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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사서언해+책정보

貞뎡烈녈篇편
忠튱臣신은 不블事兩냥國국고 烈녈女녀不블更경二이夫부ㅣ라 故고로 一일與여之지醮쵸면 終죵身신不블移이야 男남可가重듕婚혼이니어와 女녀無무再適뎍이니 是시故고로 艱간難난苦고節졀을 謂위之지貞뎡이오 慷강慨개捐연生을 謂위之지

여사4:20ㄴ

烈녈이니라 令녕女녀ㅣ 截졀耳이劓의鼻비야 以이持지身신고 凝응妻쳐ㅣ 牽견臂비劈벽掌쟝야 以이明명志지며 〇夏하侯후 令녕女녀 魏위 曺조文문叔슉의 妻쳐ㅣ라 文문叔슉이 죽으매 父부母모ㅣ 셔방 맛치고져 거 令녕女녀ㅣ  仁인者쟈 盛셩衰(表)쇠로 節졀을 고티디 아니고 義의者쟈 存존亡망으로 을 밧고디 아닌다 고 이에 스로 귀 베혀 셔 엿더니 지아븨 집이 滅멸매 父부母모ㅣ 셔방 맛치고져 거 女녀ㅣ 이에 코흘 버혀 貞뎡節졀을 보젼니라 〇 五오代虢괵州쥬司戶호 王왕凝응의 妻쳐 李니氏시ㅣ 지아비 죽어 어린 식을 리고 도라갈 旅녀店뎜의 들려니 主쥬人인이 손을 잇그러 티니 李니氏시 울어  손이 엇디 사의 잡은

여사4:21ㄱ

되거뇨 고 이에 칼을 인야 스로 손을 베히니 나라히 門문을 旌졍表표니라】
共공姜강髧담髦모之지詩시 之지死靡미他타고 史氏시刺面면之지文문은 中듕心심不블改며 〇衛위 世셰子 共공伯이 죽으니 안해 共공姜강이 栢舟쥬의 詩시 지어  髧담 兩냥髦모ㅣ 실로 내의 儀의니 죽을 디언뎡 셔야 다이 업리라 니라 〇 明명 漂뉼陽양 史氏시女녀ㅣ 지아비 邵쇼一일龍룡이라 婚혼姻인 몯야셔 지아비 죽으니 父부母모ㅣ 다시 사회 고져 거 女녀ㅣ 이에  조아 中듕心심不블改 字 고 먹으로 몌우니라 일이 들니매 旌졍表표다】皇황甫보夫부人인은 直직斥쳑逆역臣신야 膏고斧부銊

여사4:21ㄴ

월而이買매不絕졀口구고 竇두家가二이女녀 不블從죵亂란賊적고 投투危위崖애而이憤분不블顧고身신며 〇皇황甫보規규의 夫부人인이 글을 능히 더니 規 죽으매 董동卓탁이 고음을 듯고 娶고져 거 夫부人인이 免면티 몯 줄을 알고 이에 卓탁의 門문의 어 義의로 다래되 卓탁이 듯디 아니거 이에 責야 지저  나 大대臣신의 妻쳐라 義의로 辱욕을 밧디 아닐 거시오 너 羌강胡호 雜잡種죵이라 일이 지아븨 帳댱下하의 엿더니 이제 감히 君군夫부人인의게 禮례 업(입)시 굴니오 卓탁이 노여 머리 수 우 고 어즈러이 티니 짓기 입에 긋치디 아니고 죽으니라 〇 唐당 德덕宗종 예 朱쥬泚의 亂란이 이셔 盜도賊적이 縱죵橫횡더니 奉봉天텬

여사4:22ㄱ

두氏시의 二이女녀ㅣ 賊적의 핍박 되야 형이 몬져 깁흔 바회 아 더디거 아이 조차 형은 죽고 아은 이 부러디니 帝뎌ㅣ 드시고 旌졍表표니라】
董동氏시封봉髪발야 以이待夫부歸귀 二이十십年년을 不블施시膏고沐목고 妙묘慧혜題뎨詩시야 以이明명已긔節졀이러니 三삼千쳔里니애 復부見견生逢봉며 〇 【唐당 買가直딕言언이 嶺녕南남의 귀향갈 妻쳐 董동氏시려 닐너  가매 生死 可가히 아디 몯 디라 졈어시니 맛당이 홀로 이실 거시 아니니 可가히 스로 계교 라 董동氏시 이에 노흐로 머리털을 믁고 지아비로 야곰 손으로 글을 封봉라 야 셔야  지아비 니디 아니면 푸디 아니리라 二이十

여사4:22ㄴ

십年년만의 지아비 비로소 도라와 親친히 터럭을 푸니라 〇 明명 楊양州쥬 盧노進진士의 妻쳐 李니妙묘慧혜ㅣ 지아비 及급第뎨고 도라오디 몯야셔 글읃 죽다 傳뎐니 이시니 父부母모ㅣ 어엿비 너겨 다시 셔방 맛치고져 더니 예 南남昌챵 댱 謝샤啓계 이셔 식이 업 디라 어미 李니氏시 楊양州쥬애 이시되 妙묘慧혜의 族족姑고ㅣ라 子의 妾쳡을 삼고져 거 父부ㅣ 이에 소겨 女녀 잇글고 謝샤의 예 가니 李니 연고 알고 로 스로 죽고져 되 사이 구야 죽으니 族족姑고ㅣ 알고 이에 을 삼아 잇글고 도라갈 金금山산寺의 디나거 李니ㅣ 詩시 지어 쓰고 스로 보람야  楊양州쥬 進진士 盧노某모의 妻쳐 李니妙묘慧혜 쓰노라 엿더라 詩시애 니 棺관을 다다도 金금빗기 계집이 되디 아니고 따 들어도 맛당이 계슈 것근 郎낭을 디라 詩시 金금

여사4:23ㄱ

山산寺의 이시니 놉피 雲운帆범을 고 豫예章쟝을 디나노라 엿더라 盧노ㅣ 벼야 도라오매 妻쳐 踪죵(종)跡젹되 엇디 못더니 金금山산寺 디나다가 詩시 보고 이에 벼을 리고 豫예章쟝으로 가니 댱 만하 可가히 뭇디 못디라 因인야 밤의 댱  둘러 니며 李니의 詩시 외오니 謝샤姑괴 듯고 블러 因인야 시러곰 妻쳐 자 보니 임의 승이 되얏디라 이에 다시 合합다 일이 들니매 벼을 復복니라】
桓환夫부人인은 義의不블同동庖포而이吟음匪비石셕之지詩시고 平평夫부人인은 持지兵병閉폐巷항而이却각闔합閭녀之지 犯범며 〇衛위桓환公공의 夫부人인 姜강氏시ㅣ 齊졔로브터 衛위예 國국門문을 밋디 몯야셔 公공이 죽임을 만나

