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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사서언해+책정보

后후德덕篇편

여사4:4ㄱ

鳳봉儀의龍룡馬마 聖셩帝뎨之지祥샹이오 麟린趾지關관雎져 后후妃비之지德덕이니 〇舜슌 의 鳳봉凰황이 來儀의고 伏복羲희 의 龍룡馬마ㅣ 글임을 지고 나니 聖셩王왕의 샹셔니 일로 아 을 여러 내려 미라 〇 麟린趾지 關관雎져 詩시 文문王왕의 妃비 太태姒의 德덕을 을펏니라】是시故고로 帝뎨嚳곡三삼妃비 生稷직契셜唐당堯요之지聖셩고 文문王왕百子 紹쇼姜강任임太태姒之지徽휘며 〇太태王왕의 妃비 太태姜강과 王왕季계의 妃비 太태任임과 文문王왕의 妃비 太태姒ㅣ 仁인孝효야 아다온 거슬 닛단 말이라】潙규汭예二이

여사4:4ㄴ

女녀 紹쇼際졔唐당虞우之지盛셩고 塗도莘신雙쌍后후 肇죠開夏하商샹之지祥샹며 〇堯요ㅣ 二이女녀 潙규汭예애 降강샤 舜슌을 셤기시다 〇 夏하禹우의 妃비 塗도山산氏시오 湯탕의 妃비 有유莘신氏시다 賢현明명니라】宣션王왕이 晩만朝됴ㅣ어 姜강后후ㅣ 有유待罪죄之지諫간고 楚초 昭쇼ㅣ 晏안駕가ㅣ어 越월姬희ㅣ 踐쳔心심許허之지言언며 〇周쥬宣션王왕이 날이 느 후의 됴희 밧거 姜강后후ㅣ 빈혀 빠히고 永영巷항의 待罪죄니라 〇 晏안駕가 죽단 말이라 昭쇼王왕이 나가놀 즐겨  寡과人인 죽은 후의 조리오 諸졔姬희 오 원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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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이다 越월姬희 홀로 아니엿더니 王왕이 薨훙매 諸졔姬희 졷디 아니호 越월姬희  비록 졷디 아니나 애 許허엿디라 이제 엇디 의 許허 을 져리리오 고 드여 죽어 王왕을 조츠니라】
明명和화ㅣ 嗣漢한애 史稱칭馬마鄧등之지賢현고 高고文문이 興흥唐당애 內有유竇두孫손之지助조며 〇漢한明명帝뎨의 馬마皇황后후와 和화帝뎨의 鄧등皇황后후ㅣ 賢현明명니라 〇 唐당高고組조의 竇두皇황后후와 太태宗종文문皇황帝뎨의 長댱孫손皇황后후ㅣ 님군을 도아 帝뎨業업을 일오니라】曁게夫부宋송室실之지宣션仁인은 可가謂위女녀中듕之지堯요舜슌이니라 〇

여사4:5ㄴ

宋송英영宗종의 宣션仁인高고太태后후ㅣ 孫손哲텰宗종을 고 政졍事 들으니 긔애 女녀中듕堯요舜슌이라 일니라】烏오林님이 盡진節졀於어世셰宗종고 弘홍吉길이 加가恩은於어宋송后후며 〇金금主쥬亮냥이 宗종婦부 淫음奸간 葛갈王왕의 妃비 烏오林님氏시 스로 목야 죽엇더니 後후애 葛갈王왕이 位위에 卽즉니 世셰宗종이라 몸이 도록 后후 셰우디 아니다 〇 宋송이 元원애 항복매 太태后후 謝샤氏시 들어와 됴회야 元원世셰組조의 后후 弘홍吉길氏시 셤기기 姊姒티 니라】高고帝뎨ㅣ 創창鴻홍基긔於어草초莽무실 實실藉쟈孝효慈고 文문皇황이 肅슉內治티於宮궁

