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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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36년(1541) 봄 평안도에 소 전염병이 크게 발생하여 다른 지방에까지 번져 피해를 입게 되자, 이에 왕명으로 가축전염병에 관한 의서를 편찬할 것을 명하였고, 그해 11월에 가축전염병에 대하여, ≪우마의방(牛馬醫方)≫, ≪본초(本草)≫, ≪신은(神隱)≫, ≪산거사요(山居四要)≫, ≪사림광기(事林廣記)≫, ≪편민도찬(便民圖纂)≫ 등 여러 의약서와 생활문화 관련서에서 치료방을 모아 약재명에는 우리의 향약명(鄕藥名)으로 주를 달고, 한문으로 된 치료방을 이두문과 언해문으로 풀이하여 교서관에서 19건을 인출하였다.

임홍빈(任洪彬)

1944년 경기도 개성 출생, 아호 학여(學如)

송도국민학교

용강국민학교

숭문중학교

숭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석사과정)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박사과정)

문학박사(1987)

해군사관학교 국어교관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조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농과대학 시간강사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현)

한국언어학회 회장

〈저서와 논문〉

《국어문법론(공저)》(1983)

《국어의 재귀사 연구》(1987)

《뉘앙스풀이를 겸한 우리말 사전》(1993)

《국어 문법론 I (공저)》(1995)

《북한의 문법론 연구》(1997)

《국어 문법의 심층》(1998)

《우리말에 대한 성찰》(2005)

《한국어의 주제와 통사 분석》(2007) 외 10여편

"국어의 주제화 연구"

"On the Real Nature of Scrambling in Korean" 외 100여편

역주위원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 임홍빈

교열·윤문·색인위원

  •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 박종국 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을 내면서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스무 해가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8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4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 등 모두 53책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굴곡이 심하여 애태울 때도 있었으나 우리 회의 굽히지 않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역주자의 노력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가장 깊은 정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이다. 그것은 세종의 철저한 애민정신과 자주정신이며 그 마음을 이어간 선각자들의 헌신적 노력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월인석보≫ 권23·25, ≪구급간이방언해≫ 권7, ≪반야심경언해≫,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언해 두창집요≫ 등 8책을 역주하여 간행할 계획이다.

≪분문온역이해방(分門瘟疫易解方)≫은 조선 중종 37년 함경도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김안국(金安國)이 왕명을 받아 호군(護軍) 박세거(朴世擧) 등과 함께 전염병에 관한 여러 책 중에서 시행하기 쉬운 처방과 구비하기 쉬운 약을 취하여 이것을 진양(鎭禳), 불상전염(不相傳染), 복약방술(服藥方術), 노복(勞復) 등 4부문으로 나누고, 약에는 우리말 향명(鄕名)을 부기하고 필요한 곳에는 채취하는 법을 덧붙여, 중종 37년(1542)에 언해 간행한 것이다.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은 중종 36(1541)년 봄 평안도에 소 전염병이 크게 발생하여 다른 지방에까지 번져 피해를 입게 되자, 가축전염병에 관한 의서를 편찬하라는 왕명에 의하여 그해 11월에 간행한 것이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출판하는 ≪역주 분문온역이해방≫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목판본 1책을 저본으로 한 것이며, ≪역주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은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으로 생각되는 여강출판사에서 1988년에 영인한 책을 저본으로 삼았다.

끝으로 이 한의서를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해 주신 서울대학교 임홍빈 명예교수와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11월 2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의 저본으로 ≪분문온역이해방≫은 서울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소장의 목판본 1책을 참고하였고(해제 [35] 참조),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은 선조 11년(만력 6, 1578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강 출판사 영인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2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아긔 입안해 2ㄱ조티 아닌 거시 잇다가

제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딘이 되니 2ㄴ신장은 비록 증이 업스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안에 넣었다.

(5) 원문 내용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 풀이문·주석과 구별하였으며, 원문 가운데 작은 글씨 2행은 편의상 글씨 크기만 줄여 보이었고, 한자 원문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 하였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ᄚ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3. 역주자 일러두기

(1) 역주는 가능한 한, 자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처음에 나온 것도 뒤에 나오면 다시 역주하는 방식을 취한다. 지나치게 앞의 부분을 참조하게 하면, 역주의 보람이 반감되는 것이란 생각에 의한다.

(2) ‘이다’ 즉 ‘이-’를 학교 문법에서는 ‘서술격 조사’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정 형용사’란 이름으로 ‘이-’를 가리키기로 한다. ‘이-’는 형용사임이 분명한데, 종래에는 이를 형용사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의 활용이 형용사와 동일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는 ‘-로세, -로구나, -ㄹ세, -로소이다, -러라’ 등과 같이 ‘이-’의 어원형이 ‘*일-’이었다는 데서 오는 특이한 활용형을 가질 뿐이다. ‘이-’를 지정사라는 독립적인 품사로 파악한 것이 최현배 문법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형용사 중 ‘이-’만을 특정하게 가리키기 위한 이름으로 ‘지정’이란 이름을 쓴다. 따라서 형용사 중에서 ‘이-’만을 따로 가리키는 이름은 ‘지정 형용사’라는 것이 된다.

