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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1 : 74ㄱ

應龜射賊

1 : 74ㄴ

定虜衛鄭應龜淸州人素以勇健知名壬辰倭亂紏合鄕人誓心殲賊賊猝至手下人望風逃散應龜橫劒彎弓突入賊中射殺其將被害今 上朝旌門
뎡노위 뎡응구 쳥 사이니 본 라고 건장므로 일홈 나더니 임진왜난의 일향 사을 뫼화 의 셔야 도적을 주기려 더니 도적이 겨 오니 손아래 사이 을 라보고 도망야 흐터디거 응구ㅣ 칼 빗기고 활을 의고 도적의 가온대로 돌입야 그 쟝슈 와 주기고 주기믈 닙다 금 샹됴애 졍문 시니라
응구사적 - 정응구가 왜장을 쏘아 죽이다
정로위(定虜衛)의 정응구(鄭應龜)는 청주(淸州) 사람인데, 본디부터 용맹하고 건장하여 이름이 났었다. 임진왜란 때 한 고을 사람을 모아 마음으로 맹세하기를 왜적을 죽이겠다고 하였는데, 왜적이 갑자기 오게 되니 부하 사람들이 그 기세를 보고 도망하여 흩어지매, 정응구는 칼을 비껴 차고 활을 잡아당겨 왜적 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장수를 쏘아 죽이고 자신도 전사하였다. 지금의 임금께서는 정문을 내리셨다.
정로위(定虜衛) : 조선 중종 7년(1512)에 처음 설치되어 광해군 무렵까지 존속한 병종(兵種). 지방의 한량을 선발하여 조직하였고, 내금위(內禁衛)의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필요에 의해 설치되었다. 의주(義州)에 군량미 3만 섬을 비축하여 군마를 확보하고, 축성과 철갑을 제조하였다. 또한 한량(閑良) 1,000명을 모집해서 북방에 보냈는데, 이들은 사복장(司僕將)이 통솔하게 하였다. 1528년에는 서얼(庶孼)을 뽑아 충당하였고, 1553년(명종 8)에는 여기에 모여드는 군사가 많아져 정원을 1,500명으로 한정하면서 사족(士族)에 한하는 등 신분에도 제한을 두었다.
정응구(鄭應龜) :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 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의 목을 벤 처음 일이라 선조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 때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본 : 본디.
라고 : 민첩하고. 용맹하고.
건장(健壯) : 몸이 튼튼하고 기운이 셈.
일향(一鄕) : 한 고을.
겨 : 갑자기. 즉시.
손아래[手下] : 여기서는 ‘부하(部下)’를 말함.
 라보고[望風] : 기세를 보고. 소문을 듣고 놀라서 맞서 보려고도 하지 않고.
빗기고 : 〈칼을〉 비껴 차고.
의고 : 당기고.
돌입(突入) : 세찬 기세로 갑자기 뛰어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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