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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이륜행실도+책정보

31ㄱ

文嗣十世
문 그 집비 열   사라 모도아 이 마 나 러니  돈  잣 깁도 아름뎌 아니더라 문 죽거 촌 아 대홰 니 집븻 일 마로 더욱 엄정코 은혜 이셔 집안히 싁싁여 그윗 곧 더라 뎨 허믈 잇거든 비록 머리 셰니도 다 티더라  일 어든 대홰 대에 안든 모 앗보치들히 뭇고 줄혀 좟녁  집븨 셧다가 례로 올아가 절고 러 잔 자바 헌슈고 여 매 디르고 웃녀로 즈우

31ㄴ

려 나오니 보닌 다 차탄코 브러터러[라] 여궐리랏 아비 위여 글 서 졀 뎨일개라 야 포니라 대홰 졍딕여 이며 도의 일 아니코 의식 쥬가례 다히로 더니 손니 다 효고코 삼가더라 모 며리들흘 겨집븨 일만 이고 집븻  참예 아니케 터라 집븨 두 를 두  옷 나가면  리 음식 아니 먹더니 사름이 호 감화여 그러타 더라
鄭文嗣 其家十世同居 凡二百四十餘年 一錢尺帛不敢私 文嗣沒 從弟大和 繼主家事 益嚴而有恩 家中凜如公府 子弟稍有過須白者猶鞭之 每歲時 大和坐堂上 群從子 皆盛衣冠鴈行立左序下 以次進拜跪奉觴上壽畢 皆肅容拱手 自右趨出 見者嗟慕 余闕 爲書東浙第一家 以褒之 大和方正 不奉浮屠老子敎必稽朱子家禮 而行子孫從化皆孝謹 諸婦唯事女工 不使預家政 家畜兩馬 一出則一爲之不食 人以爲孝義所感
怡怡肅肅政連綿 十世同居二百年 伏臘壽觴遵禮敎 傍觀嘖嘖嘆群賢
家法嚴恩冠浙東 不遵釋老尙儒風 諸孫孝謹皆從化 畜物雖微亦感通
문사십세(文嗣十世 : 문사의 십대) 원나라
정문사(鄭文嗣)는 그 집이 십대(十代)를 한 집에서 살아 모두 이백 사십 여년이나 되었다. 돈 한 푼, 비단 한 자도 사유(私有)로 하지 않았다. 문사(文嗣)가 죽자, 사촌 아우 대화(大和)가 뒤를 이어 집엣 일을 관장(管掌)하게 되니 더욱 엄정하면서도 혜택을 베풀어 집안이 의젓하고 엄숙하기가 마치 관청과 같았다. 자제 중에 허물이 있으면 비록 머리가 희게 센 사람이라도 다 매로 때렸다. 매양 명절 때가 되어서 대화(大和)가 대청에 앉으면 모든 조카들이 의관을 매무시하고 줄지어 좌측에 있는 집에 서 있다가 차례로 올라가 대화에게 절하고 꿇어앉아 잔을 들어 헌수(獻壽)하며 공손히 받들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두 소맷자락에 넣고 우측으로 총총 걸음으로 나오니 이를 보는 사람은 모두 감탄하고 부러워하였다. 이때 여궐(余闕)이란 사람이 이 집을 위하여 ‘동절 제일가’(東浙 第一家 : 동절 지방에서 제일가는 집)라고 써 주며 포상(褒賞)하였다. 대화는 정직하여 중[僧]이나 도사(道士)의 법을 따르지 않고 필히 ≪주자가례(朱子家禮)≫대로 하였는데 자손이 다 효도하고 근신하였다. 모든 며느리들은 여자의 일만 하게 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일에는 끼어들지 못하게 하였다. 이 집에 말[馬]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말이 나가고 없으면 다른 한 마리는 〈나간 말이 돌아올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들이 주인집의 효성과 예의에〉 감화를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문 : 문(鄭文嗣, 인명)+-ㅣ(주격 조사). 정문사가.
열  : 열[十]+(代). 십 대(十代).
모도아 : 모도-[集]+-아(연결 어미). 모아.
마 나 : 마[四十]+남-[餘]+-(관형사형 어미). 마흔 남짓. ‘마’의 말음 ㄴ이 다음의 ㄴ 앞에서 탈락하였다. ‘간난’이 ‘가난’으로 변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아름뎌 : 사사로이.
대홰 : 대화(大和, 인명)+-ㅣ(주격 조사). 대화가.
니 : 닛-[繼]+-어(연결 어미). 이어. ‘닛다’는 ㅅ불규칙 동사이므로 어간 ‘닛-’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으로 교체된다.
엄정코 : 엄정-[嚴正]+-고(대등적 연결 어미). 엄격하며 바르고.
