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금강경삼가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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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금강경삼가해 제1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1

『금강경』의 본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다. 이 경전에 부대사(傅大士)의 찬(贊), 육조(六祖) 혜능의 구결(口訣), 규봉(圭峯) 종밀(宗密)의 찬요(纂要), 야보(冶父) 도천(道川)의 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 등을 모아 엮은 책이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인데, 조선 초기 함허당 득통(기화)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설명을 붙여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를 펴냈다. 세종은 이 함허 득통의 설의를 읽고 감명을 받아 이 가운데 야보의 착어(著語)·송(頌), 종경의 제강, 함허의 설의 등을 번역하여 초고를 이루었으나 교정을 보지 못하고 반드시 책을 낼 것을 유언으로 남긴 채 승하하였다. 그러나 문종과 세조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세조 비 자성대비 윤씨가 학조대사에게 명하여 성종 13년(1482) 에 간행하게 된 것이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이다. 즉 이 책은 금강경 원문과, 세종이 초고한 세 부분을 모아 한글로 입겿(구결)을 달고 언해문을 이어붙였다. 내수사(內需司)에서 5권 5책으로 간행한 동활자본인데 을해자본이다.

김영배 교수

역주위원

금강경삼가해 제1 : 김영배

교열·윤문·색인위원

  • 금강경삼가해 제1 : 박종국 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김구진 김석득 나일성
  • 박병천 손보기 안덕균
  • 이창림 이해철 전상운
  • 차재경 최기호 한무희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1집을 내면서

우리 회가 추진하는 한글고전역주사업은 1990년에 착수, 1991년부터 그 성과물을 내고 있는 사업으로 그동안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은 〈석보상절〉, 〈월인석보〉,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등이다.

특히 올해는 새로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와 〈육조법보단경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 등의 한글 고전을 역주 간행하기로 하였는데, 그 가운데 〈금강경삼가해〉 제1의 역주와 〈금강경삼가해〉 해제가 완료되어 이번에 간행하게 되었다.

〈금강경삼가해〉는 조선 초기의 고승(高僧) 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가운데서 야보(冶父, 야부)의 착어(著語)·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 함허의 설의(說誼)를 가려서 〈금강경언해〉의 본문과 함께 한글로 입겿(토)을 달고 번역하여 성종 13년(1482) 내수사(內需司)에서 5권 5책으로 간행한 동활자본인데 을해자본이다.

이 책은 강렬한 선적 취향의 한국 불교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불교 경전으로 국어사 자료로서는 ‘ㆆ’과 ‘각자병서’가 쓰이지 않고, 독특한 어휘가 사용된 점이 이 책의 가치라 할 수 있다. 보기를 들면, ‘앛’(까닭, 소이)(금삼 함서:3, 금삼 2:8), ‘곳다’(팔짱끼다)(금삼 4:24), ‘’(아른아른, 아물아물)(금삼 5:27주), ‘룯다’(뿌루퉁하다)(금삼 3:12주), ‘울’(등나무 열매)(금삼 1:3주)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금강경삼가해〉는 중간된 일이 없고, 원간본만 전하는데, 한글활자는 세조 7년(1461)에 간행한 〈능엄경언해〉의 한글활자와 똑같다. 결국 15세기 후반의 국어사 자료와 서지학 연구 등에 널리 이용되는 자료이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간행하는 〈역주 금강경삼가해〉는 우리 회 소장 원간본 제1, 제5와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축소 영인한(1981년) 책 등을 대본으로 하여 역주한 것이다.

끝으로 이 불교 경전을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간행함에 있어, 〈금강경삼가해〉 해제와 제1권을 역주해 주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김영배님과 본 역주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인적자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책이 발간될 동안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6년 5월 1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 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의 원본은, 권1은 우리 회 소장본을 영인하였으며, 함허 서 13장은 심재완 님 소장본을 축소 영인하였다. 특히 함허 서의 낙장 부분은 보림사 소장 권1 함허 서 14~17장을 문화재청 ‘국가기록유산’에서 인터넷에 올린 원문 이미지를 통해 입력 보충 역주하였다.

(2) 금강경삼가해의 원문 형식은, ‘함허당과 종경의 서문·경의 원문·야보와 종경의 주석과 송·함허당의 설의’에 구결을 달아 그 글자의 크기를 달리하여 이어지며, 이 글들 각각에 작은 글씨 2행으로 언해문이 바로 붙어 있다.

(3) 이 역주의 편집은 원문 체제를 살려, ① 경 원문은 네모틀, ② 서문·야보와 종경의 주석·송은 큰 글씨로 1자 들여 쓴 회색틀(【涵序】【宗序】【冶父】【宗鏡】【頌】), ③ 함허당의 설의(구결문)는 1자 들여서 작은 글자로 회색틀에 묶었으며, ④ 각각의 언해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은 같은 틀에 함께 묶었다. 그 뒤에 ⑤ 현대말 풀이, ⑥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보기와 같이 원문의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하였다.

〈보기〉

제26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소길 시라 劫 26ㄱ은…

제2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세히 이 22ㄴ로미…

(4)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5) 현대말 풀이에서 옛 글 구문과 다르게,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특히 무비 스님(1992)을 참고했음을 밝혀 감사한 뜻을 전한다.

(6) 언해문 가운데 협주(夾註) 표시 【 】는 그대로 두었으며, 해제 부분의 자료 예시는 ¶으로 시작하였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  ㅃ  ᄢ ᄣ ᄩ  ㅅ  ᄮ   ㅆ   ㅇ ᅇ 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

② 중성순 : 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ㆉㅜㅝㅞㅟㅠㆌㅡㅢㅣㆍㆎ

③ 종성순 : ㄱ ㄴ    ㄷ ㄹ      ᄚ ㅁ 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금강경삼가해 해제
김영배(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 서명과 서지