여사4:23ㄴ

나라사이 아 宣션公공을 셰운대 左좌右우ㅣ 도라가기 請쳥야 姜강氏시 좃디 아니고 이에 집을 지어 스로 衛위에 居거야 三삼年년 거상을 딕니 宣션公공이 庖포 가지로 야 居거기 請쳥대 姜강氏시 可가티 아니타 야 이에 匪비石셕의 詩시 외와 스로 셔고 내 衛위에셔 죽으니라 〇 吳오王왕 闔합閭녀ㅣ 楚초 破파니 昭쇼王왕이 라나니 吳오王왕이 昭쇼王왕의 母모 伯贏영의 고음을 듯고 犯범고져 더니 伯贏영이 兵병을 가지고 永영巷항을 딕여 吳오王왕려 닐러  大대王왕이 兵병을 들어 楚초國국을 匡광正졍며 不블義의 行코져 시니 엇디 天텬下하에 霸패리오 婦부人인의 義의 죽기 딕여 가지 업니 王왕이 만일 妾쳡을 죽이시면 이 國국君군의 어미 屠도戮뉵고 淫음亂란 일홈을 게 녀기미니 무어시 유의리오 王왕

여사4:24ㄱ

븟그려 이에 긋치니 贏영이 巷항을 拒거야 三삼旬슌애 秦진救구兵병이 니니 眧쇼王왕이 도라오니라】
夫부之지不블幸은 妾쳡之지不블幸이라 니 宋송女녀之지言언이 哀고 使君군有유婦부고 羅나敷부有유夫부라 니 趙됴王왕之지意의止지며 〇蔡채사의 妻쳐 宋송사의 女녀ㅣ라 비로소 嫁가매 夫부ㅣ 惡악疾질이 잇거 父부母모ㅣ 고(그)텨 셔방 맛치고져 대 女녀ㅣ  夫부ㅣ 惡악疾질 이심은 夫부의 不블幸이오  妾쳡의 不블幸이라 夫부ㅣ 病병이 잇거 리면 仁인티 아니고 女녀ㅣ 누번 適뎍야 夫부 반면 義의티 아니니 仁인티 아니며 義의티 아니면 엇디 살리오 이에 스로 죽고져 거 父부母모ㅣ 드여 긋치니 내

여사4:24ㄴ

지아비 셤겨 天텬年년을 니라 〇 漢한趙됴王왕 家가令녕의 妻쳐 秦진羅나敷부ㅣ 곱거 王왕이 앗고져 대 羅나敷부ㅣ 詩시 지어  使君군이 南남으로 조차 오니 다 이 셔셔 躊듀躇뎌도다 使君군이 羅나敷부더려 니 도로혀 가히 가지로 시랴 羅나敷부ㅣ 나아가 말을 닐외 使君군이  엇디 어리뇨 使君군이 스로 婦부ㅣ 잇고 羅나敷부ㅣ 스로 夫부ㅣ 잇니이다 王왕이 이에 긋치다】
梁냥節졀婦부之지却각魏위 王왕애 斷단鼻비存존孤고고 余여鄭뎡氏시之지責唐당帥슈애 嚴엄詞保보節졀며 〇梁냥節졀婦부ㅣ 夫부ㅣ 亡망고 美미色이 잇거 魏위王왕이 取코져 대(다) 婦부ㅣ 코 긋쳐(처)  王왕이 妾쳡을 엇고져 은 色으로 라 이제 刑형餘

여사4:25ㄱ

여의 사이니 王왕이 무어 쓰시리오 妾쳡이 죽디 아닌 바 식이 어리기로 撫무成셩고져 홈이라 王왕이 大대慙참야 이에 일홈을 주어  高고行節졀婦부ㅣ라다 〇 南남唐당이 閩민을 틸 閩민余여洪홍의 妻쳐 鄭뎡氏시ㅣ 唐당將쟝王왕建건封봉의 어든 되엿더니 王왕이 主쥬帥슈查사文문徽휘의게 드리니 徽휘 色을 깃거 納납고져 거 鄭뎡氏시 責야  王왕帥ㅣ 吊됴伐벌매 忠튱을 褒포고 節졀을 旌졍야 風풍化화 揚양띠니 建건封봉은 行항伍오ㅣ라도 오히려 節졀義의 덜어이디 아니거 君군은 元원帥슈ㅣ라 엇디 몸으로 禍화首슈ㅣ 되려 다 查사ㅣ 븟그려 이에 지아비 자 도라보내다】
代夫부人인이 深심怨원其기弟뎨 千쳔秋츄애 表포(표)磨마笲계之지山산고 杞

여사4:25ㄴ

긔良냥妻쳐ㅣ 逺원訪방其기夫부야 萬만里니애 哭곡築튝城셩之지骨골며 〇趙됴襄양子의 누의 代夫부人인이 되얏더니 襄양子ㅣ 代君군을 잔야 銅동斗두로 죽기고 兵병을 들어 代 滅멸고 누의를 마니 누의 하을 우러러 크게 울고 빈혀 라 목을 딜러 죽으니 代 사이 뫼흘 일홈야 磨마笄계山산이라 다 〇 秦진 范범杞긔良냥이 妻쳐 娶연디 三삼日일애 長댱城셩  역의 갓더니 날이 칩거 妻쳐 姜강氏시 오 지어 가지고 멀리 지아비 자 가니 지아비 임의 죽엇 디라 크게 書듀夜야 우니 城셩이 홀연이 문어디고 白骨골數수具구ㅣ 뵈거 피 내야 들리니 읏 들거 지아븨 알고 지고 오다가 힘이 竭갈야 능히 行티 몯야 이에 骸骨골을 바회 아 노코 겻 안자 죽으니

여사4:26ㄱ

이 블샹히 너겨 因인야 夫부婦부 葬장고 祠堂당을 셰워 祭졔니라】
唐당貴귀梅自縊於어樹슈야 以이全젼貞텽야 不블彰챵其기姑고之지惡악고 潘반妙묘圓원이 從죵夫부於어火화야 以이殉슌節졀야 而이活활其기舅구之지生며 〇明명 唐당貴귀梅 열닐곱에 夫부 喪상고 節졀을 직엿더니 姑고ㅣ 댱로 더부러 通통奸간야 아오로 貴귀梅 엇고져 거 梅 좃디 아니대 姑고ㅣ 梅 不블孝효로 告고니 梅 官관의 辨변明명디 아니고 도라와 스로 목여 죽고 姑고의 허믈을 니디 아니니라 〇 元원徐셔允윤讓양의 妻쳐 潘반妙묘圓원이 夫부 조차 兵병을 避피얏더니 賊적이 翁옹을 잡고

