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석보상절 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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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석보상절 제21
역주 석보상절 제21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책이 언제 간행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서(序)』가 세종 29년(1447)으로 되어 있고, 또 9권의 표지의 기록으로 세종 29년(1447)에서 세종 31년(1449)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석보상절』이 발견된 것은 현재 마지막 권이 24권으로 30권에 가까운 방대한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이상의 것밖에는 발견된 것이 없으므로, 그 초간과 복간은 물론 문헌의 내용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서 당시 쓰던 국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김영배 교수

1931년 평북 영변 출생.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학석사, 문학박사.
1973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전임강사, 조교수.
1976 상명여자대학(현 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1980~1997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교수.
1987.4-1988.3 일본 축파(筑波)대학 외국인교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

〈저서〉

『석보상절 제23·24주해』
『평안방언의 음운체계연구』
『국어사자료연구』
『증보 평안방언연구』
『평안방언연구 자료편』 외.

〈역주〉

『역주 석보상절 제6,9,11』(공동)
『역주 석보상절 제13, 19』(공동)
『역주 능엄경언해 제1,2』
『역주 능엄경언해 제3,4』
『역주 능엄경언해 제7,8』
『역주 능엄경언해 제9,10』
『역주 월인석보 제11,12』
『역주 법화경언해 제1』
『역주 법화경언해 권2』
『역주 법화경언해 권3』
『역주 법화경언해 제4』
『역주 법화경언해 제6』
『역주 월인석보 제20』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1』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2』
『역주 월인석보 제25(상)』
『역주 월인석보 제25(하권)』
『역주 월인석보 제4』
『역주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김성주 교수

1965년 경남 통영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문학박사.
1999-2002 터키 국립앙카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외국인교수.
2003-200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2008-2011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문리각 연구교수.
2012년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강의전담교수.

〈저서〉

『한국어의 사동』
『Kolece Dilbilgisi』(공동)
『각필구결의 해독과 번역 1~5』(공동)
『고대한일양국의 한자·한문독법과 자국적 수용양상』(공동)
『황룡사 표원의 화엄문의요결문답 연구 1·2』(공동)
『사토본 『화엄문의요결문답』의 부호구결과 자형에 대한 연구』(공동).

〈역주〉

『금강경언해』(공동)

역주위원

석보상절 제21 : 김영배·김성주(공역)

교열·윤문·색인위원

  • 석보상절 제21 : 박종국·홍현보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영배 나일성
  • 노원복 리의도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임홍빈 전상운 정태섭
  • 조오현 차재경 최홍식
  • 한무희 홍민표

역주 석보상절 제21을 내면서

우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을 국역하기 시작하여 447책을 펴내 실록을 완역하였고, 『증보문헌비고』 40책 완간 등 수많은 국학 자료의 번역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아울러 1990년 6월부터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1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고, 600책이 넘는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 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국역·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국역 사업을 벌이는 뜻은 바로 백성과의 소통을 통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 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두창집요』 1책, 『언해태산집요』 1책, 『삼강행실도』 1책, 『이륜행실도』 1책, 『정속언해·경민편』 1책,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 1책, 『번역소학』(권6,7,8,9,10) 1책, 『소학언해』(권1,2와 권3,4) 2책, 『논어언해』(권1,2와 권3,4) 2책,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1책, 『두시언해』(권10) 1책 등 모두 80책이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이후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수양대군이 부왕 세종의 명을 받아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민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하여 지은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로서 모두 24권으로 된 활자본의 책이다. 이 책의 원간은 세종 29년(1447) 7월로 추정되는데, 책 이름의 석(釋)은 석가모니를, 보(譜)는 일대기를, 상(詳)은 종요로운 말을 자세히 씀을, 절(節)은 종요롭지 않은 말은 생략함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 회에서 권제6, 9, 11과 권제13, 18을 1991년에 역주 간행한 이후 발견되지 않은 권수가 많았고, 이미 1972년 역주되어 출판된 권제23, 24(김영배 역주)를 제외하고는 초간본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번 권제20, 21이 1989년에 발견되어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고 하루 빨리 우리 국어학의 발전과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역주하기를 간절히 바래 왔다. 이와 함께 중시되던 『월인석보』는 대다수 권수가 발굴되어 꾸준히 역주본을 간행하여 온 우리 회로서는, 이 귀중한 『석보상절』을 방치해 두기에 그 책임이 무겁다고 느껴 이번에 역주본을 간행케 된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의 소장처에서 영인 간행되기를 원하지 않아 영인본을 부록에 싣지 못하였다.

이 귀중한 『석보상절』 권제21을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위해 애써 주신 동국대학교 김영배 명예교수님과 김성주 교수님께 먼저 그 노고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올린다.

2012년 10월 9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석보상절 제21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아닌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은 이를 읽고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이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려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어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석보상절』 제20 역주는 1990년에 발견(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초간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람을 승락받지 못하여 영인본을 싣지 않았다. 이 역주는 처음 발견 당시 소장자에게서 복사된 자료의 재복사물을 구하여 이루어졌다.

(2) 이 책의 편집은, 『석보상절』(1447)의 원문인 언해문을 굵은 네모 틀 안에 먼저 싣고, 『석보상절』의 내용과 비교할 수 있는 『월인석보』(1459)는 가는 네모 틀에, 『법화경언해』(1463)의 원문은 점선 네모 틀 안에 실어서 나란히 실었다. 그 밑에 『석보상절』의 현대문 풀이와 주석을 달아 독자가 참고하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〇 『석보상절』 원문 :

〇 『월인석보』 원문 :

〇 『법화경언해』 원문 :

(3) 『석보상절』은 원본을 부록에 싣지 못하는 관계로, 원전 모습 그대로를 복원하고자 동국정운식 표기와 방점을 똑같이 살려 표기하였고, 내용 비교를 위해 이어서 실은 『월인석보』는 그 원문을 모두, 또 『법화경언해』는 경문(경문 협주는 생략함)과 계환(戒環) 스님의 주해문, 그리고 각각 그 언해문을 실었다. 다만 문장에 맞게 띄어쓰기를 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원문의 각각 시작되는 글자 앞에 권(卷)·장(張)·앞〔ㄱ〕·뒤〔ㄴ〕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또한 부록으로 석보상절 제21 원문을 쪽별로 모아 실었다.

(보기) 21권 1장 ㄱ쪽이 시작되는 곳 : 21:1ㄱ그· 無뭉盡:찐意·菩뽕薩··이

(4) 현대역은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직역을 위주로 하였으며, 작은 글씨 2행 협주가 중첩적으로 나타날 때는 같은 크기의 글자로 하되, 원문에 없지만 협주 부분을 【 】 표시로 구분하였다.

3. 역주자 일러두기

(1) 『역주 석보상절 제21』은 1990년에 발견(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초간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소장처와 협의가 되지 않아 기존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본의 경우처럼 영인본을 싣지 못하고 본문을 방점까지 입력하여 제시하였다.

(2) 『석보상절』의 본문 이외에도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본문도 실었으며, 세 문헌을 늘어놓는데 그치지 않고, 역주에서 단어→어구의 번역 비교를 보였다.

(3) 불교 용어는 불교용어사전에서 인용하되 본문 내용에 부합되는 내용만 발췌하여 본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4) 예문은 간행 연대가 비슷한 문헌인 「석상(석보상절)」, 「월석(월인석보)」, 「월곡(월인천강지곡)」, 「능엄(능엄경언해)」, 「법화(법화경언해)」를 중심으로 제시하였다.

(5) 주석에 자주 나오는 문법 사항은 반복하지 않고 가장 자세히 설명한 곳을 제시하였다(예, ‘ㅎ종성체언’에 대해서는 ‘나라해〈석상 21:4ㄱ〉’ 참조).

(6) 『석보상절 제21』은 훼손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월인석보 제19』, 『법화경언해 제7』과 비교하여 재구할 수 있는 것은 ‘〔 〕’를 씌워 재구하였고,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추정되는 글자 수만큼 ‘□’로 표시하였다.

(7) ‘다라니품’에 나오는 다섯 개의 다라니에는 일련 번호가 없으나 설명의 편의를 위해 각각의 다라니(예, ≪Ⅰ≫, ≪Ⅱ≫, …)와 다라니의 각각의 어구(예. (一), (二), …)에 일련 번호를 매겼다.

(8) 이 역주본은 앞에 보인 바와 같이 공동으로 작업이 이루어졌으니, 필자의 건강으로 해서 김성주 교수의 도움이 컸으며, 전산 입력에는 박사과정 박대범 군이 애썼음을 여기 밝혀 둔다.

석보상절 제21에 대하여
김영배(동국대학교 명예교수)

Ⅰ. 책의 전래

『석보상절』 초간본 제21(1권)은 1989. 11. 15. 중앙일보 사회 1면, 문화면 기사로 알려진바, 이는 고서(古書) 수집가 우찬규(禹燦奎)님 소장인데, 천혜봉(千惠鳳) 교수가 발굴하여 공개되었다.
이 책은 65장 130페이지로 끝 64, 65 등 2장이 파손되어 지편(紙片)의 일부부만 있었던 것으로 원본은 실사하지 못하였고, 원본의 복사본은 끝의 60ㄱ~63ㄴ이 상당 부분 훼손된 것을 보여준다. 이 복사본은 구 소장자가 새 주인에게 넘기기 전에 복사된 것으로 2001~2002년 경에 학계에 웬만큼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귀중본은 현재 ‘초간본 제20’과 함께 호암미술관(湖巖美術館)에 소장되어 있다.

