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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이륜행실도+책정보

36ㄱ

道琮尋尸
라도이 미 개고 곧더니 관 저긔 소다가 외다 여 림[람] 녀긔 구가더니  구가며 사괴니 길헤 가 여 주글 제 울오 닐오듸 사름미 주글 거시어니와 호온자 믜 해 를 더디련뎌 도종이 닐우듸 나옷 도라오면 내죵내 그듸로 호온자 예 잇게 아니호리라 길 묻고 갓다가   나마 샤 나거 올 제 마초아 비 하 와 믈리 만커 무든  일코 도종이 들헤셔 우노라 니 믓결 가온대셔 봄노 거

36ㄴ

도종이 닐우듸 주검곳 잇거든 다시 봄놀오라  니르니 므리  솟거 시톄를 어더 지여 본의 도라오니라
羅道琮 慷慨尙節義 貞觀末 上書忤旨 徙嶺表有同斥相善者 死荊襄間 臨終泣 曰人生有死 獨委骨異壤耶 道琮曰吾若還 終不使君獨留此 瘞路左去 歲餘 遇赦歸 方霖潦積水 失其殯處 道琮慟諸野 波中忽若湓沸者 道琮曰若屍在可再沸 祝已水復湧 乃得屍負之還鄕
天涯同謫共辛酸 委骨殊方涕自潸 珍重臨終盟約在 將身何忍獨生還
鷄書似與潦相期 草葬江邊失所之 一片丹誠天感應 波中湓沸豈人爲
도종심시(道琮尋尸 : 도종이 시체를 찾다)
나도종(羅道琮)이 불의한 것을 보면 마음에 의분을 느끼고 절의(節義)가 곧았는데 당나라 태종 때에 상소하였다가 임금의 뜻을 거슬렀다 하여 남쪽 지방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그때 함께 귀양 가면서 사귄 사람이 길에 가다가 병으로 죽을 때 울며 이르기를, “사람은 언제든 죽을 것이지만 내 죽어서 뼈만 홀로 남의 땅에 던져 버리랴.”고 하니, 도종이 이르기를, “내가 돌아오면 내내 그대를 홀로 여기 있게 하지는 않겠소.”라 하고는 그 사람을 길가에 묻어 주고 갔다. 도종이 일 년 남짓 후에 사면(赦免)되어 돌아올 때 마침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매 그 친구를 묻었던 곳을 잃어 버려 들에서 울고 있으니 물결 가운데에서 물이 끓는 듯하였다. 도종이 이르기를 “시신(屍身)이 있거든 다시 끓으라.” 하고, 금방 이르니 물이 또 치솟으매 시체를 찾아 짊어지고 본향에 돌아왔다.
미 : [心]+-이(주격 조사). 마음이. ‘미’는 중철 표기이다.
개(慷慨) :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분을 느껴 슬퍼하고 한탄함.
관 : 정관(貞觀).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연호(627~649). 당태종 이세민(李世民; 599년(개황:開皇) 19년 1월23일~649년(정관:貞觀) 23년 7월10일)은 중국 당나라의 제2대 황제이며 당고조 이연의 차남이다. 이름인 ‘세민’의 본래 뜻은 제세안민(濟世安民), 즉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는 뜻이다. 그는 실제로 뛰어난 장군이자 정치가, 전략가, 그리고 서예가이기까지 했으며, 중국 역대 황제 중 최고의 성군으로, 당나라(618~907)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다. 청나라의 강희제와도 줄곧 비교된다. 당태종의 어머니는 두씨(荳氏)(후의 두 황후)이다. 그의 가계는 북방 민족의 피가 섞인 무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종은 천성이 총명하고 사려가 깊으며, 무술·병법에 뛰어난 동시에 결단력과 포용력도 갖추고 있었으므로, 소년시절부터 사람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626년 그에게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형인 태자 건성(建城)과 아우 원길(元吉)을 현무문(玄武門)에서 사살하고 그 해에 즉위하였다. 즉위하자 당태종은 연호를 정관으로 정하고 사망하기까지 23년 동안 보기 드문 성세를 이루었다고 하여 이를 ‘정관(貞觀)의 치(治)’라 부르고 있다.
