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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정속언해+책정보

恤隣里
【이웃  어엿비 너굠】
12ㄱ由親以及踈故以恤隣里次之
친니로브터 먼 듸 미츨 거시라 이웃 어엿비 너교 버거 노라
휼린리(恤隣里)【이웃과 마을 사람을 긍휼히 여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먼 데로 미칠 것이다. 이웃을 긍휼히 여김을 그 다음으로 한다.
家之有隣 猶衆木之成林然後可以蔽風雨也 孟子曰鄕田同井 出入相友 守望相助 疾病 相扶持 周禮 五家 爲比 使之相保 五比 爲閭 使之相愛 四閭 爲族 使之相葬 五族 爲黨 使之相救 五黨 爲州 使之相周 五州 爲鄕 使之相賓 盖欲使民 懽欣交通而成和睦之俗也 貧而睦隣則有無 可以相濟也 富而睦隣則緩急 可以相援也 世有不恤隣里 或 12ㄴ因財物相交而至鬪訟 或因妻子脣吻而至忿爭 以致情意乖離 血脉不貫 一遇禍患則隣里坐視而不知救 盖其平日 不知睦隣之道也 語云德不孤 泌有隣
■구결 풀이■
:
: 라/이라
爲旀 : 하며
:
伊羅爲古 : 이라 하고
爲也 : 하야
爲尼 : 하니
: 로/으로
: 을/를
: 며/이며
: 니/이니
爲飛尼 : 하나니
伊羅 : 이라
伊羅爲豆多 : 이라 하도다
지븨 이웃 이쇼미 모 남기 수프리 도의여  비 리옴 니  니샤【 큰 현인니신 어딘 아비라】스골 바  들헤 야 나며 들 제 서르 벋야 딕킈여 보 서르 도오며 에 서르 잡드느니라 쥬례란 글워레 요 다 지브로  비 라 서르 보인케 며 다 비로  녀를 라 서르 케 며 다 녀로  족을 라 서르 장케 며 다 족그로  

13ㄱ

을 라 서르 구케 며 다 으로  쥬를 라 서르 도아 주게 며 다 쥬로  을 라 서르 손 삼게 니 긔 으로 여곰 깃거 사괴여 화 쇽 도외오려 디라 가난고 이우즐 사괴면 이신 것 업슨 거슬 가이 서르 거느리치고 가멸오 이우즐 사괴면 밧븐 제 이셔도 서르 구완리라 이졔 이쇼 이우즐 티 아니여 시혹 보로 서르 섯거셔 사화 그위며 시혹 쳐셕긔 입 힐호모로 불로여 가 미 가 엿구워 더 긔운니 디 아니라 잠 어려운 일 어더도 이웃히 안자셔 보고 구 줄 모니 그 녜 이웃 사괴욜 주를 모로로 그러니라 녜 닐

