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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사서언해+책정보

御어製졔序셔
吾오ㅣ 幼유承승父부母모之지敎교야 誦숑詩시書셔之지典뎐고 職직謹근女녀事ㅣ러니 蒙몽先션人인의 積젹善션餘여慶

여사3:1ㄴ

경야 夙슉備비掖庭뎡之지選션야 事我아孝효慈 高고皇황后후야 朝됴夕셕애 侍시朝됴호니 高고皇황后후ㅣ 敎교諸졔子婦부샤 禮례法법을 唯유謹근시니 吾오ㅣ 恭공奉봉儀의範범야 日일聆령敎교言야 祇지敬경佩패服복호 不블敢감有유違위며 肅슉事 今금皇황帝뎨 三삼十십餘여年년호 一일遵준先션志지야 以이行正졍敎교나 吾오ㅣ 思備비位위中중宮궁야 傀괴德덕弗블似야

여사3:2ㄱ

歉겸於어率솔下하야 無무以이佐좌皇황上샹內治티之지美미야 以이忝텸高고皇황后후之지訓훈노라 常샹觀관史傳뎐야 求구古고賢현婦부貞뎡女녀호니 雖슈稱칭德덕性셩之지懿의나 亦역未미有유不블由유於어敎교而이成셩者쟈니라 古고者쟈애 敎교必필有유方방야 男남子ㅣ 八팔歲셰而이入입小쇼學고 女녀子ㅣ 十십年년而이聽텽姆무敎교더니 小쇼學之지書셔ㅣ 無무傳뎐이어 晦회

여사3:2ㄴ

庵암朱쥬子ㅣ 爰원編편緝집成셩書셔시니 爲위小쇼學之지敎교者쟈ㅣ 始시有유所소入입호 獨독女녀敎교ㅣ 未미有유全젼書셔니 世셰惟유取취范범曄녑 後후漢한書셔애 曹조大태家고의 女녀誡계야 爲위訓훈호되 恒病병其기略냑고 有유所소謂위女녀憲헌와 女녀則측호 皆徒도有유其기名명耳이라 近근世셰애 始시有유女녀敎교之지書셔야 盛셩行나 大대要요撮촬曲곡禮례內則측之지言언

여사3:3ㄱ

과 與여周듀南남召쇼南남과 詩시之지小쇼序셔와 及급傳뎐記긔而이爲위之지者쟈ㅣ라 仰앙惟유我아 高고皇황后후敎교訓훈之지言언이 卓탁越월往왕昔셕야 足죡以이垂슈法법萬만世셰 吾오ㅣ 耳이熟슉而이心심藏장之지러니 乃내于우永영樂낙二이年년冬동애 用용述슐 高고皇황后후之지敎교야 以이廣광之지야 爲위內訓훈二이十십篇편야 以이敎교宮궁壼곤노니 夫부人인之지所소以이克극聖

여사3:3ㄴ

셩者쟈 莫막嚴엄于우養양其기德덕性셩야 以이修슈其기身신일 故고首슈之지以이德덕性셩고 次之지以이修슈身신며 修슈身신이 莫막切졀於어謹근言언行이라 故고次之지以이愼신言언謹근行야 推츄而이至지於어勤근勵녀節졀儉검고 而이又우次之지以이警경戒계며 人인之지所소以이擭획久구長댱之지慶경者쟈ㅣ 莫막加가於어積젹善션며 所소以이無무過과者쟈ㅣ 莫막加가於어遷쳔

여사3:4ㄱ

善션니 數수者쟈 皆身신之지要요而이所소以이取法법者쟈 則즉必필守슈我아 高고皇황后후之지敎교也야 故고繼계之지以이崇슝聖셩訓훈고 遠원而이取法법於어古고 故고次之지以이景경賢현範범야 上샹而이至지於어事父부母모와 事君군와 事舅구姑고고 又우推츄而이至지於어母모儀의와 睦목親친와 慈幼유와 待下하야 而이終죵之지以이待外외戚쳑노니 顧고以

여사3:4ㄴ

이言언辭ㅣ 淺쳔陋누야 不블足됵以이發발揚양深심旨지나 而이其기條됴目목은 亦역粗조備비矣의니 觀관者쟈ㅣ 於어此애 不블必필泥닐於어言언이라 而이但단取于우意의면 其기於어內治티之지道도애 或혹有유裨비於어萬만一일云운이니라
어려셔 父부母모의 치샤믈 니어 詩시書셔의 법다옴을 외오고 직업으로 女녀事 삼가더니 先션人인의 積젹