『금강경삼가해』는 『금강경』의 해설서이다. 곧 세조 10년(1464)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금강경언해』에서 경 본문에 단 구결 부분과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함허 기화(涵虛 己和): 1376~1433)에서 야보 도천(冶父道川)의 착어(著語)·송(頌)과, 종경(宗鏡)의 제강(提綱)에 대한 편저자의 설의(說誼)를 언해하여 세조 비(世祖妃)인 자성대비(慈聖大妃)가 성종 13년(1482) 내수사(內需司)에서 5권 5책으로 간행한 활자본이다 주001)
『금강경』은 『반야심경』과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조계선종(曹溪禪宗)의 기본 경전이다. 대형 서점의 종교 서적 서가에 가서 『금강경』에 관련된 서적을 찾는다면 20여 가지 이상을 바로 찾을 수 있을 정도인데, 이는 그만큼 독자들이 이 경전을 많이 찾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금강경오가해』는 『금강경』에 대한 당나라 규봉 종밀(圭峰宗密)의 찬요(纂要), 육조 혜능(六祖惠能)의 구결, 양(梁)나라 쌍림부대사(雙林傅大士)의 송(頌), 송(宋)나라 야보 도천(冶父道川)의 착어(著語)·송(頌), 예장 종경(豫章宗鏡)의 제강(提綱) 등 다섯 가지 주석을 합친 책이다.
.
‘이 문헌’(이하에서는 『금강경삼가해』를 ‘이 문헌’으로 나타내기로 함.)의 제1권이 낙장본이나마 1975년에 새로 세상에 알려져 주002)
『금강경삼가해』전질 5권 5책 중, 당시까지는 서울대 규장각의 가람문고본 권2~5만이 알려져서, 이를 저본으로 한글학회에서 권2,3(1960)과 권4,5(1961)를 각각 간행하였으나, 권1은 미전(未傳)이었다. 권1에 관한 언급으로는 고 이병기 선생의 조선일보(1939.2.14. 5면) 글에서 “三百本이나 되던 이 冊이 지금 와서는 달리 얻어 볼 수 없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冊의 第一卷은 京都等地 어느 절집에 … 奉安이 되었다 한다.”(맞춤법 고침. 필자)고 한 것이 있는데 당시도 풍문만이고 공개는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후 권1의 낙장본은 위에 언급한 대로이며, 같은 무렵 심재완 교수(1976)도 동국대본과 같은 판인 권1의 이본(낙장본)을 발굴 소개하였고, 10여 년 후 심재완(1981)의 『금강경삼가해』(전)이 간행되었다. 이는 기존의 가람본 권2~5와, 심재완교수 소장(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의 권1에 동국대본의 ‘함허 서’13장(4장 결락)을 보완하여 불완전하나마 전질이 영인된 것이다.
그 뒤 2002년 8월, 전남 장흥군 보림사 소장의 권1(완본)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제대로 전질이 갖춰지게 된 것이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수장된 후에, 필자는 ‘이 문헌’을 간단히 소개하는 글을 쓴 바 있었으나, 당시에는 『금강경오가해』나 『금강경오가해설의』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한일 불교 학술 세미나(금강경 연구)’가 있은 후에 그때의 발표 논문이 불교학보(佛敎學報) 12호(1976)에 실려, 주003)
3) 발표문 중 이 글과 관련된 논문은 주로 다음의 세 편이다.
이종익(李鍾益) : 한국불교 조계종과 금강경오가해.
고익진(高翊晋) : 함허(涵虛)의 금강경오가해설의에 대하여.
이지관(李智冠) : 금강경 주해 및 사기에 대한 고찰.
, 이후 학계에서도 『금강경오가해설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어국문학계에서는 심재완(1981)에 의한 『금강경삼가해』 전(全)의 해제에서 자세한 소개가 있었으나, 여기서는 『금강경오가해』만을 언급했을 뿐, 『금강경오가해설의』의 언급은 없었다. 그러다가 김주필(1993)의 「금강경삼가해」에서야 비로소 『금강경오가해설의』를 인용하여 국어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금강경오가해설의』의 서지적 성격에 대한 일반의 이해는 충분한 것이 아니었는데, 필자(1998, 2000)의 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도 불교 서적류에서 『금강경오가해』와 『금강경오가해설의』가 구별되지 않고 쓰이는데, 주004)
다음에 소개하는 책들은 내용이 ‘금강경오가해설의’의 번역이면서도 서명은 그대로 『금강경오가해』로 쓰고 있는 것이다. 현대 번역본으로는 다음 것들이 있다.
한정섭(1980) 금강경오가해(총 572면), 법륜사.
김운학(1980) 신역 금강경오가해(총 431면(258+173)), 현암사.
전야옹(1996) 금강경오가해역강(총 835면), 승룡사.
청봉(2005) 금강반야바라밀경오가해(총 753면), 경서원.
김재영(2005) 금강경오가해(총 733면), (출)하늘아래.
이 밖에 우백암(禹栢巖) 편역(1994) 『금강경삼가해』(총 556면, 한국불교출판부)가 있으나, 서명은 글에서 다루는 1482년(성종 13)판 『금강경삼가해』와 같아도 내용은 꼭 같지 않고, ‘삼가’에 대한 견해도 다르며, ‘설의’ 부분이 다 실려 있으면서도 그 필자인 함허당에 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문본으로는 인조 10년(1482)에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금강경오가해』(내용은 ‘금강경오가해설의’)를 동국대학교에서 1958년 8월 축소 영인(총 494면)한 바 있고, 이를 저본으로 다시 1972년 보련각에서 재영인한 판본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동은 아마도 『금강경오가해설의』에 『금강경오가해』가 다 들어 있고, 거기에 함허당의 설의(說誼)까지 베풀어져 있어서, 이를 보면 구태여 『금강경오가해』를 보지 않아도 되게끔 된 데에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더 언급해 둘 것은 ‘이 문헌’의 서명(書名)과 관련된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 통용되는 『금강경언해』는 그 수제(首題)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고 판심제(版心題)가 ‘금강경(金剛經)’이어서 한문본과 구별이 되지 않아 ‘언해’를 추가해서 쓰고 있음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이 문헌도 수제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어서 수제만으로는 『금강경언해』인지 『금강경삼가해』인지를 알 수 없다. 다행히 판심제가 ‘금강경삼가해’여서 국어학계에서는 이 판심제를 서명으로 삼고 있다.
‘이 문헌’의 간행 배경은 권5에 실린 한계희(韓繼禧)와 강희맹(姜希孟)의 발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애초에 세종은 ‘금강경오가해’ 주005)
필자는 이 책이 『금강경오가해설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의 야보(冶父)의 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 득통(得通)의 설의(說誼)와 남명천(南明泉)의 계송(繼頌)을 번역해서 『석보상절』 끝에 편입시키려고 세자[후의 문종]와 수양대군[후의 세조]에게 명하였다. 삼가해(三家解)의 초고는 이미 이루어졌으나 교정을 보지 못했고, 남명천 계송은 30여 수밖에 번역하지 못하고 나머지를 수양대군에게 완역(完譯)할 것을 명하였는데, 그것이 되기 전에 세종이 승하하고(세종 32년, 1450) 문종도 재위 3년(1452)에 돌아갔다. 이에 세조가 그 뜻을 이어 먼저 석보(『월인석보』라고 봄)를 간행하고, 능엄경, 법화경, 육조해, 금강경, 원각경, 심경, 영가집 등의 언해를 간행했으나, ‘남명천계송언해’의 상재를 보지 못하고 세조도 돌아갔다(세조 14년, 1468). 이에 세조 비 자성대비가 역대의 홍원(弘願)을 추념(追念)해서 그 유업을 이루려고 학조(學祖)에게 명하여 ‘금강삼해역’(‘금강경삼가해’)의 초고(草稿)를 다시 교정하게 하고, ‘남명천계송’을 번역시켜 전자를 300본(本), 후자를 500본(本) 간행하였다(성종13년, 1482). ‘이 문헌’은 중간본이 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 서지 사항과 소장처 및 영인 관계를 차례로 보인다.

(1) 『금강경삼가해』의 서지 사항
분량 : 5권 5책
1권 57장 추정(함서 17장, 종서 5장, 본문 35장) 주006)
심재완(1981:9)은 ‘함허 서’가 13장으로 중단된 채 낙장되었으므로(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금강경오가해』에서 이 부분의 나머지 한문의 원문(原文)을 찾아 이것의 언해된 분량을 대략 5장 정도로 추정하여 권1의 장수(張數)를 58장으로 보았었으나, 보림사의 권1 완본은 ‘함허 서’의 낙장된 부분이 5장이 아니라 4장으로 끝남에 따라서 권1의 장수는 총 57장으로 확정되었다. 이 ‘함허 서’의 끝장인 17장 9행에는 ‘永樂乙未(1415)六月 日涵虛堂衲守伊盥手焚香謹序’라고 서문의 일자가 있는데, 이는 한문본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문화재청의 ‘국가기록유산’ 참조.)
2권 73장
3권 64장
4권 64장
5권 60장(본문 57장, 발 3장)
계 318장
표제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수제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판심제 : 서문 금강경삼가해함서(金剛經三家解涵序)
서문 금강경삼가해종서(金剛經三家解宗序)
본문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판본 : 경 본문 한자 큰 글자[大字]는 정축자(丁丑字)
그 밖의 ‘오가해’에서 인용한 한자 중 글자[中字]는 을해자(乙亥字)
언해에 사용된 한글은 모두 작은 글자[小字]로 을해자(乙亥字)
책크기 : 38.5㎝ × 25㎝ (보림사본 39,2×25,6cm)
판식 : 4주(周) 단변(單邊)
반광(半匡) 27㎝ × 19.8㎝ (보림사본 27,2×20,1cm)
유계(有界), 큰 글자(경 본문만일 때) 9행 14자
큰 글자(경 본문이 2행 이상일 때) 10행 21자
중 글자 11행 20자
작은 글자 두 줄[雙行] 21자
판심 : 상하 백구(白口), 어미(魚尾)는 상하 내향(內向) 흑어미(黑魚尾)
상하의 어미 사이에, ‘금강경삼가해’의 서명, 한수자(漢數字)의 권차(卷次) 표시, 그 아래에 한수자로 장차(張次)가 표시되어 있음.
권말제 : 金剛般若波羅蜜經
발문 : 성화(成化) 十八年(1482) 七月 日 ·························한계희(韓繼禧)
시대세임인(時大歲壬寅)(1482) 맹추중완(孟秋仲浣)·········강희맹(姜希孟)

