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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경민편

역주 경민편
역주 경민편
<<경민편>>은 김정국이 황해 관찰사로 있을 때 황해도민의 교화를 위해 1519년(중종 14)에 편찬한 책이다. 인륜과 법제에 관한 지식을 수록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도록 계도할 목적에서 이 책을 만든 것이다. 본 회는 정속언해와 경민편을 함께 합본하여 역주하여 간행하였다.
+ 본문정보

김문웅(金文雄)

∙1940년 경상남도 울주군 출생
∙경북대학교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박사
∙한글학회 대구지회장 역임
∙국어사학회장 역임
∙한국어문학회장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저서 및 논문〉

≪편입 대학국어≫(1977)
≪15세기 언해서의 구결 연구≫(1986)
≪역주 구급방언해 하≫(2004)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3≫(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6≫(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7≫(2009)
≪역주 신선태을자금단 간이벽온방 벽온신방≫(2009)
“접두사화고”(1977)
“불완전명사의 어미화”(1979)
“「ᅙ」의 범주와 그 기능”(1981)
“‘-다가’류의 문법적 범주(1982)
“근대 국어의 표기와 음운”(1984)
“근대 국어의 형태와 통사”(1987)
“옛 부정법의 형태에 대하여”(1991)
“한글 구결의 변천에 관한 연구”(1993)
“활자본 ≪능업경 언해≫의 국어학적 고찰”(1999)
“설총의 국어사적 고찰”(2001)
“구결 ‘’의 교체 현상에 대하여”(2003)
“방송 보도 문장의 오류 분석”(2004)

전자 우편 mukim@dnue.ac.kr

역주위원

정속언해·경민편 : 김문웅


교열·윤문·색인위원

  • 정속언해·경민편 : 박종국 · 홍현보

편집위원

  • 위 원 장 : 박 종 국
  • 위 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영배 나일성
  • 노원복 박병천 오명준
  • 이창림 이해철 전상운
  • 정태섭 차재경 최기호
  • 최홍식 한무희 홍민표

역주 정속언해·경민편을 내면서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 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11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두창집요≫ 1책, ≪언해태산집요≫ 1책 등 모두 63책이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그동안 못한 ≪월인석보≫ 원간본들을 집중적으로 역주코자 권4, 권13, 권14, 권15, 권21(상), 권21(하)를 간행할 예정이며, 아울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정속언해‧경민편≫을 함께 펴 낼 계획이다. 또한 ≪영험약초≫와 ≪상원사중창권선문≫을 묶어 1책으로 펴내면, 연초에 이미 펴낸 ≪월인석보≫ 권25(하)와 ≪언해태산집요≫를 포함하여 올해 나올 책은 모두 12책이다.

이번에 역주한 ≪정속언해(正俗諺解)≫는 김안국(金安國)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향속(鄕俗)을 바로잡기 위하여 중국 원(元)나라 왕일암(王逸菴)이 쓴 정속편(正俗篇)을 언해하여 조선 중종 13년(1518)에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와 함께 간행한 교화서(敎化書)이고, ≪경민편언해(警民編諺解)≫는 김정국(金正國)이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우민(愚民)에게 인륜(人倫)과 법제(法制)에 관한 지식을 계발하기 위하여 편찬 간행한 수신서(修身書)이다.

이 책은 ≪경민편≫이라고도 하는데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임진왜란 직전의 중간본 등이 전한다.

이 두 책을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해 주신 대구교육대학교 김문웅 명예교수님과 이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0년 12월 1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정속언해≫ 역주의 저본은 이원주(李源周) 교수 소장본과 규장각 소장본을 참고하였으며 이 두 가지를 아울러 영인하여 부록으로 실었고, ≪경민편≫ 역주의 저본은 일본 동경교육대학(쓰쿠바대학) 소장본과 규장각 소장본을 참고하였으며 이와 함께 두 가지를 아울러 영인하여 부록으로 실었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2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아긔 입안해 <원본위치 imgFile="P04_GM_e01_v001_002a.jpg">2ㄱ조티 아닌 거시 잇다가

