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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사서언해+책정보

勤근은 女녀의 職직이오 儉검은 富부의 터히니 勤근고 儉검티 아니면 헛도

여사4:65ㄱ

몸을 슈고롭게 고 儉검고 勤근티 아니면 苦고 게 바드릴 儉검으로 勤근의 有유餘여 더게 고 勤근으로 儉검의 不블足죡을 補보디니 만일 貴귀호 能능히 勤근면 몸이 슈고로오나 敎교ㅣ 일고 富부호 能능히 儉검면 딕미 요약고 집이 날로 興흥니라 일로 明명德덕은 太태后후의 尊존으로 오히려 大대練년을 닙고 穆목姜강은 上샹卿경의

여사4:65ㄴ

모로 오히려 紉인麻마 일삼며 葛갈覃담과 卷권耳이 后후妃비의 賢현勞로 읇고 采蘩번과 采蘋빈은 夫부人인의 恭공儉검을 述슐며 七칠月월의 章쟝은 半반이나 女녀職직을 니고 五오噫희의 咏영은 實실로 妻쳐ㅣ 賢현기 힘닙으며 仲듕子 三삼公공의 貴귀 양야 몸은 신을 며 妻쳐 纑노 辟벽고 少쇼君군은 萬만貫관의 粧장을 물리텨 가지로 수

