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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사서언해+책정보

여사4:51ㄴ

智디慧혜篇편
治티安안大대道도ㅣ 固고在丈댱夫부ㅣ어니와 有유智디婦부人인이 勝승於어男남子니 遠원大대之지謀모 預예思而이可가料뇨고 倉창卒졸之지變변은 泛범應응而이不불窮궁 求구之지閨규閫곤之지中듕면 是시亦역笄계幃위之지傑걸이라 是시故고로 齊졔姜강이 醉晉진文문而命명駕가야 卒졸成셩覇패業업고 有유緡민이 娠신少쇼康강而이出츌竇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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遂슈致티中듕興흥며 〇晋진文문公공이 처엄의 公공子ㅣ 되야 難난을 避피야 齊졔에 가니 齊졔桓환公공이 女녀로 妻쳐대 즐겨 도라가기 닛거 조 신하 趙됴衰최等등이 나모 가온대셔 의논야 公공子 겁박야 도라가고져 더니  계집이 듯고 라가 齊졔姜강의게 告고대 姜강이 죽여 입을 滅멸고 이에 公공子 술을 권야 醉이고 리 趙됴衰최等등을 불러 公공子 븟들어 수에 올려가니 公공子ㅣ 술이 매 임의 齊졔地디境경을 낫디라 後후에 나라 도라와 伯패業업을 일오니라 〇 夏하寒한浞착이 夏하帝뎨相샹을 죽이고 位위 簒찬니 帝뎨의 妃비 有유緡민氏시ㅣ 娠신을 懷회야 담구멍 가온대 숨어 실어곰 죽디 아니야 도망야 母모家가의 도라와 少쇼康강을 나니 虞우君군이 二이女녀로 妻쳐고 衆듕五오百人인을 두어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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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한浞착을 滅멸고 夏하室실을 中듕興흥니라】
顔안女녀ㅣ 識식聖셩人인之지後후ㅣ 必필顯현야 喩유父부擇壻셔而이禱도尼니丘구고 陳딘母모ㅣ 知디先션世셰之지德덕이 甚심微미야 令녕子因인人인以이取俟후爵쟉며 〇孔공子의 父부 叔슉梁냥紇흘이 妻쳐 喪상고 再娶고져 더니 母모 顔안氏시의 父부ㅣ 집의 닐러  孔공叔슉梁냥이 老노醜고 武무勇용디라 再娶고져 호 사이 妻쳐 者쟈ㅣ 업니 엇더뇨 少쇼女녀徵딩在ㅣ  들니 孔공氏시 聖셩王왕의 裔예라 後후ㅣ 반시 昌챵리니 妻쳐이 엇디 해로오리오 父부ㅣ  그러면 널로 妻쳐이 可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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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드여 叔슉梁냥의게 嫁가니 늘거 子ㅣ 업가 두려 이에 尼니丘구山산神신의게 비러 仲듕尼니 나니라 〇 秦진末말에 天텬下하ㅣ 크게 어즈러오니 陳딘嬰영이 본 才略냑이 잇디라 衆듕이 셰워 君군을 삼고져 거 母모ㅣ  집이 先션世셰에 德덕이 업니 일을 들어도 반시 이디 못디라 主쥬 야 셤김만 디 못니 일이 일면 可가히 侯후 封봉 거시오 이디 못야도 可가히 스로 免면리라 嬰영이 이에 項항梁냥을 조차 兵병을 니혓더니 後후의 漢한에 도라와 功공으로 棠당邑읍俟후 封봉니라】
剪젼髮발留뉴賓빈야 知디吾오兒之지志지大대고 隔격屛병窺규客야 識식子友우之지不불凡범며 〇陶도侃간이 졈어셔 이 이셔 사괴 當당世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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傑걸이라 范범逵규ㅣ 일 집의 디나니 간난야 供공具구ㅣ 업디라 母모ㅣ 이에 머리털을 버혀 만이 라 음식을 쟝만니 逵규ㅣ 歎탄야  어미 아니면 아을 낫티 못리라 더라 〇 房방玄현齡녕이 文문中듕子 조차 學 모 同동門문이 一일時시의 傑걸이라 일 玄현齡녕의 집의 디나거 母모ㅣ 屛병後후로 조차 여어 보고  卿경相샹의 그이라 아 벗이 이셔 니 무어 근심리오 後후에 唐당에 卿경相샹이 되다】
楊양敞챵妻쳐ㅣ 促촉夫부出츌而이定졍策칙()야 以이立닙一일代之지君군고 周쥬顗의母모ㅣ 因인客至지而이當당庖포야 能능具구百人인之지食식며 〇漢한昌챵邑읍王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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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ㅣ 업니 霍곽光광이 廢폐고 宣션帝뎨 셰오고져 야 이예 丞승相샹楊양敞챵의 집의 의논대 敞챵이 늙고 懦나디라 말을 듯고 戰젼慄뉼야 물러 집의 들어오거 妻쳐ㅣ 나가기 촉야  昏혼을 廢폐고 明명을 셰오미 엇더 大대事ㅣ완 畏외縮츅기 이러시 뇨 이제 나가디 아니면 明명日일애 議의 일면 族족滅멸리라 敞챵이 이예 나가 策을 定뎡야 宣션帝뎨 셰우고 功공으로 平평通통俟후 封봉니라 〇 晉진吏니部부尙샹書셔 周쥬顗의의 字 伯仁인이오 母모 李니氏시의 일흠은 絡낙秀슈ㅣ니 田뎐家가女녀ㅣ라 父부 安안東동將쟝軍군 周쥬浚쥰이 일 사녕다가 비 만나 李니氏시의 집의 避피니 李니 나가고 母모 病병든디라 女녀ㅣ 홀로 一일婢비一일僕복으로 더브러 돋 죽여 음식야 百人인의 食식을 초 極극히 豐풍腆뎐거 浚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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歎탄야  어디다 女녀ㅣ여 因인야 妾쳡삼기 求구대 父부ㅣ 처엄에 許허티 아니거 女녀ㅣ  우리집이 戶호ㅣ 크고 世셰ㅣ 微미야 嫉질리 만니 貴귀人인을 結결納납디 아니면 엇디 집을 보젼리오 父부ㅣ 드여 許허야 伯仁인을 나니라】