제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딘이 되니 <원본위치 imgFile="P04_GM_e01_v001_002b.jpg">2ㄴ신장은 비록 증이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5) 원문 내용(구결문과 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 풀이문·주석과 구별하였으며, 언해문 가운데 작은 글씨 2행은 편의상 부호【 】로 묶어 보였고, 한자 원문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 하였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ᆰ ᇎ ᆱ ᆲ ᆳ ᄚ ㅁ ᇚ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경민편≫에 대하여
김문웅(대구교육대학교 교수)

1. 간행 배경

≪경민편(警民編)≫은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이 황해 관찰사로 있을 때 황해도민의 교화를 위해 중종 14년(1519)에 편찬한 책이다. 인륜과 법제에 관한 지식을 수록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의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도록 계도할 목적에서 이 책을 만든 것이다. 정덕(正德) 기묘년(1519)에 김정국이 쓴 서문
주 1)
안병희 교수의 해제(1978)에는 김정국이 쓴 글이 서(序)가 아니고 발(跋)이라 하고 있다. 허엽(許曄)의 서(序)가 맨 앞에 있는 중간본(1579)에는 김정국의 글에 아무런 제목도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규장각 소장본(1658)에는 김정국의 글에 ‘警民編序’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 여기서는 일단 이를 따르기로 한다.
에 이러한 목적이 자세히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외람되게 고을의 근심을 나누어 맡기신 때부터 맡은 땅을 순찰하여 백성의 풍속을 살피매 매번 죄인을 판단할 때 일찍이 이에 대하여 깊이 애달파하지 않을 때가 없었으니,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이 인륜(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오륜을 말함)의 중함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법제의 자세함을 알겠는가? 미련하기가 눈멀고 귀먹은 사람 같으며, 무지하게 오직 옷과 밥에만 매달려 스스로 그 법을 범하는 줄을 깨닫지 못하여 죄에 빠져 들어가면 관원이 이에 대하여 법을 집행하여 다스리게 되니 이렇게 되면 그물로 새를 잡으며 함정으로 짐승을 잡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그 백성으로 하여금 어질도록 하여 죄에서 멀어질 수 있게 하겠는가?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사람의 도리에 가장 관련되면서 백성이 범하기 쉬운 것을 들어 열세 개[十三個] 항목으로 만들고 그 이름을 백성을 경계하는 책이라 하였으니 이를 나무에 새기고 널리 베풀어 혼란스러워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귀와 눈에 익숙지 않는 것이 없게 하여 나쁜 것은 버리고 선한 것을 따르기에 만(萬)에 하나라도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余自叨分陜之憂 按所部 察民風 每當斷獄 未嘗不深喟於斯 蠢愚之民 不知人倫之重 焉知制法之詳 蚕蚕然有同乎辜聵 貿貿焉唯衣食之趣 自不覺其觸犯科條 流陷於罪辜 有司 於是 按律繩之 如骨羅捕雀 機檻取獸 烏在其使民遷善而遠辜耶 余爲之憫然 擧其最關於人道而民之所易犯者爲十三條 編曰警民 刊行廣布 俾諸蠢氓 靡不習於耳目 以冀其去惡從善之萬一)
김정국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황해도의 각 지방 수령, 즉 목민관(牧民官)들에게 이 책을 가지고 ‘도민화속(導民化俗)’의 자료로 적극 활용할 것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가지고 하나의 문구로 돌려 버리며, 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치부하고 앉아 나라의 녹(祿)만 받아먹으면서 세월을 하는 일 없이 보내기만 할 뿐, 그 백성을 계도(啓導)하여 풍속을 교화(敎化)케 할 도리에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쏟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못 이 책을 만든 뜻이 아니니 무릇 우리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거의가 또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將是編, 歸之文具, 付之迂遠, 坐食公廩, 玩愒歲月, 其於導民化俗之道, 若不盡心而致誠焉, 則殊非編者之意, 凡我牧民者, 尙亦念哉)
이뿐만 아니라, 허엽(許曄 1517∼1580)도 선조 13년(1579)에 간행한 중간본(동경교육대학 소장본) 권두(卷頭)에 있는 자신의 ‘중간경민편서’에서 이 책을 널리 펴 백성들을 교화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이에 이 책에 군상 1조를 더하여 4장관(경주, 상주, 진주, 청송)에게 나누어 주고 이를 속히 인쇄에 붙여 예하 고을에 반포하고, 예하 고을에서는 각기 이를 인쇄하며 또 민간의 사사로운 인간(印刊)도 허락하여 집집마다 이 책을 소유하여 사람마다 이 책을 봄으로써 각기 선한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경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에 전 도민들이 서로 힘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玆以此編添補君上一條 付之四長官慶州尙州晉州靑松 亟上於榟 印頒屬邑 屬邑各來印出 兼許民間私印 期於家家有之 人人見之 各有以興起而戒勅也 凡此一道之人 盖相與勉之)
이상의 인용문을 통해서 ≪경민편≫은 백성 교화의 목적과 새로운 정치를 도모하던 기묘 사림(己卯士林)의 이상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판본의 검토