이 문헌의 편찬 양식은 다음과 같다.
책 첫머리에 있는 함허당의 ‘서(序)’는 행의 처음에서 한 글자 내려서 쓰고 이 구절 끝에는 ○표를 하고 두 줄로 언해했으며, 이것이 끝나면 행을 바꾸어 자신의 ‘서’에 대한 ‘설의’를 두 글자 내려서 구결을 단 한문과 이의 언해를 작은 글자 두 줄로 계속해 나갔다. 권1, 16장 후면부터 시작되는 금강경의 본문은 행(行)의 첫 글자 자리부터 한자(漢字) 대자(大字)로 쓰고, 야보(冶父)의 착어(著語)·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은 행의 처음에서 한 글자 내려서 중자(中字)로 썼으며, 이에 대한 함허당의 설의는 두 글자 내려 한문에 구결을 달고, 언해문은 ○표를 하고 두 줄[雙行]로 소자(小字)를 썼으며, 여기 한자에는 동국정음식 한자음을 달았다.
(2) 현전하는 원간본과 그 소장처
권1 세종대왕기념사업회(보물 772호), 보림사(보물 772-3호), 동국대 도서관.
권2 서울대 규장각 가람문고(보물 772-2호), 계명대(보물 772-4호).
권3, 성암문고.
권4, 성암문고.
권5, 세종대왕기념사업회(보물 772호). 동국대 도서관.
(3) 영인 현황
한글학회(1960) 금강경삼가해 제2, 제3. 축소 영인 합본(총 146면)(저본 - 서울대 규장각 소장 가람본).
한글학회(1961) 금강경삼가해 제4, 제5. 축소 영인 합본(총 272면)(저본 - 서울대 규장각 소장 가람본).
한국불교학2(1976) 금강경삼가해 동국대도서관 소장 권1(잔권만) 영인(해제 고익진).
영남대출판부(1981) 금강경삼가해(전) (동국대 도서관본 권1의 ‘함허 서’와 권1(심재완 교수 소장본,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 합본, 서울대 규장각 가람문고 권2~권5(해제 심재완).
한글학회(1982) 금강경삼가해 제1(총 105면) (저본 - 영남대출판부(1981) 금강경삼가해(전)에서 권1만을 재영인).
한글학회(1994) 금강경삼가해 권1~권5 합본(한글학회 1982, 1960, 1961 합본, 총 625면).
세종대왕기념사업회(2003) 금강경삼가해 권1(잔권)과 권5(구 심재완교수 소장본), 불설아미타경언해와 합본 영인.

