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월인석보 제21(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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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월인석보 제21(하)
역주 월인석보 제21(하)

석보는 석가모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며, 《석보상절》은 1446년(세종 28년)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 서적을 참고하여 한국어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다. 1447년(세종 29년)에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1457년(세조 3년) 아들인 의경세자가 죽자 세조가 부왕 세종대왕과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을 증보, 수정하여 1459년(세조 5년)에 간행한 것이 《월인석보》이다. 《월인석보》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 보면, 이 책은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간행한 것으로 한국 최초로 불교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조선 전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모두 30권쯤 된 것으로 추측되나 현존하는 것은 몇 권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처음 간행된 권 1, 2, 7, 8, 9, 10, 11, 12, 13, 14, 15, 17, 18, 19, 23, 25와 재간행된 권 4, 21, 22 등 총 19권이 있다.

한재영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국어연구소(현 국립국어원) 연구원.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동경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동아시아과정 객원교수. 츠쿠바대학 초빙 외국인 연구원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Visiting Professor

현재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KOREAN Ⅰ·Ⅱ·Ⅲ(영어판), 대한민국 문화부.(공저) 16세기 국어 구문의 연구, 신구문화사.

국어정서법,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공저) 국어생활, 법문사.(공저) 작문, 두산동아.(공저)

한국어 발음 교육, 한림출판사.(공저) 한국어 교수법, 태학사.(공저) 한국어 문법 교육, 태학사.(공저)

삶과 말과 글, 신구문화사.(공편저), 증보 한글맞춤법 강의, 신구문화사.(공저), 한국어학, 신구문화사(공저)

역주 원각경언해 권9.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역주서)

역주 월인석보 권22. 권23.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역주서)

‘중세국어 시제체계에 대한 관견’, ‘16세기 국어의 대우체계 연구’ 등 논문 다수.

역주위원

월인석보 제21(하권) : 한재영

교열·윤문·색인위원

  • 월인석보 제21(하권) : 박종국·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영배 나일성
  • 노원복 박병천 오명준
  • 이창림 이해철 전상운
  • 정태섭 차재경 최기호
  • 최홍식 한무희 홍민표

역주 월인석보 제21을 내면서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 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10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 두창집요≫ 1책 등 모두 61책이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그동안 못한 ≪월인석보≫ 원간본들을 집중적으로 역주코자 권4, 권13, 권14, 권15, 권21(상), 권21, 권25를 간행할 예정이며, 아울러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정속언해, 경민편≫을 함께 펴낼 계획이다. 또한 ≪상원사중창권선문≫과 ≪영험약초≫, ≪오대진언≫을 묶어 1책으로 펴내고, ≪언해태산집요≫도 함께 펴낼 계획이다. 즉 올해 나올 책은 모두 12책이다.

≪월인석보≫는 우리 회가 1992년부터 꾸준히 역주 간행하여 왔는데, 그동안 원간본 1, 2, 7, 8, 9, 10, 11, 12, 17, 18, 19, 20, 25(상)권을 역주하여 출판하였고, 중간본 제22, 23권도 펴내었다. 잘 알다시피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조선 세조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세조 3년(1457) 9월에 세상을 떠난 큰아들 도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편하여 세조 5년(1459)에 발간한 것으로 추정하는 책이다. 모두 25권으로 된 목판본이다.

