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별행록절요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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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별행록절요언해
역주 별행록절요언해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諺解)』는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이 저술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1209, 고려 희종 5)를 언해한 책이다. 1522년(조선 중종 17)에 간행되었는데, 간행처와 언해자를 알 수 없다. 언해의 대상인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당나라 때 선사(禪師)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의 저술인 선(禪) 수행 지침서 『법집별행록』의 주요 내용을 간추리고[절요(節要)], 그를 바탕으로 자기 견해를 기록한[사기(私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법집별행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유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과정 수료, 문학박사

보성여자고등학교 교사

동국대, 강원대, 상명대, 강남대, 선문대 강사

상명대학교 연구교수, 현재 동국대학교 교수

〈저서〉

17세기 국어 문장 종결 형식의 연구(박사논문)

중세국어와 근대국어 문장종결형식의 연구, 역락

금강경언해 주해, 공저, 동악어문학회

선종영가집언해의 국어학적 연구(상), 공저, 태학사

역주 남명집언해(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법화경언해(권7),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원각경언해(권4),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원각경언해(권7),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금강경삼가해(권3-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석보상절(권9), 동국대학교 출판부

〈주논문〉

‘-이’계 종결 형식의 기능, 국어국문학 126.

{-가}계 의문종결형식의 구조, 국어국문학 131.

『마경초집언해』의 어휘 연구(1), 한국어문학연구 43.

현대국어 의문문 종결형식의 구조, 한국언어문학 55.

선어말 형태소 ‘-지-’의 형태론과 통사론 : 중세국어와 근대국어를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145.

반말의 성격과 청자대우체계의 실상, 동악어문학 57.

석보상절 제 9권의 내용과 언어 현상, 동악어문학 65.

서정주의 시어에 대한 국어학적 해명, 한국문학연구 52.

역주위원

별행록절요언해 : 이유기(동국대학교 교수)

교열·윤문·색인위원

  • 별행록절요언해 : 성낙수, 홍현보

세종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한무희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남문현
  • 리의도 박종국 박충순 성낙수
  • 심우섭 임홍빈 최홍식

『역주 별행록절요언해』를 내면서

우리 회는 1956년 10월 9일 창립 후 세종대왕기념사업의 중심 전당인 세종대왕기념관을 건립하고 세종문화진열실과 연구실을 마련 운영 관리하며, 세종성왕의 정신과 위업의 연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 한글 전용과 국학 진흥을 위하여 「한문고전국역사업」과 「한글고전역주사업」을 1967년에 기획하여 1968년부터 계속 수행하고 있다.

「한문고전국역사업」은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을 국역 간행하기 시작하여 실록의 한문 원문 901권을 완역 발간하였고, 일반 한문고전으로 『증보문헌비고』, 『매월당집』, 『국조인물고』, 『동국통감』, 『승정원일기』(순종), 『육일재총서』, 『치평요람』 등 수많은 국학자료를 국역 발간하였으며, 계속하여 『각사등록』, 『연행록』, 『의방유취』 등 문헌의 국역 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한글고전역주사업」은 1990년 6월에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 9, 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바, 2016년 12월까지 역주 발행한 문헌은 『석보상절』 4책, 『월인석보』(훈민정음언해본 포함)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금강경삼가해』 5책, 『구급방언해』 2책, 『삼강행실도』 1책, 『두시언해』 11책, 『소학언해』 4책, 『사서언해』(논어, 대학, 중용, 맹자) 6책, 『이륜행실도』 1책, 『동국신속삼강행실도』 5책, 『시경언해』 4책, 『서경언해』 2책, 『가례언해』 4책, 『여소학언해』 2책, 『오륜행실도』 5책, 『윤음언해』 1책, 『마경초집언해』 2책, 『주역언해』 2책 등 139책을 발간하였고, 2017년인 금년에도 『별행록절요언해』 등 14책을 역주 간행할 예정이다.

우리 회 창립 61돌이자 한글 반포 571돌이 되는 올해는 우리 회가 「한문고전국역사업」을 착수한 지 49돌이 되었고, 「한글고전역주사업」을 추진한 지 27돌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 회가 낸 800여 책의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 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이래 최고의 한글 국역,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그 결과 고전의 대중화를 통한 지식 개발 사회의 문화 자본 구축과 역사 의식 및 한국학 연구 활성화에 기여는 물론, 새 겨레문화 창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자부하는 바,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별행록절요언해(別行錄節要諺解)』의 본디 이름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諺解)』이다. 이 책은 당나라 선사 규봉 종밀이 저술한 『법집별행록(法集別行錄)』을, 고려 보조국사 목우자 지눌이 절요(節要)와 사기(私記)를 덧붙여 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를, 또 다시 한글 토를 달고 언해문과 함께 새겨 간행한 책이다. 조선 중종 17년(1522)에 간행되었으나 간행처와 언해자를 알 수 없다.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가 참선 수행 지도서로서 얼마나 중요한 위상을 지녔는지는 1486년~1740년 사이의 현전 간본이 총 27종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회에서 이 책을 역주·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맡아주신 동국대학교 이유기 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주신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2017년 12월 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최홍식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하고, 삼강오륜과 같은 윤리를 국시와 같이 여기고, 그런 내용이 응축되어 있는 사서삼경 등을 철저히 연구하고 신봉하였다. 역사적인 면으로도 사서나 동국통감 등도 중요하게 다루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한문으로 써 있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쉽게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도덕과 예절을 반듯이 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책들을 언해하도록 하였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옛 선인들의 훌륭한 예절과 의리, 충절 등을 알게 하고, 우리말과 글에 대한 문화적 유산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역주 사업을 오래 전부터 전개하여 왔으며, 그 일환으로 이 『별행록절요언해』의 역주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쉬운 오늘날의 우리말과 표기로 주를 달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국어학을 공부하는 이들도 옛말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줄여서 『별행록절요언해』)는, 신광사본(神光寺本, 1570년, 황해도 해주 신광사 간행)을 저본으로 하였는데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원문)보기’로 내용 전체를 열람하고 다운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역주와 해제에서는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와 언해서를 대조하였다.

(2) 언해본은 한문 원문의 내용을 뺀 부분이 적지 않다. 제외된 내용은 모두 지눌이 덧붙인 ‘사기(私記)’이다. 내용이 빠진 위치를 ○○○으로 표시한다.

(3) 이 책의 편집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문본 원문·언해본 원문·현대문·옛말과 용어 주해’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이때 원문의 쪽수를 다음 보기와 같이 표시하였다. 홀수쪽은 ‘ㄱ’, 짝수쪽은 ‘ㄴ’으로 하였다.

〈보기〉

제1쪽 앞면 - 1ㄱ牧牛子ㅣ 曰호

제1쪽 뒷면 - 1ㄴ牧·목牛우子ㅣ 닐오

(4) 옛말을 현대어로 옮길 때에는 의역을 하지 않고, 옛말의 의미가 살아있도록 딴 말을 덧붙이지 않는 데 원칙을 두었다.

(5) 한문 내용과 언해 부분은 네모틀에 넣어, 현대어 풀이·주석과 구분이 되도록 하였다.

(6) 현대국어 풀이에서 옛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덧붙인 내용은 ( ) 안에 넣었다.

(7) 찾아보기 배열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ㄱ ㄴ ㄷ ㄸ ㅁ ㅂ ㅳ ㅄ ㅶ ㅅ ㅺ ㅼ ㅽ ㅾ ㅈ ㅊ ㅋ ㅌ ㅍ ㅎ

② 중성순: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ㄱ ㄴ ㄷ ㄹ ㄺ ㄼ ㅁ ㅂ ㅇ ㅈ ㅊ ㅎ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 해제
이유기(동국대학교 교수)