2. 어학적인 고찰

필자는 30여 년 전에,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문헌의 권1 잔권(殘卷)을 동국대학교 도서관이 수장하게 되어 이를 소개하는 짧은 글(1975)을 썼는데, 그 내용은 이 문헌의 간행 경위와 낙장본의 현황과 새로 나타난 희귀어 10여 개를 고찰한 것이었다.
당시 참고할 수 있었던 고어사전은 고 유창돈 교수의 『이조어사전』(1964)과 고 남광우 교수의 『고어사전』(1971, 보정판, 일조각)이었는데, 이 두 사전에는 이미 알려졌던 이 문헌의 권2~5의 자료가 수록되었을 뿐, 권1의 자료는 소개될 수가 없었다. 『우리말 큰사전』 4(옛말과 이두)(어문각, 1992)이나 『교학 고어사전』(교학사, 1997)은 ‘이 문헌’의 권1의 영인이 1981년에 나온 뒤였으나, 새로운 자료는 이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필자의 부족했던 구고(舊稿)를 검토 보충하여 고어사전에 수록할 자료로 거듭 제시하고자 한다.
그 동안 ‘이 문헌’에 대한 국어학적인 연구로서 필자가 아는 것은 정우영(1990)과 김주필(1993), 이경화(2005)의 세 편뿐이다.
정우영(1990)에서는 ‘이 문헌’과 『남명집언해』에 대한 표기법을 다루었는데, 여기서는 ‘이 문헌’에 관한 것만 언급하기로 한다. 표기상의 특징으로, 첫째, ㆆ과 각자병서를 일체 찾아 볼 수 없고, 둘째, 전대(前代)의 문헌에 비해 분철 표기가 점증하는바, 체언 말음이 ‘ㆁ, ㄴ, ㄹ, ㅁ’ 등 불청불탁음일 경우 비교적 많은 분철 표기가 보이고, ‘ㄱ, ㅅ, ㄷ, ’일 때 소수이기는 하나 분철 표기가 발견된다. 이 분철표기의 원인을 두 가지로 지적하였으니, 하나는 첨가어인 우리말의 체언이 곡용할 때 체언과 조사의 분리성이 표기자들에게 쉽게 인식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국문 한자 병용의 국한문혼용체의 문장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비록 기억의 부담은 늘더라도 표의성을 띤 한자와 같은 어휘형태소의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려는 표기자의 의식이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분철표기의 횟수를 통계표로 보였다.
표기를 통해서 드러난 음운현상의 하나로, 피동화음이 후행 i(또는 j)의 영향으로 하강이중모음으로 실현된 보기(고기~괴기〈2:36ㄱ〉, 버히-[割]~베혀도〈2:7ㄴ〉, 張개여 李개여〈2:33ㄱ〉) 등이 있는데, 이를 움라우트 현상의 제1단계(15C~18C 말엽)로 보고, 제2단계(18C~19C 초엽)는 피동화음이 전설단모음으로 되는 시기로 나누어 볼 것을 주장했다. 또한 언해문의 한자음은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채택했음에도 개중에는 당시의 현실 한자음으로 보이는 것이 총 56자가 있다 하여 그 보기를 들어 놓았다.
김주필(1993)에서는 ‘이 문헌’의 표기, 음운과 형태, 통사와 어휘 등의 부문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고찰하였다. 표기는 15세기 후반의 일반적인 표기방법으로서, 『원각경언해』 이후 사라진 각자병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았는데, 이에 따라 ‘ㅆ’도 쓰이지 않았으며, 합용병서는 ㅅ계, ㅂ계, ㅄ계가 모두 씌었으나 ㅂ계 합용의 ㅂ은 이미 탈락된 예( 타 가다가 4:28ㄱ)도 있음을 들었다(이 대목은 착각인 것으로 보인다. ‘-[乘]’는 ‘다’가 아닌 ‘다’이므로 ‘ㅂ’탈락이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종성에 ㆆ이 쓰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나(동국정운식 한자음 제외), 기타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 ㅿ 등은 쓰였는데,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지정사 ‘이’가 통합될 때, 분철표기가 상당히 확산되어 나타난다 하였다.
음운현상 가운데서 원순성 동화를 두 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형태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후행하는 원순모음에 약모음 ‘·’가 원순성의 동화를 입어 일어나는 역행동화 현상이고(외로 1:11ㄱ, 밧고로셔 3:32ㄱ), 둘은 형태소 경계에서 원순 반모음 ‘w’를 삽입하여 ‘w’계 이중모음을 형성하는 순행동화 현상인데, 후자를 특징적인 것으로 지적했다(①모도와 1:5ㄱ, 3:43ㄱ, 4:26, ②픠우워 1:7ㄱ, ③보왐직며 1:17ㄴ ; 보왐직호미 2:18ㄱ, ④마초오미 2:29ㄴ).
의미와 관련되는 것으로, 현대국어의 관형사 ‘온’(전부의. 모든)이 중세어 ‘온’에서 의미가 전이된 것이라는 종래의 논의를 검토하고, ‘백(百)을 뜻하는 ‘온’은 거성인데, ‘모든’을 뜻하는 현대어 ‘온’은 장음이어서 서로 관련지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보고, 중세어 ‘온’은 ‘오다’에 관형형 어미 ‘-ㄴ’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오’에 소급되는 것으로 설명했다.
대명사에 관련되는 것으로, ‘①눌려 2:45ㄱ, ②일로 : 함서 10ㄴ, 2:20ㄱ, ③일로브터 : 종서 5ㄴ, ④절로 : 종서 3ㄱ, 5:16ㄴ, ⑤날려 : 1:7ㄱ’ 등의 형태소 분석에 대하여 논의하였는데, 대명사 ‘누, 이, 저, 나’에 조사 ‘ㄹ려, ㄹ로, ㄹ로브터, ㄹ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하고, 두 형태소 사이에 있는 ‘ㄹ’이 왜 1음절로 된 대명사 다음에 특정 조사가 올 때만 개재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밖에 어휘에 관하여는 필자(1975)에 대하여 언급된 것이 있는바, 그러한 사실은 해당 어휘와 관련되는 항목에서 언급하기로 하며, 이경화(2005)도 여기에 참고했다.
(1) :감‧다 : (형) 검은 듯이 붉다.
¶ 복홰 블그며 오야지 며 薔薇 :감·고 東君려 무르니 제 아디 몯다 = 桃紅李白薔薇紫問著東君自不知(금삼 1:23ㄴ)
이는 애초에 ‘감[柿]+다’의 합성어로 보았으나, ‘감다 : 검푸르다’ 식의 상대어를 고려하여, ‘감 : 검[黑]’과 ‘- : 븕-[紅]’의 관계로 보아, 위와 같이 풀이한다. 여기에는 김주필(1993)도 참고했다. 한글학회(1992)나 남광우(1997)에 표제어로 실리지 않았다.
(2) 겨·르롭다(〈겨를+롭다) : (형) 한가롭다.
¶ 엇뎨 聲色 밧긔 걸위여 뷔여 겨르롭거니=豈拘聲色外虛閑(금삼 1:22ㄴ)
이 어휘와 같은 계통의 파생어로 ‘겨르다, 겨르다’가 있고, 다시 후자에서 파생된 ‘겨르이’(겨르이 오 거르니=閑獨步, 금삼2:55)가 있으며, 한편 ‘겨르로’(菩薩이 이 외야 오 겨르로 이셔, 석상13:20)와, 이의 변화형인 ‘겨르로이’(거든 겨르로이 올오=困卽閑眠, 남명 상:59)가 있으므로 의당 이 부사를 파생시킨 본항의 ‘겨르롭다’가 있어야 할 것인데, 이 예문으로 해서 문증(文證)된 셈이다. 이 어휘도 앞의 두 고어사전에 실리지 않았다.
(3) 그그 : (첩어)(부사) 더욱 그윽이.
¶ 보며 드를 예 그그 니라=隱隱於視聽之際(금삼 함서:3ㄴ) 주007)
필자(1975)에는 ‘함허당 서’만 있어서 출전 표시에 (금삼 서:~)로 표기했었다. 후에 이본에 ‘종경 서’가 추가되어 오늘날 영인본에는 ‘함허당 서’와 ‘종경 서’의 두 가지 ‘서’가 있으므로 전자를 ‘함서’ 후자를 ‘종서’로 구별해서 적기로 한다.
형용사 ‘그다’(그락 나락 고(隱見)(두초 9:40))가 있음으로 보아, ‘그그’은 이 형용사의 어근이 반복되어서 이루어진 첩어 부사이다. 혹 ‘그그다’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는 IC 분석상 ‘출현의 자유(freedom of occurrence)와 치환가능성(substitutability)(H. A. Gleason, 1965: 135~137)으로 보아서 ‘그그다’로 보는 것보다는 ‘그그 다’로 하는 것이 낫겠다. 이 단어도 앞의 두 고어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다. 이와 유사한 단어 형성인 다음과 같은 어사들이 참고된다.
가. 반다 : 能과 所왜 반니와=能所歷然(금삼 2:13)
나. 반반 (다) : 諸法이 반반 (월석 8:29)
다. 다 : 兪 맛모미  시라(내훈 3:2)
라.  (다) : 나며 머므로미  며=進止從容(금삼 5:9)
마. 아다 : 은애 머리 여희여 어즐코 아야(석보 6:3)
바. 아아 (다) : 末學이 예 니르러 다 아아 니라=末學至此皆冥冥然也(능엄 2:26)
(4) 락 : (명) 바스라기[屑].
¶  가온 락 두미며=眼中著屑【屑 녯사미 닐오 금 락이 비록 져그나 누늘 리디 아니려 니라】(금삼 1:20ㄱ)
이 어휘는 동사 어간 ‘-’에 어미 ‘-락/으락’이 결합한 것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접미사 ‘-이’가 결합한 파생명사 ‘라기’로 쓰였을 수 있겠는데, 여기에 2회 나타난 ‘락’은 모두 명사이다. 사전에는 ‘라기’의 발달형임이 분명한 ‘라기’(구급 하:89)가 수록되어 있다.
(5) 바지외다 : (형) 공교(工巧)스럽다.
¶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若非匠手)(금삼 함서:13ㄱ)
이 어휘는 명사 ‘바지[工]’에 형용사 파생 접미사 ‘-외-’가 결합하여 파생된 것이다. 이미 ‘바지로이’라는 부사가 있으므로(詞賦ㅣ 바지로이 야도=詞賦工, 두초 15:8), 이를 파생시킨 ‘바지롭다’는 있었을 것이다. 접미사 ‘-다~-롭다~-다(〉-외다)’는 다음 용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표기(異表記)에 불과하다.
가. 受苦다 보니(월석 14:80)
나. 수고며 즐거며(월석 1:35)
다. 病야 受苦외야도(원각 하 3지1:19)
라. 슈고로이 뇨 니노라=話苦辛(두초 20:27)
(6) 수·늙[嶺] : (명) 재. 고개.
¶ 나 수늙 우희셔 울오=猿啼嶺上(금삼 1:21ㄱ)
이는 이미 『남명천계송언해(南明泉繼頌諺解)』(하:19),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初 상:5)에 보이는 것으로 사전에도 나와 있으나, 많지 않은 용례이기에 보기를 들어 둔다.
(7) ‧스릐 : (글) 쓰는 이의. (글) 쓰는 사람의.
¶ 이런 로 그르 외요미 傳야 스릐 그르호 브틀 미니라=所以舛訛盖緣傳寫之誤耳(금삼 함서:13ㄴ)
‘스릐’는 필자(1975)에서 ‘스-[書/寫]+ㄹ(동명사형)+의(관형격조사)’의 구조로 설명했었는데, 김주필(1993:199)에 따라 ‘스-+ㄹ(관형사형)+이(의존명사)+의(관형격조사)’에서 의존명사 ‘이’가 생략된 것으로 수정해 둔다.
(8) (어‧리) 미‧혹‧‧다 : (형) 미욱하다.
¶ 다가 내 업다 닐어도  어리 미혹니(若言無我更愚癡) (금삼 1:20ㄱ)
이 어휘는 ‘우리히 어리 迷惑야(월석 17:17)’에도 보이는데, 본항은 ‘미혹(迷惑)’이 한글로 표기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迷惑-’는 대체로 원문 ‘迷惑, 迷’와 대응되며, ‘미혹-’는 원문이 ‘愚癡(못나고 어리석음), 愚魯(어리석은 사람), 迷’ 등과 대응된다. 남광우(1971)에서는 한자로 표기된 ‘迷惑다’와 한글로 표기된 ‘미혹다’ 모두 동사로 등재하였고, 필자(1975)도 동일하게 해석하였다. 그런데 남광우(1997)에서는 한자 표기의 ‘迷惑다’는 동사로서 불교용어로 간주하고, 한글로 표기된 ‘미혹다’는 ‘미욱다’로 분화 발달한 형용사로 간주하였다. 원문이 없는 언해문을 바탕으로 이러한 차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으나, 이에 따르기로 하나, 앞으로 더 고구(考究)할 여지는 있다.
동원어(同源語)이면서도 표기 문자가 한자냐 한글이냐에 따라 의미적으로 달리 쓰인 것으로는, 알려져 있는 것이나, ‘衆生’과 ‘즁’이 있다(이기문2004: 57~60).
迷惑다
가. 다가 내 衆生 맛나 佛道 다 치던댄 智慧 업슨 사미 섯거 어즐야 迷惑야 쵸 받디 아니리러니라=若我遇衆生 盡敎以佛道 無智者錯亂 迷惑不受敎(법화 1:208ㄱ)
나. 大衆은 迷惑야 定과 慧왜 다다 니디 말라(육조 중:1)
다. 그러나 迷惑야 아디 몯니=然且迷之不覺(원각 서:29ㄱ협주)