책의 체제는 〈용비어천가〉를 본떠서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설명 부분으로 하여 합편하였는데, 합편에서는 단순한 합편이 아니라 조권(調卷)도 다르고 글 내용에도 상당한 변개(變改)를 가하였고, 문장과 표기에도 상당한 수정을 가하였으니, 〈월인석보〉의 문장과 표기법을 보면, 〈월인천강지곡〉은 한자(漢字)와 독음(讀音) 표기의 주종(主從) 관계 위치, 한자음 종성 ‘ㅇ’자의 유무, 협주의 추가, 어구의 수정 등 부분적 변개와 곡차(曲次)의 변동이 있고, 〈석보상절〉은 대폭적인 수정을 가하였으니, 특히 문장 표기에 있어서 〈석보상절〉에서는 우리 토박이말로 되어 있던 것을 이 〈월인석보〉에서는 한자말로 상당한 부분을 바꿔 놓았다. 전체 문장의 표기는 거의 완벽하게 연철(連綴) 표기이나 몇 개의 분철(分綴) 표기가 보인다. 이 책은 〈석보상절〉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산문(散文) 자료일 뿐만 아니라 15세기의 언어와 불교학, 서지학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번에 역주한 월인석보 제21은 월인천강지곡 기412곡부터 기429곡까지 18곡이 수록된 매우 분량이 많은 책으로써, 원전이 상권과 하권으로 분책되어 전하고 있다. 그 내용도 석가보 석가보마야부인기, 지장보살본원경 석가보, 우진왕조석가전단상기 제23, 바사닉왕조석가금상기 제24, 대방편불보은경 권3, 인욕태자본생담, 녹모부인본생담 등 많은 경전 내용을 담고 있다. 월인석보 제21은 초간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중간본들이 여러 곳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 안동 광흥사판(중종 37년)과 충청도 한산 백개만가각본(선조 2년)이 잘 보존되어 있고, 우리 회도 중종 37년 간본으로 추정되는 중간본 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글을 역주해 주신 한신대학교 한재영 교수님께 노고에 감사드리며, 본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0년 11월 20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아닌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은 이를 읽고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이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려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어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월인석보 제21〉 역주는 규장각소장본(광흥사판본, 중간본)을 저본으로 하였고, 축소 영인하여 뒤에 실었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원문 내용에 맞추어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그리고 협주를 각각 다른 글자 크기로 편집하였으며, 크게 원문, 현대문, 주석으로 구분하였다.

(3) 원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문 풀이와 구분하였으며, 원문에 각주 번호를 붙여 쪽마다 밑에 각주를 달아 독자가 참고하기에 편리하도록 조판하였다.

(4) 원문의 동국정운식 표기와 방점은 없애고, 문장에 맞게 띄어쓰기를 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원문의 쪽마다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7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 즐겁고 便7ㄱ安호미 오 니 업다

(5) 현대역은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직역을 위주로 하였으며, 작은 글씨 2행 협주가 중첩적으로 나타날 때는 같은 크기의 글자로 하되, 원문에 없지만 첫 번째 협주 부분을 【 】 표시로 구분하였다. 또 【 】 안의 주석 부분은 ≪ ≫, 다시 ≪ ≫안의 주석은 ⋘ ⋙으로 표시하였다.

(6) 주석 올림말에서 원문의 한자말은 편의상 ‘현대음(한자)’ 방식으로 표기하였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 ㄱ ㄲ ㄴ ㄷ ㄸ ㄹ ㅁ ㅱ ㅂ ㅃ ㅲ ㅳ ㅄ ᄢ ᄣ ᄩ ㅸ ㅅ ㅆ ㅺ ㅼ ㅽ ㅿ ㅇ ㆀ ㆁ ㆆ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 ㄱ ㄴ ᅛ ㄵ ㄶ ㄷ ㄹ ꥤ ꥦ ꥨ ꥩ ㄽ ㅬ ㄾ ㄿ ㅀ ㅭ ㅀ ㅁ ꥯ ꥱ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월인석보 제21(하권) 해제
한재영(한신대학교 교수)