晏안御어ㅣ 揚양揚양이어 妻쳐ㅣ 恥티之지而이令녕夫부致티貴귀고 寗녕歌가ㅣ 浩호浩호ㅣ어 姬희ㅣ 識식之지而이喩유相샹尊존賢현며 〇晏안子ㅣ 齊졔相샹이 되여실 御어者쟈ㅣ 晏안子 御어야 門문을 디날 揚양揚양야 自得득 이 잇거 妻쳐ㅣ 븟그려 가기 請쳥대 夫부ㅣ 연고 무로니 妻쳐ㅣ  晏안子ㅣ 몸이 三삼尺쳑이로 齊졔 相샹이 되니 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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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검야 양 不블足죡홈 을 보되 그 이제 七칠尺쳑의 몸으로 御어되기 게 너겨 里니門문을 디날 揚양揚양야 自得득 이 이시니 지아비 아니라 대 御어者쟈ㅣ 妻쳐 謝샤고 깁히 스로 刻責야 양 不블足죡 거 晏안子ㅣ 괴이히 너겨 무론대 御어者쟈ㅣ 告고거 晏안子ㅣ 善션을 納납야 스로 곳팀을 알음다이 너겨 景경公공 들리고 大대夫부 삼다 〇 齊졔桓환公공이 나가 놀 寗녕戚쳑이 을 두리고 노래을 보고 어딘 알고 管관仲듕으로 여곰 마라 대 戚쳑이  浩호浩호 물이여 管관仲듕이 을 아디 몯야 五오日일을 됴회디 아니고 근심 빗치 잇거 妾쳡婧졍이 연고 무른대 仲듕이 닐니 婧졍이 우서  사이 임의 게 告고거 君군이 엇디 아디 몯뇨 古고詩시에(애)  浩호浩호 물이여 儵됴儵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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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다 君군이 날을 부니 쟝 평안이 居거리로다 니 이 寗녕戚쳑이 벼을 나라 엇고져 이라 仲듕이 大대悅열야 桓환公공 告고대 公공이 계야 祖조廟묘의 請쳥고 寗녕戚쳑으로 相샹을 삼으니 齊졔ㅣ 大대治티니라】
徒도讀독父부書셔 知디趙됴括괄之지不블可가將쟝고 獨독聞문妾쳡慟통 識식文문伯之지不블好호賢현며 〇趙됴趙됴奢샤ㅣ 兵병 쓰기 더니 죽은 후애 王왕이 子括괄로 쟝슈 삼아 秦진을 벙어리앗더니 括괄의 母모ㅣ  括괄이 갓 父부의 글을 닐그나 능히 쓰디 몯 妾쳡의 夫부ㅣ 妾쳡려 닐러  括괄이 兵병을 아디 몯며 强강辯변니 여곰 將쟝을 삼으면 반시 軍군을 喪상고 날아 辱욕리라 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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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듯디 아니대 母모ㅣ  括괄이 만일 敗패거 請쳥컨대 妾쳡을 좌죄티 말쇼셔 王왕이 許허엿더니 後후의 과연 大대敗패야 兵병 四十십萬만을 喪상니라 〇 魯노 公공父보文문伯이 죽으니 모든 妾쳡이 울기 심히 슯히 야 스로 죽 者쟈ㅣ 잇거 母모ㅣ 깃거 아니야  子ㅣ 魯노에 相샹엿더니 죽으매 賢현士大대夫부 吊됴상 者쟈ㅣ 戚쳑容용이 업고 姬희妾쳡이 니 이 홀로 랑을 妾쳡婦부의게 鍾죵고 賢현을 簡간고 禮례 리미니 죽기 맛당다 더라】
樊번女녀ㅣ 笑쇼楚초相샹之지蔽폐賢현야 終죵擧거賢현而이安안萬만乘승고 漂표母모ㅣ 哀王왕孫손而이進진食식이러니 後후封봉王왕以이報보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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쳔金금며 〇楚초莊장王왕이 退퇴朝됴거 樊번姬희 물어  엇디 느니잇고 王왕이  賢현相샹虞우丘구子로 더브러 말 날이 느믈 디 몯호라 樊번姬희ㅣ 우서  虞우丘구子ㅣ 어딜거니와忠튱치 몯 줄이 앗가온디라 妾쳡이 王왕을 셤견디 열 예 아홉 계집을 나오니라 妾쳡의셔 어진 이어 虞우丘구 楚초에 相샹연디 에 나온 子弟뎨과 宗종族족 아니니 업고 어딘 나옴을 듯디 몯엿이다 王왕이 이예 虞우丘구子의게 告고대 虞우丘구ㅣ 이예 舍샤 避피고 賢현을 求구야 孫손叔슉敖오 어더 相샹을 삼으니 楚초國국이 大대治티니라 〇 韓한信신이 고기 淮회水슈애 낫글 漂표母모ㅣ 가난을 에엿비 너겨 일 밥을 먹이거 信신이  반시 母모 갑 이시리라 母모ㅣ  王왕孫손을 에엿비 너겨 밥을 나오니 엇디 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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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오 後후의 信신이 齊졔王왕을 封봉야 母모 千쳔金금으로 갑흐니라】
樂악羊양子 能능聽텽妻쳐諫간야 以이成셩名명고 寧녕宸신濠호 不블用용婦부言언야 而이亡망國국며 〇漢한樂악羊양子ㅣ 游유學야 오라디 아니야 도라왓거 妻쳐ㅣ 무론대  卿경을 각야 도라왓노라 妻쳐ㅣ 야흐로 더니 이예 칼을 引인야 스로 긔틀을 긋처  실을 싸하 寸촌이 일고 寸촌을 하 尺쳑이 일고 尺쳑과 寸촌을 그치디 아니면 드여 丈댱疋필이 이니 이제 그 學이 이디 못여셔 도라오니 妾쳡이 긔틀을 긋처 헛도이 前젼功공 허비과 니라 夫부ㅣ 感감悟오야 다시 學야 드여 大대儒유ㅣ 이니라 〇 明명寧녕王왕宸신濠호ㅣ 反반고져 거 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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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氏시 로 諫간되 듯디 아니엿더니 巡슌撫무 王왕守슈仁인의 잡은 되여 죽기예 臨님야 歎탄야  紂듀 婦부言언 기로 亡망고 나 婦부言언 디 아니키로 亡망노라 더라】