소(上疏) : 임금에게 어떤 요청이나 의견을 적은 글을 올리는 것. 또는 그 글.
외다 : 그르다. 거스르다.
람녀긔 : 람(南)+녁[方面]+-의(처격 조사). 남쪽에.
구 : 귀양.
 : 함께. 15세기 문헌의 ‘’[一時]가 16세기 문헌에서 ‘’가 된 것이다. 여기서 ‘’의 ㄴ이 ㅁ으로 된 것은 ‘’의 ㅂ에 의한 것이다.
사괴니 : 사괴-[交]+-(관형사형 어미)+이(人, 의존 명사)+ø(zero 주격 조사). 사귀는 사람이.
길헤 : 길ㅎ[路]+-에(처격 조사). 길에.
울오 : 울-[泣]+-고(대등적 연결 어미). 울고. ㄹ 다음의 ㄱ이 탈락하여 ‘울오’가 되었으며, 이 문헌의 앞에서는 ‘울우’로 쓰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호온자 : 혼자. 15세기에는 ‘’, ‘오’로 나타난다.
믜 : [他人]+-의(관형격 조사). 남의.
: 뼈[骨].
더디련뎌 : 더디-[投]+-련뎌(감탄법 어미). 던지려는구나.
-옷 : 곧(강세 보조사). 체언이나 부사에 직접 연결되는 강세 보조사 ‘-곳’이 체언의 말음이 모음이거나 ㄹ일 때는 ‘-옷’으로 교체된다.
내죵내 : 나중에. 내내.
: 여기.
길 : 길[路]+-ㅅ(사이시옷)+[邊]+-(처격 조사). 길가에.
  나마 : [一]+[年]+남-[餘]+-아(연결 어미). 일 년 남짓.
샤(赦) : 사면(赦免).
나거 : 나-[生]+-거(종속적 연결 어미). 내리매.
마초아 : 마침. ‘마초아’가 여기서는 부사로 쓰였지만 한편으로 동사 ‘마초-’[合]의 활용형으로도 쓰인다.
: 많이. ‘하다’[多]의 어간이 그대로 부사로 쓰인 것이다.
믈리 : 믈[水]+-이(주격 조사). 물이. ‘믈리’는 중철 표기이다. 바로 다음의 36ㄴ에는 연철 표기인 ‘므리’가 등장하고 있다.
일코 : 잃-[失]+-고(대등적 연결 어미). 잃어 버리고.
들헤셔 : 들ㅎ[野]+-에셔(처격 조사). 들에서. 15세기에는 ‘드르ㅎ’로 나타난다.
믓결 : 물결. 여기서 ‘믓’은 ‘믈’[水]에 사이시옷이 붙은 ‘믌’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이다. 이처럼 사이시옷 앞에서 말음 ㄹ이 탈락하는 현상은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믌결’의 형태도 많이 쓰이고 있다. “믌결이 갈아디거늘”(월인천강지곡 상:39ㄱ). 이 밖에 ㅅ 앞에서 말음 ㄹ이 탈락한 예들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믌:믓’ ‘믌고기:믓고기’ ‘긼:깃’ 등.
봄노 : 봄놀-[沸]+-(관형사형 어미). 뛰노는. 끓는.
주검곳 : 주검[屍體]+-곳(강세 보조사). 시신이.
: 갓. 금방.
솟거 : -[飛]+솟-[湧]+-거(종속적 연결 어미). 날아 솟거늘. 치솟으매. ‘솟-’은 동사 어간 ‘-’과 ‘솟-’이 직접 통합되어 형성된 비통사적 합성동사이다. 어간 ‘-’의 말음 ㄹ은 ㅅ 앞에서 탈락하였다.
시톄 : 시체(屍體). ‘시톄〉시체’(구개음화).
지여 : 지-[負]+-어(연결 어미). 짊어지고.
본의 : 본(本鄕)+-의(처격 조사). 본향에. 본디의 고향에.
〈규장각본〉

36ㄱ

나도종이 이 강개고 곳더니 뎡관 적의 샹소다가 외다 여 남녁킈 귀향가더니  귀향가며 사괴니 길헤 가 병야 주글 제 울고 닐오 사이 주글 거시어니와 혼자 뫼 해 를 더디련뎌 도종이 닐오 나곳 도라오면 내죵내 그로 혼자 예 잇 아니호리라 길애 뭇고 갓가   나마 샤 나거 올 제 맛초와 비 와 믈이 만커 무든  일코 도종이 드르헤셔 우노라 니 믈결 가온대셔 노손 거 도종이 닐오 주검곳 잇든 다시 놀라 

36ㄴ

니르니 믈이  솟 신톄 어더 지여 본향의 도라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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