(3) 어미 ‘-으니, -으려, -으면, -은, -을’ 등과 같이 흔히 ‘으’를 앞에 가지는 어미를 일반적으로 하나의 어미로 취급하나, 여기서는 ‘으’와 후행하는 ‘-니, -려, -면, -ㄴ, -ㄹ’ 등을 구별하여 ‘으’를 조음소로 분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가령 동사 ‘가-’의 관형사형인 ‘갈’과 같으면 그것을 ‘가-+-을(관형사형 어미)’과 같이 분석하지 않고, ‘가-+-ㄹ(관형사형 어미)’과 같이 분석한다. 또 가령 ‘가-’의 관형사형 ‘간’과 같으면 ‘가-+-은(관형사형 어미)’으로 분석하지 않고, ‘가-+-ㄴ(관형사형 어미)’과 같이 분석한다. 즉 어미의 기본형을 ‘-을, -은’으로 보아 어미의 일부인 ‘으’가 탈락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으’를 가지지 않은 형식을 기본형으로 분석한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가령 ‘먹-’의 미래 관형사형 ‘먹을’과 같으면 어미 ‘-을’을 가지는 형식으로 분석하지 않고, ‘먹-+-으(조음소)-+-ㄹ(관형사형 어미)’와 같이 조음소 ‘으’를 가지는 형식으로 분석한다. 이는 분간 어미가 본래 ‘으’를 가지는 것으로 보면, ‘불그[붉으]죽죽하다’와 같은 예의 ‘으’ 및 ‘가니(갈[摩]+니(연결 어미)’와 같은 예에서 ‘ㄹ’이 떨어지는 현상이나, ‘좋으니? 좋니? 싫으니? 싫니?’와 같이 어떤 말은 두 형식을 모두 허용하게 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다.

(4) 중세어의 ‘-오, -우, -옴, -움’에 대해서 필자는 이들이 ‘-오-+-, -우-+-, -오-+-ㅁ. -우-+ㅁ’과 같이 분석되어야 한다고 믿는 바이지만, 형식적으로는 허웅설을 좇아 ‘-오, -우, -옴, -움’과 같이 이들이 각각 전체적으로 하나의 어미가 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때로는 이들 분석 뒤에 ‘-오/우-’를 선어말 어미로 분석하기도 한다는 견해를 덧붙여 놓았다. 이는 일종의 절충안으로, 역주가 일반적인 견해를 완전히 돌보지 않을 수 없어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이다.

(5) ‘처격 조사’는 비교적 그 범위를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에’나 ‘의’ 중 방향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만을 ‘방향격 조사’로 분석하고, 대체로 장소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처격 조사’로 분석하였다. ‘~에 섞다’와 같은 예의 ‘~에’에 대해서도 방향의 의미를 간파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이러한 예들은 ‘처격 조사’로 분류되었다.

(6) 장차(張次)에서 상첨자 1ㄱ은 제1장 앞면을 가리키고, 1ㄴ은 제1장 뒷면을 가리킨다. 이하 같다.

(7) 형태소 분석에서 ‘+’ 기호는 어기와 어이 사이, 용언과 어미 사이, 체언과 조사 사이 및 어미와 어미, 조사와 조사 사이에 쓰고, ‘#’ 기호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용언의 어간, 어미, 선어말 어미, 접미사 등에는 관례에 따라 관련 대상이 오는 선후행 위치에 ‘-’을 표시하기로 한다.

(8) ‘ㅎ’ 종성 체언은 가령 ‘[地]’와 같으면, ‘’와 같이 표시하는 방법도 있으나, 여기서는 ‘ㅎ’과 같이 ‘ㅎ’을 선행 음절에서 따로 분리하여 표시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15세기 어형이 현대어형과 지나치게 이질적으로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조치이다.

(9) 약초, 식물명 및 의서, 방서 등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연구원 편(1999)의 ≪표준국어대사전≫, 두산동아 편(1996)의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을 많이 참조하였고, 인터넷 홈페이지의 ‘동의보감’ 및 ‘고졸(古拙), 춘보(春甫)의 집입니다’를 여러 번 검색하였고, 기타 동인당한의원 등의 한의원 홈페이지 및 한의원 블로그를 많이 참조하였다. 약이름이나 의서나 방서들에 대하여 이들에 힘입은 바 큼을 밝혀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기타 김동소(2003) 교수의 ≪역주 구급방언해 상≫, 김문웅(2004) 교수의 ≪역주 구급방언해 하≫, 김동소(2007) 교수의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1≫, 남성우(2008) 교수의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2≫, 김문웅(2008) 교수의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3≫,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6≫ 등의 부록도 참고하였다.

