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불설아미타경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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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불설아미타경언해
역주 불설아미타경언해

〈아미타경언해〉는 중국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A.D.)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다가, 수(隋)나라의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A.D. 538~597)가 주석을 붙여 펴낸 한문본 〈불설아미타경〉을 저본으로 하여, 조선조 세조 10년(1464)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불경언해서이다.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번역을 해서 1권 1책으로 간행한 것으로서, 즉 권두서명처럼 언해본의 갖은 이름은 〈불설아미타경〉이다.

김무봉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논문〉

「중세국어의 동명사 연구」(1987)

「고어사전 미수록 어휘에 대하여」(1992)

「금강경 언해의 서지 및 어학적 고찰」(1993)

「반야심경 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문법)」(1995)

「중세국어의 선어말어미 -ㅅ-에 대한 연구」(1996)

「상원사어첩 및 중창권선문의 국어사적 고찰」(1996)

「고행록의 문법」(1998)

「15세기 국어사 자료 연구」(1999)

「장수경 언해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 연구」(2001)

「조선시대 간경도감 간행의 한글 경전 연구」(2004)

「훈민정음 원본의 출판 문화재적 가치」(2006) 외.

〈저·역서〉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6)

「아미타경 언해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7)

「세종문화사 대계」(공저, 1998)

「한산이씨 고행록의 어문학적 연구」(공저, 1999)

「몽산화상 법어약록 언해」(2002)

「법화경 언해 권5」(2002)

「원각경 언해 권6」(2005)

「불교문학 연구의 모색과 전망」(공저, 2005)

「육조법보단경언해 상」(2006)

「육조법보단경언해 하」(2007) 외.

역주위원

  •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 김무봉

    • 교열·윤문·색인위원

      •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 박종국 홍현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내면서

우리 회가 추진하는 한글 고전역주사업은 1990년에 착수, 1991년부터 그 성과물을 내고 있는 사업으로, 그동안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6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9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1책 등 모두 45책이다.

우리 회는 세종성왕 탄신 611돌인 올해를 맞아 한글고전역주사업으로 ≪원각경언해≫ 1책을 펴내어 권10을 완간하고, ≪구급간이방언해≫ 3책과, ≪월인석보≫ 2책을 이어 펴내며, 새롭게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과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으로 펴내어 모두 8책을 역주해 펴내기로 하였는데, 이번에 불설아미타경과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역주 불설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아미타경언해〉는 중국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A.D.)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다가, 수(隋)나라의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A.D. 538~597)가 주석을 붙여 펴낸 한문본 〈불설아미타경〉을 저본으로 하여, 조선조 세조 10년(1464)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불경언해서이다.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번역을 해서 1권 1책으로 간행한 것으로서, 즉 권두서명처럼 언해본의 갖은 이름은 〈불설아미타경〉이다.

〈아미타경〉은 정토교의 근본 경전 중 하나로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과 더불어 정토(淨土) 3부경(三部經)이라고 불린다. ‘무량수경’을 ‘대경(大經)’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아미타경’을 ‘소경(小經)’, 또는 ‘미타경’이라 하기도 하고, 경 가운데 나오는 구절을 따서 ‘일체제불소호념경(一切諸佛所護念經)’ 또는 이를 줄여서 ‘호념경(護念經)’이라고도 한다.

이 불경 언해에서는 같은 해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1월), 〈금강경언해〉(4월), 〈반야심경언해〉(4월)에 비해 앞선 시기의 표기법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월인석보〉나 활자본 〈아미타경언해〉(?1461)의 영향을 입었기 때문이다.

목판본 〈아미타경언해〉는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는 쓰이지 않던 ‘ㅸ’과 ‘ㆆ’이 나타나고 협주의 시작과 끝에 흑어미 표지를 두지 않으며, 방점 표기에서 어말의 거성(去聲)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활자본의 영향을 입은 표기가 보인다. 그러나 구결문의 정음 구결에 방점을 찍지 않고, 언해문의 협주에 한글 소활자(小活字)를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체재는 간경도감본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출판하는 〈역주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원간본의 복각본 〈아미타경언해〉와 원간본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영인의 저본으로 하였다.

이 책의 해제와 역주를 담당한 동국대학교 김무봉 교수님과 본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8년 12월 20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아닌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은 이를 읽고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이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려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어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역주의 저본은 원간본의 복각본 〈아미타경언해〉와 원간본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여러 이본들을 비교하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① 한자 원문·② 언해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③ 현대어 풀이·④ 옛말과 불교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2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2ㄱ後ㅅ  묻옴…

제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期限 2ㄴ이시리라…

(3) 두 언해본의 원문 형식이 각기 달라서, 〈아미타경언해〉는 경 본문 뒤에 언해문이 이어지는데,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앞(1쪽~23쪽)에 경 원문을 그림과 함께 새기고, 25쪽부터 언해문을 새겼다. 그래서 역주자의 의도에 따라 〈아미타경언해〉와 같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도 경 본문을 쪼개어서 언해문과 나란히 이어 붙이고, 그에 따른 현대문과 주석을 달았다. 단,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경 본문 부분을 좀더 굵은 네모틀로 편집하여 쪽수가 다르게 이어짐을 분명히 하였다.

(4) 각 언해문 뒤에 바로 현대역과 주해를 붙였는데, 현대역은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직역을 위주로 하였으며, 언해문 가운데 탈각과 분명히 오각(誤刻)으로 보이는 것은 [ ]안에 수정한 글자를 써넣었고, 협주(夾註)는 〈아미타경언해〉의 원문에는 없지만【 】 표시로 구분하였다.

(5) 현대어 풀이에서, 옛글 구문(構文)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고, 언해문과 음은 다르지만 문맥 의미가 같다고 판단되는 것은 (= ) 안에 넣었다.

(6) 주해 풀이에서 자료 예시문은 ¶으로 시작하고,형태소 분석의 ‘#’은 어절 사이를 나타내며, ‘Ø’는 무형의 형태소를 나타낸다. 단, 주해 올림말의 한자음 표기는 오늘날의 한자음을 기준으로 하였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 : ㄱ ㄲ ㄴ ㄷ ㄸ ㄹ ㅁ ᄝ ㅂ ㅃ    ᄢ ᄣ ᄩ  ㅅ ㅆ     ㅇ ᅇ 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

② 중성 : 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ㆉㅜㅝㅞㅟㅠㆌㅡㅢㅣ·ㆎ

③ 종성 : ㄱ ㄴ  ㄵ ㄶ ㄷ ㄹ     ㄽ ㅬ ㄾ ㄿ ㅀ ㅭ ㅀ ㅁ  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아미타경언해 해제
김무봉(동국대 교수)

