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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정속언해+책정보

友兄弟
【뎨 야 사괴욤】

3ㄱ

父母者己之所自出兄弟者己之所同出故以友兄弟次之
어버이 내 몸 난 듸오 뎨 내 셔 난 거실  뎨 사괴요 버거 노라
우형제(友兄弟)【형제를 사랑하여 사귐.】
어버이는 내 몸이 태어난 곳이고 형제는 나와 한데서 태어난 것이므로 형제와 사귐을 그 다음으로 한다.
骨肉之親 莫如兄弟 詩云死喪之威 兄弟孔懷 又曰兄弟䦧于墻 外禦其侮 則兄弟之親 異體同氣 死喪則相恤 患難則相救 其眞情之發 每見於顚沛之頃 以此 知兄弟之親 不可一日而絶也 世有視親人 過於兄弟者 然始聚而終離者多矣於 唯兄弟 一脉之親 終不可絶 始雖乖也而終必和 始雖散也而終必聚 此倫誼之愛 雖屬乎人 實本於天也 書云子弟

3ㄴ

不念天顯 乃不克恭厥兄 兄亦不念鞠子哀 大不友于弟 至有同室操戈 踈薄骨肉() 是自絶其手足 自撒其藩籬 一旦 殃咎之至而欲求援於他人 難矣 經曰宜兄宜弟而后 可以敎國人
■구결 풀이■
:
: 니/이니
余伊 :
伊㫆 : 이며
伊那 : 이나
伊羅爲尼 : 이라 하니
: 라/이라
爲㫆 : 하며
爲也 : 하야
爲飛尼 : 하나니
: 로/으로
: 은/는
伊羅 : 이라
: 을/를
爲尼 : 하니
於尼臥 : 어니와
伊尼 : 이니
爲里尼 : 하리니
爲面 : 하면
羅爲尼 : 라 하니
:
里羅 : 리라/이리라
伊羅爲豆多 : 이라 하도다
골육긔 지극기 친니 뎨만 니 업스니 모시예 닐우 주거  어려운 도 형뎨 니라 고  닐우 뎨 집븨셔 사호고도 밧 간 녁셔니라 니 형뎨의 친호미 몸 다나 긔운니 가지라 주거 상애 서르 에엿비 너기며 어려운 저긔 서르 구여 그 진짓 미 가 이예

4ㄱ

양 나니 일로 아로니 뎨의 친호 도 업디 몯 거시로다 녜 다 사 친히 너겨 뎨라와 더리 잇니 그려도 처믜 사괴다가 내애 아니리 하거니와 오직 형뎨  긔의 친 거시라 내내 그치디 몯리니 처믜 거슯도 내애 의식 화며 처믜 흐럿다가도 내앤  몯니 이 아미라 호미 비록 사 일린 나 진실로 하래 근원 거시로다 셔에 닐우【셔 글월 일후미라】앗 하희 뎨 내신 들 혜디 아니여 을 티 아니면 도 어버 식 길어내요 혜디 아니며  아 티 아니다 니 지여  집븨셔 칼 가지고 사

