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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정속언해+책정보

18ㄱ

重墳墓
【분묘 히 간홈】
安厝宅兆喪祭之大者也故以重墳墓次之
됴 듸 보아 안호미  졔뎐네  거실 분묘 호 버거 노라
중분묘(重墳墓)【무덤을 소중히 보살핌.】
좋은 곳에 안장(安葬)하는 것이 상사(喪事) 및 제례(祭禮)에 있어 큰 일이므로 무덤을 소중히 함을 그 다음으로 한다.
子孫之於祖宗 猶木之於土也 土肥潤則木茂盛 土磽燥則木 枯槁 祖宗 安則子孫 繁衍 祖宗 不安則子孫 陵替 理必然也 墳墓者 祖父之所由歸 所貴乎有子孫者 爲其死而墳墓 有所托也 若墳墓 不守而冀後嗣 昌榮 猶渴其源而望其流之長 安有此理哉 後山先生 爲甄氏 作思亭記 有曰見林木 思以爲

18ㄴ

 望榛棘 思以爲薪 上丘壟 思發其所藏 况斫伐墳木 邦有常刑 堀祖壟 論同大逆 爲子孫者 常以保墳墓 爲心則祖宗 安寧於冥冥之中 子孫 獲福於昭昭之際矣 孝經云卜其宅兆而安厝之
■구결 풀이■
:
: 라/이라
爲古 : 하고
:
爲㫆 : 하며
乎未 : 함이
尼羅 : 니라/이니라
: 은/는
: 니/이니
: 을/를
:
伊羅 : 이라
里五 : 리오/이리오
爲也 : 하야
余伊 : 예/에
伊羅爲尼 : 이라 하니
: 로/으로
里羅 : 리라/이리라
羅爲豆多 : 라 하도다/이라 하도다
손 어버게 남기 긔게 니 기 됴면 남기 고 기 마면 남기 이우니 어버 편안면 손니 번연고 어버이 편안티 아니면 손니 사오내 도 그 리 번드기 그러니라 분묘 하나버 가 듸라 손 이쇼 귀히 너교 죽거든 분 의게 이실가 예니라 분묘 슈호티 아니

19ㄱ

고셔 후 손니 어딜와뎌 호미 믌 근원 여위에 코셔 흘로미 길와뎌 홈과 니 어듸 이런 리 이시료 녜 후산 션이 글 지 니르샤【후산 션이 견시 위여 뎡긔를 지니라】분묘앳 남글 보고 목 삼고져 너기며 섭블 보고 뷔여 딛고져 너기며 무덤믈 보고 겟 거슬 내오져 너기다 니 며 분묘앳 나모 버히면 나라히 죄 주시고 무덤믈 파 내닌 큰 죄 닙니 손니 녜 분묘 간호모로 을 머그면 하나버 뎌애셔 편안야 손니 이애셔 복글 니브리라 효에 닐우 무들 듸를 문복여 안라 도다
자손이 조상에게는 흙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같으니, 흙이 비옥하면 나무가 무성하고 흙이 메마르면 나무가 시들게 됨과 같이, 조상이 편안하면 자손이 번성하고 조상이 편안치 않으면 자손이 쇠퇴하게 되는 그 이치가 반드시 그렇게 된다. 무덤은 할아버지의 가는 곳이다. 자손이 있음을 귀히 여기는 것은 죽으면 무덤이 의탁할 데라는 것이다. 무덤을 지키며 보호하지 않고서 후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물의 근원을 마르게 해 놓고서 길게 흐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어디에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옛적에 후산(後山) 선생이 글을 지어 이르시기를,【후산 선생이 견씨(甄氏)를 위하여 사정기(思亭記)를 지었다.】“무덤에 있는 나무를 보고 재목(材木)을 삼으려고 생각하며, 잎나무(개암나무와 가시나무 등)를 보고 베어다가 불 때려고 생각하거나, 무덤을 보고 그 속에 있는 것을 파내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무덤에 있는 나무를 베면 나라에서 죄를 주고, 무덤을 파낸 사람은 큰 죄를 받게 되니, 자손이 늘 무덤을 보살피기로 마음을 먹으면 조상이 저승에서 편안하게 되어 자손은 이승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묻을 곳을 점술인에게 물어 안장하여라.” 한다.