13ㄴ

우 덕기 호온자 아니라 모 이우지 잇니라
집에 이웃이 있음이 모든 나무가 수풀이 되어야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맹자가 이르시기를,【맹자는 큰 현인(賢人)이신 어진 아버지이다.】“시골의 밭이 같은 들에 있어 오고갈 때 서로 벗하며 지켜봄을 서로 도우며 질병에 서로 의지하고 버텨 나간다.”라고 하였다. ≪주례(周禮)≫라는 책에 보면, 다섯 집으로 한 이웃이 되어 서로 보전케 하며, 다섯 이웃으로 한 마을을 만들어 서로 사랑하게 하며, 다섯 마을로 일족(一族)을 이루어 서로 장사 지내게 하며, 일족 다섯이 모여 한 당(黨)을 이루어 서로 구하여 주게 하며, 다섯 당이 작은 고을이 되어 서로 도와주게 하며, 작은 고을 다섯이 한 큰 고을이 되어 서로 손님을 삼게 하니, 그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즐겨 사귀어 화목해지는 풍속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가난하면서 이웃을 사귀면 있는 것 없는 것을 능히 서로 구제하고, 부유하면서 이웃을 사귀면 바쁜 때가 있어도 서로 구원할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여 혹 재물을 서로 주고받다가 싸워 소송하며, 혹 처자식의 말다툼으로 분노케 하여 마음이 어그러지고 멀어져 기운이 합쳐지지 않아 잠깐 어려운 일을 만나도 이웃들이 앉아서 볼 뿐이고 구할 줄을 모르니, 그것은 평소 이웃과 사귈 줄을 모르므로 그런 것이다. 옛적 ≪논어≫에 이르기를, “덕은 외로운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하였다.
 : ㅎ[里]+-(목적격 조사). 마을을. ‘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어엿비 : 어엿브-[恤]+-이(부사 접미사). 가련하게.
친니로브터 : 친-[親]+-ㄴ(관형사혈 어미)+이[人](의존 명사)+-로(조격 조사)+-브터(보조사).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너교 : 너기-[想]+-옴(명사형 어미)+-(목적격 조사). 여김을.
이쇼미 : 이시-[有]+-옴(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있음이.
남기 : 나모[木]+-이(주격 조사). 나무가. 중세 국어에서 명사 ‘나모’에 모음의 조사가 연결되면 명사의 형태가 특수한 형태로 교체된다. 즉, 모음의 조사가 붙으면 ‘나모’의 끝모음 ㅗ가 탈락하고 기원을 알 수 없는 ㄱ이 첨가되어 ‘나모’는 ‘’의 형태로 교체된다. 그리하여 격조사 ‘-이, -, -, -로 …’ 등이 ‘나모’에 연결되면 각각 ‘남기, 남, 남, 남로’와 같은 형태로 된다. 다만 모음의 조사라도 접속 조사 ‘-와’ 앞에서는 이러한 교체가 일어나지 않고 ‘나모와’에서처럼 ‘나모’의 형태를 유지한다. 즉 휴지(休止)나 자음 앞에서는 ‘나모’이지만, 모음으로 시작되는 격조사(‘-와’ 제외) 앞에서는 ‘’으로 교체되었다. 이와 같은 교체를 보이는 명사에는 ‘구무/, 녀느/, 불무/’ 등이 있다.
수프리 : 수플[林]+-이(주격 조사). 수풀이.
도의여 : 되어야.
[風] : 바람.
리옴 : 리오-[蔽]+-ㅁ(명사형 어미). 가림. 차단(遮斷)함.
 : (孟子)+-ㅣ(주격 조사). 맹자가. 맹자(孟子)는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로서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임. 이름은 맹가(孟軻)이며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음.
스골 : 시골.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스’로 나타나며 ‘스’은 ‘스〉스올〉스골〉싀골〉시골’의 변천 과정을 거쳐 현재의 ‘시골’이 되었다.
바 : 밭[田]+-(목적격 조사). 밭을.
들헤 : 들ㅎ[野]+-에(처격 조사). 들에. ‘들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들ㅎ’이 15세기에는 ‘드르ㅎ’으로 쓰였다.
나며 들 제 : 출입(出入)할 때.
딕킈여 : 딕킈-[守]+-여(연결 어미). 지켜. 15세기 문헌에는 ‘딕희-’로 표기되었다.
도오며 : 돕-[助]+-며(대등적 연결 어미). 도우며.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도며’로 표기되었고, 그 후 ‘ㅸ〉ㅗ/ㅜ’로 인해 ‘도며’는 ‘도오며’로 표기의 변화가 일어났다.
잡드느니라 : 잡들-[扶持]+-느니라(평서법 어미). 붙들고 유지한다.
쥬례(周禮) : 유교 경전의 하나로서, 주(周) 나라 왕실의 관직 제도와 전국 시대(戰國時代) 각국의 제도를 기록한 책임.
글워레 : 글월[文]+-에(처격 조사). 글에. 책에.
지브로 : 집[家]으로.
비(比) : 이웃. ≪주례≫에 보면, ‘오가위비(五家爲比)’라 하여 다섯 집이 한 비(比)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사본 ≪정속언해≫에는 ‘비(比)’를 ‘이웃’으로 번역하고 있다.
보인케 : 보인-[保人]+-게(부사형 어미). 신원을 보증하게.
: 마을[閭]. ≪주례≫에 보면, ‘오비위려(五比爲閭)’라 하여 다섯 비(比)가 모여 한 여(閭)가 된다고 하였으니, 집으로 하면 한 여(閭)가 스물다섯 집이 된다. 그리하여 일사본 ≪정속언해≫에는 한문 ‘려(閭)’를 ‘마을’로 번역하고 있다.
족(族) : 일족(一族)을 가리키는 말임. 일족은 조상이 같은 피붙이를 말한다. 본문에는 다섯 여(閭)가 한 족(族)을 이룬다고 하였으니 한 족은 백스물다섯 집 정도 되는 집단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문 원문에는 ‘사려위족(四閭爲族)’이라 하여 네 개의 여(閭)가 한 족(族)을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어 언해문과는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장케 : 장-[送葬]+-게(부사형 어미). 죽은 이를 장사 지내어 보내게.