미혹다
가. 나 어리고 미혹 사미라=我是愚魯之人(번박 상:9)
나. 다가 닐오 나 업다 야도  어리 미혹리라=若言無我更愚癡(남명 상:45ㄴ)
다. 醉야 오샛 보 모니 어리며 미혹 디 어루 어엿브도다=醉迷衣寶 癡迷情可愍(금삼 4:22ㄱ)
라. 그 무른 녜 새나 그 氣運은 미 돌티 미혹디 아니니라=其流則凡鳥 其氣心匪石(두초 17:14)
(9) :외(外) : (명) 밖.
¶ 更無人이라 호 저 외예  업닷 마리라(금삼 1:24ㄱ)
이 예문은 협주문이다. 본항의 ‘외’는 접두사로 쓰인 ‘외삼촌 구 舅’(유합 상:20), ‘외삼촌 母舅’(동문 상:11)과는 다른 한자음의 한글 표기로 완전명사인 보기이다. 그런데 이 보기의 방점은 상성인 데 반해서 동국정운에는 ‘‧’로 거성인 점이 다르다.
이 단어를 여기 굳이 언급하는 것은 필자(1975)가 쓰던 당시만 하더라도 고어사전에 표제어로 실리지 못했었고, 현재도 ‘교학 고어사전’에만 실려 있기는 하나, 그 보기가 ‘그 외예’(번노 상:14)를 제외하면 다음과 같이 한글 표기가 아닌 한자음이기 때문이다.
가. 補處菩薩 外예(석보 9:28)
나. 供養기 外예(석보 23:3)
다. 그 外옛(석보 24:47)
라. 내 몸 外예(월석 7:28)
(10) ‧례다 : (동) 차례로 엮다. 차례를 정하다.
¶ 編 ‧례‧시‧오 집 모돌 시라(금삼 함서 12ㄱ 주)
‘례’는 한자어 ‘次第’이다. 명사로서의 ‘례’는 보기가 있었으나, 이에서 파생된 ‘례다’는 여기서 처음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문에 따라 ‘編’의 새김임을 알 수 있다. ‘--’가 중세국어에서 생산성이 높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어떻든 이 어휘도 사전의 표제어로 올려야 할 것이다.
(11) ‧하야 : (부) 하얗게.
¶ ‧하야 적적 고대  寥寥도다(白的的處亦寥寥)(금삼 1:18ㄴ)
이 문헌 외에도 ‘하야 반반야’(남명 상:23)가 있으나, 종래의 고어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하야다’는 ‘하야’에 ‘다’가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하야히’와는 동의어로 본다.
¶ 하야히 비취옛더라=白映(두초 20:45)
[白]을 뜻하는 형용사로 ‘다’도 있었으므로 ‘하야’는 ‘-’에 어미 ‘-아’가 결합한 형태의 이표기(異表記)로(?) 보이나, 모음의 변화가 문제점이다.
(12) (長常) : (부) 늘. 항상.
¶  과  리 애 서르 좃니라=淸風明月鎭相隨(금삼 1:23ㄴ)
이 어형은 사전에는 한자 ‘長常’과 본항과 같은 한글 표기가 아울러 실려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은 아니나, 보기에서처럼 ‘+애’로서 명사적으로 쓰인 것이 색다른 점이어서 소개해 둔다.
(13) -는 : -는(관형사형).
¶ 바미 괴외  虛空애 녀는 그려긔 소리  소릿 소리 보내야 치운  알외다=夜靜秋空征雁響 一聲送報天寒(금삼 1:21ㄴ)
관형사형 어미 ‘-’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선행어미 ‘’에 어말어미 ‘-ㄴ’이 통합된 것으로 당시의 표기로는 ‘-’이 더 바른 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진작 다음에 보이는 보기처럼 15세기 문헌에서도 간혹 ‘-는’으로 쓰인 것이 보이는데, 본항도 그러한 보기이다.
가. 술윗 소리 우는 소리(석보 19:14ㄴ)
나. 簫 효 대 엿거 부는 거시라(석보 13:53ㄱ 주)
다. 乎 아모그 논 겨체 는 字ㅣ라(훈언 1ㄱ 주)
라. 어울면 모 버는 거시니(월석 2:15ㄴ)
마.  八千里옴 녀는 象이라(월석 7:52ㄴ 주)
이상과 같이 ‘-’ 아닌 ‘-는’이 쓰인 어간의 모음은 모두 음성모음으로서 아마도 체언 아래서 모음조화에 따라 구별되어 쓰이는 조사 ‘-/는’에 유추된 것이 아닌가 한다.
(14) ‘-()’과 ‘-(아/어)’
¶ 峨峨 뫼히 노 오 洋洋 므리 너븐 니 伯牙 녯 琴 잘  사미오 子期 소리 아던 사미니 伯牙ㅣ  뫼해 두고  子期 닐오 峨峨乎ㅣ라 先生 디여 고 므레 두고  洋洋乎ㅣ라 先生 디여 니 이 峨峨 그르 드러 洋洋 삼닷 마리라(금삼1 함서:12ㄴ 주)
위 예문은 ‘지음(知音)’에 대한 고사의 설명으로, 한문 원문이 없는 협주문이다. 여기 밑줄 친 ‘, , ’에서 첫 번째 ‘’이 문제인데, 이 대목의 설명을 필자(1975)에서 “‘-’은 선행어미 ‘-거-, -아/어-, -나-, -더-, -시-’ 등과 연결된 복합어미로 쓰이는바, ‘’은 그 다음에 나오는 용례와 같이 ‘(〈-+-아)’이 정철(正綴)이므로 전자는 오기(誤記)로 본다.”고 했다.
이번 역주 작업에서 이 대목을 현대문으로 옮기면서 지난날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의 글에서는 깊이 생각지 못하고 첫째의 ‘’을 나머지 두 형태와 같은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은 ‘-던’의 오기로 보인다. ‘…伯牙 녯 琴 잘  사미오 子期 소리 아던 사미니…’의 앞 절과 뒷 절이 대칭적인 글로서, 그 어미의 형태가 같아야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은 오자이거나, 식자공(植字工)의 잘못이라고 보아 현대문 ‘타던’으로 풀이했다. ‘ㆍ’와 ‘ㅓ’의 혼기가 동시대의 다른 문헌에서도 나타나는 예가 있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이렇게 정리해 둘 수밖에 없다. 주008)
김주필(1993:191)은 ‘’에 대한 필자(1975:154)의 설명에 동의하였으나, 이번의 수정으로 재고의 여지가 있게 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다음과 같은 예가 보인다.
¶ 소곰 성이라 여 이시니 그 소곰으로 가(팔세아:8)
(15) ㅣ종성 체언 아래 주격 표기
¶ 가. 智(딩)ㅣ 거즛 緣 뷔취면 萬法이 다 며 體톙ㅣ 眞常이 나다나면 五蘊이 다 뷔리라=智照妄緣면 萬法이 俱沉며 體露眞常면 五蘊이 皆空리라(금삼 1:14ㄴ)
¶ 나. 오 機(긩)ㅣ  업스니 機긩ㅣ  업서=全機ㅣ 無垢니 機無垢야(금삼 1:18ㄴ-19ㄱ)
¶ 다. 智(딩)ㅣ 諸佛와 가지라=智同諸佛야(금삼 5:21ㄱ)
¶ 라. 大地 가지로 보미며=大地ㅣ 同春이며(금삼 함서:6ㄴ)
체언의 끝모음이 ‘i’이거나, ‘y’로 끝나는 하강적 이중모음 ‘ㅐ, ㅔ, ㅚ, ㅟ, ㅢ’일 때에 주격표기는 영형태(零形態)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인데, 15세기 중엽에 간행된 『능엄경언해』(1462), 『법화경언해』(1463) 등에서는 주로 한자어 아래에서 영형태가 아닌 ‘ㅣ’ 표기를 한 것이 있다. 이 현상은 한문 원문에 달린 구결과 언해문에 다 나타난다(필자 1963:165~166). 이 문헌은 위의 문헌들보다 20년이 더 늦은 문헌인데, 동일한 현상을 보여 준다. 이보다 한 해 앞서 간행된 『두시언해』 초간본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확인된다(필자 1963:157~169). 그러므로 ‘이 문헌’의 다음 보기들은 영형태와 ‘ㅣ’로 동요된 것을 보여 주는 것인데, 같은 문장의 원문과 언해문 사이에서도 달리 나타나는 일이 있다.
이상으로 필자(1975)의 재검토를 마치고, 다음은 어휘 부분으로 위에서 언급하지 못한 것을 다루기로 한다.
(16) 니를히 : (부) 이르도록.
¶ 가. 東 녀그로 니시며 西ㅅ 녀그로 니시며 빗기 니시며 셰 니시매 니를히=以東說西說橫說竪說히(금삼 1:33ㄱ)
¶ 나. 거믄고 노로 이제 니르히 帝子 슬노니=鼓瑟至今悲帝子(두초 11:7)
¶ 다. 이제 니르히 것군 난함이 갓 노팻도다=至今折檻空嶙峋(두중 4:30)