이셔 : 이시-[有]+-어(연결 어미). 있어. 중세국어에서 존재를 뜻하는 용언으로 ‘잇-’과 ‘이시-’의 두 가지 교체형이 있었는데, 그 중의 ‘이시-’는 모음 어미 및 매개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나타난다.
집안히 : 집안ㅎ[家內]+-이(주격 조사). 집안이. ‘안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싁싁여 : 싁싁-[嚴]+-여(연결 어미). 엄숙하여. 장엄하여.
그윗 곧 : 그위[官廳]+-ㅅ(시이시옷)+곧[所]. 관청이라는 장소.
셰니도 : 셰-[白]+-ㄴ(관형사형 어미)+이(人, 의존 명사)+-도(보조사). 〈머리가 희게〉 센 사람도.
티더라 : 티-[鞭]+-더라(과거 시상 평서법 어미). 〈매로〉 때렸다.
일(名日) : 명절.
: 때[時]. 15세기 국어에서 시(時)를 나타내는 명사는 원래 ‘’인데, 16세기 후반부터 3자 합용병서가 소멸되면서 ㅴ의 표기가 ㅲ이나 ㅺ으로 교체됨으로써 ‘’가 ‘’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 문헌 33ㄴ에는 ‘’도 여전히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大廳) :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
안든 : 앉-[坐]+-거든(종속적 연결 어미). 앉거든. 앉으면. 동사 어간 ‘앉-’이 자음 앞에서는 ‘-’으로 교체되며, 이때 어간 말음의 ㅅ은 다음 음절의 초성이 ㄱ, ㄷ, ㅂ, ㅅ 등일 때에 한해서 다음 음절로 내려 쓸 수가 있었다. 이에 따라 ‘거든’이 ‘안든’으로 표기된 것이다.
앗보치 : 조카.
뭇고 : 뭇-[整齊]+-고(대등적 연결 어미). 매무시하고. 매무시는 옷을 입고 나서 매고 여미며 매만지는 일을 말한다.
줄혀 : 줄혀-[列]+-어(연결 어미). 줄지어. 줄지어 나란히 가서.
좟녁 : 좌(左)+-ㅅ(사이시옷)+녁[便]. 좌편. 좌측.
셧다가 : 서 있다가.
올아가 : 오-[登]+-아(연결 어미)+가-[去]+-아(연결 어미). 올라가. 동사 어간 ‘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연결되면 어간은 ‘올-’로 교체된다.
러 : -[跪]+-어(연결 어미). 꿇어.
잔 자바 : 잔(盞)+잡-[執]+-아(연결 어미). 잔을 잡아. 잔을 들어.
헌슈(獻壽) : 주인공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술잔을 올림.
매 : 소맷자락.
디르고 : 디르-[揷]+-고(대등적 연결 어미). 꽂고. 넣고.
웃녀로 : 우(右)+-ㅅ(사이시옷)+녁[便]+-로(조격 조사). 우편으로. 우측으로.
즈우려 : 즈우리-[走]+-어(연결 어미). 달음질쳐. 총총걸음으로. 안병희 교수는 해제(1978)에서 ‘즈우리-’는 ‘라나오-’[趨]의 경상도 방언형으로 보고 있다.
보닌 : 보-[見]+-ㄴ(관형사형 어미)+이(人, 의존 명사). 보는 사람은.
차탄코 : 차탄-[嗟嘆]+-고(대등적 연결 어미). 감탄하고.
브러터라 : 브러-[慕]+-더라(과거 시상 평서법 어미). 부러워하였다. ‘브러터라’는 ‘브러더라’의 축약형이다. 〈규장각본〉(1727)에는 ‘브러더라’로 나타난다.
여궐리랏 : 여궐(余闕, 인명)+-이라(서술격 조사)+-ㅅ(사이시옷). 여궐이라는. 여궐(余闕)은 원(元)나라 노주(盧州) 사람이며 원통(元統)의 진사(進士)이다. 뜻을 경술(經術)에 두고 오경(五經)에 모두 전주(傳注)를 달았다. 전예(篆隷)에도 능했으며 저서로 ≪청양집(靑陽集)≫이 있다.
글 서 : 글[文]+스-[書]+-어(연결 어미). 글을 써서.
졀뎨일개라 : 졀뎨일가(東浙第一家)+-ㅣ라(서술격 조사).
졍딕여 : 졍딕-[正直]+-여(연결 어미). 정직하여.
[僧] : 한문 원문에는 ‘’을 ‘부도’(浮屠)로 나타내고 있는데, 부도는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이다.
도(道士) : 도교를 믿고 그 도를 닦는 사람.
의식 : 필히. 반드시.