Ⅱ. 형태 서지

『석보상절』 제21(이하 ‘이 문헌’으로 줄임)의 원본을 실사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서 못내 유감이다. 이는 ‘호암미술관’ 에 의해 열람, 실사를 허락받지 못한 데 말미암은 것임을 밝혀 둔다.
현재 필자가 이용하고 있는 복사본은 발견 당시 소장하였던 곳에서 나온 복사본을 재복사한 것이다. 이 재복사본은 『석보상절』 제21이 세상에 공개된 1989년 이후, 수년이 지나 국어학 연구자들 사이에 알려진 재복사본을 필자도 그 무렵에(2001~2년 이후) 입수한 것이다.
이 책은 현전하는 『석보상절』의 다른 책의 경우와 대체로 같음을 알 수 있다.
판광(版匡) :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복사본은, 세로〔縱〕 22.2~22.3cm, 가로〔橫〕 16.2~ 16.5cm로서 이 값〔數値〕을 국립도서관 소장 『석보상절』 제6, 9, 13, 19의 판광(22~22.3 ×15.7~15.9cm)과,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석보상절』 제23, 24의 판광(22.2×15.8cm)에 비추어 보면(김영배 2000:26), 실물 크기로 복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판심(版心) : 이미 전해지는 『석보상절』의 그것과도 마찬가지로 ‘대흑구(大黑口), 하향(下向) 흑어미(黑魚尾)에, 줄인 책명 ‘석보(釋譜) 권차(卷次) 이십일(廾一)’과 두 글자 정도 사이를 두고 장차(張次)인 한자 숫자와 상향(上向) 어미(魚尾)와 대흑구(大黑口)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판심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ㄱ~59ㄱ(이후 63ㄴ까지는 훼손된 것)에서 판심의 앞뒤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단 두 장(5ㄱ~ㄴ, 15ㄱ~ㄴ)이고, 앞쪽만을 비교적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세 쪽(24ㄱ, 46ㄱ, 52ㄱ)이며, 그밖에 앞쪽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7ㄱ, 8ㄱ, 10ㄱ, 16ㄱ, 19ㄱ, 22ㄱ, 25ㄱ, 32ㄱ, 37ㄴ, 40ㄱ, 43ㄱ, 45ㄴ, 53ㄱ) 등이 있다. 이렇게 번거롭게 적어두는 것은 복사본의 실상을 밝히기 위함이다.
표지는 떨어져 나간 것으로 공개되었으나, 필자의 짐작으로는 본시 『석보상절』 제20과 『석보상절』 제21 두 권은 합본(合本)되어 있던 것이, 발견 후 공개되는 과정에서 각권으로 나누어져서 표지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상정(想定)해 본다.
필자가 이용하는 복사본에서, 언급이 중복되겠지만, 제20(1~53쪽)은 1(ㄱㄴ)쪽이 낙장이고, 끝의 ‘53ㄴ’은 1행이 소자(小字) 쌍행으로 ‘音菩뽕薩/品픔이라’로 끝나고 2, 3, 4, 5, 6행은 공란이며, 다음 7행은 대자(大字) ‘釋셕譜봉詳節第뎽二十씹’으로 ‘석보상절’의 다른 책의 끝 장(張)과 같이 되어 있다.
『석보상절』 제21의 첫 장의 상태는 다음과 같으며, 그 이후의 훼손된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장 : 1행 釋셕譜봉詳節第뗑廾一일
2행 그無盡意菩薩이즉자 (동국정음 표기는 생략함) (계속)
2ㄱ : 〔요해〕 줄임 끝의 7, 8행 훼손, 곧 7행 끝 2자 미상, 8행 첫줄 끝 2자 훼손, 8행 둘째 줄 위 5자 빼고 10자 훼손 불명. 주001)
*
관례에 따라 장차(張次) 표시를 ‘2ㄱ1’(2쪽 앞면 1행)으로 나타냄.
2ㄴ : 〔요해〕 쌍행 두 줄, 끝 훼손 4자는 전후 참고 복원 가능. 주002)
*
이는 관련되는 『월인석보』 제19와 『법화경언해』 7권을 참고.
3장에서 55장까지는 거의 제대로 보임.
56ㄴ: 3행 끝자 보이지 않음.
57ㄴ: 3행 끝 협주, 2자 훼손 전후 참고 복원 가능.
58ㄱ: 6행 끝 2자 훼손 부분은 전후 참고 복원 가능.
58ㄴ: 3행 중간 3자 훼손, 복원 가능, 끝 3자도 복원 가능.
4행 끝 3자 훼손, 복원 가능.
59ㄱ: 5, 6행 끝 2자 전후 복원 가능, 7행 중간 2자 복원 가능.
59ㄴ: 2, 3, 4행 훼손 부분 정후 참고 복원 가능.
60ㄱ: 5행 끝 2자, 『월인석보』 제19 115장 이하와 『법화경언해』 7권 179장 이하를 참고로 복원 가능.
6행 끝 2자 복원 가능.
7행 2,3,4,5,6,7,8자
8행 1,2,3,4,5,6,7,8자 훼손.
60ㄴ: 1, 2, 3행 완전 훼손.
4행 끝 3자 훼손.
61ㄱ: 4, 5, 6, 7, 8행 각 4, 5, 9, 8, 8자 훼손.
61ㄴ: 1, 2, 3행 전부 훼손.
4행 위 5자, 아래 5자 훼손.
5행 4자 훼손.
62ㄱ: 4행 4자, 5행 13자, 6행 14자, 7-8행 전부 훼손.
62ㄴ: 1행 전부, 2-3행 각각 12자 훼손, 4행 14자, 8행 1자 훼손.
63ㄱ: 1행 5자, 2-3행 각각 7자, 4행 14자, 5-8행 전부 훼손.
63ㄴ: 1-2행 전부, 3행 14자, 4행 8자, 5-6행 각각 7자, 7-8행 전부 훼손.
64, 65장 : ‘겉 표지와 끝 두장은 파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고 발표(중앙일보 1989. 11. 15. 사회 1면, 문화면).
여기서 이 책의 장차에 대해서 언급해 둘 것이 있다. 공개 발표 당시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의 장수(張數)는 65장으로 되었다고 본바, 이는 Ⅲ의 대비 표에서 보면 내용이 『법화경언해』의 후반부를 저경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 낙장된 부분을 공개 발표 당시 두 장으로 보았는데, 이호권(2001:45)에서 “… 법화경 권7 끝부분인데 내용으로 보아 4~5장 정도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했다.
이 글에서는 훼손 부분과 낙장된 장수를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석상 21:63ㄴ〉의 훼손된 끝장에 남아 있는 6행 중에 “…□□病을 어드며(白癩 모…)”가 보이며, 다음 7, 8행은 훼손된 것으로 돼 있다. 여기 ‘□□’ 안은 전혀 안 보이는 것이나, 그 아래에 나오는 협주를 근거로 ‘〔白癩〕’로 추정할 수 있고, 이를 저경인 『법화경』과 대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법언 7:184ㄴ〉 “… 이 사미 現世예 白癩病을 得고 다가 업시워 우 사…”는(한문 현토 : 此人이 現世예 得白癩病고 若輕笑之者 ….)
또한 이 대목을 〈월석 19:120ㄴ〉에서는 “… 이 사미 現世예 白癩病을 얻고<협주>【癩 모미 다 허러 히미며 며 다 야디 病이라】 다가 업시워 우 사 …”과 같이 되어 있다. 이 부분을 참고로 『석보상절』의 낙장된 나머지도 추정할 수 있다.
곧, 『월인석보』 제19는 ‘120ㄴ~125ㄱ’으로 끝나므로 약 5장 부분인데 대해서 『법화경언해』의 경우 권7은 184ㄴ~ 191ㄴ으로 여기에는 한문 원문과 그 요해 부분의 한문도 포함되어 있어서 이를 제외하고 그 언해문만을 계산해 보면, 언해문은 한 행에 작은 글자로 두 줄씩 되어 있으므로, 이를 『월인석보』 식으로 판을 짰다면 약 6장 정도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를 참고로 이 책의 낙장 부분을 추정한다면, 『월인석보』의 해당 분량보다 적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아서 대략 4~5장 정도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 책의 공개 당시의 기사 중(1989.11.15. 중앙일보 문화면)에 고 안병희(安秉禧)교수의 “『석보상절』 제21권이 법화경의 마지막 부분일 것으로 막연히 추측해온 것을 확인하게 됐다.”는 말과, 이어 “『석보상절』이 다른 책과 달리 내용에 중복이 없고 간결하게 요약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 또한 “이번 발견의 가장 큰 의의는 법화경의 일부인 다라니의 음역(音譯)이 독특한 점 … 한 가지 독특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종성 표기의 차이점”이라 했다. 그 후에 쓴 안병희(1998)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의 서지(書誌)’ 〈서지학보〉 22호(12~13)에 다라니 음역에 관한 논의가 있으나, 그때는 『월인석보』 제19가 공개되기 전이어서, 필자는 이 대목을 안병희(2009:320~321)에 보충 수정해서 논의(소개)할 것임을 밝혀 둔다. 다라니에 대해서는 ‘Ⅳ. 어학적 고찰’에 언급될 것이다.