(10) 중세어 해석에 있어서는 유창돈(1964)의 ≪이조어 사전≫(연세대학교출판부) 및 남광우(1960/1971 증정)의 ≪고어사전≫을 참조하였고, 한글학회 편(1992)의 ≪우리말 큰사전≫ 및 홍윤표 외(1995)의 ≪17세기국어사전≫ 등을 참조하였음을 밝혀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기타 김동소(2003) 교수의 ≪역주 구급방언해 상≫, 김문웅(2004) 교수의 ≪역주 구급방언해 하≫, 김동소(2007) 교수의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1≫, 남성우(2008) 교수의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2≫, 김문웅(2008) 교수의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3≫,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6≫ 등의 풀이나 부록도 참고하였음을 밝혀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11) 풀이에 참고한 문헌은 때로 주해 중이나 뒤에 표시하기도 하였으나, 전체 역주의 끝(202쪽)에 보인 ‘〈역주 참고문헌〉’의 문헌 번호를 대괄호 속에 나타내는 방식으로 주석을 달아 그 출처를 다소라도 밝히고자 하였다. 그 전거를 일일이 다 밝히지 못한 것도 있을지 모른다. 선학, 동학 및 한의학 블로그 관계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혜량을 바라 마지 않는다.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해제
임홍빈(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 간행 및 배경과 경과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은 중종 36년(1541) 봄 평안도에 소 전염병이 크게 발생하여 다른 지방에까지 번져 피해를 입게 되자, 이에 왕명으로 가축전염병에 관한 의서를 편찬할 것을 명하였고, 그해 11월에 가축전염병에 대하여, ≪우마의방(牛馬醫方)≫, ≪본초(本草)≫, ≪신은(神隱)≫, ≪산거사요(山居四要)≫, ≪사림광기(事林廣記)≫, ≪편민도찬(便民圖纂)≫ 등 여러 의약서와 생활문화 관련서에서 치료방을 모아 약재명에는 우리의 향약명(鄕藥名)으로 주를 달고, 한문으로 된 치료방을 이두문과 언해문으로 풀이하여 교서관에서 19건을 인출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이 권응창(權應昌)의 서문에서 확인된다. 19건 중 10건은 병조와 전생서(典牲署), 사축서(司畜署), 오부(五部),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에 보내고, 나머지 9건은 개성부와 8도에 보내어 즉시 판을 새겨 인출하여 필요한 관서에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2. 이본에 대하여