¶ 라. 아브터 나죄 니히(번소 9:102)
¶ 마. 어린 제븓터 늘곰애 니히 슬흐여 디 아니며=自幼至老不厭(선소 5:9)
¶ 바. 팔만사천 다라니문에 니르리=至八萬四千多羅尼門이(금삼 5:24ㄱ)
¶ 바'. 뭀새 이제 니르리 위야 삿기 머기놋다=群鳥至今爲哺雛(두초 17:4ㄴ)
¶ 사. 니샤 니논 밧 法相이 곧 法相 아니라 호매 니르르시니=乃至云所言法相者ㅣ卽非法相이라 시니(금삼 5:13ㄴ)
¶ 아. 이 고대 니르런=倒這裏얀(금삼 5:31ㄴ)
¶ 자. 우흐로 諸佛에 니를며=上至諸佛며(금삼 5:36ㄱ)
(가)의 ‘니를히’는 ‘니를-[至]’에 ‘-히’가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만을 보면 원문에 단 한글 구결이 ‘-히’로 되어 있어서 이에 유추(類推)되어 ‘니를히’로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나, (나, 다)의 ‘니르히’와 (라, 마)의 ‘니히’는 그러한 추측을 어렵게 한다.
(바-자)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였던 어간 형태 ‘니를-’이 확인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 어휘의 어간 형태가 본래는 ‘니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니를히’는 고형(古形)이 유지된 것이고, ‘니르히/니히’는 ‘ㄹ’ 탈락형이며, ‘니르리’는 ‘ㅎ’ 탈락형이 되는 셈이다. 더 많은 예가 확보되어야 하겠으나, 일단 이러한 견해를 제시해 둔다. 이 예도 고어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
(17) ·몃다 : (부) 바로. 곧(믿건대. 아마. 마침.)
¶ ·몃다 톳긔  도다 비록 이신 어느 고 向야 着리오 큰 블 소밴 物 머므로미 어려우니라=賴同兎角이로다 說有 向什麽處著이리오 大烘焰裏옌 難停物이니라(금삼 2:66ㄴ)
이는 심재완(1981:27) 난해어(難解語)의 주석에 ‘믿건데. 아마’ 풀이한바, 그 후 사전에 실리지도 않은 채 내려오다가, 이경화(2005:44~45)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곧, 심재완(1981)의 간단한 뜻풀이만으로 부족하므로, 원문의 ‘뢰(賴)’에 대응되는 풀이이므로 이의 자석(字釋)을 검토하고 문장의 구조상 ‘마침’ 정도의 부사로 보고, 이로써도 적격한 풀이로 보기 어렵다면서 ‘賴’자가 쓰인 한문 문장을 재검토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필자도 문맥으로 보아서 부사로 보는 데 동의하지만, ‘마침’이 위에 대입되었을 때는 어색한 느낌을 면할 수가 없다. 참고로 『금강경오가해(설의)』번역본에서 이 대목을 찾아본바, 무비(1992), 우백암(1994) 두 책 모두 ‘賴’자는 번역하지 않았다. 다른 기댈 만한 것이 없어서,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께 자문을 받아 ‘바로, 곧’으로 해 두고 다른 자료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18) ·블무·디 : (명) 불덩이.
¶ · 온 ·블무·디 四面이 어루 드디 몯홈 니라=亦如猛火聚四面이 不可人이니라(금삼 5:29ㄱ)
이는 종래의 사전에 실리지 않은 것이나, 『교학 고어사전』에는 이의 파생 모체로 생각되는 ‘블묻-’를 동사로 싣고, 그 뜻은 ‘불씨를 묻다’로 해 놓았다. 위의 예문과 뜻으로 보아서는 잘 맞지 않으나 ‘블[火]+묻-[埋]+이’로 볼 수도 있다. 이경화(2005)는 이를‘블[火]+무디[堆,聚]’의 합성어로 보고, 뜻은 한문의 ‘화취(火聚)를 따라서 ‘불덩이’로 했는데 별 이의를 달 것이 없다. 사전에 새로 실어야 할 것이다.
(19) :셰 : (부) 세로로.
¶ 東 녀그로 니시며 西ㅅ 녀그로 니시며 빗기 니시며 :셰 니샤매 니를히=以東說西說橫說竪說히(금삼 1:33ㄱ)
『교학 고어사전』과 『우리말 큰사전』(옛말과 이두)에는 다음 보기가 실려 있다.
¶  고 셰 다=橫跳竪跳(역해보 60)
이 ‘셰’를 『교학 고어사전』에서는 명사와 부사로 두루 쓰이는 것으로 보았고, 『우리말 큰사전』(옛말과 이두)에서는 명사로 보았다. 이 예문에서 ‘다’를 한정하는 것으로 보아 부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셔-’에 접미사 ‘-ㅣ’가 결합한 것이다. 이 『역어류해(譯語類解) 보(補)』는 영조 15년(1775)간이므로 방점도 없는 어형이어서, 연대도 앞서고 방점이 있는 어형을 보기의 첫 번째로 수록하는 것이 낫겠다.
(20) 솝[裏]과 속
¶ 敎海ㅅ :소· 向샤=向敎海裏샤(금삼 1:16ㄱ)
이미 잘 알려진바, ‘솝’이 더 고형이고 ‘속’은 개신형으로서, 주009)
‘솝’의 자료는 『석보상절』을 비롯해서 『월인석보』,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원각경언해』 등 여러 문헌에 나오므로 보기는 줄인다.
두 어형은 중세국어 당시에도 쌍형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고어사전에서는 이 개신형의 제일 이른 시대의 것으로 ‘骨髓는  소개 잇 기르미라’(월인석보 1:13. 주)를 수록하였고, 다음으로는 이 문헌과 같은 무렵의 초간 『두시언해』의 자료를 실었다.
‘이 문헌’에서는 권 1, 2를 통틀어서 ‘속’이 한 번 쓰였고 ‘솝’은 15회 나타난다. 3, 4, 5권에서는 개신형 ‘속’은 보이지 않고 ‘솝’만 나타난다.
(21) 슬·히 : (명) 창[戈].
¶ 戈 슬·히라(금삼 1:33ㄴ 주)
이는 ‘이 문헌’의 권1에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필자(1975)가 쓸 당시 이용했던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낙장본에는 없었고, 심재완(1981:12)에서 희귀어휘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간행된 고어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이 보기의 형태를 어떻게 분석하느냐가 문제인데, ‘슳+이(서술격)+라’로 하여 ㅎ종성체언으로 해 두지만, 또 다른 보기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22) ·:곶·다 : (동) 팔짱끼다.
¶ 世間ㅅ 사미 病이 업스면 醫王이 ·:곳·니 衆生이 허믈 업스면 부톄 걔 홀 일 업스시니라=世人이 無病면 醫王이 拱手니 衆生이 無垢면 佛自無爲시니라(금삼 4:24ㄴ)
※ 九重에 :고·잿거·든 四海朝宗놋다=端拱九重이어든 四海朝宗이로다(금삼 3:4ㄱ)
이 ‘곶-’은 유일한 예문으로 『교학 고어사전』과 『우리말 큰사전』에 실려 있는데, 한문의 ‘공수(拱手)’에 대응되어 뜻은 위와 같이 풀이되었다. 이의 형태 분석은 ‘[袖]+ㅅ++곶-[拱/揷]’로 보는바, 문제는 ‘’에 있다. 이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기의 ‘곶-’이 있는데, 이도 『우리말 큰사전』에는 동사 ‘팔짱끼다. 깍지끼다.’로 했고, 『교학 고어사전』에는 명사 ‘[팔짱]’과 동사는 ‘곶-’으로 나누어 놓았으니, 결국 뜻은 앞의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은 후에 ‘뎡→(졍)→팔짱’으로 바뀌었다 할 것인데, 문제의 ‘뎡’은 위에서 아무 뜻이 없는 것으로 되어서 미진한 느낌이 남는다. 이와 관련되는 16세기 자료로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 잔 자바 헌슈고 여 매디르고 웃 녀그로 즈우려 나오니=奉觴上壽畢 皆肅容拱手 自右趨出(이륜 초:31)

