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신선태을자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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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준(李宗準)이 지어 1497년(연산군 3년)에 간행한 책으로 환약 자금단(紫金丹)의 약재와 제조법과 사용법에 대한 의서

김문웅(金文雄)

∙1940년 경상남도 울주군 출생

∙경북대학교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박사

∙한글학회 대구지회장 역임

∙국어사학회장 역임

∙한국어문학회장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저서 및 논문〉

≪편입 대학국어≫(1977)

≪15세기 언해서의 구결 연구≫(1986)

≪역주 구급방언해 하≫(2004)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3≫(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6≫(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7≫(2009)

“접두사화고”(1977)

“불완전명사의 어미화”(1979)

“「ᅙ」의 범주와 그 기능”(1981)

“‘-다가’류의 문법적 범주”(1982)

“근대 국어의 표기와 음운”(1984)

“근대 국어의 형태와 통사”(1987)

“옛 부정법의 형태에 대하여”(1991)

“한글 구결의 변천에 관한 연구”(1993)

“활자본 ≪능업경 언해≫의 국어학적 고찰”(1999)

“설총의 국어사적 고찰”(2001)

“구결 ‘’의 교체 현상에 대하여”(2003)

“방송 보도 문장의 오류 분석”(2004)

역주위원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 김문웅

교열·윤문·색인위원

  •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 박종국 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스무 해가 되는 뜻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8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4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 등 모두 53책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굴곡이 심하여 애태울 때도 있었으나 우리 회의 굽히지 않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역주자의 노력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가장 깊은 정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이다. 그것은 세종의 철저한 애민정신과 자주정신이며 그 마음을 이어간 선각자들의 헌신적 노력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월인석보≫ 권23·25, ≪구급간이방언해≫ 권7, ≪반야심경언해≫,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마양저염역치료방·분문벽온역이해방≫, ≪언해 두창집요≫ 등 8책을 역주하여 간행할 계획이다.

≪신선태을자금단(神仙太乙紫金丹)≫은 이종준(李宗準)이 지어 1497년(연산군 3년)에 간행한 책으로 환약 자금단(紫金丹)의 약재와 제조법과 사용법에 대한 의서이고,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은 돌림병의 치료법과 예방법을 간단히 설명한 의서인데, 초간은 1525년(중종 20년)에 간행되었으나 전하지 않고 1578년(선조 11년)에 간행한 중간본이 전하며, ≪벽온신방(辟瘟新方)≫은 왕명에 따라 안경창(安景昌) 등이 편찬 언해해서 1653년(효종 4년)에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한 책으로, 돌림병 퇴치 방법을 기록한 의서이다.

이 책들은 의학사적 가치는 물론 국어학사적으로 볼 때에도 매우 중요시되는 자료이다.

이번에 역주한 ≪신선태을자금단≫은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1책 목판본)을, ≪간이벽온방≫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을해자본)을, ≪벽온신방≫은 규장각 소장본(목판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그리고 ≪간이벽온방≫과 ≪벽온신방≫은 홍문각에서 1984년 6월에 축소 영인 간행한 바 있다.

구급의 의방을 집성한 의서이다. ≪성종실록≫ 권제232, 성종 20년(1489) 음력 9월 21일(병자)조를 보면, 내의원에서 ≪구급간이방≫을 새로 편찬 완료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달 26일(신사)조에 의하면, 성종이 이를 제도(諸道) 관찰사에게 글을 내리기를, “지금 ≪구급간이방≫을 보내니, 도착하는 즉시 개간(開刊)하여 인출해서 널리 펴라.” 하였다. 모두 8권 8책으로 되어 있는데, 현전본은 영본으로 권1, 2, 3, 6, 7의 복각된 중간본뿐으로 알려져 있다.

끝으로 이 한의서를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이 책들을 역주해 주신 대구교육대학교 김문웅 명예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12월 1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본은 세 가지 책을 묶은 것이니, 원전의 분량이 적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간행 연대순으로 엮었으며 저본으로 삼은 자료를 부록으로 영인하여 붙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4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4ㄱ활셕  량과 한슈셕  과

제14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셕듁화 14ㄴ여름  과 디허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5) 원문 가운데 두 줄로 된 협주는 편의대로 작은 글씨 한 줄로 이었으며, 한자 원문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 하였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ᄚ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신선 태을 자금단≫의 고찰
김문웅(대구교육대학교 명예교수)

Ⅰ. 서지적 고찰

1. 간행 경위

≪신선 태을 자금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1책으로서, 고 안병희 교수가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간본을 해제와 함께 계간 ≪서지학보≫ 6호(1991년)에 영인하여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학계에 알려지게 된 의서(醫書)이다. 신선 태을 자금단(神仙太乙紫金丹, 이하 「자금단」이라 약칭한다.)이란 명칭은 서명(書名)이면서 동시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약명(藥名)이기도 하다. 이 책은 환약인 자금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재와 제조 방법 및 사용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책의 저자인 이종준(李宗準, ?~1499)은 책의 끝부분에서 간행 동기를 비교적 자세히 적어 놓고 있다. 그는 이 약을 여러 사람에게 처방하여 놀랄 만한 효험을 얻었기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그의 내제(內弟)인 진사 권숙균(權叔均)의 풍종(風腫, 풍습으로 몸이 붓는 병), 흥해(興海) 군수 강백진(康伯珍)의 폭종(暴腫, 갑자기 부어오르는 병증), 손 만호(孫萬戶)의 중풍, 영천(永川) 군수 윤수천(尹壽泉)의 첩이 걸렸던 복하(腹瘕, 여자의 뱃속에 덩어리가 생기는 병) 등과 같은 병을 모두 자금단으로써 고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맨 뒷부분에서 “… 在家出入不可無此藥也 玆不可不傳 且公卿間坌集 而求難以一一酬應 乃書顚末幷圖山茨菰入梓流布云”(집에 있을 때나 출입할 때 이 약이 없으면 안 된다. 이에 부득불 전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높은 벼슬아치들이 모여들어 약을 구해도 일일이 요구에 응하기가 어려우므로 곧 약에 대한 모든 것을 쓰고 산자고의 그림을 그려 책을 편찬 유포한다.)이라고 하여, 저자는 자금단 약이 신통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 줄 수가 없어 그 대신 책을 펴내게 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뒤이어 “皇明弘治丁巳端陽節 慵齋病叟李宗準仲鈞經驗刊施”라는 간기가 있고, 그 다음에 한 줄로 된 ‘慵齋珍琓(陽刻), 仲鈞(陰刻), 核眼之記(陽刻), 偉人救急(陰刻)’이라는 네 개의 인기(印記)가 차례로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이종준이 1497년(연산군 3)에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존하는 15세기 문헌 자료 중에서는 맨 마지막의 국어사 자료가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15세기 국어 문헌 거의가 관판(官版)의 성격을 띠는데 비해 이 책은 민간에서 간행된 것이어서 15세기 국어의 또다른 면을 볼 수 있는 독특한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2. 체제 및 형태