여사4:6ㄱ

衛위실 爰원資仁인孝효시니 〇明명高고帝뎨의 孝효慈皇황后후 馬마氏시 가지로 草초野야의셔 닐어나 勤근儉검愛民민시고 〇 成셩祖조의 仁인孝효文문皇황后후 徐셔氏시 仁인恕셔고 孝효敬경더시니 內訓훈 二이十십 篇편을 지으시니라】稽계古고興흥王왕之지君군컨대 必필有유賢현明명之지后후호미 不불亦역信신哉아
鳳봉儀의와 龍룡馬마 聖셩帝뎨의 샹셰오 麟린趾지와 關관雎져 后후妃비의 德덕이니 이런 故고로 帝뎨嚳곡의 三삼妃비 稷직과 契셜과 唐당堯요의

여사4:6ㄴ

셩을 나흐시고 文문王왕의 百子 太태姜강과 太태任임과 太태姒의 아다온 거 니으며 潙규汭예 二이女녀 니어 唐당虞우ㅅ 盛셩 를 즈음고 塗도莘신 雙쌍后후 비로소 夏하商샹의 샹셔를 여러내며 宣션王왕이 늣게야 됴회야 姜강后후ㅣ 罪죄 기리 諫간이 읻고 楚초昭쇼ㅣ 晏안駕가야 越월姬희 의 許허 말을 오며 明명과 和화ㅣ 漢한애 니으매 긔

여사4:7ㄱ

馬마와 鄧등의 어딜믈 일고 高고와 文문이 唐당을 興흥홈애 안흐로 竇두와 孫손의 도음이 이시며 宋송室실의 宣션仁인은 可가히 女녀中듕의 堯요舜슌이라 니띠니라 烏오林님은 節졀을 世셰宗종의게 다고 洪홍吉길은 은혜 宋송后후의게 더으며 高고帝뎨ㅣ 洪홍基긔 草초莽무의셔 창실 실로 孝효慈  쟈뢰시고 文문皇황이 內治티 宮궁闈위애 씍씍이 실