陶도答답子妻쳐ㅣ 畏외夫부之지富부盛셩而이避피禍화야 乃내保보幼유以이養양姑고고 周쥬才美미婦부ㅣ 懼구翁옹之지橫횡肆而이辭榮영야 獨독全젼身신以이免면子며 〇齊졔陶도答답子ㅣ 陶도 다릴 貪탐야 도라오매 富부ㅣ 十십倍나 니 宗종戚쳑이 堂당의셔 하례호 妻쳐ㅣ 홀로 幼유子 품고 울어  德덕이 薄박고 位위 크면 닐온 害해 嬰영홈이오 功공이 업고 집이 昌챵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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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닐온 殃앙을 흠이라 姑고ㅣ 不블祥샹을 怒야 드여 니 홀로 少쇼子로 더브러 居거더니 後후의 答답子ㅣ 盜도의 죽인 되야 財物물을 刦겁되 母모ㅣ 늘기로 홀로 免면니 婦부ㅣ 이에 少쇼子로 더브러 도라가 姑고 養양니라 〇 明명周쥬才美미 太태守슈ㅣ 되매 아비 鄕향里니의 暴포橫횡니 妻쳐ㅣ 집의 處쳐야 양 즐겨 아니거 翁옹이 무론대 답야  夫부ㅣ 임의 貴귀얏디라 집이 가음여디 못 근심티 아니 거시어 翁옹이 聚斂기 긋치디 아니니 禍화ㅣ 머디 아니도다 翁옹이 라 이예 行을 곳텨 善션을 더니 子ㅣ 눈이 明명을 일코 벼도 일니 翁옹이 되 善션이 갑품이 업다 야 이에 다시 惡악을 더니 子의 눈이 홀연이 가 仍잉야 니러나 郡군守슈 야 闔합家가ㅣ 任임애 갈 婦부ㅣ 졷디 아니고 홀로 少쇼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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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고 잇더니 翁옹姑고와 夫부와 妾첩과 者와 幹간僕복이 江강中듕에 覆복沒몰야 나토 免면니 업고 홀로 妻쳐와 담옷 幼유子ㅣ 存존니라】
漆칠室실處쳐女녀 不블績젹其기麻마而이憂우魯노國국고 巴파家가寡과婦부 能능捐연己긔産산而이保보鄕향民민니 【魯노漆칠室실處쳐女녀ㅣ 삼을 삼디 아니고 歎탄息식거 隣린女녀ㅣ 물어  무어 슬허다 셔방 마을 근심다 女녀ㅣ  아니라 魯노君이 늙고 太태子ㅣ 얼이물 근심노라 隣린婦부ㅣ 우서  이 國국家가의 일이니 女녀子ㅣ 엇디 참예리오 女녀ㅣ  그러녀 아니다 晋진ㅅ손이 집의 舍샤엿더니 이 노혀 듕산 아옥을 니 終죵歲셰토록 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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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디 못고 을 계집이 라나거 을 사이 兄형을 비러 로더니 河하 건너다가 물이 漲턍야 兄이 죽으매 終죵身신토록 兄이 업니 이제 魯노君군이 늙고 子ㅣ 어리니 爭端단이 니러나 禍화亂란이 쟝 作작 디라 兵병이 郊교野야에 니러나 殃앙이 庶셔人인에 밋면 우리 鄕향里니 能능히 免면랴 後후애 魯노ㅣ 과연 크게 어즈러워 人인民민이 만히 兵병애 죽으니라 〇 秦진이 長댱城셩을  巴파蜀촉 고올이 당당이 萬만人인을 役역너니 寡과婦부 일흠 淸쳥이란 者쟈ㅣ 이셔 글을 올려 원컨대 家가財 기우려 사을 府부近근 邊변城셩을  萬만人인의 役역을 免면여지라 고 이에 財帛 百餘여萬만을 내여 邊변城셩 數수百里니 되 官관錢젼을 허비티 아니니 셩이 鄕향里니 나디 아니고 工공役역의 갑 어더 토아 힘을 도리니 數수月월이 못여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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셩이 完완固고거 始시皇황이 아다이 너겨 懷회淸쳥이란 臺  功공을 旌졍表표니라】
此皆女녀子之지嘉가猷유ㅣ며 婦부人인之지明명識식이니 誠셩可가謂위知디人인免면難난며 保보家가國국而이助조夫부子者쟈歟여뎌
治티安안 道도ㅣ 진실로 丈쟝夫부의게 잇거니와 디혜 잇는 婦부人인이 男남子의셔 나으니 遠원大대  미리 각야 可가히 혜아리고 倉창卒졸의 變변은 泛범히 應응호 窮궁티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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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閨규閫곤 가온대 求구면  笄계幃위의 傑걸이라 이런 고로 齊졔姜강이 晉진文문을 醉이고 駕가 命명야 내 覇패業업을 일오고 有유緡민이 少쇼康강을 고 굼그로 나가 드여 中듕興흥을 닐외며 顔안女녀ㅣ 聖셩人인의 後후ㅣ 반시 顯현 줄을 알아 아븨게 사회 기 알외야 尼니丘구의 빌고 陳진母모ㅣ 先션世셰의 德덕이 심히 微미 줄을 알아 子로 여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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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을 因인야 侯후爵쟉을 取케 며 머리털을 베혀 손을 머무러 아희 이 크믈 알고 屛병風풍을 隔격야 손을 여어 보아 子의 벗이 범샹티 아니을 알며 楊양敞챵의 妻쳐ㅣ 지아비 나가기 촉야 策을 定뎡야 一일代의 君군을 셰오고 周쥬顗의ㅣ 母모ㅣ 손이 니기 因인야 庖포 當당야 能능히 百人인의 食식을 초며 晏안의 御어ㅣ 楊양楊양거 妻쳐ㅣ

여사4:61ㄱ

붓그려 夫부로 여곰 貴귀 닐외게 고 寗녕이 浩호浩호 노래거 姬희 알아 졍승 알외여 賢현을 尊존케 며 갓 아븨 글을 닑을 趙됴括괄이 可가히 將쟝티 못 줄을 알고 홀로 妾쳡이 慟통을 들을 文문伯의 賢현 됴하 아님을 알며 樊번女녀ㅣ 楚초相샹의 賢현 리옴을 우서 내 賢현을 들어 萬만乘승을 평안케 고 漂표母모ㅣ 王왕孫손을 슬허 밥을 나왓더니 後후의 王왕을

여사4:61ㄴ

封봉야 千쳔金금으로 갑며 樂악羊양子 능히 妻쳐의 諫간을 들어 일흠을 일우고 寧녕宸신濠호 婦부의 말을 쓰디 아니야 나라 亡망오며 陶도答답子의 妻쳐 夫부의 富부盛셩을 두려 禍화 避피려 야 이에 幼유를 보젼야 姑고 養양고 周쥬才美미의 婦부 翁옹의 橫횡肆을 두려 榮영을 양야 홀로 몸을 완젼이 야 子 免며 漆칠室실의

여사4:62ㄱ