여사4:26ㄴ

夫부 죽이고 潘반을 더러이고져 거 潘반이  翁옹을 노코 夫부 오면 너을 조리라 賊적이 翁옹을 노코 夫부 온대 潘반이 불의 여 들어 죽으니라】
譚담貞뎡婦부ㅣ 廟묘中듕流유血혈이러니 雨우漬치猶유存존고 王왕烈녈女녀ㅣ 崖애上샹題뎨詩시ㅣ러니 石셕刊간尙샹在며 〇宋송趙됴宗종室실의 妻쳐 譚담氏시 吉길安안사이라 元원이 吉길安안을 破파매 趙됴ㅣ 도망야 가거 譚담이 子식을 품고 文문廟묘의 避피엿더니 兵병이 辱욕고져 대 譚담이 지즈니 兵병이 怒노야 母모子 죽이니 돌 무더 시도 업디 아니더라 〇 元원末말애 臨님海 셩의 妻쳐 王왕氏시ㅣ 이 곱더니 亂란兵병이 지아비 죽이고 王왕氏시 모라 嵊승縣현

여사4:27ㄱ

淸쳥風풍嶺녕을 디나더니 王왕氏시ㅣ 詩시을 돌  君군王왕이 道도ㅣ 업니 妾쳡이 맛당이 災니 女녀 리며 兒 리고 우 셔왓노라 夫부의  아디 못게라 어 볼고 妾쳡의 넉 어 따흘 向향야 도라올 알리오 怨원 눈물은 드리워 로 듯고 對 시 눈썹은 기여 여디 아니도다 멀리 家가鄕향을 라보니 어 곳인고 存존亡망 실로 슬프도다 드듸여 바회예 더뎌 죽으니 後후사이 슬허야 詩시 바회예 삭이니라】
崔최氏시 甘감亂란箭젼以이全젼節졀고 劉뉴氏시 代鼎뎡烹而이活활夫부니 ◯唐당 趙됴元원楷의 妻쳐 崔최氏시ㅣ 河하北븍이 크게 어즈러오매 夫부婦부ㅣ 兵병을 避피엿더니 崔최 잡피이믈 닙어 夫부 免면캐 고 칼 잡아 賊적을

여사4:27ㄴ

어리아(야) 드니 賊적이 怒노야 어즈러온 살로 쏘아 죽이다 ◯ 元원末말의 楚초中듕이 크게 줄이니 兵병이 사을 노략야 먹더니 李니仲듕義의 잡아 쟝 므려 거 仲듕義의妻쳐 劉뉴氏시ㅣ 라와 告고야  지아비 여외여 이 업고 들으니 婦부人인 지고 검은 이 알음답다 니 妾쳡이 원컨대 代야 기여지이다 兵병이 夫부 免면고 劉뉴氏시 므니 遠원近근이 슬허 아니리 업더라】
是시皆貞뎡心심은 貫관乎호日일月월고 烈녈志지 塞乎호兩냥儀의야 正졍氣긔 凜늠於어丈댱夫부고 節졀操조 播파乎호靑쳥史者쟈也야ㅣ니 可가不블勉면歟여아

여사4:28ㄱ

忠튱臣신은 두 나라흘 셤기디 아니고 烈녈女녀 지아비을 디 아니디라 故고로 더부러 醮쵸면 몸이 도록 옴기디 아니니 男남은 可가히 다시 혼인려니와 女녀 가미 업니 이런고로 艱간難난 苦고節졀을 貞뎡이라 니고 慷강慨개야 生을 捐연을 烈녈이라 니니라 令녕女녀ㅣ 귀 버히며 코 버혀 몸을 가지고 凝응妻쳐ㅣ  익글매 손을 버혀

여사4:28ㄴ

을 키며 共공姜강의 髧담髦모의 詩시 죽기 딕여 다미 업고 史氏시의  삭인 文문은 中듕心심을 곳티디 아니며 皇황甫보夫부人인은 바로 逆역臣신을 斥척(쳑)야 斧부鉞월의 膏고호 짓기 입에 긋디 아니고 竇두家가 二이女녀 亂란賊적을 좃디 아니야 위 바회예 더디되 憤분야 몸을 도라보디 아니며 董동氏시 터럭을 封봉야 지아비 도라오기

여사4:29ㄱ

릴 二이十십年년을 膏고沐목을 베프디 아니고 妙묘慧혜 詩시  몸의 節졀을 켯더니 三삼千쳔里니애 다시 生逢봉홈을 보며 桓환夫부人인은 義의ㅣ 庖포 가지로 아니려 야 匪비石셕의 詩시 읇고 平평夫부人인은 兵병을 가지고 巷항을 닷아 闔합閭녀의 犯범을 물리티며 夫부의 不블幸은 妾쳡의 不블幸이라 니 宋송女녀의 말이 슬프고 使君군도 婦부ㅣ

여사4:29ㄴ

잇고 羅나敷부도 夫부ㅣ 잇다 니 趙됴王왕의 이 긋치며 梁냥節졀婦부ㅣ 魏위王왕을 물리 티매 코 긋처 孤고 存존고 余여鄭뎡氏시ㅣ 唐당帥슈 責매 嚴엄 말로 節졀을 보젼며 代夫부人인이 아을 원망 千쳔秋츄애 磨마笄계ㅅ뫼 表표고 杞긔良냥妻쳐ㅣ 멀리 지아비 자 萬만里니애 城셩 던  울며 唐당貴귀梅 스로 남게 목야 貞뎡을 全젼야

여사4:30ㄱ

싀어믜 惡악을 나타내디 아니고 潘반妙묘圓원이 지아비 블에 조차 節졀을 殉슌야 싀아븨 生을 살오며 譚담貞뎡婦부ㅣ 廟묘中듕의셔 피 흘녓더니 적셔도 오히려 잇고 王왕烈녈女녀ㅣ 崖애上샹애 詩시 더니 돌 사긴 거시 오히려 이시며 崔최氏시 어즈러온 살 게 너겨 節졀을 완젼고 劉뉴氏시 代야 솟긔 겨 지아비 살오니이다 貞뎡心심이 日일月월을