여사3:5ㄱ

善션샨 남은 경 닙어 일 掖庭뎡의 이매 초와 우리 孝효慈 高고皇황后후 셤겨 朝됴夕셕애 됴회예 뫼오니 高고皇황后후ㅣ 모 子婦부 치샤 禮례法법을 오직 삼가시니 공슌히 儀의範범을 밧드러 날로 치시 말을 듣와 공경야 佩패服복호 감히 어긔옴이 잇디 아니며 싁싁히 이젯 皇황帝뎨 셤굠을 三삼十십 餘여年년을 호 티 先션志지

여사3:5ㄴ

준야 政졍敎교 行나 각호 位위 中듕宮궁에 초와 德덕이 디 못야 아래 거리기에 겸연야 皇황上샹의 內治티 아다옴을 돕올 거시 업서 高고皇황后후의 치샴을 텸욕가 붇그려노라 양 史傳뎐을 보아 賢현婦부와 貞뎡女녀 求구호니 비록 德덕性셩의 아다옴을 일라시나  치기로 말암아 이로디 아닌이 잇디 아니니라

여사3:6ㄱ

古고者쟈애 침이 반시 법이 이셔 男남子ㅣ 여이어든 小쇼學애 들고 女녀子ㅣ 열이어든 姆무敎교 듣더니 小쇼學 글이 傳뎐홈이 업거 晦회庵암 朱쥬子ㅣ 이에 編편緝집야 글을 일오시니 小쇼學의 敎교미 비로소 들배 이쇼 홀노 女녀敎교ㅣ 온젼 글이 읻디 아니니 셰샹이 오직 范범曄녑의 後후漢한書셔애 曹조大태家고의 女녀誡계 取야 침을

여사3:6ㄴ

삼으되 샹 간략홈을 병도이 녀기고 니바 女녀憲헌과 女녀則측이 이쇼 갇 일홈만 읻디라 近근世셰애 비로소 女녀敎교의 글이 이셔 盛셩히 行나 大대要요ㅣ 曲곡禮례와 內則측읫 말과 다몯 周쥬南남과 召쇼南남과 모시읫 小쇼序셔와 믿 傳뎐記긔 모도와 얃디라 우러러 각호니 우리 高고皇황后후의 敎교訓훈샨 말이 往왕昔셕의 卓탁越월야 足죡히 萬만

여사3:7ㄱ

世셰의 법을 드리웜즉 실 귀에 닉고 애 초왓더니 이에 永영樂낙 二이年년 冬동애곰 高고皇황后후의 敎교 述슐야 넓혀 內訓훈二이十십篇편을 그라 宮궁壼곤애 치노니 사의 능히 聖셩 바 德덕性셩을 쳐 몸을 닷금만 嚴엄호미 업디라 故고로 德덕性셩으로 읃듬을 삼고 修슈身신으로 버금며 修슈身신홈이 言언行을 삼갈만 졀당홈

여사3:7ㄴ

업디라 故로 말 삼가며 실 삼가기로 버금야 미뢰여 勤근勵녀와 節졀儉검애 니고 警경戒계로 버금며 사의 久구長댱 慶경을 어듬이 積뎍善션애 더니 업며 허믈 업슬 遷쳔善션애 더이 업니 두어가지 몸애 종요로온 거시오 法법을 取 바 반시 우리 高고皇황后후의 敎교 딕희염즉  故고로 聖셩訓훈 존슝기로 닛고 멀니 法법을

여사3:8ㄱ

取얌즉 일 故고로 賢현範범을 경앙기로 버금야 우흐로 父부母모 셤김과 님군을 셤김과 舅구姑고 셤김애 니고 미뢰여 母모儀의와 睦목親친과 慈幼유와 待下하에 니러 外외戚쳑 졉기로 노니 도라보건대 言언辭ㅣ 淺쳔陋누야 足죡히 깁흔 旨지 發발揚양티 몯나 條됴目목은  져기 니 보 이에 반시 말애 泥닐 거시 아니라