處처女녀 삼을 삼디 아니고 魯노國국을 근심고 巴파家가의 寡과婦부 能능히 己긔産산을 려 鄕향民민을 보젼니이다 女녀子의 알다온 며 婦부人인의 근 識식이니 진실로 可히 사을 알고 화난을 免면며 家가國국을 保보야 夫부子 돕 者쟈라 니띤뎌
제9. 슬기로운 재능[智慧篇]
나라를 편안히 다스릴 큰 도리는 진실로 대장부에게 달려 있지만 지혜 있는 부인은 남자보다 나으니, 원대한 묘책은 미리 생각하여 가히 헤아려야 하고 갑작스러운 변고는 널리 응하되 궁하지 아니해야 할 것이다. 그 방도를 집안[閨閫]에서 구하면 이 또한 부녀자의 뛰어난 지혜인 까닭으로, 제강(齊姜)이 진 문공(晉文公)을 취하게 하여 수레에 실어 보내도록 명하여 마침내 패업(覇業)을 이루었고, 유민(有緡)이 소강(少康)을 임신하고 구멍으로 빠져 나가 드디어 중흥을 이루었다. 〇【진 문공이 처음 공자(公子)가 되어 난을 피하여 제(齊)나라로 갔다. 제 환공(桓公)이 그에게 딸을 주어 처로 삼게 하였는데 〈문공은 제나라에서〉 즐기며 돌아가기를 잊고 있었으므로 따라갔던 신하 조최(趙衰) 등이 뽕나무 밭 가운데서 의론하여 공자를 위협하더라도 〈진나라로〉 돌아가도록 하였는데 뽕을 따던 여자가 이 이야기를 엳듣고 달려와 제강(환공의 딸)에게 고하였는데, 제강은 그 여자를 죽여서 입을 막고자 자취를 없애고, 이에 제강은 공자에게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하고 조최 등을 불러 모아 공자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니 공자가 술에서 깨니 이미 제나라 국경을 벗어났다. 후에 나라에 돌아와 패업(霸業)을 이루었다. 〇 하(夏)나라 한착(寒浞)이 하나라 제왕 상(相)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찬탈하니 상의 비 유민(有緡) 씨가 임신 중이었는데 몰래 파놓은 담 구멍을 빠져나가 숨어서 죽음을 면하고 도망하여 친정으로 돌아와 소강(少康)을 낳으니 우군(虞君, 虞思)이 그의 두 딸을 소강의 처로 삼게 하였고, 무리 오백 명을 모아 마침내 한착을 멸하여 하나라 왕실을 중흥시켰다.】안씨의 딸[顔女]이 성인(숙량흘)의 후손은 반드시 훌륭할 줄 미리 알아 아버지에게 사위로 간택하기를 아뢰어 〈시집을 가서〉 니구산에서 아들 낳기를 빌었고, 진영의 어머니[陳母]가 선세의 덕행이 심히 미미한 것을 알고 아들로 하여금 사람을 따라 후작을 취하게 하였으며, 〇【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인데 상처를 하고 재취하고자 했는데, 〈공자의〉 어머니 안씨(顔氏)의 아버지가 집에 와서 말하되, ‘공숙량흘이 늙고 추하지만 무술이 뛰어나다. 재취를 하고자 하되 사람들이 아내 되려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어찌하랴?’라고 하니, 그의 어린 딸 안징재(安徵在)가 말하되, ‘내가 들으니 공씨는 성왕(聖王)의 후예라고 하니, 그 후손이 반드시 창성할 것이니 그의 처가 됨이 어찌 해롭겠습니까?’ 하였다. 아버지가 말하되, ‘그러면 너로서 처를 삼음이 가하다고 하겠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숙량흘에게 시집을 가니 그가 늙어 자식 없을까 두려워 니구산신에게 빌어서 중니(공자)를 낳았다. 〇 진(秦)나라 말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우니 진영(陳嬰)이 본래 재략이 있었다. 그래서 민중이 그를 군주 자리에 세워서 임금으로 삼고자 하므로 어머니가 말하되, ‘너는 집 선조들이 큰 덕을 쌓은 것이 없으니 일을 하여도 반드시 이루지 못할 것이다. 임금을 다시 선택하여 섬기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니, 일이 이루어지면 가히 후(侯)로 봉할 것이고, 이루지 못하여도 가히 스스로 면할 것이다.’ 하였다. 진영이 이에 항양(項梁)을 따라 병사를 일으켰는데 뒷날 한(漢)으로 돌아왔을 때 그 공으로 당읍(棠邑)의 제후에 봉해졌다.】머리털을 베어 팔아 손님을 머물게 하여 내 아들의 뜻이 큼을 알게 하였고, 병풍을 가리고 손님(아들의 친구)을 엿보아 아들의 벗들이 범상하지 아니함을 알렸다. 〇【도간(陶侃)이 젊어서부터 큰 뜻이 있어 사귀는 벗들이 모두 당대에 다 걸출한 인물이라. 그 중에 범규(范逵)가 일찍이 그의 집을 방문하니 너무 가난하여 대접할 것이 없자 도간의 어머니가 이에 머리털을 베어 가만히 팔아서 음식을 장만하니 범규가 감탄하여 말하기를, ‘이 어머니가 아니고서는 이런 자식이 나올 수 없겠구나.’ 하였다. 〇 방현령(房玄齡)은 문중자(文中子)를 따라 학문을 익혔는데 모든 동문이 다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라. 일찍이 〈벗들이〉 현령의 집에 방문하였는데, 어머니가 병풍 뒤에서 엿보고는 말하기를, ‘모두 경상(卿相)이 될 큰 그릇이라. 내 아들의 벗이 이와 같으니 내 무엇을 근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후에 모두 당(唐)나라의 경상이 되었다.】양창(楊敞)의 아내가 남편이 나가기를 재촉하여 책략을 정하여 일대의 임금을 세우게 하였고, 주의(周顗)의 어머니가 손님이 이르자 주방을 감당하여 능히 백 사람의 식사를 갖추었으며, 〇【한나라 창읍왕(昌邑王)이 무도하게 굴자 대장군 곽광(霍光)이 그를 폐위시키고 선제(宣帝)를 세우고자 하여 이에 승상 양창의 집에 가서 의논하니, 창이 늙고 나약하여 그 말(폐위시킨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 벌벌 떨면서 물러나 내실로 들어가므로 처가 그에게 나가기를 재촉하여 말하되, ‘어두운 자를 폐위하고 밝은 자를 세우는 것이 어떠한 대사보다 큰 일인데 두려워함이 이렇듯 합니까? 