여사4:30ㄴ

烈녈志지ㅣ 兩냥儀의예 몌이여 正졍氣긔 丈댱夫부도곤 늠녈고 節졀操조 靑쳥史애 뎐파 者쟈ㅣ니 可가히 힘쓰디 아니랴
제5. 바른 행실과 굳은 절개[貞烈篇]
충신은 두 나라를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갖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한 번 남편과 더불어 초례를 하면 몸이 마치도록 다른 남자에게 옮기지 아니한다. 남자는 가히 다시 혼인할 수 있지만 여자는 두 번 갈 수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괴로운 절개를 지키는 것을 ‘정(貞)’이라 말하고, 울분을 토해 분개하며 생명을 버리는 것을 ‘열(烈)’이라 말한다. 위나라 영녀(令女)가 귀를 베고 코를 베어서 몸을 지키고, 왕응 처가 〈외간 남자가〉 팔을 이끈 때문에 손을 베어서 〈정절의〉 뜻을 밝히며, 〇【하후의 딸 영녀는 위나라 조문숙의 처이다. 문숙이 죽자 〈영녀의〉 부모가 새서방을 맞게 하고자 하므로 영녀가 말하되 어진 자는 성쇠에 따라 절개를 바꾸지 않고 의로운 사람은 〈나라의〉 존망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고, 이에 스스로 자신의 귀를 베어서 맹서하였는데, 시가집이 다 멸망하여 부모가 또 새서방을 맞이하게 하고자 하므로 영녀가 이에 코를 베어서 정절을 보전하였다. 〇 오대 때 괵주에서 사호의 직을 맡은 왕응의 처 이씨가, 남편이 죽자 어린 자식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여점에 들어가려고 하니 주인이 그녀의 손을 이끌어 내 치니 이씨가 울면서 말하되 이 손이 어찌 외간 사람이 잡은 바가 되겠는가 하고는 이에 칼을 안고 스스로 그 손을 베어내니 나라에서 그에게 문을 세워 정절을 표하였다.】위나라 공강(共姜)이 노래한 ‘담모(髧髦)’라는 시는 죽음으로서 정절을 지킨 것과 다름이 없고, 명나라 사씨(史氏)가 얼굴에 새긴 문신은 그 중심을 고치지 않는 것이며, 〇【위나라 세자 공백(共伯)이 일찍 죽으니 그의 아내 공강이 백주(栢舟)의 시를 지어 말하기를, “두 갈래로 땋아 내린 저 머리는 실로 나의 뜻이니 죽을지언정 맹서한(재가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〇 명나라 율양의 땅에 살던 사씨의 딸이 지아비 소일룡이라는 남자와 혼인을 못하고 지아비가 먼저 죽으니, 부모가 다시 사위를 선택하고자 하므로 여자가 이에 낯을 쪼아 “마음을 바꿀 수 없다[中心不改]”라는 네 글자를 새겨 먹으로 메웠다. 〈나라에서〉 이러한 일을 듣고 정문(旌門)을 내려 표하였다.】황보 부인은 바로 역신을 배척하여 부월에 맞아 죽되 꾸짖는 말이 입에 끊이지 아니하고, 두가(竇家)의 두 딸은 난적을 따르지 않고 위험한 바위에서 몸을 던져 분노하여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며, 〇【황보규의 부인이 글을 잘 하더니 규가 죽자 동탁이 부인의 고움을 듣고 취하고자 하므로, 부인이 면하기 어려운 줄 알고 이에 탁의 문앞에 가서 꿇어앉아 의로써 〈불가능함을〉 달래었지만 탁이 듣지 아니하므로 이에 〈태도를 바꾸어〉 나무라며 꾸짖어 말하되, “나는 대신의 처라. 의리로서 욕을 받지 아니할 것이오. 너는 강호잡종(오랑캐의 잡종)인데다 일찍 내 남편이 부리던 신하인데 지금 감히 네가 군부인에게 무례를 범하는냐?”라고 하니, 탁이 노하여 그녀의 머리를 수레 위에 매달고 어지럽게 치니 꾸짖기를 입에 그치지 아니하며 죽었다. 〇 당나라 덕종 때에 주자(朱泚)의 난이 일어나 도적이 종횡무진 설치고 다니더니, 봉천 두씨의 두 딸이 도적에게 쫓기는 꼴이 되어 형이 먼저 깊은 바위 아래 몸을 던지니 아우가 마저 던지었으나 형은 죽고 아우는 팔이 부러지니, 황제(덕종)가 들으시고 정문를 내려 표하였다.】동씨(董氏)는 머리카락을 봉하여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가다렸는데 이십 년 동안 머리를 감거나 손질하지 아니하고, 묘혜(妙慧)는 시를 지어서 자기 몸의 절개를 밝혀서 삼천리 밖에서 다시 만나 살 수 있었다. 〇【당나라 가직언이 영남으로 귀양갈 때 처 동씨에게 일러 말하되, “내가 가면 생사를 예측하지 못한다. 너는 젊었으니 마땅히 홀로 있을 것이 아니니 스스로 방도를 마련하시오.” 하였는데, 동씨는 이에 노끈으로서 머리털을 묶고 남편으로 하여금 손으로 글을 써 봉하라 하여 맹서하며 말하되, “지아비가 오지 않으면 풀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다. 이십 년만에 남편이 비로소 돌아와 친히 그 터럭을 풀었다. 〇 명나라 양주에 노진사의 처 이묘혜는 남편이 급제하였는데도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그릇된 소식을 전하는 이가 있었으니, 부모가 불쌍히 여겨 다시 서방을 맞이하고자 하더니, 그 때에 남창에 사는 큰 장사(부자) 사계라는 이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는 지라, 그 어미 이씨가 양주에 있으되 묘혜의 일가 고모라서 자식의 첩으로 삼고자 하므로, 묘혜의 아버지가 이에 속여 여를 이끌고 사계의 배[舟]에 가니, 이씨가 그 연고를 알고 몇 번이나 스스로 죽고자 하였으나, 사람이 구출하여 못 죽으니, 고모가 알고 이에 딸을 살려 이끌고 돌아가는데, 배가 금산사를 지나갈 즈음 이씨가 시를 지어 쓰고 스스로 제목을 붙여 말하되 “양주 진사 노모의 처 이묘혜는 쓰노라” 하였더라. 시에 이르되 “관을 닫아도 금 빗기는 〈부자의〉 여자가 되지 아니하고 땅 속에 들어가도 마땅히 계수 나무를 꺾은(급제한) 낭자를 찾을 것이라.” 하였고, 또 새로 시를 써 금산사에 있으니, “높이 구름 위에 돛을 달고 예장으로 지나가노라.” 하였더라. 노가 벼슬하여 돌아오므로 그 처가 종적을 알 수가 없었는데 금산사를 디나다가 이 시를 보고, 이에 벼슬을 버리고 예장으로 가니 장사하는 배만 많아 가히 묻지 못할 것이라. 