Ⅰ. ≪월인석보≫

먼저 ≪월인석보≫ 전반에 관한 내용을 살핀다. 안병희(1979)와 규장각의 문헌해제에 실린 이호권 교수의 자세한 해제에 기댄 것이다.
≪월인석보≫는 세조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석보상절≫은 세조가 왕자 시절에 어머니인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석가모니의 일대기이고,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몸소 지은 찬불가이다. 합편의 방식은 부왕(父王)인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을 그에 대한 주석의 형식으로 하였다. 책 이름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에서 앞의 두 글자씩을 따온 것이다.
합편에 있어서는 조권과 문장에 상당한 변개가 있었다. 조권을 보면 ≪석보상절≫ 권11과 권19의 내용이 각각 ≪월인석보≫ 권21과 권18에 나타나고, 같은 권13이 ≪석보상절≫은 법화경 권1, ≪월인석보≫는 권2와 권3의 내용을 보이는 등 권11부터 권차가 달라져 있다. 문장의 경우에도 ≪월인천강지곡≫은 한자와 독음의 위치가 바뀌고, 한자음 종성 ㅇ과 협주의 추가 등 부분적 변개와 곡차의 변동이 있으나, ≪석보상절≫은 대폭적인 첨삭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월인석보≫는 전혀 새로운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원간 연대는 〈어제월인석보서〉의 “天順 3年 己卯(1459) 7月 7日序”이라는 기록에 따라 1459년(세조 5)으로 추정된다. 편찬 간행의 경위는 서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세종의 명을 받아, 모후(母后)인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보상절≫(전 24권)을 지었는데 그것을 보고 세종이 친히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전 3권)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 두 책은 세종대에 모두 동활자(銅活字)로 간행되었으나, 간행된 직후부터 합편의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도서관 소장의 ≪석보상절≫교정본 권6, 9, 13, 19의 교정 내용과 난상(欄上)의 기록, 본문의 절단 상태, 그리고 ≪월인천강지곡≫낙장(落張)의 편입 위치 등이 저간의 사정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업은 완결을 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가 세조 즉위 후에 다시 사업이 시작되어 목판본(전 25권)으로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월인석보≫는 ≪석보상절≫과 함께 정음 창제 직후의 산문자료로서 귀중하다. 중간본이라 하더라도 보기 드문 이유만이 아니라, 국어사 자료로서 갖는 가치 때문에 더욱 소중한 문헌이 된다.
≪월인석보≫에 쓰인 한글 글자는 그 획(劃)이 한글 창제 당시와는 달리 부드러운 필서형으로 바뀌어 한글 자형(字形)의 변천 역사를 보여준다. 내용면에 있어서도 ≪석보상절≫과 함께 한글 창제 직후의 산문자료로서 국어학, 국문학, 불교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체 25권 가운데 원간본은 현재 영본으로만 전한다. 권 1, 2, 7∼15, 17∼20, 23, 25의 17권이 전하고, 16세기 이후에 다시 간행된 중간본도 있다. 대부분이 국가 지정문화재인 보물(745호, 935호)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원간본과 소장자는 다음과 같다.
권 1, 2: 서강대학교 도서관(1972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영인)
권 7, 8: 동국대학교 도서관
권 9, 10: 김민영(1956년 연세대 동방학 연구소 영인)
권 11, 12: 호암미술관 소장
권 13, 14: 연세대학교 도서관(1982년 홍문각 영인)
권 15: 성암문고 및 순창 구암사
권 17: 성암문고 및 순창 구암사,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1986년 교육연구사 영인)
권 17, 18: 강원도 홍천 수타사(1957년 동방학연구소 영인, 수타사본의 권17 낙장부분만 1972년 한글 150호에 영인)
권 19: 가야대 박물관 소장
권 20: 임흥재 소장(2001년 아세아문화사, 2004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영인)
권 23: 삼성출판박물관 소장(200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영인)
권 25: 보림사 소장(2005년 아세아문화사 영인)
이 책은 전질이 복각된 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부분적으로 지방사찰에서 16세기에 복각되었다. 현재 전하는 중간본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권1, 2: 1568년(선조1) 풍기 희방사판이 전한다. 책판이 6. 25 이전까지 보존되어 현대의 후쇄본도 있으며, 권1은 1960년 국어학회에서 고전선총으로 영인하였다.
권4: 16세기 중엽 간행으로 추정되며, 간행지는 미상이다. 김병구 씨의 소장으로 1997년 경북대학교 출판부 영인하였고, 현재는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권7, 8: 1572년(선조5) 풍기 비로사판이 전한다. 권7은 경북 의성군의 모씨가 소장하고 있고, 권8은 서울대도서관 일사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전자는 1968년 동악어문학회에서 영인하였으며, 후자는 소재불명인 권7과 함께 송석하 청사진의 저본인데, 그 청사진본을 1957년 동방학연구소에서 영인한 바 있다. 간년 미상의 권8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 연구소 육당문고에도 전한다.
권21: 1542년(중종37) 안동 광흥사판과 1562년(명종17) 순창 무량굴판 그리고 1569년(선조2)의 은진 쌍계사판이 전한다. 세 가지 이본이 모두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은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고, 무량굴판은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심재완 교수의 소장으로도 전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광흥사판은 1983년 홍문각에서 영인하였고,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무량굴판은 1963년 동방학지 6집에 영인하였으며, 심재완 교수 소장 무량굴판은 1991년 모산학술연구소에서 영인하였다.
권22: 간행지 미상인 권22가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2008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영인하였다.
권23: 1559년(명종14) 순창 무량굴판이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영광 불갑사에 소장되어 있다. 간행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도 전한다. 이는 보존상태가 나빠서 책의 앞뒤에 낙장이 있으며 판심제가 마멸되었다. 200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영인하였다.
복각본이라 하더라도 인출의 시기가 오래된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현전하는 ≪월인석보≫는 원간본과 복각본을 다 합쳐도 권3, 5, 6, 16, 24의 5권이 결권이 된다.