지금 나가지 아니하면 내일 거사[議]가 일어날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멸할 것입니다.’ 하였다. 창이 이에 나가 대책을 정하여 선제를 옹립하고 그 공으로서 평통후(平通侯)에 봉하여졌다. 〇 진나라 이부상서 주의의 자는 백인(伯仁)이고, 어머니 이씨(李氏)의 이름은 낙수(絡秀)이니 농부의 딸이었다. 아버지 안동장군 주준(周浚)이 일찍이 사냥을 나갔다가 비를 만나 이씨의 집으로 피하니, 이씨는 나가고 그 어머니는 병이 들어 누웠는데, 그 딸이 홀로 남녀 종복을 한 명씩만 데리고 돼지를 잡아 음식을 만들어 백 명의 식사를 갖추었으니, 지극히 그 〈음식이〉 풍부하고 기름졌다. 주준이 이를 듣고 감탄하여 말하되, ‘어질구나 따님이여!’라고 하며,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요구하니 아버지가 처음에는 허락하지 아니하더니 딸이 말하되, ‘우리집이 큰 가문이었는데 대대로 줄어들어 세가 미약하여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귀인과 결혼하지 않으면 어찌 집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그 아버지가 드디어 허락하여 〈혼인하여〉 백인을 낳았다.】안자의 마부[晏御]가 의기양양하므로 그 아내는 부끄러워하여 그 남편을 귀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영척의 노래가 호호(浩浩)로우므로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는데〉 아내[姬]가 그 뜻을 알고 정승에게 아뢰어 어진 이로 높이 쓰게 하였으며, 〇【안자(晏子)가 제나라 제상이 되었을 때 그의 마부가 안자를 태우고 문을 나설 때 의기양양하여 자만스러운 뜻이 가득하므로, 그의 처가 부끄러워 〈친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므로 남편이 그 연고를 물으니 처가 말하되, ‘안자의 몸이 3척에 불과하지만 제나라 제상이 되었고 그럼에도 나는 그가 공손하고 신중하여 늘 부족하다 여김을 보았는데, 그대는 이제 7척의 몸으로 왕을 위해 수레 모는 것을 달게 여겨 마을 어귀를 지날 때마다 의기양양하기까지 하여 스스로 만족한 뜻이 있으니 나의 지아비가 아닙니다.’라고 하니, 마부는 그의 처에게 사죄하고 깊이 생각하여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도 늘 부족하다 여기므로 안자가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마부가 사실대로 이야기를 고하니 안자가 그의 착함을 받아들여 스스로 고쳐 나가는 것을 아름답게 여겨 경공(景公)에게까지 알려 그를 대부(大夫)로 삼았다. 〇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나가 놀다가 영척(寗戚)이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그가 어진 줄을 알고 관중(管仲)으로 하여금 맞이하도록 하였는데 영척이 노래하되, ‘도도하게 흐르는 흰 물결이여.’라고 하니, 관중이 그 뜻을 알지 못하여 닷새를 조회에 나가지 않고 근심하는 빛이 있으므로, 관중의 아내 정(婧)이 그 연유를 물으니 관중이 〈까닭을〉 말하니 정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 사람이 이미 밝게 임금에게 고했는데 당신은 어찌 알지 못합니까? 옛 시에 이르기를, ‘도도하게 흐르는 흰 물이여! 유유히 헤엄치는 고기로다. 임금이 와서 나를 부르니 내가 장차 평안이 살리로다.’ 하였으니, 이는 영척이 벼슬을 나가고자 함입니다.”라고 말하니, 관중이 크게 기뻐하며 환공께 알렸는데 환공이 목욕재계하고 조상의 사당에 빌고 영척을 모셔와 재상으로 삼으니 제나라를 크게 다스렸다.】다만 아버지가 책만 읽으므로서 조괄(趙括)이 가히 장수가 되지 못할 줄 알고, 오직 첩들이 통곡하는 것을 듣고 문백의 어머니는 그가 어진 사람이 아님을 알았으며, 〇【조(趙)나라 조사(趙奢)는 병사 쓰는 것에 능하였더니 죽은 후에 임금이 그의 아들 조괄(趙括)을 장수로 삼아서 진나라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그러자 괄의 어머니가 말하되, “괄이 한갓 어버지의 글을 읽었으나 〈병사를〉 능히 쓰지 못하므로 첩의 지아비가 첩에게 일러 말하되, ‘괄이 병법을 알지 못하며 엉뚱한 주장을 하니 장수로 삼으면 반드시 군대를 상하게 하고 욕되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니, 임금이 듣지 아니하자 그 어머니가 말하되, ‘괄이 만일 패하거든 청하건대 첩을 연좌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여, 임금이 허락하였더니, 후에 과연 대패하여 병사 40만을 죽게 하였다. 〇 노나라의 공보(公父) 문백이 죽으니 모든 첩들이 울기를 심히 슬피하여 스스로 죽는 자가 있으므로, 그의 어머니가 기뻐 아니하며 말하되, ‘내 자식이 노나라에 봉사하다가 죽었는데 조상하는 현사(顯士), 대부(大夫)들은 아무도 슬퍼하는 자가 없는데 첩들만이 이같이 슬퍼하는구나. 이것은 오직 사랑을 첩들에게만 쏟았다는 말인데 어진이를 제쳐두고 예(禮)를 버린 것이니 그 죽음이 마땅하다.’라고 하더라.】번녀(樊女)가 초나라 재상의 어진 인재를 가려냄을 비웃어 마침내 어진 인재를 천거하여 만승(萬乘, 천자)을 편안하게 하였고, 표모(漂母)가 왕손을 가엽게 여겨 밥을 주었더니 후에 왕으로 봉해지자 천금으로 갚았으며, 〇【초나라 장왕(莊王)이 조정에 나갔다 돌아왔다. 