≪신선 태을 자금단≫은 단권의 목판본으로서, 첫 장에는 산자고(山茨菰)의 그림이 있는데 앞면에는 장묘(長苗), 개화(開花), 뒷면에는 잔화(殘花), 결자(結子), 엽고(葉枯) 상태의 모양을 각각 그려 놓고 있다. 그 다음 장에서 책 이름을 한자와 한글로 쓰고 나서 한문으로 된 본문을 시작하고 있다. 본문이 20장이어서 책 전체는 첫 장의 그림까지 합쳐 모두 2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장차(張次)는 본문부터 시작해서 20ㄱ쪽까지 있다.
본문에서는 자금단이라는 환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5가지의 약재와 환약의 제조법, 그리고 환약의 사용법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약재와 제조법에 대한 설명은 본문의 8ㄴ의 8행까지 이어지며, 이 부분에서는 한글로 된 언해가 없이 한문으로만 되어 있다. 간혹 본문 중에서 특정한 약재에 대하여 한문 다음에 고유어 이름을 한글로 달아 놓은 것이 있는데 다음의 예가 그 전부이다.
老鴉蒜鄕名 가마귀물옷(2ㄱ), 山茨菰下諺書 물옷(2ㄴ), 鵲蒜 가마(2ㄴ) 百蟲倉生膚木鄕名 븕나무(4ㄴ).
그러고 나서 8ㄴ의 9~10행에 “別具湯使于後 : 이후 각별히 므레 프러  법을 초 내노라”라고 해서, 여기서부터는 환약의 사용법에 대한 설명이 한문과 언해문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17ㄴ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성암고서박물관의 소장본은 13ㄱ, 13ㄴ, 14ㄴ이 낙장이다. 그래서 ≪서지학보≫ 6호에 게재된 영인본에는 낙장 부분을 일본 교토대학이 소장한 사본으로 보완해 놓음으로써 우리는 전문(全文)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본의 보사자(補寫者)가 중세 한국어에 대한 소양이 거의 없는 사람인 듯하여 필사에 많은 오류를 보이고 있다. 한 예로 ‘’을 ‘숟’으로 표기해 놓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책은 반곽(半郭)의 크기가 세로 15.8cm, 가로 12.1cm이고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본문에는 계선(界線)이 있으며 1면에 10행, 매행 15자씩이다. 판심은 백구(白口)에 흑어미(黑魚尾)가 마주 놓인 형식이다. 그리고 판심제는 없고 장차만 나타나 있다. 본문 중 한문만으로 된 약재와 제조법 부분에서 제목(서명과 약재명)은 첫 간부터 썼으나 이하 설명 부분에서는 배자(排字)를 조금씩 달리 하고 있다. 즉, 중국 의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설명하는 부분(한문)은 매행 첫 자를 띄우고 쓰는 14자 배자를 하였고, 저자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기술한 ‘今按’(이제 보니) 부분은 매행 두 자를 띄우고 쓰는 13자 배자를 하였다. 그리고 언해문이 붙은 사용법 부분에서는 한문 본문을 첫 간부터 시작해서 15자로 쓰고 언해문은 한 자 낮춰 14자로 썼다. 여기서도 ‘今按’ 부분은 한문이나 언해문 모두 똑같이 두 자를 낮춰 매행 13자로 쓰고 있다. 언해 부분이 끝나고 17ㄴ의 7행부터 다시 시작되는 마지막의 한문 부분은 전반부의 한문에서 보여 주었던 형식대로 매행 한 자를 낮춰 쓰고 ‘今按’ 부분 역시 한 자를 더 낮춰 13자로 쓰고 있다.

