설, 공자의 70여 제자의 유서(遺書)라는 설, 증자의 문인(門人)들이 집록(輯錄)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확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효경』 본문에 공자와 증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과 학통(學統)상으로 보아 증자의 문인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썼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의(義) : 바른 도리. 글이나 글자의 뜻.
배(配)합 : 합. 일정한 비율로 한데 섞어 합침. 배합(配合).
애으로이 : 애오라지. 넉넉하지 못하나마 좀.
정녀(貞女) : 뎡녀. 결혼하지 않은 여성.
정정(貞靜) : 뎡졍. 여자의 행실이 곧고 깨끗하며 조용함.
유한(幽閑) : 여자의 인품이 조용하고 그윽함.
수명(受命) : 슈명. 명령을 받음.
부주(夫主) : 부쥬. 남편. 지아비.
혜(惠)ㅣ : 은혜가. ‘혜’는 j로 끝나는 체언이므로 주격 조사 ㅣ를 붙일 필요가 없음에도 ㅣ를 달고 있다.
구(舅)곳 : 구고(舅姑)+-(존칭 여격 조사). 시부모님께. 된소리 표기 ㅺ의 ㅅ을 이중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책 상:29ㄱ에는 ‘舅곳긔’로 표기한 예도 나타난다.
잉첩(媵妾) : 잉쳡. 예전에 귀인에게 시집가는 여인이 데리고 가던 시중드는 첩.
츄이 : 추이(推移). 일이나 형편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하여 나감.
자(慈) 줄 :  줄. 사랑할 줄. 자애(慈愛)를 베풀 줄.
 : -[孕]+-(관형사형 어미). 〈아기를〉배는.
방(方) : 방도(方途).
후(後) : 후손. 후사(後嗣).
닌 : 닛-[承]+-(관형사형 어미). 잇는. 어간 말음 ㅅ이 ㄴ 앞에서 ㄴ으로 자음동화한 것을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
대단(大端) : 큰 근본. 큰 발단.
임의 : 이미.
정(靜) : 졍. 고요함. 조용함.
신(身)이 입(立) 배 : 신이 닙 배. 입신(立身)하는 바가. ‘입신(立身)’은 세상에서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 지위를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절검(節儉) : 졀검. 절약하고 검소함.
본(本)니라 : 본받는다. 근본으로 삼는다.
밧긔 : [外]+-의(처격 조사). 밖에.
너므리오 : 넘-[越]+-으리오(의문법 어미). 넘겠는가?
여곰 : 하여금. 15세기에는 보조사 ‘-곰’의 연결이 없이 ‘여’만으로 많이 쓰였다.
져머셔 : 졈-[少]+-어셔(종속적 연결어미). 젊어서.
모교(姆敎) : 여 스승 또는 보모(保姆)의 가르침.
니기디 : 닉-[習]+-이-(사동 접미사)+-디(보조적 연결어미). 익히지.
부자(夫子) : 부. 남편을 높여 이르는 말.
순(順) 줄 : 슌 줄. 순종할 줄.
정부(貞婦) : 뎡부. 정절이 있는 부인.
여부(女婦) : 녀부. 모든 여자를 가리키는 말.
되얀니 : 되-[爲]+-얏-(완료 시상 선어말어미)+-(관형사형 어미)+이(人. 의존 명사)+ø(zero 주격 조사). 된 사람이. 선어말어미 ‘-얏-’이 ㄴ 앞에서 자음동화가 일어난 그대로 ‘얀’으로 표기하였다. 어간 ‘되-’는 15세기에 ‘외-’였다.
가(家)로 습(習)며 호(戶)로 송(誦)면 : 가로 습며 호로 숑면. 가가호호(家家戶戶) 익히고 외우면.
순방(淳厖) : 슌방. 순박하고 후함.
이륜(彛倫) :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지켜야 할 도리.
돈후(敦厚) : 인정이 두텁고 후함.
제(齊)며 : 졔며. 잘 다스려 바로잡으며.
속(俗) : 쇽. 풍속.
범(範)매 : 범-[範]+-ㅁ(명사형 어미)+-애(처격 조사). 모범이 되게 함에. 본보기가 되게 함에.
보(補)미 : 보탬이. 돕는 바가.
이시믈 : 있음을.
몯예라 : 몯-[不]+-여(연결어미)+-ㅣ라(서술격 조사). 못하여서이다. 못하겠다.
대명(大明) : 중국의 명나라.
정덕(正德) 무진(戊辰) : 졍덕 무진. ‘정덕’(正德)은 중국 명나라 때의 연호로서, 정덕 무진년이라 하면 명나라 무종(武宗) 3년(1508)을 가리킨다.
춘왕(春王) : 츈왕. 정월(正月)을 달리 부르는 이름.
상한(上澣) : 샹한. 상순(上旬). 초하루부터 초열흘까지의 사이를 가리킨다. 앞의 한문본 부분에서는 ‘上浣’으로 기록하고 있다.
망젼 : 음력 보름이 되기 이전. 망전(望前).
스노라 : 스-[書]+-노라(평서법 어미). 쓴다. 이 동사는 원래 ‘쓰다’였는데, 1465년 『원각경 언해』에서부터 각자병서의 표기가 폐지되면서 ‘스다’로 되었다. 그 후 16세기에 ㅆ이 부활되었으나 여기서는 그냥 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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