〈그의 아내〉 번희(樊姬)가 왜 이렇게 늦었는가 하니, 왕이 말하되, ‘어진 재상 우구자(虞丘子)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시간이 늦어짐을 몰랐소.’ 하니, 번희가 웃으며 말하되, ‘우구자가 어질기는 하지만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 안타깝군요. 첩이 왕을 섬겨온 지 11년이 되는 동안 아홉 여자를 왕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첩보다 모두 어진 이들이지만 우구자는 초나라의 제상이 된 지 10년에 추천한 사람은 자기 아들과 종친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어진 자를 단 한 명이라도 천거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니, 왕이 이에 우구자에게 전하니, 우구자가 이에 자리를 내놓고 어진 자를 구하여 손숙오를 얻어 재상으로 삼아 초나라를 크게 다스렸다. 〇 한신(韓信)이 고기를 회수에서 낚고 있을 때 빨래하는 보모[漂母]가 그 가난함을 불쌍하게 여겨 일찍이 밥을 먹였는데, 한신이 말하기를, ‘내 반드시 표모의 은혜를 갚을 때가 있으리라.’ 하거늘 표모가 말하기를, ‘나는 왕손(王孫)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밥을 준 것뿐인데 어찌 은혜 갚기를 바라겠습니까?’ 하였다. 후에 한신이 제나라 왕에 봉해져 표모에게 천금(千金)으로 은혜를 갚았다.】악양자(樂羊子)는 능히 아내의 간함을 들어서 그 이름을 세웠고, 영왕 주신호[寧宸濠]는 아내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〇【한(漢)나라 악양자가 공부하러 나갔다가 오래지 않아(일찍) 집으로 돌아오니 처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되, ‘그대를 생각하여 돌아왔소.’ 하니, 처가 그때 베를 짜고 있었는데 이에 칼로 그 끄트머리를 잘라 보이며 말하되, ‘실을 쌓아 촌(寸)을 이루고 촌을 쌓아 척(尺)을 이루며, 척과 촌을 그치지 않으면 결국은 장필(丈疋)을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지금 그대가 배움을 이루지 못하고서 돌아오니 첩이 이 끄트머리를 끊어 헛되이 앞서 쌓은 것을 허비함과 같습니다.’ 하니, 남편이 감동하고 깨달아 다시 공부하여 드디어 큰 선비가 되었다. 〇 명(明)나라 영왕(寧王) 주신호(朱宸濠)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거늘 그의 비 누씨(婁氏)가 늘 나라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고 간하였으나 듣지 아니하고 군사를 일으켰는데 순무(巡撫) 왕수인(王守仁)에게 사로잡혀 죽게 되자 한탄하여 말하되, ‘주왕(紂王)은 부인의 말을 듣고 망했지만 나는 부인의 말을 듣지 않아 망하는구나.’ 하였다.】도 땅에 사는 답자[陶答子]의 아내는 남편이 부유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화를 피하여서 이에 어린아이를 보전하고 시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주재미(周才美)의 아내는 남편이 교만 방자함을 두려워하여 영화로움을 사양하고 홀로 몸을 보전하여서 그 아들을 〈죽음에서〉 면하게 하였다. 〇【제(齊)나라 도답자가 도(陶) 땅을 다스릴 때 재물을 탐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돌아오니 그의 재산이 열 배나 불어나 있었다. 종실의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와 축하해 주었는데, 처가 홀로 어린 아이를 품고 울면서 말하되, ‘덕이 박하면서 지위가 높은 것은 해악을 보태는 일입니다. 공이 없으면서 가산이 늘어나는 것은 재앙을 쌓는 일입니다.’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좋아하지 않게 여김을 노하여 드디어 내쫓으니 홀로 어린 아이와 함께 살더니, 후에 답자가 도둑에게 죽임을 당하고 모든 재물을 빼앗겼으나 어머니는 늙었기 때문에 홀로 화를 면했다. 처가 이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〇 명(明)나라 주재미는 태수가 되어 그 아버지가 〈아들의 힘을 믿고〉 향리에서 횡포를 하니, 그의 처가 집에 있으면서 늘 즐거워하지 아니하므로 시아버지가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되, ‘남편이 이미 귀하게 되었으니 집에 살림은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아버님께서는 세금으로 재물을 쉬지 않고 거두어들이니 화가 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시아버지가 깨달아 이에 행동을 고쳐 선을 행하니, 그 자식이 두 눈을 실명하여 벼슬도 잃게 되니, 시아버지는 선에 대한 갚음은 없다면서, 이에 다시 악행을 하더니, 자식의 눈이 홀연히 밝아 거듭 일어나 군수가 되어 온 가족이 임지로 갈 때, 아내는 따라가지 않고 홀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살았는데, 시부모와 남편, 첩과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노복이 모두 강물에 빠져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고 홀로 그의 처와 다만 어린 자식만 살아 남았다.】