Ⅰ. 머리말

1.1. 〈아미타경언해〉는 조선조 세조(世祖) 10년(天順 8년, 1464)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목판본(木版本)의 불경언해서이다. 저본(底本)은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A.D.)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漢譯)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이다. 따라서 언해본의 갖은 이름은 〈佛說阿彌陀經〉이다. 물론 다른 언해서들과 같이 이 책의 어디에서도 ‘언해’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다. ‘언해(諺解)’라는 용어가 처음 실록에 등장한 것은 16세기 초반 무렵이고(1514년 4월 丁未條, ‘諺解醫書’), 책명에 직접 언해가 쓰인 것은 16세기 후반 〈소학언해(小學諺解)〉(1588년간)에서부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한문본과 한글본의 책이 같이 전해질 경우, 대체로 갑오경장(甲午更張) 이전에 간행된 정음(正音) 문헌 중 한글로 번역의 과정을 거친 책에 대해서는 한문본 책명 다음에 ‘언해’라는 용어를 써서 한문본과 구분하여 왔다.
〈아미타경언해〉의 전반적인 서지사항은 김영배(1997)에 소상하다. 이 해제(解題)의 작성에서 판본, 형태 서지, 유통 등은 주로 그 논의에 기대어 이루어졌다. 일부 내용은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그 외 표기법에 관련된 부분은 김무봉(1997ㄱ, 1997ㄴ, 1999)의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거나 보완한 것이다.‘언해(諺解)’의 개념 및 언해 경위, 언해본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김영배·김무봉(1998:307~ 415) 참조.
〈아미타경언해〉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漢譯)의 〈佛說阿彌陀經〉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번역을 해서 1권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내제 옆칸 아래쪽 역기란(譯記欄)에 ‘御製譯解’라 한 것과, 같은 경전의 내용이 〈월인석보〉 권칠(卷七)에도 번역·편입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번역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주002)
활자본 〈아미타경언해〉의 서지사항과 언어 사실은 안병희(1980), 최은규(1993) 참조.
이는 〈아미타경〉이 언해본으로 간행되기에 앞서, 왕위에 오르기 전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편찬한 〈석보상절〉(1447년간) 권7(현재는 부전)이나, 왕위에 오른 후 간행한 〈월인석보〉(1459년간) 권7(61ㄴ~77ㄴ)에 실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산문고본 〈아미타경언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김무봉(1999) 참조. 일산문고본 〈아미타경언해〉와 같은 책이 충남대 도서관에 있다는 김주원 교수의 전언이 있었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여기에 대해서는 김영배(1997:37)에 상세한 내용이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미타경언해〉의 활자본과 목판본이 간행되기에 앞서, 그 번역의 대부분은 수양대군이 엮은 〈석보상절〉에 이미 편입되어 있었고(이 대목이 실린 〈석보상절〉 권칠(七)은 현재 전하지 않음), 세조가 되어 〈월인천강지곡〉과 합편해서 〈월인석보〉로 간행하니,『아미타경』은 〈월인석보〉 제7권 61장 후면에서 끝(77장)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에 해당되는 〈월인천강지곡〉은 기(其)200에서 기(其)211의 12장(章) 〈월석七55ㄴ~61ㄴ〉이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활자본이나 목판본 모두 「불설아미타경」이란 내제 밑에 ‘어제역해(御製譯解)’라는 번역자 관계의 기록이 있게 된 것이다.”
〈아미타경언해〉는 훈민정음 창제 직후인 15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40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인간(印刊)되었다. 한문으로 된 저경(底經)의 원문 모두를 합쳐야 겨우 10여 장에 지나지 않는 적은 분량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언해본의 간행이 거듭된 것은, 한국 불교, 특히 조선 시대 불교에서 〈아미타경〉이 차지하는 경전(經典)으로서의 비중이나 경(經)의 성격 때문이겠지만, 국어학도들에게는 원간본 및 중간본들에 실려 전하는 언어 사실로 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책들은 한국어의 변천을 살피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미타경〉의 국어역인 〈아미타경언해〉는 세조대에만 두 차례나 간행되었다. 하나는 세조 7년(1461 A.D.) 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활자본(活字本)인 을해자본(乙亥字本) 주004)
해인사본 〈염불보권문〉의 서지사항은 김영배(1996) 참조.:활자본 〈아미타경언해〉의 서지사항과 언어 사실은 안병희(1980), 최은규(1993) 참조.
〈아미타경언해〉이고, 다른 하나는 세조 10년(1464 A.D.)에 간행된 목판의 간경도감본 〈아미타경언해〉이다. 간경도감본은 판식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언어사실에서는 활자본에서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이미 선행 연구(안병희, 1980:378)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표현이 달라진 1곳, 불교 용어의 한자음 표기가 달라진 2곳 등, 세 군데 정도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이 책의 실재(實在) 가능성은 김영배(1997:54)의 각주 15)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2008년 2월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의해 이 책이 공개되었다. 이 책은 동국대의 전신(前身)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소장이었는데, 당시 이 학교의 교수로 있던 일본인 에타 도시오(江田俊雄)가 가져갔던 것으로 보인다. 에타교수 사후(死後) 유족들 의해 에타교수의 장서가 일본의 고마자와대학에 기증되었고, 그 책들 가운데 이 책이 있었던 것이다. 고마자와대학 도서관측은 이 책에 중앙불전의 장서인(藏書印)이 있는 것을 보고, 중앙불전의 후신인 동국대에 반환하여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서지사항과 어학적 연구는 후고를 기약한다.:목판본(쌍계사본)에서 표현 및 표기가 달라진 곳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활자본〉 〈목판본〉 둘·어 범·그·러 이실· 〈6ㄱ〉 / 둘·어실· 〈7ㄱ〉.
般반若: 〈13ㄱ〉 / 般·若: 〈15ㄱ〉.
解:갱脫· 〈13ㄱ〉 / 解脫· 〈15ㄱ〉
1.2.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원간 초쇄본은 전하지 않는 듯, 아직 공개된 바 없다. 오늘날 전해지는 책 중 원간본 계통의 책으로는, 원간본의 판목에서 쇄출(刷出)된 후쇄본으로 보이는 1책이 있을 뿐이다. 1990년에 발굴·공개된 바 있는 이 책은 최영란님 구장본(舊藏本)이었으나, 지금은 충북 단양 소재(所在) 구인사(救仁寺) 소장으로 바뀌었다. 보물 10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책에는 복각본 등에 보이는 내제 아래쪽 역기란(譯記欄)에 ‘御製譯解’라는 역기가 삭제되어 있어서 초쇄본으로 보기 어렵다. 원간본의 판목으로 뒤에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원간본의 언어사실과 판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현전 최고본(最古本)이어서 국어사 연구를 위해서는 원간 당시의 자료로 이용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다만 일반에 널리 공개되지 않아 연구자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복각본(覆刻本) 중 가장 먼저 인출된 책인 쌍계사본(1558 A.D. 간행)을 통해 원간본의 언어사실에 접근해 왔다. 이 책의 간행 이후 18세기 중반까지 다수의 복각본들이 주로 지방의 사찰 등에서 간행되었는데, 이들 복각본들은 일부의 탈각(脫刻)이나 오각(誤刻), 방점 표기의 부정확함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자료만은 일부 흠결(欠缺)을 가진 채, 원간 당시의 것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일부 복각본 중에는 다른 문건이 합철(合綴)되어 있어서 이용에 주의를 요한다.
18세기 중반 이후에 간행된 책들은 원간본 간행 이후 3~4세기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이 있어서인지 언해 체재의 변개는 물론, 번역어에도 언해 당시의 언어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당시 〈아미타경언해〉를 수지(受持)·독송(讀誦)하던 사람들의 우리 문자에 대한 인식이나, 언해 경전 편찬자들이 실제 사용하던 언어가 반영되어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 그 즈음에 이르러 경전을 독송하거나 그 뜻을 새기고자 하는 사람들에 맞추어 언해 불경을 새로이 편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 이루어진 판본이 오늘날 전해지는 한자음역만 있는 판본(밀양 표충사 간본, 1898 A.D.)이거나 일산문고본(18세기 중엽 간행 추정)처럼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진 판본일 것이다.
앞에서 밝힌 대로 현전 간본 중 간경도감본 이후 18세기 중엽까지 간행된 책들은 대부분 간경도감본을 판밑으로 한 복각본들이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 간행된 책들은 경의 본문에 해당되는 소재언어(素材言語;Source Language)만 간경도감본과 같은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漢譯)의 『불설아미타경』을 저본으로 했을 뿐, 판식이나 언어사실은 많이 달라져 있다. 이 책들에 실려 전하는 언어들은 간경도감본(刊經都監本, 1464년간)에 견인된 것으로 보이는 표기가 일부 없지 않으나, 대체로 18세기 중반 이후의 표기 및 음운, 문법 등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때 간행된 중간본(重刊本) 중 오늘에 전하는 책으로는 일산문고본 등 3종이 있다. 국립도서관 일산문고에 소장되어 있어서 「일산문고본」 주006)
김영배(1997:35)에서는 〈고려대장경〉과 〈대정신수대장경〉의 『아미타경』과 〈아미타경언해〉 쌍계사본(1558)의 원문(原文)을 대교(對校)하여 제시하였다. 위의 내용도 그 논의에서 가져왔다.:일산문고본 〈아미타경언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김무봉(1999) 참조. 일산문고본 〈아미타경언해〉와 같은 책이 충남대 도서관에 있다는 김주원 교수의 전언이 있었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
으로 불리는 이 책에는 간기가 없어 자세한 간행 경위나 정확한 간행 연대는 알 수가 없지만, 경(經)의 원문 일부와 언해문이 전재되어 있는 해인사본 〈염불보권문〉 주007)
김명실(1997) 참조.:해인사본 〈염불보권문〉의 서지사항은 김영배(1996) 참조.
의 간행 연대인 건륭(乾隆) 사십일년(四一年) 병신(丙申)[1776 A.D.]과, 언어사실 등 몇몇 정황을 종합하면 18세기 중반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본다. 다른 두 책은 모두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인데, 하나는 고종 8년(1871 A.D.) 양주 덕사에서 간행된 책이고, 다른 하나는 고종 35년(1898 A.D.) 밀양 표충사에서 간행된 책이다.