4ㄴ

화 골육글 소박니 이 제 손발 버히며 제 짓 울흘 허러료미니 아믜 어려운 일 잇거든 다 사름믜게 구콰뎌 호미 어려우니라 대개 닐우듸 의 도애도 올며 앗의 도애도 올 훼 나랏 사 칠 거시라 도다
혈육으로서 지극히 가까운 이가 형제만큼 되는 사람이 없으니, 모시(毛詩)에 이르기를, “죽어서 상사(喪事)를 당한 어려운 경우에도 형제는 생각한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형제가 집에서는 싸우고도 밖에 나가서는 한 편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형제의 가까움이 몸은 서로 다르나 〈근원이 되는〉 기운은 한가지이다. 죽어서 상사가 나면 서로 가엾이 여기며 어려운 경우에 서로 도와 진정(眞正)한 마음이 급한 중에도 매양 일어나니,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이 형제의 친함은 하루도 없어질 날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다른 사람을 친하게 여겨 형제보다 더한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처음에 사귀다가 나중에는 사귀지 않는 사람이 많거니와 오직 형제는 기질과 혈통이 한가지이므로 끝내 끊지 못할 것이니, 처음에 거슬러도 나중에는 반드시 화목하게 되며 처음에 흩어졌다가도 나중에는 한데 모인다. 이는 친족이어서 사랑하는 것이 비록 사람의 일인 듯하나 실은 하늘에 근원하는 것이다. ≪상서(尙書)≫에 이르기를,【상서는 책 이름이다.】“아우가 형제를 태어나게 하신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형을 공경하지 아니하면 형도 어버이가 자식 길러낸 것을 헤아리지 않고 아우를 크게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대로 심지어 한집에서 칼 가지고 싸워 혈육을 박대하니, 이에 제 손발을 베며 자기 집의 울타리를 헐어버린다. 하루아침에 어려운 일이 생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얻고자 하나 어렵다.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형의 도리에도 옳고 아우의 도리에도 옳은 후에야 백성을 가르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괴욤 : 사괴-[交]+-옴(명사형 어미). 사귐.
/듸[所] : 데. 곳.
골육긔 : 골육(骨肉)+-의(관형격 조사). 골육의. 골육은 부자, 형제 등의 육친(肉親)을 말한다. ‘골육긔’는 중철 표기이다.
지극기 : 지극히. ‘지극기’는 ‘지극이’의 중철 표기이다. 15세기 문헌에는 ‘至極이’와 ‘至極히’의 두 가지 표기가 등장한다.
뎨만 : 형뎨(兄弟)+-만(보조사). 형제만큼.
니 : -[如]+-(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zero 주격 조사). 같은 사람이.
 : (喪事)+-(관형격 조사). 상사의. 상사(喪事)는 집안의 어른이 죽는 일을 말한다.
도 : (所, 의존 명사)+-도(보조사). ∼ 데에도. 곳에도.
 : 생각. 이 문헌에서 ‘’은 思와 愛의 두 가지 뜻으로 쓰였다.
집븨셔 : 집[家]+-의셔(처격 조사). 집에서. ‘집븨셔’는 중철 표기이다.
사호고도 : 사호-[鬪]+-고(대등적 연결 어미)+-도(보조사). 싸우고도. ≪용비어찬가≫에는 ‘싸호-’로 표기되어 있다.
밧 : [外]+-(처격 조사). 밖에.
: 가-[去]+-아(연결 어미)+-ㄴ(보조사). 가서는.
녁셔니라 : 녁[便]+셔-[立]+-니라(현재형 평서법 어미). 편든다. 한 편이 된다. ‘녁셔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녁들다’가 있어 참고가 된다. “뎌를 녁드다, 向他”(역어유해 하:43).
친호미 : 친-[親]+-옴(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친함이. 가까움이.
몸 : 몸[身]+-(보조사). 몸은. ‘몸’은 중철 표기이다.
다나 : 다-[異]+-나(종속적 연결 어미). 다르지만.
긔운니 : 긔운[氣]+-이(주격 조사). 기운이. ‘긔운니’는 중철 표기이다.
서르 : 서로[相].
에엿비 : 가엾이. 불쌍히. 15세기 국어에는 ‘어엿비’로 쓰였다.
저긔 : 적[時]+-의(처격 조사). ∼ 적에. 때에.
구여 : 구-[救]+-여(연결 어미). 구제하여. 도와.
진짓 : 참. 진실.
미 : [心]+-이(주격 조사). 마음이. ‘미‘는 중철 표기이다.
가 : 가-[急]+-(관형사형 어미). 급한. ‘가’은 ‘가’의 중철 표기이다.
이 : 사이[間]. 15세기에는 ‘’로 표기되었다. 이 문헌에는 ㅿ이 소실된 표기를 일부에서 볼 수 있다.
 : 매양. 번번이. 늘. 이 낱말도 15세기에는 ‘’으로 표기되었다.