1. 머리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諺解)』는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이 저술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1209, 고려 희종 5)를 언해한 책이다. 1522년(조선 중종 17)에 간행되었는데, 간행처와 언해자를 알 수 없다. 언해의 대상인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당나라 때 선사(禪師)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의 저술인 선(禪) 수행 지침서 『법집별행록』의 주요 내용을 간추리고[절요(節要)], 그를 바탕으로 자기 견해를 기록한[사기(私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법집별행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주001)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이 지눌의 『법집별행록』을 주해한 『법집별행록절요과목병입사기』 이후, 연담유일의 책이 『사기(私記)』로 불리고, 지눌의 책은 『절요(節要)』로 불리고 있다. 이 글에서도 약칭을 쓸 경우에는 이를 따르기로 한다. 아울러 이에 따라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는 『절요언해』라 줄여 부를 것이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언해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한 책은 성암고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이하 ‘성암본’이라 부름.), 또 한 책은 남권희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성암본은 일찍이 안병희(1985)에 의해 소개되었고, 1998년 『서지학보』(제22호)에 영인되어 실렸다. 성암본은 낙장이 아주 많은데, 『서지학보』의 영인에서는 낙장 중 일부를 남권희본에서 보완하여, 총 19장을 제외한 나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언해서의 저경이 어느 책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언해서 이전에 나온 한문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중 현전하고 있는 조선 시대 판본은 규봉암본(圭峰庵本, 1486, 전라도 광주 규봉암 간행)밖에 없다. 주002)
전남 영광 불갑사(佛甲寺) 사천왕상 복장 유물 중 고려본으로 추정되는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가 있다(송일기 2004a:73, 131 ; 송일기 2004b:19-20).
이 언해서의 저경을 추정하고자 한다면, 비록 근거가 충분치 않지만 규봉암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규봉암본의 실물이나 영인본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규봉암본의 1ㄱ(첫 면), 25ㄴ, 26ㄱ, 58ㄴ(마지막 면)의 이미지를 보건대, 규봉암본과 신광사본(神光寺本, 1570년, 황해도 해주 신광사 간행)은 글자 모양이 미세하게 다를 뿐, 다른 점에서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광사본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원문)보기’로 내용 전체를 열람하고 다운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역주와 해제에서는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와 언해서를 대조하였다. 주003)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청구기호는 ‘古貴 1797-8’. 책명은 실수로 ‘병’이 빠진 ‘법집별행록절요입사기’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서지 사항과 국어학적 특징에 대해서는 안병희(1985)에서 이미 치밀하게 살펴본 바 있고, 그 이후에 최은규(1998), 김양원(2003), 이은영(2005) 등도 같은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미 밝혀진 것은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하는 데에 그치고, 그보다는 종래에 소개되지 않은 언해의 특징 및 문제점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2. 법집별행록과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2.1. 종밀과 법집별행록

이 언해서의 저경인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이하 ‘절요’)는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의 『법집별행록』의 내용을 간추리고 사사로운 견해를 적어 넣은 책이다. ‘별행(別行)’의 의미에 대해서는 회암정혜(晦菴定慧)와 연담유일(蓮潭有一)이 밝힌 바 있다. 즉 규봉 종밀이 참선 수행의 4종파인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 마조(馬祖)의 홍주선(洪州禪), 법융(法融)의 우두선(牛頭禪), 하택신회(荷澤神會)의 하택종(荷澤宗)을 비교한 다음, 그 중 하택종이 가장 나은 것으로 판단하여 특별히 유통하게 하였기 때문에 ‘별행(別行)’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004)
①法集別行者通集諸宗之法 而別行菏澤之法(회암정회, 法集別行錄節要私記解,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②法集別行者 四宗之法集之 而荷澤宗別行於世也.(연담유일, 法集別行錄節要科目幷入私記,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그런데 정작 『법집별행록』 또는 『법집』이란 책은 전하지 않는다. 불교학계에서는 지눌의 『절요』 중 ‘사기(私記)’를 제외한 ‘법집별행록절요’ 부분이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약칭: 사자승습도)와 거의 일치하는 것을 근거로 삼아, 『사자승습도』와 『법집』을 동일시하거나, 원류(源流)가 하나인 것으로 보고 있다(최연식 1999:117, 상오 2001:5). 주005)
신규탁(2010:117-203, 311)은 『사자승습도』의 원문과 번역문을 싣고, 『사자승습도』가 『법집별행록』이라고 단정하였다. 두 책의 관련성을 처음 밝힌 것은 字井伯壽(1966)이다.
『사자승습도』는 선종(禪宗)의 종파(宗派)에 대한 배휴(裴休, 791-864)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작성한 종밀(宗密)의 저작이다. 한편 배휴가 지은 「화엄원인론서(華嚴原人論序)」라는 글이 바로 「법집서(法集序)」의 와전(訛傳)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006)
송나라 때 정원(淨源) 법사는 『전당문(全唐文)』 「배휴조(裴休條)」에 실린 배휴(裴休)의 글 「화엄원인론서(華嚴原人論序)」가 「법집서(法集序)」의 와전이라고 주장하였다(淨源, 『原人發微錄』, 신찬속장경 58-719 중-하). 배휴(裴休)의 글과 번역문은 신규탁(2010:25-33)에 실려 있다.

2.2. 지눌과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지눌(知訥, 1158~1210)은 고려 선종(禪宗)의 중흥조이다.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며, 시호(諡號)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황해도 서흥(瑞興)에서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이었던 정광우(鄭光遇)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에 출가하였는데, 특별한 스승은 없었고 육조 혜능(六祖慧能)을 특별히 흠모하였다고 한다.
1182년(명종 12)에 승과(僧科)에 합격하고 곧 이어 보리사(菩提寺)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을 것을 결의하였다. 1200년(신종 3)에 길상사(吉祥寺)에서 정혜결사 운동을 계속하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길상사는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이다. 돈오 점수(頓悟漸修)를 역설하고, 점수(漸修)의 방법으로는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강조하였다.
저서에는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염불요문(念佛要門)』 등이 있다.
지눌의 『절요』는 우리나라 선종의 4집과(四集科) 교재 중의 하나이다. 4집과 교재란 제월경헌(霽月敬軒, 1544-1633)이 1578년에 제시한 참선 수행의 교과 과정이다(손성필 2013:16).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節要)』,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가 그것인데, 각각 『도서(都序)』, 『절요(節要)』, 『선요(禪要)』, 『서장(書狀)』이라 줄여 부른다.
지눌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가 참선 수행 지도서로서 얼마나 중요한 위상을 지녔는지는 1486년~1740년 사이의 현전 간본이 총 27종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송일기·김동연 2016). 이 책에 대한 주석서로는 상봉정원(霜峰淨源, 1627년~1709)의 『절요사기분과(節要私記分科)』(전하지 않음), 설암추붕(雪巖秋鵬, 1651~1706)의 『법집별행록절요사기』, 회암정혜(晦庵定慧, 1685~1741)의 『법집별행록절요사기해(法集別行錄節要私記解)』,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법집별행록절요과목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科目幷入私記)』가 있다. 현대의 현토 주석서로는 안진호(1957), 안진호·조계종교재편찬위원회(1998), 대한불교조계종 교재편찬위원회(2005)가 있으며, 현대의 번역서로는 회암정혜와 연담유일의 주석까지 함께 붙여서 번역한 상오(2001)이 있다.

