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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사서언해+책정보

夫부媍부 第뎨二이
가지 임의  후애 가히 媍부ㅣ 거시나 그러나 夫부媍부의 道도  가히 아디 아니티 몯 거실 고로 夫부媍부 第뎨二이얘 편다】
〇 夫부婦부之지道도 參참配陰음陽양며 通통達달神신明명니 信신天텬地디之지弘홍義의며 人인倫뉸之지大대節졀

여사1:4ㄴ

也야ㅣ라 是시以이로 禮례貴귀男남女녀之지際졔고 詩시著뎌關관雎져之지義의니 由유斯言언之지컨대 不블可가不블重듕也야ㅣ라 夫부ㅣ 不블賢현則즉無무以이御어婦부고 婦부ㅣ 不블賢현則즉無무以이事夫부ㅣ니 夫부ㅣ 不블御어婦부則즉威위儀의廢폐缺결고 婦부ㅣ 不블事夫부則즉義의理리堕휴闕궐리니 方방斯二이者쟈면 其기用용이 一일也야ㅣ어 察찰今금之지君군子호니 徒도知디妻쳐婦부

여사1:5ㄱ

之지不블可가不블御어ㅣ며 威위儀의之지不블可가不블整졍故고로 訓훈其기男남야 檢검以이書셔傳뎐고 殊슈不블知디夫부主쥬之지不블可가不블事며 禮례義의之지不블可가不블存존也야야 但단敎교男남而이不블敎교女녀니 不블亦역蔽폐於어彼피此之지數수乎호아 禮례애 八팔歲셰어든 始시敎교之지書셔고 十십五오而이至지於어學矣의니 獨독不블可가以이 此로 爲위則측哉아 〇參은 合합

여사1:5ㄴ

말이오 御어 節졀制졔단 말이라】
夫부婦부의 道도 陰음陽양애 參참配며 神신明명애 通통達달니 진실로 天텬地디애 너 義의며 人인倫뉸애 節졀이라 일로 禮례 男남女녀의 즈음을 귀히 너기고 詩시 關관雎져의 義의 나타내니 일로 말암아 니건대 가히 重듕티 아니티 아닌 디라 지아비 어디디 몯면 안해을 御어티 몯고 안해 어디디 몯면 지아비 셤기디

여사1:6ㄱ

몯리니 지아비 안해을 御어티 몯면 威위儀의 폐야 이즈러디고 안해 지아비 셤기디 몯면 義의理리 믄허뎌 업리니 가지 비방면 쓰미 가지어 이 君군子 피니 갓 妻쳐婦부의 가히 御어티 아니티 몯며 威위儀의의 가히 整졍티 아니티 몯홈을 아 고로 아 쳐 書셔와 傳뎐으로 檢검고 몯 지아비 가히 셤기디 아니티 몯며 禮례義의 가히