Ⅱ. 판본 및 경(經)의 성격

2.1. 여기서는 언해본의 판본과 형태 서지, 한문본의 성격 및 내용 등을 살필 것이다. 우선 〈아미타경언해〉의 현전본을 계통별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외에 김영배(1997)에서는 현전하지 않는 책 몇몇 본(本)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현전하는 책만을 대상으로 제시한다.
[1] 교서관(校書館) 활자본(活字本), ?1461년 간행, 을해자(乙亥字),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2] 간경도감(刊經都監) 목판본(木版本), 1464년 간행, 후쇄본(後刷本), 단양(丹陽) 구인사(救仁寺) 소장(所藏)).
복각본(覆刻本)
1) 나주 쌍계사본, 명종 13년(1558 A.D.) 간행.
동국대 도서관 소장(귀213.16-아39ㄱㅅ). 총 30장 1책.
2) 해남 대둔사본, 17세기 초반(1632년경 간행) 추정. 주008)
김명실(1997)의 논의를 요약하여 옮긴 것이다.:이 책의 실재(實在) 가능성은 김영배(1997:54)의 각주 15)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2008년 2월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의해 이 책이 공개되었다. 이 책은 동국대의 전신(前身)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소장이었는데, 당시 이 학교의 교수로 있던 일본인 에타 도시오(江田俊雄)가 가져갔던 것으로 보인다. 에타교수 사후(死後) 유족들 의해 에타교수의 장서가 일본의 고마자와대학에 기증되었고, 그 책들 가운데 이 책이 있었던 것이다. 고마자와대학 도서관측은 이 책에 중앙불전의 장서인(藏書印)이 있는 것을 보고, 중앙불전의 후신인 동국대에 반환하여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서지사항과 어학적 연구는 후고를 기약한다.
일본 고마자와대학 ⟶ 동국대 도서관 소장.
3) 고성 운흥사본, 숙종 28년(1702 A.D.) 간행.
국립도서관 일산문고, 서울대 규장각 소장(가람古294.3355-Am57b).
서울대 규장각 소장(일사古294.3355-B872eh).
4) 대구 동화사본
이 표기법의 많은 부분은 김무봉(1997)에서 가져왔고, 일부의 내용은 보완했다.:동화사본은 책마다 편철 내용에 차이가 있다. 규장각 소장의 한 책(古294. 355-B872a)과 일본(日本) 톈리대[天理大] 소장의 책은 〈아미타경언해〉만 있고,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에는 다른 문건이 합철되어 있다. 이 책에는 서문 5장과 「아미타경언해」 29장의 뒤에 「왕랑반혼전」 9장이 이어진 후 다시 30장에 시주질과 「乾隆十八年十一月日慶尙道大丘八公山桐華寺開刊」의 간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간기 뒤에 「임종정념결」과 「부모효양문」 원문 및 언해문 7장이 이어지고 맨 뒷장 끝행에 다시 「乾隆六年辛酉季春日慶尙道新寧八公山修道寺開刊」의 간기가 나온다. 김영배(1997)에서는 이를 〈아미타경언해〉 동화사본에다 수도사 간행 「임종정념결」 등의 후쇄본을 합철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 〈아미타경언해〉의 서문 5장과 「왕랑반혼전」 9장, 시주질 및 간기 1장, 「임종정념결」 및 「부모효양문」 7장 등 〈아미타경언해〉 본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22장만으로 장철된 책도 전한다. 김영배(1997:44~46) 참조.
, 영조 29년(1753 A.D.) 간행
동국대 도서관 4책(D213.16아39ㄱㄷ3 등), 서울대 규장각 2책(古294.335-B8 72a, 일사古294.3355-B872b), 연세대 도서관, 국립도서관 위창문고(위창古-1788), 성암고서박물관, 일본 천리대(天理大) 도서관 각 1책.
*이 책 동화사본 중 일부에는 팔공산(八公山) 수도사(修道寺) 간행의 「임종정념결(臨終正念訣)」과 「부모효양문(父母孝養文)」(1741년간) 후쇄본이 합철되어 있다.
[3] 개찬본(改撰本)
1) 한자음역만 있는 책.
밀양 표충사본, 고종 35년(1898 A.D.) 간행.
국립도서관 위창(韋滄)문고(위창古1788-8), 동국대 도서관 소장(D213.16 -아39ㄱㅍ).
2) 한자음역에 한글 구결이 있는 책.
양주 덕사본, 고종 8년(1871 A.D.) 간행.
서울대 규장각(古1730-7). 동국대 도서관 소장.
3) 한글 구결·한자음역문 뒤에 당시 언어로 번역한 언해문이 있는 책.
간행지, 간행연대 미상(18세기 중반으로 추정).
국립도서관 일산문고 소장(일산古 1745-9).
*해인사본 염불보권문(1776 A.D.)에 일산문고본의 경(經) 원문 일부(구결 제외)와 언해문 전문 전재(구결문과 한자 음역문 제외).
이상의 여러 판본 중 활자본의 서지와 언어사실은 안병희(1980), 최은규(1993)에 자세한 논의가 있고, 간경도감본 및 그 복각본 등 각 중간본(重刊本)들의 형태서지와 현전 상황 등은 김영배(1997)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 논의를 참고하기 바란다. 한자음역에 한글 구결이 있는 양주 덕사본에 대해서는 김무봉(1997)에서 간경도감본과의 구결 비교를 통한 연구가 있었고, 18세기 중반에 간행된 책인 일산문고본에 대해서는 김무봉(1999)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2.2. 앞에서 밝힌 대로 〈아미타경언해〉의 저본은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漢譯)의 『佛說阿彌陀經』(姚秦, 弘始 四年 A.D.402)에 수(隋)나라의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A.D. 538-597)가 주석을 붙인 한문본 〈佛說阿彌陀經〉이다. 언해본은 경(經)의 본문(本文)에만 정음으로 구결을 달고 한글로 번역을 하였다.
간경도감 원간본의 서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권두서명 : 佛說阿彌陀經, 판심서명 : 阿彌陀經
책의 규모 : 분권(分卷)을 하지 않은 29장 1책의 목판본.
세로 30.4cm×가로 18.7cm.
판식 : 사주쌍변(四周雙邊). 반엽(半葉)은 매면(每面) 유계(有界) 8행, 본문 구결문은 큰 글자로 19자, 구결문의 정음 구결은 쌍행인데,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언해문은 한 글자 내려서 중간 글자로 18자. 흑어미 표시가 없는 협주(夾註) 역시 18자이나, 작은 글자로 쌍행이다. 언해문과 협주의 한자에는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注音)되어 있다.
판심 : 상하 대흑구 내향흑어미.
간기 : 天順八年 甲申歲(1464) 朝鮮國 刊經都監 奉敎雕造/ 忠毅校尉行忠佐衛中部副司正 臣 安惠書
2.3. 이 책의 한문본인 한역본 『佛說阿彌陀經』은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ㄱ).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 구마라집(鳩摩羅什)역,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A.D.).
