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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효경언해+책정보

子ㅣ 曰왈 孝효子之지喪상親친은 哭곡不블偯며 禮례無무容용며 言언不블文문며 服복美미不블安안며 聞문樂악不블樂락며 食식旨지不블甘감니 此ㅣ 哀戚쳑之지情졍이라
子ㅣ 샤 孝효子의 어버이 거상홈은 우롬을 偯티 아니며 례도를 容용티 말며 말을 빗내 아니며 됴 닙옴애 편안

25ㄱ

아니 녀기며 풍뉴를 드르매 즐기디 아니며 맛난 거 먹음애 게 녀기디 아니니 슬프고 셜워 情졍이라
〈전(傳) 제14장 상친(喪親)〉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효자가 어버이 상을 당하여 곡을 할 때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며, 예법을 지키되 용모를 꾸미지 말아야 한다. 말을 하되 다듬어서 모양새 좋게 하지 말며, 좋은 옷을 입어도 편안히 여기지 아니한다. 음악을 들어도 즐거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게 여기지 아니해야 한다. 이렇게 함이 〈죽은 어버이를〉 슬퍼하고 서러워하는 정이니라.
례도를 용(容)티 말며 : 예를 지키되 얼굴을 꾸미지 말며. 예도를 나타내지 말며. 두음법칙을 따라서 ‘례도〉예도’로 소리가 변동된다. 두음법칙은 단어 첫머리에서 발음하기 까다로운 자음을 발음하기 쉽게 고치는 음운규칙이다. 국어의 단어 첫머리에는 두 개 이상의 자음군(子音群)이 올 수 없고 ‘ㅇ·ㄹ’도 올 수 없으며 반모음 ‘이’로 시작되는 이중모음 앞에 ‘ㄴ’도 올 수 없다. 그래서 이러한 자음이나 자음군이 단어 첫머리에 놓이면 이들을 발음하기 쉽게 바꾸게 된다. 말하자면 이러한 자음들이나 어두 자음군이 단어 첫머리에 놓이면 이들을 발음하기 쉬운 소리로 바꾸게 된다. 그 전제는 이러하다. (1)그 자음을 떨어뜨린다. (2)그 자음을 다른 자음으로 바꾼다. (3)그 자음의 앞이나 뒤에 모음을 끼워 넣는다.
三삼日일而이食식은 敎교民민無무以이死傷상生이며 毁훼不블滅멸性셩이니 此ㅣ 聖셩人인之지政졍이라
사만의 먹음은 셩을 치되 주근 이로 이 샹케 아니며 毁훼毁훼 여위여 얼굴이 고텨 되미라】야도 性셩을 업게 아니홈이니 聖셩人인의 졍라
〈어버이 죽고〉 사흘만에 음식을 먹음은 백성을 가르치되,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을 상하게 아니하며, 훼(毁)【훼는 여위어 얼굴이 변하게 됨이다.】하여도 성정을 없이하지(잃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것이 성인(聖人)의 정사(政事)이다.
사만의 먹음은 : 사흘만에 음식을 먹게 함은. 부모가 돌아가셨어도 사흘이 지나면 음식을 반드시 먹게 한 것은. 아래아(ㆍ)의 변천을 거쳐서 ‘사〉사흘’로 소리가 바뀌어 굳어진 형이다. 아래아(ㆍ)의 변천과 함께 제1음절에서 아래아(ㆍ)가 변음하여 ‘리다〉차리다’로 소리가 변동하여 굳어져 쓰인다. 15세기 중세어의 단모음은 ‘ㆍㅡㅣㅗㅏㅜㅓ’의 일곱 소리가 있다. 특히 아래아(ㆍ)는 훈민정음해례 제자해에 소리값에 대한 풀이가 있다. 아래아(ㆍ)의 소리는 혀를 움츠리고 소리는 길다. 혀의 움츠림은 혀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움츠리지 않음은 전설, 조금 움츠림은 중설, 움츠림은 후설 쪽을 이른다. ㅗ가 ㆍ와 같다는 것은 혀의 높이가 반 닫음을 뜻하고, ㅏ가 와 같다는 것은 중설을 뜻하는 것이 되어 소리값은 ㅔ 또는 ㅐ로 풀이된다. 아래아(ㆍ)는 2단계에 걸쳐서 음가의 변화를 겪는다. 제1단계는, 15세기 중엽부터 단어의 제2음절 이하에서는 주로 ‘ㅡ’로 바뀌게 된다. 그러한 변화의 흐름은 17세기 초였다. 다음 2단계로 아래 아(ㆍ)의 소리값이 변한 것은 18세기 말경으로 제 1음절에서 ‘ㅏ’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글자는 보수적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소리와는 상관없이 그대로 사용되다가,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과 함께 공식적으로 안 쓰기로 한다. 즉 아래아(ㆍ)는 그 소리 값의 소실과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문자로서의 사용되다가 현대 국어에 와서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제주도나 경상도 일부 지역어에는 아래아(ㆍ)의 소리값이 여전하게 쓰이고 있다.
성인(聖人)의 정라 : 성인이 하는 정사(政事)이다. 성인이 하였던 바른 도리이다. 단모음화를 거쳐서 ‘셩인〉성인’으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성인이란 덕과 지혜가 뛰어나 사리에 정통하여 많은 사람의 거울이 되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이른다. ‘정라’는 정사에 서술격 조사 ‘-이다’가 통합된 형이다.
훼(毁) : 상을 당한 사람이 여위어 얼굴이 변하게 됨. 얼굴이 파리함. 얼굴이나 몸이 야위어 변한 모습이다.