1519년(중종 14)에 김정국이 간행한 원간본은 현재까지 전하지 않는다. 현존본으로는 일본 동경교육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주 2)
동경교육대학이 현재는 쓰쿠바대학(筑波大學)으로 바뀌었으므로 동경대학 소장본을 쓰쿠바대학 소장본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마땅하지만,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에서 1978년 영인본을 간행하면서 ‘동경교육대학본’이라 명명하여 이 명칭이 통용되고 있기에 편의상 이를 따르기로 한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간행이 이루어져 이은규 교수의 자세한 보고(2005)에 의하면, 모두 11종의 이본이 현재 전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에 의거하여 11종을 모두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1579년 진주판 중간본(동경교육대학 소장본. 단국대 영인본)
(2) 1579년 상주판 중간본(텐리대학 소장본)
(3) 임진란 전후 구결본(개인 소장본)
(4) 1658년 개간(改刊)본(규장각 소장본. 단국대 영인본)
(5) 1658년 이후 번각본(경북대 소장본)
(6) 1658년 이후 번각본(영남대 소장본)
(7) 1731년 초계 개간(開刊)본(홍문각 영인본)
(8) 1745년 완영 개간(開刊)본
(9) 1748년 용성 개간(開刊)본
(10) 1748년 완영 중간본
(11) 19세기 목판본(상문각 영인본)
위에 제시된 11종의 이본 사이에 어떤 특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여기서는 언급할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이은규(2005)에 예시된 언해문을 비교해 봄으로써 그 차이를 파악하고자 한다. 위에서 소개한 이본 차례 번호를 따라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3)과 (6) 판본의 예문은 빠져 있다.
원문 : 夫妻和樂 永保厥家 乖戾不和 終致禍亂
(1) 남진 겨지비 화며 즐거오면 기리 그 집을 안부고 거저 화티 아니면 내애 홰며 난을 닐위니
(2) 남진 겨지비 화며 즐거오면 기리 그 집을 안보고 거슯저 화티 아니면 내애 홰며 난 닐위니
(4) 夫부妻쳐ㅣ 和화樂낙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어긔여뎌 和화티 못면 내 禍화과 亂난을 닐위니라
(5) 夫부妻쳐ㅣ 和화樂락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버긔여뎌 和화티 못면 내 禍화과 亂난을 닐위니라
(7) 夫부妻쳐ㅣ 和화樂낙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어긔여뎌 和화티 못면 내 禍화과 亂난을 닐위느니라
(8) 부쳐ㅣ 화락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버긔여뎌 화티 못면 내 화과 난을 닐위니라
(9) 부쳐ㅣ 화락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버긔여뎌 화티 못면 내 화과 난을 닐위니라
(10) 부쳐ㅣ 화락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버긔여뎌 화티 못면 내 화과 난을 닐위니라
(11) 夫부妻쳐ㅣ 和화樂락면 기리 그 집을 보젼고 버긔여뎌 和화티 못면 내 禍화과 亂난을 닐위니라
위에 나타난 (1)∼(11)의 언해문을 보면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문두(文頭)의 주어가 ‘남진 겨지비’로 되어 있는 부류와 ‘부쳐(夫妻)ㅣ’로 되어 있는 부류의 두 계열이다. 두 계열에는 앞에서 보았듯이 각각 여러 종류의 이본들이 전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실책(實冊)을 접하기 어려운 것이 많아 여기서는 영인본이 간행된 판본으로서 전자의 계열에 속하는 〈동경교육대학본〉과 후자의 계열에 속하는 〈규장각본〉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제 〈동경교육대학본〉과 〈규장각본〉에 대한 서지적 검토를 통해 그 차이를 좀 더 이해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안병희 교수의 해제(1978)를 참고하였음을 밝혀 두는 바이다. 〈동경교육대학본〉은 단국대학교에서 〈규장각본〉과 함께 안병희 교수의 해제를 붙여 영인함으로써 학계에 널리 알려진 책이다. 1권 1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이 판본은 허엽의 ‘중간경민편서(重刊警民編序)’ 1장, 김정국의 ‘경민편서(警民編序)’ 1장, 본문 19장으로 된,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책이다. 