쥬가례(朱子家禮) : 중국 남송시대 주희(朱憙, 1139-1200)가 편찬한 책. 예의 기본 논리인 사회질서와 기강을 위한 관혼상제의 의장을 제정하고 그 내면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유지하며, 일상에서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예악(禮樂)으로써 나라를 통치한다고 할 만큼 예를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된 주(周)나라 때 주공(周公)이 국가 통치의 방편으로서 예법을 제정하였고 그 후 역대 왕조가 이를 보강하였다. 그러나 이 예법은 치국(治國)에 필요한 것일 뿐 가정을 다스리는 데는 적합지 않았으므로 따로 제가(齊家)를 위한 예법이 필요하여 가례(家禮)를 제정하였다. 주나라 이후 많은 학자들이 가례를 저술하였는데, 송(宋)나라 때에 와서 이것을 집대성한 것이 ≪주자가례≫이고 이의 편자가 주희이다. 주희는 남송(南宋)의 철학자로서, 이름은 희(熹)이고,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며, 호는 회암(晦庵)이고,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주자(朱子)는 그에 대한 존칭이다. 24세 때 복건성(福建省) 동안현(同安縣)의 주부(主簿, 장부 담당 관리)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지방의 지사(知事)를 역임하였고, 황제의 정치고문관을 마지막으로 관직을 그만두었다. 주희의 관료 경력을 모두 합하면 10년 남짓의 기간에 불과한데, 나머지 40여 년 동안은 방대한 저술을 하였고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오늘날 주자는 송학(宋學), 도학(道學), 성리학(性理學)의 집대성자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는 ≪사서집주(四書集註)≫, ≪근사록(近思錄)≫, ≪시집전(詩集傳)≫, ≪주역본의(周易本義)≫, ≪서집전(書集傳)≫, ≪초사집주(楚辭集註)≫,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문공가례(文公家禮)≫,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소학서(小學書)≫,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 등이 있고, 그의 시문을 모은 ≪주자문집(朱子文集)≫, 문인과의 대화를 모은 ≪주자어류(朱子語類)≫가 있다.
다히로 : ∼ 대로.
손니 : 손(子孫)+-이(주격 조사). 자손이. ‘손니’는 중철 표기이다.
이고 : -[爲]+-이-(사동 접미사)+-고(대등적 연결 어미). 시키고. 하게 하고. ‘이고’가 ㅣ모음의 역행동화로 ‘이고’가 되었다. 당시에는 ‘이-’와 ‘이-’의 두 표기가 공존하였다.
집븻  : 집[家]+-읫(처소 관형격 조사)+(公事). 집안을 다스리는 일.
참예(參預) :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
터라 : ‘더라’의 축약형.
를 : [馬]+-을(목적격 조사). 말[馬]을.
-옷 : 체언이나 부사에 직접 연결되는 ‘-곳/옷’은 강세 보조사이다. ‘-옷’은 체언의 말음이 모음이거나 ㄹ일 때 그 다음에 나타나는 교체형이다.
사름미 : 사람이. 중철 표기이다.
그러타 : 그렇다.
〈규장각본〉

31ㄱ

뎡문 그 집이 열   사라 모도아 이 마 나 러니  낫 돈  잣 깁도 아름뎨로 아니더라 뎡문 죽거 촌 아 대홰 니어 집읫 일 아로 더옥 엄졍코 은혜 이셔 집안히 싁싁야 구이  더라 뎨 허믈 잇든 비록 멀이 셰니라도 다 티더라 양 명일 어든 대홰 대텽에 안든 모 앗보치들히 못 줄혀 좐녁 듕 집의 셧가 례로 올나가 절고 러 잔 자바 헌슈고 공경야 맛댱 곳고 웃녁크로 라나오니 본 사 차탄코 브러더라

31ㄴ

여궐이란 아비 글 위야셔 동졀 뎨일개라 야 포샹니라 대홰 졍딕야 죵이며 도의 일 아니코 의식 쥬가례대로 더니 손이 다 효도코 삼가더라 모 며리들 겨집븨 일만 이고 집읫 공를 참예 아니케 더라 집의 두 를 두되  곳 나가면  이 음식 아니 먹더니 사이 되 감화야 그러타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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