Ⅱ. ≪월인석보≫ 권21

여기서는 현전하는 ≪월인석보≫ 권21의 현황을 소개한다.

1. 권21 개관

앞서 본 바와 같이 ≪월인석보≫의 중간본은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한두 권씩 지방 사찰에서 복각(覆刻)되었다. 권21의 경우 16세기 중간본(重刊本)이 세 종류의 이본(異本)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 그리고 심재완 교수 소장으로 전하고 있다. 이들은 판(板)을 보관했던 장소에 따라 각각 광흥사판, 무량굴판, 쌍계사판으로 불린다.
먼저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소장 현황을 규장각의 장서목록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광흥사판
도서기호: 가람古 811.05-Se46wi-v.21(1-2)
편저자: 세조(世祖)(조선) 편
판본사항: 목판본(木版本)
간행지: 안동(安東)
책권수: 2책(영본(零本))
인출연도: 20세기 전반(1930~1940년경)
간행자: 광흥사(廣興寺)
책크기: 31.8×21.8cm
광곽(匡郭): 사주단변(四周單邊)
반엽(半葉) 광곽: 19.8×17.4cm, 유계(有界), 7행 16자(월인천강지곡 14자) 주(注) 쌍행
판심: 대흑구(大黑口),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권말(卷末): 嘉靖二十一年壬寅(1542) 三月日 慶尙道 安東 下柯山 廣興寺開板.
비고: 권21만 있는 영본으로, 제1~114장까지와 제115~222장까지 상하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권말에 동일한 내용의 시주질(施主秩)이 있다.
(2) 무량굴판
도서기호: 古 1721-1B
편저자: 세조(조선) 편
판본사항: 목판본
간행지: 순창(淳昌)
책권수: 1책(66장, 영본)
인출연도: 명종17년(1562), 후쇄(後刷)
간행자: 무량굴(無量崛)
책크기: 32×22.7cm
광곽: 사주단변
반엽광곽: 20.9×17.2cm(4葉ㄱ), 유계, 7행 16자(월인천강지곡 14자) 주(注) 쌍행(雙行)
판심: 대흑구, 상하내향흑어미
비고: 1562년(명종17)에 전남 순창의 무량굴에서 다시 간행한 책의 후쇄본으로, 소장본 권수 1ㄱ부터 3ㄱ까지와, 권말 69ㄱ 이하가 낙장되어 제3장 뒷면부터 제68장까지만 있다.
(3) 쌍계사판
도서기호: 古 1721-1A-v.1-2 / 가람古 811.05-Se46we-v.21(1-2)
편저자: 세조(조선) 편
판본사항: 목판본
간행지: 은진(恩津)
책권수: 2책(영본)
인출연도: 20세기 전반(1930~1940년경)
간행자: 쌍계사(雙溪寺)
책크기: 29.1×20.9cm(古 1721-1A-v.1-2),
28.7×21cm(가람古 811.05-Se46we-v.21(1-2))
광곽: 사주단변
반엽광곽: 20.6×17.3cm(11葉ㄱ), 유계, 7행 16자(월인천강지곡 14자) 주 쌍행
판심: 대흑구, 상하내향흑어미
표지서명: 釋譜詳節/月印千江之曲(古 1721-1A-v.1-2)
간기(刊記): 隆慶 三年 己巳(1569) 二月 日 忠淸道 寒山地 竹山里…大施主 白介萬 等.
비고: 1569년(선조2)에 다시 새긴 목판을 1930~40년경에 인출하여 만든 책이다. 도서기호가 ‘古 1721-1A-v.1-2’로 된 두 책과 ‘가람古 811.05-Se46we-v.21(1-2)’로 되어진 두 책이 동일한 판본으로 보이나 장정된 상태에는 차이를 보인다. 두 가지 모두 1ㄱ부터 10ㄴ까지 낙장이나, ‘古 1721-1A-v.1-2’는 11ㄱ부터 97ㄴ까지와 102ㄱ부터 222ㄴ까지가 각각 나뉘어 장정이 되어 있으며, ‘가람古 811.05-Se46we-v.21(1-2)’는 11ㄱ부터 114ㄴ까지와 115ㄱ부터 222ㄴ까지가 각각 나뉘어 장정이 되어 차이를 보인다.