Ⅲ. 내용의 개요

편집 내용 차례는 해당 품(品)이 끝나는 곳에는 쌍행 협주로, ‘… 잇자 … 품(品)이라’ 하고, 글줄이 바뀌면서 그 다음 내용이 이어져 그 품의 끝과 다음 품의 시작임을 나타냈다.
1. 석상 21:1ㄱ2~21:20ㄴ8 -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제25
무진의(無盡意)보살이 부처님께, 관세음보살은 무슨 까닭으로 ‘관세음’이라고 하는가를 여쭌 데 대하여,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이 어떤 곳에서, 어떤 고난을 받는 중생이든 다 구제하여 주는 보살이며, 또 설법하는 데 있어서도 그때마다 그 형편에 알맞게 온갖 몸〔화신〕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는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셨다.
2. 석상 21: 21ㄱ1~ 21:33ㄱ3 - 법화경 다라니품(陀羅尼品) 제26
여기서는 약왕(藥王)보살, 용시(勇施)보살 등이, 부처님께 선남·선녀들이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거나 베껴 쓰면 얼마만큼의 복덕을 받을 것인가 여쭌 데 대하여, 이 경에서 4구게 하나라도 수지 독송하고 수행하면 공덕이 많을 것이라고 하니, 약왕이 ‘이 경전을 설하는 사람들에게 ‘다라니주’를 설하여 그들을 수호하겠다.’고 하고서 보살, 천왕, 나찰녀 등에게도 주문을 설하여 이 경전 수지하는 법사를 지키겠다고 서원했다.
3. 석상 21: 33ㄱ4~ 21:49ㄱ4 - 법화경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 제27
아득한 과거세 운뢰음숙왕화지불(雲雷音宿王華智佛) 시절, 묘장엄왕(妙莊嚴王)의 두 아들, 정장(淨藏), 정안(淨眼)의 인도로 성불의 수기(授記)을 받고, 왕은 화덕보살(華德菩薩), 두 아들은 약왕(藥王), 약상(藥上)보살이 된다는 등의 여러 방편을 통하여 법화경 신앙으로 중생을 이끌어 들이는 갖가지 실례를 설하였다.
4. 석상 21: 49ㄱ5~ 21:63ㄴ이하 64, 65장 낙장? -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 제28
동방의 보위덕상왕불국(寶威德上王佛國)에서 보현보살이 나타나, 세존께 불멸(佛滅) 후에 어떻게 해야 법화경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물은 데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가능하다고 하며서, 첫째 부처님에 의하여 호념하심이 되는 일, 둘째 덕본(德本)을 심는 일, 세째 정정취(正定聚)에 드는 일과 넷째 온갖 중생을 구하려는 뜻을 내는 것이라고 설하는 것으로 마쳤다.
이상을 다시, 『석보상절』을 주로 하고, 여기에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대응되는 내용을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김기종 2010:65-91 참고) 주003)
*
대체적인 차례는 아래 표와 같이 제시하지만 〈석상〉에서는 〈월석〉과 〈법화〉의 차례가 세부적으로는 조금 바뀐 것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해당 내용이 나오는 부분에서 주석으로 언급하였음.
석보상절 제21월인석보 제19법화경언해 권제7
월곡 기 325~339 : 1ㄱ~8ㄱ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수지하여 복덕(福德)과 지혜 : 1ㄱ~9ㄴ4 왼편과 같음 : 8ㄱ2~31ㄴ3      법언 7:37~70ㄱ1     
제외됨            〈협주〉 손경덕(손경덕)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외워 죽음에서 벗어남  : 20ㄱ4~21ㄴ1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 : 9ㄴ4~16ㄴ4
관세음보살이 다보불에게 영락을 공양함 : 16ㄴ4~20ㄴ8
왼편과 같음 : 31ㄴ3~39ㄱ6
                    : 39ㄱ6~41ㄴ4
법언 7:70ㄱ~81ㄱ
법언 7:81ㄴ~84ㄴ
제외됨      석존의 게송 :41ㄴ4~49ㄴ7 이하 결락      법언 7:84ㄴ~104ㄴ     
약왕보살, 용수보살 등이 법화경을 수지하는 중생을 호지하는 다라니를 말함 : 21ㄱ1~33ㄱ3왼편과 같음 : 56ㄴ1~70ㄱ1           법언 7:105~122          
제외됨     〈협주〉 묘장엄왕본사품 제27 해설  :70ㄱ1~71ㄴ7          
화덕보살의 전신인 묘장엄왕이 법화경을수지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인연 : 33ㄱ4~49ㄱ4               왼편과 같음 : 71ㄴ7~93ㄱ4
〈협주〉 보현보살권발품 제28 해설 :93ㄱ4~97ㄴ7
월곡 기 340(1) :98ㄱ1~98ㄴ1
법언 7:123~152
보현보살이 무량보살과 함께 법화경을 듣기 위해 기사굴산에 옴 : 49ㄱ5~51ㄴ3왼편과 같음 : 98ㄴ2~103ㄱ4     법언 7:153~191
보현보살이 법확경 호지하여 여래 멸도 후에 널리 유통시킬 것을 맹세함 : 51ㄴ3~59ㄴ2      왼편과 같음 : 103ㄱ5~114ㄴ5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이익과 비방하는 죄보에 대한 설법 : 59ㄴ3~63ㄴ8 이하 낙장     왼편과 같음:114ㄴ5~125ㄱ2     

Ⅳ. 어학적 고찰

1. 어휘

이 문헌이 세상에 알려진 지도 10여 년이 흘러서, 기존의 고어사전에는 표제어로 실리지 않은 것은 거의 없으며, 혹 희귀어로 볼 수 있는 것도 이 문헌보다 간행 연대가 늦은 것이어서 여기 별로 언급할 것이 없으나, 대체로 그 표기나 쓰임이 좀 다른 것을 ‘이 문헌’에 쓰인 순서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도 (평-평-거, 부사) : 동강 동강 된 모양.
…다가  사미 주규려  時節을 當야도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일면 뎌의 자본 갈과 막다히왜 도 버허디여 버서나리어며…〈석상 21:4ㄱ5〉.
…다가  사미 害 니브 當야셔 觀世音菩薩ㅅ 일훔 일면 뎌 자본 갈 막대 미조차 귿그티 야디여 解脫을 得며…〈법언 7:53ㄴ〉.
(…若復有人이 臨當被害야셔 稱觀世音菩薩名者ㅣ면 彼所執刀杖이 尋段段壞야 而得解脫며…〈법언 7:52ㄴ).
…다가  사미 被害/ 當야셔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일면 뎌 자본 갈콰 막다히 미조차 귿그티 야디여 버서나 得리라〈월석 19:23ㄴ~24ㄱ
✻能히 衆生로 害 니부메 當야 갈히 귿그티 야디여 그 兵戈로 믈 버히며 〈능엄 6:27ㄱ〉.
✻뎌 觀音 念혼 히므로 갈히 미조차 귿그티 야디며〈법언 7:89ㄱ〉.
이 ‘도’는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이 그 저경인 『법화경』과 이 문헌을 증보한 『월인석보』에서 그 문장을 옮김에 달리 표현한 것으로 유일한 희귀어라 할 수 있으니, 현전 사전류에 표제어로 소개된 것이 없다.
이 구성은 ‘(어근)+이(부사형성접미사)’(버허디여)로 된 것인데, 〈월석〉과 〈법언〉에서 대응되는 단어는 두 문헌 모두 ‘귿그티 (야디여)’로 나타난다. 이를 참고하여 ‘도’의 뜻을 ‘(막대기 같은 것이) 동강 동강으로 잘린 모양’으로 보고, ‘귿그티’는 ‘귿〔末〕+그티’의 구성이나, ‘그티’도 다시 ‘긑+이’로 볼 수 있겠으나, ‘귿’은 ‘긑’의 이형태로 볼 수 있어, 문헌에서의 용례가 『번역소학』에 보이긴 한다.
✻디 아니호믄 다 귿텟 사오나온 道ㅣ 해니 〈번소8:41ㄱ〉
‘귿그티’의 뜻은 본시 ‘끝 끝마다’일 것이나 여기서는 ‘도장(刀杖, 칼과 마대)’에 대한 표현이기에 ‘토막 토막으로’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한편, ‘귿그티’를 고어사전에서 찾았더니,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uniconc 등에 사용하는 입력 자료에서는 위에 보인 〈능엄 6:27ㄱ〉의 예까지 단 3회 예문이 고작이다. 그래도 엄연히 중세국어로 쓰인 어휘가 사전류에서 빠진 것을 아무도 언급한 적이 없이 오늘날까지 온 것은 연구자 모두의 잘못이다. 명사 ‘귿〔末/端〕’은 〈교학고어사전〉과 〈큰사전〉에 표제어로 실렸으나, ‘그티’도 사전에서 볼 수가 없다. 이번 기회에 이 ‘귿그티’도 새로운 어휘로서 표제어로 실리기를 기대한다.
.
② (:못・):니(상성) : ‘-니’는 조건, 가정, 이유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아뫼나 이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디니 사 큰 브레 드러도 브리  :못・:니 이 菩薩ㅅ 위신력 전라〈석상 21:2ㄴ6〉.
여기 ‘못니’는 앞뒤를 참고해도 서술어의 연결어미일 수밖에 없는데, ‘-니’의 방점이 거성이 아닌 상성인 것이 문제이다. 역주에서는 ‘:니’의 위 방점이 이상하다고 보아서 ‘-니’도 수정한 것이다. 결국 이는 표기의 잘못으로 본다.
③ 믿 (평성, 명사) : 밑〔底〕. 아래〔下〕. 근본(根本).
觀音을 염혼 히로 믿 사게 도라디리어며〈석상 21:5ㄴ〉.
淨三昧 淨藏 淨眼 믿 삼논 배오〈석상 21:35ㄱ〉.
믿나라 向니〈월석 13:7ㄱ〉.
✻ 하로  삼고 德으로 믿 삼고〈법언 1:14ㄱ〉.
이 명사는 새로운 것은 아니어서 현전 사전에 표제어로 다 올라 있으나, 그 예문이 위에 든 〈월석〉이나 〈법언〉의 것으로 돼 있으므로, 이에 앞서 〈석상〉의 이 예문을 앞자리에 두어야 할 것이다.
④ 듣다며 : 듣닥으며, 들어가지고. ‘들어서 받아들이고서’ 정도로 본다. 듣-〔聞〕+닥-+며. 여기 ‘닥-’은 기본형 ‘다다’의 활용형으로 합성동사 ‘듣다다’의 중세국어의 유일한 용례로 풀이한다. 「우리말큰사전4」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렸으며, 「이조어사전」에는 표제어가 없고 「교학고어사전」에는 기본형은 아니나 활용형 ‘다가’를 표제어로 하여 뜻은 ‘다그어, 가져, 가져서’로 하고 예문은 모두 ‘월석’의 예를 처음으로 들었다.
네 바리 어듸 가 어든다 도로 다가 두어라 야 〈월석 7:8ㄱ〉
⑤ 옷(평-평, 명사) : 홑〔單〕.
옷소리 聲이라 고 雜 한 소리 음이라 니〈석상 21:19ㄴ~20ㄱ〉.
옷 發니 聲이오 雜 모니 音이니〈법화 7:41ㄱ〉.
※옺(평-거, 명사): 홑〔單〕.
單 오지오 複 겨비라〈능엄8:15ㄴ〉.
各各 오로 表시니라〈법언1:45ㄱ〉.
위에 보인 것처럼 이 ‘옷/옺’은 당시에 쌍형으로 쓰인 것으로 보고자 하며 이와 관련된 어형으로 ‘옻’이 17세기 초엽에 쓰였다.
※옻(명사): 홑〔單〕
내 眞實로 옷고외 오치로다(我眞衣裳單)〈두언중1:19ㄱ〉.
歲暮애 옷외 오치로다(歲暮衣裳單)〈두언중4:9ㄴ〉.
⑥ 뎌른(평-평-거, 합성명사) : 단점(短點). 결점〔缺點〕.
鳩槃茶ㅣ어나 餓鬼히 뎌른 求야도 便을 得디 몯리다 시고〔뎌른라 샤 사나라〕〈석상 21:25ㄴ주〉.
✻〔若鳩槃茶ㅣ며 若餓鬼等이 伺求其短야도 無能得便리다〕〈법언 7:112ㄴ〉.
鳩槃茶ㅣ며 餓鬼等이 그 뎌른 여 求야도 능히 便安 得디 몯리다…〈월석 19:60ㄱ〉.
‘뎌르-’와 ‘뎌-’는 일찍부터 쌍형으로 쓰여서 다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는데, 그 예문은 〈법언〉의 것이 첫 예문으로 돼 있으므로 〈석상〉의 ‘뎌른-’을 첫 예문으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⑦ 위사(상-거-거, 구) : ‘위샤’의 잘못.
그 뎌 부톄 王 위사 說法샤 利益외며〈석상 21:42ㄱ〉.
여기 ‘위사’는 바로 이은 ‘說法샤’의 ‘-샤’자나, 다음 면의 ‘부텻 모미 쉽디 몯샤 端正며 싁싁샤미 로 奇特샤…’ 등과 대비해 보아도 그 글자 모양이 이상하니, 이는 ‘샤’의 ‘ㅑ’에서 오른쪽 윗 획이 하나 떨어져서 그리 된 것으로 보려는 것이다. 역주에서는 ‘샤’로 교정하였다.