이 때문에 밤에 장사하는 배를 돌아다니며 이씨의 시를 읊으니 고모가 듣고 불러들였으니, 이로 인하여 처를 찾아보니 이미 중이 되었다. 이에 다시 둘이 합쳤다는 이야기가 들리므로 남편에게 벼슬을 다시 돌려 주었다.】위나라 환공 부인은 의를 지켜 부엌을 한가지로 아니하려고(함께 산다는 의미) 하여 비석(匪石)의 시를 읊었고, 초나라 평왕의 부인 백영(伯嬴)은 군사를 거느리고 마을을 막고 들어온 합려(闔閭)의 침범을 물리쳤으며, 〇【위(衛)나라 환공(桓公)의 부인 강(姜)씨는 제나라 출신인데, 위나라로 시집가던 중 국문(나라 경계)을 미처 넘지 못하고 환공이 시해되었다. 그리하여 나라 사람이 환공의 아우 선공을 〈임금으로〉 세웠는데, 강씨의 좌우 사람들이 〈제나라로〉 돌아가자고 청했지만, 강씨는 따르지 않고 위나라에 집을 지어 살면서 남편의 3년상을 지켰다. 선공이 한 솥 밥을 먹으며 살기를 청하니 강씨가 불가하다고 하며 이에 “내 마음 돌이 아니다[匪石]”라는 시를 외워 스스로 맹세하고 마침내 위나라에서 일생을 마쳤다. 〇 오나라 임금 합려가 초나라를 정복하니 소왕이 달아나므로 오왕이 소왕의 어머니 백영의 고움을 듣고 범하고자 하더니 백영이 무기를 가지고 영항(후궁)을 지키며 오왕에게 말하되, “대왕이 군사를 일으킴은 초나라를 바로잡아으려는 것이거늘 불의를 저지르고자 하시니 어찌 천하에 패자가 될 수 있으리오? 부인의 도리는 죽기를 각오해서라도 두 남자를 섬길 수 없으니 왕이 만일 첩을 죽이시면 이는 임금의 어미를 죽인 것이고 음란하다는 이름을 달게 여겨야 할 것이니, 또 무엇이 이익이 되겠습니까?” 하였다. 오왕이 부끄러워하며 이에 포기하니 백영이 후궁을 지킨 지 삼 순(한 달)만에 진나라 병사가 와서 초나라를 구해 주었고 도망간 소왕은 다시 돌아왔다.】“남편의 불행은 첩의 불행입니다.” 하니, 송나라 여자[宋女]의 말은 슬프다. “사군도 아내가 있고 나부(羅敷)도 남편이 있습니다.”라고 하니, 조나라 임금의 음란한 뜻을 그치게 하였다. 〇【채나라 사람의 처는 송나라에서 시집온 여자이다. 비로소 혼인함에 남편이 악질(惡疾)이 있으므로 부모가 다시 고쳐서 다른 데 시집보내고자 하였는데, 딸이 말하되, “남편의 악질병이 있는 것은 남편의 불행이요, 또한 첩의 불행입니다. 남편이 병이 있다고 버린다면 어질지 아니하고 여자가 여러 번 시집을 가서 남편을 배반하면 의롭지 아니하니, 어질지 아니하며 의롭지 아니하면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이에 스스로 죽고자 하므로 부모가 드디어 〈개가하라는 말을〉 그치니 마침내 그 남편을 섬겨 천수를 다하였다. 〇 한나라 조왕은 집안 일을 맡고 있는 집사[家令]의 처 진나부가 아리따워 임금이 빼앗고자 하였는데, 나부가 시를 지어 말하되, “사군께서 남쪽으로부터 오니 다섯 마리 마차가 서서 머뭇거리는도다. 사군께서 나부에게 말하되 돌아갈 때 가이 함께 타자고 하니 나부가 나아가 말씀을 이르되, 사군께서 또한 어찌 이렇게 어리석습니까? 사군께서 스스로 부인이 있고 나부에게는 스스로 남편이 있습니다.” 하니, 조왕이 이에 그쳤다.】양나라 땅에 절개 있는 부인[梁節婦]이 위나라 임금의 강요를 물리침에 스스로 코를 끊어서 그를 깨우치게 하고 어린 자식을 길렀고, 여홍의 처 정씨[余鄭氏]는 당나라 장수를 엄중한 말로 꾸짖어 절개를 보전하였으며, 〇【양나라 절부가 남편이 죽었으나 그 자태가 아름답기 때문에 위나라 임금이 취하고자 하였는데 부인은 자신의 코를 베고서 말하되, “임금이 첩을 얻고자 함은 그 미색 때문입니다. 이제 흉측한 사람이니 임금이 무엇에 쓰겠습니까? 첩이 죽지 않고 이렇게 한 바는 자식이 어리므로 자랄 때까지 돌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이에 이름을 하사하였는데 “고행절부(행동과 절개가 높이 뛰어난 부인)”라 하였다. 〇 남당이 민(閩)을 정벌했을 때 민 땅에 사는 여홍의 처 정씨가 남당의 장수 왕건봉에게 잡힌 바 되었는데, 왕건봉이 총사령관 사문휘에게 드리니, 휘가 그 미색을 보고 기뻐 자기 여자로 삼고자 하므로 정씨가 꾸짖어 말하되, “왕도의 기치를 내건 장수가 정벌하고 위로함에 충을 기리고 절의를 밝힘으로써 풍속의 교화를 선양하해야 하거늘 왕건봉은 졸개[行伍]라도 오히려 절의를 더럽히지 아니하거늘 군은 원수이면서 어찌 스스로의 몸으로 화를 만드는 기수가 되려고 합니까?” 하니, 사문휘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이에 그 남편을 찾아 정씨를 돌려보냈다.】대부인(代夫人)이 깊이 그 아우를 원망할 때 오랜 세월 비녀를 갈아서 목을 찔러 죽은 뫼를 표하고 마계산이라 하였고, 기량(杞良)의 아내는 그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역사에 나가자 겨울옷을 가지고 먼 길을 찾아 갔고, 이미 죽은 남편의 뼈를 찾기 위해 울었으며, 〇【조(趙)나라 양자(襄子)의 누나가 대(代)나라 임금의 부인이 되었는데, 양자가 대나라 임금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신하를 시켜〉 놋쇠로 만든 국자[銅斗]로 대왕을 쳐죽이게 하였다. 그리고는 군대를 일으켜 대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누나를 맞으니, 누나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다가 비녀를 뾰족하게 갈아서는 자신의 목을 찔러 죽으니, 대나라 사람들이 그녀가 묻힌 산을 마계산(麻笄山)이라고 불렀다. 〇 진나라 범기량이 처를 취한 지 3일만에 장성을 쌓는 역사에 잡혀 갔는데, 날이 추워지자 아내 강씨가 옷을 만들어 가지고 멀리 그 남편을 찾아 가니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크게 3일 밤낮으로 우니 성이 홀연히 무너지고 백골이 수구가 보이므로 피를 내어 〈떨어뜨리니 소리가〉 들리고 계속 〈소리가〉 들리므로 남편의 뼈인 줄 알고 지고 오다가 힘이 소진하여 능히 길을 걷지 못하여 이에 해골을 바위 아래에 놓고 그 곁에 앉아 죽으니,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겨 그 부부를 장사를 지내고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주었다.】