칠실 처녀(漆室處女)는 그가 해야 할 삼을 삼지 아니하고 노나라 왕실의 일을 근심하였고, 파총 집안[巴家] 과부는 능히 자기의 재산을 버리고 고을 백성을 보전하였다. 〇【노(魯)나라 칠읍(漆邑)에 사는 처녀가 삼을 삼지 아니하고 탄식만 하므로 이웃 여인이 물으며 말하기를, ‘네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가? 시집을 못가서 근심하는가?’ 하니, 처녀가 말하되, ‘아닙니다. 나는 노나라 군주가 이미 늙었는데도 태자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근심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웃 부인이 웃으면서 말하되, ‘이는 나라의 일이니 어찌 처녀가 참견할 일인가?’ 하니, 처녀가 말하되,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진(晉)나라에서 온 손님이 우리 집에 머물더니 〈그 때 손님이 타고 온〉 말이 고삐가 풀려 내 채소밭의 아욱을 밟으니 내가 그 해 내내 아욱을 먹지 못하였고, 마을에 어떤 여자가 〈눈이 맞아〉 달아났기 때문에 마을 사람이 내 오빠더러 잡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강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서 오빠가 죽어 내 종신토록 오빠가 없으니 이제 노나라 임금이 늙고 자식이 어리니 다툼의 실마리가 일어나 화란이 장차 생길 것입니다. 전쟁이 시골에 일어나 재앙이 백성에게 미치면 우리 같은 시골도 능히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후에 노나라가 과연 크게 어지러워 백성이 많이 병사에게 죽었다. 〇 진(秦)나라가 장성(長城)을 쌓을 때, 파촉(巴蜀) 지방의 한 고을에서 반드시 만 명이나 노역에 동원되었으니, 과부 이름이 청(淸)이라 자가 있어 글을 올려, ‘원컨대 집안 재산을 쏟아부어 사람을 사서 부근(府近) 변성(邊城)을 쌓을 테니 만 명의 부역을 면하여 주십시오.’라고 하고, 이에 재산 백여 만 필[帛]을 내어 변성 수백 리를 쌓되 관의 돈을 허비하지 아니하니, 백성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지 아니하고, 또 공역의 값을 얻어 다투어 그 힘을 돌리니, 수개월이 못되어서 성이 완성하여 시황제가 아름답게 여겨 ‘회청(懷淸)’이라는 대(臺)를 쌓아 그 공을 정표(旌表)하였다.】〈이 모두가〉 여자의 아름다운 꾀이며 부인들의 밝은 지식이니 진실로 사람을 알고 화란을 면하며, 가정과 나라를 보전하여 남편과 자식을 돕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장부(丈夫)의게 : 장부에게. 대장부에게. 남자에게.
남자(男子)의셔 나으니 : 남자보다 나으니.
창졸(倉卒)의 : 갑작스러운.
범(泛)히 : 두루.
규곤(閨閫) : 여성이 거처하는 곳.
계위(笄幃) : 비녀와 향낭. 몸에 부착하는 장식물을 말하는데, 이 두 가지는 여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걸(傑)이라 : 영웅이다. ‘계위(笄幃)의 걸(傑)’은 여자로서의 호걸(豪傑), 곧 여걸(女傑)을 이르는 말임.
중이(重耳) : 진(晉) 문공(文公)의 이름. 중이는 제환공과 더불어 춘추시대 패자로 꼽힌다. 아버지 진 헌공(晉獻公)이 총애하던 여희(驪姬)가 자신의 아들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우려고 꾸민 모함에 의해 아버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망명길에 올라 19년 동안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진(秦)나라의 원조를 받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와 62세의 나이에 군주가 되었다. 『춘추좌전』 희공23년, 『사기』 권39 〈진세가(晉世家)〉, 『열녀전』 「현명·진문제강〉에 실렸다.
제강(齊姜) : 진 문공(晉文公)의 처. 제환공(齊桓公)의 딸.
진모(秦母) : 진(秦)나라 진영(陳嬰)의 어머니. 그의 이야기는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세설신어』, 『속열녀전』, 『고금열녀전』, 『규범』에도 실려 있다.
전발유빈(剪髮留賓) : 머리카락을 잘라서 판 돈으로 반찬을 마련하여 손님을 접대함. 이 이야기는 『세설신어』, 『진서(晉書)』 권96, 『열녀전』, 『고금열녀전』, 『규범』에 실려 있다.
내 : 마침내.
패업(覇業) : 천하를 통일하는 업적. 패자(覇者)가 되려는 위업(偉業).
유민(有緡) : 하(夏)나라 임금 상(相)의 비. 소강(小康)의 어머니. 『춘추좌전』 애공(哀公) 원년의 기사에 나온다.
소강(少康) : 제상(帝相)과 소강(少康)은 각각 하왕조 제5대와 제6대의 임금이다. 하왕조는 후예(後羿)에게 정권을 탈취당했고, 후예도 그의 신하 한착에 의해 전복되었다. 후예의 아들 상(相)의 비 유민은 친정 나라인 유잉(有仍)으로 도망가서 소강을 낳았고, 소강은 유우(有虞)의 도움으로 하왕조의 제위를 회복하였다.
방현령(房玄齡) : 18세 때 수(隨) 왕조의 진사에 합격하였는데 당태종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함. 방현령의 전기는 『당서』 권96, 『구당서』 권66에 수록되어 있다. 문중자(文中子)는 수나라의 대유(大儒) 왕통(王通)을 말한다. 방현령의 친구 중에 두여회(杜如海), 설원경(薛元敬) 등 모두 당태종의 경상(卿相)이 되었다.