여사3:8ㄴ

다만 을 取면 다리 道도애 만분에 나히나 도옴이 이시리니라
永영樂낙三삼年년正졍月월望망日일 셔序
어제 서문
내가 어려서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라 『시경』과 『서경』의 법다움을 외우고, 할 일로서 여자의 일을 삼가더니(충실히 행하였더니), 선인(조상)께서 선행을 쌓으신 남겨준 경사(은덕)를 힘입어 일찍 궁중에 뽑혀 들어와(왕비로 간택되어) 우리 효순하고 인자한 고황후를 섬겨 아침저녁으로 조회에 뫼시니, 고황후가 모든 자부(며느리)를 가르치시되 예법을 오직 삼가시니, 나는 공손히 예의범절을 받들어 날마다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공경하여 마음속에 명심하되 감히 어기는 일이 있지 아니하며 엄숙히 이제 황제 섬김을 삼십여 년을 하였는데, 한결같이 선인(고황후)의 뜻을 준수하여서 정치와 교육을 행하였으나, 내가 생각하되 중궁에 자리를 갖추어 덕이 덕답지 못하여 아랫사람 거느리기에 만족스럽지 못해서 황제께서 내치를 하시는 아름다움을 도울 일이 없어서 고황후의 가르치심을 욕되게 할까 부끄러워하였노라. 항상 역사와 전기를 보아 옛날 어진 부인과 정숙한 여자를 찾으니 비록 덕성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으나 또한 가르치는 데 따라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옛사람이 가르치는 데는 반드시 법도가 있어서 남자가 여덟 살이 되면 『소학』에 들고, 여자가 열 살이 되면 여교를 듣게 하니, 『소학』의 가르침이 글로 전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회암 주자가 이에 편집하여 글을 이루시니 소학의 가르침이 비로소 들을 바가 있으되 홀로 여교를 위한 온전한 글이 있지 아니하니, 세상이 오직 범엽이 『후한서』에 조태고의 『여계』를 취하여 가르침을 삼았으니 항상 그 간략함을 근심하시고 이른바 『여헌』과 『여측』이 있으되 모두 한갓 그 이름만 있는 것이다. 근세에 비로소 『여교』의 글이 있어서 성행하였으나 대체로 『곡례』와 『내칙』의 말과, 다만 ‘주남’과 ‘소남’과 『모시』의 ‘소서’와 ‘전기’를 모아서 이를 만든 것이다. 우러러 생각하니 우리 고황후의 가르치고 훈계하신 말씀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탁월하여 족히 만세에 법을 법도로 베풀 만하므로, 내 귀에 익히고 마음에 간직하였다가, 이에 영락 2년(1404) 겨울에 고황후의 가르침을 저술하여서 좀 더 덧붙여 『내훈』 이십 편을 만들어서 궁중 여자들을 가르치니, 사람에게 능히 성스럽게 되는 것은 그 덕성을 길러 그 몸을 닦는 것보다 더 엄중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덕성으로서 으뜸을 삼고 수신으로서 다음으로 하며 몸을 닦는 일은 말을 삼가는 것만 절실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삼가고 행실을 삼가는 것으로서 다음으로 삼는 것을 미루어 부지런하고 일에 힘쓰고 절약하고 검소함에 이르게 하고, 또 경계하는 것을 다음으로 하며, 사람에게 오랫동안의 경사스러움을 얻는 것이 선행을 쌓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허물이 없으려면 선한 행실에 오르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이 몇 가지는 다 몸가짐에 중요한 것으로서 법도를 취하는 일은 반드시 우리 고황후의 가르침을 지킴 직하므로, 그러므로 거룩한 가르침을 존중하고 숭상함으로써 이어 나가고 멀리 있는 좋은 법도를 옛일에서 취함 직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진 이의 규범을 우러러 따름으로써 다음으로 하여 위로 부모를 섬기는 것과 임금을 섬기는 것과 시부모를 섬기는데 이르고, 또 미루어 어머니의 용의와 친척과 화목하는 것과 어린이에게 인자함과 아랫사람 대접하는 데 이르러 외척을 대접하는 것으로 마치니, 돌아보건대 말이 천박하고 더러워 족히 깊은 뜻을 드러내지 못하나, 그 조목은 또한 조금 갖추었으니 보는 사람이 이에 반드시 말씀에 더럽히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만 뜻을 취한다면 집안 다스리는 도리에 혹 만분에 하나는 도움이 있으리라.