3. 저자 및 내용

이 책의 저자는 앞에서 말한 대로 이종준(李宗準, ?~1499)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일찍이 안병희(1991)에서 자세히 소개하였기에 여기서는 그것을 그대로 인용하여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고자 한다.
李宗準은 字 仲鈞, 號 傭齋다. 號로는 그 밖에 傭軒, 浮休子, 尙友堂, 藏六堂, 太庭逸民이 있다. 慶州人으로서, 대대로 서울에서 벼슬한 집안 출신인데 아버지 時敏도 1453년(端宗 1) 生員, 進士에 합격하였으나 金宗瑞 등의 사건에 연루되어 官界의 길이 막혀 安東 琴溪村에 내려와 살았으며, 이때 저자가 태어났다고 한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文才가 뛰어났으나, 金宗直의 門人으로서 훌륭한 학자와 사귀면서 文章과 書畵에 더욱 이름을 날리었다. 1498년(燕山 4)에 일어난 戊午士禍로 이듬해 鞠殺의 변을 당하였기 때문에 文籍이 흩어져서 生平 등이 정확하지 않다. 文集인 傭齋遺稿가 후손에 의하여 單券으로 1824년(純祖 24) 간행되었으나 내용이 극히 소루하다. 거기 실린 行狀도 집안에 전래되던 것으로 文字의 欠落이 있었다고 한다. 行狀과 그 밖에 관련 자료를 종합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1477년(成宗 13) 進士가 되고, 1485년 文科에 甲科로 합격하였다. 1488년 湖當으로 선발되어 賜暇讀書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뒤로 副修撰, 兵曹佐郞, 慶尙道都事, 兵曹正郞, 義城縣令, 舍人의 벼슬에 있었다. 1498년 士禍로 杖八十에 北界로 귀양을 가게 되어 端川磨谷驛을 지나면서 驛舍 벽 위에 宋나라 李師中의 詩를 썼는데, 그것으로 결국 죽게 되었다. 肅宗 때에 弘文館副提學으로 追贈되고 安東의 鏡光書院 등에 祭享된 바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환약 자금단의 약재와 제조법, 그리고 사용법에 관한 것이다. 먼저 본문 첫 장을 보면, 자금단 약의 다른 이름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唐陳自明宋遂江李迅寶皆名神仙追毒元又名聖授丹又名神仙解毒萬病元大明玄洲道人涵虛子臞仙謂之玉樞丹止謙道人王應기作今名唐人謂之錠子藥
今按唐人凡作錠藥皆謂之錠子藥東人不知以此名爲錠子藥可笑(1ㄱ)
여기서 우리는 자금단 약의 이칭(異稱)으로, 신선추독원(神仙追毒元), 성수단(聖授丹), 신선해독만병원(神仙解毒萬病元), 옥추단(玉樞丹) 등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今按’이라 해서 약명에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당나라 사람은 정약(錠藥)이라고 하는 것을 대개 정자약(錠子藥)이라고 이르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이를 모른 채 약 이름을 정자약이라고 하니 우습도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항목마다 ‘今按’을 통해서 저자의 견해를 피력하는 일은 전체에 걸쳐 베풀어지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하고 있는 약명 항목의 본문 바로 다음부터는 자금단의 약재인 산자고(山茨菰)로 시작해서 천금자(千金子), 문합(文蛤), 홍아대극(紅牙大戟), 사향(麝香) 등의 차례로 한 가지씩 자세히 설명한다. 5가지 약재마다 중국 의서에 근거하여 설명을 한 다음에 앞에서 본 대로 ‘今按’이라 하여 저자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바탕한 설명을 제시해 놓았다.
5가지 약재를 간단히 소개하면, 먼저, 산자고는 높이가 30cm 정도 되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일명 금등롱(金燈籠)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천금자는 높이가 50~70cm 정도 되는 대극과의 두해살이풀로서 일명 속수자(續隨子)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합은 붉나무에 생긴 혹 모양의 벌레집을 말하며, 기침, 설사, 출혈증의 약재로 쓴다. 일명 오배자(五倍子)라고도 한다. 또한, 홍아대극은 꼭두서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봄에 붉은 싹이 나오기 때문에 흔히 홍아대극이라고 부른다. 끝으로, 사향은 높은 산지에서 사는 사향노루의 사향 선(腺)을 건조시켜 얻는 분비물이다. 사향은 생약으로서 강심, 흥분, 진경제(鎭痙劑)로, 또 기절하였을 때 정신이 들게 하는 약으로 쓰였다.
이상에서 소개한 5가지 약재로써 환약인 자금단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今按’ 부분이 아닌 중국 의약서에 근거한 설명 부분이다.
山茨菰去皮淨焙二兩(1ㄱ)
千金子一名續隨子去赧硏去油取霜秤一兩(3ㄴ)
文蛤一名五倍子搥破洗焙淨秤三兩(4ㄴ)
紅牙大戟去蘆洗淨焙乾秤一兩半(5ㄱ)
麝香三錢別硏(5ㄴ)
右除千金子麝香外三味爲細末却入硏藥令勻用糯米煮濃飯爲糊於木臼內杵千餘下分爲四十粒合時宜用端午七夕重陽日或遇天德月德日亦佳(7ㄴ)
이에 의하면 환약을 제조하기 위한 약재는, 껍질을 벗기고 불기운에 말린 산자고 두 냥, 역시 껍질을 벗겨 갈아서는 기름을 제거하고 하얗게 만든 천금자 한 냥, 부수어 씻고 약한 불기운에 말린 문합 석 냥, 싹이 나오는 머리 부분을 없애고 깨끗하게 씻어 약한 불기운에 말린 홍아대극 한 냥 반, 따로 갈아 놓은 사향 서 돈 등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먼저 천금자와 사향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약재를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든다. 여기에다 천금자와 사향을 넣고 고루 섞어서 걸쭉한 찹쌀 미음에 개어 40알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환약은 단오나 칠석, 또는 9월 9일에 만들어야 하는데 천덕일(天德日)이나 월덕일(月德日)에 만드는 것도 좋다고 하였다.
이상과 같은 약재와 제조법 부분이 끝나면 이제는 한문과 언해문으로 된 이 약의 사용법 부분이 이어진다. 이에는 자금단 약을 사용하거나 복용해야 할 질환들을 들고 그 질환마다 약의 사용 및 복용 방법을 설명하였다. 질환으로는 일체의 약독 고독 장기(藥毒蠱毒瘴氣), 육독(肉毒), 음식독(飮食毒), 악창(惡瘡), 황종(黃腫), 학질(瘧疾), 자액(自縊), 익사(溺死), 화소(火燒), 간질(癎疾), 중풍(中風) 등을 들고 있다. 이들 질환에 따라 사용하는 방법에는 환약을 환부에 바르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고 하였다. 먹을 때는 생강이나 박하즙에 또는 정화수에 갈아서 먹기도 하고, 마른 박하를 진하게 달인 물에 갈아서 먹어도 좋다고 하였다.