(ㄴ). 소무량수경(小無量數經) 1권.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역, 송(宋) 효강(孝康) 연간(424~454 A.D.).
(ㄷ). 칭찬정토불섭경(稱讚淨土佛攝經) 1권. 현장(玄裝)역, 당(唐) 영휘(永徽) 원년(650A.D.).
위의 (ㄱ,ㄷ)은 〈高麗大藏經〉과 〈大正新修大藏經〉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주010)
활자본 〈아미타경언해〉에 대해서는 안병희(1980), 최은규(1993) 참조.:김영배(1997:35)에서는 〈고려대장경〉과 〈대정신수대장경〉의 『아미타경』과 〈아미타경언해〉 쌍계사본(1558)의 원문(原文)을 대교(對校)하여 제시하였다. 위의 내용도 그 논의에서 가져왔다.
高麗大藏經 제11, pp.185-189 동국대학교 영인, 1959.
大正新修大藏經 제12, pp.346-348, 大正新修大藏經 刊行委員會, 1923/1967.
다만 (ㄴ)은 그 일부만이 ‘拔一切業障根本得生淨土神呪’로 전한다(大正新修大藏經 第12 p.351).
『아미타경』은 정토교(淨土敎)의 근본 경전[所依經典] 중 하나로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과 더불어 정토(淨土) 3부경(三部經)이라고 불린다. ‘무량수경’을 ‘대경(大經)’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아미타경’(이하 줄여서 이렇게 씀)을 ‘소경(小經)’, 또는 ‘미타경’이라 하기도 하고, 경 가운데 나오는 구절을 따서 ‘일체제불소호념경(一切諸佛所護念經)’ 또는 이를 줄여서 ‘호념경(護念經)’이라고도 한다. 이들 경전에서는 일반 범부들도 칭명염불(稱名念佛)이나 관상법(觀想法)에 의한 수행 방법으로 능히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할 수 있다고 설한다. 주011)
김명실(1997) 참조.
2.4. 이 ‘아미타경’의 범어(梵語) 원전명은 ‘SukhāvatĪvyūha nāma-mahāy ānasūtra[樂有莊嚴經/극락장엄이라 이름하는 대승경전]’이며,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 udāna)이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제자가 먼저 질문하면 석존이 그에 대해 답변하는 데서 교설(敎說)이 시작되고, 이후 문답(問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제자의 질문이 없는데도 석존이 스스로 말을 꺼내고 일방적(一方的)으로 교설한다. 성문제자(聲聞弟子) 가운데 지혜 제일인 사리불(舍利弗)을 상대로 해서 수많은 법회(法會) 대중(大衆)에게 극락국토의 장엄상과 아미타불의 공덕을 찬탄하고, 염불왕생법(念佛往生法)에 대해 교시한다.
법회에는 많은 대장로(大長老), 아라한(阿羅漢), 문수보살(文殊菩薩) 등 대보살중(大菩薩衆), 석제환인(釋堤桓因) 등 여러 천인(天人)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특히 사리불을 대표로 하는 성문제자들에게 교설한 것은 그들의 지혜로는 타방현재불(他方現在佛)인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에 대해서 짐작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석존이 먼저 말씀을 꺼내고, 이어서 설명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주012)
〈반야심경언해〉, 〈아미타경언해〉 등의 방점 표기에 대해서는 정우영(1996) 참조.:김명실(1997)의 논의를 요약하여 옮긴 것이다.
경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께서 기원정사(祇園精舍)에 머무르면서 장로(長老)인 사리불(舍利弗) 등을 위해 서방(西方)의 아미타불(阿彌陀佛) 및 그 국토인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위치와 공덕·장엄을 말씀하신다. 극락세계는 서방으로 십만억 불국토(佛國土)를 지난 곳에 있는데, 그곳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으며, 오직 모든 즐거움을 누리고 있어서 극락이라고 부른다. 또한 극락세계의 장엄(莊嚴)이 매우 아름답게 묘사되어 환희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를테면, 가로수, 연못, 누각 등이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하늘 음악과 꽃비가 내리며, 새들이 진리를 노래하고, 바람이 나무와 그물 방울을 흔들면 백천 가지 악기가 연주되는 것 같으며,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삼보(三寶)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곳에는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三惡道)라는 이름조차 없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아미타불은 지혜와 자비의 광명이 한량없고[無量光] 수명이 한량없는[無量壽] 부처님으로서, 이미 성불하신 지 10겁이 지났다. 극락에 태어나는 중생들도 한량없는 광명과 수명을 얻는다. 이와 같은 극락정토에 왕생(往生)하기 위해서는 자력(自力)의 작은 선근(善根)으로는 어려우니, 중생으로서는 염불수행을 해야 가능하다. 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하루, 나아가 이레 동안 일심으로 외우면, 임종 때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들이 와서 극락세계로 맞아 간다고 설하였다.
또한 6방(동·서·남·북, 상·하)의 많은 불·보살이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이 진실한 것임을 증명하며, 아미타불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공덕을 찬탄하니, 염불하는 중생들은 이 경전을 믿고 받아 지녀서 왕생극락을 발원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 모든 부처께서 호념(護念)하실 것임을 설한 것이다.
〈아미타경〉의 내용을 삼분과(三分科: 序分, 正宗分, 流通分)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서분(序分)〉
1). 가르침의 장소와 청중(聽衆).
〈정종분(正宗分)〉
1). 극락세계와 아미타불
극락세계의 장엄한 모습과 무량공덕의 아미타불.
2). 염불(念佛) 수행(修行)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남.
염불 수행으로 왕생함. 모든 부처의 증명으로 믿음을 권함.
〈유통분(流通分)〉
1).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며 떠남.
사리불(舍利弗)과 모든 비구(比丘)와 일체 세간(世間)의 천인(天人)과 아수라(阿脩羅)들이 석존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해서 예수(禮數)하고 떠남.