이 책의 이본에 대하여 오구라[小倉進平](1940:334-7)는 당시까지에는 2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하나는 일본의 궁내성 도서료(宮內省圖書寮本)에 있는 궁내성본(宮內省本)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오카다(岡田信利)란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던 오카다본(岡田本)이다. 이 두 종류의 이본에 대한 오구라[小倉進平](1940:334-7)의 지적은 다음과 같다.
(1) 궁내성본과 오카다본의 차이
가. 궁내성본은 서명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으나, 오카다본은 ‘馬’ 자가 빠져 ≪우양저염역병치료방(牛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다.
나. 궁내성본은 권응창(權應昌)의 서(序)가 반엽 9행 17자로 되어 있으나, 오카다본은 9행을 다시 2행으로 나누어 반엽 18행 17자로 되어 있다.
다. 궁내성본은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가정(嘉靖) 4년, 김희수(金希壽) 서)과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가정 20년, 권응창(權應昌) 서)이 합철되어 있다. 전부 다 동일한 판식에 속하나(가정 20년에 ≪치료방≫을 ≪벽온방≫의 체재에 맞추어 인쇄한 것인지, 혹은 같은 해에 ≪벽온방≫을 신판인 ≪치료방≫에 맞추어 재판을 한 것인지는 더 연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오구라[小倉進平](1940)의 지적이다), 오카다본은 ≪치료방≫만으로 단행본을 이루게 되어 있다.
라. 궁내성본은 언문에 의하여 표기된 조선어 왼편에 음의 장단·사성을 나타내는 점이 찍혀 있지 않으나, 오카다본에는 그것이 찍혀 있다.
마. 궁내성본과 오카다본 사이에는 간간이 자구의 차이가 존재하나, 어느 것에도 약간의 오식(誤植)이 인정된다.
이러한 차이를 지적한 뒤에 오구라[小倉進平](1940:334-7)는 권응창(權應昌)의 이두 서문 거의 전부를 옮겨 싣고 있다. 서문 끝부분의 연도와 수결 부분만이 빠졌을 뿐이다. 오구라(1940)는 권응창의 서문을 그냥 옮겨 놓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두 서문을 띄어 쓰고 표점(標點)을 찍음과 동시에 구결 부분에 방점을 찍어 표시하였고, 그 내용의 대강을 소개하고 있다. (1라)는 특히 훈민정음 자료에 대한 오구라(1940)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훈민정음의 방점이 성조를 표시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장단(長短)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나, 사성(四聲)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두 서문에 대한 오구라(1940)의 띄어쓰기와 표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구라(1940)에 의한 구결 부분은 작은 글자로 나타내기로 한다.
(2) 오구라(1940)에 소개된 권응창(權應昌) 이두 서문
平安道觀察使尙震書狀, 據曹啓目節該粘連啓下<이두>是白有亦, 今年春節分本道牛疫大熾多致染斃<이두>爲白去乙曹以治療之法醫方相考啓下<이두>導良, 受敎內節該事知理馬<이두>乙用良相當藥材<이두>上下賫持, 刻日下送隨方治療<이두>爲白乎旀, 醫司所無之物令本道監司廣求治療<이두>爲白乎旀, 賫去藥材段置皆是鄕藥易得之物, 不足<이두>爲白去等道<이두>以隨宜准備用<이두>使內亦受敎<이두>爲白有置本道牛疫至今寢息<이두>不冬, <이두>便亦多斃至爲可慮<이두>是白昆, 令本道監司前行移受敎, 關內 <이두>辭緣相考, 牛疫染斃村里<이두>良中藥物<이두>這這備給, 各其官事知醫生<이두>乙用良趂時分往救療<이두>爲白乎矣, 前<이두>矣啓下治療方法外, 他書<이두>良中牛<이두>叱分不喩六畜染疫治療之方散載亦多<이두>爲白置,牛疫<이두>亦平安一道<이두>叱分不喩, 他道<이두>良中置多有染斃之處<이두>爲白沙餘良羊猪等<이두>段置京外染疫致斃亦多<이두>爲白去等, <이두>右良諸畜染疫治療方法<이두>乙竝只相考, 京外<이두>良中謄書廣布, 使之依方治療宜當<이두>爲白在果, 諸方文字鄕村窮巷民人等解見<이두>不得叱分不喩, 藥名<이두>乙良置解知<이두>不得爲白沙餘良, 轉轉謄寫之際多致誤寫, 據而治療必應無驗可慮<이두>是白昆, 令醫司藥理文字通解醫員等擇定上項諸畜染疫治療方文<이두>乙吏讀諺文<이두>爲等如兩件解釋, 藥名<이두>乙良置鄕名<이두>以書寫成冊, 令校書館十九件刻日印出, 十件<이두>乙良本曹及典牲署·司畜署·五部·典醫監·惠民署<이두>爲等如分上, 九件<이두>乙良開城府及八道急速分送, 令各道卽時刻板, 多印分送于各官, 染疫<이두>爲乎追乎檢擧治療如何.
이 서문을 통하여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의 편찬 배경을 소상히 알 수 있다. 소의 전염병이 평안도 일대에서 크게 번졌다는 것, 그것이 다른 도에도 퍼지게 되었다는 것, 그 편찬 체계가 한문 원문과 그것을 풀이한 이두문과 언해문으로 되었다는 것, 약명에는 향약명을 첨가하여 알기 쉽게 하였다는 것, 19건을 인출하여 배포한 곳이 어디어디라는 것 등을 소상히 알게 해 준다. 오구라(1940)의 띄어쓰기와 표점 및 구결에 쓰인 한자 표시가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이본에 대한 언급은 홍문각(弘文閣)에서 1982년에 영인한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 해제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오구라(1940)를 참고로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본이 4종이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나는 오구라(1940)에서 오카다본(岡田信利)이라 한 것인데, 이것을 1541년에 출간된 원간본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언급은 오구라(1940)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미키[三木 榮](1965)이다. 다른 하나의 이본은 일본 궁내청 서릉부(宮內廳 書陵部)에 있는 것으로 오구라(1940)에서 궁내성본이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다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일사문고본(一簑文庫本)과 1644년의 교서관본을 더 소개하고 있다. 이 네 가지 이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3) 홍문각 영인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 해제에 나타난 이본 소개
가. 궁내청본은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1578년판)과 합철되어 있지만 나머지 두 가지 본은 그렇지 않다.