분묘(墳墓) : 무덤.
히 : 소중히.
간 : 건사하거나 간수함.
듸[所] : 데. 곳.
안호미 : 안장[安葬]+-옴(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안장하는 것이.
졔뎐네 : 졔뎐(祭奠)+에(처격 조사). 제전에. ‘졔뎐네’는 중철 표기이다. 제전(祭奠)은 의식을 갖춘 제사와 갖추지 아니한 제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큰[大]. 근대 국어에서 유기음에 ㅅ을 더한 ᄷ, ᄸ, ᄹ, ᄺ 등의 글자가 초성에 사용된 예를 제법 볼 수 있다. 이 문헌에서는 ‘’이 유일한 예이다. 그러나 이 문헌 1ㄱ에 ‘크니’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ᄸ과 ㅋ 사이에 어떤 음가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호 : -[重]+-옴(명사형 어미)+-(목적격 조사). 소중히 함을.
손 : 손(子孫)+-(관형격 조사). 자손의. ‘손’는 중철 표기이다.
어버게 : 어버[父母]+-의게(여격 조사). 부모에게. 조상에게. 여기서는 ㅿ이 유지된 ‘어버’가 쓰였으나 바로 다음에는 ㅿ이 탈락한 ‘어버이’가 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중세 국어에서 ㅣ모음으로 끝난 명사에 관형격 조사 ‘-/의’나 호격 조사 ‘-아’가 연결되면 명사의 말음 ㅣ가 탈락한다. 그리하여 ‘아비[父], 늘그니[老]’에 관형격 조사 ‘-’가 붙으면 ‘아, 늘그’가 되고, ‘아기[兒]’에 호격 조사 ‘-아’가 연결되면 ‘아가’가 된다.
남기 : 나모[木]+-이(주격 조사). 나무가. 중세 국어에서 명사 ‘나모’에 모음의 조사가 연결되면 명사의 형태가 특수한 형태로 교체된다. 즉, 모음의 조사가 붙으면 ‘나모’의 끝모음 ㅗ가 탈락하고 기원을 알 수 없는 ㄱ이 첨가되어 ‘나모’는 ‘’의 형태로 교체된다. 그리하여 ‘나모’에 조사 ‘-이, -, -, -로 …’ 등이 연결되면 ‘남기, 남, 남, 남로 …’ 와 같은 형태로 곡용한다. 다만 모음의 조사라도 접속 조사 ‘-와’ 앞에서는 이러한 교체가 일어나지 않고 ‘나모와’처럼 ‘나모’의 형태를 유지한다. 즉 휴지(休止)나 자음 앞에서는 ‘나모’로, 모음으로 시작되는 격조사(‘-와’ 제외) 앞에서는 ‘’으로 교체된다. 이와 같은 교체를 보이는 명사에는 ‘구무/, 녀느/, 불무/’ 등이 있다.
긔게 : [土]+-게(여격 조사). 흙에.
니 : -[如]+-니(종속적 연결 어미). 같으니. ‘니’는 중철 표기이며 이문헌 1ㄱ에는 연철 표기한 ‘니’가 쓰였다.
고 : 무성(茂盛)하고.
마면 : 마-[磽]+-면(종속적 연결 어미). 메마르면.
이우니 : 이울-[枯]+-니(종속적 연결 어미). 시드니. 어간 말음 ㄹ은 ㄴ 앞에서 탈락한다.
번연(繁衍) : 번성(繁盛).
사오내 : 사오납-[衰]+-이(부사 접미사). 나쁘게. 쇠퇴하게. 이는 ‘사오나〉사오나이〉사오내’의 변천 과정으로 ‘사오내’의 형태가 되었다.
도 : 되는.
번드기 : 반드시.
하나버 : 하나버[祖父]+-(관형격 조사). 할아버지의. 이 대문에서 ‘하나버’에 해당하는 한문을 보면 祖父(조부)로도 나오고 祖宗(조종)으로도 나온다.
너교 : 너기-[念]+-옴(명사형 어미)+-(보조사). 여김은.
의게 : 의거(依據)+-ㅣ(주격 조사). 의탁할 데가.
