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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삼강행실도

역주 삼강행실도
역주 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를 최초로 편찬한 것은 1431년(세종 13)이며, 이를 세종은 다시 국역(언해)하도록 세종 26년에 시행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성종 때인 1481년에 간행된 것을 추정한다. 이 언해본에 실린 인물은 한문본의 330인 중에서, 효자, 충신, 열녀 각각 35인을 뽑아 모두 105인을 그림과 함께 엮고 있으니, 이는 세종 16년에 간행된 한문본 삼강행실도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여기에 실린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 사람의 숫자를 보면 우리나라 인물이 16명이나 추가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3권 1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 본문정보

김정수 교수

1972. 3,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언어학과 문학사.
1974. 3,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어학과 문학석사.
1979. 3~ 1980. 8,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1980. 9~ 1985. 2, 한글학회 연구원.
1984. 3,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어학과 문학박사.
1985. 3~지금,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전공 분야: 국어사, 형태론.


‘17세기 한국말의 높임말과 그 15세기로부터의 변천’(1983)
〈한글의 역사와 미래〉(1990),
〈한자 새김의 표준화를 위한 예비 연구〉(1994) 등 다수

역주위원

삼강행실도 : 김정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삼강행실도 : 박종국 · 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영배 나일성
  • 노원복 박병천 오명준
  • 이창림 이해철 전상운
  • 정태섭 차재경 최기호
  • 최홍식 한무희 홍민표

역주 삼강행실도를 내면서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은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11책을 비롯하여 15세기 문헌을 중심으로 모두 63책이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그동안 못한 ≪월인석보≫ 원간본들을 집중적으로 역주코자 권4, 권13, 권14, 권15, 권21(상), 권21(하)를 간행할 예정이며, 아울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정속언해‧경민편≫을 함께 펴 낼 계획이다. 또한 ≪영험약초≫와 ≪상원사어첩≫을 묶어 1책으로 펴내면, 연초에 이미 펴낸 ≪월인석보≫ 권25(하)와 ≪언해태산집요≫를 포함하여 올해 나올 책은 모두 12책이다.

이 〈삼강행실도〉는 역주의 저본으로, 영국국립도서관에 간수된 원간본 계통 것을 사용하였다. 이 책은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보아 지금까지 나타난 것 가운데 가장 오래 되고도 상태가 좋은 책이다. 원래 세종 때 만들어진 한문본 삼강행실도는 3권 3책이었고 각 권마다 105명씩을 뽑아 모두 315명이었는데, 후대에 1책으로 축소하여 묶으면서 각 35명씩을 뽑아 재편성하였다. 그러나 한문본의 원판과 지금의 언해본의 판본은 그대로 같음을 볼 수 있으니, 그 판에다가 윗부분 여백에 언해문을 추가하여 새겨서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회에서는 1982년 한문본 삼강행실도를 이미 번역하여 3책으로 펴낸 바가 있다.

이 귀중한 수신서를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해 주신 한양대학교 김정수 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0년 10월 9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의 저본으로, 영국국립도서관(The British Library: 도서 기호 15113.e.2)에 간수된 〈삼강행실도〉(1481?)의 그림 위에 실린 언해문이며, 온 책을 뒤에 부록으로 붙인다. 이 책은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보아 지금까지 나타난 것 가운데 가장 오래 되고도 상태가 좋은 책이다.

(2) 원문의 체재는 중국과 한국의 충신 35명, 효자 35명, 열녀 35명의 행적을 앞쪽에 그림으로 보이고, 뒤쪽에는 한문으로 적고, 그 한문을 번역해서 앞쪽의 그림 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언해 원문·한자 원문·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2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욜 법이 잇니 2ㄱ이 자뱃논

제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今금世셰예 2ㄴ學不블講강야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원문(언해문)의 한자어를 보면, 그 독음이 병서되어 있는 것과 한자 없이 독음만 표기한 것이 있으므로, 편의상 뜻풀이 주석 올림말은 한글(한자)식으로 표기하되 독음을 현대음으로 바꾸어 적었다.

(5) 풀이를 할 때 형태소를 분석해 보이는데, 합성의 경계는 더하기표 ‘+’로, 파생의 경계는 마침표 ‘ . ’로, 굴곡의 경계 곧 줄기와 씨끝 사이는 붙임표 ‘ - ’로, 준굴곡의 경계 곧 앞말과 토씨 및 잡음씨 사이는 물결표 ‘~’로 나타낸다.

(6) 원문 내용(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 풀이문·주석과 구별하였으며, 원문 가운데 작은 글씨 2행의 협주는 편의상 ≪ ≫ 표시로 묶어 나타내었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ᆰ ᇎ ᆱ ᆲ ᆳ ᄚ ㅁ ᇚ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주요 참고 문헌〉

석 주연(2001): “大英圖書館 소장 국어사 자료에 대하여.” 〈국어국문학〉 129.

홍 윤표(1997): “『三綱行實圖』의 書誌 및 國語史的 意義.” 〈진단학보〉 85.

志部昭平(1990): 〈諺解三綱行實圖硏究〉. 日本, 汲古書院.