3.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

3.1. 문헌 개요

여기에서는 성암문고본을 대상으로 하여, 서지 사항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이 언해서의 간행처와 언해자는 알 수 없다. ‘嘉靖元年季春有 日’이란 간기를 통해 1522년(중종 17)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오역이 아주 많은 것으로 보아,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언해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책은 앞뒤가 보존되지 않은 1책의 목판본이다. 해제를 통해 이 책의 모습을 알린 안병희(1985:2)는 구겨진 책장을 편 흔적이 뚜렷하고 개장(改裝)된 지 오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해책(解冊) 상태의 복장품이 발굴된 뒤에 제책(製冊)된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 장차가 113장(226면)인데, 약 58면의 낙장이 있다. 낙장이 1/4이 넘는 셈이다. 낙장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1ㄱ, 17ㄱㄴ, 39ㄱ, 40ㄱ-48ㄴ, 55ㄴ, 67ㄱ, 68ㄱㄴ, 84ㄴ, 93ㄱ-96ㄱ, 98ㄱ-106ㄴ, 109ㄱ-110ㄴ, 112ㄱㄴ(총 58면)
이 책의 영인은 『서지학보』 제22호(1998)에 실렸는데, 낙장된 58면 중 20면을 남권희본으로 보하여, 다음 총 38면을 제외한 나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 17ㄱㄴ, 39ㄱ, 40ㄱ, 55ㄴ, 67ㄱ, 68ㄱㄴ, 84ㄴ, 93ㄱ-95ㄴ, 96ㄴ, 98ㄱ-105ㄴ, 109ㄱ-110ㄴ, 112ㄱㄴ(총 38면)
이 책의 권수제는 ‘法법集집別별行ᄒᆡᇰ錄록’이며, 판심 서명은 ‘別行錄’이다. 제29-32장의 판심제 ‘別行錄’ 바로 아래에는 ‘一’ 자가 적혀 있다. 혹시 제2권을 준비하다가 계획을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주007)
이 언해서에서 언해한 내용은 한문본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데, 특히 거의 끝 부분에서 거의 절반 정도가 언해에서 제외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언해를 완결짓지 못하고 서둘러 끝낸 듯하다.
이 책의 판심 서명이 ‘別行錄’인 것은 지눌의 『절요』의 판심 서명이 ‘私記’ 또는 ‘私’인 것과 다르다. 책의 내용은 종밀의 저술을 절요(節要)한 ‘법집별행록절요’(이하 필요에 따라 ‘절요’라 칭함.)와 지눌의 저술인 ‘사기(私記)’로 나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둘이 시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즉 ‘절요’와 ‘사기’의 구별이 없다. 둘을 구별하지 않은 채 구결 달린 원문은 맨 위 칸을 비우지 않고 언해문은 맨 위 칸을 비웠을 뿐이다. 이와 달리 신광사본(한문본)에서는 ‘절요’는 행의 맨 위 칸을 비우지 않고 ‘사기’는 한 칸을 비워서 구별하고 있다. 다른 한문본도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협주의 형식도 특이하다. 흑구 어미를 사용하지 않고 협주가 시작되는 위치에 ○ 부호를 두고 소자(小字) 쌍행(雙行)으로 적었다. 협주가 끝나는 위치에는 아무런 부호가 없다(9ㄱ, 13ㄴ, 19ㄱ, 21ㄱ …). 그런가 하면 협주 부분에 아예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곳도 있고(12ㄱ, 60ㄴ …), 협주가 끝나는 위치에까지 ◯이 표시된 곳이 더러 보인다(77ㄴ 2회, 81ㄴ, 84ㄱ). 더 특이한 것은 구결 달린 원문에도 협주가 달린 경우가 있는 것이다(21ㄱ-ㄴ, 26ㄴ, 27ㄴ, 28ㄱ, 67ㄴ 3회, 86ㄱ). 필자가 확인한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근거로 추정컨대, 이것은 한문본의 협주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주008)
엄밀히 말하면 여기에 나타나는 협주들은 내용 면에서 협주로 기록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 언해자가 범한 실수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한다. 한편 원문에 협주를 단 것도 특이하지만, 원문에 협주를 달고도 언해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3) 文繁 不具載시니라(29ㄱ)
예문 (3)은 원문에 달린 협주 부분인데 언해에서는 제외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예는 내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일반적인 협주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이다.

3.2. 국어학적 특징

(1) ㅿ

이 책에서는 반치음이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ㅅ’으로 변화한 예도 보이고, 15세기에 ‘ㅇ’이나 ‘ㅅ’으로 표기되었던 것을 ‘ㅿ’으로 표기한 과잉교정의 사례도 보인다.
(4) 가. ᄆᆞᅀᆞᆷ(9ㄱ), 지ᅀᅳ며(13ㄴ), ᄉᆞᅀᅵ(37ㄱ), ᄒᆞ야ᅀᅡ(97ㄴ)
나. ᄉᆞ시(14ㄱ, 53ㄱ), 지수미(89ㄴ), 지술(106ㄴ)
다. ᅀᅵ셔(65ㄱ), 비르ᅀᅥ(54ㄱ)
라. 修슈心심人인(2ㄱ), 倖然연(2ㄱ)
(4가)는 15세기의 일반적인 표기법과 같이 쓰인 것이고, (4나)는 ‘ᄉᆞᅀᅵ, 지ᅀᅮ미, 지ᅀᅮᆯ’의 ‘ㅿ’이 ‘ㅅ’으로 변한 예이고, (4다)는 과잉교정의 예이며, (4라)는 한자음의 ‘ㅿ’이 ‘ㅇ’으로 변한 예이다. (4다)의 ‘비르ᅀᅥ’는 다른 문헌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이 책에서만 보이는데, 예가 아주 많다. 그러나 ‘비르서’의 용례도 적지 않다.
(5) 가. 비르ᅀᅥ : 40ㄴ, 45ㄴ, 47ㄴ, 54ㄱ, 59ㄱ, 65ㄱ, 81ㄴ
나. 비르서 : 19ㄴ, 27ㄴ, 40ㄴ

(2) ㆁ

‘ㆁ’은 음절 종성으로만 나타난다.
(6) 宗(1ㄴ), 볼디언(2ㄴ), 이ᇰ에(18ㄱ, 34ㄱ, 86ㄱ), 이(67ㄴ), 버ᇰ으다(75ㄴ)

(3) 방점

이 책의 성조 표시는 대단히 혼란스럽다. 방점이 있기는 하나, 아무런 원칙도 없고 일관성도 없다.
(7) 가. ·디 아·니·케 ·시·니라(2ㄴ)
나. ①알오져 홀딘댄(42ㄱ) ②보:고져 :홀·딘·댄(50ㄴ)
다. ①아:라(53ㄱ) ②아·라(53ㄱ)
라. ①:닷(2ㄴ) ②닷(83ㄱ)
(7가)에서는 어절말 거성의 평성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선종영가집언해』(1464)에서 이미 그 싹이 보이던 현상이다. (7나-라)는 동일한 어절이 서로 다르게 표시된 것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7다)에서는 같은 면 안에서의 혼란상을 볼 수 있다.
다른 언해서와 달리 원문에 한자음(전통적 한자음)이 달려 있는데, 원문의 구결에도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가 하면 방점을 찍지 않은 곳도 있다. 42ㄱ~ㄴ의 언해문 총 8행에는 방점이 전혀 찍히지 않았다. 그리고 40ㄴ의 언해문에서는 총 6행 중 제1행에만 방점이 찍히고 나머지 5행에는 방점이 전혀 찍히지 않았다. 주009)
방점이 찍히지 않은 두 곳은 모두 남권희본의 것이다.

(4) 중철

이 책에서는 중철의 예가 고유어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한자어와 고유어가 연결될 때에도 많이 나타난다. 이것은 16세기 전반의 문헌에서 보이는 표기 현상이다. 종성 ‘ㄱ, ㄴ, ㄷ, ㄹ, ㅁ, ㅂ’의 순서로 제시한다.
(8) 가. 반기(14ㄴ), 옥개 나며(73ㄱ), 눈 기(106ㄱ)
나. 靈覺기라(56ㄴ2), 裴相國기(61ㄱ), 樂(66ㄴ)
(9) 가. 니며(28ㄴ)
나. 世間냇(6ㄴ), 聖人(77ㄴ), 관원(65ㄴ)
(10) ᄠᅳᆮ든(11ㄴ), 드로(13ㄴ), 디(20ㄱ)
(11) 時節레(5ㄱ), 每日레(7ㄱ), 知訥른 私記시니라(115ㄱ)
(12) 가. 삼면(2ㄴ), 석 뎜미(31ㄱ)
나. 本心믜(69ㄴ), 龜鑑(77ㄴ), 一念메(96ㄱ)
(13) 가. 여듧(96ㄱ)
나. 法비(28ㄱ), 法베(80ㄴ), 多劫베(72ㄱ)

(5) 관형격 조사의 형태

이 책에서는 관형격 조사 ‘의’나 처소 관형격 조사 ‘엣/앳’이 쓰일 위치에 부사격 조사가 쓰인 예가 많이 보인다. 이것은 중세국어 문헌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
(14) 가. 그러나 우희 三宗이 가지가짓 마리 디 아니나 다 이 二利行門에 제곰 맛호 조 디라  허믈 업스니라(29ㄴ)
나. 이 우희 頓悟와 漸修와 다 부텻 나가 經敎브터 니시니라(97ㄱ)
다. 이 後에 漸修 圓滿 漸修ㅣ니(71ㄴ)
라. 諸大乘經과  古今에 諸宗 禪門과 荷澤에 릴오 븓건댄(52ㄱ)
마. ᄭᅮ메 져ᇰ스ᇰ이(67ㄴ)
바. 祖師宗애 無心 道애 契合 사 定과 慧와의 걸이 닙디 아니니라(89ㄴ).
(14가, 나)의 ‘우희’는 ‘우흿’이 기대되는 자리에 쓰였다. (14다)의 ‘後에’는 ‘後ㅅ, 後엣’이 쓰일 위치에, (14라)의 ‘古今에, 荷澤에’는 ‘古今엣, 荷澤ᄋᆡ’가 쓰일 위치에, (14마)의 ‘ᄭᅮ메’는 ‘ᄭᅮ멧’이 쓰일 위치에, (14바)의 ‘祖師宗애’는 ‘祖師宗ᄋᆡ’가 쓰일 위치에 나타났다.
이 현상은 이 시기에 이미 부사격 조사 ‘에, 애’와 관형격 조사 ‘의, ᄋᆡ’가 비변별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것은 오늘날 관형격 조사 ‘의’를 [에]로 발음하는 경향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국어의 이 현상은 정확하게 말하면 정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즉 관형격 조사 [에](음성언어)를 표기 규정에서 ‘의’로 표기하기로 정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4가-바)에 나타난 외형상의 부사격 조사는 언해자가 관형격 조사로 인지하고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3.3. 언해의 특징