그런데 김정국의 서문은 ‘경민편서(警民編序)’라는 제목도 없이 첫 행에서부터 본문이 시작되고 있다. 마침 〈규장각본〉에는 ‘경민편서(警民編序)’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 이를 인용해 붙인 것이다. 허엽의 서문 끝에 있는 ‘萬曆己卯觀察使陽川許曄序’라는 간기에 의해 〈동경교육대학본〉이 만력 7년(己卯年), 즉 1579년(중종 14)에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고, 김정국 서문에는 끝의 간기가 ‘正德己卯冬十月觀察使聞韶金正國謹識’로 되어 있어 원간본은 정덕 14년(己卯), 즉 1519년(선조 13)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허엽의 중간본인 〈동경교육대학본〉은 김정국의 원간본이 나온 지 60년 만에 재간행된 셈이다.
〈동경교육대학본〉에 실려 있는 두 서문을 검토해 보면, 허엽의 서문에는 “玆以此編添補君上一條”라는 기사가 있고 김정국의 서문에는 “擧其最關於人道而民之所易犯者爲十三條 編曰警民”이라는 기사가 있어서, 이를 통해 김정국의 원간본은 내용이 13개 항목으로 되어 있었는데 허엽이 중간하면서 ‘君上’이란 한 항목을 새로 만들어 제일 첫 항목으로 첨가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허엽이 간행한 중간본은 다른 판본과는 달리 한 항목이 많아져 모두 14개 항목이 된 것이다.
이 책의 내제(內題)와 판심제는 모두 ‘警民編’이다. 권말(卷末)에는 ‘重刊警民編終’이라 하여 ‘중간경민편(重刊警民編)’이라는 서명을 사용하고 있다. 판식(版式)은 사주쌍변(四周雙邊)에, 반곽(半郭)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각각 19.3cm, 28cm이고, 유계(有界) 11행으로서 한문 원문은 매행(每行) 17자, 언해문은 한문 원문보다 1자 낮추어 썼으므로 16자이며, 김정국의 한문 서문도 1자 낮추어 16자로 되어 있다. 한문 원문에 달린 구결은 쌍행(雙行)이며 차용 문자로 표기하였다. 판심은 백구(白口)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로 되고 상하 어미 사이에 판심제인 ‘警民編’과 장차(張次)가 표기되어 있다. 권두의 ‘중간경민편서(重刊警民編序)’라는 제목이 표기된 행의 하단에 ‘晋州印’이라고 적힌 글씨와, ‘중간경민편서’에 있는 “付之四長官慶州尙州晉州靑松 亟上於榟 印頒屬邑 屬邑各來印出”의 기록을 관련지어 볼 때 이 중간본은 진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체재는 같은 시기에 형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언해하여 간행한 ≪여씨향약언해≫ ≪정소언해≫와 일치되는 점이 많은데, 이는 김정국이 형의 이들 책을 참고한 결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한문 원문에 첨가된 차자 표기의 구결이 일치하고, 언해문에는 한자의 표기나 병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 또한 일치한다.
이 책의 언해문에 나타난 표기법과 언어적 특징은 간행 시기인 16세기 말의 언어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방점은 없고 ㆁ은 종성 표기에 남아 있으며 ㅿ은 거의 소멸된 상태에서 몇 예가 발견된다.( 2ㄱ, 아 가지며 6ㄴ, 아 19ㄱ)
다음은 〈규장각본〉인데, 이 판본의 간행 경위에 대해서는 권말에 있는 완남 부원군(完南府院君) 이후원(李厚源, 1598∼1660)의 ‘청간경민편광포제로차(請刊警民編廣布諸路箚)’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차자(箚子)에서 간행에 관련된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다만 그 원본을 두루 구해도 얻지 못하다가 오래 뒤에야 해서(海西)에서 얻었는데, 언해(諺解)가 없으면 궁벽한 시골 백성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마침내 그 원본을 사용하여 교열하고 번역하는 한편, 진고령(陳古靈)과 진서산(眞西山)이 세속을 교화시킨 여러 편(篇)을 그 아래에 붙이되 간간이 요약 정리하여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선묘조의 상신(相臣) 정철(鄭澈)이 지은 훈민가(訓民歌)를 첨부해 기록된 것을 얻어, 시골 부녀자들로 하여금 이를 늘상 암송하게 함으로써 감발(感發)되고 징계되는 바가 있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而第其原本 遍求不得 久乃得之於海西 而無諺解 窮鄕氓隷 難於通曉 故遂用其本 校證翻譯 且取陳古靈眞西山諭俗諸篇 附於其下 而間有節略者 欲民之易曉也 偶得宣祖朝相臣鄭澈所作訓民歌添錄者 欲使村閭婦孺 尋常誦習 有所感發而懲創也)