2. 다라니의 한자음 표기

『석보상절』에서 정음으로 된 한자음 표기는 흔히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돼 있다고 한다. 다른 것이라면, 이미 많이 언급된 모음으로 된 한자음에도 종성 ‘ㅇ’이 쓰인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쓰는 ‘다라니’(陀羅尼)의 한자음 표기에는 순음(脣音)에 순중음(脣重音)과 순경음(脣輕音), 치음(齒音)에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整齒音)으로 구별하여 썼다. 곧,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설명이 없으나, 『훈민정음 언해본』 끝 부분에,
“中國 소리옛 니쏘리 齒頭와 正齒왜 요미 잇니 ᅎ ᅔ ᅏ ᄼ ᄽ 字 齒頭ㅅ 소리예 고 ᅐ ᅕ ᅑ ᄾ ᄿ 字 正齒ㅅ 소리예 니….”
처음으로 그 글자의 모양이 나타나고, 이어 그 각각의 조음방식을 협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해 두었다.
“이 소리 우리나랏 소리예셔 열니 혓그티 웃닛머리예 다니라”
“이 소리 우리나랏 소리예셔 두터니 혓그티 아랫 닛므유메 다니라”
이 글자들은 빗줄〔斜線〕의 한 쪽 획이 다른 한 쪽의 획보다 더 길게 그어져야 구별되니, 이는 쓰기나 보기에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종은 중국한자음을 훈민정음으로 정리함에 있어서 『홍무정운(洪武正韻)』(1375)을 참고로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1449)에 이 글자를 썼으니, 참고 삼아 7음과 청탁(淸濁)의 그 자모표를 다음에 옮긴다.
〈홍무정운역훈〉
청탁 7음아음설두음순중음순경음치두음정치음후 음반설음반치음
(牙音)(舌頭音)(脣重音)(脣輕音)(齒頭音)(正齒音)(喉音)(半舌音)(半齒音)
전청(全淸)見 ㄱ端 ㄷ幇 ㅂ非 ㅸ精 ᅎ照 ᅐ影 ㆆ----
차청(次淸)溪 ㅋ透 ㅌ滂 ㅍ--淸 ᅔ穿 ᅕ曉 ㅎ----
전탁(全濁)群 ㄲ定 ㄸ並 ㅃ奉 ㅹ從 ᅏ牀 ᅑ厘 ㆅ----
불청불탁疑 ㆁ泥 ㄴ明 ㅁ微 ㅱ----喩 ㅇ來 ㄹ日 ㅿ
전청(全淸)--------心 ᄼ審ᄾ------
전탁(全濁)--------邪 ᄽ禪 ᄿ------
이 책에 실린 ‘다라니’는 그 저경(底經)인 『법화경언해』 권7의 ‘제26품 다라니품’에 있는 5편과 ‘제28 보현보살권발품’에 실린 1편을 합하여 모두 6편으로, 이에 대응되는 〈석상 21〉, 〈월석 19〉, 〈법언 7〉에서의 출처를 아울러 다음에 보인다.
Ⅰ편 43구 〈석상 21:23ㄱ~24ㄱ〉〈월석 19:57ㄴ~59ㄴ〉 〈법언 7:110ㄴ~111ㄱ〉
Ⅱ편 13구 〈석상 21:25ㄴ~26ㄱ〉〈월석 19:61ㄱ~ㄴ〉 〈법언 7:113ㄱ〉
Ⅲ편 6구 〈석상 21:26ㄴ〉 〈월석 19:62ㄴ〉 〈법언 7:114ㄴ〉
Ⅳ편 9구 〈석상 21:27ㄴ〉 〈월석 19:63ㄴ~64ㄱ〉 〈법언 7:115ㄴ〉
Ⅴ편 19구 〈석상 21:29ㄱ~ㄴ〉 〈월석 19:65ㄴ~66ㄱ〉 〈법언 7:117ㄴ〉
Ⅵ편 20구 〈석상 21:55ㄴ~56ㄴ〉〈월석 19:109ㄱ~110ㄴ〉〈법언 7:173ㄴ~174ㄱ〉
다음에는 여기에 쓰인 다라니의 한자음 표기를 정리함에 있어서, 이미 역주 부분에 각각 전문이 실려 있으므로 그 원문을 되풀이하거나, 그것을 어구별로 옮기는 번거로움을 덜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라니에 쓰인 자음(字音)을 한자씩 나오는 대로 뽑아 이를 앞 표에 보인 7음과 청탁음 별, 출처 별로 아래에 정리해 보인다. 여기 덧붙여 둘 것은, 이 ‘다라니’음은 저경인 『법화경』과 『법화경언해』에는 다라니의 음을 한자를 빌어서 나타난 표기만이고, 여기 보이는 ‘다라니’는 그 한자음 표기와 그에 대응되는 부분을 훈민정음을 빌어서 나타낸 것으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서만이므로 그 출처도 두 문헌에 국한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에 보이는 것은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한 글자가 아래 위 같으며, 위 것이 〈석상〉, 아래 것이〈월석〉인데, 한수자(漢數字) 표기는 문헌의 장차 표기 글자와 구별하기 위해서, 앞이 위에 보인 편수를 로마자 Ⅰ~Ⅵ로, 뒤 것은 해당 편의 어구의 순서를 나타낸 것이다. 이 어구의 순서는 『법화경』의 순서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이 편수와 어구 수도 같을 수밖에 없다.
〈다라니에 쓰인 자모(字母)의 일람〉
견모(見母) 〔ㄱ〕 : 5자
〈釋〉Ⅰ:<세주>三十 〈1〉
(이 표기는 〈석상21〉의 다라니 Ⅰ편 30구 〈1회 쓰임〉을 나타낸 것임)
〈月〉Ⅰ:<세주>三十 〈1〉
〈釋〉Ⅰ:<세주>三十九, Ⅵ:<세주>十九 〈2〉
〈月〉Ⅰ:<세주>三十九, Ⅵ:<세주>十九 〈2〉
·긷〈釋〉Ⅰ:<세주>三十二, Ⅵ:<세주>二十 〈2〉
·〈月〉Ⅰ:<세주>三十二, Ⅵ:<세주>二十 〈2〉
·〈釋〉Ⅰ:<세주>二十六, Ⅰ:<세주>二十七 〈2〉
·〈月〉Ⅰ:<세주>二十六, Ⅰ:<세주>二十七 〈2〉
〈釋〉Ⅵ:<세주>四 〈1〉
〈月〉Ⅵ:<세주>四 〈1〉
군모(群母) 〔ㄲ〕 : 7자
〈釋〉Ⅰ:<세주>二十二, Ⅰ:<세주>三十四, Ⅳ:<세주>一, Ⅳ:<세주>二,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三(2), Ⅵ:<세주>十五(2), Ⅵ:<세주>十六, Ⅵ:<세주>十七(2), Ⅵ:<세주>十九 〈13〉
〈月〉Ⅰ:<세주>二十二, Ⅰ:<세주>三十四, Ⅳ:<세주>一, Ⅳ:<세주>二,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三(2), Ⅵ:<세주>十五(2), Ⅵ:<세주>十六, Ⅵ:<세주>十七(2), Ⅵ:<세주>十九 〈13〉
〈釋〉Ⅳ:<세주>四 〈1〉
〈月〉Ⅳ:<세주>四 〈1〉
·뀽〈釋〉Ⅰ:<세주>三十四, Ⅳ:<세주>三 〈2〉
〈月〉Ⅰ:<세주>三十四, Ⅳ:<세주>三 〈2〉
〈釋〉Ⅲ:<세주>六 〈1〉
〈月〉Ⅲ:<세주>六 〈1〉
〈釋〉Ⅳ:<세주>七 〈1〉
〈月〉Ⅳ:<세주>七 〈1〉
〈釋〉Ⅰ:<세주>十八, Ⅳ:<세주>六 〈2〉
〈月〉Ⅰ:<세주>十八, Ⅳ:<세주>六 〈2〉
주004)
*
〈석상21:56ㄱ〉에서 이 글자의 왼쪽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데, 이 글자의 표기된 곳 〈석상19:26ㄴ〉에는 ‘阿僧祇낑劫·겁:디:내·야’에서 확인할 수 있음.
〈釋〉Ⅵ:<세주>十四 〈1〉
〈月〉Ⅵ:<세주>十四 〈1〉
단모(端母) 〔ㄷ〕 : 7자
〈釋〉Ⅰ:<세주>八,Ⅰ:<세주>十一, 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一, Ⅰ:<세주>四十三, Ⅱ:<세주>八, Ⅴ:<세주>十五, Ⅴ:<세주>十六, Ⅴ:<세주>十七, Ⅵ:<세주>九,Ⅵ:<세주>十, Ⅵ:<세주>十一 〈12〉
〈月〉Ⅰ:<세주>八,Ⅰ:<세주>十一, 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一, Ⅰ:<세주>四十三, Ⅱ:<세주>八, Ⅴ:<세주>十五, Ⅴ:<세주>十六, Ⅴ:<세주>十七, Ⅵ:<세주>九, Ⅵ:<세주>十, Ⅵ:<세주>十一 〈13〉
:던〈釋〉Ⅰ:<세주>二十五 〈1〉
:단〈月〉Ⅰ:<세주>二十五 〈1〉
·뎽〈釋〉Ⅰ:<세주>九, Ⅰ:<세주>十, Ⅰ:<세주>十九,Ⅰ:<세주>三十二,Ⅰ:<세주>三十三, Ⅵ:<세주>三, Ⅵ:<세주>十六,(3) Ⅵ:<세주>十八, Ⅵ:<세주>二十, 〈11〉
·디〈月〉Ⅰ:<세주>九,Ⅰ:<세주>十,Ⅰ:<세주>十九,Ⅰ:<세주>三十二,Ⅰ:<세주>三十三, Ⅵ:<세주>三, Ⅵ:<세주>十六(3),Ⅵ:<세주>十八,Ⅵ:<세주>二十〈11〉
·뒁〈釋〉Ⅰ:<세주>二十四, Ⅰ:<세주>二十五, Ⅰ:<세주>三十六, Ⅰ:<세주>三十七, Ⅰ:<세주>三十八, Ⅰ:<세주>三十九 〈6〉
