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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효경언해+책정보

지1ㄱ

右孝經一書 迺孔子曾子授受之要旨也 經秦火後頗多錯簡至宋大儒朱文公先生 始取古文爲之考訂刊其繆誤 次其簡編 而後經傳各有統紀 董季亨氏又從而註釋之 而其旨益明讀者誠能 因其言而求諸心因心之同然而推之 家國天下 則天下之道 盡在是矣 惜乎 是書板行者少 而窮鄕下邑之士不得盡覩也 予近按泉偶於進士蔡介甫家 得是書舊本 遂命工鋟梓以傳將使四方得以家傳人誦 各興其親愛之心而篤 夫仁孝

지1ㄴ

之道庶或少補於風敎之萬一云爾
成化二十二年歲次丙午秋九月甲子 賜進士通奉大夫福建等處承宣布政使司右布政使 淳安 徐貫 謹識
위(오른쪽)의 『효경』 한 책은, 곧 공자와 증자가 주고받은 요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거친 뒤 자못 잘못된 판본들이 나타났으므로 송(宋)나라의 대석학인 주문공 선생에 와서 비로소 고문(古文)을 취하여 저본을 삼아 『효경』의 잘못을 바로 잡았다. 차례도 간편하게 엮었다. 그런 뒤에 경전으로서의 기틀을 잡았다. 동계형(董季亨)이 주문공을 따라서 주석을 붙였으니, 그 뜻은 더욱 명백해졌고 독자는 진실로 잘 읽을 수 있었다. 그 말을 인하여 하나 됨을 구하였고 같은 마음으로 인하여 그럴 개연성을 미루어 짐작하였다. 집과 나라와 천하의 도리는 다 여기에 있다. 안타깝다. 효경의 간행이 적었기에 궁벽진 고을이나 마을에서는 이 책을 얻어 보기가 어렵다. 나는 최근에 안천(按泉)에 갔다가 우연하게 진사 채개보(蔡介甫)의 집에서 『효경』의 구본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일하는 공인에게 명하여 새겨 전하여 사방으로 널리 펴도록 하였다. 집집으로 전하고 사람마다 이를 외우게 하여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두터이 하였다. 무릇 인효의 도리를 널리 혹은 아주 적게라도 풍속 교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성화 22년(1486) 병오년 가을 9월 갑자일에 진사 통봉대부 복건 등에게 하사하였다. 이어 포정사사에 널리 펴도록 하였다. 우포정사 순안 서관 삼가 적다.
서관 근지(徐貫謹識) : 이 글은 『효경대의』의 마지막 부분인 발문 앞에 있는 글이다. 『효경대의』의 내용은 앞의 언해본과 같으므로 생략하고 서관의 글만 옮겨 보인다.
송대유주문공선생(宋大儒朱文公先生) : 주희(朱熹)를 가리킴. 그가 『효경간오(孝經刊誤)』를 지었다고 한다. 중국 남송의 유학자(1130~1200)로,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도 불린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 여러가지가 있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맹자, 공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하였으며 오경의 진의를 밝히고 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시취고문위지고정간기무오(始取古文爲之考訂刊其繆誤) : 비로소 고문을 취하여 저본으로 삼아 효경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바로잡았다. 여기서 고문(古文)이란 『고문효경』이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는 말은 『효경간오(孝經刊誤)』를 펴냈다는 것이다.
동계형씨우종이주석지(董季亨氏又從而註釋之) : 동계형 씨가 주문공이 엮은 책을 따라 주석을 붙였다. 이 말은 곧 주희의 『효경간오』를 보고 『효경대의』를 편찬하였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득시서구본(得是書舊本) : 이 책 구본(舊本)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구본은 『효경대의』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그 동안 오랜 세월이 흘러 책을 구할 수 없었고 비로소 아주 오래된 책을 구하게 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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