광흥사판과 쌍계사판은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청구기호 ‘한 古朝21- 279’인 광흥사판은 시주질까지 완전하나, 건(乾)과 곤(坤)으로 분책되어 있는 청구기호 ‘한古朝21-180’인 쌍계사판은 건의 경우 1ㄱ부터 10ㄴ까지가 낙장이며, 98ㄱ부터 101ㄴ까지도 낙장인 상태이다. 곤은 102ㄱ부터 222ㄴ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103ㄴ의 후반부부터 방점 표기가 보이지 않는다. 시주질과 같은 내용이 없다. 무량굴판은 위의 책 이외에도 제172장과 제211장이 결장(缺張)인 심재완 교수의 소장본이 있다. 그에 관해서는 1991년 모산학술연구소에서 영인한 책에 실린 ‘판본고’를 참고로 삼을 수 있다.
이 이본들은 ‘ㅿ, ㅸ, ㆆ’을 유지하는 등 15세기 초간 당시의 언어 사실을 대체로 반영하고 있으나 판하(板下)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새긴 완전한 복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판하면서 부분적으로 수정을 가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광흥사판의 경우 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 받침으로 사용된 ‘ㅇ, ㅱ’이라든가 이영보래(以影補來) 표기인 ‘ㅭ’의 ‘ㄹ’을 삭각(削刻) 주001)
삭각(削刻)은 김정남(1995)에서의 용어이다. 복각을 하는 과정에서 단순하게 획이 떨어져 나간 탈각과 달리 수정의 의도가 들어있는 부분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다. 적절한 사용으로 판단하여 이 자리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하는 등의 내용은 중간(重刊) 과정에서의 수정 작업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량굴판의 경우에는 방점의 탈락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지금까지 단순한 탈각(脫刻)으로 여겨져 왔으나 광흥사판의 한자음 수정과 평행하게 생각해 본다면 다분히 의도적인 삭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즉 성조가 어휘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소실되어간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20년의 간격밖에 없는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의 방점 차이는 어쩌면 방점이 비교적 오래 유지되었던 경상도에서 간행되었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은 전라도에서 간행되었느냐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광흥사판의 편찬자들에게 방점이 무의미한 것이었다면 방점 역시 한자음 받침의 ‘ㆁ’이나 ‘ㅱ’ 혹은 ‘ㅭ’의 ‘ㆆ’처럼 삭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방점이 나타나는 부분과 나타나지 않는 하나의 책에 함께 묶인 까닭에 대한 설명이 부담으로 남는다.
쌍계사판은 그 판목이 현재 갑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해서 갑사판으로도 불린다. 다른 두 이본보다 판이 조잡하고 낙장이 많으며 방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특히 한자음의 경우 간행 당시의 현실음을 완전히 반영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전혀 다른 성격의 자료인 셈이다.
여기서는 세 이본들 중 원간본의 모습을 비교적 많이 유지하고 상보적인 측면까지 지니고 있는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의 대교(對校)에 관심을 가지기로 한다.