Ⅲ. 표기법

3.1. 표기법 개관 주013)
이 외에 구결문과 언해문 사이에 ○ 표지를 두지 않고, 협주 뒤에 한문 주해가 올 경우나 한문 주해와 주해 사이에 ○표지를 둔 것도 활자본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이 표기법의 많은 부분은 김무봉(1997)에서 가져왔고, 일부의 내용은 보완했다.
이 책은 같은 해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1월), 〈금강경언해〉(4월), 〈반야심경언해〉(4월)에 비해 앞선 시기의 표기법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월인석보〉나 활자본 〈아미타경언해〉(?1461)의 영향을 입었기 때문이다. 주014)
이 논의에서는 목판본〈아미타경언해〉를 ‘이 책’ 또는 〈아미〉라는 약칭으로도 부를 것이다.:활자본 〈아미타경언해〉에 대해서는 안병희(1980), 최은규(1993) 참조.
이미 앞에서 지적한 대로 「아미타경」은 정토 삼부경의 하나로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이다. 주015)
이 논의에서 〈 〉속에 있는 앞의 숫자는 장차를 표시하고, 뒤쪽 ‘ㄱ’은 장의 앞면, ‘ㄴ’은 뒷면을 가리킨다.:김명실(1997) 참조.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주로 성문제자(聲聞弟子)가 석존(釋尊)께 질문하면 석존이 그에 대해 대답하는 교설(敎說)이 있고, 교설이 있은 후 문답하는 형식인데 비해, 이 경전은 석존이 성문제자 가운데 지혜 제일이라고 하는 사리불에게 일방적으로 교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설화자가 석존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 많아 주체존대 선어말어미 ‘-시/샤-’의 쓰임이 빈번하고, 화자인 석존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김에 따라 화자에 의에 구사되는 ‘-니라’형의 종결어미와 설화자에 의한 ‘-시니라’형 종결어미가 많다.
목판본 〈아미타경언해〉는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는 쓰이지 않던 ‘ㅸ’과 ‘ㆆ’이 나타나고 협주의 시작과 끝에 흑어미 표지를 두지 않으며, 방점 표기에서 어말의 거성(去聲)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주016)
동명사어미 ‘-ㅭ’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중 ‘-ㅭ’은 〈능엄경언해〉 등에서 더러 보이나, ‘ㅭ’나 ‘ㅭ시’는 문증(文證)되지 않는다.:〈반야심경언해〉, 〈아미타경언해〉 등의 방점 표기에 대해서는 정우영(1996) 참조.
활자본의 영향을 입은 표기가 보인다. 주017)
〈반야심경언해〉에서 ‘ㄹ’ 다음에 사잇글자로 ‘ㆆ’이 쓰인 것으로는 ‘ 사교미라 〈11ㄴ〉,  사교 〈19ㄱ〉’ 등이 있다.:이 외에 구결문과 언해문 사이에 ○ 표지를 두지 않고, 협주 뒤에 한문 주해가 올 경우나 한문 주해와 주해 사이에 ○표지를 둔 것도 활자본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구결문의 정음 구결에 방점을 찍지 않고, 언해문의 협주에 한글 소활자(小活字)를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체재는 간경도감본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불경언해서들과 비교하면서 이 책의 표기 특성을 살피려고 한다.
3.2. ㅸ
‘ㅸ’은 훈민정음의 초성 17자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예의」 및 「해례 제자해」에서 순경음으로 규정된 이후, 〈용비어천가〉(1447년간) 등의 정음 초기 문헌에 더러 보이고 간경도감 간행의 언해서에는 〈능엄경언해〉(1462년간)의 ‘[礫](5:72ㄴ)’이나 〈목우자수심결언해〉(1467년간)에 몇몇 예가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 주018)
불경언해에 나오는 불교용어의 한자음에 대해서는 안병희(1980), 최세화(1991) 참조.:이 논의에서는 목판본〈아미타경언해〉를 ‘이 책’ 또는 〈아미〉라는 약칭으로도 부를 것이다.
에서는 용언 활용형과 겸양법 선어말어미 ‘--, --’의 통합형에서 일반적인 쓰임을 보인다. 그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ㄱ. 즐거씨라〈5ㄴ〉 주019)
〈영가집언해〉와 〈금강경언해〉의 용례는 정우영(1996) 참조.:이 논의에서 〈 〉속에 있는 앞의 숫자는 장차를 표시하고, 뒤쪽 ‘ㄱ’은 장의 앞면, ‘ㄴ’은 뒷면을 가리킨다.
, 고〈9ㄱ〉, [難]〈27ㄴ〉, 어려〈28ㄴ〉
ㄴ. -니〈1ㄴ〉, 디니〈17ㄴ〉, 〈18ㄴ〉, 듣니〈2ㄱ〉, 듣〈25ㄱ〉, 일〈27ㄴ〉, 받〈29ㄱ〉
ㄷ. 외오〈9ㄱ〉, 욀씨니〈15ㄴ〉, 외야〈25ㄴ〉
이 책에서 ‘ㅸ’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ㅸ’이 실현되었다. 다만 〈용비어천가 10:1ㄱ, 98장〉에서 한 차례 용례가 보일 뿐 그 이후 쓰임이 없는 ‘-’는 여기서도 ‘외-’로 실현되었다.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서와는 달리 ‘ㅸ’의 쓰임이 정음 초기 문헌과 같이 실현된 것은 앞서 간행된 〈월인석보〉(1459년간)나 활자본 〈아미타경언해〉(?1461년간)의 표기법에 이끌린 때문으로 생각된다. 특히 (1ㄱ)의 ‘-’은 〈월인석보〉와 이 책 이외의 다른 문헌에서는 그 용례가 없는 희귀어 중의 하나이다.
3.3. ㆆ
‘ㆆ’은 훈민정음 초성체계에서는 후음(喉音)의 전청자(全淸字)로 영모(影母)에 해당되지만 「용자례(用字例)」에는 빠져 있어서 불완전(不完全)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 주로 동국정운 한자음 영모자(影母字)의 표기와 입성 표시 사잇글자로 쓰였고, 고유어 표기에서는 동명사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ㅭ’에 사용되었다. 정음 초기문헌 이래 단독으로 쓰인 예는 없고, 사잇글자로의 쓰임도 〈용비어천가〉나 「훈민정음언해본」이후 극히 제한적이다. 간경도감본에서는 동국정운 한자음 표기에 널리 쓰였으나, 고유어 표기에서는 동명사어미 ‘-ㄹ’ 다음에서 몇몇 용례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ㄹ’ 다음에서 폭넓은 쓰임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해에 간행된 문헌 중 〈영가집언해〉에서는 후행하는 체언의 초성이 한자어 무성자음인 경우에만 ‘-ㅭ’로 나타나고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상원사어첩 및 중창권선문〉에는 모두 ‘-ㄹ’로만 실현되었다.
(2) ㄱ. 護念 經이라〈19ㄴ, 20ㄴ, 21ㄴ, 22ㄴ, 23ㄴ, 25ㄱ〉
ㄴ. 아디 아니며〈14ㄴ〉, 닐디니라〈16ㄱ〉, 發願디니〈16ㄴ〉
ㄷ. 命終 제 / 命終 쩨〈17ㄴ〉, 나고져  사〈26ㄴ〉
ㄹ. 밥 머 〈9ㄱ〉
ㅁ. 念僧홀 〈12ㄴ〉
ㅂ. 모릴니라〈16ㄴ〉, 아니씨라〈3ㄱ〉
ㅅ. 應 〈3ㄱ〉, 薩 〈4ㄱ〉