삼강행실도에 관하여
김정수(한양대학교 교수)

1. 서언

세종이 명을 내려 간행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등 당시의 백성의 교육을 위해 일련의 조선시대 윤리 도덕 교과서 중 가장 먼저 나왔을 뿐만 아니라 제일 많이 읽힌 책으로서 기념비적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효(孝)·충(忠)·정(貞)의 삼강(三綱)이 조선시대의 사회, 나아가서 나라 존립의 정신적 기반으로 되어 있던 만큼 사회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또 서지학적으로도 〈삼강행실도〉는 조선 삽화(揷畵)의 대표적인 예로서 그 간본의 변천은 곧 조선 삽화의 변천이 될 수 있어 문화사적 자료로서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2. 삼강행실도의 편찬과 간행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한문본과 언해본이 있다.
조선 세종 10년(1428)에 진주의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서 대신들과 의논하게 되었는데, 세종은 직제학 설순(偰循)이 책임자가 되어 집현전에서 백성을 교화(敎化)시킬 수 있는 새로운 책을 편찬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때 세종은 특히 효(孝)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으며 중국의 ≪이십사효(二十四孝)≫(원나라 곽거경 편찬)에 새로 중국의 이름난 효자 20여 명을 증보하고, 또 우리나라 삼국(三國)과 고려(高麗) 시대의 효자로서 특출한 자들도 함께 모아 엮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 책은 세종 14년(1432) 6월에 초고가 완결되어 임금에게 올려졌는데, 이듬해에 각판이 완료되자 정초(鄭招)에게 발문을 작성케 하여 16년(1434) 11월 25일 인출(印出)함으로써 종친과 신료들, 그리고 각도(各道)에 반포하게 되었다. 권채(權採)의 서문에 따르면,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 가운데 참고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속에서 효자, 충신, 열녀를 각각 110명씩을 뽑아 그림을 앞에 새겨놓고, 그 행적을 뒤에 적되 찬시(讚詩)를 한 수씩 붙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한문본 ≪삼강행실도≫’이다.
이 책은 이후 후대에서 여러 번 간행되었으며, 성종 12년에는 열녀도만을 언해하여 ≪언문 삼강행실 열녀도≫를 찍어 간행한 적도 있지만, 이른바 ‘언해본 ≪삼강행실도≫’가 나온 것은 성종 21년의 일이다.
성종 20년(1489) 6월, 경기관찰사 박숭질(朴崇質)이 성종에게 아뢰기를, ‘세종조에는 ≪삼강행실도≫를 중외에 반포해서 민심을 선도하였는데, 이제 책이 귀해져서 관청에서조차 비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일반이 읽기 힘드니, 이것을 선록(選錄)하여 축소하되 목판인쇄는 매우 어려우니 활자(活字)로 인쇄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성종이 즉석에서 이를 받아들여 내용을 추려 1책으로 산정본(刪定本)을 간행케 명하였다. 이 언해본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인출 반포되었는데 현존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산정본을 그대로 중종 5년(1506)에 재간행하였으니 이것이 지금 남아 전한다. 이후 중중, 명종, 선조, 영조 때에 계속해서 간행된 이본들이 전하고 있다. 이 언해본 ≪삼강행실도≫는 효자, 충신, 열녀를 각각 35명씩 뽑아 모두 105명, 즉 원래 3권 3책인 것을 1책으로 대폭 축소하여 펴내게 된 것이다.

3. 세종의 〈삼강행실도〉 간행 기록

원고 검토가 끝난 원고본 〈삼강행실도〉는 권채의 서문에 의하면 곧 주자소에 넘겨져서 판각에 들어간 모양이며, 이 목판 작성은 원고본 완료부터 8개월 뒤인 세종 15년(1433) 2월에 완료되고 있다. 주자소는 이름 그대로 활자로 정부의 간행물을 간행하는 인쇄소였지만 목판 인쇄도 하였으며 세종 초간본의 글자체가 태종조의 계미자도 아니고 바로 그해에 새로 주조한 갑인자(甲寅字)와도 다르며, 명나라 초기의 관간(官刊)본에서 볼 수 있는 위부인체(衛夫人體)의 소위 한림체일 뿐 아니라 중국 명초 판본처럼 구두점까지 찍혀 있어서 이 특별본 출판을 위해서는 명체(明體)에 능한 문신이나 사자원(寫字員)을 시켜서 원고를 고치게 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해서 1433년 2월에 판각이 완료되자 세종은 예문 대제학 정초에게 발문을 작성케 하였고, 다시 1년 2개월 뒤인 1434년 4월에는 중추원사 윤회에게 삼강행실도 간행 반포의 뜻을 국민에게 알리는 임금의 교서를 쓰게 하였으며, 이 교서를 붙여서 인출하여 마침내 그해 11월 25일 〈삼강행실도〉 간행본이 종친과 신료들, 그리고 각도로 반포된 것이다.
이상의 〈삼강행실도〉 초간본 간행 경위를 연대별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세종 10년(1428) 10월 〈삼강행실도〉 편찬 하명.
세종 14년(1432) 6월 원고본 완료 진상.
세종 15년(1433) 2월 주자소 판각 완료. 발문 작성.
세종 16년(1434) 4월 교지 작성.
세종 16년(1434) 11월 내외 반포.
이상과 같은 진행 경위를 볼 때 언제 인쇄하였다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433년 2월 판각 완료와 함께 발문이 만들어졌고, 그 발문이 추각된 단계에서 인쇄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초인본(初印本)이 임금에게 진상되어 그것을 검토한 후 반포의 교지가 1434년 4월에 작성되고, 그 교지가 또 추각되어 드디어 완성본으로서 인쇄되고 제본 완료된 것이 1434년 11월인 것이다. 따라서 1433년 2월에서 1434년 4월까지의 14개월 동안은 ‘진삼강행실도(進三綱行實圖)’에서 발문에 이르는 중심부의 인쇄와 세종의 재검토 기간이었고, 그 뒤 교지를 추각 제본하는 데 1434년 4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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