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상원사중창권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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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信眉) 등이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를 중수(重修)하기 위한 시주를 모으기 위해 쓴 권선문과 국왕 세조가 중창에 필요한 물자를 내리면서 쓴 어첩이다. 가장 오래된 필사(筆寫) 한글 자료라는 점과 시주 열기(列記)에 직함(職啣)과 인기(印記), 수결(手決)이 나열되어 있어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김무봉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논문〉

「중세국어의 동명사 연구」(1987)

「고어사전 미수록 어휘에 대하여」(1992)

「금강경 언해의 서지 및 어학적 고찰」(1993)

「중세국어의 선어말어미 -ㅅ-에 대한 연구」(1996)

「상원사어첩 및 중창권선문의 국어사적 고찰」(1996)

「고행록의 문법」(1998)

「15세기 국어사 자료 연구」(1999)

「장수경 언해 연구」(2001)

「조선시대 간경도감 간행의 한글 경전 연구」(2004)

「훈민정음 원본의 출판 문화재적 가치 연구」(2006)

「아미타경언해의 비교 연구 (Ⅱ)」(2009) 외.

〈저·역서〉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6)

「아미타경 언해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7)

「세종문화사 대계」(공저, 1998)

「한산이씨 고행록의 어문학적 연구」(공저, 1999)

「몽산화상 법어약록 언해」(2002)

「법화경 언해 권5」(2002)

「원각경 언해 권6」(2005)

「불교문학 연구의 모색과 전망」(공저, 2005)

「육조법보단경언해 상」(2006)

「육조법보단경언해 하」(2007)

「불설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2008)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2009) 외.

역주위원

역주위원 : 김무봉

  •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수구영험‧오대진언)

교열‧윤문‧색인위원 : 박종국‧홍현보

  •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수구영험‧오대진언)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수구영험‧오대진언을 내면서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 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11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두창집요≫ 1책, ≪언해태산집요≫ 1책 등 모두 63책이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그동안 못한 ≪월인석보≫ 원간본들을 집중적으로 역주코자 권4, 권13, 권14, 권15, 권21(상), 권21(하)를 간행할 예정이며, 아울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정속언해‧경민편≫을 함께 펴 낼 계획이다. 또한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어첩 포함)≫, 그리고 ≪영험약초≫와 ≪수구영험≫과 ≪오대진언≫을 묶어 1책으로 펴내면, 연초에 이미 펴낸 ≪월인석보≫ 권25(하)와 ≪언해태산집요≫를 포함하여 올해 나올 책은 모두 12책이다.

이번에 역주한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은 조선 세조 때 임금이 직접 쓴 간찰 한 건과 승려 신미 등이 쓴 간찰 한 건 등 두 건의 권선 간찰이다. ≪어첩(御牒)≫으로 불리는 간찰은 세조가 직접 쓰고, ≪중창 권선문(重創勸善文)≫으로 불리는 간찰은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 등이 세조 10년(1464)에 쓴 것이다. 이는 한문과 번역문이 함께 실려 있는 한 첩장(帖裝)과 한문만으로 된 한 첩장 등 두 건의 첩장으로 되어 있다. 전자(前者)에는 ‘어첩(御牒)’이라는 서외제가 있어서 흔히 ‘어첩(御牒)’이라 부르기도 한다. 권선문이란 절에서 불사(佛事) 등을 할 때 그 취지를 밝히고 널리 동참을 권하는 글을 이른다.

그리고 ≪오대진언(五大眞言)≫은 덕종(德宗)의 비(妃)이고 성종의 생모인 인수대비(仁粹大妃; 소혜왕후) 한씨(韓氏)가 민중들의 진언(眞言) 송습(誦習)을 위해 종래 전해 오던 범자(梵字)‧한자(漢字) 대역의 진언(眞言)에 한글로 음역(音譯)을 하여 간행한 책이다. 성종 16년(1485)에 초간(初刊)하였는데, 현재 원간본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임진왜란 이전의 중간본도 여러 책이 전한다. 이 ≪오대진언≫ 원간본에는 한문 및 한글로 번역된 ≪영험약초(靈驗略抄)≫가 부록되어 있고, 명종 5년(1550) 판인 중간본에도 이 ≪영험약초≫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이 ≪영험약초≫는 네 가지 다라니(진언)에 관련된 영험한 사례 등을 모아 번역한 불교 관련 문헌이다. 이번에는 명종 5년의 ≪영험약초≫와 간행 연도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원간 후쇄본으로 보이는 ≪오대진언≫을 아울러 역주하면서 이와 관련이 깊은 ≪수구영험(随求靈驗)≫까지 모두 역주하여 함께 펴내게 되어 매우 뜻깊은 사업이 되었다. 다만, 뒤에 수록한 ≪오대진언≫의 영인 서영(書影)은 인조 13년(1635) 충남 은진 쌍계사에서 간행한 중간본(규장각 소장본)으로 하였다.

이 책들을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해 주신 동국대학교 김무봉 교수님과 이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0년 12월 9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책이름은 편의상 ≪역주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이나, 그 내용에는 ≪수구영험≫을 추가하였다.

(2) ≪상원사중창권선문≫의 저본은 상원사의 첩장(帖裝)을 참고하였으며, 언해본 ≪영험약초≫는 소백산 철암 희방사 판본(1550년)이고, ≪수구영험≫은 중간본인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충청도 은진 쌍계사(雙溪寺) 간행본(1569년)이며, ≪오대진언≫은 서울대 규장각(도서번호 6749) 소장본(1635년)을 영인한 자료로서 이들을 부록으로 실었다.

(3)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특별히 진언은 언해진언‧한자진언을 원전 표기대로 밝히고 현대어를 달았다.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각의 원전 쪽을 밝혀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5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그 善住 15ㄱㅣ 곧 中에 드르니

제15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 두리여 곧 자 15ㄴ내 호

(4)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5)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6) 원문 내용(한자 원문과 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 풀이문‧주석과 구별하였으며, 원문 가운데 작은 글씨의 주석은 【 】 표시로 묶었고, 한자 원문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 하였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ᄚ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상원사 중창권선문 해제
김무봉(동국대 교수)

1. 머리말

≪상원사 중창 권선문≫은 두 건(件)의 편지글이다. 하나는 조선조(朝鮮朝) 세조(世祖) 10년(天順 8년, 1464 A.D.)에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의 승려가 오대산(五臺山)의 상원사(上院寺)를 중수(重修)할 때, 널리 시주(施主)를 모으기 위해서 쓴 ‘권선문(勸善文)’이고, 다른 하나는 국왕인 세조가 정철(正鐵)과 미포(米布) 등 중창에 필요한 물자(物資)를 보내면서 내린 서찰, 곧 ‘어첩(御牒)’이다. 두 편지글이 모두 상원사 중창의 취지를 담고 있는 ‘권선문’이어서 흔히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으로 부른다. 줄여서 ≪상원사 중창 권선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논의에서는 편의상 세조의 편지글은 ‘어첩’이라 하고, 신미 등의 편지글은 ‘중창 권선문’, 또는 ‘권선문’이라 부르기로 한다. 두 편의 편지글이 조성된 시기는 최근의 연구에서 신미 등의 ‘권선문’이 먼저 쓰이고, 세조의 ‘권선문’이 나중에 쓰인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는 신미 등의 ‘권선문’과는 달리, 세조의 ‘권선문’에는 연기(年記)가 없었던 데서 기인한 착오였다. 주001)
신미 등의 ‘권선문’ 중 한문으로 된 글 말미에는 ‘天順八年臘月十八日’이라는 연기(年記)가 씌어 있으나 세조의 ‘권선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서 지금까지 세조의 글이 먼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로 바로 잡혔다. 이는 조정에서 상원사에 정철(正鐵), 미포(米布) 등의 물품(物品)을 보낸 시기가 천순(天順) 9년인 세조 11(1465)년 2월 20일 정유조(丁酉條)의 일로 적혀 있는 세조실록의 기사(記事)로 확인된 결과이다.
* 이 해제의 작성을 위해 필자는 2010년 6월 23일 월정사(月精寺) 성보박물관을 방문해서 첩장(帖裝)으로 조성되어 있는 ‘상원사 중창 권선문’ 실책을 보고 내용 전반에 대해 조사를 한 바 있다. 실사의 기회를 준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부주지 원행 스님, 당시 재무국장 삼혜 스님께 특히 여기에 적어서 감사의 뜻을 밝힌다. 또 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사 홍은미 선생과 불교신문사 이성수 기자의 도움도 컸다. 이 분들의 도움으로 이 해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 이 글은 김무봉(1997)의 내용 중 일부는 고치고 일부는 보완한 것임을 밝혀 둔다. 필자의 논의는 십여 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동안 새롭게 밝혀진 사실 등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이 두 문헌은 이능화(李能和, 1918)의 소개로 학계에 알려진 후, 최남선(1928), 다카하시(高橋亨, 1929), 양주동(1948) 등이 해제를 붙여 사진판으로 공개한 바 있다. 안병희(1979)에서는 간략하게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최범훈(1985)에서는 전문을 활자화(活字化)하여 옮겨 싣고 주해를 시도하였다. 또한 일본(日本)의 동경외국어대학(東京外國語大學) 조선어학과(朝鮮語學科) 연구실에서는 ≪중기조선어자료선(中期朝鮮語資選)≫(1987)에서 최남선(1928)을 전재하여 다른 중세국어 자료 주002)
동경외국어대학 어학교육연구협의회 발행의 이 책자에는 다른 중세 한국어 자료와 함께 이 문건(文件)이 실려 있는데, 자료 제공자는 마에마(前間恭作)이고 제명(題名)은 어첩(御牒)이다. 그리고 어첩(御牒) 밑에 작은 글자로 ‘附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이라고 적어 놓았다.
와 함께 교재로 쓴 바 있다.
상원사 ‘중창 권선문’은 15세기에 간행되었던 다른 한글 자료들이 주로 관판(官板) 언해본이었던 데 비해, 현존 최고(最古)의 필사(筆寫) 한글 자료라는 사실 때문에 관련 학자들에게 주목받아 왔다. 아울러 편지글 뒤에 붙어 있는 국왕 및 왕비, 세자, 세자빈, 대군, 군, 공주, 부원군(府院君), 부부인(府夫人) 등 종실(宗室) 은 물론 내명부(內命婦) 및 외명부(外命婦), 그리고 중앙과 지방의 수령(首領), 방백(方伯) 등 관료의 직함(職啣)과 인기(印記), 수결(手決)이 나열되어 있어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크다.

