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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5 : 65ㄱ

權氏節行

5 : 65ㄴ

權氏安東府 熱直長李安道妻也 事舅姑孝 夫歿著單衣 席藁晝夜哭 不絕聲者五月 既祥病益深 絕而復蘇 始飲煑粟汁 不粒食 不梳頭 不觧帶者 二十三年 甞曰吾所以 不死爲後事也 今若不立嗣死 無以見亡人於泉下 以夫弟詠道之子爲後 今上朝㫌門
권시 안동부 사이니 딕댱 니안도의 안해라 싀어버이 셤기믈 효도더니 지아비 죽거 혿옷 니브며 거적 고 듀야의 우러 소 그치디 아니키 다 리러라 이믜 샹호매 병이 더옥 기퍼 긔졀엿다가 도로 사라 비로소 달힌 조즙블 마시고 나 먹디 아니며 머리 빋디 아니며 그디 아니기 스믈세  니라 일즙 닐오 죽디 아니 바 이 위호미라 이제 만일 니우리 세디 아니면 주거셔 주근 사을 디하의 보디 몯 거시라 고 지아 아 영도의 아로 후 사므니라 금샹됴의 졍문시니라
권씨절행 - 권씨가 절개를 지키다
권씨는 안동부 사람이니, 직장 이안도(李安道)의 아내다. 시부모님을 효도로 섬겼는데, 지아비가 죽자 홑옷을 입고 거적을 깔고, 밤낮으로 울어 소리를 그치지 않기를 다섯 달 동안 하여, 몸이 상하여 병이 더욱 깊어져,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아서, 달인 조즙을 마시고, 쌀을 먹지 않으며, 머리를 빗지 않고, 띠를 끄르지 않기를 스무 세 해 동안 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내 죽지 않는 것은, 후사를 잇기 위함이다. 이제 만일 후사를 세우지 않으면, 죽어서 죽은 사람을 지하에 가서 보지 못할 것이다 하고, 지아비의 아우를 영도의 아들로 후사로 삼았다. 지금의 조정에서 정문을 세웠다.
딕댱 : 직장(直長). 조선 때 종7품의 벼슬. 봉상시, 종부시, 사옹원, 의금부, 상서원을 비롯한 30개 중앙(中央) 부서에 있었음.
이안도(李安道) : 중종 36년(1541)∼선조 17년(1584) 간의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봉원(逢原), 호는 몽재(蒙齋). 이황(李滉)의 장손.
다 리러라 : 다섯 달이더라.
달힌 조즙블 : 달인 조즙을.
나 : 쌀낱을.
 그디 : 띠를 끄르지.
일즙 : 일찍이. ‘일찍’의 15세기 형태는 ‘일’이다. 15세기에 ‘일’과 함께 나타나는 ‘일즉’은 ‘일+즉’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즉’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후 이 : 후사(後嗣) 잇기를.
니우리 : 후사(後嗣). 대를 잇는 자식.
세디 아니면 : 세우지 아니하면.
후 사므니라 : 후사를 삼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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