위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첫째 이후원이 이 책을 간행할 때 원간본은 구하지 못하고 한문만으로 된 사본(寫本)을 구하여 이를 교열해서 번역한 점이고, 둘째는 기존의 책에 없던 부록을 많이 첨부하였다는 점이다. 그 부록은 13세기 중국에서 이용되던 자료와 16세기말 조선의 시가 등 모두 5편으로서, 송나라 진양(陳襄)이 선거(仙居)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쓴 〈고령진선생선거권유문(古靈陳先生仙居勸諭文)〉, 그리고 송나라 진덕수((眞德秀)가 담주와 천주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 쓴 〈서산진선생담주유속문(西山陳先生潭州諭俗文)〉, 〈천주권유문(泉州勸諭文)〉, 천주권효문(泉州勸孝文)〉, 이 밖에 조선시대 정철(鄭澈)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16편의 〈훈민가(訓民歌)〉 등이다. 이후원은 ≪경민편≫의 간행을 국왕에게 상주하여 마침내 윤허를 얻게 됨으로써 개간(改刊)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후원이 상주한 날과 윤허를 얻은 ≪효종실록≫ 기사는 다음과 같다.
이후원이 또 아뢰기를, “경민편(警民篇)은 바로 기묘 명현(己卯名賢)인 김정국이 황해 감사로 있을 때 편집한 것입니다. 본도 백성들의 습속이 미련하고 무식하므로 정국(正國)이 이 책을 지어 그들을 가르쳤으니, 그것도 간행하여 반포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厚源又曰 警民篇 乃己卯名賢金正國爲黃海監司時所編也 本道民俗 頑蠢無知 正國作是書以敎之 請亦令刊布 從之)
주 3)
효종실록 7년(1656) 7월 28일(甲戌).
“경의 차사(箚辭)를 보건대 뜻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서 내가 가상하게 여긴다. 해당하는 부서로 하여금 차사대로 시행하게 하겠는데,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도에 보탬이 되리라 기대된다.” 하고, 그 차자(箚子)를 예조에 내렸다. 예조가 곧바로 간행하여 중외에 널리 반포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省卿箚辭, 意非偶然 予用嘉悅 當令該曹 依箚辭施行 庶有補於化民成俗之道爾 下其箚於禮曹 禮曹請趁卽鋟梓 廣布中外 從之)
주 4)
효종실록 9년(1658) 12월 25일(丁亥).