2. 첩장(帖裝) 조성의 경위에 대한 관견(管見)

오늘날 전해지는 상원사 중창 권선문은 첩장(帖裝, 摺本)으로 되어 있는 두 건의 자료인데, 처음에 편지를 썼던 신미(信眉)나 세조(世祖) 등의 진필(眞筆)은 아닌 듯하다. 나중에 누군가에 의해 새로이 필사(筆寫)된 듯, 두 편지글의 필체가 비슷하다 주003)
두 편지글의 필체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신미의 「권선문」이 조금 흘려 쓴 이른바 해행서체(楷行書体)인 데 비해, 「어첩」은 정자의 해서체(楷書体)로 또박 또박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는 왕과 신하의 글이 함께 실릴 경우, 서체(書體)를 달리 하여 구분하는 일종의 대우법으로 ‘훈민정음 혜례본’도 ‘예의’ 부분과 ‘해례’ 부분에 차이를 둔 점에서 왕조시대의 관행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후술한 예정이지만 언어 사실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난다. 또한 이 첩장에는 교정을 행한 흔적이 있는데, 여기에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한문으로 기록된 부분에는 오자가 없고 교정을 행한 내용도 없는 반면, 언해문에만 교정을 행한 데에다, 언해문 중에서도 세조의 ‘권선문’ 부분에만 교정을 행한 것이다. 이 점 두 편지글을 새로 필사하여 첩장을 조성하면서 읽을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 하는 문제 및 두 편의 권선문에 대해 필사자 및 사찰에서 어떤 태도를 가졌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아울러 당시 우리 문자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어떠했던가에 대해서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비록 국왕과 국왕에 의해 법호(法號)를 받은 승려의 서찰이라고 하더라도, 서찰을 첩장으로 만들어 공개한 것도 그렇고, 진필이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다시 필사된 점으로 미루어, 절에서 신도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첩장으로 만들어 보관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이 자료가 정작 우리의 시선을 끄는 점은 다른 데 있다. 이 자료가 편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두 건의 첩장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그리고 두 문건(文件)이 각각 조금씩 다르게 편철되어 있는 사실이다.
하나는 표지에 ‘어첩(御牒)’이라는 서외제가 있는 문헌인데, 이 문헌에는 우리가 자료로 하는 두 편지글이 원문 주004)
여기서 ‘원문’은 한문으로 된 서찰을 이른다. 서찰의 한문 문장이 먼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과 함께 언해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표지에 아무런 서외제가 없는 문헌인데, 두 편지글의 원문만 있고 언해문은 없다. 이렇게 각각 다른 형태로 되어 있는 두 문헌은 편철 차례나 체제 등 전반적인 면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존대법 표현 중 대두법(擡頭法)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자의 글 중 신미 등이 임금에게 올린 글은 임금이나 임금과 관련된 사항, 그리고 삼보(三寶)를 표현할 때는 세 글자를 올려 쓴 데 비해, 후자는 두 글자만 올려서 썼다. 또 전자는 세조의 편지글 중 삼보(三寶)는 두 글자 정도 주005)
여기서 ‘정도’라고 표현한 것은 올려 쓴 글자의 높이가 첫장과 다른 장에서 약간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는 첫장과 다른 장의 대우 대상이 달라서 필사자가 가진 대우 대상에 대한 인식의 무게도 달랐기 때문에 그 비중에 따라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올려 쓰고, 혜각존자를 지칭하는 말은 한 글자 올려 쓴 데 비해 후자는 삼보를 두 글자 반 정도 올려 쓰고, 혜각존자는 한 글자 반 정도 올려 썼다.
두 문헌의 차례도 차이가 난다. 전자는 신미 등의 중창 권선문 원문이 앞에 나오고 발신일인 ‘天順八年臘月十八日’을 쓴 후 언해문을 두고 있다. 언해문이 끝나면 세조의 편지글 원문이 나오고 발신일 날짜 없이 언해문이 나온다. 편지글이 끝나면 세조가 스스로를 불제자(佛弟子)라고 밝힌 아래쪽에 직함을 쓰고 수결을 친 후 옥새(玉璽)를 눌렀다. 그 다음장에는 왕비인 자성왕비(慈聖王妃) 윤씨의 인기(印記)가 있고, 그 다음장에 세조가 보낸 물자의 품목(品目)이 적혀 있다. 이어서 세자의 수결과 인기, 세자빈의 인기가 있고, 그 뒤를 이어 공주(公主), 부부인(府夫人), 정경부인(貞敬夫人), 정부인(貞夫人) 등 종실 여인들과 외명부 여인들의 인기(印記)가 나온다. 주로 왕이나 왕비, 왕세자와 세자빈 외에 종실과 외명부 여인들이 열기되어 있는 점이 후자와 다르다. 그에 비해 후자는 맨앞에 신미 등의 중창 권선문 원문이 나오고 그 뒤에 발신일을 둔 후, 왼쪽 아래에 신미 등 중창 불사에 참여한 승려로 보이는 이들의 이름이나 수결이 보인다. 다른 이들은 신미보다 한 글자 반 정도 낮추고 한 행 정도의 간격을 둔 것으로 보아 혜각존자에 대한 예우로 생각된다. 그 다음에 세조의 편지글 원문만 나오고 세조의 수결과 옥새 인기(印記)를 둔 후, 자성왕비의 등장 없이 바로 하사 물자의 품목이 보인다. 그 뒤에 세자의 수결과 인기, 대군(大君), 부원군(府院君), 군(君) 등 종실, 그 뒤를 이어 중앙정부의 관리들과 관찰사, 절제사, 목사, 부사, 현감 등 지방 관리들의 직함과 수결이 보인다. 시주자명에 해당되는 부분에 전자에는 왕과 왕비를 포함하여 18명이 등장하는 데 비해 후자에는 무려 235명이 등장한다. 주006)
첩장의 본문 뒤편에 열기(列記)되어 있는 공덕주(功德主)들의 명단에는 직함이 누락된 경우도 있고, 수결이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신(臣) 등의 표현이 빠진 예도 있다. 역주편에 있는 그대로를 싣고 한글로 옮겼다.
이상의 고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위의 두 문헌 중 언해문이 있는 전자에는 주로 왕실의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공주, 부부인 등 종실 여인들과 외명부의 정경부인, 정부인들의 직함과 인기 주007)
당시에 여인들이 수결을 쓰는 일은 드물었던 듯하다. 수결은 남성들의 직함 밑에 나타난다. 남성 중 왕이나 세자의 경우는 수결과 인기를 함께 썼다. 여인들은 성과 이름만 있거나 정부인(貞夫人) 이상의 경우에는 인기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수결을 자주 쓸 만큼 여인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던 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가 보이는 반면, 한문만 있는 후자에는 왕과 세자만 등장할 뿐, 자성왕비를 비롯하여 종실은 물론 내외명부의 여인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언해문을 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시주(施主)와는 관계없이 절을 찾는 신도들이 주로 여성이었다는 사실의 반영이면서, 그들에게 공개하고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언해한 후 첩장으로 만들어서 보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두 문헌의 필사자는 동일인(同一人)으로 보이나 필사의 의도는 달리 했던 것 같다. 같은 내용에 해당되는 부분이 양쪽에 모두 있을 경우 두 문헌의 서체와 체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앞의 주 3)에서 밝힌 대로 이는 왕과 신하의 글에 대한 대우가 달랐다는 점과 읽는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는 주 3)에서 제기한 의문과 더불어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3. 형태 서지