영락(명나라 성조) 3년(1405) 정월 보름날 머리말을 쓰다.
어제서(御製序) : 이 서문은 인효문황후가 책을 엮으면서 직접 쓴 서문으로서, ‘어제(御製)’란 말이 어울리지 않다. 아마도 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덧붙인 말인 듯하다.
날로 : 날마다. ‘날[日]-+-로(부사화접사)’의 구성.
치샤믈 : 가르치심을. ‘라치[敎]-+-샤(시+오)-+-ㅁ(명사형)-+-을(목적격조사)’의 구성.
듣와 : 들어. ‘듣[聽]-+-(겸양선어말)-+-아(연결어미)’의 구성.
시서(詩書) : 『시경』과 『서경』.
법다옴을 : 법다움을. ‘법(法)-+-답(형용사파생접사)-+-ㅁ(명사형)-+-을(목적격조사)’의 구성.
여사(女事) : 여성의 일. 곧 여성의 언행, 직임 등을 말함.
삼가더니 : 조심하더니. ‘삼가다’는 16세기부터 계속 ‘삼가하다’와 섞여 쓰였다.
적선(積善)샨 : 선행을 쌓으신.
액정(掖庭) : 대궐(大闕) 안에 궁중 혹은 궐내(闕內).
이매 : 뽑힘에. ‘[選]-+-이(피동접사)-+-ㅁ(명사형)-+-애(처격조사)’의 구성. ‘-’는 ‘-’의 역표기이다.
됴회예 : 조회(朝會)에.
자부(子婦) : 며느리.
패복(佩服)호 : 감탄하여 마음에 새기되.
싁싁히 : 엄숙히. 장엄하게. ‘싁싁[肅, 嚴]-+-이’의 구성. ‘싁싁’이 ‘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실제 ‘싁싁다’는 중세국어는 물론이고 근대국어의 얼마까지도 ‘궁전(宮殿)’, ‘천상(千相)’, ‘셩지’, ‘군자’, ‘긔강’, ‘’ 등과 통합하여 ‘엄하다’, ‘엄숙하다’, ‘장엄하다’ 등의 의미를 보였다. ‘싁싁다’가 지금과 같은 ‘굳세다’의 의미를 보인 것은 18세기 이후이다.
디 : 갖추지.
겸연야 : 겸연(慊然)하여서. 미안하여 볼 낯이 없어서. 쑥스럽고 어색하여서.
텸욕가 : 더럽히고 욕되게 할까. 첨욕(忝辱)할까.
붇그려노라 :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恥, 羞]-+-어(연결어미)+#-+-노라(감한종결어미)’의 구성.
사전(史傳) : 역사로 전하여 내려오는 기록을 기초로 하여 쓴 전기.
소학(小學) : 송나라 때 주자가 소년들에게 유학의 기본을 가르치기 위해 교열·가필하여 만든 책. 조선시대 교육기관의 필수 교재로 널리 애용되었다. 주자(朱子:朱熹)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소년들을 학습시켜 교화시킬 수 있는 내용의 서적을 편집하게 하여 주자가 교열·가필한 것이다. 1185년(남송 순희 12)에 착수하여 2년 뒤 완성하였다. 책의 구성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이다. 내편은 태교에서부터 시작하여 교육의 과정과 목표 자세 등을 밝히고 있는 입교(立敎), 인륜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오륜을 설명하고 있는 명륜(明倫), 학문하는 사람의 몸가짐과 마음 자세, 옷차림과 식사 예절 등 몸과 언행을 공경히 다스리는 경신(敬身), 본받을 만한 옛 성현의 사적을 기록하여 놓은 계고(稽古) 등 4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따라서 내편에서는 유교 사회의 도덕, 규범과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자세 등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정리하였다. 외편에서는 한나라 이후 송나라까지 옛 성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기록한 가언(嘉言), 선인들의 착하고 올바른 행실만을 모아 정리한 선행(善行)의 2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소년들이 처신해야 할 행동거지와 기본 도리를 밝혀 놓았다.