:더〈月〉Ⅰ:<세주>二十四, Ⅰ:<세주>二十五, Ⅰ:<세주>三十六, Ⅰ:<세주>三十七, Ⅰ:<세주>三十八, Ⅰ:<세주>三十九(多-더) 〈6〉
:뒁〈釋〉Ⅵ:<세주>十九 〈1〉
:더〈月〉Ⅵ:<세주>十九 〈1〉
〈釋〉Ⅴ:<세주>十八, Ⅵ:<세주>十六 〈2〉
〈月〉Ⅴ:<세주>十八, Ⅵ:<세주>十六 〈2〉
:딩〈釋〉Ⅱ:<세주>十三, Ⅳ:<세주>九, Ⅵ:<세주>七 〈3〉
:디〈月〉Ⅱ:<세주>十三, Ⅳ:<세주>九, Ⅵ:<세주>七 〈3〉
투모(透母) 〔ㅌ〕 : 1자
·톙〈釋〉Ⅰ:<세주>二十三, Ⅰ:<세주>二十四 〈2〉
·티〈月〉Ⅰ:<세주>二十三, Ⅰ:<세주>二十四 〈2〉
정모(定母) 〔ㄸ〕 : 10자
·딷〈釋〉Ⅰ:<세주>三十三, Ⅵ:<세주>十八 〈2〉
·〈月〉Ⅰ:<세주>三十三, Ⅵ:<세주>十八 〈2〉
·똉〈釋〉Ⅰ:<세주>六, Ⅱ:<세주>六, Ⅱ:<세주>七, Ⅱ:<세주>八 〈4〉
·띠〈月〉Ⅰ:<세주>六, Ⅱ:<세주>六, Ⅱ:<세주>七, Ⅱ:<세주>八 〈4〉
〈釋〉Ⅴ:<세주>一 주005)
*
‘똉’의 종성 ‘ㅇ’ 왼쪽에 〔:〕 상성의 방점이 찍혔고 나머지에는 ‘똉’에 방점이 없음.
, Ⅴ:<세주>二, Ⅴ:<세주>三, Ⅴ:<세주>四, Ⅴ:<세주>五 〈5〉
〈月〉Ⅴ:<세주>一, Ⅴ:<세주>二, Ⅴ:<세주>三, Ⅴ:<세주>四, Ⅴ:<세주>五 〈5〉
〈釋〉Ⅵ:<세주>八, Ⅵ:<세주>十九 〈2〉
〈月〉Ⅵ:<세주>八, Ⅵ:<세주>十九 〈2〉
〈釋〉Ⅵ:<세주>一, Ⅵ:<세주>二, Ⅵ:<세주>三, Ⅵ:<세주>四, Ⅵ:<세주>五 〈5〉
〈月〉Ⅵ:<세주>一, Ⅵ:<세주>二, Ⅵ:<세주>三, Ⅵ:<세주>四, Ⅵ:<세주>五 〈5〉
·뛍〈釋〉Ⅵ:<세주>十六 〈1〉 주006)
*
〈법언7:173ㄴ〉에는 ‘惰’로 돼 있는데, 〈석상21:56ㄱ〉만 ‘墯’로 표기됨.
·떠〈月〉Ⅵ:<세주>十六 〈1〉
·띄ᇰ〈釋〉Ⅳ:<세주>六 〈1〉
·〈月〉Ⅳ:<세주>六 〈1〉
〈釋〉Ⅰ:<세주>二十一, Ⅰ:<세주>三十二, Ⅳ:<세주>四, Ⅳ:<세주>五, Ⅵ:<세주>二, Ⅵ:<세주>三, Ⅵ:<세주>四, Ⅵ:<세주>五(2), Ⅵ:<세주>六, Ⅵ:<세주>七, Ⅵ:<세주>九, Ⅵ:<세주>十三 〈13〉
〈月〉Ⅰ:<세주>二十一, Ⅰ:<세주>三十二, Ⅳ:<세주>四, Ⅳ:<세주>五, Ⅵ:<세주>二, Ⅵ:<세주>三, Ⅵ:<세주>四, Ⅵ:<세주>五(2), Ⅵ:<세주>六, Ⅵ:<세주>七, Ⅵ:<세주>九, Ⅵ:<세주>十三 〈13〉
·띵〈釋〉Ⅰ:<세주>二十五, Ⅰ:<세주>三十五, Ⅵ:<세주>一, Ⅵ:<세주>二, Ⅵ:<세주>十五, Ⅵ:<세주>十七(3), Ⅵ:<세주>十九,Ⅵ:<세주>二十 〈10〉
·띠〈月〉Ⅰ:<세주>二十五, Ⅰ:<세주>三十五, Ⅵ:<세주>一 주007)
*
여기만 ‘:’이고 나머지는 ‘·띠’로 같음. 결국 한 글자가 두 가지 음으로 쓰인 것임.
, Ⅵ:<세주>二, Ⅵ:<세주>十五, Ⅵ:<세주>十七(3),Ⅵ:<세주>十九,Ⅵ:<세주>二十 〈10〉
·뗟〈釋〉Ⅰ:<세주>三十二 〈1〉
·찌ᇹ〈月〉Ⅰ:<세주>三十二 〈1〉
니모(泥母) 〔ㄴ〕 : 9자
〈釋〉Ⅰ:<세주>四十三, Ⅲ:<세주>二, Ⅲ:<세주>三, Ⅲ:<세주>四, Ⅲ:<세주>五, Ⅲ:<세주>六 〈6〉
〈月〉Ⅰ:<세주>四十三, Ⅲ:<세주>二, Ⅲ:<세주>三, Ⅲ:<세주>四, Ⅲ:<세주>五, Ⅲ:<세주>六 〈6〉
·녇〈釋〉Ⅰ:<세주>三十四, Ⅱ:<세주>七, Ⅱ:<세주>八, Ⅱ:<세주>十二, Ⅱ:<세주>十三, Ⅵ:<세주>十三 〈6〉
·〈月〉Ⅰ:<세주>三十四, Ⅱ:<세주>七, Ⅱ:<세주>八, Ⅱ:<세주>十二, Ⅱ:<세주>十三, Ⅵ:<세주>十三 〈6〉
〈釋〉Ⅰ:<세주>二十一, Ⅵ:<세주>九(2)<세주/>, Ⅵ:<세주>十, Ⅵ:<세주>十一,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三 〈7〉
〈月〉Ⅰ:<세주>二十一, Ⅵ:<세주>九(2)<세주/>, Ⅵ:<세주>十, Ⅵ:<세주>十一,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三 〈7〉
〈釋〉Ⅴ:<세주>六, Ⅴ:<세주>七, Ⅴ:<세주>八, Ⅴ:<세주>九, Ⅴ:<세주>十 〈5〉
〈月〉Ⅴ:<세주>六, Ⅴ:<세주>七, Ⅴ:<세주>八, Ⅴ:<세주>九, Ⅴ:<세주>十 〈5〉
:녱〈釋〉Ⅱ:<세주>九, Ⅱ:<세주>十, Ⅱ:<세주>十一, Ⅱ:<세주>十二, Ⅳ:<세주>八 〈5〉 주008)
*
‘抳’와 ‘柅’로 각각 표기됨.
:니〈月〉Ⅱ:<세주>九, Ⅱ:<세주>十, Ⅱ:<세주>十一, Ⅱ:<세주>十二, Ⅳ:八 〈5〉
:녱〈釋〉Ⅰ:<세주>三, Ⅰ:<세주>四, Ⅰ:<세주>二十三, Ⅰ:<세주>二十四, Ⅰ:<세주>三十四, Ⅳ:<세주>一, Ⅳ:<세주>二, Ⅵ:<세주>八 〈8〉
:니〈月〉Ⅰ:<세주>三, Ⅰ:<세주>四, Ⅰ:<세주>二十三, Ⅰ:<세주>二十四, Ⅰ:<세주>三十四, Ⅳ:<세주>一, Ⅳ:<세주>二, Ⅵ:<세주>八 〈8〉
·녱〈釋〉Ⅰ:<세주>十八, Ⅰ:<세주>二十二 〈2〉
·니〈月〉Ⅰ:<세주>十八, Ⅰ:<세주>二十二 〈2〉
느ᇢ〈釋〉Ⅲ:<세주>三, Ⅴ:<세주>十九 주009)
*
Ⅴ:十九는 ‘䨲’자임.
<세주/>, Ⅵ:<세주>十九 〈3〉
느ᇢ〈月〉Ⅲ:<세주>三, Ⅴ:<세주>十九, Ⅵ:<세주>十九 〈3〉
방모(幇母) 〔ㅂ〕 : 2자
·붱〈釋〉Ⅰ:<세주>二十二 〈1〉
·붜〈月〉Ⅰ:<세주>二十二 〈1〉
〈釋〉Ⅰ:<세주>二十五, Ⅰ:<세주>二十九, Ⅰ:<세주>三十三, Ⅵ:<세주>八, Ⅵ:<세주>十六, Ⅵ:<세주>十八 〈6〉
〈月〉Ⅰ:<세주>二十五, Ⅰ:<세주>二十九, Ⅰ:<세주>三十三, Ⅵ:<세주>八, Ⅵ:<세주>十六, Ⅵ:<세주>十八 〈6〉
병모(並母) 〔ㅃ〕 : 3자
便·뼌〈釋〉Ⅰ:<세주>二十四 〈1〉
便·뼌〈月〉Ⅰ:<세주>二十四 〈1〉
〈釋〉Ⅰ:<세주>二十二, Ⅰ:<세주>三十五(2)<세주/>, Ⅰ:<세주>四十二, Ⅱ:<세주>六, Ⅱ:<세주>八, Ⅱ:<세주>十三, Ⅵ:<세주>二, Ⅵ:<세주>三, Ⅵ:<세주>七, Ⅵ:<세주>九(2)<세주/>, Ⅵ:<세주>十(3)<세주/>, Ⅵ:<세주>十一,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五, Ⅵ:<세주>十七, Ⅵ:<세주>十八, Ⅵ:<세주>十九 〈21〉
〈月〉Ⅰ:<세주>二十二, Ⅰ:<세주>三十五(2)<세주/>, Ⅰ:<세주>四十二, Ⅱ:<세주>六, Ⅱ:<세주>八, Ⅱ:<세주>十三, Ⅵ:<세주>二, Ⅵ:<세주>三, Ⅵ:<세주>七, Ⅵ:<세주>九(2)<세주/>, Ⅵ:<세주>十(3)<세주/>, Ⅵ:<세주>十一,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五, Ⅵ:<세주>十七, Ⅵ:<세주>十八, Ⅵ:<세주>十九 〈21〉
〈釋〉Ⅰ:<세주>二十二, Ⅰ:<세주>二十三, Ⅰ:<세주>三十二, Ⅵ:<세주>二十 〈4〉
〈月〉Ⅰ:<세주>二十二, Ⅰ:<세주>二十三, Ⅰ:<세주>三十二, Ⅵ:<세주>二十 〈4〉
봉모(奉母) 〔ㅹ〕 : 2자
·ᄬᅮᆮ〈釋〉Ⅰ:<세주>三十二, Ⅵ:<세주>八 〈2〉
·〈月〉Ⅰ:<세주>三十二, Ⅵ:<세주>八 〈2〉
〈釋〉Ⅳ:<세주>八 〈1〉
〈月〉Ⅳ:<세주>八 〈1〉
명모(明母) 〔ㅁ〕 : 6자
·명〈釋〉Ⅰ:<세주>七 〈1〉
·며〈月〉Ⅰ:<세주>七 〈1〉
·묵〈釋〉Ⅰ:<세주>十, Ⅰ:<세주>十一, Ⅱ:<세주>四 〈3〉
·〈月〉Ⅰ:<세주>十, Ⅰ:<세주>十一, Ⅱ:<세주>四 〈3〉
〈釋〉Ⅰ:<세주>三, Ⅰ:<세주>四(2)<세주/>, Ⅰ:<세주>四十三, Ⅱ:<세주>二, Ⅳ:<세주>六, Ⅵ:<세주>十七 〈7〉
〈月〉Ⅰ:<세주>三, Ⅰ:<세주>四(2)<세주/>, Ⅰ:<세주>四十三, Ⅱ:<세주>二, Ⅳ:<세주>六, Ⅵ:<세주>十七 〈7〉
〈釋〉Ⅰ:<세주>三十一, Ⅰ:<세주>三十三, Ⅵ:<세주>十八 〈3〉
〈月〉Ⅰ:<세주>三十一, Ⅰ:<세주>三十三, Ⅵ:<세주>十八 〈3〉
〈釋〉Ⅰ:<세주>二十七 〈1〉
〈月〉Ⅰ:<세주>二十七 〈1〉
:민〈釋〉Ⅴ:<세주>二 〈1〉
:민〈月〉Ⅴ:<세주>二 〈1〉
미모(微母) 〔ㅱ〕 : 1자
·〈釋〉Ⅰ:<세주>二, Ⅰ:<세주>三十六, Ⅰ:<세주>三十七 〈3〉
〈月〉Ⅰ:<세주>二, Ⅰ:<세주>三十六, Ⅰ:<세주>三十七 〈3〉
종모(從母) 〔ᅏ〕 : 1자
ᅏᅯᆼ〈釋〉Ⅱ:<세주>一, Ⅱ:<세주>二 〈2〉
ᄿᅥ〈月〉Ⅱ:<세주>一, Ⅱ:<세주>二 〈2〉
심모(心母) 〔ᄼ〕 : 9자
ᄼᅡᆷ〈釋〉Ⅰ:<세주>三十一(2), Ⅵ:<세주>十七 〈3〉
ᄼᅡᆷ〈月〉Ⅰ:<세주>三十一(2), Ⅵ:<세주>十七 〈3〉
