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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이륜행실도+책정보

28ㄱ

陳氏群食
딘이 강 사더니 열세   살며 얼운 아 모도아 칠 귀로 이며 고마 두디 아니코 아래 우히 화여 예 잡말리 업더라  밥 머글 제 큰 집븨 모다 안자 져믄 아런 각별리 돗 라 안치더라 가히 일기 남모  구예 밥 주어  가히나 아니 가면 모 가히 다 아니 먹더라

28ㄴ

陳兢 居江州 自倣至兢 十三世同居 長幼七百口 不畜僕妾 上下姻睦 人無間言 每食必群坐廣堂 未成人者 別爲一席 有犬百餘 亦置一槽共食 一犬不至 群犬皆不食
七百餘人未忍分 高曾叔姪曁仍雲 十三嗣世同炊㸑 每食長筵列作群
敦睦家風世所崇 詵詵長幼一堂中 欲知感化冥冥裏 看取槽中百犬同
진씨군식(陳氏群食 : 진씨가 모두 모여 밥을 먹다) 송나라
진긍(陳兢)이 강주(江州)에서 살았는데 십삼 대(十三代)를 내려오는 동안 한 집에 살면서 식구가 어른 아이를 합쳐 모두 칠백 명이 되어도 종이나 첩(妾)을 두지 아니하고 아래 위가 화목하여 서로 간에 쓸데없는 잡소리가 없었다. 늘 식사 때가 되면 큰 집에 모여 앉는데 어린 아이들은 특별히 돗자리를 깔고 앉혔다. 개[犬]가 백 마리 넘는데도 구유 하나에 밥을 주어 먹게 하였고 한 마리의 개라도 오지 않으면 모든 개가 먹지 않았다.
강 : 강주(江州). 익주(益州) 파군(巴郡)에 속하는 현의 명이다. 군(郡)의 수부(首府)가 있었던 곳이다. 성터는 원래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중경(重慶)에 위치해 있었다. 파군은 후한말에서 촉에 걸쳐 여러 번 분할되어 신군이 분립했지만, 결국 서진이 되어도 강주는 파군의 중심 도시 그대로였다. 현재의 중경시로 장강 상류의 요충. 유비의 촉평정전에서 장비가 파군태수 엄안을 생포한 장소이다.
모도아 : 모도-[合]+-아(연결 어미). 모아서.
칠 귀로 : 칠(七百)+구(口)+-ㅣ(서술격 조사)+-로-(삽입 모음)+-(설명법 연결 어미). 칠백 명의 식구이되. 삽입 모음 ‘-오-’가 서술격 조사 ‘-이’ 다음에서는 ‘-로-’로 나타난다.
: 종[僕].
고마 : 첩(妾).
아니코 : ‘아니고’의 축약형.
우히 : 우ㅎ[上]+-이(주격 조사). 위가.
 : 사이[間].
잡말리 : 잡(雜)말+-이(주격 조사). 잡말이. 잡소리가. ‘잡말리’는 중철 표기이다.
 : 늘. 번번이. 15세기 국어에서는 ‘’으로 표기되었다.
머글 제 : 먹-[食]+-을(관형사형 어미)+제(時, 의존 명사). 먹을 때.
모다 : 몯-[集]+-아(연결 어미). 모여.
안자 : 앉-[坐]+-아(연결 어미). 앉아.
아런 : 아[兒]+-런(보조사). 아이랑은. 아이는.
각별리 : 각별히. 특별히.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부터 ‘각별히’로 쓰이다가 16세기에 들어서 ‘각벼리’ ‘각별이’ 등의 표기도 함께 쓰였다. 여기서의 ‘각별리’는 중철 표기이다.
: 돗자리. ‘’이 휴지(休止) 앞에서 어말 자음군의 단순화로 ‘돗’으로 교체되었다.
라 : 깔아[鋪]. ‘라’는 라‘의 오각으로 보인다. 〈규장각본〉(1727)에는 ’라‘로 되어 있다.
안치더라 : 앉-[坐]+-히-(사동 접미사)+-더라(과거 시상의 평서법 어미). 앉혔다.
가히 : 개[犬].
일기 : 일(一百)+-이(주격 조사). 일백 마리가. ‘일기’는 ‘일이’의 중철 표기이다.
남모 : 남-[餘]+-오-(삽입 모음)+-(설명법 연결 어미). 남되. 남짓하되. ‘남모’는 ‘나모’의 중철 표기이다.
구 : 구유.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 가히나 : [一]+가히[犬]+-나(보조사). 한 마리의 개라도.
〈규장각본〉

28ㄱ

딘긍이 강셔 사더니 열세 을  살며 얼운 아 모도와 칠 귀로 죵이며 쳡을 두디 아니코 아래 우히 화동여 이예 잡말이 업더라 양 밥 머글 제 큰 집의 모다 안자 져믄 아흴난 각별이 돗 라 안치다라 가히 일이 나모  구유예 밥 주어  가히나 아니 가면 모 가히 다 아니 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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