2.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의 대교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의 대교(對校)는 주로 김정남(1995)의 내용을 취한 것이다. 특히 우리의 작업 대상이 되는 광흥사판의 경우 ‘상권’과 ‘하권’으로 분책이 되어 있어 여기서는 ‘상권’ 부분의 대교에 주된 관심을 가지기로 한다.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은 동일한 판하(板下)를 이용한 복각본인 듯, 획의 굵기 정도에 있어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 특별히 다른 언어 사실을 반영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장차까지 일치하는 이들 이본 사이에는 주로 오각(誤刻)이나 탈각(脫刻)에 의한 차이가 많이 발견된다. 주된 차이는 한자음과 방점에서 찾을 수 있으나, 탈자와 오자 또는 언어의 변화 등에 의한 차이도 보인다. 고유어와 한자어로 갈라 구체적인 예들을 들어 보기로 한다.

2.1. 고유어

2.1.1. 탈자·오자

어느 한쪽의 판본에서만 오류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 소개하는 예들은 대조의 결과 차이가 나는 경우를 든 것이다. 오류의 양상도 동일한 것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각기 다른 양상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광흥사판〉 〈무량굴판〉 〈장차〉
거·시·라기시라70ㄱ
救·티·옷 아·니·면救·티·옷 아니·면56ㄴ
그 ·러그 ·리20ㄱ
나·니·다나·니·다29ㄱ
다·시다·사96ㄴ
다되라다되리 주002)
탈각인 듯하나 오각일 가능성도 높음.
46ㄱ
도도족98ㄴ
마··디·니마·디·니78ㄴ
머·글·씨·라머굴씨라76ㄱ
몰애믈애16ㄱ
버·수·믈버믈60ㄴ
브·니보·니43ㄱ
世·옛世·엣64ㄱ
솟글·코솟들코 주003)
각수의 실수로 보인다. ‘글’의 ‘ㄱ’이 거꾸로 새겨져 ‘ㄷ’의 아래 획이 없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23ㄱ
어셔이셔97ㄱ
·옛97ㄱ
일·후·믈일믈26ㄴ
일일46ㄴ
제 :겨집졔 :겨집60ㄱ
터럭더럭78ㄴ
1ㄱ
·:혀·:허·53ㄱ
·리·리리라96ㄱ

2.1.2. 받침표기

‘ㅭ’ 받침을 광흥사판에서는 ‘ㄹ’로 바뀌었는데 대부분 한자어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고유어의 예는 흔하지 않다.
저·허·씨라저허씨라94ㄴ

2.1.3. 표현상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

다음의 예들은 두 판본의 간행에 관여한 이들의 언어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예들이다. 각기 성격이 달라 언어적인 차이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無間·앳無間ㅅ29ㄱ
:아·시·리러·니·라:아샤리러니·라21ㄱ
:업시·우거·든:업시·위커든20ㄱ
地獄·브·터地獄·여러26ㄱ
·리·:더·니·리·니·다46ㄴ

2.2. 한자음 표기

2.2.1. 탈자·오자

우선 동일한 한자의 발음이 여러 가지 양상을 보여 정음을 잡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1ㄱ
·뗑1ㄱ
93ㄱ
2ㄴ
92ㄱ
특히 이중모음과 단모음의 표기 사이의 오류가 눈에 많이 뜨인다.
92ㄴ
·넘·념96ㄴ
ᄋힵᆫ24ㄴ
38ㄴ
便·뼌·뻔64ㄴ
·뻐ᇰ91ㄱ
·앙·양23ㄱ
38ㄱ
100ㄴ
25ㄴ
ᅌᆦᇰ20ㄴ
·역·ᅙᅥᆨ89ㄴ
··ᅙᅥᆨ69ㄴ
·ᅙᅥᆨ83ㄴ
28ㄴ
이중모음과 단모음의 혼기 양상 가운데 ‘ㄷ, ㅌ’, ‘ㅎ’ 뒤에서 나타나는 단모음 표기의 예가 많아 따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으로 보인다.
60ㄱ
:쌍:썅20ㄴ
·상·상18ㄱ
·쎙·쏑31ㄱ
·석·셕1ㄱ
·써ᇙ60ㄱ
52ㄱ
82ㄱ
54ㄱ
::21ㄴ
·54ㄱ
·뗑1ㄱ
·뜌·뚱92ㄴ
12ㄱ
5ㄴ
94ㄱ
11ㄱ
··42ㄴ
··터ᇙ41ㄴ
:청95ㄴ
·63ㄱ
ᅘᅥᇰ54ㄱ
간혹 한자음이 아예 적혀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표기없음·86ㄴ
·표기 없음 주004)
빈공간의 다음 글자 ‘에’의 획을 올려 그어서 자리를 메우고 있다.
37ㄴ
표기없음85ㄱ
그밖의 오각이나 탈각의 예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카94ㄱ
·긱9ㄱ
·겁·컴29ㄱ
:공:콩34ㄱ
::14ㄴ
··54ㄱ
·퀀88ㄴ
·94ㄱ
30ㄴ
30ㄴ
4ㄴ
75ㄴ
·먼·민35ㄴ
13ㄴ
·브ᇢ43ㄱ
·붕3ㄴ
·둔17ㄴ
·악·95ㄴ
··악17ㄱ
··42ㄱ
··39ㄱ
13ㄱ
·쥼70ㄱ
12ㄱ
·뙥·똭8ㄴ
·합100ㄴ
·18ㄱ
·18ㄱ
··21ㄴ
20ㄴ
·현·(罒)33ㄴ
·황·횡31ㄴ
·횡·황34ㄱ
··93ㄴ
5ㄴ
:힁:읭1ㄴ
이와 같이 탈자나 오자는 대개 한 문헌에서 생긴 것을 다른 문헌과 비교해 보아 고칠 수 있으나, 두 문헌에서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서 다른 부분과의 비교를 통해서야 비로소 오자나 탈자임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들 경우에 판하 자체의 잘못인지 우연히 둘다 탈각되거나 오각된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앙·앙20ㄴ