여사4:7ㄴ

仁인孝효 뢰시니 興흥王왕읫 님군을 샹고건대 반시 賢현明명 后후ㅣ 이심이  밋부디 아니냐
제2. 왕후의 덕성[后德篇]
봉의(鳳儀)와 용마(龍馬)는 성제(聖帝)의 상서로움이요, 『시경』 「인지」와 「관저」는 후비의 덕을 노래한 것이다. 〇【순임금 때 봉황이 내려와 위엄을 보였고, 복희 때에 용마가 그림을 지고 왔다. 성왕이 나타날 상서로운 징표의 일이다. 〇 「인지(麟趾)」와 「관저(關雎)」 두 시(詩)는 모두 문왕의 비 태사(太姒)의 덕을 읊은 것이다.】이런 까닭으로 제곡(帝嚳)의 세 비(妃)는 직(稷), 설(契)과 당요(唐堯)의 성인을 낳으시고, 문왕이 낳은 백 명의 아들은 태강과 태임과 태사의 아름다운 것을 연이었으며, 〇【태왕의 비 태강과 왕계의 비 태임과 문왕의 비 태사는 모두 어질고 후덕하며 자애롭고 효성스러웠는데, 서로 그 아름다운 자질이 자질을 이어받았다는 말이다.】규예(潙汭)에 사는 두 딸(아황, 여영)은 당우(요순 시대)의 융성한 때를 이었다. 도산과 유신의 두 성후는 하나라와 상나라의 상서로움을 처음으로 열어 내었으며, 〇【당요(요임금)가 아황과 여영 두 딸을 규예로 내려보내 순임금을 섬기도록 하였다. 〇 하우의 비는 도산 씨요, 탕의 비는 유신 씨인데, 다 현명하였다.】주나라 선왕이 늦게 조회를 하자 강후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죄를 기다리는 간청이 있었고, 초나라의 소왕이 세상을 떠나자 월희는 마음으로 허락한다는 말을 실천하였다. 〇【주나라 선왕은 늦게 조회를 받으므로 강후가 몸에 지닌 비녀를 빼놓고 영항에서 죄를 받고자 하였다. 〇 안가(晏駕)란 죽는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소왕이 나들이가므로 즐겨 말하기를, “과인이 죽으면 누가 나를 따라 죽을까?” 하니, 여러 여인이 말하되 모두, “왕을 따라 죽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월희 홀로 말을 하지 아니하였으니 정작 소왕이 죽음에 이르자 어떤 여인도 다 쫒지 아니하였지만 월희 이르되, “내 비록 쫒지 아니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나 마음으로는 허락하였는지라, 이제 어찌 마음에 허락한 뜻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하면서, 뒤따라 죽어 임금을 쫓았다.】명제와 화제가 한나라에 뒤를 이었으니 마황후의 어짐을 일컬었고, 고조와 태종이 당나라를 일으킬 때 안으로 두황후와 장손황후의 도움이 있었으며, 〇【한나라 명제의 마황후와 화제의 등황후가 다 현명하였다. 〇 당나라 고조의 두황후와 태종 문황제의 장손황후가 다 두 임금을 도와 제업을 이루었다.】저 송나라 왕실의 선인황후는 가히 여자 중에서 요순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〇【송나라 영종의 선인 고태후가 손자 철종을 끼고 정사를 들으니 사기(史記)에 ‘여자 중에 요순’이라고 하였다.】금나라의 오림답씨는 정절을 세종에게 다하였고 홍길자황후는 은혜를 송나라 황후에게 더했다. 〇【금나라 권력자 양(亮)이 종부를 간음하므로 갈왕의 비 오림 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후에 갈왕이 즉위하여 세종이 되었는데 몸이 다하도록 후비를 세우지 않았다. 〇 송나라가 원나라에 항복하자 태후 사씨가 〈원나라 조정에〉 들어와 조회하므로 원나라 세조의 왕후인 홍길씨는 그를 섬기기를 자매같이 하였다.】명나라 태조가 큰 왕업의 기틀을 초망(어려운 시절 동안 생활한 곳)에서 창건하였는데 실로 효자고황후에게 의지하시고, 문황(영락제)이 내치를 궁전에서 엄숙하게 하셨는데 곧 인효문황후에게 의지하였다. 〇【명나라 고제(高帝)의 효자황후 마씨는 고제와 함께 초야에서 몸을 일으켜 근검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시고. 〇 성조의 인효문황후 서씨는 인자하고 효성스럽더니 내훈 24편을 지으셨다.】옛날 왕업을 일으킨 임금의 자취를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현명한 왕후가 있었으니 또한 미덥지 아니한가?
봉의(鳳儀) : 봉황의 위엄. 순임금 시절에 봉황이 내려와 상서로움을 알렸다고 한다. 『서경』 「우서·익직」에, “순임금이 만든 구소를 연주하자 봉황이 내려와 위엄이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용마(龍馬) : 『서경』 「주서·고명」에는, “복희가 천하를 다스릴 때 용마가 황하에서 나타났는데, 등에 역(易)의 팔괘를 지고 나왔으니 이를 하도(河圖)라고 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성제(聖帝)의 : 성스러운 제왕의.
샹셰오 : 상서(祥瑞)이요. 상서로움이고.
인지(麟趾) : 『시경』의 시 제목. 본디는 ‘기린의 발[麟之趾]’임. 『시경』의 「인지」와 「관저」는 모두 문왕의 비인 태사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이다.