예니라 : -[爲]+-여(연결 어미)+-ㅣ니라(서술격 조사). 하여서이다.
슈호(守護) : 지키고 보호함.
어딜와뎌 : 어딜-[良]+-과뎌(원망법 어미). 좋아지고자. 어미 ‘-과뎌’의 어두 자음 ㄱ이 ㄹ 다음에서 탈락하였다.
: 믈[水]+-ㅅ(사이시옷). 물의.
근원 : 근원(根源)+-(목적격 조사). 근원을. ‘근원’은 중철 표기이다.
여위에 : 여위-[渴]+-게(부사형 어미). 마르게. 어미 ‘-게’의 ㄱ은 ㄹ이나 j 아래에서 탈락한다.
코셔 : ‘고셔’의 축약형.
흘로미 : 흐르-[流]+-옴(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흐름이. 동사 어간 ‘흐르-’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연결되면 어간이 ‘흘ㄹ-’로 교체된다.
길와뎌 : 길-[長]+-과뎌(원망법 어미). 길어지고자.
후산(後山) : 송나라 때 시인(1052∼1101). 본명은 진사도(陳師道), 자는 이상(履常), 무기(無己)이며 후산(後山)은 그의 호이고 저서로 ≪후산시화(後山詩話)≫가 있음.
션(先生) : 선생.
지 : 짓-[作]+-어(연결 어미). 지어. 동사 어간 ‘짓-’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연결되면 어간이 ‘-’으로 교체된다.
견시(甄氏) : 견씨(甄氏)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음. 후산(後山)이 쓴 사정기(思亭記)의 첫머리에 이 사람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긔(思亭記) : 견 씨(甄氏)가 부모의 장례를 지내고 그 묘 곁에 정자를 세워 진사도(陳師道)에게 글을 부탁하니 진사도는 이 정자를 사정(思亭)이라 이름하고 이 글을 썼다. 자식으로서 어버이를 생각하는 뜻을 기술한 문장이다. ≪고문진보≫에 수록되어 있다.
목(材木) : 건축물이나 기구 등을 만드는 데 쓰는 나무.
섭블 : 섭[薪]+-을(목적격 조사). 섶을. 섶은 말린 나뭇가지나 키 큰 풀이나 농작물 등을 말한다. ‘섭블’은 중철 표기이다.
뷔여 : 뷔-[斬]+-어(연결 어미). 베어.
딛고져 : 딛-[焚]+-고져(의도법 어미). 불 때고자.
무덤믈 : 무덤[墓]+-을(목적격 조사). 무덤을. ‘무덤믈’은 중철 표기이다.
: 게[其所]+-ㅅ(사이시옷). 거기에 있는.
며 : 하물며.
버히면 : 버히-[斬]+-면(종속적 연결 어미). 베면.
나라히 : 나라ㅎ[國]+-이(주격 조사). 나라가. ‘나라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파내닌 : -[掘]+-아(연결 어미)+내-[出]+ㄴ(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ㄴ(보조사). 파낸 사람은.
뎌 : 뎌[彼]+(生). 저승.
이 : 이[是]+(生). 이승.
복글 : 복(福)+-을(목적격 조사). 복을. ‘복글’은 중철 표기이다.
효(孝經) : 유교 경전의 하나. 공자(孔子)가 제자인 증자(曾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의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編著)한 것으로 작자와 연대는 알 수 없다. 천자(天子)·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의 효(孝)를 나누어 서술하고 효가 덕(德)의 근본임을 밝히고 있다.
무들 : 묻-[埋]+-을(관형사형 어미).
문복(問卜) : 점쟁이에게 길흉(吉凶)을 물음.