2.2.2. ㅇ(喩母) 받침 표기

ㅇ 받침은 주로 광흥사판에서 많이 제거되었는데 남아 있는 부분도 상당수 있으며 특히 협주 부분은 수정의 눈길이 많이 미치지 못한 탓인지 더 많이 남아 있는 경향을 보인다. ‘ㅇ’이 남아 있는 예와 ‘ㅇ’이 삭각된 예들을 소개한다.
• ‘ㅇ’이 남아있는 예
··91ㄱ, 52ㄱ
·밍·밍91ㄱ, 91ㄱ
82ㄴ
··91ㄱ
93ㄱ
2ㄴ
:쬥98ㄴ
·퐁94ㄴ
·홰93ㄴ
• ‘ㅇ’이 삭각된 예
:과:광15ㄱ
:귀:귕33ㄱ, 46ㄱ
:녀:녕33ㄱ
19ㄴ, 30ㄴ
15ㄱ, 29ㄱ
:례:롕22ㄴ
25ㄱ, 41ㄱ, 42ㄱ, 45ㄱ
::26ㄱ
41ㄱ
37ㄱ
::46ㄴ
·셰·솅37ㄴ
30ㄱ, 30ㄴ
·ㅊ 주005)
‘ㅇ’을 삭각하면서 ‘ㆍ’까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77ㄴ
::33ㄱ
·29ㄱ
·뎨·뎽33ㄱ
61ㄴ
:쬐:쬥29ㄱ, 38ㄴ, 43ㄴ
·띠·띵25ㄱ, 30ㄱ, 37ㄴ, 38ㄱ, 38ㄴ
12ㄴ
·포·퐁94ㄴ
16ㄱ
::26ㄴ
30ㄴ, 52ㄴ
19ㄱ

2.2.3. ㅭ(以影補來) 표기

ㅭ 받침은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기하는 ‘ㆆ’을 제거시킨 형태가 광흥사판에 많이 나타난다. 다양한 양상을 보여, ‘ㅭ’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ㄹ’을 크게 다시 새긴 경우가 있는가 하면 ‘ㅭ’의 ‘ㄹ’은 그대로 두고 ‘ㆆ’만 삭각하여 기형적인 글자 모양을 그대로 둔 경우도 있다. ‘ㅭ’ 중에서 ‘ㆆ’의 ‘ㆁ’만을 제거한 경우도 나타난다. 많지는 않지만 ‘ㅭ’이 두 문헌에서 그대로 유지된 예들도 있다.
• ‘ㅭ’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ㄹ’을 크게 다시 새긴 경우
·별·62ㄱ
·뿔·57ㄱ
·살· 62ㄱ
·살83ㄱ
• ‘ㅭ’의 ‘ㄹ’은 그대로 두고 ‘ㆆ’만 삭각한 경우
·벌52ㄴ, 57ㄱ
·뿔51ㄴ
51ㄴ
• ‘ㅭ’ 중에서 ‘ㆆ’의 ‘ㆁ’만을 제거한 경우
·뿔34ㄱ, 37ㄴ
·살14ㄴ
• ‘ㅭ’이 두 문헌에서 그대로 유지된 경우
·66ㄱ
·써ᇙ60ㄱ
·· 94ㄴ