이 첩장은 1997년 국보 140호에서 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언해문이 있는 첩장(帖裝, 摺本)은 어첩(御牒)이라 쓴 표지가 있는 책으로 표지를 제외한 부분은 모두 32면이다. 편의상 ‘언해본’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한문만으로 되어 있는 첩장으로 표지를 제외한 부분은 모두 64면이다. 간단히 서지 사항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장정(裝幀)은 첩장으로 되어 있으며 표장(表裝)은 붉은 바탕에 당초문(唐草紋)이 들어 있는 비단이다. 언해문이 있는 첩장에는 위쪽 가운데에 가로로 ‘어첩(御牒)’이라 필사되어 있다. 표지를 제외한 부분의 용지는 두껍고 광택(光澤)이 있는 담황색(淡黃色) 장지(壯紙)이다. 첩장의 크기는 세로 31.2㎝, 가로 12.2㎝이다. 변란의 상‧하는 쌍변, 좌·우는 접히지 않는 부분에 세선(細線)이 있다. 판광(板匡)은 세로 24.4㎝, 가로 12.3㎝이다. 행관(行款)은 매면 유계 6행, 매 행의 글자 수는 일정치 않아서 신미 등의 편지글 원문은 16자, 언해문은 17자이다. 원문은 위에서 세 글자 내려서 시작하고 언해문은 한 글자 내려서 시작했다. 세조의 편지글도 신미 등의 글과 글자 수에 있어서는 일치 한다. 다만 글의 시작을 원문과 언해문 모두 두 글자 내려서 시작했다. 이는 삼보(三寶)나 혜각존자 등에게 대두법을 두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보(三寶) 등은 두 글자 올리고, 혜각존자는 한 글자 올리는 존대법[대두법(擡頭法)]을 쓰고 있다.
승려가 삼보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불타(佛陀)와는 대우의 등급을 달리했음을 알 수 있다. 언해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언해문의 표기에서는 국한문을 혼용하였으나 한자에는 독음을 달지 않았다. 한글에는 방점이 표기되어 있다. 신미 등의 편지글 원문은 제목을 포함하여 4장 1행이고 언해문은 4장 5행이다. 세조의 편지글은 3장 2행이고, 언해문은 4장 4행이다. 그런데 월정사(月精寺)에서 원촌(原寸)대로 영인했다는 자료에는 발신일이 언해문의 두 문헌 모두에 나와 있다. 아마도 두 문헌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4. 어학적 고찰