〈釋〉Ⅰ:<세주>十四 〈1〉
〈月〉Ⅰ:<세주>十四 〈1〉
ᄼᅥᆼ〈釋〉Ⅰ:<세주>三十四, Ⅵ:<세주>十 〈2〉
〈月〉Ⅰ:<세주>三十四, Ⅵ:<세주>十 〈2〉
ᄼᅥᆼ〈釋〉Ⅳ:<세주>八 〈1〉
〈月〉Ⅳ:<세주>八 〈1〉
ᄼᅥᆼ〈釋〉Ⅰ:<세주>十二, Ⅰ:<세주>十三, Ⅰ:<세주>十五 〈3〉 주010)
*
여기서 한 글자 ‘娑’가 두 가지 음으로 쓰임.
〈月〉Ⅰ:<세주>十二, Ⅰ:<세주>十三, Ⅰ:<세주>十五 〈3〉
·ᄼᅫᆼ〈釋〉Ⅰ:<세주>二十二 〈1〉
·〈月〉Ⅰ:<세주>二十二 〈1〉
ᄼᅴᇰ〈釋〉Ⅰ:<세주>三十四,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三, Ⅵ:<세주>十四, Ⅵ:<세주>十五, Ⅵ:<세주>十六, Ⅵ:<세주>十七 〈7〉
ᄼᅳᇰ〈月〉Ⅰ:<세주>三十四, Ⅵ:<세주>十二, Ⅵ:<세주>十三, Ⅵ:<세주>十四, Ⅵ:<세주>十五, Ⅵ:<세주>十六, Ⅵ:<세주>十七 〈7〉
ᄼᅵᆫ〈釋〉Ⅵ:<세주>二十 〈1〉
ᄼᅵᆫ〈月〉Ⅵ:<세주>二十 〈1〉
시ᇢ〈釋〉Ⅵ:<세주>五, Ⅵ:<세주>六, Ⅵ:<세주>七, Ⅵ:<세주>十一, Ⅵ:<세주>十八 〈5〉
시ᇢ〈月〉Ⅵ:<세주>五, Ⅵ:<세주>六, Ⅵ:<세주>七, Ⅵ:<세주>十一, Ⅵ:<세주>十八 〈5〉
·ᄼᅡᆮ〈釋〉Ⅵ:<세주>九, Ⅵ:<세주>十, Ⅵ:<세주>十七, Ⅵ:<세주>十八, Ⅵ:<세주>十九(2) 〈6〉
·ᄼᅡᇹ〈月〉Ⅵ:<세주>九, Ⅵ:<세주>十, Ⅵ:<세주>十七, Ⅵ:<세주>十八, Ⅵ:<세주>十九(2) 〈6〉
조모(照母) 〔ᅐ〕 : 4자
:ᅐᅵᆼ〈釋〉Ⅰ:<세주>五, Ⅱ:<세주>十一 〈2〉
:〈月〉Ⅰ:<세주>五, Ⅱ:<세주>十一 〈2〉
·ᅐᅧᆼ〈釋〉Ⅰ:<세주>二十二 〈1〉
·〈月〉Ⅰ:<세주>二十二 〈1〉
〈釋〉Ⅰ:<세주>六 〈1〉
〈月〉Ⅰ:<세주>六 〈1〉
:ᅐᅵᆼ〈釋〉Ⅱ:<세주>三, Ⅱ:<세주>四 〈2〉
:〈月〉Ⅱ:<세주>三, Ⅱ:<세주>四 〈2〉
천모(穿母) 〔ᅕ〕 : 3자
ᅕᅡᆼ〈釋〉Ⅰ:<세주>十六, Ⅰ:<세주>十七, Ⅰ:<세주>二十二, 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 Ⅰ:<세주>四十一, Ⅵ:<세주>十二 〈7〉
〈月〉Ⅰ:<세주>十六, Ⅰ:<세주>十七, Ⅰ:<세주>二十二, 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 Ⅰ:<세주>四十一, Ⅵ:<세주>十二 〈7〉
:ᅕᅨᆼ〈釋〉Ⅰ:<세주>三十 〈1〉 주011)
*
여기서 한 글자 ‘差’가 두 가지 음으로 쓰임.
:〈月〉Ⅰ:<세주>三十 〈1〉
ᅕᅵᆼ〈釋〉Ⅰ:<세주>三十三 〈1〉
〈月〉Ⅰ:<세주>三十三 〈1〉
·ᅕᅡᆮ〈釋〉Ⅵ:<세주>十八 〈1〉
·〈月〉Ⅵ:<세주>十八 〈1〉
상모(牀母) 〔ᅑ〕 : 4자
·ᅑᅨᆼ〈釋〉Ⅱ:<세주>九, Ⅱ:<세주>十, Ⅱ:<세주>十一 〈3〉
:〈月〉Ⅱ:<세주>九, Ⅱ:<세주>十, Ⅱ:<세주>十一 〈3〉
ᅑᅵᆼ〈釋〉Ⅱ:<세주>十二, Ⅱ:<세주>十三 〈2〉
〈月〉Ⅱ:<세주>十二, Ⅱ:<세주>十三 〈2〉
〈釋〉Ⅳ:<세주>五 〈1〉
〈月〉Ⅳ:<세주>五 〈1〉
〈釋〉Ⅳ:<세주>七 〈1〉
〈月〉Ⅳ:<세주>七 〈1〉
심모(審母) 〔ᄾ〕 : 5자
ᄾᅧᆼ〈釋〉Ⅰ:<세주>七, Ⅰ:<세주>八, Ⅰ:<세주>二十 〈3〉
〈月〉Ⅰ:<세주>七, Ⅰ:<세주>八, Ⅰ:<세주>二十 〈3〉
〈釋〉Ⅰ:<세주>九, Ⅰ:<세주>十九, Ⅵ:<세주>八 〈3〉
〈月〉Ⅰ:<세주>九, Ⅰ:<세주>十九, Ⅵ:<세주>八 〈3〉
ᄾᅲᆼ〈釋〉Ⅰ:<세주>二十五, Ⅰ:<세주>三十五 〈2〉
〈月〉Ⅰ:<세주>二十五, Ⅰ:<세주>三十五 〈2〉
:〈釋〉Ⅰ:<세주>三十 〈1〉
:〈月〉Ⅰ:<세주>三十 〈1〉
·ᄾᅧᆼ〈釋〉Ⅰ:<세주>三十五(2)<세주/>, Ⅰ:<세주>三十九, Ⅵ:<세주>四, Ⅵ:<세주>十九 〈5〉
·〈月〉Ⅰ:<세주>三十五(2)<세주/>, Ⅰ:<세주>三十九, Ⅵ:<세주>四, Ⅵ:<세주>十九 〈5〉
영모(影母) 〔ㆆ〕 : 8자
·〈釋〉Ⅰ:<세주>四十, Ⅰ:<세주>四十一 〈2〉
·〈月〉Ⅰ:<세주>四十, Ⅰ:<세주>四十一 〈2〉
·〈釋〉Ⅰ:<세주>一 〈1〉
(훼손) 주012)
*
글자의 왼쪽만 조금 보임.
〈月〉Ⅰ:<세주>一 〈1〉
·ᅙᅥᆮ〈釋〉Ⅳ:<세주>九 〈1〉
·ᅙᅥᇹ〈月〉Ⅳ:<세주>九 〈1〉
〈釋〉Ⅰ:<세주>十三, Ⅰ:<세주>十七, Ⅰ:<세주>十八, Ⅰ:<세주>二十二, Ⅰ:<세주>二十四,Ⅰ:<세주>二十五,Ⅰ:<세주>二十八, Ⅰ:<세주>三十一, Ⅰ:<세주>四十二, Ⅰ:<세주>四十三, Ⅱ:<세주>五, Ⅱ:<세주>六, Ⅲ:<세주>一, Ⅲ:<세주>四, Ⅳ:<세주>一, Ⅴ:<세주>四, Ⅵ:<세주>一, Ⅵ:<세주>九, Ⅵ:<세주>十, Ⅵ:<세주>十一, Ⅵ:<세주>十四, Ⅵ:<세주>十六(2)<세주/>, Ⅵ:<세주>十九, Ⅵ:<세주>二十 〈25〉
〈月〉Ⅰ:<세주>十三, Ⅰ:<세주>十七, Ⅰ:<세주>十八, Ⅰ:<세주>二十二, Ⅰ:<세주>二十四,Ⅰ:<세주>二十五,Ⅰ:<세주>二十八, Ⅰ:<세주>三十一,Ⅰ:四<세주>十二, Ⅰ:<세주>四十三, Ⅱ:<세주>五, Ⅱ:<세주>六, Ⅲ:<세주>一, Ⅲ:<세주>四, Ⅳ:<세주>一, Ⅴ:<세주>四, Ⅵ:<세주>一, Ⅵ:<세주>九, Ⅵ:<세주>十, Ⅵ:<세주>十一, Ⅵ:<세주>十四, Ⅵ:<세주>十六(2)<세주/>, Ⅵ:<세주>十九, Ⅵ:<세주>二十 〈25〉
:〈釋〉Ⅰ:<세주>八, Ⅰ:<세주>十三 〈2〉
:〈月〉Ⅰ:<세주>八, Ⅰ:<세주>十三 〈2〉
·ᅙᅲᆨ〈釋〉Ⅱ:<세주>三 〈1〉
·〈月〉Ⅱ:<세주>三 〈1〉
·〈釋〉Ⅰ:<세주>二十六 〈1〉
〔漚〕 주013)
*
〈월석19:58ㄱ〉 한자 두 글자는 보이지 않아 〈법화7:110ㄴ〉 ‘漚究隷’에서 복원함.
〈月〉Ⅰ:<세주>二十六 〈1〉
〈釋〉Ⅱ:<세주>九, Ⅴ:<세주>一, Ⅴ:<세주>二, Ⅴ:<세주>三, Ⅴ:<세주>五 〈5〉
〈月〉Ⅱ:<세주>九, Ⅴ:<세주>一, Ⅴ:<세주>二, Ⅴ:<세주>三, Ⅴ:<세주>五 〈5〉
효모(曉母) 〔ㅎ〕 : 2자
〈釋〉Ⅱ:<세주>二 〈1〉
〈月〉Ⅱ:<세주>二 〈1〉
〈釋〉Ⅴ:<세주>十一, Ⅴ:<세주>十二, Ⅴ:<세주>十三, Ⅴ:<세주>十四, Ⅴ:<세주>十五,Ⅴ:<세주>十六,Ⅴ:<세주>十七,Ⅴ:<세주>十八, Ⅴ:<세주>十九 〈9〉
〈月〉Ⅴ:<세주>十一, Ⅴ:<세주>十二, Ⅴ:<세주>十三, Ⅴ:<세주>十四, Ⅴ:<세주>十五,Ⅴ:<세주>十六,Ⅴ:<세주>十七,Ⅴ:<세주>十八, Ⅴ:<세주>十九 〈9〉
유모(喩母) 〔ㅇ〕 : 5자
:영〈釋〉Ⅰ:<세주>四十一(2) 〈2〉
:여〈月〉Ⅰ:<세주>四十一(2) 〈2〉
·영〈釋〉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三 〈2〉
·여〈月〉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三 〈2〉
〈釋〉Ⅱ:<세주>十 〈1〉
(훼손) 주014)
*
이 글자는 오른쪽 위 부분만 조금 보임. 〈월석〉에 쓰인 예를 못 찾았음.
〈月〉Ⅱ:<세주>十 〈1〉
〈釋〉Ⅰ:<세주>三十八, Ⅰ:<세주>三十九 〈2〉
〈月〉Ⅰ:<세주>三十八, Ⅰ:<세주>三十九 〈2〉
·잉〈釋〉Ⅰ:<세주>十六, Ⅰ:<세주>十七 〈2〉
·이〈月〉Ⅰ:<세주>十六, Ⅰ:<세주>十七 〈2〉
래모(來母) 〔ㄹ〕 : 11자
〈釋〉Ⅵ:<세주>十七 〈1〉
〈月〉Ⅵ:<세주>十七 〈1〉
〈釋〉Ⅰ:<세주>三十九, Ⅵ:<세주>十六, Ⅵ:<세주>十九 〈3〉
〈月〉Ⅰ:<세주>三十九 〈1〉 󰌿
〈月〉Ⅵ:<세주>十六 〈1〉 󰍕 〈3〉 주015)
*
한 글자가 〈월석〉에서 ‘랴, 려, ·랴ᇦ’ 세 가지 음으로 쓰임.
·랴ᇦ〈月〉Ⅵ:<세주>十九 〈1〉 󰍅
·렁〈釋〉Ⅰ:<세주>二十四, Ⅰ:<세주>三十六, 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 〈4〉
·러〈月〉Ⅰ:<세주>二十四, Ⅰ:<세주>三十六, Ⅰ:<세주>三十七, Ⅰ:<세주>四十 〈4〉
〈釋〉Ⅰ:<세주>二十一, Ⅰ:<세주>二十八, Ⅰ:<세주>二十九, Ⅱ:<세주>六, Ⅵ:<세주>七, Ⅵ:<세주>九, Ⅵ:<세주>十六(2) 〈8〉
〈月〉Ⅰ:<세주>二十一, Ⅰ:<세주>二十八, Ⅰ:<세주>二十九, Ⅱ:<세주>六, Ⅵ:<세주>七, Ⅵ:<세주>九, Ⅵ:<세주>十六(2) 〈8〉
·롕〈釋〉Ⅰ:<세주>五, Ⅰ:<세주>二十五, Ⅰ:<세주>二十六, Ⅰ:<세주>二十七, Ⅰ:<세주>二十八, Ⅰ:<세주>二十九, Ⅱ:<세주>一, Ⅱ:<세주>二, Ⅱ:<세주>五, Ⅱ:<세주>七, Ⅱ:<세주>八, Ⅱ:<세주>十二, Ⅵ:<세주>四, Ⅵ:<세주>五, Ⅵ:<세주>六, Ⅵ:<세주>十六 〈16〉