2.2.4. 순경음 ㅱ 받침 표기

순경음 ㅱ은 받침 표기에서 유지된 예가 ㅭ 경우보다 많고 또 전체가 제거된 예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ㅇ’만 부분적으로 제거된 예가 많이 나타난다. 또 이 ‘ㅇ’의 제거가 탈각인지 삭각인지 구분이 어려우나 무량굴판에도 나타난다.
• 받침 표기에서 유지된 경우
::56ㄱ
··56ㄴ
::55ㄴ
::55ㄴ
• ‘ㅇ’만 부분적으로 제거된 예(1)
:굼:62ㄴ
::16ㄱ
:똠:30ㄴ
:뭄:41ㄴ, 66ㄱ
·봄·38ㄱ, 38ㄴ
:봄:20ㄱ
:숌15ㄱ, 51ㄱ
:쓤:15ㄱ, 29ㄱ, 37ㄱ, 41ㄱ
19ㄱ, 26ㄱ
·횸·38ㄴ
::21ㄴ
30ㄱ
• ‘ㅇ’만 부분적으로 제거된 예(2)
·봄·봄65ㄱ
:5ㄱ
• 전체가 제거된 예(1)
:또:57ㄱ
·보·58ㄴ, 67ㄱ, 67ㄴ
63ㄴ
:쓔:43ㄱ, 46ㄴ
:쓔:쓰ᇢ67ㄴ
51ㄱ
::58ㄴ
• 전체가 제거된 예(2)
·구82ㄴ
·보·봄67ㄴ
2.2.5. ㆁ(凝母) 받침 표기
종성 ‘ㆁ’이 와야 할 자리에 ‘ㅇ’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예들이 많이 나타난다. 두 판본에 골고루 혼기 양상이 보인다.
5ㄴ, 59ㄴ
:광:광95ㄴ
:광11ㄴ
15ㄴ
:등:38ㄱ
77ㄱ
15ㄱ
妄語·망:망·60ㄱ
44ㄴ
聖女·:녕·셩:녕20ㄱ
15ㄱ
22ㄴ, 63ㄴ
::쟝83ㄱ
·짱·16ㄱ
··졍58ㄱ
:뎡:15ㄱ
69ㄴ
다음의 예들은 종성의 소리값이 없는데도 ‘ㆁ’ 표기가 나타나는 보여준다. 표기에 있어 ‘ㅇ’과 ‘ㆁ’의 단일화가 진행되는 과정의 일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1ㄱ
:녀:59ㄴ
·띠·80ㄱ

2.2.6. ㆁ 초성 표기

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 ‘ㆁ’을 초성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 ‘ㅇ’로 바뀐 예가 무량굴판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
11ㄴ
··업36ㄱ, 46ㄴ, 78ㄱ
::웅69ㄴ
··원63ㄱ

2.2.7. 기타

유일예라는 점이 부담이 되기는 하나 무량굴판에 보이는 다음의 예는 구개음화와 관련하여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長者::쟝쟝18ㄱ

Ⅲ. ≪월인석보≫ 권21하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현전하는 ≪월인석보≫ 권21은 크게 세 종류의 이본이 존재한다. 모두 원간본이 아닌 복각본으로서 광흥사판, 무량굴판, 쌍계사판이 그것이다. 이들 중 광흥사판과 쌍계사판의 경우에는 두 책으로 분책이 되어 간행되었다. 동일한 시주질이 각각 뒤에 붙어 있어 분책 간행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여기서 ≪월인석보≫ 권21에 국한하여 볼 때 우선 광흥사판과 무량굴판의 경우에는 각각의 시주질에 차이를 보인다. 광흥사에서 개판한 사정과 무량굴에서 개판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그것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책의 간행 연도로 보면 광흥사판이 20년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예들은 광흥사판보다는 무량굴판의 상태가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차이를 보이는 대부분이 광흥사판에서의 탈각으로 인한 것이다.
광흥사판의 ‘딜오’〈137ㅇ〉는 ‘덜오’의 잘못. 무량굴판에는 ‘덜오’로 되어 있다.
광흥사판의 ‘ㄱ리니’〈140ㄷ〉는 ‘리니’의 오각. 무량굴판에는 ‘리니’로 되어 있다.
광흥사판의 ‘퓌우고’〈149ㄷ〉가 무량굴판에는 ‘픠우고’로 표기되어 있다.
광흥사판의 ‘울워미’〈200ㅇ〉는 ‘울워미’의 잘못. 무량굴판에는 ‘울워미’로 되어 있다.
광흥사판의 ‘딜씨오’〈217ㄷ〉는 ‘밀씨오’의 잘못. 무량굴판에는 ‘밀씨오’로 되어 있다.
광흥사판의 ‘無情호리’〈219ㅇ〉는 ‘無情호라’의 잘못. 무량굴판에는 ‘無情호라’로 되어 있다.
월인석보 권21하의 내용을 중심으로 탈각의 예만 간단히 살핀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우리가 대할 수 있는 현전본의 인출 대상이 된 목판의 보관 상태에서 그 까닭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할 수 있는 광흥사판이 ‘嘉靖二十一年壬寅(1542)三月日 慶尙道 安東 下柯山 廣興寺開板’의 간기를 가지고 있으나, 20세기 전반 즉 1930∼40년경에 인출 시기의 목판 상태는 그리 좋았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의 관심을 방점이나 한자음으로 넓힐 경우에 보다 많은 경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논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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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애(2003), 「초참본 “월인석보” 권15에 관한 연구: 그 저경과 구성을 중심으로」, 『서지학연구』 25, 서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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