Ⅱ. 국어학적 고찰

1. 표기 및 음운

(1) 연철·분철
중세 국어의 정서법은 이른바 연철법(連綴法)으로서, 이는 체언이나 용언 어간의 끝자음을 뒤에 오는 모음의 조사나 어미의 초성으로 내려 적는 표기법이다. 이러한 표기법의 원칙이 ≪신선 태을 자금단≫에도 잘 지켜지고 있으나 그것은 용언의 경우에 해당되고, 체언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에서 체언과 조사를 각각 분리해서 표기하려는 분철법(分綴法)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용언의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프러(8ㄴ), 라(9ㄱ), 드러(10ㄴ),
주근(9ㄱ), 머그면(10ㄱ), 혀근(10ㄴ),
구더(9ㄴ), 어드나(12ㄱ), 세워더(11ㄱ),
마(13ㄴ)
위에서 보듯이 용언의 경우는 연철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체언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그것은 받침의 자음에 따라 분철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자음별로 살펴보면, 마지막 받침이 ㄱ, ㄴ, ㅁ, ㅂ일 때는 연철 분철이 대등하게 나타난다.(ㄷ 종성은 예가 없어 제외하였다.)
약이(9ㄴ), 약을(10ㄱ), 약은(17ㄴ), 샤독이(11ㄴ), 쥭을(17ㄱ), 쥭이(17ㄱ)
cf. 뵈앗븐 저긔(9ㄴ),  기(13ㄴ), 녀그로(14ㄱ)
한으로(9ㄴ), 긔운으로(11ㄱ), 신이(13ㄱ),  번의(16ㄱ)
cf. 누니(15ㄴ), 현 버(16ㄴ)
심이(12ㄱ-ㄴ), 사으란(13ㄴ), 효험이(16ㄱ), 효험은(17ㄱ)
cf. 미(11ㄴ) 메(13ㄴ), 바(15ㄴ), 말미(15ㄴ)
법을(8ㄴ), 즙에(16ㄴ)
cf. 이비(15ㄴ), 이베(13ㄴ), 겨지븐(17ㄴ)
그러나 체언의 끝자음이 ㄹ, ㅅ, 그리고 유기음일 경우에는 연철 일변도로 표기하고 있다. 그 밖에 ㅁ 종성이라도 동명사의 ㅁ일 경우에는 연철 표기만을 보여 준다.
므레(8ㄴ), 손바래(10ㄱ), 수레(12ㄴ), 입시우리(15ㄴ), 브레(14ㄱ), 손바리(15ㄴ)
cf. 대양혈에(15ㄱ)
귓거싀(13ㄱ), 니를 거시니(17ㄱ)
가치(10ㄱ), 니플(11ㄱ),  나(16ㄱ)
져구믈(11ㄱ), 거름 거로매(15ㄴ), 머구미(16ㄴ), 초아 두미(17ㄱ)
8종성 중에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ㆁ에 대해서는, 다른 종성의 경우와 달리 이미 15세기 국어에서 연철하지 않고 종성으로 쓰는 분철이 정착된 실정이어서 여기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이상에 제시된 표기 용례를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분철의 실현이 거의 한자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헌 자료에서는 한자어도 모두 한자 없이 한글로만 표기하고 있어 표기상으로는 고유어와 구별이 되지 않지만 연철 분철의 시행에 있어서는 한자어와 고유어를 철저히 구분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실제로 분철한 경우에 고유어는 전체를 통해 단 3개(한으로, 심이, 사으란)밖에 없고, 반대로 연철한 용례 중에서 한자어는 체언 용언을 통틀어 단 1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ㄹ 종성의 경우에는 오직 연철법만이 허용되는 대세 속에서도 유일하게 등장한 한자어에 대해서만은 분철이 되고 있는 것을 볼 때(대혈에〈15ㄱ〉) 더욱 분명해진다.
(2) 병서자(並書字)
각자병서(各自並書)는 ≪원각경 언해≫(1465)에서부터 전면적으로 폐지된 이후 이 책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각자병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원각경 언해≫이전이라면 각자병서가 쓰였을 곳이 대개 다음의 예들이 될 것이다.
말미(15ㄴ), 빌시라(9ㄱ), 니를 거시니(17ㄱ), 술 비즐 제(12ㄴ), 욀 줄(16ㄴ)
그리고 합용병서(合用並書)는 ㅅ계, ㅂ계, ㅄ계가 초성에서 다 그대로 쓰였다.
메(13ㄴ), 라(13ㄱ)
빌시라(9ㄱ), 며(10ㄴ), 마(15ㄴ), 그칠 (17ㄴ)
더니(12ㄴ)
나디 아니야신(10ㄱ)
(10ㄴ)
(12ㄱ)
자료의 제약으로 ㅼ, ㅳ, ㅶ의 용례는 찾을 수 없었지만 ㅴ, ㅵ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ㅼ, ㅳ, ㅶ의 사용에도 변동이 없었을 것이다.
(3) 종성의 표기
15세기 국어에서 종성의 ㅅ과 ㄷ이 혼기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5세기의 마지막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ㄷ종성이 쓰여야 할 자리에 ㅅ이 쓰인 혼기가 발견된다. 그것은 ‘굳-[固]’이 ㅅ 두음을 가진 어간과 합성어를 형성하면서 ‘굿-’으로 변한 예이다. 이는 다분히 ㅅ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환경에서 쓰인 ‘굳-’은 어간 말음 ㄷ을 그대로 유지한 예가 이 책에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귀 굿세니와(15ㄴ).
cf. 심히 구더(9ㄴ), 말미 굳며(15ㄴ)
종성에서 주목되는 현상이 한 가지 발견된다. 그것은 8종성법을 벗어난 표기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을 제외한 모든 문헌에서 철저히 지켜오다시피 한 8종성법을 넘어선 유기음 종성 표기가 하나라도 등장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동일한 낱말에 대해서 같은 책의 한 쪽에선 8종성법에 따른 표기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귀밑 대혈에 브티라(15ㄱ).
cf. 귀믿머리 알니란(15ㄱ)
그리고 용언의 어간 말음 ㅎ은 어떤 경우에도 종성으로 표기되는 일이 없다. 그 중에서 ㅅ 앞의 ㅎ은 ㅅ으로, ㄴ 앞의 ㅎ은 ㄷ으로 바뀌어 표기되었는데, ㅎ을 종성에서 ㄷ으로 표기한 예가 나타난다.
됻다(12ㄴ), 됻니(12ㄴ).
cf. 됴리라(9ㄴ)
또한 종성으로 쓰인 합용병서로는 사이ㅅ이 덧붙은 예를 제외하고 ㄺ, ㄼ이 보인다. 이는 훈민정음 초기 문헌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9ㄱ), 엷고(10ㄱ), 여듧 가짓(10ㄴ)
(4) ㅿ, ㆁ
ㅿ은 고유어나 한자어에서 동요 없이 표기되고 있다.
여(9ㄱ), 이야(10ㄱ), 미(11ㄴ), 브며(11ㄴ), 거어든(12ㄱ)
머거(12ㄴ), 두(17ㄱ)
독(肉毒, 9ㄱ), 발엸(發熱病, 11ㄱ)
ㆁ도 종성에서 일관되게 쓰이고 있으나 일부에서 ㅇ으로 표기된 곳이 보인다. ㅇ으로 표기한 예가 주로 한 곳에 집중되어 있고, 또한 필사한 부분에서 보이고 있으므로 이는 오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창(10ㄱ), 죽 병과(10ㄴ), 병드러(10ㄴ), 븟 병에란(10ㄴ), 졍신(13ㄱ)
(5) 어두음 ㄹ
고유어나 한자어에서 어두의 ㄹ은 어떤 모음 위에서도 ㄴ으로 교체되거나 탈락됨이 없이 어두에 그대로 쓰고 있다.
라귀(9ㄱ), 리질(痢疾, 10ㄴ)
(6) 한자음과 방점
이 문헌의 권수제(卷首題)로 써 놓은 ‘神仙太乙紫金丹 신션태을금단’에서만 한자와 한자음을 병기하였을 뿐 그 이외의 한자어에 대해서는 한자와 한자음을 병기한 곳이 전혀 없다. 언해문에서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권수제만 보아도 이 문헌에 쓰인 한자음은 당시의 현실 한자음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15세기 한자음의 규범이었던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폐기되었던 것이다. 그 밖에 방점도 이 문헌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 문법

