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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경민편+책정보

서1ㄱ

重刊 警民編 序
思齋金先生閔愚氓之陷於罪而不自知也作警民編一帙訓人端戒不率之罰使之知爲善知免罪其忠厚之氣藹然薰人可謂仁者之澤其流無窮矣慶尙一道古新羅國也號稱淳厚項以安東降號常用慨然今來此道吏抱囚案以進則慶州獄囚悖倫當死者數輩其他兄弟之變骨肉之訟紛然不已噫何爲而至於此也余意俗之流失固非一日人心本善豈不可以感動之玆以此編添補君上一條付之四長官【慶州尙州晉州靑松】亟上

서1ㄴ

於榟印頒屬邑屬邑各來印出兼許民間私印期於家家有之人人見之各有以興起而戒勅也凡此一道之人盖相與勉之萬曆己卯觀察使陽川許曄序
경민편을 거듭 간행하면서 지은 서문
주 5)
서문 원문 번역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조명근 국역위원이 하였음.
사재(思齋) 김 선생[金正國]이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빠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함을 민망하게 여겨, ≪경민편(警民編)≫ 한 질을 지어 인륜의 근본을 훈계하고, 〈법을〉 따르지 않아 처벌받음을 경계하여 그들로 하여금 선행(先行)을 할 줄 알게 하고, 죄를 모면할 줄 알도록 하였다. 그 충후(忠厚)한 기상이 성대하여 다른 사람을 감화하게 하였으니 어진 사람의 은택(恩澤)이 무궁토록 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경상도는 옛날의 신라 땅으로 순박하고 인정이 두텁다고 일컬어졌다. 그런데 지난번에 안동(安東)의 고을 이름이 강등되어 늘 매우 서글프게 여겼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본도(本道) 〈관찰사로〉 부임하였더니 서리(胥吏)가 옥(獄)에 갇혀 있는 죄인에 관한 문건을 올렸는데, 경주(慶州)의 옥에 갇혀 있는 죄인으로 패륜(悖倫)을 저질러 사형(死刑)에 해당하는 자가 몇 명이고, 그 나머지 형제간의 변고와 골육간의 송사(訟事)가 어지러이 끝이 없으니, 아!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는 생각하기를, “풍속이 흩어져 없어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은 본래 착하니 어찌 감동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서, 이에 이 ≪경민편≫에다 군상(君上)의 한 조목을 더 보충하여 4고을의 장관(長官)【경주‧상주(尙州)‧진주(晉州)‧청송(靑松)】수령에게 넘겨 주면서 빨리 인쇄하여 소속 고을에 나누어 주고 소속 고을에서는 제각기 와서 책판에 박아내고, 겸해서 민간에서도 사사로이 박아내기를 허락하여, 집집마다 소유하고 사람마다 볼 수 있도록 기약하여 제각기 떨치고 일어나게 하고 경계하여 타이르게 한다면, 무릇 온 도의 사람이 어찌 서로 함께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조 12년(1579년) 기묘(己卯) 관찰사(觀察使) 양천(陽川) 허엽(許曄)은 서문을 쓴다.
※ 중간경민편서(重刊警敏編序) : 위의 글은 1579년(선조 12)에 쓴 허엽(許曄)의 중간서(重刊序)와 1519년(중종 14)에 쓴 김정국(金正國)의 발문이다. 그런데 허엽의 글에는 〈중간경민편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김정국의 글에는 아무 제목도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1658년(효종 9)에 간행된 규장각본에는 김정국의 글에 〈경민편서〉라는 제목을 달고, 한문 원문에 한글로 구결을 삽입한 다음 언해문을 달아 놓았다. 허엽의 서문을 볼 때 김정국의 글은 서문이 아니라 발문임에 틀림없다. 두 판본에 나타난 김정국 발문의 맨 끝에 있는 간기(刊記)를 보면, 위의 글에서는 ‘正德 己卯冬 十月 觀察使 聞韶 金正國 謹識’로 되어 있는데 비해, 규장각본의 간기에는 ‘正德 己卯春 觀察使 義城 金正國 書’라고 기록되어 있어 간행 시기에 ‘기묘동(己卯冬)’과 ‘기묘춘(己卯春)’이라는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이 주목된다. 참고로 규장각본에 있는 김정국 글의 구결문과 언해문을 그대로 옮긴다.

서1ㄱ

警民編 序
夫制爲刑法은 皆出於先王愛民之仁也ㅣ니 不有以導之於先이오 執法而論囚ㅣ면 不幾於罔民乎아 余自叨分陜憂로 按所部야察民風每當斷獄야 未嘗不深喟於斯노니 蠢愚之民이 不知人倫之重이어든 焉知制法之詳이리오 蚕蚕然有同乎辜聵며 貿貿焉唯衣食之趣야 自不覺其觸犯科條야 流陷於罪辜ㅣ어든 有司ㅣ 於是에 按律繩之면 如骨羅捕雀이며 機檻取獸ㅣ니 烏在其使民遷善而遠辜耶ㅣ리오 余爲之憫然야 擧其最關於人道而民之所易犯者爲十三

서1ㄴ

條야 編曰警民이라 야 刊行廣布야 俾諸蠢氓으로 靡不習於耳目야 以冀其去惡從善之萬一노니 爲編을 必推本而擧理者 欲民之有所感發而興起也ㅣ오 引法而叅證者 欲民之有所畏懼而知避也ㅣ오 語簡而辭俚者 欲民之有所不學而易曉也ㅣ니 將是編야 歸之文具며 付之迂遠고 坐食公廩야 玩愒歲月이오 其於導民化俗之道애 若不盡心而致誠焉이면 則殊非編者之意니 凡我牧民者 尙亦念哉어다
正德己卯冬十月觀察使聞韶金正國謹識
그 형벌과 法법을 그롬은 다 녯 님금의 셩 