이 책에서 동명사어미 ‘-ㄹ’은 대부분 ‘-ㅭ’으로 실현되어 ‘ㆆ’의 쓰임이 다양하다. (2ㄱ)은 ‘-ㅭ’의 후행요소가 한자어 무성자음인 경우이고, (2ㄴ)은 ‘-ㅭ’이 후행의 ‘디(〈+이/이-)’ 또는 ‘디-’와 통합된 형태인데, 이 책에 용례가 많이 보인다. (2ㄷ)은 ‘-ㅭ’+‘치음의 전청자’형이다. 이 책에서는 그 출현환경이 제한적이어서 위의 두 용례만 보인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ㅭ+전청자형’인 ‘-제’와 ‘-ㄹ+전탁자형’인 ‘-쩨’가 병기되기도 했다. (2ㄹ)은 후행요소가 합용병서인 경우인데 ‘-ㅭ’으로 실현되었다. (2ㅁ)은 후행요소가 불청불탁자인 경우 ‘-ㄹ’이 쓰인 예이다. (2ㅂ)은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인데, 정음 초기 문헌부터 ‘-ㄹ/ ㄹ씨’로 나타난다. 주020) :동명사어미 ‘-ㅭ’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중 ‘-ㅭ’은 〈능엄경언해〉 등에서 더러 보이나, ‘ㅭ’나 ‘ㅭ시’는 문증(文證)되지 않는다. (2ㅅ)은 동국정운 한자음에서의 용례를 보인 것이다.
3.4. ㅿ
유성마찰음 ‘ㅿ’은 훈민정음 초성체계에서는 불청불탁(不淸不濁)의 반치음으로 일모(日母)에 해당된다. 15세기 문헌에 두루 나타나며 16세기 중반까지 쓰였다. 이 책에서는 ‘ㅿ’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ㅿ’으로 실현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ㅿ’의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모두 모음간에서(‘V-V’)의 용례이다.
(3) ㄱ. 〈12ㄴ〉 / 로〈17ㄴ〉, 믌〈19ㄱ〉
ㄴ. 지〈11ㄱ〉 / 지샨〈11ㄴ〉
ㄷ. 니〈1ㄴ〉 / 고〈9ㄱ〉, 〈29ㄱ〉 / 거뇨〈13ㄱ〉 / 〈18ㄴ〉, 디니〈17ㄴ〉
ㄹ. 말 드러〈14ㄱ〉
(3ㄱ)은 체언 어간 내부 모음간에 나타난 ‘ㅿ’의 용례와, 체언과 조사 통합형에 나타난 ‘ㅿ’의 용례이다. (3ㄴ)은 용언어간과 선어말어미 통합형에서의 용례이고, (3ㄷ)은 겸양법 선어말어미 ‘--’의 통합형에서의 용례이다. (3ㄹ)은 첨사 ‘’의 예이다.
3.5. 사이글자
사이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끼어드는 자음글자이다. 〈용비어천가〉(1447년간)에는 ‘ㄱ, ㄷ, ㅂ, ㅅ, ㅿ, ㆆ’의 6자가 쓰였고, 「훈민정음 언해」(1459년 이전 간행)에는 ‘ㄱ, ㄷ, ㅂ, ㅸ, ㅅ, ㆆ’의 6자가 쓰였다. 〈석보상절〉에 이르러 ‘ㅅ’으로 통일을 꾀한 듯하나 ‘ㄱ, ㄷ’이 쓰인 예도 있다. 뒤에 간행된 〈월인석보〉(1459년간)에는 ‘ㅅ’ 외에 ‘ㄱ, ㄷ, ㅂ, ㆆ’이 쓰였고,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59년간)에는 ‘ㅅ’ 외에 ‘ㄷ, ㆆ’이 쓰였으나 〈아미타경언해〉(1464년간)와 같은 해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에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다만 〈반야심경언해〉에는 ‘ㄹ’ 다음에 ‘ㆆ’이 쓰인 예가 있다. 주021) 〈반야심경언해〉에서 ‘ㄹ’ 다음에 사잇글자로 ‘ㆆ’이 쓰인 것으로는 ‘ 사교미라 〈11ㄴ〉,  사교 〈19ㄱ〉’ 등이 있다.
이 책에서는 사이글자와 구 구성의 속격에서 모두 ‘ㅅ’으로 통일되었다.
(4) ㄱ. 菩薩ㅅ 中에〈4ㄴ〉, 부텻 〈5ㄴ〉, 네 가짓 보니〈7ㄱ〉, 하류고〈9ㄱ〉,  곳고리라〈10ㄴ〉, 부텻 나라해〈11ㄱ〉, 부텻 光明이〈13 ㄱ〉, 부텻 목숨과〈13ㄴ〉, 하 뎌기〈29ㄱ〉, 부텻 니샤〈29ㄱ〉
ㄴ. 버길[階道]〈7ㄴ〉, 술윗[車輪]〈8ㄱ〉, 믌〈19ㄱ〉
위의 예에서 보듯 이 책에는 사이글자가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제한적이다. 대부분 ‘부텨’ 또는 ‘보살(菩薩)’이 선행어가 되는 구 구성이다. (4ㄱ), (4ㄴ) 모두에서 ‘ㅅ’ 외의 어떤 사이글자 표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ㅅ’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제한적이고, 같은 해에 간행된 불경언해 중 〈반야심경언해〉를 제외한 다른 문헌에서는 사이글자의 예외적인 용례가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간경도감본에 이르러 비로소 사이글자 ‘ㅅ’으로의 통일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6. 초성 병서표기
3.6.1. 〈아미타경언해〉는 29장 분량의 소책자(小冊子)인데다가 언해문이 중활자(中活字)로 되어 있고, 협주(夾註)가 많지 않아서 연구자들이 자료로 삼을 어사(語辭)의 선택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ㅭ+전청자’ 표기가 널리 쓰인 관계로 각자병서의 예는 드물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문헌에 보이는 각자병서 8자(ㄲ, ㄸ, ㅃ, ㅉ, ㅆ, ㆅ, ㆀ, ㅥ)중 이 책에는 ‘ㅉ, ㅆ’만이 쓰였다.
(5) ㄱ. 命終 쩨〈17ㄴ〉 / 命終 제〈17ㄴ〉
ㄴ. 다쐐/여쐐〈17ㄴ〉, 쎠〈26ㄱ〉 / 클씨라〈3ㄱ〉, 주길씨니〈3ㄱ〉, 니라〈15ㄱ〉
(5)의 예와 같이 각자 병서는 주로 동명사어미 ‘-ㄹ’ 통합형에서 볼 수 있고, 그 외 명사나 부사에서 한두 가지의 예를 볼 수 있으나 매우 드문 편이다.
3.6.2. 이 책에서 합용 병서의 용례도 몇몇 눈에 띈다.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 보이는 ‘ㅺ, ㅼ, ㅽ, ㅻ ; ㅳ, ㅄ, ㅶ, ㅷ ; ㅴ, ㅵ’ 중 ‘ㅅ’계열의 ‘ㅺ, ㅼ’, ‘ㅂ’계열의 ‘ㅳ’, ‘ㅄ’계열의 ‘ㅴ’ 등이 보인다.
(6) ㄱ. (ㅺ):-[布]〈7ㄴ〉, 미-[飾]〈8ㄱ〉, 가-[顚到]〈17ㄴ〉 -[難]〈27ㄴ〉
(ㅼ):[並]〈4ㄱ〉, ㅎ[地]〈5ㄴ〉
ㄴ. (ㅳ):[意]〈15ㄱ〉, 술윗[車輪]〈8ㄱ〉
ㄷ. (ㅴ):니[食]〈9ㄱ〉, [一時]〈2ㄱ〉
3.7. 종성표기
〈아미타경언해〉의 종성 표기는 『훈민정음』 해례의 종성 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8종성 외에 다른 표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곶 〈9ㄱ〉’에서 ‘ㅈ’의 용례가 한 군데 있어서 시선을 끄는데, 이는 활자본의 표기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월인석보〉에는 ‘곳〈7:65ㄴ〉’으로 되어 있다.
(7) ㄱ. 낫(〈낮) : 밤낫 여슷 로[晝夜六時]〈9ㄱ〉
닛-(〈닞-) : 護持야 닛디 아니씨라〈19ㄴ〉
ㄴ. 믿(〈밑) : 믿나라해 도라와[還到本國]〈9ㄱ〉
ㄷ. 놉-(〈높) : 德이 놉고 나히 늘글씨라〈3ㄱ〉
ㄹ. 업-(〈없) : 오히려 업거니〈11ㄱ〉
ㅁ. 섯-(〈-) :  로 섯디 아니면[一心不亂]〈17ㄴ〉
겻-(〈) : 受苦 겻다 논 디라〈28ㄱ〉
ㅂ. 衣裓은 곶 담 그르시라〈9ㄱ〉
(7ㄱ)은 기저형에서는 말음으로 ‘ㅈ’을 가지나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나 휴지 앞에서 ‘ㅅ’으로 교체된 것이다. (7ㄴ)은 ‘ㅌ’, (7ㄷ)은 ‘ㅍ’, (7ㄹ)은 ‘ㅄ’, (7ㅁ)은 ‘ㅺ’을 가지나 모두 교체된 것이다.
3.8. 주격과 서술격표기
중세 국어 문헌에서 주격과 서술격은 선행 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그 기저형 ‘-이’와 ‘이-’의 교체형이 대체로 동일(同一)한 양상으로 실현되었다. 문헌에 따라서는 구결문과 언해문의 주격과 서술격 표기 양상이 조금씩 달라진 것도 있는데, 이는 구결문의 의고성에 말미암는 것이다. 〈아미타경언해〉의 주격 및 서술격 표기 양상은 다른 15세기 문헌들과 대체로 일치한다.