위에서 밝힌 대로 상원사 「어첩」 및 「중창 권선문」은 세조 10년(1464)에 작성된 편지글이다. 경전류가 아닌 서간을 언해한 글의 특성상 한글 구결문의 작성이 없이 바로 언해가 이루어져서, 여타 언해문과는 성격을 달리 하는 부분이 있다. 우선 구결문이 없기 때문에 구결문에 견인되는 따위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서, 가능한 한 쉬운 우리말로의 번역이 이루어진 것을 들 수 있다. 또 대격조사 중 자유교체(free alternation)형 ‘ㄹ’의 쓰임이 빈번한 것 등 음운축약형의 잦은 출현이 그러하다. 아울러 문장의 호흡이 길고 연결어미 ‘-니’에 의존한 종속절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15세기 언해문들은 구결문의 작성이 언해문에 선행하여 언해문은 구결문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같은 해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 주008)
선종영가집언해:
이하 〈선종영가집언해〉는 〈영가〉, 〈아미타경언해〉는 〈아미〉, 〈금강경언해〉는 〈금강〉, 〈반야심경언해〉는 〈심경〉이라는 약호를 쓰기로 한다.
〈아미타경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등과 비교해 보면 당시의 언어사실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한자에 한자음을 따로 달지 않았다는 점과 한자와 정음자를 동일한 크기의 글자로 썼다는 점이다. 당연히 구결문 없이 원문에 바로 언해를 했다. 다만 첩장으로 된 언해문 전부를 합해 봐야 겨우 10장 56행에 불과한 짧은 문건이어서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여기서는 표기법, 음운, 문법, 어휘 등의 언어사실 중 특기할 만한 사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논의에서는 이미 밝힌 대로 첩장(帖裝)의 서외제(書外題)와 상관없이 세조(世祖)의 편지글은 ‘어첩(御牒)’이라 하고, 신미(信眉)의 편지글은 ‘권선문(勸善文)’이라 부를 것이다.
4.1 표기 및 음운
이 자료는 국한문을 혼용하였으나 한자에는 음을 달지 않았다. 한자로 표기된 어휘와 다른 형태소와의 통합관계만 봐서는 당시의 현실음으로 읽었는지 아니면 동국정운 음으로 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방점은 한글에만 찍혀 있다.
1) ㅸ
‘ㅸ’은 훈민정음의 초성 17자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예의 및 해례 제자해에 순경음으로 규정된 이후, 〈용비어천가〉 등의 정음 초기 문헌에 더러 나타난다. 그러나 〈능엄경언해〉(1462) 이후 거의 폐지되었다. ‘어첩’ 및 ‘권선문’과 같은 해에 간행된 네 건의 문헌 중 〈아미〉에만 보이는 것은 〈아미〉가 이보다 먼저 간행된 활자본 〈아미〉(1461?)의 영향을 입어서, 앞선 시기의 언어 사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첩’ 및 ‘중창 권선문’에서는 ‘ㅸ’이 ‘오, 우, ㅇ’로 실현되었다. 그 목록을 살피면 아래와 같다. 이후의 논의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방점 표시는 생략한다.
(1) ㄱ. 받오샤 〈권선 1:2〉, 주009)
〈권선 12〉:
이하 논의에서 〈권선〉은 신미 등의 편지글인 「권선문」의 약칭이고, 〈어첩〉은 세조의 편지글을 지칭한다. 〈 〉 속에 있는 앞의 숫자는 장차를 표시하고, 뒤의 숫자는 행을 표시한다. 다만 장의 표시는 원문을 제외하고 언해문만을 대상으로 하며, 앞뒷면을 따로따로 하여 일련 장차를 붙인다.
받와 〈권선 4:2〉, 듣오시고 〈권선 3:2〉
닙오니 〈권선 1:6〉, 갑올 〈권선 1:6〉, 젹오니 〈권선 2:2〉
비올 〈권선 2:6〉, 비오며 〈권선 5:4〉
ㄴ. 므거우시고 〈권선 2:1〉
ㄷ. 도아 〈권선 3:4〉 / 도와 〈어첩 5:3〉
이 문헌에는 위와 같이 ‘ㅸ’이 ‘오, 우, ㅇ’로 실현된 예가 모두 보이는데, ‘〉오’로의 변화는 (1ㄱ)의 예와 같이 주로 겸양법 선어말어미 ‘--, --, --’의 통합형에서 나타난다. (1ㄷ)의 ‘도아’는 ‘-’의 활용형인데, 〈권선〉과 〈어첩〉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실현되었다. 어떤 사정으로 ‘ㅸ’이 탈락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오사(誤寫)인지 주목이 요구되나, 15세기 문헌에는 이러한 표기가 더러 보인다.
(1)′ ㄱ. 實로 서르 도아 發샨 젼로 〈법화 1:14ㄴ〉
ㄴ. 긴 놀애 도아 보내니 〈두언 8:50ㄴ〉
2) ㆆ
‘ㆆ’은 훈민정음 초성체계에서는 후음(喉音)의 전청자(全淸字)로 영모(影母)에 해당된다. 그러나 해례의 용자례(用字例)에는 빠져 있다. 주로 동국정운 한자음과 사이글자의 표기에 사용되었고, 고유어 표기에서는 동명사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ᇙ’에 사용되었다. 〈영가〉 등의 문헌에서는 한자음 영모자(影母字)의 표기에 두루 나타난다. 그러나 ‘어첩’과 ‘권선문’에는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음 표기에서는 볼 수 없다. 사이글자는 〈용비어천가〉나 〈훈민정음 언해본〉 이외의 문헌에서는 ‘ㅅ’ 단일형으로 기울었는데, 이 문헌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유어 표기에 쓰이던 동명사어미 ‘-ᇙ’은 〈영가〉에서는 후행하는 체언의 초성이 한자어 무성자음인 경우에만 나타나고, 〈아미〉에서는 고유어 표기에 두루 쓰인다. 그러나 〈금강〉과 〈심경〉 및 「어첩」과 「권선문」에서는 모두 ‘-ㄹ’로만 실현되었다.
(2) ㄱ. 여희여 날 리오 〈어첩 1:5〉, 목수 칠 리오 〈어첩 1:5〉
安保케  리오 〈어첩 1:6〉, 모릴 引導 리시니 〈어첩 2:1〉
ㄴ. 뉘 갑올 디 (권선 1:6), 福 비올  〈권선 2:6〉
ㄷ. 土木  꺼슬 〈권선 3:6〉, 利益게 홀띠니라 〈권선 5:6〉
ㄹ. 사 닐올디 아니니 〈어첩 5:1〉, 져기  거슬 〈어첩 5:2〉
ㅁ.  〈권선 3:4〉, 이럴 〈어첩 5:1〉
(2ㄱ)은 동명사어미 ‘-ㄹ’의 후행요소가 불청불탁자인 경우 ‘-ㄹ’로 실현된 예인데, 이 문헌에는 후행체언의 초성이 고유어인 용례만 있고, 한자어의 경우에는 해당 어사가 없어서 문증(文證)되지 않는다.
(2ㄴ)은 후행체언의 초성이 합용병서인 경우인데, ‘ㅂ’계 앞이건 ‘ㅅ’계 앞이건 모두 ‘-ㄹ’로 실현되었다. (2ㄷ)은 ‘-ㄹ+전탁자’형이다. 이전 문헌에서 ‘-ㅭ+전청자’형으로 실현되던 표기가 〈법화경언해〉(1463) 이후 ‘ㄹ+전탁자’형, 또는 ‘-ㄹ+전청자’형으로 바뀌어 나타나는데, 이 문헌에는 두 가지 표기가 모두 보인다. (2ㄷ)의 ‘ 꺼슬’과 (2ㄹ)의 ‘ 거슬’은 ‘권선문’과 ‘어첩’에서 각각 다르게 실현된 것인데, 이 표기는 〈원각경언해〉 (1465) 이후에는 ‘-ㄹ+전청자’형으로 단일화된다. (2ㄹ)은 ‘-ㄹ+전청자’형 표기로 실현된 예이다. (2ㅁ)은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인데, 정음 초기 문헌부터 ‘-ㅭ’같은 표기 없이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의 간행 연대와 언어사실에 대해서는 김무봉(1993ㄱ) 참조.:동명사어미 ‘-ㅭ’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중 ‘-ㅭ’은 〈능엄경언해〉(1462) 등에서 더러 보이나 ‘ㅭ’는 문증(文證)되지 않는다. ‘’ 통합형으로는 아래와 같은 예가 있다.
ㄱ. 種種히 發明  일후미 妄想이니 〈능엄 2:61ㄱ〉
ㄴ. 가 괴외히 이셔 비  닐오 微妙히 고미오 〈능엄 4:13ㄴ〉
‘-ㄹ’ 또는 ‘-ㄹ’로 실현되었다. 이 문헌에서는 예와 같이 모두 ‘-ㄹ’로 나타난다.
‘-ㅭ+전청자’형 표기는 앞선 시기의 언어 사실을 보여주는 〈아미〉를 제외하고는 다른 3건의 문헌 모두에서 ‘-ㄹ+전청자’형 또는 ‘-ㄹ+전탁자’형으로 실현되는데, 이 문헌에서도 동명사 어미 ‘-ㅭ’의 표기에 나타나지 않아서 ‘어첩’과 ‘권선문’에는 ‘ᅙ’의 쓰임이 없다.
3) ㅿ
유성 후두마찰음 ‘ㅿ’은 훈민정음 해례에는 불청불탁(不淸不濁)의 반치음(半齒音)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15세기 문헌에 두루 나타나며 16세기 중반까지 쓰였다. ‘어첩’ 및 ‘중창권선문’의 ‘ㅿ’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ㅿ’으로 실현되었는데, 다만 후술할 수의교체형 ‘~’ 중에서는 ‘’만이 실현되어 8종성 규정에 충실하려 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3) ㄱ.  〈권선 1:4〉,  업서 〈권선 5:5〉, cf. 업수믈 〈권선 5:4〉 지 〈권선 2:6〉, 지려 〈권선 3:4〉 미 〈어첩 2:4, 5:4〉,  〈어첩 4:5〉 다소니 〈권선 3:1, 4:3〉
ㄴ.  〈어첩 2:4〉
ㄷ. 비올 〈권선 2:6〉, 비오며 〈권선 5:4〉, 두 〈어첩 3:3〉
‘ㅿ’이 출현할 수 있는 여러 환경 중 이 문헌에서는 ① ‘v - v’, ② ‘y - y’, ③ ‘r - v’의 예만이 보인다. 다만 신미 등의 편지글은 글의 성격상 겸양법 선어말어미 ‘--’의 빈번한 출현으로 그 용례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3ㄱ)은 위 ①의 예이고, (3ㄴ)은 ②, (3ㄷ)은 ③의 예이다. 이 중 (3ㄴ)은 한자어로 어원은 ‘매상(每常)’이나 차용한지 오래되어 우리말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때의 환경은 ‘y-v’이다. (3ㄷ)은 ‘ㅅ〉ㅿ’의 변화 뒤에 ‘ㄹ’이 탈락된 형태이다. (3ㄱ)은 각각 체언과 조사, 용언어간과 어미, 용언어간과 선어말어미 등의 통합형과 행태소 내부 모음간에서의 ‘ㅿ’의 용례이다. ‘지’, ‘지려’는 동사 ‘-[作]’의 활용형인데, 이 문헌에서 자음이나 휴지 앞에서의 용례는 보이지 않는다. (3ㄷ)은 각각 ‘빌-[祝]’, ‘둘’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이다.