(1) 보조사 ‘-/’과 ‘-란’
‘-/’과 ‘-란’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보조사로서, 설명의 대상으로 앞세우거나 대조의 뜻을 나타내거나 할 경우에 쓰인다. 그러면서 허웅(1975:389)은 단독으로 체언에 붙을 때 ‘-/’은 주어에 붙는 것이 대부분이고, ‘-란’은 목적어에 붙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헌에서는 그보다 다른 면에서 양자 간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음이 주목된다. 우선 양적으로 ‘-란’은 ‘-/’보다 2배 정도 많이 나타난다. 그러면 ‘-란’과 ‘-/’은 각각 어떤 조건일 때 쓰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 예문을 보기로 한다.
며 더워  답답며  부러 만야 브며 과글이 목 리브며 목 안히 브 에란(11ㄴ)
얌과 가히와 지네와 일쳬 모딘 벌에 믈이니란(14ㄱ)
노 셔 려디니와 다티니와 업더디거나 니란(14ㄴ)
이 약 머그리(16ㄱ)
아기  겨지븐(17ㄴ)
위의 예문을 통해서 양자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즉, 체언이나 체언에 직접 관련된 말이 둘 이상 연결되거나 나열될 경우에는 ‘-란’이 쓰였고, 그렇지 않고 하나의 체언일 때는 그 다음에 ‘-/’이 연결되었다. 이러한 기준은 전체를 통해 각각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그 예외란 ‘-란’이 단일한 체언 아래 쓰인 예가 한 군데서 발견되고, ‘-/’이 둘 이상의 체언이 열거된 경우임에도 쓰인 예가 또한 한 군데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다음의 예문들이다.
믈읫 므레 머그라 니란(16ㄴ)
힘 거디쥐여 움주쥔 병과   긔운으로 브 과 손바리 싀저려 알파 거름 거로매 어려워 (15ㄴ)
(2) ‘-’의 활용형
‘-’의 활용형 ‘야’가 ‘여’로 바뀐 예를 한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발티 몯여신 적과(11ㄴ).
cf. 나디 아니야신 저긔(10ㄱ)
(3) 부정법
15세기 국어의 이른바 긴 부정문 중에서 ‘몯-’ 부정문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디 몯-’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옴/움이 몯-’ 형식이다.
萬法을 아디 몯면(不了萬法, 능엄경 언해 4:1ㄴ)
오히려 머구미 몯리니(尙不可食, 능엄경 언해 6:99ㄴ)
이 중에서 후자 형식의 부정문은 ≪금강경 삼가해≫(1482)에 와서 거의 소멸 상태에 이르게 되고 ≪신선 태을 자금단≫과 동시대인 ≪육조 법보단경 언해≫(1496)에 오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 문헌에선 전자 형식과 함께 후자 형식의 부정문이 상존하고 있다.
쉬이 디 몯리니(未易得磨, 9ㄴ)
아 아귀 세워더 놀이디 몯거든(小兒牙關緊急, 11ㄱ)
갓 일개로 혜요미 몯리라(不可執一也, 12ㄴ)
아기  겨지븐 머구미 몯리라(孕婦不可服, 17ㄴ)
그렇다면 두 형식 사이에 의미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현재로선 분명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그것은 동일한 ‘不可稽留’의 한문 구절에 대한 ≪내훈≫(1475)의 언해가 ≪어제 내훈≫(1736)에서는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더듸 머므로미 몯리다(내훈 2상:52ㄴ)
더듸 머므로디 못리이다(어제 내훈 2:43ㄴ)
≪내훈≫에서 ‘-옴이 몯-’로 언해한 부정문이 ≪어제 내훈≫의 언해에서는 ‘-디 못-’의 부정문으로 교체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옴이 몯-’ 형식의 부정문은 15세기 국어에서만 존재했던 형식이고 그 의미도 ‘-디 몯-’ 형식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번역 문체
의서(醫書)의 번역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 언해의 직역과는 달리 원문의 뜻을 살려 번역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 중에서도 ≪신선 태을 자금단≫은 의역하는 정도를 넘어 한문 원문에 없는 상세한 설명까지 더하는 번역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믈읫 가치 엷고 터히 노 긔와 가치 두텁고 터히 덛덛 긔와 창과 머리와 과 손바래난 모딘 긔와(癰疽發背疔腫, 10ㄱ)
새로 어드나 오라거나 걸이나 이틀걸이나 날마 알나 다 묻디 말오(不問新久, 12ㄱ)
새배  아니 기른 제 몬져 기룬 우믌믈와  흐르 므레(皆用井花水或長流水, 16ㄴ)
cf. 鼠頭쥐머리 燒作屑井花水<원주>새배  아니 기러셔 몬져 기론 우믌믈服方寸匕日三 = 쥐머리 론  새배  아니 기러셔 몬져 기론 우믌므레  술만 프러  세 번곰 머그라(구급 간이방 7:29ㄱ)
위의 예문에서 언해문의 밑줄 그은 부분을 보면, 한문 원문의 癰疽(옹저), 新久(신구), 井花水(정화수)에 대해서 각각 그 자체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해서는 특별한 용어에 대해 협주를 달아 풀이해 놓고 그 내용을 언해문에 반영하는 방식이 일관된 형식이다. 그러나 이 문헌에서는 협주에서 베풀어야 할 내용을 협주의 방식을 거치지 않고 언해문의 본문에 바로 나타내고 있다.