(1) 부분 번역

이 언해서에서는 한문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일부만을 언해하였다.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와 대비해 보면, 여러 곳에서 일부 내용을 언해 대상에서 제외하였는데, 거의 끝에 가서는 한문본의 절반이 넘는 분량을 통째로 제외하였다. 제외된 내용은 모두 지눌이 덧붙인 ‘사기(私記)’이다. 내용이 빠진 위치를 ○○○으로 표시한다. 주010)
끝에 가서 절반 가량을 언해에서 제외한 사실은 애초에 이 언해서를 두 책으로 간행하려다가 계획을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15) 언해에서 제외된 내용
가. 牧牛子 曰호 ○○○ 自大師法眼이(언해서 77ㄱ)
제외된 내용 : 若論修證頓漸 義勢多端 撮其樞要 不出此錄中 頓悟漸修耳 審諸師所說 分列名義 開合不同 且如貞元疏云 第五辨修證淺深者 然一經之內上下諸文 皆明修證 恐文浩愽 復撮其要(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5ㄴ-16ㄱ)
나. 若云호 寂照ㅣ라 며 或知無念이라 호 則雙明定慧也ㅣ니라 ○○○ 前云호(82ㄱ)
제외된 내용 : 若云揚眉瞪目 皆稱爲道 即此名修 此通二義 一令知其 觸目爲道 即慧門也 二令心無所當 則定門也 餘可類知 不出定慧 牧牛子 每恨講師 不學禪法 及看澄觀所撰貞元疏 至辨脩證門 喜其合明禪旨故 錄之于此 其中所悟心之性相 能悟定慧二門 非此錄中 對辨要急之義 然恐學敎人 只以此文所明 全收禪法故 略辨得失 令生正信爾 就能悟門 明定慧(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7ㄱ)
다. 然이나 禪門 ○○○ 頓敎애(82ㄴ)
제외된 내용 : 以有能悟所悟修治之門 屬於漸宗 離垢定慧 以心地無癡無亂 離能所觀 名頓宗 自性定慧 行相有異 辨明修之 即其冝矣 又引禪門 無念無修拂迹顯理等 屬於定門 看心觀心等名慧門 或寂照 或知無念等 爲雙明也 然禪門 唯北宗定慧 有漸次先後之義 頓宗全無單修之相 況拂迹顯理之門 何有定慧之名迹耶 淸凉非不知 且以言迹分之 令汎學軰 知修行 不出定慧爾 夫心有法義之殊 宗師據法離言 以無迹之言 令人破執現宗 是謂迹絶於意地 理現於心源矣 學者因師激發 頓悟一法則心之義用 自然現發故 於破執現宗門 無是定是慧 隨義之說也(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7ㄱ-ㄴ)
라. 如是修行 方爲正門 成兩足尊 非認名執相之流所見所行也(84ㄴ 낙장 부분) ○○○
제외된 내용 : 禪門 揚眉瞪目之作用 云此通定慧二義 若約功行門義用 言之定慧 是諸聖修因之大意 經論之通宗 然禪門達者 揚眉瞬目現道之作 本非義理所傳 是達士相逢 文外相見 以心傳心之作用也 故先德云 妙旨迅速 言說來遲 纔隨語會 迷卻神機 揚眉當問 對面熙怡 是何境界 同道方知 據此而論(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8ㄱ-ㄴ)
마. 此無心合道ᄂᆞᆫ 亦是徑截門得入也ㅣ니라 ○○○ 此下ᄂᆞᆫ 正是所辨悟修頓漸義也 ᄒᆞ시니라(91ㄱ)
제외된 내용 : 其看話下語 方便妙密 不可具陳 但罕遇知音耳(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20ㄱ)
바. 運心頓修ㅣ오 不言功行頓畢ᄒᆞ시니라(97ㄱ) ○○○ 云無ᄅᆞᆯ 不離日用ᄒᆞ야 試如此做工夫ㅣ어다(106ㄱ)
제외된 내용 : 약 63면(기재를 생략함)(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25ㄱ~57ㄱ)
사.又云ᄒᆞᄃᆡ(107ㄱ) ○○○ 趙州狗子無佛性話ᄅᆞᆯ 喜怒靜閙에 亦須提撕ᄒᆞ야(107ㄴ)
제외된 내용 : 牧牛子曰 此法語 但彰八種病若檢前後所說 有眞無之無 將迷待悟等二種 故合成十種病也(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57ㄱ)
가장 많은 분량이 빠진 곳은 (15바)이다. 그런데 중간의 낙장 때문에 언해에서 제외된 부분의 범위가 분명치 않다. 언해서 97ㄱ의 원문 ‘運心頓修 不言功行頓畢’은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25ㄱ에 해당하는데, 낙장(98ㄱ~105ㄴ : 총 14면) 끝에 다시 이어지는 언해서의 106ㄱ은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57ㄱ에 해당한다.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가 총 108면(1ㄱ~59ㄴ)인데, 여기에서만도 그 중 약 63면(25ㄱ~57ㄱ)이 언해서에는 빠져 있는 것이다. 모두 ‘사기’ 부분이다. 중간의 낙장(총 14면)이 비교적 많기는 하지만, 한문본 1ㄱ-ㄴ이 언해서에서는 1ㄱ-5ㄴ(5배)에 해당하는 것을 고려하면, 낙장인 14면의 한문 원문은 3면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위치에서 적어도 61면 정도가 언해에서 제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광사본 『절요』가 총 108면(1ㄱ~59ㄴ)이므로 61면은 절반이 넘는 분량이다. 주011)
언해서만 두고 본다면 ‘절요’ 부분과 ‘사기’ 부분의 분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 대문(大文)의 수가 ‘절요’는 50개, ‘사기’는 69개이다(낙장 부분 제외). 그러나 언해되지 않은 약 61면이 모두 ‘사기’임을 고려하면, 한문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서 ‘사기’의 양적 비중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해당 내용이 언해에서 제외된 까닭을 해명하는 일은 필자의 영역이 아니어서 억측을 삼가고자 한다.

(2) 언해자의 개입

이 책에는 특이하게도 언해자가 서술자(narrator)로서 글 속에 개입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 화자를 높이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16) 가. 牧牛子ㅣ … 觀行 龜鑑 시니라(1ㄴ)
나. 大安 元年 己巳 夏月레 海東 曺溪山 牧牛子 知訥 私記시니라(113ㄱ)
다. 엇뎨어뇨 니 心性 밧긔  法도 어로 어두미 업슨 젼니라 그럴 오직  아로로 곧 修行 사시니라(18ㄴ)
라. 이제 洪州의 쳐 뵈요 能히 말 것히라 니=今에 洪州의 指示 能語言等이라 니(59ㄴ-60ㄱ)
(16가)는 지눌의 ‘사기(私記)’ 부분이다. 이 문장의 주어 겸 화자는 지눌(목우자)인데 서술어에 높임의 ‘-시-’가 쓰였다. 지눌을 존대하기 위해 언해자가 서술자로서 개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다음 대문(大文)의 1인칭 대명사 ‘내(=나+ㅣ)’와의 불일치를 초래한다. (16나)는 간기(刊記)를 언해한 특이한 경우인데, 여기서도 언해자가 개입한 것을 볼 수 있다. (16다)는 종밀의 저술을 간추린 ‘절요(節要)’ 부분이다. 화자는 종밀(宗密)이며 ‘ᄆᆞᅀᆞᆷ 아로ᄆᆞ로 곧 修行ᄋᆞᆯ 삼-’의 주체도 종밀이다. 그런데 그 서술어에 높임의 ‘-시-’가 쓰인 것이다.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밀을 존대하기 위해 언해자가 서술자로서 개입한 것이다. (16라)는 화자가 종밀인 ‘절요’ 부분인데, ‘-라 ᄒᆞ니’는 원문에 없는 서술자의 목소리이다. 이런 언해자의 개입은 ‘니ᄅᆞ시니라(60ㄴ), ᄒᆞ시니라(64ㄴ), ᄒᆞ시니라(76ㄱ)’에서도 볼 수 있다. 언해자가 서술자로서 개입하는 것은 다른 언해서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3) 한문본과의 차이