25ㄴ

喪상不블過과三삼年년은 示시民민有유終죵이니 爲위之지棺관槨곽衣의衾금야 而이擧거之지여 陳딘其기簠보簋궤야 而이哀애戚쳑之지며 擗벽踊용哭곡泣읍야 哀而이送송之지며 卜복其기宅兆됴야 而이安안厝조之지며 爲위之지宗종廟묘야 以이鬼귀享향之지며 春츈秋츄祭졔祀야 以이時시思之지니
거상을 三삼年년의 디나디 아니홈은 셩의게 이 이숌을 뵘이니 棺관과 槨곽과 옷과 니블을 야 들며 簠보과 簋궤졔긔 일홈이라】

26ㄱ

버려 슬허며 擗벽며 踊용며 哭곡며 泣읍야 슬허 보내며 宅兆됴 졈복야 安안厝조며 宗종廟묘를 야 귀신으로 享향며 봄과  祭졔祀야 시졀로 각게 니
거상(居喪)을 삼 년이 넘지 않게 한 것은 백성들에게 끝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니, 관곽(棺槨)과 의금(衣衾)을 만들어 장례를 올리고 보(簠)와 궤(簋)【모두 제기의 이름이다.】를 벌려 애도하며,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며 곡을 하고 울며, 슬퍼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그 좋은 자리를 골라 편히 모시며, 종묘를 만들어 영혼을 섬기며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어 때마다 생각하게 하니,
택조(宅兆) 졈복야 안조(安厝)며 : 좋은 곳으로 묘자리를 정하여 흙에 묻으며.
生事愛敬경고 死事哀戚쳑애 生民민之지本본이 盡진矣의며 死生之지義의ㅣ 備비矣의니 孝효子之지事親친이 終죵矣의니라
사라겨신 셤기되 랑며 공경홈으로