관저(關雎) : 『시경』의 시 제목. 물수리 새는 한 번 짝이 정해지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는다는 것에 비유하여 황후 왕비의 덕을 칭송한 내용이다.
제곡(帝嚳) : 중국 고대의 전설상(傳說上)의 제왕(帝王). 고신씨(高辛氏)라고도 하고, 제요(帝堯)의 아버지라고도 함.
삼비(三妃) : 세 비(妃). 곧 세 사람의 황후. 『사기』에 기록에 따르면, 원비는 유태(有邰) 씨의 딸 강원(姜源)인데 후직(后稷)을 낳았고, 둘째는 유융(有娀) 씨의 딸 간적(簡狄)인데 설(契)을 낳았고, 셋째는 진봉(陳鋒) 씨의 딸 경도(慶都)인데 요(堯)를 나았다고 한다.
직(稷)과 설(契) : 요(堯)의 신하로 농사를 관장했던 직(稷)과, 우(禹)를 도와 치수(治水)를 잘하였던 설(契)을 일컬음. 설은 은(殷)나라, 직은 주(周)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당요(唐堯) : 중국 요임금을 이르는 말. 당(唐)이라는 곳에서 봉(封)함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
문왕(文王) 백자(百子) : 문왕이 낳은 백 명의 자식은. 문왕이 백 명의 아들을 낳았다는 고사가 있는데, 문왕이 많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태강과 태임, 태사가 연이어 그 아름다운 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임.
소강임태사지휘(紹姜任太姒之徽)며 : 태강, 태임, 태사가 연이어 그 아름다움을 실천했으며. 태왕의 비 태강(太姜), 왕계(王季)의 비 태임(太姙), 문왕의 비 태사(太姙)는 모두 인자하고 후덕하며 자애롭고 효성스러웠다고 한다.
당우(唐虞) : 요순 시대.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를 이른 바 태평 성세라 한다.
규예(潙汭) : 순임금이 살았다는 마을. 산서성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흘러들어가는 규수(潙水) 강가인데, 요임금의 두 딸이 순임금에게 시집간 곳이기도 하다.
규예(潙汭) 이녀(二女) : 규예에 사는 순에게 시집간 요임금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은.
도신(塗莘) 쌍후(雙后) : 하우의 황후인 도산(塗山)과, 탕임금의 왕후인 유신(有莘) 두 후는.
하상(夏商)의 샹셔를 여러내며 : 〈도산과 유신 두 황후는〉 하나라와 상나라의 상서로움을 처음으로 열었으며. 하우(夏禹)의 왕비 도산(塗莘) 씨는, 시집 간 나흘만에 남편이 치수 공작에 나아가 8년 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남편을 대신하여 아들 계의 교육을 혼자 맡아 훌륭하게 키웠고, 유신(有莘) 씨는 탕 임금의 왕비로, 신중하고 공손하였으며 현철하였는데 외병(外丙)과 중임(仲壬) 두 이들을 훌륭하게 키워 탕임금에 이은 성군으로 키웠다.
늣게야 됴회야 : 주나라 선왕(宣王)이 늦잠 자는 버릇으로 늦게 일어나 조회를 하므로.
강후(姜后)ㅣ 죄(罪) 기리 간(諫)이 읻고 : 선왕의 후부인인 강후가 선왕의 늦잠 자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죄를 받겠다고 간함이 있었고. 주나라 선왕은 늦게 조회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강후(姜后)가 몸에 지니고 있던 폐물을 내려놓고 영항에서 죄를 받고자 하니 선왕이 깨닫고 정사에 성실하게 임했다는 고사. 선왕(宣王)은 주나라 11대 임금으로 기울어져 가는 왕실을 명제상 윤길보(尹吉甫)를 기용하여 중흥시킨 인물이다.
초소(楚昭) : 초나라 소왕(昭王).
안가(晏駕) : “임금의 수레가 늦는다”라는 뜻으로 붕어(崩御)와 같은 말임. 소왕이 나들이를 나가면서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따라 죽을까?”라고 물으니, 따르던 모든 여인이 모두 함께 죽겠노라고 했으나 오직 월희만 대답이 없었다. 과연 임금이 죽자 그 어떤 여인들도 따라 죽지 않았으나 월희는 마음속으로 허락하였으므로 왕을 뒤따라 죽었다는 고사. 『열녀전』 「월희전·초소월희」에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명화(明和) : 후한의 제2대 효명황제(孝明皇帝)와 제4대 효화황제(孝和皇帝)를 가리키는 말.