이 책의 한문 원문이 한문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곳이 있다.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와 언해서의 구결문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가 드러난다.
(17) 한문본과 언해서 구결문의 차이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언해서 구결문
가. 私曰(9ㄴ, 10ㄱ, 11ㄱ, 12ㄴ)牧牛子ㅣ 曰호ᄃᆡ(44ㄴ, 46ㄴ, 50ㄴ, 60ㄴ)
나. 豈爲有智慧人也(14ㄱ-ㄴ)豈有智慧人也ㅣ리오(69ㄴ)
다. 不在文字(16ㄱ)
라. 迷皆不能故 云阻也(15ㄴ)迷皆不能故로 阻也ㅣ니라(75ㄱ)
마. 即云(17ㄱ)前云호(82ㄱ)
바. 或知無念等故修心者 依此難爲趣入矣 今略伸而明之(18ㄱ)或知無念이라 시니 修心之人이 難爲趣入故로 而今에 略伸而明之시니(83ㄱ)
사. 禪門又有修定慧外(19ㄱ)又有修定慧外예(86ㄱ)
(17가)는 한문본의 ‘私曰’을 언해서에서 ‘牧牛子ㅣ 曰호ᄃᆡ’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신광사본에서도 ‘牧牛子曰’이 몇 군데 보인다(1ㄱ, 15ㄴ, 57ㄱ …). (17마)는 ‘前云’ 앞에서 원문의 일부 내용이 언해에서 제외된 데에 따른 변개이다. 그 밖에도 ‘然이나 禪門 頓敎애 至自性定慧雙明門컨댄(언해서 82ㄴ-83ㄱ)’의 ‘頓敎’와 ‘自性’은 원문에 없는 것을 보입(補入)한 것이다(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7ㄱ-ㄴ 참조). ‘禪門’ 뒤에 일부 내용이 언해에서 제외된 데에 따른 조처이다.

(4) 언해서 내부의 불일치

언해서 내부의 불일치도 보인다. 구결문의 내용이 언해문에서 달라진 것이다.
(18) 가. 皆類此也ㅣ니라(22ㄱ)
나. 이 密師의 무리라(22ㄱ-ㄴ) 주012)
‘或言皆不可得修와 不修等이 皆類此也ㅣ니라(22ㄱ)’가 ‘시혹 다 외다 니며 시혹 修며 不修호미 올티 몯다 닐오미 이 密師의 무리라(22ㄴ)’로 언해된 것인데, ‘이 密師의 무리라’는 오역이다. ‘다 이와 같다’란 뜻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類此’가 ‘이 물(무리)’로 번역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대문은 종밀 선사에 대한 기술이지, 종밀 선사를 따르는 무리에 관한 기술이 아니다.
(19) 가. 私曰호ᄃᆡ(39ㄴ)
나. 牧牛子ㅣ 닐오ᄃᆡ(39ㄴ)
(20) 가. 唯空寂知也ㅣ니(47ㄴ)
나. 오직 미 얼굴 업서 괴외호 히 아니(47ㄴ)
(21) 가. 一者ᄂᆞᆫ 解悟ㅣ니 謂호ᄃᆡ 明了 性과 相과 ᄒᆞᆯ 시오(91ㄴ)
나. 나 여 알 시니 닐오 不變性과 隨緣相과 기 알 시오(91ㄴ-92ㄱ)
(22) 가. 積於淨業면 此生애 雖未得徹悟ㅣ라도 不失成佛之正因也ㅣ리라(5ㄴ)
나. 조  뫼호면 이 生애 비록  아디 몯디라도 부텨 욀 正因을 일티 아니리(5ㄴ-6ㄱ)
(23) 가. 修行妙門 唯在此也(9ㄴ)
나. 修行 微妙 法門이 오직 이 荷澤祖師의 치샨 말매 자 잇니라(10ㄱ)
(18나)는 원문의 이해를 위하여 지시 대상을 밝힌 것이고, (19나)는 화자를 명시한 것이다. (20나)에서는 ‘얼굴 업서’와 ‘녀ᇰ녀ᇰ히’가 추가되었다. 다른 문헌이라면 협주로 처리될 내용을 본문에서 부연한 것이다. (21나)는 ‘性’과 ‘相’을 부연한 것이다. 주013)
원문의 ‘ᄒᆞᆯ’은 ‘明了’에 결합한 것이고, ‘性과 相과’는 ‘明了’의 대상이다.
(22나)의 ‘다’는 [愛]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업(業)’에 대한 번역으로 쓰였다. ‘중생을 사랑하는 것이 정업(淨業)’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한데, 파격적인 의역이다. (23나)의 언해에서는 부연이 가해졌다.