당귀매(唐貴梅)는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어 그 정절을 온전히 하여 그 시어머니의 악행을 드러나게 하지 않았고, 반묘원(潘妙圓)은 남편을 변란에 따라가 순절하여 그 시아버지의 생명을 살렸으며, 〇【명나라 귀지 땅에 당귀매가 열일곱에 남편을 잃고 수절을 지켰는데, 시어머니가 지나가는 장사치로부터 간통을 하도록 하여 아울러 귀매를 얻고자 하였으므로 귀매가 따르지 아니하니, 시어머니가 〈며느리〉 귀매를 불효자로 관에 고발하니, 매가 관에 가서 변명도 하지 않고 돌아와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 시어머니의 허물을 말하지 않았다. 〇 원나라 서윤양의 처 반묘원이 남편을 따라 전쟁을 피하였는데, 적이 그 시아버지를 잡고 그 남편을 죽이고 반묘원의 몸을 더럽히려고 하므로, 반이 말하되, “네가 시아버지를 놓아주고 남편을 불태워 준다면 곧 너를 따르겠다.”라고 하니, 적이 시아버지를 놓아주고 남편을 불태우는데 반이 갑자기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송나라의 정절을 지킨 부인 담씨[譚貞婦]는 사당에서 〈적에게 당하여〉 피를 흘렸더니 비가 와서 적셔도 〈그 핏자국이〉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고, 열녀 왕씨[王烈女]가 벼랑 위에서 시를 썼더니 돌에 새긴 것이 아직 있으며, 〇【송나라 조(趙)씨 종실(宗室)의 처인 담씨는 길안(吉安) 사람이다. 원(元)이 길안을 치매 조가 도망하여 가거늘 담씨가 자식을 품고 문묘(文廟)에 들어가 피하였는데 병사가 욕보이고자 하니, 담씨가 꾸짖으니 병졸이 화를 내며 그 모자(母子)를 죽이니 그 피가 돌에 묻어 씻어도 지워지지 않더라. 〇 원나라 말엽에 임해 땅에 사는 한 백성의 처인 왕씨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병란이 일어나 적병이 그의 남편을 죽이고 왕씨를 협박해 승현의 청풍령을 지나는데 왕씨가 시를 돌에 새겨 말하되, “군왕이 무도하니 내[妾]가 또한 재화를 당하고 딸을 버리며 아들을 팽개친 채 말을 타고 여기까지 왔구라. 남편의 얼굴은 볼 면목이 없으니 어느 날에 가서 다시 볼까? 첩의 넋은 어느 땅을 향하여 돌아올 줄을 알리오? 두 줄기 원한 서린 눈물을 드리워 자주 뺨을 적시는데 시름에 찬 눈썹은 감겨 열리지 않는구나. 멀리 집이 있는 쪽을 바라보지만 그 곳이 어디인가? 사느냐 죽느냐 두 가지, 이것이 슬프구나.”라고 쓰고, 드디어 바위에서 던져 죽으니 후의 사람들이 슬퍼하여 그 시를 바위 절벽에 새겼더라.】당나라 최씨는 난적의 어지러운 화살을 달게 여겨서 절개를 온전하게 하였고, 원나라 유씨(劉氏)는 남편 대신하여 솥에 삶겨 남편을 살렸다. 〇【당나라 조원해의 처 최씨가 하북지방에 대란이 일어나자 부부가 병란을 피하였는데 최씨가 적에게 잡혀 그 남편이 잡히지 않도록 하고 칼을 잡아 적을 찌으려고 달려드니 적이 노하여 활을 어지럽게 쏘아 죽였다. ◯ 원나라 말의 초(楚) 지방이 크게 굶게 되니 병사들이 사람을 잡아먹기에 이르렀는데, 이중의(李仲義)를 잡아 곧 삶아먹으려 하므로 중의의 처 유씨가 달려와 고하면서 말하되, “내 남편이 여위어서 살이 없고 내가 들으니 부인이 살지고 검은 자는 살이 맛이 좋다고 하니 첩이 원하건대 〈남편〉 대신하여 삶아 먹으시오.”라고 하니, 병사들이 남편을 살려 주고 유씨를 삶으니 멀리 가까이서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이 모두가 곧고 바른 마음이 해와 달을 꿰고, 열녀의 곧은 뜻이 천지의 음양을 덮어, 바른 기운이 대장부보다 늠름하여 그 절개와 지조가 청사에 전파되는 사람들이니, 〈이를 본받아〉 가히 힘쓰지 않겠는가?
디 아니 디라 : ‘재혼하지 않는 것이다[無再適]’. 곧 남자는 다시 혼인할 수 있으나 여자는 두 번 시집을 갈 수 없다는 말.
지아비을 : ‘지아비[夫]-+-을(목적격조사)’의 구성. 지아비를. 목적격 ‘-을/를’의 선행 음절이 개음절일 경우 ‘-를’을 폐음절인 경우 ‘-을(목적격조사)’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개음절인데도 ‘-을(목적격조사)’이 실현되었다.
디라 : ‘(의존명사)-+-이-+-라’의 구성. 것이다.
더부러 초(醮)면 : 함께 혼례의 술잔을 나누었으면.
도록 : ‘〈[終]-+-도록’의 구성. 마치도록.
간난(艱難) : 괴롭고 고생스러운.
고절(苦節) : 어떤 어려운 일에도 굽히지 아니하는 굳은 절개.
강개(慷慨)야 :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정의심이 복받치어 슬퍼하고 한탄하여.
생(生)을 연(捐)을 : 생을 버림을. 생을 포기함을.
응처(凝妻) : 왕응의 처. 오대(五代) 때 괵주(虢州)에서 사호(司戶)를 지낸 왕응(王凝)의 처 이(李)씨를 말한다. 그의 고사는 『고금열녀전』 권2, 『규범』 권3, 『고금여범』 권2에 실려 있다.
 익글매 : 팔을 이끌므로. 원문 협주에서는 “손을 잇그러”라고 하였다. 같은 내용을 ‘잇그러’와 ‘익글매’로 달리 표기한 것으로 보아, 원문의 협주문과 언해문의 글쓴이가 다른 사람이거나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녀(令女) : 하후(夏候) 씨의 딸이며 위(魏)나라 조문숙(曹文叔)의 처. 이 고사는 『규범』 권3, 『고금규범』 권2에 실렸다.
담모(髧髦)의 시(詩) : “땋아 내린 머리[髧髦]”를 노래한 시. 위나라 세자 공백조(共栢蚤)가 죽었는데 그의 처 공강(共姜)이 『백주(栢舟)』라는 시를 지어 말하기를, “두 갈래로 땋아 내린 저 머리는 사실 내 뜻을 잘 보여주는 것이네. 죽을지언정 다른 데로 시집갈 수 없도다.” 하였다고 한다.