4) 사이글자
사이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적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끼어드는 자음글자이다. 〈용비언천가〉에는 ‘ㄱ, ㄷ, ㅂ, ㅅ, ㅿ, ᅙ’의 6자가 쓰였고, 〈훈민정음언해〉에는 ‘ㄱ, ㄷ, ㅂ, ㅸ, ㅅ, ᅙ’의 6자가 쓰였으나, 〈석보상절〉 이후 ‘ㅅ’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여전히 ‘ㅅ’외에 잔형인 ‘ㄱ, ㄷ’이 보인다. 〈월인석보〉(1459)에서는 ‘ㄱ, ㄷ, ㅂ, ᅙ’이 쓰였고,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59?) 주011)
〈심경〉의 표기법에 대해서는 정우영(1995) 참조.:〈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의 간행 연대와 언어사실에 대해서는 김무봉(1993ㄱ) 참조.
에서는 ‘ㄷ, ᅙ,’이 쓰이는 등 잔존형이 보이나, 〈선종〉과 〈금강〉, 〈심경〉에서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주012)
이 문헌에서 ‘디’는 ‘디’로 되어 있으나 필사 과정에서의 오사(誤寫)일 것이다. 이 외에도 원 첩장(帖裝)에는 교정을 행한 예가 몇몇 보인다.:〈심경〉의 표기법에 대해서는 정우영(1995) 참조.
다만 〈심경〉에서는 ‘ㄹ’ 다음에 ‘ᅙ’이 쓰인 예가 있다. ‘어첩’ 및 ‘권선문’에서는 사이글자나 구 구성의 속격에서 모두 ‘ㅅ’으로 나타난다. 그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4) 天地ㅅ 아恩 〈권선 1:5〉 드틄길헤〈어첩 2:4〉
江陵 五臺 〈권선 2:2〉 오나리〈어첩 2:6〉
나랏사 〈권선 3:4〉 劫ㅅ 녯 因 아니면〈어첩 3:1〉
님귀예 〈권선 4:4〉 눗므리〈어첩 4:1〉
德ㅅ 根源을 〈권선 5:2〉
위의 예 중에서 ‘눗므리’는 ‘므리’에서 ‘ㄴ’을 탈락시키고, 대신 사잇소리 ‘ㅅ’을 표기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 문헌에는 방점표기가 다소 불안정한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경우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범훈(1985:634) 참조.:〈석보상절〉에는 일부 용언 어간의 종성 ‘ㅧ(〈ㄵ)’에서 ‘ㄴ’을 탈락시킨 예가 있다.
帝釋 앗 히어나 〈석보상절 19:6ㄱ〉
5) 초성병서
5.1) 각자병서
이 문헌에서 초성 각자병서의 예는 매우 드문데, 이는 각자병서가 출현할 어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몇 안되는 용례는 모두 ‘ㄹ+전탁자’형 표기에 의한 것뿐이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문헌에 쓰인 8자(ㄲ, ㄸ, ㅃ, ㅉ, ㅆ, ㆅ, ㆀ, ㅥ) 중 ‘ㄲ, ㄸ, ㅆ’ 등 3글자만 쓰였다.
(5)  꺼슬 〈권선 4:1〉, 利益게 홀띠니라 〈권선 5:6〉
지려 〈권선 3:4〉 / 이럴〈어첩 5:1〉
5.2) 합용병서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 보이는 ‘ㅺ, ㅼ, ㅽ, ᄮ ; ㅳ, ㅄ, ㅶ, ᄩ; ᄢ, ᄣ’ 등 10가지 합용병서 중 ‘ㅄ’계열은 나타나지 않고, ‘ㅅ’계열의 ‘ㅼ’과 ‘ㅂ’계열의 ‘ㅳ, ㅄ’이 보일 뿐이다. 이 역시 합용병서가 출현할 만한 어사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 어휘 목록은 다음과 같다.
(6) 〈ㅼ〉 ㅎ[地] : 江陵 五臺 〈권선 2:2〉 文殊겨신 히라 〈권선2:4〉, 더욱 勝 히라 〈권선 2:5〉 福 비올  삼고져 〈권선 2:6〉
  [又] : 눗므리 그지 업다니  〈어첩 4:1〉
 〈ㅳ〉 [志] : 뉘 갑올 디 주014)
이 논의에서 동작동사와 상태동사는 구분하지 않는다.:이 문헌에서 ‘디’는 ‘디’로 되어 있으나 필사 과정에서의 오사(誤寫)일 것이다. 이 외에도 원 첩장(帖裝)에는 교정을 행한 예가 몇몇 보인다.
업스리오마 〈권선 1:5〉
 〈ㅄ〉 [米] : 와 布貨와 〈권선 3:6〉
  -[用] : 土木  꺼슬 주라 시니 〈권선 3:6〉 / 져기  거슬 도와 〈어첩 5:2〉 날 爲야  과 〈어첩 4:5〉
6) 종성표기
이 문헌의 종성표기는 〈훈민정음〉 해례의 종성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몇 안 되는 종성표기에서 ‘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 외에 어떤 것도 쓰인 예가 없다. 〈선종〉, 〈금강〉 등과는 달리 모음 뒤 유성후두마찰음 ‘ㅇ’ 앞에서 ‘ㅅ’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ㅿ’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7) ㄱ. 달이 맛나 〈권선 4:1〉, 아라 맛나 〈어첩 2:3〉
 ㄴ. 낫 바 〈어첩 3:3〉
 ㄷ. 업다니 〈어첩 4:1〉/ cf. 업스며 〈권선 1:4〉, 업시 〈권선 1:5〉
 ㄹ. 업수믈 〈권선 5:4〉/ cf.  업서 〈권선 5:5〉, 네  〈권선 1:4〉
〈7ㄱ〉, 〈7ㄴ〉은 기저형에서는 그 말음으로 ‘ㅈ’을 가지나,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 앞이나 휴지 앞에서 ‘ㅅ’으로 바뀐 예이다. (7ㄷ)은 (7ㄱ), (7ㄴ)과 같은 환경에서 ‘ㅄ’이 ‘ㅂ’으로 교체된 표기이다. (7ㄹ)은 〈선종〉, 〈금강〉 등에서 ‘없-’으로 실현되기도 하였으나, 이 문헌에서는 ‘없-’으로 표기되었다. 이 표기는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 형태음소적 표기법에 충실한 문헌에서는 ‘없-’으로 실현되었으나, 〈석보상절〉 이후의 문헌에서는 ‘ㅿ~ㅅ’ 수의교체형으로 나타난다. 이는 한자어 ‘무강(無疆)’ 또는 ‘무변(無邊)’에 대응하는 우리말 표현에서 실제의 발음 현실을 표기에 반영하느냐, 반영하지 않느냐에 따른 혼란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헌에서는 ‘’ 외에도 ‘지 〈권선 2:6〉, 지려 〈권선 3:4〉’ 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8종성법에 충실하려 했던 듯하다.
정음 초기의 문헌에서 ‘ㆁ’을 받침으로 가진 명사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통합될 때 연철하기도 하고 분철하기도 했는데, 이 문헌에서는 연철했다.
(8) ㄱ. 쥬 〈권선 1:6〉, cf. 내 〈권선 3:3〉
 ㄴ. 欲굴허 〈어첩 2:5〉
7) 주격과 서술격 표기
15세기 문헌에서 주격과 서술격 표기는 그 기저형 ‘-이’와 ‘이-’가 선행체언 말음절이나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각각 다르게 실현되었다. 대부분의 15세기 문헌은 한글 구결문과 언해문이 함께 하였는데, 구결문과 언해문의 주격과 서술격 표기는 약간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는 구결문의 의고성에 말미암는 것인데, ‘어첩’과 ‘권선문’에는 언해문만 있어서 ‘이, ㅣ, ∅’가 모두 보인다.
7.1) 주격조사
이 문헌에서 주격조사의 쓰임은 선행체언이 한자일 때나 한글일 때 모두 ‘이, ㅣ, ∅’로 실현되었다. 다음의 용례 중 위는 고유어 체언 뒤에서의 경우이고, 아래는 한자어 뒤에서의 경우이다.
(9) ㄱ. 이 : 네  便安야 〈권선 1:4〉
  뫼만 恩이 므거우시고 〈권선 2:1〉
 ㄴ. ㅣ : ‧내(←나+ㅣ) 반기 도아 〈권선 3:4〉, ·뉘 갑올 디 〈권선1:6〉
  三寶ㅣ 일로 더욱 노며 〈권선 4:5〉, 道ㅣ 마며 〈어첩 2:3〉
 ㄷ. ∅ : ‧우리 特別히 달이 맛나 받와 〈권 4:1〉
  :즁‧내 날 爲야 〈권선3:3〉
  福利  업서 〈권선 5:5〉
주격조사는 그 용례가 많지 않지만 한자어와 고유어 어휘 뒤에서 모두 ‘이, ㅣ, ∅’로 실현되었다. (9ㄱ)은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서 ‘이(ⅰ)’로 실현된 예인데, 이 문헌에서는 다른 주격형에 비해 그 용례가 많은 편이다. (9ㄴ)은 체언 말음절이 ‘이(ⅰ)’나 ‘ㅣ(y)’이 외의 모음으로 끝날 때 주격조사가 ‘ㅣ(y)’로 실현된 예인데, 그 용례가 흔치 않다. ‘내’는 대명사 ‘나(余)’에 주격조사 ‘ㅣ’가 통합되어 하강 이중모음을 이룬 예인데, 주격형과 속격형이 모두 ‘내’이나 성조(聲調)가 거성(去聲)이므로 주격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문헌에서 대명사 ‘나’의 속격형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15세기 문헌에서 속격형은 평성(平聲)의 ‘내’이다. ‘뉘’ 역시 거성이므로 ‘누’의 주격형이다. 속격형은 상성으로 표기된다. (9ㄷ)은 체언 말음절이 모음 ‘이’나 ‘ㅣ’로 끝난 경우 주격조사가 생략된 예이다. ‘·우·리’에서 말음절 ‘리’가 거성이므로 주격조사가 성조변동 없이 ‘∅’로 실현된 것이다.이 문헌에는 ‘우리’의 용례가 더러 있는데, 주격으로 쓰인 것은 위의 (9ㄷ)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속격으로 쓰였다. 속격으로 쓰인 예는 다음과 같다.
우리 聖上이 〈권선 1:2〉, 우리 衣鉢 다 내야 〈권선 2:5〉
다만 이 문헌에서 ‘·우리’의 말음절 ‘리’가 평성인 것은 오기(誤記)로 생각된다. 주016) 이 문헌에는 방점표기가 다소 불안정한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경우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범훈(1985:634) 참조. 또 ‘:즁·내’는 말음절 ‘내’가 거성이므로 주격조사가 생략되고, 하향 이중모음을 이룬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후기 중세국어 문헌에서 체언 말음절이 ‘이(i)’나 ‘ㅣ(y)’로 끝나고 평성이면 성조가 변하여 상성이 된다.
7.2) 서술격조사