아로니 : 알-[知]+-오-(삽입 모음)+-ㄴ(관형사형 어미)+이(것, 의존 명사)+Ø(zero주격 조사). 아는 것이.
도 : [一日]+-도(보조사). 하루도. 중세 국어에서 명사 ‘’는 그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연결되면 명사의 형태가 ‘ㄹ’로 교체된다. 그리하여 ‘-이, -, -’ 등의 모음 조사가 연결되면 각각 ‘리, , ’ 등으로 나타난다. 단, 모음의 조사라도 접속 조사 ‘-와’ 앞에서는 ‘’의 형태에 변동이 없다. 여기서는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도’가 연결되었으므로 역시 ‘’의 형태에 변동이 없다.
녜 : 보통 흔히 있는 예. 보통 있는 일.
사 : 사[人]+-(목적격 조사). 사람을. ‘사’은 중철 표기이다.
뎨라와 : 형뎨(兄弟)+-라와(비교 보조사). 형제보다.
더리 : 더-[加]+-ㄹ(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zero 주격 조사). 더한 사람이.
그려도 : 그래도.
처믜 : 처[初]+-의(처격 조사). 처음에. ‘처믜’는 중철 표기이다. 바로 아래에는 연철 표기인 ‘처믜’가 나타난다.
사괴다가 : 사괴-[交]+-다가(전환법 연결 어미). 사귀다가.
내애 : 내[終]+-애(처격 조사). 나중에는.
아니리 : 아니[不]+ㄹ(관형사형 어미)+이[人](의존 명사)+∅(zero주격 조사). 〈사귀지〉 않는 사람이.
하거니와 : 하-[多]+-거니와(종속적 연결 어미). 많거니와.
긔(氣脈) : 원기와 혈맥.
내내 : 끝내.
그치디 : 그치-[絶]+-디(보조적 연결 어미). 끊지. 그치지.
거슯도 : 거슯-[逆]+-어도(종속적 연결 어미). 거슬러도. 이 동사는 15세기 국어에서 ‘거슯-’ 외에도 ‘거슯즈-’ ‘거슬-’ ‘거-’ ‘거슰즈-’ 등의 형태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화(和同) : 사람 사이가 멀어졌다가 다시 뜻이 잘 맞게 됨.
흐럿다가도 : 흗-[散]+-엇-(완료시상 선어말 어미)+-다가(전환법 연결 어미)+-도(보조사). 흩어졌다가도. ‘흗다’는 ㄷ불규칙 동사이므로 어간 ‘흗-’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연결되면 어간은 ‘흘-’로 교체된다.
몯니 : 몯-[聚]+-니(종속적 연결 어미). 모이니.
아미라 : 아[族]+-이라(서술격 조사). 친족이어서. ‘아미라’는 중철 표기이다.
일린  : 일[事]+-이(서술격 조사)+-ㄴ(관형사형 어미)+(의존 명사). 일인 듯. ‘일린’은 ‘일인’의 중철 표기이다.
하래 : 하ㅎ[天]+-애(처격 조사). 하늘에. ㅎ종성이 소실된 표기를 하였다.
셔 : 상서(尙書). 서경(書經)을 말하며 오경(五經)의 하나임.
앗 : 아[弟]+-이(주격 조사). 아우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 ‘아’의 주격형은 ‘이’였다. 이것이 16세기에 연철 표기되어 ‘아’로 쓰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당시의 추세에 따라 중철 표기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랬을 때 중철 표기로는 마땅히 ‘’가 되어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ㅿ종성으로 인해 8종성 제한 규칙을 벗어나게 되므로 ㅿ종성을 8종성의 ㅅ으로 교체하여 ‘앗’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분철 표기 ‘이’도 ‘앗이’로 변동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희 : 하ㅎ[天]+-의(관형격 조사). 하늘의.
들 : [意]+-을(목적격 조사). 뜻을.
혜디 : 혜-[量]+-디(보조적 연결 어미). 헤아리지. 생각하지.
어버 : 어버[父母]+-(관형격 조사). 어버이의. 말음이 ㅣ인 명사에 관형격 조사 ‘-/의’나 호격 조사 ‘-아’가 연결되면 명사 말음 ㅣ가 탈락한다.
길어 : 기르-[育]+-어(연결 어미). 길러. 동사 어간 ‘기르-’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연결 되면 어간은 ‘길-’로 교체된다.
내요 : 내[出]+-욤(명사형 어미)+-(목적격 조사). 냄을.
 : 매우. 크게. 가장.
아 : 아[弟]+-(목적격 조사). 아우를. 15세기에 ‘’로 적던 것을 연철 표기하여 ‘아’이 되었다.
지여 : 심지어.
칼[刀] : 15세기에는 ‘갈ㅎ’이던 것이 유기음화하여 ‘칼’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문헌 16ㄱ에는 ‘갈’이라 해서 ‘갈’이 쓰였다.
소박(疎薄) : 박대하거나 멀리함.
손발 : 손발[手足]+-(목적격 조사). 손발을. ‘손발’은 중철 표기이다.