굼그로 : 구멍으로. ‘[穴]-+-으로’의 구성.
닐외며 : 일어나며. ‘닐[起]-+-오(삽입모음)-+-ㅣ(서술격조사)-+-며(연결어미)’의 구성.
안녀(顔女) : 안씨의 딸. 즉 안징재(顏徵在). 그녀는 숙량흘이 성왕(聖王)의 후손이므로 반드시 훌륭한 자식을 낳을 것임을 알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시집을 가서 공자를 낳았다. 공자의 출생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사기』 권47 「공자세가」에 있다.
사회 : 사위.
알외야 : 아뢰여.
손을 머무러 : 손님을 머물게 하고.
여어보아 : 넣어보아. ‘녛[入]-+-어(연결어미)+#보[試]-+-아’의 구성.
양창(楊敞)의 처(妻) : 한나라 창읍왕(昌邑王)이 무도하게 굴자 대장군 곽광(霍光)이 그를 폐위시키고 선제(宣帝)를 옹립하고자 할 때 승상(丞相)을 지낸 사람. 그뒤 평통후(平通侯)에 봉해졌다. 『한서』 권66 「양창전(揚敞傳)」, 『속열녀전』, 『고금열녀전』에 수록되어 있다.
주의모(周顗母) : 진(晉)나라 이부상서(吏部尚書) 주의(周顗)의 자는 백인(伯仁)이며 어머니 이(李)씨의 이름은 낙수(絡秀)인데, 농부의 딸이다. 그의 이야기는 『세설신어』, 『진서』 권96, 『열녀전』에 수록되어 있다.
포(庖) 당(當)야 : 부엌일을 담당하여서. 진(晉)나라 이부상서 주의(周顗)의 어머니 이씨는 소녀 시절에 비를 피하여 객으로 들어온 안동 장군 주준(周浚)의 일행 백여 명의 먹을 거리를 장만해 대접하였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주준과 혼인하여 주의를 낳은 것임.
양양(楊楊)거 : 잘난 체하거늘.
안자(晏子) : 안영(晏嬰)을 말함. 춘추 시기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모시면서 절약과 실천을 중시하여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마부였던 그를 아내가 훈계하여 나중엔 인정(仁政)과 공경의 태도로 민중들에게도 존경받은 정치가가 되었다고 한다. 『사기』 권62 「관영열전(管晏列傳)」, 『안지춘추(晏子春秋)』, 『열녀전』 「현명·제상어처(齊相御妻)」, 『고금열녀전』, 『규범』 등에 수록되어 있다.
번녀(樊女) :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처 번희(樊姬). 장왕은 춘추 오패(五霸) 중의 한 사람이다. 그 이야기는 『열녀전』 「현명·초장번희」, 『한시외전』, 『고금열녀전』, 『규범』 등에 수록되어 있다.
만승(萬乘) : 1만 대의 수레. 천자의 나라를 이르는 말. 강국(强國)을 이룸을 말한다.
슬허 : 싫어. ‘슳[厭]-+-어(연결어미)’의 구성.
악양자(樂羊子)의 처 : 한나라의 대학자 악양자의 처. 그는 남편을 깨우쳐 학업에 정진케 하였다고 한다. 『후한서』, 『열녀전』, 『고금열녀전』, 『규범』, 『고금규범』 등에 보인다.
영신호(寧宸濠) : 명나라 영왕(寧王) 주신호(朱宸濠).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17번째 아들 주권(朱權)의 오세손(五世孫)이다. 영왕 주신호는 부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였다. 『명사』 권117에 보인다.
주왕(紂王) :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데 총애하던 달기(妲己)의 말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달기의 고사는 유향의 『열녀전』 「얼폐·은주달기」와 『사기』 「은본기(殷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도답자(陶答子) : 제나라 때 도(陶) 땅을 다스리던 관리. 도 땅에 사는 도답자의 처는 남편이 재산을 축적함을 두려워하여 이별함으로써 도답자가 죽임을 당하였어도 어린 아들을 보호하고 시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다. 유향의 『열녀전』 「현명·도답자처」, 『고금열녀전』, 『규범』등에 실려 있다.
고(姑) 양(養)고 : 시어미를 봉양하고.
주재미(周才美)의 부(婦) : 명나라 태수 주재미의 부인. 방자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가지 않음으로써, 몸을 온전히 하고 아이가 화를 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횡사(橫肆)을 : 방자함을.
칠실(漆室) 처녀(處女) : 노나라 칠서읍에 사는 처녀. 유향의 『열녀전』 「인지·노칠실녀」, 『규범』, 『고금규범』 등에 수록되어 있다.
영척(甯戚) : 제(齊) 환공(桓公) 때의 재상. 환공은 춘추 오패 중의 한 사람이다. 관중은 명재상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지만, 영척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위 이야기는 유향의 『열녀전』 「변통·제관첩정」, 『규범』 등에 보인다.
조괄(趙括) : 전국 시대 말기 조나라의 조사(趙奢)의 아들. 효성왕(孝成王)의 참모로 기용되었다가 전장에 나가 크게 패하여 죽고, 병사 40만 명을 잃었다. 『사기』 권81, 『열녀전』 「인지·조장괄모」, 『고금열녀전』, 『고금규범』 등에 수록되어 있다.
문백(文伯) : 노나라의 공보(公父). 『국어』 「노아(魯語)」, 『열녀전』 「모의·노계경장」, 「한시외전」에 나온다.
표모(漂母) : 빨래하는 보모. 한신(韓信)이 회수(淮水)에서 고기를 낚고 있을 때 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할머니가 그의 빈궁함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었다는 이야기. 『사기』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이며, 이 고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회자되었는데 내방가사 작품에 다수 인용된다.
파가(巴家)의 과부(寡婦) : 진나라가 장성(長城)을 축조할 때 파(巴), 촉(蜀) 지방에 살던 청(清)이라는 과부.
니띤뎌 :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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