3. 어휘

(1) 사전에 올려 있지 않은 어휘
≪신선 태을 자금단≫은 앞에서 밝힌 대로 고 안병희 교수가 1991년 ≪서지학보≫ 6호에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 자료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간행된 옛말 사전은 대부분 이 문헌이 발표되기 전에 나온 사전들이어서 이 문헌에 쓰인 어휘 중에는 사전에 없는 어휘가 제법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는 그런 어휘를 열거하려 한다. 그 의미도 함께 제시하려 하지만 이들 어휘에 대한 다른 용례가 없어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 한문 원문과 문맥을 바탕으로 하여 가능한 한 그 의미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ㄱ. 굼굼
알  고 머그면 이야 굼굼 랍다가 즉재 스러디니라(搽痛處幷磨服良久覺痒立消, 10ㄱ)
한문 원문에서 ‘굼굼’에 해당하는 한자(漢字)가 ‘각(覺)’일 듯하지만 ‘굼굼’과 ‘覺’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본문에 쓰인 ‘굼굼’은 ‘랍다’[痒]를 수식해 주는 부사임이 분명하고 또한 가려운 정도를 나타내는 의태어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직접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낱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구급방 언해≫(1466)의 “나 毒氣  예 이셔 금굼히 알고 랍거든”(餘毒在肉中滛滛痛痒, 하:80ㄱ)에 보이는 ‘금굼히’이다. ‘금굼히’도 ≪신선 태을 자금단≫의 ‘굼굼’과 마찬가지로 형용사 ‘랍-’[痒]을 수식하는 부사로 쓰인 것이어서 두 말은 동일한 낱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하여 ≪구급방 언해≫의 ‘금굼히’에 대응하는 한자를 확인하니 ‘滛滛(제제)’임을 알 수 있었고 ‘滛滛’는 또한 ‘濟濟(제제)’와 같은 표기임이 파악되었다. 그러고 보니 ‘濟濟’는 많고 성하다는 뜻으로 지금도 쓰이는 말이어서 ‘굼굼’도 이와 같은 뜻으로 ‘많이, 크게’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옛말 사전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 두고자 한다. 현재 나와 있는 옛말 사전 어디에도 ≪신선 태을 자금단≫의 ‘굼굼’은 올라 있지 않지만 ≪구급방 언해≫(하:80ㄱ)의 ‘금굼히’는 모두 등재되어 있는데 그 풀이를 ‘근근하게’ ‘때때로’ ‘근근히, 근질근질’로 각각 해 놓고 있다. 아마도 문맥과 대응 한자를 근거로 해서 이런 풀이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 그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현재의 사전들이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한자를 잘못 읽었다는 점이다. ≪구급방 언해≫에 보면 ‘금굼히’에 해당하는 한자가 분명히 ‘滛滛’로 되어 있음에도 사전들은 모두 이를 ‘淫淫(음음)’으로 보고 ‘淫淫’으로 전사(轉寫)해 놓고 있다. 滛와 淫은 독음도 서로 다르고 뜻도 아주 다르다. 이로 인해 풀이가 ‘많이, 크게’하고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ㄴ. 마
걸이나 이틀걸이나 날마 알나 다 묻디 말오(12ㄱ)
이 부분은 한문 원문이 없이 자세한 설명을 베풀고 있는 구절이므로 ‘날마’에 해당하는 한자를 따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쉽게 그 뜻이 파악된다. 학질의 유형을 나열하는 대목에서 하루거리(하루씩 걸러서 앓는 학질)와 이틀거리(이틀 걸러 발작하는 학질)를 들고 그 다음에는 매일 앓게 되는 학질을 들 차례에서 ‘날마’이 쓰인 것이다. 그 ‘매일’에 해당하는 말이 ‘날마’이다. 그러므로 ‘마’은 보조사 ‘-마다’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마’은 방언형으로 보인다.
ㄷ. 나다
일쳬 일훔 업슨 모딘 이 나디 아니야신 저긔(一切無名惡瘡未破之時, 10ㄱ)
‘나-’에 해당하는 한자가 ‘破(파)’로 되어 있고 ‘나-’의 대상이 또한 창종(瘡腫)으로 되어 있어 의미 파악은 어렵지 않다. 거기다 중세 국어의 동사 ‘-’[裂]와 쉽게 연결되기 때문에 ‘나-’는 동사 어간 ‘-’[裂]와 ‘나-’[出]가 연결 어미 ‘-어’를 매개로 하여 결합된 통사적 합성 동사로서 ‘터져 나오다’의 뜻임을 짐작할 수 있다.
ㄹ. 싀저리다
손바리 싀저려 알파(手脚疼痛, 15ㄴ)
한자로 ‘疼痛(동통)’을 ‘싀저려 알파’로 번역한 것이다. 손발이 아픈 상태를 ‘싀저려 알파’라고 한 것을 보아 시큰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싀-’[酸]와, 손발이 저리다는 뜻으로 쓰이는 ‘저리-’[麻]의 어간끼리 결합된 비통사적 합성 동사로 보인다. 뜻도 ‘시큰하고 저리다’로 보면 무난할 듯하다.