위에 있는 두 가지 실록 기사를 통해서, 이후원이 이 책의 간행을 처음 상주한 때는 1656년(효종 7)이고 간행을 윤허 받아 착수한 때는 1658년(효종 9)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책이 완성된 것은 그 이듬해가 될 것이 예상되나 더 이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실록의 기록대로 이후원의 개간본인 〈규장각본〉의 간행 시기를 1658년으로 잡는다.
앞에서 본 이후원의 차사(箚辭)에 의하면, 1658년의 ≪경민편≫은 이후원이 독자적으로 번역하였으므로 김정국의 원간본이나 허엽의 중간본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한문 원문에 달린 구결도 허엽의 간행본과는 다른데다 표기도 차자 표기가 아니라 한글 표기로 되어 있다. 언해도 물론 차이가 있다. 국어적인 특징도 대체로 17세기 중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판식은 사주쌍변에, 반곽의 크기가 가로 세로 각각 15.5cm, 21.cm이고, 유계 10행에 매행 20자이며 언해문은 1자 낮춰 매행 19자이다. 한글 구결과 주(註)는 쌍행이다. 판심은 백구 상하내향삼문어미로 되어 있으며 상하 어미 사이에 판심제인 ‘警民編’과 장차(張次)가 있다. 이 책의 편성은 맨 먼저 김정국의 ‘경민편서(警民編序)’와 그 언해문이 3장, ‘경민편목록(警民編目錄)’이 1장, 본문과 부록을 합쳐 42장, ‘청간경민편광포제로차(請刊警民編廣布諸路箚)’가 2장으로 모두 48장으로 되어 있다.