·리〈月〉Ⅰ:<세주>五, Ⅰ:<세주>二十五, Ⅰ:<세주>二十六, Ⅰ:<세주>二十七, Ⅰ:<세주>二十八,Ⅰ:<세주>二十九, Ⅱ:<세주>一, Ⅱ:<세주>二, Ⅱ:<세주>五, Ⅱ:<세주>七, Ⅱ:<세주>八, Ⅱ:<세주>十二, Ⅵ:<세주>四, Ⅵ:<세주>五, Ⅵ:<세주>六, Ⅵ:<세주>十六 〈16〉
:롕〈釋〉Ⅰ:<세주>八, Ⅰ:<세주>十一, Ⅰ:<세주>十二, Ⅰ:<세주>十三, Ⅰ:<세주>十四,Ⅰ:<세주>十五,Ⅰ:<세주>二十,Ⅰ:<세주>二十四,Ⅰ:<세주>三十一, Ⅲ:<세주>五, Ⅲ:<세주>六, Ⅴ:<세주>一, Ⅴ:<세주>三, Ⅴ:<세주>四, Ⅴ:<세주>五, Ⅴ:<세주>六, Ⅴ:<세주>七, Ⅴ:<세주>八, Ⅴ:<세주>九, Ⅴ:<세주>十, Ⅵ:<세주>十二 〈21〉
:리〈月〉Ⅰ:<세주>八, Ⅰ:<세주>十一, Ⅰ:<세주>十二, Ⅰ:<세주>十三, Ⅰ:<세주>十四,Ⅰ:<세주>十五,Ⅰ:<세주>二十,Ⅰ:<세주>二十四,Ⅰ:<세주>三十一, Ⅲ:<세주>五, Ⅲ:<세주>六, Ⅴ:<세주>一, Ⅴ:<세주>三, Ⅴ:<세주>四, Ⅴ:<세주>五, Ⅴ:<세주>六, Ⅴ:<세주>七, Ⅴ:<세주>八, Ⅴ:<세주>九, Ⅴ:<세주>十, Ⅵ:<세주>十二 〈21〉
·롕〈釋〉Ⅰ:<세주>三十二, Ⅰ:<세주>三十三, Ⅳ:<세주>三, Ⅳ:<세주>四, Ⅳ:<세주>五, Ⅳ:<세주>七, Ⅵ:<세주>十八, Ⅵ:<세주>二十 〈8〉
·리〈月〉Ⅰ:<세주>三十二, Ⅰ:<세주>三十三, Ⅳ:<세주>三, Ⅳ:<세주>四, Ⅳ:<세주>五, Ⅳ:<세주>七, Ⅵ:<세주>十八, Ⅵ:<세주>二十 〈8〉
〈釋〉Ⅰ:<세주>六, Ⅲ:<세주>一, Ⅲ:<세주>二, Ⅲ:<세주>三 〈4〉
〈月〉Ⅰ:<세주>六, Ⅲ:<세주>一, Ⅲ:<세주>二, Ⅲ:<세주>三 〈4〉
〈釋〉Ⅱ:<세주>十三 〈1〉
〈月〉Ⅱ:<세주>十三 〈1〉
〈釋〉Ⅰ:<세주>二十二, Ⅰ:<세주>四十二, Ⅲ:<세주>四 〈3〉
〈月〉Ⅰ:<세주>二十二, Ⅰ:<세주>四十二, Ⅲ:<세주>四 〈3〉
〈釋〉Ⅰ:<세주>三十八, Ⅰ:<세주>三十九, Ⅳ:<세주>八, Ⅴ:<세주>十一, Ⅴ:<세주>十二, Ⅴ:<세주>十三, Ⅴ:<세주>十四, Ⅵ:<세주>十九 〈8〉
〈月〉Ⅰ:<세주>三十八, Ⅰ:<세주>三十九, Ⅳ:<세주>八, Ⅴ:<세주>十一, Ⅴ:<세주>十二, Ⅴ:<세주>十三, Ⅴ:<세주>十四, Ⅵ:<세주>十九 〈8〉
일모(日母) 〔ㅿ〕 : 2자
:〈釋〉Ⅰ:<세주>一, Ⅰ:<세주>二 〈2〉
〔:〕 주016)
*
이 글자는 왼쪽만 조금 보이나 다음 어구에 ‘爾’가 쓰이고 그 음이 표기됨으로 복원한 것임.
〈月〉Ⅰ:<세주>一, Ⅰ:<세주>二 〈2〉
:〈釋〉Ⅰ:<세주>四十三 〈1〉
〔:〕 주017)
*
이 글자는 전혀 보이지 않으나, 한자어구 ‘阿摩若那多夜’에서 ‘若’ 음을 표시한 ‘(荏蔗)’ 두 자가 반절(反切)을 나타낸 것이므로 남광우(1995)에서 두 글자를 찾아서 ‘荏:, 蔗:쟝’ 두 글자의 반절(反切)로 ‘若’의 음을 ‘:’로 복원했다. 남광우(1995:428)에서 荏 :〈동국정운3:37ㄱ〉, 남광우(1995:434)에서 蔗 :쟝〈동국정운6:25ㄱ〉 인용함.
〈月〉Ⅰ:<세주>四十三 〈1〉
i) 위에 보인 한자를 자모별로 합계하면 ‘이 문헌’의 다라니에 쓰인 한자수는 다음과 같다.
견모(見母) 〔ㄱ〕 : 5자
군모(群母) 〔ㄲ〕 : 7자
단모(端母) 〔ㄷ〕 : 7자
투모(透母) 〔ㅌ〕 : 1자
정모(定母) 〔ㄸ〕 : 10자
니모(泥母) 〔ㄴ〕 : 9자
방모(幇母) 〔ㅂ〕 : 2자
병모(並母) 〔ㅃ〕 : 3자
봉모(奉母) 〔ㅹ〕 : 2자
명모(明母) 〔ㅁ〕 : 6자
미모(微母) 〔ㅱ〕 : 1자
종모(從母) 〔ᅏ〕 : 1자
심모(心母) 〔ᄼ〕 : 9자
조모(照母) 〔ᅐ〕 : 4자
천모(穿母) 〔ᅕ〕 : 3자
상모(牀母) 〔ᅑ〕 : 4자
심모(審母) 〔ᄾ〕 : 5자
영모(影母) 〔ㆆ〕 : 8자
효모(曉母) 〔ㅎ〕 : 2자
유모(喩母) 〔ㅇ〕 : 5자
래모(來母) 〔ㄹ〕 : 11자
일모(日母) 〔ㅿ〕 : 2자
합계 : 109자
ii) 〈석상〉과 〈월석〉의 한자음 정음 표기는 널리 알려진 유모(喩母)의 종성 ‘ㅇ’이 전자엔 씌었는데 후자에 일률적으로 다 쓰이지 않았다.
iii) 〈석상〉에 쓰인 종성 ‘ㄱ, ㄷ’에 대하여 〈월석〉에서는 종성 ‘ㆆ’만을 쓴 것이 다르고, 〈석상〉 ‘ㅱ, ㄴ, ㅇ, ㅁ’에 〈월석〉 ‘ㅱ, ㄴ, ㅿ, ㅁ’을 썼으니, ‘ㅇ, ㅿ’ 제외하고 나머지는 같이 쓰였다.
iv) ▴정모(定母)의 ‘地’ 자는 ‘·띵(·띠), :’와 같이 1자 2음으로 쓰임.
▴심모(心母)의 ‘娑’ 자도 ‘ᄼᅥᆼ()’와 ‘·ᄼᅫᆼ(·)’와 같이 1자 2음으로 쓰임.
▴천모(穿母)의 ‘差’ 자는 ‘:ᅕᅨᆼ(:)’와 ‘ᅕᅵᆼ()’와 같이 1자 2음으로 쓰임.
▴래모(來母)의 ‘略’ 자는 ‘량(랴/려/·랴ᇦ)’와 같이 1자 3음으로 쓰임.
v) 같은 음을 나타내는데 ‘黎·梨·犂’의 세 글자가 쓰임.
vi) 한 글자가 1회만 쓰인 것.
견모(見母)의 ‘迦, 鳩’ 2자
군모(群母)의 ‘乾, 拘, 求, 祇’ 4자
단모(端母)의 ‘亶, 埵’ 2자
투모(透母) -------------------
정모(定母)의 ‘墯, 蹬, 袠’ 3자
니모(泥母) -------------------
방모(幇母)의 ‘簸’ 1자
병모(並母)의 ‘便’ 1자
봉모(奉母)의 ‘浮’ 1자
명모(明母)의 ‘咩, 牟, 泯’ 3자
미모(微母) -------------------
종모(從母) -------------------
심모(心母)의 ‘桑, 莎, 辛’ 3자
조모(照母)의 ‘蔗, 遮’ 2자
천모(穿母)의 ‘刹’ 1자
상모(牀母)의 ‘旃, 常’ 2자
심모(審母)의 ‘首’ 1자
영모(影母)의 ‘安, 頞, 郁, 歐’ 4자
효모(曉母)의 ‘訶’ 1자
유모(喩母)의 ‘韋’ 1자
래모(來母)의 ‘蘭’ 1자
일모(日母)의 ‘若’ 1자
vii) 한 글자가 10회 이상 쓰임.
병모(並母)의 ‘婆〔뿽〕’ 21회
영모(影母)의 ‘阿〔〕’ 25회
래모(來母)의 ‘隷〔·롕〕’ 16회, ‘履〔:롕〕’ 21회
viii) ‘다니’ 자모의 모음
앞의 자모 일람에서 모음(사성 제외)에 대하여 〈석상〉과 〈월석〉의 같음과 다름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ㄱ) 두 문헌에 쓰인 자모의 모음이 같은 것
ㅏ:ㅏ, ㅑ:ㅑ, ㅓ:ㅓ, ㅕ:ㅕ, ㅜ:ㅜ, ㅝ:ㅝ, ㅟ:ㅟ
(ㄴ) 두 문헌에 쓰인 자모의 모음이 다른 것.
ㅕ:ㅑ 憍 : Ⅰ:<세주>三十九 / 略 량:려 Ⅵ:<세주>十六ㅡ
ㅓ:ㅏ 亶 던:단 Ⅰ:<세주>二十五 / 沙 ᄼᅥᆼ: Ⅰ:<세주>三十四 / 阿 : Ⅰ:<세주>十三
ㅖ:ㅣ 帝 뎽:디 Ⅰ:<세주>九 / 剃 톙:티 Ⅰ:<세주>二十三 / 第 똉:띠 Ⅰ:<세주>六 / 尼 녱:니 Ⅰ:<세주>二十一 / 泥 녱:니 Ⅴ:<세주>六 / 抳 녱:니 Ⅱ:<세주>九 / 禰 녱:니 Ⅰ:<세주>三 / 膩 녱:니 Ⅰ:<세주>十八 / 差 ᅕᅨᆼ: Ⅰ:<세주>三十 /緻 ᅑᅨᆼ: Ⅱ:<세주>九 / 隷 롕:리 Ⅰ:<세주>五 / 履 롕:리 Ⅰ:<세주>八 / 利 롕:리 Ⅰ:<세주>三十二 / 黎 롕:리 Ⅰ:<세주>六ㅡ
ㅝ:ㅓ 埵 뒁:더 Ⅵ:<세주>十九 / 墯 뛍:떠 Ⅵ:<세주>十六 / 痤 ᅏᅯᆼ:ᄿᅥ Ⅱ:<세주>一
ㅢ:ㅡ 蹬 띄ᇰ: Ⅳ:<세주>六 / 僧 ᄼᅴᇰ:ᄼᅳᇰ Ⅰ:<세주>三十四ㅡ
ㅣ:ㅐ 地 띵: Ⅵ:<세주>一
ㅕ:ㅣ 袠 뗟:ᅑᅵᇹ Ⅰ:<세주>三十二
ㅘ:ㅓ 曼 :먼 Ⅰ:<세주>二
ㅙ:ㅐ 娑 ᄼᅫᆼ: Ⅰ:<세주>二十二ㅡ
ㅣ:ㅡ 旨 ᅐᅵᆼ: Ⅰ:<세주>五 / 枳 ᅐᅵᆼ: Ⅱ:<세주>三 / 爾 : Ⅰ:<세주>一
(ㄷ) 위 (ㄱ)은 〈석상〉과 〈월석〉에 쓰인 다라니 음의 모음이 같은 경우이고, (ㄴ)은 두 문헌에 쓰인 다라니 음의 모음이 달라진 것이다. 문제는 (ㄴ)의 경우로 그 중 제일 많은 것이 ‘ㅖ→ㅣ’인데, 이는 선행 초성의 자음이 설음(舌音) ‘ㄴ, ㄸ’과 정치음(正齒音) ‘ᅐ, ᅑ’의 음운환경이 원인인 것으로 보이며, 그밖에 그 예가 1, 2, 3회 정도로 적은 것은 주로 상대 모음과의 관계 ‘양성모음→음성모음’, ‘반모음 오/우〔w〕+단모음→단모음’, ‘전설모음→중설모음’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Ⅴ. 맺음말

