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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효경언해+책정보

19ㄴ

廣要道 章第十五
子曰 敎民親愛 莫善于孝 敎民禮順 莫善于弟 移風易俗 莫善於樂

20ㄱ

安上治民 莫善於禮 禮者 敬而已矣
제15장 광요도(廣要道)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을 가르치되 친하며 사랑함은 효도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백성을 가르치되 예의 바르고 순함은 공경함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며, 풍속을 옮기고 바꾸는 데는 음악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웃어른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을 다스림은 예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예란 공경할 따름이다.
광요도(廣要道) : 요도를 넓히다. 여기서 요도란 가장 긴요한 효행의 도리를 이른다. 제1장 개종명의장에서 이미 지덕요도(至德要道)라 하여 ‘지극한 덕과 종요로운 도(道)’를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먼저 요도를 말하고 있다. 요도는 천하를 다스리는 비경이며 요결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요도는 효치의 알맹이며 더 나아가서 충성으로 이어지는 충치의 이념과 맞물려 있다.
이기의(而己矣) : 일 뿐이다. 일 따름이다. 여기 따름이나 뿐은 의존명사로서 조사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의존명사는 전통문법에서는 통사적인 독립성이 없다 하여 불완전 명사라고도 불렀으나 학교문법에서는 의존형식임을 강조하여 의존명사라고 일컫는다. 달리 형식명사·매인이름씨·안옹근이름씨라고도 한다. 제 홀로는 쓰이지 못하고 반드시 그 앞에 수식어가 덧붙어야 쓰일 수 있다. 의존명사의 예로는 ‘이(사람), 것(물건), 데(곳), 바(일), 터(작정·처지), 체(모양·태도), 줄(수단·방법), 양, 듯’ 등이 있다. 의존명사 가운데 뒤에 오는 형태가 제한되는 통사적인 제약이 있다. ‘줄’은 ‘안다, 모르다’ 뒤에만 올 수 있으며, ‘따름, 뿐’은 ‘-이다’ 앞에만 쓰인다. ‘수’는 ‘있다, 없다’ 앞에 올 수 있고, ‘체, 척’은 ‘하다’ 앞에 오는 제약이 따른다. 이밖에 사물을 세는 수 단위 의존명사인 ‘말, 되, 자, 치, 권, 장’ 등도 분류사와 같은 의존명사에 속한다. 이와 함께 의존명사의 형태론적인 기능 가운데 단어 형성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늙으니, 어린이, 얼간이’와 같이 의존명사 ‘이’가 관형사형 어미를 수반하는 동사와 형용사가 유착되어 하나의 형태론적인 단위로 굳어져 쓰인다는 것이다.
故敬其父則子悅 敬其兄則弟悅 敬其君則臣悅

20ㄴ

敬一人 而千萬人悅 所敬者寡 而悅者衆 此之謂要道也
그러므로 그 아버지를 공경하면 자식이 기뻐하고, 그 형을 공경하면 아우가 기뻐하고, 그 임금을 공경하면 신하가 기뻐한다. 한 사람을 공경함에 천만 사람이 기뻐하는지라 공경하는 이는 적고 기뻐하는 이는 많으니, 이를 이르되 요도(要道)라고 한다.
경기형칙제열(敬其兄則弟悅) : 그 형을 공경하면 아우가 기뻐하고. 조선시대 형제 우애의 본보기를 든다면 조광익 형제가 있다. 밀양의 오방리에 가면 동네 밖 길가에 마련된 흙으로 쌓은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름하여 강동구(江東邱)라 한다. 조선조 중엽 형이었던 조광익의 효행과 아우 조호익과의 우애를 기리어 후손들에게 거울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조광익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요 학자로, 호는 취원당이다. 퇴계 이황의 문하생이며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다. 명종 13년(1558) 생원·진사 두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의금부도사에 이르렀다. 선조 11년(1578) 강동으로 유배된 아우 조호익을 만나려 평안도 도사의 벼슬을 얻어 갔다가 42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밀양 오방리에서 장례를 치렀으나, 강동의 선비와 백성들이 강동의 흙을 가지고 천리길인 오방리까지 와서 무덤 위에 흙을 덮고 남은 것으로 조그마한 언덕을 만들어 대나무를 심었다. 후손들이 그 우애를 기념하여 ‘강동구’라 하였으며, 선조는 형제의 우애를 표창하였다. 이 사연은 『삼강행실도』에 실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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