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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효경언해+책정보

서1ㄱ

古文孝經序
孔安國
孝經者何也 孝子 人之高行 經 常也
고문효경 서문
공안국(孔安國)
효경이란 무엇인가? 효란 사람의 고결(高潔)한 행실이다. 경이라 함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自有天地人民以來 而孝道着矣 上有明王 則大化滂流 充塞六合 若其無也 則斯道滅息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존재한 뒤로 효도란 저절로 생겨 난 것이다. 위로는 밝은 임금이 있으니 교화됨이 홍수처럼 넘쳐 흘렀고, 전후 좌우와 상하를 가득 채웠으니, 밝은 임금이 없었다면 유가(儒家)의 도는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當吾先君孔子之世 周失其柄 諸侯力爭 道德旣隱 禮誼又廢 至乃臣弑其君 子弑其父 亂逆無紀 莫之能正 是以夫子每於閑居 而歎述古之孝

서1ㄴ

道也 夫子敷先王之敎於魯之洙泗
門徒三千 而達者七十有二也 貫首弟子 顔回 閔子騫 冉伯牛 仲弓 性也 至孝之自然 皆不待諭而寤者也 其餘則悱悱憤憤 若存若亡 唯曾參躬行匹夫之孝 而未達天子 諸侯以下揚名顯親之事 因侍坐而諮問焉 故夫子告其議 於是曾子喟然知孝之爲大也 遂集而錄之

서2ㄱ

名曰孝經 與五經並行於世
나의 선대 어른인 공자의 시대는, 주(周)나라 왕실이 권위를 잃었고, 제후들은 힘으로 다투었다. 도덕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예의 또한 사라졌다. 마침내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어버이를 죽임으로써 어지럽고 거스름에 기강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를 바로 잡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공자는 한가하게 이를 한탄하며 옛날의 효도를 말할 뿐이었다. 이에 공자는 선왕의 가르침을 노나라 고향 지역에 폈다.
문도 삼천(三千)이 모여들었다. 가르침에 통달한 이가 72명이나 되었다. 수제자인 안회(顔回)와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와 중궁(仲弓) 등이 있었다. 그들의 성품은 대단히 효성스럽고 모두가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깨우칠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 나머지 제자들은 입에 맴돌아도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하였다. 오직 증삼(曾參)만이 보통 사람들[匹夫]의 효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천자나 제후 이하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어버이를 드러냄에는 이르지는 못하였다. 공자를 모심에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효도에 대하여 여쭈었다. 그러니까 공자께서는 그 마땅한 도리를 일러 주셨다. 이에 증자는 효의 위대함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이를 모아 적어놓았다. 이름하여 ‘효경’이라 하였고, 오경(五經)과 함께 후세에 행하여지게 되었다.
逮乎六國 學校衰廢 及秦始皇焚書坑儒 孝經由是絶而不傳也
춘추전국 시대의 6국[齊楚燕韓衛趙] 시절에는 중앙의 국학이나 지방의 향교들이 모두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진시황 시절에는 서책을 불사르고 지식인들을 산 채로 파묻기에 이르렀다. 효경은 이로 말미암아 없어져 전하지 않게 되었다.
至漢興 建元之初 河間王得而獻之 凡十八章 文字多誤 博士頗以敎授
한(漢)나라가 일어난 건원(서기전 140~134)의 초엽 하간왕이 〈안정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효경 1권을〉 구하여 〈무제(武帝)에게〉 바쳤다. 모두 18장인데 문자에 잘못이 많았다. 하지만 오경박사들이 자못 〈금문효경(今文孝經)으로써〉 가르쳤다.
後魯恭王使人壞夫子講堂 於壁中石函 得古文孝經 二十二章 載在竹牒 其長尺有二寸 字科斗形 魯三老 孔子惠抱詣京師 獻天子 天子使金

서2ㄴ

馬門待詔學士 與博士群儒 從隷字寫之 還子惠一通 以一通賜所幸侍中霍光 光甚好之 言爲口實 時王公貴人 咸神秘焉 比於禁方 天下競(竸)欲求學 莫能得者 每使者至魯 輒以 人事請索 或好事者 募以錢帛 用相問遺 魯吏有至帝都者 無不齎持以爲行路之資 故古文孝經 初出於孔氏
뒤에 노(魯)나라 공왕(恭王)이 사람을 시켜 공자가 쓰던 강당을 헐게 하였는데, 벽 가운데 돌로 된 함이 나왔다. 그 속에는 『고문효경』 22장이 있었는데 모두 대나무 쪽에 쓰여 있었다. 그 죽간의 길이는 한 자 두 치였고 글자는 올챙이 모양을 한 과두문자였다. 노나라의 〈천자가 예우한 지방의 큰 스승인〉 삼로(三老) 공자혜(孔子惠)란 사람이 〈효경을〉 갖고 서울로 와서 천자에게 바쳤다. 천자[昭帝]는 금마문(金馬門) 대조학사와 박사 등 많은 선비들로 하여금 예서(隷書)로 〈과두문자를〉 옮겨 쓰도록 하였다. 공자혜에게 한 통은 돌려주었고, 또 한 통은 천자가 믿고 아끼는 시중 곽광(霍光)에게 주었다. 곽광은 이를 너무 좋아하였다. 말만 하면 〈효경을〉 화두로 삼았다. 이 때 귀족들이 〈고문효경을〉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를 금하는 비방으로 여겼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다투어 〈고문효경을〉 구하여 배우려고 하였으나 쉽게 마련할 수가 없었다. 사신으로 오는 이들마다 노나라에 오면 곧 아는 사람들을 통하여 〈고문효경을〉 구하려 청을 하곤 하였다. 더러 호사가들 가운데는 돈이며 비단으로 서로 문안을 하면서 〈고문효경을 사서〉 선물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노나라의 관원이 서울에 올 경우, 〈고문효경을〉 갖고 노잣돈으로 쓰는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고문효경』은 처음에 공씨 집안에서 나와서 퍼진 것이다.
而今文十八章 諸儒