3.8.1. 주격조사의 표기는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이,ㅣ, ø’로 실현되었다. 다만 구결문에서는 ‘ø’ 형태가 출현할 만한 환경이 없어서 구결문의 용례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수(水)’의 동국정운 한자음이 ‘水(:)’여서 ‘水(:)’다음의 주격조사 자리에 ‘∅’가 실현된 예는 보인다.
(8) ㄱ. 이 : 구결문 一時佛이〈1ㄴ〉
언해문  미〈12ㄱ〉
ㄴ. ㅣ : 구결문 彼佛國土ㅣ〈14ㄱ〉
언해문 曼陀羅花ㅣ 듣거든〈9ㄱ〉
ㄷ. ø : 구결문 八功德水 充滿其中고〈7ㄱ〉
언해문 八功德水 그 中에 고〈7ㄴ〉
킈 술윗 호〈8ㄱ〉
그 소리 五根과 五力과〈10ㄴ〉
주격조사는 그 예가 많지 않지만 한자어와 고유어 뒤에서 모두 ‘이,ㅣ, ø’로 실현되었다. 또 ‘ㅣ’가 / i , j/ 이외의 체언 말음과 결합할 때 선행체언의 중성에 합철된 예도 더러 보인다.
이때 체언이 평성이면 성조가 상성으로 바뀌지만 거성이거나 상성이면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9) ㄱ. 부:톄(〈부텨+ㅣ)〈2ㄱ〉, :네( 〈너+ㅣ)〈11ㄱ〉/ 네(너+ㅣ)〈13ㄱ〉 ; 속격
ㄴ. ·내(〈·나+ㅣ)〈18ㄱ〉
(9ㄱ)의 ‘부:톄’는 ‘부텨[佛體]’에 주격조사 ‘ㅣ’가 통합되어 하강 이중모음을 이룬 예인데, 체언 말음절이 평성이므로 주격조사와 통합시 성조가 상성으로 바뀐 것이다. ‘네’는 2인칭 대명사 ‘너[汝]’에 주격조사와 속격조사 ‘ㅣ’가 통합된 형태이다. 주격조사와 통합할 때는 상성으로 성조가 바뀌나 속격조사와 통합시에는 성조에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9ㄴ)의 ‘·나[我]’는 원래 거성(去聲)이었으므로 주격조사와의 통합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3.8.2. 이 책에서 서술격조사도 음운론적 조건에 따른 교체가 주격조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서술격조사의 용례는 주격조사에 비해 많은 편이고,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같은 양상의 교체형을 볼 수 있다. 구결문에서도 ‘ø’의 실현이 보인다.
(10) ㄱ. 이 : 구결문 故名極樂이니라〈6ㄱ〉
언해문 極樂이라 니라〈6ㄴ〉
ㄴ. ㅣ : 구결문 號爲阿彌陀ㅣ시니라〈13ㄱ〉
언해문 號ㅣ 阿彌陀ㅣ니라〈13ㄴ〉
ㄷ. ø : 구결문 非是算數之所能知며〈14ㄱ〉, 所能知之오〈14ㄴ〉
언해문 恒河앳 몰애니〈19ㄱ〉
특기할 것은 ‘, ’ 등이 의존명사와 서술격조사의 통합에서는 체언의 ‘ᆞ’가 탈락되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불경언해서에서도 마찬가지다.
(11) ㄱ. 닐디니라〈16ㄱ〉, 信디니〈19ㄴ〉
ㄴ. 주길씨니〈3ㄱ〉, 즐거씨라〈5ㄴ〉
3.9. 모음조화표기
중세국어 시기에는 형태소 내부나 경계에서 양모음은 양모음끼리, 음모음은 음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 이른바 모음조화 현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비교적 잘 지켜졌다. 보조사 ‘ㄴ’과의 통합에 있서나 대격조사, 처격조사와의 통합에서도 상당히 규칙적이다. 그러나 다음의 예는 이 책에서의 조사 통합이 양모음쪽으로 우세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는 간경도감 언해서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12) ㄱ. 應〈3ㄱ〉, 부텨〈13ㄱ〉, 分〈15ㄴ〉
ㄴ. 世界〈20ㄱ〉
3.10. 한자음표기
〈아미타경언해〉의 한자음 표기는 경의 본문에는 주음을 하지 않고 국한혼용문인 언해문과 협주의 한자에만 주음을 하였다. 언해문의 한자는 중활자(中活字)인데 한글 주음은 글자의 오른쪽에 두었고, 협주는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였는데, 한자에는 같은 크기의 소활자로 주음하였다. 한자음은 다른 간경도감본 언해서와 마찬가지로 동국정운음이다. 〈동국정운〉에 없는 불교용어 중에는 몇 차례 변개된 것이 있는데, 이 책에 있는 ‘般若〈15ㄱ, 〉, 解脫〈15ㄱ, 〉, 三藐〈25ㄴ, 삼먁〉’의 주음도 〈법화경언해〉 이후의 음으로 바뀌어 있다. 주022) 불경언해에 나오는 불교용어의 한자음에 대해서는 안병희(1980), 최세화(1991) 참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3) ㄱ. 般若 반 〈석보상절, 월인석보, 활자본아미타경언해, 목판본능엄경언해, 금강경삼가해, 남명집언해〉
 〈법화경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목판본아미타경언해〉
ㄴ. 解脫 퇋 〈석보상절〉
갱 〈월인석보, 몽산법어언해, 활자본아미타경언해, 활자·목판본 능엄경언해, 금강경언해, 남명집언해〉
 〈법화경언해, 목판본 아미타경언해, 금강경언해〉
ㄷ. 三藐 삼막 〈석보상절, 활자본 아미타경언해, 목판본능엄경언해〉
삼먁 〈법화경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목판본아미타경언해〉
3.11. 방점 및 희귀어
이 책의 언해문에는 점획형으로 된 방점이 찍혀 있다. 활자본에는 정음 구결에도 방점이 찍혀 있으나 활자본 〈능엄경언해〉 이후 구결문의 방점은 사라졌다. 그러나 목판본 〈아미타경언해〉의 방점은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불경언해서들의 방점표기와는 달리 앞선 시기의 표기가 반영되어 있다. 주격조사의 방점이 대부분 거성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말의 거평(去平)교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이 역시 활자본의 방점 표기에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본다. 주023) 〈영가집언해〉와 〈금강경언해〉의 용례는 정우영(1996) 참조.
(14) :엇·뎨 〈16ㄴ〉 / cf. :엇뎨 〈영가집언해 하:22ㄱ〉, 〈금강경언해:10ㄴ〉
이 책에는 15세기 문헌뿐만 아니라, 이후 문헌에서도 그 용례가 드믄 희귀어가 몇몇 있다.
(15) ㄱ. 버길[階道]〈7ㄴ〉
ㄴ. 술윗[車輪]〈8ㄱ〉
ㄷ. 갓갓[種種]〈10ㄱ〉
ㄹ. -[難]〈27ㄴ〉
(15ㄱ,ㄴ,ㄷ)은 합성어이다. 특히 (15ㄱ)은 다른 곳에서의 쓰임이 없는 유일한 용례이다.
3.12. 기타
앞에서 밝힌 대로 〈아미타경언해〉는 설화자(說話者)가 석존(釋尊)의 말씀을 전하고, 석존이 사리불(舍利佛)에게 교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주체존대 선어말어미 ‘-시/샤-’의 쓰임이 빈번하고 종결어미는 주로 ‘-니라’형 구성으로 되어 있다.
(16) ㄱ. 그 부톄 장로사리불려 니샤〈5ㄱ〉
그 해 부톄 겨샤 일후미 阿彌陀ㅣ시니〈5ㄴ〉
ㄴ. 法王子 佛子ㅣ라 호미 니라〈4ㄴ〉
이제 現야 겨샤 說法시니라〈5ㄴ〉
이티 功德莊嚴이 이러 잇니라〈8ㄴ〉
〈아미타경언해〉의 구결문과 언해문의 구성은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판본들과 차이를 두고 있다. 동명사어미 ‘-ㄹ’과 무성자음이 통합된 경우 〈선종영가집언해〉, 〈반야심경언해〉 등은 구결문에서 ‘-ㄹ+전청자형’으로 실현되고, 언해문에서는 ‘-ㄹ+전탁자형’으로 실현된 데 비해, 이 책은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ㄹ+전탁자형’으로 실현되었다.
(17) ㄱ. 두루 둘어실(周帀圍繞)〈7ㄱ〉
ㄴ. 린 업스실(無所障礙실)〈13ㄴ〉, 無量無邊阿僧祇劫일(無量無邊阿僧祇劫일)〈13ㄴ〉