3. 내용

앞에서 언급한 대로 〈동경교육대학본〉의 내용은 모두 14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규장각본〉은 13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판본의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동경교육대학본〉
(1)君上 (2)父母 (3)夫妻 (4)兄弟姉妹 (5)族親 (6)鄰里 (7)鬪歐 (8)勤業 (9)儲積 (10)詐僞 (11)犯奸 (12)盜賊 (13)殺人 (14)奴主
〈규장각본〉
(1)父母 (2)夫妻 (3)兄弟姉妹 (4)族親 (5)奴主 (6)鄰里 (7)鬪歐 (8)勤業 (9)儲積 (10)詐僞 (11)犯奸 (12)盜賊 (13)殺人
〈동경교육대학본〉은 〈규장각본〉에 없는 ‘군상(君上)’이 첫 항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리고 ‘노주(奴主)’ 항목의 배치가 두 판본 사이에 달라져 있다. 〈동경교육대학본〉이 맨 끝 항목인 열네 번째로 되어 있으나 〈규장각본〉에서는 다섯 번째에 배치하여 놓았다.
위에 열거된 목록을 보아 대강 짐작할 수 있겠지만 ≪경민편≫의 내용은 향촌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와 윤리를 권장하면서 흔히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서 거론하고 있다. 그러고는 범죄를 해서는 안 되는 도덕적인 이유와, 범죄할 경우 국가로부터 받게 되는 처벌 등을 언급하고 있다. ‘군상’을 제외한 13개의 항목을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가족과 친족에 관련된 문제로서 이에는 ‘부모(父母)’, ‘부처(夫妻)’, ‘형제자매(兄弟姉妹)’, ‘족친(族親)’ 등이 속한다. 여기서는 한 마디로 가족 윤리를 내세우고 있다. 부모와 그 이상의 어른들에 대해서 언제나 공경하는 마음과 효도하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부부간에는 화락할 것이며 형제자매 사이에서는 조그만 이해 관계로 대립하여 원수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족친’으로서는 숙부모(叔父母)를 들고, 숙부모도 부모와 똑같이 섬길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어기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 살해를 비롯해서 구타, 책망, 배반 등의 범법 행위를 하면 상당한 중벌에 처하게 된다는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둘째는 향촌이라는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이다. ‘인리(鄰里)’, ‘투구(鬪歐)’, ‘범간(犯奸)’, ‘도적(盜賊)’, ‘살인(殺人)’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이 중에서 ‘인리’를 제외한 다른 항목은 모두 일상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이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싸우는 것, 정욕을 참지 못하고 간통하는 것, 춥고 배고픔 때문에 도적질하는 것, 재물을 탐하거나 원수가 져서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 등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범죄이므로 누구든지 이를 범했을 때 심하면 사형에까지 처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인리’는 공동체 속에서 강자와 노약자 간에 질서와 윤리를 확립하여 화목한 사회를 만들도록 교훈하는 것이므로 ‘인리’도 향촌의 공동생활에 관계되는 내용이나 범죄적인 내용과는 구별된다.
셋째는 경제적인 문제를 다룬 부분이다. ‘근업(勤業)’과 ‘저적(儲積)’이 이에 해당한다. ‘근업’은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여 가을에 많이 거두도록 하라는 내용이고, ‘저적’은 가을걷이 한 뒤에 식량의 낭비를 막고 절약하여 다음 해 농사지을 양식까지 준비하라는 내용이다. ‘근업’과 ‘저적’은 주로 농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생산을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소비에서 낭비를 없앰으로써 경제적인 윤택을 달성하여 굶주림과 군색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범죄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권업’과 ‘저적’에서는 처벌 조항도 형식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넷째는 ‘사위(詐僞)’로서, 이는 거짓 일을 꾸미는 것이다. ‘사위’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거짓 일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공문서 위조, 문기(文記)의 위조, 인장 위조, 관원 사칭, 현직 관원의 자제 사칭 등이다. 이에 대한 형벌도 위조에 따라 다양하게 부과하고 있다. ‘사위’ 조항에서는 위와 같은 거짓 일을 도모하지 말고 모든 일에 성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주(奴主)’가 있다. 이 항목에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군신(君臣) 관계에 비하여 주인에 대한 종의 충성과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 법을 어겼을 때는 중벌에 처하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동경교육대학본〉에서 보이고 있는 ‘군상(君上)’ 조항은 ≪경민편≫의 전체적인 서술 방식에 맞지 않는다. 일반적인 서술 방식은 각 조항의 주제에 대해서 실천적인 윤리를 제시한 다음 법을 어겼을 경우의 처벌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군상’에서는 주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백성이 할 일이나 도리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언급할 뿐 구체적인 처벌 내용에 관해서는 기술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경민편≫ 본래의 서술 방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4. 간행자