현전하는 『석보상절』 열 권(권제3, 6, 9, 11, 13, 19, 20, 21, 23, 24) 중에서 가장 늦게 알려진 ‘이 문헌’에 대하여 위에서 논한 것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서지학적으로는 〈석상〉 제13에서 시작된 『법화경언해』 권제1~7의 내용이 ‘이 문헌’에서 끝나니, 〈석상〉 권제14, 15, 16, 17, 18 등 다섯 권은 전하는 것이 없으나 이로써 『법화경』의 내용은 『석보상절』의 권제13에서 권제21까지 총 9권에 실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화경』의 동일 원문에 대해 『석보상절』 권제13~21, 『월인석보』 권제11~19, 『법화경언해』 권제1~7 등 세 번에 걸쳐서 언해가 되었으므로 동일 원문의 언해 양상을 용이하게 비교하여 볼 수 있다. ‘이 문헌’은 『법화경』 권7의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 다라니품 제26, 묘장엄왕본사품 제27, 보현보살권발품 제28을 언해한 것이다.
둘째, ‘이 문헌’에는 6편의 다라니가 실려 있는데, 그 저경인 『법화경언해』 권7에는 한자음은 표기되지 않은 채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어 ‘이 문헌’과 『월인석보』 권19에 실린 다라니가 다라니의 한자음 표기 연구의 자료가 된다. 여기서는 6편에 쓰인 한자음은 모두 107자로 이를 자모(字母) 별로 정리하고, 그것이 ‘이 문헌’과 『월인석보』 권19에서 자모별로 어떻게 다른가를 정리하였다.
셋째, 어휘면에서 희귀어로는 ‘도(평-평-거, 부사)’가 기존 고어사전의 표제어로 등재되지 않은 것이며, 그밖의 몇몇 단어는 가장 빠른 예를 보여주므로 고어사전에서 표제어를 대표하는 첫 예문으로 실을 것을 제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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