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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1 : 13ㄱ

金遷贖母

1 : 13ㄴ

鄕吏金遷江陵府人高麗高宗末蒙兵來侵母與弟德麟被虜時遷年十五晝夜呼泣聞被虜者多道死服衰終制後十四年有百戶習成自元來傳遷母書遷知母在北州天老寨尋訪見之以白金五十五兩贖之而還後六年德麟亦來兄弟終身盡孝鄕人立石刻曰孝子里以㫌之
향니 김쳔은 강릉부 사이라 고려 고종 말애 몽고병이 침노 어미 아 덕린으로 더브러 사잡핌을 닙으니 시예 쳔이 나히 열다신 제로 자핌을 니븐 사이 길헤 주그리 만탄 듯고 몽상니버 복졔 찯더니 열네 만애 호 습셩이 원으로브터 오리 이셔 쳔의 어미 유모 뎐여 쳔이 어믜 븍 텬로채예 읻 알고 자 가보아 쉰단냥으로 사도라 오니라 여 만애 아 덕린이 오나 형뎨 죵신토록 효도 다니 일향 사이 돌 셰워 사겨 닐오 효 히라 하여 포니라
김천속모 - 김천이 어머니를 사다
향리인 김천은 강릉부 사람이다. 고려 고종 말에 몽고병이 쳐들어 왔으므로 어미와 아우 덕린이 함께 사로잡혀 갔다. 이 때 천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이 길에서 죽은 이가 많다는 말을 듣고 상복을 입고 장제를 마쳤다. 그 뒤로 열네 해만에 백호 습성(習成)이 원으로부터 와서 천의 어미 안부를 전하였다. 김천 어머니가 북주 천로채에 살아 있음을 알고 찾아가 은 쉰닷 냥을 주고 사서 돌아왔다. 그 뒤 여섯 해만에 아우 덕린이 돌아 왔다. 형제가 평생 효도를 다하니 고장 사람들이 돌비를 세우고 새겨 이르되, ‘효자마을’이라 하니, 정표를 세웠다.
어미 아 덕린으로 더브러 : 어머니와 아우 덕린으로 더불어. ‘아〉아〉아 우’로 소리가 약화되었다가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의 ‘아우’로 굳어진 것이다. 아직도 일부 방언에서 동생을 ‘아수’라 함을 고려하면, ‘아우’의 기원형은 ‘*아수’였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아爲弟〈훈민정음 해례 : 25〉. 弟아뎨〈석봉천자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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