사씨(史氏) : 명나라 율양(溧陽) 땅에 사는 사(史)씨의 딸. 소일룡(邵一龍)이라는 남자와 약혼을 하였는데 시집도 가기 전에 남편이 죽었다. 부모가 다른 사위를 찾으려고 하자 딸은 얼굴에 상처를 내며 말하기를, “마음 속을 바꿀 수는 없다.”라고 하여 절개를 지켰다는 고사이다. 『고금여범』 권2에 수록되어 있다.
 : ‘[面]-+-’의 구성. 낯에. 얼굴에.
삭인 : 새긴. ‘사기[刻]-+-ㄴ(관형사형)’의 구성. 새긴.
곳티디 : ‘고티〉고치-+-디’의 구성. 고치지.
황보부인(皇甫夫人) : 황보규(皇甫規)의 부인. 남편 규가 죽자 동탁(董卓)이 부인의 미모를 듣고 아내로 삼으려고 했으나 절개를 지켜 죽임을 당했다는 고사이다. 『후한서』 권4, 『열녀전』, 『고금열녀전』 권2, 『규범』 권2, 『고금여범』 권3에 수록되어 있다.
동씨(董氏) : 당나라 가직언(賈直言)의 처. 귀양을 간 남편을 20년 동안 기다렸다가 남편이 돌아와 남편이 묶었던 그녀의 머리를 풀어주었다는 고사로, 『신당서』 권205, 『고금여범』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척(斥)야 : 물리쳐서.
부월(斧鉞) : 작은 도끼와 큰 도끼.
고(膏)호 : 불에 찌지는 고문을 하되.
긋디 : ‘긏[斷]-+-디’의 구성. 그치지.
두가(竇家) 이녀(二女) : 당나라 덕종 때 봉천(奉天)두(寶)씨의 두 딸. 주차(朱泚)의 난이 일어나자 두 딸은 도적에게 쫓기는 위험한 상황이 되자, 언니가 먼저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죽고 동생이 따라 죽었다는 고사로, 『구당서』 권193, 『신당서』 권205, 『고금열녀전』 권3, 『규범』 권2, 『고금규범』 권3 등에 실려 있다.
바회예 : ‘바회[巖]-+-예(처격조사)’의 구성. 바위에. ‘바회〉바위, 바우〉바위’의 구성.
더디되 : 몸을 던지되.
고목(膏沐)을 :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목욕을. 곧 치장을 하지 않음을 말한다.
켯더니 : ‘[明]-+-히(사동)-+-엇(과거시상)-+-더(과거회상)-+-니(연결어미)’의 구성. 밝혔더니.
묘혜(妙慧) : 명나라 때 양주(揚州)에 살던 노(盧) 진사의 처 이묘혜(李妙慧). 그녀는 남편이 급제하였는데도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전해 듣고 친정 부모가 개가시키려고 하였지만 거절하고 시를 지어 자신의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송녀(宋女) : 어떤 채(蔡)나라 사람의 처가 송나라에서 시집을 왔으므로 일컬은 말. 그녀는 남편이 나쁜 병을 앓았으나 개가하지 않고 섬겼다고 한다. 이 고사는 『열녀전』 「정순·채인지처(蔡人之妻)」, 『고금열녀전』 권3, 『고금여범』 권2에 실려 있다.
생봉(生逢)홈을 : 살아서 만남을.
포(庖) : 부엌을.
비석(匪石)의 시(詩) : ‘돌이 아니다[匪石]’라는 내용의 시. 위(衛)나라 환공(桓公)의 부인 강(姜)씨가 수절하면서 읊었던 시로서, 『시경』 「패풍(邶風)」편 ‘백주(栢舟)’라는 시의 제3장인데 다음과 같다. ‘내  이 石셕이 아니라 可가히 轉뎐티 몯리며 내  이 石셕이 아니라 可가히 卷권티 몯리며 威위儀의ㅣ 棣톄棣톄디라 可가히 選션티 몯리로다[我心匪石不可轉也我心匪石不可卷也威儀棣棣不可選也]〈시경언해 2:1~2〉. 강씨의 이야기는 유향의 『열녀전』 「정순·위과부인(衛寡夫人)」과 『고금열녀전』 권2, 『규범』 권3, 『고금여범』 권2에 수록되어 있다.
항(巷)을 : 궁궐을 문.
닷아 : 닫아.
합려(闔閭) :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임금. 이름은 광(光).
평부인(平夫人) : 초나라 평왕의 부인 백영(伯嬴). 오나라 임금 합려가 초나라를 정복하자 소왕(昭王)은 도망을 가버렸고, 평왕의 부인이며 소왕의 어머니인 백영이 미모가 출중하여 합려가 그녀를 범하려고 하였으나, 칼을 들고 합려를 물리쳤다. 이 이야기는 『열녀전』 「정순·초평백영(楚平伯嬴)」과 『고금열녀전』 권2, 『고금여범』 권2에 실려 있다.
나부(羅敷) : 한나라 조왕(趙王)의 가령(家令, 집안일을 총괄하는 사람)이었던 사람의 처 진나부(秦羅敷). 조왕이 진나부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자기 여자로 삼고자 하니 나부가 시로써 자신의 뜻을 말해 사군이 나부를 포기하도록 하였다는 고사이다.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 「음악(音樂)」과 『옥대신영(玉臺新詠)』 권1에 실린 「일출동남우행(日出東南隅行)」, 『고금여범』 권2에 실려 있다.
사군(使君) : 관직의 이름으로 주(州), 군(郡)의 행정 책임자. 여기서는 조왕을 높이 부르는 대명사로 쓰였다.
양절부(梁節婦) : 양나라 땅에 절개 있는 부인. 위(魏)나라 임금의 청을 물리치고자 자신의 코를 베어내며 수절을 지켰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유향의 『열녀전』 「정순·고행절부(高行節婦)」, 『규범』 권3, 『고려여범』 권2에 수록되어 있다.
긋처 : 그쳐. ‘긏[斷]-+-ㅣ(사동접사)-+-어(연결어미)’의 구성.
당수(唐帥) : 남당(南唐)의 장수. 곧 사문휘(查文徽)를 가리킴.
여정씨(余鄭氏) : 남당이 민(閩)을 정벌했을 때 민땅에 살던 여홍(余洪)이라는 사람의 처 정씨를 가리킴. 장군 왕건봉(王建封)이 그녀를 잡아 그의 주수(主帥) 사문휘(查文徽)에게 바쳤는데, 정씨가 시를 써서 꾸짖어 보낸 뒤 자신은 수절하였다. 『남당서(南唐書)』 권6 『여헌(女憲)』, 『규범』 권3에 수록되어 있다.
그 아을 원망 : 그 아우를 원망할 때.