서2ㄱ

랑시 어딘 으로셔 낫니  몬져 인도호미 읻디 아니고 法법만 자바 죄 의논면 셩을 소기매 갓갑디 아니랴 내 외람히 陜셤 근심을 화 맛디시므로브터【이제 감라】맛든 흘 안야 셩의 풍쇽을 필 양 죄인 결단기예 當당야 일즉 이예 기피 애라 아닐 적이 업니 무디고 어린 셩이人인倫뉸【부 군신 부부 댱유 붕우 오뉸이라】의 重듕 줄을 아디 못거든 엇디 법졔의 셔믈 알리오 미련호미 눈멀고 귀머그니 며 무디히 오직 옫과 밥의 라드러 스

서2ㄴ

로 그 법에 범 줄을 디 못야 죄예 흘러 디거든 관원이 이에 법을 자바 다스리면 그믈로 새를 잡으며 함졍으로 즘을 잡음 니 어 그 셩으로 여곰 어딘 로 올마 죄에 멀게 호미 이시리오 내 爲위야 민망이 너겨 그 장 사의 도리에 관계고 셩의 犯범키 쉬온 거슬 드러 열세 됴건을 야 일홈을 셩 경계 이라 야 남긔 사겨 너비 베퍼 미혹 셩으로 여곰 귀와 눈에 니기디 아니미 업게 여  그 사오나오믈 리고 어딜믈 졷기예 萬만一

서3ㄱ

일이나 가 라노니 을 글기 반시 근본을 미뢰며 도리 들어 니롬은 셩이 感감發발야 興흥起긔홈이 잇과댜 호미오 法법을  참증야 의논호믄 셩이 저허 두려 죄 避피 줄을 알  잇과댜 호미오 말이 간냑고 글을 샹담으로 호믄 셩이 호디 아니야도 알기 쉽과댜 호미니 이 을 가져 文문具구에 도라 보내며 迂오遠원  브티고 안자셔 나라 녹만 머그며 셰월을 눅노라 디내고 그 셩을 도야 풍쇽을 감화케  도리예 을 극진히 며

서3ㄴ

졍셩을 닐위디 아니면 믓 이  근의 이 아니니 믈읫 우리 셩 다리 사은 거의  념녀디어다
正졍德덕【大대明명 武무宗종 皇황帝뎨 年년號호】己긔卯묘【我아中듕宗종大대王왕 十십四年년】春츈 觀관察찰使 義의城셩 金김正졍國국書셔【金김正졍國국 字國국弼필 號호思齋 官관至지禮녜曺조叅참判판 己긔卯묘名명人인也야】
그 형벌과 법을 만든 것은 다 옛 임금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그러므로 먼저 인도함에 있지 아니하고 법만 집행하여 죄를 따진다면 백성을 속이는 것에 가깝지 아니한가? 내가 외람되게 고을의 근심을 나누어 맡기신 때부터【이제 감사를 말한다.】맡은 땅을 순찰하여 백성의 풍속을 살피매 매번 죄인을 판단할 때 일찍이 이에 대하여 깊이 애달파하지 않을 때가 없었으니,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이 인륜【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오륜을 말한다.】의 중함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법제의 자세함을 알겠는가? 미련하기가 눈멀고 귀먹은 사람 같으며, 무지하게 오직 옷과 밥에만 매달려 스스로 그 법을 범하는 줄을 깨닫지 못하여 죄에 빠져 들어가면 관원이 이에 대하여 법을 집행하여 다스리게 되니 이렇게 되면 그물로 새를 잡으며 함정으로 짐승을 잡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그 백성으로 하여금 어질도록 하여 죄에서 멀어질 수 있게 하겠는가?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사람의 도리에 가장 관련되면서 백성이 범하기 쉬운 것을 들어 열세 개 항목으로 만들고 그 이름을 백성을 경계하는 책이라 하였으니 이를 나무에 새기고 널리 베풀어 혼란스러워 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귀와 눈에 익숙지 않는 것이 없게 하여 나쁜 것은 버리고 선한 것을 따르기에 만(萬)에 하나라도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책을 만듦에 있어, 근본을 미루어 도리를 거론하는 것은 백성이 감동하고 분발하여 떨치고 일어날 수 있게 하고자 함이고, 법을 끌어다 살피며 바로잡기를 의논하는 것은 백성이 두려워하면서 죄를 피할 줄을 아는 바가 있게 하고자 함이며, 말이 간략하고 글을 예사로운 말로 쓴 것은 백성이 배우지 않아도 알기 쉽도록 하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가지고 하나의 문구로 돌려 버리며, 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치부하고 앉아 나라의 녹(祿)만 받아먹으면서 세월을 하는 일 없이 보내기만 할 뿐, 그 백성을 계도(啓導)하여 풍속을 교화케 할 도리에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쏟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못 이 책을 만든 뜻이 아니니 무릇 우리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거의가 또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정덕(正德)【명나라 무종 황제의 연호이다.】 기묘(己卯)【우리 중종대왕 14년】(1519) 봄 관찰사 의성(義城) 김정국(金正國)이 쓰다.【김정국의 자는 국필이고, 호는 사재이며, 관직이 예조 참판에 이르다. 기묘년에 이름난 사람이다.】
주5)
서문 원문 번역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조명근 국역위원이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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