진사도(陳師道) : 송나라 때 시인(1052∼1101)으로서, 가난 속에서 공부하였고, 시로 인해서 증공(曾鞏)과 소식(蘇軾)을 알게 되었다. 두보를 숭배하여 그의 작품과 사상을 본받아 서술하고 밝힘으로써 송시(宋詩)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사정기(思亭記) : 진사도(陳師道)가 지은 글. “견 씨는 원래 서주(중국 강소성 북서쪽에 있는 도시)의 부호였다. 견 군의 대에 이르러 비로소 명경과에 합격되어 사람들을 가르쳤다. 향리에서는 선인으로 불렸으나 집안은 갈수록 가난해져서 부모 형제가 죽어도 십여 년이 지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에게 장례 비용을 빌려 부모님과 형제들의 여러 영구를 함께 장사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딱하게 여겨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다. 장례를 끝내자 무덤 앞에 나무를 심어 묘표로 삼고 무덤 옆에 집을 지은 다음 그 집의 이름을 무엇으로 했으면 좋은가를 내게 물어왔다. 내가 대답하기를 ‘생각하건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달라진다. 방패와 창을 보면 싸움을 생각하게 되고 칼이나 톱 같은 형구를 보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제사를 모시는 묘나 사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이 일며 훌륭한 집을 보면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무릇 사람들이 좋다, 밉다, 기쁘다, 두렵다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외물에서부터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제 높은 곳에 올라가 무덤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바라보고 언덕을 내려와 오래된 무덤 사이를 지나다가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새로 난 여우와 토끼 발자국을 보게 되면, 그 누가 어버이의 생각을 아니할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여 사정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어버이는 자식 된 자로서 잊을 수 없는 분이니 군자는 더욱 삼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 교외에 어버이의 무덤을 만들되 봉분을 만들고 무덤가에 도랑을 판다. 집에는 사당을 짓고서 여름에는 체제를, 가을에는 상제를 지내며 상복을 입고 기제를 지내며 그를 슬퍼하는 것은 어버이에 대한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버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상복을 입지 않은 현손에 이르게 된다. 상복을 입지 않게 되면 정도 끝나는 것이며, 정이 끝나면 그를 잊게 되는 것이다. 나의 어버이로부터 시작하여 그분을 잊게 되는 관계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관계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 정자를 짓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릇 이 정자에 오르게 될 견 군의 자손 중에 어찌 조상을 잊을 자가 있겠는가?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 생각을 넓혀간다면 효심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였다. 견 군이 말하기를 ‘넓습니다. 선생의 말씀은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아니,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후에 어찌 없겠는가, 무덤 위의 나무를 바라보고 그것으로 재목을 삼으려고 생각하거나, 개암나무와 가시나무를 보고 그것으로 땔나무를 삼으려고 생각하거나, 그 분묘 위에 올라가 묘의 소장품을 도굴하려는 자가 말이다.’ 하니, 이에 갑자기 견 군이 눈물을 쏟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대를 위해 기를 쓰고 그대의 자손들로 하여금 이 글을 외우게 함으로써 훌륭한 것을 보고 더욱 잘하려고 힘쓰고 나쁜 것을 보면 경계하도록 하려 하는데 그리하면 앞에 말한 일들을 면할 수 있게 되리라.’ 견 군은 눈물을 닦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틀림없이 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니, 마침내 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甄故徐富家 至甄君 始以明經敎授 鄕稱善人而家益貧 更數十歲 不克葬 乞貸邑里 葬其父母兄弟凡幾喪 邑人憐之 多助之者 旣葬益樹以木 作室其旁而問名於余 余以謂目之所視而思從之 視干戈則思鬪 視刀鋸則思懼 視廟社則思敬 視第家則思安 夫人存好惡喜懼之心 物至而思 固其理也 今夫升高以望松梓 下丘壟而行墟墓之間 荊棘莽然 狐兎之迹交道 其有不思其親者乎 請名之曰思亭 親者人之所不忘也 而君子愼之 故爲墓於郊而封溝之 爲廟於家而嘗禘之 爲衰爲忌而悲哀之 所以存其思也 其可忘乎 雖然自親而下 至于服盡 服盡則情盡 情盡則忘之矣 夫自吾之親而至于忘之者 遠故也 此亭之所以作也 凡君之子孫登斯亭者 其有忘乎 因其親 以廣其思 其有不興乎 君曰 博哉 子之言也 吾其庶乎 曰未也 賢不肖異思 後豈不有望其木 思以爲材 視其榛棘 思以爲薪 登其丘墓 思發其所藏者乎 於是遽然流涕以泣 曰未也 吾爲君記之 使君之子孫誦斯文者 視其美以爲勸 視其惡以爲戒 其可免乎 君攬涕而謝曰 免矣 遂爲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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