여사1:6ㄴ

아니티 몯 줄을 아디 몯야 다만 나 치고 계집을 치디 아니 니  彼피此의 혜아림애 편폐티 아니냐 禮례애 여 이어든 비로소 書셔 치고 열다이어든 學애 니니 홀노 가히 일노 법을 삼디 몯랴
제2장. 부부의 도리[夫婦]
【세 가지 이미 갖춘 후에 가히 아내가 될 것이나, 그러나 부부의 도리를 또한 가히 알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므로 부부장을 제2편에 편차한다.】
부부의 도리는 음과 양을 원리에 부합하고 천지신명에 두루 도달하는 일이니, 실로 하늘과 땅의 넓은 뜻이며 사람으로서 윤리의 큰 예절이다. 이로서 『예기』에는 남녀의 지음(관계를 맺음)을 귀히 여기고, 『시경』에는 관저(關雎)의 의리를 나타내니, 이로 말미암아 이르건대 가히 중하게 여기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지아비가 어질지 못하면 아내를 거느리지 못하고, 아내가 어질지 못하면 지아비를 섬기지 못할 것이니, 지아비가 아내를 거느리지 못하면 예의범절에 잘못되어 이지러지고, 아내가 지아비를 섬기지 못하면 의리가 무너져 없어질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막지 못하면, 그 쓰임이 한가지이므로 이제 군자를 살펴보니 한갓 남편이 아내를 잘 거느리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며, 예의 범절에 몸가짐을 가히 정제(바르고 가지런히)하지 아니하지 못함을 아는 까닭에 그 아들을 가르쳐 『서경』과 『서전』으로서 본받도록 하고, 자못(특히) 지아비를 가히 섬기지 아니하지 못하며 예절과 의리를 가히 두지 아니하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여, 다만 남자만을 가르치고 계집을 가르치지 아니하니, 또한 피차의 헤아림에 폐단이라 하지 아니하겠느냐? 『예기』에 여덟 살이 되면 비로소 글을 가르치고, 열 다섯 살에 학문에 이르니, 홀로 가히 이로서 법을 삼지 못하겠는가? 〇【참(參)은 합하다는 말이고, 어(御)는 절제(節制)하다는 말이다.】
참배(參配)며 : 합하여 배열하며.
신명(神明)애 통달(通達)니 : 천지신명에 두루 통하여 도달하니.
예(禮) : 『예기(禮記)』. 중국 유가 5경(五經) 중의 하나이다. 원문은 공자(BC 551~479)가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공자가 직접 지은 책에는 ‘경(經)’ 자를 붙이므로, 원래 이름은 『예경』이었다. 그러나 BC 2세기경 대대(大戴, 본명은 戴德)와 그의 사촌 소대(小戴:본명은 戴聖)가 원문에 손질을 가한 것이 분명하므로 ‘경’자가 빠지게 되었다. 『예기』에서는 그 주제인 곡례(曲禮), 단궁(檀弓), 왕제(王制), 월령(月令), 예운(禮運), 학기(學記), 악기(樂記), 대학(大學), 중용(中庸) 등을 다룸에 있어서 도덕적인 면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다. 1190년 성리학파의 주희는 『예기』 중의 『대학』, 『중용』 2편을 각각 별개의 책으로 편찬하여 유교 경전인 『논어』, 『맹자』와 더불어 사서에 포함시켰다. 사서는 보통 중국에서 유교 입문서로 사용되고 있다.
즈음을 : 지음을. 구분을. 얼음. 남녀가 관계를 맺음. ‘짓[作]-+-음(명사형어미)-+-을(목적격조사)’〉지음을.
관저(關雎) : 『시경』 가운데 문왕과 그 후비의 성덕을 읊은 시편의 이름. 성왕(聖王)이 예를 제정한다는 뜻은 남녀의 구분을 신중히 하는 데 있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가 『시경』에 「관저(關雎)」를 맨 첫장에 둔 것은 문왕이 훌륭한 요조숙녀를 맞이하여 내치의 아름다움을 이루고자 한 뜻이다. 부부의 도리는 인륜의 시작임으로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왕상은 ‘공자산시설(孔子刪詩說)’을 사실화하여 「관저」의 내용을 구성하였다. 한편 「관저」를 보통의 여성이 남자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다가 결혼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이숙인(2002), 『역주여사서』, 여의연, 30쪽 참조.)
어디디 : 어질지. ‘어딜[寬]-+-디’의 구성. ㄱ-구개음화. ㄹ-탈락.
안해 : ‘처(妻)’의 의미로 ‘갓, 안해〉아내, 겨집, 마누라’ 등이 나타난다. ‘안해’는 15세기 이후로 현재 ‘아내’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사용되고 있는데 18세기에 나타나는 ‘안’는 ‘아내’와 같은 음성형을 표기한 것이다.
어(御)티 : 다스리지. 절제(節制)하지. ‘지아비 어디디 몯면 안해을 어(御)티 몯고’는 ‘지아비가 어질지 못하면 아내를 절제하지 못하고’이다.
위의(威儀) 폐야 : 위엄과 예의 풍속이 무너져.
비방하면 : 막지 못하면.
업리니 : ‘없[無]-+-(관형사형어미)#ㅣ(의존명사)-니(연결어미)’의 구성. 없을 것이니.
쓰미 : ‘쓰[用]-+-ㅁ(명사형어미)-+-ㅣ(주격조사)’의 구성. ‘[用]-’와 ‘쓰[書]-’의 의미 구분이 혼란함을 보여줌.
서(書)와 전(傳)으로 : 『서경』과 『서전』으로서.
검(檢)고 : 단속하고.
몯 : 자못. ‘, 모, 못, 몯’ 등의 이형태가 나타난다. 17세기 이후서 ‘ㅅ’과 ‘ㄷ’이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나 ‘몯’ 등도 보이고 ‘ㆍ’와 ‘ㅡ’의 비어두에서의 합류에 의한 ‘믓’도 나타난다. 이러한 혼란은 19세기 말까지 이어지는데 20세기에는 부분적으로 ‘못’이 보이지만 ‘자못’이 일반적이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진다.
나 : 사나이를. 남자 아이를. ‘[壯丁]+아[兒]’의 구성으로 분석될 수 있다. ‘아’는 ‘아이’의 고어형이다. 따라서 ‘아’는 ‘남자 아이’다. ‘아〉나. ‘사나이’의 역사적 변천 과정은 “아〉나/나희〉사나히/사나희〉사나이/남자”이다.
계집을 : 여자를. 아내를. ‘겨집’은 ‘겨시다(〉계시다)’의 어간 ‘*겨[在]-+-집’이 합성된 것으로 보인다. ‘계집’에 대해서 ‘제[自]-+-집’의 합성으로도 해석하기도 하고 ‘갓[婦女]-+-집’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제기된 바 있다.
혜아림애 : ‘혜아리[覺]-+-ㅁ(명사형어미)-+-애(척격조사)’〉생각함에. ‘혜아리다’가 ‘량(量)’, ‘측(測)’ 곧 ‘수량을 세다, 계산하다’의 의미에서 ‘생각하다’ 등의 의미로 확산된 것이다.
편폐(編蔽)티 아니냐 : 치우쳐 폐하지 아니한가. 폐단이라 하지 아니하겠느냐.
예(禮)애 여 이어든 비로소 서(書) 치고 열다이어든 학(學)애 니니 : 연령별 교육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여덟 살이면 책을 읽도록 가르치고 열다섯 살이면 배움에 이르니.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인데,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뜻이 섰으며, 40세에 학문함에 의심이 없어졌고, 50세에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 60세에 모든 말이 귀에 순하여 거슬리지 않게 되고, 70세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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