ㅁ. 심
여러 가짓 심 알커든(諸般瘧疾, 12ㄱ),
여러 가짓 심이 아니 됴리 업거니와 오직 긔엣 심과 심과(諸瘧無不愈者氣瘧牡瘧, 12ㄱ-ㄴ)
‘심’에 대응되는 한자가 한결같이 ‘瘧(학)’ 내지 ‘瘧疾(학질)’로 되어 있어 ‘심’은 학질을 가리키는 고유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학질을 가리키는 우리말로는 ‘고봄’(능엄경 언해 5:2ㄱ, 동경대본 훈몽자회 중:34ㄴ), ‘고곰’(예산본 훈몽자회 중:16ㄴ)이 쓰였으나 ‘심’은 이 문헌에서 처음 보는 낱말이다. 최학근의 ≪한국 방언 사전≫(1978)에는 ‘심’이 학질을 뜻하는 전남 진도의 방언으로 수록되어 있다.
ㅂ. 죽다
혀근 아의 며 느즌 놀라 죽라  병과(小兒急慢驚風, 10ㄴ)
한문의 ‘驚風(경풍)’을 언해에서 ‘놀라 죽라  병’으로 나타내었다. 오늘날의 국어사전에, 경풍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로서, 풍(風)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병증을 말하며, 급경풍과 만경풍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로써 볼 때 ‘죽다’는 ‘죽은 듯이 가라앉다’ 또는 ‘까무러치다’의 뜻을 가진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은 동사 어간 ‘죽-’[死]과 ‘-’[潛]이 직접 통합하여 형성된 비통사적 합성 동사이다.
ㅅ. 홀리다
여와 과 쥐게 홀리니와(狐狸鼠莽, 9ㄱ)
‘홀리-’[迷惑]는 현대 국어에서도 쓰는 말이기 때문에 그 뜻이나 용법에 대해서 새삼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언급해 두고자 하는 것은, 현대어와 같은 표기와 뜻을 가진 낱말이라도 옛글에 쓰였다면 그 낱말도 옛말로 다루어 그 쓰임의 같고 다름을 밝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홀리다’도 옛말 사전에 올려야 할 낱말로 보는 것이다. ‘홀리다’는 올려 있지 않지만 ‘먹다’ 같은 동사는 현재 나와 있는 옛말 사전에 모두 올라 있다.
ㅇ. 글다
이비 기울며 입시우리 글며(口喎斜脣, 15ㄴ)
‘힝글-’은 한문에서 바로 ‘斜(사)’로 나와 있어 ‘비스듬하다, 틀어지다’의 뜻으로 쓰인 말임을 곧 알 수 있다. 현재도 구안괘사(口眼喎斜)라 해서 안면 신경이 마비되어 입과 눈이 한 쪽으로 돌아가고 틀어지는 증상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2) 조금 달리 표기된 형태로서 사전에 올려야 할 어휘
동일한 낱말이라도 시대와 문헌에 따라 그 표기가 조금씩 달라지거나 음운 현상 등으로 형태가 바뀌어 나타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리하여 표기가 달라진 어휘에 대해서도 옛말 사전에서는 빠짐없이 실어서 그 출전과 본말과의 관계 등을 밝힘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본 낱말은 현재의 사전에 올라 있지만 그로부터 달라진 표기나 변이된 형태의 낱말은 올라 있지 않은 예 중에서 이 문헌에서만 보이는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ㄱ. 거디쥐다
아귀 굿세니와 힘 거디쥐여 움주쥔 과(牙關緊急筋脉攣縮, 15ㄴ)
‘죄어들다’의 뜻으로 쓰인 ‘거디쥐-’는 15세기에 ‘거두쥐-’(월인석보 17:52ㄴ, 구급 간이방 2:46ㄱ)로 나타난다. 그러나 ‘거디쥐-’의 형태는 이 문헌에서만 보이며, 따라서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ㄴ. 다
다 더운 수레 라 머기라(並用熱酒磨下, 16ㄱ)
cf. 다 병 : 並(광주 천자문 40ㄱ)
‘다’은 중세 국어에서 ‘다’으로 널리 쓰이던 ‘더불어, 함께’란 뜻의 말이다. 이에는 ‘다’에서 조금씩 달라진 여러 형태들이 사전에 올라 있다. ‘다몯, 다못, 다므기, 다믇, 다믓, 다’ 등. 그러나 ‘다’은 빠져 있다. 안병희(1987)에 의하면 ‘다’은 한글판 ≪오대 진언≫(1476)에 유일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ㄷ. 븕나무
百蟲倉生膚木鄕名 븕나무(4ㄴ)
위의 예는 약재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한문의 명칭 다음에 우리말의 나무 이름을 한글로 달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어형대로 ‘븕나모’라 하지 않고 ‘븕나무’라 한 것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중세 국어에서는 ‘나모’만 일관되게 쓰였는데 여기서 ‘븕나무’라 하여 ‘나무’가 쓰인 것은 최초가 아닌가 한다. 이 문헌에서도 다른 데서는 여전히 ‘나모’가 쓰이고 있어(버드나모, 12ㄱ) ‘븕나무’의 등장은 더욱 이채로운 것이다. 마땅히 ‘븕나무’가 사전에 실려야 할 것이다.
ㄹ. 비다
두  가지니 다 빌 시라(搽與擦同摩拭也, 9ㄱ)