무교(姆敎) : 모교(姆敎). 보모의 가르침.
들배 : 들을 바가.
범엽(范曄) :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420~479)의 역사가. 절강성 소흥에서 태어났다. 기전체의 『후한서』를 편찬하였는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반고(班固)의 『한서』,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함께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인 ‘25사(史)’ 가운데에서도 으뜸인 ‘4사(四史)’로 꼽힌다.
샹 : 늘.
그 간략홈을 병도이 녀기고 : 그 간략함을 병되게 여기고.
대요(大要)ㅣ : 큰 줄거리가.
곡례(曲禮)와 : 의식(儀式)이나 행사에서 몸가짐 등에 관한 자세한 예절과.
다몯 : 다만.
주남(周南) : 『시경』 국풍의 첫 번째 편명. 소남(召南)과 병칭하여 이남(二南)이라함.
모시읫 : 모시(毛詩)에. 『시경』의 별칭. 노(魯)나라 모형(毛亨)과 조국(趙國)의 모장(毛萇)이 시경을 주석했기에 쓰는 말인데, 모형을 대모공(大毛公), 모장을 소모공(小毛公)이라 불렀음. 후한(後漢)의 정현(鄭玄)도 시경을 주석했기에 시경을 ‘모정시(毛鄭詩)’라고도 함.
소서(小序) : 소학의 서문.
얃디라 : 하였는지라. ‘[爲]-+-얃(과거시상선어말어미)-+-(관형사형)-+-지라’의 구성.
왕석(往昔) : 지난 지 썩 오래된 때.
초왓더니 : 감추었더니. ‘초[藏]-+-오(삽입모음)-+-아+#잇[有]-+-더-+-니(연결어미)’의 구성.
영락(永樂) 이년(二年) : 명나라 성조(成祖) 영락 2년(1404). 조선 태종 4년.
그라 : 만들어서. ‘-+-아-+’의 구성.
궁곤(宮壼)애 : 궁궐에.
닷금만 : 닦음만. ‘[修]-+-음(명사형어미)-+-만(보조사)’의 구성.
졀당홈이 : 적당함이.
미뢰여 : 미루어. ‘밀우[推]-+이-+-어(연결어미)’의 구성. ¶司馬ㅣ 내게 罪를 밀고쟈 냐 고 드듸여 어내여 죽이다〈소언 6:23ㄴ〉.
근려(勤勵) : 근면하게 힘씀.
구장(久長) : 오래된.
더니 : 더 나은 것이.
천선(遷善) : 나쁜 짓을 고쳐 착함.
딕희염 : 지킴.
현범(賢範)을 : 어진 범절을.
경앙기로 : 덕망이나 인품을 사모하여 우러러보기로서.
대하(待下) : 아랫사람.
노니 : 이르러니.
천루(淺陋)야 : 천박(淺薄)하고 비루(鄙陋)하여, 견문(見聞)이 좁아.
발양(發揚)티 : 마음이나 기운 도는 재주 따위를 펼쳐 일으키지.
져기 : 저어기. 적으나마.
: 자가. ‘자(者)-+-이(주격조사)’의 구성.
닐(泥) : ‘니(泥)+ㄹ’. 더럽힐.
영락(永樂) : 1403년부터 1424년까지 명나라 성조(成祖) 때 썼던 연호.
몽선인(蒙先人) : 조상. 『주역』 「문언전」 곤괘의 “선업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움이 남아 있을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는 말을 인용한 것임. 조상께서 선을 쌓은 은덕으로 복을 받는다는 뜻.
액정지선(掖庭之選) : 왕비로 간택되었다는 뜻.
효자고황후(孝慈高皇后) : 효성스럽고 자애로운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황후 마(馬)씨를 가리킨다. 그녀는 홍건적 두목 곽자흥의 양녀로서, 주원장이 곽자흥의 수하로 들어가 신임을 얻은 뒤 양녀 마씨 처녀와 혼인도 시켜준 것이다. 그녀는 후일 지혜롭기로 유명한 마황후로서 주원장의 정치에 많은 도움을 준다.
숙사(肅事) : 모시는 일.
남자(男子)ㅣ 팔세이입소학(八歲而入小學)고 : 남아는 8세가 되면 소학을 배워야 하고. 남아 8세 입학설은 『대대례기』와 『백호통』 「덕론」에 언급되어 있다.
여자(女子)ㅣ 십년이청모교(十年而聽姆敎)더니 : 여아는 열 살이 되면 여승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함. 『예기』 「내칙」에 언급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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