이 문헌에서 서술격조사의 실현은 주격조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선행체언 말음절이나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각각 ‘이, ㅣ, ∅’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 문헌은 내용이 짧아서 대부분의 예를 연결어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용례 중 위는 고유어 체언 뒤에서의 경우이고, 아래는 한자어 체언 뒤에서의 경우이다.
(10) ㄱ. 이 : 文殊 겨신 히라 〈권선 2:4〉
     일훔난 山이며 〈권선 2:3〉
 ㄴ. ㅣ : 님금과 善知識괘니 〈어첩 1:4〉
 ㄷ. ∅ : 녯 因 아니면 〈어첩 3:1〉
     고 미 菩提니라 〈어첩 5:4〉
(10ㄱ)은 선행체언의 말음이 자음인 경우의 예이고, (10ㄴ)은 선행체언의 말음절이 ‘이(i)’나 ‘ㅣ(y)’ 이외의 모음인 경우의 예인데. 이 문헌에서 고유어의 예는 보이지 않는다. (10ㄷ)은 체언의 말음절이 ‘이(i)’인 경우의 예이다. 이 문헌에서 체언의 말음절이 ‘ㅣ(y)’인 예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15세기 문헌에서는 이 때에도 주격에서처럼 말음절이 평성이면 성조의 변동이 일어나나, 이 역시 해당 어사가 없다.
8) 모음조화
중세국어 시기에는 한 형태소 내부나 경계에서 양모음은 양모음끼리, 음모음은 음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 이른바 모음조화 현상이 있었는데, 이 문헌에서는 대체로 잘 지켜졌으나 일부에서 음절 경계 곧, 조사와의 통합에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보조사 ‘ㄴ’과 대격조사 ‘ㄹ’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8.1) 보조사 ‘ㄴ’
보조사 ‘ㄴ’은 선행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몇 가지 이형태를 가진다. 우선 체언의 말음이 자음일 때는 모음 ‘/으’가 개재되어 ‘/은’이 되고, 모음일 때는 ‘ㄴ’ 또는 ‘ㄴ’의 중가형 ‘/는’으로 나타나는데, 이 문헌에서는 ‘은’과 ‘는’이 보이지 않는다. 아래는 이 문헌에 나타난 보조사의 목록이다.
(11) ㄱ. ㄴ : 미츠닌 〈권선 5:1〉, 우흐론 〈권선 5:3〉, 아래론 〈권선 5:4〉
 ㄴ.  : 五臺 〈권선 2:3〉, 上院寺 〈권선 2:5〉, 三寶 〈어첩1:5〉, 父母 〈어첩 1:5〉
 ㄷ.  : 님금 〈어첩 1:6〉, 善知識 〈어첩 2:1〉
(11ㄱ)은 각각 ‘는’ 또는 ‘’으로 실현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기저형 ‘ㄴ’으로 되어 있어서 ‘는’의 실현을 배제한 것이 아닌가 한다. (11ㄷ)의 두 예는 실현 환경으로는 모두 ‘은’이 되어야 하나, 이 문헌, 특히 어첩에서는 양성 모음인 ‘’으로 실현되었다.
8.2) 대격조사
대격조사 ‘ㄹ’ 역시 선행체언 말음 또는 말음절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몇 가지 이형태를 갖는다. 체언 말음이 자음이면 ‘/으’가 개재되어 ‘/을’이 되고, 말음절이 모음이면 ‘ㄹ’ 또는 ‘ㄹ’에 ‘/을’이 결합된 ‘/를’로 나타나는데, 이 문헌에서는 대체로 이 규정이 잘 지켜졌으나, 몇몇 모음조화에 어긋난 예를 볼 수 있다.
‘어첩’ 및 ‘권선문’에는 여러 문법 형태소 중 대격 조사의 용례가 많은 편이다. (12)에서는 그 중 예외적으로 쓰인 것만을 살펴보려고 한다.
(12) ㄱ. :날 〈권선 3:3〉, 〈어첩 4:2, 4:5〉, 모릴 〈어첩 2:1〉
 ㄴ. 목수믈 〈권선 4:3〉 / 목수 〈어첩 1:5〉 菩提心을 〈권선 5:2〉 / 正因 〈어첩 5:3〉
 ㄷ. 師等 〈어첩 5:2〉
 ㄹ. 뎌를 〈권선 3:4〉 / 뎌 〈어첩 4:3〉
(12ㄱ)은 ‘’로 실현되어야 할 환경에서 기저형인 ‘ㄹ’이 쓰인 예이다. 특기할 것은 이 경우에 거성인 ‘나[我]’의 대격형이 모두 상성으로 실현된 점이다. (12ㄴ)은 같은 환경인데도 ‘어첩’과 ‘권선문’에서 각각 다르게 실현된 예이다. ‘권선문’에서는 대격조사의 경우 모음조화가 잘 지켜지고 있으나, ‘어첩’에서의 모음조화 파괴는 (12ㄷ, 12ㄹ)의 예와 더불어 주목을 요한다. (12ㄷ)은 ‘권선문’에서의 용례는 보이지 않으나 모음조화 규정에서 벗어나 있다. (12ㄹ)은 같은 어휘 ‘뎔[寺]’의 대격형이 ‘어첩’에서는 ‘권선문’과 다르게 표기되었다.
이 외에 처격, 속격, 구격, 의도법 선어말어미, 부사형어미, 매개모음 등에서도 모음조화는 대체로 잘 지켜졌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예외도 있다.
(13) ㄱ. 天下애 일훔난 山이며 〈권선 2:3〉
 ㄴ. 師의 功이 아니아 〈어첩 3:1〉 / 師 날 爲야  과 〈어첩 4:5〉
(13ㄱ)은 처격인데 ‘-에’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나, 이 문헌에서는 ‘애’로 실현되었다. (13ㄴ)은 같은 어휘 ‘사(師)’의 속격형인데 양성과 음성으로 각각 달리 실현된 예이다.
9) 어간 ‘-’와 어미의 결합에서 어미의 초성이 무성자음 ‘ㄱ, ㄷ’으로 시작되면 반드시 축약형 ‘ㅋ, ㅌ’으로 실현되었다. 이 문헌에서 ‘-’와 ‘ㅂ, ㅈ’이 연접한 용례는 없다.
(14) ㄱ. 安保케  리오 〈어첩 1:6〉 / 아니케 야 〈어첩 2:6〉, cf. 잇게 니 〈어첩 2:6〉
 ㄴ. 和애 違타 듣고 〈어첩 3:2〉
다만 어간 ‘-’에 선행하는 체언의 말음이 무성자음이면 ‘-’가 생략되었다.
(14)′ 利益게 홀띠니라 〈권선 5:6〉
10) 어간과 어미의 통합에서 ‘ㄹ’ 다음에 ‘ㄱ’이 탈락한 형태와, ‘ㄴ’과 ‘ㅿ’ 앞에서 ‘ㄹ’이 탈락한 예가 보인다.
(15) ㄱ. 億萬歲예 길에 야 〈권선 5:5〉
 ㄴ. 究意한 正因 노니 〈어첩 5:3〉
 ㄷ. 비오- 〈권선 2:6, 5:4〉, 두 〈어첩 3:3〉
11) 이 문헌에 실현된 중성 글자는 단일자가 11자이고, 합용자는 /w/계 이자합용중성자(二字合用中聲字) 1자, /j/계 이자합용중성자 7자, /w/계 삼자합용중성자 1자 등 9자이다.
(16) 단일자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ㆍ (11자)
합용자 ㅘ (/w/계 이자합용중성자) (1자)
 ㅐ ㅔ ㅖ ㅚ ㅟ ㅢ ㆎ(/j/계 이자합용중성자) (7자)
 ㅙ(/w/계 삼자합용중성자) (1자)
이 문헌은 한문 원문을 가능한 한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대격조사와 보조사의 표기에서 자유교체형을 자주 쓰는 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표기법에서는 예외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당시의 표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는 구결문의 작성이 없어서 번역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첩장 조성의 과정에서 교정이 있었던가, 아니면 편지글 작성자나 필사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4.2 문법적 특성
중세국어 시기의 문장은 대체로 복문이 많은데, 이 문헌도 예외가 아니어서 연결어미 ‘-니’에 기댄 문장 접속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종결어미의 형태가 다양하지 못하고 극히 단조롭다. 선어말어미는 글의 성격상 겸양법 선어말어미의 쓰임이 흔한 반면 공손법 선어말어미 ‘--, --’의 쓰임은 없다. 여기서는 단어의 형성, 곡용, 활용, 어휘 등의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이 문헌은 짧은 편지글이어서 단일어는 물론이거니와 합성어 구성도 그리 다양한 편은 아니다. 특히 복합어 구성에서 동사는 전무하고 명사와 수사, 형용사에 몇 예가 보일 뿐이다.
(1) ㄱ. 아恩 〈권선 1:5〉, 나랏사 〈권선 3:4〉, 님귀 〈권선 4:4〉, 드틄길ㅎ 〈어첩 2:4〉, 오날 〈어첩 2:6〉, 눗믈 〈어첩 4:1〉
 ㄴ. 낫바 〈어첩 3:3〉
 ㄷ. 두 〈어첩 3:3〉
 ㄹ. 그지없- 〈어첩 4:1〉, 없- 〈권선 5:4〉
(1ㄱ, 1ㄴ)은 복합명사이다. 이 중 (1ㄱ)은 선행명사가 후행명사를 수식하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구(句) 구성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큰 어휘들이다. (1ㄱ)의 ‘눗믈’은 ‘믈’에서 ‘ㄴ’이 탈락한 형태이다. (1ㄴ)은 직접구성요소가 각각 대등한 관계를 가지는 복합명사이다. (1ㄷ)은 복합수사인데 ‘ㅿ’ 앞에서 ‘ㄹ’이 탈락되었다. 문장에서는 주로 관형어의 기능을 한다. (1ㄹ)의 전자는 명사 ‘그지’와 형용사 ‘없-’이 합성하여 복합형용사를 구성한 예이고, 후자는 명사 ‘’과 형용사 ‘없-’이 합성한 것이다. 각각 ‘무궁(無窮)’과 ‘무변[無疆]’에 대응하는 말이다.
2) 이 문헌에서 파생어 형성은 복합어에 비해 생산적이다. 접미사 ‘-’에 의한 동사, 형용사 형성이 다수 보이고, ‘-이, -혀’에 의한 파생부사 형성도 더러 보인다. 또 ‘-우-’와 ‘-히-’에 의한 사동어간 형성도 있고, 접미사 ‘만-’에 의한 파생형용사 형성의 예도 있다. 접미사 ‘-’에 의한 파생용언 형성의 어휘를 나타나는 차례대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주017) 이 논의에서 동작동사와 상태동사는 구분하지 않는다.
(2) 便安- 〈권선 1:4〉, 靈異- 〈권선 2:4〉, 勝- 〈권선 2:5〉 爲- 〈권선 3:3, 어첩4:2,5,6, 5:2〉, 願- 〈권선 4:6〉, 利益- 〈권선 5:6〉, 重- 〈어첩 1:3〉, 安保- 〈어첩 1:6〉, 引導- 〈어첩 2:1〉, 和- 〈어첩 2:4〉, 違- 〈어첩3:2〉, 濟度- 〈어첩 3:5〉, 感動- 〈어첩 3:6, 4:6〉, 靈- 〈어첩 4:3〉, 究竟- 〈어첩 5:3〉, 付囑- 〈어첩5:4〉