(5) 오역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오역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상당 부분에서는 원문의 구결부터 틀리게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역 중 일부를 검토하고 바로잡고자 한다.
(24) 가. 修豈稱眞哉이리오(12ㄱ-ㄴ)
나. 엇뎨 眞實이라 니리오(12ㄴ)
(24나)는 ‘修’를 언해에서 빠뜨린 것이다. ‘엇뎨’ 앞에 ‘닷고미(=닦음이)’를 추가하면 될 것이다.
(25) 가. 不知濟舟외 覆舟왜 功過懸殊니 故로 彼宗이 於頓悟門에 雖近나 而未的고 於漸修門엔 全乖니라(23ㄴ)
나.  타 이대 건넘과  타 므레 업팀괏 功이 머리 다  아디 몯 젼로(23ㄴ24ㄱ)
(25나)의 ‘ 타 이대 건넘과  타 므레 업팀괏 功이 머리 다  아디 몯’은 원문 ‘不知濟舟 覆舟 功過懸殊’의 ‘過’를 실수로 번역하지 않은 것이다. ‘功이’는 ‘功과 허므리’가 되어야 한다.
(26) 가. 答호 眞心本體 有二種用니 一者 自性의 本用이오 二者 隨緣應用이니(58ㄱ)
나. 답호 眞실 주014)
‘眞실’은 책에 적혀 있는 대로 옮긴 것이다. 한자어를 이렇게 표기한 예가 가끔 있다.
 本體 두 가짓 用이 잇니 나 自性本體오 둘흔 隨緣應用이니(58ㄴ)
언해문의 ‘自性本體오’는 ‘自性本用이오’의 잘못이다. 구결 달린 원문에는 바로 되어 있다.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12ㄱ)에도 ‘自性本用’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대문의 서두와 결말을 보면 두 가지 용(用)을 설명하는 것이 이 대문의 중심 내용이지만, 본론 부분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자성본체(自性本體), 자성본용(自性本用), 수연용(隨緣用)’ 세 가지를 다 설명하고 있다. 이 중 ‘자성본체’에 대한 설명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언해자가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예문은 원문에 협주가 붙은 특이한 예인데, 여기서 언해자는 연속적으로 실수를 범하고 있다. 본문과 협주의 문법적 경계를 인지하지 못한 데에 따른 오역이다. 주015)
이 책에는 협주 부호로 쓰이는 어미(魚尾)가 없고 그 대신 ○이 쓰였는데, 여기서는 ○ 대신 어미를 붙여 제시한다.
(27) 가. 又上애 三家의 見解異者 初 一切皆妄이라 니 <원주>【北宗이라】 次 一切皆眞이라 니 <원주>【洪州 馬祖이라】 後 一切皆無이라 니 <원주>【牛頭이라】 若就行야 說者댄 初 伏心滅妄니 <원주>【北宗이라】 次 信任情性니 <원주>【洪州 馬祖이라】 後 休心不起니 <원주>【牛頭이라】 (21ㄱ-ㄴ)
나.  우희 세 祖師의 見解 달오 初 一切ㅅ 거시 다 거즛 거시라 니 北宗이오 버거 一切ㅅ 거시 다 眞이라 니 <원주>【洪州 馬祖이라】 後 一切ㅅ 거시 다 업스니라 니 <원주>【牛頭 和尙이라】 다가 行애 나가 닐올뎐 初  복야 妄念을 업게 니 <원주>【北宗 神秀이라】 버거 情性을 信야 아니 <원주>【洪州 馬祖이라】 後  업게 야 닐왇디 아니케 니 <원주>【牛頭 和尙이라】 (21ㄴ-22ㄱ)
원문의 ‘初 一切皆妄이라 니 <원주>【北宗이라】’에서 ‘北宗이라’가 본문의 문장을 완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初 一切皆妄이라 니’만으로는 문장이 완결되지 않고 여기에 ‘北宗이라’가 붙어야만 문장이 완결된다. 협주의 내용이 본문의 문장 성분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예가 연속적으로 보이는데, 언해문의 구조 면에서 볼 때 모두 협주가 아니라 본문의 요소이다. 언해문의 ‘北宗이오’는 원문의 ‘北宗이라’를 수정한 것이지만, 협주 내용이 원문의 문장 성분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주016)
‘北宗이오’ 부분은 특이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협주 부호가 사라지고 ‘北宗’을 본문처럼 대자(大字) 단행(單行)으로 적고 있다. 그런데 ‘이오’는 소자(小字) 쌍행(雙行)으로 적혀 있다.
이처럼 원문에 협주가 붙는 특이한 현상은 한문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영향이다.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4ㄴ-5ㄱ)에도 이 부분이 협주로 표시되어 있다.
오역의 진원지는 언해문의 ‘이라 ᄒᆞ니’이다. ‘이라 ᄒᆞ니’를 ‘이라 ᄒᆞ고’ 또는 ‘이오’로 고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다만, ‘後 一切ㅅ 거시 다 업스니라 니’와 ‘後  업게 야 닐왇디 아니케 니’는 성격이 다르다. 그대로 두거나 문장을 종결해야 한다. 이처럼 협주의 내용이 본문의 문장 성분으로 참여하는 예가 더 있다(26ㄴ, 27ㄴ, 28ㄱ, 67ㄴ 3회, 86ㄱ).
(28) 가. 又錄中에 所載혼 神秀等諸宗을 在前者(2ㄴ)
나. ᄯᅩ 語錄애 記호 神秀 諸宗을 몬져 두(3ㄱ)
‘記호’은 원문의 구결 ‘혼’을 ‘호ᄆᆞᆫ’으로 오역한 것이다. ‘記혼’으로 언해하여야 한다.
(29) 가. 知之一字 是衆妙之源이라(8ㄱ-ㄴ)
나. 아  字 이 모 衆生과 聖人과 욀 미묘 根源이라(9ㄱ)
여기서는 두 가지 오역이 보인다. 첫째, ‘아  자’은 ‘知之一字’에 대한 오역이다. ‘知  자<세주>(=‘知’라는 한 글자는)’으로 언해해야 한다. 이 저술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개념인 ‘知’를 오역한 것은 의외이다. 둘째, ‘이 모 衆生과 聖人과 욀 미묘 根源이라’도 오역이다. ‘是衆妙之源’은 ‘이것은 여러 미묘한 이치의 근원이다’란 뜻인데, 엉뚱하게 번역하였다.
(30) 가. 若依言敎ᄒᆞ야 息滅忘念호리니 念盡ᄒᆞ면 則心性이 覺悟ᄒᆞ야 無所不知ᄒᆞ논 디 如磨拂昏塵ᄒᆞ야 塵이 盡ᄒᆞ면 則鏡體明淨ᄒᆞ야 無所不照ᄐᆞᆺ ᄒᆞ리라(11ㄴ)
나. 다가 말브터 妄念을 그처 업게 호리니 妄念이 업스면 心性의 아로미 가와 아디 몯  업슨 디 거우루 라 거믄 듣그리 업스면 거우루 톄 고 조하 비취디 아니  업 리라(12ㄱ)
‘업게 호리니’는 오역이다. 원문이 ‘若 ··· 則’ 구문이고 ‘若’의 지배 범위가 ‘依言敎息滅忘念 念盡’이므로, 그 내부에서 ‘-리니’가 쓰일 수는 없다. ‘업게 호리니’가 아니라 ‘업게 야’가 되어야 할 것이다.
(31) 가. 覽鏡者ㅣ 要在辨自面之妍醜耳니라(32ㄴ)
나. 거울 볼 사미 모로매 제 치 고오며 구줌 요매 이실 미니라(33ㄱ)
‘거울 볼 사미 … 이실’은 ‘要’를 빠뜨린 번역이다. 본문의 뜻은 거울의 용도(필요성) 또는 거울을 보는 사람의 요구를 말한 것이다. 즉 ‘거울 보는 사람이 바라는 것은 제 얼굴이 고운지 못났는지를 알고자 함일 뿐’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32) 가. 古人이 云호 佛法이 貴在行持ㅣ언 不取一期口辨이라 니(32ㄴ)
나. 古人이 닐오 佛法이 귀히 行 디뇨매 잇고 갓 이브로 마초ᄧᅥ 요 取티 말라 시니=옛 사람이 이르되, 불법(佛法)이 귀한 것은 실천에 있으니, 한갓되이 입으로 증명하여 분별함을 취하지 말라 하시니(33ㄱ)
‘귀히’는 오역이다. ‘귀호미’가 옳은 번역이다. ‘불법이 귀한 것은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오역은 잘못된 구결에 이끌린 것이다. ‘佛法이 貴在行持ㅣ언’의 ‘이’ 때문에 ‘佛法’을 ‘잇고’의 주어로 착각한 것이다. ‘佛法貴在行持’에서 ‘佛法’의 서술어는 ‘貴’이다. 한편 ‘잇고’는 ‘이시니’의 잘못이다. 이와 짝이 되는 원문의 구결 ‘在 … ㅣ언’의 ‘ㅣ언’도 부적절하다. ‘(貴在行持)ᄒᆞ니’가 옳다.
(33) 가. 經營造作世間과 出世間괏 種種事數니(36ㄱ)
나. 世間과 出世間간앳 가지가짓 이 디내여 일워 짓니(36ㄱ)
‘디내여’는 ‘經營’의 ‘經’을 번역한 것이다. ‘經營’에서의 ‘經’은 ‘治’를 뜻하므로, ‘디내여’는 부적절한 번역으로 보인다. 주017)
‘經’의 의미에는 ‘측량하다, 날줄, 글월, 경서(經書), 목매다, 변함없다, 다스리다, 지나다, 지경(地境), 곧다’ 등이 있다.