서3ㄱ

各任意巧說 分爲數家之誼 淺學者以當六經 其大車載不勝 反云孔氏無古文孝經 欲矇時人 度其爲說 誣亦甚矣
『금문효경』 18장은 여러 유자(儒者)들이 각자의 뜻을 교묘한 말로 주장하여, 내용이 갈라져 여러 갈래를 이루게 되었다. 글이 짧은 사람들이 6경을 감당하여 주장하는 내용이 큰 수레에도 실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고문효경의 존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본디 공씨 집안에는 고문효경이 없다고 함으로써 당시 사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들의 주장을 헤아려 보건대, 속절없이 그 허탄함이 또한 너무 심하였다.
吾愍其如此 發憤精思 爲之訓傅 悉載本文 萬有餘言 朱以發經 墨以起傳 庶後學者 覩正誼之有在也
나(공안국)는 이와 같은 정황을 염려한 나머지, 안타까운 마음에 꼼꼼히 살펴서 이를 위한 주해를 하게 되었고, 〈효경의〉 본문을 모두 싣게 되었다. 본문이 만여 자가 되는데 경문은 빨간 주서로, 전문은 검은 묵서로 썼다. 이제 후세 학자들이 올바른 경문과 주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이는 바이다.
今中秘書 皆以魯三老所獻古文爲正 河間王所上 雖多誤 然以先出之故 諸國往往有之

서3ㄴ

漢先帝發詔 稱其辭者 皆言傳曰 其實今文孝經也
지금 궁중의 비밀 서책은 다 노나라의 삼로(공자혜)가 바친 옛 글 『효경』을 정본으로 삼고 있다. 하간왕이 바친 것(『금문효경』)은 비록 잘못이 많더라도 먼저 나타난 것이므로 여러 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다. 한나라의 선제(문제)가 조칙으로써 발표할 때, 효경의 말을 칭할 때는 모두 “전왈”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실 『금문효경』을 이르는 것이다.
昔吾逮從伏生論古文尙書誼 時學士會云出叔孫氏之門 自噵知孝經有師法 其說移風易俗 莫善於樂 謂爲天子用樂 省萬邦之風 以知其盛衰 衰則移之 以貞盛之敎 淫則移之 以貞固之風 皆以樂聲知之 知則移之 故云 移風易俗 莫善於樂也
나(공안국)는 〈진나라의 박사인〉 복생을 따라서 『고문상서(古文尙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는 자리에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학자들이 모여 이르기를, 자신들은 스승인 숙손씨(叔孫氏)의 문하생이니, 효경을 앎에 있어 스승인 숙손씨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또 그들은 말하기를, 〈효경 광요도장에 나오는〉 “기풍을 바꾸고 풍속을 바꿈에 있어 음악만 한 것이 없다.”라는 해석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천자가 정사를 폄에 음악을 활용할 경우, 만방의 기풍을 잘 돌아보고 그 성쇠를 알아서 쇠망해 가는 나라는 북돋아주는 가르침을 주고, 황음한 경우에는 그 기풍을 고정시켜주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모두가 다 음악으로써 이를 알아차렸으며, 이를 잘 알면 그 기풍을 바꿀 수가 있다. 그러므로 풍속을 바꿈에는 음악이 가장 좋은 것이다.
又師曠云