나. 오카다(岡田信利)본과 궁내청본은 활자본인 데 비해 일사문고본과 교서관본은 목판본이다. 특히 궁내청본은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과 판식, 활자, 지질 등이 동일한 을해자(乙亥字)본이다.
다. 궁내청본과 일사문고본 그리고 교서관판은 서명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이지만, 오카다본은 ‘마(馬)’가 빠진 ≪우양저염역병치료방(牛羊猪染疫病治療方)≫이다.
라. 오카다(岡田信利)본은 방점이 있지만, 다른 세 본은 방점이 없다.
마. 오카다(岡田信利)본과 궁내청본은 권응창(權應昌)의 서문이 있지만, 일사문고본은 그 서문이 없다. 그리고 권응창의 서문도 궁내청본은 9행 17자의 판식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오카다(岡田信利)본은 9행을 다시 2행으로 나누어 18행 17자의 판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교서관본에는 최명길(崔鳴吉)의 발문이 있다.
홍문각 영인본(1982)의 해제를 쓴 사람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다. 이 해제를 쓴 이는 일사문고본 외에 다른 이본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고려해 볼 때, (3가)는 (1다)를 참고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3가)는 오카다본(岡田本)을 1541년의 원간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1가-마)에는 어디에도 그러한 언급이 없다. (3가)에서 말하는 "나머지 두 가지 본"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문맥으로 보면, 그 두 가지는 일사문고본과 궁내청본인 듯하다. 여기에 교서관본(校書館本)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것이 자세한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3나)에서는 그 교서관본(校書館本)을 ‘목판본’이라 언급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3나)의 궁내청본에 대한 언급은 (1다)를 참고로 한 것이 분명하다. 판식 외에도 활자, 지질까지 동일한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3다)는 (1가)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 내용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3라)도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오카다본에는 방점이 있는데, 궁내성본에는 방점이 없다는 것이 오구라(1940)의 (1라)에서의 지적이다. 홍문각 영인본을 해제한 사람은 그것을 일사문고본으로 보고, 일사문고본이 1578년판의 복각본(覆刻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간본만이 방점을 가지고 이후의 간본이 방점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3마)의 끝부분에서는 갑자기 교서관본이 언급되고, 교서관본에는 최명길(崔鳴吉)의 발문(跋文)이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1.1.에서 본 바와 같이, 초간본도 교서관에서 인출한 것이므로, (3마)의 끝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 교서관본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게 된다. 교서관본의 존재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미키[三木 榮](1965)이다. 미키[三木 榮](1965)는 자신이 직접 고(故) 오쿠다이라[奧平武彦]의 소장본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미키[三木 榮](1965)는 이 교서관본이 인조 14(숭정 9년, 1636)년 본이 활자본에 의거한 정판본(整版本)이며, 한문, 이두문, 언해문의 세 가지로 기술되어 있고, 최명길(崔鳴吉)의 발문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최명길 발문 전문도 소개되고 있다. 그 발문 일부를 다음과 같이 보이기로 한다. 이 부분은 안병희(1975)에도 소개되고 있다.
(4) 최명길(崔鳴吉)의 발문 일부
今上 十四年丙子夏 平安黃海兩道 牛疫大熾 至秋猶不止 延入京畿 以及湖西 朝廷患之 工曹參判尹毅立 出其先人所藏 內賜諺解馬牛治療方一冊 乃嘉靖二十年 奉敎撰著 而萬曆六年 又因牛疫再刊 以頒者也 司僕寺提調李曙見大喜 具由以聞 上卽付校書館 印布中外
(4)에 의하면 인조 14(1639)년 여름에 평안도와 황해도에 소의 전염병이 크게 번져 가을이 되도록 그치지 않았다는 것, 이에 경기 지역에도 번지고 호서 지방에도 번져, 조정이 근심하였는데, 공조 참판 윤의립(尹毅立)이 그의 선조가 소장하고 있던, 말과 소의 치료방 1책을 가져왔다는 것, 그 책은 가정(嘉靖) 20(1541)년에 간행된 것으로, 내사 언해된 것이라는 것, 선조 11(萬曆 6, 1578)년에도 소의 전염병 때문에 재간된 일이 있었다는 것, 즉시 교서관에 분부하여 인쇄 반포하였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를 ‘인조 14년본’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다. 이 이본은 김신근 편(1988)의 여강출판사 영인본과 판식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나, 글자의 획이 다소 둔하고 날카로운 면이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이본은 선조 11년본을 정밀하게 복각한 것으로 보인다.
미키[三木 榮](1965)는 또 다른 이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인조 22(순치(順治) 원년 1644)년에 나온 책으로 교정을 완료하여 이미 나온 우역방에 새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처방을 부가하여, 수백 건을 인출, 각도와 주에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은 책 뒤의 이식(李植)의 발문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미키[三木 榮](1965) 자신은 이 책의 간본은 본 일은 없고, 사본만을 겨우 부탁하여 볼 기회를 가진 것이라 한다. 양본이 아닌 책으로, 언해문이 본문에 병기되어 있으나, 이두문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인조 14년본의 본문 첫 장 앞면〉