≪경민편≫의 원간본을 편찬한 김정국, 중간본을 간행한 허엽, 그리고 다시 개간본(改刊本)을 간행한 이후원 등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은 자(字)가 국필(國弼), 호는 사재(思齋), 팔여거사(八餘居士)이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아우이며 김굉필(金宏弼)의 문인(門人)이다. 1509년(중종 4) 별시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1514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으며, 이조정랑, 사간, 승지 등을 거쳐 1518년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때 ≪경민편≫을 간행하고 학령(學令) 24조를 만들어 도민과 학자를 권면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고양에 내려가 저술과 후진 교육에 힘쓰므로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1537년에 복직되어 이듬해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편민거폐(便民去弊)의 정책을 건의하여 국정에 반영토록 하였으며, 다시 그 이듬해 공조참의를 거쳐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1540년 병으로 사퇴하였다가 뒤에 예조, 병조, 형조 참판을 지냈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 용강(龍岡)의 오산서원(鰲山書院), 고양의 문봉서원(文峰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성품이 순정(純正)하고 공평하며 무리함이 없었다. 정사(政事)를 잘하여 방백으로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고 한다. 사화로 은거할 때는 매우 가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가 편찬한 저술로는 ≪사재집(思齋集)≫, ≪성리대전절요(性理大全節要)≫, ≪역대수수승통입도(歷代授受承統立圖)≫,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기묘당적(己卯黨籍)≫, ≪사재척언(思齋摭言)≫, ≪경민편≫ 등이 있다.
허엽(許曄, 1517∼1580)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이며 군자감 부봉사 허한(許瀚)의 아들이고 서경덕의 문인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551년 부교리를 거쳐, 1553년 사가독서한 뒤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재물을 탐한 혐의로 파직되었다. 1559년 필선(弼善)으로 재기용되어 이듬해 대사성에 오르고 1562년 동부승지로 참찬관(參贊官)이 되어 경연에 참석, 조광조의 신원(伸寃)을 청하고 구수담(具壽聃), 허자(許磁)의 무죄를 논하다가 또 파직되었다. 1563년 삼척부사로 다시 부름을 받았으나 과격한 언사 때문에 또다시 파직되었다. 1568년(선조 1)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간이 되어 향약의 시행을 건의하였다. 1575년 부제학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고 동지중추부사의 한직으로 전임되었다가 상주의 객관에서 객사하였다. 말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김정국의 ≪경민편≫을 보충하여 중간하였다. 벼슬을 30년간 지냈으면서 생활이 검소하여 청백리에 녹선(錄選)되고 개성의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술로는 ≪초당집(草堂集)≫, ≪전언왕행록(前言往行錄)≫ 등이 있다.
이후원(李厚源, 1598∼1660)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이며 광평대군(廣平大君)의 7세손으로 군수 이욱(李郁)의 아들이고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으로 완남군(完南君)에 봉해지고 태인현감이 되어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출전하였다. 그 뒤 단양군수, 태안군수를 역임하고 나서 한성부 서윤이 되었다. 1635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이듬해 지평(持平)이 되었으며, 이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 1637년 승지(承旨)에 이어 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를 거쳐 1642년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48년 함경도 관찰사가 되고 1650년 효종이 즉위하자 대사성, 호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1655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장악원에 소장되어 있던 ≪악학궤범≫을 개간하여 사고(史庫)에 분장(分藏)케 하였으며 이어 한성부 판윤, 형조, 공조의 판서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고 곧이어 이조판서가 되었다. 1657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이때 송시열을 이조판서, 송준길(宋浚吉)을 병조판서에 임명하는 등 인재 등용에도 힘을 기울였다. 만년에는 세자좌부빈객, 지경연사, 지춘추관사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인화를 중히 여겼으며 선(善)을 좋아하여 능변으로 악을 질시하였고 경사(經史)를 공부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1685년(숙종 11) 광주(廣州)의 수곡서원(秀谷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 문헌〉

김해정(1993). 경민편언해 연구.≪한국언어문학≫ 31집. 한국언어문학회.
안병희(1978). 해제 ≪이륜행실도ㆍ경민편≫(영인본).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윤석민 외(2006). ≪쉽게 읽는 경민편언해≫. 박이정출판사.
이은규(2005). ≪경민편(언해)≫의 어휘 연구. ≪언어과학연구≫ 35집. 언어과학회.
이은규(2007). ≪경민편(언해)≫이본의 번역 내용 비교. ≪언어과학연구≫ 43집. 언어과학회.
정호운(2006). 16ㆍ7세기 ≪경민편≫ 간행의 추이와 그 성격. ≪한국사상사학≫ 제26집. 한국사상사학회.
주1)
안병희 교수의 해제(1978)에는 김정국이 쓴 글이 서(序)가 아니고 발(跋)이라 하고 있다. 허엽(許曄)의 서(序)가 맨 앞에 있는 중간본(1579)에는 김정국의 글에 아무런 제목도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규장각 소장본(1658)에는 김정국의 글에 ‘警民編序’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 여기서는 일단 이를 따르기로 한다.
주2)
동경교육대학이 현재는 쓰쿠바대학(筑波大學)으로 바뀌었으므로 동경대학 소장본을 쓰쿠바대학 소장본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마땅하지만,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에서 1978년 영인본을 간행하면서 ‘동경교육대학본’이라 명명하여 이 명칭이 통용되고 있기에 편의상 이를 따르기로 한다.
주3)
효종실록 7년(1656) 7월 28일(甲戌).
주4)
효종실록 9년(1658) 12월 25일(丁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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