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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정보

5 : 32ㄱ

召史割腿

5 : 32ㄴ

李召史高原郡人方世安妻也父狂疾召史割腿以服之得活 恭憲大王朝㫌門
니조이 고원군 사이니 방셰안의 겨지비라 아비 미친병엳거 조이 다리 버혀 받오니 살믈 얻다 공헌대왕됴애 졍문시니라
소사할퇴 - 이 조이가 다리뼈를 베다
이 조이는 고원군 사람으로 방세안의 아내였다. 아비 미친병에 걸렸거늘 조이가 다리뼈를 베어 드리니 살아났다. 공헌대왕 명종 때 정문을 내렸다.
니조이 : 이 조이는. 주로 아내[妻]의 성(姓) 뒤에 붙여 써서 부르는 미칭(美稱)이다.
조이 : ‘소사(召史)’의 우리말식 표기. ‘조이’라는 말은 신분에 걸림이 없이 여자의 미칭(美稱)으로 널리 쓰였다. ‘조이[召史]’가 확인되기로는 13세기부터다. 소리는 ‘조시[cosi]’로 적히다가 조선조 초부터 ‘조이[co-i]’로 변화하자 ‘조이(助吏), 조시(助是)’로 전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로 후대까지 계속된 것은 문자의 보수성에 기인된 것으로 이해된다. 현대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에서는 ‘조이’라는 올림말은 없고, ‘소사(召史)’를 ‘성의 아래에 붙여서 홀어미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현대국어에서 ‘소사’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지만, 이 책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언해문에서는 모두 ‘조이’로 적고 있고, 최남선의 『신자전』에도 “召史조이 良家妻又云寡婦見吏讀”라고 적고 있음을 볼 때 우리말인 ‘조이’로 적음이 타당하다고 본다. 추측컨대 ‘조이’는 ‘좋은이(도우미)〉좋이〉조이’의 말이 아닐까 싶다. 『성종실록』 성종 2년(1471) 6월 23일 기사에는, “익산 사람 학생 조민(曹敏)의 처 조이[召史]는 지아비가 죽으매 3년상을 행하고, 머리를 깍아 중이 되어 그 지아비의 형상을 그려 벽에 걸고 조석으로 분향하고 치전(致奠)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와 비슷한 말로, 현대국어에서는 주로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여사(女史)’를 많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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