관심 있는 분들의 교시를 기다린다.

(23) 오··다 (동) 우비어 파내다. 천착(穿鑿)하다.
¶ 後世예 반기 거즛 일 니며 왼 고 와 오··포· 거츠리 내야 그 마 모로매 通호 求리 이시리니(後世예 必有承訛踵誤야 妄生穿鑿야 以求其說之必通者矣리니)(금삼 함허서:17ㄱ)
이 ‘오포’은 ‘이 문헌’에서 처음 보인다. ‘포’은 ‘-[掘]+옴/움+’의 구조임이 분명하나, 문제는 ‘오·-’인바, 일찍이 이기문(1971:122)에서 ‘외  刻’(훈몽 상:1ㄱ)의 설명에,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의 ‘穿鑿은 :욀·씨·라’(28ㄴ주)와 관련지어 ‘외-’의 뜻을 ‘어떤 물건을 뚫어(또는 뚫둣이) 파는 동작[穿掘]을 의미’함으로 풀이했다. 이 대목을 현대역한 김무봉(2002:37)에는 ‘오비는 것이다’로 옮겼다. 따라서 ‘이 문헌’의 ‘오-’는 원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천착(穿鑿)’의 옮김으로써, 이 어형만으로 본다면 위의 ‘외-’나, ‘:외-’보다 앞선 시대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곽충구(1996:49-50)에서는 위의 ‘외-’와 ‘우·의-(석보 11:21, 두시 초 16:37), 함경남도 북청방언의 ‘오배(LH)’, 현대국어 ‘오비-, 우비-’를 바탕으로 ‘*오-, *우-’를 재구하고, 15세기 이전에 ‘*오·->*오·외->:외-’와 같은 변화가 있었고, ‘외·-’는 ‘우비어 파내다’라는 뜻의 복합동사로 보았다.
이렇게 되면 ‘이 문헌’의 ‘오-’는 위의 변화에서, ‘*오·외-’와 ‘:외-’ 사이에 자리하게 되며, ‘*오·외-’에서 겹쳐지는 원순모음은 이런 경우 이화작용으로 원순성이 소실되어 ‘오·-(+-)’로 변화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 아닌가 한다. 이는 최전승(1975)을 곽충구(1996:50-51주)에서 재인용, 적용한 것이다.
(24) 울: : (명) 등나무의 열매.
¶ 葛 츨기오 藤 울:·니 다 너추는 거시니(금삼 1:3ㄴ 주)
이 자료도 필자(1975)에는 소개되지 못한 것이고, 고어사전에도 수록되지 못했다. 다른 문헌에도 보이지 않는다. ‘울니’는 ‘울+Ø+니’로 본 것이다. 어원과 관련될 만한 것으로는 ‘울[籬]’과 ‘열[實]’의 ‘’ 정도인데, 전자는 ‘·울 爲 籬’(훈해 용자)로 거성이며, 후자는 ‘열 실[實]’(왜해 하:6, 18세기 초엽 자료?)로 성조도 미상이다. 혹시 방언 등에 쓰이는 데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다음은 고어사전의 예문이 유일한 것, 곧 이 문헌의 예문만으로 된 것을 모아서 살피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1~23)에서 다룬 것과 아울러 보면, 이 문헌의 어휘사적 중요성을 한층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시될 차례는 위에서처럼 단어, 품사, 뜻, 예문과 출전의 순서로 한다.
(25) 외다 : (형) 완전하다. 만족스럽다.
¶ 文과 質왜 골아 비르서 어루 일후믈 왼 莊嚴이라 홀디니라=文質이 彬彬야 始可名爲十成莊嚴이니라(금삼 4:22ㄴ)
(26) 그만·뎌만·다 : (형) 그만저만하다.
¶ 간 마다  것 슬히 너기고 더운 것  머구믈 그만·뎌만·야뇨마=到處에 嫌冷愛熱야 喫却多少了也오마(금삼 3:52ㄱ)
(27) 덕[棚] : (명) 사다리.
¶ 棚 더기라(금삼 2:25ㄴ 주)
(28) :돌·블 : (명) 별똥별. 유성(流星).
¶ :돌·브른 流星이라(금삼 4:63ㄱ 주)
(29) ·다 : (형) 습습(習習)하다. 바람이 산들산들하다.
¶ 보현행문 노피 오니 덥듯 미 ·야 프르며 누르니 해 도다=高踏普賢之門니 薰風이 習習야 靑黃이 滿地로다(금삼 4:18ㄱ)
(30) 머믓다 : (동) 머뭇거리다.
¶ 逡巡 머믓 오(금삼 4:10ㄴ 주)
(31) 믓다 : (동) 무너지다. 부서지다.
¶ 고대 어름 노며 디새 믓· ·샷다 니=當下애 冰消瓦解샷다 니(금삼 2:1ㄴ)
(32) 믿얼굴 : (명) 본바탕. 본질(本質).
¶ 質은 묨 업슨 믿얼구·리라(금삼 2:61ㄱ 주)
(33) 벼·다 : (동) 겉을 꾸미다. 가장(假裝)하다. 거짓 꾸미다.
¶ 有僞 비록 거츠나 리면 功行이 이디 몯고 無爲 비록 眞나 벼면 聖果 證호미 어려우니  니라 벼디 아니며 리디 아니  어늬 이 성제 제일 고=有爲雖僞나 棄之則功行이 不成고 無爲雖眞이나 擬之則聖果 難證이니 且道不擬不棄時 如何是聖諦第一義오(금삼 4:31ㄴ~32ㄱ)
(34) :뷔듣·다 : (동) 비척거리다. 비틀거리다.
¶ 窮子ㅣ :뷔드·러 외로이 나가 녀 나리 마 오라더니=窮子ㅣ 竛竮孤露야 爲日이 已久ㅣ러라(금삼 3:25ㄱ)
(35) ·븘나·올 : (명) 불꽃.
¶ 靈 ·븘나·오리 빗나 부러도 어루 디 몯리니=靈焰이 烜赫야 吹之不可滅이니(금삼3:29ㄴ)
(36) :빌·다 : (동) 빌어 꾸다.
¶ 안로 이운 남기 호 威儀 :빌·워 나토니=內同枯木호 假現威儀니(금삼 4:18ㄴ)
¶ 이 일후미 :빌· 일후미며=是名爲假名이며(금삼 5:37ㄱ)
(37) ·룯·다 : (형) 뿌루퉁하다.
¶ 盧都 ·룯·다 논 마리니 말 몯시라(금삼 3:12ㄴ 주)
(38) 서느서늘··다 : (형) 선득선득하다. 몹시 서늘하다.
¶ 이 이 서늘야 싁싁며 冷호미 서느서늘·야 처딘 므리 처딘다마다 어러=此事 寒威威冷湫湫야 滴水滴凍야(금삼 4:42ㄴ)
(39)  : (부) 아른아른. 아물아물.
¶ 陽燄 陽氣  노 거시니(금삼 5:27ㄱ 주)
(40) ·앛 : (명) 까닭. 소이(所以).
¶ 이 爲頭며 읏듬 외논 勢론 ·아·치니·라=此ㅣ 所以爲王爲主之勢也ㅣ니라(금삼 함서:3)
¶ 善現 奇特혼 아 그 聲敎 기드리디 아니야 信야 疑心 아니호 오 慈尊이 希有샨 아 그 聲敎 나토디 아니샤 人天 여러 알외샤 니라=善現之所以奇哉者 以其不待聲敎야 而信無疑也ㅣ오 慈尊之所以希有者 以其不現聲敎샤 而開覺人天也ㅣ니라(금삼 2:8ㄴ)
※ 이 문헌에서 ‘젼’는 주로 한자 ‘고(故)’의 풀이로 씌었다.
¶ 靑色 能히 災厄 더논 젼라=靑色 能除災厄故也ㅣ라(금삼 종서 3ㄱ)
(41) 주엽·쇠 : (명) 풍경(風磬).
¶ 닐오 山僧이 座애 오디 아니얫거 맷 주엽·쇠 마 혀 흐느다 호 모로매 미둘디니라=須信道山僧이 未陞座ㅣ어늘 風鐸이 已搖舌이니라(금삼 4:43ㄴ)
다음은 드문 문법 형태를 소개하는 것이다.
(42) -엣고
¶ 이 늘그늬 이 마 사미 劫外 向야 알엣고 니=此老의 此說 只要人이 向劫外承當케 니(금삼 2:1ㄴ)
여기 ‘알엣고’의 ‘-엣고’는 ‘-겟고’에서 /ㄱ/이 약화된 것이다. ‘-겟고’는 ‘-긧고’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학 고어사전』에는 ‘-긧고’만 표제어로 되어 있고 ‘-엣고’는 실려 있지 않으며, 『우리말 큰사전』에는 표제어 ‘-긧고’ 아래 다음 두 보기를 들고, 참고로 ‘⇒-겟고’ 표시를 한바, ‘-겟고’ 항목에는 ‘-게 하고자’라는 뜻풀이와, [=-괫고/-긧고/-엣고〕로 끝나고 보기는 없다. 그러므로 위의 보기는 표제어로 실어야 할 것이다.
가.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 석보서:6ㄱ. 주)
나. 三寶애 나가 븓긧고 라노라=而歸依三寶焉이니라(월석1, 석보서:6ㄴ)
다음은 재미있는 한글 활자의 모양이다.
(43) (中) : {}
가. 에 城 남아 出家샤=子夜애 踰城出家샤(금삼 1:1ㄴ)
나. 여러 部ㅅ 中()에 오직 이  부=於諸部中에 獨此一部(금삼 1:2ㄴ)
다. 山埜 이 저 니논 마리라(금삼 1:13ㄴ. 주)
라. 늘근 을 심겨 주고=授與老僧고(금삼 1:7ㄱ)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을 보면, (가)는 언해문에서 한자어를 한글로 적은 것인데 모음 ‘ㅠ’자의 모양이 좀 다른데, 이를 (나)의 동국정운식 한자음 활자와 비교하면 그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ㅠ’자에 ‘ㆁ’ 받침을 쓰면 글자가 잘 드러나지 않음을 의식해서 활자 모양을 달리한 것이다. ‘ㅠ’의 두 수직선이 八(여덟 팔) 자 모양을 하고 있다. (다)는 한자음은 아니나 ‘ㆁ’받침을 단 ‘ㅠ’자가 (가)의 모양과 같고, (라)는 (다)와 같은 글자임에도 보통 쓰이는 글자를 보인 것이다. (가, 나)가 한자음이라면 (다, 라)는 고유어로 쓰인 것이다.
(가)와 같은 활자 1:12ㄴ, 1:17ㄱ(2), 1:17ㄴ, 2:9ㄱ, 2:35ㄴ, 2:55ㄱ, 2:64ㄴ···8회
(나)와 같은 활자 1:17ㄴ(2), 2:16ㄴ, 2:20ㄱ, 2:21ㄱ, 2:22ㄱ, 2:42·············7회
(다)와 같은 활자 2:26ㄱ························································1회
(라)와 같은 활자 2:23ㄱ주, 2:27ㄱ·············································2회
3, 4, 5권에도 이런 활자가 씌었으니, 그 경향은 통틀어 다음과 같다. 주010)
두 개의 수직선이 여덟 팔(八) 자와 유사한 ‘ㅠ’를 ‘ㅡ八’로 나타내기로 한다.
가. (中) : 36회 {듕} : 16회
나. (衆) : 5회 {즁} : 23회
다. [僧] : 없음 {즁} : 11회
마지막으로 한자어의 새김 중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를 보이고자 한다.
(44) 한자어의 새김
가. 어루 錦ㅅ 우희 고 더으다 니리로다=可謂錦上添華ㅣ로다(금삼1 함서:10ㄴ)
나. 東녀그로 니시며 西ㅅ 녀그로 니시며 빗기 니시며 셰 니시니=東說西說橫說竪說시니(금삼1:32ㄴ)
다. 奧旨 돌햇 블와 번겟 비치 야=奧旨 石火電光야(금삼1 종서:5ㄱ)
라. 몃맛 人天이 말 아래 갈  알며=多少人天이 言下애 知歸며(금삼1:25ㄱ)
마. 여슷 여스시 녜브터 오로 셜흔여스시니라=六六이 從來로 三十六이니라(금삼4:45ㄴ)
(가, 나)는 오늘날 한자어 그대로 쓰이는 말이고, (다)는 앞뒤가 바뀌었지만 역시 한자어가 그대로 쓰이며, (라)의 ‘언하(言下)’는 거의 대중의 말로는 듣기 어려운 말이다. 이러한 한자어 또는 숙어에 대한 새김의 노력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가)는 직역을 하더라도 뜻이 통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직역으로든 의역으로든 ‘조리가 없이 되는 대로 말을 지껄임’이라는 본래의 뜻을 전달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는 ‘돌에서 일어나는 불과 번갯불’이라고 옮겼을 때 (나)의 경우보다는 좀더 알아듣기 쉬운 느낌이 들지만, 이 말이 역사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라)는 이 말이 ‘일언지하(一言之下)’의 준말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말씀 아래’로 적었을 때, ‘말하는 바로 그 자리’ 또는 ‘말이 떨어지자 그 즉시’ 라는 뜻이 얼마만큼 전달될지 의문이다. (마)는 산술적 표현으로서, 오늘날의 ‘구구단’과 관련된 것이다. ‘여섯여섯’ 식의 표현이 당시에 실제로 쓰였을지는 의문이다.
‘이 문헌’이 나온 시기가 우리 고유어를 살려 쓰자는 커다란 사회적인 기운이 조성된 그런 때는 아니었겠으나, 오랫동안 굳어져 쓰여 오던 말을 새로운 고유어로 고쳐 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현대역 『금강경오가해』(무비 역해, 1992)에서는 (가, 나, 라)는 원문 그대로, (다)는 ‘전광석화’로 옮겼다.
45) 동국정운식 한자음
‘이 문헌’에서 다음과 같은 불교 인명, 용어는 『동국정운』(1448)의 이른바,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주음한 것이다.
가. 般반 若:(금삼 1:2ㄱ)
나. 解:갱 脫·(금삼 1:3ㄴ)
다. 阿 難난(금삼 1:34ㄴ)
라. 阿耨·녹多당羅랑三삼藐·막三삼菩뽕提똉(금삼 3:56ㄱ)
이러한 한자음의 사용은 ‘이 문헌’의 간행연대(1482)로 보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곧, 동국정운식 한자음이 불경언해에 쓰이면서 중간에 1차의 수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니, 1463년 간행의 『법화경언해』에는 위의 음이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가’ 般 ·若 :(법화 5:188ㄴ)
나’ 解 :脫 ·(법화 3:140ㄴ)
다’ 阿 ·難 난(법화 1:30ㄴ)
라’ 阿耨·녹多당羅랑三삼藐·먁三삼菩봉提뗑(법화 1:37ㄱ)
이와 같이 수정된 이유는, 이 한자음은 본디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음역어(音譯語)로서 그 원음에 가깝게 적으려는 데 있었다고 본다(정우영 1996 : 92~99, 이경화 2005 : 28~29). 이런 한자음은 1467년 간행의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목우자수심결』, 『사법어』까지 쓰이다가, ‘이 문헌’과 같은 해에 간행되는 『남명집언해』에 이르러서는 정음 창제 초기 한자음 표기로 돌아가고 만 것이 된다. 더 자세한 것은 정우영(1996)으로 미룬다. 이러한 한자음의 수정에 관한 언급은 일찍이 안병희(1987)에서도 언급된 것이 있다.