Ⅳ. 맺음말

지금까지 〈아미타경언해〉의 판본(板本), 형태 서지(形態書誌), 경(經)의 성격, 표기 사실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해제(解題)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밝히기 보다는 선행 연구의 성과를 요약·정리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아미타경언해〉는 「훈민정음」창제 직후인 세조대에만 두 차례에 걸쳐 인간(印刊)되었다. 하나는 1461년경에 을해자(乙亥字)로 간행된 활자본 〈아미타경언해〉이고, 다른 하나는 3년 후 간경도감에서 세 군데 정도의 수정을 거쳐 다시 간행된 목판본 〈아미타경언해〉이다. 앞의 두 책 간행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복각(覆刻) 및 개찬(改撰)의 책들이 간행되었다. 그만큼 독자들의 수요(需要)가 많았다는 방증(傍證)일 것이다. 게다가 같은 내용이 활자본보다 앞서 간행된 〈월인석보〉(1459년간) 권칠(卷七)에 번역·수록되어 있고,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석보상절〉(1447년간) 권칠(卷七)에도 실려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런 이유로 〈아미타경언해〉는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아서 번역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복각본들의 내제 아래쪽 역기란(譯記欄)에 ‘御製譯解’라 한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이 책은 15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400여 년 동안 지방 사찰 등에서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15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중엽 까지는 주로 간경도감(刊經都監)본의 복각(覆刻) 간행이었고, 이후에 간행된 책들은 판식(板式)과 언해 체제는 물론 언어 사실 등이 달리진 개찬본(改撰本)들이다. 4세기 여 동안 간행된 책들 중 18세기 중엽 이후에 간행된 책들인 개찬본들은 각기 그 시대의 언어가 반영되어 있어서 국어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아왔다.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아미타경언해〉의 초쇄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 듯,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다만 역기란(譯記欄)이 삭제된 한 책(보물 1050호)이 단양의 구인사(救仁寺)에 전하는 바, 이는 원간본의 판목에서 나중에 쇄출(刷出)된 것으로 판단한다. 비록 원간 후쇄본(後刷本)이라고 할지라도 언어 사실 등을 연구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후 간행된 책들은 나주 쌍계사 등 주로 지방의 사찰에서 간행되었다. 현재 동국대 도서관 등 몇몇 도서관에 여러 책들이 전하는데, 이를 복각본과 개찬본(改撰本)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특히 동화사본 등 일부의 판본에는 「임종정념결」이나 「부모효양문」이 합철되어 있어서 이용에 주의를 요한다.
2). 〈아미타경언해〉의 한문본은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A.D.)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漢譯)한 『佛說阿彌陀經』이다. 이 책은 정토교(淨土敎)의 근본 경전[所依經典] 중 하나로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과 더불어 정토(淨土) 3부경(三部經)이라고 불린다.
『아미타경』은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 udāna)이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제자가 먼저 질문하면 석존이 그에 대해 답변하는 데서 교설(敎說)이 시작되고, 이후 문답(問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제자의 질문이 없는데도 석존이 스스로 말을 꺼내고 일방적(一方的)으로 교설한다. 성문제자(聲聞弟子) 가운데 지혜 제일인 사리불(舍利弗)을 상대로 해서 수많은 법회(法會) 대중(大衆)에게 극락국토(極樂國土)의 장엄상(莊嚴相)과 아미타불의 공덕을 찬탄하고, 염불왕생법(念佛往生法)에 대해 교시(敎示)하는 내용이다. 경의 구성은 서분(序分)에서 가르침의 장소와 청중(聽衆)에 대해 설명하고, 정종분(正宗分)에서는 극락세계의 장엄한 모습과 무량공덕의 아미타불(阿彌陀佛) 찬탄, 그리고 염불(念佛) 수행(修行)으로 극락세계에서 왕생(往生)할 것을 설하고 있다. 또한 염불하는 중생들에게 이 경전을 믿고 받아 지녀서 왕생극락을 발원하라고 부탁한다. 유통분(流通分)에서는 사리불(舍利弗)과 모든 비구(比丘)와 일체 세간(世間)의 천인(天人)과 아수라(阿脩羅)들이 석존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해서 예수(禮數)하고 떠난다는 내용이다.
3).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주로 성문제자(聲聞弟子)가 석존(釋尊)께 질문하면 석존이 그에 대해 대답하는 교설(敎說)이 있고, 교설이 있은 후 문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전은 석존이 성문제자 가운데 지혜 제일이라고 하는 사리불에게 일방적으로 교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아미타경언해〉의 번역 양식은 여타 언해본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설화자(說話者)가 석존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 많아 ‘주체존대 선어말어미’ ‘-시/샤-’의 쓰임이 빈번하고, 화자(話者)인 석존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김에 따라 화자에 의에 구사되는 ‘-니라’형의 종결어미와 설화자(說話者)에 의한 ‘-시니라’형 종결어미가 많다.
또 이 책의 표기법은 같은 해(1464년)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1월), 〈금강경언해〉(4월), 〈반야심경언해〉(4월)에 비해 앞선 시기의 표기법을 보이고 있다. 곧, 다른 문헌에는 쓰이지 않던 ‘ㅸ’이나 ‘ㆆ’이 나타나고 협주의 시작과 끝에 흑어미 표지를 두지 않으며, 방점 표기에서 어말의 거성(去聲)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활자본의 영향을 입은 표기가 보인다. 그러나 구결문의 정음 구결에 방점을 찍지 않고, 언해문의 협주에 한글 소활자(小活字)를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체제는 간경도감본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또 구결문과 언해문 사이를 구분하는 ○ 표지를 두지 않고, 협주 뒤에 한문 주해가 올 경우나 한문 주해와 주해 사이에 ○ 표지를 둔 것도 활자본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선행연구와 앞에서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목판본에 반영된 언어가 활자본 〈아미타경언해〉에서 적잖이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체제나 분량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목판본은 활자본의 언어 영향권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외 자세한 사항은 앞의 논의나 김영배 외(1997)에 소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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