서4ㄱ

吾驟歌南風 多死聲 楚必無功 卽其類也 且曰 庶民之愚 安能識音 而可以樂移之乎 當時衆人僉以爲善 吾嫌其說迂 然無以難之 後推尋其意 殊不得尒也
또 〈진나라 평공의 악사인〉 사광(師曠)은 말하기를, “저는 남풍조의 노래를 부릅니다. 남쪽의 노래는 죽어가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초나라는 반드시 지나와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어리석은 서민들이 어떻게 소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가히 음악으로써 세상의 풍속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니,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숙손가의 하는 일을〉 잘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그런 주장이 어리석어 싫었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뒤에 〈효경의 전을 쓰려고〉그들의 의향을 살펴보았는데, 그들의 의향은 특별히 취할 바가 없었다.
사광(師曠) :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 자는 자야(子野)다. 진 평공(晉平公) 때 악사(樂師)를 지냈다. 전하는 말로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는데, 음률을 잘 판별했고 소리로 길흉까지 점쳤다고 한다. 제(齊)나라가 진나라를 침공했는데, 새소리를 듣고 제나라 군대가 이미 후퇴한 것을 알아냈다.
子游爲武城宰 作絃歌以化民 武城下邑 而猶化之以樂 故傳曰 夫樂以關山川之風 以曜德於廣遠 風德以廣之 風物以聽之 脩時以詠之 脩禮以節之

서4ㄴ

又曰 用之邦國焉 用之鄕人焉 此非唯天子用樂明矣 夫雲集而龍興 虎嘯而風起 物之相感 有自然者 不可謂母也 胡笳吟動 馬蹀而悲 黃老之彈 嬰兒起舞 庶民之愚 愈於胡馬與嬰兒也 何爲不可以變化之
자유(子游)가 무성의 수령이 되었을 때,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로써 백성을 교화하였다. 무성 같은 작은 고을인데도 음악으로써 백성을 교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傳)에서 말하기를, “무릇 음악은 산천의 기풍을 관계하여 덕화를 넓고 멀리 밝게 비치게 한다. 바람처럼 덕을 널리 펴고 바람처럼 문물을 들어 알게 한다. 시를 다듬어 읊게 하며 예로써 절도 있게 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이를 여러 나라에서 누리고 시골 마을에서도 누렸다.” 하였으니, 음악이란 다만 홀로 천자만이 음악을 활용하는 게 아님이 명확하다.
무릇 구름이 모여들면 용이 일어나고, 호랑이가 울부짖으면 바람이 일어나듯이, 사물이 서로 감응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서민들은 음악을 모른다고〉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랑캐의 구성진 피리 소리가 나면 말이 앞발을 구르며 슬피 울었고, 노인들이 거문고를 타면 어린 아이들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어리석은 서민이라도 오랑캐 말이나 어린 아이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음악으로써 교화함이 안 된다는 말인가?
經又云 敬其父則子悅 敬其君則臣悅 而說者以爲各自敬其爲君父之道 臣子乃悅也 余謂不然 君

서5ㄱ

雖不君 臣不可以不臣 父雖不父 子不可以不子 若君父不敬其爲君父之道 則臣子便可以忿之耶 此說不通矣 吾爲傳 皆弗之從焉也
또한 효경 〈광요도장〉에, “그 아버지를 존경해야 아들이 기뻐하고, 그 임금을 존경해야 신하가 기뻐한다.” 하였는데, 이 구절에 대하여도 여러 가지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 각자가 스스로 임금과 아버지의 도리를 다 해야 신하나 자식들이 그들을 기뻐한다. 하지만 나(공안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한다. 임금이 비록 임금답지 못하더라도 신하는 신하답게 해야 하고, 아버지가 비록 아버지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아들은 아들답게 행해야 한다.
만약에 임금과 아버지가 임금과 아버지 됨의 도리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하여 신하와 아들이 분노해서야 되겠는가. 이러한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내가 전 곧 주석을 함에 있어 이러한 주장들은 좇지 않는다.
효경(孝經) : 『금문효경』과 『고문효경』의 편차가 다르다. 그런데 내용상에서 『고문효경』은 『금문효경』의 서인장을 ‘서인, 효평’의 두 장으로 나누고, 또 성치장은 ‘성치, 부모생적, 효우열’의 세 장으로 나누고, 광양명장 뒤에 규문 한 장을 덧붙여 22장으로 하였으니, 실제는 규문장 하나가 더 많을 뿐이다. 편차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장차『금문효경(今文孝經)』『고문효경(古文孝經)』
1장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2장천자장(天子章)천자장(天子章)
3장제후장(諸侯章)제후장(諸侯章)
4장경대부장(卿大夫章)경대부장(卿大夫章)
5장사장(士章)사장(士章)
6장서인장(庶人章)서인장(庶人章)
7장삼재장(三才章)효평장(孝平章)
8장효치장(孝治章)삼재장(三才章)
9장성치장(聖治章)효치장(孝治章)
10장기효행장(紀孝行章)성치장(聖治章)
11장오형장(五刑章)부모생적장(父母生績章)
12장광요도장(廣要道章)효우열장(孝優劣章)
13장광지덕장(廣至德章)기효행장(紀孝行章)
14장광양명장(廣揚名章)오형장(五刑章)
15장간쟁장(諫諍章)광요도장(廣要道章)
16장응감장(應感章)광지덕장(廣至德章)
17장사군장(事君章)응감장(應感章)
18장상친장(喪親章)광양명장(廣揚名章)
19장규문장(閨門章)
20장간쟁장(諫諍章)
21장사군장(事君章)
22장상친장(喪親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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