3. 마무리

『금강경삼가해』는 『금강경오가해설의』에서 금강경 본문·야보(冶父)의 착어(著語)와 송(頌)·종경(宗鏡)의 제강(提綱)과 함허당(涵虛堂)의 서(序)에 대한 설의(說誼)를 언해하여 1482년에 간행한 5권 5책의 금강경 해설서이다.
‘이 문헌’은 서울대 규장각 가람문고에 전하던 권2~5를 한글학회에서 축소 영인하여(1960, 1961) 널리 알려졌으며, 1975년 동국대 도서관에 권1의 낙장본이 수장되고, 그 무렵 심재완 교수(1976)도 같은 판본의 권1 이본(낙장본)을 발굴 소개했다. 그 후 심재완(1981)은 자신의 이본에 결락된 부분을 동국대본에서 보전(補塡)하여 가람문고본과 합하여 전 5권을 1책으로 영인 간행했으나, 권1의 ‘함허 서’ 몇 장은 낙장인 채 완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2년 8월 전남 장흥군 보림사 소장 권1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공개되어 비로소 5권 5책 전질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 문헌’의 표기, 음운, 문법 등은 정우영(1990)과 김주필(1993)에서 요약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어휘 부분은 필자의 구고(1975)를 일부 수정 보충한 바, 새로 고어사전에 수록돼야 할 것으로 19개어, 이미 사전에 수록된 것이나 그 예문이 이 문헌의 것만으로 된 것 16개를 확인함으로써 어휘부문에서 차지하는 이 문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밖에 색다른 활자 모양을 시도한 ‘’[{듕}]를 찾아 보였고, 한자어를 우리말로 옮긴 몇 개의 보기를 통해서 당시 번역자의 고심의 일단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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