(黨) : 육백 스물다섯 집 정도의 규모가 되는 집단을 가리킴. 한문 원문에 ‘오족위당(五族爲黨)’이라 하였는데 오족(五族)이라 하면 육백스물다섯 집이 된다.
구케 : 구-[救]+-게(부사형 어미). 구하여 주게.
쥬(州) : 작은 고을. 한문 원문에 ‘오당위주(五黨爲州)’라 하였고, 일사본 ≪정속언해≫에는 ‘쥬’를 ‘져근 고올’로 번역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작은 고을’로 풀이하였다.
도아 : 돕-[助]+-아(연결 어미). 도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도’로 표기되었다. 그 후 ㅸ은 ㅗ/ㅜ로 바뀌거나 ㅇ으로 탈락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서는 ‘도’의 ㅸ이 그대로 탈락함으로써 ‘도아’가 되었다.
(鄕) : 큰 고을. 한문 원문에 ‘오주위향(五州爲鄕)’이라 하였고, 일사본에는 ‘’을 ‘큰 고올’로 번역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큰 고을’로 풀이하였다.
손[賓] : 손님.
여곰 : 하여금.
깃거 : -[喜]+-어(연결 어미). 기뻐하여.
도외오려 : 도외-[爲]+-고려(청원법 어미). 되었으면 한다. 동사 ‘도외-’는 훈민정음 초기에 ‘외-’로 사용되다가 대략 16세기부터는 ‘도외-, 도-, 도의-, 도이-’ 등의 변이된 표기가 여러 문헌에서 산발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우즐 : 이웆[隣]+-을(목적격 조사). 이웃을. 중세 국어에서는 ‘이웆’이 원형이었다.
가이 : 가(可)히. 능히. 그야말로.
거느리치고 : 거느리-[濟]+-치-(강세 접미사)+-고(대등적 연결 어미). 구제(救濟)하고.
가멸오 : 가멸-[富]+-고(대등적 연결 어미). 부유하고. 어미 ‘-고’의 ㄱ이 ㄹ 아래에서 탈락하였다.
밧븐 : 밧브-[急]+-ㄴ(관형사형 어미). 바쁜.
구완리라 : 구완-[救援]+-리라(미래 시제 평서법 어미). 구원할 것이다.
이졔 이쇼 : 지금 세상에는. 한문 원문에는 ‘世有…’로 되어 있는데, 이를 일사본에서는 “셰샹 사이…”로 번역하고 있다.
시혹 : 혹시. 때로.
보(財寶) : 보배롭고 귀중한 재물.
섯거셔 : -[交]+-어셔(종속적 연결 어미). 섞어서. 교환하여.
사화 : 사호-[鬪]+-아(연결 어미). 싸워. ≪용비어천가≫에는 ‘싸호-’로 표기하고 있다.
그위며 : 그위-[訟]+-며(대등적 연결 어미). 소송하며. 송사(訟事)하며.
입힐호모로 : 입힐후-[言爭]+-옴(명사형 어미)+-오로(조격 조사). 말다툼으로.
불로 : 분노(忿怒). 모음 사이의 ㄴㄴ이 ㄹㄹ로 소리 나는 것을 그대로 반영한 표기가 ‘불로’이다.
엿구워 : 어그러지고 동떨어져. 한문 원문에는 ‘엿구워’를 ‘괴리(乖離)’로 나타내고 있고, 일사본에서는 “어긔여 벙을며”로 번역하고 있어 ‘엿구워’의 뜻이 어그러져서 동떨어짐을 나타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긔운니 : 긔운[氣]+-이(주격 조사). 기운이. ‘긔운니’는 중철 표기이다.
디 : -[如]+-디(보조적 연결 어미). 같지. 합쳐지지. 일사본에는 “디” 대신에 “어우디”로 번역하였다.
어더도 : 얻-[得]+-어도(종속적 연결 어미). 얻어도. 만나도.
이웃히 : 이웆[隣]+-ㅎ(복수 접미사)+-이(주격 조사). 이웃들이. 복수 접미사 ‘-ㅎ’은 ㅎ종성 체언과 같이 곡용한다.
안자셔 : 앉-[坐]+-아셔(종속적 연결 어미). 앉아서.
모니 : 모-[不知]+-니(종속적 연결 어미). 모르니.
녜 : 항상. 보통.
: 옛날.
덕기 : 덕(德)+-이(주격 조사). 덕이. ‘덕기’는 중철 표기이다.
호온자 : 혼자. ≪용비어천가≫에는 ‘’로 표기되었고, 그 밖에 훈민전음 초기 문헌에는 ‘오’로 나타난다.
모 : 반드시.
맹자(孟子) : 맹자는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 추현(鄒縣)에 있었던 추(趨)에서 출생하였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이다. 맹자는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만년에는 제자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 ≪맹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이 되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부터 명문으로 여긴다.
주례(周禮) : ≪주례≫는 후대 중국과 우리 나라에서 관직 제도의 기준이 되었다. 원래 명칭은 ≪주관(周官)≫ 또는 ≪주관경(周官經)≫이었는데, 전한(前漢) 말에 이르러 경전에 포함되면서 ≪예경(禮經)≫에 속한다 하여 ≪주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예기(禮記)≫, ≪의례(儀禮)≫와 함께 삼례(三禮)로 일컬어지며, 당대(唐代) 이후 13경(十三經)의 하나에 포함되었다.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주공(周公: BC 12세기)이 찬(撰)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주공이 예(禮)를 제정했다는 설에 갖다 맞춘 것이라 하여, 옛날부터 그 진위(眞僞)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한국에서는 고려 예종 때에 구인재(求仁齋)에서 주요 유교 경전으로 가르쳤으며, 조선 세종 때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어 일반에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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