마계산(磨笄山) : 조나라 양자(襄子)의 누나가 대(代)나라 군주의 부인이 되었다가, 대나라를 멸망시킨 양자가 맞이하려 하자 비녀로 자결하니, 사람들이 그녀를 애도하여 묻힌 산에 붙여준 이름. 『사기』 권34 「조세가(趙世家)」, 유향의 『열녀전』 「절의·대조부인(代趙夫人)」, 『고금열녀전』 권34, 『고금규범』 권3에 실려 있다.
뫼 : 뫼를.
기량처(杞良妻) : 진(秦)나라 사람 범기량(范杞良)의 처. 범기량이 장가든 지 사흘만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장성을 축조하는 공사에 나갔다가 죽었는데, 그의 처가 찾아가서 사흘 밤낮을 통곡하니 성벽이 무너졌다고 함. 『맹자』 「고자(告子)」 하편에서 순우곤(淳于髡)이 한 말 가운데,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처는 그 남편의 장례를 잘 치러 나라의 풍속을 바꾸어 놓았다.’고 칭송했다. 『춘추좌전』 「설원」, 유향의 『열녀전』 「정순·제기량처(齊杞梁妻)」 등에 실려 있다.
 : 뼈를.
당귀매(唐貴梅) : 명나라 귀지(貴池) 땅에 살았던 여인의 이름. 나무에 목을 매고 죽으면서도 시어머니의 과실에 대해서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금여범』 권3, 『열녀』, 『명사(明史)』 권301, 『열녀전』에 수록되어 있다.
야 : 매어서. ‘[結]-+-아’의 구성. 매어서.
반묘원(潘妙圓) : 원나라 서윤양(徐允讓)의 처 이름. 반묘원은 남편의 시신을 태우는 불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으로 절개를 보였으며 그 시아버지도 살려내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원사』 권201, 『규범』 권3, 『고금규범』 권3에 실려 있다.
왕열녀(王烈女) : 원나라 말엽 임해(臨海) 땅에 사는 한 백성의 아내 왕씨를 가리키는 말.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난리가 나자 적병이 들어와 남편을 죽이고 왕씨를 협박해서 데리고 가다가 승현(嵊縣)의 청풍령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왕씨는 고개 마루에서 시를 짓고 죽었다. 시는 칠율(七律)의 형식이다. 왕상은 이 이야기가 『이본고금열녀전(異本古今列傳)에 있다고 하지만 그 출전을 확인할 수가 없다.
최씨(崔氏) : 당나라 화북지방에 살던 조원해(趙元楷)의 처 최씨를 가리킴. 그녀는 적에게 잡혀 욕보이려고 하자 대항하다가 화살을 수없이 맞고 죽기까지 절개를 보전하였다고 한다. 『수서(隋書)』 권80, 『열녀전』, 『고금열녀전』 권3, 『고금규범』 권3에 실려 있다.
블에 조차 : 불에 쪼차 들어가서.
담정부(譚貞婦) : 담(譚)씨 성을 가진 정숙한 여자. 송나라 조씨의 종실에 시집 온 담씨는 길안(吉安)에 살던 여자로서, 종실 문묘를 지키다가 죽으니 피가 돌에 스며서 비가 오면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송사』 권460, 『규범』 권3, 『고금규범』 권3에 수록되어 있다.
흘녓더니 : ‘흘리[流]-+-엇(과거시상)-+-더(과거회상)-+-니(연결어미)’의 구성, 흘렸더니.
애상(崖上)애 : 벼랑 위에.
더니 : ‘쓰[書]-+-어(부사형어미)-+-엇(과거시상)-+-더(과거회상)-+-니(연결어미)’의 구성. ‘쓰[書]-’와 ‘[用]-’은 구분되어 쓰이다가, 18세기에는 구별되지 않는다. 16세기 문헌에 나타나는 표기는 ‘쓰다’이고, 17세기 후반에 ‘ㅄ’이 ‘ㅆ’으로 발음이 바뀐 결과 ‘ㅆ’은 ‘ㅄ’으로도 표기되었다. 그 결과가 17세기 후반 이후에 나타나는 ‘[書]-’가 18세기에는 구별되지 않는다.
어즈러온 : ‘어즈르-+업-+-’의 구성. 어지러운.
유씨(劉氏) : 원나라 말엽 초중(楚中)에 살던 이중의(李仲義)의 처. 큰 기근이 발생하자 병사들이 사람을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이때 민간인 이중의가 붙잡혔는데 그 아내 유씨가 남편을 대신하여 삶겨 죽음으로써 그 남편을 살려내었다. 『원사(元史)』 권201, 『열녀전』, 『규범』 권3, 『고금규범』 권3에 실려 있다.
솟긔 : 솥에. ‘소ᇧ[鼎]-+-의’의 구성.
겨 : ‘[烹]-+-기(사동접사)-+-어(연결어미)’의 구성. 삶겨.
살오니이다 : 삽니다. ‘살[生]-+-〉오-+-니(연결어미)-+-이다(종결어미)’의 구성.
고 : ‘[貫]〉-+-고(연결어미)’의 구성, 꿰고. 어두자음 ‘ㅴ’은 17세기에 ‘ㅂ’이 탈락되어 ‘다’가 나타난다. 한편 17세기부터는 ‘다’라는 형태가 나타나서 어간의 중성이 현대어와 같아졌는데, 이러한 ‘ㅔ〉ㅞ’ 변화는 ‘ㅴ’의 ‘ㅂ’이 탈락하면서 반모음 ‘ㅜ’가 중성에 첨가되는 식으로 그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열지(烈志) : 열녀의 뜻. 열녀의 의지.
양의(兩儀)예 : 양(陽)과 음(陰) 또는 하늘과 땅에.
몌이여 : ‘〉매[結]-+-이(사동접사)-+-어(연결어미)’의 구성. 매여. ‘’이다. ‘’은 15세기부터 나타나는데, ‘-〉믜-〉몌-’의 병화 결과이다. ‘믜-’에서 ㅣ 모음 역행동화 결과 ‘몌-’가 실현된 것이다.
늠녈고 : 늠렬(凜冽)하고. 위엄이 있고 씩씩하고.
절조(節操) : 절개와 지조는.
청사(靑史)애 : 역사 기록에.
충신(忠臣)과 열녀(烈女) : 충신은 두 나라를 섬기지 않으며 열녀는 두 남편을 두지 않는다는 말은, 『사기』 권28 「전단열전(田單列傳)」에 실린 왕촉의 말이다.
초(醮) : 초례(醮禮). “돗자리를 깔고 예식을 올린다”는 뜻으로, 여자가 초례를 두 번 치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하였다. 유향의 『열녀전』 「정순·채인지처」와 『예기』 「교특생(郊特牲)」에도 여자가 두 번 시집가는 것을 금지하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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