위와 같이 ‘-’에 의해 구성되는 동사, 형용사는 꽤 많은 편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 문헌이 가지는 특징을 하나 정리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문헌에서는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말은 가능한 한 바꾸되, 바꿀 수 없어서 한자어를 썼을 경우는 한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每常)처럼 차용한지 오래되어 우리말화한 것은 우리말로 적었다.
3) 파생부사는 주로 형용사 어기에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이루어졌으나 명사에 ‘-혀’가 결합한 예도 있고, 동사 어기에 접사화한 부동사어미 ‘-아’가 결합하여 파생된 예도 있다.
(3) ㄱ. 特別히 〈권선 3:2, 4:1〉, 能히 〈어첩 3:2〉
 ㄴ. 키 〈권선 1:2〉, 업시 〈권선 1:5〉, 번드기 〈권선 2:4〉, 반기 〈권선 3:4〉, 달이 〈권선 4:1〉, 너비 〈권선 4:6〉, 티 〈어첩 3:2〉, 져기 〈어첩 5:2〉, 기리 〈어첩 5:5〉
 ㄷ. 혀 〈권선 4:3〉
 ㄹ. :다(〈다+아, 共, 竭, 悉) 〈권선 1:5, 2:5, 5:1〉
위 (3ㄱ)은 어간 ‘-’가 접미사 ‘-이’와 결합할 때 ‘ㆍ’가 탈락하면서 ‘히’로 실현되었으나 접미사는 ‘-이’이다. 이 문헌에서도 그렇지만 15세기 문헌에서는 주로 한자어의 예만 보인다. (3ㄴ)의 ‘키’도 형용사 ‘크-’가 ‘-이’와 결합하면서 ‘ㅡ’가 탈락한 것이다. 파생부사 ‘번드기’와 ‘반기’는 각각 형용사 ‘번득-’와 ‘반-’가 접미사 ‘-이’와 결합할 때 ‘-’가 탈락된 형태이다. ‘달이’는 ‘다-’와 접미사 ‘이’가 결합한 것이데, ‘ㆍ’가 탈락하고 설측음화에 의해 ‘달이’가 된 것이다.
(3ㄷ)은 한자어 ‘행(幸)’의 우리말 음 ‘’에 접미사 ‘-혀’가 결합하여 부사로 파생된 것이다. ‘행(幸)’이 우리말로 적힌 것은 차용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한자어라는 의식이 엷어져 우리말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3ㄷ)은 동사어기에 접사화한 부동사어미 ‘-아’가 결합하여 파생된 정도부사이다.
4) 사동어간 형성의 접미사 중 이 문헌에는 ‘-히-’와 ‘-오/우-’가 보인다. 이 문헌에서의 사동은 주로 통사론적 사동에 의존하고 있다.
(4) ㄱ. 綸命을 리오샤 〈권선 3:3〉
 ㄴ. 기리 後子孫애 드리우노라 〈어첩 5:5〉
 ㄷ. 利 너표려 시고 〈권선 3:5〉
(4ㄱ, 4ㄴ)은 각각 사동접미사 ‘-오/우-’에 의한 사동 형성이고, (4ㄷ)은 어기 ‘넙-’에 접미사 ‘-히-’가 결합하여 유기음화된 것이다.
5) 명사 어기에 접미사 ‘만-’가 결합하여 형용사가 된 예가 있다.
(5) 뫼만- 〈권선 2:1〉, 터럭만- 〈권선 2:2〉
지금까지 ‘어첩’과 ‘권선문’에 보이는 복합어와 파생어 구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6) 위에서 제시한 예들 외에 복합어 구성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구(句) 구성으로 보아야할지 난해한 어휘가 있어서 소개한다. 다른 문헌에 그 용례가 없어서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6) 조 念을 가져 欲굴허 디디 아니케 야 〈어첩 2:5〉
‘欲굴’은 ‘욕갱(欲坑)’에 대응하는 우리말 표현인 바, 속격 표지 없이 선행체언이 후행체언을 꾸며주는 의미를 갖는 어사이다.
7) 이 문헌에는 명사가 곡용을 할 때 명사어간이 자동적으로 교체하는 이른바 ‘ㅎ말음체언’이 보이고, 음절말 자음의 제약 때문에 자동적 교체를 보여주는 명사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비자동적 교체를 하는 ‘[宗]’와 같은 어사도 있다.
(7) ㄱ. ‘ㅎ’ 말음체언의 예
 나라ㅎ 〈권선 1:3〉, 네ㅎ 〈권선 1:4〉, 쇼ㅎ 〈권선 1:6〉, 뫼ㅎ 〈권선 2:1〉 ㅎ 〈권선 2:4-6〉, 우ㅎ 〈권선 5:3〉, 길ㅎ 〈어첩 2:4〉
 ㄴ. 음절말 자음교체의 예
   〈권선 1:4, 5:5〉 / 업수믈 〈권선 5:4〉
  맛나[遇] 〈권선 4:1〉, 낫바[晝夜] 〈어첩 3:3〉
  밧긔[外] 〈어첩 3:4〉, cf. 城 밧 훤 해 〈석보 6:27ㄴ〉
 ㄷ. 비자동적 교체의 예
  리오[宗] 〈어첩 1:5,6, 2:1〉
(7ㄱ)의 ‘네ㅎ[四]’, ‘뫼ㅎ[山]’와 (7ㄴ)의 ‘[外]’ 등은 이 문헌에 곡용형과 교체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용례가 없을 뿐이지 같은 환경에 서면 각각 곡용형과 교체형으로 실현될 것이므로 적어 놓았다.
8) 의존명사 ‘’와 ‘’는 동명사어미 ‘-ㄹ’에 후행하여 주격조사나 서술격조사와 통합될 때 ‘ㆍ’가 탈락되는데, 이 문헌에서 ‘’와의 통합형은 보이지 않고, ‘’와의 통합형만 보인다. ‘’와의 통합형은 어미화한 ‘-ㄹ’만 보인다.
(8) ㄱ. 사 닐올디 아니니 〈어첩 5:1〉, 利益게 홀띠니라 〈권선 5:6〉
 ㄴ. 뎌를 지려  〈권선 3:4〉, 내 이럴 〈어첩 5:1〉
(8ㄱ)은 의존명사 ‘’가 주격조사 및 서술격조사와 통합하여 각각 주어와 서술어의 기능을 보여주는 예이고, (8ㄴ)은 어미화한 ‘-ㄹ’가 ‘이유’를 나타내는 어미로 쓰인 것이다.
9) 중세국어 시기의 문장이 상당히 길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이지만, 이 문헌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이는 구결문의 작성 없이 언해가 이루어진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접속어미 ‘-니’에 기대어 상당히 길어진 문형들을 계속 접하게 된다. 따라서 상원사 ‘어첩’ 및 ‘중창 권선문’은 문장 구성이 상당히 복잡하게 되어 있는 문헌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모두 10장(張) 56행(行) 774자(字)언해문만을 대상으로 한 이 문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선문’은 5장 29행인데, 각 장의 글자 수는 1장 77, 2장 89, 3장 78, 4장 91, 5장 79장 등 모두 414자이고, ‘어첩’은 5장 27행인데 각 장의 글자 수는 1장 58, 2장 83, 3장 96, 4장 56, 5장 67자 등 모두 360자이다.
로 되어 있는 이 문헌에서 종결어미는 평서형 다섯, 의문형 셋, 그리고 인용문으로 되어 있는 세 문장 등 모두 열한 개 유형이 있을 뿐이다. 이 중 인용문 속에 들어있는 문장도 하나는 직접인용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완전한 종결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나머지 두 문장은 간접인용의 성격을 띠고 있는 명령형과 평서형이다.
(9) ㄱ. 江陵 五臺 天下애 일훔난 山이며 文殊 겨신 히라 〈권선 2:2-4〉
 ㄴ. 上院寺 더욱 勝 히라 〈권선 2:4-5〉
 ㄷ. 現在와 未來왜 다 利益게 홀띠니라 〈권선 5:5-6〉
 ㄹ. 닐온 고 미 菩提니라 〈어첩 5:4〉
 ㅁ. 이 世子 付囑야 기리 後子孫애 드리우노라 〈어첩 5:4〉
평서형은 (9)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서술격 조사 어간 ‘이’에 ‘-라’가 통합된 유형 두 문장과, 부정칭의 선어말어미 ‘-니-’에 통합된 유형 두 문장, 그리고 시상 및 의도법 선어말어미가 통합된 ‘-노-’와 결합한 유형 한 문장 등이다.
(10) ㄱ. 師의 功이 아니아 〈어첩 3:1〉
 ㄴ. 엇뎨 能히 이티 마리오 〈어첩 3:1-2〉
 ㄷ. 衆生 濟度시 큰 慈悲예 엇디 시료 〈어첩 3:5-6〉
(10)은 이 문헌에 나오는 의문형이다. (10ㄱ)은 의문보조사 ‘-아’가 결합된 판정의문문이고, (10ㄴ), (10ㄷ)은 선어말어미 ‘-리-’와 의문종결어미 ‘-오’가 결합되어 설명의문문을 구성한 것이다.
(11) ㄱ. 綸命을 리오샤 니샤 “내 날 爲야 뎌를 지려  내 반기 도아 나랏사람과로 利 너표려” 시고, 御衣 현  내시며 와 布貨와 土木  꺼슬 주라 시니 〈권선문 3:3~4:1〉
 ㄴ. 이제 ‘내 和애 違타’ 듣고 〈어첩 3:2〉
(11ㄱ)의 인용문은 상당히 복잡한 문장(文章)이다. ‘너표려’라는 의도형 연결어미 다음에 종결어미 없이 바로 주절의 서술어가 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도 어디서부터가 대화이고 어디서 부터가 지문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주라’라는 명령형 어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와’부터가 대화일 것으로 생각된다. (11ㄴ)은 간접인용문의 성격을 띤 평서형이다.
10) 이 문헌에 나오는 한자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불교용어이고, 하나는 임금과 관련된 용어이다. 대부분 한자로 적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유어로 바꿀 수 있는 말은 가능한 한 바꾸었으나 바꾸기 어려운 몇몇 어휘들은 그대로 한자를 쓰고 있다.
(12) ㄱ. 임금과 관련된 어휘
  聖上 〈권선 1:2〉, 天命 〈권선 1:2〉, 民 〈권선 1:3〉, 兩殿 〈권선 3:2〉, 綸命〈권선 3:3〉, 御衣 〈권선 3:6〉, 聖壽 〈권선 5:4〉, 潛邸 〈어첩 2:2〉, 世子 〈어첩5:4〉
 ㄴ. 불교관련 어휘
  文殊 〈권선 2:3〉, 靈異 〈권선 2:4〉, 上院寺 〈권선 2:4〉, 衣鉢 〈권선2:5〉, 布施〈권선4:4〉, 三寶 〈권선 4:5, 어첩 1:4,5〉, 法輪 〈권선 4:5〉, 施主 〈권선 4:6〉, 菩提心 〈권선 5:2〉 善知識〈어첩 1:4, 2:1〉, 慧覺尊者 〈어첩 2:3〉, 師 〈어첩3:1, 4:2,5,6〉, 劫 〈어첩3:1〉, 因 〈어첩 3:1〉, 衆生 濟度 〈어첩 3:5〉, 慈悲 〈어첩 3:5-6〉, 悅師 〈어첩 4:2〉, 祖師 〈어첩 4:2〉, 正因 〈어첩 5:3〉, 菩提 〈어첩5:4〉, 付囑 〈어첩 5:4〉
또한 이 자료는 짧은 편지글이지만 15세기 문헌에서 잘 쓰이지 않은 어휘가 두엇 보인다.
(13) ㄱ. 다-[乂] : 동사. 다스리다. ‘만 民이 다라’ 〈권선 1:3〉
 ㄴ. 헤다히-[奔來] : 동사. 헤매어 다니다. ‘두 百里 밧긔 헤다혀오니’ 〈어첩 3:3-4〉