여사4:66ㄱ

挽만고 스로 나가 기니이다 몸소 勤근勞로 잡으며 몸소 節졀儉검을 行야 곳다온 길임을 詩시書셔의 揚양고 어딘 일홈을 史冊의 播파 者쟈ㅣ니 힘띤뎌
제10. 근면과 검소[勤儉篇]
부지런함은 여자의 직분이고, 검소함은 부유함의 근본이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헛되이 그 몸을 수고롭게 하고, 검소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 괴로움을 달게 받아야 한다. 검소함은 부지런함의 여유가 있음을 더하게 하고, 부지런함은 검소함의 부족함을 보충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귀한 사람이 능히 부지런하면 몸은 수고로우나 가르침이 이루어지고, 부유한 사람이 능히 검소하게 생활하면 절약을 지켜 가정이 날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명덕황후는 태후의 높은 몸으로써 오히려 굵은 베옷을 입었고, 목강(穆姜)은 상경(최고의 벼슬)의 어머니로서 오히려 바느질하고 삼을 삼기를 일삼았다. 〇【한나라 명덕 마황후가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항상 흰 베옷을 입고 화려한 무늬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〇 목강은 노나라 상경 공보 문백(文伯)의 어머니이며 목백(穆伯)의 처 경강(敬姜)이다. 문백이 궁정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 어머니가 길쌈을 하는 것을 보고 말하되, “촉(歜, 높은 벼슬) 집안의 어머님이 어찌 삼을 쌓는 일을 하십니까?” 하니, 어머니가 탄식하여 말하되, “노나라가 망하려는가? 어린 아이를 경으로 삼으니 대도를 듣지 못했구나 사람이 일을 하면 생각이 선해지고 놀면 생각이 나쁜 쪽으로 흐르니, 이제 네가 경이 되어 수고로움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나의 여자의 직분에 충실함을 이상하게 여기니, 나는 노나라가 장차 망하고 목백의 제사가 폐할까 두려워 하노라.” 하였다. 이 일은 『춘추전』에 실려있다.】『시경』 「갈담(葛覃)」과 「권이(卷耳)」에는 제후의 후비가 어질고 수고로웠음을 시로 읊었고, 「채번」과 「채빈」은 부인의 공경과 검소함을 시로 지었다. 〇【「주남·갈담」의 시에 후비가 칡넝쿨을 채집하여 몸소 갈포를 만들어 의복을 만들었다고 하고, 「주남·권이」의 시에 후비 권이를 캐어서 종묘 제를 제공했다고 하니, 다 후비의 공손하고 검약한 태도를 서술한 것이다. 〇 「소남·채번」의 시는 부인이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지러한 자세로 일관한 것을 아름답게 여겼고, 「채빈」의 시는 대부(大夫)의 처로써 공경하고 절검(節儉)하여 종가의 제사일에 부지런함을 아름답게 여겼다.】『시경』 「칠월」의 시에는 그 절반이 여자의 직분을 말하였다. 「오희(五噫)」의 노래는 실로 그 아내의 현명함에 힘을 입었다고 하였으며, 〇【「빈풍·칠월」의 시는 대갓집의 귀한 여자가 수고로운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농사와 양잠일을 하였다고 한다. 〇 한나라 양홍(梁鴻)은 처 맹광과 함께 오(吳)나라에 들어가서 세상을 피할 때 「오희」의 노래를 지었다.】진중자(陣仲子)는 삼공의 귀한 벼슬을 사양하고 몸소 신을 짰고, 아내는 베를 짰다고 하며, 환소군(桓少君)은 만 관이나 되는 재물을 물리치고 자기가 작은 수레를 당기고 끌어 와서는 스스로 나가서 물을 길렀다. 〇【노(纑)는 무명실에 풀을 매겨 끈으로 묶고 삼을 엮어서 실을 만든다는 말이다. 제나라 임금이 진중자를 재상으로 삼고 싶어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능에 피하여, 그 처는 노를 꼬고 몸은 짚신을 만들어 밥벌이를 하였다. 〇 환소군은 한나라 포선(鮑宣)의 처다. 처음 시집갈 때 재물이 아주 많았지만 포선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말하되, “소군은 부유한데서 태어나서 가난하고 천한 집으로 시집을 와야 하니 내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다.”라고 하니, 처가 말하되, “제 아버지께서는 선생이 덕을 닦으며 검소함을 지키므로 첩으로 하여금 군자를 섬기게 하였는지라 오직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하였다. 이에 그 노복과 화려한 옷과 장식을 돌려보내고, 거친 베옷을 입고 남편과 함께 작은(사슴이 끄는) 수레로 시집으로 돌아와 시부모에게 절하기를 마친 후에 곧 물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길었다.】이 모두가 몸소 근면하게 근로하고 몸소 절약과 근검함을 실행하여 그 꽃다운 기림을 시서(詩書)에 드날린 어진 이름으로 역사책에 전파시킨 이들이니, 그 또한 힘쓸 것이다.
터히니 : 터이니. 당이니. ‘터ㅎ-+-이(서술격조사)-+-니(연결어미)’의 구성.
헛도이 : 헛되이. 되다는 ‘다’〈석보상절 9:41ㄱ〉에서 ‘다〉외다’〉도외다〉되다’라는 단계적 변화 과정을 거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헛-+도외-+-이(부사화접사)’의 구성에서 ‘오’의 축약으로 ‘헛도이’가 실현되었다.
슈고롭게 : 수고스럽게. ‘수고(愁苦)-+-롭(형용사파생접사)-+-게(부사형어미)’의 구성.
바드릴 : 받으므로. ‘받[受]-+-으(삽입모음)-+-ㄹ(연결어미)’의 구성.
딕미 : 지킴이. ‘딕히[守]-+-ㅁ(명사형)-+이(주격조사)’의 구성. 15세기에는 ‘딕다’ 외에 ‘딕킈다, 딕희다, 디킈다’ 등이 나타난다. 18세기에는 ‘딕히다, 딕킈다, 딕희다, 디키다, 디킈다, 지킈다, 직희다, 직히다’ 등의 다양한 예들이 확인된다. 이 시기는 구개음화가 국어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명덕태후(明德太后) : 명덕(明德) 마황후(馬皇后). 한(漢)나라 명제(明帝)의 황후이며 장제(章帝)의 어머니.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항상 흰 베옷을 입었고 화려한 무늬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훈』 「절검」에 기록이 있다.
대련(大練) : 황후가 입는 겉옷.
목강(穆姜) : 노나라 상경(上卿) 공보 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이며 목백(穆伯)의 처 경강(敬姜)을 이르는 말. 왕상이 『춘추전』 「병례」, 「지혜」편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샹경(上卿) : 경의 벼슬. 높은 지위.
갈담(葛覃) : 『시경』 「갈담·권이」편의 이름. 이 시는 제후의 후비가 훌륭하게 자신의 직분에 힘쓰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시경』 「주남·갈담」의 시에서는 후비가 칡덩굴을 채집하여 몸소 갈포를 만들어 의복을 지어 입었다고 하였다. 「주남·권이」에서는 후비가 산에 올라가 도꼬마리를 채집하여 종묘의 제사에 쓰면서 군자가 하는 일을 도운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모두 후비의 부지런한 노력을 서술한 것이다.
권이(卷耳) : 『시경』의 「갈담·권이」 편의 이름.
채빈(采蘋) : 『시경』의 「채번·채빈」 편의 이름. 이 시는 대부의 부인이 공손하고 검약한 태도로 행동함을 서술한 것이다. 『시경』의 「소남·채번」의 시는 부인이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지런한 자세로 일관한 것을 칭송한 내용이다.
공검(恭儉) : 공경하고 검소함.
여직(女職) : 여자의 일. 아내가 할 일.
양홍(梁鴻) : 한나라 사람으로, 자는 백란(伯鸞)이며 후한(後漢) 초기 장제(章帝) 시대의 은사(隱士)임. 「오희(五噫)」의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피하여 처 맹광(孟光)과 함께 오나라로 들어가 부부의 예를 갖추며 살았다고 한다.
맹광(孟光) : 양홍(梁鴻)의 처. 부부는 사람들의 쌀을 빻아주는 일로 밥벌이를 하였다. 처 맹광은 때마다 밥상을 눈썹의 높이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서 양홍에게 바쳤다. 마을의 부호 맹씨의 딸인 소문난 추녀였는데 양홍이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남편을 예로서 섬겼으며, 남편에게 밥상을 줄 때 눈길을 아래로 내리고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올려 건넸다고 한다. 『후한서』 권83, 「속열녀전」, 『고금열녀전』 등에 보이며 우리나라에도 널리 전해진 이야기이다.
중자(仲子) : 제나라 시대 진중자(陳仲子). 삼공의 귀한 자리를 사양하였고 자신은 짚신을 만들고 처는 무명실을 잣는 일을 한 은자(隱者)이며, 자가 자종(子終)이고 제나라의 오릉읍(於陵邑)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오릉자종(於陵子終)’이라고도 했다. 그는 청렴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맹자』 「등문공하」, 『열녀전』 「현명·초오릉자」, 『규범』 등에도 나온다.
노(纑) : 무명실인데 풀을 매겨 끈으로 묶고 마를 엮어서 만든 것.
벽(辟)고 : 실을 잦고.
깃거 아니야 : 기뻐 아니하여. 기뻐하지 않고.
소군(少君) : 한나라 포선(鮑宣)의 처 환소군(桓少君). 『후한서』 권84, 『규범』 권2, 『고금규범』 권2에 소개되어 있다.
물리텨 : ‘물리티-+-어(연결어미)’의 구성. 물리쳐.
만(挽)고 : 끌고 오고.
조리이다 : 좇았다. 따랐다.
나가 : 나가서. ‘나[出]-#가[行]-+아’의 구성.
기니이다 : 〈물을〉 길렀다. ‘기[汲]-+-니이다(종결어미)’의 구성.
양(揚)고 : 드날리고.
파(播) : 전파한.
띤뎌 :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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