마(馬)와 등(鄧) : 한나라 명제의 마황후와 화제의 등황후. 명제와 화제가 후한의 제위를 이어 받게 된 것을 역사에서는 마황후와 등황후의 현철한 내조 덕분이라 하였다. 명제가 죽자 19세에 즉위한 3대 장제는 명제의 황후 마씨(마원(馬援)의 딸)를 황태후로 세워 후견을 하였는데, 마황후가 죽으면서 후궁의 최고 권력자가 된 장제의 황후 두씨는, 장제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불과 10세였던 유조를 화제(和帝)로 즉위시켰다. 화제의 옹립을 관여한 두씨는 황태후로서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정권을 차지하였다. 화희황후(和熹皇后) 등씨(鄧氏)는 화제의 두 번째 황후로, 이름은 수(綏)이다. 등씨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할머니가 그녀의 머리를 잘라주다가 목에 상처를 냈을 때에도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아픔을 참았다는 이야기가 「후한서」 10권에 전한다. 부친상을 마친 등씨는 15세의 나이로 입궁했고 뛰어난 미모와 총명하고 검소한 성품으로 이내 화제의 총애를 받아 귀인으로 승격되었고, 첫째 황후였던 음씨를 폐위시키고 황후가 되었다.
어딜믈 : 어짊을. ‘어딜-+-ㅁ(〈음)-+-을(목적격조사)’의 구성.
두(竇)와 손(孫) : 당 고조의 두황후와 당 태종의 장손황후. 고조와 태종이 당나라를 일으킬 때 안으로는 두황후와 장손황후의 내조가 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군주를 도와 제업을 성취하도록 한 인물이다. 두(竇)황후는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부인이고, 장손(長孫)황후는 선비족 출신으로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부인이다. 『구당서』와 『신당서』에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내훈』 「사구고」와 「대외척」에도 실려 있다.
여중요순(女中堯舜)이라 일니라 : 가히 여자 중에서 요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송나라 영종의 황후 선인고황후는 손자 철종을 안고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어진 이를 천거하고 모사가를 내쳐 정치적 장애물을 모두 걷어내어 여자의 요순이라고 한다. 고황후에 대한 이야기는 『송사』 권242에 실려 있다.
홍기(洪基) : 나라를 이루는 바탕을. 명나라 태조가 제업의 기초를 초무에서 열었는데 실제로는 효자황후 마씨의 내조가 있었다. 고제(高帝)는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다. 효자(孝慈)는 주원장의 황후 마씨를 말한다. 마황후에 대해서는 『내훈』 서문 등에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초무(草莽)의셔 : 명나라 태조가 제업의 기초를 연 땅 초무에서.
궁위(宮闈)애 : 궁전에서.
씍씍이 : 엄숙하게.
뢰시니 : 자뢰(藉賴)하니. 무엇을 빙자하여 의지하니.
밋부디 : 미덥지. ‘밋브[信]-+-디’의 구성.
오림(烏林) : 금나라 오림답(烏林荅) 씨. 절의를 다 바쳐 세종을 섬겼다는 고사에 나오는 인물. 오림은 금나라 세종 완안옹(完顔雍)의 황후인 소덕황후를 말한다. 『금사』 권64에 실려 있다. 금나라 2~3대 황제 희종 완안단(完顔亶)은 매일 술에 취해 정사에 손을 놓자 해릉왕 완안량(完顔亮)이 왕권을 빼앗아 4대 제왕에 등극했다. 그러나 해릉왕 완안량이 세종의 비인 오림답에게 몸을 요구하자 지나가는 마차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 후 황제에 오른 세종은 끝내 황후의 자리를 비워두었다고 한다.
홍길(弘吉) : 은혜를 송후(宋后)에게 더했다는 고사에 등장하는 인물. 송나라가 원나라에 투항하자 태후 사씨가 원나라 조정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忽必烈汗)의 황후인 홍길랄(弘吉剌, 소예순성황후)이 친형제처럼 예로서 대우했다고 한다. 『원사』 권14에 실려 있다.
송후(宋后) : 송나라 황후. 남송의 제5대 황제 이종(理宗)의 황후인 사황후(謝皇后)와 제6대 도종(度宗)의 황후 전황후(全皇后) 두 사람을 가리킨다.
고제(高帝) : 명나라 태조 홍무제(주원장)를 가리킴.
효자(孝慈) : 효자고황후(孝慈高皇后) 마씨(馬氏). 마공(馬公)과 정온(鄭媼)의 딸이자 홍건군 수장의 곽자흥(郭子興)의 양녀이며, 태조 홍무제의 황후이고 영락제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문황(文皇) : 명나라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를 가리킴. 태조 홍무제의 아들이며, 명나라 제3대 황제이다.
인효(仁孝) : 인효문황후(仁孝文皇后) 서씨(徐氏). 영락제의 황후이다. 중산왕 서달(徐達)의 딸로서 성품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웠다. 『내훈』 20편을 지어 궁중 여성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아녀자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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