5. 맺는 말

5.1 지금까지 상원사 ‘어첩’ 및 ‘중창 권선문’의 서지 사항과 언어사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문건(文件)은 편지글인데, 하나의 첩장 속에 합철되어 있어서 흔히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 중창권선문(重創勸善文)”(1464년)이라 불러왔다. 두 편지글 중 하나는 세조가 신미 등에게 보낸 어첩이요, 다른 하나는 신미 등이 세조에게 보낸 서찰이다. 두 편지글은 나중에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여져 두 건의 첩장으로 장정되어 오늘에 전해진다. 표지에 ‘御牒’이라는 제명이 있는 문헌과 표지에 아무런 제명이 없는 문헌인데, 우리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문헌은 전자다. 이 문헌에는 두 편지글의 원문과 언해문이 함께 실려 있다. 편지글 뒤에 세조(世祖)와 자성왕비(慈聖王妃),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공주, 부부인, 정경부인, 정부인 등 주로 종실 및 외명부 여인들이 열기(列記)되어 있고 인기(印記)가 있다. 후자에는 언해문 없이 원문만 있고, 신미 등 세조에게 서찰을 보낸 발신자들이 열기(列記)되어 있으며, 국왕과 세자 외에 종실의 대군(大君), 군(君), 부원군(府院君), 그리고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열기되어 있다. 그러나 여인들은 왕비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두 문헌은 편철 순서나 체제, 대두법(擡頭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편 같은 첩장 속의 두 편지글도 서체가 조금 차이가 난다. 두 편지글은 세조와 신미의 진필(眞筆)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누군가에 의해 재사(再寫)된 듯하다. 세조의 편지글은 또박또박 정자로 쓴 해서체(楷書體)인데 비해, 신미 등의 글은 원문과 언해문 모두 흘려서 쓴 해행서체(楷行書體)이다. 편지 작성일(作成日)은 신미 등의 편지글에는 끝에 ‘天順八年臘月十八日’이라 되어 있어서 정확한 작성 일시를 알 수 있으나, 세조의 편지글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서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 얼마 전까지 세조의 편지글이 먼저 쓰여진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근자에 신미의 편지글이 먼저 쓰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5.2 이 문헌은 세조 10년(1464)에 쓰여진 것으로 당시의 언어사실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 중 하나다. 이 서찰이 쓰여진 해에 간경도감에서 〈선종영가집언해〉, 〈아미타경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등이 간행되었는데, 모두 불전 원문에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을 한 이른바 불경언해서들이다. 그러나 ‘어첩’ 및 ‘권선문’은 먼저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는 한문서찰에 구결문의 작성 없이 언해가 이루어져서 구결문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구결문이 없어서 당시의 실용 언어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문장의 호흡이 길고 뜻의 전달이 잘 안되는 등의 문제점도 발견된다.
표기법이나 음운에서는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언해서들과 큰 차이가 없다. 문장은 종결어미에 의한 구성은 적고, 어미 ‘-니’에 의존한 종속절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글을 쓴 세조나 신미 등의 신분이 반영된 듯 임금과 관련된 어휘나 불교 관계 어휘가 많다.
그 밖의 언어 사실은 본문에서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특기할 것은 단어의 구성에서 접미사 ‘-’에 의한 파생어 형성이 생산적이고, 선어말어미는 겸양법 선어말어미의 쓰임이 많은 반면 공손법 선어말어미는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헌에서 접미사 ‘-’에 의한 파생어와 불교용어, 임금 관련 용어 외에 대부분의 한자어는 고유어로 옮겨졌다. 이는 언해에서 쉬운 우리말로의 번역에 노력한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편지를 쓴 두 사람 모두 당시 불경언해를 주도했던 인물이어서 언어사실에서 관판본의 불경언해서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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