26ㄴ

죽으시매 셤기되 슬허홈애 셩의 本본이 극진며 죽으며 살옴의 義의 니 孝효子의 어버이 셤김이 이니라
살아계실 때는 〈어버이를〉 사랑과 공경으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슬퍼함으로써 섬김이니, 이로써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의 근본을 다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생전과 사후의 예의를 다 갖추는 것이다. 이로써 효자로서 어버이를 섬기는 일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공경홈으로 고 : 공경함으로써 섬기고. 여기서 ‘고’는 대동사 ‘다’에 부사형 어말어미 -고가 통합된 형이다. ‘다’는 대동사로서 ‘공경’이라는 의미를 대신하면서 동사화의 구실을 하고 있다. 한국어에서 ‘하-’라는 형태는 서술 기능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고도 생산적인 문법 요소이다. 동사성이나 상태성의 명사 또는 어근이 서술 기능을 드러내는데 ‘하-’의 구실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숱한 한자 어휘 등 형태론적으로 용언의 범주에 들지 않는 어휘 성분의 대다수는 이 ‘하-’와 어울림으로써 서술어로서의 문법적 기능을 온전히 드러낸다. 따라서 한국어의 서술어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하-’의 기본 기능을 올바로 파악하고 기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슬허홈애 : 슬퍼함에. 동사 ‘슬허다’에 명사형 어미 ‘-ㅁ’이 통합되고 여기에 삽입모음 ‘-오-’가 개입된 형이다. 이는 선어말어미로서 말하는 이의 공손함을 드러낸다. 삽입모음이란 용언이 활용할 때 어간과 어말어미 사이에 끼어드는 일종의 선어말어미 ‘-오(요)/우(유)-’의 형태소를 말한다. 삽입모음은 15세기 중세 국어에서 규칙적으로 쓰여 오다가 중간 『두시언해』에 이르러 혼란한 양상을 보였다. 현대 국어에서의 시문이나 문어체 표기에서나 그 흔적을 더러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삽입모음에 대한 여러 학설의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한다.
*허 웅 : 종결-연결어미와 결합한 ‘-오/우-’는 일인칭 주어에 호응하는 활용어미이며, 전성어미의 관형사형과 통합된 것은 대상 활용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중세국어만의 특징으로 상정하였다.
*이숭녕 : 삽입모음 ‘-오/우-’가 개재함은 주관적 판단, 또는 의도의 개입을 나타내는 의도법인데 직서법에 대응되는 표현이라고 하였다.
*김형규 : 일인칭 주어에 호응하는 문법적 형태도 의도법의 표현도 아니다. 다만 선인들이 호감을 가지는 모음을 자유롭게 삽입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남덕 : 삽입모음 ‘-오/우-’가 개입되는 것은 그 불개입의 직설법에 대응되는, 정의적(情意的) 강조를 나타내는 정동법(情動法)인데, ‘노라’와 같이 ‘오/우'가 개입된 것은 그 중의 주관적 정동법으로서 1인칭 주어에 호응하며, ‘놋다, 도다’처럼 ‘-옷-’ 또는 ‘-도-’가 개재된 것은 객관적 정동법으로서 2, 3인칭, 또는 비인간의 주어에 연결된다고 보았다.
*강길운 : 형용사는 원래 화자의 가정이 가해진 말이므로, 그 관형사형엔 ‘-오/우-’가 개입하지 않는데, 동사는 그렇지 않은 말이어서 ‘-오/우-’가 개재하여 형용사같이 한정을 나타내었다. 나아가서 명사형은 물론, 종결·연결어미에 결합한 ‘-오/우-’도 역시 한정을 표시한다.
右우 傳뎐之지 十십四章쟝이라
右우 傳뎐의 열넷잿 章쟝이라
윗(오른쪽) 글은 〈성현이 지으신〉 전의 열네째 장이다.
전(傳) : 이 『효경언해』의 체재를 보면, 『효경』 한 편을 먼저 싣고, 그 뒤에 전(傳)을 붙이되 14장으로 나누어 풀이하고 있다. 그 체재는 『효경대의』와 똑같다. 즉 『효경대의』를 저본으로 하여 언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효경대의』는 『고문효경』의 체재와는 다름을 볼 수 있으니, 『고문효경』은 『효경』을 22장으로 나누어 풀이하였을 뿐이다. 이것을 『효경대의』에서는 고문 1장에서 7장까지를 『효경』 1장(章)이라고 하여 묶고, 그 뒤를 이어 전(傳) 14장으로 풀이하였는데, 전 14장은 『고문효경』의 8장부터 22장까지의 내용을 다른 차례로 엮고 있다. 이렇게 체재가 다른 것은 『효경대의』가 『효경간오(孝經刊誤)』를 따랐기 때문이다. 노(魯)나라 공왕(恭王)이 사람을 시켜 공자가 쓰던 강당을 헐게 하였는데, 벽 가운데 돌로 된 함이 나왔다. 그 속에는 고문으로 된 『효경』 22장이 있었는데 모두 대나무 쪽에 쓰여 있었다고 한다. 노나라의 삼로(三老) 공자혜(孔子惠)란 사람이 〈이 책을〉 갖고 서울로 와서 천자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 뒤 이 책에 공안국(孔安國)이 전(傳)을 붙여 엮은 책이 『고문효경』이다. 그런데 『금문효경』은 『고문효경』이 나타나기 전에 한(漢)나라가 일어난 건원(建元; 서기전 140~134 무제(武帝)의 연호)의 초엽 하간왕이 전해오던 효경 1권을 구하여 무제에게 바쳤다는데, 모두 18장으로 되어 있었다. 한편,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는 고문효경과 금문효경이 같지 않음을 보고, 효경의 내용을 독자적으로 분류하여 장(章)과 절(節)로 나누어서 『효경간오』를 지었는데, 이것은 고문을 위주로 하였다고 한다. 주희는 효경을 경(經) 1장과 전(傳) 14장으로 나누고, 경 1장은 공자와 증자가 묻고 대답한 것을 증자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 하고, 전은 누군가 전기(傳記)를 이끌어 경문(經文)을 해석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효경대의』는 『효경간오』를 저본으로 삼으면서 체재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니, 그 체재는 주희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효경언해』의 저본인 『효경대의』와, 『고문효경』의 차례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효경대의(효경언해)고문효경효경대의 서문(武夷熊禾, 1305)고문효경 서문(孔安國)경(經) 1장(章)
> 제1장 개종명의(開宗明誼)
> 제2장 천자(天子)
> 제3장 제후(諸侯)
> 제4장 경대부(卿大夫)
> 제5장 사(士)
> 제6장 서인(庶人)
> 제7장 효평(孝平)
전(傳) 제1장제16장 광지덕(廣至德)전 제2장제15장 광요도(廣要道)전 제3장 제8장 삼재(三才)전 제4장 제9장 효치(孝治)전 제5장제10장 성치(聖治)전 제6장제11장 부모생적(父母生績)제12장 효우열(孝優劣)전 제7장제13장 기효행(紀孝行)전 제8장제14장 오형(五刑)전 제9장제21장 사군(事君)전 제10장제17장 응감(應感)전 제11장제18장 광양명(廣揚名)전 제12장제19장 규문(閨門)전 제13장제20장 간쟁(諫諍)전 제14장제22장 상친(喪親)효경대의 발문(柳成龍)
孝효經경諺언解 終죵
효경언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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