(34) 가. 洪覺範이 於林間錄中에 斥破此師의 所判고 扶顯洪州과 牛頭之旨者 此師의 所論過失리 似歸諸宗之主ㅣ라 恐惑後學之心故也ㅣ니(61ㄱ-ㄴ)
나. 洪覺範이 林間錄 中에 이 宗密禪師의 신 고 허러 리시고 洪州와 牛頭와 둘 들 자바 나토샤 이 洪覺範 和尙의 허믈 의론호미 여러 祖師의 見解를 리디 아니케 시니라 後代옛 學者ㅣ  모ᄅᆞᆯ가 저흐신 젼ᄎᆡ시니(62ㄱ)
‘洪覺範 和尙의 허믈 의론호미’의 ‘洪覺範 和尙’은 원문에는 ‘此師’로 나타난다. 이 ‘此師’는 ‘洪覺範 和尙’이 아니라 ‘宗密’이다. ‘此師’가 두 번 나오므로 지시 대상이 동일인임이 분명하다. ‘似歸諸宗之主ㅣ라’를 ‘여러 祖師의 見解를 리디 아니케 시니라’로 번역한 것도 잘못이다. ‘여러 종주에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로 번역해야 한다. 이 대목은 ‘(홍각범이 종밀 화상의 허물을 따져서 부정하고 홍주와 우두의 종지를 옳다고 보고 드러낸 것은) 종밀 화상의 논한 바 과실이 모든 종주(宗主)에게 귀결되는 것 같아서, 그것이 후학들의 마음을 현혹시킬까 두려워한 까닭이다.’를 뜻한다.
(35) 가. 豈不似覺來예 更求出獄脫枷乎ㅣ리오(72ㄴ)
나. 엇뎨 자다가 여 오매 구든 옥개 나며 모  갈 바사 료 求티 아니리오(73ㄱ)
(35가)에서는 원문의 ‘似’ 자를 언해에서 빠뜨렸다. 옳은 언해는 다음과 같다.
(36) 엇뎨 자다가 여 오매 구든 옥개 나며 모  갈 바사 료 求호미 ᄀᆞᆮ디 아니리오(=어찌 자다가 깬 이후에 굳은 감옥에서 벗어나며 목에 끼인 칼을 벗어버림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으리오?)
이 중 ‘求호미’의 ‘이’는 비교 부사격 조사이고, ‘ᄭᆡ여 오매’의 ‘오매’는 ‘來’를 직역한 것이다.
(37) 가. 若於達人相見야 不知敎外ㅣ여 傳心之旨고 說是定是慧ᄒᆞ면 則豈非令他로 墮於義用야 迷卻神機耶ㅣ리오 淸凉이 非不知此旨언마 且引迷宗失旨者야 令專修定慧爾니라(85ㄱ-ㄴ)
나. 다가  안 사 서르 맛나 經敎 밧긔  傳 들 아디 몯고 이 定과 이 慧와 니면 엇뎨  義用애 러디여  神妙 靈機 모게 리오 淸凉 國師ㅣ 이 들 모디 아니켄마  宗을 모며 들 일흔 사 혀 내여 오오로 定과 慧와 닷게  미니라(85ㄴ-86ㄱ)
여기에서는 세 가지 잘못을 범하였다. 첫째, 원문 ‘不知敎外ㅣ여’의 ‘ㅣ여’는 ‘예’의 잘못이고, 이를 언해한 ‘經敎 밧긔’는 오역이다. ‘ㅣ여’는 호격 조사인데, ‘不知敎外’는 호격어가 아니다. ‘예’를 각수가 ‘여ㅣ’로 잘못 읽은 것이다. 구결은 쌍행으로 적히므로 독자들은 ‘여ㅣ’를 ‘ㅣ여’로 읽게 된다. 그런데 ‘敎外예’로 고치더라도 이 ‘예’는 적절한 구결이 아니다. ‘不知敎外傳心之旨’에서 ‘敎外’는 부사어가 아니라 관형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즉 ‘경교(經敎)’도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지만, 그것이 아닌, ‘경교(經敎) 밖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敎外)예’가 아니라 ‘(敎外)옛’이 옳은 구결이다. 이에 따라 언해문도 ‘經敎 밧긧’이 되어야 한다.
둘째, ‘이 定과 이 慧와 니면’은 원문 ‘說是定是慧’의 ‘是’를 관형어로 번역한 것인데, ‘定’과 ‘慧’를 수식하는 관형어가 쓰여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是’를 주어로 보아 ‘닐오 이 定이오 이 慧라 면(=이르되 이것은 정이고 이것은 혜라 하면)’으로 언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셋째, ‘엇뎨  義用애 러디여  神妙 靈機 모게 리오’도 오역이다. 원문은 ‘則豈非令他로 墮於義用야 迷卻神機耶ㅣ리오’인데, 언해에서 ‘非’를 빠뜨렸다. 그리고 ‘ᄠᅥ러디여’도 ‘떨어지게 ᄒᆞ야’로 언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옳은 언해는 ‘엇뎨  義用애 러디게 ᄒᆞ야  神妙 靈機 모게 호미 아니리오’이다.
(38) 가. 體非種種者 謂호 此性이 非凡이며 非聖이며 非因이며 非果ㅣ며 非善이며 非惡이며 無色며 無根며 無住며 乃至無佛며 無衆生也ㅣ니라(14ㄴ-15ㄱ)
나. 佛性의 體 種種이 아니라 호 닐온 이 佛性이 凡夫 아니며 聖人 아니며 因 아니며 果 아니며 善 아니며 惡 아니며 色 업스며 相 업스며 根 업스며 住 업스며 부텨 업스며  업스니라(15ㄱ)
‘ 업스니라’는 이 문장의 주어부인 ‘佛性의 體 種種이 아니라 호’과 호응을 이루지 못한다. ‘ 업닷 마리라’로 고쳐야 한다.
(39) 가. 不約知고 以顯心니 是 現量顯也ㅣ라(59ㄴ)
나. 아 거 자바 니시고  나토와 니디 아니시니 이 現量으로 나토와 니시니라(60ㄱ-60ㄴ)
‘아 거 자바 니시고  나토와 니디 아니시니’는 ‘不約知고 以顯心니’의 번역인데, 원문과 언해문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언해문의 의미와 일치하려면 원문이 ‘約知而 不說以顯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담유일(蓮潭有一)은 『節要科目幷入私記』(1797년 이전)에서 ‘不約知之不字 此字也’라 하였다. 즉 여기의 ‘不’이 ‘此’의 오기임을 밝힌 것이다(상오 2001:51-52). 신광사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12ㄴ)에도 ‘此’로 나타난다. 즉 올바른 원문이 ‘此約知以顯心’인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언해는 ‘이ᄂᆞᆫ 아ᄂᆞᆫ 거ᄉᆞᆯ 자바 ᄆᆞᅀᆞᄆᆞᆯ {나토시니/나토샤미니}(=이것은 아는 것을 잡아서 마음을 {나타내시니/나타내신 것이니})’이다.
(40) 가. 密師 豈不知牛頭之道ㅣ 圓滿成就耶ㅣ리오마(27ㄱ)
나. 宗密禪師 엇뎨 牛頭의 道理 圓滿히 일워 잇  모디 아니컨마(27ㄴ)
‘엇뎨~모디 아니컨마’은 오역이다. ‘엇뎨~모리오마’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원문의 ‘豈’와 구결 ‘ㅣ리오마ᄅᆞᆫ’을 보지 못하고 언해한 듯하다.
(41) 가. 疑局者 彼云호 唯認知호미 是偏局也ㅣ니라(44ㄱ)
나. 의심야 국집가 호 뎌 宗이 닐오 오직 아 거 아로미 이 츼자바 국집가 더니라=(44ㄱ)
여기서는 ‘疑’의 지배 범위에 대한 오해 때문에 오역이 발생한 듯하다. ‘疑’는 이 문장 전체를 지배한다. 이 문장은 ‘치우침(局)이라는 것은 저(홍주종)가 말하는 바, 오직 안다[知]는 것을 아는(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치우쳐 집착함이 아닌가 한다<세주>(=의심한다)’란 뜻이다. 그렇다면 언해는 ‘국집이라 호 뎌 宗이 닐온 오직 아 거 아로미 이 츼자바 국집호민가 ᄒᆞᄂᆞ니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42) 가. 次明漸修者 雖頓悟法身眞心미 全同諸佛나(71ㄴ)
나. 버거 漸漸 닷다 호 비록 法身 眞心미 젼혀 諸佛와 나(72ㄱ)
이 문장에서는 부사 ‘버거’가 ‘닷다 홈’을 수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역이다. 그 결과 ‘버거 漸漸 닷다 호’의 서술어를 찾을 수 없는 문장이 되고 말았다. 원문 ‘次明漸修者’에서 ‘明’을 빼고 ‘버거 漸漸 닷다 호’으로 언해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원문의 의미는 ‘다음으로 점수를 밝힌다면’이다. 즉 ‘次’는 ‘明’을 수식하는 것이다. ‘次明漸修者’를 ‘버거 漸漸 닷고 기건댄’으로 언해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43) 가. 豈不似覺來예 更求出獄脫枷乎ㅣ리오(73ㄱ)
나. 엇뎨 자다가 여 오매 구든 옥개 나며 모  갈 바사 료 求티 아니리오(73ㄱ)
이 예문은 원문의 ‘似’ 자를 빼먹은 오역이다. 옳은 언해는 ‘엇뎨 자다가 여 오매 구든 옥개 나며 모  갈 바사 료 求호미 ᄀᆞᆮ디 아니리오(=어찌 자다가 깬 이후에 굳은 감옥에서 벗어나며 목에 끼인 칼을 벗어버림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으리오?)’이다. ‘求호미’의 ‘이’는 [비교]를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이다.