〈일사문고본 5장 뒷면〉

홍문각 영인본(1982)은 분명히 일사문고분이다. 일사 방종현 선생의 고서 구입기(購入記)가 면지(面紙)에 적혀 있다, 단기 4282년(1949년)에 이병직(李秉直) 소장 경매장에서 3만 2천원에 구입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일본 궁내성도서료(宮內省圖書寮)의 활자본을 따로 베껴 온 것이 있다는 언급도 있다. 반면, 일사문고본에는 내사기도 없고, 권응창의 이두(吏讀) 서문도 없고, 제목이 있고 그 풀이가 있은 뒤에 곧 본문이 시작된다. 홍문관 영인본이 일사문고본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판식이 일치하고, 훼손된 부분으로 지적된 면수가 일치하고, 자체가 일치한다.
그러나 그 해제에 제시된 사항은 상당 부분에 걸쳐 잘못이 있는 것 같고 혼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사문고본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은 총 15장으로 된 것인데, 그 해제는 그것을 총 16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 장의 오차가 있다. 또 일사문고본은 제11장이 낙장인데, 해제에서는 낙장을 제12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에도 한 장의 오차가 있다. 해제자의 단순한 오류인지, 무엇인가 한 장이 더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해제자의 단순한 잘못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
여기에 혼란을 더하고 있는 것이 김신근 편 (1988)에 영인된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의 해제이다. 이 해제에서는 김신근 편 (1988)의 영인 저본을 일사문고본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일사문고에서는 이 책을 찾을 수 없다. 김신근 편 (1988)에 있는 이본(異本)에 대한 소개는 홍문각 영인(1982)의 해제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3)과 같이 그 이본을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어 다시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나 홍문각 영인의 일사문고본과 김신근 편(1988)의 여강출판사 영인본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여강출판사 영인본에는 내사기도 있고, 권응창(權應昌)의 이두 서문도 있고, 자체도 정미(整美)한 을해자본(乙亥字本)이다. 이에 비하여 홍문각에서 영인한 일사문고본은 목판본이고 자체도 상당히 투박하다.
여강출판사 영인본의 내사기를 행 바꿈 없이 다음과 같이 보이기로 한다.
(5) 여강출판사 영인본의 내사기
萬曆6年正月日 內賜行副護軍李仲樑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一件 命除謝恩 都承旨臣尹(수결)
이에 의하면, 여강출판사 영인본은 만력 6(1578)년에 부호군(副護軍)의 직위에 있었던 이중량(李仲樑)에게 내사된 것으로 되어 있다. 내사를 수행한 것은 도승지 윤이다. 명제사은(命除謝恩)은 임금이 책을 내린 데 대해서는 특별히 은혜를 갚을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내사본의 서명은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명시되어 있다. 여강출판사 영인본은 만력 6년에 내사된 것이므로, 1578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마송문고에 소장된 본이 바로 이 책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하여 일사문고본은 숭정(崇禎) 9(1636)년 해주(海州)에서 복각(覆刻)된 것이므로, 그것은 적어도 58년이나 뒤진 것이다. 여강출판사 영인본을 ‘선조 11(만력 6년, 1578)년본’(혹은 마송문고본)이라 부르기로 한다.
책의 제목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권두제는 일사문고본과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이 다 같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으나, 권말제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사문고본은 ≪우마양저염역치료방(牛馬羊猪染疫治療方)≫으로 ‘병(病)’ 자가 빠져 있다. 만력 6년본의 권말제는 권두제와 같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다. ‘병(病)’ 자가 그대로 있다. 간기의 있고 없음에도 일사문고본과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은 큰 차이를 가진다. 일사문고본은 “숭정(崇禎) 9년 병자(丙子) 팔월 일 해주목(海州牧) 개간(開刊)”과 같은 간기를 가지고 있으나,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에는 이러한 간기가 없다.
일사문고본과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은 판식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사문고본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인 데 대하여, 선조 11년본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홍문각 해제에서는 일사문고본을 사주쌍변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그렇지 않다. 어미는 선조 11년본이 상하내향 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로 되어 있는 데 대하여, 일사문고본은 상하내향 흑어미로 되어 있어, 이 차이도 크다. 판심제는 다 같이 ‘우역방(牛疫方)’이다.
표기상으로, 선조 11(만력 6)년본에는 일사문고본과 같이 한글 언해에 반치음이 전혀 쓰이지 않고 있으나, 옛이응(ㆁ)은 받침에서 부분적으로 쓰이고 있다. 옛이응(ㆁ)이 전혀 쓰이고 있지 않은 일사문고본과 구별된다. 선조 11년본에는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큰 오식이 있는데, 그것은 5장 앞면에 나타나는 ‘미베’와 ‘효허이’이다. 이것이 일사문고본에서는 ‘이베’와 ‘효허미’로 교정되어 있는 것이다.
(6)가. 만력 6년본 5장 앞면 1행: 미베 브면 효허이 뎍 인니라
나. 일사문고본 5장 앞면 1행: 이베 브으면 효허미 뎍 인니라
(6가)와 (6나)의 밑줄 친 부분을 비교하면, (6가)의 ‘미’가 (6나)의 ‘이’로 바뀌고, (6가)의 ‘이’가 (6나)의 ‘미’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6가)의 교정 지시가 잘못 수행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정자는 ‘이’를 ‘미’로 교정하라 한 것인데, 실제로 교정된 것은 엉뚱한 글자였던 것이다. 그것이 (6나)에서는 바로잡히고 있다.
홍문각 영인본의 해제자가 원간본이라고 추정한 일본인 소재의 오카다(岡田信利) 소장본은 그동안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인데, 일본 도쿄대(東京大)의 후쿠이(福井 玲) 교수가 오구라(小倉進平) 문고본을 디지털화한 것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오카다본을 손으로 그대로 옮긴 등사본(謄寫本)이지만 책의 형태로 장정이 되어 오구라문고(小倉文庫)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를 ‘오구라본’이라 불러 보자. 이 책은 사주 윤곽선이나 계선(界線)이 없이 내용만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곳곳에 붉은 글씨로 교정이 되어 있다. 이것은 오구라 교수가 궁내성도서료본과 오카다본을 비교하여 차이가 나는 부분을 교합(校合)한 것이다. 이 교합은 오구라 교수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뒤의 메모 글씨와 교합의 글씨체가 동일하다. 후쿠이 교수의 디지털본에 의하여 오카다본과 궁내청본의 윤곽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패이지에 그 첫 면을 보이기로 한다.
오카다본은 (1가)에 나타난 바와 같이 책의 제목이 ≪우양저염역병치료방(牛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다. ‘마(馬)’ 자가 빠져 있다. 오카다본에는 권말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구라문고본에 권말제가 붉은 글씨로 써 있기 때문이다. 오카다본은 도승지 권응창(權應昌)의 서문이 이두문으로 되어 있다. 본문은 14장이며 전체가 1책이다. 본문 행관은 8행 17자, 서문과 언해문 및 협주가 쌍행으로 되어 있다. 언해문에는 방점이 찍혀 있다. 오카다본의 본문 첫 면을 후쿠이 교수가 펴 낸 CD본에서 가져와 보이면 다음과 같다. 주001)
오구라신페이(小倉進平) 문고본에 소장되어 있는 오카다본 첫면을 여기에 소개하게 된 것은 후쿠이[福井 玲] 교수의 호의에 의한 것이다. 첫 면의 영인 소개를 허락해 준 후쿠이 교수에게 사의를 표한다.