: 집[家]+-ㅅ(사이시옷). 집의. 명사 말음 ㅂ이 ㅅ(사이시옷) 앞에서 탈락하여 ‘짒’이 ‘짓’으로 표기되었는데, 이와 같이 말음 ㅂ이 ㅅ 앞에서 탈락하는 현상은 중세 국어에서 ‘집’이라는 명사에 한한다.
울흘 : 울ㅎ[藩]+-을(목적격 조사). 울타리를.
허러 : 헐-[壞]+-어(연결 어미). 헐어. 무너뜨려.
료미니 : 리-[棄]+-옴(명사형 어미)+-이니(서술격 조사). 버리는 것이니.
아믜 : 아[朝]+-의(처격 조사). 아침에. ‘아믜’는 중철 표기이다.
구콰뎌 : 구-[求]+-과뎌(원망법 어미). 구하고자.
대개 : 대(大學)+-애(처격 조사). 대학에. ‘대개’는 중철 표기이다. 대학(大學)은 유교(儒敎) 경전에서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정통(正統)으로 나타내는 사서(四書) 중 중요한 경서(經書)임.
도애도 : 도(道)+-애(처격 조사)+-도(보조사). 도리에도.
올며 : 옳-[宜]+-며(대등적 연결 어미). 옳으며.
앗의 : 아[弟]+-의(관형격 조사). 아우의. 중세 국어의 표기법대로 한다면 ‘의’가 되어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ㅿ종성으로 인해 8종성 제한 규칙을 어기게 되므로 ㅿ종성을 8종성의 ㅅ으로 교체하여 ‘앗의’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훼 : 후[後]+-에(처격 조사)+-(강세 보조사). 후에야. ‘후에’가 ‘훼’로 축약된 것이다. 이 시대의 다른 문헌에서도 축약형 ‘훼’를 볼 수 있다.
칠 : 치-[敎]+-ㄹ(관형사형 어미). 가르칠.
상서(尙書) : 상서는 한대(漢代) 이전까지는 ‘서(書)’라고 불렸는데, 이후 유가사상의 지위가 상승됨에 따라 소중한 경전이라는 뜻을 포함시켜 한대(漢代)에는 ≪상서(尙書)≫라 하였으며, 송대(宋代)에 와서 ≪서경(書經)≫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상서≫와 ≪서경≫ 두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우(虞), 하(夏), 상(商), 주(周) 시대의 역사적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상서는 58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周) 당시의 원본이 아니라 위진남북조시대에 나온 위작(僞作)이다. 상서는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소실되어 전승과정이 복잡하고 진위(眞僞)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판본으로는 금문상서(今文尙書)와 고문상서(古文尙書)가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58편의 상서는 동진(東晉)의 매색(梅賾)이라는 유학자가 조정에 바쳤다는 금문상서본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대체로 그의 위작으로 본다. 우서(虞書) 5편, 하서(夏書) 4편, 상서(商書) 17편, 주서(周書) 3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역대로 논쟁이 제기되어 왔으며 실제로 그 유래가 불분명한 점이 많으나 오랜 세월 동안 유가의 최고 경전의 하나로서 권위를 지녀왔다.
대학(大學) : ≪대학≫은 본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던 것을 송(宋)의 사마 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다. 그 후 주자(朱子)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만들어 경(經) 1장(章), 전(傳) 10장으로 구별하여 주석(註釋)을 가하고 이를 존숭(尊崇)하면서부터 널리 세상에 퍼졌다. 경에서는 명명덕(明明德; 명덕을 밝히는 일) ·신민(新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 ·지지선(止至善; 지선에 머무르는 일)을 대학의 3강령(三綱領)이라 하고,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八條目)으로 정리하여 유교의 윤곽을 제시하였다. 실천과정으로서는 8조목에 3강령이 포함되고, 격물 즉 사물의 이치를 구명(究明)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평천하의 궁극 목적과 연결된다는 것이 대학의 논리이다. 전은 경의 설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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