(44) 가. 說漸者 則看心修淨며 方便通經며 或頓悟漸修며 或漸修頓悟고 說頓者 直指心體며 或頓毁語言며 或頓悟頓修며 或無修無悟ㅣ라 시니라(78ㄱ)
나. 漸修 닐오  보와 조호 닷라 며 方便넷 經을 通達며 시혹  믄득 알오 졈졈 닷라 며 시혹 졈졈 닷가  다 알리라 며 頓悟 닐오 바  體 치시며 시혹 말 다 허르시며 시혹 頓悟頓修ㅣ라 며 시혹 닷곰도 업스며 아롬도 업스니라 시니라(79ㄱ-ㄴ)
원문의 ‘說漸者’과 ‘說頓者’을 각각 ‘漸修 닐오’과 ‘頓悟 닐오’으로 언해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각각 서술부 ‘ᄆᆞᅀᆞᄆᆞᆯ 다 알리라’, ‘닷곰도 업스며 아롬도 업스니라’와 호응하지 못한다. 각각 ‘漸修 니ᄅᆞᄂᆞ니ᄂᆞᆫ(=점수를 설하는 이는)’과 ‘頓悟 니ᄅᆞᄂᆞ니ᄂᆞᆫ(=돈오를 설하는 이는)’을 잘못 쓴 것이다.
(45) 가. 如宗鏡錄애 云호 如前所述安心之門에 直下애 相應면 無先定慧라 시니라(86ㄱ) ··· 絶一塵而作對어니 何勞遣蕩之功이며 無一念而生情이라 不假忘緣之力ᄒᆞ리니 (89ㄱ)
나. 宗鏡錄애 닐오 알 닐온 安心 法門네 바 드러마면 定과 慧왜 先後ㅣ 업스리라 시니라(86ㄴ) ···  듣글도 對야 지수미 업거니 엇뎨 잇비 룔 功을 며  念도 情 나미 업순 디라 緣慮 니줄 히믈 븓디 아니니라(89ㄴ)
여기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定과 慧왜 先後ㅣ 업스리라’는 ‘無先定慧’를 ‘定과 慧 사이에서 선후를 가릴 수 없다’는 의미로 본 것인데, 이것은 오역이다. ‘安心之門 直下相應 無先定慧’의 의미는 ‘安心의 門에 바로 상응하는 데에는 定慧에 앞서는 것이 없다’이다. 이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협주 ‘先明定慧시고 後現無心시니라’와도 부합한다.
‘ 듣글도 對야 지수미 업거니 엇뎨 잇비 룔 功을 며  念도 情 나미 업순 디라 緣慮 니줄 히믈 븓디 아니니라’는 비문이다. 이 문장의 직접 구성 요소는 ‘ 듣글도 ~ -거니 엇뎨 잇비 룔 功을 며’와 ‘ 念도 ~ 디라 緣麗 니줄 히믈 븓디 아니니라’인데, 그 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 ‘-거니 : 디라’의 불일치도 부적절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엇뎨 잇비 룔 功을 며’와 ‘븓디 아니니라’의 불일치이다. 의문문과 평서문을 결합시켜서 비문이 된 것이다. 전절(前節)을 ‘ 듣글도 對야 지수미 업거니 엇뎨 잇비 룔 功을 리오’로 고쳐서 문장을 완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한편 ‘ 念도 情 나미 업순 디라’도 오역으로 보인다. 원문은 ‘無一念而生情’인데, ‘生情’의 ‘生’은 자동사가 아니라 타동사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타동사로 번역하면 ‘情 내요미’가 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대한 실수가 보인다. ‘如宗鏡錄애 云호’의 ‘如’도 번역에서 누락되었는데, 이것은 ‘無先定慧라 시니라’의 잘못 쓰인 ‘ᄒᆞ시니라’와 관련이 있다. 『종경록(宗鏡錄)』의 인용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멀리 건너뛰어서 ‘緣慮 니줄 히믈 븓디 아니ᄒᆞᄂᆞ니라=不假忘緣之力ᄒᆞ시니’(89ㄴ)에서 끝난다(조계종 교재편찬위원회 1998:3 6, 상오 2001:90). 그렇다면 ‘如’의 번역은 ‘緣慮 니줄 히믈 븓디 아니ᄒᆞᄂᆞ니라’(89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定과 慧왜 先後ㅣ 업스리라 ᄒᆞ시니라’의 ‘ᄒᆞ시니라’는 삭제하고, ‘緣慮 니줄 히믈 븓디 아니ᄒᆞᄂᆞ니라’를 ‘緣慮 니줄 히믈 븓디 아니ᄒᆞᄂᆞ니라 ᄒᆞ샤미 ᄀᆞᄐᆞ니라’로 고쳐야 할 것이다.
(46) 가. 故로 石頭和尙이 云호ᄃᆡ 吾之法門ᄂᆞᆫ 先佛이 傳授ᄒᆞ샤ᄃᆡ 不論禪定精進ᄒᆞ시고 唯達佛之知見이라 ᄒᆞ시니 是也ㅣ니라 此無心合道ᄂᆞᆫ 亦是徑截門得入也ㅣ니라(90ㄴ-91ㄱ)
나. 이런 젼로 石頭和尙이 닐오 우리 法門이 過去 諸佛이 傳야 맛디샤 禪定과 精進과 니디 아니시고 오직 부텻 知見 알라 니시니 이 말미 이 無心道애 契合호미  이 즐어가 門에 드로미니라(91ㄴ)
이 부분의 언해도 옳지 않고 현결(懸訣)도 부적절하다. 언해자는 석두화상의 말의 범위를 ‘우리 法門이~드로미니라’로 본 듯하다. 그렇게 보면 ‘니ᄅᆞ디 아니ᄒᆞ시고’와 ‘알라 니ᄅᆞ시니’의 주체는 ‘過去 諸佛’인 셈이 된다. 만일 그렇다면 석두화상의 의견이 드러난 부분은 ‘이 말미 이 無心道애 契合호미  이 즐어가 門에 드로미니라’에 국한된다. 그러나 상오(2001:92)에서는 ‘吾之法門 先佛傳授 不論禪定精進 唯達佛之知見 是也’를 ‘나의 법문은 먼저 부처님이 전해 주시되, 선정(禪定)과 정진(精進)을 말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것이다.’로 번역하고, 이 부분을 석두화상의 말로 보았다. 이 번역이 옳다.
이 대문의 ‘禪定과 精進과를 말하지 않고 오직 부처의 知見을 알라고 말함(①)’과 앞 대문의 ‘自性 定慧도 오히려 義用애 걸이곤 며 더러운  여희오 닷고려  漸修門넷 定慧 엇뎨 이 無心 道理예 나가리오(②)’는 인과 관계로 연결되고 있다. 즉 ②가 원인이고 ①이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런 젼로 石頭和尙이 닐오’가 놓여 있으므로, ①이 석두화상의 말이어야 문맥이 자연스럽다. 이 부분을 의미가 더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다듬으면, ‘(석두화상이 이르시되) 나의 법문(法門)은 앞선 부처들이 전해 주신 것이되, (나의 법문에서는) 선정과 정진을 말하지 않는다. (나의 법문은) 오직 부처의 지견을 깨닫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다.’가 될 것이다.
(47) 가. 若云호ᄃᆡ 頓悟과 漸修와ᄂᆞᆫ(91ㄴ)
나. ᄒᆞ다가 닐오ᄃᆡ 몬져 ᄆᆞᅀᆞᄆᆞᆯ 믄득 알오 後에ᅀᅡ 漸漸 닷고ᄆᆞᆫ(92ㄱ)
원문을 직역하지 않고 근거 없이 많이 부연하였다. 현결(懸訣)도 부적절하고 언해도 옳지 않다. 구결의 ‘와ᄂᆞᆫ’을 ‘와 홀뎬’으로 고치고 언해문은 ‘ᄒᆞ다가 믄득 알오 漸漸 닷고ᄆᆞᆯ 닐올뎬’으로 언해하는 것이 원문의 의미에 부합할 것이다.
(48) 가. 似此之流 返不如依密師 如實言敎 專精觀察 能伏愛憎嗔喜人我勝負之心也ㅣ니라(110ㄴ-111ㄱ)
나. 이  사 두루혀 宗密禪師의 如實 言敎브터 專一히 펴보와 히 홈과 믜옴과 서글품과 깃붐과 내 어디로라   降伏게 홈만 디 몯니라(111ㄱ)
원문 ‘人我勝負之心’을 ‘내 어디로라 ᄒᆞᄂᆞᆫ ᄆᆞᅀᆞᆷ’으로 언해하였다. 크게 잘못된 번역이다. 원문은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人我],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집착[勝負之心]’ 정도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49) 가. 然이나 皆不離心之性相니 並可通用이니라(80ㄱ)
나. 그러나 다 과 性과 相과 여희디 아니니 다 어루  用을  알에 시니라(80ㄱ-ㄴ)
원문 ‘並可通用’의 ‘通用’을 ‘用을  알에’로 언해한 것이다. ‘아울러 가히 통해 쓸지어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並’은 앞에서 말한 ‘漸’과 ‘頓’을 가리키고 있다. 주018)
다음 내용을 참고할 것.:漸修 닐오  보와 조호 닷라 며 方便넷 經을 通達며 시혹  믄득 알오 졈졈 닷라 며 시혹 졈졈 닷가  다 알리라 며 頓悟 닐오 바  體 치시며 시혹 말 다 허르시며 시혹 頓悟頓修ㅣ라 며 시혹 닷곰도 업스며 아롬도 업스니라 시니라(78ㄴ-79ㄱ)
(50) 가. 無定無慧면 是狂是愚ㅣ오 偏修一門면 是漸是近이니(81ㄱ)
나. 定 업스며 慧 업스면 이 미치며 이 어류미오 츼자바  門 닷면 이 漸修예 이 갓가오미니(81ㄱ)
‘이 漸修예 이 갓가오미니’는 ‘是漸是近’의 번역인데, 한문과 언해문이 일치하지 않는다. 상오(2001:76)에서는 ‘이는 漸이며 淺近한 것이거니와’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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