〈오카다본으로 추정되는 사본. 오구라문고 소장〉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과 합철되어 있는 궁내청본은 15장 1책으로, 서문, 언해 부분이 단행으로 된 것이 오카다본과의 큰 차이이다. 본문 행관은 9행 17자로 되어 있다. 제목이≪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고, 권말제도 이와 같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권응창(權應昌)의 이두 서문은 단행으로 되어 있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언해문에 방점이 없다는 것은 (1라)에도 지적된 것이지만, 오구라의 주서 메모에도 나타나 있다. 오구라의 교합으로 보면, 궁내청본은 오카다본의 표기에 대하여 몇 가지 교정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괄루(括蔞: 하눌타리)’의 ‘괄’ 자가 나무목 변(栝)으로 나타나는 것, 오카다본의 반치음이 대부분 소실되어 ‘ㅇ’으로 바뀐 것, ‘너고리肉’과 같은 것이 ‘너고리古其’와 같이 바뀐 것, ‘방무네(한 방문에)’가 ‘방문네’와 같이 바뀐 것 등을 알 수 있다.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의 이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7)가. 오카다[岡田信利]본 : 중종 41(1541)년의 원간본으로 추정된다. 오류를 많이 가지는 것이 원간본이란 추측을 가능케 한다. 책의 제목이 ≪우양저염역병치료방(牛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고, 본문 14장 1책으로, 반엽 행관은 8행 17자, 이두 서문, 언해문 및 주석은 쌍행으로 되어 있다. 을해자 활자본인 것으로 추측된다. 언해문과 주석 한글에는 방점이 찍혀 있다. 한문 원문이 있고, 이를 이두로 풀이한 이두문, 훈민정음으로 풀이한 언해문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동경대학 도서관 오구라[小倉] 문고에 손글씨로 등사한 사본이 있다. 이에 의하면, 오카다본에는 권응창 이두 서문이 있고 그 끝 부분이 “左承旨臣權應昌依允”과 같이 되어 있다. 언해 부분의 한글에 방점이 있다.
나. 궁내청본 : 일본의 궁내청 서릉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진 본. 오구라(小倉進平)가 궁내성도서료본이라 했던 것이다.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과 합철된 책으로, 책의 제목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되어 있고, 권두제와 권말제가 일치한다. 본문 15장 1책으로, 반엽 행관은 9행 17자이다. 이두 서문, 언해문은 단행으로 되어 있고, 주석만 쌍행으로 되어 있다. 을해자 활자본이다. 목활자가 섞여 있다고도 한다. 이는 만력 6년본을 토대로 추측한 것이다. 권응창 이두 서문이 있고 그 끝 부분이 “左承旨臣權應昌依允”과 같이 되어 있다. 언해, 주석 부분의 한글에 방점이 없다.
다. 선조 11년 내사본 : 선조 11(1578)년 내사기를 가진 이본으로, 김신근 편(1988)에 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 이본은 내용이 (7나)의 궁내청본과 거의 같으나, 그래도 미세한 차이를 가진다. 궁내청본과 달리 ≪간이벽온방≫과 합철되어 있지 않다. 제목이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권두제와 권말제가 일치한다. 본문 15장 1책으로, 반엽 행관은 9행 17자이다. 판심은 상하내향 삼엽화문어미이고, 판심제는 ‘우역방(牛疫方)’이다. 권응창의 이두 서문, 언해문이 단행으로 되어 있고, 주석은 쌍행으로 되어 있다. 을해자 활자본으로 목활자가 섞여 있다고 한다. 권응창 이두 서문의 끝 부분이 오카다본이나 궁내청본과 달리 “左承旨臣權應昌次知依允”과 같이 되어 있다. ‘차지(次知) 계(啓)’가 더 있다. 언해, 주석 부분의 한글에 방점이 없다. 내사기가 만력 6년으로 되어 있어, 그 발간이 1578년임을 알 수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마송문고에 소장된 책이 이 책인 것으로 여겨진다.