동사 ‘비-’는 손으로 비빈다는 말인데, 이는 중세 국어에서 주로 ‘비븨-’와 ‘비-’의 형태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으로 어두 경음화가 일어난 ‘븨-’도 제법 나타나고 있다. 이 문헌에 등장하는 ‘비-’는 ‘븨-’에서 어간 말음이 단모음으로 교체된 것이 또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비븨다’, ‘비다’, ‘븨다’와 함께 ‘비다’도 사전에 새로 올려야 할 것이다.
(3) 최초의 출전을 바꿔야 할 어휘
옛말 사전에는 표제어의 낱말이 등장하는 여러 문헌 자료의 예문을 시대순으로 수록함으로써 그 낱말이 언제 어느 문헌에서 처음 등장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신선 태을 자금단≫의 출현으로 이미 사전에 등재된 옛 낱말 중에는 최초의 출전을 이 문헌으로 앞당겨야 할 낱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그 낱말들을 열거하여 낱말마다 현재의 옛말 사전에서 밝히고 있는 최초의 출전과 이 문헌과의 시간적인 차를 살피고자 한다.
ㄱ. 곳블
과  긔운으로 곳블 며(感冒風寒, 11ㄴ)
감기(感氣)를 가리키는 고유어 ‘곳블’이 현재의 옛말 사전에는 16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분문 온역 이해방≫(1542)의 “그  그모도록 곳블도 만나디 아니며”(4ㄱ)를 맨 먼저 들고 있는데, 그 자리에 이 문헌의 예문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ㄴ. 두드러기
여러 가짓  마니와 두드러기와(諸風癮疹, 10ㄴ)
‘두드러기’는 현대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는 낱말인데, 이 낱말의 최초 등장을 옛말 사전에서는 예산본 ≪훈몽자회≫(1527)의 “두드러기 은:癮”(중:16ㄱ)으로 잡고 있다. 이 역시 최초의 예를 이 문헌의 것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ㄷ. 딜앐
여러 가짓 딜앐과(諸般癎疾, 15ㄱ)
‘딜알’은 그 뒤로 구개음화하여 지금까지도 비속어로 남아 있는 말이다. 그런데 ‘딜알’이 단독으로 문헌에 나타난 것은 ≪역어유해≫(1690)가 처음인 것으로 사전에 밝혀져 있다. 비록 합성어 형태이긴 하지만 이제는 ‘딜알’의 등장을 이 문헌에까지 소급해야 할 것이다.
ㄹ. 벅버기
   긔운으로 브 과 손바리 싀저려 알파 거름 거로매 어려워  벅버기 이 다 긧이니(骨節風腫手脚疼痛行止艱辛應是風氣, 15ㄴ-16ㄱ)
‘응당’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 ‘벅버기’가 ≪동문유해≫(1748) 하:47ㄴ에 처음 나타나고 ‘벅벅이’는 진주에서 간행된 우병영본 ≪병학지남≫(1737) 2:16ㄱ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는 18세기 이후 문헌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을 이제 15세기 말까지 앞당기게 되었다.
ㅁ. 아귀
아 아귀 세워더 놀이디 몯거든(小兒牙關緊急, 11ㄱ)
현대어에서도 ‘입아귀’로 쓰이는 ‘아귀’는 옛말 사전에서 “아귀 셴 : 口硬馬”(노걸대 언해 하:8ㄴ)을 첫 예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선 태을 자금단≫은 ≪노걸대 언해≫(1670)보다 무려 173년이나 앞서는 문헌이므로 ‘아귀’의 출현은 그만큼 앞당겨지는 것이다.
ㅂ. 의식
대뎌디 즈칄 약은 의식 토니(大抵下泄藥例多上吐, 17ㄴ)
‘의식’은 본래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 말이나 여기서는 한문 원문의 ‘例多(예다)’로 보아 ‘흔히’나 ‘자주’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지금까지 16세기 초의 문헌인 ≪속 삼강행실도≫(1514), ≪번역 소학≫(1518), ≪정속 언해≫(1518) 등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문헌의 등장으로 15세기에도 쓰이던 말임이 밝혀진 셈이다.
ㅅ. 한
모로매  한으로 슬허 므레 프러 라(須用細鎊鎊之和水用之可也, 9ㄴ)
‘한’은 오늘날 줄처럼 쓰는 연장의 하나인 환[雁歧鑢]을 말한다. 현재의 옛말 사전에는 ≪동문유해≫(1748)의 예가 가장 이른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헌의 예가 나타남으로써 이 낱말의 첫 등장은 18세기에서 15세기로 크게 앞당겨지게 되었다.

〈참고 문헌〉

안병희(1987). 한글판 ≪오대 진언≫에 대하여. 『한글』 195호. 한글학회.
안병희(1991). ≪신선 태을 자금단≫ 해제. 『서지학보』 6호. 한국서지학회.
정우영(1993). ≪신선 태을 자금단≫의 국어학적 연구. 『동악어문론집』 7집. 동악어문학회.
허웅(1975). 『우리 옛말본』. 샘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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