〈선조 11년 내사본 본문 첫장 앞면(여강출판사 영인)〉

라. 일사문고본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일사(一簑) 방종현 귀중본으로 되어 있다. 권두제는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이나, 권말제는 ≪우마양저염역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으로, 권두제에서 ‘병(病)’ 자가 빠져 있다. 본문 15장 1책으로, 반엽 행관은 9행 17자이다. 판심은 상하 내향 흑어미, 판심제는 ‘우역방(牛疫方)’이다. 제 11장이 낙장이고, 1장 앞면, 10장 뒷면, 15장 앞뒷면이 다소 많이 훼손되어 있다. 내사기도 권응창의 이두 서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문 원문과 언해문은 단행으로 되어 있고, 주석은 쌍행으로 되어 있다. 목판본으로 글자가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판식이 선조 11(만력 6)년본과 기본적으로 같으므로, 1578년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언해, 주석 부분의 한글에 방점이 없는 것은 궁내청본이나 김신근(1988)의 여강출판사 영인본과 같다. 권말에 숭정 9년 병자 8월 일 해주목 개간이란 간기가 있다. 1636년판인 것으로 추측될 수 있다. 반엽 광곽은 21.2×15cm, 계선이 있고, 책의 크기는 31.4×19.1cm이다.
마. 인조 14(숭정 9년, 1636)년본 : 미키[三木 榮](1965)에 제시된 이본. 미키(1965)는 자신이 직접 고(故) 오쿠다이라[奧平武彦]의 소장본을 보았다고 한다. 미키(1965)는 이 교서관본이 인조 14(숭정 9년, 1636)년 본이 활자본에 의거한 정판본(整版本)이며, 한문, 이두문, 언해문의 세 가지로 기술되어 있고, 최명길(崔鳴吉)의 발문이 있다고 한다. 최명길 발문 전문도 소개되어 있다.
바. 인조 22(순치 원년, 1644)년본 : 미키[三木 榮](1965)에 제시된 이본. 교정을 완료하여 이미 나온 우역방(牛疫方)에 새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처방을 부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백 건을 인출, 각도와 주에 보냈다는 이식(李植)의 발문이 있다고 한다. 미키(1965) 자신은 이 책의 간본은 본 일은 없고, 사본만을 보았다고 하는데, 양본이 아닌 책으로, 언해문이 본문에 병기되어 있고, 이두문은 병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인조 22년본 본문 첫 장 앞면. 미키(1965)에서 옮김〉

본 역주가 그 저본으로 삼은 것은 김신근 편(1988)의 여강출판사 영인본이다. 이것은 선조 11(1578)년의 내사기를 가진 책으로, (7다)에 해당한다.

3. 표기상의 특징

이 책의 표기법상의 특징을 홍문각 영인본의 해제를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기로 한다.
(8)가. 오카다본과 달리 1578년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에는 한글 언해에 반치음 ‘ㅿ’이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예, 브으라( 1ㄴ, 2ㄱ, 4ㄱ, 5ㄱ), 브오(2ㄴ), 처엄(3ㄱ), 무(14ㄱ). 그러나 언해문에도 일부 쓰인 예가 있고(예, ‘브라(6ㄴ)’), 주석에도 반치음이 쓰인 예가 있다. 예, 댄무믿(14ㄱ), 댄무닙무(14ㄱ). 그러나 15세기에 반치음이 쓰인 ‘여[狐]’는 주석에서도 ‘여(1ㄴ)’와 같이 쓰이고 있다.
나. 선조 11(만력 6, 1578)년본에는 받침 ‘ㆁ’에 옛이응이 쓰이고 있다. 이는 일사문고본에 옛이응이 전혀 쓰이지 않은 것과 크게 대조된다. 예. (1ㄴ), 문네(2ㄴ) 등.
다. 된소리 표기에는 ‘ㅅ’이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며 ‘ㅂ’은 특이한 예에만 쓰이고 있다.
  예. 리 (2ㄴ, 13ㄴ, 15ㄴ),
   (1ㄴ), [亦](1ㄴ), 미(9ㄴ), 라(8ㄱ)
   레(6ㄱ), (13ㄴ), 신당(13ㄴ),
   (4ㄴ), 디(2ㄴ), 글(8ㄱ), 며(14ㄱ)
라. 어말 ‘ㄷ’과 ‘ㅅ’은 구별되어 표기되고 있다.
예. 몯니라(6ㄱ), 게(7ㄱ); 곳그테(9ㄴ), 졋과(4ㄴ)
마. 사이시옷이 후행어의 두음과 함께 쓰이기도 하였다.
 예. 신당(13ㄴ), 릿그틀(15ㄴ). 참고. 곳그테(9ㄴ)
바. 구개음화의 예는 나타나지 않는다.
 예. 디 말라(2ㄴ)
사. 어말 유기음은 선행어의 받침을 내파화하고 후행어의 두음을 외파하는 것으로 표기된다.
 예. 닙플(4ㄱ), 닙플(5ㄱ), 닙피어나 (14ㄱ).
 후행어의 두음으로 연철된 예도 있다.
 예. 벼(4ㄴ), 나(13ㄴ), 릿그틀(15ㄴ)
아. 체언의 겹받침은 연철되지 않고, 용언의 겹받침은 연철되어 쓰이고 있다.
 예. 을(6ㄱ), 마(5ㄴ).
자. 체언과 조사, 체언과 파생 접미사 사이에 받침이 중철되는 일이 있다.
 예. 방문네(3ㄱ), 연니(9ㄴ), 소올(8ㄱ), 황칠리어나(10ㄱ).
차. 자음 동화에 의한 표기가 다수 나타난다.
 예. 인니라(4ㄴ), 닙플(5ㄱ), 됸니라(7ㄴ), 댄닙(8ㄴ, 9ㄴ).
카. 모음 체언 뒤에도 접속 조사 ‘과’가 쓰인 일이 많이 나타난다.
 예. 쇼과(5ㄴ), 개과(5ㄴ), 과(9ㄱ).

4. 해제 참고문헌

국어국문학 편찬위원회 편(199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미키[三木 榮](1965), “朝鮮牛疫史考,” ≪朝鮮學報≫ 34, 1-28. 朝鮮學會.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편(1976/1986:중판), 국어국문학사전, 신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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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小倉進平] 저, 고노[河野六郞] 보주(1964), ≪增訂補注 朝鮮語學史≫, 刀江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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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미상(n.d.),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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